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광고 움베르토 에코 마니아 컬렉션 13
움베르토 에코 지음, 김효정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기호란 무엇인가. 움베르트 에코(Umberto Eco, 1932 ~ 2016)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다른 무엇을 대신하기 위해 제기되는 또 다른 관계와 조건들. 대상과 기호 사이의 관계가 기호의 개념이라면, 대상과 기호의 관계 속에서 이들을 연결시켜주는 의미는 관계 속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나는 기호가 다른 무엇을 대신하여 무엇인가를 제기하기 위해 사용되는 인간의 책략이란 사실을 이용할 것이다. 이 책략은 다양한 기능으로, 이를테면 세상의 사물과 상태를 지시하기 위해, 질서를 세우기 위해, 희망을 표현하기 위해, 열정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다른 기호에 대해 말하기 위해 그리고 때로는 미학적 혹은 예술적, 시적인 쾌락이라 다양하게 불리는 기쁨에 대한 일종의 혼합된 지식을 자극하기 위해 이용된다. _ 움베르트 에코, <예술과 광고> , p386

기호의 개념은 말이든 구름이든 단추든 그것들을 정의하기 위해 철학적으로 제기된다. 일반 기호학이 몰두하는 것은 자연의 속도, 인공의 속도, 기능적인 속도가 아니다. 그것이 몰두하는 것은 바로 매개관계이며, 조건들이다. 이 조건들을 토대로 한 해석 활동은 어떤 대상이라도 기호학적 실체로 인지할 수 있다. 기호를 설정하는 기호학 담론 이전에 기호는 존재하지 않는다. _ 움베르트 에코, <예술과 광고> , p486

에코는 본문에서 기호를 거울과 비교한다. 원본(대상)을 넘어서지 못하는 가상성과 축소의 세계가 기호의 세계라면, 기호의 세계는 허상의 세계다. 그렇지만, 동시에 기호의 세계는 허상의 세계이기 때문에 시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진실의 파편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런 면에서 기호는 다른 의미에서 대상과 다르지만, 비슷한 조금은 다른 독자적인 생명을 가진 것처럼 생각된다.

거울은 원본보다 더 진실한 이미지를 만들어 내지 않는다. 기호 작용은 광학 반사를 보급시키고, 양식과 체계, 개념과 순수한 내용으로 축소할 수 있을 뿐이다. 두 개의 영역에는 첫 번째 영역은 두 번째 영역에서 문턱이 된다. 통과 지점이 없으면, 변형된 거울의 제한된 경우는 이쪽에 있어야 할지 혹은 저쪽에 있어야 할지 결정해야 할 순간에 파멸의 지점이 된다. 반사의 세계는 가상성에 대한 인상을 줄 수 있는 현실이다. 기호 작용의 세계는 현실에 대한 인상을 줄 수 있는 가상성인 것이다. _ 움베르트 에코, <예술과 광고> , p55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수단이 되는 언어와 글쓰기는 우리에게 남아 있는 진리의 유일한 보증인이며, 기호들은 서로를 해석한다... 허깨비 유령 같은 기호 덕분에 우리는 피와 살을 가진 파라오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호는 눈의 모험과 오늘날 부서지기 쉬운 미라를 만지는 손의 모험을 굳건하게 결합시키고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름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_ 움베르트 에코, <예술과 광고> , p115

그리고, 이러한 기호들이 문장과 문단, 단원 등으로 영역을 확장해가면서 각기 공명(共鳴)작용을 일으키고 그 과정에서 기호들은 또 다시 새롭게 관계를 맺어가는 것은 아닐까. 움베르트 에코의 <예술과 광고>안의 짧은 여러 텍스트 중에서 기호학과 관련한 내용만을 추려본다. 에세이라고 하기에는 전문적이고, 학술서라고 하기에는 여러 주제가 한데 모여 있는 본문 속에서 에코와 함께 기호학에 대해 잠시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퍼스로 돌아가면, 기호(혹은 표상 representamen)와 즉자적 대상 사이에 존재하는 상관 관계의 모델은 해석소가 단지 동의어일 경우에만 순수한 등가성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것은 정의들이 연결된 연쇄 고리인데, 이때 각각의 정의는 또 다른 정의를 수정하고 확대한다. 기호는 늘 더 많은 무엇인가를, 다양한 환경과 맥락에서 다른 무엇인 것이다. 하나의 용어는 하나의 명제도 들어 있지 않은 비어 있는 형식이며, 퍼스가 말하는 의미론은 그의 상관 관계의 논리학의 지배를 받고 있다. _ 움베르트 에코, <예술과 광고> , p498

특수한 기호학들은 인문학의 고유한 특징을 늘 지니고 있다. 특수한 기호학은 상호 해석 체계를 기술하는데, 이 체계가 바로 기호의 다양한 체계인 것이다. 그러나 일반 기호학은 철학적인 제스처를 통해 기호의 일반적인 개념 자체를 '제기한다'. 왜냐하면 표면적으로 볼 때 왜곡된 현상에 대해 표준화된 방식으로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_ 움베르트 에코, <예술과 광고> , p520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yamoo 2023-04-26 19: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열린책들 에코 전집을 3권 빠지게 갖고 있고, 여타 출판사에서 출간된 책이란 책은 모조리 갖고 있습니다만...읽은 책이라곤 엔날 새물결 출판사에서 움베르토에코 라이브러리로 출간된 5권과 예전에 열린책들 및 타 출판사에에서 중구난방으로 출간된 에세이집 10권 그리고 장미의이름-전날의 섬-푸코의진자 소설이 전부입니다. 물론 열린책들 에코 라이브러리가 열린책들에서 이전에 출간했던 에세이류를 모아 전집을 냈지만 일부 책들은 전집에 새로이 부가된 것들인데 전혀 읽지 못하고 있습니다. 열린책들 에코 라이브러리는 엔날 새물결에서 나온 시리즈를 포함하지 못한 듯합니다. 어쨌거나 에코를 전에 어느 정도 읽었다고 자부했는데 리뷰도 쓴 게 없고 지금은 예전에 읽은 것들이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아 다시 읽어야 하는데, 이 전집을 언제 읽을지..ㅎㅎ 프로이트 전집도 못읽고 있는데요..ㅎㅎ 에휴~~
호랑이 님...정말 읽는 편수와 리뷰...대단하십니다! 책만 읽으시나욤??ㅎㅎ 전 드라마 보고 그림 그리고...전시회 좀 보고...책 읽을 시간이 별로 없어요...ㅎㅎㅎ

겨울호랑이 2023-04-26 21:25   좋아요 0 | URL
에고 아닙니다. yamoo님께서 예전에 이미 많은 독서를 하시고 이제는 영역을 넓혀서 미술을 지금 하시니 책 읽는 시간이 당연히 부족하신 것이고, 저는 아직 독서가 많이 부족해서 아직 읽고만 있습니다... ㅜㅜ 어느 정도 책을 읽으면 일정 수준에 오를 줄 알았는데, 책을 읽다보니 그보다는 미진한 부분이 더 많이 느껴지고 그래서 더 읽게 되네요... 책 읽는 것도 좋지만, 책만이 사람의 내면을 채우는 방편은 아니기에 yamoo님처럼 다양한 활동을 하고 싶으면서도 차일피일 미루게 됩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저도 음악, 미술 등을 즐길 수 있는 날이 오겠지요. yamoo님 감사합니다. 편한 밤 되세요!
 

비록 플라톤이 도덕적인 것das Sittliche이라는 특정한 개념과 유리적인 이론을 발전시키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경험과 교육을 통해 습득되는 에토스로서의 덕에 대한 그의 이론은 그의학파의 경계를 넘어 멀리 후대의 모든 성찰들을 규정했고, 철학의한 분과 학문으로서의 "윤리학Ethik"이라는 개념이 정착되도록 만들었다.  - P2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4 - 협회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4
볼프강 하르트비히 지음, 오토 브루너 외 엮음, 최성철 옮김,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기획 / 푸른역사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르트비히에 따르면, 독일에서 'Verein'이라는 단어는 중세 때 '렌제의 선제후협정 Kurverein von Rense'(1338)에서처럼 서로의 '약속'이나 '연대' 또는 '결합'을 뜻하는 단어였다 심지어 당시에는 독립 명사로 쓰이지도 않았다. 이후 종교개혁과 근대 초에는 종파를 함께 하는 제후들 또는 종파를 초월한 제후들끼리의 연합이라는 의미로 확대되어 쓰이다가, 18세기에 와서야 하나의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즉 이 과정을 거치면서 'Verein'은 1790년대에 들어서부터 "자연법적 국가이론과 사회이론의 전문용어"로 거듭났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4 : 협회> 옮긴이의 글, P99

라인하르트 코젤렉(Reinhart Koselleck, 1923 ~ 2006)의 개념사 사전 24번째 주제는 협회(Verein)다. 전근대 시기 '느슨한 정치 연합'의 의미로 사용되던 '협회'의 의미는 근대 시민 사회에 들어서면서 변화된다. 국가를 구성하는 개인, 전체의 일부로서 부분이 아닌, 구성원들의 계약을 통해 형성된 공동체라는 인식의 전환은 보편성에 대한 특수성의 위상변화이기도 하다.

열정의 공동체, 신념의 공동체는 단지 정적으로 규범화된 공동체의 삶 안에서 그들 관심사 중 하나의 견고하게 경계지어진 부분만을 느끼는, 개인의 형식화된 단체가 갖는 의미 내용보다 우위에 선다. "영원한 협회"라는 구호에서는 바로 이 시적-정열적인 언어가 지속성에 대한 희망을 강조하고 있다. 혼자 지내는 것과 단체 결성 사이의 이러한 양극화, 세계 연관과 나의 연관 사이의 상호작용은 하나의 구조 원리로서 신인문주의적으로 개혁을 추구하는 대학 안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4 : 협회>, P40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4 : 협회>에 의하면 근대사회에서 '협회'라는 개념은 인류사회의 진보에 따른 확장된 우애/형제애로 해석된다. 근대사회가 갖는 자유, 평등의 강조로 인한 경쟁과 이에 따른 불평등을 완화시켜 줄 수 있는 완충장치가 바로 '협회'다. 실제 역사에서 이러한 개념어에 담긴 사람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흘러갔음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회가 오늘날에도 의미를 갖는다면 자신의 이상과 다른 현실과의 모순을 극복한 가능성이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닐까.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 곁에 있다는 의미. 이러한 의미를 담은 '협회'라는 단어 안에서 꺾여진 희망과 함께 아직 뿌리 깊이 살아 있는 가능성을 발견한다...

시민사회는 이제 경제적인 이익사회이자 경쟁사회로, 교육사회로, 그리고 자신을 결정하는 규범체계로 묘사되었다. 즉 연합은 처음에는 "새로운 형식"의 "모든 물질적 재화의 획득과 판매"를 가능하게 하고, 그 다음에는 "모든 지식 분야에서의 진리의 공동 연구"를 가능하게 하며, 마지막으로는 선교단체들, 금주협회들, 범죄자 재활 협회 등이 갖고 있는 "연합의 정신"이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삶"과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다. 시민적 영리단체와 경쟁단체에 상응하는 동호회 형식으로서 연합은 자연에 종속되어 있던 인간들을 해방시켜 주고, 거의 무제한적인 자아실현이 가능하도록 해준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4 : 협회>, P59

"후원협회, 구제협회, 노동협회" 등의 유형을 갖는 사회적 협회 제도들은 그에 따라 고도로 발달한 산업화 속에서 국가시민적 사회의 계급구조를 녹여버리고, 소유의 자유와 정치적 평등의 자유를 기반에 두고 건설된 국가와 사회직서의 진화적 발전을 보증해준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4 : 협회>, P9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3 - 통일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3
로타르 갈 외 지음, 오토 브루너 외 엮음, 라인하르트 코젤렉 외 옮김, 한림대학교 한림과 / 푸른역사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술작품의 통일은 예술작품을 결정하고 예술작품들과 함께 제공된다. 예술작품을 포괄하는 더 상위의 통일, 즉 한 나라 안에서 한 시대 안에서의 예술의 통일, 문학의 통일도 역시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현존하는 현상으로 확인된다. 동일한 것이 부분적으로 하나의 언어와 문화 공동체로서 한 민족의 통일에도 적용되고, 약간 더 작은 규모로 그것이 한 나라의 역사가 되었든(뫼저), 인류 전체의 역사가 되었든(헤겔), 역사의 통일에도 역시 적용된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3 : 통일>, P83


 라인하르트 코젤렉(Reinhart Koselleck, 1923 ~ 2006)의 개념사 사전 23번째 주제는 통일(Einheit)이다. 나누어진 것을 하나로 통합한다는 의미에서 보여지듯, 단어의 전제는 서로 다른 개별자들로부터 보편자로 향하는 방향성이 단어 안에 들어있다. 그리고, 역사 속에서 이러한 방향성은 두 개념의 대립으로 나타난다. 중세시대에 대립은 '교권-세속권'의 모습으로, 근세 이후에는 자유주의의 영향을 받아 사상적으로는  '보수주의 - 자유주의'의 모습으로, 정치적으로는 '연방-중앙집권주의' '오스트리아 중심의 대(大)독일주의-프로이센 중심의 소(小)독일주의'의 대립으로 발전된다.


 "민족국가적" 독립의 주창자들이 최고 보편 권력을 요구했던 제국과 교황권에 대항해 투쟁할 때 자신들 주장의 근거를 끌어온 것도 바로 이 통일사상이었다. 유기체적으로 구상된 "기독교적 통일"이라는 개념은 언제나 교권 sacerdotium과 세속권 imperium의 대립에 의해 위협을 받았다. 13세기에 이러한 보편적 권력들의 붕괴와 더불어 유기체적인 통일이라는 이념은 이제 개별 국가의 차원으로 옮겨졌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3 : 통일>, P15


 중세가 끝나는 시점 이후로 통일 관념은 두 개의 방향으로 발전해갔다. 한편으로는 세속권력의 그리고 교황 절대주의의 이론가들에 의해 매우 엄격한 방식으로 형성된 중세 전성기의 통일 개념이 이제 막 등장하기 시작한 영방국가 - "단 하나의 그리고 분할될 수 없는 공화국 republique une te indivisible" - 에 전용되어 쓰였고, 다른 한 편으로는 연방적인 통일 이념이 계속 살아 있었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3 : 통일>, P23


 에드문트 외르크 Edmund Jorg는 1863년 다음과 같이 썼다. 오직 하나의 "대독일적 제국"안에서만 "진정한 권위"가 생길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통일의 법칙 안에서의 진정한 자유"다. 외르크의 눈앞에 중앙집권주의라는 끔찍한 유령이 서 있었던 것이다. 그는 오직 독일의 연방적 체제에서만 자유가 보증될 것이라고 믿었다. 오스트리아가 주도하는 하나의 "대독일적 제국"의 이념은 하나의 "정치적 연방주의"를 찬성하는 그의 입장에 부응했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3 : 통일>, P76


 개념어 발전과정에서 중세시대의 '교권-세속권'의 관계가 극적으로 변화된 것은 '자유'라는 개념과 깊이 연관된다. 라틴어 중심의 보편적 질서에 대항하여 중세 말 이후 자국 언어로 쓰여진 작품들과 언어 안에 담긴 민족정서는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이었으며, 이것은 인간 이성(理性)과 자유(自由)에 대한 강조로 표현되고, 이러한 기조는 '통일'의 개념에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


 통일은 동시에 자유에 입각한 자결 사상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바로 이 사상이 민족적 통일 안에서 체현된다는 것이고, 통일은 그 사상이 계속 전개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준다는 것이다. '통일'과 '자유'의 개념들은 무엇보다도 그 때문에 아주 밀접한 관계에 들어서는데, 왜냐하면 정치적 현실, 독일연방의 지배적 "체제"는 이 두 개념의 본질에 반대하는 쪽으로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3 : 통일>, P47


 18세기에 이('통일'이라는) 새로운 개념 안에 의식적으로 의미가 채워져 가는 이 과정은 외관상 당시 사람들이 관심을 두던 정치적-사회적 영역으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진, 문학과 예술 이론 분야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 개념은 여기서 '예술작품의 통일'로 연결되면서 일찍이 확고한 표어로 자리잡는다. 사람들은 문학과 예숙의 다양한 장르들에 이들 자신의 내적인 통일성 Einheitlichkeit에 대한 문제를 제시했고, 예술적 통일 안에서, 형식과 내용의 화합 안에서 하나의 예술작품의 가치 평가를 위한 결정적인 기준자를 발견했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3 : 통일>, P26


 결과적으로, '아름다움'에 대한 판단 기준은 점차 역사와 인류로 확대되면서 '미학(美學)'은 단순한 미적 취미에 대한 담론이 아닌 판단의 기준이 되었으며, 이러한 판단의 심판대 위에 19세기 독일 통일이라는 시대적 과제가 올라서면서, 오스트리아 중심의 대(大)독일주의와 프로이센 중심의 소(小)독일주의가 충돌하게 되었음을 본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8세기 애국적인 제국 법률가들은 영방국가적 주권사상과 그것의 통일 모델을 강하게 거부하면서 "독일 제국의 통일"을, 제국헌법의 시의 적절하게 개혁된 기본법들과 제도들의 토대위에서의 "다양성 속의 통일"로, 다양한 정치적 힘들의 "합일"로 이해했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3 : 통일>, P35


 독일의 정치적 통일 관념들에 전형적인 현상으로서 '연방'과 '통일' 개념의 결합은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발견된다... 슈타인메츠는 "독일에서의 통일"이 오직 하나의 "프로이센-독일적 연방"을 통해 보증될 수 있다고 보았다. '통일'과 '연방'이라는 두 개념은 그에 의해 하나로 명명되었다. 독일의 통일이 하나의 연방이라는 국가적 형태 안에서 실현되는 것은 여기서 곧 자명하고 논라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전제되었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3 : 통일>, P40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3 : 통일>을 읽으며, 미학(aesthetics)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통일'의 개념어 과정에서 드러나듯 미학의 판단 기준이 확장되어 하나의 시대 흐름을 만들었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미학을 그 자체로 볼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인식틀로 봐야 하지 않을까. 예를 들어, 낭만주의 사조에 드러나는 자연에 대한 경외(敬畏)의 감정 그 자체도 중요하겠지만, 경외라는 감정이 표현되는 전후 관계가 바로 사상가들의 시대에 대한 인식과 밀접하게 연관지을 수 있겠다. 이러한 이유로 칸트, 헤겔, 니체 등 철학자들의 미적 판단이 '아름다움(美)'을 넘어선 '진리(眞)'와 '선함(善)'에도 중요한 의미가 있을 것임을 '통일'이라는 개념어를 통해 다시 생각하며 글을 갈무리한다...


 <두 독일인의 서신 교환>에는 헤르더의, 다음으로는 괴테에 의해 계속 전개된 민족의 문화적 통일에 대한 사상이, 언어와 문학에서의 "공통의" 정신적 유산을 통해 하나로 통합시켜 묶고 있는 "하나의 공통의 공중"에 대한 사상이, 동시에 이 사상 안에 담겨 있는 정치적 동기가 매우 강력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3 : 통일>, P45


"노동자들의 합일"은 그들을 "계급"으로 보이도록 만들었다. 마르크스의 계급 개념은 프롤레타리아의 통일을 암시했고, 프롤레타리아의 "정당"으로의 법제화를 표현했다. 프롤레타리아가 하나의 사회적 단위로 연합된다는 것은 마르크스에게 역사의 필연적인 과정이었고, 그렇지만 동시에 거대한 체제전복적 변혁의 과정에서 하나의 단계이기도 했다. - P69

정치적 발전의 과정은 그래서 자유주의의 관념세계에서 원래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던 ‘통일‘과 ‘자유‘라는 두 개념을 쪼개버렸고, 자유를 통일 뒤로 물러나도록 했거나 아니면 자유가 통일로부터 나오도록 만들었다(p72)... 그와 더불어 전선이 명확히 그어졌다. 민족통일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모든 상황에서 정치적 진보를, 자유주의적 헌법 형식을 향한 발전을 포함하는 원리를 의미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자유가 없는 통일은 수용될 수 없는 것이었다. - P74

연방주의적-보수주의적 통일 개념과 중앙집권적-민주주의적 통일 개념은 따라서 독일 통일의 문제에 관한 논의에서 화해할 수 없을 정도로 적대적이었다. 1871년의 제국은 이 두 개념들에게 공격 목표를 제공해 주었다. 왜냐하면 이 제국의 헌법구조가 통일을 지향하는 요소들뿐만 아니라 연방적인 요소들도 포함하고 있었고, 또 그 안에는 보수주의적인 경향들과 자유주의적인 경향들이 한데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 P80


댓글(4) 먼댓글(0) 좋아요(5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ini74 2022-12-30 21: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호랑이님 이제 토끼해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ㅎㅎㅎ 어려운 책들 잘 풀어내주시고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연말 가족분들과 행복하게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22-12-30 23:44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저 역시 미니님의 좋은 영상과 글들로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 감사드립니다. 내년 한 해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거리의화가 2022-12-31 20: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한해동안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글을 올려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매번 댓글을 남기질 못해서 죄송해요. 하지만 늘 잘 보고 있습니다. 내년에도 좋은 글 계속 부탁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겨울호랑이 2022-12-31 23:23   좋아요 1 | URL
거리의화가님 감사합니다. 저 역시 거리의화가님 좋은 글과 말씀 그리고 격려 덕분에 많이 배웠던 지난 한 해였습니다. 저 역시 댓글을 남기지 못하는 편이라 죄송합니다.. ㅜ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년에도 역사와 관련한 거리의화가님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통일‘ 개념은 처음에는 어느 정도 정적인 성격을 띠었다. ‘통일‘은 이미 주어진, 종종 의식되지 못한 은폐된 통일을 나타냈다. 예술작품의 통일은 예술작품을 결정하고 예술작품과 함께 제공된다. 예술작품을 포괄하는 더상위의 통일, 즉 한 나라 안에서 한 시대 안에서의 예술의 통일, 문학의 통일도 역시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현존하는 현상으로 확인된다.  - P82

‘통일‘은 이제 빈번히, 특히 미래의 기대 속에서, 다름 아닌 질서, 조화, 정의, 행복의동의어로 나타났고, 이러한 의미에서 통일은 극우주의자들부터급진적인 좌파 세력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치적 집단들에 의해 간절히 요구되었다. 그래서 그 단어가 갖고 있는 비합리적인 열광적힘이 우리 세기에도 현실의 이념적인 은폐에서뿐만 아니라 대중들의 동원에서도 입증될 수 있었다. - P8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