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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운임이다. 낮은 운임은 화물차 운전자를 과로와 과속으로 내몬다. 쉬어야 할 때 쉬지 못하게 만든다. 그래서 2020년부터 교통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운임을 정하고 이보다 낮은 운임을 주면 과태료에 처하는 안전운임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올해 말이면 운영이 종료된다(일몰제), 안전운임제를 계속 시행하려면 법 개정이 필요한데, 국회 논의는 더디다. 11월14일 화물연대가 파업을 예고하고 나선 이유다. - P4

화물운송 노동시장은 사고가 나기 매우 쉬운 구조다. 화물차 기사 입장에서 안전 운행을 할 유인은 없고 과로·과속과적 운행을 할 동기는 차고 넘친다. 영업용일반화물 (5t 이상) 트럭의 92.5%는 지입제로 운행된다(2021년 화물운송 시장동향 연간보고서). 해외 많은 국가에서는화물차 운전자가 일반 회사원처럼 운송회사에 고용돼 노동법의 보호를 받으며회사 소유의 트럭을 몬다. 한국은 대부분의 화물차주들이 개인이 소유한 화물차량을 통해 화주와 개별 운송계약을 맺는독특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여러 단계에서 지입넘버 (영업 화물차번호판)‘ 판매나 일감 주선 등의 명목으로 수수료를 떼어가는 중간 운수업체가 많은 것도 다른나라와의 차이점이다. - P19

안전운임제는 현재 수출입 컨테이너,
그리고 벌크 시멘트를 나르는 상업용 특수화물차 등 약 2만6000대에 적용된다.
전체 상업용 화물차 42만 대의 6%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그나마도 3년이라는기한이 끝나는 올해 말이면 해가 지듯 운영이 종료되는 ‘일몰제‘다. 화물연대는 일몰제를 폐지해 안전운임제를 계속 시행하고, 적용 품목도 철강재 · 위험물·자동차·곡물·택배(지·간선) 등으로 확대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를 위해선 법 개정이필요한데 국회 논의는 더디다.  - P22

화물차 운전자들은 특수고용 노동자다. 현재 일부 품목(수출입 컨테이너·시멘트 · 철강재 · 위험물질·자동차·곡물 등)운송 차주만 제한적으로 산재·고용보험가입이 가능하다. 그 외에는 노동법상의각종 보호도, 최저임금도 적용받지 못한다. 지입제 구조하에서 거액의 빚을 지고번호판과 차를 산다. 쉴새없이 달려야겨우 적자를 면하고, 쉬려고 해도 휴게소에 주차공간조차 부족하다.  - P25

물론 검찰과 법원이 국민의 생명권과관련된 참사에 대해서는 더 엄정한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형사처벌 만능주의에서 벗어날필요도 있다. 참사의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말단이 아닌 윗선의 변화가 필수적이고, 이들의 역할을 묻는 재난 조사가 수사에 앞서 또는 동시에 행해져야 한다. 재난조사는 범죄 구성요건을 성립하게 만드는 수사와는 질문의 내용과 초점이 다르다.  - P34

왜 민주주의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인가? 뉴라이트 계열 학자로 꼽히는 이명희 교수(공주대 역사교육과)에게 물었다. 이 교수는 2011년에도 자유민주주의를 교과서에 넣어야 한다고 주창했다. ‘여타 민주주의‘와 구분하기 위해서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의 나라다. 원래(교과서 속) 민주주의란 용어도 당연히자유민주주의라는 뜻으로 쓰였다. 언젠가부터 민중민주주의나 인민민주주의와같은 개념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늘었다.
이런 것들과 구별하기 위해 자유민주주의라고 써야 한다." 이 교수가 말하는 자유민주주의적 정체성에는 "반공 정책을통해 체제를 지켜온 역사도 포함된다. - P39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은 한국에서만, 그것도 한국사 교과서에서만 등장한다. 윤세병 교수에 따르면 "어느 나라도교과서에 자국 체제가 ‘자유민주주의‘라고 표현하지는 않는다. 보통은 그냥 민주주의‘ ‘민주적‘이라고 쓴다."  - P40

전술핵 사용을 결정할 권한은 전적으로 미국에 있다. 대안으로 거론되는
‘나토식 핵 공유‘도 마찬가지다. 미국과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는 핵정책을 논의하는 체제를 갖추고 있는데, 배치 수량과 타격 요건 등 결정적 사안은사실상 미국 정부가 정한다. 미국에 의지하지 않고 한국이 직접 ‘몽둥이‘를 휘두를수 있다는 여권 인사들의 주장과 현실은꽤 거리가 있다.
전술핵 재배치를 주장하는 이들은 그럼에도 미국의 의지를 의심한다.  - P43

미국채는 수많은 다른 채권들의 벤치마크가 된다. 이를테면 회사채 등 채권수익률이 미국채 수익률보다 얼마나 더 높은지는 채권 선택이나 투자평가에 중요한 기준이 된다. 또 채권수익률이 충분히커지는 경우라면 주식시장에서 대규모의자금이 채권시장으로 이동할 수도 있다.
미국채 유동성이 떨어진다는 것은 이처럼 수많은 금융거래의 중요한 연결고리인 미국채 가격이 폭락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뜻이다.  - P46

특히 눈길을 끄는 건 외상치유가 상담실에서만 이루어지는 게아니라는 사실이다. 허먼은 트라우마를유발하는 사건이 사람을 살리지 못하는사회, 사람의 소중함을 잊은 공동체에서비롯되었기에 피해자의 회복을 위해선전문적 치료뿐 아니라 사회 구성원모두의 뼈아픈 자각과 애도, 따스한위로와 지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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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적으로 보면 생물학적 뇌와 실리콘 기계 모두 창의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 같지만, 한 꺼풀 벗기면 실행 방식이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마음이 없는 알파고는 자신을 만든 의식을 지닌 인간들이 정한 매우 구체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교한 알고리즘을 작동시킬 뿐이었다. 한편 이세돌은 창발적인 의식적 마음을 갖는 생물학적 인간이었다.

생명체의 뇌 안팎에서 일어나는 모든 물리적 사건은 의식 없이는 어떤 의미도 갖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자체로는 본질적 의미를 갖지 않는 물리학과 화학의 법칙이 끊임없이 물리적 세계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의미는 외부 사건을 생존에 유리한지 의식적으로 판단하는 창발적 가치체계를 소유한 생물학적 뇌에서만 발생한다. 쾌감과 불쾌감을 경험할 수 있는 뇌가 인식하지 않는다면 어떠한 사물이나 사건도 의미를 지닐 수 없다.

사실 좋은 식품이란 말로는 쉽지만 실제 구체적으로 조건을 하나하나 따지고 들어가면 실체가 없는 허상이 된다. 식품은 다양한 분자의 조합일 뿐이고, 우리 몸에 소화 흡수되어 에너지원이 되거나 우리 몸을 구성하거나 대사 과정의 부품이 된다.

좋은 식품의 기본 조건은 독이 되는 성분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독은 특히 전문가의 영역이라 첨가물은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는 아마추어가 함부로 말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좋은 식품과 건강이란 말이 넘칠수록 인간은 더 나약해지고 아프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건강에 지나친 관심이 새로운 질병을 창조하고 의료비도 늘어난다. 조심은 지혜지만 불안은 인생의 낭비다. 완벽한 건강을 추구할수록 우리는 불안해지고 지금까지 살펴본 건강 브로커들에게 쉽게 넘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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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공산당역사 제1권 - 상 중국공산당역사
중국공산당중앙당사연구실 지음, 홍순도 외 옮김 / 서교출판사 / 2016년 6월
평점 :
품절


 인식은 실천에서 생겨나고 실천의 주체는 대중이다. 그래서 변증법적 유물주의 사상노선을 지지하는 것과, 대중에 의지하는 사업노선을 지지하는 것이 일치한 것이다. 마우쩌둥은 "공산당의 투쟁 책략은 결코 집안에 앉아서 소수의 사람들이 생각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대중의 투쟁 과정을 통해서만 생성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실천 경험 중에서만 비로소 생성될 수 있는 것이다"고 지적했다. _ 중국공산당중앙당사연구실, <중국공산당역사 제1권 상>, p592/914


  중국공산당중앙당사연구실의 <중국공산당역사>는 청조 말 1840년과 1856년 2차례에 걸쳐 일어난 아편전쟁(鴉片戰爭) 이후 반식민지 상태로 전락하게 된 비참했던 근대 중국역사와  그 안에서 중국공산당의 역사적 사명이 잘 드러난 역사책이다. 


 <중국공산당역사 제1권 상>은 중국 공산당에 앞선 혁명과 배경으로부터 시작한다.  태평천국의 난(太平天國의 亂, 1850 ~ 1864)과 의화단운동(의화단 운동(義和團運動, 1899 ~ 1901)을 통해 농민의 중요성이 드러났고, 신해혁명(辛亥革命, 1911)을 통해 청나라가 멸망하는 등 이전 혁명의 역사적 의미를 인정하면서도, 한계점을 명확히 한다. 그리고, 이러한 한계점을 넘어서는 것은 결국 공산당에 의해서만 가능했다는 것이 제1권 상의 소결론이라 할 수 있다.


 요약하건대, 중국은 아편전쟁에서 패배한 후 점차 반식민지 반봉건 사회로 전락하고 말았다. 나라와 민족을 멸망의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중국 인민들은 간고한 투쟁을 벌였다. 중국의 선각자들은 천신만고를 겪으면서 구국구민의 진리를 모색하며 중국 사회를 변혁하는 여러 가지 방안을 시도했다. 이러한 모색과 투쟁은 일정한 역사적 조건에서 중국 역사의 진보를 어느 정도 이끌었다. 그렇지만 중국의 반식민지 반봉건의 사회 성격과 중국인민의 비참한 운명까지 바꾸지는 못했다. _ 중국공산당중앙당사연구실, <중국공산당역사 제1권 상>, p91/914


 <중국공산당역사 제1권 상>은 시대적으로 1936년 시안 사건(西安事變)을 통해 제2차 국공 합작이 이루어지는 시기까지를 배경으로 한다. 이 시기 동안 초기 소수 지식인 중심으로 형성된 중국공산당은 청나라 이후 주도권을 잡기에 미약했으므로, 국민당과의 협력(국공합작)을 통해 군벌세력들을 소탕하면서 점차 자신들의 세력을 키워가는 큰 흐름을 본문에서 확인하게 된다.


중국공산당은 중국의 정치, 경제 상황과 경한철도 노동자 대파업이 우페이푸의 탄압을 받았던 교훈에 근거하여, 제국주의와 봉건군벌의 통치를 무너뜨리려면 노동계급만을 의지하는 것은 역부족임을 인식했다. 따라서 쑨중산(쑨원)이 영도하는 국민당과 적극 연대하여 노동계급과 민주세력의 연합전선을 형성해야 한다는 것을 한층 깊이 깨닫게 되었다. _ 중국공산당중앙당사연구실, <중국공산당역사 제1권 상>, p254/914


 <중국공산당역사 제1권 상>에서는 시대적 상황안에서 중국공산당의 혁명사상이 무엇의 영향으로 어떻게 변화되었는가가 잘 서술되어 있다. 그렇지만, 중국사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보다 중국공산당의 관점에서 해석된 역사이며, 당(黨)의 역사이기에 다소 지루한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중국공산당역사>에서 중국공산당이 바라보는 중국현대사는 무엇인가에 중점을 두고 읽으면서, '대중'을 바라보는 중국공산당의 시각이 이중적이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반제국주의 혁명의 주체로서 대중을 긍정하면서도, 1920년대 대중의 현실은 계몽 이전의 무지한 상태로 공산당에 의한 깨우침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혁명이 될 수 없으며, 이들을 혁명 대열에 동참시키기 위해서 '토지개혁'이라는 유인을 사용하는 방식이 상호 충돌되는 듯하다. 물론, 경제적 유인이 강력한 참여동기를 부여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대중을 바라보는 공산당의 시선은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 적어도 그들 안에 있는 어떤 가능성을 긍정하기보다는 보편적인 욕망에 소구하는 접근법에서 일종의 엘리트 주의를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주장은 유물론(唯物論)에 의한 물질적인 동기만이 혁명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에 근거하는 것이겠지만, 결코 가능성을 긍정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만약 진정으로 대중을 혁명주체로 바라본다면 그들 안에 잠재된 역량을 긍정하고 중국공산당의 역할을 과거 소크라테스(Socrates, BCE 470 ~ BCE 399)가 그러했듯 자신들의 역할을 '산파'역할 정도로 한정시켜야 하지 않았을까. 대중을 혁명 주체로 보기에 <중국공산당역사> 속의 공산당의 역할은 너무도 크게 보여진다. 


 그런 면에서 중국공산혁명에서 진정한 혁명의 주체를 중국공산당으로 봐야하지 않을까. 무지한 대중을 계몽하여 새로운 공산주의 유토피아로 이끈다는 중국공산당의 이론 안에서 대중의 구원은 공산당의 사상에 의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 속에서 공산주의자들이 그토록 싫어하는 기독교의 메시아 사상과 공통점을 발견한다면 그것을 무리라고 할 수 있을까. 기독교를 배척하지만, 기독교 사상과 닮아 있는 공산주의 사상 속에서 유물론을 말하지만, 종교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일종의 모순을 새삼 생각하게 된다. 


 태평천국과 의화단의 역사적 비극은 반식민지 반봉건의 중국에서 농민들이 반제 반봉건의 강대한 주력군임을 증명했다. 하지만 선진 계급의 지도 없이 반제 반봉건의 역사적 임무를 완수하기 어렵다는 것 또한 크게 증명했다. 근대 중국에는 두 개의 새로운 계급인 자산계급과 무산계급이 나타났다. _ 중국공산당중앙당사연구실, <중국공산당역사 제1권 상>, p48/914


 대다수의 대중은 무지했고, 봉건적인 가정 조직과 미신 풍속이 매우 보편적이었다. 일부 지역에는 산림 속에 패거리로 모여 살며 방랑 도적 사상과 유민 습성을 지닌 녹림무장이 존재했다. 이와 같은 특수한 지리 환경과 사회 조건은 혁명세력의 존재와 발전에 유리했지만 극복하기 힘든 문제들도 많았다. _ 중국공산당중앙당사연구실, <중국공산당역사 제1권 상>, p563/914


 중국의 실정에 맞는 토지혁명의 노선과 정책은 토지제도 변혁을 실천하는 도중 형성되어 발전했다. 당의 8.7회의는 혁명 투쟁 시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가 토지혁명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토지혁명의 방법과 실행에 관해서는 확실한 대책을 갖고 있지 않았다(p570)... 농민문제는 주로 토지문제이다. 이 문제에 대한 중국 사회 각 계급 및 그 정치대표들의 태도와 해결 방법은 서로 달랐다. _ 중국공산당중앙당사연구실, <중국공산당역사 제1권 상>, p576/914


  이와 함께 <중국공산당역사>는 하나의 물음을 우리에게 제기한다. 중국공산당은 중국공산혁명을 세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을 건설하려는 코민테른(Communist International)의 과정으로 보았을까, 아니면 그 자체를 완성으로 보았을까.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유명한 말처럼, 중소 분쟁(中蘇 紛爭)이후 쓰여진 <중국공산당역사> 안에서 당시의 중국공산주의자들의 생각을 읽어내기는 쉽지 않다.


 국제공산당은 국제관계가 자본주의 세계와 사회주의 세계의 대립이라는 공식을 기계적으로 적용하여, 제국주의 국가들이 소련과 중국 혁명을 일제히 반대하는 것에 대한 일치성을 지나치게 강조했다. 반면 중일 민족간의 갈등, 제국주의 국가 간의 갈등이 심화된 것은 소홀히 했다. 그러므로 일본이 중국 둥베이를 침략해 점령한 것은 중국의 근로대중과 중국 혁명을 반대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반러전쟁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라고 보았다. 그들은 중국공산당에 일본 제국주의를 포함한 모든 제국주의를 반대할 것을 요구했다. _ 중국공산당중앙당사연구실, <중국공산당역사 제1권 상>, p681/914


 중화민족의 생사존망이 갈릴지도 모르는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공산당과 중국 인민이 당면한 가장 긴박한 과제는, 바로 민족을 위기에서 구해 내며 가급적 많은 세력과 연합하여 항일민족전쟁을 개시하는 것이었다. 중국공산당은 시대의 요구에 순응하여 제때에 항일민족통일전선을 결성할 것을 주장했다. 이 주장은 국제공산당의 전략 전술 전환점과 직결된다. _ 중국공산당중앙당사연구실, <중국공산당역사 제1권 상>, p803/914


 그렇지만, 1930년대 동북항일연군(東北抗日聯軍)의 이름으로 만주와 내몽골 일대에서 일본과 치열하게 싸우던 다른 민족의 공산주의자들 모두가 <중국공산당역사>에 강조되는 민족주의적인 관점에 동의할 것인가. 어느 정도의 민족주의자들, 또 다른 정도의 세계공산주의자들이 당시 공산당이라는 집단 안에 공존하고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이들 모두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음에도 같은 시대 안에서 같은 행동을 취하고 있었던 것이 정확한 실태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공산당역사 제1권 상>의 역사 서술은 후대의 승자인 마오쩌둥(毛澤東, 1893 ~ 1976)의 사상 중심으로 기술되는 결정론적인 역사 흐름을 보인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 이러한 부분은 한계점이라 생각한다.


 조선의 공산주의자 김일성(金日成), 최용건(崔庸建), 김책(金策) 등은 '9.18'사변이 일어난 후 중국의 일부 지역에서 항일구국투쟁에 참가했다. 그들 중 수많은 사람들이 중국동지들과 함께 항일무장을 조직하고 영도했으며 중국의 둥베이와 조선 경내에서 처절한 투쟁을 했다. 그들은 중국의 동지들과 일치단결하여 같이 싸우면서 중국 인민과 조선 인민의 해방을 위해 중차대한 기여를 했다. _ 중국공산당중앙당사연구실, <중국공산당역사 제1권 상>, p843/914


 아직 <중국공산당역사>를 다 읽은 것은 아니지만, 제1권 상을 통해 중국공산당이 바라보는 관점을 짐작하게 된다. 후대의 결과로부터 이전의 원인에 필연성을 부여하는 역사관에 대해 다소 불편함을 갖게 되지만, 이러한 불편함 안에서 오늘날 중국의 중화주의의 기원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도 함께 갖게 된다.. 제1권 하로 넘어가기 전에 <실천론>과 <모순론>은 미리 점검하고 넘어가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을 듯하다...

<실천론>은 변증법적 유물론의 인식론에 치중하여 당내에 장기간 존재해 온 주관주의, 특히 교조주의를 철저히 비판했다. 더불어 중국 혁명사업에 끼친 해악을 폭로했다. <실천론>은 인류의 생산 실천, 계급투쟁 실천, 특히 중국 혁명투쟁의 구체적 실천에 근거한다. 그리하여 사회적 실천에 대한 인식의 의존관계를 체계적으로 설명한다. 변증법적 유물론의 인식론은 "실천을 첫 자리에 놓았다"고 지적했다. _ p882/914

<모순론>은 유물 변증법의 가장 근본적 법칙인 대립통일의 법칙을 전면적으로 논술했다. 마오쩌둥은 자연계와 인류사회의 모든 사물이 운동 발전하는 내재적 법칙에 근거를 두었다. 그리고 북벌전쟁과 토지혁명 전쟁에서의 두 차례의 승리, 두 차례의 실패 경험과 교훈을 결부시켰다. 그리하여 모순의 보편성과 특수성, 주요한 모순과 모순의 주요한 측면, 모순의 여러 측면의 동일성과 투쟁성, 모순에서 저항이 차지하는 지위 등 문제들을 일일이 논술했다._ p883/914

<실천론>과 <모순론> , 이 두 편의 저작은 변증법적 인식론과 유물 변증법의 핵심으로 하는 대립통일법칙에 대해 체계적이고 철저한 탐구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무산계급의 세계관, 인식론과 방법론을 괗가적으로 논술한 것이다. 이 두 편의 저작은 더없이 험난한 중국 혁명투쟁의 실천 경험에 대한 철학적인 개괄이다._ p883/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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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문예학자들과 인문주의자들은 영감과 지침을 얻고자 고대 로마로 눈길을 돌렸다.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황제가 맨 윗자리를 차지하는 위계질서를 둘러싼 믿음을 고대 로마의 유산으로부터 차용했다. 그들이 보기에 황제의 임무는 여러 통치자들을 중재하고 평화의 치세로 안내하는 것이었다.

가장 위대한 르네상스 인문주의자인 로테르담의 에라스뮈스는 그 터무니없는 학술적 행위에 가담할 시간이 없었다. 그는 "왕들과 바보들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는 것이다"라고 평하며 보편 군주는 보편 폭군일 것이라고 예견했다. "만인의 적이고, 만인이 그의 적들이다." 그러나 합스부르크 가문은 에라스뮈스가 두려워한 "세계 군주국"을 실현할 뻔했다.

그럼에도 항목별로 배열되었다는 점에서는 대체로 19세기와 20세기까지 지속된 합스부르크 가문 치세의 특징이 엿보인다. 제국의 각 부분이 하나로 통합되지 않은 채 독자적인 정부, 법률, 귀족, 명문가, 의회 등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각 부분은 통치자 개인에 의해서만 한데 모인, 거의 독립적인 나라들이었다. 각 부분 간의 거리를 감안하면 이러한 부조화 현상은 어느 정도 필연적이었지만, 서로 큰 차이점이 있는 여러 민족들이 부재하는 주권자에 의한 지배를 감수하도록 유도하려는 의도적 정책의 소산이기도 했다.

몇 개의 왕국을 바탕으로 세워진 국가들조차 세월의 흐름에 따라서 구성 요소들의 특이성이 차츰 희박해져 원래의 독자적 성격과 제도가 사라지면서 지방보다 중앙으로 저울추가 기울기 마련이었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그 목표를 결코 이루지 못했다. 사실, 짧은 막간을 제외하면, 목표를 이루려고 애쓰지도 않았다. 18세기와 19세기에 행정 및 법률 기관을 일부 통합했지만, 합스부르크 가문의 영토는 주권자가 무한한 권력을 지닌 초超군주가 아니라 각 영토의 영주에 불과한 듯이 통치되었다.

문제는 신성 로마 제국에 각 영토 및 도시의 권리와 자유를 지켜줄 정부가 없다는 점이었다. 제국에는 중앙 행정 기관이 없었고, 정기적인 세입도 없었으며, 수도도, 통치자가 위임한 법을 집행하는 법원의 위계 구조도 없었다. 권력의 향방은 대영주들과 대제후들에게 달려 있었는데, "로마인의 왕"을 군주로 선출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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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생각보다 우리 자신이나 외부 영향으로 쉽게 조작되고 왜곡된다. 한 연구에 따르면 잘못된 정보, 상상, 반복의 적절한 조합으로 피험자의 70퍼센트에게 가짜 기억, 심지어 범죄에 대한 기억도 심어줄 수 있다. 이 연구에서 가장 놀라운 결과는 과거에 심각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기억을 조작하는 게 생각만큼 힘들지 않다는 것이다.

기억의 기능이란 미래에 비슷한 상황을 예측함으로써 그런 상황이 왔을 때 빠르고 유리한 행동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해마는 적당히 비슷한 정보를 더 유사한 패턴으로 만들어 종합하고(패턴 완성pattern completion), 일부 정보만으로도 기억 전체를 인출할 수 있게 되어 있다.8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기억 메커니즘이 많은 양의 정보를 정리해주어 개념들 간의 인지적 매핑cognitive mapping까지 가능하게 한다고 추측할 수 있다.

여기서 결정적인 오류가 일어날 수 있다. 점차 기억이 선명해지기 때문에 기억의 정확성에 대해 자신감을 갖게 된다.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았을 때와 달리 계속 생각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 기억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 장면이 2년 전 상상의 산물인 줄은 완전히 잊어버린 채 말이다. 우리는 매일 이런 오류를 저지르며 살고 있다.

점사와 해설의 문장은 그 같은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사용하는 용어들의 성격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점사의 용어(울고, 웃고, 이기고)가 구체적이라면, 해설의 용어(중도로써, 말이)는 추상적이다. 점사는 그야말로 점占의 기록이다. 앞으로 일어날 사건 사고를 묘사한다.

하물며 주역이랴. ‘변화의 책’을 변화로서 대하는 세태를 소망할 뿐이다. 주역의 마인드로 주역을 대하는 것, 그게 굴리우지 않고, 굴리는 방법이다. 구태의연의 늪에 빠진 고래古來의 텍스트를 되살리는 길이다

누구에게 명성, 돈, 지위가 배분되어야 할까? 이는 곧 사회정의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특히 오늘날 과학자가 직장을 구하고 연구비를 따고 승진을 하는 데 논문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부당한 방법으로 저자의 지위를 얻는 것은 사회 질서와 공정의 문제를 크게 훼손시키는 행위임이 분명하다. 이 문제는 곧 과학의 의미나 과학과 사회의 신뢰성에 대한 문제로도 확장될 수 있다.

두 의식 이론이 어떻게 경쟁할지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하지만두 이론의 가장 큰 차이점은 그들이 예측하는 의식적 경험이 만들어지는 위치다. GWT는 의식적 경험을 만드는 작업공간이 뇌의 앞부분인 전두엽이라고 예측한다. 반면 IIT는 감각 정보가 입력될 때 인지네트워크에서 형성되는 통합 정보가 곧 의식적 경험이라고 이야기하는데, 뇌의 연결 구조로 볼 때 정보의 흐름과 통합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후두부에서 의식적 경험이 만들어진다고 예측한다.

또 하나의 큰 차이점은 인공적으로 의식적 경험을 구현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다. GWT는 의식적 경험을 야기하는 동일한 형태의 계산 과정을 정확히 구현하면 컴퓨터나 인공지능도 의식을 가질 수 있다고 예상한다. 반면 IIT는 아무리 정교하게 계산 과정을 재구성한다고 해도 현재의 반도체칩과 회로에 기반한 컴퓨터나 인공지능이 인간과 같은 의식을 가질 수 없을 것으로 예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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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2-11-25 12: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거짓말도 자꾸 하다 보면 거짓말이 아니고 참말로 안다잖아요.
실제로 기억은 많이 왜곡되기 일쑤인데 조작하는 것도 가능해지겠죠.
안 좋은 기억을 지워 주는 기계?의 출연도 가능할 듯요. 벌써 있는지도...
과학이 우리를 어디까지 데려다줄지 궁금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합니다.

겨울호랑이 2022-11-25 13:22   좋아요 1 | URL
페크님 말씀처럼 과학이 발전하면서 놀라움과 함께 경계심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때문에, 과학의 발전이 단순한 기술의 발전이 아닌 윤리의 발전과 함께 이루어져야 함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페크님 좋은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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