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 : 101가지 질문과 답변
케네스 W. 포드 지음, 이덕환 옮김 / 까치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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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규모(scale)이다. 우리의 거시 세계(large scale world)라고 해서 양자물리학의 원자보다 더 작은 세계에서보다 덜 유효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큰 규모에서 나타나는 특성에 대한 양자적 기반은 직접 관찰하기 어렵게 숩겨져 있다. 양자물리학은 원자나 원자보다 더 작은 영역에서나 그 모습이 나타난다.(p21)<양자 : 101가지 질문과 답변> 中

양자역학(量子力學, quantum physics)이 적용되는 세계는 우리가 직접 관찰하기 어려운 미시 세계(small scale world)다. 때문에 우리는 이 세계에 적용되는 법칙들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때문에, 양자물리학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파동(wave), 입자(particle), 확률(probability)의 개념을 사용한다.

양자물리학의 근본적인 문제로 바로 넘어가보자. 원자 속에 들어 있는 전자는 입자일까, 아니면 파동일까? 일반적인 답은 두 가지 모두라는 것이다. 전자는 그 자체가 전체 공간에 확률 파동으로 퍼져 있는 입자이다. 보는 방법에 따라서 전자는 확실한 형태가 없는 구름처럼 보이기도 하고, 입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파동-입자 이중성은 시각화하기가 어렵거나 불가능할 수도 있다.(p32) <양자 : 101가지 질문과 답변> 中

입자는 파장을 가지고 있다. 입자는 회절과 간섭을 한다. 입자는 파동함수를 가지고 있다. 1924년 드 브로이가 유명한 방정식을 제시한 이후 양자물리학의 전체 역사는 물질의 파동성을 기반으로 발전했다. 파동이 물리적 세계의 핵심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파동이 꼭 필요할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전혀 그렇지 않다'이다. 파동-입자 이중성(wave-particle duality)은 입자가 생성되거나 소멸될 때는 입자처럼 행동하고, 그 중간에는 파동처럼 행동한다는 것이다. 측정은 입자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측정의 결과가 무엇인지에 대한 예측에는 파동이 이용된다. 입자는 실재(reality)를 나타낸다.(p272) <양자 : 101가지 질문과 답변> 中

우리는 미시 세계의 법칙을 거시 세계의 언어로 표현할 때, 파동-입자 이중성, 불확정성 원리 등의 복잡한 개념을 가져오게 된다. 만약 우리가 미시의 세계에 살고 있다면 그때에도 이러한 설명이 필요할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미시의 세계는 불확실성이 확실한 세계일테니까.

불확정성 원리(不確定性原理, uncertainty principle)는 위치가 더 정밀하게 결정되면 될 수록, 그 순간의 운동량은 그만큼 덜 정확하게 알려지게 되고, 그 역도 성립한다는 것이다.... 불확정성 원리는 양자물리학의 핵심이라고 알려져 있다. 고전물리학에서는 불확정성 원리에 대응하는 원리가 없기 때문이다.(p263) <양자 : 101가지 질문과 답변> 中

내가 속하지 않는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 내가 알던 상식(common sense) 대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과거의 내가 부정하는 듯한 고통을 가져오기도 한다. 그렇지만, 내 자신의 고통여부와 관계없이 사실은 실재한다.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한단계 성장하게 된다.

언젠가 끈이론이 힘을 얻게 될 때의 "새로 개선된" 표준 모형(standard model)에서는 기본 입자의 수가 24개보다 줄어들 것이고, 4번째 힘인 중력도 함께 통합될 것이다.(p56)<양자 : 101가지 질문과 답변> 中

양자역학을 통해 우리는 감각 경험 (感覺經驗)이 절대진리가 될 수 없음을 확인할 수 있고, 물리학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단순한 수식(數式)이상의 것임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물리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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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갈리아의 딸들
게르드 브란튼베르그 지음, 히스테리아 옮김 / 황금가지 / 199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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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움(wom) 1.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이라고 분류되는 성(性)의 인간 2. 어떤 성의 인간이든 인간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맨움(manwom)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이라고 분류되는 성(性)의 인간. -새로운 세계, 이갈리아의 용어들 - 中 


 게르드 브란튼베르그(Gerd Brantenberg, 1941 ~ )의 <이갈리아의 딸들 Egalia's Daughters: A Satire of the Sexes>을 통해 우리는 성(性)역할이 뒤바뀐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된다. 작품에는 여성 중심의 세계에서 주변인의 역할에 머무르는 남성의 모습이 그려져 있으며, 맨움해방주의자의 입을 통해 여성해방운동의 이야기가 표현된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로 남성들은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미러링(mirroring)을 통한 문제 제기를 효과적으로 살린 작품이다. 반면, 작품의 초점이 성(性)에 맞춰져 있는 부분은 작품의 한계로 느껴진다. 사회의 문제는 서로 얽혀 있어 이들간의 상관(Correlation)관계를 무시하고 말하기는 어렵다. 성문제, 세대 문제, 빈부, 계층 간의 문제를 따로 떨어뜨려 놓고 보기는 어렵지만, <이갈리아의 딸들>에서 성을 제외한 나머지 요인들은 상수(常數)로 한정된다.


 성 정체성은 계급 정체성보다 훨씬 더 중요해... 노동자 계급이 억압받고 있다고 지적하는 것보다 맨움이 억압받고 있다고 지적하는 것이 훨씬 더 지독하고 극단적인 것이라고 한다면, 아마도 그것은 성적 억압이 계급 억압보다 훨씬 더 지독하고 극심하기 때문일 거야.(p247) <이갈리아의 딸들> 중


  결국, <이갈리아의 딸들>은 성(性)역할에 초점을 두고 이야기를 전개되고, 이갈리아 세계는 성역할을 축(軸)으로 한 현실세계의 데칼코마니(Decalcomanie)다. 성(sex)을 제외한 다른 부분은 거의 현실과 동일하기에, 우리는 현실의 남성(man)의 모습을 움(wom)에서, 여성(woman)의 모습을 맨움(manwom)에서 거의 그대로 발견한다.


 이러한 점은 미러링을 극대화시키는 효과가 있지만, 한계 또한 보여준다. 예를 들면, 이갈리아 국회에서 논의되는 내용과 처방은 현실과 큰 차이가 없다. 


 노동시장의 상황이 불안정했다. 출생률은 떨어졌고  이것은 지속적인 노동력 감소를 의미했다. 게다가 젊은 세대들은 초봉 인상과 교육 보조금 인상, 연금 인하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마치 현재의 임신 수당이 부족하다는 듯이 임신 수당도 인상할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이것 때문에 의회에서는 논쟁이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처음으로 노동시장에 들어오는 사람에 대해서는 임금을 더 낮출 것을 결정했다.(p63) <이갈리아의 딸들> 중


 불안한 노동시장의 안정화를 위해 취하는 정책은 현실의 자본주의 세계, 신자본주의 처방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성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같은 Ceteris paribus(other things being equal)과 같은 상황. 이는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지만, 새로운 세계의 비전이 담기지 못했다는 점은 아쉽게 느껴진다. 만일, <이갈리아의 딸들>안에 현대 사회의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여러가지 문제점에 대한 대안이 제시되었다면 어땠을까. 지속가능한 체제를 가동시키는 이상국가 이갈리아. 이갈리아의 어원이 평등주의(egalitarian)와 유토피아(utopia)의 합성어라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이러한 대안 제시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한 점은 사뭇 아쉽게 느껴진다. 


 다른 한편으로, 이 작품이 쓰여진 시기가 1977년임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내 생각 또한 욕심일 것이다. <이갈리아의 딸들>은 성역할 전환을 통해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로부터 느껴지는 불편함은 단순한 역전된 성관계에서 오는 억울함이 아닌 불평등에 대한 인류의 공통된 감정이어야 할 것임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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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20-01-21 08: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페미니즘 (또는 페미니스트)가 제기한 문제는 인류가 가지고 있는 본래적인 문제이자 한계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페미니즘이 제시한 문제의 (합리적이고 도적적인) 대안 제시가 가능하다면, 저는 그것을 모델로 인류의 문제의 대부분을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페미니즘(또는 페미니스트)들은 낙관주위자라고 하죠, 저는 비관주의자입니다.

겨울호랑이 2020-01-21 08:5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마립간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마립간님의 말씀처럼 페미니즘이 제기한 불평등의 문제는 부의 배분 문제와 함께 오랜 미해결과제라 생각합니다. 때문에, 이 문제에 답을 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우리 모두가 피해갈 수는 없는 문제가 여겨집니다. 그래서, 페미니즘을 비롯한 여러 방편을 활용하여 문제 해결을 위한 탐색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직 저의 페미니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페미니즘의 전망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네요. 좋은 마립간님의 의견에 감사합니다.^^:)

2020-01-21 15: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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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1 19: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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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2 06: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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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2 08: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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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채호를 코페르니쿠스에 비유하는 것이 매우 적절하다고 믿는다. 코페르니쿠스가 남달랐던 것은 관점의 전환이었다. 코페르니쿠스는 이 관점의 전환 외에 다른 것들을 거의 알지 못했으며 그 나머지는 케플러와 갈릴레오와 뉴턴이 채워넣을 때까지 오랜 세월을 기다려야 했다. 그럼에도 코페르니쿠스는 진정으로 위대했다. 왜냐하면 프톨레마이오스 이후 자그만치 1500년 동안 신의 법칙으로 통용되던 도그마를 뒤집어 놓았기 때문이다. 신채호도 마찬가지다. 그는 최소한 중국 당나라 시대 이후 1000년 동안 동북아시아 주류 사학계 철칙으로 통용되던 사관을 한순간에 뒤집었다.(p107) <한국 고대사와 그 역적들> 中


  김상태의 <엉터리 사학자 가짜 고대사> <한국 고대사와 그 역적들>은 고조선사(古朝鮮史)를 중심으로 강단사학, 진보사학, 재야사학계가 일본의 식민사관(植民史觀)과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을 벗어나지 못한 현실을 비판한 책이다. 글에 담긴 진보적인 저자의 입장과는 달리 고조선사에서는 진보사학자들 또한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들 대신 저자는 신채호(申采浩, 1880 ~ 1936) - 윤내현(尹乃鉉, 1939 ~ )이 강조한 고조선론을 재조명한다. 코페르니쿠스 - 갈릴레오로 비유될 수 있는 이들 책에서는 강단 사학계의 '소(小)고조선론'과 재야사학계의 <환단고기 桓檀古記>로 대표되는 '대동이 大東夷'론에 대한 비판이 담겨있다. 저자는 대고조선론을 고대사의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한다. 그렇다면, 소고조선론과 대동이론의 문제점과 위험성은 무엇일까.


 "서기전 3세기 전후 연나라 장군 진개의 침공 이후 고조선은 무조건 평양 지역에 있었다." "고조선은 서기전 108년 평양 지역에서 망했으며 그 자리에 한사군이 설치되었다. 특히 낙랑군은 서기 후 300년까지 남아 평양을 중심으로 한 한반도 북부를 400년간 지배했다. 이것이야말로 주류 고대사학계와 그들의 소고조선론이 지키고자 하는 핵심중의 핵심이다.(p167) <한국 고대사와 그 역적들> 中


 소고선론을 요약하자면, '소고선론-평양중심설'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저자의 비판은 무엇일까. 저자는 일본의 식민사관을 비판없이 수용한 남한의 고대사 연구 행태를 비판하는데, 이는 고대사 연구에 있어서는 식민사관의 타율성론을 학계가 스스로 입증한 꼴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이병도의 '소고선론-평양중심설'은 해방 이후 40년이 넘도록 주류 고대사학계의 확고부동한 통설이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고조선 이론을 받아들인 이병도의 학설을 모시는 것 말고 남한 주류 고대사학계가 해방 이후 40년이 지난 1980년대 말까지 고조선 연구에 관련해서는 한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문헌 연구든 고고학 연구든 마찬가지다.(p181) <한국 고대사와 그 역적들> 中


다른 한편으로, 저자는 중국 역사속에  등장한 '동이'의 개념 사용에 유의할 것을 당부한다.  <환단고기>, <이하동서설> 등의 책은  '동이- 화하(華夏)'의 패권다툼관점에서 동북아시아 역사를 바라본다. 이런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문제점은 무엇일까. 몽골족, 만주족, 일본 민족 등과 우리가 같은 민족이라는 내용까지 포함하는 이러한 주장은 오히려 우리가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전락할 위험을 담고있다.


 동이족 東夷族은 중국 문헌에 여러 형태로 등장하기 때문에 신중하게 연구해야 할 대상이지만 다른 한편 무분별하게 남용되어 국수주의 환빠들의 개념으로 전락하기도 한다.'동이족 = 중국과 만주의 전대륙에서 활동했던 민족 = 우리 한민족'이란 등식 아래서 "중국 대륙도 본래는 동이족이 장악했던 대륙이자 사실상 우리 한민족의 땅"이라는 공식을 굳혀버린 것이다. 엄격한 역사적 논증 없이 남용된 이런 식의 판타지는 문제가 크다.(p241)... 이형구는 이 상 商(은 殷)나라가 동이족의 일파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동이족 또한 누가 뭐래도 현 중국 민족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이형구를 따르는 한 여기에도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혹시 상(은)나라와 같은 동이족이라는 우리 민족도 중국 민족의 일부가 되는 거 아닌가?(p243) <한국 고대사와 그 역적들> 中


 이에 대해 윤내현은 민족의 정의를 혈연이 아닌 문화(文化)를 통해 내림으로써 이들의 주장에 선을 긋는다. 에르네스트 르낭 (Ernest Renan, 1823 ~ 1892)의 <민족이란 무엇인가? Qu'est-ce qu'une nation? >의 민족 정의와 통하는 바가 있는 윤내현의 개념 정의는 맹목적 민족주의로 흐를 수 있는 위험을 차단시킨다.


 윤내현은 종족이나 혈연적 동일성을 민족의 핵심요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에 따르면 민족이란 우연과 필연의 역사과정 속에서 언어, 문화, 경제 등의 종합이 긴 시간동안 누적되어 '형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윤내현은 아직 의미도 분명하지 않은 동이족 개념을 중시하지 않는다.(p242) <한국 고대사와 그 역적들> 中


  하나의 민족은 하나의 영혼이며 정신적인 원리입니다. 한쪽은 과거에 있는 것이며, 다른 한쪽은 현재에 있는 것입니다. 한쪽은 풍요로운 추억을 가진 유산을 공동으로 소유하는 거싱며, 다른 한쪽은 현재의 묵시적인 동의, 함께 살려는 욕구, 각자가 받은 유산을 계속해서 발전시키고자 하는 의지입니다.(p80)...  인간은 인종의 노예도, 언어의 노예도, 종교의 노예도, 강물의 흐름의 노예도 산맥의 방향의 노예도 아닙니다. 인간들의 대결집, 건전한 정신과 뜨거운 심장이야말로 민족이라 부르는 도덕적 양심을 창출합니다.(p83)  <민족이란 무엇인가> 中


 이런 점에서 저자는 윤내현의 업적을 높이 평가한다. 때마침, <고조선 연구(상)> <고조선 연구(하)>는 다 읽었고, 다른 2권의 책도 최근 갖추었으니 윤내현 교수의 3부작을 이제는 읽고 정리할 일이 남았다... 여기에 더해 위당 정인보(爲堂 鄭寅普, 1893 ~ 1950)의 <조선사연구>를 읽고, 단재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조선상고문화사>를 올해안에 재독할 수 있을까... 


 윤내현은 대고조선의 필연성을 거대하고 완변한 한문체계로 완성했다. 불세출의 거인 신채호의 수원 水原으로부터 시작하여 폭포처럼 격렬한 리지린의 계곡을 지나 윤내현은 대고조선의 평온하고도 광할한 호수를 이루었다. 이것은 그의 대표 3부작 <한국고대사신론> <고조선 연구> <한국열국사연구>로 귀결된다.(p334) <한국 고대사와 그 역적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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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시대의 논리 창비신서 4
리영희 지음 / 창비 / 199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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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환시대의 논리>에서 전환의 시대는 언제일까. 저자는 전환의 시기를 1961 - 1966년으로 지정(p338)하는데, 이 시대는 유엔에서의 미국 지배력이 상실되고 다수의 중립국들이 힘을 얻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1970년대 초반 씌여진 이 책은 베트남 전쟁, 중공(현 중국)의 부상, 경제대국 일본의 정치대국 야심을 배경으로 하기에 여러 상황에서 현재의 정세와는 차이가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시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책 안에서 변함없는 논리를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언어 言語'다.


 '절대로 잘못 해석될 수 없으리라고 그들이 진지하게 믿었던 용어'로 분명히 씌어진 헌법조항을 견강부회하려는 세력에 의해서 국가의 비극이 초래된 사례들을 생각할 때 '용어 그대로 생각하자'는 헌법해석의 태도가 국가권력과 언론의 관계를 규정하는 유일한 척도이어야 하겠다.(p16) <전환시대의 논리> 中



 일그러진 언어로 전달되는 사상은 일그러진 사상을 그 커뮤니케이션의 상대에게 재구성하게 마련이다. 그것은 사각형을 보고 삼각형이라는 표면의 언어로 전달된 사상이 상대방에게 삼각형의 형상을 재구성케 하는 절차이다. 사각형을 놓고 삼각형의, 또는 원을 놓고 직선의 관념을 국민에게 재구성케 하려는 의도는 현대 국가사회에서는 주로 통치자들의 정치적 목적에 있다.(p206)  <전환시대의 논리> 中


 저자는 <전환시대의 논리>를 통해 일그러진 언어로 표현된 비뚤어진 사상이 그릇된 욕망을 채우는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사법부의 독립과 공정한 언론이 부족한 우리의 현실 속에서  시대의 표상(表象)은 분명히 변환되어 왔지만, 이 시대를 관통하는 '논리 論理'는 현재도 유효하다는 것을 <전환시대의 논리>는 잘 보여준다. 


 국가이익을 해치고 국가안보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고 미국정부가 공개하기를 반대한 그 비밀문서를 숙독해보면 그것이 공개됨으로써 타격을 입는 것은 국가나 국민이 아니라 집권자와 정책에 참여한 인물들의 위신과 체면뿐임을 알 수 있다.(p28)  <전환시대의 논리> 中


 사법부의 독립성을 믿을 수 없는 나라 같았으면 신문은 처음부터 그와같은 대담한 폭로기사를 보도할 생각도 못했을 것이고 법의 판단에 기대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자유언론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 같았으면 그와같은 행정권력의 페어플레이 정신과 사법부의 독립성도 존재하지 않았으리라는 것은 당연하다.(p15)  <전환시대의 논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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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0 08: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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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0 09: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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