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정부를 믿지 않는다. 새로운 현상도 아니다. 지배계급에 대한 절망은 지배계급 자체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다.

그릇된 것은 인간의 본성이 아니라 ‘시대’, 즉 상황이며, ‘대인들’이 올바른 일을 한다고 믿을 수 있는 한 상황은 바뀔 수 있다. 대인들을 믿는 것말고 다른 방도는 없으며, 시대가 좋아지기를 기대해야 한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6장)에서 설명한 것처럼, 긍정적인 변화를 위한 조건은 두 가지가 있다. 포르투나fortuna, 즉 ‘운’이나 순조로운 상황이 결합되어야 하고 필요한 비르투virtu, 즉 이런 상황을 활용할 수 있는 역량이나 기술을 갖춘 지도자가 있어야 한다.

오늘날의 병적 징후들은 앞선 수십 년간 이루어진 성장과 번영에 연결되어 있다. 대체로 현재의 불만은 환멸, 희망의 상실과 밀접히 관련되며, ‘담대한 희망’ 같은 슬로건으로도 희망을 되살리지는 못한다. 버락 오바마가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내세운 뒤 베스트셀러 저서의 제목으로 삼은 이 구절은 시카고의 목사 제러마이어 라이트가 한 설교에서 빌려온 것이다. 라이트는 영국 화가 조지 프레더릭 와츠가 그린 〈희망Hope〉(1886)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그림 속 눈을 가린 여자는 허름한 옷차림으로 공 모양 위에 앉아서 현이 하나뿐인 리라의 희미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아무 희망도 없는 상황이지만 그 소리가 그나마 위안이 될지 모른다.

오늘날 ‘국제적인’ 것은 ‘인류’가 아니라 세계화된 시장이다. 그리하여 대기업과 소수 부자들이 세금을 피하기 위해 나라끼리 싸움을 붙이는 한편 노동조합을 약화시키고 정부 간섭을 비난하면서 밑바닥을 향한 경쟁을 부추긴다. 각국이 다른 나라에게서 투자를 빼앗아오기 위한 경쟁이다. 마틴 울프가 『파이낸셜타임스』 칼럼에서 쓴 것처럼, "자유주의의 국제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 한 가지 이유를 들자면, 이 질서가 우리 사회의 사람들을 만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20

오늘날 우리는 그렇게 확신하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으며, 지옥이 바로 코앞에 다가온 것은 아니라고 여전히 희망을 품는다. 어쨌든 지난 여러 세기 동안 우리의 삶이 좋아졌다면, 그것은 바로 희망을 잃지 않은 사람들,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 아무리 시대가 병들었어도 계속 끈질기게 싸움을 이어간 사람들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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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국방비는 2~9위를 합친 액수와 맞먹을 정도여서 전 세계 국방비의 36퍼센트를 차지하지만, 미국 군대의 총체적 무능은 거의 모든 해외 원정에서 충분히 드러났다.2 미국은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전쟁을 벌이고도 아프가니스탄(세계 최빈국 가운데 하나다)에서 탈레반을 물리치지 못했다. 한꺼번에 10만 명이 넘는 병력을 주둔시키면서 2300명이 넘는 병사를 잃고 1조 달러 이상을 지출했지만 허사였다.

오늘날 국제적인 패권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소련은 이제 사라졌다. 중국은 (아직) 충분히 강하지 않다. 유럽은 혼란에 빠져 있다. 미국은 쇠퇴하는 중이다.

유럽은 현재 세계 주변부의 일부다. 유럽인들은 끊임없이 유럽에 관해 이야기한다. 유럽의 역할이 무엇인지, 유럽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미국이 계속 선두에서 이끌 수 있는지, 아니면 새로운 패권국이 등장할 것인지를 궁금해한다. 하지만 한 나라, 또는 오직 한 나라만이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필연은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어쨌든 세계는 ‘패권국’ 없이도 똑같이 순조롭게(또는 똑같이 삐걱거리며) 작동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패권국으로 여겨지는 나라가 패권이 위협을 받을 때 어떤 행동을 하는가 하는 것이다. 패권이 쇠퇴하는 시대에 미국 이데올로기의 특징은, 페리 앤더슨이 말하는 것처럼, "지배의 자연적 정당성에 대한 믿음과 맹목적인 자기만족"이다.

유럽의 우위라는 가정은 18세기와 19세기에 발전했다. 18세기에 계몽주의의 지적 성취와 합리성, 성직자의 반계몽주의에 맞선 승리를 바탕으로 이런 가정이 만들어졌다. 이런 우월감은 19세기에 유럽의 우위가 더 강력한 물질적 기반?기술적·산업적 자본주의 사회의 발전?에 닻을 내리면서 더욱 높아졌다. 하지만 유럽의 우위?근대의 횃불, 문명의 요람?에 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유럽’은 아일랜드와 이베리아반도의 서부 해안에서부터 카프카스산맥과 콘스탄티노플까지, 그리고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의 얼어붙은 불모지에서부터 시칠리아의 따뜻한 기후에 이르는 지리적 실재가 아니었다. 그들이 생각하는 유럽은 글을 쓰는 사람에 따라 시대마다 각기 다르게 정의되는 서유럽이었다.

민족과 민족주의 둘 다 유럽 프로젝트에서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힘이 세다. 실제로 유럽연합의 모든 문서는 더욱 응집력 있는 공통의 정체성이 필요하다고 언급할 때면 언제나 파편화와 혼란, 충돌을 피해야 하고, 응집과 연대, 보완과 협력을 달성하고 회원국들에서 현존하는 민족 정체성을 존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심스럽게 언급한다. 나는 유럽의 정체성을 가르칠 수 없다고 본다. 유럽을 민족국가들의 민족국가로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한다.

유럽 각 민족국가의 사람들은 자기 민족을 선택하지 않았다. 민족성과 민족 건설을 억지로 떠안았을 뿐이다. 마침내 그들은 영국인, 독일인, 프랑스인, 이탈리아인, 에스파냐인, 벨기에인 등이 되었다. 그들은 자기가 스코틀랜드인이나 콘월 사람, 가스코뉴 사람이나 브르타뉴 사람, 바이에른 사람이나 프로이센 사람, 시칠리아 사람이나 피에몬테 사람이라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그렇게 생각하지만, ?관료제와 교육 체계가 공용어와 ‘공동의’ 역사를 부여한 덕분에, 전쟁, 국가國歌, 스포츠 경기,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국가별 공영방송, 그 밖에 수많은 기획 덕분에? 대다수 유럽인들은 ‘민족’이라고 부르는 특정한 일련의 정치 제도와 동일시하는 법을 배웠다.

민족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국가를 만들고, 세금을 인상하고, 교육과 미디어를 통제하고, 경찰과 군대를 보유해야 한다. 유럽연합은 이런 구조가 없으며 그렇게 만들고 싶어하는 이들도 거의 없다. 프랑스나 영국, 독일 정체성이 만들어진 방식대로 유럽 정체성을 만들어내기란 불가능하다.

전문가들은 ‘민중’이 ‘엘리트들’에게 분노한다고 지적해왔다. 서구에서 정치인의 자질이 왜 그토록 퇴보했는지 더 많은 시간을 들여 검토해야 한다.

가치는 변화를 겪는다. 유럽적 가치는 일정한 가치를 장려하고 다른 가치들은 ‘비유럽적’인 것이라고 깎아내리려고 하는 이들이 사용하는 구성물이다. ‘유럽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통일된 일련의 원리와 가치라는 개념은 실재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강령으로서 지식인들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했다. 통일된 가치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유럽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과거를 되돌아보기보다는 자신이 어떤 미래를 원하는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세계에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지로 눈을 돌려야 한다. 바로 이것이 역사와 언어가 다르고 어떤 면에서는 공통점이 많지 않지만, 그래도 역경을 무릅쓰고 공존의 길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27개국 연합의 모습이다. 유럽은 세계의 나머지 200여 개 나라에 공존이 어려울지 몰라도 협력말고 다른 대안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노력할 수 있다.

미디어는 사적인 것이든 공적인 것이든 간에 대중이 원하는 것을 제공하고, 대중은 이미 아는 것을 원한다. 그리고 대중이 아는 것은 자기 마을(나라)과 미국이다. ‘소소한’ 예외가 많이 있지만?비틀스는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해리 포터도 유명하다(영어로 노래하고 글을 쓰는 게 도움이 된다)? 미국은 여전히 엄청난 규모의 자국 문화 산물을 수출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다. 이민자들의 땅인 미국의 문화가 여러 문화가 뒤섞인 것이라는 사실이 도움이 된다.

지방주의와 낮은 수준의 민족주의가 계속 남아 있는 것은 유럽 기획이 상대적으로 실패한 여러 이유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유럽 회의론은 지난 20년간 뚜렷하게 고조되었고, 유럽 회의론 정당들도 늘어났다.

분명한 이유 때문에 정치인들은 당원보다 유권자에게 더 신경을 쓴다(당원의 주요한 쓰임새는 유권자를 끄집어내는 것이다). 당원은 이미 당에 속해 있기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과 다르다. 당원은 정치에 매료된 사람들이고, 텔레비전을 보거나 친구와 술을 마시거나 책을 읽는 대신 을씨년스러운 장소에서 정치 쟁점을 토론하면서 저녁 시간을 보내는 걸 즐긴다. 오스카 와일드가 말한 것처럼, "사회주의의 문제는 저녁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는다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유권자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그들이 일반 사람들의 생각을 아는 주된 통로는 여론조사다. 정치인들이 접촉하는 유권자들은 보통 불만이나 망상, 대의명분에 사로잡힌 이들이기 때문이다?전부 당 활동가들만큼이나 ‘비정상적인’ 사람들이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투표의 의미와 중요성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챙기면서 어쨌든 마음 내키는 대로 해석한다. 유권자들은 투표를 할 수 있을 뿐이다. 일단 표를 던지는 순간, 자기가 가진 권한과 목표, 바람을 자신이 믿을 수 있다고 기대하는 정치인에게 넘겨주는 셈이다. 투표는 불가피하게 권력을 포기하는 행위다. 투표를 하고 나면 집에 가서 사랑하는 사람이나 고양이에게 분노를 터뜨린다. 다른 방법은 전혀 없다. 권력은 불가피하게 소수의 수중에 집중된다. 문제는 이 소수를 어떻게 선발할 것인가 하는 것뿐이다. 노골적인 힘이나 지위, 신분, 출생, 선거 등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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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민주주의는 이런저런 형태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어쩌면 여전히 집권 중인 스웨덴에서는 살아남겠지만, 이 나라에서도 심각한 곤란에 처해 있다.
한때 극찬받던 스웨덴 모델이 이제 사회민주주의자들에게 서글픈 광경을 자아낸다면, 스칸디나비아 나머지 나라들은 눈물의 빙산이라고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반유대주의 세력인 자유당이 정부에 들어갈 가능성에 직면한 오스트리아의 유대인공동체는 강력한 어조로 우려를 표명했고, 나중에는 자유당 정치인들이 홀로코스트 기념일 행사에 참석하면 행사를 보이콧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유대 국가’의 총리인 베냐민 네타냐후는 한시도 지체하지 않고 쿠르츠에게 전화를 걸어 승리를 축하했다.

오늘날의 정치는 비스마르크의 냉소적인 경구(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한 말이다)를 따르면서 모두가 가능하기만 하면 누구에게든 의지하는 서커스가 되고 있다. "시험대에 오르기 전까지는 누구나 원칙을 고수한다오. 그런데 시험대에 오르는 순간 농부가 슬리퍼를 벗어던지듯이 원칙 따윈 내팽개치지."

1997년 당시 유럽연합 회원국 15개국 가운데 11개국에서 사민당이나 노동당이 집권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불과 20여 년이 지난 지금 이 당들이 집권하고 있는 나라는 한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전통적인 사회민주주의는 비단 유럽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곳에서 완전히 패배하고 있다. 이런 패배 가운데 어느 것도 특별히 놀라운 일이 아니다. 좌파 정당이 우파의 의제를 그렇게 많이 받아들이는 것은 언제나 위험한 일이었다. 대다수 사민주의 정당은 조만간 긴축 정책을 받아들이고, 임금이 정체하고 불평등이 증대하도록 내버려두었으며, 30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규모로 공공서비스를 민영화했다. 또한 불평등이 증대하도록 용인하면서 승승장구하는 수혜자들에게 과감하게 세금을 물리지 않았다. 하지만 조지프 스티글리츠가 말한 것처럼, "세금을 인하하고 규제를 완화하면 … 새로운 고성장의 시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이론은 철저하게 불신받고 있다".

한때 신자유주의의 성채였던 국제통화기금조차 과거의 지혜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최근에 펴내는 각종 보고서에서 국제통화기금은 부유층 세금 인하가 생산성을 끌어내리고 불평등을 증대시키고 있으며, 부유층에게 더 많은 돈을 주면 투자와 일자리와 성장이 늘어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님을 인정한다.

불평등에 맞선 싸움은 분명 사회민주주의가 활용할 수 있는 카드였다. 하지만 사민당들은 그 대신 자신들이 신중하다고 여기는 카드를 선택했다. 지배적인 친시장 이데올로기에 영합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게임에서 졌다.

하지만 결국 유럽 보수 세력은 ‘추잡해졌는데’, 무엇보다 마거릿 대처가 민족주의로 추잡한 부분을 가린 채 보수당을 분명한 신자유주의 정당으로 재구성한 영국이 대표적인 사례다. 저소득층은 공짜나 밝히는 구걸꾼이 되고 싱글마더는 ‘무책임한’ 여자가 됐으며, 이런 ‘추잡함’에 반대하는 전통적 보수주의자들은 ‘물렁한 보수당원’이 되었다.

우파가 부상함에 따라 정치 언어의 퇴행 현상이 나타났다. 도널드 트럼프는 일련의 트윗과 장광설을 통해 술집에서나 하는 거친 조롱이나 귀에 거슬리는 인종차별적이고 남성적인 공격, 그리고/또는 불안한 나르시시즘에 사로잡힌 심술궂은 10대와 관련된 언어를 구사하고 그런 생각을 소리 높여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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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가와 금리인상 등으로 경기가 불안정하다. 이어 경기후퇴도 우려된다. 경기가 나빠지면 경제적 취약계층이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게 그간의경험이다. 그런데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물가상승을 자극할 수 있다며 임금인상 억제를 주문하고 있고, 취약계층 보호에 나서야 할 정부는 자기 허리띠를 졸라매겠다고 한다. 감세를 하면서 건전재정을 달성하고, 어떻게 지출을 줄일지는 밝히지 않으면서 (재정지출이 필요한) 민생은 챙기겠다고한다. ‘좋은 말 대잔치‘다. 좋은 말을 죄다 모아놓았는데, 어째 ‘미션 임파서블‘로 읽힌다. - P3

그러나 ‘인공지능이 의식/지각에 대해 말하는 것‘과 ‘인공지능이 의식/지각을 가진 것‘은 완전히 다르다. 람다가 르모인의 질문에 대해 ‘사람이라면 저렇게 반응할 거야‘라고느껴지는 답변을 내놓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특별한 일이 아니다. 람다는 사람들이 실제 세계에서 나누는 천문학적 규모의 ‘문답 데이터‘로 ‘머신러닝‘을 했기 때문이다. 어떤 질문을 받을 때 이에 대해 확률적으로 가장 가능성 높은답변을 학습한 데이터 가운데서 선택하고 조합해 내놓으면그만이다.
람다는 ‘의식, 지각, 감각, 감정, 나아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탐구의 소재로 활용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확실한 사실은 아직 인공지능이 인간에 비해 터무니없을 정도로 ‘무식‘하며 이를 장차 극복할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 P15

북한의 이중적 지위와 법 테두리의모호한 틈 사이에서 갈등이 생겼다. 이 때문에 문재인 정부가 당시 어떤 법률을 적용·검토했든 정치적 판단, 자의적 판단이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윤석열 정부의 법 위반 주장에도 반박이 뒤따른다. 현재 정치권과 법조계에서 논쟁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이유다. 국민의 힘과  민주당이  북송된 탈북 어민을 바라보는 시선은 시간이  지날수록선명하게 갈린다.  - P27

당내 새로운 균열이 공식화된 건 7월8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6개월 당원권정지‘ 징계를 받은 이후다. 당을 수습하고 새로운 지도체제를 꾸리는 과정에서 이견이 드러났다. 국민의힘 당헌·당규에 따르면, 당대표가 ‘궐위되거나 최고위원회의의 기능이 상실되는 등 당에 비상상황이 발생한 경우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를 꾸릴 수 있다. 임시 전당대회를개최해 새로운 당대표를 선출하는 것도당대표가 ‘궐위된 상태여야 가능하다. 당대표가 ‘사고‘ 등으로 인하여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는 원내대표, 최고위원 중에서 직무를 대행한다. - P28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한 서로의 노력을 인정했기에 양국은 신뢰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일본은 문재인 정부에 대해 사법부의 판단을 시정하라는, 민주주의 원칙에 위배되는 요구를 계속 해왔다. 평화헌법을 개정해 전수방위와 비핵 3원칙을 내던지려고 하고 있다.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는 한·일관계의 기초인민주주의와 평화의 가치를 앞으로는 어떻게 구현할지 일본에 물어야 한다. - P33

영업제한 조치로 인한 경제적 피해가지난 2년간 특정 업종 자영업자들에게오롯이 전가되었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이들에 대한 정부 차원의지원은 대개 ‘이자가 저렴한 대출을 제공하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IMF에 따르면 한국 정부가 2020년1월부터 2021년 9월까지 코로나19에 대응하는 데 들인 재정·유동성 지원 규모는2020년 GDP의 약 16.5%다. 재정 지원은GDP 대비 6.4%, 유동성 지원은 GDP 대비 10.1% 수준이다. 한국은 그나마 돈을아낀 나라다. 전 세계 평균(재정 GDP 대비 18%, 유동성 GDP 대비 12%)에도 못미치는 규모다. 같은 시기 일본은 GDP의약 45%를, 독일은 43.1%를 투입했다. - P35

다만, 아직 이러한 기술들은 인간의 질문에 대한 답을 할 뿐새로운 질문을 던지지 못하고 있다. 인간의 명령이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제시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 답이 가진 한계를극복하기 위한 본질적 질문은 하지 못한다. 금방 인간 기자를 대체할 것처럼 보였던 ‘로봇 저널리즘‘이 최근 들어 유행에서 멀어진 이유와 같다.
인간 기자는 사안에 대한 질문을 통해 보이지 않는 이면의진실을 찾아가지만, ‘로봇‘ 기자는 보이는 곳의 내용을 바탕으로만 작성하기 때문이다.  - P37

노근리 사건은 한국전쟁 기간 벌어진가장 충격적인 민간인 학살 사건이다. 동맹국 미국 군인들이 주민들을 모아놓고발포해 200명 이상이 죽거나 다쳤다. 사건을 둘러싼 설은 여전히 분분하지만 분명한 것도 있다. 첫째, 교전은 없었다. 북한군과 전투하던 도중 발생한 피해가 아니다. 둘째, 오인 사격이 아니라 의도적발포였다. 미군은 주민을 포위한 채, 오로지 그들을 죽이기 위한 목적으로 총격을 가했다. - P38

 저임금, 그마저도 삭감된 최저임금 속에서고위험을 부담하며 고통을 감내해온 그들에게 윤석열 정부는또 법과 원칙을 말하고 있다.
이미 너무 오래된 경제이론을 들이대며 ‘자유‘를 강조해온윤석열 대통령이 정말 알아야 할 것은 ‘모두‘의 자유를 실현해야하는 게 대통령과 정치인의 역할이라는 점이다. 이미 존재하는법과 원칙이 누군가에게 특히 약자들에게 목숨을 걸어야 하는고통을 가하고 있을 때, 그 고통을 어떻게 제거할 것인가, 해법을 제시해야 하는 게 대통령의 소임이다. - P41

윤석열 정부에서는 검찰 출신이 요직에 배치되고 있다.
이카루스의 날개는 태양 가까이 다가가면 녹는다. 날개에 붙어 있던 깃털이 열기에 녹아서 검찰의 밑바닥이 드러나면국민들이 냉정하게 판단하시겠지. 길게 보려고 한다. 태양은 곧 정점 아닌가 담담하게 일몰을 준비할 거다. 검찰이 바뀔까?
바뀌어야 한다. 결국 바뀔 거다. 일제강점기 친일파들이 다들 ‘이렇게 갑자기독립이 찾아올 줄 몰랐다‘고 하지 않았던가. 10년, 20년이면 안 바뀌는 듯해도 수십년 뒤에는 바뀐다. 내 인생에서야 10년, 20년 힘들겠지만 역사에서 이 시간은 찰나다. - P45

노인 돌봄 과제를 말하면서 시설과인력에 대해 짚었지만, 사실 핵심은 돈이다. 요양원에 가든 슈피텍스 서비스를 이용하든 돈이 필요하다. 빈곤한 노인은 서비스의 효율성을 따질 선택권조차 없다.
노년기 재정 상황과 직접적 관련이 있는것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일자리 (은퇴 연령), 다른 하나는 연금이다. 스위스에서도 이 둘을 현실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여러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 P48

BTS학술대회를 주최한 BTS 연구모임(ISBS)의 일원이다. "아시아인보이그룹에 대한 차별과 보이그룹 여성팬덤을 향한 멸시에 대항해 적극적으로투쟁해온 역사가 팬덤 내에 존재한다.
그러한 싸움의 결과, 방탄소년단과아미는 영어·백인남성 중심의 사회에 균열을 가져왔다." 일종의 ‘언더독‘
정서가 케이팝 팬들을 진보적 정치성향으로 이끌어냈다는 평가다.
케이팝이 비주류, 소수자, 다양성정치와 연결되고 소비되는 현상은국내에선 낯설다. 국내 팬들도 자선활동과 봉사에 나서지만, 케이팝 가수와팬덤 모두 ‘비정치적‘일 것을 요구받는다. - P54

수학자인 그는 데이터 처리 과정은 과거를 코드화할 뿐  미래를  창조하지않는다고 강조한다. 어떤 이들은 편견에 사로잡힌  인간보다 인공지능(AI)이 더 낫다고,
편견 없이 정확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AI의근간인 데이터가 이미차별과 편견에 물들어있고 이를 확대 재생산한다는걸 알면 기술이 더 나은 미래가아님을 깨닫게 된다. 오닐의말처럼, "미래를 창조하려면도덕적 상상력이 필요"하고
"그런 능력은 오직 인간만이가지고 있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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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 정당들은 반유대주의와 달리 이슬람 혐오가 용인된다는 것을 안다(실제로 일부 정당은 이스라엘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 무슬림에 대한 혐오 때문에 뜻밖에 손을 맞잡는 것이다). 그들이 추구하는 목표는 선거를 통해 합법적으로 권력을 잡는 것이다. 그리고 주요한 성과는 의제를 오른쪽으로 이동시킨 것이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과반수가 아니라 ‘점잖은’ 당들을 겁줄 만큼 필요한 표만 얻으면 된다.

오늘날 서구의 외국인 혐오는 일정한 형태의 민주적 정당성에 의지한다. 주요한 변화나 새로운 현상이 모두 그러하듯, 외국인 혐오의 부상은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특히 세계화와 그로 인한 대규모 탈산업화가 서구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다른 나라들(가령 독일)보다 몇몇 나라(영국 등)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또한 인구 고령화에 따라 연금, 의료, 사회적 돌봄 지출이 많아지는 탓에 과세 수준이 높아지거나 긴축 정책이 시행되고, 또는 양자가 결합된다.

정치인들은 흔히 선거운동 기간에는 실질적인 제약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처지에 내몰린다.

빈곤을 줄이는 것은 개혁이 아니다. 빈곤 감소란 빈곤을 낳는 원인을 해결하지 않은 채 공공 자금을 지출하는 것(또는 고용주에게 임금 인상을 강요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실제로 신노동당이 이룬 이 업적은 나중에 원상복구되었다.

소멸한 ‘낡은 것’의 정체를 확인하기는 비교적 쉽다. 사라져가는 낡은 것은 1945년 이후 30년간 서구를 지배한 사회민주주의와 자유주의의 합의, 이른바 사회적 시장경제Soziale Marktwirtschaft다. 두 세계의 가장 좋은 것을 합쳐놓은 체제를 가리키는 독일어 표현이다. 탄탄한 경제 성장과 나란히 모든 사람을 위한 복지 확대와 실패한 이들을 위한 맞춤형 보호가 이루어진 복지자본주의caring capitalism를 말한다.

부유한 서구 전체에서 복지국가가 점점 줄어드는 가운데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이 ‘도와줄 가치도 없는 빈민’이라고 불렀던 사람들은 점차 마지못해 국가의 복지 혜택에 의지해 삶을 이어나갔다. 그리하여 미국(푸드뱅크가 시작된 나라), 독일, 프랑스, 벨기에, 이탈리아, 영국 같은 부유한 나라들에서도 구걸인과 홈리스의 수가 늘어나고 푸드뱅크 사용이 널리 확산되었다. 자유시장의 혜택에 관한 온갖 선전이 넘쳐났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시장은 사회적 보호를 제공하지 않으며, 세계화가 모든, 아니 대다수 시민을 위해 작동하는 것을 보장해줄 수도 없다는 것이다.

복지국가는 비록 그 성원들이 여전히 소득과 부와 교육 수준에서 불평등하지만, 그래도 다른 어떤 종류의 사회체제의 삶보다 선진 자본주의의 삶을 더 낫게 만들 만큼 충분히 응집력이 있는 민족공동체를 창출한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이처럼 거의 일반화된 통합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무너지기 시작했지만, 마지막 20년간에 이르러서야 전통적인 중도좌파와 중도우파를 약화시킴으로써 전후戰後 정당체제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사회의 위기가 정치의 위기로 바뀌고 있다. 병적 징후들이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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