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적 활동은 경기에 참가한 선수의 행동과 같은 것이며, 관습상/법률상의 틀은 그 경기의 규칙과 같은 것이다. 경기에서나 사회에서나, 그 어떤 규칙도 참가자 대부분이 외부적 강제 없이 그에 따라 주지 않는 한, 다시 말해 광범위한 사회적 합의가 뒷받침되지 않는 이상, 보편화할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가 규칙을 해석하고 적용하기 위해 관습이나 합의에만 의지할 수는 없는 일이므로 심판이 필요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 규칙을 수정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는 일, 규칙의 의미에 대해 이견이 있을 때 그 차이를 조정해주는 일, 내버려두면 정정당당하게 경기하려 하지 않는 극소수의 사람들에게 그 규칙을 준수하도록 강제하는 일, 이러한 일들이야말로 자유사회에서 정부가 맡은 기본적 역할이다. _ 밀턴 프리드먼, <자본주의와 자유> ,p62


통화주의자이자 자유주의 시장경제 옹호자, 이른바 신자유주의자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 1912 ~ 2006)은 <자본주의와 자유 Capitalism and Freedom>에서 규칙의 제정자 겸 심판으로서의 정부의 역할을 강조한다. 절대적 시장의 자유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일종의 조정자로서 역할을 프리드먼은 강조한다. 같은 장 결론에서 그는 최종적으로 정부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명시한다. 법과 질서를 유지하고, 개인을 보호하는 정부의 기능. 작은 정부 옹호자인 프리드먼의 시각에서도 이태원 참사를 대처하는 현정부의 모습은 일관성없는 자유주의자에 다름아니다. 대통령 스스로가 자신의 가치관에 프리드먼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음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프리드먼의 기준에도 못 미치는 행정을 펼치고도 반성없이 애도(哀悼)를 강요하며 슬퍼할 자유를 강제하는 모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관련기사 :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5289


 법과 질서를 유지하고, 재산권을 유지하고, 재산권이나 경제적 게임의 다른 규칙들을 수정하는 수단 노릇을 하고, 그 규칙의 해석을 둘러싼 분쟁을 재결 裁決하고, 계약의 이행을 강제하고, 경쟁을 촉진시키고, 통화운용체계의 구조를 마련하고, 정부 개입을 충분히 정당화할 만큼 중요하게 생각되는 것으로서 기술적 독점에 대응하고 외부효과를 극복하기 위한 활동에 관여해온 정부. 정신이상자건 어린아이건 간에 무능력자를 보호하는데 있어서 사적인 자선이나 가족의 기능을 보완해온 정부. 이처럼 정부는 분명히 앞으로도 중요한 기능을 수행할 것이다. 일관성 있는 자유주의자는 무정부주의자가 아니다. _ 밀턴 프리드먼, <자본주의와 자유> ,p75


 정부가 수행하기에 적합한 활동이 무엇인지 결정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문제는 서로 다른 개인들의 자유가 저촉되는 것을 어떻게 해소하느냐 하는 것이다. _ 밀턴 프리드먼, <자본주의와 자유> ,p63


견딜 수 없었던 하루. 점점 비참해지는 날들. 울다. _ 롤랑 바르트, <애도일기> ,p102/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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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2-11-01 2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밀턴 프리드만 이야긴 공감할 수 없지만, 롤랑 바르트의 “애도”는 지금 이때 맘에 다가옵니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겨울호랑이 2022-11-01 21:37   좋아요 1 | URL
저 역시 밀턴 프리드먼의 주장에 동의하기 어렵지만, 자유를 좋아하는 어떤 이가 존경하는 인물이라 옮겨봅니다. 참 힘든 요즘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22-11-01 22:10   좋아요 1 | URL
“자유”란 단어가 가장 어려운 말인 거 깉습니다. 이제 “자유”를 다시 재정의하거나 더 이상 주장하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자유”가 모든 걸 망치고 있는 거 같습니다. ㅠㅠ

겨울호랑이 2022-11-01 22:14   좋아요 1 | URL
북다이제스터님 말씀처럼 어떤 것으로부터의 자유인지, 누구의 자유이며 그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사회적 재합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북다이제스터 2022-11-01 22:27   좋아요 1 | URL
자유가 명사형(freedom)이 아닌 부사구형(A is free from B)이라고 본다면 자유는 뭔가에서 결핍된 상태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자유는 그분 말씀처럼 모든 것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위해 자유롭지 않는 것을 선택하는 자유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겨울호랑이 2022-11-01 22:30   좋아요 1 | URL
^^:) 북다이제스터님의 ‘자유‘ 정의는 마침 얼마 전 정리한 하이데거의 ‘자유‘와 통하는 바가 있는 듯 합니다. 제약 상황 아래에서 어쩔 수 없이 주어진 선택지 중에서 골라야 하는 자유. 자신의 뜻대로 모든 것이 되어야 하는 절대자의 자유가 아닌, 유한한 존재로서의 자유가 더 현실적으로 다가옵니다.

북다이제스터 2022-11-01 22:36   좋아요 1 | URL
답글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제가 감히 하이데거 반열에 든 거 같습니다. 감히… ㅋㅋ
하이데거는 제가 넘 좋아하는 분이라서 더욱 몸 둘봐를 모르겠습니다. ㅋㅋ
즐거운 저녁 시간 되세요. ^^

겨울호랑이 2022-11-01 22:44   좋아요 0 | URL
북다이제스터님 좋은 대화 감사합니다. 평안한 밤 되세요! ^^:)

나와같다면 2022-11-01 21: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이런 일이...”
상가에서 자주 듣는 말입니다.
‘문상(問喪)’이나 ‘조문( 弔問)’에 ‘물을 문(問)’자가 있는 것은, 죽음의 진상에 대한 의문과 애도가 본디 둘이 아니라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진상을 알아야, 망자와 유족, 그 친척 친지들이 한을 품지 않고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지금은 애도할 때이니 진상규명과 책임문제는 나중으로 미뤄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가 많습니다.
이들이야말로, 무식을 선동하여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자들입니다.

- 전우용 사학자

겨울호랑이 2022-11-01 21:44   좋아요 2 | URL
정말 그렇습니다. 위패도 없이 하얀 국화꽃만 한 손에 덜렁덜렁 내려놓는 위선적인 모습들이 오히려 진실을 은폐하려는 그들의 진심을 드러내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레이스 2022-11-02 17: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바르트의 애도일기 좋았습니다.
자유시장경제를 주장했기에 아마도 그는 작은 정부쪽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그럼에도 그가 생각한 정부는 지금 우리 정부 그 이상이죠!ㅠ

겨울호랑이 2022-11-02 18:38   좋아요 1 | URL
그렇습니다... 주권을 정부에 위임한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해 본다면 답은 상식선에서 나올 것이라 여겨집니다. 그럼에도 비상식적인 정부의 행태는 우리를 더 슬프게 하네요...

그레이스 2022-11-02 18:39   좋아요 2 | URL
오늘 막내가 저 사람은 사회계약론부터 다시 공부해야 해! 라고 하더군요 ㅠ

겨울호랑이 2022-11-02 21:25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님 자제분께서 날카롭게 짚어주셨다고 생각됩니다... 어쩌면 그보다 더 일찍 객차 안에서 다리를 올리지 않아야 한다는 도덕부터 다시 배워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eBook] 심심할 때 읽는 EPL 영국 축구(프리미어리그) 이야기
이문익 / 유페이퍼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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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새벽 운동을 가기 위해 일어나던 중 충격적인 사건에 정신이 들었다.

참 가슴아픈 일,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수도 서울 한복판 번화가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에 탄식이 절로 난다. 2014년 10월 판교 공연장 환풍구 붕괴사고에서처럼 문화행사에 많은 사람이 몰려 발생한 사건이지만, 피해 규모는 그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크기에 비통한 마음이 크다.

위령의 날(Day of the Dead, 11월 2일)에 젊은이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더 이상 이런 아픔이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힐즈버러 참사 (Hillsborough disaster)

 1989년 4월 15일 잉글랜드 셰필드에 있는 힐즈버러 스타디움에서 발생한 96명의 팬이 사망하게 된 사건이다. 당시 리버풀 FC와 노팅엄 포리스트 FC간의 FA컵 준결승전이 힐즈버러 스타디움에서 열리게 되었는데, 이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약 25,000여명의 리버풀 팬들이 찾아왔지만 좁은 공간에 너무 많은 이들이 몰려 킥오프 이후 96명이 압사하게 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영국의 모든 스타디움에는 기존의 입석 형태가 아닌 좌석 형태의 좌석을 갖추게 되었고, 보호 철망은 모두 철거하게 되었다. _ 이문익, <EPL 영국축구(프리미어)이야기> , p8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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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11-02 19: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희생자들이 훌리건으로 매도당해서 그 명예 회복과 보상을 위한 소송과 승소까지 20년이 걸렸다고 들었어요.
결국 과실치사로 보상을 받았지만, 길고 긴 법정싸움에 미치지 못했던 것으로 압니다. ㅠ

겨울호랑이 2022-11-02 21:28   좋아요 0 | URL
네 그렇습니다. 어느 사회에서나 책임질 사람들이 책임지지 않고 빠져나가기 위해 진실을 은폐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제는 그렇게 넘어가서는 안되겠지요...
 



 민화(民畵)들은 18세기 이후 농업생산의 증대, 수공업의 발전과 시장경제의 확대 등 경제의 성장에 따른 서민대중 사이에서 생겨난 회화에 대한 욕구에 부응하기 위하여 흔히 제작되었다. 민화는 18세기 이후에 성장한 서민문화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줌과 동시에 우리 민족의 미의식, 조형상의 특성, 색채감각 등을 보다 진솔하고 직설적으로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매우 크다고 하겠다. _ 김원룡, 안휘준, <한국미술의 역사> , p545


 지난 주말 전남 강진에 있는 한국민화뮤지엄에 다녀왔다. <화조도>, <연화도>, <심장생도>, <책거리> 등 여러 주제의 민화들을 보면서 민화 소재들의 의미, 그림에 담긴 소망 들을 해설사의 설명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당대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것을 염원하는 의미가 민화에 담겨있다면, 우리 시대 민화의 가장 인기있는 그림은 <부동산도>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민화 속에 녹아 있는 정신적인 배경도 그와 같다. 민화는 한점 한점 모두가 인간의 행복을 기원하기 위해 그려진 아름다운 소망이 담긴 그림이다. 이러한 기복 신앙의 민화는 대체로 두 가지 내용을 담고 있다. 하나는 오래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복 많이 받고자 하는 것이다. 장수와 복의 상징이 우리의 삶에 절대적인 표상이 된 것은 조선시대 후기로 접어들면서 사회가 안정되고 삶의 질이 향상되면서부터이다(p14)... 기복 신앙은 한편으로 기복을 방해하는 잡귀나 악귀들을 쫓는 벽사 신앙과 연결되었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모든 사물에는 음양陰陽이 있으며 삶의 본질에는 선악善惡이 필연적으로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림이 지닌 주술적인 힘이 여러 재앙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주며 영적인 힘을 가진 동물 그림을 집에 둠으로써 잡귀를 물리칠 수 있다고 믿었다. _ 윤열수, <민화1> , p16


 많은 민화에 담긴 의미가 장수(長壽)와 행복(幸福)이지만, 기록화와 같이 사실에 기반한 그림도 민화의 한 장르임을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되었다. 이와 함께 박정혜의 <조선시대 사가기록화, 옛 그림에 담긴 조선 양반가의 특별한 순간들>는 양반들의 사가기록화를 중점적으로 분석한다. <대학 大學>의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일생을 통해 실현하려고 했던 양반들의 욕망이 투영되었다는 점에서 사가기록화는 민화의 일부일수도, 그렇지만 다수 민중들과는 다른 계급의 그림이었다는 점에서는 민화가 아닐수도 있는 애매한 위치의 그림이 사가기록화라 생각된다.


 기록화는 <삼국지>의 내용이나 전쟁, 임금의 행차 및 궁궐의 의식 등 사실에 기초한 이야기를 그린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그림은 마치 사진과도 같이 풍속/의식/관제/건축 양식/복식 등의 생생한 내용을 담고 있어 민속적인 자료로도 가치가 높다. 기록화는 대개 등축도법을 이용하여 원근을 묘사하고 있는데 비교적 정확한 작도법에 의해 그려진 것으로 미루어 대부분의 기록화는 본격적인 그림 수업을 받은 도화서의 화원들에 의해 그려진 것으로 짐작된다. _ 윤열수, <민화2> , p706 


 사가기록화 私家記錄畵란 개인이 속한 집안 행사나 의례, 혹은 개인의 생애와 관련된 사건 등을 시각적으로 기록한 그림을 의미한다. 대개 사가기록화는 행사 주인공의 자취를 기념하거나 조상의 업적을 선양하며 나아가 집안의 우수성을 알리고 위상을 높이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졌다(p11)...  사가기록화를 관통하는 핵심어는 장수, 높은 관직, 가문의 번성 등 크게 세 가지로 함축되는데, 이는 사가기록화를 분류하는 기준이 된다. 양반 관료들은 조선 사회가 자신들에게 요구했던 유교적 가치를 사가기록화라는 매체를 통해 나타내려 했다. 유교 사회에서는 어느 장소에서나 관작, 나이, 덕망[三達尊]이 존중되었으며 사람들은 '큰 덕德을 지니면 반드시 지위를 얻고 녹을 받으며 명성을 얻고 수명을 누린다'는 <중용中庸>의 가르침을 귀하게 여겼다. _ 박정혜, <조선시대 사가기록화, 옛 그림에 담긴 조선 양반가의 특별한 순간들> , p15/570


 사가기록화는 유교적인 가치 실현을 위해 노력한 본인과 조상의 자취를 그림으로 남김으로써 후손에게 본보기가 되기 위해 제작되었다. 바꾸어 말하면 조선시대 양반 관료들이 평새 이루려고 노력했던 세속적 욕망이 투영된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_ 박정혜, <조선시대 사가기록화, 옛 그림에 담긴 조선 양반가의 특별한 순간들> , p24/570


 <조선시대 사가기록화, 옛 그림에 담긴 조선 양반가의 특별한 순간들>에는 사서기록화와 함께 짝이 되는 <평생도>가 소개된다. 사서기록화가 현실화된 업적을 보여주는 그림이라면, 평생도는 양반들이 추구했던 삶을 소재로 한다. 양반들에게 평생도는 자신이 살고자 하는 미래/가능태라면, 사서기록화는 현재/현실태를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자못 흥미롭다. 인생의 황혼기에 평생도와 사서기록화가 담긴 병풍을 양쪽에 펼쳐놓고 자신의 지난 삶을 돌아보는 양반들은 지난간 세월에 후회가 없었다는 답을 할 수 있었을까.


 평생도는 조선시대 양반 사대부들이 추구하였던 이상적인 삶을 여러 장면에 나누어 그린 일종의 풍속화로 18세기 말 무렵에 제작되기 시작했다. 가장 이상적인 단계로 설정된 사대부의 일생을 시각화한 일련의 구성은 동아시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형태이다... 평생도에는 높은 관작, 연치, 학덕을 인생 최고의 가치로 추구하였던 조선시대 양반사대부들의 염원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는 사가기록화의 제작 목적이나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다. _ 박정혜, <조선시대 사가기록화, 옛 그림에 담긴 조선 양반가의 특별한 순간들> , p424/570 


 평생도는 사가기록화의 범주에서 논의되는 여러 종류의 행사와 의례를 내용 면에서 공유하고 있으며, 부귀공명이라는 현세적인 목적 역시 그림 안에 직접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따라서 평생도와 사가기록화의 관계성을 분석하면 사가기록화 제작이 조선 후기 화단에 미친 영향과 의미의 짐작이 가능하다. _ 박정혜, <조선시대 사가기록화, 옛 그림에 담긴 조선 양반가의 특별한 순간들> , p11/570 


  죽음을 눈 앞에 둔 한 노인이 어떤 답을 내렸을지도 궁금하지만, 평생도를 통해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사가기록화를 통해 자신의 삶이 역사에 남겨질 것이라는 인식을 하지 않았을까. 자신의 지향점이 주어지고, 그 지향점을 실천하는 과정이 정신세계에서는 감성과 지성 그리고 공통된 뿌리로부터 기원하는 것이 아닐까. 자신이 지향하고자 하는 관념의 실현이라는.


 "아마도 '공통적인 그러나 우리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뿌리'로부터 발원하는 인간 인식의 두 줄기가 있다. 즉 감성과 지성이다. 감성을 통해서는 대상들이 우리에게 주어지며, 지성을 통해서는 대상들이 사유된다." 하이데거는 칸트의 이 발언에서 감성과 지성이라는 두 줄기의 '공통된 뿌리'가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p610)... 하이데거는 칸트가 규명하지 않고 놔둔 그 뿌리가 바로 '상상력'(Einbildungskraft)이라고 말한다. 감성의 직관과 지성의 사유의 중간에 놓여 이 둘을 종합하는 것이 상상력이라는 것이다. _ 고명섭, <하이데거 극장1>, p611


 개인적 차원에서는 '풍속화-사서기록화'가 하나의 쌍이 되어 이상-현실의 관계를 구축한다면, 조선 후기 사회적 측면에서 조선 전기 <몽유도원도>와 같은 관념적인 그림 대신 현실적인 진경산수화가 등장한 것도 역사에서의 커다란 이상-현실의 cycle은 아닐까. 이것과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 ~ 1900)의 영원회귀(Ewige Wiederkunft)를 연결지어 생각해보는 것도 나름의미있는 생각이 될 듯하다. 진리에 대립하는 예술의 의미를 주장한 니체와 그런 니체를 분석한 하이데거를 

생각한다면, 미술작품 안에서 권력의지와 영원회귀를 찾는 것도 그렇게 엉뚱하지만은 아닐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하이데거 극장> 리뷰에서 더 자세히 정리하도록 하자...


하이데거는 <권력의지>를 기본 텍스트로 삼아 니체 사상을 해석해 들어간다. 이 메모들에서 니체 자신이 논구한 가장 중요한 사사잉 '권력의지'와 '동일한 것의 영원회귀'다. 하이데거는 이 두 가지 사상이 '존재자 전체의 존재'를 부르는 두 가지 이름이라고 해석하낟. 다시말해 권력의지가 존재자 전체의 존재 성격이라면 영원회귀는 존재자 전체의 존재 방식이라고 해석한다. _ 고명섭, <하이데거 극장2>, p246


 페이퍼가 산으로 올라가버렸지만, 민화 안에는 분명 그 시대 사람들의 강렬한 욕망이 담겨 있었다. 소재의 이름과 특성에 담긴 여러 형태의 건강, 부귀의 의미는 이를 열망하는 사람들의 염원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열망이 추상적으로, 은유적으로 표현되었던 것은 이를 구체적으로 표현할 '경험'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이에 반해 '평생도-사서기록화'는 자신의 뜻을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을 정도의 상상력이 가문의 전통이라는 경험으로부터 나올 수 있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희망했고, 그것을 이루었던 것은 아니었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이의 연장선상에서 조선 전기 성리학적 유교세계를 관념적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면, 조선 후기에는 동아시아 유일의 소중화(小中華)로서의 자부심이 '진경산수화'로 표현되었던 것은 아닐까. 그런 면에서 '조선전기 북종화-평생도'와 '진경산수-사서기록화'의 유사성을 발견하게 된다. 또한, 관념-현실의 이러한 순환관계 속에서 영원회귀와 권력의지와도 같은 욕망을 생각하게 된다. 많이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앞으로 책을 읽다보면 정리되겠지...


 문화적으로 우리보다 열등한 여진족이 무력으로 중국을 차지했다 해도 중화의 계승자가 될 수 없는데, 하물며 그 야만 풍속인 변발호목(?髮胡服)을 한민족(漢民族)에게 강요하여 중화문화 전체를 야만적으로 변질시켜 놓았으니 중국에서는 이미 중화문화 전통이 단절되었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니 중화문화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면서 주자성리학의 적통(嫡統)을 발전적으로 계승하고 있는 조선만이 중화문화를 계승할 자격을 갖추었으므로 이제 조선이 중화가 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었다.(p22)... 이로 말미암아 조선이 곧 중화라는 조선중화주의가 조선사회 전반에 점차 팽배해 가기 시작하였다. 이제 조선이 곧 중화라는 주장을 떳떳하게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어찌 조선 고유문화를 꽃피워내는 데 조금이라도 주저할 리가 있었겠는가. _ 오주석, 최완수, <진경시대1>, p23 


 이 시기(정조 대) 풍속화의 유행은 사(士)의식과 사인적 생활을 공유하는 사계층이 확산되면서 사로서의 소속감을 가졌던 화원화가들에 의해 주도되었고 풍속화에는 그들의 자아의식과 생활경험이 투영되었다. 더구나 이제는 속태를 해학적으로 묘사하는 가운데 색태를 추구하는 새로운 경향이 나타나 점차 풍속화의 특징을 이루게 되었다. 이러한 풍속화의 새로운 면모는 순조대 이후 조선의 주자학적 질서가 전면적으로 동요하는 가운데 더욱 심화되었다. _ 오주석, 최완수, <진경시대2>, p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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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10-29 11: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강진에 민화뮤지엄이 있었군요. 저는 강진 하면 정약용 선생님이 자동으로 떠오릅니다ㅎㅎ
민화의 주제는 참으로 다양한데 부동산도를 말씀하셔서 오늘날과도 연결할 수 있겠다싶어 슬며시 웃음이 났네요^^ 그렇죠 내가 사는 지역과 공간, 생태계는 중요할 수 밖에 없을듯합니다. <조선의 사가기록화~>는 담아둔 책이었는데 망설이고 있었어요. 소개해주신 글을 보니 읽어볼만하다 싶네요.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22-10-29 12:00   좋아요 3 | URL
네 거리의화가님 말씀처럼 강진은 다산관련 유적이 유명한 곳입니다. 그외에도 영랑생가, 월출산 무위사등도 좋습니다. 좋은 가을 주말이네요. 거리의화가님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

레삭매냐 2022-10-29 19: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11년 전에 강진 우두봉에
죽을 고생을 하며 오른 기억
이 납니다.

앞에 흐르는 강이 탐진강
이었더군요. 그 시절에 참
좋았었는데 -

다시 강진에 갈 일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겨울호랑이 2022-10-29 21:56   좋아요 1 | URL
아 그러셨군요. 저는 아직 우두봉에 못 올라가봤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가 있는 곳이라 매년 가는데 다음번에는 레삭매냐님의 추억이 어린 우두봉도 방문 후보지에 올려봐야겠습니다. 레삭매냐님 좋은 주말 되세요! ^^:)

서니데이 2022-11-09 15: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22-11-09 20:48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저녁시간 보내세요! ^^:)

거리의화가 2022-11-09 16: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2관왕 축하드려요*^^*

겨울호랑이 2022-11-09 20:48   좋아요 1 | URL
거리의화가님 감사합니다. 이번에 운이 좋았네요 ^^:)
 

 우량채권은 본래 이자나 원금의 즉각적 지급에 관해 현재나 미래의 시점에서 어떤 의심도 있을 수 없는 채권이다. 이 채권의 가격은 다름 아닌 만기에 대한 예상금리에 의해 주로 결정된다. 만약 예상금리가 떨어지면 우량채권의 가격은 내부수익률을 낮추기 위해 오를 것이고 금리가 오르면 그 반대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_ 벤저민 그레이엄, <증권분석> , p64


 벤저민 그레이엄(Benjamin Graham, 1894 ~ 1976)이 생각하기에, 채권(bond)은 우선주(preferred stock)와 마찬가지로 매력적인 투자처는 아니다. 때문에, 그의 <증권분석 Security Analysis>에서 채권과 관련한 내용은 스쳐가듯 간략하게 소개된다. 내개가치와 시장가치의 차이에 해당하는 '안전마진(Margin of Safety)'을 통해 '시장을 이기는 전략'을 추구했던 그에게 시장의 모든 위험요인들이 이자율(interest rate)에 할인율이라는 별칭으로 가격에 반영되는(심지어 거대하기까지한) 채권 시장은 그다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담배꽁초를 주워담듯이 하는 그의 장기가 발휘될 여지가 채권시장에 없는 것은 사실이다.


 현재의 이자율이 (최소한 일부는) 관련된 경제적 요인들이 다양한 변화를 겪으면서 반영하는 내용들을 이미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래의 이자율이 현재의 이자율보다 높거나 낮을 것이라는 식의 예측은 합리적 계산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개인적 예측의 차원에 그쳐버릴 것이다. _ 벤저민 그레이엄, <증권분석> , p64


 주식시장과 채권시장, 서로 다른 위험회피 성향과 리스크 프리미엄(risk premium)을 갖는 갖는 이들이 참여하는 두 시장은 분명히 다른 시장이다. 상대적으로 큰 규모의 자금을 보다 안정적으로 운용하고자 하는 투자자들의 운용처가 채권시장이다보니, 채권시장의 이자율에 대한 설명은 케인즈(John Maynard Keynes, 1883 ~ 1946)는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 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의 유동성 선호이론에 잘 표현된다. 물론, 케인즈는 해당 이론을 화폐에 적용했지만.


 이자율은 항상 유동성(流動性)을 내놓는 데 대한 보수이기 때문에, 화폐 소유자가 화폐에 대한 그들의 유동적 지배력을 내놓는 것을 원하지 않는 정도의 척도가 된다. 이자율은 투자를 하기 위한 자금에 대한 수요(需要)와, 현재의 소비를 억제하려고 하는 의향(意向)을 균형시키는 "가격(價格)"이 아니다. 그것은 부(富)를 현금(現金)의 형태로 보유하고자 하는 소망과, 이용 가능한 현금의 양(量)을 균형시키는 "가격"인 것이다. _ 케인즈,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 p197


 그래서 우량채권 분야에서는 통상적으로 분석가가 가격 예측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는 경험을 통해 가격변동이 일어날 때 우량채권 보유자의 금융자산 규모에 영향을 줄 만큼 변동폭이 넓은 경우는 별로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_ 벤저민 그레이엄, <증권분석> , p64


  채권시장에서 이자율은 인간과 교신할 수 있는 지적 외계 생명체의 수를 계산하는 드레이크 방정식(드레이크 방정식(Drake equation)처럼 수많은 변수들의 종합으로 계산되고, 시장참여자들은 가격수용자로서 이를 받아들이게 된다. 여기에서, 그레이엄은 외국채권 투자 시 위험사항을 다음과 같이 단적으로 지적한다. 그가 이 책을 집필한 1950년대와 오늘날을 직접 비교하기는 힘들지만, 외국의 정치적 안정성이 투자의 적합성을 판단하는 주요 기준이 되는 것은 오늘날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외국정부 채권을 다룰 때는 이와는 다른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이런 종목들은 재무 분석에 잘 반응하지 않으며 그로 인해 투자 역시 그 나라의 정치경제적인 안정에 대한 확신이나 성실히 채무이행을 할 것이냐 하는 데 대한 믿음과 같은 일반적 고려사항에 통상 의존하게 된다. 외국정부 채권은 이론적으로는 국가 전체 자원에 대한 청구권이다. 하지만 외부 부채를 충당하기 위해 실제로 이런 자원들이 이용될 수 있는 범위는 상당 부분 정치적 형편에 달려있다. _ 벤저민 그레이엄, <증권분석> , p435


 얼마 전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한국채권시장을 뒤흔들었다. 정치적 의도를 갖고 행한 무분별한 행동에 채권시장은 패닉상태에 빠졌고, 덕분에 50조가 넘는 금액이 '김진태發' 공황을 잡기 위한 긴급자금으로 동원되었다. 다행히, 이 사건이 당장의 '사라예보의 총성'이 되지는 않았지만, 몽유병자들 때문에 며칠 사이에 안보위기, 경제위기, 정치위기 등으로 조용할 날이 없는 요즘이다. 시장은 예상할 수 있는 멍청한 정책보다 불확실한 시장을 더 싫어한다는 성향을 몽유병자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한 이 위험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텐데, 그러기가 쉽지 않을 듯 싶다...


[관련기사] 김진태가 던진 '레고랜드 불씨'... 채권시장 집어삼킬 '큰불'로

https://www.hankyung.com/economy/article/2022102153311


 공황을 잡기 위한 대출이라면, 대출은 그러한 목적을 가장 잘 달성할 수 있도록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 목적을 위해서는 평상시의 모든 우량한 '은행담보'에 대해 대출이 나가야 한다. 그런데 평상시에는 우량한 담보도 공황 때에는 불안감 때문에 우량담보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 바로 문제이다. 그래서 바른 정책이란 될수록 그런 문제가 해결되어 정상적인 거래가 회복될 수 있도록 은행지급준비금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모든 우량담보에 대해 대출을 해주는 것으로만 가능하다.... 앞으로 공황이 닥친다면 영란은행이 어떤 행태를 보일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여론이다. 영란은행은 지금까지 이 문제에 대해 명확하고 확고한 정책을 세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_ 월터 바지호트, <롬바드 스트리트> ,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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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쿼소니에 따르면, "어떤 국가가 충분한 양의 핵분열성 재료를 보유한다면, 핵폭탄 제작까지 6개월이면 충분하다." 따라서 이란 역시 농축 우라늄을 일정량 보유하면, 잠재적 핵 강대국이 될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미국, 러시아, 중국, 프랑스, 독일, 영국은 2015년 이란과 협정을 맺고, 이란이 군사용 핵 프로그램 개발을 중단하고, 농축 우라늄 비축량을 축소하는 조건으로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를 해제하기로 했다. 


 프랑스 외교관으로 일했던 마크 피노 제네바 안보정책센터 부교수는 "그런 가운데, 민간용 핵을 이용해 잠재적 강대국이 되고 필요하면 군사용으로 신속하게 전환 가능하다는 이란의 사례를 다른 국가들도 열망하게 됐다"라고 분석했다. 피노 교수는 핵 기술은 일종의 특권이라는 사실도 지적했다. 이 때문에 핵 기술을 보유하려는 국가들이 늘고 있다. _ <르몽드디플로마티크 2022.10> <핵무기를 향한 아랍 국가들의 열망> 中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Le Monde Diplomatique 2022.10>에서는 이미 핵(核)보유국인 이스라엘 외에도 핵보유를 희망하는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등에 대한 기사가 다루어졌다. 북한과 이란의 핵개발 관련 기사가 이제는 낯설지 않지만, 그럼에도 눈길이 가는 것은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핵위협 문제, 우리나라 대통령의 전술핵 관련 발언때문일 것이다. 최상위 비대칭 전력이라 할 수 있는 핵무기를 배치하자는 (전시작전권은 없지만) 국군최고통수권자의 발언처럼 전술핵무기는 과연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을까?


 미국이 소련과 핵전쟁을 벌인다면 아마 그것은 틀림없이 소련이 먼저 미국을 공격했기 때문이 아닐 것이다. 전쟁 초기 단계에 전략 핵무기가 오가지는 않겠지만 머지않아 그 단계로 확대되어갈 것이다. 대서양 동맹의 방어 전략은 전쟁이 단계적으로 확대되어 무자비하게 진행될 것이라는 가정 아래 수립된다. 전쟁이 단계적으로 확대되는 모습을 나타내는 은유적인 공식 표현은 '억제의 체인', '억제의 망', '억제의 연속' 따위다. 새로운 미사일이 배치되면 이 체인, 망, 연속이 완성된다. _ 한스 모겐소, <국가 간의 정치> , p203


 한스 모겐소(Hans Joachim Morgenthau, 1904 ~ 1980)는 <국가 간의 정치 Politics Among Nations>에서 핵무기를 국제 정치의 한 요인으로 설정하고 별도의 장(章)에서 이 문제를 다룬다. 이에 따르면 미래의 핵전쟁 양상을 두 강대국의 충돌에서 촉발하는 것이 아니라, 양 진영의 변경에서 재래식 무기에 의한 국지전 양상으로 벌어진 군사충돌이 점차 확전(擴戰)을 보이면서 강대국간의 전략핵무기 사용으로 이어질 것이다. 물론, 이러한 냉전 시대의 논리가 오늘날 그대로 이어지기는 힘들겠지만, 적어도 지역 내에서 한 국가의 전술핵보유가 주변국의 전략핵보유를 자극할 것임은 너무도 분명할 것이다. 


 우리 시대 최악의 핵 공포가 현실로 나타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모든 수준에서의 억제가 필요하다. 따라서 전술적 전역 핵무기가 사용되지 못하도록 재래식 전쟁은 포기되어야 하며, 전략 핵무기가 사용되지 못하도록 전술 핵무기가 포기되어야 한다. 그리고 전략 핵무기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포기되어야 한다. _ 한스 모겐소, <국가 간의 정치> , p205


  20세기 중반 핵전쟁으로 가장 가까이 접근했던 시기로 평가받고 있는 쿠바 미사일 사건. 흔히 케네디(John Fitzgerald Kennedy, 1917~1963)의 대범한 승부수에 흐루쇼프(Nikita Sergeyevich Khrushchev, 1894~1971)가 굴복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소련 또한 이를 통해 성과가 있었던 것은 협상으로 갈 수 있을 정도의 핵전력을 보유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전술핵보유는 전략핵보유으로 가는 징검다리에 불과하며, 어중간한 비대칭전력의 보유는 러시아, 중국의 정밀타격지점에 추가 되는 이상의 의미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게임이론(game theory)에서 안정적으로 효과적인 전략이 바로 보복전략(Tit for Tat)이라는 점에 근거한다. 


 20세기에 세계의 강대국들이 벌였던 가장 위험한 대치상황을 1962년 10월에 옛 소련이 쿠바에 핵미사일을 반입하려고 한 시도라고 말하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게임이론의 관점에서 흐루시초프와 케네디가 직면하였던 상황은 성과행렬로 요약할 수 있다... 사실상 이 위기에 대한 대부분의 사람들의 기본개념은 두 강대국이 '충동선'상에 있었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지금까지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실제로 취해졌던 의사결정은 봉쇄와 철수였으며, 이는 쿠바 미사일 위가라고 일컬어지는 협상의 결과로 귀착되었다. 소련이 쿠바에서 미사일을 철수하도록 함으로써 게임에서는 미국이 '승리'한 것 같은 일면이 있기도 하지만, 소련도 케네디 대통령으로부터 쿠바를 침공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얻어냈기 때문에 위기의 결말이 실제로는 일종의 협상이었던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_ 존 L. 캐스티, <20세기 수학의 다섯 가지 황금률>, p52


 상대에게 당했을 때, 그 이상의 피해를 안길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보다 상위의 젼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릴 필요가 있으며, 이러한 인식이 보편화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TFT전략의 관대함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극단적으로 전세계 모든 나라가 핵무장을 했을 때, 세계평화가 온다는 것은 TFT 전략을 극한으로 밀어붙였을 때의 결과값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나가도록 기존 핵보유국들은 지켜보고 있을까. 


 '이에는 이, 눈에는 눈(Tit for Tat : TFT)'류의 전략에서 중요한 것은 경기자가 배신에 의해 벌을 받는다는 것이다. 보복의 위협은 항상 존재해야 한다. 보복할 수 있음을 과시하는 것은 '우리도 살고 남도 살리자' 방식의 주목할 만한 특징이다... TFT류 전략의 중요한 특징은 관대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이미 살펴본 대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장기간의 상호 보복이 연쇄를 진정시키는데 한몫한다. _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 , p481/754


 상대보다 우월한 지위를 점하기 위한 군비 경쟁의 가속화에 대해, 자신들의 선도적 위치를 놓치지 않으려는 핵보유국들의 '사다리 걷어차기'는 '세계평화를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이어질 것이다. 자신의 핵우산 밖으로 일본과 한국이 나가기를 바라지 않는 미국의 입장에서 본다면, 북핵개발의 또다른 수혜자는 바로 한국이다. 


 핵무기 경쟁은 서로를 몹시도 두려워하는 신중한 정부가 운영하는 두 초강대국에만 제한되지 않고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모든 국가가 때때로 바보와 악당의 손에, 심지어는 이들 모두에 의해 지배되어왔음을 역사가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보와 악당, 심지어는 이들 모두가 핵무기를 보유하고, 핵전쟁이 피할 수 없게 되어버린 상황을 한번 상상해보자. 이것이 바로 일반화된 무제한 핵무기 경쟁이라는 역동적 현상 속에 내재된 실제 핵전쟁의 피할 수 없는 위험이다. _ 한스 모겐소, <국가 간의 정치> , p206


 아무리 성조기를 들고 집회에 나가서 '미국만세'를 외치더라도, 그들이 보기에 한국은 북한 핵개발의 드러나지 않은 수혜자이며,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그런 미국이 과연 한국의 독자적인 핵무기 보유를 승인할 것인가. 결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한국 내 핵무기가 들어온다면 그 통제권은 미군에게 있을 것이며, 우리는 러시아-중국 대륙간탄도미사일의 첫번째 목표가 되는 이상의 의미가 없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술핵배치를 주장하는 속내는 무엇일까.


 한국은 핵무기를 지역적 이해의 구도에서 파악했다. 다수의 한국인들은 북한의 핵무기를 한민족의 핵무기로 이해했다. 핵폭탄을 같은 동포의 머리 위에 떨어뜨릴 리는 만무하므로 일본과 그밖의 잠재 위협 세력으로부터의 한민족의 주권을 수호할 수 있는 좋은 수단으로 북한의 핵무기를 받아들였다. 한국의 관리들과 군 관계자들은 통일 한국의 핵무기 보유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공공연하게 피력했다. 한국의 이해는 잘 반영되었다. 핵무기 개발에 뒤따르는 희생과 국제적 오명은 북한이 짊어져야 하는 반면 한국은 궁극적으로 그것을 승계받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무기와 한국의 발달한 산업이 결합하면 통일 한반도는 동아시아 무대에서 실력 국가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다질 수 있을 것이다. _ 새뮤얼 헌팅턴, <문명의 충돌> , p151/289


 새뮤얼 헌팅턴의 주장에 영향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남북한이 핵을 공동개발하고 일본과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다는 이야기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한다. 소설에서는 무궁화 꽃처럼 피어오르는 버섯 구름이 독자들에게 통쾌함을 안겨줄지 모르겠지만, 현실은 소설이 아니다. 전술핵보유를 위해 미국에게 얼마만큼의 양보를 해야할 것이며, 미국은 북한핵에 대한 우려를 씻기 위해서라도 우리에게 한미일 안보동맹을 강요할 것이고, 이러한 역학관계에서 '미국의 전략무기 판매- 일본 군수물자 보급 - 한국 지상군 파병'이라는 전략의 큰 줄기가 쿠릴열도에서 부터 남중국해까지 분쟁지역에 적용될 수 있다는 걱정이 단순한 상상에 그치길 바란다... 

 

지구상의 어느 나라보다도 핵에 대한 공포심이 강한 이들 국민에게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10분 이내에 핵폭탄이 떨어질 것이라는 공습경보는 전국을 아수라장으로 바꾸어놓고 말았다. 부모들은 어린아이들을 안고 울부짖었으며, 어떻게 대피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은 발을 구르며 고함을 지르고 악을 썼다. 거동 못하는 노모를 들쳐업고 여기저기 지하실을 찾아 헤메는 사람, 기운이 떨어져 거리 한 모퉁이에 주저앉아 흐느끼는 사람, 아예 처자를 버리고 큰 건물의 지하로 깊이깊이 숨어드는 사람, 숫제 미쳐버린 사람까지 일본 열도는 순식간에 천태만상의 지옥으로 변하고 말았다. 제2차 대전때는 모르고 당했으니 차라리 나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처참하기 짝이 없었다. _ 김진명,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2> , p540/546


PS. 어쩌면 그는 핵을 일단 보유하면 '게임이론'에 따라 노련하게 외교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죄수의 딜레마'에 따라 많은 용의자들을 수사한 경력과 부족한 외교능력을 연결할 고리를 핵에서 찾은 것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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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24 2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0-25 07: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22-10-25 13: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술핵 배치를 주장하는 여권의 중진 의원들의 인터뷰를 슬쩍 보고 들을 때마다 바보 아닌데 왜 바보 같은 이야기를 저토록 진지하게 하나... 궁금한 적이 많았습니다. 비극을 머리에 이고 사는 슬픔과 이런 이들과 공존해야하는 현실을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낍니다.

<문명의 충돌> 이름만 들었던 책이고 아주 예전(?) 책인줄 알았는데 우리 나라 사례가 저렇게 구체적으로 나오네요.
한 번 찾아 봐야겠습니다. 좋은 글, 좋은 사유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님!

겨울호랑이 2022-10-25 13:42   좋아요 0 | URL
<문명의 충돌>에서 전망한 헌팅텅의 예지가 모두 맞는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세계를 바라보는 미국 엘리트들의 인식틀은 잘 설명해준다는 면에서 여전히 유효한 책이라 생각합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는 김진태 발 채무불이행 선언으로 채권시장이 패닉상태에 빠져들었네요... 안보, 경제 등등 사회 거의 모든 면에서 극히 혼란한 요즘입니다... 단발머리님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