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은 첨단 기술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미국과 중국의 전자 산업은 깊숙이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두 나라는 반도체 제조에서 사실상 대만에 의존한다(p214)... 대만은 미국과 중국 모두의 군대가 미래를 걸고 있는 첨단 반도체 생산지이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실제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가장 높은 미래의 전장이기도 하다. _ 크리스 밀러, <칩 워, 누가 반도체 전쟁의 최후 승자가 될 것인가> , p215/294


 미국은 경쟁국 중국에 휘둘리지 않고 미래의 자국 경제안보를 확립하기 위하여 자국 내 반도체나 배터리 공급망을 구축하는 것이 우선이다. 즉, 자국 내 배터리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하여 한국이나 일본 등 기존 안보동맹국 간의 결속을 활용하는 전략을 보인 반면, EU의 움직임은 미국처럼 원료 공급망을 쥐고 있는 중국만을 향한 목표 설정보다는 전세계 배터리 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한,중,일 아시아 3국에 맞설 수 있는 유럽 자체 공급망을 확보하려는 정책적 전략에 더욱 가깝다. _ 정경윤 외 2인, <이차전지 승자의 조건> , p91/141


 칩 워(Chip War)와 배터리 워(Battery War). 첨단기술과 관련한 미국과 중국의 경쟁은 날로 치열해지고 있고, 그 중심에는 반도체와 이차전지(배터리)가 자리한다. 그리고, 이 두 산업은 현재 우리나라 산업의 현재와 미래 주력 산업이라는 점에서 위기이자 기회가 된다. 둘 다 첨단 산업이지만, 산업에서의 공수(攻守)는 서로 다르다. 트랜지스터의 집적화가 중요한 반도체 산업에서는 오랜 설계 역사 갖고 있는 미국이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하며 우위를 점한 반면, 에너지의 효율과 안전성이 우선인 배터리 산업에서는 리튬, 코발트, 흑연 등 주요 광물을 선점한 중국이 한 걸음 앞서 있는 모양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경쟁력은 반도체에서는 D램과 낸드플래시, 파운드리 일부에서, 배터리에서는 양극재와 배터리 분야에서의 기술과 양산능력에 있다.


 반도체 공급망 전체를 놓고 볼 때 반도체 설계, 지식재산, 장비, 제조, 기타 다른 단계 등을 종합해보면 중국 기업은 6퍼센트의 시장을 차지하고 있었다. 반면에 조지타운대학교의 연구자들에 따르면 미국은 39퍼센트, 한국은 16퍼센트, 대만은 12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었다. 중국에서 생산되는 거의 모든 칩은 다른 어디에서도 만들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첨단 로직 칩, 메모리 칩, 아날로그 칩의 경우 중국은 미국의 소프트웨어와 설계, 미국, 네덜란드, 일본의 기계장치, 한국과 대만의 제조에 결정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_ 크리스 밀러, <칩 워, 누가 반도체 전쟁의 최후 승자가 될 것인가> , p189/294


 <칩 워, 누가 반도체 전쟁의 최후 승자가 될 것인가>에서는 서로 긴밀하게 엮인 반도체 공급망에서 TSMC가 주목된다. 오직 파운드리 제조에만 초점을 맞추며 고객사를 경쟁사로 만들지 않는 전략을 통해 세계 최고의 반도체 제조회사로 살아남은 TSMC. 이에 반해, 반도체 설계와 제조 등 산업의 수직계열화를 위해 끊임없이 어려분야로 확장하는 삼성의 전략은 사뭇 대조된다. 경쟁사와 협업을 해야하는 삼성과 고객과는 경쟁하지 않는 TSMC. 현재는 TSMC의 시가총액이 삼성에 앞서 있고 초격차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러한 방향성이 맞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된다. 과거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인텔 등이 걸었던 한순간의 오판으로 순식간에 도태된 반도체의 역사를 떠올려본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TSMC의 출범은 모든 칩 설계자들에게 의존할 만한 파트너를 제공하는 일이었다. TSMC는 절대 칩을 설계하지 않고 그저 만들기만 하겠노라고 모리스 창은 약속했다. '우리는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 이대로라면 성공을 거둘 수 있을 터였다... TSMC의 사업은 1990년대 내내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제조 공정은 쉼 없이 개선되었다. 디지털 시대의 구텐베르크가 되고자 했던 모리스 창의 계획은 그에게 훨씬 더 큰 힘을 실어주었다. 당시에는 이 사실을 깨달은 이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모리스 창과 TSMC 그리고 대만은 세계 최신 반도체 생산을 독점하는 길로 나아가고 있었다. _ 크리스 밀러, <칩 워, 누가 반도체 전쟁의 최후 승자가 될 것인가> , p137/294


  반도체 전쟁에서는 인공지능, 5G 등 최근 급증한 반도체 수요에 대응하는 생산능력이 이슈다. 그리고 세계 최대 생산능력을 보유한 대만의 TSMC를 둘러싼 양안 관계(兩岸 關係)가 지정학적 위험이라면,  배터리 전쟁에서는 광물 확보를 둘러싼 자원민족주의가 여기에 해당한다. 특히 남아메리카 지역의 염호(鹽湖)에 집중된 리튬과 콩고에서 집중생산되는 코발트 등은 과거 석유를 무기로 세계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한 중동의 사례를 떠올리게 하지만, 차이점이 있다면 이를 국유화 하기전 이미 상당부분이 중국의 영향력 아래 있다는 점이다.


 리튬 삼각지대에 속한 또 다른 나라인 아르헨티나는 리튬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묻혀 있는데, 그 양이 1700만 톤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칠레보다 두 배가량 많은 것인데, 2019년 기준 리튬 생산량은 칠레의 약 3분의 1 정도였고83 중국 내 생산량보다도 적었다. 현재 아르헨티나에서는 칠레와 유사하게 염수에서 리튬을 추출하는 시설 두 곳만 운영 중이다. 리튬 생산 업체 리벤트Livent와 오로코브레Orocobre가 각각 관리하는 옴브레무에르토Hombre Muerto염원과 올라로스Olaroz염원의 시설들이다. _ 루카스 베드나르스키, <배터리 전쟁>,  p170/424


 리튬은 분쟁 광물conflict mineral이 아니다. 세계 어디에도 리튬 채굴에서 나온 수익으로 무장 단체를 지원하는 곳은 없다. 재래식 채굴이나 아동노동이 이뤄지지도 않는다. 매장층의 위치와 복잡한 채굴 방식 때문에 이런 상황이 변할 것 같지도 않다. 다만 배터리에 사용되는 금속 중 두 번째로 중요한 코발트는 좀 다르다. 시장에 공급되는 코발트의 약 60퍼센트가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는 중앙아프리카 국가 콩고에서 나온다. _ 루카스 베드나르스키, <배터리 전쟁>,  p212/424


  역할 분담이 거의 결정된 미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 안에서 첨단 부문에서 중국의 진입을 막으려는 칩 워. 이에 반해, 일대일로를 바탕으로 해외에 자원거점을 미리 확보하고 막대한 정부 지원으로 전기차와 배터리 산업을 끌어올려 주도권을 장악한 중국에 대항하려는 미국 중심의 공급망, 그리고 독자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EU 등이 펼치는 배터리 워. 첨단 산업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우리는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발견한다. 주식 시장에서 보이는 삼성전자와 에코프로 주가의 (-) 상관관계는 이 같은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라 여겨진다...


 

창은 TSMC가 경쟁자들을 기술적으로 따돌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다른 회사는 스스로 반도체를 설계하는 반면에 TSMC는 중립적 입장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것을 TSMC의 "연합군" 파트너십이라 불렀다. 반도체를 설계하고, 지식재산 사용권 판매로 돈을 벌고, 소재를 생산하고, 장비를 만드는 십여 개의 회사와 일종의 동맹 관계가 되는 것이었다. 이런 회사 중 상당수는 서로 경쟁 관계에 있지만 이들 중 웨이퍼에 칩을 새겨 넣는 일을 하는 곳은 없으며, 설명 시도한다 해도 TSMC를 이길 곳은 없었다. _ 크리스 밀러, <칩 워, 누가 반도체 전쟁의 최후 승자가 될 것인가> , p170/294


 세계 자동차 시장이 전기차 위주로 빠르게 재편되는 가운데, 중국은 국가 주도로 원료/소재/부품 등 전기차 배터리 공급망을 전체적으로 장악해가고 있다. 막강한 자금력을 앞세워 남미, 호주, 아프리카 대륙 일부 지역에 생산이 한정된 리튬, 코발트, 니켈 광산을 속속 집어삼키고 있다... 중국 내 매장된 리튬 원광석의 양은 전 세계 매장량의 10%에 지나지 않지만, 1차 가공품인 리튬 화합물은 중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하고 있다. 이처럼 중국은 배터리 소재 생산에 직접 필요한 1차 가공품 시장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p81)... 배터리 음극재의 핵심소재인 흑연 역시 중국이 전 세계 흑연 생산량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이 배터리 원료 공급망을 싹쓸이하자 유럽과 미국의 마음은 조급해졌고, 이것이 글로벌 공급망의 편재화를 가속하는 계기가 되었다. _ 정경윤 외 2인, <이차전지 승자의 조건> , p82/14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친일파라는 용어는 통시대적인 용어가 아니라 우리 역사의 특정한 시기(기간)와 결합되어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용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 역사에서 일본(정부)의 정책에 동조하거나 협력한 이들은 전근대에도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의 침략에 협력한 조선인들도 있었지만, 당시에는 이들을 친일파라고 부르지 않았다. 통상 학계나 친일파 청산 관련 법령에서 규정하는 "구한말 이래 일제의 국권침탈과 식민 지배와 일제의 대외 침략에 적극 협력한 부류"가 곧 이 책에서 다루는 친일파다. _ 변은진, 박한용, 이용창, <일제강점기 친일세력 연구-조선귀족, 중추원, 친일단체(1910~1937)를 중심으로>, p20/588


 제78주년 광복절. 지난 해부터 3.1절, 광복절 등을 지날 때마다 가슴이 조마조마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이전부터 기념일의 의미를 훼손하는 극우집단의 소동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공공의 장(場)에서 당당하게 목소리를 높이는 현실은 참 견디기 어렵게 만든다. 오늘도 대통령은 광복절에서 광복보다는 건국, 좌익척결, 일본과의 우호,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하는 이해할 수 없는 경축사를 했다. 또 다시 참담해지는 마음.


[관련기사] 제78주년 광복절 경축사 특이점https://www.huffingtonpost.kr/news/articleView.html?idxno=212073


  광복절을 맞아 뉴스타파에서 예전에 만든 <친일과 망각>을 다시 본다. 자신의 현재를 지키기 위해 과거를 잊기를 강요하고, 광복 대신에 건국을, 독립 대신에 반공을 보다 높이 외치는 이들. 시간이 흘러 기억하는 이들도 사라지고, 친일파 대신 친일파 후손들이 부와 권력을 넘겨받은 지금 우리가 친일을 기억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지나간 과거에 발목 잡히지 말고, 현재 화합을 이뤄야 한다는 이들의 목소리가 얼핏 타당해 보이기도 하지만, <친일과 망각>은 우리에게 친일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를 말해준다. 


 '나는 과거문제를 잊기 위해서라도 이걸 묻기 위해서라도 나는 과거 문제를 솔직하게 고백하고 정리하는 그런 이리 빨리 됐으면 좋겠어요.' 


 <뉴스타파 -민국 100년 특집>의 윤경로 친일 인명사전 편찬 위원장의 말은 우리가 왜 친일을 기억해야 하는가를 잘 알려주는 문장이라 여겨진다. 일신의 안녕을 위해 가야할 길을 가지 않은 자와 힘든 길인 줄 알면서도 가야할 길을 간 이들을 살피고 이를 통해 미래에 우리가 가야할 길을 가는 것. 이것이 진정한 광복절의 의미가 아닐까. 그러지 못한 것은 적시에 정리되어야 할 것이 청산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이는 반민특위에만 해당되는 것만은 아니라 여겨진다.




 친일파는 그저 단지 일본과 친한 이들이 아니라, 일제의 흉포한 식민통치에 부역하고 민족을 배반한 자들이다. 청산되지 못한 세력의 계보에 속해 제국의 군인, 경찰, 밀정, 낭인들이 저지른 발길질과 뺨 때리기 정치를 칭송하기에 친일파인 것이다. 과거와 현재를 막론하고 이들은 모두 그런 의미에서의 '친일파'다. 기꺼이 제국의 신민이 된 자들이며, 그 체제를 온몸으로 살아가는 자들이다. 일제 식민지 시대의 친일행위자들만이 아니라, 이들을 옹호하고 이들이 만들어놓은 기득권을 고스란히 쥐고 지금도 그 반역의 역사를 이어나가려는 자들은 모두 다 '친일파'다. '친일파'는 따라서 '역사적 개념'이며 '정치적 개념'이자 역사적으로 정치적으로 소멸되어야 할 세력의 '실명'(實名)이다. _ 오익환외, <반민특위의 역사적 의미를 다시 묻는다>,  p28/284


 일제의 요구는 시기마다 달랐고, 친일파 또한 이러한 요구에 맞춰 각 시기마다 다른 모습으로 등장하고 그 영향도 각각 다르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예컨대 '합병' 이후 일제가 '매국'을 요구할 리 없다. 이때부터는 식민통치에 대한 협력이 본질적인 요구이며, 친일파는 여기에 보조를 맞추었다. 중일전쟁 이후에는 전쟁협력행위가 일제의 핵심 요구였고 여기에 맞춰 친일파들은 내선일체·황국신민화를 부르짖으며 전쟁협력행위에 복무했다. 나라를 팔아넘기라는 요구에는 매국이, 식민통치에 협력하라는 요구에는 직업형 친일이, 전쟁에 조선인들을 동원시키라는 요구에는 전쟁협력형 친일이 각각 대응된다. 매국과 전쟁협력 가운데 어느 것이 죄가 무거운가 하는 식의 법률적 접근은 역사적 현상인 친일문제를 제대로 해명하는 데 부적절할 수 있다. 결국 일제의 침략과 식민통치의 변화 과정과 관련해서 역사적으로 친일파들의 행위를 검토해야 한다. _ 변은진, 박한용, 이용창, <일제강점기 친일세력 연구-조선귀족, 중추원, 친일단체(1910~1937)를 중심으로>, p390/588

 이 모든 사태의 기점(起點)에 바로 반민족적 친일파를 청산하기 위해 만들어진 반민특위(反民特委)의 와해가 놓여 있다. 1949년 6월 6일, 그날이 우리 역사의 운명을 가른 것이다. 이날을 우리는 모두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반역의 역사가 당시 최고권력자인 대통령이라는 자의 명령으로 시작된 날이며, 이후 우리 현대사의 무수한 희생과 굴곡, 오늘에까지 이어지는 왜곡된 역사의식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_ 오익환외, <반민특위의 역사적 의미를 다시 묻는다>,  p28/284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잉크냄새 2023-08-16 13: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기생식물이 숙주가 사라지지 않는 한 생존 기반이 사라지지 않듯 윤짜장 같은 극우가 사라지지 않는 한 친일의 생존 기반도 사라지지 않을 것 같네요.

겨울호랑이 2023-08-16 15:28   좋아요 1 | URL
네 그렇습니다... 다만, 극우가 힘을 받으면서 그동안 숨겨왔던 이들의 속내가 다 드러나면서 미처 알지 못했던 문제점까지 보다 깊이 그리고 널리 알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그레이스 2023-08-18 07: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번 경축사에 당황스러웠습니다. 왜 저렇게 말하지? 했더니 남편이 웃더군요.

겨울호랑이 2023-08-18 08:18   좋아요 1 | URL
이제는 친일 발언이 나올 것으로 예상을 하게 됩니다만, 그래도 막상 들으니 마음이 참담해집니다...
 

  K 배터리는 중국이나 일본이 따라올 수 없는 초격차의 기술력을 갖고 있다. 그 초격차 기술력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무기가 바로 ‘하이니켈 양극재 기술’이다. _ 박순혁, <K 배터리 레볼루션>, p56/236

 

 최근 증권 시장에서 반도체와 함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2차 전지 산업. 많은 개인 투자자들에게  2차 전지 산업에 대해 소개하고 붐을 일으킨 저자와 책은 단연 박순혁의 <K 배터리 레볼루션>라 할 수 있다. 본문은 우리나라 2차 전지 산업이 경쟁국인 일본과 중국이 따라올 수 없는 경제적 해자 또는 초격차를 양극재와 배터리 분야에서 갖고 있으며, 향후 우리나라의 2차 전지 산업이 매우 유망하다는 낙관적인 전망을 담고 있다. 여기에 대해 조금은 다른 시선을 살펴보자. 


 K-배터리의 전성기는 너무 짧았고, 제대로 돈을 벌지도 못했다. 2010년대 10년 동안 K-배터리는 너무 자만심에 빠져 있었다. 핵심 인력들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을 보면서 위기감을 느껴야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덤덤했다. ESS에서 300건이 넘는 화재 사고가 났는데도 '산업이 성장하기 위한 성장통'이라고 하며 가볍게 넘겼다. Northvolt와 같은 젊고, 강하고, 빠른 새로운 경쟁자가 등장하면서 K-배터리의 발목을 잡고 있다. 2020년대에 K-배터리가 지는 태양이 될지, 아니면 다시 떠오르는 태양이 될지는 우리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다. _ 선우 준, <2020년대 전지 산업 전망 하권>, p234/420


 선우 준의 <2020년대 전지 산업 전망>에서 K 배터리의 전망을 다소 불투명하게 바라본다는 점에서 박순혁의 <K 배터리 레볼루션>과 상반된 전망을 내린다. 낙관적인 전망과 비관적 전망. 그렇지만 그 출발점은 같다. 2차 전지 산업 중에서 우리나라가 경쟁력이 있는 부분은 NCMA배터리의 양극재 부분이며, 음극재와 분리막 등의 소재 산업 경쟁력이 부족하며, 리튬 등 자원 확보 문제는 산업의 지속적인 과제가 된다는 점이다.


 이차전지 소재와 관련된 주식은 양극재 주식만 보시라.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전기차의 심장은 배터리, 배터리의 심장은 양극재다. ② 양극재 기술의 진입장벽이 엄청나게 높다. ③ 양극재가 배터리 원가의 50% 정도를 차지한다. ④ K 양극재 4대 업체의 90%급 하이니켈은 독보적 경쟁력을 가진다.  _ 박순혁, <K 배터리 레볼루션>, p40/236


 리튬 이온 전지는 일본, 한국, 중국의 동양 3국의 사업이다. 세 나라 중에서 흑연 음극 기술이 가장 뒤처져 있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흑연 산업 자체가 낙후되어 있어서 전지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포스코케미칼에서 천연흑연을 만드는 것이 한국에서 흑연 음극 사업의 전부다. _ 선우 준, <2020년대 전지 산업 전망 상권>, p367/430


 결국, <K 배터리 레볼루션>과 <2020년대 전지 산업 전망>의 차이는 2차 전지의 주력 제품에 대한 전망 차이에서 비롯된다. 전자는 NCM(니켈-크롬-망간) 배터리가 향후 주력이 될 것으로, 후자는 LFP(리튬-인산-철) 배터리가 주력이 될 것으로 보기에 하이니켈 배터리와 양극재에 경쟁력을 보이는 우리나라 2차 전지의 미래 전망이 여기에서 갈리게 된다. NCMA(하이니켈) 배터리와 LFP 배터리 이들의 장, 단점은 무엇일까. 


  NCMA 배터리와 LFP 배터리를 상호 비교하기 위해서는 분자 혹은 분모를 동일하게 놓고 차이점을 파악하면 된다. 먼저 분모인 무게를 동일하게 놓았을 때 NCMA는 LFP 대비 85%의 에너지를 더 저장할 수 있다. 전기차 배터리에 저장된 에너지가 85%가 더 많으면, 이 에너지로 1회 충전 주행거리를 더 늘릴 수도 있고, 가속력를 더 빠르게 할 수도 있으며, 짐을 더 많이 실을 수도, 실내 공간을 더 크게 만들 수도 있는 등 다양하게 활용이 가능하다. NCMA 배터리와 LFP 배터리의 비교에서 보듯, 결국 에너지밀도가 높은 배터리를 만들어내는 기업이 세계 배터리 산업의 미래를 주도하게 된다. _ 박순혁, <K 배터리 레볼루션>, p38/236


 다소 거칠게 요약하면, NCMA 배터리는 에너지 효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반면,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싸고 화재 위험이 높다. 이에 반해, LFP는 에너지 효율은 상대적으로 낮은 반면, 상대적으로 매장량이 풍부한 철(Fe)을 사용하기에 보다 저렴하고 화재 위험이 적다는 장점이 있다. 


  LFP의 가장 큰 장점은 안전성이다. 플라스틱 캔을 사용한 대용량의 LFP를 보면 LFP 전지가 얼마나 안전성이 우수한지 알 수 있다. 중국의 Winston, CALB, Sinopoly는 100Ah가 훨씬 넘는 용량의 LFP 전지를 만든다. 이렇게 용량을 높여도 발화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LFP 전지의 장점이다. CATL과 BYD의 팩 설계 등으로 경쟁력이 향상되었지만, LFP 전지의 부활은 NCM 전지와 관련이 깊다. 2016년까지 NCM 전지는 성능과 안전성이 균형을 이루고 있어서 발화, 폭발에 대한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_  선우 준, <2020년대 전지 산업 전망 상권>, p50/430


 다시 두 책의 주장을 LFP에 한정시켜 보자면, <K 배터리 레볼루션>에서는 LFP 배터리는 저렴하다는 장점을 가진 비효율적인 배터리로 단정짓지만, <2020년대 전지 산업 전망>에서는 화재 위험이 없는 안전한 배터리로 소개한다. 비효율적인 싸구려 전지 vs 안전하고 저렴한 대중적인 배터리. LFP 배터리에 대한 관점의 차이가 결국 한국 2차 전지 산업의 현실에 대한 동일한 가정에서 끌어낸 서로 다른 결론을 끌어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향후 전기차가 본격적으로 대중화가 시작되고 가격경쟁이 치열하게 되었을 때 LFP가 결국은 주력이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은 끊임없이 K 배터리에 대한 우려를 불러오는 요인이기도 하다.


 2020년대에는 2010년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자동차 시장이 발전할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 업체는 내연기관 자동차를 줄이다가 없앤다는 계획을 앞다투어 내놓고 있지만 전지 기술은 거의 한계에 와 있는 느낌이다. 2017년부터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전기차 화재 사고는 전지 기술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상과 현실의 격차는 더욱더 커져만 가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목표가 계속 내려가면서 새로운 길이 보이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SK온과 같은 후발업체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몸이 무거워진 선발업체는 관성에 의하여 계속 같은 길을 갈 수밖에 없다. _ 선우 준, <2020년대 전지 산업 전망 상권>, p386/430


 K 배터리의 화재 안전성 기술이 최고라는 말에 고개를 갸웃할 분들이 꽤 있을 것이다. LG에너지솔루션이 만든 배터리가 탑재된 차량이 화재 문제 때문에 대규모 리콜 사태가 있었고, 그 과정에서 수조 원을 물어준 것이 언론에 대서특필된 게 불과 얼마 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업계를 들여다보면 내부의 시각은 다르다. '배터리는 경험 산업'이라는 말이 화재안정성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쉽게 말해 '화재도 겪고, 대규모 리콜 경험도 있어야, 그 취약점을 보완해 더욱 안전한 기술을 확보하게 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LG에너지솔루션이 지금 글로벌 넘버원의 화재안정성 기술을 갖게 된 것은 지난 수십 년간 여러 번에 걸쳐 각종 화재 관련 리콜 비용을 부담하면서 조금씩 개선하고 발전해온 덕분이다. _ 박순혁, <K 배터리 레볼루션>, p85/236


 <2020년대 전지 산업 전망>에서는 BEV(Battery Electric Vehicle) 산업 자체에 대해서도 의문을 갖는다. 즉, 배터리를 사용한 전기차가 아닌 하이브리드 차량인 HEV(Hybrid Electric Vehicle)에서 수소전기차로 바로 넘어갈 수도 있다는 전망은 다소 신선하게 다가온다. 이처럼 <2020년대 전지 산업 전망>은 전기차 산업에 관심있는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내용과는 다소 다른 전망과 관점을 알려준다. 이러한 내용이 다소 낯설게 다가오는 것이 사실이지만,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여러 시나리오를 알고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는 분명하게 다를 것이라 생각된다...


 자동차 시장은 엔진이 없는 전기차인 BEV와 엔진이 있는 전기차인 HEV의 경쟁이다. 2010년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BEV가 이기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2020년대로 오면서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HEV가 시장을 확대하면서 엔진의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_ 선우 준, <2020년대 전지 산업 전망 하권>, p314/420


 PS. <K 배터리 레볼루션>과 <2020년대 전지 산업 전망>에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비중으로 나오는 리튬, 코발트 등 자원과 관련해서는 <배터리 전쟁>을 통해 자원민족주의 등의 현실을 자세하게 확인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베스트팔렌 체제의 비범한 부분이자 이 체제가 전 세계에 확산된 이유는 이 조약의 규정들이 본질에 관한 것이 아니라 절차에 관한 것이라는 점이었다. 이 기본 요건들을 받아들인 국가는 국제 체계 덕분에 외부의 간섭으로부터 보호받으면서 자신들만의 문화와 정치, 종교, 국내 정책을 유지할 수 있는 국제 시민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었다(p38)....  베스트팔렌 개념은 다양성을 체제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그리고 각 사회를 현실로 인정하면서 다양한 다수의 사회들을 공동의 질서 추구 작업에 끌어들였다. 이 체제는 현재 국제 질서의 기반으로 남아 있다. _ 헨리 키신저, <헨리 키신저의 세계 질서> , p39


 헨리 앨프리드 키신저 (Henry Kissinger, 1923 ~ )의 <헨리 키신저의 세계 질서 World Order>에서 30년 전쟁의 결과물인 베스트팔렌 조약(Peace of Westphalia, 1648)에 기초하여 국제 정치를 바라보는 책이다. 본문에서 키신저는 근대 유럽의 출발점이기도 한 베스트팔렌 조약에서 '규칙'과 '세력균형'을 특징으로 집어낸다. 규칙이 국제질서의 출발을 의미한다면, 세력균형은 국제질서의 유지/존속을 의미한다. 


 질서의 두 측면인 힘과 정당성 사이에서 절충을 이루는 일은 정치가의 능력의 핵심이다. 도덕적 차원은 생각하지 않고 힘만 계산하면 모든 의견 충돌이 힘의 시험으로 바뀔 것이다. 야심은 쉴 줄을 모르고, 국가들은 변화하는 힘의 배치에 관한 힘든 계산을 하느라 고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한편 균형 상태를 무시하는 도덕적 금지는 십자군이나 도전을 부추기는 무능한 정책으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다. _ 헨리 키신저, <헨리 키신저의 세계 질서> , p410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은 유럽국가들 사이에서 세력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조정자가 필요하다. 유럽 중부에 대해서는 통일 독일제국 등장 이전의 프랑스, 유럽 대륙에 대해서는 영국이 전통적인 의미에서 조정자로서 기능했고, 이 역할은 세계대전 이후 미국으로 넘어갔다. 다만, 세력균형에도 불구하고 체제 내에서의 움직임이 정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끊임없이 세력균형을 무너뜨리려는 신흥국(프로이센, 러시아)의 등장으로 새로운 균형점으로의 역동적인 움직임은 역사 속에서 지속적으로 있어왔다. 이러한 불안정성에도 불구하고 베스트팔렌조약은 유럽 정치에서 하나의 체제로 작동했고, 19세기 제국주의 시대를 통해 이는 세계질서로 확장되기에 이른다. 다만, 여기에는 걸림돌이 있었다.


 베스트팔렌 평화 조약은 동맹국들 간의 구체적인 협정이나 유럽의 영구적인 정치 구조를 지시하지 않았다. 정의에 따르면 세력 균형에는 이념 상의 중립과 변화하는 상황에 대한 적응이 필요하다. 19세기의 영국 정치가 파머스턴 경은 이 개념의 기본 원칙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다. 우리의 이익만이 영원할 뿐이며, 그 이익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_ 헨리 키신저, <헨리 키신저의 세계 질서> , p39


 키신저는 베스트팔렌 조약의 원칙이 세계 원칙으로 적용되기에는 체제의 걸림돌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한다. 힘과 도덕성이 국제질서를 결정하는 주요 요소라 했을 때 중국 문명은 과도한 도덕성의 강조로 폐쇄적인 면을, 이슬람 문명은 지나친 힘의 강조로 지나친 팽창주의를 펼치는 등 차이가 있었기에 국제질서에 베스트팔렌 조약의 특성을 직접 이식시키기에는 한계가 있었음을 지적한다. 세계체제에 걸맞게 베스트팔렌 조약의 원칙은 적용될 필요가 있었다.


  유교는 중국문화에 가까운 정도에 따라 정한 위계질서 상의 속국들로 세계를 분류했다. 이슬람은 평화의 세계, 즉 이슬람의 세계와 이슬람의 세계와 이슬람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사는 전쟁의 세계로 세계를 나누었다. 따라서 중국은 자신들이 이미 질서 정연하다고 생각하거나 도덕성의 함양 정도에 따라 내부적으로 가장 훌륭하게 정돈된 세계를 찾으러 해외에 나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반면, 이슬람은 이론적으로 정복이나 전 세계적인 개종을 통해서만 세계 질서를 수립할 수 있었다. 실제로 두 방법을 위한 객관적인 조건이 존재한 것은 아니었다. _ 헨리 키신저, <헨리 키신저의 세계 질서> , p406


 이러한 상황에서 전후 세계질서에서 강력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미국은 민주주의를 통해 힘과 도덕성을 함께 완비한 조정국으로서 1970년대 폐쇄된 중국을 개방으로 이끌고, 전쟁 직전의 중동을 세력균형의 상태로 만들었음을 키신저는 강조한다. 이처럼 <헨리 키신저의 세계 질서>는 세계 질서를 위해 희생하는 국제조정자로서 미국의 모습과 미국 정치인들이 인식하는 국제정치의 틀이 잘 담겨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있지만, 그것이 과연 객관적 인식인가 하는 물음까지 지우지는 못한다. 


 세력 균형의 절차상의 측면, 즉 경합 중인 당사자들의 도덕성에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는 방식은 위험할 뿐 아니라 비도덕적이었다. 민주주의는 가장 훌륭한 통치 방식인 동시에 영원한 평화를 보장해 주는 유일한 방식이기도 했다. _ 헨리 키신저, <헨리 키신저의 세계 질서> , p293


 국제 사회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맡기 시작한 미국은 세계 질서를 추구하는 과정에 새로운 차원을 보탰다. 대의제에 의한 자유로운 통치라는 개념 위에 설립된 미국은 자국의 발흥을 자유 및 민주주의의 확산과 동일시하면서 이 요인들이 이제껏 세계가 성취하지 못한 공정하고 지속적인 평화를 달성할 것이라 생각했다. _ 헨리 키신저, <헨리 키신저의 세계 질서> , p403


 미국은 다른 국가들이 기본적으로 주위 국가들의 호의에 근거하여 외교 정책을 세움으로써 자신들의 운명을 저당 잡힐 거라고 기대할 수도 없었다. 기본 원칙은 모든 핵심 국가들이 그 질서를 정당하다고 생각한다는 의미에서 힘과 정당성을 결부 짓는 국제 질서를 수립하는 것이었다. 닉슨이 생각하는 국제 질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국에 대한 문호 개방을 자극한 것은 바로 그러한 국제 질서에 대한 비전이었다. _ 헨리 키신저, <헨리 키신저의 세계 질서> , p342


 여기서 한 권의 책을 더해 보자. 찰스 킨들버거(Charles Poor "Charlie" Kindleberger, 1910 ~ 2003)는 <경제강대국 흥망사 1500-1990>를 통해 세계평화, 안정, 성장 등 '공공재(公共財, public goods)'를 공급할 수 있는 의지와 역량을 갖춘 '경제적 선두'를 말한다. 킨들버거는 같은 책에서 경제적 선두는 내외적 요인에 의해 주기적으로 끊임없이 교체되어 왔음을 말하지만, 미국 이후의 경제적 선두에 대해서는 즉답을 피한다. 1990년대 이후 미국의 자리를 이어받기를 원하는 국가가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지만, 미국 또한 물러나길 원치 않을 것이다. 국제질서의 조정자 역할을 자임하지만, 심판이자 동시에 선수로서 국제 질서에서 달러와 석유로 결합된 경제력과 무력을 바탕으로 미국 중심의 규칙과 현 상태의 세력균형을 강요하는 상황 속에서 국제적 리더십의 부재. 이것이 세계대전 이후 미국을 제외한 주변국들이 느끼는 세계질서의 공감대가 아닐까. 

 

 경제적 선두는 국민소득, 성장률, 기술혁신의 수와 그것이 장차 개화될 가능성, 생산성 증가율, 투자 수준,  원료 및 식량과 연료의 통제, 각종 수출시장 점유율, 금 보유고와 외환 보유고, 자국 화폐가 다른 나라에서 교환수단, 계산단위, 가치의 축적 수단으로 쓰이는가의 여부 같은 것 중 어느 하나로 어느 하나로 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이것들과 함께 또 다른 경제적 기준들이 혼합되는 가운데 경제적 우위가 결정되는 것이다... 경제적 선두는 최상의 경우 지배나 헤게모니보다는 세계경제의 리더십에 따른 공공재(公共財, public goods)가 된다. 즉 지도자가 명령하듯이 타자에게 어떻게 처신할지를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지시하고 또 그를 추종하는 것이 바람직함을 설득하는 것이다. _ 찰스 킨들버거, <경제강대국 흥망사 1500-1990> , p28 


 킨들버거는 리더십의 공백, 부재 이후 움직임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조정자의 무력을 가지고 베스트팔렌조약의 조약국 간 상호평등의 원칙 아래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할 경우, 극점체제는 단극(單極)에서, 양극(兩極)으로 다시 다극(多極)으로 움직이는 것은 당연한 자연의 법칙은 아닐런지. <헨리 키신저의 세계 질서>에서 보여지는 미국 정치인들의 인식과 주변국들이 느끼는 세계질서의 흐름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음을 페이퍼를 통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금본위제 시기 영국의 경우에서와 같은 강한 리더십, 최소한 1970년대 초까지의 IMF와 세계은행(미국), 또는 GATT의 보복 위협은 그러한 장애물들을 뚫거나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적절한 힘과 목적을 가진 효율적인 지도자가 없는 상황에서, 이 체계는 '죄수의 딜레마' 게임으로 변형되어, 유용한 방향으로 처음 발을 내딛는 자가 무임승차하는 다른 이들에 의해서 희생된다. 자비로운 전제주의가 가장 효율적인 체계라고 하더라도, 그것 역시 평등한 국가들 사이의 다원적 협력체계 혹은 세력균형에서와 마찬가지로 엔트로피에 종속된다. _ 찰스 킨들버거, <경제강대국 흥망사 1500-1990> , p36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공산당 일당 체제, 중국의  '당-국가 체제(party-state system)' 혹은 '공산당 영도체제(領導體制, leadership system)'가 유지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다섯 가지의 '공산당 통제기제(統制機制,  control mechanism)'가 제대로 작동하기 때문이다.(p10)...  공산당 영도 체제가 '<당장>에 근거한 정치 체제'라고 한다면, 국가 헌정 체제는 '<헌법>과 법률에 근거하여 구성되고 운영되는 정치 체제', 줄여서 '헌법>에 근거한 정치 체제'를 가리킨다. 중국의 정치 교과서가 기술하고 있는 중국 정치 체제가 바로 국가 헌정 체제라고 할 수 있다. 공산당은 이를 근거로 중국도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민주'를 실행한다고 주장한다. 공산당의 다섯 가지 통제 기제 중 첫째는 인사 통제, 둘째는 조직 통제, 셋째는 사상 통제, 넷째는 무력 통제, 다섯째는 경제 통제다. _ 조영남, <중국의 통치 체제 2> , p11/381


  조영남 교수의 <중국의 통치 체제>는 인사, 조직, 사상, 무력, 경제 등 다섯 가지 통제 기둥에 의해 떠받쳐진 '공산당 영도체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공산당원이 우선시 되는 인사정책, 사회 말단까지 촘촘하게 뿌리 내린 소조(小組), 언론 및 홍보활동에 의한 보도 통제, 국가가 아닌 당을 위한 군대, 거대 국유기업을 소유한 당 등은 긴밀하게 결합하여 당 중심의 영도 체제를 뒷받침한다. 여기에 더해 첨단 IT를 바탕으로 한 철저한 감시와 통제는 현대 중국을 이전과는 다른 면에서 중앙-지방의 거리를 좁혔음을 저자는 보여준다. 


 이런 막강한 조직을 운영하기 때문에 공산당은 <당장>의 규정대로 "당(黨), 정(政), 군(軍), 민(民), 학(學)과, 동(東), 서(西), 남(南), 북(北), 중(中)에서 일체(一切)를 영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중국 역사에서 이처럼 촘촘하게 정치조직을 설립하여 전국을 일사불란하게 통치한 왕조(王朝)는 일찍이 없었다. 이런 면에서 공산당 영도 체제는 전통 시대의 어떤 왕조와도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정치 제제라고 말할 수 있다. _ 조영남, <중국의 통치 체제 2> , p327/381


 사실 이전까지 중국은 그 거대한 영토를 아우를만한 충분한 중앙정부의 역량이 부족했기에 중앙권력은 지방권력에게 일정부분의 자치권을 묵인하면서 거대 제국(帝國)을 유지할 수 있었다. 마지막 왕조(王朝)라 할 수 있는 청(淸)도 이 점에서는 예외는 아니어서 중앙은 과거제에 기반한 관료조직이, 지방과 주변 지역은 느슨한 연결과 통합을 통해 제국을 유지할 수 있었다. 


 만주족은 황제 한 명이, 즉 대청의 황제가 천명에 따라서 매우 발전한 관료제의 도움을 받아 모든 '천하'를 지배하는, 중국의 제국 체제에 기반을 둔 왕조를 만들었다. 동시에 청 제국의 지배자들은 만주, 몽골, 티베트 지역의 통합을 밀어붙였다. 이 통합은 위대한 만주의 칸을 티베트에서 온 라마의 정신적 영향력과 연결하고, 만주와 몽골 사이의 혼인 외교로 가족적 결합을 만들고, 몽골에서 지켜온 국가적 알현 의례를 채택하고, 변경지역에서 호혜적 조공에 참여하는 등 다양한 장기적이고 유연한 정책으로 이루어졌다. 청은 이러한 정책들로 몽골의 대칸이 통치했던 스텝의 3분의 2를 통제하게 되었다. 이것은 중국 역사에서 처음으로 북부의 초원이 안보를 위협하거나 중국 제국에 도전하는 원천이 아니게 된 것이었기에 엄청난 업적이었다. _ 클라우스 뮐한, <현대 중국의 탄생> , p43/446


 그렇지만, 이미 19세기 경 서구의 제국주의 침탈 이후 야툽 벡(1820~1877)에 의한 신장(新疆)지역에서의 반란 움직임 등은 청의 지방 통제력이 빠르게 소멸되었음을 보여주었으며, 그 결과 청 중앙정부는 그들에게 높은 수준의 자치권을 보장할 수 밖에 없었다. 


 19세기 후반부에 청 정부가 중국의 여러 지역에서 큰 노력을 들여 위협적인 반란들을 성공적으로 진압했지만, 더 다루기 어려운 장기적인 결과들이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결과의 하나는 역사가들이 중앙에서 지방으로의 '권력 이양' devolutioin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태평천국 이후 청은 성과 지방 당국에 고향에서 일할 수 있는 권리 뿐 아니라 군사작전을 위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전례없는 권리를 인정했다. 관료제가 질서를 회복했을 때조차 중앙정부는 그러한 권리를 결코 완전히 회복할 수 없었다. _ 클라우스 뮐한, <현대 중국의 탄생> , p101/446


 결국, 지방에서의 자치권 인정은 제정(帝政)이 소멸한 이후 지방군벌(軍伐)이 출현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고, 향후 장제스(蔣介石, 1887~1975)와 마오쩌둥(毛澤東, 1893 ~ 1976)에 의해 소멸되기 전까지 중국 전역을 분열의 소용돌이로 몰아넣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혼란기에 태어난 중국 공산당이 지방권력을 방치하게 될 경우 생겨날 위험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민국시기에 출현한 근대 군벌은 과거 중국의 왕조 말기에 나타나곤 하였던 일반적 의미의 봉건적 군벌과는 그 성격을 달리하는 것이었다. 요컨대, 중국에 있어서 근대적 의미의 군벌이란 청 왕조에서 중화민국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군대 영수가 자신의 사적 무력을 동원하여 일정한 지역에 기반을 공고히 한 후 세력균형의 원칙 하에 연합과 분열을 반족하면서 개인이나 또는 집단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정치군사적 성격의 군인집단으로 정의된다. _ 이건일, <군벌 1> , p12/328


 모택동은 1927년 9월 28일 부대가 삼만진(三灣鎭)에 도착하자 그날 저녁 전적위원회 회의를 소집하고 부대 개편을 결정하였다. 모택동은 1천 명에도 못미치는 병력을 1개 연대(團), 즉 공동혁명제1연대로 개편하고, 그 예하는 2개 대대(營)와 1개 특무중대(連) 모두 7개 중대(連)로 편성하였으며, 각급 간부도 다시 임명하였다... 삼만개편 이후 군대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절대적 영도가 확립되고, 공농혁명군의 무산계급 성격이 보장되기 시작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정치와 조직의 측면에서도 공농혁명군은 군별과는 완전히 차별화된 모습으로 태어나면서 중국공산당의 혁명적 정치임무를 수행하는 강력한 도구로 변신하기 시작하였다.  _ 이건일, <군벌 2> , p24/315


 거대한 영역을 통제하기 위한 중국공산당의 통제는 현재까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굴욕의 100년을 넘어 자신들에게 굴욕을 안겨준 서방세계를 누르고 유례없이 높은 수준의 경제성과를 거두고 있는 현 상황에서 중국 공산당의 국가 영도체제는 최선의 정체(政體)로 보인다. 분명히 중국은 약 9천만명에 달하는 거대 규모의 집단과 여기서 엄선된 엘리트 집단에 의해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발전해왔고, 때문에 중국인들로부터 매우 높은 지지를 받고 있고,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공산당의 관점에서 보면, 반부패 운동은 부패가 발생하는 구조적인 원인을 제거하는 해결책이 아니다. 대신 이것은 부패의 확산을 막아 공산당 영도 체제에 대한 국민의 불만을 일시적으로 완화하는 임시방편일 뿐이다. 다시 말해, 부패 발생을 현 체제가 수용 가능한 수준으로 낮추고, 부패를 통제 범위 내로 관리하는 것이 반부패 운동의 목표다. _ 조영남, <중국의 통치 체제 2> , p92/381


 그렇지만, 중국 공산당이 일당 영도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검열과 통제를 중심으로 임시방편에만 몰두하고 이러한 폐단이 점차 쌓이고 문제점이 드러난 후에도 지금과 같은 절대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을까. 최근 <현대 중국의 탄생>을 읽으며 들었던 생각을 <중국의 통치 체제>와 함께 페이퍼로 간략하게 정리해 본다...


 공산당의 인터넷 정책 목표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검열과 통제'다. 공산당이 관리할 수 없는 국외 인터넷 사이트는 접속을 차단하고, 공산당에 비판적인 내용을 유포하는 국내 사이트는 폐쇄한다. 다른 하나는 '선전과 선도'다. 인터넷에 대한 검열과 통제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공산당은 인터넷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공산당의 노선, 방침, 정책을 선전하고, 공산당이 원하는 방향으로 네티즌과 여론을 선도하는 일을 동시에 추진한다. _ 조영남, <중국의 통치 체제 2> , p237/381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시우행 2023-08-06 03: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중국공산당의 존재 목적은 영구적인 권력유지, 이를 위해선 민중들을 눈먼 맹인처럼 만들어 진실을 은폐하고 현실을 호도함으로써 종종 혐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조작과 가짜가 판치는 선동정치를 일삼는 거지요. 현재의 중국 경제위기가 만약 대한민국 땅에서 발생했다면 연일 온갖 시위가 벌어지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중국공산당은 민중들을 눈먼 소경으로 만들고 공안을 앞세워 공포정치를 일삼기에 약자인 민중들은 이 어려움이 그저 지나가기만 기다리고 있는 거지요. 공산당 고위 간부들만 배불리 먹고 살아갈 수 있는 이런 정치구조를 그들은 영원히 유지하고 싶은 겁니다. 인구수는 많은지 몰라도 민중들의 의식수준은 여전히 후진국에 머물러 있는 중국, 경제위기가 제대로 터지면 아마 결코 수습되지 않을 것 같아요.ㅠㅠ

겨울호랑이 2023-08-06 08:06   좋아요 0 | URL
호시우행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중국공산당이 영구집권을 위해 여러가지 통제를 가하더라도 1990년대 이후 개방 정책이 거둔 경제적 성과가 전례 없는 것이기에 민중들은 정치적인 면에서 제약을 크게 개의치 않는 듯합니다. 다만, 과거 중국 공산당이 표방하는 전세계적인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라는 세계 공산주의 혁명 대신, 최근 민족 사회주의로 목표를 선회하고 이로 인해 빚어지는 세계적인 반중국 정서와 갈등으로 초래되는 중국 고립이 현실이라면, 과거처럼 중국공산당의 일당독재가 계속 될 지는 의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당 독재를 추구하는 모습이 과연 중국공산당만이 그런 것인가, 소위 민주주의 정체를 추구하는 국가에서 이러한 부분은 없는 것인가에 하는 의문 또한 함께 갖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