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은 '루앙 대성당'을 제대로 보는 방법은, 자리에서 일어나 성당으로 똑바로 걸어간 후 성당 주변을 한 바퀴 돌고 오는 것이라고 했다. 호크니가 좋아한다는 이 일화처럼, 한 방향에서 평면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찬찬히 둘러보며 입체적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대상이 제대로 보인다. 


 누군가는 호크니의 작품이 다루는 소재, 즉 풍경이나 실내, 초상화 등이 가볍다고, 혹은 회화라는 양식 자체가 낡았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호크니는 그린다는 것이 본질이 무엇인지, 작품으로써 되묻는다. 본다는 것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매일 다른 것이므로 풍경은 아직도 낡지 않았다. 실험을 계속하는 한 회화에는 여전히 새로운 것이 있다. 그의 그림이 낡은 것으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본질은 어떤 순간에도 바래지 않고 제빛을 낸다.  출처 : 르몽드디플로마티크(http://www.ilemonde.com)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4월호와 이웃분의 소개로 그의 이름을 접하기 전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1937 ~ )는 내게 낯선 화가였다. 호크니가 유명한 화가이며,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작품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읽게 된 <다시, 그림이다 - 데이비드 호크니와의 대화 A Bigger Message: Conversations With David Hockney>. 책은  호크니의 작품과 인생를 가볍지만, 진솔하게 알려준다. 책에서 그리고 있는 호크니의 모습 중에서도 '평행 투시법'과 '사진과 아이패드를 이용하는 미술가'가 그의 회화를 잘 표현해주는 단어와 이미지라 생각되는데, 이번 페이퍼에서는 이에 대해 적고자 한다.


1. 원근법과 평행 투시법

 

 이제 중심광선이 남아 있습니다. 중심광선은 평면과 맞닥뜨릴 때 어느 방향에서건 인접 각도가 항상 똑같은 유일한 광선입니다. 중심광선의 특징으로는 모든 광선 가운데 가장 예리하고 생동감이 넘친다는 겁니다. 또 중심광선이 위에 놓여 있을 때 그 면적이 가장 커 보인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다른 모든 광선들이 이 중심광선을 한 가운데 두고 에워싸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중심광선을 두고 광선의 리더 혹은 군주라고 합니다... 중심광선의 위치와 거리는 시각 활동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더 없이 큰 역할을 합니다.(p87) <회화론> 中


 르네상스 시대를 살았던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Leon Batista Alberti, 1404 ~ 1472)의 <회화론 On Painting> 속에서 원근법(遠近法, perspective)에 대해 위와 같이 설명한다. 중심광선을 기준으로 3차원의 세계를 2차원 평면으로 옮기는 기법인 원근법은 이내 대표적인 기법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같은 시기 원근법으로 유명한 화가 파울로 우첼로(Paolo Uccello, 1397 ~ 1475)는 원근법을 철저하게 구현한 화가였는데, 이는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 1511 ~ 1574)의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 Le Vita De' Piu Eccellenti Architetti, Pittori, et scultori>안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림] 파울로 우첼로, <대홍수 Noah's ark> (출처 :http://www.theflorentine.net/news/2016/03/restored-paolo-uccello-frescoes/)


 그(파올로 우첼로)는 원근법 문제에 사로잡혀 소실점을 항상 머릿속에 간직했다. 그는 관찰하는 모든 사물, 즉 들판, 경작지, 개천, 그밖에 모든 자연을 건조하고 딱딱한 스타일로 처리했다. 만일 그가 그림 그리는 데 필요한 사물들을 작품 속에 잘 선택했다면 참으로 완벽했을 것이다... 이 그림은 여러 면에서 우수한 작품이므로 파울로는 상당한 명성을 얻었다. 이 그림의 초상들은 원근법의 선으로 축소되어 있으며, 각종 물건이 그려져 있고, 몇몇 사람이 쓰는 피렌체풍으로 장식된 모자 등이 매우 아름답다.(p578)... 이 그림에는 또 원근법으로 그린 통이 있는데 구부러진 선들이 여간 섬세하지 않다. 또 포도넝쿨로 덮인 격자세공이 그려져 있는데, 그 모퉁이가 소실점으로 멀어져가나 파울로는 여기서 오류를 범했다. 물건이 놓여 있는 평면의 선들이 격자세공의 선과 평행하여 떨어지나 통은 같은 선을 따르지 않았다. 어쩌면 이같이 세밀하고 조심성 많은 화가가 이런 큰 오류를 범했는지 나는 가끔 놀라곤 한다.(p579)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 1> 中


 르네상스 시대 이후 오랜 기간 동안 회화 기법의 중심에 위치한 원근법을 호크니는 거부한다. 중심광선을 기준으로 입체가 평면으로 재구성되는 원근법 대신 중심선이 없는 중국의 기법에 더 끌린 호크니. 원근법이라는 서양 회화의 전통을 거부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한 그의 작품 세계안에서 게이(gay)라는 이유로 영국을 떠나 오랜 기간 미국 LA에서 생활해야 했던 그의 삶을 발견한다면 다소 무리한 해석일까. 


 초기 회화 작품 중 상당수는 평행 투시법으로 제작했습니다. 이는 하나의 소실점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항상 그 방식이 더 좋다고 생각했습니다.(p57)... 나는 외부의 소실점과 내연 기관을 소개한 것은 서구의 큰 실수였다고 말해왔습니다. 외부 소실점은 당신을 밖으로 멀리 밀어냅니다.(p58) <다시, 그림이다> 中


 [그림] 중국 고전 회화(출처 : http://kr.chnmuseum.cn/tabid/705/Default.aspx?ExhibitionLanguageID=212)

 

 우리는 고정된 시점에 갇혀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그 두루마리 그림을 볼 때는 거대한 도시 곳곳을 돌아다녔습니다. 이는 엄청난 차이입니다... 두루마리 전체를 펼칠 수는 없습니다. 계속 돌려가며 보아야 합니다. 따라서 양 측면에 경계선이 없습니다. 아래쪽 경계선은 보는 사람이고 위쪽 경계선은 하늘이 됩니다. 그러므로 책으로는 두루마리 그림을 볼 수 없습니다. 책에서는 책장이 접히면서 넘어가기 때문이지요.(p179)... 이제 우리는 중국인들이 11세기에 소실점의 개념을 거부했다는 것과 그 이유가 보는 이가 거기에서 사라지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보는 이가 움직이지 않는 것이지요.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어떤 측면에서는 죽음을 의미합니다.(p180) <다시, 그림이다> 中


 2. 사진과 아이패드를 이용하는 미술가


 <다시, 그림이다> 안에서 호크니는 사진에 대해 부정적인 자신의 입장을 밝힌다. 우리가 실제라고 믿게 만드는 사진의 이미지는 우리가 보는 방식으로 현실을 보여주지 않는다. 호크니에 따르면 기하학적인 복제만으로는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없다. 여기에 심리적인 해석이 더해져야 비로소 온전한 인식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작업 방식은 이러한 철학 위에 이루어진다.


 사진은 우리 모두가 매우 따분하고 비슷한 방식으로 보게 합니다... 우리는 미술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엄청난 수의 이미지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 이미지들은 훨씬 더 의심스럽습니다. 그것들은 사실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p52)...  우리는 사진이 궁극적으로는 실제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카메라는 기하학적으로 대상을 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런 방식으로 보지 않습니다. 부분적으로는 기하학적으로 보지만 또한 심리적으로 보기도 합니다.(p53) <다시, 그림이다> 中


 TV 영상은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우리는 TV 영상과 같은 방식으로 보지 않습니다. 우리는 항상 훑어보고 초점을 이동합니다. 그런데 그런 영상을 위해 카메라는 고정되어야 하고 많이 움직일 수 없습니다. 마치 세계에 대한 실물 크기의 복제품을 만드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것을 어디에 두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해석하는 것입니다.(p164) <다시, 그림이다> 中


  회화가 삶에 대한 끊임없는 재해석이라는 호크니의 관점에서 사진은 '관점의 복제'라는 장점을 가진 매체였다. 그래서, 사진을 통해 여러 관점을 조망하고 이를 조합해서 전체를 바라보고 자신의 예술에 담아내는 방식으로 호크니는 작품을 탄생시켰다.


 화가는 단순히 캔버스나 종이에 저점 더 많은 물감을 덧칠하는 것이 아니다. 참신한 생각과 관찰을 계속하면서 각각의 생각과 관찰을 통해 이전의 것들을 조정해나가는 것이다... 인간의 많은 경험은 층 쌓기이다. 층 위에 또 하나의 층을 쌓는 것처럼 우리는 과거와 비교하면서 현재를 이해하고 그 이후로 더 많은 층을 더해가며 현재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그에 따라서 우리의 관점은 변해간다.(p115) <다시, 그림이다> 中 


 호크니는 한 번에 하나의 캔버스만을 그렸고, 작업을 마치며 J-P가 모든 것을 사진으로 찍고 출력했다. 이를 통해 호크니는 이전에 한 작업과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을 언제든지 항상 비교해볼 수 있었다. (호크니) 거의 즉각적인 복제가 가능한 디지털 사진이라는 컴퓨터의 기능을 활용했습니다. 디지털 사진을 통해 직사각형의 전체 화면을 구성해가면서 모든 것을 함께 볼 수 있어 작품 전체의 진행 과정을 즉시 확인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컴퓨터는 매우 훌륭한 도구이기는 하나 그것을 잘 사용하려면 상상력이 필요합니다.(p73) <다시, 그림이다> 中


  새로운 기술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예술을 위해 적극 활용하는 호크니의 열린 마음은 사진의 활용에만 그치지 않는다. 아이패드(ipad)를 이용해서 그림을 그리는 그의 모습은 하나의 소실점에 머무르지 않고 원근법을 탈피한 그의 기법과도 연결된 듯하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자세를 통해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이한 우리에게 하나의 본보기라 여겨진다.


 아이패드의 훌륭한 점은 스케치북과 같다는 것입니다. 또 즉시 사용할 수 있는 준비된 물감을 비롯한 모든 것을 항상 가지고 다닐 수 있지요.(p192)...투명함을 그리는 것은 흥미로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시각적으로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것이니까요.(p195)... 한편 아이패드가 가져다준 전혀 새로운 측면은 드로잉의 과정이 손가락을 두드리며 반복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p196) <다시, 그림이다> 中

 

 <다시, 그림이다> 안에서 호크니는 자신의 그림뿐 아니라 인생(人生)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들려준다. 말에 담긴 그의 생각을 조금이라도 알고 간다면 그의 그림에 대해 더 깊이 있는 이해를 하게 되지 않을까. 이 정도로 호크니에 대해 예습은 마치도록 하고, 이제는 시간을 내어 전시회에 갈 일만 남은 듯 하다... 


 사람과 로봇이 맺을 수 있는 관계는 서로 돕고 사는 공생이다. 대표적인 시나리오는 <마음의 아이들 Mind Children>에 제시된 마음 이전 mind transfer이다. 사람의 마음을 로봇으로 옮기는 과정은 '마음 업로딩 mind uploading'이라 한다. 사람의 마음이 로봇으로 이식되면 사람이 말 그대로 기계로 바뀌게 된다. 로봇 안에서 사람의 마음은 늙지도 죽지도 않는다. 마음이 사멸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되는 셈이다.(p14) <마음의 아이들> 해제 中


[그림] 호크니, <첨벙> (출처 : https://www.telegraph.co.uk/culture/art/art-reviews/9672351/A-Bigger-Splash-Tate-Modern-review.html)



PS. 야마모토 요시타카(山本義隆)은 <16세기 문화혁명>에서 알베르티의 원근법을 과학 혁명의 출발점으로 해석한다. 원근법이 수학과 이성으로 대표되는 과학을 대표하는 미술 방식이라면 호크니의 평행 투시법은 이성과 과학의 시대를 넘어 새로운 시대 정신을 표현하는 기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것이 11세기 중국 미술에서 이미 표현된 기법이라면 동양철학에서 21세기 시대 정신을 발견하는 작업의 연장선상이 아닐까...

 

 알베르티의 이론은 협의의 원근법에 머무르지 않고 3차원의 공간과 물체를 2차원 도상으로서 평면 상에 표현하는 과학적 방법을 일반적으로 고찰한 것이었다. 이는 근대 기술과 과학에서 매우 중요한 한 걸음이었다... 3차원 구조물에 대한 2차원적 표현 기법은 동시대 화가와 기술자의 손에 의해 한층 진보했다.(p66) <16세기 문화혁명>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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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과 은총
시몬느 베이유 지음, 윤진 옮김 / 이제이북스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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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가 성체의 신비를 통하여 물질이 되는 것처럼 인간은 노동을 통하여 물질이 된다. 노동은 죽음과 같은 것이다. 우리는 죽음을 통과해야 한다. 죽음을 겪어야 하며 이 세계의 중력을 견뎌 내야 한다.(p296)... 인간의 사유는 과거와 미래에 매달리지 못하고 매순간 다음 순간으로 옮겨 갈 수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복종이다.(p297)

진리를 사랑한다는 것은 빈자리를 견뎌 내는 것, 따라서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진리는 죽음과 같은 곳에 있다.(p26)

창조는 중력의 하강 활동, 은총의 상승 활동, 그리고 제2의 힘이 행하는 은총의 하강 활동으로 이루어진다. 은총은 하강 활동의 법칙이다.(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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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기묘한 역사
다니엘 라코트 지음, 김희진 옮김 / 사람의무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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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이 밝히는 근본적인 요점은 고양이가 자유로운 선택으로 인간의 곁에서 살기로 마음먹었다는 점이다. 다른 동물들과 달리 고양이는 길들임에 굴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인간과의 동거를 받아들였다는 편이 옳다.(p31)... 신석기 시대 최초로 생긴 정착 마을 주변에는 먹고도 남은 잉여 곡물이 쌓여갔다. 이러한 농업적 대변화는 설치류(쥐류)의 대부대를 이끌었다. 이로써 아프리카야생고양이에게는 집집마다 호화로운 진수성찬이 가득해진 셈이다.(p34)

ps. 복불복 간식 게임에서 커피믹스를 선택한 귀요미. 너의 선택을 존중해서 커피는 내가 먹는 것으로.... 하염없이 슬픈 눈으로 바라보기에 결국 간식을 주었습니다. 복불복 게임은 이렇게 행복하게 끝났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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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9-06-05 14: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짜다가 그랬어. .냥이야...ㅋㅋㅋ
아마도 아빠 맛나게 드시라고 일부러 커피를 고른 듯합니다. ^^

겨울호랑이 2019-06-05 14:33   좋아요 1 | URL
간식을 꺼내주다보니 커피와 비슷해서 장난을 쳐봤는데 고민하는 녀석을 보니 좀 심했나 싶습니다. 그런 깊은 생각을 했을 수도 있겠군요. 미처 생각 못했습니다^^:)

cyrus 2019-06-05 15: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야옹이는 두 개 다 츄르라고 생각했을 것 같은데요? ㅎㅎㅎㅎ 츄르 둘 중에 하나를 내가 선택했는데, 그걸 왜 안 주느냐는 식으로 바라봤을 수도 있어요.. ^^

겨울호랑이 2019-06-05 15:32   좋아요 0 | URL
cyrus님 말씀처럼 그럴수도 있겠네요. 아니면 혹시 둘 다 자기 간식으로 생각했을 수도... 이번 장난은 두 개를 구분하는 사람들에게만 의미가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2019-06-06 14: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06 14: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9-06-06 22: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츄르가 커피믹스 크기와 많이 비슷하네요. 하지만 낯선 츄르는 귀요미의 것이 아니었군요.
귀요미가 그 사이 더 커진 것 같아요.
겨울호랑이님, 현충일 휴일 잘 보내셨나요.
편안한 밤 되세요.^^

겨울호랑이 2019-06-06 22:34   좋아요 1 | URL
얼핏보니 크기도 색깔도 비슷해서 장난을 쳐봤습니다. ㅋ 사람이나 동물이나 어렸을 때는 금방 커지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요동 고구려 산성을 가다 - 73개 고구려산성 현장답사
원종선 지음 / 통나무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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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산성은 결코 독자적으로 방어하지 않고 주변의 성들이 서로 연합하여 방어선을 구축한다. 이것이 바로 고구려산성의 힘이다. 당시 고구려가 거대국가였던 중원의 왕조에 견주어 조금도 뒤지지 않는 국력을 자랑할 수 있었던 기틀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p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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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07 1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07 11: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죽음 앞의 인간
필립 아리에스 지음, 고선일 옮김 / 새물결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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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가설은 에드가 모랭(Edgar Morin, 1921 ~ )이 이미 제안한 바 있는 것으로서 죽음을 대하는 태도와 자아의식, 즉 인간 자아의 존재 정도 혹은 그저 단순하게 그 자신의 개인성에 대한 의식 사이에 어떠한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이었다.(p1059) <죽음 앞의 인간> 中


 필립 아리에스(Philippe Aries, 1914 ~ 1984)의 <죽음 앞의 인간 L'homme Devant la Mort>은 중세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죽음을 바라보는 유럽 사회 인식의 변화를 서술한 역사책이다. 책에서 저자는 중세 시대의 죽음에 대한 인식을 4가지 범주(주제)로 묶고, 죽음에 대한 인식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천되어왔는가를 서술한다. 저자가 '길들여진 죽음'으로 이름 지은 중세 시대의 죽음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주제1. 죽음은 단순히 개인적 차원의 행위가 아니다... 인생의 중요한 고비마다 의식이 행해지는 것처럼, 죽음도 다소간의 공식적인 의식을 통해 기념해야 하는 대상이다. 이러한 기념적 의식의 목표는 개인과 그가 속한 혈족 혹은 공동체 간의 유대를 돈독히 하고 확인하는 것이다.(p1061) <죽음 앞의 인간> 中


 주제2. 공동체가 죽음이 공동체를 지나쳐가는 것을 두려워했으며 또한 만일 죽음이 일어나는 경우에는 회복을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감했던 것은 죽음이 자연과 자연의 야생성에 대항하기 위해 사회가 세워놓은 방어 시스템에 균열을 일으켰기 때문이었다.(p1062) <죽음 앞의 인간> 中


주제3. 여기서는 모든 삶에 종말이 있다는 사실을 배제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서의 종말은 신체적인 죽음과 전혀 일치하지 않으며, 그것은 내세, 내세적 삶의 강도, 기억의 존속 정도, 유명세의 마모 정도, 초자연적 존재들의 개입 정도 등 알 수 없는 여러 조건들에 달려 있다. 죽음의 순간과 내세적 삶의 종말 순간 사이에는 일정한 기간이 존재한다.(p1063) <죽음 앞의 인간> 中

 

 주제4. 죽음은 휴식 혹은 평온한 수면 상태로 정의되는 사후의 삶에 대한 개념은 일반적으로 생각되는 것보다 훨씬 오랫동안 지속된다... 이렇게 죽음은 길들여지고, 자연의 힘들에 내재된 맹목적인 폭력성이 제거되고, 의례화될 수 있었으나, 결코 중립적인 현상으로 인식될 수는 없었다. 죽음은 늘 불행(mal-heur)인 것이다.(p1065) <죽음 앞의 인간> 中


 <죽음 앞의 인간>에서 말하는 중세 죽음에서 나타나는 4가지 주제는 죽음이 삶의 종말이며 두려운 존재였다는 사실, 죽음은 사회 공동체에 충격을 주었기 때문에 공동체 구성원 모두에게 의미가 있었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죽음'은 '신앙 信仰' 문제와 긴밀하게 묶여 있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그림] 죽음의 무도(출처 : 위키백과)


 모델 1 : 길들여진 죽음(중세 시대)


 중세 사람들의 죽음의 인식은 4가지 주제 자체라 할 수 있는데, 아리에스는 이러한 인식이 그리스도교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 사회라는 중세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음에 주목한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신앙은 생활양식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며, 죽음 이후의 부활에 대한 희망은 죽음을 보다 긍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다.


 길들여진 죽음이라는 우리의 첫번째 모델에서는 네 가지 주제가 모두 나타나고 있으며, 이 모델을 정의하는 데에도 각자가 동일한 중요성을 갖고 있다.(p1061) <죽음 앞의 인간> 中


 고대인들은 죽음과의 친숙함에도 불구하고 죽은 자들과 가까이하기를 꺼려했으며 그들과 거리를 두려고 했다. 이들은 죽은 자들이 돌아와서 살아 있는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p84)... 이제부터 오랫동안, 정확하게 18세기에 이르기까지 죽은 자들은 살아 있는 자들에게 더이상 두려운 존재가 아니었고, 그들은 한 장소에서, 때에 따라서는 한 건물 안에서 더불어 살아가게 된다. 그런데 어떻게 고대 사회의 거부감에서 새로운 친근감으로 그렇게 급속도로 상황이 전이되었을까? 그것은 부활에 대한 믿음이 초기 순교자들 그들의 무덤에 대한 숭배 관행과 결합한 결과일 것이다.(p86) <죽음 앞의 인간> 中


모델 2 : 자신의 죽음(14 ~ 16세기)


 두번째 모델, 즉 자신의 죽음은 아주 단순하게 운명의 의미가 개인 차원으로 전이되면서 생겨난다.(p1066)... '자신의 죽음' 모델은 자아의식(1)과 사후의 삶에 대한 믿음(3)이라는 두 가지 주제의 변주에 의해 이전 시대의 모델, 즉 친숙한 죽음과 차이를 두게 된다.(p1068) <죽음 앞의 인간> 中


 공동체 차원에서 받아들여진 죽음의 의미는 14세기 이후 달라지게 된다. 십자군 원정 실패와 종교 개혁 이후 교회의 권위가 떨어지게 되었고, 막스 베버(Max Weber, 1864 ~ 1920)가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Die protestantische Ethik und der 'Geist' des Kapitalismus>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물질주의가 보편화되면서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모습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에서도 나타나게 된것으로 이해한다.


 14세기 이후에도 최후의 심판 주체가 완전히 포기된 것은 아니었다... 이제는 인간 최후의 종말을 상상하는 데 이러한 이미지가 사용되지 않게 된 것이다. 이로써 심판이라는 개념은 부활의 사고로부터 분리되었다. 육신의 소생이라는 사고는 여전히 남아서, 프로테스탄트나 가톨릭측을 막론하고 장례와 관련되는 도상 및 묘비명에 끊임없이 등장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범우주적인 대 드라마라는 맥락에서 벗어나 한 인간의 개인적인 운명 차원으로 전이되어 있었다.(p206) <죽음 앞의 인간> 中


 초월적인 내세와 지상의 삶에서 획득한 명성이 분리되기 어려웠던 것은 그 당시 현세와 내세 간에 명확한 구분이 부재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그 당시 죽음은 어떤 것을 완벽하게 분리할 수도 완전히 소멸시킬 수도 없는 존재로 여겨졌다. 16세기부터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을 막론하고 종교개혁 세력들은 합리주의적이고 과학적인 사고에 입각해 이 두 가지 사후의 삶을 분리시키려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러한 작업은 즉시 결실을 보지 못한다.(p388) <죽음 앞의 인간> 中


모델 3 : 먼 죽음과 가까운 죽음(16 ~ 19세기)


 세번째 모델, 먼 죽음과 가까운 죽음은 16세기 이후부터 현실적 풍습과 명백한 사고들의 영역에서 제한적인 정도 내애서, 또한 은밀한 상상의 세계에서는 대대적으로 심층적인 변화의 움직임이 준비되고 있었다.(p1070)... 감수성의 광범위한 변화가 시작되면서 예전에는 가깝고 친숙하고 길들여져 있던 죽음이 폭력적이고 음험한, 그래서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야생성 쪽으로 조금씩 멀어져갔다.(p1071) <죽음 앞의 인간> 中


[사진] 파리 카타콤(출처 : http://catacombes.paris.fr/en)


 16세기 이전에는 죽음의 의미가 공동체에서 개인으로 축소되었지만, 아직까지는 죽음이라는 존재는 그리 먼 존재가 아니었다. 비록 종교개혁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리스도교라는 종교가 유럽인들의 중심에 있었던 시기에 죽음은 신(神)의 권능 아래 있었다. 때문에, 당시 사람들은 부활과 내세(來世)에서의 희망으로 죽음을 가까이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성(reason)의 시대가 밝아오고, 신의 권능이 쇠퇴하면서 죽음은 고대에서와 같이 다시 미지의 영역에 있는 낯선 존재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16세기 이후부터 침실 또는 침상에서 이루어지는 죽음의 순간은 점차 그 중요성을 잃어간다. 지식인 계층에서 죽음의 순간이라는 주제를 포기했다면, 그것은 이들이 어떠한 집단적 감수성의 은밀한 움직임을 남들보다 앞서 포착하고 표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먼저, 중요했던 예고의 역할이 점차 감소되다가 결국 소멸된다. 이때부터 죽음은 예고 없이 찾아오게 된 것이다.(p527)... 죽음은 임종 순간이나 그것이 임박했을 때가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에 늘 생각해야 하는 대상이 된다... 그렇다면 어떠한 삶을 영위해야 했을까? 그것은 죽음에 대한 사유가 지배하는 삶이며, 이때 죽음은 단말마의 고통이라는 신체적 혹은 정신적인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의 이성으로 하여금 삶에 집착하지 않도록 하는 죽음, 즉 '삶이 아닌 것' 혹은 '삶의 부재' 상태이다.(p531) <죽음 앞의 인간> 中


 고대로부터 내려온 인간과 죽음 간의 친숙성에 변화가 나타나던 바로 그 시기에 이러한 두려움이 탄생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는 매우 흥미롭다. 이때 그 친숙성과 공존하고 있었던 죽음의 존엄성도 타격을 입게 된다. 즉 이제부터 인간은 죽음과 도착적인 놀음을 하게 된 것이다. 심지어 죽음과 동침하기도 한다. 이렇게 해서 죽음과 성(性) 사이에 어떤 관계가 형성된다. 따라서 죽음은 성과 마찬가지로 인간들을 매혹하고 그것에 집착하게 한다.(p711) <죽음 앞의 인간> 中


모델 4 : 타인의 죽음


 네번째 모델, 타인의 죽음은 19세기에 공동체적인 운명의 의미와 개인적이고 개별적인 전기(傳記)의 의미가 약화되면서 타인의 의미가 부상하게 된다. 여기서 타인은 뭇사람들이 아닌 특정한 대상을 가리킨다. 예전에는 불분명하고 애매한 상태로 존재하던 감성 영역이 이제는 몇몇 특별한 존재들에게 집중되었으며, 이로써 그들과의 이별은 차마 견뎌낼 수 없는 것이 되고 급기야 극적인 위기를 발발케 했던 것이다.(p1073) <죽음 앞의 인간> 中

[사진] 영화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中 ( 출처 : https://decider.com/2018/12/05/four-weddings-and-a-funeral-red-nose-day-short/)


 19세기에 들어서면서 공동체의 의미가 축소되면서 가족 중심의 생활(사생활 私生活)이 전면으로 부각된다. 여기에 당시 유럽에 낭만주의(浪漫主義, romanticism)가 유행하면서 죽음에 대한 감성적 측면이 보다 부각되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죽음은 '우리의 의미'가 아니라 '누군가의 죽음'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죽음에 대한 극도의 두려움은 관습이나 교육, 또는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다. 두려움은 도시에서 연약하게 자라나거나 교육으로 인해 다른 이들보다 감수성이 더욱 예민해진 자들에게서 주로 관찰된다. 서민들, 특히 농촌 서민들은 두려움 없이 죽음을 직시할 줄 알며, 가난한 자들에게 죽음은 불행과 근심의 종말을 의미한다."(p717) <죽음 앞의 인간> 中


 19세기에는 모두가 사후에도 현세에서의 애정이 지속되리라고 믿고 있는 듯했다. 이와 같은 공통된 믿음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표상들의 사실성 정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세의 삶과 종교적 신앙 간의 관계였다. 특히 내세의 삶과 종교적 신앙이라는 이 두 개념은 19세기 그리스도교도들 사이에서는 아직 서로 일치되고 있었으나, 비(非) 그리스도교도, 실증주의자, 불가지론자들에게는 서로 분리된 것으로 인식되고 있었다.(p829) <죽음 앞의 인간> 中


모델 5 : 역전된 죽음


 다섯번째 모델, 역전된 죽음 오늘날 죽음의 모델은 여전히 사생활이라는 개념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데, 이 개념은 예전에 비해 더욱 엄격하고 치밀하다... 오늘날 우리는 사생활이라는 개념의 절대적인 완벽성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존재들 간의 믿음은 전적이거나 전무인 상태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성공과 실패 사이에는 어떠한 중간 상태도 있을 수 없다... 죽음에 대한 태도는 성공이라는 불가능의 가정 속에서 결정된다.(p1076) <죽음 앞의 인간> 中


 저자는 산업화 시대를 거치고 난 현대사회에서 죽음은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의미를 갖지 않는다고 해석한다. 개인이 사회의 부속품으로 기능하는 현대 사회에서 이제는 가족 공동체마저 해체되고, 죽음의 의미는 완전히 개인화되었다. 죽은 자를 생각하기 보다 남은 유족과 살아남은 이들이 중심이 되는 죽음 예식. 그것이 현대 사회에서 나타나는 '역전된 죽음'의 모습이다. 


 현대 사회는 휴지기를 용납하지 않는다. 따라서 한 개인의 소멸 역시 사회의 연속성을 조금도 방해하지 못한다. 마치 그 누구도 죽어나가지 않는 듯, 도시에서는 모든 게 각각 제 갈 길을 갈 뿐이다... 죽음은 약 천 년에 거쳐 오는 가운데 서서히 변화를 겪어왔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풍습이 완전하게 역전되는 데 단 한 세대로 충분한 것 같다.(p985) <죽음 앞의 인간> 中


 이전 시대의 종교적 의례와는 완전히 무관하게 오늘날 영국의 모델에서 파생된 형태로, 화장 관행을 더욱 확대시키고 사회적 의례는 간소한 추도회 정도로 한정한다는 등의 역전된 죽음의 가장 급진적인 모델이다. 추도회에서는 고인의 가족과 친지, 친구들만이 모여 시신이 부재한 가운데 추도문을 낭독하고, 유족들을 위로하고 간단한 철학적 성찰에 몰입한다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몇몇 기도문을 욀 수도 있다고 말한다.(p1056) <죽음 앞의 인간> 中


 저자 아리에스는 <죽음 앞의 인간>을 통해 중세 이후 죽음을 받아들이는 사회의 변천 모습을 상세히 그려낸다. 단순히 죽음에 대한 개인의 태도 차원이 아닌 사회 인식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기 때문에 분량은 적지 않은 편이지만, 독자들은 '죽음'이라는 주제와 함께 유럽 사회가 어떻게 변화되어왔는지를 구체적으로 알게 된다. 추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종교 개혁, 계몽 주의, 산업화 등의 변화가 당대 사람들의 삶과 생각을 어떻게 바꾸었는가를 확인시켜 준다는 점이 이 책이 가진 큰 매력이라 여겨진다.


 <죽음 앞의 인간>은 죽은 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보다는 죽은 이들을 보내는 남겨진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때문에, 독자는 책을 읽으면서 죽음의 의미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막연한 누군가를 잃는 것이 아닌 자신과 가까운 소중한 이들의 죽음을 우리는 어떤 자세로 맞이해야 하는가. 저자는 다음과 같은 말로 책을 마무리한다. 


 죽음이란 단지 평온한 자가 우호적인 사회로부터 빠져나가는 은밀하지만 품위있는 출구가 되어야 한다. 또한 사회는 아무런 의미도 없고 심적 고통이나 신체적 통증도 없으며 불안감도 없는 한 개인의 생물학적 전이라는 사실에 의해 지나치게 타격을 받아서도 지나친 비통감에 잠겨서도 안 된다.(p1082) <죽음 앞의 인간> 中


 <죽음 앞의 인간>에서 저자는 죽음을 맞이하는 인간의 자세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죽는 필멸(必滅)의 존재이기 때문이며, '내 앞의 죽음'이야말로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각자의 종교가 다르고 신념도 다르기 때문에 죽음의 개인적 의미를 규정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이와는 별도로 '어떻게 죽음을 준비할 것인가?' 하는 물음의 답은 생각보다 간단하게 내려질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판단은 각자에게 돌리고 <죽음 앞의 인간>의 길었던 리뷰는 이만 줄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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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03 1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03 1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03 1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03 13: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9-06-05 12: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필리프 아리에스 <죽음의 역사>도 썼잖아요. 한 가지 주제로 파다보면 할 말이 많을 수밖에 없고 죽음이라면 특히 그렇겠지만 두 책이 어떻게 다른 건지 문득 궁금하군요.
잘 봤습니다^^ 더위의 공포가 몰려 오고 있습니다. 더위 조심하십셩/

겨울호랑이 2019-06-05 13:20   좋아요 0 | URL
네 저 역시 그렇습니다... 저는 <죽음 앞의 인간>을 읽다 지쳤으니, 그럼 <죽음의 역사>는 AgalmA님께... 감사합니다. ㅋㅋ 시원하게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