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0 - 헌법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0
하인츠 몬하우프트.디터 그림 지음, 오토 브루너 외 엮음, 송석윤 옮김, 한림대학교 한림과 / 푸른역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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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기체적 국가관은 국가 조직을 바로 인체와 비교하여 그 용어를 획득한다. 그러나 상태라는 요소는 'status' 개념과도 상응하는 점이 있다. 그 점에서 '헌법 Konstitution, Verfassung' 개념이 '국가 Staat' 개념 발생과 맺는, 근대에까지 이르는 밀접한 연관성을 볼 수 있다.(p14)... 법학적 헌법 개념은 실정법적 규범 질서에 맞추어져 있고, 이 규범 질서는 국가와 관련이 있다. 오늘날 전반적으로 볼 때 "국가와 국가 헌법은 본질적으로 상호 의존"하는 보완적 개념이다. 법학외적인 헌법 개념은 정당한 지배의 초실정법적 질서나 사회에서의 사실적 권력 관계와 연결되는데, 이때 법학 외적 헌법 개념이 갖는 법학적 헌법에 대한 관계가 오늘날 헌법학이 궁구하는 중심적 문제이다._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0 : 헌법>, P15


 라인하르트 코젤렉(Reinhart Koselleck, 1923 ~ 2006)의 개념사 사전 20번째 주제는 헌법(Verfassung)이다. 개념사 사전은 역사 속에서 Verfassung의 의미가 고대 그리스어  'Politeia'에 해당하는 군주정, 귀족정, 민주정 등 정체(政體)에서 바람직한 '정치 질서'의 의미로 확장되어 사용된 과정이었음을 보여준다. 이와 함께, 이상적인 '질서'의 현실적 구현으로 법률 체계인 '헌법'이 나타나면서 이론과 현실 사이에 나타난 괴리도 드러난다. 이 과정에서 '적법한 질서'는 의학 용어로 표현되면서, 일종의 구조(構造)로 이해되었고, 이는 법률의 유기체적 구조 형성에 이바지하게 된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이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요한 15:5) 


 'Politeia'개념은 처음에는 시민의 권리라는 의미에서 폴리스에 대한 각 개인의 참여를 표현하였다.. 그 다음 국가 속에서 구체화되는 시민의 총체와 공동체, 그리고 더 나아가 국가 내 시민들이 살아기는 질서와 지배권 행사의 형태를 표현했다. 또한 이 개념은 "시민권"과 "바람직한 민주정"이라는 뜻을 넘어 "적법한 질서" 그 자체라는 의미에서 규범적 요소를 획득하였다._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0 : 헌법>, P19


 발레리올라가 의학적 constitutio 개념을 내용적으로 발전시켰고 이러한 개념이 국가 질서를 표현하는 데 유용한 많은 의미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 개념을 국가 공동체로 적용한 것은 발견되지 않는다. 리올란 Riolan도 역시 1611년 인체라는 신의 창조물에서 구조적인 요소를 정형화하였다._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0 : 헌법>, P42 


 근대 초기에 '정치적 질서'는 다시 '국가의 상태'를 설명하는 용어로 확장되면서, 'Verfassung'는 구체적인 실정법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다만, 실정법으로 나타난 'Verfassung'은 관념적인 '적법한 질서'로서의 'Verfassung'과 차이를 보이게 된다.  근대 유럽의 정치사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분류한 군주정, 귀족정, 민주정 등 여러 정체(政體)가 특별하게 우위를 점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들을 모두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이상적인 질서를 설명하려는 노력은 '실질적 의미'와 '형식적 의미'의 분화로 이어지게 된다.


 'Verfassung'은 처음에는 국가의 정치적 상태를 포괄적으로 표현한 경험적 개념이었지만, 점차 비非법적인 구성 요소들을 배제하여 법적으로 새겨진 국가의 상태로 집약되어갔다. 'Verfassung'은 근대 입헌주의로의 이행 이후 마침내 국가 통치권의 조직과 행사를 규율하는 실정법과 합치됨으로써 서술적인 개념으로부터 규범적인 개념이 되어갔다._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0 : 헌법>, P102


 로텍은 대상의 관점에서 정의한 헌법 개념 - "최고 국가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이나 기관에 대한 규율과 최고 국가 권력을 행사하는 형식과 방식에 대한 규율" - 에 "기본법상 규정된 모든 것을 포괄하는" 두 번째 헌법 개념을 부가한다. "후자의 개념이 더욱 일상적이며 실용적 수요에 더욱 상응하게 보이는 반면, 실질적인", 즉 정부 형태와 무관한 "규정을 배제하는 전자의 개념은 학문적으로는 더 순수하게 보인다." 실질적 의미와 형식적 의미에서의 '헌법'을 이렇게 구분함으로써 많은 오랜 논쟁이 해소된다._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0 : 헌법>, P150


  이처럼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0 : 헌법>에서는 '헌법 verfassung'이라는 용어가 '정치 체제'를 의미하던 본래의 의미에서 '정치 질서'로의 의미 확장을 통해 '국가 공동체의 규범 구조'가 되었음을 확인한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가 현실적인 법으로 구현되었을 때 발생하는 '실질'과 '형식'의 차이를 설명하려는 노력이 의미 분화로 이어졌음도 알게 된다. 동시에, 이러한 의미 분화가 이들이 서로간에 미치는 영향력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카를 슈미트(Carl Schmitt, 1888~1985) 이론 속에서 화인할 수 있다.


 (슈미트에게) "헌법 Verfassung과 실정 헌법 Verfassungsgesetz은 여기서 동일한 것으로 다루어진다." 슈미트 자신이 이러한 연결을 한 것은 아니지만, 실정적 헌법 개념은 절대적 헌법 개념의 하위 항목에 속하는 한편 실정 헌법은 상대적 헌법 개념에 속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이 둘은 서로 무관하게 병존하는 것은 아니다. "실정 헌법"은 오히려 "헌법을 근거로 비로소" 유효하며 "헌법을 전제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헌법의 본질은 법률이나 규범이 아니라", 정치적 통일체의 유형과 형태에 대한 전체적 결단이다._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0 : 헌법>, P166


 법적 헌법은 시민적 사회 모델의 관철과 정착을 위한 수단으로 생겨났다. 이 모델은 사회의 자기 조정 능력에서 유래되었고 국가는 단지 개인적 자유와 사회적 자율을 보장하는 수단으로서만 필요한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헌법이 지니는 구조적 문제는 국가를 보장 기능에 국한하고 국가의 활동을 부르주아 사회의 이해관계에 구속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자기 조정 능력이라는 전제가 옳지 않은 것으로 판명된 이후, 다시 국가가 정의로운 사회 질서를 적극적으로 형성할 것이 요구되었다. 이를 통해 국가의 임무가 다시 실질화된다._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0 : 헌법>, P175


 개인적으로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0 : 헌법>의 역사 속에서 이론과 현실이 다를지라도 이들이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는 개념어 안에 담긴 의미, 의미 안에 담긴 시대 정신, 시대 정신에 실린 희망과 바람이 조금씩이라도 그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비록 그 움직임이 혁명(革命)은 아니더라도, 빅 히스토리(Big History) 관점에서는 의미있는 움직임이 이루어지고, 그 움직임을 진보(進步)라 부르는 것은 아닐런지 생각해본다... 

(프리스 Fries에 의하면) 국가의 목적은 그 구성원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가피한 법률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결코 자유로운 선택을 통해 구성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가의 구성원들과 함께 살고자 하는 즉시 불가피한 법률을 통해 구성원이 된다. 따라서 여기에서 공동체의 목적을 규정하고 이에 가입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결합 계약이 아니라 법률의 명령이다. -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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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0 - 헌법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0
하인츠 몬하우프트.디터 그림 지음, 오토 브루너 외 엮음, 송석윤 옮김, 한림대학교 한림과 / 푸른역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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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이 다른 법들과 구분되는 지점은 무엇일까. 사회계약에 기초해서 본다면, 민법은 '소유'관계를 기본으로 분쟁 시 우선 순위를 지정한 법으로 볼 수 있을 것이며, 형사법(행정법)은 '공익'에 근거하여 최소한의 기준을 제시한 것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 법이 모두 '국가'라는 공동체를 가정한다면, 헌법은 '국가'라는 실체를 규정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갖는다. 수많은 법령들이 여러 개의 수학 공식이라면, 헌법은 '1+1=2'과 같은 공리(axiom)에 해당할 것이다.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0 : 헌법>에서는 역사 속에서 헌법의 전개 과정과 함께 이념으로서의 헌법과 실정법으로서의 헌법의 다른 모습이 서술된다...

'행정'은 오늘날보다 더 포괄적으로, 자신의 목적을 추구하는 국가의 모든 작용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헌법과 행정법 사이의 차별화가 생겨난다. "헌법은 국민(피통치자)에 대한 관계에서 주권자(통치자)에게 귀속되는 권리와 기속력의 총체이다. 행정법은 통치자가 그에게 귀속하는 권리와 기속력을 피통치자에 대하여 행사함에 있어 따라야 할 그러한 법 규범의 총체이다."_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0 : 헌법>, P149

로텍은 대상의 관점에서 정의한 헌법 개념 - "최고 국가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이나 기관에 대한 규율과 최고 국가 권력을 행사하는 형식과 방식에 대한 규율" - 에 "기본법상 규정된 모든 것을 포괄하는" 두 번째 헌법 개념을 부가한다. "후자의 개념이 더욱 일상적이며 실용적 수요에 더욱 상응하게 보이는 반면, 실질적인", 즉 정부 형태와 무관한 "규정을 배제하는 전자의 개념은 학문적으로는 더 순수하게 보인다." 실질적 의미와 형식적 의미에서의 '헌법'을 이렇게 구분함으로써 많은 오랜 논쟁이 해소된다._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0 : 헌법>, 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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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9 - 법과 정의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9
프리츠 로스 외 지음, 오토 브루너 외 엮음, 엄현아 옮김,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기획 / 푸른역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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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에 대한 법의 의존성과 관련되는 다양한 견해들은 법의 이해와 적용에 핵심적인 두 분야, 즉 법원론 法源論 Rechtsquellenlehre과 법 적용론 Rechtsanwendungslehre에 영향을 남겼다. 1)번 관점에서 볼 때 독립적 자연법은 구체적인(실증적인) 규정에서 직접적인 법원(法源, Rechtsquelle)이 된다. 이에 반하는 실정법은 무효이며, 더욱이 실정법의 흠결은 자연법으로 메울 수 있다. 따라서 실증적 규정을 해석하거나 적용할 때에는 자연법 원칙이 우선이다. 두 번째로 언급되는 법실증주의적 입장에서는 자연법을 법원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법을 적용하는 데에 초실증적인 원칙은 본래 중요하지 않는데, 다만 모든 법에는 해석이 필요하고 정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법을 적용할 때 주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_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9 : 법과 정의>, P14


 라인하르트 코젤렉(Reinhart Koselleck, 1923 ~ 2006)의 개념사 사전 19번째 주제는 법과 정의(Recht, Gerechtigkeit)다. 본문에서는 고대 그리스 이래 '정의'라는 이상을 구현하기 위한 현실적인 방법으로 '법' - 특히, 실정법 - 의 변천이 다루어진다. 거칠게 요약해서 '정의 正義'는 보다 높은 단계의 '이상 理想'이라면, '법 法'은 사회를 규정하는 강제력으로 표현될 수 있겠다.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현실 속에서 법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이 안에 담기는 내용인 '정의'에 대한 인식도 시대에 따라 달라졌는데, 이 부분이 개인적으로 눈에 띈다. 특히, 사회주의 이론의 등장 이후 '정의'에 '(경제적인) 평등'의 내용이 추가되면서 근대 이후 '정의'에 대한 큰 개념 변화가 일어났다.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els는 '정의'를 미덕이라고 보는 점에서 플라톤을 따랐고, 이로써 근대에까지 이르는 확고한 전통을 마련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것을 행한다"라는 플라톤의 정의가 사회적인 관계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며 비판했다. 정의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미덕이다. 정의가 가장 완벽한 미덕인 이유는 인간이 정의를 자신에게 행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행하기 때문이다._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9 : 법과 정의>, P25 


 하버마스 Habermas의 "실용적 담론 paraktischer Diskurs" 이론은 독일에서, 그리고 롤스 Rawls의 "정의 이론 Theorie de Gerechtigkeit"은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다. 롤스는 칸트와 사회 계약설을 인용해 두 가지 정의의 원칙을 세운다. 1) 모든 사람은 동일한 시스템에서 누구에게나 적용 가능한 평등한 기본적 자유가 보장되는 가장 포괄적인 시스템에 관하여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 2) 사회적 그리고 경제적 불평등은 (a) 그것이 모든 이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 있도록, (b) 모든 이들에게 개방된 지위 및 공직과 결부될 수 있게 생성되어야 한다. '실정법'과 '정의'의 관계는 저항권을 둘러싼 논쟁을 통해 다시 담론화되기 시작했다.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9 : 법과 정의>, P143


 상대적으로, '법'의 개념은 '정의'에 비해 오히려 안정적으로 비춰진다. 이는 스토아 학파 이후 정착된 '영원법 - 자연법 - 인정법'의 구도가 근대 이후에도 유지되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세계 법칙인 '영원법'은 기독교의 '신(神)'의 의지와 결합되며, 절대적인 법칙으로 자리매김하며, '자연법'은 신의 의지의 현실로의 적용, '인정법'은 '실정법'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러한 구도를 만든 이가 아우구스티누스(Sanctus Aurelius Augustinus Hipponensis, 354~430)인데, 이를 <삼위일체론>에 의 구도에 맞춰본다면, '영원법'은 성부(聖父), '자연법'은 성자(聖子), '인정법'은 성령(聖靈)에 해당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소피스트들은 '자연'과 '제정법'을 엄격하게 구별했지만 그 후 스토아학파들은 우주적 관찰 방법을 통해 '법'과 '정의'의 관계를 더욱 발전시키게 될 특색 있는 추론 관계인 세계법칙(영원법 lex aeterna) - 자연법(lex naturalis) - 인정법(lex humana)을 탄생시켰다. 영원법은 이성의 규범으로서 모든 현세의 존재를 규정하며, 세계의 이성이다. 이는 동시에 인간 본성의 법칙(자연법 lex naturalis), 인간 본성의 올바른 이성을 구성한다._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9 : 법과 정의>, P30


 영원법 lex aeterna은 하나님의 의지에서 나온 것이다. 그 내용은 하나님의 불변의 창조 질서로, 스토아의 세계법칙을 대신한다. 자연법은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 주관적인 것으로 전환된다. 즉 자연법은 영원법을 인간의 정신 속에 옮겨놓은 것으로, 주관적인 원칙이며 정의가 본래 타고난 형상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연법의 원칙으로 다음 속담을 언급했다. "자신이 겪기를 원하지 않는 것은 아무에게도 하지 말라 Nemini faciant, quod pati nolunt."_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9 : 법과 정의>, P40


 영원법과 자연법이 이와 같이 주어진 것이라면, 근대 이후 법에 대한 논의는 실정법에 집중된다. 영원법이 신의 의지와 연관된다면, 실정법은 인간의 자유 의지와 연계된다. 특히,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 ~ 1778)는 사회 계약을 통한 일반의지의 결합이 '국가'임을 밝혔는데, 근대 이후 실정법의 주제는 '국가'와 이에 대한 '저항권'의 논의로 넘어가게 된다...


 존재만으로 이미 진실하고 정당한 국가 의지 Staatswille로 나아가는 길을 루소는 "volonte generale", 일반 의지 Gemeinwille에서 발견한다. 일반 의지는 사회적 결합을 위한 토대이다. 일반 의지는 개별 이익이 서로 일치하여, 단순한 "특수 이익 Sonderinteresse"이 아닌 전체 이익의 일부로 등장하는 경우에만 형성된다. 개별 의지의 총합은 만인의 의지 der Wille aller이다. 개별적인 특수 이익만을 목적으로 하는 개인 의지는 서로 상반되기 쉽고, 조정 과정에서 서로를 무력화시킨다고 루소는 생각한다. 결국 남는 것은 개별 의지 중에서 모두에게 공통된 부분인 "일반 의지"이다. 일반 의지가 무엇인지는 다수에 의해서 결정된다.(p88)... 전체 국민의 자유로운 합의에서 나온 모든 법은 그것이 일반 의지에도 상응한다면 모두의 개별 이익을 가능한 한 많이 반영하기 때문에 공정하다. 따라서 모든 국법은 공정하다._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9 : 법과 정의>, P88


  개념어 사전에서는 플라톤(Platon, BC 428 ~ BC 348)이 <폴리테이아 Politeia>에서

'정의'를 정체를 유지한 주요 덕목으로 정의한 이후, 이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법'의 변천사를 보여준다. 그리고, 독자들은 고대 그리스 시대에서도 '정의'와 '법'에 대한 통일된 정의가 내려지지 않아 오랜 기간 이들 사이에 좁힐 수 없는 차이가 있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법원들, 특히 연방헌법재판소는 국가사회주의 불법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라드브루흐 공식 Radbruchsche Formel"을 적용했는데, 이에 따르면 부당한 실정법도 원칙적으로 구속력을 유지하지만, "실정법과 정의 사이의 모순의 정도가 너무 지나쳐서 해당 법이 '부당한 법으로서 정의에서 벗어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않다" 는 내용이다.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9 : 법과 정의>, P142


 개인적으로 과거 '영원법'으로 규정된 영원불변한 가치로서 '정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과연, '불변의 가치'로서 '정의'는 존재하는 것일까? 과거의 정의와 오늘날의 정의가 다른 의미를 갖는다면, 과거 제정일치 시대의 정의가 담겨있는 종교 율법이 오늘날 우리 삶을 구속할 수 있는 것일까? 등등. 쉽게 답할 수 없는 물음이기에 이에 대해서는 천천히 생각하기로 하되, 개념사 사전을 통해 근대 법전의 법리(法理)에 대해 생각해 봤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이번 리뷰를 갈무리하자...

전통 자연법 이론에서 논란이 되었던 전제인 존재 Sein에서 당위 sollen를 이끌어 낸 방식을 처음으로 단호하게 비판한 이가 흄 Hume이었다... 흄은 인간 행위의 최종 목적을 규정할 능력이 이성에게는 없다고 보았다(p106)... 칸트는 법과 도덕의 내용적 관련성, 즉 윤리와 법의 기본 원칙이 동일하다고 굳게 믿는다. "그러니까 법 이론과 선 이론은 서로의 의무가 다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의무에서 발생하는 의무적인 행위"를 요구하는 윤리학과는 달리 법은 - 그 동기가 무엇이든 간에 - 외적으로 합법적인 행위라면 만족한다는 점에서 "다르다는 말은 틀리다." -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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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7 - 민주주의와 독재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7
크리스티안 마이어 외 지음, 오토 브루너 외 엮음, 나인호 옮김,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기 / 푸른역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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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그리스 초기에는 한 공동체의 질서를 명명하기 위한 결정적인 기준으로서 작용했던 것이 법(노모스 Nomos)였다. 기원전 6세기에는 이러한 노모스적 질서를 긍적적으로 지칭하는 유일한 명칭이 발견되는데, 그것이 '에우노미아(Eunomia)'이다.(p14)... 에우노미아의 반댓말은 이 단어의 부정형 명사인 '뒤스노미아 Dysnomia' 또는 '뒤노미아 Dynomia', 즉 "위법적이고, 무질서한 상태"였다._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7 : 민주주의와 기초>, p15


 라인하르트 코젤렉(Reinhart Koselleck, 1923 ~ 2006)의 개념사 사전 17번째 주제는 민주주의(Demokratie)와 독재(Diktatur)다. 개념사 사전은 민주주의 제도의 시작으로 알려진 고대 그리스 폴리스의 정체 역시 출발은 귀족에 의한 지배 체제로부터 시작되었음을 보여준다. 민주주의 정체가 보편적인 정체가 되는 것은 이후 법률에 의한 지배가 '민회(demos)'에 의해 보장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된 이후다. 다만, 이러한 정체(政體)가 최선의 정체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뉘어졌으며, 민주주의를 보는 사상가들의 시각 역시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확히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민주주의에서 다수가 (그리고 과두정에서는 소수가) 최고의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은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우연한 현상에 불과하다. 지배권을 소유하고 있는 자들 간의 실제적 차이란 바로 가난한 자와 부자의 차이에 있다"(p21)...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폴리테이아"의 원리는 자유와 재산이다. "폴리테이아"에서 지배 집단은 중간층(대개 중갑보병)이다. 이들이 최상의 시민이다.__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7 : 민주주의와 독재>, p31


 플라톤에게 민주주의란 무엇보다 자유에 의해 규정된 것이었다. 평등이란 모든 것과 모든 이에 대한 관용의 표현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자유에 대한 격렬한 요구의 결과이기도 하다... 플라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통치자와 피치자의 교체라고 규정한 바로 그 지점에서 이들 간의 상호 동화 또한 이들의 역할이라고 단호히 말했다... 플라톤에게 민주주의적 인간 유형이란 신분에 따라 결정되거나, 아니면 확신이나 신념 혹은 이해관계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나라, 그 자신의 타고난 기질에 의한 것이다._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7 : 민주주의와 독재>, p28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 ~ BC 322)는 민주주의의 주체를 중갑보병으로 참전할 수 있는 능력있는 자들에 의한 통치라고 바라본 반면, 플라톤(Platon, BC428 ~ BC348)은 타고난 기질에 따라 민주주의적 인간 유형이 결정된다고 해석한다. 거칠게 요약한다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제도를 뒷받침할만한 현실적인 능력을 중요하게 생각한 반면, 플라톤은 선천적인 능력을 강조했다고 정리될 수 있겠다. 이러한 두 철학자의 관점 차이는 실천적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관념적인 플라톤 철학의 연장선상에 놓인 듯하지만, 이들의 전제 모두가 현실 정치에 그대로 적용되기 어렵다는 한계를 갖는다. '두터운 중산층'을 배경으로 한 아리스토텔레스식 민주주의와 '덕성(德性)을 갖춘 다수에 의한 지배'라는 플라톤식 민주주의는 모두 오랜 기간 언급되지 못했다. 사용되더라도 '민주주의' 라는 용어는 '중우정치(衆愚政治, ochlocracy)의 전형'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오랜 기간 유럽에서의 정체는 '군주정'과 '귀족정'이 차지해왔다.


 이론적 논의가 절대적 민주주의에서 대의제적 민주주의로, 또한 소규모의 - 원시적인 민주주의에서 거대한 영토의 문화적으로 발전된 민주주의로 옮아감에 따라 마침내 민주주의와 귀족정의, 그리고 무엇보다 군주정과 헌법정치적인 대립이 약화하였다. 민주주의가 국가 헌법 질서를 구성하는 요소 또는 그 일부분 정도로 파악되면 될수록, 상기한 나머지 정부 형태들과 대립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일이 점점 더 적어졌다._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7 : 민주주의와 독재>, p107


 민주주의 개념의 의미는 부정적인 관점에서도 등장하는데, 이러한 언어 사용 관례를위해서는 버크 Burke와 그의 책을 번역하여 영향력을 발휘한 겐츠 Gentz가 큰 역할을 했다. 이들에 의하면, 인민은 그 자신의 주권자로서 그들의 숫자가 증가하는 만큼 그에 비례하여 자신에게 경솔함을 허용한다. 그리고 이러한 경솔함은 다시 권력의 남용을 허락한다는 것이다._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7 : 민주주의와 독재>, p93


 이러한 '민주주의'가 부활하게 된 시점은 프랑스 대혁명이후다.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이 혁명에 시대 정신을 불어넣고,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 1805~1859)이 민주주의로의 이행에 필연성을 강조하면서 이전 민주주의와는 다른 형태로의 제도로서 받아들여지게 된다. 


 헤겔의 세계정신이 민주주의를 이미 넘어선 것이었다면, 토크빌이 말하는 섭리란 바로 민주주의로 향해 나아가고, 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민주주의를 향해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소용돌이라는 이러한 보편사적이고 미래 예견적인 이해는 명백히 계몽사상과 프랑스혁명의 후계자 위치에 서 있는 것이었다. 즉, 토크빌에게 있어서 민주주의를 향한 운동은 강제적인 것이었고 따라서 긍정해야 하는 것이었다._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7 : 민주주의와 독재>, p145


 1857년 블룬칠리는 다음과 같은 언급을 했다. "근대 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는 고대 헬레네의 그것과 다르다. ..... 바로 고대 민주주의의 특징, 즉 추첨에 의한 공직과 민회는 선거에 의해 공직이 맡겨지고, 미숙한 민회 대신 선거에 의해 엄선된 대표자 집단을 선호하는 새로운 민주주의에 의해 비난을 받고 있다. 바로 이러한 두 가지의 가장 중요한 관계에 있어서 민주주의적 원리는 더 분별력 있고 더 유능한 인사들에 의해 운영되는 귀족적정인 장점을 통해 개선되었다. 고대의 민주주의는 직접적인 것이었고, 근대의 민주주의는 대의제적인 것이다._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7 : 민주주의와 독재>, p123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에서 우리는 '법률'에 의한 지배를 보장받기 위해 출발한 민주주의 제도가 19세기 민족국가 출현과 함께 대의 명분을 쌓기 위한 수단으로 부활한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 책을 읽으며 개념어 사전 속의 역사 속에서 한 가지 물음을 던지게 된다. 민주주의가 '다수에 의한 지배'를 의미하지만, 민주주의의 출발과 부활 과정에 있어 정말 데모스(demos)의 의지가 작용했는가. 어쩌면 이것은 현 체제에 불만을 가진 다른 세력들이 들고나온 '천명(天命)'이라는 이데올로기는 아니었는지. 민주주의의 안에 '민중'은 처음부터 없었기 때문에 이로 인한 갈등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를 생각하게 된다. 이와 함께 민주주의 안에 민중이 없다면, 어쩌면 맹자(孟子)가 말한 '왕도정치 王道政治'가 오히려 더 민본(民本)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이런 관점에서 중요한 문제는 시스템이라는 하드웨어가 아니라, 운영 프로그램인 소프트웨어라는 생각도 든다.


 나우만은 독일제국의 위대한 군주정은 여러 후진적인(농업적, 산업적, 성직자적 성격을 지닌) "귀족세력들"과의 연합을 포기하고, 이들을 대신해서 "새로운 독일의 민주주의"와의 결합을 추구할 때만 유지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민주주의는 낡은 민주주의와도 구별되는데, 이러한 민주주의가 경제와 국가의 현대적인 "거대 경영"에 적절하고도 적극적인 참여를 요구하는 성장하는 "산업적 인민 Industrivolk"에 걸맞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_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7 : 민주주의와 독재>, p173


 오늘날 무엇이 귀족적 지위를 요구하는가? 지성과 돈이다. 이 둘의 힘이 함께 합쳐졌을 때 그러하지, 지성없이 돈만으로는 안 된다고 한다. 그러하다면 제1차 헌법의 오류가 재현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상원에는 대지주, 상인, 공장주, 부유한 자영업자, 교수, 의사, 약사, 성직자, 교사 및 공무원의 대표자들이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하원은 보통선거권을 통해 구성되어야 한다. 이러한 권력 분립이 축복을 가져다줄 것이다._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7 : 민주주의와 독재>, p109


 이 책의 다음 주제는 '독재(獨裁)'다. 책에서는 비상대권(非常大權)을 의미했던 '독재'가 1848년 혁명 이후에는 '스스로 생산된, 권력이 권력으로서 지배하는 자리' 개념으로 변화되는 역사가 소개된다. 이들의 차이는 짧은 시기 집중된 권력과 영속적인 집중된 권력으로 정리될 수 있을 듯하다. 이같은 의미의 변화는 지속적으로 '위기危機'가 강조되는 오늘날 현대 사회 분위기와도 결코 무관치 않아 보임을 확인하며 책을 덮는다...


 (루소에 의하면) 진정한 독재의 전제 조건은 명백히 비상사태 발생에 있다. 독재는 구체적인 비상사태 방지에만 한정되는 것이 그 본질이며 복구를 염두에 두고 입법 권력을 정지시키는 것이 그 특징이다. 독재가 시간적 최소 한도를 넘겨 계속되고, 지속적인 비상사태에 맞서야 한다는 구실을 내세우며 입법 권력으로 등장한다면 이 독재는 '전제적이거나 무익한 tyrannique ou vaine' 것이다. 이처럼 독재와 폭정 Tyrannis은 루소가 보기에 서로 이웃해 있는 현상이다._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7 : 민주주의와 독재>, p191


 1930년대에는 세 가지의 완전히 다른 독재 개념들이 서로 대립하고 있는데, 이들 간의 최종적 논쟁은 책들이 아니라 마침내 전쟁터에서 완성되었다. 자유주의자들의 개념은 가장 오래된 전통을 갖고 있는데, '독재'를 한 개인 혹은 몇몇 개인으로 이뤄진 한 집단의 비非헌법적인 권력, 즉 반反외회주의적이고 제한받지 않은 권력이라고 부정적으로 파악한다...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은 1935년까지 레닌이 1919년 제기한 "부르주아 민주주의냐 프롤레타리아 독재냐"라는 양자택일이야말로 이 시대가 취해야 할 결정적인 선택이라는 명제를 확고히 견지하고 있었다... 파시즘적/민족사회주의적 해석은 다원주의적인 정당민주주의와 이것의 일시적 변형태인 독재와 대립한다고 주장된 특별한 종류의 민주주의에서 자신들 고유의 체제가 갖는 특수성을 찾았다._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7 : 민주주의와 독재>, p214


요컨대 크세노폰이라는 가명을 썼던 자는 귀족과 인민 사이의 원칙적이고도 깊은 분열을 보았던 것이다. 양 집단의 여러 이해관계와 견해, 그리고 정치 전체는 상호 대립적이었고, 합의를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이에 상응하여 민주주의는 어떤 형태로든 본질적인 향상을 보지 못했고, 단지 현 상태를 유지하거나 아니면 몰락의 길을 걸을 뿐이었다.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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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6 - 역사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6
라인하르트 코젤렉 외 지음, 오토 브루너 외 엮음, 최호근 옮김,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기 / 푸른역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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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포함하면서 '역사'는 이미 경험된 것과 아직도 경험되고 있는 모든 것을 규율하는 개념 ein regulativer Begriff이 되었다. 그 이후로 이 개념은 단순한 이야기나 역사학의 영역을 훨씬 초월한다.(p12)... '즉자와 대자로서의 역사 Geschichte an und fur sich' 개념 속에는 예전부터 수많은 의미의 결이 유입되었다. 근대적 역사 개념은 모든 것들을 거부하지 않고, 예전의 의미 영역들 가운데 많은 부분을 자기 안에서 결합하였다._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6 : 역사>, p13


 라인하르트 코젤렉(Reinhart Koselleck, 1923 ~ 2006)의 개념사 사전 16번째 주제는 역사(Geschichte, Historie)다. 개념사 사전에 의하면 근대 이후 '역사'의 특징은 크게 '즉자와 대자로서의 역사' 그리고 '세계사'로 요약된다. 마치 강(江)이 수많은 시냇물들의 흐름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거대한 물줄기로 변해가는 것처럼 '즉자와 대자로서의 역사' 라는 근대적 개념은 당연하게 보이지만, '역사'의 역사는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역사란 인간, 자연, 신, 이 세 종류에 대한 실화이다 Historiae, id est, verae narrationis tria sunt genera : humanum, naturale, divinum." 인간의 역사서술은 개연적인 것을 다루고, 자연사는 필연성을 다루며, 신적인 역사는 종교의 진리를 다룬다. 이러한 연속적 관계를 세 개의 법이론과 연관시켰던 보댕은, 바로 이 세 가지 역사의 관계 속에서 그 다음 단계로 갈수록 확실성이 증가한다고 보았다(p187)... 자연과 성사가 일반적인 역사 과정에 편입됨으로써, 역사 개념은 인간 경험과 기대의 근본 개념으로 부상하였다. '세계사'라는 표현은 이제 이 과정의 결과를 재현하는 데 특히 적합하게 되었다._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6 : 역사>, p194


 보댕(Jean Bodin, 1530 ~ 1596)이 내린 역사의 정의에는 인간, 자연, 신 이라는 3주체가 표현된다. 고대에는 각각 분리된 주체들이 중세를 거치면서 신(神)의 질서가 인간의 질서에 영향을 미쳤고, 근대에 자연 법칙의 발견을 통해 자연(自然)이 인간과 분리될 수 없음을 깨닫는 일련의 과정이 오늘날 서양의 역사 개념이 성립이라는 사실을 <개념사 사전>을 통해 알게 된다. 이같은 과정의 결과 계몽 시대 이후 '역사일반'이라는 개념이 도출되었다.


 '역사일반 Geschichete uberhaupt'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특징짓는 것은 더 이상 하나님께로 소급되지 않고자 분투하며 보여준 성취다. 이를 통해서 고유한 시간의 노출이 역사에서만 일어난다. 클라데니우스가 통상적인 언어 용업에 맞서 강조했던 것처럼, 그것은 세 개의 시간적 확장을 포함한다.(p131).. 결국 최후의 심급으로서 역사를 자기 자신에 소급시키는 것을 명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각인된 '역사일반'이라는 표현이, 그와 상응하는 유행어처럼 회자되었다._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6 : 역사>, p133


 이러한 개념의 변화에 따라 배경이 되는 시간과 공간의 의미도 변화되었다. 중세의 절대적 시간 관념이 무너지면서 '과거-현재-미래'의 의미가 중요해졌고, 자연법칙에 따라 일반적인 '역사법칙'을 도출하려는 노력이 일어났다. 이러한 과정에서 미래를 창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생겨났으며, 이러한 역사 의지를 '지역'에서 '세계'로 확대되어 왔음을 개념사 역사 안에서 발견한다.


 시간의 세 차원이 서로 파열되어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현재는 너무도 빠르고 너무도 임시적인 것이 되었다.(p226)... 역사 개념은 한편에서는 빠르게 사라져 가는 과거의 지속을 의미하면서도, 동시에 미래에 대해서 경도할 것을 요구하며 이미 드러나기 시작한 방향을 제시할 수도 있었다._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6 : 역사>, p229


 역사에 공간적으로 상응하는 것이 세계사 Weltgeschichte다. 시간적으로 이 역사에 상응하는 것은 진보 Forschritt의 특성이다. 진보는 '역사'와 더불어 비로소 개념으로 표현되었다. 그 후 19세기 오면서 이 두 개념은 다소 분리되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역사가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성 Gleichzeitigkeit der Ungleichzeitigen 내지 동시적인 것의 비동시성 Ungleichzeitigkeit der Gleichzeitigen을 하나의 개념으로 표현했다는 사실은, 그리고 바로 이 점에서 진보와도 유사한 일면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이 새로운 역사의 구조적 특성들 가운데 속한다._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6 : 역사>, p15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6 : 역사>에서는 이러한 역사의 흐름에 순행 또는 역행하는 여러 흐름을 상세하게 보여주기에 이를 단번에 정리하는 것은 분명 무리가 있다. 아니,  어쩌면 '개념사'라는 시리즈의 핵심을 보여주는 이 단어를 요약한다는 것 자체가 지나친 욕심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역사를 '역사의 3주체 - 인간, 자연, 신-' 를 '시간 - 과거, 현재, 미래 -'과 '공간 - 지역사, 세계사 -'의 관점에서 정의한다는 틀을 갖고 개념사를 들여다본다는 정도로 정리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원래는 동양(東洋)의 사관(史觀)과 서양(西洋)의 사관을 비교하는 곳까지 나아가려고 했으나,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아쉽지만 다음으로 넘기기로 하고 이만 마무리하도록 하자...

헤르더 Herder는 <인류사의 철학 이념 Ideen zur Philosophie der Geschichte der Menscbbie>을 출판할 때, 자연과 마찬가지로 역사 가운데에서도 "사물의 본질 속에 놓여있는 자연의 법칙들이 작용하고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였다. 그와 같은 "규칙"은 곧, "오용은 처벌받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계속해서 자라가는 이성의 지칠 줄 모르는 바로 그 열정을 통해 무질서가 질서로 바뀌어간다는 것이다." 역사의 도덕은 과정으로서의 역사로 시간화 verzeitlicht 되었다. "세계사는 세계법정 DIe Weltgeschichte ist das Weltgericht"이라는, 1784년 실러 Schiller가 표명한 시의 반구가 빠르게 유행하였다. -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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