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2 - 르네쌍스, 매너리즘, 바로끄, 개정판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2
아르놀트 하우저 지음, 백낙청 외 옮김 / 창비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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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쌍스

르네쌍스의 자본주의적 정신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는 영리추구를 위한 노력과 이른바 '중산층의 미덕' 그리고 영리욕과 근면, 절약성과 정식성이다. 그러나 그들의 이러한 새로운 미덕체계도 사실은 보편적인 합리화 과정의 또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꾸아뜨로첸또(Quattroccento,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쌍스) 후반기에 이르러서야 합리적인 생활태도의 원칙이 금리생활자 이상으로 바뀌어가는데, 이때부터 시민계급의 생활은 봉건귀족의 생활방식과 비슷한 양상을 띠기 시작한다.(p38)... 시민계급들이 경제적으로 안정되었다고 느끼게 되자 초기의 시민적 도덕질서는 해이해지고 드디어는 날이 갈수록 향락적인 여가와 아름다운 삶의 이상에 매달리게 되었다. 이와 같이 시민계급이 점점 비합리적인 생활양식을 취하게 되는 바로 그 무렵에 봉건영주들은 점차 견실하고 신용있는 상인의 경영원칙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궁정사회와 시민사회가 길의 중간에서 서로 만나게 된 셈이다.(p39)

꾸아뜨로첸또 예술에 중세적인 전통이 아무리 그대로 남아 있고 그 예술에서 시민계급의 정신과 고딕의 이념이 끊임없이 서로 암투를 벌이고 있다는 사실이 뚜렷하다 할지라도, 우리가 정확히 알아두어야 할 것은 이 세기의 중엽에 이르기까지는 반고딕적이고 반낭만적이요 사실적이며 비궁정적/자유주의적인 경향이 시민계급을 지배하고 있었다는 사실과 정신주의, 인습주의, 보수주의의 경향 등은 로렌쪼 시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 우위를 주장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p54)

르네쌍스는 소상인이나 수공엉업자의 문화도 아니었고 큰 교양이 없는 시민계급의 문화도 아니었다. 르네쌍스는 오히려 다른 계층을 완전히 배제하면서 문화를 독접하려고 했던 비민중적이고 라띤화된 교양 엘리뜨의 문화였다... 광범위한 대중들은 당시의 중요한 예술품을 전혀 알지도 못했고 아는 경우에도 이러한 예술품을 감상하는 데 부적합한 비예술적인 의미로 이해했으며, 자신들의 심미적 감정은 질이 훨씬 떨어지는 작품들로써 충족시켰던 것이다. 이때부터 앞으로의 예술발전에서 근간을 이루게 될 교양있는 소수집단과 그렇지 못한 다수대중 간에 메울 수 없는 깊은 간격이 생기게 되는데, 이러한 격차는 지금까지의 유럽 예술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큰 것이었다.(p73)

미껠란젤로에게서 우리는 처음으로 자신 속의 어떤 마력적인 힘에 쫓기는 고독한 근대적 예술가, 즉 자신의 상념에만 사로잡혀 있고 그외에는 아무것도 거들떠보지 않으며 자신의 재능에 대해 깊은 책임감을 느끼고 자신의 예술가적 사명 위에 어떤 높은 힘이 군림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예술가를 대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비로소 예술가의 완전한 해방이 이루어지고, 예술가는 르네쌍스 이래로 우리가 알고 있는 '천재'가 된다.(p93)

르네쌍스의 엄격한 형식주의는 근대예술의 가장 중요한 저류로 남았다. 왜냐하면 엄격하게 형식주의적이고 전형적/규범적인 것을 강조한 예술양식이 근대의 근본적 흐름인 자연주의에 대항해서 그 위치를 유지할 수는 없었지만, 르네쌍스 이후에는 또다시 비통일적이고 누가적(累加的, cumulative)/병렬적인 중세의 예술양식으로 되돌아간다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르네쌍스 이후 우리들은 하나의 회화나 조각품을 단 하나의 통일된 관점에서 파악한 현실의 집약적 표현, 다시 말하면 광범위한 세계와 여기에 맞서 대항하는 하나의 통일체로서의 주체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관계로부터 생겨나는 하나의 형식구조로 이해하게 되었다. 예술과 세계 사이의 대극성(對極性)은 때로는 약화되기도 하였지만, 그후로는 한번도 소멸되지 않았다. 바로 여기에 르네쌍스의 진정한 유산이 존재하는 것이다.(p127)

매너리즘

매너리즘과 바로끄, 두 예술양식의 대립은 실제로는 발전사적인 대립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사회학적인 대립이다. 매너리즘이 정신귀족적이고 전유럽적인 교양계층의 예술양식이었다면, 초기 바로끄는 좀더 민중적이고 감정을 좀더 중요시하며 나아가서는 좀더 민족적 색채가 짙은 정신경향의 표현이었다.(p145)

기사도의 문제성에 대한 세르반떼스의 태도는 완전히 매너리즘적 생활감정의 양면성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그는 한편으로는 현실세계에서 동떨어진 이상주의와 현실세계에 적응하는 분별심 사이에서 망설이고 있다. 주인공 돈 끼호떼에 대한 그의 분열적 태도, 문학의 새로운 시기를 여는 그 태도는 바로 여기서 나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문학에서는 악한 자와 선한 자, 구제자와 배신자, 성자와 신성모독자가 구분되어 나타났으나 이제 한 사람의 주인공이 동시에 성자이자 바보가 되어 있는 것이다.(p196)

영국의 상층 시민계급 및 중류 지방귀족과 왕실의 관계에서 결정적인 사실은, 수백년에 걸친 불화와 압력 끝에 왕권이 사회적/정치적 질서를 다시 회복하고 나서 이제 유산계급의 안전을 보장할 태세가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통치자의 지배력 약화나 사회적인 위계질서의 동요만큼 위험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기 시작한 자산가들에게는 이제 질서의 원리와 권위 및 안전성의 사상이 부르즈와적 세계관의 근간이 되었다.(p201)

셰익스피어의 자연주의가 지닌 한계는 너무나 명백하다. 그의 작품은 어디서나 개인적인 것과 관습적인 것, 복잡한 것과 단순한 것, 가장 세련된 것과 미개하고 미숙한 것 등 정반대의 특징들로 뒤섞여 있다. 그는 기존의 예술수단 가운데서 많은 것을 의도적으로 뚜렷한 목적의식을 갖고 받아들였지만, 그중 대부분은 아무런 비판이나 깊은 생각 없이 그대로 받아들였다.(p222)... 그러나 그가 저지른 이러한 부주의나 실수에도 불구하고 그의 현명하고 깊은 심리적 통찰력은 결코 손상받지 않는다. 그가 묘사한 여러 성격은 - 이러한 점에서도 그는 발자끄와 공통점을 지니는데 - 우리를 압도하는 내적 진실성과 파괴할 수 없는 실체감을 지니기 때문에 그것이 비록 억지로, 때로는 잘못 묘사되어 있다 하더라도 이러한 인물들은 의연히 살아 숨쉬는 생명력을 갖는다.(p223)

바로끄

하나의 미술양식으로서 매너리즘이 전유럽에 골고루 퍼져 있던 분열된 생활감정을 반영한 것이라면, 바로끄는 본질적으로 좀더 동질적인 성격을 띠면서도 유럽 각 문화권에서 제각기 다른 형태로 나타난 세계관의 표현이다. 매너리즘은 고딕과 같은 범유럽적 현상이었는데, 바로끄는 이와는 달리 국가나 문화권에 따라 서로 상이하게 등장하는 다양한 예술경향을 포괄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을 하나의 공통분모로 묶을 수 있을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바로끄의 이차적 분화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을 궁정적/카톨릭적 바로끄가 다시 감각주의적이고 기념비적/장식적이며 우리가 지금까지 이해해온 바의 '바로끄적' 양식과 이보다 더 엄격하고 한층 더 형식을 존중하는 '고전주의적' 양식으로 나뉘는 점이다.(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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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0-03-03 12: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예전에 읽었었는데.. 참 감탄스러운 책이었다는. 다시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겨울호랑이 2020-03-03 12:36   좋아요 0 | URL
비연님 말씀처럼 깊이 있는 내용을 독자들을 배려하면서 알기 쉽게 설명한 명저라 생각합니다. 곁에 두고 몇 번봐도 좋은 책이라 여겨집니다.^^:)

페넬로페 2020-03-03 13: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꼭 읽어보겠습니다^^

겨울호랑이 2020-03-03 13:21   좋아요 1 | URL
페넬로페님 즐거운 독서 되세요. 다만, 제가 읽은 책은 예전에 구입한 구판을 뒤늦게 발굴해서 읽은 것이라 개정판으로 읽으시면 더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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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세트 - 전4권- 개정판
아르놀트 하우저 지음, 반성완 외 옮김 / 창비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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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2- 르네쌍스, 매너리즘, 바로끄, 개정판
아르놀트 하우저 지음, 백낙청 외 옮김 / 창비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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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1 - 선사시대부터 중세까지, 개정판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1
아르놀트 하우저 지음, 백낙청 외 옮김 / 창비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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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

신석기시대의 새로운 예술양식을 낳은 요인은 두 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채집/수렵민들의 기생적이고 순전히 소비적이던 경제생활이 농경/목축민들의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경제로 이행했다는 사실이요, 다른 하나는 구석기시대 마술 중심의 일원론적 세계관이 애니미즘의 이원론적 세계관으로 대체되었다는 사실인바, 이 세계관 자체도 새로운 경제형태의 산물이었다.(p27)

예술은 자체의 고유한 형식을 고수하면서 사물의 일상적인 모습에 맞선다. 예술은 이미 자연의 모방자가 아니라 그 반대자이며, 현실의 연장으로서 현실에 뭔가를 덧붙이기보다 현실에 맞서 어떤 당위적인 형상을 제시한다. 이것은 애니미즘 신앙과 더불어 발생하여 이후 수백 가지의 철학체계 속에 그때그때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난 이원론으로서 관념과 현실, 정신과 육체, 영혼과 형식 등의 대립으로 표현되며 이제는 예술의 개념과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p27)

고대 오리엔트의 도시문화

예술적인 의지란 그물처럼 촘촘히 얽힌 장애물을 뚫고 나감으로써 비로소 성취되는 것이다. 즉 모든 예술작품은 일련의 목표 설정과 이에 대립되는 일련의 장애들 사이의 긴장에서 탄생하는 것이다.(p48)

정면성의 원리에 따라 인체를 묘사할 경우 상체가 정면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은 감상자와의 어떤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관계를 표현하는 것이다. 감상자라는 존재를 아예 예상조차 하지 않았던 구석기시대 예술의 경우에는 정면성의 원리라는 것은 없었다.(p61)

고대 그리스와 로마

선사시대나 역사시대 초기의 예술작품에 그 자율적/미학적인 요소가 많았든 적었든간에, 그리스 아케이즘 시대까지의 예술은 모두 근본적으로는 실용예술이었다. 아무런 거리낌없이 형식 그 자체를 음미하고 즐기는 능력, 수단 자체에서 목적을 찾고 예술을 현실지배나 현실개조를 위해서뿐 아니라 단지 현실을 묘사하기 위해서만 사용할 가능성은 이 시기의 그리스인들에 의해서야 비로소 발견된 것이다.(p114)

헬레니즘에서 과장적인 바로끄나 우아한 로꼬꼬가 막다른 골목에 도달하여 끝에 가서는 이미 낡아빠진 형식만을 되풀이하게 된 반면 제정하의 로마는 제국의 통일적 통치체제와 더불어 상당한 통일성을 지닌 '제국예술'을 만들어냈고, 이 '제국예술'은 그 근대적 성격 때문에 머지않아 도처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p151)

중세

그리스도교 예술이 존재하는 곳에는 어디나 비잔띤 예술이 침투할 수 있었던 것은 비잔띤 황제가 이미 누리고 있던 권력과 권위를 서방의 카톨릭교회도 목표도 삼았기 때문이다. 예술적인 목적은 동/서가 모두 같았다. 즉 절대적 권위, 초인간적 위대함, 신비적인 위엄 등을 표현하려는 것이었다.(p191)

수도사와 수녀 사이에 오간 우애의 서한을 보면 이미 11세기에 일종의 과열된 감상적 관계가 엿보이는데, 그것은 우정이라고도 연애라고도 할 수 없는 관계였고 그 속에는 기사적 연애에서 볼 수 있는 정신적인 경향과 관능적인 경향의 혼합이라는 현상이 이미 나타나있다... 기사계급의 연애서정시와 중세 수도원 문학의 관계는 직접적인 영향이나 차용이라기보다 오히려 하나의 평행현상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p296)

로마네스끄 교회는 그 자체로 완결된, 그 이상 아무것도 구할 바 없는 안정된 공간상(空間像)이다. 비교적 넓고 상징적이고 간소한 그 내부는 감상자의 눈을 끌어 그 내부에 머물게 하고 감상자에게 언제까지나 완전한 수동적 태도를 갖게 한다. 이에 반해 고딕 교회는 생성의 상태를 계속하고 있고, 말하자면 우리 앞에 솟아나고 있다. 그것은 결과가 아니라 하나의 과정인 것이다.(p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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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관련 기사가 사회의 모든 이슈를 삼킨 2020년 3월. 예년 같으면 새학기 준비로 바쁘게 가방을 챙겼을 아이도 계속된 방학에 한가로이 하루를 보낸다.

거의 5년마다 반복되는 전염성 질환을 보면서 오래전 읽었던 책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건강검진을 통해 평균치를 설정하고 기준치와 통계 오차범위를 벗어나는 outlier를 환자로 규정하고 의료제도의 이름으로 혈압약 등 각종 약복용을 강요하는 모습.

우리는 이러한 모습에서 중세 신의 이름으로 죄의식에 빠진 이들에 구원을 위한 신앙고백을 강요했던 종교의 dogma 가, 건강을 잃은 환자에게 건강한 삶에 대한 구원을 약속하고 대신 약품을 파는 과학의 dogma 로 변화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게 본다면, 과거 종교에 대한 신앙이 과학에 대한 신앙으로 바뀐 현대에서, 영원한 생명을 위해 면죄부가 판매되듯, 건강을 위해 코로나를 막아주는 마스크가 대량으로 판매되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모습은 아닐 것이다.

영원한 삶을 위해 면죄부 보다 인간다운 삶이 더 필요하듯, 우리에게는 마스크보다 손씻기가 더 건강에 필요한 것이 아닐까. 없는 질병도 만들어 내는 다국적 제약회사들에게 전염성 질병은 그야말로 성장시장이 아닐까. 뉴스에서 반복되는 마스크 관련 기사를 보면서 이번 사태의 진정한 수혜자가 누구일런지 「질병 판매학」을 통해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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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01 2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3-01 2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테네의 급격한 세력 팽창에 두려움을 느낀 스파르타의 견제로 시작된 펠로폰네소스 전쟁(Peloponnesian War, BC 431 ~ BC 404).  이 전쟁이 시작된 2년차에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아테네에 역병이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페리클레스는 아마 전쟁의 계절이 시작될 때 아테네에서 발생한 역병의 위력에 대한 연락을 받았기 때문에 작전을 중단했을 것이다. 투키티데스는 이 병을 앓았고 그 증상을 상세하게 기록했다. 이 병은 폐렴 흑사병, 홍역, 장티푸스, 그리고 여러 다른 병들과 유사한 증상을 보였지만, 정확하게 들어맞는 병명은 알 수 없다. 기원전 427년에 진정될 때까지, 이 병으로 중장 보병 4,400명, 기병 300명, 하층민 다수가 사망했다. 아테네 주민의 약 3분의 1이 휩쓸려나갔다.(p106)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中


 역병의 피해는 엄청난 것이었다. 전체 주민의 3분의 1이 쓸려나간 이 병으로 인해 아테네는 전쟁 초기 큰 인력손실과 함께 페리클레스(Perikles, BC 495 ~ BC 429)를 잃어 국정혼란을 겪었다. 그리고, 이러한 큰 피해로 인해 아테네인들은 승리에 대한 확신을 잃어갔다.


 스파르타의 제1차 침공 이후에는 잠잠하던 평화파가 적과의 타협을 다시 촉구하고 나섰다. 더욱 공격적인 전쟁을 주장하던 자들은 아티카가 입은 큰 손실과 펠로폰네소스에 대한 공격이 가져올 빈약한 성과를 지적할 수 있었다. 현재의 지출 수준으로 전쟁을 계속하는 것은 불가능했고, 포티다이아의 포위는 여전히 예산에서 주된 요소였다. 돈을 절약하고 아테네인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서는 상당히 큰 승리가 필요했다.(p107)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中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에게 결정적인 패배를 안긴 사건은 시칠리아 원정(Battaglia navale in Sicilia, BC 415 ~ BC413)였지만, 이러한 원정의 결정 배경에는 아테네인들의 초조한 심리가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역병 또한 아테네 패배의 주요 원인이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 자신도 병을 앓았던 투키티데스는 당시 역병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을까.


 평소 건강한 사람들이 별 이유없이 갑자기 감염되었는데, 최초 증상은 머리에 고열이 나고 눈이 빨갛게 충혈되는 것이었다. 입안에서는 목구멍과 혀에서 피가 나기 시작하고, 내쉬는 숨이 부자연스럽고 악취가 났다. 다음에는 재채기가 나며 목이 쉬었다. 얼마 뒤 고통이 가슴으로 내려오며 심한 기기침이 났다. 대부분의 경우 헛구역질과 함께 심한 경련이 일어나는데, 이런 경련은 어떤 사람들은 구역질을 하고 나면 곧 완화되었지만, 어떤 사람들은 한참 뒤에야 완화되었다.(p178)... 이 역병의 증상은 실로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었다.(p178)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제2권 49) 


 당시 아테네의 역병은 원인을 잘 모르는 병이었기에 환자와 환자를 돌보는 의사가 함께 쓰러져가는 치명적인 질병이었지만, 투키티데스는 이 병의 무서운 점을 그 증상에서 찾지 않았다. 오히려, 투키티데스는 병으로 인한 고독과 절망과 이로부터 오는 사회적 혼란을 더 치명적인 결과로 해석한다.

 

 이 역병의 가장 무서운 점은 이 병에 감염되었다는 것을 알면 절망감에 사로잡히는 것과, 사람들이 서로 간호하다 교차 감염되어 양 떼처럼 죽어가는 것이었다. 사실 이것이 사람들이 죽어간 주된 원인이었다. 사람들이 환자 방문하기를 두려워하면서 환자는 방치된 채 혼자 죽어갔기 때문이다. 돌보는 이가 없어 식구가 모두 죽어간 집도 실제로 비일비재했다.(p179)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제2권 47 ~ 52)


 절망감과 고독감 속에서 환자들은 죽어갔고, 환자가 아닌 이들은 세상의 종말을 생각하게 되면서 아테네는 향락에 빠지게 되었다. 페리클레스의 황금기라 불리던 시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아테네의 패권은 이미 몰락하고 있었다.


 아테나이는 이 역병 탓에 무법천지가 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목숨도 재물도 덧없는 것으로 보고 가진 돈을 향락에 재빨리 써버리는 것이 옳다고 여겼다. 목표를 이루기도 전에 죽을지도 모르는 판국에 고상해 보이는 목표를 위해 사서 고생을 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신들에 대한 두려움도 인간의 법도 구속력이 없었다... 이렇듯 아테나이인들은 이중고에 시달렸으니, 도시에서는 사람들이 죽어갔고 도시 바깥의 영토는 약탈당하고 있었다.(p181)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제2권 53)


 펠로폰네소스 전쟁 당시 아테네는 원인을 모르는 병으로 전체 인구의 상당수를 잃었지만, 역사가 투키티데스는 역병의 치명적인 결과를 개인의 건강이 아닌 공동체의 붕괴에서 찾고 있다. 아테네는 이러한 역병으로 인해 결국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패퇴했다. 그리고, 2020년 2월 코로나19로 인해 전국이 마비된 현실안에서 우리는 아테네의 혼란이 어떠했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인구의 3분의 1이 죽어간 질병과 2020년 2월 28일 질병관리본부 기준 사망자 13명의 질병을 동등하게 비교할 수 있을까. 코로나 19의 실제 피해에 대해 우리 사회가 보이는 반응은 지나친 것은 아닐까. 질병의 피해보다는 마스크 착용과 사재기 등으로 인한 불안감이 질병보다 더 크게 우리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것은 아닌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통해 다시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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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yonder 2020-02-29 12: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올리신 글에 크게 동감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 전염병에 익숙해져야 할 것 같은 예감이 드네요. 냉정하게 각자 해야할 일을 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네요. 건강 유의하시고, 즐거운 독서 하시기 바랍니다.

겨울호랑이 2020-02-29 14:07   좋아요 2 | URL
blueyonder님 말씀처럼 이제는 전염병때문에 두려움에 떨기보다는 평안함 속에서 자가치유 능력을 믿고 생활하는 것이 필요하다 생각됩니다. 물론 평소 지병있는 환자들은 건강에 유의해야겠지만요.... blueyonder님께서도 건강한 하루, 행복한 하루 되세요!^^:)

북다이제스터 2020-03-01 18:37   좋아요 1 | URL
예전에 이런 바이러스 없지 않았을텐데, 앎이 이런 소란을 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앎이 항상 좋은 건 아닌 것 같습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20-02-29 13: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캬, 좋은 지적이네요. 지금 읽으면 좋은 글입니다..

겨울호랑이 2020-02-29 14:0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곰곰발님^^:) 이 페이퍼를 나중에 읽었을 때는 별로 공감되지 않는 세상이 되길 기원해 봅니다.

AgalmA 2020-03-08 13: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미국에서는 자비 검사가 400만 원이 넘어가서 염려가 돼도 서민들은 그런 의료 서비스를 선택하기 어렵다고 하더군요. 한국은 그나마 의료보험이 잘 되어 있어서 16~20만원 가량이지만 몇몇 증상자는 그게 부담돼(확진자에겐 환불되지만 비확진자면 다 자비처리되니까) 검사 안 받다보니 병세가 더 깊어졌더군요.
부유한 사람들이 타인의 출입을 금지하는 공동관심단지(CID)를 조성해 살고 있듯이 공동체 붕괴는 곳곳에 퍼져 있는데 이 질병 사태는 인종, 계층 갈등도 더 불러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혐오 정서가 현실 공간까지 바꾸는 것도 같고 세상 곳곳이 차단의 장막으로 가득하네요.

겨울호랑이 2020-03-01 14:20   좋아요 1 | URL
AgalmA님 말씀처럼 이번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많은 사회 문제가 더 잘 드러났음으 느낍니다. 이러한 문제를 잘 의식하고 해결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면, 전화위복이 되지 않을까도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