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국방비는 2~9위를 합친 액수와 맞먹을 정도여서 전 세계 국방비의 36퍼센트를 차지하지만, 미국 군대의 총체적 무능은 거의 모든 해외 원정에서 충분히 드러났다.2 미국은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전쟁을 벌이고도 아프가니스탄(세계 최빈국 가운데 하나다)에서 탈레반을 물리치지 못했다. 한꺼번에 10만 명이 넘는 병력을 주둔시키면서 2300명이 넘는 병사를 잃고 1조 달러 이상을 지출했지만 허사였다.
오늘날 국제적인 패권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소련은 이제 사라졌다. 중국은 (아직) 충분히 강하지 않다. 유럽은 혼란에 빠져 있다. 미국은 쇠퇴하는 중이다.
유럽은 현재 세계 주변부의 일부다. 유럽인들은 끊임없이 유럽에 관해 이야기한다. 유럽의 역할이 무엇인지, 유럽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미국이 계속 선두에서 이끌 수 있는지, 아니면 새로운 패권국이 등장할 것인지를 궁금해한다. 하지만 한 나라, 또는 오직 한 나라만이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필연은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어쨌든 세계는 ‘패권국’ 없이도 똑같이 순조롭게(또는 똑같이 삐걱거리며) 작동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패권국으로 여겨지는 나라가 패권이 위협을 받을 때 어떤 행동을 하는가 하는 것이다. 패권이 쇠퇴하는 시대에 미국 이데올로기의 특징은, 페리 앤더슨이 말하는 것처럼, "지배의 자연적 정당성에 대한 믿음과 맹목적인 자기만족"이다.
유럽의 우위라는 가정은 18세기와 19세기에 발전했다. 18세기에 계몽주의의 지적 성취와 합리성, 성직자의 반계몽주의에 맞선 승리를 바탕으로 이런 가정이 만들어졌다. 이런 우월감은 19세기에 유럽의 우위가 더 강력한 물질적 기반?기술적·산업적 자본주의 사회의 발전?에 닻을 내리면서 더욱 높아졌다. 하지만 유럽의 우위?근대의 횃불, 문명의 요람?에 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유럽’은 아일랜드와 이베리아반도의 서부 해안에서부터 카프카스산맥과 콘스탄티노플까지, 그리고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의 얼어붙은 불모지에서부터 시칠리아의 따뜻한 기후에 이르는 지리적 실재가 아니었다. 그들이 생각하는 유럽은 글을 쓰는 사람에 따라 시대마다 각기 다르게 정의되는 서유럽이었다.
민족과 민족주의 둘 다 유럽 프로젝트에서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힘이 세다. 실제로 유럽연합의 모든 문서는 더욱 응집력 있는 공통의 정체성이 필요하다고 언급할 때면 언제나 파편화와 혼란, 충돌을 피해야 하고, 응집과 연대, 보완과 협력을 달성하고 회원국들에서 현존하는 민족 정체성을 존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심스럽게 언급한다. 나는 유럽의 정체성을 가르칠 수 없다고 본다. 유럽을 민족국가들의 민족국가로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한다.
유럽 각 민족국가의 사람들은 자기 민족을 선택하지 않았다. 민족성과 민족 건설을 억지로 떠안았을 뿐이다. 마침내 그들은 영국인, 독일인, 프랑스인, 이탈리아인, 에스파냐인, 벨기에인 등이 되었다. 그들은 자기가 스코틀랜드인이나 콘월 사람, 가스코뉴 사람이나 브르타뉴 사람, 바이에른 사람이나 프로이센 사람, 시칠리아 사람이나 피에몬테 사람이라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그렇게 생각하지만, ?관료제와 교육 체계가 공용어와 ‘공동의’ 역사를 부여한 덕분에, 전쟁, 국가國歌, 스포츠 경기,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국가별 공영방송, 그 밖에 수많은 기획 덕분에? 대다수 유럽인들은 ‘민족’이라고 부르는 특정한 일련의 정치 제도와 동일시하는 법을 배웠다.
민족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국가를 만들고, 세금을 인상하고, 교육과 미디어를 통제하고, 경찰과 군대를 보유해야 한다. 유럽연합은 이런 구조가 없으며 그렇게 만들고 싶어하는 이들도 거의 없다. 프랑스나 영국, 독일 정체성이 만들어진 방식대로 유럽 정체성을 만들어내기란 불가능하다.
전문가들은 ‘민중’이 ‘엘리트들’에게 분노한다고 지적해왔다. 서구에서 정치인의 자질이 왜 그토록 퇴보했는지 더 많은 시간을 들여 검토해야 한다.
가치는 변화를 겪는다. 유럽적 가치는 일정한 가치를 장려하고 다른 가치들은 ‘비유럽적’인 것이라고 깎아내리려고 하는 이들이 사용하는 구성물이다. ‘유럽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통일된 일련의 원리와 가치라는 개념은 실재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강령으로서 지식인들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했다. 통일된 가치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유럽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과거를 되돌아보기보다는 자신이 어떤 미래를 원하는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세계에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지로 눈을 돌려야 한다. 바로 이것이 역사와 언어가 다르고 어떤 면에서는 공통점이 많지 않지만, 그래도 역경을 무릅쓰고 공존의 길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27개국 연합의 모습이다. 유럽은 세계의 나머지 200여 개 나라에 공존이 어려울지 몰라도 협력말고 다른 대안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노력할 수 있다.
미디어는 사적인 것이든 공적인 것이든 간에 대중이 원하는 것을 제공하고, 대중은 이미 아는 것을 원한다. 그리고 대중이 아는 것은 자기 마을(나라)과 미국이다. ‘소소한’ 예외가 많이 있지만?비틀스는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해리 포터도 유명하다(영어로 노래하고 글을 쓰는 게 도움이 된다)? 미국은 여전히 엄청난 규모의 자국 문화 산물을 수출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다. 이민자들의 땅인 미국의 문화가 여러 문화가 뒤섞인 것이라는 사실이 도움이 된다.
지방주의와 낮은 수준의 민족주의가 계속 남아 있는 것은 유럽 기획이 상대적으로 실패한 여러 이유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유럽 회의론은 지난 20년간 뚜렷하게 고조되었고, 유럽 회의론 정당들도 늘어났다.
분명한 이유 때문에 정치인들은 당원보다 유권자에게 더 신경을 쓴다(당원의 주요한 쓰임새는 유권자를 끄집어내는 것이다). 당원은 이미 당에 속해 있기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과 다르다. 당원은 정치에 매료된 사람들이고, 텔레비전을 보거나 친구와 술을 마시거나 책을 읽는 대신 을씨년스러운 장소에서 정치 쟁점을 토론하면서 저녁 시간을 보내는 걸 즐긴다. 오스카 와일드가 말한 것처럼, "사회주의의 문제는 저녁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는다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유권자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그들이 일반 사람들의 생각을 아는 주된 통로는 여론조사다. 정치인들이 접촉하는 유권자들은 보통 불만이나 망상, 대의명분에 사로잡힌 이들이기 때문이다?전부 당 활동가들만큼이나 ‘비정상적인’ 사람들이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투표의 의미와 중요성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챙기면서 어쨌든 마음 내키는 대로 해석한다. 유권자들은 투표를 할 수 있을 뿐이다. 일단 표를 던지는 순간, 자기가 가진 권한과 목표, 바람을 자신이 믿을 수 있다고 기대하는 정치인에게 넘겨주는 셈이다. 투표는 불가피하게 권력을 포기하는 행위다. 투표를 하고 나면 집에 가서 사랑하는 사람이나 고양이에게 분노를 터뜨린다. 다른 방법은 전혀 없다. 권력은 불가피하게 소수의 수중에 집중된다. 문제는 이 소수를 어떻게 선발할 것인가 하는 것뿐이다. 노골적인 힘이나 지위, 신분, 출생, 선거 등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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