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보수당은, 기본적으로 다시 집권하는 유일한 방법은 예산안을 노동당과 똑같이 맞추는 길뿐이라고 여겼을 뿐 아니라, 사실 정부지출을 노동당보다 늘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엘리엇이 말할 때, 그의 목소리는 예전 보수파가 취했던 자세를 향한 경멸을 겨우 숨기고 있었다. 하지만 보수당의 그런 저자세 덕분에 엘리엇의 말처럼 ‘낮은 세금과 자유시장의 메시지’를 밀어붙일 수 있는 ‘정치적 여지’가 생겼다.
공공정책연구소가 노동조합에서 기부를 좀 받긴 하지만, 그 연구소의 가장 큰 기부자에는 조세회피 다국적 기업인 구글, 공공자산을 인수해 돈을 벌어들이는 사기업 캐피타(Capita), 그리고 EDF 에너지나 E. ON UK 같은 에너지기업이 있다. 다시 말해 공공정책연구소는 기득권에 도전하기는커녕 기득권에서 독립된 싱크탱크조차 아니라는 말이다.
정치인들은 감히 언급도 못할 사상이나 정책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선동자의 본성이다. 그런 활동을 통해서, 그들은 창을 옮겨놓았다. 설령 정치인들이 선동자들의 개념을 절충시킨다 해도, 무엇이 중도적이라고 여겨지는지가 이미 변한 것이다. NHS의 민영화가 한 예다. 마거릿 대처조차 감히 NHS를 민영화하진 못했지만 보수-자민당 연립정부는 그것을 현실로 만들고 있다.
그들은 그냥 국가 지배엘리트의 핵심부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선동자들은 국가 지배엘리트가 현재와 같은 형태로 구조화되는 데 기여했다. 선동자들은 신자유주의 영국에서 부와 권력을 누리며 번영하는 기업과 부유한 은행가들에게 현명한 투자처임이 증명되었다. 국가의 정치 담화는 가차없이 부와 권력이 있는 자들에게 유리한 언어로 이루어진다.
국가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것처럼 묘사된 사람들이 특히나 악마화되었는데, 하원의원들은 대중의 분노를 사회에서 가장 빈곤한 사람들에게 집중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럼으로써 최상류층을 향하던 면밀한 감시의 눈길을 굉장히 효과적으로 분산시킬 수 있었다. 국가개입을 후퇴시켜야 한다고 가장 목청 높여 부르짖던 자들이 종종 국가의 단물을 가장 많이 빨아먹고 있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권위자들은 한때 천하무적이었던, 이 보수당이라는 정치세력이 과연 다시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겠는지를 두고 심각한 토론을 벌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대처는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었다. "토니 블레어가 우리의 가장 큰 업적"이라고 그녀는 자신을 경외하는 무리에게 선언했다. "우리는 우리의 반대자에게서 변화를 이끌어낸 것입니다." 노동당이 집권은 했을지 모르나, 대처가 보기에 노동당은 진실로 대처 자신의 정치적 신념의 불꽃을 피워올리고 있었다.
오늘날 노동당의 성격은 매우 달라졌다. 1994년 토니 블레어가 노동당 지도부를 장악한 이후, 당 활동가들의 이의제기가 두려웠던 신노동당 지도부는 당내 민주주의를 축소했다.
"신노동당은 계속 선거에서 승리했지만, 진보 정치라면 이의를 제기해야만 하는 부분에선 맞서지 않은 채로 이겼던 겁니다." 다시 말해서 신노동당은 선거 승리는 따놓은 당상이며 한때는 노동당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믿었던 불의의 종식 같은 문제는 떠맡을 이유가 없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렇게 대처리즘이 이뤄낸 합의가 존속되었다.
고위 각료들은 유권자의 뜻을 거스르는 행위를 정당화할 때 자유시장의 세계화를 들먹인다. 부자에게 세금을 더 물리라는 대중의 요구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부자들, ‘부를 창출하는’ 사람들이 해외로 달아나버릴지 모르기 때문에 그런 요구는 억제되어야 한다는 논리다. 노동자의 권리 향상이나 최저임금 인상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정치인들이 행정부 탓으로 기득권층의 관념에 갇혀 있는 건 아니다. 주류 정치인들을 자연스럽게 현상의 수호자로 만드는 것이 바로 영국 정치엘리트의 본성이다. 정치는 특권층의 전유물이 되어버렸다
전반적으로 유권자들이 정치인 하면 떠올리는 단어는 암울하다. "거짓말쟁이, 거만함, 그들과 우리, 자기 잇속 챙기기… 아주 안 좋았죠." 이토록 널리 퍼진 선출 정치인에 대한 경멸은 민주주의 상태에 대한 고발임이 분명하나, 만연한 냉소는 낮은 투표율이나 당원수의 감소와 마찬가지로 소극적인 체념의 표현이다. 투표율은 1992년 77.6%에서 2010년 65.1%로 떨어졌다.
영국의 정치적 삶은 숨 막히는 이데올로기 통제하에 있다. 부자의 세금을 깎고, 공적 자산을 팔아치우고, 국가개입 영역을 후퇴시키고, 사회안전망을 축소하고, 노조를 약화시키는 이 모든 일은 주류, ‘중심부’로 무자비하게 침투하여, 선거에서 당선될 수 없는 극단적인 이들만이 거기서 벗어날 수 있다
이 합의를 옹호하는 자들은 합의의 지속에 개인적 이해가 달려 있다. 정계와 부유층 엘리트들은 서로 분리된 독립체가 아니라 극심하게 겹쳐지는 집단이다. 물론 기득권층의 생각을 집행하는 건 정치인만이 아니다. 제대로 기능하는 민주주의에서 언론은 아마 현 상태를 비판하고 거기에 도전하기 위해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언론은 기득권층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로비처가 되어버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