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운동 이후, 중국 선각자들은 마르크스주의의 주요 관점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소개했다. 그들은 유물사관 측면의 관점에서 사회 발전의 근원을 생산력과 생산관계, 경제토대와 상부구조 사이의 상호 모순 운동에 있다고 보았다. 계급투쟁학설 측면에서, 계급과 계급투쟁의 정의, 계급의 구분과 계급투쟁인 서로 다른 경제이익으로 발생한다는 관점을 설명했다. 그리고 국가는 계급투쟁의 수단이며 무산계급이 정권을 장악해야만 다수인이 소수인에 대한 독재를 실현한다는 등 기본 사상을 집중적으로 설명했다. 잉여가치이론 측면에서, 잉여가치는 자본의 본질을 중심으로 한다. 생산과정에서 자본가가 노동자의 노동 일부분을 무상으로 점유하는 것이다. 이는 무산계급에 대한 착취이고 자본축적의 중요한 구성 부분이라는 등의 관점으로 소개했다. _ 중국공산당중앙당사연구실, <중국공산당 역사 제1권 상> , p155/952  


 중국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시진핑(習近平, 1953 ~ )주석의 3연임이 확정되고, 상무위원회 자리가 모두 그의 측근들로 채워지면서 덩샤오핑(登小平, 1904 ~ 1997)이후 지속되어온 집단지도체제가 사실상 끝나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 진행을 중국공산당 내부에서는 어떻게 바라본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은 <중국공산당 역사>로 이어지게 된다. 청나라 말기부터 문화대혁명기까지 다룬다는 시대적 제약은 있지만, 공산당의 역사관(歷史觀)을 파악하는 것에는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


 상세한 내용은 각 리뷰에서 정리해야겠지만, 대체적으로 <중국공산당 역사>는 역사의 진보와 발전에 대한 긍정적 기대를 담고 있다. 중도의 실패도, 이어지는 혁명의 다른 과제를 부여하는 변곡점으로 이해된다. 마치, 출발점인 원점과 끝점인 문화혁명기의 중국 사이의 점을 직선(直線)으로 연결하고, 좌우 약간의 표준오차만을 인정하며, 필연적으로 공산주의혁명이 도출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역사관 속에서 공산주의자가 아닌 민족주의자들이 '인민의 적(敵)', '배신자'로 그려지는 사관에 대해 긍정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이 역시 역사철학의 일부임을 일단 인정해야 할 것이다.


마르크스의 역사철학은 헤겔과 영국 고전 경제학이 뒤섞여 형성된다. 그는 헤겔처럼 세계는 변증법적인 정칙에 따라 발전하다고 생각하지만, 발전의 원동력에 대해서는 헤겔과 의견이 완전히 다르다. 헤겔은 '정신 Spirit'이라는 신비적 존재가 <논리학>에 제시된 변증법의 여러 단계에 따라 인간의 역사가 발전하도록 이끈다고 믿었다. 정신이 왜 그러한 단계를 밟아야 하는지는 분명치 않다... 마르크스의 변증법은 법칙의 불가피성을 제외하면 앞서 말한 헤겔 병증법의 특성을 전혀 나타내지 않는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정신이 아니라 물질이 추진력이다. 마르크스에게서 추진력은 실제로 인간이 물질과 맺는 관계이며, 그러한 관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생산 양식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마르크스의 유물론은 실질상 경제학이 된다.  _버트런드 러셀, <서양철학사> , p990


 러셀(Bertrand Russell, 1872 ~ 1970)의 <서양철학사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에 서술된 마르크스(Karl Marx, 1818 ~ 1883)의 역사철학이 잘 드러난 역사서임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다만, 제국의 중심부가 아닌 주변부인 20세기초의 중국에서 칼 마르크스의 '물질'은 생산양식보다 분배문제인 '토지개혁'에서 더 첨예한 문제로 드러난다는 것은 중국 역사의 특수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약하건대, 중국은 아편전쟁에서 패배한 후 점차 반식민지 반봉건 사회로 전락하고 말았다. 나라와 민족을 멸망의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중국 인민들은 간고한 투쟁을 벌였다. 중국의 선각자들은 천신만고를 겪으면서 구국구민의 진리를 모색하며 중국 사회를 변혁하는 여러가지 방안을 시도했다. 이러한 모색과 투쟁은 일정한 역사적 조건에서 중국 역사의 진보를 어느 정도 이끌었다. 그렇지만 중국의 반식민지 반봉건의 사회성격과 중국인민의 비참한 운명까지 바꾸지는 못했다. _ 중국공산당중앙당사연구실, <중국공산당 역사 제1권 상> , p94/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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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이 나를 가장 근본적으로 의문에 빠지게 하는가? 그것은 유한한 내 자신에 대한 나의 관계, 즉 죽음으로 향해 있고 죽음을 위한 존재임을 의식하는 내 자신에 대한 나의 관계가 아니다. 그것은 죽어가면서 부재에 이르는 타인 앞에서의 나의 현전 presence이다. 죽어가면서 결정적으로 멀어져 가는 타인 가까이에 자신을 묶어두는 것, 타인의 죽음을 나와 관계하는 유일한 죽음으로 떠맡는 것, 그에 따라 나는 스스로를 내 자신 바깥에 놓는다. 거기에 공동체의 불가능성 가운데 나를 어떤 공통체로 열리게 만드는 유일한 분리가 있다. _ 모리스 블랑쇼, <밝힐 수 없는 공동체, 마주한 공동체>, p23


 모리스 블랑쇼(Maurice Blanchot, 1907 ~ 2003)의 <밝힐 수 없는 공동체 La Communaute inavouable>에서는 타인(他人)의 죽음에 대한 의미를 묻는다. 나 자신의 죽음이 아닌 다른 이의 죽음이 왜 나에게 의미를 갖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하기 위해 블랑쇼는 조르주 바타유(Georges Bataille, 1897 ~ 1962)가 말한 '모든 존재의 기초'로서 결핍으로부터 출발한다. 인간 또한 결핍의 충족을 추구하지만, 영원한 배고픔과 갈증의 형벌을 받은 탄탈로스(Tantalus)처럼 자기 자신을 위한 결핍 충족은 결코 채워질 수 없다. 단지 자기 자신을 미래를 향해 기투(project)할 수 있다는 가능성만을 가져올 뿐. 궁극적으로 이러한 가능성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자신의 유한성을 넘어선 그 무엇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우리는 실존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블랑쇼의 주장이다. 그리고, 이는 죽음의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죽어가는 타인의' 손을 붙잡고 그와 함께 이어나가는 무언(無言)의 대화. 나는 그 대화를 다만 그가 죽어가는 것을 돕기 위해서만 이어가는 것이 아니다. 그를 근본적으로 상실로 이끌며 나눌 수 없는 그의 소유인 것처럼 보이는 사건으로 인한 고독을 나누기 위해, 나는 그 대화를 이어간다. _ 모리스 블랑쇼, <밝힐 수 없는 공동체, 마주한 공동체>, p23


 타인의 죽음에 대한 공감과 나눔. 그것은 내 존재의 근원적 문제로서의 결핍을 충족할 뿐 아니라, 죽음이라는 공통의 운명을 가진 필멸(必滅)의 존재들이 갖는 관계속에서 공동체는 규정되어간다. 죽음을 싫어하는 공통된 감정 속에서 지금 죽음을 맞아야만 하는 이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 그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통제될 수 없는 가장 기본적인 첫 번째 자유다. 


 각자의 것일 수 없는 최초의 그리고 최후의 사건(탄생, 죽음)이 만일 각 사람에게서 공통된 것이 아니라면, 공동체란 있을 수 없다. 그 사실이 공동체의 근거를 이룬다. 공동체는 너나들이로 말하기가 금지되어 있는 비대칭성 asymetrie의 관계만을 '너와 나에게서' 완강히 보존하려 한다... 공동체는 죽어간다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반복한다.  "우리는 홀로 죽지 않는다. 만일 죽어가는 자의 이웃이 된다는 것이 인간적으로 진정 필요하다면, 그 이유는 하찮기는 하지만 역할을 나누기 위해서, 죽어가면서 현재 죽을 수 없다는 불가능성에 부딪힌 자를 내리막길에서 붙들기 위해서이다. 가장 부드러운 금지의 명령으로. 지금 maintenant 죽으면 안 돼. 죽기 위한 지금이 있을 수 없다는 것. _ 모리스 블랑쇼, <밝힐 수 없는 공동체, 마주한 공동체>, p24


 156명의 안타까운 희생자가 발생한 10.29 참사. 이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은 분명 다르지 않을 것이다. 죽음을 맞이해야하는 유한한 존재로서 죽음을 바라보는 안타까움.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바라보는 여러 시선이 공존하는 것을 다양성의 존중이라는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을까. 출입금지 구역도 아닌 곳에 자유롭게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방문한 이들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다름아닌 평소 '자유민주주의'를 그토록 외치는 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리고, 평소 그렇게 '자유'를 외치던 자들이 정작 '책임'에 대해서는 왜그렇게 침묵하는지. '자유-책임'은 동전의 양면임을 알지 못하는 것일까. 이렇게 참사의 기억은 일부에서 왜곡되고, 논쟁거리로 소비되고 있다.

 

 세기를 거치며 새로이 덧붙여진 자산으로 점점 더 풍부해진 이 공생관계는 대혁명과 더불어 파경을 맞았다. 모든 것이 요동을 쳤다. 이제껏 사회적 결속의 원칙이요 민족적 일체성의 기초였던 교회의 맏딸이라는 준거관념은 두 충성의 대상 - 신도인가 시민인가 - 가운데서 선택을 강요받은 프랑스인들 사이에 깊은 분열의 씨앗이 되었다. 그러한 파열은 몇 달 사이에 이루어졌다(p197)... 교회의 맏딸 반대편에 또 하나의 프랑스가 들어서 있었으니, 이 프랑스는 대혁명을 자신의 세례 시점으로 잡고, 랭스의 종교에 혁명의 서사시를 대립시켰다. 그 사건의 파장은 막대했다. 그것은 거의 2백 년 가까이 민족의식을 분열시키는 결과를 몰고 왔다. _ 피에르 노라 외, <기억의 장소 5> , p198


 기억의 왜곡 문제는 오늘날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기억의 장소 5 Les Lieux de Memoire>는 1572년 프랑스에서 가톨릭 신자들에 의한 대대적인 위그노(개신교 신도) 학살이 일어난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 학살(Massacre de la Saint-Barthelemy)이 분열된 프랑스 역사 속에서 어떻게 기억되었는가를 알려준다. 


 대개 공식적 프랑스에 속하며, 따라서 고도로 중앙집권화된 나라에서 권력의 보유가 허용한 모든 수단들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었던 절반의 프랑스는 프랑스의 종교적 과거에 관한 모든 전거를 공동의 기억에서 지워 버리는데 힘을 쏟았다... 반대기억을 풀어놓는 반대역사(contre-historie)를 가르치는 것에 대한 지지자들은 종교에 관한 편집(偏執)에서 비롯된 박해 이외의 어떠한 사실도 좀처럼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프랑스의 종교사는 생바르텔르미 학살과 미구엘 세르베토나 라바르 기사의 처형 사건, 또는 낭트 칙령의 철회 등 확실히 종교적 소수파나 무신자들에게 고통스러운 기억들만을 떠올리게 하는 사건들로 축소되었다. _ 피에르 노라 외, <기억의 장소 5> , p199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하나의 분기점에서 자신의 입장에 따라 역사의 기억을 하나의 방향으로만 바라보기 위해 이를 소거(消去)하려는 움직임과 이에 대항해 하나만을 강조하고 다른 모든 것을 편집하는 반대의 흐름. 이러한 두 갈등은 오랜 분열 끝에 공동체에 닥친 공통의 위기 속에서 극적으로 화해하게 된다. 그렇지만, 역사적 의미가 퇴색한 뒤 이루어진 화해가 갖는 한계 또한 <기억의 장소 5>에서는 분명하게 지적된다. 10.29 참사를 보면서 우리는 이 비극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타인의 죽음이 현재의 우리에게 갖는 의미, 타인의 죽음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을 기본으로 이 참사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야 하지 않을까.


 한 세기여에 걸쳐 점점 더 사이가 벌어진 끝에, 두 개의 프랑스는 1914년에 터진 전쟁과 함께 민족 공동체가 겪어야만 했던 시련을 계기로 서로 화해하기 시작했다. 두 갈래 기억들 사이의 화해는 '신성한 단결'(Union sacre)의 필연적 결과들 가운데 하나였다(p204)... 오늘날 이러한 관념에 의거하는 하나의 프랑스와 그것을 거부하고자 했던 또 하나의 프랑스 사이의 대립은 확실히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문제는 양쪽 모두의 기억상실일 것이다. 그리고 교회의 맏딸이 지나온 종교적 과거가 잊혀져감에 따른 민족문화와 민족적 기억의 손실을 누구보다도 먼저 염려해야 할 이들이 바로 세속성 원칙에 가장 투철한 구성원들, 즉 근대 프랑스의 기초자들을 계승한 사람들이라는 점은 현 상황의 커다란 역설이다. _ 피에르 노라 외, <기억의 장소 5> , p209


 다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10.29 참사에 대해 애도하는 것과는 별개로 이러한 참사의 원인과 재발방지에 대한 노력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만인(萬人)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를 방지하고자 만들어 낸 합의체로서 '국가권력'이라는 리바이어던을 인정한 것은 이를 통해 최소한의 안정을 보장받기 위함이 아닐까. 스스로의 손바닥에 왕(王)자를 쓰면서까지 리바이어던이라는 용(龍)의 머리에 올라탔으면, 그에 걸맞는 행동을 해야하는 것은 당연한 그의 의무가 아닐까. 되려 역린을 건드려서 용의 분노를 샀더라도 할 말은 없을 것이다. 스스로 공동체 구성원들의 일반의지를 모두 담아낼 그릇이 못된다면, 스스로 그릇을 깨뜨리고 내려오는 것만이 모두를 위한 마지막 충정이라 생각된다...


 공통의 권력(common power)은 외적의 침입과 상호간의 권리침해를 방지하고, 또한 스스로의 노동과 대지의 열매로 일용할 양식을 마련하여 쾌적한 생활을 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 권력을 확립하는 유일한 길은 모든 사람의 의지를 다수결에 의해 하나의 의지로 결집하는 것, 즉 그들이 지닌 모든 권력과 힘을 '한 사람'(one Man) 혹은 '하나의 합의체'(one Assembly)에 양도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신들 모두의 인격을 지니는 한 사람 혹은 합의체를 임명하여, 그가 공공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어떤 행위를 하든, 혹은 [백성에게] 어떤 행위를 하게 하든, 각자가 그 모든 행위의 본인이 되고, 또한 본인임을 인정함으로써, 개개인의 의지를 그의 의지에 종속시키고, 개개인의 다양한 판단들을 그의 단 하나의 판단에 위임하는 것이다. 이것이 달성되어 다수의 사람들이 하나의 인격으로 결합되어 통일되었을 때 그것을 코먼웰스(Commomwealth)라고 부른다. 이리하여 바로 저 위대한 리바이어던(Leviathan)이 탄생한다. 코먼웰스의 정의(定義)는 다음과 같다. '다수의 사람들이 상호 신의계약을 체결하여 세운 하나의 인격으로서, 그들 각자가 그 인격이 한 행위의 본인이 됨으러써, 그들의 평화와 공동방위를 위해 모든 사람의 힘과 수단을 그가 임의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_ 토머스 홉스, <리바이어던 1> , p232


 용(龍)이라는 동물(虫)은 유순해 길들이면 탈 수 있다. 그러나 턱밑에 직경 한 자쯤 되는 역린(逆鱗, 거꾸로 난 비늘)이 있는데, 만약 사람이 그것을 건드리면 반드시 그 사람을 죽인다. 군주에게도 역린이 있어, 설득하려는 자는 군주의 역린을 건드리지 않을 수 있어야만 성공을 기대할 수 있다. _ 한비자, <한비자> , p118/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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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12-08 18: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22-12-09 04:52   좋아요 0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
 

일상적 활동은 경기에 참가한 선수의 행동과 같은 것이며, 관습상/법률상의 틀은 그 경기의 규칙과 같은 것이다. 경기에서나 사회에서나, 그 어떤 규칙도 참가자 대부분이 외부적 강제 없이 그에 따라 주지 않는 한, 다시 말해 광범위한 사회적 합의가 뒷받침되지 않는 이상, 보편화할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가 규칙을 해석하고 적용하기 위해 관습이나 합의에만 의지할 수는 없는 일이므로 심판이 필요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 규칙을 수정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는 일, 규칙의 의미에 대해 이견이 있을 때 그 차이를 조정해주는 일, 내버려두면 정정당당하게 경기하려 하지 않는 극소수의 사람들에게 그 규칙을 준수하도록 강제하는 일, 이러한 일들이야말로 자유사회에서 정부가 맡은 기본적 역할이다. _ 밀턴 프리드먼, <자본주의와 자유> ,p62


통화주의자이자 자유주의 시장경제 옹호자, 이른바 신자유주의자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 1912 ~ 2006)은 <자본주의와 자유 Capitalism and Freedom>에서 규칙의 제정자 겸 심판으로서의 정부의 역할을 강조한다. 절대적 시장의 자유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일종의 조정자로서 역할을 프리드먼은 강조한다. 같은 장 결론에서 그는 최종적으로 정부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명시한다. 법과 질서를 유지하고, 개인을 보호하는 정부의 기능. 작은 정부 옹호자인 프리드먼의 시각에서도 이태원 참사를 대처하는 현정부의 모습은 일관성없는 자유주의자에 다름아니다. 대통령 스스로가 자신의 가치관에 프리드먼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음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프리드먼의 기준에도 못 미치는 행정을 펼치고도 반성없이 애도(哀悼)를 강요하며 슬퍼할 자유를 강제하는 모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관련기사 :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5289


 법과 질서를 유지하고, 재산권을 유지하고, 재산권이나 경제적 게임의 다른 규칙들을 수정하는 수단 노릇을 하고, 그 규칙의 해석을 둘러싼 분쟁을 재결 裁決하고, 계약의 이행을 강제하고, 경쟁을 촉진시키고, 통화운용체계의 구조를 마련하고, 정부 개입을 충분히 정당화할 만큼 중요하게 생각되는 것으로서 기술적 독점에 대응하고 외부효과를 극복하기 위한 활동에 관여해온 정부. 정신이상자건 어린아이건 간에 무능력자를 보호하는데 있어서 사적인 자선이나 가족의 기능을 보완해온 정부. 이처럼 정부는 분명히 앞으로도 중요한 기능을 수행할 것이다. 일관성 있는 자유주의자는 무정부주의자가 아니다. _ 밀턴 프리드먼, <자본주의와 자유> ,p75


 정부가 수행하기에 적합한 활동이 무엇인지 결정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문제는 서로 다른 개인들의 자유가 저촉되는 것을 어떻게 해소하느냐 하는 것이다. _ 밀턴 프리드먼, <자본주의와 자유> ,p63


견딜 수 없었던 하루. 점점 비참해지는 날들. 울다. _ 롤랑 바르트, <애도일기> ,p102/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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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2-11-01 2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밀턴 프리드만 이야긴 공감할 수 없지만, 롤랑 바르트의 “애도”는 지금 이때 맘에 다가옵니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겨울호랑이 2022-11-01 21:37   좋아요 1 | URL
저 역시 밀턴 프리드먼의 주장에 동의하기 어렵지만, 자유를 좋아하는 어떤 이가 존경하는 인물이라 옮겨봅니다. 참 힘든 요즘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22-11-01 22:10   좋아요 1 | URL
“자유”란 단어가 가장 어려운 말인 거 깉습니다. 이제 “자유”를 다시 재정의하거나 더 이상 주장하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자유”가 모든 걸 망치고 있는 거 같습니다. ㅠㅠ

겨울호랑이 2022-11-01 22:14   좋아요 1 | URL
북다이제스터님 말씀처럼 어떤 것으로부터의 자유인지, 누구의 자유이며 그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사회적 재합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북다이제스터 2022-11-01 22:27   좋아요 1 | URL
자유가 명사형(freedom)이 아닌 부사구형(A is free from B)이라고 본다면 자유는 뭔가에서 결핍된 상태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자유는 그분 말씀처럼 모든 것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위해 자유롭지 않는 것을 선택하는 자유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겨울호랑이 2022-11-01 22:30   좋아요 1 | URL
^^:) 북다이제스터님의 ‘자유‘ 정의는 마침 얼마 전 정리한 하이데거의 ‘자유‘와 통하는 바가 있는 듯 합니다. 제약 상황 아래에서 어쩔 수 없이 주어진 선택지 중에서 골라야 하는 자유. 자신의 뜻대로 모든 것이 되어야 하는 절대자의 자유가 아닌, 유한한 존재로서의 자유가 더 현실적으로 다가옵니다.

북다이제스터 2022-11-01 22:36   좋아요 1 | URL
답글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제가 감히 하이데거 반열에 든 거 같습니다. 감히… ㅋㅋ
하이데거는 제가 넘 좋아하는 분이라서 더욱 몸 둘봐를 모르겠습니다. ㅋㅋ
즐거운 저녁 시간 되세요. ^^

겨울호랑이 2022-11-01 22:44   좋아요 0 | URL
북다이제스터님 좋은 대화 감사합니다. 평안한 밤 되세요! ^^:)

나와같다면 2022-11-01 21: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이런 일이...”
상가에서 자주 듣는 말입니다.
‘문상(問喪)’이나 ‘조문( 弔問)’에 ‘물을 문(問)’자가 있는 것은, 죽음의 진상에 대한 의문과 애도가 본디 둘이 아니라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진상을 알아야, 망자와 유족, 그 친척 친지들이 한을 품지 않고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지금은 애도할 때이니 진상규명과 책임문제는 나중으로 미뤄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가 많습니다.
이들이야말로, 무식을 선동하여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자들입니다.

- 전우용 사학자

겨울호랑이 2022-11-01 21:44   좋아요 2 | URL
정말 그렇습니다. 위패도 없이 하얀 국화꽃만 한 손에 덜렁덜렁 내려놓는 위선적인 모습들이 오히려 진실을 은폐하려는 그들의 진심을 드러내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레이스 2022-11-02 17: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바르트의 애도일기 좋았습니다.
자유시장경제를 주장했기에 아마도 그는 작은 정부쪽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그럼에도 그가 생각한 정부는 지금 우리 정부 그 이상이죠!ㅠ

겨울호랑이 2022-11-02 18:38   좋아요 1 | URL
그렇습니다... 주권을 정부에 위임한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해 본다면 답은 상식선에서 나올 것이라 여겨집니다. 그럼에도 비상식적인 정부의 행태는 우리를 더 슬프게 하네요...

그레이스 2022-11-02 18:39   좋아요 2 | URL
오늘 막내가 저 사람은 사회계약론부터 다시 공부해야 해! 라고 하더군요 ㅠ

겨울호랑이 2022-11-02 21:25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님 자제분께서 날카롭게 짚어주셨다고 생각됩니다... 어쩌면 그보다 더 일찍 객차 안에서 다리를 올리지 않아야 한다는 도덕부터 다시 배워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eBook] 심심할 때 읽는 EPL 영국 축구(프리미어리그) 이야기
이문익 / 유페이퍼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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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새벽 운동을 가기 위해 일어나던 중 충격적인 사건에 정신이 들었다.

참 가슴아픈 일,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수도 서울 한복판 번화가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에 탄식이 절로 난다. 2014년 10월 판교 공연장 환풍구 붕괴사고에서처럼 문화행사에 많은 사람이 몰려 발생한 사건이지만, 피해 규모는 그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크기에 비통한 마음이 크다.

위령의 날(Day of the Dead, 11월 2일)에 젊은이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더 이상 이런 아픔이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힐즈버러 참사 (Hillsborough disaster)

 1989년 4월 15일 잉글랜드 셰필드에 있는 힐즈버러 스타디움에서 발생한 96명의 팬이 사망하게 된 사건이다. 당시 리버풀 FC와 노팅엄 포리스트 FC간의 FA컵 준결승전이 힐즈버러 스타디움에서 열리게 되었는데, 이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약 25,000여명의 리버풀 팬들이 찾아왔지만 좁은 공간에 너무 많은 이들이 몰려 킥오프 이후 96명이 압사하게 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영국의 모든 스타디움에는 기존의 입석 형태가 아닌 좌석 형태의 좌석을 갖추게 되었고, 보호 철망은 모두 철거하게 되었다. _ 이문익, <EPL 영국축구(프리미어)이야기> , p8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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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11-02 19: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희생자들이 훌리건으로 매도당해서 그 명예 회복과 보상을 위한 소송과 승소까지 20년이 걸렸다고 들었어요.
결국 과실치사로 보상을 받았지만, 길고 긴 법정싸움에 미치지 못했던 것으로 압니다. ㅠ

겨울호랑이 2022-11-02 21:28   좋아요 0 | URL
네 그렇습니다. 어느 사회에서나 책임질 사람들이 책임지지 않고 빠져나가기 위해 진실을 은폐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제는 그렇게 넘어가서는 안되겠지요...
 



 민화(民畵)들은 18세기 이후 농업생산의 증대, 수공업의 발전과 시장경제의 확대 등 경제의 성장에 따른 서민대중 사이에서 생겨난 회화에 대한 욕구에 부응하기 위하여 흔히 제작되었다. 민화는 18세기 이후에 성장한 서민문화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줌과 동시에 우리 민족의 미의식, 조형상의 특성, 색채감각 등을 보다 진솔하고 직설적으로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매우 크다고 하겠다. _ 김원룡, 안휘준, <한국미술의 역사> , p545


 지난 주말 전남 강진에 있는 한국민화뮤지엄에 다녀왔다. <화조도>, <연화도>, <심장생도>, <책거리> 등 여러 주제의 민화들을 보면서 민화 소재들의 의미, 그림에 담긴 소망 들을 해설사의 설명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당대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것을 염원하는 의미가 민화에 담겨있다면, 우리 시대 민화의 가장 인기있는 그림은 <부동산도>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민화 속에 녹아 있는 정신적인 배경도 그와 같다. 민화는 한점 한점 모두가 인간의 행복을 기원하기 위해 그려진 아름다운 소망이 담긴 그림이다. 이러한 기복 신앙의 민화는 대체로 두 가지 내용을 담고 있다. 하나는 오래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복 많이 받고자 하는 것이다. 장수와 복의 상징이 우리의 삶에 절대적인 표상이 된 것은 조선시대 후기로 접어들면서 사회가 안정되고 삶의 질이 향상되면서부터이다(p14)... 기복 신앙은 한편으로 기복을 방해하는 잡귀나 악귀들을 쫓는 벽사 신앙과 연결되었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모든 사물에는 음양陰陽이 있으며 삶의 본질에는 선악善惡이 필연적으로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림이 지닌 주술적인 힘이 여러 재앙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주며 영적인 힘을 가진 동물 그림을 집에 둠으로써 잡귀를 물리칠 수 있다고 믿었다. _ 윤열수, <민화1> , p16


 많은 민화에 담긴 의미가 장수(長壽)와 행복(幸福)이지만, 기록화와 같이 사실에 기반한 그림도 민화의 한 장르임을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되었다. 이와 함께 박정혜의 <조선시대 사가기록화, 옛 그림에 담긴 조선 양반가의 특별한 순간들>는 양반들의 사가기록화를 중점적으로 분석한다. <대학 大學>의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일생을 통해 실현하려고 했던 양반들의 욕망이 투영되었다는 점에서 사가기록화는 민화의 일부일수도, 그렇지만 다수 민중들과는 다른 계급의 그림이었다는 점에서는 민화가 아닐수도 있는 애매한 위치의 그림이 사가기록화라 생각된다.


 기록화는 <삼국지>의 내용이나 전쟁, 임금의 행차 및 궁궐의 의식 등 사실에 기초한 이야기를 그린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그림은 마치 사진과도 같이 풍속/의식/관제/건축 양식/복식 등의 생생한 내용을 담고 있어 민속적인 자료로도 가치가 높다. 기록화는 대개 등축도법을 이용하여 원근을 묘사하고 있는데 비교적 정확한 작도법에 의해 그려진 것으로 미루어 대부분의 기록화는 본격적인 그림 수업을 받은 도화서의 화원들에 의해 그려진 것으로 짐작된다. _ 윤열수, <민화2> , p706 


 사가기록화 私家記錄畵란 개인이 속한 집안 행사나 의례, 혹은 개인의 생애와 관련된 사건 등을 시각적으로 기록한 그림을 의미한다. 대개 사가기록화는 행사 주인공의 자취를 기념하거나 조상의 업적을 선양하며 나아가 집안의 우수성을 알리고 위상을 높이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졌다(p11)...  사가기록화를 관통하는 핵심어는 장수, 높은 관직, 가문의 번성 등 크게 세 가지로 함축되는데, 이는 사가기록화를 분류하는 기준이 된다. 양반 관료들은 조선 사회가 자신들에게 요구했던 유교적 가치를 사가기록화라는 매체를 통해 나타내려 했다. 유교 사회에서는 어느 장소에서나 관작, 나이, 덕망[三達尊]이 존중되었으며 사람들은 '큰 덕德을 지니면 반드시 지위를 얻고 녹을 받으며 명성을 얻고 수명을 누린다'는 <중용中庸>의 가르침을 귀하게 여겼다. _ 박정혜, <조선시대 사가기록화, 옛 그림에 담긴 조선 양반가의 특별한 순간들> , p15/570


 사가기록화는 유교적인 가치 실현을 위해 노력한 본인과 조상의 자취를 그림으로 남김으로써 후손에게 본보기가 되기 위해 제작되었다. 바꾸어 말하면 조선시대 양반 관료들이 평새 이루려고 노력했던 세속적 욕망이 투영된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_ 박정혜, <조선시대 사가기록화, 옛 그림에 담긴 조선 양반가의 특별한 순간들> , p24/570


 <조선시대 사가기록화, 옛 그림에 담긴 조선 양반가의 특별한 순간들>에는 사서기록화와 함께 짝이 되는 <평생도>가 소개된다. 사서기록화가 현실화된 업적을 보여주는 그림이라면, 평생도는 양반들이 추구했던 삶을 소재로 한다. 양반들에게 평생도는 자신이 살고자 하는 미래/가능태라면, 사서기록화는 현재/현실태를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자못 흥미롭다. 인생의 황혼기에 평생도와 사서기록화가 담긴 병풍을 양쪽에 펼쳐놓고 자신의 지난 삶을 돌아보는 양반들은 지난간 세월에 후회가 없었다는 답을 할 수 있었을까.


 평생도는 조선시대 양반 사대부들이 추구하였던 이상적인 삶을 여러 장면에 나누어 그린 일종의 풍속화로 18세기 말 무렵에 제작되기 시작했다. 가장 이상적인 단계로 설정된 사대부의 일생을 시각화한 일련의 구성은 동아시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형태이다... 평생도에는 높은 관작, 연치, 학덕을 인생 최고의 가치로 추구하였던 조선시대 양반사대부들의 염원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는 사가기록화의 제작 목적이나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다. _ 박정혜, <조선시대 사가기록화, 옛 그림에 담긴 조선 양반가의 특별한 순간들> , p424/570 


 평생도는 사가기록화의 범주에서 논의되는 여러 종류의 행사와 의례를 내용 면에서 공유하고 있으며, 부귀공명이라는 현세적인 목적 역시 그림 안에 직접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따라서 평생도와 사가기록화의 관계성을 분석하면 사가기록화 제작이 조선 후기 화단에 미친 영향과 의미의 짐작이 가능하다. _ 박정혜, <조선시대 사가기록화, 옛 그림에 담긴 조선 양반가의 특별한 순간들> , p11/570 


  죽음을 눈 앞에 둔 한 노인이 어떤 답을 내렸을지도 궁금하지만, 평생도를 통해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사가기록화를 통해 자신의 삶이 역사에 남겨질 것이라는 인식을 하지 않았을까. 자신의 지향점이 주어지고, 그 지향점을 실천하는 과정이 정신세계에서는 감성과 지성 그리고 공통된 뿌리로부터 기원하는 것이 아닐까. 자신이 지향하고자 하는 관념의 실현이라는.


 "아마도 '공통적인 그러나 우리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뿌리'로부터 발원하는 인간 인식의 두 줄기가 있다. 즉 감성과 지성이다. 감성을 통해서는 대상들이 우리에게 주어지며, 지성을 통해서는 대상들이 사유된다." 하이데거는 칸트의 이 발언에서 감성과 지성이라는 두 줄기의 '공통된 뿌리'가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p610)... 하이데거는 칸트가 규명하지 않고 놔둔 그 뿌리가 바로 '상상력'(Einbildungskraft)이라고 말한다. 감성의 직관과 지성의 사유의 중간에 놓여 이 둘을 종합하는 것이 상상력이라는 것이다. _ 고명섭, <하이데거 극장1>, p611


 개인적 차원에서는 '풍속화-사서기록화'가 하나의 쌍이 되어 이상-현실의 관계를 구축한다면, 조선 후기 사회적 측면에서 조선 전기 <몽유도원도>와 같은 관념적인 그림 대신 현실적인 진경산수화가 등장한 것도 역사에서의 커다란 이상-현실의 cycle은 아닐까. 이것과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 ~ 1900)의 영원회귀(Ewige Wiederkunft)를 연결지어 생각해보는 것도 나름의미있는 생각이 될 듯하다. 진리에 대립하는 예술의 의미를 주장한 니체와 그런 니체를 분석한 하이데거를 

생각한다면, 미술작품 안에서 권력의지와 영원회귀를 찾는 것도 그렇게 엉뚱하지만은 아닐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하이데거 극장> 리뷰에서 더 자세히 정리하도록 하자...


하이데거는 <권력의지>를 기본 텍스트로 삼아 니체 사상을 해석해 들어간다. 이 메모들에서 니체 자신이 논구한 가장 중요한 사사잉 '권력의지'와 '동일한 것의 영원회귀'다. 하이데거는 이 두 가지 사상이 '존재자 전체의 존재'를 부르는 두 가지 이름이라고 해석하낟. 다시말해 권력의지가 존재자 전체의 존재 성격이라면 영원회귀는 존재자 전체의 존재 방식이라고 해석한다. _ 고명섭, <하이데거 극장2>, p246


 페이퍼가 산으로 올라가버렸지만, 민화 안에는 분명 그 시대 사람들의 강렬한 욕망이 담겨 있었다. 소재의 이름과 특성에 담긴 여러 형태의 건강, 부귀의 의미는 이를 열망하는 사람들의 염원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열망이 추상적으로, 은유적으로 표현되었던 것은 이를 구체적으로 표현할 '경험'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이에 반해 '평생도-사서기록화'는 자신의 뜻을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을 정도의 상상력이 가문의 전통이라는 경험으로부터 나올 수 있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희망했고, 그것을 이루었던 것은 아니었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이의 연장선상에서 조선 전기 성리학적 유교세계를 관념적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면, 조선 후기에는 동아시아 유일의 소중화(小中華)로서의 자부심이 '진경산수화'로 표현되었던 것은 아닐까. 그런 면에서 '조선전기 북종화-평생도'와 '진경산수-사서기록화'의 유사성을 발견하게 된다. 또한, 관념-현실의 이러한 순환관계 속에서 영원회귀와 권력의지와도 같은 욕망을 생각하게 된다. 많이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앞으로 책을 읽다보면 정리되겠지...


 문화적으로 우리보다 열등한 여진족이 무력으로 중국을 차지했다 해도 중화의 계승자가 될 수 없는데, 하물며 그 야만 풍속인 변발호목(?髮胡服)을 한민족(漢民族)에게 강요하여 중화문화 전체를 야만적으로 변질시켜 놓았으니 중국에서는 이미 중화문화 전통이 단절되었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니 중화문화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면서 주자성리학의 적통(嫡統)을 발전적으로 계승하고 있는 조선만이 중화문화를 계승할 자격을 갖추었으므로 이제 조선이 중화가 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었다.(p22)... 이로 말미암아 조선이 곧 중화라는 조선중화주의가 조선사회 전반에 점차 팽배해 가기 시작하였다. 이제 조선이 곧 중화라는 주장을 떳떳하게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어찌 조선 고유문화를 꽃피워내는 데 조금이라도 주저할 리가 있었겠는가. _ 오주석, 최완수, <진경시대1>, p23 


 이 시기(정조 대) 풍속화의 유행은 사(士)의식과 사인적 생활을 공유하는 사계층이 확산되면서 사로서의 소속감을 가졌던 화원화가들에 의해 주도되었고 풍속화에는 그들의 자아의식과 생활경험이 투영되었다. 더구나 이제는 속태를 해학적으로 묘사하는 가운데 색태를 추구하는 새로운 경향이 나타나 점차 풍속화의 특징을 이루게 되었다. 이러한 풍속화의 새로운 면모는 순조대 이후 조선의 주자학적 질서가 전면적으로 동요하는 가운데 더욱 심화되었다. _ 오주석, 최완수, <진경시대2>, p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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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10-29 11: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강진에 민화뮤지엄이 있었군요. 저는 강진 하면 정약용 선생님이 자동으로 떠오릅니다ㅎㅎ
민화의 주제는 참으로 다양한데 부동산도를 말씀하셔서 오늘날과도 연결할 수 있겠다싶어 슬며시 웃음이 났네요^^ 그렇죠 내가 사는 지역과 공간, 생태계는 중요할 수 밖에 없을듯합니다. <조선의 사가기록화~>는 담아둔 책이었는데 망설이고 있었어요. 소개해주신 글을 보니 읽어볼만하다 싶네요.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22-10-29 12:00   좋아요 3 | URL
네 거리의화가님 말씀처럼 강진은 다산관련 유적이 유명한 곳입니다. 그외에도 영랑생가, 월출산 무위사등도 좋습니다. 좋은 가을 주말이네요. 거리의화가님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

레삭매냐 2022-10-29 19: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11년 전에 강진 우두봉에
죽을 고생을 하며 오른 기억
이 납니다.

앞에 흐르는 강이 탐진강
이었더군요. 그 시절에 참
좋았었는데 -

다시 강진에 갈 일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겨울호랑이 2022-10-29 21:56   좋아요 1 | URL
아 그러셨군요. 저는 아직 우두봉에 못 올라가봤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가 있는 곳이라 매년 가는데 다음번에는 레삭매냐님의 추억이 어린 우두봉도 방문 후보지에 올려봐야겠습니다. 레삭매냐님 좋은 주말 되세요! ^^:)

서니데이 2022-11-09 15: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22-11-09 20:48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저녁시간 보내세요! ^^:)

거리의화가 2022-11-09 16: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2관왕 축하드려요*^^*

겨울호랑이 2022-11-09 20:48   좋아요 1 | URL
거리의화가님 감사합니다. 이번에 운이 좋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