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하와 건축 임석재 교수의 1990년대 한국현대건축사 2
임석재 지음 / 북하우스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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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기하라는 주제는 추상이라는 주제와 함께 1990년대 한국 현대건축에서 가장 많이 유행한 경향 가운데 하나로 파악된다. 이때의 추상과 기하는 더이상 하나로 합쳐지지 않은 채 단독의 경향으로 추구되었다. 서로에게서 분리된 추상과 기하는 1990년대 한국 현대건축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융성을 누렸다. 1990년대 세계 현대건축의 흐름이 다원주의임을 생각해볼 때 이처럼 한두 가지 경향이 비정상적으로 독주하는 현상은 일단은 왜곡된 시대상황이 투영된 결과로서 다름아닌 독재 개발기 때 강요되었던 압축적 근대화의 폐해가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p21)

1990년대 한국건축의 주요 경향 중 하나인 기하. 건축가가 도형의 기하와 건축의 기하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자신을 표현할 때 단절과 불일치, 환원이 이루어지지 못함을 보여준다. 건축을 통해 중용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때 비로소 건축이 단순한 공간이 아닌 예술로 승화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기하는 건축이 아니다. 기하만으로는 건축이 될 수 없다. 그러나 건축은 기하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대부분의 건축은 기하, 즉 도형으로 환원되어 구성된다. 혹은 도형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도 있다. 이것은 자기 모순이다... 건축가들이 기하에 매달리는 것은 기하는 건축가의 자의식을 가장 밀접하게 상징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p49)

초월성은 처음부터 비상한 의도를 지향하기 때문에 현실성과는 동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초월성이 본래 의도한 바의 감동을 주지 못한다면 무엇이 남는가. 건축의 횡포만이 남을 뿐이다.(p96)... 도형적 기하와 건축적 기하 사이의 미묘한 차이를 해석해내지 못할 경우 건축가의 극단적 자의식만 남게 된다.(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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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9 09: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29 1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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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야바라밀다심경 大般若波羅蜜多心經>의 핵심을 담고 있는 <반야심경 般若心經>. 불자(佛子)가 아닌 가톨릭 신자로서 불교 경전을 이해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지만, 부처님의 자비를 사랑으로 어렴풋하게 이해하는 마음으로 비춰보면 대강의 느낌을 짐작한다. <신약성경>에서 4복음서와 <사도행전>을 제외한 내용이 바오로의 편지로 이루어진 것과 같이 부처님 이후의 보살의 말씀이 더해지면서 대승불교가 성립되었고, 많은 이들이 스스로 깨달음(自覺)을 추구하는 모습에서 성령(聖靈)의 인도로 하느님께 이르는 길을 추구하는 신앙인의 모습을 발견한다.

대승불교는 이미 싯달타의 가르침을 준수하겠다는 사람들의 종교가 아닌, 보살들, 즉 스스로 싯달타가 되겠다고 갈망하는 보살들의 종교입니다. 자각의 종교이지 신앙의 종교가 아닙니다. ˝자리리타 自利利他˝, ˝자각각타 自覺覺他˝(스스로 깨우침으로써 타인을 깨우침)의 목표를 제1의 목표로 삼습니다. 철저히 구도의 과정이 사회적 관계속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p177) <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 中

부처님의 말씀이 아닌 후대에 등장한 보살의 말씀으로 지고의 경전이 성립했다? 이것이 바로 대승경전의 특징입니다.... 보살이 성문 聲聞을 가리친다! 이것이 바로 대승의 정신이지요.(p202) <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 中

<반야심경 般若心經>은 철두철미한 ˝무 無의 철학˝입니다. ˝공 空이다˝라는 규정성조차도 부정해버리는 철두철미한 부정의 논리이지요.(p222) <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 中

마지막으로, <반야심경>의 반야바라밀다의 주문 안에서, <영광송>의 의미를 발견한다면 지나치게 나간 것일까. 복잡한 계율(戒律)과 유대교의 율법(Mosaic Law)에서 민중을 벗어나게 한 것이 대승불교와 초대 기독교 공동체의 통하는 바였음을 <반야심경> 안에서 확인하게 된다...

아제아제 바라아제(揭諦揭諦 波羅揭諦) 바라승아제(波羅僧揭諦) 모지사바하(苦提娑婆訶) 건너간 자여 건너간 자여! 피안에 건너간 자여! 피안에 완전히 도달한 자여! 깨달음이여! 평안하소서!(p238) <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 中

Gloria Patri, et Filio et Spiritui Sancto, Sicut erat in principio et nunc et semper et in saecula saeculorum, Amen.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영광송 Doxology>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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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20-01-30 01: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라는 고백이 얼마나 엄청나고 위대한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합니다

겨울호랑이 2020-01-30 08:07   좋아요 1 | URL
그렇습니다. <반야심경>과 <영광송>의 짧은 문구 안에 담긴 사상(일반 대중들 역시 기도를 할 수 있고, 깨달음과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준 것)은 종교사에서 위대한 전환이고, 사건이라 여겨집니다.
 
제2의 성 동서문화사 월드북 108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이희영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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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남자 앞에 주체로서 대항하여 일어서는 것이 아니라 주체성이 부여된 객체로서 일어선다. 그녀는 자기로서의 책임과 함께 타자로서의 책임도 진다. 그것은 하나의 모순으로 광장히 부조리한 결과를 초래한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지금까지 자기에게 강요돼 온 수단, 다시 말하면 수동적 수단 속에서 자기의 구원을 찾고 있으며, 동시에 능동적으로 자기의 주체성도 회복하려고 한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상대를 대등한 자로 인정하지 않는 한, 즉 여자라는 존재가 지금 상태를 이어 가는 한 싸움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p917)

오늘날의 여자는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분열되어 있다. 오늘날 여자는 대개 ‘진정한 여자‘가 남자로 변장하고 있는 형태로 가장 잘 표현된다. 그녀는 자기의 여자로서의 육체 속에서도, 또 남자 같은 복장 속에서도 어쩐지 침착하지 못하다. 그녀는 생활을 바꾸고 참된 자신의 복장을 해야 한다. 그녀는 집단적인 발전의 힘을 통하지 않고서는 그곳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p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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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1-30 12: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래전, 제2의 성, 상하 두 권을 읽었어요. ㅋ 그땐 꼭 읽어야 하는 줄 알았어요.
이 책은 한 권으로 묶여 있는 모양입니다.
꽤 두꺼운 분량이라 앞으로 이 책을 읽으실 분들은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이란 책을 대신 읽는 것도
좋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물론 다 읽는다면 가장 좋겠지만요... ㅋ (요즘 제가 두꺼운 책이 부담스러운지라...ㅋ)

겨울호랑이 님의 독서 열정이 보이십니다. 저도 따라가도록 하겠습니다.

겨울호랑이 2020-01-30 13:02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추천하신 <페미니즘의 도전>도 읽을 도서 목록에 올려봅니다. 좋은 책 추천에 감사드립니다. 열정이라 하기엔 많이 부족하지만, 격려의 말씀에도 감사드립니다. 페크님 날이 포근한 봄날같은 날, 행복하게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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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 수 있다면 결코 슬프지 않습니다. 생각하면 우리가 생명을 저버리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한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한다는 것은 기쁨만이 아닙니다. 슬픔도 사랑의 일부입니다. 마치 우리의 삶이 그런 것처럼.(p418)... 사람의 길을 키우는 길이야말로 그 사회를 인간적인 사회로 만드는 일입니다. 사람은 다른 가치의 하위 개념이 아닙니다. 사람이 '끝'입니다. 절망과 역경을 '사람'을 키워 내는 것으로 극복하는 것, 이것이 석과불식 碩果不食의 교훈입니다.(p423) <담론> 中


 <담론 談論>에는 신영복 교수의 전작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의 많은 내용과 함께 사상의 지향점이 잘 나타난다. 20년에 걸친 고통스러운 수감생활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이겨낸 저자의 이야기가 강의 곳곳에 녹아 있다는 점에서 이 책과 <강의>는 잘 어울리는 세트임을 느끼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노자(老子) 철학의 성격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이 작은 소득이었다. 먼저 <강신주의 노자 혹은 장자>에 소개된 내용을 살펴보자. 강신주는 노자의 사상 안에서 제국주의 帝國主義 모습을 발견하고 자본주의 수탈구조를 합리화는 사상이라고 규정한다.


 노자 철학에 등장하는 많은 중요한 개념 중 하나가 바로 '천하(天下)'이다. '천하'는 글자 그대로 '하늘 아래'를 의미한다. 결국 이것은 전국(戰國)의 혼란과 무질서를 '하늘 아래'라는 생각으로 통일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하고 있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강력한 파시즘으로 무장한 국가의 무력으로는 전국(戰國)을 통일할 수 있지만, 결코 그것만으로 통일된 제국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던 것이다.(p284) <강신주의 노자 혹은 장자> 中


  노자의 해법은 피통치자가 '제국'안에 들어오면 사랑의 원리로, '제국' 바깥에 남으려고 한다면 폭력의 원리에 입각해서 통치해야 한다는 것을 역설한다... 흥미로운 것은 노자의 '제국' 논리가 역사상 존재했던 크고 작은 거의 모든 '제국들'에서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점은 '제국'이 결코 '국가'와 독립적인 층위에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노자 철학의 진정한 고유성을 그가 '제국'으로까지 이어질 '국가'의 작동원리를 발견했다는 것에서 찾아야 한다.(p285) <강신주의 노자 혹은 장자>


 강신주의 해석에 따르면, 노자의 '무위 無爲'도 '위 爲'를 위한 방편으로 전락할 것이며, 자연(自然) 역시 인간이 만들어낸 국가의 모습에 다름이니게 된다. 때문에, 상당히 혁신적인 생각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개인적으로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는데, 신영복의 <담론>과 <강의>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 명확하게 지적한다.


 노자에 따르면 국가란 하나의 교환 체계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국가는 수탈과 재분배라는 교환 논리에 따라 작동하는 기구다. 그러나 문제는 노자가 국가를 자명하게 주어진 전제라고 생각했다는 점이다.(p285) <강신주의 노자 혹은 장자>


 <노자 老子>는 민초의 정치학입니다. 민초들의 심지 心志를 약하게 하고 그 복골 腹骨을 강하게 해야 한다는 <노자> 3장의 예를 들어 <노자>가 제왕학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민 民을 생산노동에 적합한 존재로 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의 생산적 토대를 튼튼하게 하고, 기층 민중의 삶을 안정적 구조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는 뜼으로 읽는 것이 옳습니다. 그리고 61장을 예로 들어 정치란 먼저 주는 것이고, 나라를 취하는 국취 國取가 목적인 듯 반론하고 있지만 61장의 핵심은 평화론입니다. 대국자하류 大國者下流 천하지교 天下之交. 노자가 이야기하는 대국은 바다입니다(p136)... <노자>가 제왕학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잃는 결정적 부분이 바로 물의 철학입니다. 비단 물의 철학뿐만 아니라 <노자>의 핵심 사상인 무위가 바로 반전사상 反戰思想입니다.(p137) <담론> 中


 <노자> 텍스트로만 한정해 보자면, 선뜻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그래서, 시야를 좀더 넓혀 다른 고전인 <주역 周易>과 <맹자 孟子>의 내용까지 함께 높고 생각하게 된다. 하늘이 아래, 땅이 위쪽에 놓인 지천태(地天泰) 괘는 마치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데, 그것은 가지고 있는 곳에서 없는 곳으로 덜어주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지천태가 매우 좋은 괘인 이유는 덜어주는 모습이 자연(自然)스러운 길(道)이기 때문이 아닐까.


 지천태 地天泰 괘는 매우 좋은 괘로 읽힙니다. 그 이유가 바로 하괘와 상괘의 관계 때문입니다. 곤 坤 괘가 위에 있고 건 乾괘가 아래에 있습니다. 땅이 위에 있고 하늘이 아래에 있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좋은 괘로 읽힙니다. 땅의 기운은 내려오고, 하늘의 기운은 올라갑니다.(p67) <담론> 中

 

 如有不嗜殺人者, 則天下之民皆引領而望之矣. 誠如是也, 民歸之, 由水之就下, 沛然誰能禦之. 만일 사람 죽이기를 좋아하지 않는 이가 있으면 천하의 백성들이 모두 목을 길게 빼고서 바라볼 것입니다. 진실로 이와 같다면 백성들이 그 사람에게 따라가는 것이 마치 물이 아래로 흘러 내려가는 것과 같을 것이니 줄기차게 흘러가는 기세를 누가 능히 막을 수가 있겠습니까? <맹자정의 孟子正義  양혜왕상 梁惠王上 6장 六章>(p47)


 만약, <노자>를 읽은 군주가 크게 깨달음을 얻어 도(道)를 따라 간다면, 그 길의 결과로 많은 백성을 얻는 것은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만약, 군주가 인위적으로 그런 행동을 한다면, 일시적으로는 가능할 지라도 바다(大國에 이를 때까지 행할 수는 없을 것이다. 도를 행하다 보니, 바다로 나아갔을 뿐, 바다로 나아가기 위해 도를 행했다고 본다면 원인과 결과가 바뀐 해석이 아닐까. 이러한 이유로 <노자>에서 자본주의 수탈구조 대신 반전(反戰)사상을 찾아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생각된다. 여기에서 잠시 '수탈-재분배 구조'에 대해 생각해보자.


 수탈과 재분배라는 고유한 작동 원리가 유지되는 한, 그것이 전자본주의 경제체제든 혹은 자본주의 경제체제든 아니면 우리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경제체제든 간에, 국가가 그 어떤 생산양식 혹은 생산력이라도 자신의 교환 논리로 선택하고 편입시킨다고 보아야 한다.(p288) <강신주의 노자 혹은 장자>  


 국가에 대해 부정적인 <강신주의 노자 혹은 장자>의 논리는 국가를 약탈-재분배 구조로 파악한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 1941 ~ )의 사상에 기반한다. 국가에 대한 가라타니 고진의 부정적인 인식은 '국가' '자본'의 문제를 인류 공동의 문제로 규정하기에 이른다.

 

 칼 폴라니의 결점은 재분배가 약탈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국가가 약탈-재분배라는 '교환양식'에 존재한다는 것을 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p62) <세계공화국으로> 中


 인류는 지금 긴급히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과제인 전쟁, 환경파괴, 경제적 격차는 분리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여기에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집약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들은 국가와 자본의 문제로 귀착됩니다. 국가와 자본을 통제하지 않으면, 우리는 이대로 파국의 길을 걷고 말 것입니다. 이것들은 일국(一國) 단위로는 생각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글로벌한 비(非)국가조직이나 네트워크가 많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유효하게 기능하지 않는 것은 결국 제 국가의 방해와 만나기 때문입니다.(p225) <세계공화국으로> 中


 이에 반해, 피게티(Thomas Piketty, 1971 ~ )의 견해는 다르다. 축적된 부(富)가 가져오는 불평등한 소득 분배를 해결하기 위해, 피게티는 세계공화국 수준에서 이루어질 글로벌 자본세와 함께 사회적 국가의 역할을 강조한다. 국가를 자본의 편에 서있다고 규정한 고진과 국가를 자본 개혁의 주체로 바라본 피게티. 같은 진단, 다른 치료를 제시한 두 석학의 이야기에 우리는 고민하게 된다. 우리는 국가(國家)를 어떻게 규정해야할 것인가. 이 문제를 깊게 보려면 근대 국가 이전 선사시대까지 나가야할 수도 있기에 일단은 멈추도록 하자.


  우리가 주목한 것은 20세기에 창안되었지만 미래에도 틀림없이 핵심적인 역할을 계속 수행해야만 할 사회적 국가와 누진적 소득세라는 두 가지 기본 제도다... 여기서 이상적인 수단은 매우 높은 수준의 국제적 금융 투명성과 결부된 누진적인 글로벌 자본세가 될 것이다. 세금은 끝없는 불평등의 악순환을 피하고 세계적인 자본집중의 우려스러운 동학을 통제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p617) <21세기 자본> 中


 반 反시장주의와 반 反 국가주의 모두 부분적으로는 옳다. 그러나 마구잡이로 내달리고 있는 금융자본주의에 대해 통제권을 되찾을 수 있는 새로운 제도가 필요한 동시에 현대사회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조세 및 소득이전제도의 지속적인 개혁과 현대화가 이뤄져야 한다.(p564)... 의료와 교육에 대한 정부지출(국민소득의 10~15퍼센트)과 대체소득 및 이전지출(국민소득의 10~15퍼센트 또는 20퍼센트)을 전부 합하면 국가의 총 사회적 지출은 (대체로) 국민소득의 25~35퍼센트 정도로 추산된다. 다시 말해 지난 세기에 이뤄진 재정국가의 성장은 기본적으로 '사회적 국가'의 건설을 반영하는 것이다.(p570) <21세기 자본> 中


 다시 <노자>로 돌아와서, <노자>와 관련한 강신주의 해석에서 부족한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과거를 통해 현재의 문제를 발견한다는면에서 참신성은 있었지만, 춘추(春秋), 전국(戰國)시대가 자식을 서로 바꿔 잡아먹던 시대이며 늙은 부모를 산에 버리던 시대임을 생각해보자. 끔찍한 시대를 살았던 이들과 시대 안에서 풍요로운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 많은 자본을 축적하기 위한 수탈구조를 생각한다는 해석은 분명 무리하다 여겨진다. <노자>의 정치사상을 이렇게 정리해본다. 


  우리가 이 지점에서 합의해야 하는 것은 고전과 역사의 독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제 時制라는 사실입니다. 공자의 사상이 서주 西周 시대 지배 계층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오늘의 시점에서 규정하여 비민주적인 것으로 폄하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과거의 담론을 현대의 가치 의식으로 재단하는 것만큼 폭력적인 것도 없지요.(p141)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中


 <담론>과 <강의 : 나의 고전독법>에 대한 이야기는 앞에서 했으니, 책 내용 중 하나인 <주역>의 내용 중 인상깊었던 구절을 마지막으로 이번 페이퍼를 정리하자.


 '위 位'는 효 爻의 자리입니다. 효를 읽을 때에는 먼저 그 자기를 읽습니다. 그러나 <주역 周易> 독법에 있어서 양효는 어디에 있든 늘 양효로서 운동하는 것은 아닙니다. 양효가 양효의 '자리(位)'에 있어야 양효의 운동을 합니다. 효가 자기 자리에 있는 것을 득위 得位했다고 하고 그렇지 못한 경우를 실위 失位했다고 합니다. 양효, 음효라는 효 자체의 존재성보다는 효가 처해 있는 자리와의 관계를 중시합니다. 그래서 관계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p63) <담론> 中


  양효가 양효의 자리에 있어야 득위한다는 말은 길(吉)하다와 통할 것이고,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야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공부를 안 한 학생이 시험을 잘 칠 수 있을 것인가를 주역점을 쳐서 물었을 때 '길'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주역점의 결과는 점을 치는 상대 기준으로 길(吉) 흉(凶)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보편적 가치에 기준을 두고 결과를 말해준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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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7 09: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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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7 09: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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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5-22 23: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겨울호랑이 2022-05-22 23:5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종이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