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물정 모르는 상류층의 급진주의자들은 택시 운전사들이 모두 파시스트라고 말한다. 이는 그릇된 생각이다. 택시 운전사들은 이데올로기 문제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들이 노동조합의 가두 행진을 싫어하는 건 정치적인 성향 때문이 아니라 시위대가 교통을 마비시키기 때문이다. 극우파가 시위를 한다 해도 택시 운전사들의 비난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좌파든 우파든 오로지 강력한 정부가 들어서기만을 바란다. 자가 운전자들을 모두 총살시키고 아침 6시부터 자정까지 적절한 통행 금지를 실시할 정부를 말이다.(p36)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中


 움베르트 에코(Umberto Eco, 1932 ~ 2016)의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에는 조금은 엉뚱한 상황에 놓였을 때, 기발한 방법으로 대처하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예를 들면, '텔레비전에서 교수형 생중계를 보는 방법', '몰타 기사단의 기사가 되는 방법' 등은 저자의 기발한 상상력이 만들어낸 특이한 상황이라 하겠다. 저자는 이러한 상황의 특징과 저자다운 기발한 해결방법을 제시하며 우리에게 웃음을 준다. 그중에서도 '서부 영화의 인디언 역을 연기하는 방법'은 70년대 서부 영화의 클리셰(cliche) 안에서 우리의 동의와 웃음을 함께 끌어내는 글이라 생각된다. 그 중 일부를 살펴보자.


 4. 역마차를 공격할 때는 적이 쏘는 총의 사정거리를 벗어나지 않도록 언제나 가까이에서 마차를 따라가야 한다. 아니면 그보다 더 좋은 방법으로 아예 마차와 나란히 달려도 된다... 10. 만일 백인이 코요테 울음소리를 내거든, 맞히기 쉬운 표적이 되도록 즉시 고개를 쳐들어야 한다... 12. 모든 인원이 한꺼번에 공격에 가담하지 말고, 일부는 그냥 구경만 하고 있다가 적의 공격을 받고 쓰러지는 동료들이 생기면 그들을 대신해서 들어가라.(p231)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中


  '서부 영화의 인디언 역을 연기하는 방법'이 우리에게 웃음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서부 영화가 가진 선(善) - 악(惡)구도와 뻔한 결말에 대한 저자의 비틀기 때문이 아닐까. 블라지미르 야꼬블레비치 쁘로쁘(1895 ~ 1970)은 <희극성과 웃음>에서 웃음이 생겨나는 조건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희극성과 이 희극성으로 야기되는 웃음이 생겨날 수 있는 첫 번째 조건은 웃고 있는 사람이 당연하고 도덕적이며 바른 것에 대한 어떤 개념들을 가지고 있다는 데 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웃고 있는 이가 도덕적 요구라는 관점이나 그저 건전한 한 인간의 천성이라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 당연하고 옳은 것으로 이해되는 완전히 무의식적인 어떤 본능을 가지고 있다는 데 이 조건이 있는 것이다... 웃음의 발생을 위한 두 번째 조건은 사람들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에, 사람들의 내부에 존재하는 본능적 의무감과 모순되고 이에 일치하지 않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 관찰된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관찰되는 몇몇 단점들이 웃음을 유발시키는 것이다. 이 두 시초들 사이의 모순은 희극성의 생성과 희극성으로 유발되는 웃음을 위한 본질적 조건이다.(p251) <희극성과 웃음> 中


 '백인 vs 인디언' 구도, 해피 엔딩이라는 정해진 결말, 이들을 둘러싼 상영시간이라는 제한 조건 아래서 의례적으로 일어난 사건의 반복과 서부영화의 부조리가 우리에게 웃음을 주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러한 모순에서 오는 희극성 이외에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에는 다른 방식의 웃음도 담겨있다. 예를 들면, 조세회피처( tax haven)로 유명한 카이만 제도(Cayman Islands)에 대한 저자의 글을 통해 우리는 암울한 현실에서도 웃음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비록, 쓴웃음이라는 다른 종류의 웃음이긴 하지만.


 카이만 제도는 "오프 쇼어 뱅킹(Offshore banking)"의 천국이다. 다시 말하면 일체의 조세 규제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본을 옮겨 오는 나라이다. 뇌물을 공여하고 공공의 부를 가로채는 현대판 해적들, '더러운 손 작전'으로 떼돈을 모은 뒷거래꾼들, 무기 상인들 등 오늘날의 도덕이 근절해야 할 악한으로 지목하고 있는 자들이 이곳으로 돈을 빼돌리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재판 관련 기사에서 매일같이 접하고 있다. 그러나 2~3백 년 후에는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세월은 약이고 시간은 모든 상처를 치유하게 될 것이다.(p51)... 2백년 후 섬의 관광청에서는 우리 시대의 추잡한 자들을 소재로 한 공연을 기획하게 되리라는 생각도 해보았다.(p52)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中


 아마도, 2020년 3월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뒤숭숭한 요즘에는 '전염병에 걸리지 않는 방법'이 다른 모든 소제목의 글보다 더 눈이 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 글을 통해 우리는 글의 제목과는 달리 전염병에 걸리지 않는 방법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뉴욕의 전위적인 극장에 자주 출입하는 것을 삼가라. 잘 알려져 있다시피, 영원권 배우들은 음성학적인 이유로 침을 많이 튀긴다. 실험적인 연극을 공연하는 작은 극장은 더욱 조심해야 한다. 관객들 모두가 배우들이 튀기는 침의 사정권 안에 있기 때문이다. 국회 의원들은 마피아와 일체 관계를 맺지 말아야 한다. 마피아와 관계를 맺었다가는 대부의 손에 입맞추는 것을 피할 수 없게 된다.(p216)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中


 기업의 구조 조정에 따른 실업자가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한다. 해고당하면 온종일 손톱을 씹으며 시간을 보내게 된다. 사르데냐 섬의 양치기나 테러리스트들에게 납치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 납치범들은 대개 여러 사람을 납치하는 동안 똑같은 복면을 쓰기 때문이다.(p217)... 전염병과 기근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은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종종 침을 삼키는데, 그것을 삼가야 할 것이다. 주위의 불결한 공기와 접촉했던 침이 소화기에 들어가면 병에 감염될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p219)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中


 침을 삼키는 것마저도 전염병에 감염될 염려가 있다면, 우리는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전염병에 걸리지 않는 방법'이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전염병은 피할 수없다는 것을 넌지시 알려준다면,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는 방안은 웃음이라는 것을 <희극성과 웃음>의 저자는 구비문학 연구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준다.


 죽음의 세계로 들어가면서 모든 웃음이 멈추고 금지되는 반면 삶의 세계로 들어가면서는 웃음을 동반하게 된다. 그리고 죽음의 세계에서 웃음의 금지를 보았다면 삶의 세계에서는 웃음의 성약(成約), 즉 웃음의 강요를 볼 수 있다. 이러한 사고는 더 확장시킬 수 있다. 웃음이 삶과 함께 하는 능력뿐 아니라 그러한 삶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능력도 가진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p329) <희극성과 웃음> 中


 <희극성과 웃음>의 내용을 읽으며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보내는 지금, 웃음을 통해 우리가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가기를 바라본다. 다만, 그 웃음은 억지로 만들어낸 억지웃음이 아닌, 오래 계속될 수 있는 부드러운 미소였으면 한다... 


 웃음은 오랫동안 지속될 수 없다.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는 것은 미소이다.(p259) <희극성과 웃음> 中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의 무늬 북즐 시선 3
강미옥 지음 / 투데이북스 / 2020년 2월
평점 :
절판


<바람의 무늬 1> <바람의 무늬 2> p14/ p15

<모래톱은 숨쉬고 싶다> p53

모래에 새겨진 바람의 흔적 저 편에 앙상한 나뭇가지가 보인다. 그 옆 사진에서는 물결인듯 모래인듯 바람이 만들고 지나간 자국 위를 오리가 걷는다. 또는 헤엄쳐간다.

비슷한 배경의 바람이 만들어낸 무늬지만, 먼저 사진에서는 거센 바람의 힘에 꺾인 생명의 잔해가 처량하게 다가오는 반면, 둘 째 사진에서는 바람을 뚫고 나가는 생명의 도약을 느끼게 된다. 쉴 새없이 바뀌는 바람이고, 그에 따라 모래/물결에 새겨지는 무늬는 끊임없이 변화하겠지만, 사진에서 담지 못한 더 높은 곳에서 바라본다면 바람이 만들어 낸 거대한 프랙탈(fractal) 구조를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조각과 전체의 자기 유사성처럼 순간과 영원은 결국 같은 모습이 아닐까.

순간의 바람이 만들어낸 변화를 <바람의 무늬>가 표현한다면, <모래톱은 숨 쉬고 싶다>는 파도가 만들어낸 모래에 남겨진 자국이다. 하루에 두 번 반복되는 밀물과 썰물이 새긴 모래 위의 흔적은 보다 정형적이고 예측 가능한 약속이다. 그래서일까. 모래톱 위의 자국이 직선인 것은 다소 고지식하게 느껴진다.

바람은 자신의 흔적을 외부에 새긴다면, 물은 자신의 내부에서 흔적을 꺼내 보여준다. 여러 면에서 대비될 수 있는 바람과 물을 담은 두 장의 사진에서 우리가 공통점을 찾는다면, 황혼(黃昏)을 떠올리게 하는 ‘지는 해(석양)‘때문이 아닐까.

여러 장의 사진과 시(詩)가 함께 한 강미옥 시인의 작품에서도 이들 세장의 사진과 시에 잠시 머물며 삶을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어수선한 시기,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선물을 주신 이웃분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0-03-09 16: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3-09 16: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12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공예 1 - 고분미술
이한상 지음 / 예경 / 2006년 6월
16,000원 → 15,200원(5%할인) / 마일리지 8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2월 10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20년 03월 08일에 저장

금동불
곽동석 지음 / 예경 / 2000년 4월
16,000원 → 15,200원(5%할인) / 마일리지 8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2월 10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20년 03월 08일에 저장

석불.마애불
최성은 지음 / 예경 / 2004년 11월
18,000원 → 17,100원(5%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2월 10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20년 03월 08일에 저장

탑파
박경식 지음 / 예경 / 2001년 5월
16,000원 → 15,200원(5%할인) / 마일리지 800원(5% 적립)
2020년 03월 08일에 저장
절판


12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이 책을 '자연책'이라 부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책을 아무리 크게 만든다 해도 우리를 둘러싼 거대한 세계의 아주 작은 일부도 한 권에 담아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어디서 끝나게 될까? 별자리부터 지구의 핵에 이르기까지 배워야 할 것이 무궁무진하다. 그동안  지나칠 때마다 궁금했던 동식물, 나무, 풀, 곤충, 강수량,육지, 수역 등을 이번 자연책 작업을 통해 제대로 공부할 수 있었다.(p8) <자연해부도감> 中

 

  줄리아 로스먼(Julia Rothman)의 <자연해부도감 Nature Anatomy>은 저자의 말처럼 정말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해와 달, 별부터 시작해서 지구 기후, 우리 주변의 동식물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자연(自然 nature)이라 부르는 거의 모든 것들의 이야기가 편한 그림과 함께 담겨있다는 점이 책의 장점이다. 소재의 다양성 측면에서 <자연해부도감>은 빌 브라이슨(Bill Bryson, 1952 ~ )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 A short History of Nearly Everything>을 떠올리게 하지만, 드로잉(drawing) 중심의 책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있다. 그리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에 비해 다루는 내용도 매우 제한적이다. 지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마음을 평안하게 만들어주는 책으로, 이는 저자의 말로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나는 뉴욕 도심부인 브루클린의 파크슬로프에 살고 있는데, 우리 집은 프로스펙트 파크 입구에서 가까운 몇 안 되는 건물들 가운데 하나다. 잠깐 바람 쐬는 걸 두고 '자연 산책'라 부르는 것이 지나칠 호들갑일지는 모르겠지만 매일 잠시나마 초록의 자연에 에워싸이는 시간은 내게 더없이 소중하다.(p6) <자연해부도감> 中 


 <자연해부도감>은 저자의 말처럼 산책하는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용의 깊이에 대해 지적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생각되지만, 저자의 머리말을 읽으면서 다른 생각을 떠올리게 된다. 그것은 <자연해부도감>의 자연이 저자가 살고 있는 삶의 공간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저자는 도시에서 야생(野生)을 아름다운 세계로 생각하지만, 과연 그럴까. 마루야마 겐지(丸山健二, 1943 ~ )가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를 통해 밖에서 바라본 시골이 이상향이 아닌 현실임을 말하듯, 저자가 그린 자연도 추상적인 것이 아니지 않을까. 이러한 이유로 <자연해부도감>을 읽으면서 자연에 대한 느낌을 받기보다, 책의 그림에만 눈이 가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자연에서의 현실이란 것을 잘 몰랐던 젊은 시절, 몰래 눈여겨둔 별장지가 있었습니다. 높은 지대에서 바라본 전망은 아름다운 아즈미노에서도 각별했습니다. 그곳에 집을 짓고 살면 구름 위에서 생활하는 기분이 들지 않을까, 집필 의욕이 솟구쳐 생각대로 소설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집필 의욕이 솟구쳐 생각대로 소설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어설픈 기대에 사로잡혔습니다... 만약 당신이 땅값이 싸다는 점에 눈이 멀어 곧바로 사기로 결정하고 말았다면 이는 중대한 실수가 아닐 수 없습니다. 도시 땅값과 비교하면 분명하면 분명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쌉니다.  하지만 현지 시세를 감안하면 턱없이 비싼 가격으로 바가지를 씌운 것입니다.(p33)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中


 그런 면에서 헨리 데이비드 소로 (Henry David Thoreau, 1817 ~ 1862)의 <야생화 일기 Thoreau's Wildflowers>에는 자연 안에서 함께 숨쉬며 자연을 바라본 이의 시각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독자들은 자연안에서 삶을 발견하고, 저자와 함께 식물을 발견하는 체험을 할 수 있기에 책의 깊이가 한층 깊어진다는 생각을 해본다.


 1853년 6월 10일


 우리가 거닐었던 이 멋진 야생 지역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옛 칼라일 길은 양쪽에 야생사과나무 초원과 접해 있다. 사과 나무들은 대부분 어쩌다 씨앗이 날라왔거나 사과즙 찌꺼기를 버린 데서 움이 트는 등 우연히 터를 잡고 제멋대로 자라며, 자작나무와 소나무에 가려져 있다. 이 드넓은 과수원의 사과나무들은 열매를 제법 생산하지만 야생에서 삼림수로 자란다. 이곳은 가울에 산책하는 사람들에게는 천국이다.(p187) <소로의 야생화 일기> 中


 <자연해부도감>과 <소로의 야생화 일기>는 같은 자연을 그렸지만, 전자가 관념적인 자연을 표현했다면, 후자는 현실적인 자연을 표현했기에, 깊이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주제는 조금 달라지지만, 관념적인 자연과 현실의 자연을 대조하자면, 우리나라의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와 남종문인화(南宗文人畵)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현실을 그린 진경산수화가 관념적인 남종문인화보다 높은 평가를 받는 것도 이러한 기준의 연장선상이 아닐까. 현실(現實)이 공허한 이념(理念 ideology)보다 언제나 중요한 것이니까...  


 진경산수화란 우리나라 산천을 소재로 그린 산수화로 특히 조선 후기(18~19세기)에 유행한 실경산수화를 가리킨다. 실경을 화폭에 담는 경향은 18세기에 와서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이미 고려 이래 오랜 전통을 갖고 계속되어 왔다... 진경 眞景이란 원래 문인화적 개념이다. 대상의 겉모습만을 묘사한 형사 形似의 그림이 아니라 대상의 본질을 표현하는 신사 神似의 그림을 진경이라 한 것이다. 진경산수화는 화보나 다른 그림을 모방한 그림이 아니고 우리나라 산하를 직접 답사하고 화폭에 담은 살아있는 그림[活畵]이다.(p102) <Korean Art Book 회화2> 中



[그림] 정선의 금강전도(金剛全圖)[출처 : 위키백과]


 다만, 진경시대의 배경에는 명(明)나라 멸망으로 인해 중화(中華)의 적통을 우리가 이었다는 사대(事大)사상이 있다는 사실을 아쉽게 느끼면서 이번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문화적으로 우리보다 열등한 여진족이 무력으로 중국을 차지했다 해도 중화의 계승자가 될 수 없는데, 하물며 그 야만 풍속인 변발호목(辮髮胡服)을 한민족(漢民族)에게 강요하여 중화문화 전체를 야만적으로 변질시켜 놓았으니 중국에서는 이미 중화문화 전통이 단절되었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니 중화문화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면서 주자성리학의 적통(嫡統)을 발전적으로 계승하고 있는 조산만이 중화문화를 계승할 자격을 갖추었으므로 이제 조선이 중화가 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었다.(p22)... 이로 말미암아 조선이 곧 중화라는 조선중화주의가 조선사회 전반에 점차 팽배해 가기 시작하였다. 이제 조선이 곧 중화라는 주장을 떳떳하게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어찌 조선 고유문화를 꽃피워내는 데 조금이라도 주저할 리가 있었겠는가.(p23) <진경시대 1> 中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4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세트] 미술 철학사 1~3 세트 - 전3권
이광래 지음 / 미메시스 / 2016년 2월
114,000원 → 102,600원(10%할인) / 마일리지 5,7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2월 10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20년 03월 08일에 저장

미술 철학사 3- 해체와 종말 : 포스트모더니즘에서 파타피지컬리즘까지
이광래 지음 / 미메시스 / 2016년 2월
38,000원 → 34,200원(10%할인) / 마일리지 1,90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2020년 03월 08일에 저장

미술 철학사 2- 재현과 추상: 독일의 표현주의에서 초현실주의까지
이광래 지음 / 미메시스 / 2016년 2월
38,000원 → 34,200원(10%할인) / 마일리지 1,9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2월 10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20년 03월 08일에 저장

미술 철학사 1- 권력과 욕망 : 조토에서 클림트까지
이광래 지음 / 미메시스 / 2016년 2월
38,000원 → 34,200원(10%할인) / 마일리지 1,90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2020년 03월 08일에 저장



4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