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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성된 <뮤지엄 산>은 지붕의 기복을 정교하게 사용하여 입구에서부터의 긴 산책로를 거쳐 뮤지엄 본관에 도착하며, 다시 그 앞에 스톤 가든을 배치한 직선 구조를 이루고 있다. 본관 건물은 세 개의 직육면체가 평행하게 비껴가게 늘어서고 또 하나의 직육면체가 비스듬하게 그것들을 연계하는 배치이며, 그것들의 결절점에 정육면체와 원통(실린더), 이른바 <안도적 입체>가 들어가서 명쾌한 기하학적 구성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의 동선을 이끄는 공간의 연쇄는 복합적이므로 높이가 달라지고 갑자기 개구(開口)가 열리는 등 안도 다다오의 문법이 고스란히 실현되어 있다.... 한국은 석재가 풍부한 만큼, 돌을 사용하는 데는 공을 들였다. 그래서 채용한 아이디어는 안팎의 이중 상자로 이루어진 중첩 상자 구성으로, 바깥쪽은 돌 붙임 벽으로 덮은 상자, 안쪽은 노출 콘크리트로 소재의 차이를 도드라지게 했다. 30만 개의 돌판이 필요했으며, 그것을 설치하는 작업은 장관이었다. _ 미야케 리이치, <안도 다다오, 건축을 살다>, p187


[사진] 뮤지엄 산 안내도


 지난 주 원주에 있는 <뮤지엄 산>에 다녀왔다.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뮤지엄 개관 10주년을 맞이한 <안도 타다오-청춘>이란 주제의 대규모 개인전. 건축가의 전시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지만, 전시회가 열리는 공간 자체가 이미 작품이니 그 안에서 건축가의 의도, 건축의 특징을 느끼는데는 부족함이 없다. 


 1976년부터 10년 동안의 안도 주택 특징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세련된 노출 콘크리트에 의한 디자인. 둘째, 기하학적인 형태. 셋째, 빛에 대한 집착. 넷째, 시선과 동선을 중시. _ 미야케 리이치, <안도 다다오, 건축을 살다>, p85


[사진] 뮤지엄 산 전시관 외부


 콘크리트 소재감이 흡사 스키야의 나무처럼 단정하여 내부 공간의 품위와 밀도를 높이고 있다. 안팎의 뛰어난 공간 배치와 어우러져 당대 비할 데 없는 철근 콘크리트 주택이 되고, 심지어 건축의 변치 않는 본질에 다가가며 어떤 가식도 없다.  _ 미야케 리이치, <안도 다다오, 건축을 살다>, p105


 건축가에게 기하학이란 도형이나 공간을 해석할 뿐만 아니라 형태 자체를 만들어 가는 원리이다. 계산에 따라 끌어내는 대수 값으로 길이나 크기가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도형적으로 풀어야 한다. _ 미야케 리이치, <안도 다다오, 건축을 살다>, p130


[사진] 빛의 공간 The space of Light 입구


[사진] 빛의 공간 The space of Light 내부 천장


 실내에 발을 들여놓는다. 벽이 평행하게 여러 개 겹쳐서 투사되는 그림자에 농담이 생긴다. 벽은 빛을 흡수하여 바깥 세계의 소리가 소멸한다. 굳게 침묵을 지키는 실내에서 시간이 정지한다. 스며 나오는 그림자는 신비한 느낌을 휘감은 침묵의 두께로 모습을 바꾼다. 가늘고 긴 슬릿을 통해 흘러 들어와 떨어지는 빛이 투명한 층으로 순화되어, 방 전체를 밝히지 않고 벽에 흡수되어 간다. _ 미야케 리이치, <안도 다다오, 건축을 살다>, p148


 내외부가 연결된 콘크리트 구조와 기하학적인 구도에서 흘러나오는 빛과 어둠의 대비. 물과 바람의 길처럼 건물을 크게 가로지르는 구도. 그 여백을 통해 안도 다다오의 공간(空間)을 읽는다. 그렇다면, 시간(時間)은 어디에 있을까?


 정육면체 등의 근원적인 도형이 그대로 유지되면 기하학의 절대성은 흔들리지 않는데, 안도는 지오메트리와 풍토성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을 잡는다. 르코르뷔지에 같은 플라톤주의 계승자들과의 차이가 거기서 드러난다. 대지를 읽는 수준을 훌쩍 뛰어넘어, 대지의 배후에 있는 지형, 문화, 기맥(氣脈) 같은 것을 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_ 미야케 리이치, <안도 다다오, 건축을 살다>, p137


  뮤지엄 내부에서 우리는 시간을 발견하지 못한다. 건물 바깥에 심어진 가을꽃들이 자태를 뽐내지만, 건축의 수명에 비길바는 아니다. 뮤지엄 산에서 안도 다다오의 시간을 찾기 위해서는 좀 더 멀리서 지켜봐야 한다. 뮤지엄 산을 둘러싼 수십 억년의 역사가 담긴 대지(大地)와 산. 거기에서 자라난 수십 년 수령의 나무들. 이들이 바로 공간을 둘러싼 시간이 아닐까.


 식물은 성장한다. 특히 수목은 수명이 몇십 년, 때에 따라서는 1백 년이라는 규모이며, 사찰 경내에 있는 나무는 몇백 년에서 1천 년 단위이다. 안도의 내면에 있는 시간의 계측 단위에는 두 가지 표준이 있는 것 같다. 하나는 건축으로, 몇 년이 걸려서 준공하고 그 후에는 수십 년 단위로 유지, 보수하면서 지속된다. 다른 하나는 수목 또는 식생으로, 이것의 수명은 최소 50년에서 1백 년이며 앞으로도 긴 세월 동안 생명을 유지한다. 안도의 신체에는 이처럼 서로 다른 두 가지 수명이 함께 갖춰져 있어서 건축과 수목, 양쪽을 오가면서 생명을 불어넣는다. _ 미야케 리이치, <안도 다다오, 건축을 살다>, p76


 때마침 단풍의 계절이었다. 산등성이에 펼쳐진 이 땅을 본 안도는, 거기서 다른 데서는 맛볼 수 없는 '생명의 힘'을 느꼈다고 한다. 이 흙에서 솟구쳐 오르는 힘은 미래의 아이들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자손 대대로 이어져 갈 땅이라고. 이 절묘한 대지를 보고 안도는 그 자리에서 설계하기로 결단을 내리고 스케치도 그린다. _ 미야케 리이치, <안도 다다오, 건축을 살다>, p499


[사진] 뮤지엄 산 외경


 젊은 시절 프로권투선수였던 안도는 두가지 싸움을 펼친다. 자연을 대상화하고 그것을 인간의 세계로 편입시키고자 하는 서구적 가치관과의 싸움 그리고 주어진 환경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고자 하는 싸움. 모든 예술가가 마찬가지겠지만, 안도 다다오에게도 작품은 치열한 싸움의 결과물임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주거야말로 거점이며 전투의 요새이다. 안도의 말을 빌리면 이렇다. "어디까지나 개개인으로부터 시작되는 '산다', '생활한다'는 것에 대해 자아가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질 정도까지 드러내는 원시 욕구를 사고의 중심에 놓음으로써, 주거는 그것들을 폭 감싸서 덮어 버린다"... 자신의 주거를 만들어 그 안에 기존 마을 풍경 속에서 키워 온 생활을 외부 자본에 맡기지 않고 관철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이다. _ 미야케 리이치, <안도 다다오, 건축을 살다>, p48


 건축은 싸움입니다. 거기에는 긴장감을 지속시킬 수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모든 것이 걸려 있습니다. 긴장을 지속하고 사물을 끝까지 파고들어 그 원리까지 되돌아가서 재조합하는 구상력이야말로 문제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기존의 조합을 깨부수는 강력함을 가진 건축을 낳는 것입니다. _ 미야케 리이치, <안도 다다오, 건축을 살다>, p58


 

 <뮤지엄 산>에서 안도 다다오의 도록 <TADAO ANDO : YOUTH>를 구입했다. 이 도록은 <안도 다다오, 건축을 살다>에서 설명된 주요 작품에 대한 생생한 컬러 사진을 제공해 작품에 대한 이해를 더해준다. <안도 다다오-안도 다다오가 말하는 집의 의미와 설계>는 건축의 도면에 대한 정리가 잘 되어 이들을 통해 안도 다다오의 건축을 바라본다면, 보다 의미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물의 교회>에서는 무덤 앞에 세우는 표시처럼 우리를 마주 보는 네 개의 십자가를 빠져나와 예배당 안으로 들어오게 되며, 거기서 다시 물의 정원에 우뚝 선 십자가를 바라보게 된다. 반대로 <빛의 교회>에서는 성당 정면에 벽을 찢고 빛이 된 십자가가 출현한다. 전자가 행진에 의한 죽음과 재생의 의식이라면, 후자는 현현(顯現) 그 자체이다. _ 미야케 리이치, <안도 다다오, 건축을 살다>, p187


[사진] 물의 교회


[사진] 빛의 교회


 서로 다른 두 개의 교회를 연결시켜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재림의 의미를 해석한 글 안에서 스토아학파적인 안도 다다오의 면모를 깨닫게 된다. 이 참에 임석재의 서양 건축사도 정리해봐야겠다...


 포스트모던이라 불리는 1970년대 이후의 현대는 에피쿠로스학파, 스토아학파와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1970년대 이후의 건축과 도시계획에 있어 포스트모더니즘은 개별 건축물부터 도시에 이르기까지 통일감 있는 디자인으로 구성하겠다는 야망을 단념하고 유동하는 하나의 무리가 된 세계 속에서 로컬한 질서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스승인 단게 겐조(1913~2005)의 모더니즘으로부터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전향한 이소자키 아라타(1931~2022)를 에피쿠로스학파에 비교한다면, 단게-이소자키와 같은 국가적 엘리트와는 거리가 먼 곳에서 맨주먹으로 출발한 안도 타다오(1941~ )는 스토아 학파에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스토아학파의 가르침처럼, 형성된 질서는 반드시 해체되고 태어난 것은 반드시 죽게 되므로 그 운명에 화내고 슬퍼해봤자 소용이 없으니, 오히려 사태를 냉정하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서 더 나아가 운명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일까? _ 아사다 아키라,<안도 타다오, YOUTH> <안도 타다오의 스토아학파적 건축>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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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10-16 03: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 님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뮤지엄 산에 다녀오셨군요 그런 곳이 있다는 말 들어본 적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어느새 십년이 되다니... 안도 다다오 이름만 알고 잘 모르기도 하네요 안도 다다오 건축을 보고 서양건축사를 정리하시려 하다니 멋지시네요 저는 그런 거 보면 그걸로 끝일 텐데... 하나에서 다른 걸로 이어지는 공부를 하면 좋을 듯하네요


희선

겨울호랑이 2023-10-16 07:42   좋아요 2 | URL
저도 뮤지엄 산 근처에 자주 가면서도 제대로 감상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사실 이번에도 거의 지나칠 뻔 했는데 다행히 기회가 잘 맞았고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좋은 많은 기회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지나가 놓쳐버린 것이 얼마나 많을지도 생각하게 됩니다. 기회를 통해 무엇인가를 새로운 계기를 마련하는 것은 계획에는 어긋나지만, 우리 삶을 재밌게 해주는 일탈이 아닌가 싶습니다. 희선님, 감사합니다! ^^:)

yamoo 2023-10-16 09: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여기 어디 인가요? 저도 시간되면 가볼까 합니다만..^^;;

겨울호랑이 2023-10-16 10:13   좋아요 2 | URL
강원도 원주 오크밸리안쪽에 있는 <뮤지엄 산>입니다. <안도 다다오 - 청춘>은 10월 29일까지 예정되어 있어 시간이 조금 촉박하네요... 조금 멀지만 좋은 시간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yamoo님 좋은 하루 되세요! ^^:)

2023-10-16 1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0-16 14: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꼬마요정 2023-10-20 10: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아 <뮤지엄 산>이로군요!!! 저는 2017년에 다녀오고 다시 못 가서 아쉽습니다. 너무 예쁘고 신기한 곳이었죠. 그 때는 백남준 전시 보고 제임스 터렐관 갔었어요.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건축가들도 천재인 것 같아요!!!!!

겨울호랑이 2023-10-16 17:47   좋아요 2 | URL
지금도 백남준 전시와 제임흐 터렐관에서 전시 중이라 안도 다다오 전 이외에 크게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저 도한 산 속에서 몸과 마음을 쉬게 하는 재생과 부활의 공간이라는 느낌을 받았는데, 다른 분들에게도 멋진 공간으로 기억되는 것 같아 반갑습니다 ^^:)
 

 <일러스트와 함께하는 유명 건축물 이야기 : Architecture Inside+Out>에서 세계에 널리 알려진 50여개의 건축물들이 공공 생활 public Life, 기념물 Monuments, 예술과 교육 Arts and Education, 주거 Living, 예배 Worship의 주제 아래 소개된다. 시간적으로는 고대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Parthenon부터 지금도 건설되고 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Sagrada Familia에 이르기까지, 공간적으로는 서쪽 런던 아쿠아틱 센터 London Aquatics Centre부터 동쪽 구겐하임 미술관 Solomon R.Guggenheim Museum에 이르기까지. 고대 무명의 건축가로부터 르 코르지뷔에(Le Corbusier, 1887 ~ 1965)들이 이루어낸 건축들이 소개된다.


 이들 책을 통해 우리는 삶을 위해 인위적으로 나뉘어진 건축물 이라는 공간이 의미가 부여된 작품으로 재해석할 수 있다. <공간이 만든 공간>의 저자 유현준은 바르셀로나 파빌리온 Barcelona Pavilion을 일본 건축물과 선(禪) 사상과 서양의 교점으로 해석하지만, <일러스트와 함께하는 유명 건축물 이야기>에서는 또 다르게 바라본다는 점에서 해석의 다양성을 일깨워준다. 이러한 전문가들의 객관적 해설이 본문을 통해 소개된다면, 독자들은 주관적인 감상을 떠올릴 수 있다.  


 개인적으로 파르테논 신전을 통해 페리클레스(Pericles, BC 495 ? ~ BC 429)가 이룬 아테네의 황금시기와 펠로폰네소스 전쟁( Peloponnesian War, BC 431 ~ BC 404)을, 1972년에 지어진 나카긴 캡슐 타워를 통해, 1970년 오사카 만국박람회를 배경으로 하는 <20세기 소년>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금각사(Temple of the Gollen Pavilion)를 통해 동명의 소설 <금각사 金閣寺 >와 작가 미시마 유키오 三島由紀夫, 1925 ~ 1970)와 그의 극단적인 선택를 생각하게 된다. 또한, 책에 소개된 슈뢰더 하우스 안에서 몬드리안(Pieter Cornelis (Piet) Mondrian, 1872 ~ 1944)의 작품을 떠올리는 것은 3차원에서 2차원으로 차원을 감소시키며 미(美)를 확인하는 즐거움을 받는다.


[사진] Nakagin Capsule Tower(출처 : https://inhabitat.com/now-you-can-rent-a-room-in-japans-nakagin-capsule-tower-via-airbnb/)


[사진] Schoder House(출처 : https://archello.com/pt/project/rietveld-schroder-house)


 대중들에게 연필로 그린 건축 세밀화를 통해 건축의 아름다움을 안내하고, 평안한 느낌을 선사하는 <일러스트와 함께하는 유명 건축물 이야기>를 통해 비대면 세계 여행을 잠시나마 떠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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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1-30 12: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런 책 정말 좋아해요. 보관함으로 쏙 넣어둡니다

겨울호랑이 2021-01-30 12:33   좋아요 2 | URL
바람돌이님께서 직접 읽으시면 더 좋을 책이라 생각합니다. 즐거운 독서, 행복한 주말 되세요!~
 

 <공간이 만든 공간>의 저자 유현준은 책에서 '빈 공간'을 말한다. '빈 공간'을 인정한 동양(東洋)과 이를 인정하지 않는 서양(西洋). 거의 같은 시기 발전해 온 문화권들은 어떻게 다른 사상을 발전시켜 왔을까. 저자는 이에 대한 질문으로 책을 시작한다. 그리고, 두 문화권의 기후와 농작물 재배방식의 차이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적은 강수량 지대인 서양에서는 개인주의적인 밀 재배 문화가 발전해온 반면, 많은 강수량 지대인 동양에서는 보다 공동체주의적인 벼 농사 문화가 발전해왔으며, 그 결과 사회 성격이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유래로 '빈 공간'에 대한 문화권의 태도가 갈리게 된다. 저자에 따르면 서양의 문화는 단절적인 선(線)의 문화다. 저자는 이를 위해 재러드 다이아몬드(Jared Mason Diamond, 1937 ~ )의 <총, 균, 쇠 Guns, Germs, and Steel>에서 논지를 끌어오는데, 우리는 막스 야머(Max Jammer, 1915 ~ 2010)의 <공간 개념  Concepts of Space>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막스 야머의 논지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허공'은 '채우기 위한 공간'에 불과하다. 때문에, 무(無)에서 유(有)가 낳는다는 노자(老子, ? ~ ?)사상과는 달리 이들(무와 유)은 서로 대립하는 존재다. 이러한 인식에서 신(神)과 인간(人間), 인간(人間)과 자연(自然)이 선(線)으로 구획되는 공간이 나왔다는 저자 유현준의 주장에 한층 공감할 수 있다.


 레우키포스(Leucippus, BC 470 ? ~ ?)와 데모크리토스(Demokritos, BC 460 ~ ?)는 허공 (虛空)이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실재의 원자론적 구조를 가정할 때 나오는 논리적 결론이다. 그러나 분명히 여기서 비어 있는 것은 점유되지 앟은 공간을 뜻한다. 우주는 채워진 것(원자 atom)과 빈 것(허공)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공간은 물질에게 상보적이며 물질에 의해 둘러싸인다. 물질과 공간은 서로 양립할 수 없다. "비어있는 것(Kenon)"이라는 용어는 분명히 점유되지 않은 공간만을 뜻한다._막스 야머, <공간개념>, p47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 ~ BC 322)에 따르면, 제1신은 하늘의 경계이다. 그렇다면 신은 하늘의 경계와 다른 것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바로 그 경계이다. 그런데 신이 하늘의 경계와 다르다면, 하늘 밖에 다른 것이 있을 것이며, 그것의 경계는 하늘의 경계일 것이다._막스 야머, <공간개념>, p76


 <공간이 만든 공간>에서 저자는 이러한 인식 차이가 19세기 이후 일본, 중국 문화가 서양에 널리 알려지면서 점차 좁혀지고, 최근에는 공간의 이종교배가 이루어지면서 하나로 융합되는 모습을 소개한다. 그리고, 독자들은 책을 통해 거장들이 건축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생각들을 알기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 점이 <공간이 만든 공간>이 교양 인문서적으로 갖는 매력으로 다가온다.

 

반면, <공간이 만든 공간>에서 느껴지는 아쉬움도 분명 있다. 책에서는 서양에 미친 동양의 영향이 언급되지만, 동양에 미친 서양의 영향은 거의 소개되지 않는다. 서양의 유명한 건축가들에게 동양사상이 영향을 미쳤다면, 서양의 생활 양식은 '도시화'를 통해 대중들의 삶 전반을 바꿨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부분이 소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상적 융합은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듯하여 부분은 다소 아쉽게 느껴진다. 물론, 저자가 이 부분에 대해 전작인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어디서 살 것인가>를 통해 충분히 다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짧게나마 소개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다른 한 편으로, 동양을 받아들인 서양 문화와 서양을 받아들인 동양 문화를 보면서 일종의 '자리바꿈'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이로부터 최근 미국 대선의 정치 지형도를 생각하게 된다. 저학력 백인들과 미국 남부 농촌지역의 폭넓은 지지를 미국 공화당이 받고 있다는 당연한(?) 사실은 미국 남북전쟁 당시 북부의 지지를 받던 대통령 링컨(Abraham Lincoln, 1809 ~ 1865)이 공화당 소속이었다는 사실을 잠시나마 잊게 만든다. 상전벽해(桑田碧海)라 할 만한 이러한 급격한 정치 지형의 변화처럼 동서양의 사상 교체도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 물론, 남로당 출신 공산주의자가 반공(反共)을 국시로 하는 정권의 우두머리가 되었던 역사적 사실을 떠올린다면, 그리 놀랄만한 일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전통적으로 '노동자당'으로 불리는 민주당은 서민층의 지지율이 급감한지 오래다. 특히 '백인'을 자처하는 지지다들의 이탈이 심각하다. 이런 경향은 2020 대선에서도 여실히 확인됐다. 초기 대선 출구조사에서, 트럼프는 저학력 백인 유권자로부터 무려 64%(바이든은은 34%)의 표를 득표했다. 특히 복음주의 기독교인(81%)과 농촌 주민(65%)의 지지가 두터웠다. 정각 2000년에 이르러서야 보수 세력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가장 빈곤한 선거구는 오늘날 공화당 표밭으로 바뀌었다. 반면 가장 부유한 50대 선거구 중 무려 44곳이 민주당에게 표를 던졌다._<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트럼프 없는 트럼피즘의 득세, p6

 <공간이 만든 공간>을 읽으면서 들었던 두서없는 생각을 담은 페이퍼는 이것으로 정리하자. 그 전에, 데모크리토스가 언급된 김에 칼 마르크스(Karl Marx, 1818 ~ 1883)가 에피쿠로스(Epicurus, BC 341 ~ BC 270)와 데모크리토스 철학에 대해 정리한 논문의 일부를 소개하면서 페이퍼를 마무짓는다.


 에피쿠로스에게 원자론은 그 모든 모순을 품으면서 자기의식의 자연과학으로서 철저하게 수행되었고 완성되었다. 추상적 개별성의 형식 아래서 이 자기의식은 절대적 원칙이다. 그래서 에피쿠로스는 원자론을 그 최종 결론으로 밀고갔는데, 그 최종 결론은 바로 원자론의 해체이며, 보편적인 것에 대한 의식적 반대다. 반대로 데모크리토스에게 원자는 단지 경험적인 자연 탐구 일반의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표현일 뿐이다. 그래서 그에게 원자는 순수하고 추상적인 범주, 경험의 역동적인 원리가 되지 못하고 그것의 결과인 하나의 가설로 남았을 뿐이다._ 칼 마르크스,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르소 자연철학의 차이>,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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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크 2020-12-13 15: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공간에 관심이 많은데 흥미로운 글 잘 읽었습니다. ^^

겨울호랑이 2020-12-13 17:2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쿼크님 좋은 하루 되세요!^^:)

2020-12-14 09: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14 14: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cott 2021-01-09 21: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이달의 당선작
추카~추카~

공간이 만든 공간
읽을지 말지 망설였는데
일단 장바구니속으로 ~@@

겨울호랑이 2021-01-10 07:59   좋아요 1 | URL
scott님 감사합니다. <공간이 만든 공간>은 공간에 대한 동/서양 사상의 차이를 잘 보여주는 책이라 여겨지네요. 즐거운 독서 되시길 바라요~^^:)
 

 

 <한국 주거의 사회사>, <한국 주거의 미시사>, <한국 주거의 공간사> 총 3권의 책으로 구성된 <한국 근현대 주거의 역사>는 종합적인 관점에서 근대 이후 양식 변화를 조망한 책이다. 여러 명의 저자 중 유일하게 모든 책의 집필에 참여한 저자 전남일 교수는 책의 구성을 [그림]과 같이 설명한다.



                   [그림] 한국 근현대 주거의 역사 구조


 오래 전에 출간된 책이지만, 최근 법률 개정으로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부동산 문제와 관련하여 다시 들춰보게 된다. 역사(歷史)의 관점에서 바라본 우리 사회의 부동산 문제, 그 중에서도 아파트 문제의 기원은 무엇일까. 이번 페이퍼에서는 세 권의 책을 통해 아파트 문제의 기원을 여러 각도에서 살펴보도록 하자. 


 아파트가 부정적인 이미지를 깨고 새로운 욕구의 대상, 도시 생활의 총아로 각광받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들어서부터이다. 아파트 생활의 편리함과 간소함은 단연 중산층 핵가족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특징으로 다가왔다.... 고급재료와 시설/설비로 호화롭게 꾸며진 모델하우스는 서구식 생활을 갈망하고 주거를 통해 사회경제적 지위를 과시하고 싶은 중산층의 욕구를 잘 반영했다._ 전남일, 양세화, 홍형옥, <한국 주거의 미시사>, p146


 오늘날은 아파트 공화국이라 불릴만큼 많은 아파트가 전국에 지어졌지만, 처음부터 아파트가 인기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1960년대 당시 서구식 생활이 익숙하지 않은 대중들에게 아파트는 낯선 공간이었다. 그래서, 아파트에 대한 부정적인 대중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모델 하우스'라는 새로운 판촉전략이 등장한다. 오늘날의 드라마와 CF가 새로운 생활에 대한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것처럼, 모델하우스는 70년대 중산층에게 새로운 워너비(wanna be)가 되었다. 마치 80년대 후반 my car 열풍으로 인한 자가용이 폭발적 증가가 되었던 사실을 연상시키는 마케팅의 성공은 아파트 수요를 끌어올리는데 성공하게 된다. 그렇지만, 아파트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 변화는 마케팅에 의한 것만은 아니었다. 시대의 흐름을 읽은 몇몇 사람들은 단독주택과는 달리 동일 지역에 같은 형태로 많은 양이 동시에 공급되는 아파트의 시장성에 주목하게 된다. 기존의 단독주택이 수공업 제품이라면 아파트는 공장제 제품이었고, 공산품으로서 아파트의 특성에 주목하면서 아파트는 이제 재테크 수단으로 용도가 변경된다.


 아파트에 대한 선호를 더욱 부채질한 것은 아파트 사재기로 돈을 벌었다는 부유층 복부인들의 이야기가 연일 대중매체를 장식하면서부터다. 눈 깜짝할 사이에 갑절로 불어나는 아파트 가격은 아직 막대기 하나 꽂지 않은 황량한 벌판으로 사람들을 유혹했고 복덕방에는 웃돈을 주고 청약 통장을 사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이들에게 아파트는 일확천금을 가져다주는 도깨비 방망이었다._ 전남일, 양세화, 홍형옥, <한국 주거의 미시사>, p148


 아파트가 단순한 거주공간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되자, 수요량이 급증하기 시작했고, 아파트 시장은 균형을 잃어버렸다. 아파트에 대한 높은 수용에 대응하기 위해 이제는 건설회사가 나설 차례가 되었다. 이들은 70년대 개발 시대를 맞아 서울 등 대도시에 많은 양의 아파트를 공급하여 해외의 중동건설 붐과 함께 호황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했지만, 여기서 뜻하지 않은 정부의 개입이 일어나면서 부작용이 발생한다.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주택 시장은 사회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맞물려 개발과 성장의 논리가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주택 시장은 공공 또는 민간 주도의 아파트, 집장수 집, 건축가가 설계한 일부 고급 주택, 무허가 주택 등 춘추전국시대와 같은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되었고, 이러한 상황의 저변에는 모두들 집만 지어 팔면 떼돈을 벌 수 있다는 심리가 깔려 있었다.... 197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서울의 아파트 분양 신청률은 40 ~ 70 대 1에 이르는 과열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으며 아파트 가격은 날이 갈수록 급등했다._ 전남일, 손세관, 양세화, 홍형옥, <한국 주거의 사회사>, p259


 당시는 주택복권을 발행할 정도로 서민의 내 집 마련의 꿈이 절실하던 시기였기에 그렇지 않아도 흉흉한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해 정부는 분양가 상한제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 결과 마치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성냥갑의 건물들이 도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오늘날 한국 대도시의 전형적인 모습이 형성되기에 이른다. 물론 여기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남향'에 대한 선호도 영향을 미친다.


 집값이 폭등하면서 무주택 서민층의 내 집 마련이 어렵게 되자 1977년 정부는 주택청약제도와 함께 분양가 상한제를 본격 시행했다.(p260)... 분양가 규제는 투기 조장 외에도 여러 부작용을 초래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큰 부작용은 도시가 획일화된 아파트 숲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_ 전남일, 손세관, 양세화, 홍형옥, <한국 주거의 사회사>, p261

 

 1970년대 중반, 같은 판상형 주거동이면서도 폐쇄적인 클러스터를 이루는 ㅁ자형 배치의 잠실아파트단지가 처음으로 계획되었지만 남향선호라는 거주자들의 요구에 밀려 더는 발전된 형식으로 자리 잡지 못했다. 무미건조하고 획일적인 주거동과 남향배치는 한 단지 안에서, 한 지역에서, 그리고 지역을 넘어서 반복/재생산되었으며, 이러한 현상은 1980년대 절정을 이루었다.(p274)... 주택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상황에서는 상품의 물량이 많을수록, 그리고 대규모일수록 큰 이윤이 남는다는 '규모의 경제논리'가 지배적이었다. 또한 단지계획뿐만 아니라 주거동 계획과 평면계획도 법적 한도 내에서 최대한의 용적률을 달성해야 한다는 경제적 목표에 의해 좌우되었다._전남일, <한국 주거의 공간사>, p275


 또한, 주변 건물과 구별되는 고층 건물과 단지 내 생활권을 조성하는 아파트 단지의 특성은 아파트 단지와 주변 지역을 단절시켜, 아파트에 사는 새로운 부르주아(bourgeoisie)라는 계급을 탄생시켰다. 같은 지역에서도 춘추(春秋)시대의 국인(國人)과 야인(野人)이 구별되듯 아파트 단지는 지역민을 갈라놓았고, 같은 생활권역에서 비슷한 생활수준을 가졌다는 아파트 입주민들의 동질감은 특히 아파트 매매 시 가격을 단합하여 자산가치를 지킬 때 잘 나타난다.


 마포아파트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아파트로 등장한 이후 우리나라 공동주택의 계획원리를 지배한 것은 근린주구론(Neighbourhood Unit)이다. 하나의 단지는 독립 생활 환경으로서 그 안에서의 완벽한 편리함을 추구했고, 이렇게 출발한 개념은 '단지 내 편리한 생활'이라는 아파트 생활의 대명사를 만들었다. 그 결과 아파트단지는 외부로부터는 폐쇄적인 것이 당연시되었으며, 단절된 공간구조를 더욱 선호하도록 만들었다. 여기에는 한편으로 중산층 선민의식이라는 아파트 거주자의 사회적 함의가 내포되어 있었다._전남일, <한국 주거의 공간사>, p273


 수천 년에 걸친 한국 주거의 역사에서 최근 나타난 아파트의 역사는 극히 짧다. 그렇지만, 이전에 나타난 주택들이 대체로 실용성, 안전성 등 주거 목적이 강조되었다면, 상품 가치가 강조된 아파트의 성격은 매우 다르다. 그리고, 이로부터 발생하는 아파트 문제는 '아파트 = 재산'이라는 인식으로 재산 또는 신분상승이라는 수직적 욕망과 좋은 거주 환경 확보라는 수평적 욕망이 융합된 문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한국 근현대 주거의 역사를 통해 오늘날 부동산 문제의 근원을 찾아보면서 해결책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한국 주거의 사회사, 미시사, 공간사의 세부 측면은 아파트라는 주제와는 별도로 리뷰에서 살표보도록 하고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성장기 였던 1970년대에는 전세 끼고 집(아파트)을 넓혀 가는 것이 보편적인 재테크 수단이었지만, 이제는 주택이 남아도는 저출산-고령화시대에는 더는 유효하지 않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당시 여의도 시범아파트 24평에 살다가 80년인가에 신반포 35평 새 아파트로 이사 갔어요. 한 4년 살다가 개포동 우성아파트로 이사했고요. 47평인가? 저는 거기 살 때 결혼해서 분가해서 살았어요. 어머니는 그곳에서 한 7 ~ 8년 살다가 분당 신도시에 입주할 때쯤 개포동 아파트 팔고 60평 아파트를 사셨죠. 지금은 한 3년 전에 수지 80평 아파트를 사서 저희 식구랑 함께 살고 계셔요. 돌이켜 보면 바로 아파트 갈아타기였던 것 같아요. 그 덕에 재산도 많이 불리셨을걸요?_ 전남일, 양세화, 홍형옥, <한국 주거의 미시사>, p152


 과거 강남 개발이 거의 완료되던 80년대 말에 지금의 법조단지로 조성된 부지에는 꽃동네가 있었지만, 이들은 강제철거를 당한 후 멀리 떠나야 했다. 이처럼 철거민들의 눈물과 한(恨)위에 세워진 서초동 법조단지. 오늘날 법원과 검찰청이 위치한 이 곳을 바라보면서 '민(民)위에 군림하는 법가(法家)'라는 현실은 어쩌면 태생적인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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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 사회는 중세의 산업 계급처럼 상업과 각종 예술과 더불어 전개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예술은 상업이 그렇듯 자유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로마 인들은 상인도, 예술가도 아니었습니다. 예속 국가들에 대한 그들의 입장은 오늘날 우리의 정부의 그것과는 매우 달랐죠. 세계의 정복자였던 그들에게 로마적이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어야 했습니다.(p138)... 그리스의 건축은 옷을 벗은 사람에 비하면 가장 좋을 것입니다. 그의 신체의 부분들은 오직 유기적 구조, 그의 욕구, 그의 뼈대의 결과물이며 그의 근육의 기능들일 뿐이지요. 반면 로마의 건축은 옷을 입은 사람에 비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있고, 의복이 있습니다. 그 의복은 좋거나 나쁠 수도, 원단의 가격이 높거나 낮을 수도, 재단이 잘 되었거나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신체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p144) <건축 강의 1> 中


 외젠 비올레르뒤크 (Eugene Emmanuel Viollet-le-Duc, 1814 ~ 1897)는 <건축 강의 1 Lectures on Architecture 1>에서 그리스와 로마 건축, 나아가 문명(문화)에 대해 위와 같이 비교한다. 책 전반에서 자유로운 그리스 사회에 비해 로마는 철저하게 제도화된 사회였기에 이들간에는 큰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번 페이퍼에서는 이러한 <건축 강의 1>의 내용을  우리나라 임석재 교수의 서양건축사과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비올레르뒤크는 그리스 건축에서 특히 '이성 理性'을 강조한다. 그리스 철학의 이성은 자연에 대한 끊임없는 관찰의 결과물이다. 그리고, 이성은 이분법(二分法)으로 대립되는 두 개념의 균형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부분적으로 서도 다른 두 개념이 전체적으로 이성 안에서 이루는 균형. 이는 두 저자가 바라보는 그리스 건축의 특징이다.



[사진] 그리스 건축물(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Ancient_Greek_architecture)


 그리스 신전의 모든 부분을 분리해서 보고, 그것들이 전체와 맺는 관계는 물론 그 각각을 개별적으로 연구한다면 우리는 예술의 존재를 입증하는 그러한 현명하고 섬세한 관찰들의 영향을 항상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술의 존재라는 것은 모든 형태를 이성에 종속시키는 세련된 감정으로서, 이때의 이성은 기하학자의 건조하고 현학적인 이성이 아니라 감각과 자연법칙에 대한 관찰에 의해 인도되는 이성입니다.(p102) <건축 강의 1> 中

 

 그리스 건축은 서양문명사의 흐름을 구성하는 대표적 쌍개념들이 하나로 통합되면서 탄생했다. 이러한 쌍개념들로는 자연과 인공, 정신과 육체, 전체주의와 개인주의, 규범과 자유정신, 이상주의와 현실주의, 단순성과 다양성, 원형성과 가변성, 남방문화와 북방문화, 전쟁문화와 상업문화 등을 들 수 있다.(p114)... 그리스 건축에서 관찰되는 장점은 균형감각이다. 많은 내용들이 하나로 합쳐지면서도 혼란스럽거나 극단으로 흐르지 않고 중용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점이 그리스 문화의 힘인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 건축에서의 종합화가 단순 합이 아닌 정제 精製의 의미에서의 추상작업이었기 때문이다.(p115) <임석재 서양 건축사 1 : 땅과 인간> 中


 그리스 인은 이성의 규칙 이외의 다른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성은 추론하고, 논쟁하며, 구속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로마의 입법 정신에 들어맞지 않지요. 대칭을 예술의 첫 번째 법칙 중 하나로 선언함으로써 로마 인은 끝없는 문제와 불확실성을 피해 갔습니다.(p182) <건축 강의 1> 中


 로마의 정치 체제에 대해 이해하지 않고서는 로마 미술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미 맣한 것처럼 로마 인들은 정치적인 민족이고, 그런 그들에게 예술은 그리스 인들에게서와 같은 향락이 아니라 도구이고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로마 인은 자신의 방대한 조직 체계에 편입되지 않는 모든 것을 거부합니다. 특정한 예술 형식이 그 예술의 원리들과 조화를 이루는지의 여부를 아는 것은 그의 안중에 없습니다.(p133) <건축 강의 1> 中


  그렇지만, 로마 건축에 대해서는 두 저자의 입장이 다르다. <건축 강의 1> 에서 비올레르뒤크는 자유로운 그리스 문화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반면, 규격화된 로마 문화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이다. 로마의 건축에는 서로 다른 사상과 건축 기법이 기술적으로만 결합했을 뿐 여기에는 로마인만의 철학이 들어갈 여지가 없었다는 것이 비올레르뒤크의 주된 비판 내용이다.


[사진] 로마 상수도관( 출처 : https://www.ancient.eu/Roman_Architecture/)


 에트루리아 인들로부터 로마인 들은 석재들을 건식 쌓기(joined stone / pierre appareillee)한 원형 아치를 받아들였습니다. 캄파니아 인들에게서는 종교 건축의 일반 계획, 그리스식 주범, 주거의 배치와 장식을 배웠지요. 따라서 그들은 별개의 두 원천에서 각각 이런 것들을 빌려다 쓴 셈입니다. 그들은 정반대의 두 원리, 즉 그리스식 인방과 에트루리아식 아치를 결합하려고 했습니다.(p129) <건축 강의 1> 中 

 

  반면, <임석재 서양 건축사 1>에서 로마 건축에 대해 긍정적이다. 저자에 따르면 로마 건축술의 결합은 당연한 것이었다. 테베레 강(fiume Tevere)의 작은 도시 국가가 서쪽으로는 에스파냐, 북쪽으로는 라인강, 동쪽으로는 이집트, 남쪽으로는 북아프리카에 이르는 대제국으로 성장하면서 로마 시민의 의식은 크게 높아졌다. 반면,이를 건축으로 표현하기에는 기존 건축술이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건축술의 결합은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다. 마치 콘크리트와 철근이 결합하여 철근콘크리트가 탄생한 것처럼.


 로마만의 독립적 문명이 시작되면서 로마 고유의 건축도 완성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집단주의와 팽창주의라는 공화적을 대표하는 두 가지 건축적 정체성이 형성되었다. 로마 건축의 집단성은 공화정이라는 정치체제에 의해 최초로 형성되었다. 공화정기 때 집단의식을 형성한 가치관은 로마 민족의 우수성이었다. 집단의식은 건축에도 반영되어 화려한 과시욕의 표출로 나타났다.(p250)... 로마만의 건축을 창출해내기에 이전의 건축술은 역부족이었다. 새로운 건축술의 발명을 포함한 산업기술 체제의 실속 있는 정비가 필요했다. 건축행위를 유발시키는 동기 또한 상식적 수준을 뛰어넘는 비상한 요구가 필요했다. 이 모든 것을 만족시킨 것이 팽창주의였다.... 이 두 가지 상황이 함께 작용하면서 로마 건축은 발전했다.(p252) <임석재 서양 건축사 1 : 땅과 인간> 中


 이처럼, 로마 시대 건축을 바라보는 두 저자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그렇다면, 이러한 입장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개인적으로 이에 대한 해답은 <건축 강의 1>에서는 다루어지지 않은 헬레니즘(Hellenism)으로부터 찾아야 할 것이라 여겨진다.


 [사진] 헬레니즘 시대 건축물(출처 : https://fineartamerica.com/art/hellenistic+architecture)


  기원전 2세기에 나타난 헬레니즘화와 구조기술의 발전은 공화정건축뿐 아니라 로마 건축 전체를 대표하는 특징이었다. 전자는 신전으로 상징되는 고급건축을, 후자는 토목 인프라로 상징되는 실용건축을 각각 대표했다.(p255)...  헬레니즘화는 로마 건축에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의 양면적 영향을 끼쳤다. 구조기술의 발전은 이 가운데 부정적 측면에 대한 치유적 성격을 가지면서 로마 건축만의 특징으로 자리잡았다. 헬레니즘화가 끼쳤던 긍정적 영향은, 로마 공화정 건축의 본격적인 출발을 촉발시키면서 양식의 수준을 처음부터 일정하게 유지시켜 준 것이었다... 헬레니즘화에는 부정적 측면도 있었다. 로마 건축은 헬레니즘 건축을 모방하면서 자신만의 정체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헬레니즘 건축의 아류에 머무는 한계를 갖게 되었다.(p256) <임석재 서양 건축사 1 : 땅과 인간> 中


 신라 석굴암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여겨지는 헬레니즘 문화는 고대 그리스와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III Magnus, BC 356 ~ BC 323)이 만들어낸 제국 안에서 그리스와 페르시아, 이집트, 인도 등 여러 문명(文明 Civilization)이 통합되면서 탄생한 헬레니즘이라는 제국 문명이 이미 존재하였기 때문에, 로마는 새로이 만들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여기에 숟가락만 올린 것은 아니었을까. 로마인들 특유의 실용성을 생각한다면, 그리 무리한 추정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스의 건축은 언제나 수직, 수평선들과 표면들의 조합으로 진행됩니다. 로마의 건축은 이 두 가지 원리들에 아치와 궁륭, 즉 곡선과 오목면을 추가합니다. 공화국 시대부터 우리는 로마 건축이 이 새로운 요소를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그것은 곧 지배적인 원리가 되고, 결국은 앞의 두 원리들을 지배하게 됩니다.(p179) <건축 강의 1> 中


  시간이 흘러 로마 제국 전성기가 지나고 비잔틴 시대에 들어서면서, 제국의 중심은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플과 인근 그리스 지역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지리적으로 비잔틴 제국은 그리스에 위치했지만, 비잔틴 시대의 건축은 이전 그리스 건축과는 달랐다. 제국 말기 로마의 국교로 공인된 기독교(基督敎)와 헬레니즘의 영향으로 비잔틴 문화라는 독특한 양식이 출현하게 된다. 


 비잔티움의 그리스 인들은 포착할 수 없는 추상들, 철학적/종교적 교의들에 대해 토론하면서 한편으로는 조형 미술에 이교적 형태를 부여할 것은 주장합니다. 그것은 이 민족의 본능과 정신 사이에 존재하는 독특한 모순입니다.(p335)... 아시아와 서양의 중간에 위치한 이 나라는 이중적인 능력을 부여받았습니다. 그리스는 예술의 아름다움, 불변의 아름다움을 소중하게, 때로는 완고하다시피 보존합니다. 반면 그들은 과학과 변증법의 방대한 범위에서, 그리고 도덕적 영역의 엄격한 탐구에서 앞장서며 현대인들조차 이끌어 갑니다.(p336) <건축 강의 1> 中 


[사진] 성소피아 성당(출처 : https://www.flickr.com/photos/24467253@N04/5890779855)

 

 비잔틴 교회, 넓게는 비잔틴 건축의 특징은 중앙집중형으로 대표된다. 비잔틴 건축은 중앙집중형 공간의 보고이다. 비잔틴 건축은 90퍼센트 이상이 중앙집중형 공간으로 구성된다. 통사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에도 비잔틴 건축은 중앙집중형 공간이 가장 발전한 시기였다. 중앙집중형 공간의 역사에서 비잔틴 건축은 가장 발전한 구성기법과 가장 풍부한 예를 남긴 시기였다. 비잔틴 건축은 르네상스나 바로크 등과 같이 이후 시기에 중앙집중형 공가을 추구하는 경향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p338) <임석재 서양 건축사 2 : 기독교와 인간> 中


 <건축 강의 1>에서 비올레르뒤크는 그리스 문화와 로마 문화를 건축학의 관점에서 접근한다. 그는 로마 문명은 이질적인 문화의 단순한 결합으로 규정하고 비판을, 그리스 문명은 자유와 이성을 바탕으로 한 우수한 문화로 칭찬을 아끼지 않는데, 저자의 이런 관점은 '작은 사회 = 자유로운 사회'라는 생각 위에 놓인 듯하다. 


 민족성(nation / nationalites)의 역사를 근대적 관념들에 따라 판단하려고 하는 것은 오류입니다. 아테네 인들의 애국심은 로마 시민들이나 19세기 파리 인들의 애국심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리고 민족성보다는 이런 사회(association / societe)의 상태가 예술의 발전에 현저하게 유리합니다. 그들에게 애국심이란 로마나 근대 유럽 국가들에게서 발전된 감정보다는 한 사회의 구성원들 사이에 존재하는 연대에 가까웠습니다.(p116) <건축 강의 1> 中


 그렇지만, 이러한 비올레르뒤크의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 건축사 측면에서 당대 우수한 고대 문명의 결정체인 헬레니즘을 서방 세계 곳곳에 전파시켰다는 것만으로도 로마 문명은 충분히 제 할 일을 한 것이 아닐까. 모두가 창업을 할 수 없고, 창업(創業) 이후에 수성(守城)이 어렵다는 말도 생각해본다면, 로마 문명 나름의 역할을 잘 수행한 것이 아니었을까. 또한, 로마 문명은 처음으로 세계 종교인 기독교를 탄생시켜 비잔틴 예술을 만들어냈다는 점도 고려한다면, 로마 예술이 헬레니즘의 아류라는 비판도 지나친 면이 있다 생각된다. <건축 강의 1>과 <임석재 서양건축사>를 통해 로마 건축과 로마 문명의 의의에 대해 생각하면서 이번 페이퍼를 마무리 한다.


PS. 그리고, 무엇보다도 로마 시대에 이루어진 가장 큰 변화는 개인 생활(private life)의 등장이 아닐까 생각된다. 전체주의 도시 공동체의 부분으로 느끼는 개인의 자유와 거대한 제국의 보호 아래 느끼는 개인의 평온함. 서로 다른 이들 가치 중에서 우열을 가리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도시에서는 개인 주택 규모와 장식이 극히 소박했다. 모든 웅장함과 사치는 공공 분야, 즉 도시만이 누릴 수 있다고 생각되었으며, 그리고 이러한 도시 자체가 개인과 공동체의 융해,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합치에 기초를 두고 있었다. 여기서 개인은 자신이 정치적 공동체에 속하고 있다는 사실에 모든 것을 의지하고 있었다... 헬레니즘 시대에 들어서면 고전 시대의 도시가 위기에 처하면서 변화가 초래되는데, 한마디로 공적인 영역이 줄어드는 대신 사적인 영역이 괄목할 만큼 확대된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주택이 점점 사치스러워지고 개인 소장품이 증대되는 동시에 예술 작품이 상품으로 자리잡게 되는 현상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p462) <사생활의 역사 1>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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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5 02: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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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5 06: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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