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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상을 뒤엎고 최서희는 평사리에 나타나지 않았다. 단 한 번도 나타나질 않았다. 사람들은 조준구 소유로 되어 있는 집이어서 그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라는 결론을 지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문제가 해결되었으므로 두 아들을 앞세우고 사당 문을 열 것이며 대대적인 집수리가 시작될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서희는 여전히 움직일 기색을 보이지 않는 것은 대체 무슨 까닭에설까. _ 박경리, <토지 9> , p508/700


 매주말마다 작성하는 <토지> 독서챌린지 미션. 그동안 여러 제시어의 삼행시가 미션 주제였지만, 오늘 미션 주제는 새롭다. 즉흥적으로는 '내가 (거복이)라면, (독립운동)했을텐데', '내가 (길상이)라면, (부인따라 갔을)텐데', '내가 (서희)라면, (조준구에게 오천 원 안 줬을)텐데' 등등이 떠오르지만, 독서 내용과 연결시키는 것이 쉽지 않아 접는다. 이번 미션 역시 삼행시 때처럼 글 말미에 슬그머니 올려놓는 것으로 해야겠다...


 SNS 미션  : '내가 (   )라면, (   )했을텐데' 를 포함한 감상평을 아래의 조건을 충족하여신청서에 적어주셨던 개인 SNS에 남겨주세요.


 이번 주 독서에서는 평사리의 고택을 조준구로부터 사들인 서희와 평사리로 돌아간 용이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오천 원을 푼돈처럼 조준구에게 던져주며 호쾌한 복수를 한 서희지만, 정작 자신은 오랫만에 다시 찾은 자신의 근거지에 모습을 보이질 않는다. 대신, 용이를 평사리 집으로 보내며 관리를 부탁하는 서희. 평사리의 최참판 댁에 대한 이들의 기억은 다른 것이었다. 마치 베르사유(Versailles)를 바라보는 프랑스인들의 기억처럼.


 베르사유는 오랫동안 고유한 특성을 유지해 왔으며 그것은 지금도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그러한 특성은 물론 궁정도시로서의 성격에서 기인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간접적인 이유이다. 사회적으로 위축된 소심한 보수주의자들을 베르사유로 끌어들인 것은 그보다는 차라리 왕실기구가 그곳을 떠남으로써 우아한 빈껍데기가 되어버린 거주지들이 텅 비어 싼 값으로도 입주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 잘 알다시피 '베르사유'라는 용어에는 완전히 다른 의미들도 함축되어 있다. 파리를 탈환하기 위해 진행된 재판절차, 온실에서 임종을 맞이한 코뮌파 국민군들, 사토리에서의 총살 등. 이 사건들은 모두 베르사유의 프로방스 로와 루아 대로에서 이루어진 티에르와 쥘 파브르, 그리고 비스마르크 세 사람의 회동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_ 피에르 노라 외, <기억의 장소 2 : 민족> , p215


 루이 14세( Louis XIV, 1638 ~ 1715)와 마담 퐁파두르(Madame de Pompadour, 1721 ~ 1764),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 d'Autriche, 1755 ~ 1793)의 궁(宮)으로 널리 알려진 베르사유 궁이 프랑스의 절대왕정의 상징이자, 1871년 독일 황제의 대관식이 행해진 치욕의 장소라는 이면의 의미를 가지듯, 서희와 용이에게 평사리는 서로 다른 의미를 갖는 공간이었다.


 십육 년 동안 나서 자란 그 집에 대한 기억은 결코 행복한 것은 아니었다. 행복하기는커녕 고독하고 비참한 기억뿐이었다.(p509)... 등뿌리도 기왓장도 모조리 들린 것처럼 불행의 연속이던 그 집을 떠난 후, 최서희는 권위 위에 웅크린 고독과 풍요 뒤에서 한숨 쉬던 허기와의 싸움에서 허기지고 고독한 승리를 안고 오로지 목표였던 가문의 존속과 영광을 위해 돌아왔지만 막상 돌아와 보니 서희에게는 사당 문을 열고 조상에게 고할 말이 없다. 성씨조차 알 길 없는 사내 김길상은 지금 이곳 민적에는 최길상으로 기재되었으며, 따라서 아들 둘은 최환국, 최윤국이다. 최서희는 김서희로. 이 기막힌 사연을 조상에게 무슨 말로 고하라는가. _ 박경리, <토지 9> , p510/700


 좋은 시절, 인생의 황금기를 보냈었던 그 마을은 용이에게는 근원적인 것이다. 서러운 사연들이 묻혀 있지만 더럽혀지지 않은 자신의 존엄을 심었던 곳, 사랑을 심었던 곳, 고뇌를 심었던 곳, 용이는 새삼스럽게 고향을 떠난 기간이 얼마나 이지러진 세월이었던가를 깨닫는 것이다. 임이네로부터 떠난다는 것은 용이에게 별 의미가 없다. 주변에서는 임이네와 떼어놓기 위한 방편으로 서둘렀겠지만 용이는 평사리로 간다는 다만 그 사실 하나에만 뜻이 있었던 것이다. _ 박경리, <토지 9> , p510/700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진주에서의 서희는 승리자고 용이는 상실자다. 서희는 조준구에 대한 복수를 하고 금의 환향을 했지만, 용이는 사랑하는 월선을 잃어버리고 쓸쓸히 귀향할 수 밖에 없는 처지. 물론, 큰 기쁨 뒤에 작은 슬픔이 있는 것처럼, 서희도 남편과 잠시 이별(아직까지는)을, 용이도 홍이와 조금은 더 가까워지는 반대급부가 있지만, 흐름 상 분위기를 바꿀 정도까지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의 승리자와 상실자는 ' 과거 평사리'라는 공간에서 그 위치가 뒤틀린다. '평사리'라는 공간을 떠올렸을 때, 이들은 모두 '과거'를 함께 소환해낸다. 소환한 과거 속에서 서희는 다시 핍박받으며 겪었던 슬픔과 고통에 몸부림치는 반면, 용이는 사랑하는 월선과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으며 인생의 황금기에 미소짓는다. 이처럼 '평사리'에 얽힌 시공간이 주는 의미는 둘에게 분명 상반된 것이었다.


 서희는 유아적(幼兒的)인 원망과 슬픔에 빠지곤 했었다. '왜 나만 혼자 남겨두셨소. 모두 다 어깨의 짐을 풀어놓고 나한테만 떠맡겨놓고 가시지 않았습니까? 형식이지만 최씨네 가문...... 이제 뼈대는 세우지 않았소? 그러나 내가 받은 수모, 상처, 설움, 아아 나는 지치고 피곤하고 더이상은 부대끼고 싶지가 않소. 그 부끄럽고 끔찍스럽고 저주스런 일을 지우고 싶소! 지워주시오! 지워주시오!' _ 박경리, <토지 9> , p511/700


 과거를 추억하는 것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거슬러 올라가는 순간을 아름답게 기억하는 이와 고통스럽게 여기는 이. 이들의 모습이 <토지 9>의 마지막에 짧게 담긴다. 그 짧은 순간 이들의 아픔 또는 그리움들은 기든스(Anthony Giddens, 1938 ~ )이 말한 '평사리 최참판댁'에서 '중간역' 또는 '정거장'처럼 교차한다. 이제 평사리에서의 서희의 시공간과 용이의 시공간은 새롭게 교차한다. 자신의 아픔을 소유한 서희는 용이에게 아름다움으로 내주면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한다.


 이와 함께 <토지9>에서는 '심금녀'가 퇴장하고, 새롭게 '임명희'가 등장한다. 평탄치 않았던 삶을 살았던 금녀가 가슴아픈 죽음으로 삶을 마감했다면, 뒤를 이어 신여성으로 등장하는 임명희 역시 만만치 않은 삶을 살것이기에 새로운 인물의 등장에 반가움보다는 긴장감을 갖게 되며 <토지 9>를 마무리한다...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은 지금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간다는 뜻이지. 꿈이랄까? 희망같은 거 말야. 힘겹지만 아름다운 일이란다. _ 안도현, <연어> 中


 공간과 시간은 개인적인 행위 가능성을 지배하는 주변조건을 만든다. 공간-시간-경로를 거쳐갈 때 어떤 개인이건 그들의 행동, 행위 그리고 그들의 결정의 기능들을 제한하는 이 '견제(constraints)'와 강제, 그리고 제약에 예속된다. 시간과 공간을 통한 개인의 움직임을 추적하면 다양한 사람들의 개인적인 길들이 서로 교차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개인들은 이른바 "중간역"(Giddens 1992 : 164)에서 만나기 때문이다. 중간역은 만남이 일어나고 사회적 사건들이 일어날 수 있는 공간-시간-장소를 의미한다. 기든스가 "정거장"(Giddens 1992 : 171)이라고 부르는 이 장소는 일상 내지 인생을 통과하는 개인들의 운동을 잠시 동안 정지하게 하는 운동정지체의 역할을 한다. _ 마르쿠스 슈뢰르, <공간, 장소, 경계>, p126


 이제, SNS 미션을 마무리할 시간이 되었다. 평사리 최참판댁에 용이가 들어간 것이 서희와 용이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는 것은 수긍되지만, 어쩐지 서희가 조금 손해본 듯한 느낌은 지우기 힘들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마무리한다.


 '내가 (서희)라면, (용이에게 전세를) 놓았을텐데... 아니면, 월세라도...' mission cl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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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11-14 17: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막 진지하게 읽다가 , 전세나 월세라니 빵 터졌습니다 호랑이님 *^^*

겨울호랑이 2021-11-14 17:44   좋아요 1 | URL
미니님 즐겁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가는 현찰 속에 단단해지는 우정을 떠올렸습니다 ^^:)
 

 "하기는 요새 농사꾼들이 무신 수로 삼 한 뿌리 사가겄소. 죽는다, 산다, 해쌓아도 어제가 옛날이라. 산 넘으믄 또 산이 있고 갈수록, 그대로 옛날에는 겨울 한 철 뼈 빠지게 길쌈을 하믄 살림 한 모퉁이는 막았는데 그놈의 광목이다 옥양목이다 하고 기계로 짠 것을 풀어묵이니 손바닥만 한 땅만 파가지고, 흥 그놈의 땅이나마 질게(길게) 가지기나 함사? 장리 빚에 안 넘어가믄 천행이지 _ 박경리, <토지 8> , p 17/612


"돈이 있어야 안 살 물건도 사제요. 장꾼들이란 사고 접어도 급히 소용 안 되믄은 안 하고 기고 사고 접은 생각이 없어도 우짤 수 없이 소용이 되는 거는 사는 기고, 가만히 앉아서 살피보소. 장꾼들은 대개가 농사지기들인데 땅 파서 금덩이 나오잖으니께."_ 박경리, <토지 8> , p 26/612


 <토지 8>에서는 조준구에 대한 복수를 마무리 짓기 위해 간도에서의 생활을 정리하려는 서희와 길상의 갈등이 본격화된다. 아직은 공노인이 전면에서 조준구를 멸망의 구렁텅이로 안내하지만, 정작 서희 자신에게는 더 힘든 일이 간도에서 떠나는 결정이 아니었을까. 이번 주에 읽은 <토지 8>에서는 깊어가는 두 부부의 갈등과 함께 월선의 병세도 깊어가면서 소설의 전반을 어두운 분위기로 끌고 내려간다. 


 이러한 어두운 분위기를 피하고 싶어서인지, 공연히 페이퍼의 관심을 노인들의 대화로 옮겨본다. 무심히 흘러가는 듯한 객주집 주인과 공노인, 공노인과 등짐장수의 대화 안의 내용안에는 그들 자신은 의도치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당대의 세계경제와 역사의 흐름이 녹아들어있다. 이들 대화의 소재인 산업화 이후 제국주의 열강들의 주요 교역품인 인삼(人蔘 Ginseng), 면화(綿花, cotton), 금(金 gold)이 그 흐름을 주도하는 상품/화폐들이다.


 인삼은 영국 동인도회사의 교역품 가운데 '사무역 private trade' 상품으로 분류되었다. 이 시대에 사무역이란 일반적으로 배의 선장과 슈퍼카고 supercargo가 개인적으로 일정량의 상품을 배에 실어 거래할 수 있는 특혜를 일컫는다.(p101)... 사무역이 허용된 물품은 보석, 사향, 용연향 龍涎香 ambergris처럼 매우 귀하고 값비싸며, 큰 이윤을 남길 수 있는 것들이었다. 인삼이 사무역품으로 분류된 이유 역시 마찬가지였다. _ 설혜심, <인삼의 세계사> , p102/354


 설혜심((薛惠心)의 <인삼의 세계사>에는 사치, 귀중품으로서 인삼의 이야기가 다루어진다. 뛰어난 약효로 인해 중국에서 다량 소비되었고, 서양에도 널리 알려진 인삼. 만주, 시베리아 지역과 함께 고려인삼(高麗人蔘)은 최상품이었으며, 적어도 인삼 시장에서는 '북미산'은 3등품에 불과했음을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개성인삼은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홍삼과 백삼이 있다. 원래 삼포(蔘圃)에서 채취한 것을 수삼이라 하며 수삼을 깎아 말리면 백삼이 되며, 홍삼은 수삼을 다시 쪄서 말리는 것이다. 홍삼은 본래부터 가격이 고귀하여 자고이래로 영약이라 하여 중국에서 대량적으로 수출이 되는 동시에 중국인에게는 특별한 약효를 가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삼만은 여지없이 천대를 받아 약국에 건재물로만 취급되어 왔을 뿐이었다. _ 최문진, <개성인삼개척소사>, p67/86


 홍삼은 한국 정부의 독점적인 사업이다. 즉 정부가 삼포에서 인삼만 사서 인삼을 인삼과 홍삼으로 만들어 수출한다. 따라서 관공서에서 생산한 홍삼을 다른 사람에데 되팔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이 이런 사업에 종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따라서 삼포주나 인삼을 외국인에게 파는 등의 행위는 국법으로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위반자는 인삼포와 인삼뿐만 아니라 전 재산을 몰수하고 심할 때는 사형에 처한다.... 종사자의 말대로 인삼은 한국의 가장 중요한 물산이다. 한국 정부는 이미 홍삼제조권을 독점하고 있다. 판매과 구매를 엄금하는 것은 아니다. _ 시노부 준베이, <조선인삼의 가치>, p42/58


 홍삼(紅蔘)과 백삼(白蔘)으로 구분되는 전통의 인삼시장에서 홍삼은 중국과 무역에서 매우 중요한 삼품으로 취급받았기에 국가의 보호와 관리 대상이었다. 이러한 홍삼 시장을 일제가 그냥 둘 리는 없었고, 실제로 19세기 말부터 인삼시장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이기 시작한 일제는 1900년 전호 인삼 시장을 독점하게 된다. 최문진의 <개성인삼개척소사>에서는 개성상인에 의한 상대적으로 인기가 없었던 '백삼'의 재발견 역사를 다루지만, 이것은 구한말(舊韓末) 미쓰이 독점 체제인 홍삼 시장에서 밀려난 개성상인의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뿐이었다.


 1876년 강화도조약 직후부터 외국 신문에서는 한일간의 무역의 불평등성을 지적하는 기사가 다수 등장한다. 이런 기사에서 인삼은 빠지지 않고 언급되던 주제였다. 일본이 강화도조약을 통해 인삼 수출을 강제한다고 비판하는 내용이 기사의 요지였다. 1887년 <타임스>는 주일 영사 해리 스미스 파크스(Harry Smith Parkes, 1828 ~ 1885)의 보고를 빌려 극심한 기근으로 사망자가 속출하는 한국에 일본 배가 들어와 7세 아이를 5센트에 팔아넘기고 있다면서 일본에 비난을 퍼부었다. "인삼 말고는 일본에 수출할 물건이 없는" 한국의 상황에 안타까움을 드러내는 기조가 만연했다. _ 설혜심, <인삼의 세계사> , p143/354


 1901년이 되면 일본의 한국 침탈이 한층 거세져 "열차, 철도, 한국에서 가장 가치있는 작물인 인삼 수확량 전체"가 모조리 일본의 수중에 들어갔으며, "인삼밭 전체가 미쓰이(三井)의 소유가 되었다"는 기사가 <타임스>를 통해 전 영국에 퍼져나갔다. _설혜심, <인삼의 세계사> , p144/354


 인삼이 세계적인 사치품으로 중개무역 상품으로 거래되었다면, 면화는 다른 성격의 상품이다. 일상생활용품으로 널리 사용되는 면제품은 영국의 산업혁명의 성과와 직접 연관되어있으며, 교역상품이 아닌 노예제 플랜테이션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제국주의 경제에서 보다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원가관리회계에서 원가를 구성하는 요소를 크게 직접재료비(DM), 직접노무비(DL), 제조간접비(OH)로 구분한다면, 새로운 식민지 인도의 면화를 원재료(DM)로 영국와 아일랜드의 농촌 인력을 활용(DL)하여 만들어낸 면직물은 말 그대로 산업혁명 그 자체였고. 영국은 면직물 산업에서 최강자였다. 


 변혁은 직물 제조 공장에서 가장 빠르게 일어났다.(p120)... 1820년 이후에는 방적업자들이 자신의 공장에 직포 작업장을 부설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제철업에서처럼, 면공업에서도 산업의 변화는 대기업의 발흥이나 여러 공정의 통합과 결부되었다. 면방적과 직포에서 일어난 혁신들 대부분은 다른 직물들의 제조에 적용될 수 있었다. _ T.S. 애슈턴, <산업혁명> , p126


 이러한 영국의 강력한 면직물 공업에 대항하기 위해 일본은 일본과 식민지 - 조선, 만주(1930년대 이후), 타이완 등 - 을 둘러싼 bloc경제를 구상하게 된다. 그리고,  <토지 8>에서 나오는 바와 같이 조선에 세워진 면직물 공장들에서 옥약목과 광목이 쏟아져 나오면서 우리나라 전통의 무명산업은 붕괴되고 만다.


 1909년에 이르러 일본이 수입하는 면화 가운데 인도산 면화가 62%에 달하자, 일본인들은 대영제국에 대한 높은 의존도를 염려하며 그로부터 헤어나고자 했다. 한국과 일본의 또 다른 식민지인 만주, 타이완에서 들여오는 면화가 잠재적 해결책 중 하나였다. (p388)... 인본인들의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한국이 일본에 수출한 면화는 1904~1908년 연평균 1,678만 2,917kg에서 1916~1920년 7,484만 2.741kg으로 증가했다. _ 스벤 베커트, <면화의 제국>, p388/689


  이상에서 처럼 실물경제에 있어 일제의 침탈은 사치품목으로는 인삼, 일상생활용품으로는 면화 등이 잘 보여준다면, 금융시장에서의 침탈은 '금'이 잘 보여준다. 당시 세계적으로 금본위제(金本位制, Gold standard)가 운용되었기에 각국은 화폐를 만들기 위해서는 여기에 해당하는 금을 보유해야 했다.(금태환 金兌換) 여기에 대해 헤르만 라우텐자흐(Hermann Lautensach, 1886 ~ 1971)의 <코레아 Korea>는 1940년대까지 일본의 금융제도를 지탱하는 역할에서 한국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했는가를 잘 보여준다. 결국, 일본이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조선의 인삼, 면화 그리고 금이 절대적으로 뒷받침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여러 기록을 통해 잘 알게 된다. 그리고, 철도, 항만 등 이른바 사회간접자본(SOC)는 이러한 과실을 따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음을 아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국은 광물자원이 가장 다양하고 풍부한 나라이다. 주요 광산물 가운데 석유와 주석만 없다. 그러나 옛 한국에서는 이렇게 풍부한 광물자원이 거의 이용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세계에 대한 자연과학적-기술적 사고 방식이 한국인들에게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1916년에 미래의 광업권은 일본인이나 일본법하에서 생긴 법인(法人)에게만 허락한다는 규정을 공표하였다. 이 규정은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_ 헤르만 라우텐자흐, <코레아>, p607


 금광이 가장 중요하다. 종종 금과 직접적으로 결합되는 은과 함께 금은 1936년에 광업 총생산액의 64.7%를 차지앴다. 지난 10년간 조선총독부는 금 채광을 독려하기 위해 금광 탐사와 저품위 광석을 인근 철도나 항로로 운송하는 데 재정지원을 하였다. 1911년 금 생산액은 4,500,000엔에 달하였다... 1940년에는 아마 1억엔을 초과했을 것이다. 현재 한국의 금 생산은 일본 총생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한국의 금 생산은 1937년에 세계 금 생산의 1.7%에 달하였다. _ 헤르만 라우텐자흐, <코레아>, p608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 여전히 주장되고 있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다시 들여다본다면, 이들의 연구가 실증사학(實證史學)을 표방하지만, 실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자료를 편집한 편협한 주장임을 실감하게 된다. 이에 근거한 극우(極右) 주장의 허구성도 여기에 뿌리를 둔 것임을 생각해 본다면, 그 폐해가 만만치 않음도 다시금 느낀다.


 이미 여러 연구자들이 지적해 왔듯이 한국에 있어서 근대적 경제성장은 20세기의 식민지기 植民地期부터이다. 근대적 소유제도가 정비되고, 철도, 도로, 항만, 통신의 발달에 의해 전국적으로 잘 통합된 상품시장이 성립하고, 나아가 노동시장 및 금융시장이 20세기 후반까지 차례로 성숙하였다. 그러한 새로운 토대 위에서 한국의 시장경제와 산업사회가 발달해 왔지만, 그 발달의 구체적 양상, 그 한국적 유형의 특질과 관련해서는 아무래도 19세기 말까지의 전통 경제체제가 전제로 또는 제약으로 작용하였음을 부정할 수 없다. _ 이영훈 외 , <수량경제사로 다시 본 조선 후기> , p389


 이처럼 <토지 8>과는 크게 상관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지나가는 듯 나누는 노인들의 대화 안에는 이른바 '대일본제국 大日本帝國'이라는 근대 아시아의 식민제국이 실은 식민지 조선(朝鮮)에 기생하여 열강들과 경쟁할 수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이 담겨있다. 이러한 수탈의 결과로 인해 민중들의 삶이 고단해질 수 밖에 없었음은 당연할 것이고, 이것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식민 각국들이 겪어야 했던 불행한 과거였음도 함께 생각하게 된다. 이와 함께 오늘날에도 일부에서 '식민지 근대화론'이 계속 힘을 받고 있는 현실 속에서 <토지>의 주인공들이 느꼈을 어두움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1865년 이후 농촌 면화 재배지역의 특징으로 자리 잡은 새로운 노동 체제를 마련하는 데 국가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또한 국가는 면화를 재배할 수 있는 드넓은 새 영토를 확보하여, 그 지역을 정치, 군사적 그리고 관료주의적으로 지배했다. 그들 모두가 노동력을 통제하는 것이 영토 지배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19세기 말에 이르러, 동시대 관찰자들은, 이처럼 세계 시장을 위한 면화 재배로의 전환을 좌우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새로이 패권을 쥔 제국들의 영토 지배라는 점을 상식으로 여겼다. _ 스벤 베커트,  <면화의 제국>, p389/689 


PS. 센코카이(鮮交會)라는 일본의 조선철도 근무 경험자들의 모임에서 편찬한 <조선교통사>에서는 조선에 부설된 철도가 단순한 여객철도가 아닌 자원, 물자 반출을 위한 화물/산업철도였음을 잘 보여준다. 산업과 경기에 따라 화물 물동량이 크게 움직이고, 이러한 영향으로 운임이 변동되는 철도 통계 자료는 일제의 SOC 성격을 보다 분명하게 보여주는 자료라 여겨진다...


 한일병합 후 침체된 경제계도 차츰 회복의 징후를 보였으며, 각종 기업도 부흥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석탄과 건축 재료 등 화물의 움직임이 증가하였으며, 또한 풍년으로 인해 곡물 수송은 유례가 없는 호황을 보이고 평남선 개통, 이어서 경원/호남 양 선의 일부 개통과 함께 기존선의 영업 상태도 양호해졌다.(p135)... 1925년 4월 직영 환원 후 매년 경제계가 회복하여 쌀 반출과 조의 수입, 기타 각종 자재의 수송이 활발해졌으며, 1927년 4월경 일본 전국에 실시된 모라토리엄(지급 유예)실시로 인한 충격 속에서도 호황을 유지하였다. 1928년 9월 이후에는 함경선 전선이 개통된 결과 함북 방면에서 목재와 석탄 등이 남하하였으며, 1929년에는 이원철산선과 차호선의 영업이 개시되면서 이 연선 광석의 반출 및 함경남도 흥남 유안공장의 조업과 이의 출하 개시 등에 의한 새로운 생산 분야 개척으로 수송량 증산을 가져왔다.(p138)... 1937년에는 중일전쟁 발발에 의한 특수 수송과 함께 병참기지로서 군수공업이 발달하였으며, 반도 경제도 점차로 장기화되면서 물자와 교통 동원 계획을 바탕으로 전시체제로 재편성되고 생산력 확충을 위해서 중요한 일익을 담당하게 되었다. _ 센코가이,<조선교통사 3> ,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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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8.09 ~ 08.13 SNS 미션 (8월 15일 자정까지)

'토지박경리' 5행시로 감상평을 아래의 조건을 충족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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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주 토지독서챌린지 미션은 5행시다. 여태까지 미션이 한 주동안 읽은 책에 대한 감상이 주제였다면, 이번 미션은 연휴를 맞아 쉬어가자는 운영자님의 배려로 읽혀진다. 그렇지만, 뜻하지 않은(?) 이 미션은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시(詩) 감각이 없는 내게는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온다.... ㅜㅜ  결국 어찌어찌 만들었지만, 부족한 것은 어쩔 수 없어서 참 공개하기가 꺼려진다. 부족한 5행시는 페이퍼 끝에서 확인하는 것으로 하고, 한 주 독서를 페이퍼로 간단하게 마무리 짓는다.

 

 콜레라는 인간이 유일한 숙주이지만, 동물 숙주 없이도 인간의 몸 밖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바실루스에 감염될 때 발생한다. 오염된 식수를 통해 전염되며 내장 기관에 문제를 일으키고 탈수 증세를 초래한다. 초기의 콜레라는 건강한 성인의 치사율이 50퍼센트 정도였는데, 어린이와 노인은 더 높았다. 이 질병은 갠지스강의 하류 지역에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고, 19세기 초에 전 세계로 퍼졌다. _ 클라이브 폰팅, <클라이브 폰팅의 녹색세계사> , p274/534


 "그 뱅은 걸리기만 하믄 죽는다!" 빙 둘러싸고 있던 사람의 울타리는 무너진다. 불거져 나온 두 눈, 관골과 코만 댕그랗게 솟아오른 해골, 김서방의 그런 모습은 순간 이들에게 다른 뜻으로 비쳤다. 암담하고 침울하고 슬펐던 눈빛은 일제히 공포로 변했다... 집안의 일상은 무너졌다. 마을의 일상은 무너졌다. 불안과 공포는 시시각각 검은 구름같이 마을을, 최참판댁을 엄습해오고 있었다. _ 박경리, <토지 3>, p260/518


 <토지 3>에서 갑작스럽게 닥친 호열자(콜레라)는 평산리를 덮치고 여러 사람이 죽어나가면서 사신(死神)의 불길한 기운이 온 마을에 퍼져 나갔다. 성별, 나이, 신분고하에 관계없이 모두가 평등하게 호열자의 파도에 쓸려가면서 마을의 분위기는 바뀌게 된다. 파국이 시작되었다.


 병이 그런 방어를 겁낼 리는 없다. 보이지 않는 무서운 형상으로 들리지 않는 함성을 지르면서 골목을 점령하고 마을을 점령하고 방방곡곡을 바람같이 휩쓸며 지나가는 병균. 그들의 습격대상에는 신분의 높고 낮음이 없었다. 부자와 빈자의 구별이 없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도 않았다. 인심은 흉년의 유가 아니었다. 난리가 났다면 피난이나 가지 하고 사람들은 절망했으며 희망을 미신에 걸어보는 것밖에 도리가 없는 것이다. 참으로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_ 박경리, <토지 3>, p296/518 


 질병으로 인해 생기는 절망, 그리고 절망을 희망으로 바뀌려는 노력은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 ~ 1960)의 <페스트 La Peste>에도 잘 표현된다. 천형(天刑)과도 같은 한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시련에 좌절 후 희망을 품어보지만, 결국 이를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모습. 마치 죽음을 선고받은 환자의 모습처럼 페스트가 퍼져가는 오랑의 시민들은 변해간다.


 그때에 그들의 용기와 의지, 그리고 인내의 붕괴는 너무도 갑작스러워서 그들 스스로 영원히 그 수렁에서 다시 기어 나올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가 자유로워질 시기를 결코 생각지 않고, 이제는 더는 미래를 바라보지도 않으며, 말하자면 늘 두 눈을 내리깔려고 무척 애쓰고 있었다.(p134)... 이와 같이 그들은 아무 소용도 없는 기억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모든 유형수의 깊은 고통을 맛보고 있었다. 그들이 끊임없이 되새기곤 하는 그 과거조차도 후회의 쓴맛밖에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_ 알베르 카뮈, <페스트> , p135/574


 그들은 까닭 없이 괴로워하기도 하고 희망을 품기도 했다. 그러한 극도의 고독 속에서 결국 아무도 이웃의 도움은 바랄 수 없어서 각자가 혼자서 근심해야만 했다. 만약 우리 중 누군가가 우연히 자기 속내를 털어놓거나 모종의 감정을 말해도, 그 사람이 받을 수 있는 대답은 어떤 종류건 대개 불쾌감을 주는 것이었다. _ 알베르 카뮈, <페스트> , p140/574


 <페스트>의 오랑 시민들은 외부로부터 차단된 고립된 곳에서 죽음의 공포를 맞이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보카치오(Giovanni Boccaccio, 1313 ~ 1375)의 <데카메론 Decameron> 속 주인공들은 사뭇 다른 처지에 있다. 피렌체에 흑사병이 닥쳤을 때 이들은 질병을 피해 멀리 시골로 떠나 다른 세계에서 죽음의 위협을 피할 수 있었다. 마치 영화 <엘리시움 Elysium> 속의 피난처와 같은 곳으로 떠난 7명의 귀부인과 3명의 청년은 올림푸스 산에서 인간세계를 내려다보는 불멸의 신과 같이 필멸의 인간들의 사회를 마음껏 비웃으며 즐겁게 그들만의 왕국을 만들어갔다.


 집착인지 오만인지는 몰라도, 우리가 원한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이런 상황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고 착각하지 않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앞서 그랬고 그러듯이 이 지역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p23)... 그곳에서 이성의 경계를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우리가 추구할 수 있는 기쁨과 즐거움, 쾌락을 맛보자는 것이지요. _ 조반니 보카치오, <데카메론 1> , p24/335


 유쾌한 10일간의 이야기와 함께 하면서 그들은 죽음의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이러한 자신감은 그들을 다시 현실로 돌아갈 수 있는 여유를 주었지만, 이러한 여유의 끝이 어땠는가는 분명치 않다. 개인적으로 <페스트>와 같은 지옥도와 같은 현실이 눈 앞에 펼쳐진다면, 10일간의 천상생활이 가져다 준 여유는 하룻만에 날라가지 않았을까. 그들의 여유는 언제까지나 죽음의 파도로부터 자유로운 곳에서 나온 것이었을테니까.


 인간의 지혜란 단순히 지나간 것들을 기억하거나 현재를 아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인간에게 있어 최고의 지혜로 평가되는 것은 과거와 현재를 앎으로써 미래를 내다보는 것이라고 현자들은 말합니다. 아시다시피 그 무서운 흑사병의 계절이 시작된 뒤로 우리는 음울하고 고통과 불안으로 가득 찬 거리를 피해 피렌체에서 도망쳐 나왔고, 우리의 건강과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피난처를 구해야 했습니다. 저는 우리가 목적을 다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이에서 정숙함과 화합 그리고 친밀함이 계속 이어지는 것을 저는 보고 또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분명 여러분과 저의 참으로 소중한 명예이자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_ 조반니 보카치오, <데카메론 3> , p280/318


 카뮈의 <페스트>와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은 페스트(흑사병)이 가져다 준 공포와 이로 인해 고립된 인간이 느껴야 하는 절망과 실낱같은 희망을 보여준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은 희망의 끈을 잡으려 하지만, 계속 붙잡을 수 있는 것은 암울한 상황을 잊을 때 뿐이고, 이를 정면으로 맞아야할 때 인간과 공동체는 과거와는 다르게 변화할 수 밖에 없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런 점을 생각해본다면, 어머니와의 이별로부터 연속적으로 닥친 불행에 고스란히 몸을 맡겨야 했던 <토지>의 어린 서희는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슬픔과 함께 자신 또한 느꼈을 호열자에 대한 공포, 그리고 자신을 떠난 이들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 등  복잡한 감정을 어린 서희가 감당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마음 깊이 자리잡은 이러한 마음이 이후 최씨 문중의 증흥을 위해 친일(親日)까지도 꺼리지 않았던 그의 행보를 이끌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몇 해 동안 연이어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바우 내외만은 명대로 살다 갔다 할 수 있었으나 최치수의 죽음, 귀녀의 죽음, 집안 식구는 아니었지만 불에 타죽은 또출네 하며, 죽음치고도 비참한 그들 비명을 보았건만 새로이 직면하는 죽음은 여전히 하인들 가슴에 전율을 일게 한다. _ 박경리, <토지 3>, p260/518


앞서 말한 독서챌린지 미션을 마지막으로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 <토지>를 읽으며

: 지나간 우리네 삶과 수난을 씁쓸하게 맛본다

: 박경리 작가는 작품 안에 이들을 잘 녹여냈구나

: 경건한 마음으로 책을 다시 꺼내든다

: 리해(이해)를 하려면  아직 멀었지. 가다보면 가까워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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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8-14 22: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행시 훌륭하십니다 ㅎㅎ 데카메론. 짠돌이 오빠가 돈 주고 사와서 몰래 읽던 책이 데카메론과 즐거운 사라? 였지요 ~ 민음사에서 데카메론이 나왔군요. 휴일 즐겁게 보내세요 *^^*

겨울호랑이 2021-08-14 22:57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mini님. 그런데 정말 미션 아니었으면 공개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다른 분들 삼행시 등을 보면 바로 잘도 짓던데... 저도 예전에 동서문화사 판으로 읽었는데, 민음사에서 나온 것으로 읽으니 또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mini님께서도 즐거운 연휴 되세요! ^^:)

붕붕툐툐 2021-08-14 22:5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행시 정말 너무 좋은데요?😍
저도 페스트 읽어서 리뷰 남기려고 했는데 괜히 너무 반가워요~헤헤~
(데카메론은 넘사벽!ㅋ)
저도 토지에서 호열자로 사람들 죽어나갈 때 너무 안타까웠어용~~ 그걸 또 이렇게 엮어 읽으시다니~👍
한 수 배워갑니다~

겨울호랑이 2021-08-14 23:0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붕붕툐툐님. 이번 미션은 저도 5행시만으로 넘기려 했는데, 읽은 부분이 또 쉽게 넘어갈 수 없는 주인공 서희에게 매우 결정적인 장면인지라 페이퍼를 쓸 수밖에 없었네요. 또 전염병하면 빠질 수 없는 두 작품을 함께 펼쳐봤습니다. 이런 기회 아니면 또 언제 해볼까 싶기도 합니다. 붕붕툐툐님께서도 즐거운 연휴 보내세요! ^^:)

잠자냥 2021-08-14 23: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해가 아주 잘 되는 5행시였습니다! ㅋㅋㅋ

겨울호랑이 2021-08-15 00:16   좋아요 1 | URL
제가 봐도 마지막 글자는 상당히 억지스러웠습니다... 두음법칙 피해서 ‘리본으로 책을 잘 묶어야지‘ 도 생각했습니다만 더 이상하더라구요... ㅜㅜ
 


 달구지 위에서 흔들리고 있는 길상은 생각에 빠져서 자신이 달구지를 타고 있다는 것을, 읍에 심부름 가고 있는 길이라는 것을 거의 잊었다. 꾸불꾸불 밀려오는 물굽이가 바닷가의 방죽을 치고 또 치는 것처럼 잇닿아 밀려오는 공상은 그에게 다시없이 감미로운 것이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나는 수많은 생각들은 마치 만화경같이 찬란하고 다양했다. 갖가지 빛깔이 있는가 하면 갖가지 소리가 들려오고 과거에서 미래까지 추억과 꿈은 마음대로 끝도 시작도 없이 그의 생각 속 넓은 공간을 비상하는 것이다. 추억의 창문에서는 어느 길모퉁이에서 들었던 소슬한 바람 소리가 들려왔고 장님이 불고 가던 피리 소리가 들려왔고 범패(梵唄)소리, 새벽 산사에 울리던 장엄한 인경 소리가 들려왔고 강물을 건너오는 뱃사공의 노랫소리, 추억의 창문에서 명주 수건으로 감싼 월선아지매의 얼굴이 보였다. 월선아지매의 모습은 별당아씨의 뒷모습으로 변해갔고 산을 바라보던 슬픈 그 구천이의 옆얼굴이 나타났다. (p114/518) _ 박경리, <토지 3>


 어느새 토지 독서챌린지에서 <토지 3>를 읽고 있다. 아버지 치수의 죽음과 조준구 일가의 등장으로 긴장감이 서서히 생기는 도중에 달구지를 타고 가는 길상의 상상에 눈이 멎는다. 수많은 생각들이 이어지면서 만들어 내는 시각(視覺), 청각(聽覺)의 이미지. 절에서 자란 길상의 과거와 현재 최참판 댁 몰락의 전조인 별당아씨와 구천의 도피까지 현재에 이르는 이미지들은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1871 ~ 1922)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 스완네 집쪽으로 A la recherche du temps perdu: Du cote de chez Swann>의 유명한 마들렌 과자를 먹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그것이 레오니 아주머니가 주던 보리수차에 적신 마들렌 조각의 맛이라는 것을 깨닫자마자(그 추억이 왜 나를 그렇게 행복하게 했는지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그 이유를 알아내는 일은 훨씬 후로 미루어야 했다.) 아주머니의 방이 있던, 길 쪽으로 난 오래된 회색 집이 무대장치처럼 다가와서는 우리 부모님을 위해 뒤편에 지은 정원 쪽 작은 별채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집과 더불어 온갖 날씨의,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마을 모습이 떠올랐다. 점심 식사 전에 나를 보내던 광장이며, 심부름 하러 가던 거리며, 날씨가 좋은 날이면 지나가곤 하던 오솔길들이 떠올랐다. 일본사람들의 놀이에서처럼 물을 가득 담은 도자기 그릇에 작은 종잇조각들을 적시면, 그때까지 형체가 없던 종이들이 물속에 잠기자마자 곧 펴지고 뒤틀리고 채색되고 구별되면서 꽃이 되고, 집이 되고, 단단하고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처럼, 이제 우리 집 정원의 모든 꽃들과 스완씨 정원의 꽃들이, 비본 냇가의 수련과 선량한 마을사람들이, 그들의 작은 집들과 성당이, 온 콩브레와 근방이 마을과 정원이, 이 모든 것이 형태와 견고함을 갖추며 내 찻잔에서 솟아 나왔다._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 p54/226


 마들렌 과자의 미각(味覺)이 불러온 수많은 추억과 이미지들. 질 들뢰즈(Gilles Deleuze, 1925 ~ 1995)는  이 장면을 '기호'로 받아들인다. 들뢰즈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기호'안에 숨겨진 의미(진리)를 찾는 과정으로 인식하는데, 미래를 향한 '찾기'의 과정에서 이러한 기호들은 필연적인 관계를 맺는다. 들뢰즈의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이 장면들은 아름다운 몽환적 이미지의 표현이 아닌 작품 전체에 대한 과제 부여의 성격이 강하다.


 세번 째 세계는 인상 혹은 감각적 성질 qualites sensibles의 세계이다. 어떤 감각적 성질은 우리에게 야릇한 기쁨을 주는 동시에 일종의 <명령>을 전해 준다. 이런 식으로 체험된 성질은 더 이상 그 성질을 실제로 소유하고 있는 대상의 속성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에 우리가 해독하려고 시도해야만 하는 <완전히 다른> 대상의 기호로 나타난다.(p34)... 우리는 이 성질, 이 감각적 인상을 마치 물 속에 넣으면 열려져서 갇혀 있던 형태가 드러나는 일본 종이처럼 펼쳐 낸다. 이들은 모두 동일한 전개 과정을 보여준다. 우선 특별한 기쁨이 찾아오고, 그 결과 이 기호들은 그 직접적인 효과로 인해 이전 상태[기쁨을 주기 이전의 사물들'과 구별된다. 다른 한편 이 기호의 의미를 찾기 위한 사유 작업이 필요하다는 일종의 의무감이 느껴진다. 그러고 나서 우리에게 숨겨진 대상을 건네주면서 기호의 의미가 나타난다 (마들렌이 콩브레를, 종탑들이 소녀들을, 포석들이 베니스를 건네 주는 식으로 말이다.) _ 질 들뢰즈, <프루스트와 기호들> , p36


 그렇지만, 이에 대한 온전한 해석은 작품 끝에 <되찾은 시간> 전까지 미뤄진다. 그 전까지 독자들은 마들렌 과자로부터 시작된 기호들의 의미를 '사교계', '사랑의 그룹', '기호의 세계' 라는 서로 다른 세계에서 '잃어버리는 시간', '잃어버린 시간', '되찾는 시간', '되찾은 시간'이라는 다른 시간선들의 교차에서 끊임없는 미로를 헤매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이 모든 여행의 끝은 '되찾은 시간'에서 비로소 풀려나간다.

 


 마들렌 과자의 도취 상태가 마지막의 현시를 미리 암시하는 기호에 지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적어도 그것은 추억의 문을 열어준다는 장점, 그리고 콩브레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되찾은 시간>의 첫 밑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한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되찾은 시간>을 모르고 이 작품을 읽어가는 독자의 눈에는, 콩브레 이야기로 옮겨가는  것은, 인위적으로 수사학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가장 단순한 서술적 관례에 속하는 것처럼 보인다. 두번째 독서에 이르러 내용을 보다 잘 알게 되면, 서재에서의 사색이 마침내 깨닫게 된 소명을 검증하는 시기의 되찾은 시간을 열어주는 것처럼, 마들렌 과자의 도취 상태는 유년기의 되찾은 시간을 열어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시작과 끝의 이러한 균형은 작품 구성을 주도하는 원칙임이 드러난다. _ 폴 리쾨르, <시간과 이야기 2>, p284 


 해석자는 마들렌이나 종탑의 경우에서 자신의 이해가 미치지 못했었던 것에 대해 "찾기"의 끝 부분에 와서 비로소 이해한다. 즉 물질적 의미는 그것이 구현하는 관념적 본질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_ 질 들뢰즈, <프루스트와 기호들> , p37


 이렇게만 놓고 본다면, <토지 3>의 길상의 생각 장면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큰 관련이 없어 보인다. 사실, 별 관련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논의를 진행시켰으니 조금 더 나가보자. 이어지는 생각 속에서 길상은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며 잠에서 깨어난다. 그는 과거 절에 있었던 시기를 생각하면서 부처님도 자신을 공포로부터 구원하지 못했음을 두려워하며 달구지 위에서 잠을 깨어난다.

 

 이어지고 다시 이어지는 영상을 내버려두고 길상의 생각은 별안간 달음박질쳐서 엉뚱한 곳으로 간다. 어느 한낮에 꾼 꿈으로 날아갔다. 다시 뛰어서 우뚝 멈춘 곳은 숲 속이며 개울가였다. 쭈그리고 앉아서 물맴이가 도는 것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무서워졌다.... 길상은 자신이 달구지 위에 있음을 깨달았다.(p115/518) _ 박경리, <토지 3>


 그리고, 수십 년의 시간이 흐른 뒤, 길상은 평사리가 아닌 간도에서 자신의 생각 속에서 스쳐갔던 인물 김환(구천)을 다시 만난다. 그 전에 자신이 알지 못했던 구천 출생의 비밀과 서희와의 관계가 이 만남을 통해 밝혀지게 되고, 이를 통해 과거 구천에 대한 경외(敬畏)감이 재생되었다는 점에서, 일종의 '진리 찾기'와 '되찾은 시간'이 완성되었다고 본다면 무리가 있을까. 구천은 달구지 위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통해 '별당아씨 - 구천'의 관계라는 '기호'를 무의식 중에 부여받았다면, 객줏집에서 만남을 통해 '되찾은 시간' 속에서 출생의 비밀이라는 진리와 '기호'에 대한 해석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이십 년 세월만 무서운가? 이 무서운 인연들. 목구멍으로 술이 타고 내려가는데, 뜨거운 빼주가 넘어가는데 머릿속이 차츰 맑아온다. 선명하게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지난 일들이 새롭게 눈앞을 지나가고 있다. 소년 길상이는 구천이를 두려워했다. 쥐어박히며 탱화 그리기를 가르치는 혜관보다 남몰래 손짓하여 데려가서는 글을 가르쳐주던, 말이 적고 엄격해 보이던 사람.(p447)...  "별당아씨가 어떤 여자던고? 어떤 여자였던고...... 버릴래야 버릴 수 없었던, 현세와 하늘에 순명할 수 없었던 사람, 땅을 끊을 수 없었던 초나라의 굴원(屈原)은, 그 굴원은 돌을 안고 멱라(汨羅)에 빠졌건만, 그 기나긴 방류(放流)도 끝이 났건만 어찌 나는 살아 있는가." 한 사나이가 어둠 속에서 통곡하고 있었다.(p360/518)... 꿈도 멀어져갔다. 빛깔과 빛깔이 난무했다. 우관스님이 거기 서 있는 듯했으나 그 모습도 사라졌다. 길상이 눈을 떴을 때 그는 자신이 객줏집 안방에 누워 있는 것을 알았다._ 박경리, <토지 8>, p457/656 


 구천과의 만남을 통해 '기호'의 의미로부터 해방된 길상의 모습은 이후 길서상회를 정리하고 간도에서 다시 조선으로 돌아가려는 서희와의 이별 장면에서 잘 표현된다.  구천과의 만남을 통해 '진리'를 깨닫고 '별당아씨 - 구천'의 사랑을 인정하는 길상과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 서희. 서희는 남편 길상과 함께 돌아가려 하지만, 길상은 이런 서희 곁을 떠나고 만다. 마치, <갇힌 여인>의 알베르틴이 화자의 곁을 떠나듯. 상처입은 아름다운 나비 서희의 여행은 그래서 <토지> 이후에도 계속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보복을 하기 위해서...... 별당의 그 여자를 유인해 갔다 그 말씀이시오?" 목에 잠겨 몸부림치듯 서희는 말을 밀어내었다. "그것은 사랑이었소." 서희는 절을 향해 갈 때마다 그 일을 생각한다. 그 일이 있은 지 며칠 후에 길상은 떠났고,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으며 용정촌에는 풍문이 돌았다. 법당으로 들어가는 모시옷의 최서희, 그는 쓰러지지 않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상처입은 나비같이, 그래도 그는 아름다웠다._ 박경리, <토지 8>, p618/656


 사실 갇힌 사람은 알베르틴이 아니라, 자신의 질투와 의혹에 갇힌 화자이다. "질투는 상상력의 실패이며(......) 질투를 이야기로 구성하는 것은 사랑의 아픔에 맞서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다." 라는 크리스테바의 말처럼, 어쩌면 화자는 사랑하는 사람을 알고 싶은 그 미친 듯한 욕망인 질투를 통해, 비록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관계되는 지극히 내밀한 몸짓과 시선이라 할지라도 끝도 한계도 없는 탐색 작업을 통해 그 미세한 내면의 사건을 이야기로 재구성하려는 고통스러운 여행을 감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_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0>, p279/336 작품 해설 中


ps. 스스로 생각해도 논리 전개가 상당히 무리하고 관련없는 두 작품을 끌어다가 페이퍼를 작성한 듯 하지만,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 재미로라도 두 대작(大作)과 거리를 좁히는 계기가 되었다면, 나름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글을 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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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8-07 12: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토지>와 <일.시.찾>의 콜라보라닛~ 생각도 못한 조합에 그저 입이 쩍벌어집니다.
아니 내가 떠올랐음 그런거죠~ 논리 따윈 필요 없습니다.(논리가 부족하단 말은 절대 아님~ㅋ)
토지문화재단에서 겨울호랑이님이 챌린지에 참여해주셔서 감사할 듯하네요~👍

겨울호랑이 2021-08-07 13:18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붕붕툐툐님 덕분에 좋은 프로그램 알게 되었고, 쏟아지는 과제(?)를 하다보니 여러 생각들을 하게 되어 좋네요.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

바람돌이 2021-08-08 01: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토지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그리고 들뢰즈까지...
우와 대단한 연결입니다. ^^

겨울호랑이 2021-08-08 06:55   좋아요 0 | URL
사실 들뢰즈의 「프루스트와 기호」에서두 작품의 연결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 연결이 기발했다면 공은 들뢰즈 몫이고, 무리했다면 제 부족함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바람돌이님 감사합니다!
 

 

 이제는 야망 때문이 아니었다. 보복 때문이다. 서희가 얼굴에 침을 뱉었을 적에 귀녀는 보복의 칼을 갈았다. 이제는 그 칼을 내려침에 주저할 것이 없는 것이다. 이미 죽이기로 작정하였고 죽일 것을 주저했던 귀녀는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귀녀는 만석꾼 살림보다, 아니 백만석의 살림보다 여자로서 물리침을 당한 원한이 더 강하였다. _ 박경리, <토지 2>, p556/688


 개인적으로  <토지 2>에서 가장 긴박감이 넘치는 부분은 최치수의 죽음이 아닐까 한다. 자신의 아내를 데리고 도망간 구천이를 잡기 위해 신식총도 구입하고, 수동이와 강포수를 데리고 근처로 인간사냥을 나가기도 한 그였으나, 정작 덫에 걸린 것이 그 자신이었다는 것은 비극이자 아이러니로 다가온다. 치수를 직접 목졸라 죽인 사람은 평산이었으나, 평산을 조종한 이는 귀녀요, 귀녀에게 보복감을 심어주어 결행하게 만든 이는 서희였다는 인과관계를 따지고 보면, 서희가 치수의 죽음의 방아쇠를 당겼다고 봐야할 것인가. 그런 면이 없진 않겠지만, 아버지 죽음의 계기를 어린 서희에게 묻는다는 것은 너무 가혹하게도 느껴진다. 서희의 거친 행동이 방아쇠를 당기긴 했을 지언정 자신을 '욕망'이라는 화약창고로 만든 것은 귀녀 자신일테니까.


 비단과 누더기를 구별하는 따위의 자존심, 야수 같은 강포수에의 허신과 인간쓰레기 같은 칠성이와의 동침을 거치면서 마지막까지 최치수에게 여자 대접을 받고자 하는 희망은 애정일까 허영일까 또는 집념일까. 악업(惡業)을 쌓기 위해 목욕재계하고 동자불 앞에서 도움의 기도를 올리던 귀녀, 모든 것은 밖에서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고귀함도 염원도 사랑도 밖에서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_ 박경리, <토지 2>, p556/688


 만석꾼 집의 대를 잇는 아이를 낳겠다는 귀녀의 욕심은 제프리 버튼 러셀 (Jeffrey Burton Russell)의 <메피스토펠레스 mephistopheles>에서 소개된 조르주 베르나노스(Georges Bernanos, 1888 ~ 1948)의 작품 세계관을 떠올리게 한다. 치수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규정할 수 없는 귀녀의 욕망의 끝은 시작부터 이미 어둠으로 향한 것은 아니었는지.


 악은 단순히 인간이 만들어낸 범주만이 아니라 그 궁극적인 특성이 무와 부동성인 실재하는 것이다. 악은 본질을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근본적으로 이해 불가능하다. 악의 중심은 공허이다. 이러한 무는 우리들의 정신에 침투해서 지옥에 동참할 것을 유혹하면서 덩굴 같은 손을 뻗치는 무한한 차가움이다. 인간의 악이 비밀스런 원천으로서 무는 신에 대한 증오와 죽음에 대한 사랑이 스며나오는 의식의 가장 깊은 부분에 숨어 있다... 무에 대한 욕망은 우리 안 깊은 곳에 심어져 있고, 그러한 영향 하에서, 우리는 시선을 빛으로부터 너무나 멀리 돌려서 어둠만을 볼 수 있게 되고 그 자체를 위해 어둠을 택할 수 있다. _ 제프리 버튼 러셀, <메피스토펠레스>, p447


 그리고,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올라탄 귀녀는 멈추지 못하고 자신의 삶 속에서 자신의 형식을 만들어갔던 것은 아니었을까. 어쩌면 처음에는 치수에 대한 동경과 사랑으로부터 출발했을지도 모를 감정이 자신의 욕망과 결합하면서 작가는 '악마'의 모습을 그렸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우리는 그로부터 악마를 보았다.


 한 개인은 살면서 수없이 악을 지각하게 된다. 그 각각의 경험은 이전에 축적된 지각들(Pn)에 의해 부분적으로 형성된 새로운 P를 하나하나 추가하면서 사건과 구조가 이전과 같이 상호작용을 일으키면서 생겨난다. 각각의 새로운 지각은 이미 가지고 있는 축적된 지각을 수정하거나 강화한다. 정신 속에 일반적인 악의 형식(F)을 만들어내기 위해 한 개인의 지각은 여러 해 동안 결합되어 하나의 집합이나 저장소가 된다. Pn -> F. 사람은 이러한 일반적인 개념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심리학적인 지식이나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회 환경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용어들 - 신화, 시, 그림, 도덕 신학, 사회적인 용어 등 - 로 형식화한다. 악에 대한 지각은 종종 악에 어떤 패턴이나 통일설이 있다는 생각을 초래하기도 하면서, 악의 인격화라는 생각도 나오게 되는 것이다. _ 제프리 버튼 러셀, <데블>, p55


 "귀녀를 강포수에게 주기로 했습니다."

하는 날에는 만사는 휴다. 야망은 모래무덤같이 허물어지고 말 것이며 배속의 아이는 쓸모없는 핏덩이, 숲 속에나 내다 버릴 물건밖에는 되지 못한다. 수동이를 나귀 등에 싣고 돌아오던 날, 그 황망한 중에 돌아왔다는 인사를 올린 후 아직 한 번도 최치수 모자는 상면한 일이 없다. 그러니까 강포수에게 귀녀를 주겠다는 말을 했을 리 없고 그렇다면 때는 늦지 않았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쳤을 때 귀녀의 이빨 사이에서 무서운 소리가 새나왔다. 악마의 얼굴이요 악마의 미소요 악마의 희열, 복수의 화신. _ 박경리, <토지 2>, p432/540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자신의 욕망을 향한 귀녀의 의식(儀式) 속에서 경건함도 발견하게 된다. 자신의 일시적인 속된 행동을 통해 남은 여생이라는 영원의 평안함을 위한 귀녀의 행동. 속(俗)에서 성(聖)을 향한 경건함이 '목욕재계'라는 의식으로 나타났다면, 그러한 성(聖)의 속성이 선(善)일수도 때로는 악(惡)일수도 있겠다...


 악마는 신들만큼이나 종교적인 의미를 상당히 드러낸다. 사실, 악마를 경험해서 생긴 감정은 선한 신을 경험하고 얻어진 감정만큼이나 엄청난 것이다. _ 제프리 버튼 러셀, <데블>, p37


 지난 주에 읽은 부분 중에서 귀녀의 욕망만큼이나 시선이 머물렀던 부분은 김평산의 부인 함안댁의 죽음이다. 아니 정확하게는 함안댁의 죽음 직후 보인 사람들의 행동에 의식이 멈춘다. 이웃의 죽음이라는 충격적인 상황에서 빠르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 모습 속에서 자신 이외의 죽음에는 무감각한 인간 본성에 대한 생각과 함께 민간신앙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함안댁이 목을 매고 죽은 것이다... 어느새 나무 밑으로 몰려들었다. 바우랑 붙들이, 마을의 젊은 치들도 덤비듯이 쫓아왔다. 모두 엉겨붙어 나뭇가지를 꺾어 간수하기에 바쁘다. 순식간에 나무는 한 개의 기둥이 되고 말았다... "이기이 만병에 다 좋다 카지마는 그 중에서도 하늘병(간질)에는 떨어지게 듣는다 카더마."... 죽은 사람의 정기를 받아 약물(藥物)이 된다는 믿음에서 모두들 덤벼들어 꺾은 것인데 죽은 나무여서 과연 정기가 통하겠느냐는 아낙의 의심이다. 병에 효험이 있기로는 목을 매단 끈이나 새끼줄이 제일이라는 것이 예부터 전해져 내려온 말이었다._ 박경리, <토지 2>, p652/688


 목매달아 죽은 이가 사용한 나무가 간질에 효험이 있다는 민간신앙(民間信仰). 이를 우리는 일제 식민시대 학자 무라야마 지쥰(村山 智順, 1891 ~ 1968)의 <조선의 귀신 朝鮮の鬼神 >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실, 간질과 관련한 여러 민간 치료법에는 이외에도 여러가지가 있지만, 오늘날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납득하기 어려운 치료법들이다. 


 간질에는 지진동이 있을 때 문창호지를 잘라두었다가 발생 당시 그 종이를 태워서 물에 복용하면 발병하지 않는다.(p384)... 간질에는 남자에게는 여음을, 여자에게는 남근을 잘라서 먹인다. 목매어 죽는 데 쓰인 적이 있는 나무껍질을 벗겨서 달여 마신다. 매장된 시체를 파내서 먹는다. (사람이 알게 되면 죽는다.) 인육을 먹는다. 인분을 건조시켜 달여서 마신다. 인골을 분말하여 음용한다. 사람의 정액을 마신다. 열흘에 한 마리씩 잡은 모기 세 마리를 말린 후 분말하여 복용한다. 어린아이가 이 병에 걸렸을 때는 닭의 볏에서 나오는 피를 마시게 한다. _  무라야마 지쥰, <조선의 귀신 > , p391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위와 같은 방법이 만약 효능이 있었다면 위약(僞藥, placebo)효과 정도나 있었을까. 같은 상황에서 민간요법의 치료로부터 벗어나게 된 것을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이러한 것이 과학(科學)덕분이라는 생각까지는 쉽게 미치지는 않는다. 아마도, 이는 과학이 우리에게 던져준 다른 과제 때문일 것이다. 과학, 자본주의 등으로 대표되는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환경문제, 인간소외 문제에 대한 답을 이제는 동양사상에서 찾고 있는 현실 때문이 아닐까.. 앞서 조르주 베르나노는 무(無)에서 허무, 악을 발견했지만, 노자(老子, BC 604 ? ~ ?) 는 무에서 유(有)를 만들어낼 가능성을 찹은 것처럼 분명 '달의 뒷면'을 보여주는 통찰이 동양사상에는 있으니까 말이다.


 고묘 顧墓는 불안한 상태에 놓인 유해의 영혼이 직접 그 자손에게 재액을 준다는 신앙이다. 바꾸어 발하면 각종의 재액과 질병의 원인이 좋지 못한 곳에 매장한 유해 때문이라 생각하고 이 불량상태를 개량함으로써 그 병원을 근절시키려는 것이다... 이는 받아야할 것을 받지 못하여 생기는 재액/질병이다. 이 양자에게 공통되는 받아야 할 것은 생기이다. 만물은 생기 生氣에서 생겨나고 이 생기를 받는다는 것은 번영을 뜻하며, 이것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망한다는 의미다. 이는 중국에서 전래된 생기신앙으로서, 고묘법은 이 생기신앙와 귀신신앙이 연결되어 나타난 예이다. _  무라야마 지쥰, <조선의 귀신> , p412


 우리는 치료를 위해 인육(人肉)을 먹는다는 끔찍한 이야기가 있어 조선 시대를 야만의 시대로 생각하게 되지만, 루신(魯迅, 1881 ~ 1936)의 소설 <광인일기 狂人日記> <약  藥>에서 보듯 식인 풍속이 우리 문화에 한정된 것만은 아니라는 점과 굶어죽을 위기에 인육을 먹었다는 이야기는 어느 문화권에서도 전승되는 소재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를 반드시 미신(迷信)이나 후진 문화로 치부할 것만은 아니지 않을까도 생각해본다.(그렇다고 비극의 깊이가 얉아지는 것은 아니겠고, 이는 반드시 사라져야 할 것은 분명하다) 다만, 오늘날의 의학(醫學) 역시 완전한 것은 아닌만큼 보다 나아지려는 문명(文明)화 과정 중 일부로 여기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생각할 수 없네. 4 천 년 동안 수시로 사람을 잡아먹던 곳, 나도 여러 해 동안 그 속에서 함께 살아왔다는 것을 오늘에야 비로소 명백히 알았다. 큰형님이 바로 집안일을 관리하고 있을 때에 마침 누이동생이 죽었으니, 큰형님이 밥이나 반찬 속에 섞어 우리에게 몰래 먹였음에 틀림없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이동생의 고기 몇 점을 먹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제는 내 자신의 차례다... _ 루쉰, <루쉰 소설 전집> <광인일기>, p48/1006


 "이봐! 돈 내고 물건 받아요!"

 온몸이 시커먼 사람이 라오수안 앞에 불쑥 나타났다. 두 자루 칼날 같은 눈초리에 라오수안은 질겁을 하여 몸이 반으로 오그라드는 듯했다. 그 사람은 커다란 한쪽 손은 그를 향해 벌리고, 한쪽 손에는 시뻘건 만두를 움켜쥐고 있었다. 시뻘건 것에서는 아직도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것으로 누구의 병을 고치려는 거요? _ 루쉰, <루쉰 소설 전집> <약>, p68/1006


 요약하자면, 지난 주에 읽은 <토지>독서 내용은 악(惡)과 무지(無知)로 정리될 듯하다. 우리가 자각하는 악(惡)과 마찬가지로 무지(無知) 역시 절대 영역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의식으로부터 인지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실체 속에서 '절대선' 또는 '절대진리'가 아니라 '보다 선함'과 '보다 참됨'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우리 삶의 과정이고 목표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런지를 <토지 2>의 치수와 함안댁의 죽음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악마란 호전적인 힘이 인간적으로 또는 신적으로 구체화된 것이고, 이러한 호전적인 힘이 우리 의식의 밖에서 지각된 것이다. 이러한 힘 - 우리 스스로는 이러한 힘을 의식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듯하다 - 은 외경, 불안, 두려움, 공포와 같은 종교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_ 제프리 버튼 러셀, <데블>,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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