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은 사랑의 기호들에 관한 감상의 영화다. 박찬욱의 감상법은 기호들을 할 수 있는 한 공격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힘을 이용해 자신 앞에 놓인 논리적인 명제들, 논리적인 그림들, 논리적인 세계의 체계들을 파고들 수 있는, 놀랄 정도로 폭력적인 방법을 구사하는 것이다. 저물어가는 해. 밀려오는 파도. 지연된 시간. 모래 구덩이 속의 서래. 물에 젖어 무거워진 해준의 신발. 정훈희의 '안개'. 이것이 폭력이 아니라면 달리 무엇인가. 이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달리 무엇인가. _ 프리즘오브 프레스, <프리즘오브 PRISMOF 특별호 : 헤어질 결심>, p19


 오랜 알라딘의 이웃분으로부터 책선물을 받았다. 영화 <헤어질 결심>을 인상깊게 보시고 책선물을 해주셔서 한동안 잊고 지냈던 <헤어질 결심>을 다시 떠올린다. 평론가 정성일의 글처럼 영화는 수많은 상징과 의미로 연결되어 있다. 복잡한 수식처럼 얽힌 이들 관계를 소거(消去)한다면 최후에 남는 것은 '사랑 이야기'다. 정성일은 본문에서 사랑의 기호들을 설명하면서 비트겐슈타인(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in, 1889 ~ 1951)의 논리를 따라간다. <헤어질 결심> 뿐 아니라 박찬욱 감독의 전작으로부터 이어오는 세계를 바라보는 하나의 방식으로 작품 세계를 바라본다. 이 같은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헤어질 결심>의 사랑 이야기는 조금 더 명확하게 보인다. 철처하게 계산된 서래의 움직임 속에 놀아나는 해준. 지쳐가는 해준에게 서래는 스스로 영구미제(永久未濟)의 인물이 되며, 해준에게 잊혀지지 않는 자신의 사랑을 새긴다.


 서래는 해준을 해파리로 만든다. 서래는 해준을 재우면서 최면을 걸듯이 말한다. "바다로 가요. 물로 들어가요. 당신은 해파리에요. 눈도 코도 없어요, 생각도 없어요." 서래가 해준을 잠재울 때, 그때는 아직 사랑의 시간이 아니다. 더 기다려야 한다. 서래는 차를 운전해서 바닷가로 달려가며 해준에게 전화한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나는 순간 내 사랑이 시작됐죠." 그들은 비 오는 날 사찰을 방문할 때에도 아직 사랑하지 않았다. 아니, 해준만이 서래를 사랑하고 있었다. 팜 파탈 서래의 계산 안으로 들어온 형사 해준을 해파리로 다루는 것은 얼마나 잔인하고 냉정한 최면인가. _ 프리즘오브 프레스, <프리즘오브 PRISMOF 특별호 : 헤어질 결심>, p17


 서래가 자신의 생각을 가장 극적으로 실현해낸 이포 바닷가를 보면서 영화를 볼 때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 ~ 1900)의 '영원회귀'와 '힘(권력)에의 의지'를 생각하게 된다. 


[사진] 영화 <헤어질 결심> 이포 바닷가 (출처 : 아이뉴스24)


 "힘의 마력. 필요도 아니고 욕망도 아니고 힘에 대한 사랑이야말로 인류의 수호신이다. 인간에게 모든 것을, 즉 건강, 음식, 주택, 오락을 줘보라. 그들은 여전히 불행하고 불만스러워할 것이다. 왜냐하면 마력적인 존재가 기다리면서 채워지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고 이 마력적인 존재를 만족시켜보라. 그러면 그들은 거의 행복하게 된다. 인간과 마력적인 존재가 행복할 수 있는 최대한 정도까지." _ 프리드리히 니체, <아침놀>, 제4부, 262절


  해준을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을 남기기 위해 마침내 해준을 붕괴(崩壞)시킬 정도까지 몰아붙이는 서래. 그것은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한 하나의 의지가 아닐까. 서래는 자신의 의지를 세우기 위해 밑으로 들어간다. 태양이 모래밭 위에 걸리는, 끊임없이 밀려드는 파도가 서래를 덮지만, 그 순간 서래가 느끼는 감정은 죽음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자신의 뜻이 이뤄지는 극한의 쾌감이 아니었을까.


 

 인류의 오류 역사의 결과로서 니체가 도달한 이 영원회귀의 앎은 지금까지 오류를 산출해 온 힘에의 의지가 거기서 스스로의 맹목적 성격을 명확히 인식하는 것 - 더욱이 그 맹목적인 힘에의 의지에 의해 인식하는 것이었다. 인식과 오류가 그 극한에서 수렴한다.  그러나 힘의 놀이는 거기서 영구적인 정지 상태에, 완전한 균형 관계에 들어서는 것이아니다. 위대한 정오, 태양이 천정에 걸리는 것은 순간이며, 더욱이 그 순간을 그것으로서 인식할 수 있는 자에게 있어서만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이 한순간이, 요컨대 세계가 인식에 의해 빛나고 니체의 메모를 끌어들이자면 "쾌락의 절대적 과잉"이 증명되는 이 한순간이 되돌아오게 되면 이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있다. _ <니체사전> '영원회귀' 中 , p414


  서래가 바닷가에서 '힘에의 의지'를 관철시켰다면, 그 의지를 둘러싸고 덮는 것은 파도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파도. 그렇지만, 그 파도는 어느 것 하나도 같지 않다. 서로 다른 높이와 소리, 세기를 가진 저마다 다른 파도는 '영원의 상' 아래에서 끊임없이 해준 곁에 머무르려는 서래의 의지를 덮는다.  


 다른 한편 니체는 세계의 본래적인 존재 양태를 부단한 '생성'으로서 파악하고 있으며, 이 점에서 '힘에의 의지'의 형이상학 구상은 '영원회귀'와 결부된다. 즉 세계가 일정한 '힘의 중심들'의 상호 작용으로 성립해 있다고 한다면, 무한한 시간 속에서는 모든 조합이 실현될 수 있으며, 또한 이미 실현해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모든 것이 회귀한다는 것은 생성의 세계의 존재의 세계로의 극한적인 접근이며 고찰의 정점이다"라고 말하고, "생성에 존재의 성격을 각인하는" 것 - 이것이야말로 최고의 힘에의 의지다"라고 하고 있다. _ <니체사전> '힘에의 의지' 中 , p643


 그렇지만, '힘에의 의지'와 '영원회귀'의 만남은 항상 같은 결과를 낳지 않는다. 마치 자기 유사성을 가진 프랙탈(fractal)처럼, 서래를 덮은 파도는 그 다음 파도에 영향을 미치고, 다시 그 다음 파도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또 다른 생성(生成)을 이룬다. 그렇게 만들어낸 변화의 양상들이 부분과 전체의 자기 유사성으로 표현되며, 서래의 죽음은 하나의 사건으로 해준에게 사랑이 되어 남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림] 망델브로 집합(출처 : https://www.researchgate.net/figure/A-Mandelbrot-set-M-2-for-the-family-f-x-c-x-2-c-5-The-boundary-of-the-black_fig1_263911584)


 앞서 평론가가 말했듯, <헤어질 결심>은 사랑의 기호에 관한 영화다. 때문에, 어느 기호에 중점을 두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관점과 해석이 가능하다. 오늘 이 페이퍼에 올린 해석도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이고, 이 관점도 다듬어지지 않아 거친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글을 올리는 것은 먼저 좋은 선물을 주신 이웃분께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미련한 생각에서 조금은 나아지는 과정의 발자취를 남겨야겠다는 생각때문이다...


 어떤 복소수 C에 대해 식 f(z)=z2+C로 정의된 복소 다항식 f가 있다고 하자. 임의의 복소수 z0을 고르면 반복, 즉 함수 f를 계속 적용하여 수열 z0, z1, z2...를 얻을 수 있다. 어떤 경우 (C>=2) 얻은 수열은 무한대로 다가가는 반면, 어떤 경우에는 유계 상태, 즉 0으로부터의 고정된 거리 내에 머물러 있다... 만일 z0을 고정하고 C에 대해 여러 가지 가능성을 고려하면 어떻게 될까?  그 결과가 망델브로(Mandelbrot set)이다. z0=0으로 잡았을 때 수열이 유계로 남아 있는 C 전체의 집합이 정확한 정의다. 망델브로 집합도 대중적인 상상을 사로잡는 복잡한 프랙탈 모양을 갖는다. _ 티모시 가워스 외, <The Princeton companion to Mathematics 1> , p414


 보라, 그대가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다. 만물이 영원히 되돌아오며, 우리 자신도 더불어 영원히 되돌아온다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이미 무한한 횟수에 걸쳐 이미 존재했으며, 모든 사물 또한 우리와 함께 그렇게 존재해왔다는 것이 아닌가. _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 제3부 '건강을 되찾고 있는 자', 2절.



댓글(6) 먼댓글(0) 좋아요(5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넬로페 2023-04-04 01: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영화 ‘헤어질 결심‘에 이토록 깊은 뜻을 알게 하시다뇨!
감탄이 절로 나오네요~~
사랑에 대한 생각과 느낌이 참 다양한데 이 영화를 꼭 다시 봐야겠어요.
겨울호랑이님의 페이퍼가 책선물 주신 분에게 보내는 최고의 감사인사인 것 같습니다^^

겨울호랑이 2023-04-04 08:10   좋아요 3 | URL
페넬로페님 격려의 말씀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만, 영화에 담긴 감독과 작가의 의도를 제가 제대로 파악했는지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워 집니다. 저 스스로도 작품 내의 더 많은 장치들과 알레고리들 중 많은 부분을 놓친 것을 알기에 더욱 그렇네요...ㅜㅜ 부족함이 많은 생각입니다만, 하나의 가능성 정도로 이해해 주시고, 페넬로페님께서 참고 정도만 하시고 작품을 즐기신다면 그것으로 이 페이퍼는 충분히 제 몫을 다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페넬로페님 좋은 하루 되세요!

잘잘라 2023-04-04 08: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신의 뜻이 이루어지는 극한의 쾌감‘이 궁금해지는 글입니다. ‘죽음의 공포를 대신할 수 있는 무엇‘을 상상하게 된달까요. 너무 오래 덮어두었던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 생각을 이어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23-04-04 08:26   좋아요 2 | URL
서래의 선택이 제3자의 눈에는 충격으로 다가오는 것은 선택의 길이 죽음의 공포와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서래의 눈은 이미 삶과 죽음의 경계 너머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모래 밑으로 내려가는 선택을 통해 해준의 마음에서 영원히 살아갈 수 있다는 선택. 어쩌면 그것은 종교적 예수의 선택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요. 자신의 죽음을 통해 더 큰 것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 그런 희망이 그를 따르는 이들을 만들고 종교를 만들었다면, 서래 또한 자신의 선택 순간에 일종의 황홀경, ‘엑스터시‘를 느끼지 않았을까 짐작해 봅니다... 그냥 가벼운 제 생각이고 추측입니다. ^^:) 잘잘랄라님 덕분에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나와같다면 2023-04-04 16: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니체의 ‘영원회귀‘와 ‘힘(권력)에의 의지 까지 대단한 사고의 확장이고 <헤어질 결심> 리뷰입니다!

2023-04-04 17: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도올주역강해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뢰복 괘에 대한 정이천의 해설.

아직 (지뢰)복이 오지 않은 것을 보면 (산지)박이 끝나지 않은 듯하다. 더 내려갈 곳이 없는 듯한데 극에 이르지 않았다면 과연 어디까지 가야하나 싶기도 하지만.

극점이 변곡점이 될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사물에 박진(박탈되어 사라진다)의 이치는 없다. 박이 극에 달하면 복이 오고, 음이 지극하면 양이 생겨나게 되어있다. 양이 위에서 극한까지 견디다 박탈당하게 되면 그것은 다시 아래에서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곧 「서괘전」에서 위에서 궁하면 아래로 돌아온다(반하)라고 말한 바의 것이다. 그래서 복괘가 박괘 다음에 오게 된것이다. 괘의 모양을 한번 살펴보자! 일양이 오음의 아래에서 생겨나고 있으니 이것은 음이 극하면 양이 되돌아온다는 이치이다. 10월에 음이 성하여 극한에 달했다가, 다음 달 11월 동지冬至가 되면 일양이 땅속에서 다시 생겨나기 때문에 복이라고 한 것이다. 양은 군자의 도이다. 양의 사라짐이 극한에 달하다가 다시 양이 돌아오는 것은, 군자의 도는 사라지는 것 같다가도 다시 자라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복괘는 선으로 돌아온다는 뜻이 된다. - P351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와같다면 2023-03-31 0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뭔가 위로가 되는 말씀이네요

겨울호랑이 2023-03-31 16:19   좋아요 1 | URL
네 어려울 때는 위로가, 잘될 때는 경계가 되는 경구라 생각됩니다. 지금은 위로가 되네요...

2023-03-31 0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31 16: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31 2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31 2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천당>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행운의 손님. 자, 안으로 들어오셔서 찬찬히 둘러보십시오. 원하시는 과자를 분명히 찾으실 테니까요."  "여기는 <화앙당>, 너의 욕망을 이루어주는 가게지." 

 

 이번 주 도서 <이상한 과자가게 전천당4>에서는 라이벌 가게인 화앙당이 등장한다. 손님이 원하는 바를 이루어준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조금은 다른 듯한 이 두 가게의 차이는 무엇일까. 아마도 가게 주인들의 인삿말에 힌트가 담겨 있지 않을까. 이번 주에는행운과 욕망에 대해 생각해 보자. 공부를 못하는 유타가 들른 두 가게에서는 유타의 고민을 풀어주기 위해 서로 다른 과자를 소개해주고 있어. 전천당의 과자와 화앙당의 과자. 과연 무엇이 다를까?


 "<족집게 통조림>입지요. 번뜩이는 족집게 과일이 듬뿍 들어 있는 통조림입니다. 이것을 드시면 시험에 나올 문제를 저절로 알게 됩니다. 족집게처럼 예상 문제만 노려서 공부해 두면 문제없지요. 시험에 안 나올 쓸데없는 공부는 안 해도 되니까 그야말로 손님을 위한 과자가 아니겠습니까?" _ 히로시마 레이코, <이상한 과자가게 전천당 4> ,p16


 "흥! 겨우 <족집게 통조림>이야? 뭐, 편리하다고 생각하면 편리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건 아주 얼치기야. 사기라고. 생각해 봐. 그런 걸 먹는다고 공부할 내용까지 저절로 알 수 있겠어? 어차피 열심히 교과서를 읽고, 이것저것 외워야 할 텐데 귀찮을 것 같지 않아? ... <꾀떡>이야. 꾀를 부리면 부릴수록, 게으름을 피우면 피울수록 시험 점수를 올릴 수 있어. 이걸 먹으면 공부할 필요가 전혀 없어. 어때? <족집게 통조림>보다 훨씬 근사하지 않아? _ 히로시마 레이코, <이상한 과자가게 전천당 4> ,p21


 아빠는 <족집게 통조림>과 <꾀떡>의 차이는 가게 주인들의 마음에서 오는 것 같아. <족집게 통조림>은 노력하고 싶지만 아직 방법을 모르는 손님을 도와주는 과자야. 결국, 공부는 스스로 해야하는만큼 <족집게 통조림>은 노력하지 않는 아이를 도와줄 수는 없지. 그렇지만, <꾀떡>은 다른 것 같아. 노력과 관계없이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생각. 아빠는 이것을 가게주인의 철학이라 생각하는데, 이 점에서 <전천당>과 <화앙당>은 다르다는 생각을 해. 그것은 <화앙당>의 다른 과자에서도 드러나지.   


 "알겠어? <양치 너츠>는 이를 깨끗이 해서 충치를 예방할 뿐이야. 이미 생긴 충치를 낫게 할 수는 없다고. 그렇지만 이 <충치 콩과자>가 있으면 충치가 생겨도 괜찮아. 다른 사람한테 콩과자를 먹여서 옮기면 그만이지. 그러니까 치과에 안 가도 충치를 낫게 할 수있다는 뜻이야. 어때? 대단하지?"_ 히로시마 레이코, <이상한 과자가게 전천당 4> ,p126


 이런 점에서 <전천당>이 <화앙당> 과자보다 더 우리의 마음에 좋은 과자라고 생각해. 그래도, <화앙당> 과자에 더 귀가 솔깃할 수 있을거야. 그럴 때는 연의가 좋아하는 <해리 포터>의 덤블도어 교장선생님 말씀을 생각해보자. 우리가 중심에 있어야 하는지, 그렇지 않으면 과자가 중심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면, 다음에는 요즘 한창 떠오르고 있는 인공지능(AI)문제와도 연관시켜서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아. 시간이 충분히 흐른 후에... 이번 주도 바쁘게 잘 보냈고, 아빠는 항상 꾸준하게 잘 해내는 연의가 자랑스럽구나. 다음 한 주도 행복하게 잘 보내자!   


 "그게 너와 톰 리들의 큰 차이점이다. 우리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 주는 건 말이다, 해리, 우리가 가진 능력이 아니라 우리가 하는 선택이란다." _ J.K. 롤링,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 , p38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경비원 할아버지께.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저, 깜냥이에요. 설마 저를 잊으신 건 아니죠? 저는 지금 온동네편의점에서 지내고 있어요. 우연히 길을 가다가 편의점 앞에 있는 탁자를 봤는데 무척 마음에 들었어요. 주인아주머니도 참 좋은 분 같았고요. 그래서 며칠 동안 지켜보다 용기를 내서 찾아왔어요. 할아버지를 만난 그날처럼요(p88)... 다음에는 어디로 갈 거냐고요? 음,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원래 어디로 갈지 미리 걱정하거나 고민하지 않거든요. _ 홍민정, <고양이 해결사 깜냥 5> , p89


 이번 주에는 <전천당>을 잠시 건너뛰고 <고양이해결사 깜냥>으로 독후감을 대신한다. 사람들을 좋아하며 잘 따르는 고양이 깜냥이 이번 편에서는 아주머니를 도와 편의점에서 일한다. 편의점 알바가 된 고양이 깜냥. 이번 편에서는 우리가 24시간 편하게 생활할 수 있게 해주는 편의점 이야기가 펼쳐진다.


 생각보다 많은 일을 처리하는 편의점. 많은 일을 처리하는 만큼 여러 이야기가 일어난다. 연의는 이 중에서 어떤 이야기가 가장 인상적이었니? 아빠는 이번 책을 통해서 편의점을 다룬 소설 <불편한 편의점>을 생각했어. <고양이 해결사 깜냥>은 편의점 알바생이 된 깜냥의 입장에서 이야기가 펼쳐진다면, <불편한 편의점>이라는 소설은 편의점이라는 가게를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서로 연결된 소설이야. 우리가 읽은 책이 편의점의 기능에 대해 설명한다면, 아빠가 말한 책은 편의점을 통해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이야기가 그려진다는 점이 조금 달라. 나중에 연의가 컸을 때 기회가 된다면 한 번 읽어보면 좋을 것 같아.


 <고양이 해결사 깜냥 5 : 편의점을 환하게 밝혀라>에서 알바생 깜냥이 정말 많은 일을 하지? 편의점에서 우리는 계산대에서 계산하는 점원의 모습만 항상 보지만, 사실 우리가 이용하지 않는 여러 기능을 편의점은 갖고 있어. 그리고, 편의점의 이런 기능들은 편의점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노력 덕분에 이용 가능하단다. 편의점 뿐 아니라 우리의 편리한 생활 뒤에는 여러 사람들의 숨겨진 노력이 있다는 것을 함께 생각해보자. 그런 점에서 아빠는 편의점이란 단순히 물건만을 파는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그것이 무엇일까? 함께 생각해보고, 이야기해보자.


 이것은 좀 더 나중의 이야기인데, '편의점=시장'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면 나중에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아래의 책들을 보는 것도 좋을 듯 해. 마음이 내킨다면 말이야. 지난 한 주도 바쁘게 잘 보냈는데, 다소 추워진 요즘 건강하게 이번 한 주도 보내도록 하자. 사랑하는 아빠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원적 공공 정치철학은 그런 ‘이익‘ 추구와는 또 다른 차원에서 모든 정치 이념들이 최소한의 토대적인 공공성에 대해서 동의해야 한다고 가정한다. 즉, 나의 직접적인 이익과 관계없이, 또는 나의 직접적인 이익이 단기적으로 침해받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사회 공동체의 정상적인 구성원이라면 동의해야만 하는 합의의 영역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_ 폴 슈메이커, <진보와 보수의 12가지 이념>, p29


 <진보와 보수의 12가지 이념>의 저자 폴 슈메이커는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의 관점 차이를 철학적 가정과 정치적 원리의 측면에서 분석한다. 그는 결론에서 '다원적 공공 정치철학  pluralist public philosophy'이라는 진보와 보수의 합의점을 도출해 내지만, '보수와 진보의 합의점'이라는 결론이 한국 정치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조금 회의적이다.


 먼저 우리나라의 '보수'와 '진보'를 살펴보자. 일반적으로 유권자 또는 정치인의 성향을 두 가지로 분류한다면 이들은 거칠게나마  '우파=보수=민족주의자', vs '좌파=진보=계급주의자'라는 등식과 구도에 위치시킬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전제 위에서 앞서 말한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지만, 기본 전제와 우리의 현실은 차이가 발생한다. 일반적으로 보수주의자는 현실을 중시하고, 안정을 추구하는 반면, 진보주의자들은 새로운 이념을 제시하며 미래지향적 성향을 보인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보수주의자들이 이념을 강조하는 반면, 진보주의자들이 민족주의 성향을 보이는 모순이 나타난다.


 우리나라 보수주의자들 중 상당수는 자신과 다른 세력을 '이념'으로 적대하며 '빨갱이'로 호칭하고, 자신의 경제적 이익에 따라 투표하는 '계급주의'적인 투표를 한다는 점에서 좌파의 모습을 보여주는 반면, 이른바 진보주의자들은 계층보다 오히려 민족차원의 접근을 강조하는  '민족주의'적인 면을 보여준다. 이러한 점에서 서구적인 좌파와 우파의 구분은 지나치게 단순한 분석이 아닐까. 그리고, 우리들이 체감하는 정치 피로감은 이론과 실제의 차이에도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애국을 외치는 이들이 오히려 외세 의존적인 모순은 한국정치만의 특성이라 여겨진다. 


 이러한 한국정치의 특질은 어디로부터 생겨난 것일까. 그 원인을 찾는다면 한국만의 체제 '분단체제'로 부터 그 기원을 찾아야 할 것이며, 분단의 원인이 된 '일제 식민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밖에 없어 보인다. 현재 한국사회의 모든 문제의 기원이 일제 식민 시대에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상당부분 식민 시대에 기원하고 있는 것을 부정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지금의 혼란과 어려움을 이겨내는 것은 결국 식민시대와 분단 체제의 극복에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