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설립되면서 복수의 세계도 막을 내린다. 하지만 아테네가 세운 법의 세계에서 발표된 첫 번째 판결문은 오레스테스에게 무죄를 선포한다. 무죄 판결의 기준은 바로 여성들을 열등한 존재이자 남성에게 종속된 존재로 바라보는 남성 우월주의라는 원칙이었다. "자식들을 생성하는 존재는 어머니가 아니다. 어머니라는 존재는 그저 그녀 안에 뿌려진 씨앗을 기른 모체에 지나지 않는다. 진정한 생성의 주체는 그녀를 수태케 한 아버지다." 이는 아폴론이 오레스테스를 변호하며 했던 말이다. 복수와 법률의 대립을 대체하며 아버지와 어머니의 대립이 부각되었을 때 결국 우위를 점한 것은 아버지였다. 그런 식으로 오레스테스는 혐의에서 벗어난다.

언급이 필요한 또 한 가지 사실은 아테네 법이 아들과는 달리 딸을 법적 상속 대상에서 제외시켰다는 점이다. 딸들이 요구할 수 있는 유일한 재산은 혼인 지참금뿐이었다. 하지만 재산을 물려줄 아들이 없는 상태에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날 경우 딸이 비록 재산은 물려받을 수 없었지만 가문의 재산이 그녀의 자식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 주는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여하튼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아테네의 민주주의 역시 초기에는 ‘선택과 배제’의 이원론적인 원칙을 적용했다는 사실이다. 어떤 형태의 정권하에서든, 시민이 된다는 것은 특권을 누릴 수 있는 계층에 속한다는 것을 의미했고 어딜 가든 특권 보유자들은 외부인이 특권 계층에 가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최대한 제한하려고 노력했다.
아테네 민주주의의 기반은 네 가지 원칙, 즉 (1) 평등, (2) 선거, (3) 보수, (4) 참여에 의해 구축되었다고 볼 수 있다.

패권을 장악한 아테네는 민주주의 체제를 선호함으로써 하나의 구체적인 정치적 방향을 제시했다(민주주의를 가장 우월한 정치체제로 간주했기 때문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시국가들의 입장에서 가장 두려웠던 것은 델로스 동맹에서 탈퇴한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던 이유, 즉 탈퇴가 아테네의 즉각적인 군사개입이라는 위협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러한 정황 속에서 아테네는 장기간에 걸친 압력으로 낙소스(기원전 465년), 타소스(기원전 463년), 사모스(기원전 439년) 섬을 동맹군에 가담하도록 만들었고 그런 식으로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도 계속해서 승리를 거두었다. 페리클레스 시대의 광명은 이처럼 빛과는 정반대되는 어두운 측면들을 가지고 있었고 이는 모두 폭력적이고 냉소적인 제국주의의 특징이었다.

한편 그토록 잔혹한 전쟁에서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울러 스파르타의 보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귀족과 부자 들은 아테네를 정상적인 도시로 만드는 데 실패했고 중도적인 체제에 적응하는 데에도, 또 하나의 스파르타를 만드는 데에도 실패하고 말았다.
이러한 결과를 초래한 원인은 반민주주의 운동을 이끌던 아테네 귀족들의 나약함이었다고 볼 수 있다.

키레네학파와 키니코스학파는 소크라테스로부터 물려받은 행복이라는 주제와 훌륭한 삶이라는 주제를 상이한 방식으로, 하지만 모두 이론적이기보다는 양식적인 차원에서 발전시켰다. 아리스티포스는 쾌락주의를, 디오게네스는 반사회적인 고행주의를 발전시켰지만 이들의 자전적인 삶의 구축은 이들의 철학적 작업인 동시에 하나의 예술작품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이들은 모두 도덕적 이상을 하나의 미학적 전략을 통해 표현했고 그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지혜를 이론화하는 대신 묘사하는 것으로 그쳤다.

판도라의 신화가 가진 가장 흥미로운 점은 판도라가 창조되는 과정이다. 성서의 이브와 달리 판도라는 남성의 신체 일부에서 탄생하지 않고 헤파이스토스에 의해 물과 흙으로 빚어졌다. 여기서 드러나는 남성과의 차이점은 단순히 다르다는 말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판도라는 타자성을 표상한다. 헤시오도스는 판도라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여성이라는 종족genos과 여성들만의 부족들phylai이 그녀에게서 유래"한다고 말한다. 여성은 남성 종족과 구별되는 ‘또 다른’ 종족이다. 헤시오도스는 모든 여성이 판도라의 후손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판도라의 여성은 남성의 기여 없이 자율적으로 번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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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은 쉬는 날. 레츠는 '첫 심부름'을 하기로 했다. 다섯 살인 아리사와 샤나는 엄마의 부탁으로 심부름을 했다. 레츠는 일곱 살이니까 시키지 않아도 심부름을 갈 수 있다. _ 히코 다나카, 요시타케 신스케, <레츠의 심부름> , p12

 


일곱 살 어린이 레츠는 부모님께서 TV를 보며 무심코 던진 말을 듣고 '스스로' 심부름을 나간다. 부모님 어느 누구도 부탁하지 않은 심부름. <레츠의 심부름>은 이렇게 스스로에게 심부름이라는 숙제를 내고 해결하는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바쁜 여름 방학 기간을 지나고 2학기 첫 독후감 시간. 연의가 고른 책은 <레츠의 심부름>이다. 오랫만의 독후감이라 쉬운 책으로 가볍게 몸을 풀고 가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연의가 쓴 독후감을 읽으니 7살 레츠의 생각과 행동이 귀엽게 보였나 보다.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지.' '나도 처음엔 그랬지'라는 문장을 보면, 아마도 예전 연의 자신의 모습을 레츠에게서 발견한 것 같아. 아빠는 <레츠의 심부름>을 읽으면서 레츠가 왜 심부름을 가야겠다고 마음 먹었는지를 생각했어. TV를 보면서 다섯 살 아이가 심부름 하는 모습을 보며 기특하다고, 예쁘다고 칭찬해주는 엄마와 아빠의 말. 레츠가 듣고 싶었던 것은 엄마 아빠의 칭찬이 아니었을까.


 "쟤들, 엄마 아빠 흉내 내고 있어." 엄마 말에 아빠가 대꾸했다.

 "부모들이 하는 얘기를 들은 거지. 나도 조심해서 말해야겠군." 레츠도 한 마디 했다.

 "조심해서 들어야겠군." _ 히코 다나카, 요시타케 신스케, <레츠의 심부름> , p8


 그래서 아빠는 <레츠의 심부름>을 읽으면서 아빠는 연의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좋게 하고 있는지를 다시 생각해봤어. 너무 엄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연의가 잘 한 일에 아빠가 칭찬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는지 말이야. 필요한 이야기를 잘 하지 않으면 레츠의 심부름이 엄마 아빠에게는 '가출'이 되었던 것처럼 서로 엇나가지 않을까.  


 다른 한 편으로 연의가 예전에 읽었던 <이슬이의 첫 심부름>도 떠올리게 되었어. 엄마 심부름으로 가게에 우유를 사러 간 다섯 살 이슬이 이야기. 거스름돈을 받아와야 했기에 떨리는 마음으로 심부름을 해야했던 이슬이 이야기와 책을 읽고 나서 엄마 신용카드로 심부름을 했던 연의 모습이 떠오르는 구나. 이제는 다 커서 용돈으로 알아서 가계부도 쓰는 나이까지 되었으니 아빠야말로 '연의가 그런 시절이 있었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단다.


 예전에 아빠가 6학년 크리스마스 때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동시집을 사주시면서 동시 5개를 외우면 원하는 선물을 사주신다고 했었던 적이 있었어. 시집에서 시를 골랐는데, 아무래도 외우기 쉬운 짧거나 익숙한 시를 고르게 되더라. 그 중 하나가 <과수원 길>이었어. 


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네

하얀 꽃 잎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네

향긋한 꽃냄새가 실바람타고 훨훨

둘이서 말이 없네 얼굴 마주 보며 생긋

아카시아꽃 하얗게 핀 먼옛날의 과수원길

동구밖 과수원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네

하얀 꽃 잎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네

향긋한 꽃냄새가 실바람타고 훨훨

둘이서 말이 없네 얼굴 마주 보며 생긋

아카시아꽃 하얗게 핀 먼옛날의 과수원길


 연의는 잘 모르겠지만, 사실 이 시는 유명한 노래 가사이기도 했어. 덕분에 아빠는 시 1개는 쉽게(?) 노래에 맞춰 외우고 숙제를 할 수 있었어. 이 이야기를 왜 했느냐구? 흠, 연의가 고른 책을 보니 옛날 아빠의 <과수원 길>이 떠오르는구나. 그냥 그렇다구. 자,  그럼 이번 한 주도 활기차게 보내자! 사랑하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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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23-09-04 21: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우리가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던 시절이 있었는데

겨울호랑이 2023-09-04 22:01   좋아요 2 | URL
참 그리운 시절입니다...
 

도쿄전력 후쿠시마(福島) 제1 원자력발전 1~4호기가 지진에 의해 손상을 입고", 쓰나미로 인해 비상용 전원이 손실됨으로써 냉각기능을 상실하였다. 이는 핵연료의 노심용해 (melt down)와 수소폭발을 잇달아 발생시켰고 다량의 방사성물질이 방출되어 광범위하게 비산 엄청난 사고로 이어졌다. 그에 따라 십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고향과 정든 집을 뒤로 하고 겨우옷만 걸친 상태로, 언제 보금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지 아무런 전망도 없이 오랜 시간 피난생활을 강요받고 있다. 또 일본의 많은사람들이 방사능 피폭의 공포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방사선 장애가 나타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과 두려움은 앞으로 몇 년이 지나도 불식되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세대를 거쳐성실하게 일궈 온 논밭은 오염되고 방치되었다.  - P7

쓰나미 규모에 대한 예측 실패나 비상용 전원배치의 실수, 폐로(廢爐, decommissioning)에 따른경제적 손실을 두려워하여 바닷물 주입을 주저하는 바람에 사태를 악화시킨 것만이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본질적인 문제는 정권당(자민당)의 유력정치가와 엘리트 관료가 주도권(initiative)을 쥐고, 돈다발의 위력으로 현지 주민들의 반대를 무시하고, 지역사회의 공동성까지 파괴하며 죽자사자 원자력발전건설을 추진해 온 것 자체에 있다. - P10

이 시점에서 원자력발전(원자로 건설)의 진정한 목표는 에너지수요에 대한 대처보다는 오히려 핵기술 보유, 즉 마음만 먹으면핵무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핵무기 잠재적 보유국으로서 일본을 만드는 것이었다. - P19

단적으로 말해 일본의 원자력 개발과 원자로 건설은 전후의 권력정치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기시에게 ‘평화적 이용‘이라는 단어는 갑옷 위에 덮어 입은 옷이었다.그런데 도조내각의 각료를 지냈고 A급 전범으로 체포되었던기시의 이 발언, 그리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 입은 피해를 이야기하면서 동아시아 나라들에 대한 가해의 역사를 이야기하지않는 일본이, 기시의 발언을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동아시아 민중은 어떻게 보고 있었을까? - P23

사카모토에게는 핵기술 특히 무기생산과 직결되는 재처리나 우라늄 농축이라는 민감기술(sensitive technology)의 보유는 국제적인 지위의 상징(status symbol)이었다. 경제적 합리성도 없고 기술적 전망도 보이지 않는데, 일본이 아직도 핵연료사이클을 고집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 P35

잠재적 핵무기 보유국 상태를 유지하면서 핵무기 보유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결국 전후의 일본 지배층에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원자력산업 육성의 궁극적인 목적이며 원자력발전추진의 숨겨진 진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탈(脫)원자력발전·반(反)원자력발전은 동시에 탈 원자폭탄 · 반 원자폭탄이어야할 것이다. - P37

결국 원자력발전 플랜트는 그 거대한 구조와 복잡함 때문에 사전에 예측할 수 없는 사고 위험성을 항상 내포하고 있다. 이렇듯부주의로 인한 사소한 조작 실수나 순간적인 판단실수 또는 시공 과실이 겹쳐졌을 때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 P74

녹아내려 으깨어진 수 톤의 우라늄연료 덩어리는 당장 냉각에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랜 기간에 걸쳐 계속 차단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과 자원과 에너지가 들어가며 이는앞으로 일본인들의 어깨를 짓누를 것이다. 또 광범위한 토양오염이 발생했고 그 영향은 장기간 계속된다. 원자력발전에서 시행착오를 통한 발전이 용납되지 않는 이유이다. - P83

 군과 대기업의 결합은 현저하게 강화되어 이후 산군복합체(産軍複合體)라고 불리는 세력이 생겨나 사회적 영향력을 증대시켜 갔다. 그리고 전후의 미국금융자본에 의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슬로건으로 하는 핵산업의 글로벌한 전개 역시 국가 주도라는 의미에서 발전적 계승이었다. - P113

그러나 시장원리에 위임하였다면 수익성이나 리스크의 크기로 봐서 모두 기피하리라고 여겨지는 원자력발전에 대한 국가와 전력회사의 이상할 정도로 두터운 보호는 약자보호의 반대에 서는 것으로 중대한 결과를 초래한다. - P123

그러나 이상화된 상황에 적용된 핵물리학의 법칙에서 현실의 핵공업까지 거리는 극한적으로 크고 거대한 권력에 지탱하여 가능해진 것이고, 그 결과는 그때까지 우수한 장인이나 기술자가 경혐주의적으로 몸에 익혀 온 인간의 능력 (capacity) 허용범위의 최대치를 밟고 넘어섰다고 본다. - P125

언젠가 우라늄 자원도 고갈될 것이다. 그러나 그 사이에 지구의 대기와 해양 그리고 대지를 방사성물질로 오염시키고 수세대 수십 세대 후의 일본인들에게, 아니 인류에게 수만 년씩이나 독성을 잃지않는 대량의 폐기물과 사람이 근접할 수 없는 다수의 폐기된 원자로, 나아가 반경 수킬로미터에 걸쳐 인간의 발길을 거부하는토양 등을 남길 권리가 우리에게는 없다. 그러한 것을 후세에 떠넘기는 것은 단적으로 자손에 대한 범죄이다. - P130

일본인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만 피폭당한 것이 아니다. 앞으로 일본은 후쿠시마 사고로 인해 미국과 프랑스에 이어 태평양을 방사성물질로 오염시킨 세 번째 나라로 세계인에게 회자될 것이다. 또한 대기권에서 원폭실험을 한 미국이나 과거의 소련과 함께 대기 중에 방사성물질을 대량으로 방출한 나라의 일원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된 이상 전세계가 후쿠시마의 교훈을 공유해야 할 터이며, 사고의 경과와 책임을 포장하고 은폐하지 말아야 한다. 밝힐 것을 밝히고 더 나아가 솔선하여 탈 원전사회, 탈 원폭사회를 선언하고 그 모델을 세계에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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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는 국가정보원(국정원)을 동원해 민간인을 사찰하고공작을 벌였다. 언론인도 그 대상에서 빠지지 않았다. 당시 청와대가 연루된 정황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검사 시절 지휘한 수사 덕에 이 기록은 세상에 모습을드러냈다. 국정원 내부 문건만이 아니라이명박 전 대통령이 소유했던 영포빌딩에서도 서류 상자가 발견됐다. 당시 언론계 살풍경이 담겼다. - P10

노 기자가 보기에 진짜 문제는, 청와대 대변인이 본인에 대한 보도에 항의하기 위해 언론사 보도국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는 사실이다. "보도에 문제 제기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라면 해명자료를 내거나 정정 보도를 청구하는 등 공식대응이었어야 한다. 이동관 대변인의 방식은 언론사 내 ‘우군‘이나 정부 내 조력자들 말고는 알 수 없었다는 점에서 교묘하고 대담했다." - P15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많은 공영방송이 그 가치와 역할을 효과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고 그 결과 전세계적으로 공영방송이 무엇인지, 왜 중요한지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결국 미디어 리터러시의 문제다. 현재 공영방송들이 캠페인을 통해 공영 미디어가궁극적으로 민주주의에 왜 중요한지 대중에게 설명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이유다. 하지만 이것이 언론만의 잘못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 P18

신뢰할 수 있는 공적 재원은 정치적상업적 이익보다 대중에 대한 책임을 높이기 때문이다. 공영방송은 수익성이 아니라 사명에 의해 운영된다. 어떤 콘텐츠를 제작할지가 공적 가치에 따라 결정된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공영방송은 국영방송과도 다르다. 국영방송은 사회의 - P18

4대 그룹의 전경련 복귀는 적잖은 의미가 있다. 전경련이 올해 초부터 정부의재계 창구 역할을 맡았지만, 실질적으로재계 대표 단체가 되려면 4대 그룹이 회원사로 이름을 올려야 한다. 다만 전경련과 기업들이 국정 농단 사건 이전으로 돌아간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재정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과거 전경련의 힘은 사실상 기업의 출연금에서 나왔다. 4대그룹 부담 규모가 특히 컸다. 전경련 회비수익은 2016년 409억원이었다. 4대 그룹이 탈퇴한 이후인 2017년에는 113억원까지 급감했다. - P22

검단 자이 안단테 아파트 사고를 대중은 ‘순살 아파트‘라며 지탄한다. 반은맞고 반은 틀린 표현이다. 철근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다만 ‘보없이 지으려면 반드시 추가 보강해야 하는 철근‘이 누락된게 문제였다. 이게 바로 ‘전단보강근‘이다. 보 없이도 슬래브를 지탱하려면 기둥주변에 전단보강근을 보충하거나 하중을지탱하는 보조 설비를 기둥에 붙여야 한다. 역학적으로 전단보강이 되지 않는 무량판 구조는 하중이 과할 경우 슬래브가기둥에 뚫려버리는 문제가 생긴다(펀칭전단).  - P29

건설업 채권 평가 분야에 재직한 한애널리스트는 한국 건설사의 사업 특징을 이렇게 설명한다. "아파트를 중심으로노하우를 쌓아온 한국 건설업계는 사실 ‘시공 실력‘ 면에서 다른 나라보다 뒤떨어진다. 한국에서 아파트로 쉽게 돈을 벌지만, 막상 실력이 필요한 해외 플랜트 사업에서 돈을 까먹기 일쑤다." 이 지적은 시공사에 국한되지 않는다. HDC현대산업개발의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부터 이번 LH 발주 ‘순살 아파트 논란까지 문제의 핵심은 일해야 할 사람들이 제대로 일하지 않은 데서 나왔다. ‘무량판구조도제대로 구현 못하는 한국 건축‘은 화려한조감도와 값비싼 분양가에 가려진 허약한 내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 P30

해외에서는 거꾸로 대중교통 지출액을 내려주려는 지원정책을 속속 도입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코로나19로 인한 이용객 감소와 유가물가 상승을 인상의 근거로 댔지만, 해외 선진국들은 바로 그 이유로 오히려 대중교통 요금을 깎거나 통제했다. 독일의 9유로 티켓과 49유로 티켓이 대표적이다.  - P38

해외 국가와 도시들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아낌없이 퍼주는 복지, 포퓰리즘으로 인한 걸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철저히 계산기를 두드려보고 내린 결정이다. 그 계산이란 단순히 투입한 원가비용과 돌아올 예상 수익을 더하고 빼는 정량적 평가가 아니다. 대중교통 요금 지원 정책이 가져오는 사회경제적 편익과가치를 따져보는 정성적 평가다. 득실을 따져보면서 대중교통 요금 지원 정책을시행한 국가와 도시들은 크게 세 가지 정책 목표를 내세웠다. 고물가 대응(물가안정, 취약계층 지원), 탄소 감축(기후위기대응) 그리고 이동의 공공성 확보와 지속가능성이다. - P39

한·미·일 정상회담에서는 ‘한·미·일 공동성명(캠프데이비드 정신)‘ ‘캠프데이비드 원칙‘ ‘협의에 대한 공약‘ 등 합의 문서 3개가 채택됐다. 3개 문서로 분산됐지만, 전통적 동맹의 요소와 함께 진화한 동맹의 요소를 고루 갖추었다. 다만 이 3개문서는 한국의 안전보장에 대해 중대한것이지만 조약은 아니다. 국회 동의가 불필요하다는 의미에서 한·미 상호방위조약과는 차이가 있다. 성격이 유사하기 때문에 ‘진화한 군사 신동맹‘이라고 할 수있다. - P44

중국 경제의 두 축인 수출과 부동산개발의 하향세가 불황 요인으로 꼽힌다. 올해 상반기 수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2% 감소했다.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대부분의 국가가 긴축정책을 시행하고 있어 글로벌 수요가 부진한 데다 미·중무역 갈등에 따라 시장이 분절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축인 부동산은 문제가 더욱심각하다. 중국 GDP의 30%가량을 차지하는 부동산 개발 경기가 둔화되자 중국경제는 직격탄을 맞았다. - P46

중국 리오프닝에 따른 ‘상저하고(상반기에 경기가 나쁘고, 하반기에 좋아진다는 의미)‘를 기대하고 있던 한국 입장에서 중국의 경제불황은 악재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중국의 10대 수입 대상국 중수입이 가장 큰 폭으로 줄어든 국가는 한국이었다. 전년 동기 대비 전체 수입이6.7% 감소할 동안 한국으로부터의 수입은 24.9% 감소했다. 같은 기간 한국 입장에서 중국은 최대 무역흑자국에서 최대무역 적자국으로 전환되며, 한국의 무역수지 적자를 심화시켰다.  - P48

요즘 그들의 가장 큰 걱정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다. 김정자씨는 말을 아꼈다. "우리가 3년 전부터 여기 부산에 있는일본영사관 앞에서 1인 시위를 했어. 배운 사람들이 이 문제를 잘 좀 풀면 좋겠는데 우리가 시위를 하니까 정치인들이와서 편을 갈라 어민들은 그게 굉장히 불편하고 화가 나지.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도 거기에 휘말린다니까. 그러니까 이제는 말할 가치가 없어져." 해녀 문화는 해녀가 들어갈 바다가 있어야 보존될 수 있다. ‘해녀 문화 살리기‘가 해녀만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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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가장자리 레이첼 카슨 전집 3
레이첼 카슨 지음, 김홍옥 옮김 / 에코리브르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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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의 가장자리는 이상하고도 아름다운 세계다. 여기는 지상의 장구한 역사 속에서 파도가 육지에 부딪치며 거세게 부서지는 왁자한 곳, 조수가 뭍을 향해 밀려들었다 물러나고 또다시 밀려드는 곳이다. 해안은 이틀 연속 정확하게 똑같은 경우가 없다. 밀물과 썰물은 자신의 영원한 리듬 속에서 밀려들었다 빠져나가기를 되풀이한다. 해수면 자체도 결코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게 아니다.... 바다의 가장자리는 언제나 종잡을 수 없고 뭐라 설명하기 힘든 영역으로 남아 있다. _ 레이첼 카슨, <바다의 가장자리>, p25


 레이첼 카슨 (Rachel Carson, 1907~1964)의 <바다의 가장자리 The Edge of the Sea>는 바다 3부작의 마지막 작품으로 이를 통해 바다를 주제로 한 한 편의 서사시가 마무리된다. 먼저 <바닷바람을 맞으며>에서는 갈매기, 거북 등 바다에서 살아가는 생명을 주제로 이야기가 펼쳐졌다면, <우리를 둘러싼 바다>에서는 바다의 여러 면을 보여주는 크고 작은 물리적 힘 파도, 조류, 조석 등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바다의 가장자리>는 생명과 바다가 만나는 곳, 연안을 배경으로 해안과 해안에 서식하는 플랑크톤, 갑각류 등의 생명을 주제로 한다.


 우리가 해안에서 저조선까지 내려간다는 것은 지구 자체만큼이나 오래된 세계로, 즉 땅과 물이라는 요소가 처음 만났던 장소, 타협과 갈등과 끊임없는 변화가 한꺼번에 아우성치는 장소로 접어드는 것이다. 살아 있는 우리 생명체에게는 이곳이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생명체'라고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는 모종의 존재들이 최초로 얕은 바닷물 속을 떠돌아 다니던 곳이기 때문이다. _ 레이첼 카슨, <바다의 가장자리> 머리말, p211


 가장 강인하고 적응력 있는 생물만이 이 변화무쌍한 지역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러나 고조선과 저조선 사이 지대, 즉 조간대(潮間帶)는 온갖 동식물의 보고다. 이 복잡한 해안 세계에서 생명체는 가능한 거의 모든 틈새에 비집고 들어앉음으로써 엄청난 강인함과 생존력을 과시한다... 해안은 장구한 세계다. 육지와 바다가 존재해온 시기만큼 육지와 바다가 만나는 지점인 이곳 해안도 존재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안은 끊임없는 창조와 끈질긴 삶의 본능에 관한 감각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세계이기도 하다. _ 레이첼 카슨, <바다의 가장자리>, p26 


 <바다의 가장자리>에서는 바다와 육지가 만나는 곳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변화와 변화에 적응하며 살아가기 위한 여러 생명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이 그려지는 중간중간 저자는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어하는 목소리를 전해준다. 


 본시 시간과 공간은 지극히 상대적이라 이와 같은 마법적인 때와 장소가 불현듯 불러일으킨 통찰 속에서 주관적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이러한 광경과 기억에서 이끌어낼 수 있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생명체가 등장하고 진화하고 소멸해가는 모든 다양한 징후 속에는 생명의 장엄함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 장엄한 아름다움의 바탕이 바로 생명의 의미와 중요성이다. _ 레이첼 카슨, <바다의 가장자리>, p33 


 생명의 의미와 중요성. 그것은 우리가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고향 바다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햇볕이 닿지 않는 어두컴컴한 바다 밑에서도, 파도가 넘실대는 대양 한 복판에서도, 끊임없이 육지에서 밀려내려오는 흙과 바다로부터 몰려오는 파도가 만나는 해안에서도 여러 형태의 삶의 모습이 펼쳐진다. 각기 다른 환경 속에서 개체로서 살아가고, 종족으로서 번성하기 위한 생명의 약동. 엘랑 비탈(elan Vital). 레이첼 카슨의 바다 3부작은 고요해 보이는 바다 속에서 들리지 않은 수많은 음파가 감지되듯,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의 움직임을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들려주며 바다의 활기와 소중함을 알려주는 의미있는 책이라 여겨진다...


 해류가 자기 경로를 따라 끊임없이 이동하는 한 어떤 특정 생명체가 영역을 넗혀가고, 결국 새로운 영역을 차지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나는 생명의 중압감을 이보다 더 잘 보여주는 것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살아남고, 여정을 이어가고, 번식하고 하는 강렬하고 맹목적이고 무의식적인 의지 말이다. 광대한 이동에 참여하고 있는 동물 대다수가 실패할 운명에 처해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생명의 신비 가운데 하나다. 수십억 마리의 생명체가 실패하고 단 몇 마리만 성공할 때 그 수많은 실패로 인해 비로소 성공이 의미를 갖게 된다는 사실 또한 신비롭다. _ 레이첼 카슨, <바다의 가장자리>, p251



작은 만을 굽어보는 동안 나는 해안이라는 이 가장자리 세계에서 육지와 바다가 서로 소통하고 있으며, 바다 생명체와 육지 생명체가 서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또한 과거를, 그리고 그날 아침 바닷물이 새의 발자취를 말끔히 씻어낸 것처럼 전에 이뤄진 많은 것을 지우면서 시간이 끊임없이 흐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 P32

조개, 게, 갯지렁이는 서로 밀접하게 연관된 삶을 살아가는 동물 공동체의 일원이다. 게와 갯지렁이는 적극적인 포식자, 즉 육식동물이다. 조개, 홍합, 따개비는 플랑크톤을 먹고 살며, 매번 밀려드는 조수가 먹이를 날라주므로 같은 자리에 붙박여 생활한다. - P122

달빛이 은백색으로 흐릿하게 비치는 연안해의 해수면 아래에서는, 그리고 고요한 밤 해안 쪽으로 흐르는 조수 아래에서는 약동하는 생명의 기운이 산호초를 뒤덮는다. 수십억 마리의 산호충은 재빠른 신진대사를 통해 갑각류의 조직, 고둥의 유생, 작은 갯지렁이 따위를 제 몸에 필요한 물질로 전환하는 식으로 생존에 필요한 것을 얻는다. 이에 따라 산호 역시 성장하고 번식하고 발달한다. 작은 산호충들이 저마다 자신의 석회질 공간을 산호초에 덧붙이는 것이다. - P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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