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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쇄되고, 세분되고, 모든 면에서 감시받는 이 공간에서 개인들은 지정된 장소에서 꼼짝 못하고, 아무리 사소한 움직임이라도 통제되며, 모든 사건들은 기록되고, 끊임없는 기록 작업은 중심부와 주변부를 연결시키고, 권력은 끊임없는 위계질서의 형상으로 완벽하게 행사되고, 개인은 줄곧 기록되고 검사되면서, 생존자, 병자, 사망자로 구별된다.(p306)... 벤담(Bentham)의 '판옵티콘(Panopticon)'은 이러한 조합의 건축적 형태이다.(p309)... 수감자에게는 권력의 자동적인 기능을 보장해 주는 가시성의 의식적이고 지속적인 상태가 만들어진다. 감시작용에 중단이 있더라도 그 효과는 계속되도록 하고, 권력의 완벽한 상태는 권력행사의 현실성이 점차 약화되도록하고, 건축의 장치는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과 상관없이 권력관계를 창출하고, 유지하는 기계장치가 되도록 한다.(p311) <감시와 처벌> 中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 ~ 1984)는 그의 저서 <감시와 처벌 Surveiller et punir>속에서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 1748 ~ 1832)가 구상한 판옵티콘에 대한 구상을 언급하고 있다. 중앙에서 수감자들을 감시하고 통제하도록 하는 '판옵티콘' 구상은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03 ~ 1950)의 <1984> 속에서 오세아니아를 지배하는 당(黨)이 만들어낸 '빅 브라더(Big Brother)'와 '텔레스크린'의 모습으로 구현되었다.


1. <1984> 감시의 도구 : 텔레스크린


 층계참을 지날 때마다 엘리베이터 맞은편 벅에 붙은 커다란 얼굴의 포스터가 그를 노려보았다. 그 얼굴은 교묘하게 그려져 있었다. 마치 눈동자가 사람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 얼굴 아래 '빅 브라더가 당신을 주시하고 있다.'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p10) <1984> 中


 텔레스크린은 수신과 송신을 동시에 행한다. 이 기계는 윈스턴이 내는 소리가 아무리 작아도 낱낱이 포착한다. 이 기계는 윈스턴이 내는 소리가 아무리 작아도 낱낱이 포착한다. 더욱이 그가 이 금속판의 시계(視界) 안에 들어 있는 한, 그의 일거일동은 다 보이고 들린다. 물론 언제 감시를 받고 있는지 알 수는 없다.(p11) <1984> 中


2. <1984> 통제의 도구 : 신어


 어느 한 순간이라도 기호와 의미작용을 대립시키는 것은 전적으로 착각이다. 의미작용은 기호 없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기호의 역(逆)경험에 불과하다는 것을 고려해 볼 때, 이들은 정신에 속한 동일 개념의 두 형태들이며, 이는 마치 종이의 앞면과 뒷면에 손상을 입히지 않은 채로 이 종이를 가위로 자를 수 없는 것과도 같다.(p144) <일반언어학 노트> 中


 프랑스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 1857 ~ 1913)는 <일반언어학 노트 Ecrits de linguistique generale>에서 언어로 대표되는 기호와 의미작용은 결코 분리될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다면, 의미작용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소쉬르의 이론을 <1984> 속의 오세아니아 지배계급은 받아들인다. 구체적으로, 이들은 신어(新語 Newspeak)를 보급하여 대중들을 사상적으로 제약을 가하면서 체제를 유지하는 정책을 택하고 있다.


 신어의 창안 목적은 영사(英社,  영국사회주의 English Socialism)의 신봉자들에게 걸맞은 세계관과 사고 습성에 대한 표현 수단을 제공함과 동시에 영사이외의 다른 사상(思想)을 갖지 못하도록 하는 데 있다. 사상이 언어에 의존하는 한, 신어가 전면적으로 사용되고 구어가 완전히 잊혀지게 되면 이단적 사상, 즉 영사의 원칙에 위배되는 사상은 그야말로 설 자리가 없게 된다... 무엇보다 비정통적인 의미를 지닌 낱말을 없애고 한 어휘의 제2차적 의미를 삭제함으로써 가능했다... 개념이 없으면 낱말도 존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p419) <1984> 中


 신어는 사고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줄이기' 위해서 창안된 것인 만큼 이것은 신어의 창안 목적을 간접적으로 달성시키는 역할을 했다.(p420) <1984> 中


  이렇게 만들어진 언어가 표현하는 것이 무엇인가. <1984> 속에서 언어가 표현하는 실재(實在)는 우리가 생각하는 실재가 아니다. '현재 당이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것'만이 실재하는 것이며, 현재로부터 과거의 기록도 왜곡되고, 미래는 통제된 언어를 통해 제약되면서 역시 당의 지배 아래로 들어오게 된다. 언어를 통한 시간과 공간의 지배. 그것이 빅 브라더에 의해 통제한 디스토피아(Dystopia)의 모습이다.


 실재란 어디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라 인간의 마음속에 있네. 그것도 실수를 할 수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곧 사라져버릴 개인의 마음속이 아니라 집단적이고 불멸하는 당의 마음속에 있지. 당이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건 무엇이든 다 진실일세. 당의 눈을 통해 보지 않고는 실재를 볼 수 없네.(p347) <1984> 中


  Who controls the past controls the future. Who controls the present controls the past.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


 모든 기록은 폐기되거나 날조되었고, 책이란 책은 모두 다시 쓰여졌으며, 모든 그림도 다시 그려졌어. 또 모든 동상과 거리와 건물에는 새 이름이 붙었고, 역사적인 날짜마저 모두 새롭게 고쳐졌지. 물론 이런 작업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행해지고 있어. 한 마디로 역사는 정지해 버린 거야. 이젠 당이 항상 옳다고 하는 이 끝없는 현재 이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아.(p220) <1984> 中 


  1940년대 한 지식인이 그린 40여년 후의 미래 모습은 이처럼 음울했고, 우리가 피해야할 미래로 생각되어져 왔다. 시간적으로 1984년이 지나가고,  1980년대 말 공산주의 국가들의 몰락과 함께 <1984> 속의 미래는 마치 '빗나간 예언'처럼 생각되어져 왔다. 그렇지만, 최근 과학기술의 발전 속에서 우리는  <1984> 속의 통제받는 전체주의 국가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떠올리게 된다.


 <미션 임파서블 Mission Impossible> 같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기술을 중국 기술자들이 이미 만들어낸 것이다. 새로운 감시도구인 보행인식 시스템은 대상과 50m 떨어진 거리에서도 작동하며, 얼굴을 가려도 아무 소용이 없게 한다.(p36)...중국에 디지털 붐이 형성된 것은 최소 5가지 요소가 상호작용을 일으켰다. 국가의 강력한 개입을 통한 통제, 수년간 쌓인 대기업의 자산, 데이터 수집과 처리에 대한 정부와 대기업의 적극성, 제조업 기반, 서구권에선 회의론이 커지는 새로운 기술을 열정적으로 환영한 대중이다.(p37) <이코노미 인사이트 Economy Insight> 2018. 4월호. <디지털 레닌주의의 빛과 그림자> 中 



 [사진] 5G와 사물인터넷(출처 : 데이터넷)


  5G로 연결된 사물인터넷을 통해서 일상생활이 연결된다면, 어느 특정한 불온한 개인을 감시하고, 그의 생활을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 면에서 '사물 인터넷'이 과연 편리한 생활을 가져다 주는 도구인지에 대해서 우리는 생각해 봐야할 것이다. 최근 Facebook의 개인정보 유출 스캔들을 보면서, 우리는 편리해진 생활만큼 사생활 보호등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함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1984> 속에는 이처럼 미래에 대한 우울한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독자에 따라 윈스턴과 줄리아의 '이루지 못한 사랑' 을 통해서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로 읽어낼 수도 있을 것이며, 누군가는 소설 속에서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큰 그림은 '우울한 미래'가 되겠지만, 독자들이 가진 여러 배경 지식에 따라 다르게 읽힐 수 있다는 점과 인류(人類)의 영원한 과제인 '집단-개인'의 문제를 깊이 있게 다뤘다는 점에서 이 책은 고전(古典)이라 여겨진다.


 PS.<1984>를 읽은 후 드는 의문. 반당(反黨) 단체의 리더인 '골드스타인'이라는 존재 또한 당이 만들어낸 실재(實在)라는 이름의 허상(虛像)은 아닐런지... 골드스타인 속에서 우리 나라의 북풍(北風)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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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04-23 15: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테크닉의 발전이 과연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하네요.

페이스북 사태는 정말 기가 막히더군요.
바로 광탈해 버렸습니다.

겨울호랑이 2018-04-23 15:51   좋아요 1 | URL
보이지 않지만 이미 우리를 둘러싼 무수히 많은 전자파들이 마치 오랏줄처럼 우리를 옭아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는 요즘입니다. 저는 아직 페이스북 탈퇴는 하지 않았습니다만,페이스북만의 문제일까요... 이제는 제도에 대한 규제가 다시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2018-04-23 15: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23 15: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23 15: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23 16: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24 0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24 06: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24 08: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24 08: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24 23: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신문은 공공의 참여를 제공하는 개인적인 고백의 형태이다. 신문은 사건을 이용해서, 또는 전혀 이용하지 않고도 사건들을 채색할 수 있다. 그러나 신문에 복잡한 <인간적 흥미 위주의 기사>적인 성격이 나타나는 것은 매일 다양한 기사들이 배열되어 대중 앞에 제공되기 때문이다.(p288) <미디어의 이해> 中


 마셜 맥루언(Marshall McLuhan, 1911 ~ 1980)은 <미디어의 이해 Understanding Media>를 통해서 신문(新問)이 공공의 참여를 제공하는 개인적 고백의 특성을 가지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신문은 최근 경쟁 매체들의 등장과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인해 대중의 관심으로부터 밀려나고 있는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움베트르 에코(Umberto Eco, 1932 ~ 2016)는 그의 저서 <신문이 살아남는 방법>을 통해 신문의 생존법을 제시한다.


 서구와 같은 문화 내에서는, 작용 면에서나 실제적인 면에서 미디어가 곧 메시지라는 주장이 종종 충격으로 여겨진다. (p35) <미디어의 이해> 中


 에코에 따르면 이미 1960년대부터 신문의 기능은 뉴스의 제공이 아니라, 다른 권력 기관과 결탁을 위한 메세지 제공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이러한 역할은 1990년대까지도 이어지지만, 이전과 차이가 있다면, 이제 주도권은 '텔레비전(television)'으로 넘어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있었던 신문의 기능과 성격에 관한 논쟁은 두 개의 테마를 둘러싸고 전개되었습니다. (1) 뉴스와 논평 사이의 차이, 그러니까 객관성에 대한 관심의 환기, 그리고 (2) 신문은 정당이나 경제적 집단들에 의해 운영되는 권력의 도구라는 것이었지요. 정당이나 경제적 집단들은 의도적으로 비밀스러운 언어를 사용하는데, 그들의 진짜 기능은 시민들에게 뉴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의 머리 위를 지나 다른 권력 집단에 암호화된 메세지를 보내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지요.(p15) <신문이 살아남는 방법> 中


 예전에는 신문들이 맨 처음 뉴스를 전했는데 나중에 다른 매체들이 개입하여 문제를 심화시켰다는 것, 신문은 <편지가 뒤따름>이라는 말로 끝나는 전보가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1962년에는 이미 전송(電送) 뉴스가 저녁 8시에 텔레비전 신문에 의해 전달되고 있었습니다.(p21)...풍자, 격렬한 논쟁, 특종의 제작은 이제 텔레비전의 손으로 넘어갔습니다.(p23) <신문이 살아남는 방법> 中


 그렇다면, 신문과 텔레비전은 미디어로서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를 잠시 살펴보자. 맥루언에 따르면 신문과 텔레비전 모두 '모자이크 적 형태'로 참여를 요청하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다만, 텔레비전이 보다 시각적인 정보를 제공하여 눈 앞의 현실에 집중하도록 만든다는 점이 두 매체의 차이가 된다. 최근 인터넷이 보다 보편화되어 실시간 동영상 서비스 (streaming service)와 시청자의 댓글 참여는 정보 제공과 참여의 주기를 더욱 짧게 만들고 있다.


 신문이란 애초부터 책의 형태를 목표로 한 것이 아니라 모자이크 적 형태, 즉 참여를 요하는 형태를 지향해 왔다는 사실을 다시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인쇄와 취재의 가속으로 인해 이러한 모자이크적 형태는 인간 공동 사회의 지배적 양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왜냐하면 모자이크적 형태란 <분리된 견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과정에의 참여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p297) <미디어의 이해> 中


 텔레비전 시대 10년을 경험한 젊은이들이 깊은 관여를 향한 충동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보통의 문화가 지닌 먼 앞날의 시각화된 목표는 그 충동 때문에 비현실적일 뿐 아니라 자신들과는 관계 없는 것처럼, 더 나아가 무기력하고 활기 없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p464)... 텔레비전 어린이는 앞을 내다볼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참여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또 학습에서든 인생에서든 간에 단편적이고 단순히 시각화되어 있기만 한 목표나 운명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p465) <미디어의 이해> 中


  텔레비전은 보다 효과적으로 미디어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기에 신문은 텔레비전의 보조 수단으로 위치가 격하(格下)되었다. 그리고, 에코는 신문들이 보다 지역화(localization)하거나, 보다 객관화된 정보의 제공자로서 자리매김하는 것 이상의 두 가지 대안을 신문이 살아남는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신문은 이제는 이미 텔레비전의 시녀입니다. 소위 말하듯이 신문의 일정표를 확정하는 것은 바로 텔레비전입니다.(p31)... 신문이 텔레비전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하여 앞장서서 텔레비전을 특권적인 정치 공간으로 설정하였고, 자신의 자연스러운 경쟁자를 지나칠 정도로 선전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신문은 과도할 절도로 공연을 정치화하였습니다.(p35) <신문이 살아남는 방법> 中


 이러한 모순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신문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첫 번째 길은 <피지 Fiji 방식의 길>입니다. 지극히 초라한 신문들은 단지 통신사의 메시지들에 의존하면서도 그 전날의 가장 중요한 뉴스들을 단 몇 줄로 제공해 주었습니다. 피지 방식의 길을 따른다는 것은 물론 신문의 경우 판매 부수의 엄청난 격감을 암시합니다.(p50)... 또 다른 길은 제가 <확산된 관심>이라 정의한 길일 것입니다. 즉 일간 신문이 버라이어티 주간지가 되기를 거부하고,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한 뉴스들의 엄격하고도 신빙성 있는 원천이 되는 것이지요.(p51) <신문이 살아남는 방법> 中


  에코는 <신문이 살아남는 방법> 속에서 엄격하고 신빙성 있는 정보 제공자로서의 신문이 자리 잡을 때 비로소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신문이 선택한 길을 이와는 달라 보인다. 


 신문이 <주간지화>되었습니다. 일간지는 점점 더 주간지와 비슷하게 되었고, 버라이어티, 풍습, 정치 생활과 관련된 소문들에 대한 논의, 공연 예술계에 대한 관심에 방대한 지면을 할애하였습니다.(p24)... 일간지들은 주간지화 하기 위해 페이지 수를 늘이고, 페이지 수를 늘리기 위해 광고를 확보하려고 싸우고, 더 많은 광고를 싣기 위해 페이지 수를 더욱 늘리고 부록들을 고안해 내고... 때로는 뉴스가 아닌 것을 뉴스로 만들기도 합니다.(p27) <신문이 살아남는 방법> 中


 생존을 위한 신문들의 노력은 광고주의 입맛에 맞는 기사의 생산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고, 이는 결국 언론이 대기업의 대변자 역할을 수행할 뿐이라는 일반의 인식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사진] 4대 재벌의 언론사 광고 지배력(출처 : JTBC)


 사회 내에서 자동화가 지배적일수록, <정보>가 중요한 상품이라는 점과 형태를 갖춘 상품은 정보 이동에 뒤따르는 것일 뿐이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광고주는 신문, 잡지, 라디오, 텔레비전에서 시간과 공간을 산다. 광고주들은 독자나 청취자나 시청자의 일부를 사는 것이다. 그들은 그 방법만 안다면 기꺼이 독자, 청취자, 시청자에게 시간과 주의를 기울여준 대가를 직접 지불할 것이다.(p292)... 광고란(그리고 주식 시세란)은 신문의 기초를 지탱하고 있다.(p293) <미디어의 이해> 中


  또한, 뉴스의 반복-확대 재생산의 고리 속에서 확인되지 않는 거짓 뉴스가 전염병처럼 번지는 현실 속에서 점점 신문의 신뢰성은 땅에 떨어지고 있는 것이 현재 신문으로 대표되는 언론이 처한 위기의 단면이다.


[사진] 세월호 오보 사례(출처 : MBC) 

 

 신문이 뉴스를 제공하는 방식에 대해 비평적으로 말하는 것과, 이미 공개된 뉴스를 마치 새로운 뉴스처럼 사용하는 것 사이의 이러한 차이는 이제 더 이상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저널리즘의 질병처럼 보인다. 어느 권위있는 사람이 나에게 대답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신문들이 더 잘 팔린다고(그리고 분명 비용은 더 적게 들 것이다.) (p58) <민주주의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해치는가?> 中


 20년 전 1월 14일의 신문이 가장 최근의 1월 14일 자 신문과 동일한 뉴스를 반복하고 있다면 그것은 신문사의 잘못일까? 분명히 아니다. 그들은 당시 일어난 것을 기록했으며, 동시에 현재 이탈리아에서 일어나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 다만 이 나라에서는 20년 전부터 많은 것이 바뀐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언제나 똑같은 시나리오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p70) <민주주의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해치는가?> 中


 에코가 20년 전에 지적한 이탈리아 신문과 언론의 문제점이 남의 일처럼 보이지 않는 것이 사실이기에, 그가 말한 신문의 생존 방법이 더 깊이 와닿는다. 


 일단 법이 성문화되면 힘없는 자나 부자나 동등한 권리를 갖게 된다네. 그러면 부유한 시민이 나쁜 짓을 할 경우 힘없는 자가 비판을 할 수 있으며, 약자도 옳으면 강자를 이길 수 있다네. 자유란 이런 것일세. "누가 도시에 유익한 안건을 갖고 있어 공론(公論)에 부치기를 원하십니까?" 원하는 자는 이름을 날리고, 원치 않는 자는 침묵하면 된다네. 도시에 이보다 더 한 평등이 어디 있겠는가? (433 ~ 441)  <탄원하는 여인들 > 中


 에우리피데스(Euripides, BC 485 ~ BC 406)는 <탄원하는 여인들 Hekabe> 속에서 테세우스(Theseus)의 말을 빌려 민주정의 자유와 평등에 대해 말하고 있다. 신문과 언론이 처음으로 돌아가, 뉴스들의 엄격하고도 신빙성있는 원천이 되어, 민주주의의 자유와 평등에 기여했을 때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며 페이퍼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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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9 14: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19 15: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4-19 14: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신문은 텔레비전의 시녀’라는 에코의 시각이 낡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TV와 언론은 SNS의 시동(侍童)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시녀’라는 표현도 마음에 안 듭니다. 일부 기자들은 SNS에 공유되는 게시물을 허락 없이 가져오고, SNS 게시물의 진위 여부를 살피지 않고 기사에 올립니다. 기자라는 명함이 부끄러울 정도로 유치한 아이들 수준으로 글을 쓰고 있는 거죠.

겨울호랑이 2018-04-19 15:11   좋아요 0 | URL
cyrus님 말씀에 동감합니다. 동시에, 에코가 이 글을 쓴 시점이 아직 인터넷이 보편화되기 전인 1990년대 중반이라는 점을 감안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2018-04-19 15: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19 15: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8-04-20 1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신문의 쇠퇴는 우리가 정보를 운용하는 방식의 변화와도 관계 있어요. 인터넷 등의 발달로 우리는 더 빠르고 더 많은 정보를 습득하는 방식을 알게 되었고, 지금처럼 신문이 광고주나 그들 사익 추구로 변질되면서 더 찬밥 신세가 될 수밖에 없었죠. 정보의 질도 떨어지는데 경쟁력이 있을 수가 없죠^^;;

겨울호랑이 2018-04-20 11:44   좋아요 1 | URL
^^:) 그렇겠지요. 아마 정보 저장 매체로서 tape나 LP가 사라진 것과 마찬가지라 여겨집니다. 최근 LP가 클래식 애호가들에게 다시 사랑받는 것처럼 신문만이 제공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줄 수 있어야할 것 같습니다.^^:)
 
신영복의 엽서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03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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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되면서 이웃분들로부터 감사하게도 선물을 받게 되었습니다.

「신영복의 엽서」역시 이웃님의 선물입니다. 영인본은 작성자의 필체를 느낄 수 있기에 저자와 교감하는 느낌을 전해 줍니다. 그런 면에서 영인본으로 작성된 「엽서」는 또다른 느낌을 전해 줍니다.

우리가 잘 아는 ‘토끼와 거북‘을 해석하는 저자의 해석 속에서 우리가 잊고 살았던 무엇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거북이를 얕보고 잠을 잔 토끼도 나쁘지만 그러나 잠든 토끼 앞을 살그머니 지나가서 1등을 한 거북이도 나쁘다. 화용이와 민용이와 두용이는 공부를 잘 한다고 게으름을 피우는 토끼같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 공부 못하고 친구를 얕보는 토끼같은 사람이 되어서느 안된다. 친구를 따돌리고 몰래 혼자만 1등을 하는 거북이 같은 사람이 되어서도 안된다. 잠든 토끼를 깨워서 함께 가는 거북이가 되자. 그런 멋진 친구가 되자.(p274)

하얗게 언 비닐 창문이 흐미하게 밝아오면, 방안의 전등불과 바깥의 새벽빛이 서로 밝음을 다투는 짤막한 시간이 있습니다. 이 때는 그럴 리 없음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더 어두워지는듯한 착각을 한동안 갖게 합니다...저는 이 짧은 시간에... 작은 고통들에 마음 아파하는 부끄러운 자신을 청산하고 더 큰 아픔에 눈뜨고자 생각에 잠겨 봅니다.(p178)

영인본 속의 글 속에서 ‘있읍니다‘와 같은 예전 표기법을 보면서 글 속에서 세월 또한 느끼게 됩니다. 내용 전달 이외에 저자의 일상생활에 초대받은 느낌을 전해 주는 영인본의 아름다움을 이번 선물을 통해 느끼게 되었습니다.

지난 주에 예쁜 파우치 역시 선물로 받았습니다. 마침 여권을 보관할 파우치가 없던 차에 여권을 넣으니 색과 잘 어울리네요. 감사히 잘 쓰겠습니다.

바람이 많이 불어 다소 쌀쌀한 요즘이지만, 이웃님들 덕분에 봄의 아름다움을 더 풍성히 느끼게 됩니다.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이웃분들 모두 행복한 일요일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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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4-15 11: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느 분이 선물을 주셨는지 누군지 알겠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8-04-15 11:58   좋아요 0 | URL
^^:) 네 cyrus님께서 예상하시는 그 분 입니다.

서니데이 2018-04-15 16: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신영복 선생님의 책은 소개페이지를 보니,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영인본이네요.
작은 엽서라는 것을 잊어버릴 만큼 글씨가 예쁘고 따뜻한 느낌이 듭니다.
좋은 선물 받으셨네요.^^

저희집 파우치를 예쁘게 생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도 제가 찍었을 때보다 더 예쁘고, 여권이 들어가는 크기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차가운 바람이 부는 흐린 오후예요.
겨울호랑이님, 편안한 일요일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18-04-15 18:19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좋은 선물 감사합니다. 잘 사용하겠습니다.행복한 하루 되세요! ^^:)

oren 2018-04-15 21: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신영복 교수님의 엽서를 보니 예전에 국한문을 열심히 혼용해서 썼던 시절이 아련히 떠오르네요. 불과 15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평소에 자주 한자를 써 봤고, 헷갈리는 때가 많아서 옥편도 자주 들춰보곤 했는데, 이제는 한자와는 너무나 멀어져 버린 듯해서 화들짝 놀랄 정도가 되었더군요.

겨울호랑이 2018-04-16 06:48   좋아요 0 | URL
oren님 말씀처럼 예전에는 신문에 한글과 한문이 같이 표기되어서 어린이 신문이 별도로 나왔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에는 한문이 어려워 한글으로만 표기된 신문이 반가웠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반드시 좋은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별도의 과목으로서 하는 공부보다 생활의 일부인 한문이 보다 우리 삶에 도움이 많이 된다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2018-04-16 07: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16 07: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프리쿠키 2018-10-09 15: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호랑이님의 엽서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한껏 느끼고 갑니다^^;

겨울호랑이 2018-10-09 15:4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애정을 갖지만, 제가 충분히 선생님의 뜻을 이해하기에는 많이 부족합니다. 북프리쿠키님 즐거운 독서 되세요!^^:)
 

인기가 많은「고 녀석 맛있겠다」시리즈는 각 권의 구성은 비슷하지만, 많은 여운을 남기는 책입니다.

난폭한 공룡 티라노사우루스는 육식 공룡입니다. 때문에 다른 공룡들은 티라노사우루스를 피하기 바쁘지만, 어린 초식공룡들은 티라노사우루스가 자신들을 잡아먹는 존재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이들에게 티라노사우루스는 ‘덩치 큰 어른‘일 뿐이기에 티라노사우루스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어린 초식 공룡들을 보면서 처음에는 티라노사우루스는 당황하지만, 이들과 어울리면서 사랑과 우정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지만, 이들은 함께 할 수 없는 존재들이기에 결국 이별을 맞이하게 됩니다. 동화책으로는 드물게 죽음과 이별을 다루면서도, 등장하는 공룡들 서로가 아름다운 존재로 기억되며 이야기가 마무되기에 시리즈 전체가 잔잔한 여운을 남깁니다.

영원한 사랑을 말하기보다 생명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그 안에서 ‘순수함‘으로 사랑과 우정이 꽃피우는 것을 그려내는 이야기는 아이보다 읽어주는 부모가 더 큰 공감을 하게 됩니다. 단순한 구조의 이야기지만 이야기에는 공통된 장치가 하나있습니다. 그리고, 이 장치는 서로 대립되는 육식공룡과 초식공룡 세계를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책에는 그러한 장치로서 ‘빨간 열매‘가 등장합니다. 이 열매는 초식 공룡들의 먹이가 되지만, 육식 공룡에게는 먹이가 되지 못하는 식량입니다. 그렇지만, 티라노사우루스는 빨간 열매를 먹음으로써 트리케라톱스나 스테고사우루스와 같이 공감하면서 사랑과 우정을 찾아가게 됩니다.

빨간 열매는 무엇일까요? 그런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작가가 말해주지 않아, 저 스스로 생각을 해봅니다. 먼저 이 이야기 전체가 큰 ‘은유‘라 가정해 봅니다.

밖에서 거칠게 살아가는 육식 공룡인 티라노사우루스가 ‘어른‘ 또는 ‘부모‘이고, 어린 초식 공룡이 ‘어린이‘, ‘아이‘들이라면 이들이 어울릴 수도록 만들어주는 것은 ‘순수‘ 또는 ‘동심‘이 아닐까 여겨집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어른과 어린이가 교감했을 때 이들은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가 될 수 있을테니까요.

물론, 시간이 흘러 어린 초식공룡이 자란 후에는 이들은 더 이상 함께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언제까지나 함께하지는 못하지만, 함께 지내는 시간 속에서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는 것.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닐런지.

‘빨간 열매‘를 통해 「고 녀석 맛있겠다」시리즈 ‘부모-자식‘의 관점에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부모 - 자식 관계가 공룡들처럼 서로 잡아먹는 관계는 아니기에, 제 해석이 무리한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상대를 위해서 자신이 변화하는 것이 사랑이라면, 자식을 이해하기 위해 어른들 역시 바뀌어야 한다는 메세지가 있는 것은 아닌지 멋대로 추측해 봤습니다...

아마도 틀릴 가능성이 많지만, 부모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 주는 책임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면에서 「고 녀석 맛있겠다」는 아이를 위해 부모를 생각하게 하는 동화책이라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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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2 13: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12 13: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12 13: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12 14: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8-04-14 15: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룡 나오는 책에 제목이 저러니까 사랑스럽고 친근해서 좋아요^-^ 아이들에게 다른 해석할 여지도 주는 것 같고.
연의는 공룡을 좋아하나봐요? 전 어렸을 때 공룡을 한 번도 좋아해 본 적이 없어요-ㅅ-;

겨울호랑이 2018-04-14 15:47   좋아요 1 | URL
유치원에 남자 아이들이 많아서... 축구나 칼싸움 등을 좋아한답니다..ㅜㅜ 아들같은 딸이지요 ㅋ

페크pek0501 2018-04-14 23: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는 책을 무지 좋아합니다.

겨울호랑이 2018-04-15 00:13   좋아요 1 | URL
^^:) 동화책임에도 여러 각도에서 해석이 가능한 책이라 여겨지기에 pek0501님께서도 좋나하실 책이라 여겨집니다^^:)

2018-04-16 2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17 04: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투퀴티데스(Thoukydides, BC 460 ? ~ BC 400 ?)는 그의 저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Ho Polemos ton Peloponnesion Kai Athenaion>를 통해 BC431 ~ BC404 사이에 발생한 펠로폰네소스(스파르테)인과 아테나이인들 사이의 전쟁을 서술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이 전쟁은 '헬라스(그리스)인들뿐아니라 일부 비(非)헬라스인들에게도, 아니 전 인류에게 일대 사변'(제1권 1.2)이었다. 이후 아테나이에서는 페리클레스(Pericles, BC 495 ~ BC 429)로 대표되는 50년간의 황금기가 막내리게 되었고, 스파르테는 페르시아에 의존한 패권(覇權)을 잠시 누리다가 이후 테바이에게 헬라스의 패권을 넘기는 등 두 강대국 모두 몰락의 길을 걷게 었다. 헬라스 전체로도 이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Alexander III of Macedon, BC 356 ~ BC 323)와 로마 제국의 지배 하에 들어가기에 이 전쟁은 헬라스인들에게는 진정으로 파멸적인 전쟁이었다. 


 이번 페이퍼에서는 30여년에 걸친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개략적으로 살펴보면서 '투퀴티데스(투키디데스) 함정'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투퀴티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해주지만, 모든 것을 알려주지는 않기에 도널드 케이건(Donald Kagan) 예일대 교수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The Peloponnesian War>와 크세노폰(Xenophon, BC 430 ~ 354)의 <그리스 역사 Hellenica>를 통해 전쟁 전체를 조망해 보자.



[지도] 펠로폰네소스 전쟁( 출처 : http://m.blog.daum.net/picodrim/9873968)


 1. 펠로폰네소스 전쟁


 가. 전쟁의 배경 


 투퀴티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원인이 페르시아 전쟁(BC 499 ~ BC 450) 이후 해군력을 바탕으로 크게 성장한 아테나이 제국(델로스 동맹)에 대한 스파르테의 견제로 인해 발생했다고 기술한다. 그리고, 케이건 교수는 이와 관련한 공포, 명예, 이익이 현대 국제관계를 설명하는 기본동기라는 점에서 이 전쟁이 현대에도 의미가 있음을 말하고 있다.


두 도시 사이의 대립은 페르시아 전쟁이 끝난 후 델로스 동맹이 성장하여 아테네가 성공적으로 부와 권력을 차지하고, 점차 제국적인 야심을 드러내면서 시작되었다.(p34)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도널드 케이건 中


 그러나 진정한 원인은 사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말하자면 아테나이의 세력 신장이 라케다이몬(스파르타)인들에게 공포감을 불러일으켜 전쟁을 불가피하게 만든 것이다. (1권 23, 6)<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투퀴티데스 中


아테나이의 국력이 누가 보아도 절정에 이르고 아테나이인들이 자신들의 동맹국들 권리를 침해하기 시작하자, 라케다이몬인들은 마침내 더는 참을 수가 없어 이번에는 전쟁을 일으켜서라도 있는 힘을 다해 공격하되 가능하면 아테나이의 세력을 말살하기로 작정했다. (1권 118, 6)<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투퀴티데스 中


투키티데스의 이 세 가지 설명 방식은 모두 국제관계를 지배하는 근본적인 동기에 대한 자신의 분석을 정당화한다. 공포, 명예, 이익이 바로 그것이다.(p71)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도널드 케이건 中


 이러한 배경하에서 일어난 전쟁에 임하는 두 나라가 해군(海軍) 중심의 아테나이와 육군(陸軍) 중심의 스파르테였기에 이들은 서로 다른 전략으로 전쟁에 임하게 되었다. 그리고, 서로 결정적인 타격을 안겨줄 수 없었기에 이 전쟁은 장기전(長期戰)으로 돌입할 수 밖에 없었다. (이와 같은 전쟁 양상은 로마와 카르타고 간 발생한 포에니 전쟁(Bella Punica)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이 부분은 나중에 <몸젠의 로마사>에서 다루도록 하자.)


나.  아테나이의 전략 : 페리클레스 전략


 아테나이의 장점은 해군력과 스파르테를 압도하는 경제력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최대한 스파르테에 압박을 가한다면, 아테나이가 승리할 수 있다고 페리클레스는 판단했다. 페리클레스의 전략에 따라 전쟁을 수행했을 때 상황은 아테나이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었지만, 여기에서 벗어났을 때 아테나이는 패배에 몰리게 되었다.


아테네의 핵심자원은 도시를 지키는 성벽, 바다를 장악한 함대, 해군을 부양할 돈을 공급하는 제국이었다. 이들 중 어느 하나라도 남겨둔 채로 거둔 승리의 가치는 제한적이었으므로 스파르타는 공격에 나서야 했다. (p83)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도널드 케이건 中


페리클레스는 전쟁이 터지고 2년 6개월을 더 살았고, 전쟁에 관한 그의 선견지명은 그가 죽은 뒤 더욱 널리 인정받았다. 왜냐하면 페리클레스는 아테나이인들이 은인자중하며 함대를 증강하고, 전쟁동안에는 제국을 확장하려 하지 않고, 도시를 위험에 빠뜨릴 모험을 하지 않는다면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테나이인들은 모든 점에서 정반대로 했으며, 분명 전쟁과 무관한 다른 업무에서도 개인적인 이익이나 야망에 이끌린 나머지 아테나이에게도 그 동맹국들에도 해로운 정책을 추구했다. (2권 65, 6)<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투퀴티데스 中


페리클레스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아테네에서 계속 유지되었던 그 전략은 비록 어느 정도의 제한된 공격적 요소가 있기는 했지만 근본적으로 방어적이었다. (p77)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도널드 케이건 中


다. 스파르테 전략 


 반면, 헬라스 최고의 육군을 보유했던 스파르테는 이를 적극 활용하는 방향으로 전쟁을 전개하고자 했다. 그 결과 제1차 펠리폰네소스 전쟁에서 스파르테의 군대는 조기에 아테나이를 포위하였으나, 아테나이인들은 도시를 둘러싼 성벽 뒤에 숨으면서 장기화되는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펠로폰네소스 동맹의 핵심은 펠로폰네소스인과 보이오티아인으로 구성된 그 찬란한 중무장 보병이었다. 이것은 아테네의 중무장 보병 팔랑크스보다 두세 배 더 컸고, 세계 최고의 군대라고 널리 인정되었다.(p85)... 플루타르코스는 기원전 431년에 아티카를 침공한 스파르타 군대가 6만 명이었다고 한다.(<페리클레스>33,4) 그 숫자는 너무 크지만, 분명히 스파르타의 군대는 아테네의 전투 중장 보병보다 2:1 또는 3:1 정도로 많았을 것이다. (p87)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도널드 케이건 中 


라. 시칠리아 원정 : 아테나이 파멸의 시작


 전쟁이 계속되면서 스파르테 군대에 의해 포위된 아테나이는 좁은 지역에 밀집하면서 발생한 흑사병(黑死病, Black Death)에 의해 인구가 격감하게 되고, 도시 밖 경제활동이 제약됨에 따라 주변 제국에 대한 세금을 올릴 필요가 생기게 되었다. 포위의 결과 발생한 아테나이 내/외부의 불만이 고조됨에 따라 아테나이는 전황(戰況)을 변화시킬 필요가 생겼으며, 이 결과 시켈리아(시칠리아) 원정을 감행했다. 참담한 실패로 끝난 원정의 결과 아테나이는 파멸에 이를 정도의 큰 타격을 받게 되었다.


시칠리아의 곡물이 펠로폰네소스에 도달하지 못하게 막겠다는 욕망은 상황의 변화를 반영하는 새로운 사태였다. 스파르타인의 아티카 유린의 기간과 강도는 어느 정도 침공군의 식량 공급에 달려 있었다. 시칠리아의 수확물을 상실하면 미래의 침공은 단축될 것이다... 그러나 시칠리아를 복속시키려는 시도는 전시에 제국을 확장하지 말라는 페리클레스의 충고를 명백하게 어기는 것이었다.(p154)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도널드 케이건 中


이 사건(시켈리아 원정)은 이번 전쟁 전체를 통틀어, 아니 내가 보기에는 기록에 남은 헬라스 역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중대한 사건으로, 이긴 자들에게는 가장 빛나는 승리였지만 패한 자들에게는 비할 데 없는 재앙이었다. 아테나이인들은 모든 전선에서 완패했고, 그들의 고통은 엄청난 것이었다. 그들은 보병이며 함대며 모든 것을 다 잃었다. 그 많던 자들 가운데 고향으로 돌아온 자는 소수에 불과했다. 이상이 시켈리아에서 일어난 사건들이다. (7권 87, 5 ~ 6)<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투퀴티데스 中


마. 페르시아의 등장


 시켈리아 원정의 파멸적인 결과에도 불구하고, 아테나이는 서서히 힘을 다시 키워가면서 스파르테는 전쟁의 승리를 자신할 수 없게 되었다. 아테나이 해군의 힘을 꺾기 위해 스파르테는 지날날 살라미스 해전(Salamis batle, BC 480)에서 자신들을 적대했던 페르시아의 힘을 끌어들이게 되었다. 이로 인해 스파르테는 아테나이의 해군을 봉쇄할 힘을 얻게 되었지만, 아직은 부족했다. 아테나이의 붕괴를 위해서는 내부로부터의 붕괴가 필요했다.


밀레토스를 차지했다는 소식에 티사페르네스는 급히 그곳으로 가서 스파르타인과 대왕의 동맹을 맺었다. 이 일방적인 문서는 다리우스에게 그나 그의 조상들이 보유했던 모든 영토와 도시들을 반환했고, 페르시아인과 스파르타인은 이 지역들에서 아테네에 대한 세금 지급을 중지시키기 위해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이 협정은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페르시아인에게 살라미스 이전에 그들이 소유했던 모든 그리스 영토를 되돌려 주는 것이었다. 반대로 페르시아인이 스파르타인에게 제공할 지원에 대해서는 재정적이건 그 어떤 것이건 명문화된 것이 없었다. (p399)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도널드 케이건 中


특히 현재 상황에 비판적인 리카스는 칼키데우스가 맺은 협정도, 테리메네스가 맺은 협정도 잘못되었다면서, 대왕이 자신과 자신의 선조가 전에 지배한 모든 영토의 영유권을 주장한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모든 섬들과 텟살리아 지방과 로크리스 지방은 물론이고 보이오티아 지방에 이르는 모든 헬라스 땅이 다시 노예가 되고, 라케다이몬인들은 헬라스인들에게 자유 대신 페르시아의 지배를 안겨주었음을 의미하게 되리라고 했다. (8권 43, 3)<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투퀴티데스 中


왜 스파르타의 지도자들은 또 하나의 불리한 조약을 체결했던 것일까? 그것은 스파르타의 협상 위치가 너무나 불리했기 때문이다. 부활하는 아테네인 앞에서 페르시아의 돈과 지원을 그 어느 때보다 간절히 원했던 것은 바로 스파르타인이었기 때문이다.(p412)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도널드 케이건 中


 바. 아테나이의 몰락


 아테나이의 몰락은 내부에서 비롯되었다. 민주정에서 체제의 수호를 원한 자들과 과두정을 원한 이들의 대립은 아테나이의 힘을 결정적으로 약화시켰으며, 이로 인해 아테나이는 스파르테와 굴욕적인 조건으로 강화를 맺으며 전쟁을 마무리하게 된다. 투퀴티데스의 저서에는 전쟁의 후반부를 다루지 않았기에, 이 부분은 크세노폰(Xenophon, BC 430 ~ 354)의 <그리스 역사 Hellenica>를 참고해본다.


아테네가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함대의 힘에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하층 계급들과 그들의 민주파 지도자들과의 협력에 의지해야 가능했다.(p448)... 극단주의자들은 민주정의 복원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차라리 "적군을 끌어들이고, 배들과 성벽을 포기하고, 오직 자신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아테네에 관련된 모든 조건들을 받아들일 것이다."(8,91.3)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도널드 케이건 中


라케다이몬인은 헬라스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공헌한 헬레네스의 도시를 파괴하는 데 찬성하지 않고, 대신 장벽을 허물고, 페이라이에우스에는 12척을 제외한 모든 배를 포기하고, 추방된 사람들을 받아들이며, 라케다이몬과 같은 친구와 적을 가지며, 뭍이거나 바다거나 어디든지 라케다이몬인들과 동행하는 조건으로 강화했다... 이미 굶주림에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 중이라 다수가 요구 조건을 받아들이고 강화하기로 했다. <그리스 역사 2권(p51)


 이와 같은 양상으로 전개된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승리자는 누구였을까. 헬라스 세계의 패권을 장악한 스파르테, 그 뒤를 이었던 테바이 모두 두 번 다시 페리클레스 시대 만큼 헬라스를 번영하게 만드는데 실패했다. 그런 면에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전쟁 당사자 모두를 파멸로 이끈 전쟁이라 할 것이다.  이제, 투퀴티데스 함정에 대해 이야기 할 차례다.


기사출처 : http://www.hankookilbo.com/v/2538a200b1e94befaa0d19e9bccec112/


 아테나이의 번영에 대한 스파르테에 대한 시기, 질시로 일어난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두 강대국 모두에게 독(毒)이 되어 모두를 쓰러뜨렸다.  최근의 상황에 비추어 보면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에 대한 미국의 질투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충돌이 세계 석학들이 지적하고 있는 '투퀴티데스 함정'의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 이상의 투퀴티데스 함정과 킨들버거 함정을 종합해 보면, 다음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


 최근 미국이 경제적 선두의 위치에서 내려와 스스로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 그 결과 세계 경제는 경제적 선두를 필요하지만, 중국은 아직 경제적 선두를 받을만한 역량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킨들버거 함정) 세계 경제 공공재로서의 경제적 선두가 없다는 현실 자체도 위협적이지만, 만약 미국이 최근의 중국의 눈부신 성장에 시기와 질투를 느껴 이를 견제하려 한다면 파멸적인 결과에 이를 수도 있다. (투퀴디데스 함정)


 세계 석학들은 미국의 고립주의와 중국의 부상(浮上)에 대해 '킨들버거 함정'과 '투키디데스 함정'이라는 말을 통해 경고하고 있다. 최근 중국과 미국의 움직임을 보면 군사적 충돌보다는 관세 전쟁을 통한 경제면에서의 충돌이 더 우려되기도 하지만,  어느 면에서의 충돌이든 세계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하다. 이 때문에 미국의 보다 현명한 선택과 대응이 요구되고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이번 페이퍼의 주제와 관련하여 맹자(孟子, BC372 ~ BC289)의 한구절이 떠르게 되는데, <맹자>의 해당 구절을 마지막으로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孟子曰 以力假仁者覇  覇必有大國 맹자왈 이력가인자패 패필유대국

以德行仁者王 王不待大 이덕행인자왕 왕불대대

湯以七十理 文王二百里 탕이칠십리 문왕이백리

以力服人者 非心服也 力不贍也 이력복인자 비심복야 역불섬야

以德服人者 中心悅而誠服也 이덕복인자 중심열이성복야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 "실제로 힘에 의지하면서도 겉으로는 인仁의 명분을 빌어 정벌을 일삼는 자는 패자 覇者이다. 패자는 반드시 강대한 국가를 소유해야한다. 자기 내면의 덕에 의지하면서 인정 仁政을 행하는 자는 왕자 王者이다. 왕자는 반드시 대국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탕임금은 사방 70리의 나라를 기초로 하여 혁명을 성공시켰고, 문왕은 사방 100리의 나라를 기초로 하여 혁명을 성공시켰다. 힘으로써 사람을 굴복시키는 것은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복종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대항할 힘이 부족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복종하는 것이다. 내면적 도덕의 힘으로써 사람을 복종케 하는 것은 마음속 한가운데 깊은 곳으로부터 기쁨이 우러나와 진정으로 복종하는 것이다.(p246) <孟子 맹자 公孫丑 공손추  上 상 2a-3> <맹자 사람의 길 上>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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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1 12: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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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1 13: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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