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는 일본에 극악상태였다. 작년 7월에 괜찮다, 끄떡없다, 걱정 말라 하고 말해오던 사이판섬의 일본군은 전멸했고 유황도(硫黃島) 오키나와(沖繩)를 내어놓는 것은 시간문제로 박두해 있었다... 그러나 어쨌든 간에 도조 같은 미치광이 과대망상증환자가 물러선 것만은 불행 중 다행이라 할 수도 있겠다. 본토결전을 외치며 일본 국민 전원의 옥쇄 감행의 위험은 다소나마 엷어졌다 할 수도 있겠고 어딘가 구멍을 찾아내어 구명책을 강구할 가능성이 바늘귀 떨어진 것만큼은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군부의 미치광이들이 어떻게 누비고 지나갈 것인가, 고이소나 요나이도 군인, 칼은 칼로써 망한다는 이치를 말한다는 것은 새삼스러움일 뿐이며 식민지 조선 민족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인 그들 국민 자체가 불운이며 불행이다. _ 박경리, <토지 20> , p263/510 (4/22)


 이번 주 <토지> 독서 챌린지 주제는 '내 마음대로 결말을 예상해본다면?'이다. 독서 챌린지가 끝나가는 시점에서 쉽지 않은 주제라 고민하지만, 나름 전체적인 틀을 잡고 인물 배치를 해보려한다. 태평양전쟁에서 사이판 함락이 1944년 7월이었고, 현재 시점은 1945년 8월 이전의 어느 날, 머지않아 일본이 패망할 것이라는 기대와 불안감이 한껏 고조된 상황이다. 그리고, 곧 맞이할 해방에 서로 다른 처지에서 해방을 받아들이는 이들의 모습을 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논의의 주제는 마침내 한반도로 옮겨갔다. 루스벨트는 비공개 석상에서, 조선의 신탁통치에 영국의 동참을 요구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요청하지 않으면 처칠이 몹시 분개할지 모른다고 대꾸했다. "영국은 틀림없이 불쾌해할 것이오." 스탈린은 이를 드러내고 섬뜩하게 웃으며 말했다. "처칠이 우릴 죽이려들지도 모르지요." 루스벨트의 말에 모두가 놀랐다. 스탈린은 영국의 참여를 요청하는 데 동의한다면서 유쾌하게 말했다. _ 톰 홀랜드, <일본 제국 패망사> , p886/1261


 해방 직전의 전세는 일본에 현저하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중일전쟁에서 전선은 교착상태에 빠져 있었고, 동남아 전선에서는 남태평양 여러 곳에서 고립된 일본군들이 죽어가고 있었으며, 만주 지역의 관동군들은 다른 전선으로 이미 빠져 나간 상황이었다. B-29 등장 이후 일본 본토에 대한 공습이 본격화되면서 일본 경제는 급속하게 황폐화되었고, 이는 식민지 조선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일본 패방으로 막을 내리는 <토지>의 마무리는 해방 이후의 혼란상과도 연결시킬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특히, 이후 민족 분단의 아픔을 표현하기 위해서 서희와 길상의 아들들인 최환국과 최윤국의 인생을 대비시킬 필요가 있어 보인다. 여기에 양현까지 포함해서 이들을 각각 민족주의자, 공산주의자, 아나키스트로 표현해 보면 어떨까.


 미술 선생을 한 최환국은 윤국의 학병 지원 이후 최씨 집안의 당주로서 민족주의자로서 지방에 자리를 잡지만, 최윤국은 군대에서 충칭 지역 전선에 투입된 후 중국군에 포로로 잡혀 마오저뚱 휘하 팔로군 부대에 배속되고, 해방 이후 조선의용군의 한 명으로 북측으로 돌아오고, 한국전쟁으로 남으로 내려오게 된다. 양현은 고향에서 병원 개업 후 공산주의자로 변한 윤국과 대립하는 환국의 모습에서 회의를 느끼고 미국으로 건너가 이후 고국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길상은 일본 패망 이후 석방되어 아들 환국과 함께 지내지만, 아들 환국이 독실한 개신교 신자가 되어 종교적, 예술적으로 갈등을 겪는다. 서희는 이런 가족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늙어간다.

 

 산으로 들어갔던 산 사람들과 이범호는 해방 이후 남조선노동당의 일원으로 활동하다가 지리산으로 들어가 남부군으로 지내며, 일본에서 살던 찬하 부부와 쇼지는 해방 이후 조용히 살 계획을 가지고 제주도로 들어가 4.3을 맞는다. 명희는 사학 재단을 설립해서 학교를 만들고, 명빈과 함께 운영하며 노후를 보낸다. 홍이와 인실은 모두 만주에서 해방을 맞지만, 국공 내전을 겪으며 홍이는 대만으로 이주하고 인실은 중국 본토에 남는다... 대략 이런 구도로 큰 이야기 틀을 잡고 이야기를 전개시키면 어떨까. 다만, 여기서 한 인물이 남는데 이에 대한 배치가 쉽지 않다. 김거복이다.


 그의 친일 행적을 생각하면, 남은 자산을 정리하고 히로시마로 넘어가 피폭 당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으로 결론을 짓고 싶지만, 현실성이 떨어지는 듯하다. 현실적이라면, 아들을 목사로 만들고 개신교 계 신문사를 차린다는 이야기로 가야할까, 그리고, 등장인물 자녀 중 한 명을 사법고시를 패스시켜야 하는데 누구로 할지도 아직은 미정이다. 만약 작품을 이정도 선에서 마무리짓는다면, <토지> 6부를 시작하더라도 큰 무리없는 시작이 되지 않을까.


 독서 챌린지 주제라 두서 없이 뒷이야기를 만들어 보았으나, 이야기가 너무 산으로 가는 것 같다. 이미 있는 인물들을 역사적 흐름에 세워 놓는 것도 쉽지 않은데, 새로운 작품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작업인지 이번 챌린지를 통해 실감한다. 부족한 상상력을 보완한 책들을 마지막에 실으며, 이번주 독서 챌린지를 갈무리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문가들의 결론은 한결 같았다. 대한민국 검찰은 너무 많은 힘을 갖고 있다. 아무리 선한 의지를 가진 정치권력이라도 이 상태로의 검찰을 놓아두면 그 막강한 힘 때문에 다시 검찰을 이용하려는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고, 검찰은 그 틈에서 다시 권력과의 거래를 통해 잇속을 챙기려 들 것이다... 검찰의 기소권은 불공정하게 사용될 때 심각한 문제를 낳는다. 편파적 수사와 부당한 기소의 문제야 더 말할 나위가 없고, 죄 있는 사람을 봐주느라 기소하지 않으면 아예 재판에 회부조차 못하니 이를 시정할 기회를 처음부터 박탈당한다. 검찰의 힘은 기소권보다 '기소를 하지 않는 권한'에서 나온다는 역설이 성립하는 이유다. 이렇듯 검찰은 기소권만 놓고도 많은 문제를 낳을 수 있는데, 우리나라 검찰은 수사권마저 합법적으로 행사할 수 있으니 막강할 수 밖에 없다. _ 최강욱, <권력과 검찰> , p149/160


 최강욱의 <궘력과 검찰>은 저자가 전현직 기자, 검사, 판사, 변호사를 만나 검찰 문제를 여러 각도에서 바라본 책이다. 각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검찰의 모습과 현재 검찰의 문제에 대한 해결 방법도 저마다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검찰 권력'의 위험에 대해 지적한다는 점에서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음을 본문을 통해 확인한다. '하지 않음'의 권한인 기소권과 '찾아냄'의 권한인 수사권을 모두 가지면서, 찾지 못해도 기소할 수 있고, 찾더라도 기소하지 않을 수 있는, 그리고 이를 통해 어느 정도 양형의 범위까지 결정할 수 있는 형사 재판의 알파이자 오메가 권력. 검찰 권력의 현재를 잘 보여준다.


 물론 우리나라 재판 시스템에서 판사가 가지고 있는 권한이 더 크기는 해요. 하지만 판사는 수동적이고 방어적이죠. 자기가 먼저 수사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우리나라의 검찰은 수사권이나 기소권도 독점하고, 형 집행도 하고, 법령 해석도 하죠. 본연의 권한, 즉 수사지휘나 공소유지 차원에서 권한을 행사하는 것 이상으로, 범죄정보 수집이라는 명목으로 일종의 변형된 사찰까지 담당하죠. 권한이 무한정으로 넓혀져 있는 상황이에요. _ 최강욱, <권력과 검찰> , p10/160


 해방 전후 혼란한 상황에서 경찰을 견제할 목적으로 검찰에게 권한을 부여한 이후 점차 강해진 검찰 권력. 이러한 권력을 견제하기 보다 인사권으로 견제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칼(劍)로 활용하려 했던 정치권과 자신들의 특권을 보호하려는 엘리트 의식. 내부적으로는 특수부, 공안부, 형사부 등 서로 다른 부서들 사이에 알력이 있지만, 검찰 권력을 위협하는 외부 세력에 대해서는 일치단결하는 검사동일체(檢事同一體)의 모습에서, 근대 초기 유럽 도시의 부르주아(bourgeois)계급의 단면을 언뜻 발견한다면 무리가 있을까.


 도시들은 여러 산업과 길드를 재조직했고, 원거리 무역, 환어음, 상업회사의 첫 형태들, 부기 등을 발명하거나 재발병했다. 그리하여 도시들은 곧 계급투쟁에 들어가게 되었다. 도시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 "공동체"였지만 동시에 갈등과 형제 살해적인 전쟁을 내포하는, 근대적인 의미의 "사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내부적으로 갈라져 있었으면서도 이 사회는 바깥 세계의 적들에 대해서는 공동으로 대결해야 했다. 그것은 외부의 적, 즉 영주, 군주, 농민 등 자기 시민이 아닌 모든 사람들의 세계에 대항하는 것이었다. 도시는 서유럽의 최초의 "조국"이었으며, 이곳의 애국심은 그 뒤에도 오랫동안 영토국가의 애국심보다 더 일관성 있고 훨씬 더 의식적인 것이었다. 사실 초기의 국가에서는 애국심이라는 것이 아주 느리게 형성되어갔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1-2>, p747


 해방 전후 혼란기 권력은 친일 경찰로부터 한때 '좌익의 온상'으로 불리던 군인들에게 넘어갔으며, 군 조직인 중앙정보부-안기부 등 정보부에서 문민정부 이후 검찰로 차례로 옮겨왔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속에서 확인 할 수 있다. 그리고, 오늘 비정상적으로 커진 검찰의 권력을 정상화시키려는 법안이 원안보다 상당히 후퇴한 상태로 여야 합의된 역사가 이루어졌다.


 10월 항쟁이건 4.3이건 여순사건이건 간에 모든 연구에서 동일하게 나오는 게 있다. 바로 친일파, 특히 친일 경찰에 대한 강한 반감이다. 여순사건과 10월 항쟁은 이것과 아주 직접적으로 관련돼 욌다.(p128)... 당시 외국에선 이승만 정권에 대해 '경찰 통치를 하고 있다. 경찰 국가다'라고 비판했다. 특히 빨갱이몰이 같은 것이 많은 비판을 받고 그랬다. _ 서중석/김덕련,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 , p159/247


 개인적인 아쉬움도 많지만, 70여년의 우리 나라 역사 속에서 절대권력은 없었고,  각 권력이 그 정점에 섰을 때 한때 자신들이 경멸하던 세력에게 그 자리를 넘겨줬음과 함께 18세기 유럽의 도시민들이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자신들의 권리가 외부세계에 의해 결국은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는 역사적 교훈 앞에서 아쉬움을 달래본다. 이번 기회에 정리해야 할 주제가 하나 더 늘어난 것 같다...  


 기본적으로 검찰 권한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정권이 검찰을 이용하려고 했던 거죠. 막강한 권한을 분산시키면 정권 입장에서는 검찰을 이용해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축소되니까 이점이 없어지게 되죠. 독재정권이 검찰을 정권유지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해 권한을 점점 더 많이 부여하고 대신 인사권은 대통령이 쥐고 있었던 겁니다. 검찰의 권한은 그대로 둔 상태로 중립성을 강화하겠다면서 인사권 등을 독립시켜 주면 검찰 자체가 권력기관화되어서 통제가 불가능하게 됩니다.. _ 최강욱, <권력과 검찰> , p119/160


 그 어느 조직보다 생존 본능, 조직보호 본능이 큰 곳이 검찰이에요. 하나의 유기체로서 전체 구성원들이 조직의 보호와 방어를 위해 볼트 너트 역할을 하죠. 과거사에 대한 사과를 절대로 하지 않으려는 검찰의 태도 이면에는 먼저 시인하면 뒤집어쓴다는 생각이 있는 것 아닌가 싶어요. _ 최강욱, <권력과 검찰> , p12/160


 아까 공안검사 얘기를 했는데 사실 검찰에서 지금 큰 문제는 '특수통' 검사예요. '특수통' 검사들이 쭉 연결되어 계파 비슷한 것이 형성되어 있는데, 그런 계파가 생기기 시작한 게 그 무렵이에요. 매우 안 좋은 현상이라고 봅니다. 예전에는 정권에 충성했다면, 지금은 독자적인 정치를 하잖아요. 나름의 정치적 판단을 해서 정권 말기가 되면 실세를 공격하는 것처럼요. _ 최강욱, <권력과 검찰> , p75/16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요즘 젊은 2030세대, 특히 ‘개딸‘ 이라 불리는 이들의 긍정에너지와 에너지가 가져온 변화는 새롭게 느껴진다. 기성세대에 대한 불만을 ‘이유없는 반항‘으로 표출하는 방식에 익숙한 세대들에게 그들의 외침에 더 귀기울이게 되는 이유다.

돌이켜보면, 과거에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는 말에 공감하면서도 성과를 내기 위한 수단 이상으로 생각하지는 못했음을 반성하게 된다. 또한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2030 개딸들의 모습을 보며 자신들도 이같이 대해 달라는 그들의 ‘부드러운 절규‘가 들리는 듯하다. 공부하라며 학원으로 내몰기만 하는 부모세대의 일원으로 고마움을 느끼고, 성찰의 계기를 갖는다.


웨스가 놀라워하며 물었다.
"샴은 저는 다른 조련사는 그 어떤 사람이라도 신뢰할 수 있기 전에는 절대로 말을 듣지 않습니다. 샴과함께 일하면서 저는 제 의도를 삼이 완전히 납득하기 전에는 어떤 훈련도 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죠. 그래서 새로운 고래를 받아들일 때마다 일정 기간 동안은 아무런 훈련도 시키지 않습니다. 신뢰가 생길때까지 저희가 하는 일이란 그저 배가 고프지 않게 해주고 물속에 들어가 같이 노는 것뿐입니다."
"어떤 걸 납득하도록 만든다는 거죠?"
"우리가 그들을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고래들에게 당신에 대한 신뢰가 생기기를 기다린다는 말이군요."
"맞습니다. 그것이 저희가 동물들과 일하면서 가장 큰 원칙으로 삼는 것입니다."

"그런 신뢰와 우정이 아까 보셨던 소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입니다. 고래는 인간과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훈련시기는 방법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걸 표현하죠. 당신은 관리자니까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고객을 만족시기는 것이고, 그것의 핵심적인 요소는 바로 직원들을 만족시키는 것임을 잘 아실 겁니다. 범고래들이 우리를 두려워하지 않고 서로 어울리게 되면 범고래와 우리 사이의 관계가 돈독하다는 사실이 관객들에게도 전달되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전 11시 40분경, 4.19 그날의 중요한 전기가 마련됐다. 오전 11시경 동국대생 2,000여 명과 성균관대생 3,000여 명이 교문을 나서 오전 11시 40분경 국회 의사당에 이르렀다. 그런데 서울대생들이 그곳을 점거하고 토론을 하고 있었다. 그때 "동국대는 경무대로 가자"는 고함과 함께 동국대생들이 중앙청, 경무대 쪽으로 향했다. 서울대 사범대생들과 동성고 학생들, 성균관대생들 등 학생 1만여 명이 그 뒤를 따랐다. 시위의 성격이 이때부터 확 바뀌었다. 굉장히 중요한 역사적 순간이었다. 이들이 세종로를 지나면서 새로운 구호가 나왔다. "이승만 물러가라", "독재 정권 물러가라", 바로 이것이었다. 시위대의 표적은 경무대였다. _ 서중석, 김덕련,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4> , p87/168


 3.15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고등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시위대와 무차별 발포로 '피의 화요일'이 되버린 1960년 4.19 그 날. 부정선거와 독재정치를 규탄하던 이들은 혁명을 통해 독재자의 하야(下野)를 이끌어내며, 일단 혁명의 목적 중 하나를 달성했다. 절차적 민주주의를 완성하려는 앞선 세대의 노력으로 한국 민주주의는 보다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과거에는 부정선거가 아니면 집권할 수 없었던 세력이 이제는 합법적으로 정권을 가져갈 수 있다는 점에서 제도는 성숙했으나, 민의(民意)는 쇠퇴했다고 봐야할 것일까. 4.19혁명 당시 젊은이 또는 어린이들이었던 현 70, 80대와 87년 민주화 운동의 주역이었던 50, 60대 상당수가 보수화되었다는 점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는 것일까.


 4월혁명 50주년을 맞아 <4월혁명 사료 총집>이 나왔는데, 편집위원장으로서 그것을 만드는 데 관여했다. 거기에 중요한 사료가 있다. 연세대 4월혁명 연구반에서 1960년에 만든 목격자 수습조사서다..  그 중 하나가 "이번 4.19 사태를 가져온 동기는 뭣이라고 생각하나", 이것이다. 그것에 대한 응답을 보면 '독재 정치(독단적인 일당의)', '자유당 정부의 실정', '일당 독재', '정치적 부패', '경제적 불평등', 이런 것들이 들어가 있다. 부정 선거는 이보다 꼭 많은 게 아니더라. 부정 선거나 마산의거에 자극받아 4.19를 일으켰다고 보는 것보다 오히려 이게 더 많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3.15부정선거와 4월혁명은 이승만 정권 전체의 상을 보여주는 것이자 그것에 대한 전반적인 단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나. 바로 이런 상태에서 두 차례에 걸친 마산의거, 그리고 4.19, 4.26이 일어난 것이다. _ 서중석, 김덕련,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4> , p99/168


 4.19혁명은 바로 뒤이은 5.16 쿠데타로 너무도 빨리 무너지고 말았다. 그 때문에 혁명의 두 번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고,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기득권 문제는 4.19혁명이 미완의 혁명임을 생각하게 된다... 


 민석홍 서울대 교수가 이승만 정권 붕괴 직후 4월혁명이 혁명인 이유 중 두번째로 든 것이 특권층 문제였다. '4월혁명은 특권적인 재벌이나 기업가층 몰락의 바탕을 마련했다.' 무서운 말이다.... 말하자면 돈을 많이 번 자들이 정상적으로 돈을 번 게 아니라는 광범위하고 강력한 국민 의식, 서민층의 불만이 쌓여 있었고 이게 4.19 때 보이지 않는 강력한 힘으로 발동된 것이다. 그러면서 부정 축재자 처벌을 들고나와서 허정 과도 정권이나 장면 정부를 무척 애먹이게 된다. _ 서중석, 김덕련,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4> , p102/168


 사실, 특권층 문제는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기에 4.19혁명의 한계로 규정짓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기득권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되가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오언 존스 (Owen Jones, 1984~ )의 하층 계급의 문제를 다룬 <차브>와 특권계층의 문제를 다룬 <기득권층>두 권의 책에서 보다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민주적 혁명, 즉 기득권층이 착복한 권력과 권리를 평화적 수단을 통해 되찾는 일을 오랫동안 미뤄지고 있다. 그러한 혁명은 기득권층의 성공으로부터 배울 때에만 가능할 것이다. 공격적인 사상투쟁이야말로 승리의 열쇠임이 증명되었다. 기득권층은 영국 국민의 전폭적 지지를 얻은 바가 없다. 이는 여론조사가 지속적으로 보여주는데, 예컨대 대다수의 영국인은 부자증세를 원하고 공공 및 공익사업을 이윤창출 목적으로 전환하는 조치에 반대하며 정부 주요기관에 대한 신뢰도 심각하게 낮다. 그러나 기득권의 비공식적 구호처럼, '대안은 없다'는 감각을 널리 퍼뜨리는 것이 체념하게 하고 저항의 의지를 약화시키는 엄청난 이념적 승리임이 드러났다. _ 오언 존스, <기득권층>, p276/310 


 기득권을 보호하는 또다른 장치는 대중의 분노가 사회의 상부가 아닌 최하층에게로 굴절되는 현상이다. 언론과 정치인들은 저소득 노동자에게 임금을 적게 지불하는 고용주를 향해 분개하기보다, 호사스런 생활을 한다는 실업수당 청구인들 쪽을 시샘하게 만든다. 연금을 보장받을 수 없는 민간부문 노동자는 여전히 연금이 보장되어 있는 공공부문 노동자를 부러워하도록 선동당한다. _ 오언 존스, <기득권층>, p277/31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이 된다는 말도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것 같았다. 희망이 없는 캄캄절벽, 어디서 빛줄이 새어들어 한을 풀 새날을 기다려본단 말인가. 삶의 의지를 잃은 사람은 비단 성환할매나 박서방뿐만은 아니었다. 최서희도 지금 평사리에 내려와 있었다. 날개 찢긴 나비같이, 거미줄에 걸린 나비같이, 파닥거리지도 않았고 몸부림치지도 않았다. 조용하게 사람을 바라보았다. 만석꾼 살림의 최서희나 나룻배 뱃삯을 선뜻 내놓을 수 없는 박서방이나 눈이 멀어버린 성환할매, 살아보고 싶은 뜻을 잃은 상태는 매일반이었고 그리고 그것은 평등했다. _ 박경리, <토지 19> , p286/532


  작년 7월부터 올렸던 <토지> 독서챌린지도 어느새 2주 후면 마무리된다. <토지 20> 마지막 권을 들어가기에 앞서 지난 독서 여정을 살펴본다. 초반부에 사라진 인물도 있었고, 도중에 등장한 인물도 많았다. 오늘의 미션인 '첫인상과 현재의 인상이 가장 많이 달라진 인물' 을 수행하려다 보니 필요한 작업이기도 했지만. 


 1권에서 철부지 어린애가 19권에서는 노인이 되어버린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인물들이 지나갔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번 미션의 TOP3는 봉선(기화), 명희, 병수로 선정했다. 그 이유를 서술하기 전 <토지 인물 사전>에서 이들의 삶을 옮겨본다.


 봉순 기화(紀花) : 두 살 아래인 서희와 친동기처럼 지낸다. 길상을 사모하나 길상의 내심을 간파하고 간도에 동행하지 않는다. 타고난 재질을 살려 소리를 배우며, 명기 기화로 다시 태어난다... 서희를 만나기 위해 혜관과 용정을 방문한 후 변해버린 길상과의 관계에 절망한다. 이후, 서희로부터 외면당하고 돌아온 상현에게 동질감과 연민을 느껴 그와 함께 생활한다. 상현이 떠나고 난 후 군산에서 홀로 상현의 아이 양현을 낳지만, 허무감을 달래지 못해 아편 중독자가 되어 평양을 떠돈다. 서희의 도움으로 평사리로 돌아와 요양하며 살아가지만 타락한 자신의 모습에 우울함을 견디지 못하며, 정 석과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정리하듯 섬진강에 몸을 던져 자살한다. _  이상진, <토지인물사전> , p88/216


 봉순과 명희에게서 받은 인상의 변화는 외부 요인에서 온 것으로, 이들의 굴곡진 삶이 큰 영향을 미쳤다. 어릴 때는 동생 서희를 감싸고 보호해주는 언니였지만, 길상이 서희의 남편이 되면서 서희로부터 멀어지게 되었고, 결국 아편에 중독된 채 쓸쓸하게 죽을 수 밖에 없었던 봉선. 듬직한 언니에서 마약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던 나약함으로 봉선에 대한 인상이 크게 바뀌었다면, 명희에 대한 인상은 다른 방향으로 바뀌었다. 돈을 보고 선택한 인물이라는 명희에 대한 인상은 용하와의 이혼 후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모습에서 '박제된 학'에서 '창공을 나는 학'으로의 이미지 변화를 느낀다.


 임명희(任明姬) : 임명빈의 동생. 빼어난 용모에 지적인 세련미, 독특한 분위기와 품격을 가지고 있다. 동경에서 알게 된 상현을 사모하나, 거절당한다. 명희를 차지하기 위해 이혼한 조용하와 결혼하여 '박제한 학'처럼 살아간다. 조씨 가문에 대한 죄의식과 강박감, 그리고 조용하의 끝없는 질투와 가학에 시달리다가 애정 없는 결혼생활을 청산하고 자살을 시도한다. 친구 여옥의 도움으로 통영의 보통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며, 시동생 조찬하에 대한 감정을 냉정하게 정리한다. 조용하가 죽은 후 상당한 유산을 분배받는다. 서울로 돌아와 유치원을 하며 말년을 보내며, 도솔암의 젋은이를 위해 거금 5천 원을 희사한다. _  이상진, <토지인물사전> , p166/216


 반면, 병수는 다른 이유로 선정했다. 봉순과 명희와는 달리 그에 대한 인상은 <토지>의 강력한 악인(惡人) 조병수에 의해 가리워진 그림자로 인식되었다. 아버지의 위세에 기대어 서희와 최씨네 재산을 탐하는 인물이라는 편견이 있었으나, 길상과의 대화 이후 아버지와 다른 삶의 모습을 보여주며 오해가 있었음을 생각하게 된다.


 조병수 : 조준구의 외아들. 꼽추의 몸이나 '해맑은 눈동자'에 '천상의 동가잩이 깨끗한 얼굴'을 가졌고, 감수성이 예민하며, 빠르고 정확한 직감을 가졌다. 또한 탐미적인 감각과 인간의 존업성을 헤아리는 의지를 가졌다. 평사리에 올겨 온 후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삼수에게 매질 당하는 삼월을 동정과 연민으로 바라보기도 하며, 서희에 대한 호감을 길상에게 들킨 후 절망하기도 한다... 자신을 버린 아버지 조준구가 영락하고 쇠장한 몰골로 찾아오자, 갖은 학대를 받으며 3년간 그의 병수발을 들고 임종을 지킬 정도로 효자이다. _  이상진, <토지인물사전> , p178/216


 그러고는 말이 뚝 끊어졌다. 환국이와 시우는 그런 침묵이 견디기 힘들었다. 보이지 않느 어떤 것이 자신을 꽁꽁 묶어놓은 듯, 입이 붙어버린 듯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옛날의 그 도도했던 위엄은 사라졌으나 그와는 또 다른, 그것은 다만 침묵이었는데 매우 이상한 힘으로 압도해오는 것이었다. 그것은 나타나지 않는 눈물이었는지 모른다. 나타나지 않는 절망 비통이었는지 모른다. _ 박경리, <토지 19> , p293/532 


 서희는 이러한 주면 인물들과의 긴밀한 연관을 맺으며 <토지> 후반부로 가며 자신과 갈등관계에 있던 인물들과 해원(解怨)한다. 이 같은 서희의 모습 속에서 모든 갈등이 '서희'라는 하나의 용광로에서 융화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작품의 주인공이기에 작품 전체에서 가장 입체적으로 그려진 서희지만, 그 원인은 찾아본다면 봉순, 명희, 병수와의 관계로부터 오는 것이 아닐까. 어느덧 서희는 노년이 되었다.


 인생의 주로(走路)는 정해져 있네. 자연의 길은 하나뿐이며, 그 길은 한 번만 가게 되어 있네. 그리고 인생의 매 단계에는 고유한 특징이 있네. 소년은 허약하고, 청년은 저돌적이고, 장년은 위엄이 있으며, 노년은 원숙한데, 이런 자질들은 제철이 되어야만 거두어들일 수 있는 자연의 결실과도 같은 것이라네. _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노년에 관하여 우정에 관하여> , p44


 인간에게 있어서 현실 속에 존재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시간화하는 것이다. 현재 속에서 과거를 넘어서는 계획들을 통해 우리는 미래를 겨냥한다. 우리의 활동들은 무기력한 요구들로 가득 찬 채 응고되어 과거로 되돌아간다. 나이는 우리 자신과 시간과의 관계를 바꾸어놓는다. 해가 바뀜에 따라 우리의 과거는 점점 더 육중해지고, 반면 우리의 미래는 점점 짧아진다. 노인이란 "살아온 긴 생을 뒤에 갖고 있으며, 앞으로 살아갈 삶의 희망이 매우 한정된 인간이다"라고 정의할 수 있다. _ 시몬 드 보부아르, <노년> , p505


 살아갈 날들이 살아온 날들보다 적게 남은, 이제는 죽음을 바라보는 노인 서희. 그런 서희를 주변에서는 안타깝게 바라보고, 서희는 자신의 과거를 돌아본다. 지난 시절 할머니가 호열자에 걸려 돌아가시기 전 함께 돌아본 최참판의 가세(家勢)를 살펴보던 어린 서희와 그런 자신을 바라보는 서희가 <토지 19>에서 그려진다. 서희가 돌이켜 본 자신의 삶은 어떤 색이었을까.


 서희는 지난 그때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아주 어린 옛날이었다. 할머니와 함께 가마를 타고 갔을 때였다. 논에서 밭에서 일하던 남정네 아낙들, 길가에 서 있던 노인, 그들은 모두 가마를 향해 절을 했다. 바람이 이랑을 만들며 벼를 쓸고 지나가고 있었다. 엉덩이에 쇠똥이 잔뜩 묻은 어미소와 송아지가 물이 말라서 바닥이 드러난 개울가에 앉아 있었다. 물이 괴어 있는 개울가에서 아닥 한 사람과 아이들이 낯을 씻고 있었는데 가마를 본 그들은 기겁을 했다. 마치 메뚜기처럼 개울 건너 메밀밭으로 뛰어가서 숨는 것이었다. _ 박경리, <토지 19> , p307/532 


  봄은 청춘의 계절이고 다가올 결실을 약속하지만 다른 계절들은 그 결실을 베어 거둬들이기에 적합하기 때문일세. 한데 노년의 결실이란, 앞서도 거듭 말했듯이, 전에 이룩한 선(善)에 대해 회상할 일이 많다는 것이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것은 무엇이든 선으로 간주되어야 하네. _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노년에 관하여 우정에 관하여> , p80


제1권 328e  어르신께서는 시인들이 "노년의 문턱에' 들어섰다고 말하는 바로 그런 춘추에 이미 들어서셨기에 여쭙는 것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그것이 어려운 고비인지, 아니면 어르신께서 어떻게 알려 주실 것인지 듣고 싶군요." 

329a "소크라테스 선생! 멩세코, 선생께 내 말씀드리리다. 내가 보기에 그게 실로 어떤 것인지를. 실은 우리 엇비슷한 연배 몇 사람이 자주 한데 모이고 있어서, 옛 속담을 따르고 있는 셈이지요. 그렇게 해서, 우리 중에서 대부분은, 모였다 하면, 젊은 시절의 즐거움을 아쉬워하며, 성적인 쾌락과 관련해서, 그리고 술잔치나 경축 행사, 또는 이런 등속의 것에 속하는 다른 여러 가지 것과 관련해서 회상을 하며 한탄을 하죠. 그러면서 그들은 마치 굉장한 무엇인가를 앗기기라도 한 듯이, 그래서 한때는 잘 살았으나, 이제는 사는 것도 아닌 듯이, 화를 내지요. _ 플라톤, <국가>, p57


 서희의 삶에서 사람들이 차례로 떠났듯, 이제 <토지 20>에서 서희의 인생은 양현과 함께 해방을 맞이하며 영원한 쉼표로 마무리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쉼표를 향해 밖으로 확장되었던 서희는 이제 다시 어린 시절로 회상하며 움츠러 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블랙홀의 죽음과도 같이.. <토지 19>에서 노인이 된 서희를 보며 이제 <토지>를 마무리해야 할 때를 실감하는 한 주의 독서였다...


 적막강산, 고립무원, 한 사람 한 사람 떠나가는 것을 이제는 더이상 참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어머니 곁에서 한 사람 한 사람 떠나갔다는 것은 더더군다나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 언제나 당당하고 위엄에 차 있던 어머니가, 찬 이슬에 날개를 접은 나비같이 숨만 쉬고 있는 것 같은 안방의 어머니, 기가 막힐 일이었다. _ 박경리, <토지 19> , p298/532 

 

 노년은 제2의 어린 시절이라는 점을 환기시킨다. 달리 표현하면 생애 과정이 완전히 순환한 것이다. 그런 표현의 이면에 있는 논리는, 만약 저변의 어떤 논리든 예상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많은 개별 노인이 경험한 신체적/정신적 쇠퇴와 그로 인한 타인에의 의존을 관찰함으로써 부분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것은 오늘날에도 통용되는, 시간을 초월한 이미지이다. _ 팻 테인 외, <노년의 역사> , p7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