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극적 대여자는 대중들이 실물자산과 비유동성 금융자산을 처분하고 현금으로 전환하려는 쇄도 사태를 중지시키는 데 필요한 만큼의 통화를 공급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 이 개념은 패닉이 발생할 때 화폐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통화량을 늘려주는 '탄력적인 통화 공급'이라는 개념이다. 얼마만큼의 화폐를 공급해야 하는가? 누구에게 어떤 조건으로 공급해야 하는가? 어느 시점에 공급해야 하는가? _ 찰스 킨들버거,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 p364


  궁극적 대여자(lender of last resort). 찰스 킨들버거가 경제를 바라보는 관점은 이 한단어에 요약될 수 있다. 국가 차원의 궁극적 대여자가 정부 또는 중앙은행이라면, 국제 차원의 궁극적 대여자는 세계체제 안에서의 패권국이다. 자신의 패권과 세계체제를 지키기 위한 노력. 이러한 노력을 최근 미국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Fed)에서 발견한다. 


 정부가 재무부증권을 발행해 패닉을 완화시켜야 할 것인지, 아니면 1844년 은행법이 규정해 놓은 한도를 일시 철폐하더라도 영란은행이 벌금 수준의 금리로 무제한의 할인을 해주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영국에서 분명한 합의가 없었다. _ 찰스 킨들버거,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 p371


  세계체제의 일부로서 우리가 우리나라의 물가상승률, 실업률, 금리보다 미국의 지표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국가 내에서의 '지방소멸' 문제 만큼이나, 세계체제 내에서의 '한국경제 종속' 문제가 심각한 것은 아닌가를 생각하게 된다. '하나의 유럽'을 표방한 유럽연합(EU)이 겪고 있는 불안의 근원이 서로 다른 정치, 경제 상황에 놓인 각국들의 독립성에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과연 우리나라는 얼마나 자유로운지 물음을 던지게 된다. 여기에 더해 정부나 중앙은행의 유연한 대처 대신 부동산PF를 살리기 위한 인위적인 금리동결 정책과 원화가치평가 절하가 결과적으로 국민소득의 실질적 감소를 가져왔기에, 요즘 우리는 신용공여자 또는 리더십의 부재를 체감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광복은 되었지만, 더욱 은밀하게 또는 노골적으로 종속된 우리의 상황이 암울하게 느껴지는 제79주년 광복절이다...


 투기적 확장 국면이 벌어진 이후에는 궁극적 대여자의 필요성이 인정되지만, 억제 조치가 붕괴를 촉발하지 않고 확장 속도를 적정하게 둔화시킬 확률이 낮다고 판단될 경우, 궁극적 대여자는 개입 규모와 시점선택의 딜레마에 직면한다. 딜레마는 할인 방식보다 공개시장조작이 더욱 심각하다. _ 찰스 킨들버거,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 p392


PS. 오늘 아침에 일어나 어제와는 다르게 바람도 불고 순간이나마 가을이 서성이고 있음을 느꼈다. 아직은 무더위가 끝난 것은 아니지만 사뭇 다른 공기를 맡으며 선선한 가을에 대한 기대를 가지듯, 끝나지 않은 폭정 안에서 새로운 시대에 대한 기대를 갖는다. 어쩌면 해방 이후 시간이 지나버려 청산할 수 없었던 친일부역자 문제를 이제는 매국의 명분으로 해결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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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핵세포의 기원은 세포내공생이다. _ 닉 레인, <미토콘드리아>, p174


 <미토콘드리아>는 세포 내의 세포, 미토콘드리아와 숙주세포의 관계를 통해 단세포에서 다세포로의 진화(evolution) 그리고 생로병사(生老病死)의 비밀을 찾아간다. 대기 중 산소 농도가 짙어지는 변화의 시기, 보다 효율적인 생존을 위해 세포내공생을 선택한 숙주세포와 미토콘드리아. 변화된 환경으로 인한 이들의 연합은 단세포 생물이었을 때는 최상의 조합이었지만, 엔트로피의 법칙에 따라 확장하려는 성향은 다세포 생물이라는 변화된 상황에서는 그렇지 못하게 된다. 제한된 조건에서 자신의 이익에 따라 행동하는 세포들의 협조와 대립의 결과가 개체에게는 성장과 죽음을 가져온다는 <미토콘드리아>의 내용을 통해 <이기적 유전자>와 <이타적 유전자>의 접점을 발견할 수 있다...


 ATP의 소비가 없으면 전자의 흐름은 멈춘다. ATP는 DNA가 복제를 하거나, 세포가 분열할 때, 또는 단백질이나 지질이 합성될 때 필요하다. 그 요구는 세포분열이 일어날 때 최고조에 달한다. 만약 숙주세포가 유전자 손상으로 분열을 할 수 없게 되면 더 이상 홀로 살아갈 수 없는 미토콘드리아는 숙주세포 안에 갇히게 된다. 숙주세포가 분열을 할 수 없으면 ATP도 거의 쓰이지 않는다. 전자의 흐름이 느려지고 호흡연쇄가 차단되어 자유라디칼이 누출된다. 결국 미토콘드리아는 자유라디칼을 폭발시켜 내부적으로 숙주세포를 처형한다. 이 단순한 시나리오는 성(性)과 다세포 개체의 기원이라는, 생명이 이루어낸 두 가지 중요한 발전의 근원이 된다. _ 닉 레인, <미토콘드리아>, p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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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에 관한 두 권의 책. <유전자의 내밀한 역사>와 <게놈 익스프레스> 모두 유전자의 역사를 다루는 책으로 독자들에게 유전자의 세계에 대해 친절하게 알려주는 입문서다. 


 <유전자의 내밀한 역사>는 유전학의 역사를 비교적 최근인 2015년까지의 연구를 소개하면서 이와 함께 저자 집안의 유전병 문제를 담담하게 풀어간다. 이를 통해 비교적 최근 연구 결과와 함께 유전자 문제가 우리 생활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저자는 말한다.


 돌연변이체는 우리 자아의 핵심을 유지하는 데에 필요하다. 우리의 유전체는 상반되는 가닥끼리 짝을 지우고, 과거와 미래를 뒤섞고, 기억과 욕망을 대비시키면서 상반되는 힘들 사이에서 허약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가민 모든 것들 중에서 가장 인간적인 부분이다. _ 싯다르타 무케르지, <유전자의 내밀한 역사>, p611


 <게놈 익스프레스>는 상대적으로 유전자 과학의 초기 역사(DNA 발견)에 집중한다. 이제는 일반 개념이 된 DNA 발견을 위한 수많은 가정과 다양한 실패 속에서 유전자 연구 자체가 하나의 진화(進化)임을 저자는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유전자의 내밀한 역사>는 유전자와 관련한 과학사를 최근에 이르기까지 보다 포괄적으로 텍스트를 통해 상세히 설명한다는 장점이 있다면, <게놈 익스프레스>는 그림을 통해 독자들을 핵심으로 이끄는 장점이 있다. 이런 장점들을 잘 조합한다면 유전자와 관련한 좋은 입문독서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은 유전자의 실체를 찾아가는 과학적 탐구에 문학적 상상을 가미하여 지어낸 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DNA를 발견하고 DNA의 기능을 추적하는 과정은 과학의 역사에서도 회자되는 험난하면서도 긴박한 여정이었지요. <게놈 익스프레스>는 당시 과학자들의 시선을 따라가도록 기획하였습니다. 그렇기에 과정 속에서 무수한 실패와 오류를 만나게 됩니다. _ 조진호, <게놈 익스프레스>, p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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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광 발전기 교과서>, <풍력 발전기 교과서>는 가정에서 발전기를 직접 제조하는 방법이 담긴 DIY 매뉴얼이다. 에너지에 관심이 많은 회사원인 저자가 전문 업체에 의뢰하지 않고 직접 부품을 사서 만든 소용량 발전기. 전문 업체에 의뢰할 때보다 평균 1/10정도 가격으로 발전기를 만들 수 있는 방법과 기재자 구입방법 등이 상세하게 소개되어 있기에 평소 환경과 기계 제작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은 관심을 가질만 한 책이라 여겨진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들을 보면서 신재생에너지원에 대한 발전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독자들은 책을 접하면서 화석연료와 결별한 자연친화적인 발전에 의한 에너지 독립에 대한 기대를 갖고 읽어갈 것이겠지만, 책을 덮으면서는 신재생에너지원의 한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적어도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신재생에너지원만으로 전력 수요를 감당할 수는 없음을 자가발전을 통해 얻어진 전력량은 분명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가정에서 효율적인 전력 이용을 위해 에너지저장장치(ESS, Energy Storage System)의 활용을 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에서 필요한 전력을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기에 결국 보조적인 전력공급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이 가정용 발전의 현실이다. 물론, 향후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얻어지는 전력량이 상승할 수도 있을 것이며, 스마트 그리드(Smart Grid)가 활성화되면 획기적인 변화가 가능하겠지만, 지금 당장 에너지 발전원의 급격한 변화는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임을 생각하게 된다.

최근 AI혁명으로 불리우는 여러 변화는 막대한 전력의 안정적 공급이라는 전제 위에 가능하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앞으로도 전력 수요는 급격하게 증가할 것이다. 그리고, 각국은 이러한 시대 흐름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것임을 고려한다면, 신재생에너지가 주류가 되는 시대는 조금 더 기다려야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여기에 더해 신재생에너지, 2차 전지 산업을 선점하고 있는 중국에 대한 서방의 견제까지 고려한다면 그 시기는 더 미뤄져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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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영화 <괴물> (사진출처 : 동아일보)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 裕和, 1962 ~ ) 감독의 <괴물>을 봤다. 감독은 영화를 통해 여러 클리셰들을 파괴하며 관람객에게 반전을 선사한다. 그런 반전 중 하나가 악인 또는 빌런(villain)찾기다. 선-악 구도 설정 후 영화를 관람하는데 익숙한 관객들에게 감독이 선사하는 반전으로 자신의 구도를 무너뜨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묻게 된다. 과연 진정한 악(惡)이 있는 것일까. 어쩌면 개인이 악이 아니라, 사회의 구도 속에서 악은 만들어 지는 것은 아닐까. 영화에 담긴 여러 주제 중 이 부분에 시선이 머문다. 


  

 희생제의의 진정한 기능은 실제로 제물로 바쳐지는 희생물과 그 희생물이 대체하는 인간 존재 사이의 연속성을 요구한다. 이 두 가지 요구는 아주 섬세한 균형을 취하고 있는 인접상태에 의해서만 동시에 충족될 수 있다. _ 르네 지라르, <폭력과 성스러움>, p61 


 사회라는 유기체는 체제 유지를 위해 끊임없이 희생양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희생양은 축제라는 제의(祭儀) 속에서 사라져간다. 사람들은 성스럽고 반복적인 의식(儀式)을 통해 인간과 공동체의 연속성을 보장받으려 한다. 그 과정에서 드러난 희생양에 대한 죄(罪)의식은 어떻게 소멸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희생양은 죽어야만 한다는, 악이라는 단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조금은 다른 지점에서 민주주의(民主主義)라는 정체 속에서 '선거'라는 축제의 승리자가 되기 위해, 정치적인 연속성을 보장받기 위해 반대편의 희생양이 요구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희생을 강요하는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한 각자의 이념 편향이 생기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이데올로기는 개인의 선택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회의 요구와 시스템은 개인을 악인으로 만들기도 한다. 자신이 속했던 공동체의 요구에 순응했다 이유로 처형을 받은 아이히만. '악의 평범성' 속에서 우리 모두는 축제의 일원으로 동참한 것으로 면죄될 수 없음을 생각하게 된다.


 논증을 위해서 피고(아이히만)가 대량학살의 조직체에서 기꺼이 움직인 하나의 도구가 되었던 것은 단지 불운이었다고 가정을 해봅시다. 피고가 대량학살 정책을 수행했고, 따라서 그것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는 사실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지구를 유대인 및 수많은 다른 민족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기를 원하지 않는 정책을 피고가 지지하고 수행한 것과 마찬가지로, 어느 누구도, 즉 인류 구성원 가운데 어느 누구도 피고와 이 지구를 공유하기를 바란다고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읃 우리는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당신이 교수형에 처해져야 하는 이유, 유일한 이유입니다. _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p382


 공동체 내의 구성원 모두가 희생양이 되어 악으로 지정될 수도, 행위로 악인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는 가운데에서 우리는 광란의 축제에 휩싸이지 않고 깨어있어야 하지 않을까. 자신의 편향에 의해 제한된 시선으로 사회를 해석하는 이데올로기 대신 자신이 제대로 보지 못하는 사각지대와 왜곡될 가능성에 대해 인정할 수 있는 태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부분 최적화가 전체 최적화가 아님을 인정하는 열린 마음은 영화에서 보여지는 열린 결말과 통하고 있음을 생각하며 글을 갈무리한다... 

 

 다원주의가 지상의 낙원을 이룩할 처방을 제시해 주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인류를 괴롭히는 최악의 정치 상황을 피하게 해주는 사상이라고 생각된다. 다원주의는 오늘날 각국의 사회가 달성한, 대단히 수준 높은 정치적 성과에 속한다(p75)... 다원적 사회에서는 정치적 지배를 위한 끝없는 싸움을 줄여 줄' 중첩적인 정치적 합의' overlapping political consensus가 필요하다. 이런 합의는 일종의 기본적 합의, 즉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측이 나머지 사람들에게 자신의 특정한 도덕성을 강요할 수 없다는 원칙에 근거해 있어야 한다. _폴 슈메이커, <진보와 보수의 12가지 이념>,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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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4-01-07 10: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치인에 대한 과도한 악마화가 한국사회에서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이번 테러로 알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언론과 정치계의 반응이 참담한 수준이네요.

겨울호랑이님<괴물>보셨군요! 저도 궁금했던 영화인데 서둘러 보고싶어지네요.^^

겨울호랑이 2024-01-07 12:11   좋아요 1 | URL
개인적으로 <괴물>은 지난 <헤어질 결심> 이후 가장 인상깊게 봤던 영화였습니다. 미미님께서도 좋게 보실 것 같네요. 오후부터 날이 추워지고 있네요. 미미님 건강하게 휴일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

yamoo 2024-01-07 19: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슈메이커의 책이네요. 몇 년 전에 이 책으로 새마나 했던 적이 있었는데 .교과서류의 책이라 공부하긴 좋았었죠. 다시보니 반갑네요..^^

겨울호랑이 2024-01-07 21:45   좋아요 1 | URL
교과서류의 책이라 말씀하신 것처럼 책이 많은 내용을 담고 있지만, 너무 광범위한 범위를 다루는 탓에 단편적인 암기사항을 전달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동시에 모든 것을 다 가져가기보다 큰 틀에서 차이점을 이해하는데 중심을 두면 좋은 정치철학 개론서로 독자에게 느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