세계와 지역에 대한 미국의 오판은 미국이 국가나 집단의 분노, 상실, 충동을 이해하지 못한 채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확증편향에 매몰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즉 개발도상국들은 특히 팬데믹을 거치면서 이면계약으로 백신을 독차지하고 기후위기에 약속한 자금을 국제기구에 기부하지 않는 북반부 국가의 리더 미국의 규칙을 더이상 신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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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4-01-02 01: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가 오고 이제 이틀째네요 2024년에 하고 싶은 거 즐겁게 하시고 늘 건강 잘 챙기세요


희선

겨울호랑이 2024-01-02 09:23   좋아요 1 | URL
희선님 항상 감사합니다. 희선님께서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원하시는 바 다 이루는 한 해 되시길 기원합니다!! ^^^:)
 

한국적인 다원적 정치철학을 모색한다면 ‘빨갱이‘  또는 ‘친북 좌파‘와 같은 무지막지한 낙인을 우리사회의 공론장에서 영원히 퇴출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극심한 이념 대결의 와중에서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었던 비극의 현대사를 체험한 나라에서 빨갱이라는 낙인은 다른 수단에 의한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인 야만적 폭력이다. 이런빨갱이 담론이 좌우를 막론하고 모든 다원주의자들에 의해 차단되고 비난되는지의 여부가 바로 한국 사회에서 다원적 공공 정치성이 최소한이라도 지켜지는지를 알아볼 수 있는 리트머스 실험이라고 나는 믿는다. 같은 차원은 아니지만 유사한 논리로, 우파에 대해 퍼부어지곤 하는 ‘꼴통 보수‘ 같은 언사 역시 다원적 공공 정치의 이름으로 공론장에서 배제되어야 마땅하다고 믿는다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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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피닷 2024-01-01 03: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겨울호랑이 2024-01-02 00:0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루피닷님께서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많은 것을 성취하는 한 해 되세요! ^^:)
 

수운의 개벽사상은 시운(時運)에 따른 말세(종말)에 대한 적시가 아니었다. ‘오심즉여심’으로서의 시천주(侍天主)를 자각했기에 생각 틀 자체가 달라지는 사건이었다. 시천주란 천주이자 지극한 기운〔至氣〕을 ‘님〔主〕’으로 모신 인간, ‘내 마음이 그 마음이 된’ 개념이다. 따라서 수운의 하느님 체험이 중요하다.

종교체험에서 비롯한 ‘다시개벽’은 일상에서 사람을 한울님처럼 대하라는 사인여천(事人如天)13으로 이어진다. 사람뿐 아니라 사물 또한 그리 공경하라고 했다. 사물을 공경하고〔敬物, 경물〕, 사람을 높게 여기는 일〔敬人, 경인〕이 결국 하늘을 섬기는 일〔敬天, 경천〕인 까닭이다.

개벽사상의 백미는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원불교의 개교표어 속에 있다. 동양정신〔道〕으로 서구 물질세계를 홀대하는 척사의 변형, 즉 동도서기(東道西器)와는 차원 다른 개벽사상의 표현이다. 서구의 근대성을 인정하되 동시에 정신세계의 구축이라는 이중과제를 내포했다.

아래 인용문에서 서구 신학과 변별된 개벽사상으로서 원(圓)기독교의 일면을 살필 수 있다. "신은 우리를 위해 존재하거나 우리 안에 존재하고 있거나 우리 밑에 계시는 분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은선이 말한 대로 신학(神學)에서 신학(信學)으로의 개벽적 전회가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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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는 누구의 것인가 - 왜 진보와 보수는 서로 가지려 하는가
조지 레이코프 지음, 나익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자유‘의 개념은 우리 모두가 동의하는 완전히 합의된 핵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핵심은 애매한 ‘자유‘이기 때문에, 다른 중요한 부분들은 모두 채워야 할 여백으로 남아 있다. 그 여백들을 진보주의자가 채우는가 아니면 보수주의자가 채우는가에 따라, ‘자유‘라는 동일한 낱말이 표현하는 해석이 근본적으로 다르게 도출된다. _ 조지 레이코프, <자유는 누구의 것인가>, p20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off, 1941 ~ )의 <자유는 누구의 것인가 Whose Freedom?>는 ‘자유(freedom)‘를 바라보는 진보와 보수의 서로 다른 두 관점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의 유명한 다른 책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와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도 프레임(frame)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되지만, 이 책에서는 ‘자유‘라는 단어와 연관되어 한 걸음 더 깊게 들어가 독자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안겨준다. 비록 저자는 본문에서 라캉(Jacques Lacan, 1902~1981)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지만, 개인적으로 저자의 논증 안에서 실재계, 상징계, 상상계의 구도를 연상케 된다.

심층 프레임은 당신의 도덕 체계나 세계관을 구조화하는 반면, 표층 프레임은 그 범위가 훨씬 좁다. 표층 프레임은 특정한 낱말이다. 구를 비롯하여 의사소통의 양식과 연결된다... 정치에서는 프레임을 만드는 사람이 논쟁에서 승리하는 경향이 있다. 지난 35년간 보수주의자들은 미국의 정치 담론에서 대부분의 쟁점에 대한 프레임을 만들었다. _ 조지 레이코프, <자유는 누구의 것인가>, p19

저자는 본문에서 진보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의 ‘언어‘에 대한 태도에 대해 언급한다.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중시하는 보수주의자들과 유기적 인과관계를 중시하는 진보주의자들의 서로 다른 접근법은 각자의 심층 프레임을 얼마만큼 공고하게 구조화하는가, 그리고 표층 프레임이 어떻게 형성되는가를 결정짓는다. 의식적인 단어와 이데올로기의 직접적인 결합은 무의식적인 단어의 이미지를 돌파한다. 진보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은 서로 같은 실재계에서 각자의 상상계를 그리며 살아간다. 그렇지만, 보다 강한 인과관계를 통해 언어에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결합한 보수주의자들은 흐릿한 관념과 열린 가능성을 가진 진보주의자들의 언어를 상징계에서 압도해버리고 그 결과 자유의 이념은 보수주의자들의 의도대로 해석되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보수주의자들의 상징계에서의 승리가 결국 ‘자유‘의 개념을 보수주의자들의 의도대로 해석하게 만든 것은 아닐까. 극우집단에게 태극기를, 수준 이하 대통령에게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내어주고 있는 우리의 현실은 실재계의 또다른 예시일 것이다.

(미국의) 극우파들은 자유 개념을 재정의하려 하고 있다... 우익의 선전 도구들은 ‘해방‘이나 ‘자유‘라는 낱말을 반복하고 있다. 이는 우익이 ‘자유‘ 개념을 훔치기 위해 현재 사용하고 있는 기제 중 하나이다. 우익이 이러한 낱말을 사용할 때, 그 의미는 거의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조금씩 변화한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실제로 일어난다. _ 조지 레이코프, <자유는 누구의 것인가>, p11

진보주의자들은 쟁점에 따라, 사고 양식에 따라, 그리고 태도에 따라 여러 분파로 나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유사성보다는 차이점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 진보주의자들보다는 보수주의자들이 훨씬 더 효과적으로 서로 단결한다. 진보주의자들의 전망이나 해석은 대부분 무의식으로 남아 있으며, 지금까지 자신들에게도, 타인들에게도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_ 조지 레이코프, <자유는 누구의 것인가>, p118

<자유는 누구의 것인가>는 자유를 둘러싼 진보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의 논쟁을 다루고 있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단순한 정치용어 하나를 둘러싼 다툼만을 말하지 않는다. 언어가 우리의 의식과 행동에 미치는 영향과 의지의 한계 등은 오랜 철학과 과학의 과제들이 맞물린 현실적인 문제임을 생각하게 된다.

논증을 할 때 언어는 프레임과 개념적 은유의 형태로 복합적 프레임과 개념의 연쇄를 떠오르게 한다. 특정 언어가 반복되기 때문에, 특정 프레임과 개념적 은유가 뇌에서 계속해서 활성화되고, 결국 시냅스의 변화를 통해 뇌에 물리적으로 자리 잡게 된다. 당신의 뇌와 뇌의 개념들이 변화될 때, 자유의지가 변화된다. 왜냐하면 당신은 개념화할 수 있는 것만을 당신의 의지로 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_ 조지 레이코프, <자유는 누구의 것인가>, p314

저자는 본문을 통해 프레임 다툼에서 이기는 법에 대해 말한다. 그것은 프레임을 벗어나는 것이다. <道德經>에서 말하듯 무엇을 함(爲)으로써 이기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음(無爲)을 함으로써(爲) 전혀 다른 관점으로 문제를 바라볼 때,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가, freedom과 liberty가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되지 않을까 싶다...

자라면서 받았던 교육 때문에, 우리는 낱말이 투명하다고, 즉 낱말에는 실재와 직접 합치하는 단 하나의 단순한 의미만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교육 때문에 우리는 이견의 여지 없이 명확한 핵심적 의미와 거의 정반대의 확대 의미를 지닌 논쟁적인 개념의 관점으로 생각하지 못한다. 또한 프레임과 은유적 개념의 측면에서도 생각하지 못한다. 더 나아가, 대안적 세계관의 측면에서도 생각하지 못한다. _ 조지 레이코프, <자유는 누구의 것인가>, p321

‘자유는 바로 이동의 자유‘라는 은유는 두 가지의 중요한 부분, 즉 ‘~으로부터의 자유‘와 ‘~을 향한 자유‘로 구성된다. ‘~으로부터의 자유‘는 당신의 이동을 방해할 수 있는 것과 관련이 있다. ‘~을 향한 자유‘는 접근 경로를 확보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_ 조지 레이코프, <자유는 누구의 것인가>,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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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는 일은 앓는 일이다. 누구를 잃으면 무엇도 함께 사라진다. 누구를 살릴 수 없기에 사라진 그 무엇의 행방을 좇으며 끙끙 앓는 것이다. 잃었던 것이 희망이었음을 깨달으면, 잃는 일은 되찾는 일로 변모한다. 희망,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희망. - P21

교사의 외로움과 학생의 외로움과 학부모의 외로움은 만날 수있을까. 한 교사가 어떤 출구도 갖지 못한 채 외롭게 죽어간 장소로 끊임없이 돌아가는 마음. 숱한 이들이 오늘도 그 안과 밖을 오가며 살아가고있다. 혹은 죽어가고 있다. - P27

참사 유가족이 또 다른 참사의 추모식, 참사 현장을 찾아가 유가족을 만나는 일은 고통스럽다. 그럼에도 생명안전버스를 탄 것은 유가족의 외로운 손을 잡고 함께 기억하고 곁이 되어 서로 부축하고 위로받고 싶어서였다. - P41

 ‘국가‘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바는 이제 우리에게 달렸다. 피땀 흘려 모은 돈을 허망하게 빼앗긴 상황을 개인의 비극으로 치부하는 국가에 우리는 물을 것이다. 과연 한국이 인간의 보금자리가 될 수 있는 나라인지. 우린 언제든 집을 잃을 것이다. - P45

우리가 들어야 할 것은 그런 말들이 아니라 참사 생존자와 유가족의 목소리다. 잃은 이를 돌려드릴 수 없고 다친 곳을 지워드릴 수 없어도 함께 듣는것으로 그다음을 향할 수 있다. 미래의 참사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진실뿐이라는 걸 깨달은 이들은 질문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 P70

승리와 정의를 외치는 잔인한 행위. 이념이나 신념 때문에 전쟁할 리 없다. 돈 때문에, 더 많이 갖기 위해 학살한다. 전쟁이 없었다면 일상의 무수한 기쁨과 행복을누렸을 아이들이, 평범한 사람들이 지금도 무참히 죽어간다. 단숨에 산산조각나는 삶.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원통한죽음.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소중하다.  -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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