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동해안 여행과 서예 전시회를 다녀왔다. 일정 중 경포대에서 본 일출(日出)과 성균관대학교 600주년 기념관에 상설 전시된 검여 유희강 상설전시관의 <관서악부>를 보고 이번 페이퍼에서 간략하게 정리해 본다.


 먼저 일출. 해뜨는 것을 보기 위해 1시간 전에 일어나 밖을 보니 캄캄한 어둠 속에서 파도 소리만이 들려온다. 잠시 씻고 나온 사이 어느새 밖은 붉은 색으로 물들면서 뭔가 큰 변화가 있을 것만 같다. 예상일출 시간 오전 7시전에 해가 뜰 곳으로 생각되는 지점으로 핸드폰을 들고 기다려본다. 그리고, 바다 저편에서 올라오는 태양. 어둠을 옆으로 밀어내면서 서서히 붉은 기운이 순식간에 올라가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소리를 켜서 들으시면 더 좋습니다! ^^:)


[사진] 경포대에서의 일출(by 겨울호랑이)



 여러모로 부족한 일반인이 핸드폰으로 촬영한 영상이기에 부족함이 많은 사진이지만, 앵글 너머의 현상은 숭고(崇高)와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그리고, 숭고와 아름다움이라는 개념은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버크를 떠올리게 한다.


 자연 속에 존재하는 거대하고 숭고한 사물이 불러일으키는 가장 강력한 감정은 경악(astonishment)이다. 경악은 우리 영혼의 모든 움직임이 일시적으로 정지된 상태를 말하는데, 거기에는 약간의 공포가 수반된다. 이 경우 우리의 마음은 그 대상에 완전히 사로잡혀 다른 어떤 대상도 생각하지 못하고, 우리 마음을 사로잡은 그 대상에 대해서 이성적으로 사고할 수도 없다. 여기에서 숭고의 엄청난 힘이 생겨난다. _ 에드먼드 버크, <숭고와 아름다움의 관념의 기원에 대한 철학적 탐구> , p99


 에드먼드 버크 (Edmund Burke, 1729 ~ 1797)는 <숭고와 아름다움의 관념의 기원에 대한 철학적 탐구 A Philosophical Enquiry into the Origin of Ideas of the Sublime and Beautiful>에서 숭고와 아름다움의 개념을 분리, 분석한다. 버크에게 숭고와 아름다움은 다르다. 아름다움이 빛을 통해 경험의 결과로 우리에게 인식된 것이라면, 숭고는 빛의 부재(不在)다. 버크에 의하면 빛이 없는 어둠의 상태. 여기에서 오는 경외와 공포. 이로부터 오는 이중적인 감정 - 공포와 매혹 - 으로부터 인간은 숭고함을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수평선 너머로부터 빛을 뿜어내면서 장대한 광경을 연출하는 일출은 아름다움이라 할 수 있을까,  숭고라 할 수 있을까?


 아름다움이란 물체들의 내부에서 발견되는, 감각을 통해 인간의 마음에 기계적으로 작용하는 어떤 성질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감각적 성질이, 우리가 아름답다고 경험적으로 느끼거가, 우리 안에 사랑의 감정이나 그에 상응하는 감정을 불어일으키는 사물 속에 어떤 형태를 띠고 나타나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_ 에드먼드 버크, <숭고와 아름다움의 관념의 기원에 대한 철학적 탐구> , p180


 빛이 없는 어둠의 상태에서 느껴지는 공포의 감정이 '숭고'라면 해가 떠오르면서 드러나는 형상과 이로부터 받는 느낌은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을까? 숭고가 인식 가능한 경계 넘은 것으로부터 얻어지는 위대함이라면, 아름다움은 인식할 수 있는 즐거움일 것이다. 그렇다면, 일출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경악과 공포로부터의 해방감이라고 설명되는 것일까? 이러한 설명이 조금은 아쉽게 느껴지기에 이에 대해서는 조금 더 생각할거리로 남겨두어야겠다.


 빛이 숭고의 원인이 되려면 다른 대상들을 보여주는 빛의 원래 기능 외에도 여러 가지 다른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빛은 너무 흔하기 때문에 단순한 빛만으로는 우리 마음에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없다. 강한 인상이 없으면 어떤 사물도 숭고한 느낌을 줄 수 없다. 하지만 태양빛과 같은 경우는 우리 눈에 직접 비치게 되면 감각 기관을 압도해버리며, 그렇게 되면 빛이 매우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_ 에드먼드 버크, <숭고와 아름다움의 관념의 기원에 대한 철학적 탐구> , p134


  다른 한 편으로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Hipponensis,354 ~ 430)의 조명설(照明說, the theory of illumination)을 떠올리게 된다. 캄캄한 어둠에서 솟아나는 빛으로부터 점차 구별되는 형상(形狀)들의 모습은 인간이 사물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신적 이성(logos)에 의해서 가능하다는 그의 논리를 떠올리게 된다. 어쩌면 아우구스티누스 자신도 지중해 수평선 너머 또는 북아프리카 사막 너머의 일출에서 신적 이성에 대한 생각을 떠올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땅은 저희가 지금 느끼고 만지는 그런 땅이 아니었습니다. 보이지 않고 틀이 잡히지 않은 심연이었으며 그 위에는 빛이 없었습니다. 달리 말해서 심연 위에 어둠이 있었습니다. 저것은 전적으로 무에 가까웠으니 모든 것이 무형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존재는 하고 있어서 형상화될 가능성은 있었습니다(p469)... 보이지 않고 틀이 잡히지 않고, 심연 위로 어둠이 있었던 까닭입니다. 보이지 않고 틀이 잡히지 않은 바로 그 땅으로부터, 바로 그 무형성 無形性으로부터, 거의 무에 해당하는 것으로부터 이 모든 것들을 당신께서 만드셨습니다. 그런 사물들로 인해서 이 가변적 세계는 지속하면서도 지속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이 세계에 가변성 可變性 자체가 출현하고, 그 가변성에서 시간이 감지되고 측정되며, 형상들이 달라지고 교체하는 가운데 사물들의 변화로 시간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_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12장, p470


 경포대에서의 일출이 자연이 주는 장엄함과 아름다움이었다면, 검여 유희강((劍如 柳熙綱, 1911 ~ 1976)의 <관서악부 關西樂府>는 인간의 예술혼이 빚어낸 아름다움의 다른 면을 보여준다. 신광수(申光洙, 1712 ~ 1775)의 <관서악부> 108수 전체를 글로 형상화한 작품은 폭이 34m에 이르며 작품을 보는 순간 감상하는 이들을 압도한다. 마치 백두대간의 거대한 산줄기를 접하는 느낌을 풍기면서도, 작품 안의 글 한자 한 자가 하나의 생명체인 듯 자리잡은 모습은 일출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숭고와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평양의 모습이 신광수의 감각을 통해 그의 시(詩)로 재현되었다면, 그의 시는 검여의 서(書)로 다시 변환된다. 감각적인 18세기 조선의 풍경이 추상화되고, 다시 새롭게 해석되면서 구체적으로 형상화되는 과정 속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예술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숭고와 아름다움이 아닐까.


 <관서악부(關西樂府)>에서 '관서'는 평안도 지역을 뜻한다. '악부'는 한문학의 한 갈래이다. 이 작품이 7언 4구 형식의 108수로 이루어져있고 내용이 평안도, 특히 평양의 전모를 형상화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관서죽지사(關西竹枝詞)' 또는 '평양죽지사(平壤竹枝詞)'가 좀 더 적절한 제목일 것이다(p9)... 중국과 한국의 죽지사에는 낯선 지역의 독특함을 엿보고 싶다는 갈망이 담겨 있다. 죽지사의 탄생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문인이 민가를 윤색한다는 것은 낯선 지방을 문인이 탐색하고 경험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죽지사는 노래로 쓴 유기(遊記)'라고 할 수 있다. _ 신광수, <관서악부> 해제, p13


 이제 일출과 <관서악부>로 부터 받은 느낌을 정리해보자. 일출이 만들어낸 숭고와 아름다움. 그리고 인간의 예술혼이 만들어낸 숭고와 아름다움. 이들 모두 '숭고'와 '아름다움'이라는 단어로 표현되지만, 근원은 다르다. 영원(永遠)의 자연과 필멸(必滅)의 인간이 길이 다르듯. 개인적으로는 일출과 <관서악부>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무한(無限)'과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산술의 기본 개념 가운데는 너무 단순하고 원시적이어서 정의를 내릴 수 없는 것도 있다. 반면, 아무리 정의를 거슬러 올라가 계속하여도 여전히 같은 꼴의 정의가 계속되어 '끝이 없음'을 생각할 수도 있으며, 또 분석을 거듭하다 보면 더 이상 분석할 수 없을 정도로 단순해져서 논리적으로는 더 이상 분석적인 정의를 내릴 수 없는 말에 도달하는 경우도 생각할 수 있다... (이 같은 경우) 우리의 목적에 비추어 인간의 능력이 유한하기 때문에, 우리가 다루는 정의가 비록 영원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현재로서는 정의되지 않은 말을 기초로 삼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에 유의하면 충분하다. _ 버트런드 러셀, <수리철학의 기초> , p4


 끝도 없는 무한. 그렇지만 무한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있다. 무한대와 무한소. 끝도 없이 수가 커지는 것도 무한이지만, 0과 1 사이에도 셀 수 없는 많은 수가 있는 것처럼, 영원의 자연이 주는 감동과 필멸의 인간이 주는 감동은 끝이 없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근원은 다르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며 글을 갈무리한다...


 <관서악부> 서문에서 읽을 수 있는 주요 키워드는 세 가지이다. 하나는 평안감사라는 직책의 인물형이고 다른 하나는 평양이라는 공간의 성격이다. 이 둘은 <관서악부>를 교직하는 핵심축으로, 서문에서 신광수 자신이 <관서악부> 성격을 '평안감사가 사계절 행락하는 노래(關西伯四時行樂詞)'와 '서관지(西關志)'로 요약한 바 있다. 이는 곧 이 시의 중심축이 '평안감사'와 '평양'이며, 이것이 '행락'이라는 색채로 그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신광수는 자신의 경험과 함께 평양의 지역적 정보를 최대한 포함시키려 했고 이것은 윤두수의 <평양지>의 내용이 시에 반영되는 결과로 나타났다. _ 신광수, <관서악부> 해제,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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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3-03-03 15: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실, 일출 장면은 동영상 촬영본이 있는데 서재에 올리기가 쉽지 않네요... 파일을 올리는 방법을 알려주시면 같이 나누고 싶네요 ^^:)

2023-03-03 15: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03 15: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23-03-03 15: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글씨가 참 멋지네요.

겨울호랑이 2023-03-03 15:41   좋아요 2 | URL
제가 서예를 잘 모르지만, 문외한인 제가 봐도 글씨에서 힘이 느껴집니다... 직접 보시면 글 이상의 감동을 느끼실 수 있응리라 생각합니다!

페넬로페 2023-03-03 15: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3대가 덕을 쌓아야 일출 광경을 볼 수 있다는 말도 있습니다.
일출 사진 넘 좋아요.
숭고함 그 자체입니다.
동해여행과 일출을 이렇게 깊이 있게 쓰시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겨울호랑이 2023-03-03 15:50   좋아요 3 | URL
페넬로페님, 감사합니다. 참, 지금 막 일출 동영상을 이웃님 조언으로 올렸습니다. 같이 보시면 사진과는 또 다른 느낌을 받으실 듯 합니다! ^^:)

Falstaff 2023-03-03 17: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두번째 사진이 관훈청정, 관동의 햇무리가 맑고 깨끗하다.... 뭐 이런 뜻인가요? 아휴, 저 글씨 체는 읽기가 쉽지 않아서 말입죠. 1965년 을사년 한가을에 쓴 글씨인 거 같은데.... 제 집에 걸려있는 이백의 시보다 천배, 만배, 십만배 잘 썼네요!!!!

2023-03-03 18: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Falstaff 2023-03-03 19:13   좋아요 1 | URL
ㅎㅎㅎ 비밀글 아니어도 괜찮은데요. 전서체 비슷한 글씨를 요즘 누가 알아봅니까요. 저는 그래도 50점 받았잖습니까. ㅋㅋㅋㅋㅋ 배려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무량청정. 청정하기 무량하다, 아휴, 없을 무는 그렇다 쳐도 헤아릴 량 자를 저렇게 쓸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겨울호랑이 2023-03-03 19:17   좋아요 1 | URL
전서뿐 아니라 초서도 해독하기 참 힘든 것 갈아요. 글자를 온전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않고는 오르기 힘든 것이 서도의 길인듯 합니다 ^^:)

거리의화가 2023-03-03 17: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덕분에 장관인 일출과 멋진 페이퍼 글까지 잘 감상했습니다. 특히 서예 감동이에요. 한때는 서예박물관도 가서 전시도 보고 했었는데 한동안은 그러질 못했네요. 필력이 굉장히 힘있고 멋드러집니다.

겨울호랑이 2023-03-03 18:40   좋아요 1 | URL
거리의화가님 감사합니다. 초보자가 보기에도 다른 힘이 느껴지는 것을 보면 참 대단한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

바람돌이 2023-03-04 17: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장엄한 일출영상 잘 보았습니다. 저는 아침잠이 많아서 사실 일출을 잘 못봐요. 그래서 늘 일몰만.... ㅎㅎ
자연이 주는 숭고미와 인간의 창작품인 예술의 숭고미를 연결한 글도 흥미있게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23-03-04 22:31   좋아요 1 | URL
바람돌이님 감사합니다. 자연이 주는 웅장함을 사진과 동영상에 담기에는 너무도 부족했고, 예술혼을 표현하기에는 제 글그릇이 많이 좁다는 것을 페이퍼 준비하면서 깊이 느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미롭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주말 저녁 되세요! ^^:)
 

 

 말레이반도 끝단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이사의 수마트라섬 사이에 있는 좁고 긴 수역(水域)을 가리키며, 동쪽의 남중국해(태평양)와 서쪽의 안다만해(인도양)을 연결한다. 말라카 해협의 길이는 약 800km, 최대 폭은 300km이며, 최소 폭은 50km다. 연안과 해협 중앙부에서는 해류가 빨라 항해에 주의가 요구된다. 이곳은 오래전부터 해상 실크로드 상의 요로였다. 인도양과 남중국해의 계절풍을 이용한 항해술이 발달하면서 말라카 해협은 중국에서 동남아시아를 거쳐 인도양과 페르시아만까지 이르는 해상교역로의 중요한 통로가 되었다. _ 정수일, <해상실크로드 도록> , p182



[사진] Jacques-Nicolas Bellin Map of the Straits of Malacca,(1755), 출처 : https://joyofmuseums.com/museums/asia-museums/singapore-museums/national-museum-of-singapore/jacques-nicolas-bellin-map-of-the-straits-of-malacca/


 파라하나 슈하이미 (Farahana Shuhaimi)의 <말라카 Kesultanan Melayu Melaka>와 로저 크롤리 (Roger Crowley)의 <대항해시대 최초의 정복자들 Conquerors: How Portugal Forged the First Global Empire>은 16세기 초반 포르투갈의 말라카 해협 정복이라는 사건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 책들이다. 각각 이슬람의 말라카 왕국과 기독교의 포르투갈 왕국을 주제로 하는 이들은. 1511년 포르투갈의 알부케르크(Afonso de Albuquerque, 1453 ~ 1515)에 의한 말라카 함락이라는 교점을 갖는다. 15세기 말라카 왕국의 번영과 포르투갈에 의한 멸망. 이번 페이퍼에서는 그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포르투갈인들이 나타나기 이전까지 이곳은 마자파히트(Majapahit) 왕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 <말라카>에서 저자는 이슬람의 평화적 전파를 강조하면서, 이에 대해 폭력적인 기독교 진출을 대조시킨다. 이는 말라카 해협의 지리적 특성에 힘입은 바가 클 것이다. 

 

 말레이 세계의 주변부에 머물러 있던 말레이반도는 15세기 초 이슬람의 유입과 함께 멀라까 왕국이 성립하면서 비로소 이 지역의 새로운 중심 세력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_ 소병국, <동남아시아사> , p79


 동남아의 이슬람 전파는 주로 말라카로부터 조직된 비폭력적 활동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그들의 영향력과 무역에 있어서의 물질적 우위는 주변국들로 하여금 점차적으로 술탄국의 이슬람을 채택하고, 국교(國敎)로 삼도록 하였다. 이 문제에 있어서 말라카는 그들의 승리를 종교적 강제 형태로 몰아가지 않는 매우 모범적인 태도를 보였다. _ 파라하나 슈하이미, <말라카> , p122/123


 말레이 반도 내륙의 습지는 농업에 적합하지 않았으며, 열대우림의 해충들과 맹수들은 살기에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에 말라카 해협의 주민들은 어업 외에 삶을 영위할 길이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들에게 이슬람의 전파와 함께 이슬람 경제권으로의 편입이라는 제안은 이들에게 매우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시골 어촌 마을에서 새로운 경제 허브(hub)로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이러한 상황에서 이슬람교의 전파가 강제로 이루어졌다면 그 편이 더 이상했으리라. 여기에서도 우리는 정치와 경제는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한 몸임을 확인할 수 있다.


 말라카는 전적으로 교역을 통해 생계를 이어가는 도시였다. 도시 뒤쪽에는 말라리아를 옮기는 열대림이 우거진 내륙 지역이 있었는데 그곳은 곧 호랑이와 악어의 서식지이기도 했다. 기후는 무더웠고, 습한 열기가 갑옷을 입은 사람들에게서 활력을 빼앗았다. 항구에는 배가 떼릴 지어 모여 있었다. _ 로저 크롤리, <대항해시대 최초의 정복자들> , p234/306


 말라카의 농업은 말레이 반도의 다른 지역에 비하여 활발하지 않았다. 약간의 불이익은 말라카 사람들이 극복할 수 있는 것으로서, 도시 외곽 지역은 늪지대에 있었지만, 말라카의 도시는 언덕 위에 있었다. 그 도시는 원래 강어귀에 있는 단순한 지역이었으며, 주요 일자리는 말라카강을 따라 전개된 어업밖에 없었다. _ 파라하나 슈하이미, <말라카> , p12/123


  파라하나 슈하이미의 <말라카>는 15세기부터 16세기 초에 이르는 말라카의 번영을 잘 보여준다. 향신료 무역의 중심지로서 금, 커피, 육두구, 정향 등의 물품이 거래되며 동으로는 중국, 일본과 서로는 아라비아 반도와 이집트 상인들이 출입하는 항구. 이슬람 경제권으로의 편입은 이들을 해상실크로드의 중심지로 만들었고, 말라카로 물산과 화폐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이곳은 세계적인 물류 중심지가 되었다. 이로 인해 말라카는 번영했지만, 새로운 세력이 등장하면서 이는 몰락의 원인이 되었다. 향신료 무역을 위해 희망봉을 돌아 아프리카, 인도를 거쳐 말라카에 포르투갈이 손을 뻗치면서 말라카의 비극은 시작되었다.


 말라카는 향신료 무역의 중심지였다. 이슬람 무역상인들에 대한 이들 상품의 공급은 실제로 유럽인들, 특히 포르투갈인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향신료 무역은 포르투갈이 필사적으로 마카오를 차지하려고 했던 첫 번째 이유다. 기독교 복음 전파는 부차적인 이유였을 뿐이다. 그 당시 향신료는 음식의 맛을 좋게 하고, 음식을 보존하기 위해 모든 사람들에게 중요하였다. 아랍상인들의 독점으로 인한 이 카르텔을 깨트리기 위해 서구 무역상들은 불타는 시도로 격랑의 바다에 뛰어들었다.  _ 파라하나 슈하이미, <말라카> , p55/123


 말라카의 금가루는 미낭카바우(Minangkabau)와 파항에서 생산되었다. 정향은 몰루카(Moluccas)에서 나왔다. 커피, 육두구(nutmeg), 그리고 백단(sandwood)은 각각 보루네오, 반다, 그리고 티모르에서 생산되었다. 그와 같은 무역상품 공급은 동양인들과 서양인들의 무역수요를 충족시켜 주었다. 말라카는 무역과 방어의 측면에서 모두 전략적인 위치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식량이 부족한 것이 한 가지 문제였다. _ 파라하나 슈하이미, <말라카> , p57/123


 알부케르크는 희망봉을 돌아 동아프리카와 서인도, 동남아시아를 선(線)으로 연결하는 포르투갈 제국을 구상한다. 이는 강력한 대포와 범선을 보유한 인구가 적은 포르투갈이 제국을 이루기 위한 최선의 방안이었으며, 말라카 해협의 정복은 아시아와의 무역을 독점을 의미했기에 반드시 이뤄내야 할 과제였다.


 알부케르크는 열정적으로 연설을 했다. 그는 인도양 전반에 걸친 전략적 계획을 간략히 요약해 설명했다. 홍해에서 무슬림 교역을 옥죄는 것이 궁극적 목표라면, "온갖 풍요로운 상품과 교역의 중심지이자 종점"인 말라카는 그 최종 목표와 연관된 중대한 지점이었다. 그곳은 "온갖 향신료, 약품, 그리고 온 세상 부의 원천이다... 또 후추를 캘리컷에서 떠나는 경로보다 더 많이 메카로 보내는 경로이기도 하다." 말라카 점령은 카이로, 알렉산드리아, 베네치아의 목을 조르고, 더 나아가 이슬람교의 전파를 가로막을 수 있었다. _ 로저 크롤리, <대항해시대 최초의 정복자들> , p236/306 


 처음부터 알부케르케는 광대한 영토를 정복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닫고 있었다. 해군 기지의 역하를 하는 한편 대포로 무장한 함선에 의해 바다 쪽에서 방어가 가능한 전략적 거점을 많이 차지함으로써만 인도양을 지배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가 총독으로 재임하는 동안 고아와 말라카, 호르무즈가 각각 1510년, 1511년, 1515년에 정복되었고, 아시아에서 포르투갈의 우위를 확립하는 본거지가 되었다. _ 카를로 M. 치폴라, <대포, 범선, 제국>, p170


 이렇게 시작된 말라카-포르투갈의 전쟁은 카를로 M. 치폴라 (Carlo Maria Cipolla, 1922 ~ 2000)가 <대포, 범선, 제국 Guns, Sails and Empires: Technological Innovation and the Early Phases of European>에서 주장한 서구의 우위를 확실하게 보여준다. 대포가 장착된 범선과 이를 활용하는 유기적인 전술의 활용을 통해 알부케르크는 말라카의 중심 다리를 점령하면서 1511년 말라카는 포르투갈에 의해 멸망하게 된다.


 술탄들은 육중한 대포도 필요하였는데, 이를 이용해서 장거리에서 적의 대열을 분산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술탄들은 말라카를 위해 그런 대포를 구입하는 데 찬성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가 늦게 대두되었기 때문에, 말라카는 포르투갈의 공격을 버텨내기에는 장비가 덜 갖춰진 상태였다. 그래서 그들은 침입하는 함대들을 파괴할 수 없었고, 적들은 도시가 함락될 때까지 반족해서 방어선을 공략할 수 있었다. _ 파라하나 슈하이미, <말라카> , p76/123


 유럽의 팽창 과정을 기술할 때 군비에서 유럽의 우월성은 일반적으로 정적인 현상처럼 묘사된다. 그러나 사실, 15세기 첫 팽창의 물결 이후 유럽의 군비 생산 능력은 질적인 측면에서나 양적인 측면에서나 극적으로 증가했다. 이로 인해 비유럽권의 사람들은 유럽의 팽창에 적절히 대응하기가 극도로 어려웠을 뿐 아니라, 영토 방어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하게 된다. 특히 대포 제작에서 유럽의 진보는 전함의 건조와 해전에서도 마찬가지로 새로운 전략과 기술의 주목할 만한 발전을 동반했기 때문이다. _ 카를로 M. 치폴라, <대포, 범선, 제국>, p85


 16세기 대부분의 기록들은 말라카의 해군에 강력한 리더십이 없었다고 묘사하고 있다. 이 한 가지 약점으로 인해 말라카는 자신의 항구에서 그들의 강력한 자산을 사용하지 못하였다. 일부 기록은 두 명의 해군 제독이 술탄 때문에 불명예스럽게 물러났을 개연성을 보여 주었다. 그래서 항 투아 제독이 수립한 공포 요소는 포르투갈인들이 공격하였을 때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_ 파라하나 슈하이미, <말라카> , p83/123


 이슬람의 패배는 해전에서 시대에 뒤떨어진 기술과 전략에서 주로 기인한다. 자신들의 전통적인 적인 베네치아와 몰타기사단 세력과 마찬가지로 오스만 투르크는 대서양 세력이 거둔 해상 혁명의 함의와 중요성을 깨닫지 못했다. 그들은 근대가 이미 시작되었얼 때도 여전히 "중세"에 머물러 있었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인력에 크게 의존했다. 충각으로 들이박고 적선에 올라타 싸우는 구식 전술을 고수했고 전력의 핵심은 언제나 갤리선이었다. _ 카를로 M. 치폴라, <대포, 범선, 제국>, p121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말라카의 점령은 알부케르크에게 절반의 승리만을 가져다 준다. 알부케르크는 '호르무즈-고아-말라카'를 잇는 선의 제국을 만드는데 성공하지만,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의 유럽 대륙 외 지역에 대한 분할에 관한 조약 - 토르데시야스 조약( Tratado de Tordesilhas)의 헛점을 파고든 에스파냐와 이를 위해 기꺼이 조국을 등진 마젤란(Ferdinand Magellan, 1480 ~ 1521)의 활약으로 필리핀이 에스파냐 식민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선의 제국이었던 포르투갈에 비해 아메리카 대륙에서 아시엔다(Hacienda)를 활용한 플랜테이션 제도를 운영했던 에스파냐는 무역 뿐 아니라 농업양식을 변화시키면서 결과적으로 아시아 무역에서 우위를 점하면서 포르투갈의 입지는 점차 좁아지다가 결국 17세기에는 네덜란드에 말라카 영유권을 넘겨주면서 포르투갈 제국은 역사 속으로 퇴장하기에 이른다.


 말라카는 1511년 8월 24일 정오에 함락되었다. 적은 성으로 들어와서 보이는 말레이인들을 모두 살육하였다. 강한 충동으로 그들은 왕궁을 평지로 만들어 버렸으며, 이슬람사원을 불태워 버렸고, 묘지에서 모든 묘지석을 뽑아 버렸다. 도시의 이름은 에이 파모사로 바뀌었고, 그 폐허의 잔해는 재건에 사용되었다. _ 파라하나 슈하이미, <말라카> , p86/123


 불행하게도 이런 대담한 확장 정책 - 알부케르크의 제국 건설 정책-은 포르투갈에 예측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왔다. 말라카 공격의 부분적 목적은 극동에서 스페인의 야욕을 근절시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목적과는 정반대로, 스페인은 그 사건 덕분에 극동 지역으로 나아갈 수 있는 지도와 정보를 얻었다. _ 로저 크롤리, <대항해시대 최초의 정복자들> , p243/306


 포르투갈은 인도 서부 해안에 위치한 고아를 점령해 아시아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지만, 향료를 안전하게 확보/독점하려면 인도 너머까지 진출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목표가 된 곳이 말레이반도의 멀라까였다. 1511년 포르투갈령 고아의 총독인 아폰수 알부케르크(재임 1453~1515)는 군함 19척과 군인 1,400명을 이끌고 멀라까를 점령하는데 성공했다. 멀라까를 점령한 포르투갈은 곧 북부 수마뜨라의 아쩨, 그리고 남부 말레이반도의 조호를 상대로, 멀라까해협에 대한 치열한 제해권 경쟁에 빠져들었다. 그 와중에 국제무역항으로서 포르투갈령 멀라까의 위상은 점차 약화했다. 멀라까는 단지 포르투갈 군인, 상인, 관료, 선교사 활동의 중심지가 되어 마치 이슬람 세계 속에 고립된 섬처럼 되어갔다. _ 소병국, <동남아시아사> , p134


 15세기 말라카 왕국의 번영과 쇠퇴를 다룬 이 시기의 역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주는가. 먼저 우리는이슬람의 비폭력 확산과 기독교의 무력 전파를 통해 오늘날 이들 지역의 이슬람화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 알부케르크는 말라카 전쟁을 십자군전쟁으로 규정지으며 전쟁을 독려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말라카에 거주했던 말레이시아인들에게 이슬람 문화권은 하나의 경제블록(bloc)으로 물고기를 잡으며 하루하루를 살던 이들에게 번영을 안겨주었기 때문에 마음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반면, 십자가를 들고 온 포르투갈인들은 기존의 도시들을 파괴하고 이를 재료 삼아 요새를 건축하고, 제1차 십자군 당시 행해진 예루살렘 학살 때처럼 많은 원주민들을 살해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동남아시아들이 과연 어느 종교를 마음으로 받아들였을까 하는가는 너무도 명확하다. 제1차 세계대전까지 대부분 지역이 서구 열강의 지배아래 있었지만 기독교화하지 못했던 부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동남아시아 전선에서 크게 확장할 수 있었던 것은 어느 정도 이러한 과거와 연관되지 않을까.


 또한, 우리는 포르투갈이 자본주의 독점이익에만 관심을 갖고 무리하게 말라카를 점령하는데 성공했지만, 이로 인해 빚어진 엄청난 파괴와 약탈은 포르투갈에게 승자의 저주가 되었고, 결국 제국주의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었음도 확인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를 과거의 문제로만 생각할 수 있을까. 이 문제의 연장선상에서 '소비중심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도 분명 여기에 담겨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말라카 무역의 품목 중 하나이기도 한 <육두구의 저주> 리뷰에서 별도로 다루기로 하자.


 마지막으로, 우리는 말라카의 역사 속에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중국 화교와 말레이시아인들의 갈등 문제를 읽을 수 있다. <말라카>의 저자 파라하나 슈하이미는 말라카를 배신한 중국인들이 없었다면, 포르투갈에 의한 점령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여러가지 경제적 혜택을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포르투갈과 손잡은 중국상인들에 대한 저자의 시선은 결코 곱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시선은 결코 말레이시아인 저자 개인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었기에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로부터 독립할 수 밖에 없었던 배경이 되었던 것은 아닐까. 분명 우리에게 동남아시아 또는 아시안(ASIAN)은 낯선 지역이다. 중요하지만 낯선 동남아시아 중 한 지역인 말라카의 역사속에서 우리와 관련된 여러 현대 사회 문제를 발견하게 된다. 다소 생소하지만 우리가 말라카와 동남아시아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가를 생각하며 글을 갈무리한다...


 말라카 해협은 14세기 후반 마자파히트(Majapahit) 왕국의 판도에 들어가면서 세상에 알려진 이래 15세기 초 중국 명나라 정화 선단이 이곳을 다녀왔다. 1511년 포르투갈이 점령한 데 이어 서구 열강들의 각축전끝에 1641년에는 네덜란드가, 1824년에는 영국이 각각 점령하였다.  _ 정수일, <해상실크로드 도록>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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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3-02-06 09: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중간에 포함된 소병국의 동남아시아사는 저도 사두었는데 제대로 읽지는 못했거든요. 올해 동남아시아사 읽어볼 요량인데 많은 도움이 될 페이퍼네요. 자극 받고 갑니다^^

겨울호랑이 2023-02-06 09:33   좋아요 1 | URL
우리나라에서 동남아시아사와 관련된 책을 찾기가 참 어려운데, 소병국의 동남아시아사는 그런 면에서 큰 흐름을 보여주는 좋은 책이라 생각합니다. 벌써 거리의화가님께서 많은 분야의 책을 다양하게 읽고 계신데, 동남아시아사까지 손대신다면 정말 많은 것을 이루는 한 해가 되실 듯합니다. 거리의 화가님, 좋은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

그레이스 2023-02-06 09: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해적이 출몰하던 곳, 한때 해상무역의 요충지 이렇게 알고 있었어요
30개의 도시로 보는 세계사에서 간략하게 정리했었어요
잘 읽고 갑니다

겨울호랑이 2023-02-06 10:14   좋아요 1 | URL
아, 30개의 도시로 보는 세계사에서도 말라카가 나오는군요! 그레이스님 덕분에 좋은 책을 한 권 알아갑니다. 감사합니다. 그레이스님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

서니데이 2023-03-13 17: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23-03-13 20:19   좋아요 1 | URL
^^:) 항상 이웃을 배려해주시는 서니데이님 덕분에 꽃샘추위을 잠시 잊네요. 감사합니다. 평안한 밤 되세요!

얄라알라 2023-03-19 03: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축하드립니다^^

육두구의 저주...말라카....연결 고리 엮어 기억해두어야겠습니다.^^

겨울호랑이 2023-03-19 08:32   좋아요 0 | URL
얄라얄라님 항상 감사합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셨네요. 봄바람이 차갑게 느껴지지만, 행복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
 

그런 여러 얼굴의 니체 가운데 그동안 우리가 만난 니체는 대체로 온건한 표정의 니체였다. 진리 문제에 몰두하는 학자 같은 니체였다. 신의 죽음이라는 문제를 안고 대낮에 램프를 들고 배회하는 광인 같은 니체라고 해도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기보다는 약간 이상하게 보이지만 알고 보면 생각이 깊은 니체였다. 제2차 세계대전 종결 뒤 영어권에 니체를 알렸던 월터 카우프만이 그런 니체상을 유포한 사람 가운데 대표자였다.

프랑스 철학자들이 발견한 니체는 ‘의심의 대가’다. 이 철학자들의 묘사 안에서 니체는 서양 형이상학을 해체하고 도덕의 토대를 무너뜨리고 진리의 폭정을 허물어뜨린 위대한 반형이상학자로 나타난다. 특히 들뢰즈의 해석 속에서 니체는 ‘다름’을 창출하고 ‘다름’을 향유하는 차이의 철학자, 긍정과 기쁨만을 아는 밝고 환한 철학자로 자신을 드러낸다. 이들이 주목한 니체는 싸우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그 싸움은 철학자가 철학의 역사를 대상으로 벌이는 지적인 싸움을 넘어서지 않는다.

그러나 니체의 정복 대상은 인식에만 머물지 않는다. 칸트의 상상력 안에서 시작한 모험은 그 인식의 바다를 벗어나 삶 그 자체의 전장으로 나아간다. 니체의 분신 차라투스트라는 그의 제자들에게 삶의 전쟁터에 선 전사가 되라고 명령한다. 그것은 니체가 니체 자신에게 내리는 명령이다.

니체는 감추지 않고 강자의 승리, 강자의 지배를 옹호한다. 그는 연민과 같은, 약자를 이롭게 하는 감정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단언한다. 민주주의·사회주의 같은 이념도 부정한다. 약자를 이롭게 하고 약자의 삶을 연장하는 데 도움이 되는 어떤 신념도 가치도 모두 니힐리즘(허무주의)에 봉사하는 것이라고 규정해 단호하게 거부한다. 이런 위험하고 잔인한 측면을 외면하고서는 니체 사상은 제대로 이해될 수 없다.

니체가 고통을 긍정한 것은 니체 삶이 고통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끝없는 질병의 침탈과 회복의 반복이 니체의 일생이었다. 견딜 수 없는 고통 속에서 니체는 차라리 죽음을 달라고 외치기조차 했다. 그러나 그 고통이 지나고 나면 그는 다시 새로운 삶을 의욕했고, 창조의 의지로 불탔다. 니체에게 삶은 끝도 없는 고통의 연속이었지만 삶은 또 그 고통을 넘어 그 자체로 성스러운 것이었다.

니체의 언어로 말하면, 테세우스는 권력의지이고, 아리아드네의 실은 진리 의지다. 권력의지가 진리 의지의 힘을 빌려 괴물의 실체와 만날 수 있을지, 한번 용기를 내 따라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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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리뷰] <역사의 종말> : 자유민주주의, ‘패기‘를 통해 불멸의 정체가 될 것인가 https://blog.aladin.co.kr/winter_tiger/14318713 에 글을 남겨주신 김민우님의 글에 답변입니다. 글을 정리하던 중 내용이 길어져 별도의 페이퍼로 정리해 봅니다. 아래는 김민우님께서 남겨주신 글입니다. 


김민우 : 네 하비 맨스필드는 thumos를 즐겨 연구한 학자입니다. 그런데 그가 정의하는 thumos는 동물이 위협에 직면하여 털을 곤두세우듯이 인간도 자기의 것(정체성, 소유, 명예)에 대한 위협에 분통을 터뜨리는 정념을 지칭합니다. 그 분노가 정치의 출발점이라고 맨스필드는 말하는데, 어떤 도덕적 기준을 가지지는 않습니다. 정의롭지 못한 것을 본 것에 대한 의분은 아님 셈이죠. 후쿠야마도 크게 다르지 않을텐데, 그래서 맹자의 수오지심과의 대응은 말그대로 엉뚱한 생각이라는 의견입니다(아 저는 맨스필드를 개인적으로 되게 좋아해서 그의 글을 즐겨 읽었습니다 ㅋㅋ)


 제가 이해한 바로 김민우님께서는 <역사의 종말>에 언급된 '패기' thumos(thymos)와 관련하여 1) 프랜시스 후쿠야마와 학문적으로 같은 위치에 서 있는 하비 맨스필드의 정념에 대한 정의 - 자기의 것에 대한 위협에 분통을 터뜨리는 정념 -와 2) 이로부터 tumos는 분노이고, 도덕적 기준이 아니다 라는 말씀을 주신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3) 맹자의 수오지심(羞惡之心 : 의롭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착하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과 thumos의 연결이 엉뚱하다고 지적하셨습니다. 이제 김민우님께서 지적하신 이들 세 부분에 대해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 tumos는 자기의 것에 대한 위협에 분통을 터뜨리는 정념인가?


 사실 용어에 대한 정의는 학자마다 다르기 때문에, 직접적인 비교는 매우 조심스러워집니다. 대표적으로 헤겔의 변증법과 마르크스의 변증법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후쿠야마의 'thymos'와 맨스필드의 'thumos'가 같은 것인가 하는 부분은 단정하기 어렵다 생각합니다. <역사의 종말>에는 맨스필드에 대한 언급이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신, 후쿠야마는 같은 책에서 'thymos'에 대한 최초의 기원을 플라톤에서 찾고 있으며, 플라톤은 <국가 Politeia>에서 이성, 욕구, 격정(thymos)를 각각 혼을 구성하는 3요소로서 설정합니다. <역사의 종말>에서 맨스필드가 언급되지 않았고 플라톤이 설명되었다면, 사상의 원류인 플라톤을 따르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라 생각되어 이하 논의에서는 플라톤을 인용하겠습니다. thymos를 처음 사용한 플라톤에 의하면 이는 감정에 가까운 정념과는 분명 구분되는 혼을 구성하는 또 다른 부분입니다.


439d 혼이 헤아리게(추론하게) 되는 부분(면)을 혼의 헤아리는(추론적, 이성적 : logistikon) 부분이라 부르는 반면, 그것으로써 혼이 사랑하고 배고파하며 목말라하거나 또는 그 밖의 다른 욕구들과 관련해서 흥분상태에 있게 되는 부분은, 어떤 만족이나 쾌락들과 한편인 것으로서, 비이성적이며(alogiston)이며 욕구적인(epithymetikon) 부분이라 부른다 해도, 결코 불합리하지 않을 걸세... 439e 그러면 이들 두 종류가 우리의 혼 안에 있는 것들로서 구별된 걸로 해두게나. 그러나 격정(thymos)의 부분이며, 그것으로써 우리가 격하게도 되는 부분은 제3의 것인가, 아니면 저들 둘 중의 어느 하나와 같은 성질의 것인가" 내가 물었네. _ 플라톤, <국가 제4권> 中


 플라톤은 <국가>에서 격정(thymos)이 '이성'과 '욕구'와 분리되는 별도의 요소이며, 때로는 이성과 때로는 욕구와 결합하여 인간의 여러 행동을 끌어내는 것으로 서술합니다. 격정이 이성과 결합할 수 있다는 <국가>의 내용은 격정을 단순히 분통과 같은 감정의 폭발로만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 부분- thymos와 이성과 결합 - 에서 사단(四端)을 이(理)로 봤을 때의 기개를 수오지심(羞惡之心)의 발로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떠올렸습니다.


440a 이는 다른 경우에도 종종 목격되는 게 아니겠는가? 가령 욕구가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헤아림(logismos)을 거스르도록 강요할 때, 그 사람은 자기 자신을 꾸짖으면서, 자기 안에서 그런 강요를 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 분개하는데, 이런 사람의 격정(기개)이, 마치 분쟁하고 있는 두 당파 사이에서처럼, 이성(logos)과 한편이 되는 경우 말일세... 440c 그러나 어떤 사람이 자신이 올바르지 못한 짓을 당했다고 생각할 때는 어떻겠는가? 이 경우에는 그의 격정이 끓어오르며 사나워질 것이고, 올바르다고 생각되는 것과 한편이 되어 싸우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마침내 하고자 하는 바를 성취하거나, 죽기까지는, 또는, 마치 개가 목자(牧者)에 의해서 진정되듯, 자신에게 있는 이성(logos)의 불러들임에 의해서 진정되기 전까지는 고귀한 행동을 중단하는 일이 없지 않겠는가?_ 플라톤, <국가 제4권> 中


2) thymos는 도덕적 기준을 가지지 않는가?


 이에 대해서는 플라톤 철학의 전문가 숀 세이어즈의 해설을 그대로 옮기는 것으로 대신하겠습니다. '자아의 세 부분들에 관한 이론과 심리적 조화로서 정의에 관한 설명이 플라톤의 도덕사상의 주요 개념들이다' . 숀 세이어즈에 따르면 thymos는 도덕적 기준이며 혼을 구성하는 세 요소 - 이성, 욕구, 기개 - 중 기개는 이성을 도와 욕구를 통제하는 보조적 역할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플라톤의 <국가>에서 기개는 다른 욕구에 비해 크게 중요한 요소가 아닙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후대의 홉스와 로크에 이르러서는 더 강해져 이성과 욕구만이 강조되었음을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에서 지적하고, 플라톤의 '패기'와 헤겔의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를 끌어내서 역사를 움직이는 힘으로 격상시키고 있습니다. 맨스필드의 경우는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만...

 

 기개(또는 좀 더 정확하게 자아의 기백이 있는 부분)는 자아의 수많은 단호하고 능동적인 측면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것은 인격의 야망과 경쟁심을 유발하는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그것은 또한 정의로운 분노와 의분을 이끄는 자아의 부분이다. 플라톤의 영혼론에서 기개는 자아의 다른 두 구분들보다 비교적 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또한 현대 심리학적 연구에서도 미소한 반향을 가질 뿐이다. 플라톤은 사실상 자아에 대한 이중적인 설명을 제시하고 있으며 그 설명 속에 기개는 욕구들을 통제하는 전투 속에 이성의 단순한 보조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이론이 몇몇 정당화를 통해 제시되었다(p141)... 플라톤은 자아의 다양한 부분들 간에 존재하는 본성적인 불평등과 위계질서를 가정하고 있다. 이성은 '좀 더 고상하고' 또한 '좀 더 훌륭한' 부분이며 기개의 도움을 통해서 욕구들을 반드시 통제해야만 한다. 인격의 '좀 더 낮은' 부분이 '좀 더 고상하고' 또한 '좀 더 훌륭한' 부분에 의해서 통제될 때 사람들은 자기 훈육의 덕을 보여 주게 된다(p143)... 자아의 세 부분들에 관한 이론과 심리적 조화로서 정의에 관한 설명이 플라톤의 도덕사상의 주요 개념들이다. _ 숀 세이어즈, <숀 세이어즈의 플라톤 <국가> 해설>, p144 


 3) 수오지심(羞惡之心)과 thumos의 연결은 엉뚱하기만 한 것인가?


 이상에서 thymos는 혼의 구성요소이며, 정념과는 다른 도덕기준임을 알게 됩니다. 또한,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에서 '이성-욕구-기개'라는 구도에서 '기개'로부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합니다. 이 구도는 플라톤의 <국가>에서 말한 혼의 세 부분과 관련한 논의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 같은 측면에서 저는 이성으로서의 이(理), 욕구로서의 기(氣) 그리고 이들과 결합하는 기개를 떠올렸던 것입니다. 이러한 연상이 다소 엉뚱한 것은 사실입니다만, 전혀 근거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리뷰에서 언급한 이러한 제 생각, 추측이 정확하게 플라톤, 맹자의 사상을 짚었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수오지심=패기/기개'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대신 인간의 본성을 크게 이성과 욕구로 보고 이들로부터 논의를 진전시킨 동서양의 철학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세부적으로, 플라톤(BCE 428 ~ 348)과 맹자(BCE 372 ~ 289)라는 거의 같은 시기를 살았던 동서양의 철학자들이 이성과 욕구에 대해 가졌던 생각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화두로 던져보고자 했던 것입니다. 물론 이들의 사상에 사용된 용어의 정의가 정확하게 일치되지 않았고, 이들 사상이 철학자 자신의 생각이기보다 후대의 해석이 반영된 부분도 적지 않습니다만.


 이상으로 <역사의 종말> 리뷰 하단의 판단 근거를 말씀드렸습니다. 다만, 이와는 별도로 개인 서재에 올린 글에 대해 엉뚱하다고 지적하신 부분은 위의 논의와는 또 다른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개인 서재는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올릴 수 있는 공간이고, 타인에게 상처와 같은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이러한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생각의 근거와 관계없이 개인의 서재에서 이러한 생각의 월경(越境)이 크게 지적받을 부분은 아니지 않나 여겨집니다. 물론, 학문의 정합성을 요구하는 학술지에서 이러한 상상은 곤란하겠지만요. 리뷰에는 다 올리지 못했지만, '이-사단'을 연결시키고 '기개-수오지심'을 연결시키면서 '과연 사단(四端)을 이(理)로 연결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봉과 퇴계의 오랜 논쟁을 먼저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내용을 긴 답변 끝에 참고로 올려봅니다.


 너무 글이 길어졌습니다. 김민우님 덕분에 글을 쓰면서 조금 더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고, 덕분에 정치사상가 하비 맨스필드를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그의 사상 특히 thumos에 대해  플라톤, 후쿠야마의 그것과 비교해서 정리해 보겠습니다.  김민우님, 좋은 하루 되세요!



 니체의 말처럼, 하나의 민족을 선과 악의 개념을 공유하는 도덕적인 공동체로서 정의한다면 민족과 민족이 만들어낸 문화는 혼 속의 '패기' 부분에 기원을 두고 있음이 분명해진다...  인정받기 원하는 욕망은 종교와 민족주의라는 매우 강력한 두 가지 정열의 심리적 기원이기도 하다. 종교와 민족주의는 '패기'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이 두 정열에는 커다란 힘이 주어져 있다. _ 프랜시스 후쿠야마, <역사의 종말> , p320


 맹자가 말하는 인간은 그 애초의 출발점 자체가 생리적 인과체계가 아니라, 선의지로 충만되어 있는 도덕적 인간 Moral Man이다. 어린애가 우물로 기어들어가는 것을 보고 아무 전제 없이 출척怵惕하는 심사가 심사가 생겨 반사적으로 달려가는 것은, 이미 기나긴 역사를 통하여 도덕적으로 단련되어온 인간이다. 유자입정을 바라보는 인간은 사회화된 인간이며 언어화된 인간이며 역사회된 인간이며 도덕화된 인간이다. 다시 말해서 유자입정의 순간에 비공리적, 무전제적 선의지가 발동하지 않는 인간은 인간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無惻隱之心 非人也). _ 도올 김용옥, <맹자, 사람의 길(상)> <공손추 상>, p256


 "측은지심 惻隱之心'은 '측은함'이라는 감정을 노출시키는 심적 현상일 뿐이다. 측은지심이 곧 인 仁이라는 덕 德은 아니다. 그것은 인간에게 내재화되어 있는 덕의 '단 端, tip'일 뿐이다. 따라서 '단 端'은 인이라는 덕이 표현된 심적인 현상이므로,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감정에 속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단 四端'은 기 氣가 아니라 리 理라고 말하는 후대의 논설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_ 도올 김용옥, <맹자, 사람의 길(상)> <공손추 상>,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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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man 2023-02-03 10: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thumos에ㅜ대해 더 자세히 언급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플라톤의 thumos는 계속 자료를 찾고 있었는데, 덕분에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제 비아냥거림에 이렇게 생산적이고 친절하고도 품위있는 답변을 남겨주신 겨울호랑이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비 맨스필드의 thumos에 대해서는 국내 번역된 글ㅇ 중에는 제대로 다룬 것이 없을 겁니다. 저도 How to Understand Politics 이라는 에세이를 읽고 알게 된 것인데, 저도 thumos와 관련해 그의 의미 있는 언급을 인용하는 게 겨울호랑이님의 수고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것 같아 옮겨놓겠습니다.

Redman 2023-02-03 10:46   좋아요 1 | URL

기개는 본성상 복잡하다. 때때로 기백라고 번역되기도 하는데, 이것은 개인의 고유한 자아를 좋음과 연결시키는 영혼의 한 부분을 가리킨다. 기개는 동물의 신체를 지닌 인간이 고유의 특색을 지키려는 맹렬한 방어를 드러내며, 실제적 혹은 잠재적 위협에 직면하여 동물이 발끈하는 것을 의미한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일 경우 공격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변화를 향한 갈망보다는 차라리 경계의 반응에 가깝다. 동물이 자신을 보존하기 위해 전면적으로 공격할 경우 이성은 선을 넘는다. 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 누군가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은 기개의 역설이며, 명백한 모순을 보여준다. 인간 동물로서, 당신은 자신의 삶을 비난할 수 있으며 사과하고 수치를 느낄 수도 있다. 수치는 기개로 인해 느끼기 때문이다.

Thumos is by its nature complicated. Sometimes tranlsated as spiritedness, it names a part of the soul that connects one‘s own to the good. Thumos represents the spirited defense of one‘s own characteristic of the animal body, standing for the bristling reaction of an animal in face of a threat or a possible threat. It is frist of all a wary reaction rather than eager forward movement, though it may attack if that is the best defense. The reason ofthen goes too far when the animal risks its life in all-out attack in order ro preserve itself. To risk one‘s life to save one‘s life is the paradox of thumos, the display of an apparent contradiction. As a human animal, you can condemn your life and say you are sorry and ashamed, for shame is due to thumos.
(중략)
기개 안에서 우리는 인간의 동물성을 본다. 왜냐하면 인간(특히 남성)은 종종 개가 짖고 뱀이 쉿쉿 거리며 새가 날개를 퍼덕이는 것처럼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확히 여기서 우리는 또한 인간적 동물의 인간성을 본다. 인간은 위협에 발끈할 뿐만 아니라 분노하기도 하는데, 다시 말해 근거, 심지어는 원칙, 원인에 대해서도 반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로지 인간만이 분노한다. 당신이 이성을 잃을 정도로 분노하다면, 그 행동을 정당화할 근거를 찾는다. 당신은 부당한 취급을 받았다는 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 근거를 찾을 수도 있다. 그러나 좋든 나쁘든, 깊이 숙고하였든 당연하게 받아들였든 근거가 없다면 억울하다고도 느낄 수 없다.

In thumos we see the animality of man, for men (and especially males) often behave like dogs barking, snakes hissing, birds flapping. But precisely here we also see the humanitu of the human animal. A human being not only bristles at a threat but also gets angry, which means reacts for a reason, even for a principle, a cause. Only human beings get angry. When you lose your temper, you look for a reason to justify your conduct; thinking out the reason may take a while after the moment of feeling wronged is past, but you cannot feel wronged without a reason - good or bad, well considered or taken for granted.

Redman 2023-02-03 10:51   좋아요 1 | URL
아 그리고 맨스필드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thumos를 중요하게 언급합니다! 마키아벨리의 animo도 thumos로 연결짓죠. 레오 스트라우스를 사숙한 제자이니 아마 이건 스트라우스의 견해를 모방한 것이라 여겨집니다.

겨울호랑이 2023-02-03 10:5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김민우님께서 하비 맨스필드의 내용을 알려주신다면, 후에 그의 책을 읽을 때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김민우님, 즐거운 하루와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23-02-03 10:54   좋아요 0 | URL
하비 맨스필드와 관련해서 좋은 소개와 번역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저도 김민우님으로부터 많이 배워갑니다. 거듭 감사드립니다 ^^:)

Redman 2023-02-03 14:35   좋아요 1 | URL
하비 맨스필드를 읽어보신다면 먼저 <정치철학 공부의 기초>를 권합니다. 맨스필드를 위시한 스트라우스주의자의 정치철학 관점이 유려한 문장으로 잘 서술된 책입니다.
그리고 맨스필드는 마키아벨리와 토크빌로 중요한 연구를 많이 남겼는데, <마키아벨리의 덕목>(제가 서평도 썼습니다) <Machiavelli‘s New Modes and Orders> 꼭 읽어볼 책입니다. VSI 시리즈로 나온 토크빌 입문서인 <Tocqueville>도 좋습니다. <남자다움>이란 책은...마사 누스바움이 쓴 서평을 읽어보니 굳이 안 읽어도 되겠다 싶어서 권하지는 않습니다

겨울호랑이 2023-02-03 17:11   좋아요 1 | URL
좋은 책 추천 감사합니다. 김민우님 좋은 하루 되세요!
 

 OECD 최저 수준의 신뢰도를 자랑하는 국내 여론들 덕분에 외신들을 보며 영어 공부를 강제로 해야되는 상황이 조금은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덕분에 '내가 잘못되었는가?'에 대한 기준을 세울 수 있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고 스스로 위안한다. 높아진 국가 위상 덕분에 이제는 국내 정치를 외신으로만 접해도 큰 흐름을 파악하는데 큰 지장이 없는 것을 보면 수십 년간 이어져온 언론의 독점(獨占)도 머지 않은 듯하다.


 2023년 연초 The Economist에서는 전임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재임 시 근무했던 정치권인사들에 대해 "The Economist explains"에서 'Why does South Korea pardon its corrupt leaders? 한국은 왜 부패한 지도자들을 사면하는가?'라는 주제로 상세히 세계인들에게 설명해주었다. 그 중 일부를 옮겨본다.


 Pardons are often motivated by power dynamics within the political elite, too. Convicted politicians often have powerful allies in parliament, who can encourage pardons. 


 때로 사면은 정치 엘리트들 간의 권력 역학에 의해 유발되기도 한다. 흔히 유죄 판결을 받은 정치인은 사면을 독려할 수 있는 강력한 권력을 가진 동맹자들을 두고 있기도 하다.


 President Yoon is clearly a fan of Mr Lee, the former president he pardoned. He has stocked his team with staff from his predecessor's administration and adopted similar policies. But the president also pardoned several politicians involved in the corruption scandal that brought down Ms Park even though he had put them away when he was chief prosecutor under Mr Moon.


 윤 대통령은 자신이 사면한 이명박 전 대통령의 팬임이 분명하다. 그는 이전 행정부의 직원들로  자신의 팀을 꾸리고, 유사한 정책을 채택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또한 문 대통령 아래에서 검찰총장 재직 당시 전임 박 대통령을 끌어내렸던 부패 스캔들에 연루된 여러 정치인들도 또한 함께 사면했다.


 He may be hoping that the pardons will unify his conservative party, People Power, which is riven by infighting. Mr Lee and Ms Park still have enormous influence in conservative political circles. The president, a political neophyte and outsider, may also be hoping to smooth his entry into this elite.


 그는 이번 사면이 내부 다툼으로 분열된 보수정당인 국민의 힘이 통합되는 계기가 되길 원할 것이다. 전임 이 대통령과 박 대통령은 여전히 보수 정치권에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정치 초보이자 아웃사인더인 윤 대통령은 아마도 이들 정치엘리트 계층 안에 자연스럽게 들어가기를 바랄 것이다.


Though no longer a prosecutor, Mr Yoon still paints himself as a crusader for justice. But his decision to free a guilty man may open old wounds. The convictions of the ex-presidents and their co-conspirators were historic moments for South Korean democracy, says Erik Mobrand of the rand Corporation, a think-tank. Far from unifying the country, upending more of these judgments could undermine faith in its institutions. 


 이제 더는 자신이 검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윤 대통령은 여전히 자신을 정의를 위한 십자군으로 덧칠한다. 그러나 죄인을 석방하기로 한 그의 결정은 아픈 기억을 들추는 것일지도 모른다. 싱크탱크인 랜드 코퍼레이션(Rand Corporation)의 에릭 모브랜드(Erik Mobrand)에 따르면, 전직 대통령들과 그들의 공모자들에 대한 유죄 판결은 한국 민주주의에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국민대통합과는 동떨어진, 잘못된 이러한 판단을 뒤집는 것은 국가 근간에 대한 믿음을 약화시킬 수도 있다.


[관련기사] https://www.economist.com/the-economist-explains/2023/01/06/why-does-south-korea-pardon-its-corrupt-leaders 


 같은 사안에 대해 국내 언론들은 '사면의 대상이 누구인가?', '누구 측근이 어떤 조건으로 사면되었는가?'에 대해 중계방송을 하듯 취재에 열을 올렸지만, 정작 사면이 가진 문제점에 대해 지적한 기사는 거의 찾을 수 없었다. 내가 미처 못 읽었을 수도 있겠지만, 새벽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 경매장에 들어선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단순한 사실 나열 속에서 우리가 정작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점들은 슬며시 빠져나간 것은 아닐런지. 이런 어이없는 자신들의 보도보다 대중들의 무지를 지적하는 언론들에 대한 개혁과 함께, 21세기 대한민국 헌법 안에 존재하는 1789년 인권선언문 제16조를 통해 나타난 권력분립과 프랑스 대혁명 안의 법 안의 일반의지에 대한 논의를 무력화시키는 '사면권'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자신의 정치적 견해와는 별도로 고민할 때가 아닐까.


 누가 법을 만들 것인가? 누가 입법자로서 공동체에 대해 결정을 내릴 것인가? 그런 사람은 단 한 사람만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민은 필연적으로 공동체의 이익에 반대되는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인(私人)이나 개인에 다시 지배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로지 인민 전체만이 자신에 대해 결정을 내릴 수 있으며, 본질상 비개인적이어서 오직 모든 사람의 이익에 일치하는 것만을 원할 수 있는 일반 의지만이 법을 제정할 수 있다(P227)... 개인은 공동체를 구성하는 일부가 되고, 그의 의지와 일반 의지는 하나의 동일한 의지가 된다. 일반 의지를 따를 때 그는 단지 자기 자신에게 따를 뿐이다. 그는 자기 자신의 동의에 따라 공동체에 구속되었고 그 구성원 중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그의 의지가 일반 의지에 속해 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따르는 법률에 참여했다. 바로 이런 식으로 국가 안에서 개인의 자유라는 문제는 해결된다. _ 베르나르 그뢰퇴유젠, <프랑스 대혁명의 철학> , p228


 로베스피에르는 이 원칙이 인권선언과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사전에 올바른 질문부터 해야 옳다고 주장했다. 로데크의 주교 콜베르 드 세뉼레가 일어나 자기가 마련한 안을 내놓았다. “시민들의 권리는 오직 권력을 슬기롭게 분배해야만 보장할 수 있다.”  그 뒤 계속 원안 제24조로 돌아가 토론하고 심의한 뒤 결국 ‘선언문’의 제16조를 확정했다. 몽모랑시 백작은 제6위원회의 안을 모두 심의했지만 인권선언문에 한 가지 조항을 추가하자고 제안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온갖 폐단이 생기고 세대가 바뀌고 이해관계도 바뀌면서 인간이 구축한 모든 법을 수정할 필요가 생기기 때문에 한 나라의 인민은 언제나 헌법을 다시 보고 개정할 권리를 가진다. 이러한 권리를 행사하는 평화롭고 합헌적인 수단을 지정해두는 것이 옳다.” _ 주명철, <프랑스 혁명사 2 : 1789 평등을 잉태한 자유의 원년> , p285/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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