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축음기, 영화, 타자기 우리 시대의 고전 24
프리드리히 키틀러 지음, 유현주.김남시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역사를 진행시킨 것은 ˝데이터 프로세싱 기술 Data Processing technologies˝였던 것이다. 그것이 기록 체계 1800이 기록 체계 1900으로 넘어가게 한 결정적인 동인이다. 사람들은 이제 새로운 방식으로 듣고, 보고, 쓰게 되었다. 새로운 코드와 프로토콜이 발생한 것이다. 이 부분에서 키틀러는 라캉의 심리학적 세계 구분을 차용하는 바, 20세기를 기점으로 전개된 매체의 발달사는 라캉의 실재계, 상상계, 상징계에 각각 대응한다.(p556) 해제 중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곰곰생각하는발 2019-10-01 13: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이 책 좋습니까 ? 저도 살까 말까 지금 고민 중입니다. 겨호 님이 리뷰를 다셨네요.

겨울호랑이 2019-10-01 13:53   좋아요 0 | URL
네^^:) 저는 라캉 철학이 어려워 놓친 부분이 많습니다만, 곰곰발님께서는 좋은 독서 되시리라 생각합니다

AgalmA 2019-10-15 2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보고 있는데 기대대로 좋더군요^0^♡

겨울호랑이 2019-10-16 00:34   좋아요 1 | URL
은유를 좋아하시는 AglmA님 취향에 맞는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여론
월터 리프먼 지음, 이충훈 옮김 / 까치 / 201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에게 가장 의미 있는 가설은 뉴스와 진리가 동일한 것이 아니며, 이 둘은 분명하게 구분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뉴스의 기능은 어떤 사건을 두드러지게 하는 것이고, 진리의 기능은 숨겨진 사실을 규명하고 그 사실을 다른 사실들과 관련시키며 인간이 활동할 수 있는 현실의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다. 오직 이 점에서, 사회적 조건들이 인식 가능하고 측정 가능한 모습을 띠는 곳에서만이 진리와 뉴스는 일치한다.(p349)

오늘날 사회적 진리는 조직되어 있기 때문에, 신문은 여론에 관한 민주적 이론이 요구하는 지식의 양을 제공하도록 구성되지 않는다... 신문이 다루는 것은 바로 사회에서 통치하는 힘들이다. 신문은 제도들이 신문을 위해서 기록해놓은 것만을 기록할 수 있을 뿐이다. 이것 이외의 모든 것은 주장이자 의견이고, 우여곡절과 자의식 그리고 인간의 용기에 따라서 변동한다.(p351)

신문은 직접 민주주의의 기관으로 간주되었고. 날마다 엄청난 규모로 국민발안과 국민투표 그리고 국민소환에 들어 있는 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불철주야 여론이라는 법정은 모든 것에 규칙의 준수를 요구할 것이다. 이는 실행될 수 없다. 그리고 뉴스의 본성을 고려할 때, 이는 심지어 상상조차 할 수 없다.(p352)

사람들은 세계에 관한 신뢰할 만한 이미지가 없는 상태에서 행위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부와 학교와 신문과 교회는 보다 분명한 민주주의의 결함과 폭력적인 편견, 무관심, 따분하지만 중요한 것보다는 특이하지만 하찮은 것에 대한 선호, 그리고 사이드쇼(sideshow)와 세발 달린 송아지에 대한 갈망에 맞서 조금씩 진보한다. 이는 민주주의의 주된 결함이자 그 전통에 내재된 결함이며, 나는 민주주의의 다른 모든 결함이 바로 이 결함에서 유래한다고 믿는다.(p35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환상을 만드는 언론 - 민주사회에서 언론은 어떻게 사고와 사상을 통제하나?
노암 촘스키 지음, 황의방 옮김 / 두레 / 2004년 11월
평점 :
품절


 내가 타당한 것으로 믿고 있는 또 다른 관점은 미디어가 '사회적 목적'에 봉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사회적 목적은 전혀 다른 것이라는 생각이다. 제임스 밀(James Mill, 1773 ~ 1836)은 국가의 교육은 "정부에 대해 고결한 애정을 갖도록 국민의 정신을 훈련시키고" 더 보편적으로는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질서를 조정하는 데 목적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p38)... 우리의 민주주의는 더 좁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시민은 소비자, 옵서버이며 참여자가 아닌 것이다.(p39) <환상을 만드는 언론> 中


 노엄 촘스키(Noam Chomsky, 1928 ~ )는 <환상을 만드는 언론 Necessary Illusions>을 통해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에서 미디어가 어떻게 대중들을 통제하고 있는가(thought Control in Democratic Societies)를 분석한다. 선거에 의해 권력이 창출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미디어는 어떤 기능을 하는가. 촘스키는 책에서 권력의 편에서 언론의 모습을 낱낱이 고발하는데, 이를 위해 먼저 '언론은 국가를 위해 봉사한다'는 전제를 설정한다.


 많은 다른 요인들이 미디어로 하여금 국가 - 기업 연합체(state-corporate nexus)에 동조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권력에 맞서는 것은 비용이 많이 드는 어려운 일이다. 높은 수준의 비용이 많이 드는 어려운 일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애국적인 어젠다(patriotic agenda)'에 동조하는 것은 그런 어려움을 수반하지 않는다. 공인된(official) 적들에 대한 공격은 입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런 공격은 사실이 아닐 경우에도 정정보도를 할 필요가 없다.(p29) <환상을 만드는 언론> 中


 국가종교는 서구 민주국가들에서 공공 보조금을 담당하는 사람들과 자유기업이라고 불리는 민간 이윤 시스템의 주인들에게 복종할 것을 요구하는 독트린을 만들어내고 있다. 국민은 그들 자신의 이익을 위한다는 이유로 계속 무지한 채로 남아 있어야  하며 호전적 애국주의의 마법 속으로 떨어져야만 한다.(p46) <환상을 만드는 언론> 中


 자본주의 사회에서 미디어(언론)은 두 가지 선택길에 놓인다. 권력에 맞설 것인가 아니면 권력에 순응할 것인가. 이러한 선택의 길에서 미디어 기업이 '비용과 위험의 최소화'를 선택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의 합리적인 선택이겠지만, 동시에 '불공정한 언론'이 되는 길이기도 한다. 권력과 자본이 결탁한'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정의과 공정이 통하기를 바라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였을까. 자본(資本)의 논리에 따라 권력과 결탁을 선택한 미디어의 다음 수순은 '국가종교'를 위한 '국가이익'보호다. 다만, 저자가 말하는 국가이익이 우리가 생각하는 국가(國家)가 아니라는 것은 우리가 유의해야할 지점이다.


 우익 쪽에 선 이들의 인식은 민주주의가 '특수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special interests)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조직적인 노력으로 위협받고 있다는 말이다. '특수 이해를 가진 사람들'이란 현대의 정치적 수사로 노동자, 농민, 여자, 젊은이, 노인, 장애인, 소수인종 등을 가리킬 때 쓰이는 말이다. '국가이익'은 위의 특수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의 리스트에서 제외된 부문, 즉 기업체, 금융기관, 그리고 기타 사업 엘리트들을 나타내는 것으로 암묵적으로 가정되어 있다.(p17) <환상을 만드는 언론> 中


 여기에서 미디어는 사회 문제로부터 특수 이해 관계를 가진 이들을 소외시키는 임무를 수행한다. 이들이 문제의식을 가지지 않고 주변인, 소비자, 방관자로 남아 기득권들의 정치 위협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미디어의 역할이다.


 보편적 "민주주의의 위기"는 전에는 소외되었던 사람들이 조직적으로 그들의 요구를 밀어붙임으로써 일어나며 민주적 절차가 제대로 기능하는 것을 방해하는 부담이 된다고 위원회는 주장했다.(p16)... 쉬운 말로 한다면, 민주주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일반 민중이 정치적 토론과 행동의 장(場)에서 축출되어 다시 전통적인 무관심과 복종의 자로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p17) <환상을 만드는 언론> 中 


 그렇다면, 미디어의 '특수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의 배제는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가. 저자에 의하면 미디어의 통제는 '의제(agenda) 설정'과 '선전(PR)'의 방법으로 실현된다. 구체적으로 세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들 중 자신의 목적에 맞는 일부의 사건들을 편집하고, 이들에 대한 제한된 논의를 통해 여론을 형성한 후 이를 선전하는 방식으로 미디어는 민주사회에서 은밀한 통제를 가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기업의 과점 아래 있는 미디어 모델은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자연스런 시스템이다... 이러한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와 관련이 있는 경향으로는 점차 노동조합이나 기타 민간 권력(private power)에 간섭하는 민중의 조직들이 제거되는 현상과 함께 점점 더 선전(PR) 놀음으로 연출되는 선거제도, 특권층의 특권과 충돌하는 전국적인 건강보험 같은 복지정책의 회피 등을 들 수 있다.(p50) <환상을 만드는 언론> 中


 민주주의 제도 속에서는 필요한 환상이 힘으로 강요될 수 없다. 그보다는 오히려 더 교묘한 방법으로 대중의 마음속에 스며들게 해야 한다. 전체주의 국가에서는 진실에 충실하지 않아도 만족할 수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 질서 속에서는 독립적인 사고(independent thought)가 언제나 정치적 행동으로 옮아갈 위험이 있다. 그러므로 그 뿌리로부터 위험을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다... 간단히 말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젠다(의제)를 설정하는 힘이다. 냉전에 관한 논쟁이 소련을 봉쇄하는 문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 무력과 외교와 기타 조치들의 적절한 혼합에 의한 - 그 결론이 어떻게 나든 프로파간다 시스템은 이미 승리를 거둔 것이나 마찬가지다. 기본적인 전제가 이미 확립되어 있기 때문이다.(p99) <환상을 만드는 언론> 中


 그렇지만, 국가 - 권력 연합체의 지배자들은 소수인데 반해, 이들의 지배를 받는 이들은 다수다. 소수의 이익을 위해 다수의 이익이 침해되는 상황을 잘 해결하지 못한다면, 이들의 지배는 선거에 의해 끝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자주 연출된다.  


 미디어는 이러한 상황에서 편집된 의제 설정과 은밀한 설득을 통해 지배력을 행사하려 하지만, 언제나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복잡한 사회구조에서 생겨나는 문제 모두를 감출 수 없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절대악(絶對惡)의 존재가 필요하다.


 [사진] The One Ring(출처 : https://goldandletters.com/products/the-one-ring) 


 20세기 초의 공산주의, 냉전 이후 악의 축(Axis of evil )으로 대표되는 테러국가들의 모습으로 표현되는 절대악. 절대악이 국가종교신봉자들을 정치적 위기에서 구해내는 절대반지(The One Ring)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며 현 지배 체제를 공고히 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고, 수행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설득의 자유가 소수의 사람들에게 집중되는데, 우리는 그런 것이 자유사회의 본질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PR산업은 "삶의 경제적 사실들에 관해 민국민을 교육하여" 사업에 알맞은 풍토를 보장하기 위해서 방대한 자원을 소비한다. PR업계의 과업은 "국민들의 마음"을 통제하는 것이다.(p42) <환상을 만드는 언론> 中 


 해외에서의 그랜드 에어리어 설정 원칙과 국내에서의 필요한 환상(necessary illusion)은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을 기다리지만은 않는다.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는 주기적인 군사적 간섭으로 보완되어야 했다. 국내에서 국가는 반대세력을 억누르기 위해 자주 힘을 사용해  왔으며, 또한 업계는 암묵적인 통제만으로 충분치 않을 때 '민중의 마음'을 통제하고 민간 권력에 대한 도전을 억압하기 위한 캠페인을 규칙적으로 또 아주 은밀하게 펴왔다. 간헐적인 예외가 있긴 했지만, '반공'이데올로기가 1차세계대전 이후 이 목적에 봉사해 왔다.(p63) <환상을 만드는 언론> 中


 <환상을 만드는 언론>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국가'의 연합체에 앞에 선  기업(企業 Corporate) 미디어를 고발한다. 그리고, 권력의 시종으로 전락한 미디어가 여론을 만들고, 여론의 힘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모습을 우리는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이 쓰여진 1988년으로부터 30년이 흘렀으나, '가짜뉴스'를 거르는 필터의 역할 대신 '가짜뉴스' 생산공장으로 전락한 우리 언론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지금도 이 책이 주는 울림은 크다 생각된다. 015B의 <제4부>를 마지막으로 이번 리뷰를 마친다.


 여기에 더하여 우리는 민간 권력과 국가 권력 사이에 유착관계가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기본적, 사회적 결정을 지배하는 사람들의 이익에 봉사하고자 하는 제도적으로 결정된 요구가 있었다는 것을, 또한 탐욕이나 개인적 이득을 추구하지도 않고 권위에 종속되지도 않으면서 그 밖의 가치를 중시하려는 독립적인 문화를 기존 권력이 서서히 붕괴시켰고, 독립적인 사고와 행동을 유지시켜 주는 대중적 구조를 붕괴시키는 데도 성공했다는 사실 등을 여기에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다.(p239) <환상을 만드는 언론> 中



<제4부 第四府> 


드라마를 보면 언제나 상류사회뿐이고 씨에프를 보면 항상 행복한 사람들

강한자에겐 무릎 굽히고 약한자에겐 고개를 세우고 그걸 공정하다고 하지

어제는 악인을 만들고 오늘은 영웅이라하고 아무런 생각도없이 잘도 얘기를 하지

모든 것을 비판해버리곤 그걸 자유라 부르지 녹슬 어진 펜을 놓고서

이젠 모든 말에 책임을 져 방향잃고 헤매는 가엾은 무관의 제왕 약속을

어긴 무책임 뒤엔 차가운 비웃음


Naration] 세상엔 오렌지족이니 뭐니 하는건 있지도 않아 신문과 사회와 어른들이

만들어낸 허상일뿐이지 우리나라 코메디를 보고 저질이라고 한탄하는 그들에게

묻고 싶어 외국에서 꼬부랑 말을 하는 코메디를 보면 그렇게도 고상해 보이고

고급스러워 보이는지를 하지만 그들을 탓하고 싶진 않아 그들도 비난하는 것만이

유식한 것처럼 인정되는 사회가 만들어낸 피해자니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9-05-04 15: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04 16: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환상을 만드는 언론 - 민주사회에서 언론은 어떻게 사고와 사상을 통제하나?
노암 촘스키 지음, 황의방 옮김 / 두레 / 2004년 11월
평점 :
품절


간단히 말해서 미디어와 교육받은 계층은 민주주의의 지배적인 개념(prevailing concept)과 일치하는 방향으로 그들에게 요구되는 과업을 수행하면서 그들의 ‘사회적 목적‘을 실현시키는 것이다(p4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레오파기티카 - 언론 자유의 경전, 존 밀턴 <아레오파기티카>의 완역, 주석, 연구서
존 밀턴 지음, 박상익 옮김 / 소나무 / 1999년 2월
평점 :
절판


 "나의 양심에 따라, 자유롭게 알고 말하고 주장할 자유를, 다른 어떤 자유보다도 그러한 자유를 나에게 주십시오."


<아레오파기티카 Areopagitica>는 존 밀턴(John Milton, 1608 ~ 1674)가 저술한 언론 자유의 경전으로 평가 받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이 가지는 의의를 번역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밀턴의 <아레오파기티카>는 로크(John Locke, 1632 ~ 1704)의 관용론(A Letter Concerning Toleration, 1689)보다 거의 반세기 앞서 자유주의의 핵심 원리 및 자유주의의 철학적 기반인 개인주의(individualism)의 본질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를 갖는다.'(p9)


<아레오파기티카>에서는 17세기 초반 로마 가톨릭에 의한 사상 검열을 비판하면서 출판의 자유를 강조하고 있다. 밀턴이 살았던 17세기는 갈릴레오가 종교 재판을 받고, 브루노(Giordano Bruno, 1548 ~ 1600)가 화형을 당하는 등 신학(神學)과 과학(科學) 사이의 갈등이 고조된 시기였다. 그런 점에서 당대의 지식인들에게 출판의 자유는 우리에게 '언론의 자유'만큼이나 소중한 덕목이었을 것이다. 밀턴은 출판, 언론의 자유를 어떤 내용으로 주장하였을까. 본문을 통해 살펴보자.


1. 세상의 선(善)과 악(惡)은 나눌 수 없다


 밀턴에 따르면 세상은 '선'과 '악'으로 명확히 구분될 수 없고, 불명확한 상태에서 출발하게 된다. 세상은 불순에서 순수로 나가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악을 알기 위해서라도 이를 제거하지 않고 관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알고 있는 선(善)과 악(惡)은 거의 나눌 수 없을 만큼 함께 자라고 있으며, 선의 지식은 악의 지식과 너무나도 뒤얽혀 있고, 구별할 수 없을 만큼 비슷비슷해서, 프시케(Psyche)가 부단한 수고로써 분류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저 뒤섞인 씨앗들도 이보다 더 혼란스럽게 섞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514]'(p52)


'확실히 우리는 세상에 순수한 마음으로 태어나기보다는 불순한 마음으로 태어납니다. 우리를 정화하는 것은 시련이며, 무릇 시련은 반대되는 것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515](p53) ...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는 악덕에 관한 지식과 관찰이 사람의 미덕을 이루는데 반드시 필요하며, 오류를 자세히 조사하는 것이 진리를 확립하는데 꼭 필요합니다.[516]'(p55)


2. 검열(檢閱)의 한계 그리고 폐해


 선과 악을 판단하는 검열관들 역시 한계를 가진 인간이기 때문에, 검열을 통해 사상을 통제하고 이상사회(理想社會)를 만들 수 없게 된다. 통제된 사회에서는 가식적인 표현만이 존재하게 된다. 밀턴은 본문에서 이탈리아의 예를 들면서 갈릴레오의 종교재판이야기를 통해 검열상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만일 학자가 책에서 무엇인가를 처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악덕과 오류를 퍼뜨리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검열관 자신들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검열관에게 무오류(無誤謬)와 절대 청렴의 탁월한 미덕이 있다고 우리가 간주하거나, 그들 자신이 우리 나라의 다른 모든 사람들 이상으로 그와 같은 미덕을 갖추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520]'(p60)


 '현실을 떠나 실현 불가능한 아틀란티스나 유토피아 같은 국가로 도피하는 것으로는 우리의 상태를 개선할 수 없습니다... 플라톤이 말한 서적의 검열도 이것을 할 수 없습니다. 서적 검열은 불가피하게 수많은 다른 종류의 검열(檢閱)을 수반하게 되며, 그것은 우리 모두를 우스꽝스럽고 피곤하게 만들면서도 결국 좌절만 시킬 뿐입니다.' [526]' (p65)


'그들은 그들의 학문이 빠져 있는 굴욕적인 상태를 비통해 했습니다. [538] 이탈리아인들의 위대한 재능을 질식시킨 것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최근 수년간 그곳에서는 아첨과 과장된 표현 이외에는 아무것도 쓰여지지 않았습니다.'(p80)


3. 삭제와 금지


검열과 삭제, 그리고 금지는 부작용을 낳는 제한적인 조치에 불과하기 때문에 궁극적인 해결방안이 되지 못한다. 그보다는 선행(언론의 자유보장)에 더 힘쓰는 것이 신(God)의 뜻에 부합하는 길이다.


'사람을 죽이는 자는 신의 형상인 이성적 창조물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좋은 책을 파괴하는 자는 이성(理性) 그 자체를 죽이는 것이며, 말하자면 눈에 보이는 신의 형상을 죽이는 것입니다. [492] '(p28)


'선과 악 어느 쪽인지 분명치 않지만, 양자에게 똑같이 유용하게 작용하는 사물을 금지하는 법률은 하찮은 것임에 틀림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만일 내가 선택을 해야 한다면 악행을 무리하게 방지하는 것보다는 미미할지라도 선행을 하도록 하는데 몇 곱절 더 우선권이 부여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528]'(p67)


4. 언론 자유의 보장


 결국 검열관이 정당하게 검열할 가능성도 낮고, 검열과 삭제, 금지의 효과에 미비하다면 인간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끔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이성의 뜻, 신의 뜻에 부합하는 것이다. 비록 논쟁과 문제가 많이 발생하겠지만, 이러한 문제는 관용(寬容 tolerance)의 자세로 해결할 수 있다.


'절제(節制)란 얼마나 큰 미덕입니까, 그리고 그것은 사람의 삶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것입니까! 그러나 신께서는 특정한 율법이나 규제 없이, 성인들에게 전적으로 그 처분을 맡기셨습니다 [513]... 그러므로 신은 인간을 어린아이 같은 규제 속에 항상 잡아 두지 않으시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이성의 은사를 부여하셨습니다. [514]'(p51)


'[548] 사려 깊고 학식과 양식이 있는 한 사람이 자신의 견해와 논거를 위험스럽게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은밀하게 전파하는 것보다는, 그것을 공공연하게 글로 써서 세상에 공포하고, 세상 사람들이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이 건전치 못하다는 것을 드러내 보이는 것 이상으로 공명정대한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548] ' (p90)


'[562] 진리와 거짓으로 하여금 서로 맞붙어 싸우게 하십시오. 자유롭고 공개적인 경쟁에서 진리가 패배하는 일은 결단코 없습니다. 진리의 논박이야말로 최선의 억압이며 가장 확실한 억압입니다.'(p108)


'[554] 배우려는 욕구가 클수록 필연적으로 논쟁도 많은 법입니다. 많은 저작이 나올수록 의견도 많습니다... 얼마간의 관대한 사려와 분별, 서로에 대한 얼마간의 관용, 그리고 얼마간의 사랑만으로도 이 모든 노력을 한데 모아 진리를 향한 하나의 총체적이고도 형제다운 탐구로 통합시킬 수 있습니다.' (p99)


 불필요한 검열과 규제 대신 자유롭게 내버려두자는 밀턴의 주장에서 우리는 후대의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 ~ 1790)가 주장한 'laissez faire'의 원형을 발견하게 된다. 흙탕물을 휘젓지 말고 내버려두면 무거운 돌들은 가라앉고 맑은 물은 위로 떠오르는 것처럼, 자유롭게 두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것이 밀턴이 주장한 언론의 자유, 출판의 자유라 생각된다. 이러한 밀턴의 주장대로 이후 언론의 자유는 법적으로 보장되었다.


 그렇다면, 밀턴의 주장대로 헌법 제21조 1항에 따라 모든 국민은 언론, 출판의 자유와 집회, 결사의 자유를 가지는 21세기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는 과연 선(善)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가. 이에 대해 동의하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17세기에는 약자였던 언론이 21세기에는 하나의 권력으로 군림하고 있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대표적으로 제19대 대통령 선거를 며칠 앞두고 발생한 SBS의 '세월호 관련' 오보(誤報)는 이러한 우리의 현실을 잘 비춰준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 SBS 방송 오보(출처 : SBS 뉴스)


 사실 이러한 한국언론의 문제는 이명박정부 이후 10년간의 문제만은 아니다. 일제 강점기였던 1940년대 이후 우리 사회에서는 끊임없이 언론의 문제는 제기되어왔다. 1994년에 발표되었던 그룹 015B의 노래 가사에서도 우리는 언론에 대한 우리사회의 불신을 확인할 수 있다. 



드라마를 보면 언제나 상류사회뿐이고 

CF를 보면 항상 행복한 사람들 강한자에겐 무릎 굽히고 

약한자에겐 고개를 세우고 그걸 공정하다고 하지

어제는 악인을 만들고 오늘은 영웅이라하고 

아무런 생각도없이 잘도 얘기들을 하지 모든것을 비판해버리곤 

그걸 자유라 부르지 우- 우- 녹슬어진 펜을 놓고서 

우- 우- 이젠 모든말에 책임을 져 방향잃고 헤매는 가엾은 무관의 제왕 

약속을 어긴 무책임뒤엔 차가운 비웃음 뿐 


- 015B <第四府> -


 언론의 자유를 주장하는 <아레오파기티카> 속에 나타난 연구자의 모습 속에서 우리 언론인들이 나가야할 길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이는 시대와 관계없는 언론의 이상적인 모습이고,  변치않을 지향점이라고 생각된다. 


'한 인간이 세상을 향해 글을 쓸 때 그는 자신의 이성과 사려를 총동원합니다. 그는 탐구하고 사색하며 근면하게 노력합니다. 그는 자신의 현명한 동료들에게 자문을 구합니다. 이러한 일들을 다 거친 후에야 비로소 그는 자신이 쓴 것을 발표합니다. [532]' (p73)


 '[550] 우리는 우리의 빛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지혜롭게 태양을 바라보지 않으면 태양은 우리를 후려쳐서 어둠으로 밀어 넣습니다... 우리가 획득한 빛은 응시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 빛에 의해 우리의 지식으로부터 저만큼 멀리 떨어진 것들을 계속 발견해내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p93)


 오랜 기간동안 달라지지 않은 언론의 문제점에 우리는 절망해 왔다. 그렇지만, 지난 6개월의 시간동안 우리는 새로운 경험을 했기에, 이제는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꿈꿀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 촛불집회 (출처 : 불교방송)

 

 과거에는 핍박받던 위치에서 이제는 거대권력이 되버린 언론의 변화된 모습을 보면서 <아레오파기티카>에서 주장하는 언론 자유(自由)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은 쉽지만은 않다. 그렇지만, 이제는 SNS 등의 발달로 인해 매스미디어보다는 1인 언론의 중요성이 더 커진 요즘, 진실(眞實)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언론인(言論人)의 위치에서 판단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짜 뉴스에 현혹되지 않고 진실을 바라보는 것. 이것이 밀턴이 <아레오파기티카>에서 말하고 싶은 바는 아닐까. 언론의 자유를 통해서 우리 사회가 얼마나 밝아질 수 있는가를 묘사한 밀턴의 말을 옮기며 이번 리뷰를 갈무리한다.    


'[558] 내 마음속에는 한 고상하고 강한 국민이 잠에서 깨어난 뒤의 투사처럼 떨쳐 일어나, 천하 무적의 머리털을 흔드는 광경이 보입니다. 나는 이 국민이 마치 독수리처럼 깃털을 갈고 강인한 젊음을 되찾는 모습을, 그리고 정오의 햇살에 현란한 두 눈을 불붙여, 오랫동안 혹사한 눈을 하늘의 광휘의 원천으로 씻어내고 정화하는 광경을 봅니다.'(p103)


댓글(8) 먼댓글(0) 좋아요(3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yureka01 2017-05-07 19:49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지금 가짜 뉴스..검증 조차 없고 근거없는 뉴스가 판을 칩니다.......유권자들이 똑똑해지지 못하면 또 그렇게 속고 당하고 ....언젠가 자신이 억울한 일 당하고 나서 투표 표값을 어떻게 정산할지 모를 일이죠..꼭 똥을 찍어 먹어야 알아차리는 바보는 되지 말아야하는데 말이죠...

겨울호랑이 2017-05-07 20:00   좋아요 5 | URL
그렇습니다.. 사실 대선도 대선이지만 선거이후가 더 큰 문제인 것 같습니다. 종편의 선동에 넘어가지 않고 중심을 잡는 무거운 과제가 우리에게 주어진듯 합니다..

징가 2017-05-07 23: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권교체란 시작에 불과하다 생각합니다. 이 사회에 만연해 있는 적폐세력들은 암세포처럼 곳곳에 퍼져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깨어있는 시민들의 계속적 노력없이는 우리 시대의 적폐청산은 가능하지 않다고 봅니다

겨울호랑이 2017-05-08 07:40   좋아요 3 | URL
^^: 네 민정식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저도 9일 이후에도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 같네요. 긴장된 마음으로 9일 결과를 기다리게 되네요.

AgalmA 2017-05-08 18: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촛불 운동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 언론의 역할을 하려했던 감동적인 순간순간이었죠. 이 현장성이란 정말 대단한 것이어서 세계를 진짜 움직일 수 있었죠. 오랜 시간과 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노력 속에서 이 정도 겨우 얻는 게 서글프면서 희망을 얻기도 하면서 만감이 교차하게 됩니다.

겨울호랑이 2017-05-08 18:08   좋아요 2 | URL
^^: AgalmA님 말씀처럼 우리가 궤도를 수정시켰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앞으로도 많은 힘든 상황이 발생하겠지요.. 그렇지만, 이제는 변화에 대한 확신이 우리에게 있기에 더는 좌절하지 않을 겁니다^^:

커피소년 2017-05-09 0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은 악으로 태어나서 존재하는 ‘필요악‘들에게 사련이라는 것을 겪고 악을 알어가야 한다는 것.. 성선설을 믿고 필요악에 대해 부정하는 입장이지만 어찌보면 또 그것이 현실적인 부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선 중에는 무심코 악의를 지니지 않은 악의를 행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악이 존재하여 그들을 통해 악행이라는 것에 대해 알아가는 것은 악의가 없는게 악행을 저지르게 되는 선인들을 위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의외로 알지 못 해서 저지르는 악행이 많으니까요..

사람은 누구나 선하고자 하지만 선과 악에 대한 구분을 명확히 하지 못 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반대의 생각에서 깨달음을 얻기도 하네요,,^^

겨울호랑이 2017-05-09 07:17   좋아요 1 | URL
^^: 저도 깊이 읽지는 못했는데, 밀턴의 시(詩) <실락원>이 이러한 밀턴의 사상을 바탕으로 쓰여졌다고 합니다. 일종의 ‘자율조정‘능력을 신뢰한 밀턴의 사상도, 막상 대선결과를 기다리는 지금은 큰 도움이 안되는 것 같습니다.ㅋ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