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독특한 인지 능력을 갖춘 지혜로운 인간, 즉 호모 사피엔스 Homo Sapiens다. 유창한 언어 능력, 미리 예상하고 추론하는 성향, 복잡한 감정 반응은 그 밖의 생명체와는 확연히 다르다.(p16)... 독특한 인지 능력을 갖춘 호모 사피엔스가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면서부터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했다. 우월한 사냥 능력과 더 정교해진 새로운 무기도 있었지만, 사냥감과 인간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은 것은 무엇보다도 이성적인 사고였다... 관계는 실체가 없으며, 몸짓이나 말, 눈썹과 손끝의 작은 움직임이나 어루만짐으로 드러나는 언어적 표현과 비언어적 표현이 결합된 것이다. 관계는 화려한 건물이나 걸작 예술품보다도 역사적으로는 더 중요한 본질이다. 이런 관계는 과거가 흐릿하게 투영되는 탁한 거울을 통해, 기록과 예술적 표현을 통해, 동물의 뼈와 인공물을 통해 포착된다. 바로 이 점이 고고학의 가장 큰 한계다. 고고학은 주로 인간의 행동이 남긴 물건을 다루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_ 브라이언 페이건, <위대한 공존> , p18/678
브라이언 페이건(Brian M. Fagan, 1936 ~ )의 <위대한 공존 The Intimate Bond: How Animals Shaped Human History>은 인류와 그리고 인류와 함께 한 여덟 동물 - 개, 염소, 양, 돼지, 소, 당나귀, 말, 낙타 - 의 관계를 다룬다. 저자는 본문을 통해 수렵시대 사냥감을 나누던 관계에서, 문명화 과정의 동반자로, 사업의 파트너로서 이들을 바라보는 시각을 제공한다. 저자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인류와 동물들의 관계를 쉽고도 재밌게 서술한다.
농경과 동물의 가축화는 혁명적인 발명품이 아니라 역사의 흐름, 특히 도시와 문명의 등장에 따른 결과물이었다 소는 곧 고기와 뿔과 가죽의 공급원 이상의 존재였다. 살아 있는 재산이었고, 귀한 선물이자 축제의 중요한 요소였다... 기원전 2500년이 되자, 동물은 새로운 역할을 맡게 되었다. 서서히 세계화가 진행되던 세상에서 짐 운반 동물의 혁명이었을 수도 있다. 동물과 인간 사이의 친밀한 관계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궁극적으로 개체 사이의 관계다.... 말과 기수가 하나가 되면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고, 말은 명성과 왕권의 상징으로 귀한 대접을 받았다. _ 브라이언 페이건, <위대한 공존> , p24/678
이와 관련해서 <최초의 가축, 그러나 개는 늑대다 The First Domestication: How Wolves and Humans Coevolved> 는 진화론의 관점에서 인류와 늑대의 협력을 다룬다. 서로에게 득을 가져온 이들의 관계는 오늘날 반려견이 인간과 맺는 관계와는 분명 달랐음을 본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협력적인 먹이 찾기를 한다는 것은 두 종이 서로의 생태학적 적소(ecological niche : 한 생명체가 생태계 안에서 차지한 위치)에서 중요한 측면을 차지한다는 뜻이다. 생물체 집단이 수천 세대에 걸쳐 지속되는 생태학적 유산을 구축할 때, 이 집단은 뒤따르는 세대에 작용하는 선택압을 수정한다. 이렇게 수정된 선택압은 영향력이 큰 특징 쪽으로 작용하며 그 특징이 미래 세대로 퍼져나가도록 한다. 적소구축(niche construction : 생명체가 환경을 적극적으로 변형해 자신에게 유리한 생태환경을 구축하는 것) 과정에서 생태학적 유산이 영원히 전해지는 진화적인 결과가 나타날 때, 이를 생태학적 유전(ecological inheritance)라 할 수 있다. _ 레이먼드 피에로티 외, <최초의 가축, 그러나 개는 늑대다> , p98
데이비드 W. 앤서니 (David W. Anthony)의 <말, 바퀴, 언어 The Horse, the Wheel, and Language: How Bronze-Age Riders from the Eurasian>는 언어와 말(소)등 가축과 청동기 문화를 연결한다. 언어와 가축의 확산의 관계를 찾아가는 내용 역시 다른 관점에서 동물들을 바라보게 한다. 에밀 뱅베니스트 (Emile Benveniste, 1902 ~ 1976)와는 또 다른 관점에서 인도/유럽 문화를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인도유럽사회의 제도·문화 어휘 연구 Le Vocabulaire des Institutions indo-europeennes>도 함께 읽으면 좋을 듯 싶다.
새로운 가축 경제를 받아들이지 않은 사회는 이를 받아들인 사회와 갈수록 달라졌다. 북부 살림 지대 사람들은 우랄 산맥 동쪽 초원에 살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채집민으로 남았다. 그 지속성과 선명성을 감안하면 이런 변경은 경제적인 것뿐만 아니라 언어적인 것으로 보인다. 선 인도/유럽 공통조어족은 동석기 초기 서부의 초원에서 새로운 경제 형태, 즉 목축과 함께 확산했을 것이다. 자매 언어 간 연결(sister-to-sister linguistic linkage)이 가축 사육 경제와 여기에 동반한 신념의 확산을 촉진했을 것이다. 흑해-카스피 해 지역의 초기 동석기에서 주목할 만한 특징은 식단과 장례 상징 두 측면에서 말의 중요성이다. 말고기는 육류 식단의 주요 부분을 차지했다. 바르폴로미예프카와 스예제에서는 뼈 판에 말을 조각했다. _데이비드 W. 앤서니, <말, 바퀴, 언어> , p283
그러나, 인류와 공진화를 통해 함께 문명을 만든 이들과의 관계는 산업화(industrialization)과정을 통해 새롭게 바뀌게 된다. 인간의 노동(labour)만이 자본(capital)에 의해 대체된 것이 아니다. 산업화를 통해 말이 재갈로부터 풀려나고, 소가 코뚜레로부터 벗어나게 되지만 이것이 그들에게 진정한 해방이 되지는 못했다. 전자는 경마 등 스포츠 산업의 상품으로, 후자는 식품으로 파트너에서 사물화되기에 이른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피터 싱어 (Peter Singer, 1946 ~ )의 <동물 해방 Animal Liberation>, <죽음의 밥상 The Ethics of What We Eat> 등이 함께 읽을 만한 책이라 여겨진다.
중세의 농민은 가축과 한 지붕 아래에 살면서 각각의 동물을 다 아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과 동물의 관계는 진정한 동반자 관계였다. 말하자면, 인간의 삶을 지탱해주었고 수천 년 동안 역사의 흐름을 결정했다. 그러나 도시 인구가 꾸준히 증가하고 마침내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인간과 동물 사이의 친밀한 유대 관계는 극단적으로 양분되었다. 어떤 동물은 존중받으며 소유자의 자부심이 되었고, 어떤 동물은 상품으로 취급받았다... 동물의 권리에 대한 관심이 가축 사육장과 실험실까지 확장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현재 인간은 대부분의 동물을 종처럼 부리거나 먹거나 착취하고 있다. 도덕적으로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이 과정을 계속해야 할까? 아니면 변화를 모색해야 할까? _ 브라이언 페이건, <위대한 공존> , p28/678
개인적으로 <위대한 공존>은 도시 문명과 관련하여 고고학 권위자인 브라이언 페이건의 이름만으로 펼쳤던 책이라 다소 아쉬움이 있었다. 그렇지만, 청소년에게는 물론 재레드 다이아몬드 (Jared Diamond, 1937 ~ )의 <총, 균, 쇠 Guns, Germs, and Steel>, 마빈 해리스 (Marvin Harris, 1927 ~ 2001)의 문화인류학 3부작을 읽기 전 참고한다면 보다 깊이 있는 독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페이건의 인류사와 관련해서 <인류의 마지막 항해>, <피싱>, <기후, 문명의 지도를 바꾸다>는 별도의 리뷰에서 다루도록 하며 간략한 페이퍼를 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