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아베 내각의 행보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이 외교, 안보 정책 전환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주의를 끄는 것은 패전 이후 70년 만에 강대국 간 지정학 게임에 가담하려는 움직임이다. 지정학 게임의 요체는 대중 '억지' 전략으로, 한층 더 강력한 미일동맹을 구축하여 부상하는 중국, 특히 중국의 해양 진출을 억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른바 '미국/일본 대 중국' 구도의 안전보장 전략을 말한다. 아베 내각의 지정학 게임은 자민당 보수우파 세력의 국가관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그렇다면 어떠한 국가관을 말하는가. 아베 총리는 정권의 이념으로 '전후체제의 탈각'을 내걸었다. _ 서승원, <근현대 일본의 지정학적 상상력>, p302


 며칠 전 아베 신조(安倍 晋三, 1954~2022) 전 일본 총리의 총격 사망 사건이 너무도 갑작스러운 일이어서 충격적으로 느껴진다. 우리나라와 극한 대립각을 세우던 일본 총리, 야스쿠니 신사(靖國神社) 참배를 비롯한 여러 망언, 대한(對韓) 수출규제로 한일 무역전쟁을 일으킨 장본인. 그에 대한 우리 일반의 인식은 정치인들과는 달리 부정적인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역대 최장기 집권 총리임을 생각한다면, 그가 미친 영향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기에, 그의 사망을 맞아 아베가 총리로 재직하던 시기의 일본 정책을 돌아보는 페이퍼를 작성해본다. 


 중국 칭화대의 류장용(劉江永) 교수가 쓴 논문이 흥미롭다. 작금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의 중국 정책은 1세기 전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내각(1885.12~1901.6)의 그것과 판박이처럼 닮았다는 내용이다. 논리적 비약이 없지는 않지만 수긍이 가는 부분도 적지 않다. 사실 아베 총리가 지향하는 이상적인 국가상(國家像)도 메이지 국가이다. _ 서승원, <근현대 일본의 지정학적 상상력>, p299


 서승원 교수는 <근현대 일본의 지정학적 상상력>에서 아베 내각의 정치적 특징을 외교 안보 전략에서 찾는다. 미국과 철저하게 한 편이 되어,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는  틀을 짜고, 이러한 구도에서 동북아에서 재무장을 실시하여 다시 메이지(明治)시대의 일본으로 다시 태어나겠다는 생각. 조슈 번(長州 藩)의 후예인 아베가 충분히 꿈꾸었을 목표다. 아베 내각의 주된 정책 방향은 '전후 체제 탈각'이다. 해군역사학자인 알프레드 마한(Alfred Thayer Mahan, 1840~1914)의 관점을 수용하여 현대 G2인 미국과 중국을 각각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에 위치시키고, 이들의 갈등을 이용하여 헌법9조를 고치고 재무장하고, 과거 일본제국의 영광을 찾겠다는 일본 극우의 발상을 '전후체제 탈각'의 내용에서 발견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과거 일본이 저지른 죄악과 그에 대한 사과를 부정하는 행태는 이웃인 우리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하다. 


  자신의 집권을 위해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 1941 ~ )이 일본 국민의 무의식에 자리했다고 평가한 헌법 9조를 의식의 세계로 끌어올려 파괴하려는 무리수도 주저하지 않았던 그의 생전을 생각하면, 우리의 분노를 누구보다도 원했던 것은 아베 자신이 아니었을까.


 헌법 9조는 자발적인 의자에 의해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외부로부터의 강요에 의한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후 그것이 깊이 정착되었습니다... 헌법 9조는 일본인의 집단적 '초자아' 이자 '문화'입니다.아이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고 하는데, 문화가 바로 그와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세대의 차이를 넘어서 전해집니다. 그것은 의식적으로 전달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의식적으로 제거할 수도 없습니다.  _ 가라타니 고진, <헌법의 무의식> , p32


 도고 가즈히코(東鄕 和彦 2015)는 아베 총리가 내거는 전후체제 탈각을 대체로 안전보장, 역사인식, 그리고 국가의 재군축이라는 세 측면에서 파악한다. 첫째, 전후 일본에 계승되어 온 평화주의에 대한 반성과 비판에서 자국의 방위와 세계평화를 위해 군사력을 적극적으로 행사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둘째, 도쿄재판에 유래하는 자학적인 역사인식을 배제하고 위안부 문제나 난징사건과 관련하여 사실관계를 넘어서는 국제사회의 일방적 비판에 대해 분명하게 반론해야 한다는 견해이다. 셋째, '이해득실을 초월한 가치'의 경우는 전후 사회에 있어서의 자연과 전통/문화의 상실, 그리고 그 배경으로서 자신과 그 주변을 넘어선 사회전체, 공공(公共)을 중시하는 정신이 결여되어 왔다는 생각이다. _ 서승원, <근현대 일본의 지정학적 상상력>, p304


 일본에 해외에 파견할 군대가 있었다면 국지전이라고 일으켰겠지만, 평화헌법으로 인해 그럴 수 없었던 제약, 대신 외교적으로 이웃나라인 우리와 끊임없는 분쟁을 일으켰던 아베였기에, 그의 죽음에 대해 애통한 마음을 갖기 어렵다. 기껏해야 한 인간이 소멸해간다는 생물학적인 죽음에 동병상련의 마음 정도가 그의 죽음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애도의 한계라 여겨진다. 일본과 우리가 현재 경제전쟁 중임을 생각한다면, 적장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는 게 적절하지 않을 것이다. 정유재란 때도 조선 장군들이 도요토미 히데요시 죽음에 조문을 표했던가. 오히려, 히데요시의 죽음으로 물러가는 적을 하나라도 잡으려 했던 전례를 생각해 본다면, 소위 정치인이라고 하는 이들의 행태는 솔직히 이해되질 않는다.


 아베 정권은 태생부터 한국 비판 세력이었다. 위안부 문제 등 한국의 역사 인식을 비판하면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사람들이 일본의 극우파이자 아베 정권이다. 그 이유는 한국과 중국만이 일본 극우파들의 주장에 강한 반론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극우파로서는 그들의 정체성을 확립시키기 위해서는 강대국인 중국 한수 아래로 생각하는 한국을 세게 때리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그렇게 한국을 때릴수록 극우파들은 일본 내에서 자신들에 대한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_호사카 유지, <아베, 그는 왜 한국을 무너뜨리려 하는가>, p216/382


  요약하자면 아베 내각의 지정학 게임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첫째, 일본의 미일동맹에 대한 경사가 유례가 없을 정도로 심화되었다. 이러한 미일동맹 제일주의는 역으로 전략적 선택의 폭을 좁히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으며, 또한 대중 억지력의 향상 보다는 동북아 안보딜레마를 심화시킬 개연성이 크다. 둘째, 아베 내각에 들어서면서 거의 모든 대외전략이 중국문제로 수렴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최근 혐중/반중 일색의 국내 여론과 중국에 대한 대항 의식은 과거 러시아에 대한 그것과 유사한 측면도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셋째, 지정학 게임과 가치관 외교의 충돌이다. 정치체제결정론적 사고는 외교의 이념화, 관념화를 가져오며 냉철한 국익판단과 전략적 유연성을 필요롤 하는 지정학 게임과는 양립하기 힘들다. 넷째, 과거사를 매개로 한 정체성의 정치는 중국을 이질적 체제로 타자화하는 촉매제로 작용했다. 역사수정주의는 대외관계에서 새로운 외피가 필요했는데 이는 지리적으로는 해양국가, 정치체제로는 민주국가, 그리고 이념적으로는 보편적 가치였다. _ 서승원, <근현대 일본의 지정학적 상상력>, p357


 정치인 아베 신조는 죽었음에도, 최근 심각해지는 경제위기 상황 속에서 그의 경제 정책인 '아베노믹스'는 이후 우리나라에서 자주 언급되지 않을까하는 불안한 마음이 든다. 법인세 감세, 사회보장제도 개악, 민영화 추진, 노동 규제 완화 등으로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새정부정책의 주된 방향이 이미 실패로 입증된 아베노믹스와 거의 일치하기 때문이다. 극우 정치인 아베는 죽었지만, 그가 남긴 부채가 일본 뿐 아니라 남은 우리에게도 짐이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대담한 금융 정책, 기동적 재정 정책, 민간 투자를 불러일으키는 성장 전략인 '세 개의 화살'로 장기간 계속된 엔고와 디플레이션 불황에서 탈출하여 고용과 소득의 확대를 도모한다'는 아베노믹스의 핵심 기조가 모두 언급되어 있다. _ 안베 유키오, <일본 경제 30년사>, p345/456


  왜 아베노믹스는 실패했을까. 확실한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세 개의 화살'이 전부 과녁을 벗어나 일본 경제의 장기침체나 디플레이션의 원인에 닿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본 경제의 장기 침체의 진짜 요인은 소비 증가 부진이었고, 그 배경에는 임금의 하락과 상승 부진이었다. 아무리 금융을 완화시켜도(첫 번째 화살), 그리고 다양한 형태로 기업이 이익을 보도록 배려해도(세 번째 화살) 임금이 늘지 않는 한 일본 경제의 '재생'은 없고 디플레이션에서 탈출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또한 공공투자의 확대(두 번째 화살)는 소비 부진에 의한 수요 부족을 보완한다는 점에서 '세 개의 화살' 중 비교적 목표에 근접한 화살이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재원 문제도 있고 화살 수량에 제한이 있어 효과는 일시적인 것에 그치고 말았다. 둘째, 아베노믹스가 사람들의 삶의 향방에 너무 무관심했고, 임금을 올리는 등 보다 나은 삶을 만드는 정책이 필요했음에도 반대로 소비제 증세, 사회보장제도 개악 등 생활에 해를 입히는 정책을 계속해서 취한 것이다. _ 안베 유키오, <일본 경제 30년사>, p406/456


PS. <일본회의의 정체>에서는 일본 종교계와 결탁한 극우세력의 실상이 자세히 그려진다. 일본 신도가 정치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일본정가의 모습이 그렇게 낯설지 않은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그러길 바라본다...


 신도 종교의 중심적 존재라 할 수 있는 메이지 신궁. 그리고 전후 일본 우파운동에 큰 영향을 미친 다니구치 마사하루가 이끄는 거대신흥종교 '생장의 집'. 양대진영의 지도자들에게 우파계 종교인이 호소함으로써 두 진영의 두터운 지원을 받으며 발족한 '일본을 지키는 모임'. 이 구도는 지금도 여전히 명맥을 잇고 있다. 즉, 일본회의라는 존재의 배후에는 신사본청을 축으로 하는 신도 종교단체와 생장의 집의 그림자가 조직과 인맥에 드리웠고, 어쩌면 자금에도 짙게 드리워져 있을 것이다. _ 아오키 오사무, <일본회의의 정체>, p42/418


 일본회의와 그 핵심, 주변에 있는 '종교심'에 의해 움직이는 종교 우파의 정치사상은 확실히 그러한 위험성 - 전쟁 전으로의 회귀 - 을 내재한다. 자민족 중심주의, 천황 중심주의, 국민주권의 부정, 지나치기까지 한 국가 중시와 인권의 경시, 정교분리의 부정. 신사는 종교가 아니라는 이나다의 논리도 '국가의 제사'로 여겨지던 전쟁 전 국가신도의 논리와 매우 흡사하다.  _  아오키 오사무, <일본회의의 정체> , p384/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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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22-07-10 17:5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일본의 장기 불황을 엔저 정책으로 탈피하려던 아베노믹스가 실패하고 그로 인한 후유증이 심각해서 일본이 더이상 선진국이 아니게 될 것이라며 국가의 경제 정책 실패의 심각성을 일깨워 주는 책이 있더라구요. <일본이 선진국에서 탈락하는 날>입니다. 우리나라 경제도 걱정되구요.

겨울호랑이 2022-07-10 21:29   좋아요 4 | URL
네, 아베노믹스는 여러 면에서 동일한 실질가치를 달러로 환산한 명목가치로 눈속임한 정책이라는 비판이 예전부터 있었음에도 최근에야 비판이 주목받는 듯 합니다... 찾아보니 알려주신 책은 이번에 새로 출간된 책이군요. 오거서님 좋은 책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2022-07-10 2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7-10 2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초란공 2022-07-10 23: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호사카 유지 교수를 처음 알게 되었네요. 앞으로 또 한일 관계에 어떤 변화와 변수가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겨울호랑이 2022-07-10 23:36   좋아요 4 | URL
호사카 유지 교수는 일본계 한국인으로 일본과 관련한 정치현안 논의 시 섭외 1순위 전문가로 알고 있습니다. 공중파 방송과 오마이뉴스에서 깊이있는 논설을 하시는 분이라 참고하시면, 향후 변화의 방향을 가늠하시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페크pek0501 2022-07-12 17: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베 총리 사망한 사건에 꽤 놀랐습니다. 하루아침에 그럴 수가...

겨울호랑이 2022-07-12 18:36   좋아요 1 | URL
건강이 좋지 않아 총리 사임을 했다고 하지만, 갑작스럽게 세상을 뜰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습니다. 일본의 대표적인 극우 정치인의 죽음이 일본을 군군화의 길로 더 빨리 몰아갈 것인지, 아니면 다른 방향으로 선회하게 할 지 전혀 종잡을 수가 없게 하네요. 여러 면에서 혼란스러운 국내외 상황입니다...
 

 현대 경제학자들이 볼 때에는 시장가격과 독점가격이 따로 있다. 즉 독점영역과 "경쟁영역(secteur concurrentiel)"이라는 두 개의 층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부 사람들이 경쟁영역이라고 명명하는 것을 시장경제라고 부를 수는 없을까? 제일 상층에는 독점이 있고 그 아래에 중소기업들에게 맡겨진 경쟁이 있는 것이다. 이 구분은 아직 우리의 논의에서 널리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지만 점차 상층의 것을 가리켜 자본주의라 부르는 관례가 퍼져가고 있다. 자본주의는 갈수록 최상급이 되어간다. 다름 아닌 트러스트, 다국적 기업 등 상층의 영역이다. 소규모 제조업 작업장이나 독립적인 소기업들도 자본주의와 관련을 가지지 않는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2>, p865


 18세기만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광범위한 지상층(1층)의 영역이 존재하는데 최근의 경제학자들의 추산에 의하면 오늘날 가장 산업화된 국가에서도 이런 층이 전체 경제활동의 30-40퍼센트를 차지한다고 한다. 그와 같은 영역은 시장과 국가통제의 바깥에 놓여 있는 밀수, 재화와 서비스의 물물교환, "암거래 노동", 가구의 활동 등을 합친 것이다. "삼분할(tripartition)" 체제, 여러 층을 가진 경제라는 개념은 과거에 아주 중요한 것이었다고 이야기했지만 이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타당한 모델이며 다양한 관찰의 틀이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의 지상층을 고려하지 않은 통계는 불완전한 분석일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의 상층에서 하층까지 모두 아우르는 자본주의 "체제(systeme)"라고 하는 관점은 여러 면에서 수정되어야만 한다. 그와 반대로 자본주의와 그 아래층인 비(非)자본주의 사이에 생동하는 변증법이 작동한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2>, p867


 페르낭 브로델 (Fernand Braudel, 1902~1985)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Civilisation Materielle, Economie et Capitalisme>3권의 전체 결론은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는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경제규칙이 적용되는 다른 세계지만, 동시에 이 세상 경제계를 구성하는 3층 구조의 일부로서 이들을 바라봐야 한다는 전체 결론을 내리기 위해 저자는 어떤 길을 따라왔는가. 각 권의 리뷰를 통해 내용을 정리했지만, 전체적인 맥락 파악을 위해서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La Dynamique du Capitalism>라는 저자 직강보다 더 잘 요약하기는 힘들 것 같다.


 책의 1권의 목적은 심층의 물질생활을 탐색하는 것입니다. 책의 차례에 나와 있는 장들 자체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그러한 힘들을 열거한 것입니다. 즉 물질생활 전반을 만들어내고 밀고 가는 힘이자, 물질생활 너머의 상위 영역까지 포괄해 인간의 역사 전체를 밀고가는 힘이기도 합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18


 물질문명은 경제사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층(層)이다. 오랜 기간 동안 인류의 삶이 이뤄진 배경인 물질생활은 큰 변화없이 일정한 크기만큼의 팽창과 수축을 반복해왔다. 어느 분야에서 이루어진 작은 혁신은 인구과 생산성의 한계로 지속적인 발전으로 이어지기 힘들었기 때문인데, 오랜 물질 생활의 층에서 변화의 모습이 나타난 것은 인구의 증가, 경작방법의 혁신에 따른 농업생산성의 증가, 과학과 기술의 접목 등으로 브로델은 15세기에서 18세기에 이르는 기간 동안 꾸준한 변화가 있었음을 말한다. 


 15세기, 특히 1450년부터 경제가 전반적으로 회복 추세를 보입니다. 이 시기에 농산물 가격은 정체되거나 내려가는 반면, '공산품' 가격은 올라가는 덕분에 도시가 농촌에 비해 빠른 속도로 성장합니다(p34)... 회복세에 돌입한 경제는 16세기에 들어서부터 여러 가지 이유로 복잡해집니다. 결론적으로 16세기의 활발한 상승세는 경제의 최상층인 상부구조가 번창한 덕분입니다. 또한 때마침 아메리카에서 귀금속이 유입된 데다가 엄청난 규모의 어음과 신용을 빠르게 회전시키는 어음 교환 및 재교환 시스템이 이 상부구조를 더욱 부풀렸습니다. 17세기로 들어서면 경제생활의 활력이 지중해에서 광활한 대서양으로 이동합니다. 또한, 경제 활동이 금융 거래에서 다시 상품 거래, 즉 기초적인 교환으로 대거 복귀함으로써 그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습니다(p36)... 18세기는 경제 전반이 가속적으로 팽창하던 세기였습니다. 시장의 교환도구들이 총동원되어 논리적으로 작동하게 됩니다(p37)... 이처럼 소비와 교환이 팽창하던 시기에 도시의 기초적 시장과 소매상점들이 예전 어느 때보다 활발해졌습니다. 마침내 영국의 역사 기록에서 사적 시장 private market이라고 부르는 것이 발달하게 됩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38


 내 생각에 인류의 삶은 절반 이상이 일상생활에 묻어서 굴러갑니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수없이 많은 행동이 뒤죽박죽 누적되고 무수히 되풀이되면서 우리시대까지 이어집니다. 이러한 습관적 행동은 우리가 삶을 영위하도록 도와주기도 하고 옥죄기도 하면서, 우리가 사는 내내 우리를 대신해 결정을 합니다. 이 같은 행동을 유도하는 유인과 충동, 그러한 행동의 전형과 방식, 또 그리 행동해야 할 책임을 살펴보면, 까마득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들이 많습니다. 이처럼 수백 년 전의 과거는 아주 오래된 것이지만 여전히 살아 움직이며 현재로 흘러옵니다. 이 모든 것들이 내가 '물질생활 vie materielle'이라는 편리한 용어로 파악하려고 했던 내용입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16


 18세기에 이르러서야 그동안 넘을 수 없었던 인구의 상한선을 넘게 됩니다. 그때부터 인구는 증가 추세의 정지나 반전 없이 끊임없이 늘어납니다. 18세기까지는 인구가 거의 근접할 수 없는 원 안에 갇혀 있는 양상이었습니다. 만약 인구가 늘어나 그 원둘레에 닿기라도 하면, 인구는 거의 즉각적으로 성장을 멈추고 다시 줄어듭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19


  설탕, 커피, 차 그리고 알코올 같은 식품들은 각각의 역사의 흐름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친 중요한 요인들입니다. 그중에서도 곡물은 예로부터 주된 먹을거리였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합니다. 밀, 쌀, 옥수수는 인류가 아주 오래 전에 선택한 곡물입니다. 이러한 곡물은 각 문명이 수 세기에 걸쳐 수없이 많은 실험을 통해서 선택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21


 기술의 역사는 인간이 일해온 역사와 맥을 같이 합니다. 인간이 하루하루 바깥세상에 맞서 자기자신과 싸우는 과정은 매우 더디게 진보합니다. 기술은 그 더딘 발걸음에 맞춰 진화합니다. 이러한 기술이야말로 가장 밑바탕을 이루는 활동이고, 본질적으로 보수적이며 천천히 변화합니다. 과학은 한발 늦게 기술을 따라가는 상부구조여서 기술과 조응하더라도 그 과정은 아주 느리게 진행됩니다. 옛날부터 온갖 기술과 과학의 모든 요소는 항상 섞이고 전 세계로 퍼지면서 끊임없이 확산되었습니다. 하지만 잘 확산되지 않는 것은 기술의 결합과 조합입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23


 

나는 1권의 마지막 두 장에서 화폐와 도시를 다뤘습니다. 이는 화폐와 도시가 까마득한 옛날부터 일상생활 깊숙이 자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아주 최근에 등장한 근대성의 뿌리 깊은 요소이기도 하다는 점입니다. 화폐와 도시는 수백 년에 걸쳐 가장 일상적인 생활의 뼈대를 이루게 된 구조물입니다. 도시와 화폐는 변화를 촉발하는 동력이면서 동시에 변화를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합니다. 또한 그러한 변화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24


 1권과 2권을 연결하는 매개는 '도시'와 '화폐'다. 농촌보다 앞선 도시의 생산성과 화폐로 대표되는 교환경제로부터 오랜 물질생활의 균형은 파괴되기 시작한다. 물질생활에서 사용가치만 가지던 재화는 시장을 통해 교환가치도 함께 부여받는데, 사용가치와는 달리 교환가치는 시간적, 공간적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유인이 있었다. 여기에 눈을 돌린 일부 상인들은 공적 영역에서 사적 영역으로 시장을 발전시켜 나간다.  베르너 좀바르트(Werner Sombart, 1863~1941)의 사치품과 전쟁무기, 카를로 M. 치폴라(Carlo M. Cipolla, 1922~2000) 의 대포, 범선, 시계가 여기에 해당하는 품목이 될 것이다. 이들을 효과적으로 다루는 관료, 상인들의 모습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도 이즈음이다.


수많은 거점을 통해서, 한쪽에 광활하게 퍼져 있는 생산활동과 다른 쪽에 역시 광활하게 퍼져 있는 소비활동을 연결하는 이른바 교환경제 economie d'echage가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교환경제는 분명 태곳적부터 이어져 왔겠지만, 생산 활동 전체를 소비 활동 전체와 결합하는 지점까지는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교환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했더라도 시장경제 economie de marche는 계속 발전합니다. 그러다가 생산을 조직하고 소비의 방향을 유도하고 통제하게 될 만큼 시장경제가 많은 읍 bourg(邑)과 도시를 연결해가게 됩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26


 시장으로부터 갖가지 유인과 활력, 혁신이 일어났고, 사람들의 주도적 행동과 다각적 인식이 생겼습니다. 또 시장을 통해서 경제 활동이 성장하기도 했고, 나아가 진보가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시장의 바깥에 머무는 것들은 모두 사용가치밖에 없습니다. 시장이라는 좁은 문의 경계를 건너는 것들은 전부 교환가치를 획득하게 됩니다. 이 교환 영역을 나는 경제생활 vie economique이라고 칭하여 물질생황 vie materielle과 대조하고자 했습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27



 시장과 초보적인 교환 행위자들 위에는 좀 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정기시 foire(定期市)와 거래소 Bourse가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정기시는 소규모 판매자와 중소 규모 상인들을 대상으로 열렸는데, 정기시 또한 거래소처럼 큰 규모로 거래하는 거상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조만간 도매상 negociant으로 불리게 되는 이 거상들은 소매 거래에는 거의 관여하지 않게 됩니다. '교환의 세계 Les Jeux de l'echange'로 이름 지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제2권의 앞부분 장들에서는 시장경제의 다채로운 요소들을 기술합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29


 영국의 역사가들은 전통적 시장인 공적 시장과 병행하여 그들이 사적 시장이라고 명명한 시장이 15세기부터 점점 성장하는 현상을 지적합니다. 나는 이 시장을, 기존의 전통적 시장과 다른 차이점을 강조하기 위한 반反시장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새로 출현한 이 시장은 과도한 교란을 유발할 만큼 전통적 시장의 규칙에서 벗어나려고 부단히도 애쓰지 않았습니까?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64


 브로델은 이러한 자본주의적 독점의 형태가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이 바로 '원거리 무역'임을 강조한다. 원거리 무역이라는 경제적 해자(Economic moats)를 구축하고, 무역을 독점(monopoly)해서 한계비용 수준에서 책정되는 시장가격(P=MC)을 시장에 요구할 수 있는 강력한 권력. 결국 Price maker(setter)와 Price taker의 차이를 브로델은 발견한다. 이들의 투자행태는 워런 버핏(Warren Edward Buffett, 1930 ~ )과 피터 린치(Peter Lynch, 1944 ~ ) 정도의 차이가 있다고 보면 무리가 있을까.


 요약하면, 세계의 다른 지역과 비교해볼 때 유럽 경제가 다른 곳보다 앞섰던 것은 거래소와 다양한 신용 형태 같은 우월한 장치와 제도 덕분인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교환 메커니즘과 기법 들 모두 유럽 이외의 지역 어디에나 있었습니다. 다만 지역마다 얼마나 발달했고 어느 정도로 활용됐는가는 많이 달랐습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45


 사실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는 같은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지만, 18세기까지 '시장경제'와 '자본주의', 이 두 유형의 활동은 작은 부분에 불과했습니다. 그 무렵까지 인류가 영위하는 생활의 대부분은 여전히 거대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던 '물질생활' 속에 잠겨 있었습니다(p51)... 시장가격이 물질생활이라는 표면에 닿기는 하지만, 항상 뚫고 들어가는 것은 아니며 깊이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닙니다. 이 점을 두고 15세기에서 18세기까지의 흐름을 보면, 시장경제로 구성되는 활발한 생활공간이 지속적으로 확대됩니다. 이를 보여주고 또 입증해주는 지표는 세계를 가로지르는 연쇄적인 가격변동입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53


 자본주의적 과정은 원거리 무역에서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원거리 무역이란 말은 독일어 'Fernhandel'에서 비롯되었지만 이 최상층의 상거래 활동을 눈여겨본 것은 독일 역사가들만이 아닙니다. 원거리 무역은 원하는 대로 활동할 수 있는 자유 공간 그 자체였습니다. 통상적 감독을 막아주거나 적어도 우회할 수 있을 만큼 멀찌감치 떨어진 거리에서 활동했기 때문입니다(p66)... 높은 이익을 거두는 것은 거래하는 지역과 품목을 갈아타는 것으로 충분했습니다. 이처럼 두둑한 이익에서 상당한 규모의 자본이 축적됩니다. 특히 원거리 무역은 소수의 사람들만 참여했으니 자본 축적이 빠르게 진행됐습니다. 이런 사업에는 아무나 참여할 수가 없었습니다. 반면 지역 내 상거래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참여합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67


 결국, 자본가들은 그들이 축적한 자본의 크기 덕분에 자신의 특권적 지위를 유지하고, 시대의 굵직한 국제 사업을 장악할 수 있게 됩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시절에는 운송이 아주 느려서 큰 거래를 하려면 자본의 회전이 오래 지연되는 것을 감수해야 했기 때문입니다(p70)... 시장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전문화와 분업이 빠른 속도로 심화되고 상품 사회 전체로 퍼져나갔습니다. 그렇지만 꼭대기에 있는 상인 자본가들은 이러한 전문화와 분업에서 벗어나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기능에 세분화되는 과정, 그렇게 진행된 근대화 과정은 애초부터 수직적 위계의 밑바닥에서만 나타났습니다. 수직적 위계의 꼭대기에는 전문화라는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19세기까지 최상위 상인들은 어느 하나의 활동에 국한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71


 이제 요약을 좀 해보겠습니다. .그러니까 교환은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하나는, 낮은 곳에 자리하는 교환이고, 이러한 교환은 투명하기 때문에 경쟁의 힘이 항상 작용합니다. 다른 하나는, 높은 곳에 위치하는 교환이고 섬세하며 지배력을 행사합니다. 이 두 가지 활동은 지배하는 메커니즘도 다르고 행위자도 다릅니다. 여기서 자본주의가 자리하는 영역은 첫 번째 교환이 아니라, 두 번째 교환입니다(p74)... 자본주의의 밑바탕을 이루는 불평등한 힘의 관계는 사회생활의 모든 수준에서 생겨나고 존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해, 최초의 자본주의가 자기 모습을 펼치고 세력을 형성하며 우리 눈앞에 등장한 것은 사회의 최상층에서였습니다.... 실제로는 모든 것이 물질생황의 거대한 등판을 딛고 서 있습니다. 물질생활이 팽창하면 모든 것이 앞으로 나아갑니다. 시장경제는 물질생활을 희생시키면서 그 자신은 빨리 팽창하고 또 자신의 관계망을 확장합니다. 이렇게 시장경제가 팽창할 때 자본주의는 항상 이득을 봅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76


 마지막 3권에서 브로델은 경제계(economie-monde)라는 개념을 통해 자본주의의 속성을 보다 깊숙하게 드러낸다.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전편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책을 고르라면 단연 이매뉴얼 월러스틴(Immanuel Maurice Wallerstein, 1930~2019)의 <근대세계체제 The Modern World-system>일 것이다. 경제적 헤게모니(Hegemony)를 통해 중심부-주변부의 관계를 살핀 월러스틴의 관점과 브로델의 관점은 경제권을 '중심부(core)- 주변부(periphery)'으로 분석했다는 점에서 동일하지만, 차이가 있다면 경제권을 단극(單極)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다극(多極)으로 볼 것인가, 헤게모니의 이동을 이전 패권세력의 이동으로 파악하는가, 아니면 붕괴-생성으로 볼 것인가의 차이로 정리되지 않을까 여겨진다. 


 경제계는 지구의 어느 한 부분에 국한된 경제를 가리키는데, 그 자체로 하나의 완전한 경제 단위를 이루는 경제권을 말합니다. 경제계는 세 가지 특징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첫째, 일정한 지리적 공간을 차지합니다. 둘째, 하나의 경제계에는 언제나 하나의 핵, 혹은 중심이 있습니다. 셋째, 모든 경제계는 계층적인 경제권으로 나뉩니다. 우선, 중심 주위로 '중심부 coeur'가 자리잡게 됩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97


 월러스틴과 나는 이러저러한 논점이나 한두 가지 일반적 명제에서 의견을 달리하지만 이 정도의 차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월러스틴은 16세기 들어서야 유럽 경제계가 구축되기 시작했고, 이것이 유일한 경제계였다고 봅니다. 이와 달리, 나의 생각은 유럽인들이 세계의 전체상을 인식하기 오래전부터 세계는 여러 개의 경제권들로 나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나는 이 경제권들이 그 중심의 구심력과 응집력을 어느 정도 갖춘 것들이어서 복수의 경제계로서 공존했다고 봅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98


 경제계는 하나의 핵, 즉 무게 중심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인 양 기존의 중심이 해체될 때마다 새로운 중심이 생깁니다. 하지만 이러한 중심의 해체와 재형성은 매우 드물게 일어나는 일이어서, 그만큼 더 중요합니다(p101)... 유럽에서 숙명의 시계는 다섯 번에 걸쳐 종을 울렸던 셈입니다. 그때마다 싸움과 충돌이 일어나고 심각한 경제적 위기가 발생하면서 중심이 이동했습니다. 대개 중심이 이동하기 전에 벌써 예전의 중심은 위협을 받게 되고, 몰아닥치는 경제적 악조건이 옛 중심을 무너뜨리고 새 중심의 출현을 확정하게 됩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102


 서유럽은 신대륙에 고대의 노예제를 이전했고, 자신의 경제적 필요 대문에 동유럽에서 재판 농노제 성립을 유도했습니다. 이로부터 다음과 같은 임마누엘 월러스틴의 주장에 무게가 실립니다. 자본주의는 세계의 불평등을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또한 자본주의가 발전하려면 국제 경제 차원의 공모가 필요하다고 임마누엘은 주장힙니다. 자본주의는 매우 드넓은 공간을 권위주의적으로 조직하는 과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만약 제한된 경제 공간에 갇혀 있었다면 자본주의가 그렇게 드세게 성장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또한 다른 지역의 종속적 노동을 이용할 수 없었다면, 자본주의는 전혀 성장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109


 국민 경제 economie nationale는 물질생활의 필요와 혁신을 반영하여 국가가 정치적으로 만들어낸 통일되고 응집된 경제 공간입니다. 그래서 그 공간의 활동이 한꺼번에 동일한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됩니다. 영국만이 일찌감치 이 위업을 달성하게 됩니다(p116)... 프랑스에 대한 영국의 승리는 매우 느리기는 했지만 일찌감치 1713년 위트레흐트 조약부터 시작되었고, 1786넌 에덴 조약에서 크게 앞선 데 이어, 1815년 승리를 확정하게 됩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119


 생산이 급격하게 팽창함에 따른 갖가지 요구사항을 영국 경제의 모든 부문이 해결한 셈입니다. 막히는 병목도 없었고 고장 난 부분도 없었습니다. 이러한 변화에서 결정적이었던 것은 국민 경제 전체가 아닐까요? 더욱이 영국의 면직물 혁명은 밑바닥의 일상생활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산업혁명이 촉발되고 나서 등장하는 산업 자본주의라는 것의 실체를 시장경제와 기초적 경제의 힘과 활력이 받쳐주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산업 자본주의는 그 밑에서 받쳐주는 경제의 활력이 없었다면 성장할 수도 없었고 자기 자리를 잡고 힘을 갖출 수 없었습니다.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이 영국의 산업혁명에 크게 기여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129


 자본주의란 것은 본질적으로 가장 높은 곳의 경제 활동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적어도 그처럼 높은 곳에 올라서려는 경제 활동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같은 자본주의는 그 밑에 두터운 층 두 개 - 물질생활과 촘촘한 시장경제 - 를 겹으로 깔고 앉아, 높은 수익이 나는 영역에서 서식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자본주의를 최상층의 존재라고 보았습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131


 자본주의는 언제나 독점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상품과 자본은 늘 같이 돌아다녔고, 자본과 신용은 항상 외부 시장을 공략하고 통제하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었습니다(p132)... 자본주의의 특징과 강점은 이 술수에서 저 술수로, 이러한 행태에서 저러한 행태로 변화하는 능력입니다. 또 변화하는 국면에 따라 수도 없이 새로운 방법을 강구하는 것도 자본주의의 특징이자 강점이고, 그러한 변화무쌍함의 와중에도 비교적 자본주의에 고유한 본질에 충실하고 유사한 상태를 유지하는 능력 또한 자본주의의 특징이자 강점입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133


 브로델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는 이 정도로 일단 마무리짓도록 하고, 자본주의와 관련된 다른 내용이 있을 때 추가적으로 다루도록 하자. 예를 들면, <어둠의 세계 The Shadow World>와 같은.


 공식적 무기산업과 어둠의 무기산업은 이들이 인정하는 것보다 훨씬 자주, 정기적으로 교류하며 교차한다. 이들의 상호의존은 매우 뿌리 깊으며, 사실상 어둠의 세계를 구성하는 두 날개에 해당한다. 공식적 무기산업이 런던증권거래소라면 비공식적 무기산업은 규모가 작고 규제가 약한 '대체거래소'라고 할 수있다. 또한 그레이마켓과 블랙마켓은 제품의 실질적 수명을 연장하고, 이를 통해 제품의 초기 가치를 높여주는 기능을 한다. 공식적 무기산업에서 취급되기에는 품질이 낮은 제품이나 불량품을 거래할 시장을 형성하기도 한다. 결정적으로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보았듯 이러한 시장에서는 대형 방산업체나 국가가 법적/정치적/외교적 이유로 무기를 판매할 수 없는 개인, 집단, 국가가 고객이 된다. 어둠의 세계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공식적 무기업체의 에이전트, 브로커, 중개인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어둠의 세계는 공식적 무기산업에 비해 작은 규모이지만, 어둠의 세계가 있기 때문에 공식적 무기산업에서 무기 가격이 높게 유지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또한 어둠의 세계가 분쟁을 부추기고, 확대하고, 장기화함에 따라 공식적 무기산업의 새로운 시장이 창출된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_ 앤드루 파인스타인, <어둠의 세계> , p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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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독특한 인지 능력을 갖춘 지혜로운 인간, 즉 호모 사피엔스 Homo Sapiens다. 유창한 언어 능력, 미리 예상하고 추론하는 성향, 복잡한 감정 반응은 그 밖의 생명체와는 확연히 다르다.(p16)... 독특한 인지 능력을 갖춘 호모 사피엔스가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면서부터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했다. 우월한 사냥 능력과 더 정교해진 새로운 무기도 있었지만, 사냥감과 인간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은 것은 무엇보다도 이성적인 사고였다... 관계는 실체가 없으며, 몸짓이나 말, 눈썹과 손끝의 작은 움직임이나 어루만짐으로 드러나는 언어적 표현과 비언어적 표현이 결합된 것이다. 관계는 화려한 건물이나 걸작 예술품보다도 역사적으로는 더 중요한 본질이다. 이런 관계는 과거가 흐릿하게 투영되는 탁한 거울을 통해, 기록과 예술적 표현을 통해, 동물의 뼈와 인공물을 통해 포착된다. 바로 이 점이 고고학의 가장 큰 한계다. 고고학은 주로 인간의 행동이 남긴 물건을 다루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_ 브라이언 페이건, <위대한 공존> , p18/678


 브라이언 페이건(Brian M. Fagan, 1936 ~ )의 <위대한 공존 The Intimate Bond: How Animals Shaped Human History>은 인류와 그리고 인류와 함께 한 여덟 동물 - 개, 염소, 양, 돼지, 소, 당나귀, 말, 낙타 - 의 관계를 다룬다. 저자는 본문을 통해 수렵시대 사냥감을 나누던 관계에서, 문명화 과정의 동반자로, 사업의 파트너로서 이들을 바라보는 시각을 제공한다. 저자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인류와 동물들의 관계를 쉽고도 재밌게 서술한다.


 농경과 동물의 가축화는 혁명적인 발명품이 아니라 역사의 흐름, 특히 도시와 문명의 등장에 따른 결과물이었다 소는 곧 고기와 뿔과 가죽의 공급원 이상의 존재였다. 살아 있는 재산이었고, 귀한 선물이자 축제의 중요한 요소였다... 기원전 2500년이 되자, 동물은 새로운 역할을 맡게 되었다. 서서히 세계화가 진행되던 세상에서 짐 운반 동물의 혁명이었을 수도 있다. 동물과 인간 사이의 친밀한 관계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궁극적으로 개체 사이의 관계다.... 말과 기수가 하나가 되면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고, 말은 명성과 왕권의 상징으로 귀한 대접을 받았다. _ 브라이언 페이건, <위대한 공존> , p24/678


 이와 관련해서 <최초의 가축, 그러나 개는 늑대다 The First Domestication: How Wolves and Humans Coevolved> 는 진화론의 관점에서 인류와 늑대의 협력을 다룬다. 서로에게 득을 가져온 이들의 관계는 오늘날 반려견이 인간과 맺는 관계와는 분명 달랐음을 본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협력적인 먹이 찾기를 한다는 것은 두 종이 서로의 생태학적 적소(ecological niche : 한 생명체가 생태계 안에서 차지한 위치)에서 중요한 측면을 차지한다는 뜻이다. 생물체 집단이 수천 세대에 걸쳐 지속되는 생태학적 유산을 구축할 때, 이 집단은 뒤따르는 세대에 작용하는 선택압을 수정한다. 이렇게 수정된 선택압은 영향력이 큰 특징 쪽으로 작용하며 그 특징이 미래 세대로 퍼져나가도록 한다. 적소구축(niche construction : 생명체가 환경을 적극적으로 변형해 자신에게 유리한 생태환경을 구축하는 것) 과정에서 생태학적 유산이 영원히 전해지는 진화적인 결과가 나타날 때, 이를 생태학적 유전(ecological inheritance)라 할 수 있다. _ 레이먼드 피에로티 외, <최초의 가축, 그러나 개는 늑대다> , p98 


 데이비드 W. 앤서니 (David W. Anthony)의 <말, 바퀴, 언어 The Horse, the Wheel, and Language: How Bronze-Age Riders from the Eurasian>는 언어와 말(소)등 가축과 청동기 문화를 연결한다. 언어와 가축의 확산의 관계를 찾아가는 내용 역시 다른 관점에서 동물들을 바라보게 한다. 에밀 뱅베니스트 (Emile Benveniste, 1902 ~ 1976)와는 또 다른 관점에서 인도/유럽 문화를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인도유럽사회의 제도·문화 어휘 연구 Le Vocabulaire des Institutions indo-europeennes>도 함께 읽으면 좋을 듯 싶다.


 새로운 가축 경제를 받아들이지 않은 사회는 이를 받아들인 사회와 갈수록 달라졌다. 북부 살림 지대 사람들은 우랄 산맥 동쪽 초원에 살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채집민으로 남았다.  그 지속성과 선명성을 감안하면 이런 변경은 경제적인 것뿐만 아니라 언어적인 것으로 보인다. 선 인도/유럽 공통조어족은 동석기 초기 서부의 초원에서 새로운 경제 형태, 즉 목축과 함께 확산했을 것이다. 자매 언어 간 연결(sister-to-sister linguistic linkage)이 가축 사육 경제와 여기에 동반한 신념의 확산을 촉진했을 것이다. 흑해-카스피 해 지역의 초기 동석기에서 주목할 만한 특징은 식단과 장례 상징 두 측면에서 말의 중요성이다. 말고기는 육류 식단의 주요 부분을 차지했다. 바르폴로미예프카와 스예제에서는 뼈 판에 말을 조각했다. _데이비드 W. 앤서니, <말, 바퀴, 언어> , p283 


 그러나, 인류와 공진화를 통해 함께 문명을 만든 이들과의 관계는 산업화(industrialization)과정을 통해 새롭게 바뀌게 된다. 인간의 노동(labour)만이 자본(capital)에 의해 대체된 것이 아니다. 산업화를 통해 말이 재갈로부터 풀려나고, 소가  코뚜레로부터 벗어나게 되지만 이것이 그들에게 진정한 해방이 되지는 못했다. 전자는 경마 등 스포츠 산업의 상품으로, 후자는 식품으로 파트너에서 사물화되기에 이른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피터 싱어 (Peter Singer, 1946 ~ )의 <동물 해방 Animal Liberation>, <죽음의 밥상 The Ethics of What We Eat> 등이 함께 읽을 만한 책이라 여겨진다. 


 중세의 농민은 가축과 한 지붕 아래에 살면서 각각의 동물을 다 아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과 동물의 관계는 진정한 동반자 관계였다. 말하자면, 인간의 삶을 지탱해주었고 수천 년 동안 역사의 흐름을 결정했다. 그러나 도시 인구가 꾸준히 증가하고 마침내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인간과 동물 사이의 친밀한 유대 관계는 극단적으로 양분되었다. 어떤 동물은 존중받으며 소유자의 자부심이 되었고, 어떤 동물은 상품으로 취급받았다... 동물의 권리에 대한 관심이 가축 사육장과 실험실까지 확장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현재 인간은 대부분의 동물을 종처럼 부리거나 먹거나 착취하고 있다. 도덕적으로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이 과정을 계속해야 할까? 아니면 변화를 모색해야 할까? _ 브라이언 페이건, <위대한 공존> , p28/678


 개인적으로 <위대한 공존>은 도시 문명과 관련하여 고고학 권위자인 브라이언 페이건의 이름만으로 펼쳤던 책이라 다소 아쉬움이 있었다. 그렇지만, 청소년에게는 물론 재레드 다이아몬드 (Jared Diamond, 1937 ~ )의 <총, 균, 쇠 Guns, Germs, and Steel>, 마빈 해리스 (Marvin Harris, 1927 ~ 2001)의 문화인류학 3부작을 읽기 전 참고한다면 보다 깊이 있는 독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페이건의 인류사와 관련해서 <인류의 마지막 항해>, <피싱>, <기후, 문명의 지도를 바꾸다>는 별도의 리뷰에서 다루도록 하며 간략한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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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7-08 18: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늘 호랑이님 서재를 두 번 방문하네요 ㅎㅎ 축하드립니다 *^**

겨울호랑이 2022-07-08 23:25   좋아요 2 | URL
미니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주말 되세요! ^^:)

얄라알라 2022-07-08 18: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축하드립니다^^

겨울호랑이 2022-07-08 23:25   좋아요 2 | URL
얄라얄라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주말 되세요! ^^:)

그레이스 2022-07-08 18: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축하드려요

겨울호랑이 2022-07-08 23:26   좋아요 2 | URL
그레이스님 감사합니다. 좋은 밤 되세요! ^^:)
 

 한국전쟁은 그 기원과 원인, 결정과 발발, 전개와 귀결의 모든 면에서 국제적 수준, 동아시아 수준, 국내적 수준의 세 층위로 나타났다. 전쟁의 기원은 이 세 수준으로 인해 놓였고, 전쟁의 결정 역시 철저하게 그러하였다. 따라서 전쟁의 전개와 귀결은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이 세 층위의 밀접한 유기적 관련 속에 한국전쟁은 위치하였다. 각각, 첫번째 층위는 미소대립과 냉전이었고, 두번째 층위는 중국혁명과 일본의 존재, 그리고 세번째 층위는 남북갈등과 각각의 내부정치와 사회의 수준이었다. _ 박명림,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1> , p64


 박명림(朴明林, 1963 ~ ) 교수는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에서 한국전쟁을 여러 층위로 구분하여 분석한다. 기존의 남북한 뿐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G2로 각각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을 대표하는 두 강대국 미국과 소련의 이익과, 국민당-공산당으로 내전을 겨우 봉합한 중공과 패전국으로 전락한 일본의 이해관계를 함께 고려했을 때 비로소 전쟁의 진면목이 보인다는 것이다. 


 분석의 영역과 관련하여 우리는 네 가지 요소의 분리와 종합을 시도하고자 한다. 즉, 남한과 북한의 사회를 분석하면서 우리는 정치, 경제, 이념과 멘탈리티, 군사영역의 분리와 종합을 시도한다(p77)... 이 네 영역 중 가장 중심적인 문제는 역시 정치이며 48년 질서에서 압도적으로 우월하였던 요소는 일부에서 말하는 이념도 경제도 아니었고 바로 정치였다. _ 박명림,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1> , p80


  저자는 이러한 한국전쟁의 지층에 대해 4가지 영역으로 구분하여 분석을 수행한다.   구체적으로, 정치, 경제, 이념, 군사 영역의 4부분에 대해 남북 체제가 구성원들의 지지를 받기 위한 여러 노력들을 교육, 토지개혁 등의 이슈를 통해 살펴본다. 이러한 체제들의 노력은 균열과 압력으로 작용하면서 체제를 변화시키는데, 저자는 해방 전후 한국전쟁에 이르기는 5년의 기간 중 변곡점을 1948년으로 본다. 


 필자가 이해하기에 한국전쟁의 연구를 위해서는 다음의 세 준거들이 필요하다. 즉, 농민, 민주주의, 그리고 민족주의가 그것들이다(p52)... 우리의 초점은 국가(state)와 정치사회(political society), 시민사회(civil society)의 관계에서 밑으로부터의 참여와 의사의 대표성 여부에 놓여 있다. 당연히 소련점령국과 미국점령군, 남북한 국가의 성격, 정당체제와 선거의 과정과 방법, 체제반대 세력에 대한 수용과 배제의 방법과 범위, 갈등의 정도와 수용 여부, 자율적 결사의 허용과 탄압의 문제 등에 초점이 놓일 것이다. _ 박명림,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1> , p56


 우리가 세번째로 설정한 방법론은 균열(cleavage) 또는 갈등의 구조와 위계라는 문제틀이다. 여기서 말하는 균열은 특정의제를 둘러싸고 관계된 행위 주체, 이를테면 국가와 국가, 집단과 집단, 계층과 계층 사이에 수직적 수평적으로 벌어지는 힘과 정책의 길항관계를 지칭한다. 그리고 그것이 구조라는 지형위에 어떻게 놓여 있는가 하는 측면을 포함한다(p76)... 정당성을 두고 대립하는 두 국가를 둘러싼 균열의 수준과 위계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국가(state)와 체제(regime), 정부(government)의 구별이다. _ 박명림,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1> , p76


 1948년 이전에 서울을 수도로, 태극기를 국기로 인식하는 공감대를 남북한이 공유했다면, 이후에는 각각의 체제를 국가로 인식하는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이러한 인식은 38선을 임시구분선에서 분할선으로 받아들이는 변화이기도 했다. 저자는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에서 한국전쟁을 내전, 지역전, 세계대전의 층위로 구분하고, 정치, 경제, 이념, 군사 영역에서 사회 체제 - 국가, 사회공동체 - 사이의 균열과 영향을 분석한다. 다만, 이러한 균열로 인한 변화는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았다. 한 체제의 내생변수(endogenous variable)는 다른 체제의 외생변수(exogenous variable)로 영향을 미쳤다. 구체적으로, 북한의 토지개혁은 남한의 토지개혁에 영향을 미쳤고, 남한의 토지개혁 결과 또한 북한 사회에 영향을 끼쳤다. 토지개혁 뿐 아니라 거의 모든 사회분야에 있어 경쟁과 영향관계는 한국전쟁 발발 직전까지 고조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전쟁 직전의 배경을 형성하는 것이 아래로부터의 움직임이라면, 전쟁을 결정짓는 것은 결국 정치의 영역이다. 이와 관련된 정치적 리더십의 관계가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1>에서 그려진다면,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2>에서는 농민을 중심으로 한 대중의 입장에서 바라본 한국전쟁의 배경이 서술된다. 이번 페이퍼에서는 전체적인 책의 얼개를 살펴보는 것으로 하고, 다음에는 보다 상세하게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자...


 1948년이전의 대립과 48년 이후의 대립의 근본적인 차이는 여기에 있었다. 이제는 정통성의 배타적 독점을 주장하는 '두 국가의 공존상태'가 도래한 것이다. 이 둘은 전부 사회적 갈등이라는 내적 계기가 냉정이라는 외적 계기를 매개로 하여 등장한 것이었다. 이 중첩으로 인하여 민족의 분할선으로서의 38선은 이미 세계의 분할선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38선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체제에 의한 한국의 분할과, 같은 기준에 의한 동아시아와 세계의 분할의 중첩이었던 것이다. _ 박명림,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1> , p63


 전쟁은 모든 정치적 선택 중에서 두 행위주체에 의해 가장 밀접히 맞물린 채 발생하는 사건이다. 따라서 어느 일방의 인식과 정책, 사회구조만을 분석하는 것은 부분적인 설명일 수밖에 없다. 두 쪽 모두를 동시에 분석하는 것은 부분적인 설명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졸버그(Aristide Zolberg)가 말한 바 있는 '대쌍관계동학'(對雙關係動學, interface dynamics)이라는 개념을 빌어 1945년에서 50년, 특히 필자가 '전간기'(戰間期) '48년 질서'라고 부르는 1948년에서 50년 사이의 남한과 북한의 관계를 분석할 수 있다고 본다. 대쌍관계동학을 이용한 접근은 남한과 북한 각각에 대한 독립적 이해와 그것들 사이의 관계의 다이내미즘을 분석하는 것을 말한다. _ 박명림,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1>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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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06-24 11:0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책도 읽으시는군요. 읽은지 한 3-4년쯤 된 것 같은데 저도 재독하려고 찜한 책입니다. 겨울호랑이님이 이 책에 대해서 어떤 소감을 풀어내실지 궁금해집니다^^

겨울호랑이 2022-06-24 13:31   좋아요 4 | URL
여러 면에서 박명림의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은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과 비교되면서도, 차이가 있다 생각됩니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이 외부적으로는 얄타체제와 같은 세계체제적인 측면에서, 내부적으로는 일제시대 식민지 상황으로부터 시작해 서서히 관점을 한국전쟁으로 모아간다면, 박명림의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은 해방 전후로부터 1950년 6월 25일 38선에서 시작된 한국전쟁까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쓰나미를 표현할 때 전자가 대륙이동과 해류 등 기후적인 면에서부터 그 원인을 찾는다면, 후자는 쓰나미 전후 변화 상황을 보다 세밀하게 그렸다고 해야할까요... 한국전쟁의 거시사와 미시사. 이렇게 두 책들을 비교하게 되네요...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
 


 핼버스탬은 전후 한국 역사에 깊은 족적을 남긴 1945~48년의 미군정을 단 한 문장으로 언급한다. 그 전쟁의 잔혹한 학살과 미국의 소이탄 공습에 관한 내용은 전혀 없다. 대신 한국은 "고래싸움에 등 터진 새우"였고,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어려워 보이는  한 무리의 지도자를 가진 하찮은 나라였다. <콜디스트 윈터>는 미국 특유의 통속적인 장르에서 최고의 책으로 꼽을 만하다. 이 책이 설명하는 전쟁은 한국이나 그 역사에 관해 거의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고, 고작 두세 명의 한국인을 언급하며, 한국인과 중국인이 훨씬 더 많이 참여했던 전쟁에서 미국의 경험에 초점을 맞추고, 선한 편과 악한 편에 관한 1950년대의 고정관념들에 의문을 제기하지 못한다. _ 브루스 커밍스,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 p118


 데이비드 핼버스탬 (David Halberstam, 1934 ~ 2007)의 <콜디스트 윈터 The Coldest Winter>에 대한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 1943 ~ )의 평가는 비판적이다. 미국의 관점에서만 바라본 '한국전쟁'이며, 한국전쟁에 정작 한국은 없다는 커밍스의 비판은 충분히 납득된다. 그렇지만, <콜디스트 윈터>에는 다른 한국전쟁 관련 책들이 미처 다루지 못한 부분이 담겨있다는 점에서는 비판이 지나친 부분이 있어 보인다. 


 한국전쟁에는 단층선(斷層線)이 있었다. 단층선의 한 면은 야전부대가 직면하는 전장의 위험과 현실의 세계고, 다른 면은 안일한 명령만 쏟아내는 도쿄 사령부에 있는 환영의 세계였다. 단층선은 군단과 사단 사이에도 있었다. 군단은 도쿄 사령부에서 스며 나오는 맥아더 장군의 열의를 느끼고, 사단은 적의 공격에 노출된 연대와 예하 부대의 취약성을 느꼈다. _ 데이비드 핼버스탬, <콜디스트 윈터> , p76/1912


 <콜드스트 윈터>에서 저자는 한국전쟁의 단층을 말한다. 이 단층은 공산진영과 자유진영의 틈이 아니라, 미군(美軍)을 구분하는 선이다. 이 선의 한 편에는 장진호(長津湖)에서 혹독한 추위와 중공군과 싸워야 했던 야전군인이 있다면, 다른 편에는 워싱턴 행정부와 싸우는 정치군인, 더글라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 1880 ~ 1964)가 위치한다. 도쿄 책상 위에서 전황을 내려다보며 아시아의 맹주로 처신하는 맥아더와 대통령 트루먼(Harry S. Truman, 1884 ~ 1972)의 대립을 생생하게 그렸다는 점에서, 그리고 우리에게 영웅으로 알려진 맥아더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콜디스트 윈터>는 분명 나름의 가치가 있는 책이다. 


 트루먼과 맥아더는 동일한 선상에서 같은 목표를 바라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자신들이 치러야 하는 전쟁에 대해서도 승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얼마나 많은 국가 자산을 투입해야 하는지 생각이 전혀 달랐다. 1950년 6월 25일부로 대통령과 장군으로서 이들의 삶이 함께 엮였다. 미국 역사에서는 보기 드물었다. 트루먼은 맥아더를 통제하지 못해 대통령의 위엄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고, 맥아더는 대통령직을 제대로 존중하지 않음으로써 역사적으로 자신의 위상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_ 데이비드 핼버스탬, <콜디스트 윈터> , p342/1912


 사실 여러 해 동안 맥아더가 자신의 추종자들을 현혹했던 한 가지 비법은 진실을 숨기는 것이었다. 그는 자기 입장이나 대의명분에 도움이 될 때에만 진실을 인정했고 자기가 추구하는 목표에 방해가 될 때에는 가차 없이 저버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바로 그 점이 맥아더의 발목을 잡는 덫이었다. 그는 언제나 자기가 하는 말과 행동이 옳다는 식이었지만 막상 진실과 견주기 시작하자 진퇴양난에 빠지고 말았다. _ 데이비드 핼버스탬, <콜디스트 윈터> , p1666/1912


 다만, 커밍스의 관점에서처럼 한국전쟁을 내전의 측면에서만 바라본다면, <콜디스트 윈터>는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에 빠진 책에 불과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한국전쟁의 성격을 내전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 <콭디스트 윈터>의 관점은  그와 다르다.


 기억해야 할 점은 한국전쟁이 내전이었으며, 진정한 비극은 전쟁 그 자체가 아니었다. 순전히 한국인들 사이에서 벌어진 내전이었다면 식민주의와 민족 분단, 외세 개입으로 초래된 엄청난 긴장을 해결했을지도 모른다. 비극은 전쟁이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전 상태로 돌아갔을 뿐이며, 그저 휴전을 통해 평화를 유지했을 뿐이다. _ 브루스 커밍스,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 p72


 <콜디스트 윈터>에서 저자는 한국 전쟁을 다소 복합적으로 바라본다. 미국과 서구 세계에게 한국전쟁은 '축소된 세계대전'인 반면, 북한, 중국, 소련의 관점에서는 '내전'이었다는 것이다. 이같은 전쟁에 대한 입장 차이는 전선이 고착상태에 빠진 이후 마무리를 어렵게 하는 요인 중 하나가 된다.


 미국과 서구 세계에서 한국전쟁은 단순한 내전이 아니라 한 나라가 다른 나라의 국경을 넘어 일방적으로 공격한 '침공'이었다. 때문에 예전에 히틀러의 침공을 막지 못해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던 쓰라린 역사를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관점은 중국과 소련 그리고 북한에게는 놀라운 것이었다. 전쟁을 시작한 시점에서는 1945년에 한반도를 남북으로 분할하기 위해 미국과 소련이 국경처럼 그은 38선은 안중에도 없었다. (몇 달 후 미군과 유엔군은 38선을 넘어 북진하면서 똑같은 상황이 전개되었다.) 이들의 관점에서 6월 25일에 자행한 북한의 남침은 중국에서는 막 끝났지만 인도차이나에서는 진행 중인 것과 동일한 '끝나지 않은 내전'에 불과했다. _ 데이비드 핼버스탬, <콜디스트 윈터> , p144/1912


 분단 상황이 사회와 문화마저 분열시켰으며 남과 북 어느 쪽이든 모두 비통한 시대의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이는 엄청난 내부 분열을 불러와 한국전쟁 동안에도 지속적으로 충돌했다. 한국전쟁은 단순히 국경을 넘어 북한이 남한을 침공한 도발 이상의 의미였다. 식민 지배를 거치면서 십수 년 동안 쌓였던 내부 분열과 모순 그리고 오랜 정치 갈등이 터져 나온 위험한 상황이었다. _ 데이비드 핼버스탬, <콜디스트 윈터> , p192/1912


 <콜디스트 윈터>는 한국전쟁에서 휘브리스(hybris)에 빠진 지도자들과 이들이 저지른 실수들이 끝없이 펼쳐진다. 마치 점수만 보면 8-7 케네디 스코어로 진행되는 야구경기에서 막상 내용을 놓고보면 끝없는 실수로 벌어진 타격전 하이라이트를 보는 듯하다. 어쩌면 이러한 부끄러운 실수들이 당사자들에게 한국전쟁을 잊도록 만든 것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전쟁은 어떤 식이든 일종의 계산 착오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하지만 한국전쟁은 양측 군대가 내린 모든 결정이 하나같이 잘못된 계산에 근거한 것이라는 점에서 독특했다. 우선 미국은 극동방어선에서 한국을 제외시킴으로써 다양한 공산주의 세력이 행동을 개시하도록 자극했다. 결국 소련은 미국이 개입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고 김일성에게 남한을 침략해도 좋다고 허락했다. 그런가 하면 미국은 이번 전쟁에 발을 디디면서 인민군의 저력을 무척 과소평가했으며 각지에서 미군의 승전 나팔소리가 연이어 들릴 거라는 부푼 기대를 안고 있었다. 그 후에는 중공군의 경고 신호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무조건 38선 이북으로 밀고 올라가는 무모함을 보이기도 했다. _ 데이비드 핼버스탬, <콜디스트 윈터> , p1713/1912


 그렇지만, 잊혀진 전쟁이 남긴 유산은 지나치기에는 너무도 분명한 것이었다. 냉전 이후 경찰국가 미국의 역할을 결정지었다는 점에서도, 그리고 1953년 판문점 체제의 영향이 동아시아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전후 유럽 질서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세계전쟁으로서의 영향력을 한국전쟁 안에서 발견할 수 있다. 


 판문점 체제는, 미국이 한국전쟁에서 추구한 자유주의적 평화 기획이 귀결된 궁극적인 제도적 형태였다고 할 수 있다. 먼저 판문점 체제는 중국의 개입 이후 부과된 정치적 압력하에서 한국 문제의 궁극적인 정치적 해결을 유예시킨 군사 정전 체제였다. 그리고 판문점 체제는 미국과 이승만의 협상의 산물로서, 한미 군사 동맹 체제 아래에서 경제 발전의 모델을 전시하려는 아이젠하워 근대화 정책의 대표 사례였다. 좀 더 일반화하자면, 판문점 체제는 칸트식 초국적 법치가 지향했던 보편적 영구 평화나 보편적 정의와는 거리가 먼, 특수한 상황에서의 안보, 특수한 동맹 체제하에서의 경제 발전이라는 매우 분명한 홉스적 기획의 산물임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_ 김학재, <판문점 체제의 기원> , p843/1282 


 독일의 재무장은 모두를 불편하게 하고 스탈린의 예기치 못한 반응을 초래할 수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귀중한 자원을 재무장에 쓰기를 원하는 나라는 아무도 없었다. 무방비 상태의 대결 대신으로 중립이 지닌 매력은 독일과 프랑스에서 똑같이 점차 커지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에 한국 전쟁이 발발하지 않았다면(합리적인 반사실적 가정이다. 거의 일어나지 않을 뻔했기 때문이다) 실로 최근 유럽사의 윤곽은 매우 달라 보였을 것이다. _ 토니 주트, <전후 유럽 1945~2005 1>, p207/706


 그렇지만, 한국전쟁이 잊혀져서는 안될 이유는 이러한 세계적 영향력 때문만은 아니다. 또한, 우리가 현재까지 분단체제의 영향 아래 있기 때문도 아니다. 지도층들의  실수와 대립으로 결정된 전쟁과 국토의 양극단까지 전선이 움직이면서 발생한 수많은 민간인 희생이 '잊혀진 전쟁' 뒤에서 조용히 묻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를 기억해야 한다. 노근리 사건과도 같은 수많은 희생이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현실 속에서 적어도 우리는 한국전쟁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다음 페이퍼에서는 이러한 수많은 단층을 가진 복합적인 성격의 전쟁인 한국전쟁이 왜 발생했는가를 살펴보려 한다...


 미국인이 가장 모르는 것은 그 전쟁이 섬뜩하리만큼 지저분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민간인 학살의 더러운 역사가 끼어 있는데, 북한을 극악무도한 테러리스트로 보는 미국의 생각과 달리, 그 최악의 범죄자는 겉보기에 명백히 민주주의 체제였던 동맹국 남한이었다. 영국인 저자 맥스 헤이스팅스는 공산주의자들의 잔학 행위 때문에 국제연합이 한국에 "오늘날까지 지속된 도덕적 정통성"을 부여했다고 썼다. 그렇다면 남한의 잔학 행위는? 오늘날 역사가들은 남한의 잔학 행위가 훨씬 더 많았음을 알고 있다. _ 브루스 커밍스,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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