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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격적인 공포다. 앞으로 십 년이라니, 죽음이 커다란 아가리를 벌리고 방 한구석에 도사리고 있는 것 같은 공포, 새까만 죽음의 심연, 죽음이라는 것, 악취 때문에 염도 제대로 못했다는 말이 비로소 자신의 죽음과 결부되어 되살아난다. 그 말을 들었을 때는 홍씨의 악령 때문에 무서웠지만 지금은 자신의 죽음 자체와 밀착되어 몸이 떨려오는 것이다. 조준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는다. 가슴이 뛰고 끈적끈적한 땀이 전신에 흐른다. _ 박경리, <토지 12> , p338/590


 지난 7월1일부터 시작했던 토지독서챌린지. 연말이면 전체 일정의 60% 정도 지나게 된다. 토지 3부 4권(12권)을 마무리지으며 가장 인상 깊은 장면/대목이 무엇인가를 묻는다면, '삶에의 의지', '생명(生命)의 약동'이라 여겨진다. 12권 이전에는 '삶'에 대비되는 '죽음' 이 인물의 퇴장 - 월선, 최치수 등 - 과 한 인물의 의지를 보여주는 도구 - 구천, 금녀 등 - 로 비장하게 묘사되었던 반면, 삶에 대한 내용은 그렇게 인상 깊게 다가오지 않았다. 설사 그려졌다 해도 임이네의 억척스러운 면으로 나타났기에 '죽음'에 비해 '삶'의 모습이 상대적으로 부정적으로 다가왔었다.


그렇지만, 3부 4권에서는 산 자들의 고뇌와 처절한 몸부림이 잘 묘사되면서 '죽지 않기 위해 고민하는 삶의 아름다움'이 표현된다. 조준구, 홍이, 명희가 각자 직면한 현실과 이를 넘기 위한 이들의 노력. 이러한 묘사 속에서 자연스럽게 베르그송(Henri-Louis Bergson, 1859~1941)의 엘랑 비탈(elan vital 생명의 약동)을 떠올리게 된다.


 불구자로서의 번민이나 부모가 자식에게 가한 수모, 천지간에 맘도 몸도 기댈 수 없었던 처절한 고독, 그것은 병수 자신을 위한 목마름이었지만 그 목마름 같은 것을 누르고도 남을 크나큰 고통은 자기 자신이 죄인이라는 의식이었다. 부모의 큰 죄는 바로 자신의 죄요, 부모의 악업으로 얻은 재물로 자신이 연명되고 있다는 그 뼈를 깎는 고통, 더러운 곡식을 아니 먹으려고 수없이 기도했던 자살, 그러나 생명에의 집착 때문에 스스로 죽음을 포기하였고 더러운 물 더러운 곡기를 미친 듯 빨아당기지 아니했던가. 병수는 죽지 못하는 치욕 때문에 미쳐 날뛰었다. _ 박경리, <토지 12> , p346/590


 아우성이다. 부서지는 파도다. 격렬한 감정이 출구를 찾듯 아우성이다. 그러나 이상현에 대한 그리움은 아니었다. 조용하에 대한 증오도 아니었다. 자신의 생명, 생명의 불꽃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기나긴 숨결, 부패의 늪에서 몸을 일으키고 싶은 것이다. _ 박경리, <토지 12> , p420/590


 삶을 이어가려는 자신의 본능과는 달리 자신을 조여오는 주위 환경. 자신을 위협하며 조여오는 자연/사회의 위협에 대응하여 살기 위해 생명체들은 힘(에너지)를 쌓고 마치 연어가 거센 물살을 거스르며 상류로 올라가듯 흐름에 역행한다. 열역학 법칙으로 대표되는 자연의 법칙에 거스르며 살아있음을 존재하는 연어의 움직임은 <토지>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심지어 악인(惡人) 조준구의 행동도 그의 독백을 통해 우리에게 개연성있는 행동으로 다가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저마다의 생명의 약동을 갖고 있기 때문일까.

 

 우리가 말하는 생명의 약동은 요컨대 창조의 요구로 이루어진다. 그 약동은 절대적인 방식으로 창조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물질을, 즉 자신과 반대되는 운동을 목전에서 만나기 때문이다.(p375)... 동물이든 식물이든 생명 전체는 그 본질적인 점에서 에너지를 축적하고 다음에는 그것을 유연하고 변형가능한 관(管) 속에 풀어 놓으려는 노력으로 나타난다. 이 관들의 끝에서 생명은 무한히 다양한 일들을 수행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생명의 약동(엘랑 비탈)이 물질을 관통하면서 단번에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p379)... 종 種은 자신만을 생각하며 자신만을 위해 살아간다. 그로부터 자연이라는 무대에서 무수한 투쟁이 유래한다. 또한 놀랍고도 충격적인 부조화도 거기서 유래한다. 그러나 그에 대해 생명 원리 자체에 책임이 있다고 해서는 안 된다. _베르그송, <창조적 진화> , p380


  주변 환경과 인물들간의 갈등. 그리고 이로부터 드러나는 생명의 모습. 그렇다면, 이러한 갈등은 왜 생겨나는 것일까? 다소 대립되는 입장에 서 있는 스펜서(Herbert Spencer, 1820~1903)와 헉슬리(Thomas Henry Huxley, 1825~1895)의 내용을 거칠게나마 조합해보자면 인물들 주위환경은 엔트로피(entropy)법칙과 같은 자연 법칙이 지배하는 반면, 쾌락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은 이와 무관하게 작동하기 때문일 것이다. <토지>안에서는 최참판 댁의 자산을 탐하는 조준구의 욕망도, 결혼을 통해 신분 상승을 기대했던 명희의 속내도 이러한 갈등의 결과가 아니었을런지.  


 

 현재의 모든 사건에서 그러한 것처럼 태초로부터 모든 작용력들이 여러 힘으로 분해되어 영속적으로 더욱 복잡성을 창출한다는 것도 예상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복잡성의 증가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임이 틀림없다. 진보는 하나의 사건이 아니고, 인간이 좌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유익한 필수과정이다._ 허버트 스펜서, <진보의 법칙과 원인>, p90


 엄청나게 다양한 본성들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인간들 사이에는 모두가 인정하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으니,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회피하려는 타고난 욕망을 지닌다는 점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인간은 자신이 태어난 사회의 안녕과는 무관하게 자신이 원하는 행동을 하고 싶어 한다... 모든 인간은 외부 자연 상태와의 전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필수적인 조건인 '생명의 욕구', 즉 끝없이 만족을 갈구하는 경향을 지니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이기적인 경향이 사회 내부에서 자유롭게 발휘되도록 내버려 둔다면, 이는 그 사회를 파괴하는 확실한 동인이 된다. _ 토마스 헉슬리, <진화와 윤리> , P 40/173


 스펜서와 헉슬리의 이러한 일부 가정들은 베르그송의 <창조적 진화>에서 대략적으로 합류(合流)되는 느낌을 받는다. 생명 진화 자체는 법칙으로 작용하지만, 생명체는 우연성이 작용한다는 베르그송의 논리를 통해 일제하 식민시대라는 거대한 시대의 흐름 속에서 저마다 생존을 위해 움직이는 생명의 약동을 <토지>의 인물들을 통해확인하며 2021년 토지 독서 챌리지 마지막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단일성과 다수성은 무기물질의 범주들이며 생명의 약동은 순수한 단일성도 다수성도 아니라는 것, 그리고 생명의 약동이 물질에 전달되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받게 되어도 그 선택은 결코 결정적인 것이 아니리라는 것이다. 약동은 전자에서 후자로 무한히 도약할 것이다. 그러므로 개체성과 연합이라는 두 방향으로 진행되는 생명의 진화는 전혀 우연적인 요인을 갖고 있지 않다. 그것은 생명의 본질 자체에 기인하는 것이다 (P388)... 사실상 생명체는 행동의 중심이다. 그것은 세계 안에 도입되는 일정량의 우연성 contingence, 즉 일정량의 가능적 행동이다. 그 양은 개체들에 따라 특히 종들에 따라 변화 가능하다. _ 베르그송, <창조적 진화> , P390


ps. 개인적으로 '엘랑비탈'을 느낄 때는 아침에 휴대폰 알람 소리를 들을 때가 아닐까 싶다. 침대에서 더 늦게까지 자고 싶어지는 마음이 자연의 법칙이라면, 먹고 살기 위해 눈을 뜨는 행동은 이에 반(反)하는 생명의 약동이라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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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는 섬진강 푸른 물에 넋을 버린 여자, 그 여자를 중생의 한 사람으로 생각하지 못하는 혜관. 괴물 같은 혜관의 마음속에 엷은 한 같은 것이 솟는다. 최서희의 일행이 간도로 떠난 후 홀로 남아서 절로 은신해 왔었던 꽃다운 처녀 봉순, 절 마당을 왔다갔다 하던 그 자태에 젋은 사미승들은 오뇌의 밤을 보내야 했었고 중년이던 혜관마저 남모르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 후 봉순이는 기화가 되었고 노류장화, 그러나 출가한 중에게는 여전히 꺾지 못할 벼랑의 꽃이었다. _ 박경리, <토지 12> , p159/692


 <토지 독서챌린지> 23주차. 다음 주면 2021년 독서챌린지 마지막 차수가 될 듯하다.(마지막 주는 방학이다!). 전체 여정의 60%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이번 주 읽은 내용을 정리해 본다. <토지 12>의 첫 부분에서는 봉선(기화)의 죽음을 떠올리는 혜관, 언쟁을 벌이는 상현 그리고 일본에서 돌아온 아들 환국과 어머니 서희의 이야기 등이 보여진다. 서로 다른 공간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등장인물들의 이야기 속에서 개인적으로 여러 생각들을 떠올리게 된다. 


 먼저 혜관 스님. 혜관은 봉선의 죽음을 듣고, 지난날 봉선에 대한 추억을 떠올린다. 출가인(出家人)으로서 가져서는 안되는 여인에 대한 흔들리는 마음. 정진하는 수도자에게 그런 마음은 마구니의 유혹이었겠지만, 봉선(기화)은 중년의 스님에게 마구니의 유혹이 아닌 꺾을 수 없는 벼랑의 끝꽃으로 자리하고 기억된다. 혜관에게 봉선은 유혹이 아닌 사랑이었을까. 여기서 '벼랑의 끝꽃'과 관련하여 <헌화가>의 노인을 떠올리게 된다. 


 성덕왕 때 순전공(純貞公)이 강릉태수로 부임하다가 바닷가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곁에는 석벽이 병풍처럼 바다를 둘렀는데, 높이가 천 길이나 되었다. 그 위에는 철쭉꽃이 활짝 피어 있었는데, 공의 부인 수로(水路)가 그것을 보고 좌우에게 말했다.  "누가 저 꽃을 꺾어 바치겠느냐?" 종자가 말했다. "사람의 발자취가 이를 수 없는 곳입니다." 모두들 할 수 없다고 사양했다. 마침 곁에 한 늙은이가 암소를 몰고 지나가다 부인의 말을 듣고는 그 꽃을 꺾었다. 그러고는 가사도 지어 (함께) 바쳤다... 노인의 <헌화가 獻花歌>는 이러했다.


 자줏빛 바위 가에 

 잡고 있는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_ 일 연, <삼국유사> , p152


 <토지>에서 중년의 혜관 스님이 벼랑의 꽃을 꺾을 수 없었다면, <헌화가>의 노인은 아름다운 수로 부인을 위해 암소를 잠시 내려 놓고 벼랑 끝의 꽃을 꺾어 바친다. 혜관 스님이 수행자의 마음을 내려놓을 수 없었기에 꽃을 꺾을 수 없었다면, 노인은 자신의 소중한 암소를 잠시 놓았기에 꽃을 꺾을 수 있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혜관 스님이 내려 놓지 못한 것과 노인의 암소는 번민이었을까, 미련이었을까. 혜관에게 봉선은, 노인에게 수로 부인은 사랑이었을까, 자신의 길을 가지 못하게 하는 장애였을까. 혜관 스님과 노인의 경우를 여러 면에서 비교하게 된다.

 

 혜관 스님과는 달리 아직 봉선의 죽음 소식을 채 듣기 전 상현은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하고 주변인들과 끊임없이 부딪힌다. 송장환과의 대화에서 나온 이광수(李光洙, 1892 ~ 1950)의 <민족개조론> 이야기는 잠시 언급되지만, 1919년 3.1항쟁 실패 이후 방황하는 지식인과 이들의 사상전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시선을 두게 된다.


 이광수가 <민족개조론>이다 뭐다 하고 시시한 것을 발표하는 이유는, 그가 어째서 한때 영웅이 되었는가 그것을 누구보다 그 자신이 잘 알지. 그의 문학과 그의 반일 사상 그 두 가지가 합친 때문이라는 걸. 그 야심가, 명성에의 노예는 양자 중에 보다 유리한 것을 택하였고 그러고도 연연하여 자기 문학에다 애매모호한 것을 풀칠해서 붙이고 있는 거야. 두 가지를 다 갖고 싶겠지만 두 가지를 다 잃는 결과는 아니될지. 그는 약한 사람 같다. 두 가지를 다 해낼 뜨거운 피, 강인한 의지가 없었을 게야. 글은 칼이 될 수 있는 거고 꽃도 될 수 있는 건데 칼은 무디어졌고 꽃은 종이꽃이 되고, 그래서 괴상망칙한 <민족개조론> 같은 것도 튀어나오게 된 거지. _ 박경리, <토지 12> , p251/590


  양주동(梁柱東, 1903 ~ 1977) 교수가 '우리나라가 가진 재주가 10이라 했을 때 이광수가 가진 재주가 6'이라는 말을 할 정도로 뛰어난 천재 이광수. 그는 2.8 독립선언서를 작성했지만, 이후 <민족개조론>을 통해 우리 민족의 한계를 지적하며 전향을 한다.  본문에서 그는 민족의 성격을 근본적인 부분과 부속적인 부분으로 나누고, 그 중에서도 부속적인 면에 대한 대대적인 개조를 통해 새롭게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면서, 춘원(春園)은 민족의 각성을 위해 소수 엘리트의 깨우침을 강조한다.


 

 조선민족은 적어도 과거 오백 년간은 공상과 공론의 민족이었습니다. 그 증거는 오백 년 민족생활에 아무것도 남겨 놓은 것이 없음을 보아 알 것이다. 과학을 남겼나, 부를 남겼나, 철학, 문학, 예술을 남겼나, 무슨 자랑 될 만한 건축을 남겼나, 또 영토를 남겼나, 그들의 생활의 결과에는 남은 것이 하나도 없고 오직 송충이 모양으로 산의 삼림을 모두 벗겨 먹고, 하천의 물을 말끔 들이마시고 탕자(蕩子) 모양으로 선대(先代)의 정신적, 물질적 유산을 다 팔아먹었을 뿐이다. _ 이광수, <민족개조론> , p78/100


 이렇게 직업을 사랑하고 그것을 위하여 근면함으로 주색에 빠지거나 잡담, 장기와 바둑(博奕)을 즐길 새는 업지마는, 그에게는 향기로운 가정의 즐거움과 문학, 예술, 혹은 종교나 철학을 즐기며, 혹은 순결한 교우의 즐거움과 동지의 모임의 즐거움을 가진다. 그러고 그는 일정한 운동으로 건강과 용기와 쾌락을 얻는다. 그는 국가에 대하여서는 모든 의무를 다하는 국민이다. 그의 삼가는 모든 단체에 대하여는 충실한 회원이다. 그러므로 그는 혹은 체면에 끌려 혹은 군중심리에 끌려 용이하게 무슨 허락을 하지 않지만, 한번 허락한 이상 그는 결코 변함이 없다. 그는 위인이 아닐는지는 모르나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다. _ 이광수, <민족개조론> , p82/100


 

 그렇다면, <민족개조론>의 문제는 무엇일까. 마치 플라톤의 <국가> 또는 스파르타의 정체를 떠올리게 하는 그의 엘리트 이론의 전제는 '인물'과 '금전'이다. 신교육을 통해 인물을 양성하고 자금을 통해 투자가 필요하다는 이광수의 주장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독립적'이 아닌 일본의 힘에 '의존적'이 될 수밖에 없게 된다. 본인은 이 길이 가장 빠르게 근대화되는 길이라는 것을 강조하지만, 그것은 결국 일본제국 내에서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자는 내선일체론(內鮮一體論)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러한 <민족개조론> 속에서 1920년대 이후 지식인들의 사상 전향이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했음을 느끼게 된다.


 내가 보기에 우리 민족에 결핍한 것은 사상이기보다 실행이니 우리가 아는 것만이라도 실행만 하면 살 수가 있으리라 하다. 가령 거짓이 없어야 한다. 부지런해야 한다. 학술이나 기예(技藝)를 배워야 한다. 그래서 누구나 한 가지 직업을 가져야 한다. 교육과 산업을 발달시켜야 한다. 이런 것은 누구나 다 알만한 것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우리의 할 일은 그대로 실행함이다. _ 이광수, <민족개조론> , p88/100


 다른 한편, 일본에 유학갔던 환국은 어머니와 함께 진주로 내려간다. 그 전에 감옥에 갇힌 아버지 길상을 만나고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생각하는 환국. 환국의 생각 속에서 우리는 아들과 아버지, 아들과 어머니의 관계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Oedipus Complex)로 정리한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 ~ 1939) 이론을 떠올리게 된다.


 남자아이의 경우는 다음과 같이 기술될 수 있을 것이다. 매우 어린 나이에 그 작은 남자아이는 어머니에 대한 대상 리비도 집중을 개발시키는데, 그것은 원래 어머니의 젖과 관련되어 있고 의존 Anlehnung 유형에 의한 대상 선택의 원형이 된다. 이 아이는 자기 자신을 아버지와 동일시함으로써 아버지 문제를 처리한다. 일정 기간 동안 이 두 관계가 나란히 지속되다가 이 아이의 어머니에 대한 성적 욕망이 더 강렬하게 되고 아버지는 그 욕망에 대한 장애물로 인식되기에 이른다. 여기에서부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발생한다. 그렇게 되면 그의 아버지와의 동일시는 적대적인 색채를 띠게 되고, 어머니에 대한 아버지의 자리를 빼앗기 위해 그를 제거하려는 욕망으로 바뀐다. 그 후부터 자식과 아버지와의 관계는 양가적이다. 그것은 마치 처음부터 동일시 속에 내재되어 있던 양가성이 명시적으로 드러난 것처럼 보인다. 아버지에 대한 양가적인 태도와 어머니에 대한 애정 일변도의 대상 관계는 남자아이에게 있어서 단순한 긍정적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내용을 형성한다. _ 지크문트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근본 개념> , p247/460


 유명한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론을 아들과 아버지를 경쟁자로, 그리고 억압의 구조 속에서 제도에 대한 복종을 말하며 이를 발전시켜 의식-무의식 구도를 형성한다. 이런 면에서 '아들 - 아버지', '아들 - 어머니'의 관계 설정은 프로이트 이론의 대전제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아버지 존재의 각인이 반드시 어머니를 사이에 둔 대립 구도 속에서 형성될 것인가? <토지>의 환국은 그렇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절대적인 존재, 환국의 마음속에서의 아버지는 절대적인 존재다. 독립투사로서의 아버지가 아닌 아버지, 아버지라는 존재 그 자체가 환국에게는 절대적인 것이다. 그것은 핏줄의 부름이며 어릴 적에 뇌리에 박혀버린 그 모습, 그 음성이 절대적인 것이다. 그것들은 세월과 더불어 한층 강하게, 굳게 각인된 것처럼 마음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_ 박경리, <토지 12> , p305/692

 

 아들에게 아버지는 자유의사에 반하는 그 모든 사회적 강제를 구현하고 있는 존재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의지에 따라 행동하려는 통로를 막아버리고 너무 빨리 성적 쾌락에 빠져다는 것을 금지하며, 가족 간의 공동 재산이 있을 경우 그것을 누리는 것을 억압합니다. 아버지가 죽기만을 엿보는 이와 같은 심리는, 그러므로 황태자의 경우에 비극으로까지 치달을 만큼 엄청난 정도로 발전합니다. _ 지그문트 프로이트, <정신분석 강의> , p207/518


 아들 환국에게 한없이 커보이는 절대적인 존재로 비춰지는 아버지 길상. 그렇지만, 아버지 길상은 성장기의 환국에게는 멀리 떨어진 그리운 존재였다. 환국의 의지를 강제하는 위치에 있지 않았던 길상이 강압적이지 않은 방식으로도 절대적인 존재로 아들의 의식 속에 자리하는 것은 프로이트의 이론으로는 설명되기 어렵다. 그것은 성(性)욕구로 의식-무의식을 설명하려는 프로이트 도식의 한계를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마찬가지로, 아버지가 없는 상태에서 어머니와 아들이 겪어야 했던 공포와 공포로 인해 가졌던 동질감 또한 어머니에 대한 성적인 욕구가 아닌 가족애의 모습이라는 점에서 모든 것을 리비도(Libido)로 설명하려는 프로이트 이론의 한계를 생각하게 된다.


 서희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결코 흐트러진 모습을 남에게 보이지 않았으며 약해지는 자신의 마음을 인정하지 않던 그였으나 자신이 병드는 것을 두려워했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그의 눈은 공포에 떠는 것이었다. 아이들을 두고 죽을 수 없다, 절대로 죽을 수 없다고 외쳐대는 것 같았다. 서희와 환국이는 필사적으로 그런 공포를 엄폐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아들은 어머니에게 태연했다. 그러나 다 같이 상대가 자신의 마음을 속속들이 다 알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_ 박경리, <토지 12> , p327/692


 차창 밖에는 싱그럽고 짙푸른 수전(水田)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논둑에 흰 새 한 마리 하늘을 우러러 보며 그림같이 서 있다. 순간 환국이는 그 흰 새 한 마리가 어머니의 모습같이 생각되는 것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 수전에 머문 흰 새 한 마리.(p306)... 푸른 수전과 흰 새 한 마리, 눈물의 응결 같은 푸른 보석과 어머니의 하얀 모시옷. 환국은 눈길을 들어 차창 밖을 내다본다. 손안에 물이 흘러버리듯 만남의 그 격렬한 시간은 가고 없다. 차창 밖의 시시각각 날아가 버리는 연변 풍경 같은 것인가. _ 박경리, <토지 12> , p307/692


 어쩌면 프로이트 이론은 근친상간의 이야기가 점철된 헬라(그리스) 문명과 히브리 문명권에는 적절한 설명이 될런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히브리-헬레니즘 이외 문명권에서 모든 심리문제의 근원을 리비도(성충동)로 밝히려는 프로이트 이론이 공감받기 어려운 것은 아닌가를 생각하게 된다. 동시에, 이러한 도식으로 심리와 문화를 해석하려는 작업이 얼마나 무리한 것인지도 차창을 바라보는 환국의 모습을 지켜보며 떠올린다...


 다소 두서없는 내용의 페이퍼가 되버렸지만, 이번 주 독서챌린지는 매일의 독서가 서로 다른 자극을 준 매우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시대의 역사물이면서도 인물들의 마음과 심장소리가 느껴지고, 그와 함께 시대의 큰 변화도 함께 느낄 수 있었던 한 주간의 독서가 아니었나 싶다...


 PS. <토지>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불안한 인물은 상현이다. 작품 내에서 '고뇌하는 지식인' 캐릭터를 맡고 있는 상현은 매 권마다 술에 취해 다른 이들과 언쟁을 벌이는데, 절대로 아무렇게나 말하질 않는다. 나름 당대 지식인들의 사상과 저서를 언급하면서 평을 하는데, 그 내용을 따라가기가 참 쉽지 않다. 대표적으로 이렇게 놓친 인물이 양계초(梁啓超, 1873 ~ 1929)다. 양계초의 <신민설 新民說>도 <토지> 초반부에 언급되어 내용을 정리하던 중 빠르게 장면이 전환되어 결국 중반이 넘어서도록 페이퍼에 올리질 못했다. 이런 책들이 적지 않은 것을 보면 상현이 주사(酒邪)처럼 읊조리는 책과 사상만 정리해도 어느정도 시대 분위기는 파악하지 않을까 싶다. 놓친 부분들에 대해서는 별도의 리뷰로 정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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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색 세루 두루마기에 자줏빛 털목도리, 회색 털장갑, 그만하면 진주의 추위쯤, 든든한 차림인데 그러나 기화는 춥다. 몹시 춥다. 헐벗고 벌판을 거니는 것처럼. 그것은 추위라기보다 막막한 외로움이었는지 모른다.(p483)... 최초엔 길상을 잃었고, 다음엔 상현으로부터 버림받았고, 잃어버렸기 때문에 스스로를 버린 기화는 또 버림받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잃었고, 마지막 희망을 버렸기 때문에 그는 모든 사물에 대한 인식을 망각한 것이다. 도망은 상실과 망각에서 오는 일종의 충격일까. _ 박경리, <토지 11> , p484/670


 토지 독서 챌린지 22주차. 이번 주로서 3부 3권도 마무리되어간다. 그 사이 최참판댁 갈등의 시발점이라 할 김 환(구천)도, 용이네 집에 풍파를 일으키던 임이네도 떠나가면서 이제는 서희를 비롯한 2세대가 집 안의 어른이 되었음을 실감하게 된다. 이들1세대의 퇴장 외에 작품 속에 묘사되는 시대상속에서 급격한 변화를 체감한다. 동학 농민 혁명의 여파가 채 가시기 전이었던 작품 초반부와 <토지> 중반부에 묘사되는 1920년대는 분명 차이가 있다. 이런 변화는 작품 속에 묘사되는 기화(봉선)의 모습에서도 잘 드러난다. 


 사실, 기화의 진정한 변화는 사실 옷차림에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자신과 희망을 잃어버리면서 결국 아편에까지 손을 대면서 기화는 걷잡을 수 없을만큼 무너져 내린다. 어린 시절 어머니 별당아씨를 잃어버린 서희를 옆에서 위로하던 봉선이었지만, 어른이 된 기화는 반대로 서희에게 몸을 의탁할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도 자신을 '아편쟁이'라 단죄하는 기화는 자신의 딸마저도 버릴만큼 약해져 버렸고, 서희는 기화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볼 뿐이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현재 기화는 서희에게 큰 신세를 지고 있는 처지지만 세월은 그들 사이에 가로놓인 주종(主從)이라는 벽을 차츰차츰 허물어왔다. 그것은 기화보다 서희가 더 많이 느낀다. 극심한 사회적 변동이 원인이겠지만 가장 오래된 추억을 함께 간직한 두 사람의 처지 탓이며, 가시밭길을 걸어왔고 지금도 걷고 있다는 실감은 어쩔 수 없는 연민, 애정으로 변하게 마련이다. 애정은 권위를 무너뜨린다.(p439)... '불쌍한 것.' 다정다감했던 그 감성은 어디로 갔는가. 사무치게 깊었던 그 숱한 한은 어디로 갔는가. 너그럽게 이해하고 푼수를 알며 물러나 앉을 줄 알던 그 조신스러움은 어디 갔는가. 욕심 없고 거짓 없던 그 천성은, 아니 연연(軟娟)하고 그 풍정(風情)이 사내들 마음을 사로잡던 기생 기화의 모습은  어디로 갔는가. 그에게서는 양현을 향한 모성마저 없어져가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이 여자를 이렇게 만들었나. 마약의 심연으로, 다정다감함이 유죄요, 다정다감함의 단죄(斷罪)인가. _ 박경리, <토지 11> , p446/662


 아편(鴉片). 이제는 고전적인 약물이 되고 말았지만, 페어뱅크(John King Fairbank, 1907~1991)의 <캠브리지 중국사>에 의하면 19세기 말에 중국 인구의 약 10%가 아편 중독 상태에 있었을 것으로 추산될 정도로 강력한 마약이었다. 물론, 청(淸)의 아편은 인도에서 재배되어 밀수의 형태로 청나라로 수출되고, 다시 인도 면화산업에 재투자되었다는 점에서 1920년대 당시 만주와 국내산 아편이 유통된 우리나라와 진행된 양상은 달랐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도 적지 않은 중독자가 있었음을 생각해본다면, 전체 인구의 약 10%가 중독되었다는 통계가 의미하는 바는 적지 않다. 청나라의 아편이 자본주의/제국주의의 수단으로 활용되었다면, 우리나라의 아편은 시대의 절망에 빠진 이들의 안식처가 되었다는 점은 차이가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마약 문제의 심각성과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가움은 매한가지가 아니었을까.


 1836년 무렵에는 매년 대략 1,820톤의 아편이 중국으로 수입되고 있었다. 아편 중독자는 나날이 증가하고 있는 것 같았다... 1836년 당시 서양의 통계로는 대략 1,250만 명의 흡연자가 있었다고 한다... 스펜스 Jonathan Spence는 꼼꼼한 연구를 통해 1880년 말경이면 10%의 인구가 아편을 흡연하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결론을 내놓았다. 심각한 중독자가 대략 3~5%라고 한다면 1890년경에는 1,500만명의 중독자가 있었을 것이다. _ 존 K. 페어뱅크, <캠브리지 중국사 10 (상) >, p296


 1831년 봄베이 식민정부는 남부 마흐라타 Mahratta에 원면 구입 대행사를 개설했다. 1839년에는 기반시설과 시범농장에 대한 추가 투자와 아편 생산에서 얻은 자본을 면화에 투입하는 방안이 동인도회사 내에서 논의되었다... 인도의 면화 수출을 늘리고 개선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노력했다... 그리하여 엄청난 추가 공급선이 열렸다. 그 공급선을 통해 면직물 제조산업의 주요 부문에서 느꼈던 원료 부족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_ 스벤 베커트, <면화의 제국>, p153/688


 어느 사회나 마약중독자를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은 좋을리 없다. 치유할 수 없는 정신병으로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은 <토지>의 기화 역시 마찬가지로 느꼈을 것이고, 기화는 버림받아 상처받은 마음에 아편을 했다는 자책감을 더하며 서서히 무너져 간다. 무너지는 자신을 지탱하기 위해 더 강한 자극을 찾으면서. 중독에서 죽음에 이르는 마약중독에 관해 오후의 <우리는 모른다>는 두 실험을 소개하며 우리에게 메세지를 전달한다.


 마약의 중독성을 보여주는 유명한 실험이 있습니다. 좁은 공간에 갇혀 있는 수컷 쥐에게 '순수한 물(이하 물)'과 '모르핀을 섞은 물(이하 마약음료)'을 제시합니다. 쥐는 물 대신 마약음료를 선택하고, 결국 중독이 됐다가 어느 순간 죽어버리죠. 방법이 조금 다를 뿐 이런 식의 실험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쥐에게 관을 삽입해 약물을 투여하기도 하고, 원숭이에게 코카인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결과는 늘 중독, 그리고 죽음이죠. _ 오후,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p396/412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에 소개된 하나의 실험은 마약에 중독되어 죽어가는 쥐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고, 다른 하나의 실험은 마약을 제공하되 보다 쾌적한 환경과 다른 대체물들을 쥐들에게 제공한 실험이다. 첫 번째 실험이 마약의 위험성을 알려주는 전형적인 실험이었다면, 두 번째 실험에서는 쾌적한 환경의 쥐들이 보다 높은 비율로 마약의 유혹에서 벗어남을 보여주면서 환경의 중요성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그렇다면, 이들의 실험이 기화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알렉산더 박사는 자신의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자신있게 이야기합니다.

 '우리에게 좋은 환경이 주어진다면, 우리는 어떤 중동성이 강한 마약이라도 거부할 수 있다. 금단현상 또한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강하지 않다. 부정적인 주변 환경이 우리가 금단현상을 거부할 수 없는 것으로 느끼게 만들 뿐이다.' _ 오후,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p398/412


 다시 <토지>로 돌아와 보자. 만약, 기화가 길상과 상현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더라도 주변에 누군가 기화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혼자 양현을 키우는 어려움에 공감할 수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뒤늦게 서희와 만나게 되지만, 이미 너무 늦은 뒤가 되고 말았다. 이제 머지 않아 기화 역시 <토지>의 장에서 월선처럼 사라질 것이다. 참 어려운 삶을 살았지만 월선의 죽음이 애잔함을 남겼다면, 봉선의 무너져 내림은 안타까움을 전달한다.... 


 개인은 자신보다 오래되고, 자신보다 영속하며, 모든 면에서 자신을 감싸는 집단적 존재와의 유대를 더욱 강하게 느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행동의 유일한 목표로 자신만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을 자신보다 더 중요한 목적의 수단으로 이해함으로써 자신의 중요성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삶 본래의 목적과 지향성을 회복했기 때문에 삶의 의미가 되살아날 것이다. _ 에밀 뒤르켐, <자살론>, p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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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1-12-12 01:0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중국 인구의 10%가 아편을 했다면 제국주의자들이 한 나라를 말살하고자 한 집요함이 얼마나 악날했는지 알수 있을것 같아요~~
마약에 대한 실험의 결과에 공감합니다. 결국 모든 것이 환경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거네요.
그렇기에 모든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잘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하는데 현실이 그렇지 않아 너무 안타까워요.
아편이란 단어는 왜이리 슬픈지 모르겠어요^^
겨울호랑이님께서 토지를 읽으신지 벌써 22주차시네요.
완독을 응원합니다^^

겨울호랑이 2021-12-12 10:41   좋아요 3 | URL
마약 통계가 정확하기 어려운 부분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나라 말기의 마약 문제는 정말 심각했던 것 같아요. 영화 「마지막 황제」에서도 그런 부분이 다루어지지만, 서양의 자본주의로부터 크게 당했기에 오늘날 중국에서는 마약 범죄에 유난히 민감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강력한 처벌 보다 필요한 것이 주변의 사랑과 관심임을 생각해 본다면, 처벌보다는 예방에 보다 중점을 둬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함께 해봅니다. 「토지」는 지난 7월부터 시작해 이제 막 반환점을 돌았네요. 페넬로페님 격려에 힘내어 완독에 가까이 다가갑네요. 감사합니다. 행복한 일요일 보내세요! ^^:)

mini74 2021-12-12 23: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일제강점기 우리나라도 중독자가 꽤 많았다고 봤어요 또 일본이 도망가면서 아편도 엄청 풀었다고 하더라고요 ㅠㅠ 겨울호랑이님 토지 읽으면 새록 새록 예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

겨울호랑이 2021-12-13 06:14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어떤 이들은 일제 시기를 통해 근대화가 이루어졌다 말하지만, 이로 인해 우리가 입은 손해가 정신적, 물질적으로 더 많았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미니님 오늘도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돌멩이가 날아왔다. 그것이 신호인 양 두 번째 세 번째 돌멩이가 날아왔다... 바로 대놓고 때릴 수 없는 젊은 사람, 아낙들에게 돌은 참 편리한 것이다. 누가 던졌는지 알 수 없는 돌멩이는 그 수가 많을수록 군중의 심리를 폭력으로 이끄는 데는 안성맞춤이다. 삽시간에 돌멩이는 우박이 되어 봉기한테 쏟아진다. _ 박경리, <토지 11> , p149/560


 <토지 11>에서는 삼수에게 겁탈당한 딸 두리를 위해 복동네가 삼수와 불륜을 저질렀다는 헛소문을 퍼뜨린 봉기 이야기가 나온다. 봉기는 석이의 설득으로 동네 사람들 앞에서  사실을 털어놓지만, 그는 자신의 고백으로 인해 주변의 수많은 군중으로부터 무수한 돌멩이 세례를 받으며 피범벅이 되고 만다. 개인으로서 주변인들은 죄를 저질렀다고는 하나 나이 많은 어른인 봉기를 직접적으로 단죄하기는 어려웠으리라. 그렇지만, 자신의 익명성이 보장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집단의 익명성 뒤에 숨어서 날아든 돌 하나. 그것이 신호가 되어 수많은 개인들은 자신의 감정을 과감하게 표현하는 장면이 작품 속에 표현된다. 그리고, 작가는 이 장의 제목을 '군중심리'라 이름짓는다. 이에 대해, 귀스타브 르 봉 (Gustave Le Bon,1841 ~ 1931)의  <군중심리 Psychologie des Foules>를 연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껏이다. 여기서 르 봉이 바라본 군중의 속성을 살펴보자.


 '군중'이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국적과 직업, 성별을 불문하고, 또한 그들이 어떤 우연한 계기로 모였든지 상관없이 어떤 개인들의 집합을 의미한다.(p42)... 군중이 드러내는 감정의 과격함은 책임감의 부재로 한층 더 과장되며, 이질적인 군중은 특히 그렇다. 군중은 고립된 개인은 할 수 없는 감정 표현과 행동을 할 수 있다. 군중은 숫자가 많으므로 무사하리라는 확신과 인원이 많으니 일시적이나마 강력한 힘을 갖게 되었다는 생각 덕분이다. 어리석고 무지하고 시기심 많은 개인이 군중을 이루면 자신이 무가치하고 무기력하다는 감정에서 해방되어 일시적이지만 엄청난 힘을 갑작스레 갖게 되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_ 귀스타브 르 봉, <군중심리>, p91/472


 르 봉이 바라보는 '군중'은 비합리적인 집단이다. 외적 충동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매우 불안정한 존재로서 과잉된 감정을 단순하게 표현하는 집단. 이 안의 구성원들은 맹목적으로 휩쓸려가기 쉬우며, 이러한 개인이 모여 매우 단순하면서도 극단적인 집단의 성격이 표출된다는 것을 르 봉이 <군중심리>에서 설명한다. 르 봉의 이러한 주장을 학인한 후 <토지 11>의 상황을 돌아가보면, 봉기의 거짓말에 대한 군중의 분노가 돌팔매로 표현되었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와 비슷한 장면을 <토지 10>에서 이미 본 적이 있었고, 이와 다른 대중의 반응에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두 청년이 달려든다. 간부(姦夫)와 간부(姦婦)를 치는 것은 누구에게도 거리낄 것이 없는 불문율이다. 홍이와 장이는 비참하게 맞았다. 그러나 육신의 아픔이 무엇인가. 반죽음이 될 만큼 코피가 쏟아져서 낭자한데 중늙은 여자는 또다시 명령을 내렸다. "징거가 있어야 한다. 야아들아! 그 쪽문 열고오, 이웃 사람들 들어와 구겡하라 캐라! 간통한 연놈들 얼굴을 똑똑히 구겡하라 캐라!" 문이 열렸다. 우르르 구경꾼이 몰려들었다. 제각기 한마디씩 했다... 낄낄낄 웃는 소리... 사내들의 음탕한 웃음소리... 동정의 소리도 있다. __ 박경리, <토지 10> , p622/682


 <토지 10>에서 홍이와 장이의 불륜을 바라보는 군중(구경꾼)의 대응은 봉기의 경우와는 사뭇 다르다. 봉기는 자신의 거짓말로 인해 거의 반죽음을 당할 뻔하였지만, 간통현장을 들킨 홍이와 장이는 장이의 친척들의 폭력에 노출되었을 뿐 군중의 폭력으로부터는 안전할 수 있었다. 비웃음으로부터는 자유롭지 못했지만. 이들 두 사건에 대한 군중의 대응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설명 또한 르 봉의 <군중심리>에서 찾아본다.


 배심원들은 언젠가는 자신들도 피해를 볼 가능성이 있는 범죄들[특히 사회에 위협적인 범죄들]에 대해서는 무자비했지만 치정범죄에 대해서는 무척 관대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런 범죄들이 사회를 위험에 빠뜨릴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을을 본능적으로 직감하기 때문이다._ 귀스타브 르 봉, <군중심리>, p285/466


 르 봉은 배심원(군중)들이 갖는 심리를 분석하며, 배심원들이 자신의 삶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 범죄는 보다 감정적인 반응을 보인 반면, 치정 사건에는 보다 객관적인 입장을 보일 수 있음을 지적한다. 자신과 주변세계의 질서를 위협할 수 있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군중의 반응. 홍이와 장이의 간통사건과 같은 일은 자신에게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하기에 군중은 제3자의 입장에서 이를 바라볼 수 있었던 반면, 봉기의 거짓말은 식민상태에서 자신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는 위협이었기에 군중은 분노했던 것일까. 그리고, 이러한 군중의 반응은 우리가 <사랑과 전쟁>은 막장 드라마로 가볍게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그것이 알고 싶다>의 살인 사건은 국민청원의 대상이 되는 차이로도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바라본다면, 우리 역시 군중의 일원임을 씁쓸하게 자인할 수 밖에 없을 듯하다.


 다른 한 편으로 이번 주 <토지 11>에서 죽음을 다시 발견한다. <토지> 작품 전반에 수많은 인물들의 죽음이 나오지만, 이번 죽음이 각별한 것은 토지 1세대의 인물들 중에서도 비중있는 이들인 김 환(구천)과 임이네의 죽음이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환이의 죽음은 환이의 시각에서, 임이네의 죽음은 남편 용이와 아들 홍이의 관점에서 보여주면서 보다 다양한 관점에서 독자들이 죽음을 생각하게 만든다. 이에 대해서는  죽어가는 사람과 죽음을 지켜보는 사람.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Norbert Elias, 1897 ~ 1990)가 생각하는 죽음의 의미를 먼저 살펴보자.

 죽음 자체는 위협적이지 않다. 사람들은 기나긴 꿈 속으로 떠나가고 세상은 사라진다. 두려운 것은 죽어가는 고통이며, 또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산 자의 상실감이다. 죽음을 둘러싼 집합적이거나 개인적인 환상은 종종 사람들을 섬뜩하게 한다. 그 공포의 독성을 완화하고 유한한 삶이라는 소박한 현실을 그에 맞세우는 것은 아직 우리 앞에 놓인 과제다.... 죽음은 숨겨야 할 어떤 비밀도 없다. 어떤 문도 열어 보이지 않는다. 죽음은 한 인간의 종말이다. 남는 것은 그 혹은 그녀가 다른 사람들에게 주었던 것, 즉 산 자가 가진 기억들이다. _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죽어가는 자의 고독>, p74 


 지삼만의 밀고로 붙잡혀 고문을 받으며 동료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김 환은 자신의 죽음 역시 예감한다. 죽음 앞의 상황에서 그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삶을 마무리한다. 별당 아씨와의 인연, 자신 삶의 의미 등을 환상과 현실을 오가며 삶을 정리하며 환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마감한다. 혼자 남겨진 이의 죽음. 죽어가는 자의 고독이다.


 '더 늙으면 추해진다.' 눈을 뜨고 노을이 타는 철창문을 또 바라본다. 생애를 통하여 철창문에 비치는 저 노을만큼 아름다운 것을 보지 못했던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다시 눈을 감는다.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는 걸까?' 환이는 자신의 생애가 성인의 길이 아니었음을 새삼스럽게 생각한다. 투쟁과 방랑과 애증(愛憎)과 원한의 가파로운 고개를 넘은, 평지가 오히려 발끝에 설었던 오십 평생은 마음과 몸이 피로 물들었던 것처럼 격렬했었다. 환이는 무엇 때문에 살고 죽는 것인지 그것을 생각한다. _ 박경리, <토지 11> , p200/560 


 다른 한 편, 임이네의 죽음은 남겨진 이들의 기억으로 표현된다. 남편 용이에게 임이네의 죽음은 절망이었다면, 아들 홍이에게 임이네의 죽음은 투쟁이었고, 자리바꿈이었다. 그리고, 임이네의 죽음을 통해 홍이에게 월선과 임이네는 대립되지만 공존(共存)하는 어머니였음을 알게 된다. 적대적 공생관계가 있다면 이들의 관계였을까. '선(善)- 악(惡)'처럼 월선에 대한 그리움이 임이네의 죽음으로 인해 사라졌다는 사실을 통해서 홍이에게 월선이나 임이네가 '키워준 어머니' 와 '낳아준 어머니'로 구분된 존재가 아니라 '월선-임이네'로 함께 자리잡았음을 깨닫게 된다. 이와 함께. 홍이가 첫 사랑 장이에게 끌렸던 이유가 장이가 월선을 닮았기 때문이라는 점을 떠올리면서 임이네가 홍이 인생에 남긴 그림자가 얼마나 짙었는가를 실감하게 된다. 그림자가 짙었지만, 그림자와 함께 한 시간이 너무도 길었기에 그림자가 사라진 이후 홍이의 삶이 행복할 것인가는 이후 지켜볼 부분일 것이다. 죽어가는 자에게 두렵지 않은 죽음과 죽음을 지켜보는 이들에게 남겨진 기억의 의미를 우리는 <토지 11>의 두 죽음을 통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가슴이 답답하고 고통스러웠다. 속으로 고개를 저어댔지만 임이네 죽음이 되살아난 것이다. 한 번도 따뜻하게 대해준 일이 없는 여자, 죽음은 살아남은 사람에게 회한을 남기게 마련이다. 좋지 않은 추억들을 다 떠내려 보내기 위해선 임이네 생각을 말아야 하고, 그 고독하고 처참한 죽음에 대한, 불쌍한 망령에 대한 최소한의 예절이다. 임이네의 죽음은 슬픔이나 애통보다 용이에게는 충격이었다. 죽음과의 처절한 싸움, 밑바닥을 헤아릴 수 없는 절망, 죽음은 모두 그럴 것이지만 뼛골까지 스며드는 외로운 죽음을 용이는 도저히 잊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것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연민이었으나 임이네에 대한 기억은 언제나 절망이었고, 그 절망감은 죄의식을 몰고 오는 것이다. _ 박경리, <토지 11> , p64/670


 견딜 수 없는 죄책감, 죽은 어미를 생각한다는 것은 가장 고통스런 일이다. 어쩌면 일본으로 간 이유 중에는 모친에 대한 기억에서 도망치고 싶은 심사가 있었는지 모른다. 비참한 죽음을 잊고 싶었는지 모른다. 병석에서 병으로 갔지만 임이네의 죽음은 월선의 죽음과는 달랐다. 이 두 죽음에서 비로소 홍이는 월선에 대한 그리움으로부터 놓여났으며, 월선이 점령했던 자리에 생모의 죽은 모습이 낙인과 같이 찍혀버렸던 것이다. 임이네의 죽음은 죽음과의 무참한 투쟁이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체념 못한 죽음과의 투쟁이었다.(p266)... 그것은 자기 자신의 죽음과 모든 사람의 운명으로 확대되어간 허무의 깊이 모를 심연이었다. 월선이 축복받은 죽음이라면 임이네는 저주받은 죽음이요, 근원적으론 죽음이란 저주받은 것일 거라는 공포는 홍이 마음을 깊이 지배하였다. _ 박경리, <토지 11> , p267/560


 이번 주 읽은 <토지 11>의 내용을 통해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대중심리와 죽음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번 페이퍼는 빌헬름 라이히 (Wilhelm Reich, 1897 ~ 1957)의 <파시즘의 대중심리 Die Massenpsychologie des Faschismus>에 대한 내용을 마지막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대중들의 심리와 지도자의 성격이 일체성이 가져온 비극이 히틀러의 독일 지배임을 밝히는 라이히의 저서 속에서, 선천적으로 지도자의 성격 구조와 대중(군중)의 성격 구조가 동일했을 때만 파시즘 집권과 같은 비극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묵돌 선우(冒頓單于, ? ~ BC174)의 경우처럼 강압에 의해서도 강제 동화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묵돌의 명적 또는 봉기에게 가해진 첫 번째 돌팔매가 갖는 의미를 결코 가볍게 생각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번 주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묵돌은 명적 鳴鏑(소리나는 화살)을 만들어 부하들에게 나누어 준 뒤 그것으로 기사 훈련을 시켰다. 그는 이런 명을 내렸다. "내가 명적을 쏘면 다 같이 그곳을 쏘도록 하라. 쏘지 않는 자는 참한다." 얼마 후 사냥을 나간 뒤 명적을 쏜 곳에 화살을 날리지 않은 자는 가차 없이 참했다... 얼마 후 묵돌이 사냥에 참가한 뒤 부친인 두만 선우가 타고 있는 말을 향해 명적을 날렸다. 부하들이 모두 일제히 활을 쏘았다. 묵돌은 비로소 좌우 모두 자신의 명을 따른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_ 사마천, <사기열전 2> <흉노열전>, p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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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호실 환자는 임이네였다. 천년을 살 것 같았던 그 무성한 생명력은 어디로 간 것일까. 참혹한 몰골이다. 복막염 수수을 한 지 열흘이 지난 것이다.(p557)... "선상님요, 나 나이가 이자 겨우 쉰다섯입니다. 나는 못 죽십니다. 참말로 못 죽십니다. 무신 남 못할 짓 했다고 멩대로 못 살겄십니까. 디건이(두견이)목에 피 내묵고 살덧기 살았는데 한이 첩첩산이오, 선상님, 살리주시이소!" 울음을 터뜨린다.(p559)... "영악한 아낙이야. 자기 죽음을 예감하는 것 같다." "환자치고 저런 환잔 처음 봤습니다. 어떤 때는 반미치광이같이 날뜁니다. 사는 것이 저리 추악한 것이라면 살아서 뭘 합니까." "젊은 사람들은 다 그렇게들 말하지.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서 천당이든 지옥이든 내세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나." _ 박경리, <토지 10> , p560/682


 토지 독서챌린지 20주차. 이번 주 미션은 '3부 2권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장면 소개'를 포함한 감상평이다. <토지> 3부 2권에서는 결핵성 복막염으로 죽어가는 임이네의 모습이 그려진다. 돈을 밝히다가 자식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임이네. 병들어 죽은 월선과 늙어 시들어가는 남편 용이와는 달리 천년 만년 살 것같은 그 역시 생로병사(生老病死)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임을 느끼게 된다. 아마도, 이 장면이 가장 인상깊은 것은 현실에서 있었던 다른 죽음때문일 것이다. 못된 임이네지만, 그와는 비교할 수 없는 죄를 저지른 전두환의 죽음. 한동안 백담사에 머물며 독경소리를 들으며, 내세에 대한 생각도 해봤을 법한데 반성없이 떠난 그의 죽음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죽음은 절대적인 승리자요, 거대한 암벽에 모래알을 던지는 환자는 눈물나게 측은한 것이기 때문이다._ 박경리, <토지 10> , p565/682


 그토록 억척스러웠던 임이네는 박의사에게 매달리며 살려 달라고 애걸한다.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종착역이지만, 많은 이들에게 미루고 싶은 순간이기도 하다. 때문에 죽음에 대한 공포에 대해 답을 주는 종교(宗敎)가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의 초기 역사부터 함께 해 온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투는 신들과 다양한 종교들의 형식들은 사실 서로 상극이지만, 종교들 모두가 충족할 통일된 구원책이 있다. 1. 어떤 불안감. 2. 그것의 해소책. 첫째, 불안감은 가장 단순한 말로 줄여보면, 우리가 자연적 상태에 있을 때 우리 주위에 잘못된 것이 있다는 느낌이다. 둘째, 해소책은 고차적 힘과 적절히 연계시킴으로써 우리가 그 잘못된 것으로부터 구원받는다는 느낌이다....자신의 잘못을 괴로워하고 그것을 비판하는 개인은 의식적으로 그것을 극복하고, 고차적인 어떤 것이 존재한다면 적어도 보다 고차적인 것과 가급적 교통할 것이다. _ 윌리엄 제임스,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 , p596


 <토지 10>에서는 종교의 역할에 대한 내용이 다루어진다. 종교의 역할은 개인의 구원에 머물러야 하는가, 사회 참여까지 확장되어야 하는가. 기독교 선교사 미스 헤이워드와 여옥과의 대화는 이에 대한 논쟁이다. 종교의 사회 참여에 대해 미스 헤이워드는 부정적인 입장을 펼친다. 정확하게는 외국 선교사의 제한된 입장을 대변한다.


 약소국이나 식민지에서 우리 선교사업 매우 곤란합네다. 고충 많습네다. 우리도 독립전쟁 겪었고 남북전쟁 상처 아직 남아 있습네다. 나라 잃은 백성들 슬픔 우리 충분히 이해합네다. 그러나 우리 미국에서도 선교는 개인의 영혼을 그리스도로 이끄는 일이며 그리스도의 진실 알게 되고 복종하면 사회개혁 저절로 되는 거라 해왔습네다. 그렇다면 사회개혁 무관심했다 할 수 없습네다... 그러나 이곳은 내 나라 아닙네다. 우리는 손님입네다. 이해하고 동정할 뿐입네다. _ 박경리, <토지 10> , p656/682


 미스 헤이워드의 말대로 그들은 이방인이었고 자신들의 나라가 아니었기에, 지배권력이었던 일본총독부와 대립할 필요는 없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선교사업'이었지 고통에 신음하는 형제자매들의 모습이 아니었음을 선교사의 말을 통해 깨닫게 된다. 이에 반해, 여옥에게 식민지 상황은 자신의 상황이었기에, 현실 참여적인 기독교 정신을 말하며 미스 헤이워드의 말을 반박한다.


 산간벽촌에 있어서 기독교란 아주 생소하고 서양사람 종교라는 의식이 강합니다. 그리고 미신적으로 믿어지는 불교며 무당들, 점쟁이를 통한 귀신신앙도 뿌리깊은 것입니다. 유교에서 오는 조상숭배도 그렇고요. 그러나 아무리 몽매무지한 사람에게도 내 나라를 잃었다, 내 나라를 찾아야 한다는 말은 대단한 호소력을 가지는 것입니다. 설령 그들이 아무것도 행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일지라도 심정적으로 불이 붙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조선에 있어서 독립사상과 기독교 정신이 일치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순수한 전도정신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_ 박경리, <토지 10> , p657/682


 이들의 대화에서 여옥과 미스 헤이워드의 말은 각자 자신의 처지에서 나오는 말이기에 옳고 그름을 말하기 어렵다. 다만, 분명한 것은 자신의 문제를 남이 풀어줄 수 없다는 사실일 것이다. 이는 1919년 3.1운동에서 기대했던 '민족자결주의'가 결코 우리에게 독립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냉정한 현실 인식의 또다른 표현으로도 느껴진다. 이로 인해 1920년대 자유시참변(自由市慘變)이후 1930년대 새롭게 전개된 항일무장투쟁에서 사회주의 계열이 더 힘을 얻게 된 여러 요인 중 하나로 종교에 대한 실망감 또한 작용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된다.

 


 3.1 운동을 준비하고 주도한 세력은 천도교, 기독교, 불교를 비롯한 종교계 인사들과 애국적인 교원들과 학생들로서 주로 민족주의운동세력에 속해 있던 사람들이었다.(p22)... 3.1운동의 교훈은 부르주아 민족주의 상층은 더 이상 항일민족해당운동의 지도세력으로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들의 계급적 제한성은 일본의 식민지지배질서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데까지 도달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_ 박경순, <1930년대 이후 항일무장투쟁 연구1> , p25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계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하겠다. _ <마태 28:20> <신약성경>  


 개인적으로 내가 여옥이라면, 긴 말을 하지 않고 성경 구절을 인용하는 것으로 심정을 대신하지 않았을까 싶다. 형제의 아픔에 동감한다면, 성경의 말씀처럼 세상 끝 날까지 형제와 함께 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조직으로서 교단(敎團)과 종교의 가르침 사이에는 현실적인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음도 함께 생각하게 된다.


 <토지 10>에는 이에 앞서 명희와 여옥의 대화가 소개된다. 부인과 이혼하고 명희와 결혼한 남편 조용하 이야기가 이들 사이에 오가지만, 다음 구절은 대화 이전에 앞서 있었던 홍이와 장이의 불륜을 떠올리게 한다.


 별안간 들린 것처럼 여옥의 음성은 강렬하였다. 눈은 더욱 어둡게 타는 것 같았다.

 "그렇담 나도 간음한 여자가 아니겠니?"

 "누구든지 간음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라." _ 박경리, <토지 10> , p639/682


 멀고도 가까운 것이 남녀의 사이라던가. 아무도 없는, 외부와 단절된 차고가 유죄였는지 모른다. 불이 붙으면 태워야 하는 것이 이치였었는지 모른다. 사랑은 여하한 경우에도 아름다운 것인지 모른다. 치욕과 멸망의 결과가 크면 클수록 더욱 치열하게 타오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을 예감하면서, 강하게 예감하면서, 이들의 관계는 깊어지고 말았다. 사랑의 환희는 슬픔이었다. _ 박경리, <토지 10> , p617/682


 어머니에게 상처를 입고, 장이에게 상처를 준 홍이. 장이에게 대한 과거의 죄책감으로 현재의 부인 보연에게 다른 상처를 만든 홍이의 모습에서 안타까움, 연민을 느끼게 된다. 아름답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이들의 사랑이야기. 그리고 이를 자연스럽게 신여성(新女性) 여옥의 등장으로 연결하는 작품의 매끄러움에 감탄을 하게 된다. 홍이의 개인적인 불안의 감정으로부터 여옥의 종교의 역할까지 개인의 감정선과 시대의 흐름을 오가며, 인물과 시대를 하나로 연결하는 작가의 솜씨에 감탄하면서 <토지> 3부 2권을 마무리한다... 


 어미에 대한 의사의 선고는 충격이었다. 까맣게 잊었던 장이의 귀향도 충격적인 것이었다. 어미 때문에 받은 충격은 어떤 종류의 것인지, 정확히 말해서 그것은 놀라움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장이에 대해서는 몹쓸 짓을 했다는 회한이 홍이로 하여 잠들지 못하게 하였다. 장이에게도 물론 메울 수 없는 상처였겠으나 홍이는 자신에게도 얼마나 깊은 상처였는가를 새삼스럽게 깨달은 것이다. 젊음의 실수, 시기가 청춘이며 전적으로 자신의 잘못이기 때문에 결코 지워지지 않을 것을 홍이는 깨달은 것이다. 보고 싶고 그립고, 그렇지 않았다. 내가 몹쓸 짓을 하였구나, 다만 아픔이었다. _ 박경리, <토지 10> , p605/682


 육신의 고통이 무엇이랴! 시궁창과 같은 오욕, 홍이는 혀를 물어끊고 죽을 수 없는 것이 한스러웠다. 그러면서도 홍이는 어디든 도망을 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징역이 무서워서도 아니요, 죽음이 무서워서도 아니요, 보연이와 장인, 장모, 처제들, 기름집의 오타며 미야코며 일주며 자신을 아는 모든 사람의 눈길이 무서웠다. 그러나 도망갈 곳이 없었다. 아비의 깊고 깊은 눈이 뼛속까지 스며든다. 그리고 장이를 두고 갈 수 없다. _ 박경리, <토지 10> , p623/6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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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1-11-27 22: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문열의 ‘불멸‘에도 안중근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을 때, 안중근 일가가 독실한 가톨릭교도임에도 불구하고 파리외방선교회 선교사들이 그를 지지하지 않았다고 나와요. 그토록 힘들게 이 땅에서 일군 가톨릭 전파를 안중근 의사의 행동으로 일본에게 금지 당하지 않을까하는 우려 때문에요. 같은 신, 같은 말씀이라도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달리 해석 된다는게 속상했어요.
언제 읽어도 빛나는 겨울호랑이님의 명품 페이퍼 입니다^^

겨울호랑이 2021-11-28 07:56   좋아요 1 | URL
페넬로페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사이비 종교를 제외한 거의 모든 종교의 가르침이 큰 틀에서 같은 방향을 지향함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종교 갈등이 신앙 자체보다 이면에 깔려있는 교단의 이해가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부딪혀서 생긴 문제가 대부분임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신자 또는 신도들이 신앙공동체 안에 소속되어 있지만, 때로는 공동체와 자신을 객관적으로 봐야할 이유 중 하나도 이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페넬로페님 항상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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