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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종속 ㅣ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54
존 스튜어트 밀 지음, 서병훈 옮김 / 책세상 / 200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는 자유를 존중하고 공평무사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선험적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공공의 이익 general good을 위해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어떤 제약도 용납될 수 없다. 정의 또는 정책적 필요라는 적극적 고려 때문에 상이하게 취급해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법은 차별 대우를 해서는 안 되고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부터 내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에는 이런 입증 책임의 면제라는 혜택이 적용되지 않는다. - 존 스튜어트 밀, <여성의 종속>, p15
공리주의자(Utilitarianism)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 ~ 1873)은 평소 입법과 도덕의 유일한 기준을 공리(功利)로 보고, 이를 근거로 개인 이익(私益)과 사회 이익(公益)의 조화를 강조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입증해야 하지만, 밀은 <여성의 종속 The Subjection of Women> 서두에서는 이 문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오랜 기간에 걸쳐 이 문제와 관련한 잘못된 인식이 사회 곳곳에 자리잡고, 이어져 왔기 때문에 논증이 어려운 문제가 '여성의 종속 문제'라는 것이 밀의 설명이다.
힘에 바탕을 둔 지배를 정당화하는 법이 지배자와 노예, 주권국가와 종속국가, 또는 다른 독립국가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그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비록 노예가 국가의 일부분은 아니었지만, 그들도 인간으로서 권리를 가진다는 사실이 처음 인식된 곳은 자유국가였다.(p25)...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류의 기나긴 역사를 통틀어 힘의 법칙이 인간 행동을 규율하는 공인된 규칙이었고, 다른 것들은 그저 특별하고 예외적인 상황의 산물에 불과했다는 것, 그리고 사회의 일반적 문제들이 어떤 형태로든 도덕법칙의 규제를 받는 것이 아주 최근에 와서야 가능해졌다는 사실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다. - 존 스튜어트 밀, <여성의 종속>, p27
밀은 대표적인 잘못된 인식으로 '성(性)의 본성 차이'와 '가장 지배 체제'를 든다. '본성 本性'이라는 이름으로 차이는 제도화 되었고, 가정에서는 '가장 지배 체제', 사회에서는 '절대왕정'의 기초가 되었다. 이처럼, 밀은 <여성의 종속>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던 '절대적 = 자연발생적'이라는 공식에 의문을 던진다.
남성과 여성의 타고난 본성 nature 때문에 그들이 각각 현재와 같은 기능과 위치를 담당하게 되었고, 또 그것이 본성에 적합하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아무것도 없다.(p47)... 인간 중 어느 정도가 그런 상황에 있는지, 또는 그런 상황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지에 상관없이, 인간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자연적인 성향을 타고난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 대해 최소한의 지식만 갖춘다면 그들이 왜 그렇게 되는지 분명히 알 수 있게 된다. - 존 스튜어트 밀, <여성의 종속>, p48
절대왕권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그것이야말로 유일하게 자연의 섭리에 맞는 정부 형태라는 논리를 펴왔다. 이들은 가장(家長) 지배 체제 patriarchy에서 그 근거를 찾는다. 부모가 자식을 지배하는 것이 옳듯이, 가장이 다스리는 체제가 인류 사회 최조의, 그리고 자연 발생적인 통치 형태라는 것이다. - 존 스튜어트 밀, <여성의 종속>, p32
밀은 특히 여성 문제를 특별한 문제로 생각한다, 이는 여성 문제가 '지배 계급의 적극적 지배 욕구'가 개입된 문제이며, 지배 계급(남성)은 '교육'을 통해 이를 달성기 때문이다. 이처럼 특별한 '억압 - 종속'의 관계에서 여성들은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가.
여성은 한 가지 점에서 종속 상태에 있는 다른 계급과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그들의 지배자가 단순히 복종하고 떠받드는 것 이상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남성은 여성이 복종하는 것 그 자체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여성의 마음까지도 지배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교육의 힘을 통째로 빌려 그 목적을 달성하려 한다. - 존 스튜어트 밀, <여성의 종속>, p37
여성 자신들이 해야 할 말을 다 들려주기 전까지는, 남성이 여성에 대해 얻을 수 있는 지식 - 그들의 장차 모습이 아니라, 그저 지금까지 보여준, 그리고 현재 이 시점에서 보여주는 모습만 가지고 이야기하더라도 - 이라는 것은 지극히 불완전하고 피상적이다.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여성들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는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 그런 시점은 아주 더디게 올 것이다. - 존 스튜어트 밀, <여성의 종속>, p54
밀은 문제 해결을 위해 여성은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것을, 남성들은 편견없이 여성들의 목소리를 경청(敬聽)할 것을 요구한다. 또한, 여성들이 자유 경쟁에 따라 자유롭게 자신의 일을 한다면, '시장의 원리'에 따라 조정된다는 것이 공리주의자 밀의 주장이다.
실제로는 여성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확실하게 안다고 착각하는 남성들이 많은데, 사실 어떤 남성이건 또는 모든 남성을 통틀어서, 여성의 이런저런 특징에 대해 전문가라고 불릴 정도의 지식을 가지는 것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p56)...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것은 자기 본성에 따라 행동하도록 내버려둔다면, 여성이 그 본성에 어긋나는 일은 결코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흔히 자연이 두려워 자연이 하는 일을 가로막으려 하는데, 그것은 정말 쓸데없는 짓이다... 무엇이든지 여성이 상대적으로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일이라면 자유 경쟁에 맡기는 것이 여성에게 가장 도움이 된다. - 존 스튜어트 밀, <여성의 종속>, p57
<여성의 종속>에서 밀은 에서 19세기 당시 사회가 '성의 차이'와 이로 인한 사회적 역할 분담 문제를 당연시하는 현실에 의문을 제기한다. 또한, 지배 계급인 '남성'에 의한 '여성'의 지배가 제도적으로 뒷받침되고, '교육'에 의해 문제제기도 못하는 현실을 비판하며 나가야할 방향을 제시한다. 그 방향은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하고,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밀의 주장은 요약된다.
이러한 밀의 주장에는 몇 가지 생각할 지점이 있다. 우선, 밀은 <여성의 종속>에서 남성에 의한 여성 지배가 처음부터 야만의 풍습이었으며, 역사 이래 다른 방향에 대한 어떤 고려도 없었음을 비판한다. 그렇지만, 과연 인류는 그러한 고려를 전혀 하지 않았을까?
남성과 여성을 지배하는 제도의 경우는, 어느 모로 보나 정반대의 과정으로 만들어졌다. 우선 첫째, 약한 쪽을 강한 쪽에 완전히 복속시키는 현재의 이 제도가 더 좋은 것이라고 우기는 사람들은 단지 이론에 입각해서 그런 주장을 펴고 있을 뿐, 다른 양상은 전혀 시험해보지 않았다. - 존 스튜어트 밀, <여성의 종속>, p19
여기에서, 과거 석기 시대의 수렵/채집 사회(hunter-gatherer society)에서 농경 사회(Agriculture society)의 이행했던 신석기 시대를 살펴보자. 당시 수렵/채집 사회에서 이루어진 성별 분업은 아마도 생물학적 특성에 의해 배분되었을 것이다. 사냥에 필요한 신체적 능력이 뛰어난 남성이 사냥을, 채집에 비교우위가 있는 여성이 채집을 맞는 것은 '시장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역할 배분이 아니었을까. 상대적으로 단순화된 사회에서 업(業)을 이어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신석기 시대에 발생한 사회적 분업을 강압적으로 볼 수 없을 것이다. 마셜 살린스 (Marshall Sahlins)의 <석기 시대 경제학 Stone Age Economics>에 의하면, 당시 채집을 담당하던 여성의 생산성이 수렵의 남성보다 안정적으로 높았기 때문에, 계급 문제를 사회적 관계로 바라본다면 석기 시대의 '여성'의 지위가 19세기의 여성의 지위보다 낮았다고 볼 근거는 없다. 그런 면에서, 별다른 고려없이 여성을 복속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해왔고 강요되었다는 밀의 논지는 근거가 약하다.
또한, 수렵/채집 사회에서 농경 사회로의 이행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변화가 과연 남성에 의한 일방적인 억압의 결과로만 보기도 어렵다. 보다 노동집약적인 농경 사회에서 가구((家口)는 소경제(petite economy)의 최소단위로, 성별 노동 분업이 보다 지배적인 경제전문화 형태로 나가기 위해서는 '보다 안정적인 경제 생활'을 원하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합의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이러한 과정에서 남성 중심의 체제로 이행된 것이 역사의 발전 과정이라면, 모든 제도를 '지배 이데올로기'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밀의 주장 또한 납득하기 어렵다. 단지, 밀은 19세기 빅토리아 시대 영국을 '역사의 정점(apex)'으로 보고, 현재를 기준으로 과거를 추정했을 뿐이다. 밀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당시에는 효율적인 제도와 사회적 선택의 결과가 오늘날에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주장을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또한, '교육'을 여성을 지배하기 위한 수단으로 한정한 관점과 여성의 문제를 다른 계급 문제와 다르다고 보는 의견에도 동의하기 어렵다. 과거 일제는 우리에게 식민사관(植民史觀)을 통해 자신들의 지배를 합리화하기도 하고, 우리나라 군사정부 시절에는 반공(反共) 교육을 통해 국민들을 의식화를 꾀했다. 박근혜 정부가 국정교과서를 추진하려했다는 것도 밀이 말한 '적극적 지배의 수단'과 같은 범주에 속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교육'의 부정적인 측면은 '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 수단'이라 할 수 있는데, 밀은 <여성의 종속>에서 교육을 '남성의 여성 지배를 위한 적극적 수단'이라고 한정적으로 사용한다. 그렇지만, 이를 근거로 여성 문제를 특별한 문제로 보기에는 어려울 것이다. 생각해보면, 지배계급이 '적극적 지배'를 원하는 것은 '남성 - 여성' 문제에 한정되지 않는다. '자본가 - 노동자' 계급 문제에서 본다면,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열정'을 끌어내어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하고 싶어하지 않는가. 때문에, '적극적 지배' 측면에서 여성의 문제를 특별하게 바라보는 밀의 관점은 설득력이 약하다.
이와 같이 보여지는 밀의 <여성의 종속> 논리상의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밀의 지적은 큰 틀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불평등과 차별을 호소하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줄어들지 않고, 점점 더 커지고 있는 현실은 평등한 사회로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의 반증이라 여겨진다. 또한, 여성의 경력 단절 등 사회 진출 문제는 중요한 사회 문제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는 점에서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할 때라 여겨진다. <여성의 종속>이 출판된 지 150여년이 흐른 지금도 밀의 주장이 유효한 현실 속에서, 보다 평등한 사회를 위한 우리의 과제는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PS. <석기 시대 경제학>은 별도의 리뷰로 정리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