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농경이 일으킨 가장 근본적인 변화는 농경을 통해  (수렵·채집에 비해 훨씬 많은 노력이 들어가기는 했지만 훨씬 많은 식량을, 즉 농부를 비롯해 그의 가까운 가족이 먹고도 남을 만큼의 식량을 충분히 생산해 내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 잉여분의 식량이 이후 일어나는 그 모든 사회적·정치적 변화의 토대였다. 그 덕에 일부는 농사를 짓지 않고도 생계를 부양받을 수 있었기 때문인데 여기서 핵심 질문은 농부가 가지고 있던 그 잉여분을 어떤 방식으로 누가 가져갔는가 하는 점이다._클라이브 폰팅, 「클라이브 폰팅의 세계사」, p128

굳이 헤시오도스의 「일과 날」의 표현을 빌리지 않더라도 인류의 역사가 진보해오지 않았음을, 그리고 리프킨의 「엔트로피」가 주장하는 바처럼 우리의 기술은 발전되었다기보다 ‘차선‘을 이용하기 위해 변용되었음을 인정한다면, ‘신석기 혁명‘을 다시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수렵 경제에 비해 필요노동량은 증대된 상황에서 불평등한 분배구조를 합리화하기 위해 생겨난 형이상학적 설명이 종교,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생겨난 이래 오늘날까지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어쩌면 우리 인류는 우리가 길들인 가축과 곡물들의 존속을 위해 이들에게 이용당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쉽게 떨치지 못하게 만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0-12-09 19: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09 2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원전 3000년부터 기원 1500년까지 그 대부분의 기간 동안 인류의 거주지는 분립되어 있었고, 각각의 지역은 독자적인 길을 걷고 있었으며 孤立과 분립이 交流와 同化에 우위하고 있었던 시기이다. 지역 문명은 合體되는 일 없이 공존을 지속하고 있었다. 이것은 역사 기술에서 꼭 반영되어야만하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리고 역사 기술자는 동시에 일어나는 6개의 일련의 사건을 기록해야 하는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나는 요술사와 같이 여러 개의 공을 동시에 공중에 띄우는 재주를  배웠으며  각각의 역사의 공을 차례로 띄워서는 다시 차례로 받아 다시 띄우는  재주를  부렸다.  나는  각각의  특정  지역을  취급함에 있어서 그 연속성을 포기하는 대가를 치르면서 세계 전체의 역사를 거의 연대순에 맞추어 제시해 갈 수가 있었다. 서술이라는 역사제시 형식과 분석 및 비교라는 역사제시 형식은 제각기 장단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서술의 형식으로 인류사의  포괄적  조감도를  제시하는 것이 본서에서 내가 의도하고 있는 목적이었다.
1974年 아놀드 J. 토인비 _ 아놀드 J. 토인비,「세계사 : 인류와 어머니되는 지구」p7, 머리말

Arnold J. Toynbee, CH(1889 ~ 1975)의 책 중 일반에 가장 널리 알려진 책은 「역사의 연구 A study of History」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먼저 접한 토인비의 책은 「세계사 : 인류와 어머니되는 지구」였다.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 서점에 꽂혀있던 두꺼운 책에서 중학생이었던 나는 좀처럼 눈을 뗄 수 없었지만 어려워 보이는 책에 몇 번을 돌아서야 했다. 그러다 결국 부모님을 졸라 생일 선물로 겨우 이 책을 받을 수 있었다. 다만, 중학생이 이 책을 읽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결국 중도에서 포기하고 서가 한구석에 책을 놓아두고 훗날을 기약할 수 밖에 없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한글과 한자가 함께 씌여져 있었기에, 인터넷도 발달하지 않은 시절에 옥편으로 한자를 찾다가 그만 포기하고 만 것이었다. 언젠가는 읽겠다는 다짐을 하고 아쉬움과 함께 책을 덮었다.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난 이번 추석 연휴. 본가에서 먼지쌓인 책을 발견했다. 그리고 지난날 중학생이었던 학생은 이제 아빠가 되어 지난날 못다 이룬 꿈을 겨우 이룰 수 있었다... 늦었지만, 약속을 지킬 수 있었음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토인비의 「세계사」에 대한 상세 내용은 별도의 리뷰에서 상세히 다루도록 하고, 이번 페이퍼에서는 이 책의 의의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도럭 하자. 머리말에서 드러나듯. 이 책은 지구라는 환경 안에서 같은 시기를 살아간 문명의 서술에 초점을 맞춘 책이다. 반면, 「역사의 연구」는 자연과 인간의 도전과 응전을 주제로 서로 다른 문명들의 생존과 멸망을 다뤘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자연 안에서의 공존과 자연과의 대립.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종합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게 한다는 점에서 이들은 중국 고대의 보검 ‘간장‘과 ‘막야‘처럼 한 쌍이 되어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모범답안을 제시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토인비가 바라본 세계 문명사의 서술과 비교는 리뷰로 미루고, 약속인증 페이퍼는 이만 줄이도록 하자...


댓글(4) 먼댓글(0) 좋아요(4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0-10-05 23: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중학생 시절 저 한자를 옥편을 찾아가며 읽기를 시도한 흔적이 감동입니다. 그 때부터 학구적이셨군요.

겨울호랑이 2020-10-06 00:05   좋아요 0 | URL
에고 아닙니다. 수준에 맞는 책을 읽어야하는데, 욕심이 너무 과했었습니다. 지금도 그런 면이 많습니다만... 당시에 책을 읽지 못해서 억울해 했던 경험 덕분에 배경지식의 중요성을 알게 된 것은 작은 성과라 여겨집니다. 바람돌이님 감사합니다 ^^:)

나와같다면 2020-10-08 01: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30년 어린 시절의 꿈을 마음 깊이 간직하고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꿈을 이루신 거 아닐까요?

꿈을 이루어내신 것도 대단하신데
저는 그보다 그 꿈을 간직하신 마음이
더 크게 느껴집니다

페이퍼 기다리겠습니다

겨울호랑이 2020-10-08 05:37   좋아요 1 | URL
^^:) 오래된 숙제를 겨우 끝냈네요. 늦은 감이 있지만, 더 늦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도 함께 듭니다. 나와같다면님 감사합니다.
 
민중의 세계사
크리스 하먼 지음, 천경록 옮김 / 책갈피 / 200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새로운 기술은 사람들의 협동 형태를 바꾸었다. 예컨대, 쟁기를 사용하면서 성별 분업이 강화됐다. 쟁기를 사용하는 노동은 임신했거나 아이를 기르는 여성에게는 벅찬 중노동이었기 때문이다. 상설적인 관개 시설을 건축하고 보수하려면 수십 가구나 수백 가구의 협동이 필요했다. 이것은 직접 노동하는 사람과 노동을 감독하는 사람의 분업을 부추겼다. 먹을 것을 저장하게 되면서 저장한 음식을 지키고 관리하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잉여가 생겨나자 처음으로 일부 사람들이 농사에서 해방돼 수공업, 전쟁 준비, 아니면 한 지역의 생산물을 다른 지역의 생산물과 교환하는 일 등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됐다.(p48)... 잉여를 창출한 생산방식의 도입과 계급 분화는 동전의 양면이었다. 매우 비옥한 토양이 있는 지역들에서 출현한 최초의 농경 사회는 계급 분화를 수반하지 않았다. 그러나 농경 사회가 확대되면서 이들을 훨씬 더 열악한 조건에 처하게 됐고, 그런 상황에서 생존하려면 사회 관계를 재편해야 했다. _ 크리스 하먼, <민중의 세계사>, p56


 크리스 하먼(Chris Harman)의 <민중의 세계사 A People's Story of the World>는 지배계층 중심의 정치, 경제사라는 기존의 관점 대신 인류의 다수를 차지하지만 주인공은 되지 못했던 이들의 입장에서 역사를 바라본다. 다소 생소한 관점에 선 저자는 책에서 신석기 혁명과 도시 혁명의 산물인 문명(文明)의 어두운 측면에 집중한다. 이 어두운 측면으로부터 모든 문제는 시작된다. 


 계급 분화, 상근 관료와 무장 집단에 기반을 둔 영구적 국가 기구의 확립, 여성의 종속 등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요소들 대부분은 여전히 출현하지 않았다. 그런 요소들은 고든 차일드가 '도시혁명'이라고 부른 변화, 즉 사람들의 생계방식에 일어난 두 번째 중대한 변화가 '신석기 혁명'에 바탕을 두고 일어난 다음에 출현했다. _ 크리스 하먼, <민중의 세계사>, p45


 저자는 수렵 - 채집 문화에서 농경 문화로의 이행이 반드시 좋은 선택만은 아니었음을 말한다. 농경 사회로 인해 사회는 안정화될 수 있었지만, 잉여 산출물로 인해 빚어지는 부작용은 다른 종류의 불안을 가져왔고, 이는 강력한 권력 기관이 출현의 배경이 된다. 강력한 권력 기관은 소수의 지배계급과 다수의 피지배계급의 분화를 가져왔으며, 민중은 피지배계급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민중의 세계사>에서 고대와 중세에 걸쳐 민중들의 경제 기여에 비해 자신의 권익을 충분히 누리지 못했음을 지적한다. 그렇다면, 빵과 서커스 제공에 만족해야 했던 고대 로마 시대는 그렇다 하더라도, 중세 후반에 나타난 농민들의 적극적인 반항이 사회 변혁 움직임으로 이어지지 못한 원인은 무엇 때문일까?


 제국은 안정을 찾았을지 모르지만 사회의 밑바탕에 있는 주요한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았다. 지배 계급과 지배 계급의 문명은 도시를 중심으로 하고 있었지만 경제는 압도적으로 농촌에 기반을 두었다. "경제에서 무역과 제조업은 매우 한정된 구실만 했다... 기본 산업은 농업이었고, 제국 주민의 압도 다수는 농민이었으며, 상층 계급의 부는 주로 지대에서 나왔다." 농업 생산에서 나온 수익은 무역과 공업의 20배에 달했다. _ 크리스 하먼, <민중의 세계사>, p125


 (유럽 봉건 사회에서) 농민 봉기는 사회를 뒤흔들었지만 농민은 문맹인데다가 시골 곳곳에 흩어져서 각자의 촌락과 토지에만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현실적인 사회 재편 강령을 스스로 생각해 낼 수 없었다. 아직 경제가 충분하게 발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도시에서든 농촌에서든 혼란스럽게나마 그런 강령을 제시할 수 있는 계급은 아직 형성되지 못했다. 언젠가는 그런 계급으로 성장할 수 있는 씨앗은 이미 존재했다.... 그러나 그들은 유망한 씨앗이었지만 사회 전체를 파괴하고 있던 위기를 끝낼 수 있는 계급은 아직 아니었다. _ 크리스 하먼, <민중의 세계사>, p213


 그것은 변혁의 주체가 될 중핵(中核)의 부재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주제이기도 한 '싸우는 방법을 이해하고 동료들에게 그 방법을 납득시킬 수 있는 충분한 '중핵 계층이 싹트기까지는 아직 수백년의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18세기 유럽에서 근대 혁명이 가능했던 것은 '부르주아 bourgeois'로 대표되는 계층의 역할이 컸던 반면, 그렇지 못한 경우 혁명이 실패했음도 우리는 찾을 수 있다. 


 20세기는 단지 공포의 세기만은 아니었다. 우리가 살펴봤듯이, 그것은 공포의 주범들에 맞서 노동 계급이 이끈 거대한 반란들이 아래로부터 분출해 나온 세기이기도 했다.(p775)... 거대한 사회 갈등의 결말이 어떻게 날지 미리 알 수는 없다. 그 결말은 단지 한 계급의 객관적 발전 수준에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처럼 거대해진 '보편적' 노동 계급 중에서 싸우는 방법을 이해하고 동료들에게도 그 방법을 납득시킬 수 있는 중핵이 얼마만큼 존재하느냐에도 달려 있기 때문이다... 20세기의 역사가 보여 주듯, 그런 반체제 세력들은 오직 체제의 모든 측면에 맞서 싸울 태세가 돼 있는 혁명적 조직이라는 결정체로 응고되어야만 진정으로 효과적일 수 있다. _ 크리스 하먼, <민중의 세계사>, p784


  이러한 저자의 '중핵'의 역할에 대한 근거를 우리는 18세기 인도의 마라타족 반란과  19세기 중국의 태평천국운동을 통해 찾을 수 있다. 동양에서의 실패는 사회 불평등에 대한 반발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계층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혁명은 사회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었고 동양의 두 제국은 유럽 제국주의의 제물로 전락하면서, 저자 주장의 논거가 된다.


 (마라타족의 반란)에서 농민들의 반감은 곧 반란군의 전투력이었다. 그러나 반란의 지도부는 보통 자민다르나 지방의 다른 착취 계급에서 나왔는데, 그들은 잉여의 더 큰 부분을 무굴 제국의 지배 계급이 가져가는 것이 불만이었다... 상인과 장인은 반란에서 핵심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들은 무굴 제국 지배자들의 사치품 시장에 의존했고 유럽의 일부 지역에서 도시 계급들이 농민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게 해 준 지역 시장들의 연결망이 없었다. 낡은 사회는 위기에 빠졌지만, '부르주아지'는 그 사회를 변화시키는 투쟁에서 독립적인 역할을 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결국 사회는 진보할 수 없었다. _ 크리스 하먼, <민중의 세계사>, p303


 태평천국 운동의 지도부가 이상을 포기하는 과정은 과거에 중국에서 일어난 농민 반란들의 패턴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었다. 광대한 지역에 흩어진 채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무지한 농민들은 운동의 지도부와 그 군대를 통제할 수 있을 만큼 응집력이 강한 세력이 아니었다. 또한 태평천국 운동의 지도자들은 "모든 사람을 위한 풍요"라는 이상을 구현하기에는 물질적 자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곧 깨달았다. 이에 대한 손쉬운 대응은 전통적 지배 방식과 그에 수반되는 전통적 특권 사회로 되돌아가는 것뿐이었다. _ 크리스 하먼, <민중의 세계사>, p465


 그렇다고 해도, 근대 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의 변화가 민중들을 역사의 주체로 바로 끌어올린 것은 아니었다. 유럽과 북미에서 민중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할 대표자들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억압받는 계층으로 존재하게 된다.  <민중의 세계사>에서 민중은 고대의 억압받는 노예에서, 중세의 억압받는 농민, 근대의 억압받는 노동자로. 자본주의 사회인 현대에서는 3S로 억압받는 소비자의 모습으로 그려지지만, 저자는 비관하지 않는다.


 도시의 종교개혁은 독일 남부와 스위스의 도시들을 휩쓸었다. 이들은 여러 세대 동안 지방 의회를 지배하고 있었고, 심지어 일부 형식적인 민주적 구조가 갖추어진 곳에서도 그랬다. 많은 과두 지배자는 나름대로  교회에 불만이 있었고 지방 제후들의 힘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기존의 사회, 종교 질서와 수없이 많은 연계를 맺고 있기도 했다... 대체로 그들은 커다란 격변을 겪지 않고서도 자신들이 도시의 종교 생활을 더 강력하게 통제할 수 있고 교회 기금을 더 많이 사용할 수 있게 해 줄 점진적 변화를 추구했다. _ 크리스 하먼, <민중의 세계사>, p251


 (남/북전쟁에서) 북군이 부르주아 점령군이었기 때문에 결코 할 수 없었던 일이 하나 있었다. 토지를 몰수한 뒤 해방된 노예들에게 재분배함으로써 그들이 옛 주인에게 의존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일이 바로 그것이었다... 대다수 흑인들은 과거의 노예 수유주들 밑에서 소작농이 되거나 노동자로 일해야 했다. 과거에는 억압받는 노예 계급이었다가 이제는 억압받는 농민, 노동자 계급이 된 것이다. _ 크리스 하먼, <민중의 세계사>, p455


 저자 크리스 하먼은 책의 결론부에서 과거의 모순을 극복하고 새롭게 거듭나려는 움직임을 강조한다. 저자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기 위해 민중들의 각성과 움직임을 강조하면서 다행스럽게도 역사 속에서 중핵들이 끊임없이 확장되어 왔음을 밝힌다. 이러한 움직임이 역사 속에서 1215년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에 의해 영국에서 왕권에 귀족들에게 넘어가고,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귀족 계급에서 자본가 계급으로 권력이 넘어가는 과정 속에서 의식은 확장되었고, 그 기반은 넓혀져 왔음을 <민중의 세계사>는 알려준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가 계속될 때 과거 신석기 혁명과 도시 혁명 이전의 평등 사회로 우리는 회귀(回歸)할 수 있을 것이다...


 각각의 사회 계급들은 결코 서로 완전히 분리돼 있지 않다. 상층 계급의 정서는 중간 계급의 정서에 영향을 주며, 중간 계급의 정서는 하층 계급의 정서에 영향을 준다.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하는 유럽 지배 계급들의 의지는 수많은 방식으로 중간 계급과 노동 계급의 일부에게 전염됐다. _ 크리스 하먼, <민중의 세계사>, p521


 21세기에 인류가 멸망하지 않으려면 어마어마한 규모로 확대된 오늘날의 노동 계급에게도 그런 결정체가 끊임없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 필요는 오직 사람들이 그 과업에 몸소 뛰어들어야만 충족될 수 있다... 과거를 이해하는 것은 미래를 개척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내가 이 책을 쓴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_ 크리스 하먼, <민중의 세계사>, p784


댓글(4) 먼댓글(0) 좋아요(4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NamGiKim 2020-09-10 19: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민중의 세계사를 보다 간소화 한 책을 찾는다면 아마 ‘좌파세계사‘겠죠.

겨울호랑이 2020-09-10 19:42   좋아요 1 | URL
네 그렇습니다.^^:) 역시 NamGiKim님 이시네요.

NamGiKim 2020-09-10 19:49   좋아요 1 | URL
그책도 분량은 많은 편이지만 중간중간 사진과 그림이 많이 있어 읽기 수월했죠.^^

겨울호랑이 2020-09-10 20:05   좋아요 1 | URL
그렇습니다. 대중적으로 민중의 역사를 조망했다는 점에서 좋은 「The Left」, 「미국 민중사」 , 「민중의 세계사」입문서로 생각됩니다^^:)
 

 

 지오바니 피코 델라 밀란돌라 군주(Frurst Giovanni Pico della randola, 1463 ~ 1463)와 더불어 르네상스 정신이 뚜렷하게 나타나는데, 이는 두 가지 관점에서 그렇다. 첫째로 종교적인 감정이 매우 가한 자연적인 감정, 즉 일반적인 인간들의 감정으로 되고, 그리스도교에만 있는 특별한 감정으로 되지 않는다.p16)... 다른 편으로 미란돌라는 새로운 인간상, 즉 무한한 인간상을 발전시켰다. 자기가 쓴 <인간의 존엄(위신)에 관해서>라는 책에서 그는 인간의 본질과 위대함은 무한하게 변형될 수 있는 그 능력에 있다고 보았다. 인간은 하나의 무한한 과정 속에서, 언제나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이 창조를 통해서 자기 자신을 실현한다는 것이다. 이런 것이 위대한 인간이다.(p17) <서양철학사> 中


 우리에게 르네상스(Renaissance) 시기는 다른 말로 계몽(啓夢 enlightment)시대의 다른 말로 알려져 있다. 인간이 이성(理性 reason)의 빛을 비춰 중세의 어둠을 이겨내고 새로운 근대(近代)를 열었다는 관점이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을 대표하는 책은 야곱 부르크하르트(Jacob Christoph Burckhardt, 1818 ~ 1897)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Die Kultur der Renaissance in Italien>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부르크하르트는 우리에게 '르네상스 인 Renaissance man/재woman'이라는 개념을 소개하기도 한다.


 예리한 문화사적인 안목이 있는 사람이라면 15세기에 들어서 완벽한 인성의 소유자들이 증가하는 현상을 단계별로 추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최고의 인격 완성을 향한 충동이 당대의 모든 문화적인 요소에 통달한 다재다능한 품성과 만나게 되면 이탈리아에서만 볼 수 있는 '만능인(l'uomo universale)'이 탄생하게 된다... 르네상스기의 이탈리아에 이르면, 우리는 모든 분야에서 독창적이고 고유의 완벽한 작품을 창조하면서 동시에 인간으로서도 깊은 인상을 주는 예술가들을 만나게 된다(p207)... 여기에 새로운 종류의 외부 지향적인 가치가 호응하는데, 그것은 바로 근대적 명성이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전제정치와 민주주의에 앞서서 이미 계급 사이에 평등의식이 일어나고 있었다. 명성이라는 새로운 삶의 요소를 싹틔우기 위해서는 바로 이러한 토대가 필요했던 것이다.(p213)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中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에서 저자는 15세기 이탈리아의 분열된 도시국가 상황과 완벽을 추구하려는 개인, 명성을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르네상스의 특징이 나타나고 있음을 말하는데, 이는 이미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엔트로피 Entropy: A New World View>의 저자 제러미 리프킨((Jeremy Rifkin, 1945 ~ )이 생각하는 르네상스 혁명의 발생원인은 다르다. 엔트로피 법칙의 결과로 인해 르네상스로 변화가 '어쩔 수 없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엔트로피 Entropy(열역학 제2법칙)이 의미하는 바는 이렇다. 우주 안의 모든 것은 일정한 구조와 가치로 시작해서 무질서한 혼돈과 낭비의 상태로 나아가며, 이 방향을 거꾸로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엔트로피란 우주 내 어떤 시스템에 존재하는 유용한 에너지가 무용한 형태로 바뀌는 척도를 내는 척도이다.(p21) <엔트로피> 


 역사는 엔트로피 법칙을 따른다. 일반적인 역사 교과서를 보면 중세에서 현대로 옮겨가는 것이 인간 정신의 획기적인 각성의 결과라고 되어 있다. 13세기와 16세기 사이에 서유럽은 엔트로피 분수령을 거쳤다. 중세의 에너지 기반이었던 나무는 점점 구하기 힘들어졌고 인구증가로 인해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자 사람들은 그 대안으로 석탄을 발견했다. 이로 인해 서유럽의 생활방식도 근본적인 변화를 겪었다. 즉 나무에서 석탄으로의 경제기반의 변화야말로 중세에 종말을 고함과 동시에 산업혁명의 첫 장을 연 것이다(p101)... 두 날 쟁기, 3포식 농업, 말에 의한 경작 등을 통해 사람들은 같은 땅에서 더욱 많은 소출을 올렸고 넓은 땅을 경작지로 개간하는 작업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p103)... 14세기 중엽이 되자 유럽인들은 엔트로피 분수령에 도달했다. 인구가 에너지의 기반을 갉아먹었고 지력은 쇠퇴했으며, 나무는 부족해서 서유럽과 북유럽 사람들은 위기에 직면했다.(p103)... 목재위기의 대안은 석탄이었다. 목재를 석탄으로 바꾼 것은 단순이 에너지 기반의 변화에 그치지 않았다. 석탄이 도입되기 전까지 유럽문화는 철저하게 나무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에너지 기반이 바뀌자 생활 방식 전체가 뿌리째 변화될 필요가 생겼다. 사는 방식, 이동방식, 복장, 행동양식, 정부의 통치방식 등 모든 것들이 안팎으로, 위아래로 뒤집혀 버린 것이다.(p105) <엔트로피> 中


 중세 유럽의 풍부한 산림이 중세 사회를 떠받치는 기반이었다면, 늘어난 인구와 생산력은 이러한 기반을 붕괴시켰다. 엔트로피 법칙에 따르면 유용한 산림이 무용한 에너지로 소멸되고, 지구 생태계라는 폐쇄계(閉鎖系 closed system)안에서 한정된 자원은 고갈될 수 밖에 없었고, 그 결과 석탄으로 대표되는 근대 사회로의 이행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리프킨의 이러한 주장은 칼 마르크스(Karl Marx, 1818 ~ 1883)의 유명한 명제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는 유물사관(唯物史觀)과 결합되었을 때 우리에게 설득력있게 다가온다.

 

특정한 양식으로 생산적 활동을 하고 있는 특정한 개인들은 이러한 특정한 사회적 및 정치적 관계들 속으로 들어간다... 이념들, 표상들, 의식 등의 생산은 무엇보다도 인간의 물리적 활동과 물질적 교류 속에, 현실적 생활의 언어 속에 직접적으로 연루된다....한 민족의 정치, 법률, 도덕, 종교, 형이상학 등등의 언어 속에 표현되는 정신적 생산에 관해서도 같은 말이 적용된다...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독일 철학과는 정반대로 여기에서 우리는 땅에서 하늘로 올라간다. 우리는 현실적으로 활동하는 인간들에서 출발하며, 또한 그들의 현실적 생활 과정으로부터 이 생활 과정의 이데올로기적 반영들과 반향 反響들의 발전을 표현한다.(p202) <칼 맑스/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 독일이데올로기> 中


 리프킨에 따르면 이른바 역사의 진보(進步)는 엔트로피 법칙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처절한 몸부림에 불과하다. 거창한 이성의 승리가 아닌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살아남기 위한 궁여지책(窮餘之策)이 르네상스, 산업혁명을 가져왔을 뿐이라는 리프킨의 비판.  인간의 과도한 욕구(欲求)가 인류를 파멸로 이끄는 것을 비판한다는 점에서, 리프킨은 인류 역사를 칠정(七情) -기쁨(희,喜), 노여움(노,怒), 슬픔(애,哀), 두려움(구,懼), 사랑(애,愛), 싫어함(오,惡), 바람(욕, 欲) - 중 하나인 욕(慾)을 기(氣)의 부정적 발현으로 생각하는 입장과 통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세계의 유용한 에너지는 끊임없이 무용한 에너지의 형태로 분산된다 인간은 가장 먼저 손에 넣을 수 있는 에너지부터 쓰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후대의 사람들은 앞선 사람들보다 더 구하기 어려운 에너지에 의존해야 하는 것이다. 나무를 베는 것보다 석탄을 캐고 처리하는 것이 더 힘들다. 유전을 개발하고 석유를 뽑아 올리는 것은 더 어렵다.(p106)...이것이 이른바 '진보'의 참모습인 것이다.(p110) <엔트로피> 中


  최근의 경제성장의 부작용인 환경오염 문제가 심각하게 떠오르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이러한 리프킨의 비판에 수긍할 수 밖에 없다. 그렇지만, 생명체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소비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앙리 베르그송(Henri-Louis Bergson, 1859 ~ 1941)의 <창조적 진화 L'e'volution Cre'atrice>은 리프킨에 대한 반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는, 매슬로(Abraham Harold Maslow, 1908 ~ 1970)의 <동기와 성격 Motivation and Personality>의 욕구 이론은 종족의 보존과 개체의 안전을 추구하는 본성 本性은 긍정해야 할 것이다.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가> 그것은 섭취된 양분에서 생긴다. 왜냐하면 양분은 일종의 폭발물로서 이것은 스스로 축적한 에너지를 발산하기 위한 불똥만을 기다릴 뿐이기 때문이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생명 전체는 그 본질적인 점에서 에너지를 축적하고 다음에는 그것을 유연하고 변형가능한 관(管) 속에 풀어 놓으려는 노력으로 나타난다. 이 관들의 끝에서 생명은 무한히 다양한 일들을 수행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생명의 약동(엘랑 비탈)이 물질을 관통하면서 단번에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p379)... 종 種은 자신만을 생각하며 자신만을 위해 살아간다. 그로부터 자연이라는 무대에서 무수한 투쟁이 유래한다. 또한 놀랍고도 충격적인 부조화도 거기서 유래한다. 그러나 그에 대해 생명 원리 자체에 책임이 있다고 해서는 안 된다.(p380) <창조적 진화> 中

 

 일반적으로 동기이론의 출발점이 되는 욕구는 이른바 생리적인 추동이다... 다른 모든 욕구 중에서 생리적 욕구가 가장 강력하다. 삶에서 모든 것이 극단적으로 결핍되어 있는 사람은 다른 어떤 욕구보다도 생리적 욕구에 따라서 동기화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뜻이다.(p85)... 일단 다른(상위) 욕구가 생기면 생리적인 배고픔보다는 그런 상위 욕구가 인간을 지배한다. 그리고 그 욕구가 충족되면 보다 더 높은 수준의 새로운 욕구가 생기며, 이런 과정은 계속해서 이어진다.(p88)... 생리적 욕구가 어느 정도 충족되면 새로운 욕구가 생기는데 그것을 안전 욕구라고 분류할 수 있다.(p89)<동기와 성격> 中


  인간과 생명체의 본성을 긍정하고 에너지를 소비하는 존재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우리의 욕구 또한 부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 자체의 본성 문제가 아닌 극단적인 치우침이 문제가 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바라봤을 때, 칠정이 악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이라는 면에서 선/악이 모두 내재한다는 고봉 기대승(高峰 奇大升, 1527 ~ 1572)의 주장에 더 공감하게 된다. 문제는 적도(適度), 중용(中庸)인 것이다.

 

 주자가 말한 정 情은 기쁨, 노여움, 슬픔, 두려움, 사랑함, 미워함, 하고픔의 정으로서, <중용 中庸>에서 말한 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과 같은 정입니다. 무릇 이미 마음이 있으면 사물에 감응함이 없을 수 없는 것이니, 정이 이 理와 기 氣를 겸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물에 감응하여 움직이면 선과 악이 여기에서 나뉘니, 정에 선악이 있음을 또한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이 발현하여 모두 절도에 맞으면 곧 이 理이고 선 善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발현하여 절도에 맞지 않으면 곧 기가 부여한 치우친 성질로 말미암아 선하지 않음이 있게 됩니다.(p481)... 칠정 七情이 비록 이와 기를 겸하지만, 이가 약하고 기가 강하여, 이가 기를 관리해도 되지 않고 악으로 쉽게 흐르기 때문에 기의 발현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발현하여 절도에 맞는 것은 이에서 발현하여 언제나 선한 것이니 사단 四端과 더불어 애초에 다르지 않습니다.(p482) <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 中


 <중용 中庸>에서는 성(誠)을 인간의 본체로, 그리고 밝음(明)으로 나아가는 것을 성(性)으로 바라본다. 밝음(明)을 문명(文明 civilization)이나 계몽(enlightment)라 본다면 중세에서 르네상스로의 이행은 자연스러운 성(性)이라 할 것이다. 거칠게 말해서 역사의 엔트로피 법칙 또한 하나의 흐름이라 하겠다.


 중용  제21장 自誠明,謂之性;自明誠謂之?。誠則明矣;明則誠矣。중용 제21장


 성 誠에서부터 명 明으로 구현되어 나아가는 것을 성 性이라 일컫고, 명 明에서부터 성 誠으로 구현되어 나아가는 것을 교 敎라 일컫는다. 성 誠하면 곧 명 明해지고, 명 明하면 곧 성 誠해진다.(p533) <중용 한글 역주> 中


 존재자로서의 귀신이 아닌, 형용사적 귀신, 그리고 우주만물 전체에 편재해있는 귀신, 그 귀신을 헤겔은 "가이스트 Geist"라 표현했고, 자사는 "성 誠"이라 표현한 것이다.(p534)... "명 明"은 인간의 언어와의 관련을 떠날 수 없다. 명 明을 레게는 "intelligence"라고 번역했고, 찬(Wing-tsit Chan, 陳榮㨗)은 "enlightment"라고 번역했는데 모두가 언어적 사태라고 볼 수 있다.(p535)... 본체적인 성 誠으로부터 인간이 "밝음"을 획득하는 과정을 "성 性"이라고 말한 것이다. 우리의 본성 nature은 천지의 성 誠으로부터 밝음을 획득하는 과정 process이라는 말은 "천명지위성 天命之謂性"이라는 대명제와 쉽게 연관된다.(p536) <중용 한글 역주> 中


 이러한 흐름 속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가 올바른 관점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주변환경에 기대어 사는 존재임을 깨달았을 때, 우리는 에너지가 고갈되는 속도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중용 제22장 惟天下至誠, 爲能盡其性; 能盡其性, 則能盡人之性; 能盡人之性, 則能盡物之性; 能盡物之性, 則可以贊天地之化育; 可以贊天地之化育, 則可以與天地參矣. 


 오직 천하의 지극한 성 誠이라야 자기의 타고난 성 性을 온전히 발현할 수 있다. 자기의 타고난 성 性을 온전히 발현할 수 있게 되어야 타인의 성 性을 온전히 발현케 할 수가 있다. 타인의 성을 온전히 발현케 할 수 있어야 모든 사물의 성 性을 온전히 발현케 할 수 있다. 모든 사물의 성을 온전히 발현케 할 수 있어야 천지의 화육을 도울 수 있다. 천지의 화육을 도울 수 있어야 비로소 천 天과 지 地와 더불어 온전한 일체가 되는 것이다.(p539) <중용 한글 역주> 中


 저는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지구에 대한 올바른 관점을 지니는 것이야말로 뭔가 거대한 힘을 지닌 것이라고 생각하는 바입니다.(p270)... 이 지구는 실제입니다. 지구상의 생명 역시 실제이며, 오늘날 이 지구를 위험에 처하게 한 정치적 분열은 하나같이 인류의 고안품입니다.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께서 직접 내린 계명 같은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 작은 세계에 사는 모든 생명체들은 상호 의존적입니다.(p271) <과학적 경험의 다양성> 中


 또한, 우리 각자가 각자의 자리에서 바른 식견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한다면 우리 개인도 심리적 엔트로피 법칙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이야 말로 베르그송이 말한 엘랑 비탈(Elan Vital)이며, 엔트로피에 반하는 네겐트로피(negentropy)가 아닐까.


 중용 제26장 故至誠無息。不息則久,久則徵。徵則悠遠。悠遠,則博厚。博厚,則高明。博厚,所以載物也。


 그러므로 지성 至誠은 쉼이 없다. 쉼이 없으면 오래가고, 오래가면 징험이 드러난다. 징험이 드러나면 유원 悠遠하고, 유원하면 박후 博厚하고, 박후 하면 고명 高明하다. 박후 博厚하기 때문에 만물을 실을 수 있고, 고명 高明하기 때문에 만물을 덮을 수 있고, 유구 悠久하기 때문에 만물을 완성시킬 수 있는 것이다. (p564) <중용 한글 역주> 中


 우리의 의식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 바로 심리적 무질서(psychic disorer)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이미 마음먹었던 의도나 이를 실행하는 것을 방해하는 정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런 상태로 어떤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서 여러 가지 이름을 붙이는데, 바로 고통, 공포, 불안, 분노, 질투와 같은 것들이다.이러한 다양한 종류의 무질서들은 우리의 주의를 바람직하지 못한 여러 가지 사물에 분산시키고, 결국 우리가 원하는 활동들을 수행하지 못하게 만든다.(p80)... 심리적 엔트로피의 반대 상태는 최적 경험(optimal experience)이라고 할 수 있다... 최적 경험이란, 의식이 질서 있게 구성되고 또한 자아를 방어해야 하는 외적 위험이 없기 때문에 우리의 주의가 목표만을 위해서 자유롭게 사용될 때를 말하는 것이다. 이미 이러한 상태를 바로 플로우(flow) 경험이라고 이름 붙였다... 우리가 가능한 자주 플로우를 경험할 수 있도록 의식을 조절하면 삶의 질은 저절로 향상되게 마련이다.(p87) <몰입 flow> 中


 정리해보자. 역사의 발전은 역사 교과서에서 말하듯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처절한 생존의 기록이며, 물리 법칙에 대한 생물의 생존 투쟁이다. 오존층으로 외부로부터 보호받는 생태계라는 폐쇄된 시스템에서 우리는 자원의 고갈이라는 엔트로피 법칙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의 처지를 인식하고 올바르게 처신한다면 속도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어찌보면 당연한 결론이지만, 이 결론을 내리기 위해 정말 많은 인용을 했다는 생각을 하며 서둘러 마무리 한다.


 PS. 속도를 늦춘다고 해도 대략 50억년 정도만 버티면 될 듯하다. 50억년 뒤에는 태양이 적색거성(赤色巨星, red giant)이 되어 금성이나 지구 궤도까지 팽창한다고 하니, 이때는 자원 고갈을 걱정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엘론 머스크가 화성 식민지를 개척한다고 하지만, 50억년 뒤에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해왕성 정도까지는 나가야 될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4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9-12-15 09: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15 1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15 1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15 18: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17 12: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17 14: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별도의 수식어가 붙지 않은 한 정치경제학에서 가치라는 단어는 언제나 교환가치를 의미한다. 이것을 애덤 스미스(Adam Smith)와 그의 후예들은 교환가능한 가치(exchangeable value)라 불렀는데, 이는 교환가치(exchange value)로 써야한다.(p24)... 교환가치는 가격과 구분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우리는 한 물건의 가격이라는 표현이 나오면 돈으로 표현된 그 물건의 가치를 뜻한다고 이해할 것이다. 그리고 그 물건의 가치, 즉 교환가치는 그 물건의 일반적인 구매력, 다시 말해서 그 물건을 가지고 있음으로써 일반적으로 구매할 수 있는 상품 전체에 대하여 행사할 수 있게 되는 역량을 뜻한다고 이해할 것이다.(p25) <정치경제학원리 3> 中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 ~ 1873)는 <정치경제학원리 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에서 가치(價値, value)를 가격(價格, Price)과 구별하여 사용한다. 가치와 가격 모두 시장(市場, market)을 매개로 형성된다고 했을 때, 화폐시장이 활성화되기 이전 사회에서 교환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마르셀 모스(Marcel Mauss, 1872 ~ 1950)는 <증여론 Essai sur le don>에서 아메리카와 오세아니아 문명의 사례를 통해 시장 형성 이전의 교환행위를 분석했다.

 

 시장가치(市場價値, valeur venale)밖에 없는 물건들이 많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들은 아직도 시장가치 외에 감정가치(valeur de sentiment)를 가지고 있다. 우리의 도덕은 단지 상업적인 것만이 아니다... 선물을 받고 답례하지 않으면 그 받은 사람의 인격이나 지위는 좀 더 열등한 상태로 떨어지며, 답례할 생각 없이 받았을 때에는 특히 그러하다.(p249) <증여론>


  사회생활이라는 특수한 생활에서는 우리 사이에서 아직도 일컬어지고 있는 바와 같이 우리는 '빚이 남아 있는 상태로' 있을 수 없다. 받은 것보다 더 많이 답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대접'은 언제나 돈이 더 많이 들고 큰 것이다... 초대는 제공되지 않으면 안 되며 또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어떤 사람이 빠지면, 그것은 나쁜 징조, 질투와 '저주'의 조짐 또는 표시였다.(p253) <증여론>


 증여(또는 선물)하는 행위가 사회 생활의 기초라는 모스의 분석은 여러 면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개인적으로는 직장 회식(會食)문제, 역사적으로는 조공(朝貢) 외교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문제 역시 <증여론>과 연관되는 문제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모스의 의견에 공감하게 된다. 그렇지만, 모스의 분석에 반론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마셜 살린스(Marchall Sahlins)는 <석기시대 경제학 Stone age Economics>에서 모스의 <증여론>에 대해 석기 시대에는 이러한 논리가 적용되지 않음을 비판했다. 

 

 하우는 비록 영(靈)이라고 하더라도 퍼스가 주장하는 것처럼 그 자체가 저절로 해를 입히지는 않는다... 주지 않고 가지고 있는 재화 자체가 위험스러운 것이 아니라 재화를 주지 않고 가지고 있는 행위가 비도덕적이다. 따라서 속인 사람은 다름아닌 정당화될 수 있는 공격에 노출된다는 의미에서 위험하다. 여기서 우리가 다루고 있는 사회는 교환관계와 교환형태를 통해 타인을 희생시켜서 이익을 취할 수 있는 자유가 상상조차 되지 않는 그런 사회이다. 라나피리가 제시하는 요지는 호혜성을 초월한다.그것은 선물이 적절하게 보답되어야 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보답이 정당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p234) <석기시대 경제학> 中


 살린스에 따르면 원시시대에는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이익을 따지는 시대가 아니다. 그는 원시시대 인간은 이타적 존재라는 주장하며, 자신의 주장은 루소(Jean-Jacques Rousseau)의 사회계약론과 맞닿아 있는 반면, 모스는 홉스(Thomas Hobbes, 1588 ~ 1679)의 견해에 가까운 것으로 대조한다. 홉스의 <리바이어던>과 루소의 <사회계약론>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정리하도록 하고 일단은 넘기자.

 

원시교역의 경제적 균형은 자율적인 개인이나 기업이 구매자와 판매자로서 대등하게 경쟁하는 과정에서 가격이 결정되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작용한다. 오히려 그것은 공동체 내부 경쟁을 금지하고, 서로에게 관대성의 의무를 지고 있는 파트너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함께 끌어모으며, 관대하지 않은 성향을 보이는 사람들을 배제시키는 제도적 배열을 통해 궁극적으로 어떤 유사한 '가격'을 도출한다.... 원시적 교역체계는 재화의 가용성과 효용을 적절하게 반영하는 교환율을 통해 이들 개인을 거래 관계 속으로 끌어들인다.(p383) <석기시대 경제학> 中

 

 세밀하게 검토해보면 사실 수렵채집 사회야말로 원초적으로 풍요로운 사회였음을 알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이 진술은 하나의 유용하면서도 예기치 못한 결론으로 우리를 이끈다. 수렵채집민이 풍요롭다고 주장하는 것은 인간의 조건이 이미 정해져 있는 어떤 비극이고 인간은 무한한 욕구와 희소한 수단 사이의 항구적인 불일치하에서 힘겨운 노동의 원죄를 짊어지고 살아가야만 한다는 생각 자체를 부정한다.(p26) <석기시대 경제학> 中 


 교환의 동기에 대해 다른 입장을 보이는 두 저자(모스, 살린스)지만, 이들 모두 민속지학(民俗誌學, ethnography)의 관점에서 교환과 원시 시대의 경제학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고든 차일드(Vere Gordon Childe, 1892 ~1957)는 <신석기 혁명과 도시 혁명 Man makes Himself>에서 이들의 방법 자체를 비판한다.

 

 현존 야만인들이 선사시대 수준의 경제체제를 갖추고 있다고 해서, 그들의 사회조직, 신앙체제, 친족체계 등이 선사시대와 비슷한 수준이고, 그 이후 변화 발전하지 않았다고 가정하는 것은 잘못이다.(p76) <신석기혁명과 도시혁명>中 


 고든 차일드는 <신석기 혁명과 도시혁명>에서는 교환 행위를 개인과 공동체 내부의 관점 분석하기보다 '도시-비도시', '정주생활지 - 유목생활지' 사이의 교환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중심지- 주변부' 관계로 교환을 바라보는 그의 관점을 통해 우리는 폐쇄계(closed system)의 교환에서 개방계(open system)의 교환으로 시야를 넓힐 수 있다. 


 신석기 혁명이 정점에 달하자 정주생활이 일반화되었다. 그런데 반 건조지역에서 정주생활에 적합한 곳은 제한적이었고 이에 충적대지와 소택지를 중심으로 한 관개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게 되었다.(p157)... 충적대지의 정착민의 경우, 잉여농산물은 풍부한 반면에 축산물, 어류, 사냥 고기, 그리고 귀금속 등이 부족하기에, 그들 주변의 수렵채집민이나 유목민과의 교역으로 그 부족분을 보충하였다. 이에 자연스럽게 신석기시대의 자급자족적 경제는 상호의존적 경제체제로 변모해 나갔다.(p165) <신석기혁명과 도시혁명> 中


 육상운송에서 바퀴달린 수레의 사용은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바퀴는 도자기 생산을 위한 녹로에도 사용되어 기계 산업의 길을 열었다.(p179)... 문자는 지식을 전달하는 강력한 수단이 되었고, 이런 문자로 경험을 영구히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우리는 문자를 매개로 하여 고대인의 사고에 침투해 들어갈 수 있다.(p263) <신석기혁명과 도시혁명> 中


 고든 차일드는 신석기혁명을 도시혁명으로 이끈 요인 중에 바퀴와 언어를 언급했는데, <말, 바퀴, 언어 The Horse, the Wheel and Language>는 이와는 달리 중앙유라시아 초원 유목민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변경은 경제적 필요가 공공연한 적대감을 막아줘 귀중품들을 상호 이익을 위해 교환하는 평화로운 교역의 장소로 그려질 수도 있고, 혹은 문화적 오해와 부정적 선입견 및 양자를 연결하는 제도의 부재로 인해 증폭된 불신의 장소로 그려질 수도 있다. 농경적인 유럽과 초원 사이의 변경은 두 가지 삶의 방식, 즉 인정사정없이 대립하는 농경과 목축 사이의 경계로 여겨졌지만, 이는 잘못된 선입관이다.(p346) <말, 바퀴, 언어> 中


 <말, 바퀴, 언어>의 저자 데이비드 W.앤서니(David W. Anthony)는 '농경민족 VS 유목민족'의 관점에서 청동기 시대 유라시아 역사를 바라보지 않는다. 대립하는 관계가 아닌 상호 협조하는 관계였음을 강조하는 그의 주장 속에서 우리는 <석기 시대 경제학>의 살린스와 통하는 바를 발견하게 된다.


 독일의 참나무에 의하면 서기전 3760년 이후 상대적으로 온화한 기후가 돌아왔지만, 그때는 다뉴브 강 하류 하곡과 발칸의 문화가 극적으로 변한 뒤였다. 서기전 3800년경 이후 나타난 문화들은 가정의례에서 여성상을 규칙적으로 사용하지 않았고, 더 이상 구리로 된 나선형 팔찌나 국화조개로 만든 장신구를 차지 않았다.(p334)... 야금술, 채굴, 토기 제작 기술은 양이나 기교 면에서 급격히 퇴보했고 토기제작 기술은 양이나 기교 면에서 급격히 퇴보했고 토기 및 금속 물품은 양식이 눈에 띄게 바뀌었다... 고유럽의 종말은 서기전 6200년 스타르체보-크리슈 개척자들에 의해 시작된 전통을 단절시켰다.(p335) <말, 바퀴, 언어> 中


 앤서니는 환경적인 요인 또는 알 수 없는 어떠한 요인에 의해 고유럽 문명이 종말을 고했고, 이러한 농경 문화의 쇠퇴 속에서 기마 유목 민족의 등장은 새로운 지원자의 모습으로 비춰진다.


 전쟁으로 더욱 악화한 흉작이 좀더 유동성 있는 경제 체제로의 이동을 촉진했을 것이다. 이런 이동이 일어나자 초원의 목축 부족은 꾀죄죄한 이주자 혹은 경멸스러운 습격자에서 탈피했다. 요컨대 새로운 경제 체제가 요구하는 가축 자원을 풍부하게 거느린 족장이자 후원자로서 더 큰 가축 떼를 관리하는 새로운 방식을 습득한 이들로 탈바꿈한 것이다.(p378) <말, 바퀴, 언어> 中


 여기까지 내용을 정리해보자.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을 통해 교환이 일어나는 원인에 대해 설명을 했고, 스튜어트 밀은 <정치경제학원리>를 통해 '교환가치'과 '가격'을 구분했다. 시장이 활성화되기 이전에도 교환이 이루어졌음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시간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 교환이 이루어진 배경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다. 모스는 이에 대해 '증여'를 통한 관계 유지로 설명한 반면, 살린스는 '함께 살아가려는 동기'로 파악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한편, 이들의 의견 모두는 공동체 내애세 교환을 분석한 반면, 고든 차일드는 신석기 혁명을 통한 도시화를 통해 교환을 바라보면서 거시적으로 교환과 그 영향을 분석한다. 그리고, 앤서니는 이같은 전통적인 '중심부-주변부' 관점에 반대하고, 상호협조적인 관계로 문명간의 교환을 바라보고 있다.


 <말, 바퀴, 언어>를 통해 우리는 유목민족의 문화가 결코 농경민족의 문화보다 열등한 문명이 아닌 서로 대등한 문명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훈족의 아틸라(Attila, AD 406 ~ 453)로 대표되는 '야만 유목 민족'이라는 우리의 편견을 이제는 버려야할 때가 아닐까.

 

 문명과 문명권 인식에 관한 잣대로 유목기마민족들이 창조한 제반 문화 요소를 가늠해 보면, 그들 역시 다른 민족들과 마찬가지로 나름의 문명을 창조하고 문명권을 이루어놓았음을 갈파(喝破)하게 된다. 그들은 자신들의 육체적 정신적 노동을 통해 그들 공유의 결과물(結果物)인 문명을 창조하여 인류 문명의 공영에 기여하였다... 요컨대 그들의 문화는 문명 구성 요소에서의 독특성(상이성)과 문명의 시대성 및 지역성이 보장되고 생명력이 유지됨으로써 문명권 형성의 제반 요인들을 구비하였던 것이다.(p227) <고대문명교류사> 中


  해류(海流)에서 한류(寒流)와 난류(暖流)가 만나는 곳에 어장(魚場)이 형성되는 것처럼, 유목민족과 농경민족의 문화가 만나는 곳에서 활발한 교역이 일어났으며 그 중심지가 바로 중앙아시아라는 사실 속에서 우리는 세계열강들이 이곳에서 펼치고 있는 게임의 진면목을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중국의 서진> <그레이트 게임> <현대 중동의 탄생>은 이러한 일련의 흐름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다소 늘어진 페이퍼가 되버렸지만, '교환'이라는 주제로 <국부론>으로부터 <중국의 서진>을 관통하는 일련의 흐름을 정리한 이번 페이퍼를 마무리한다...


 PS. <말, 바퀴, 언어>에서도 '증여'에 대한 언급이 있다. 다만, 모스의 <증여론>과 다른 증여의 역할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는 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의 시대적 차이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계급사회에서의 '증여'는 상대적으로 평등산 시기의 '증여'와는 다를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인도/유럽 공통조어 사회의 종교와 사회 구조는 모두 맹세로 구속되는 약속에 기초했는데, 그 약속이란 후견인(또는 신)이 피후견인(또는 인간)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소와 말을 선물로 줄 것을 강제하는 것이었다. 이 의무를 보증하는 맹세는 원칙적으로 고 유럽 텔 출신의 피후견인으로 확장될 수 있었다.(p378)... 인도, 유럽 공통조어 사용자들은 훌륭한 행동에 대한 보상으로서 선물과 명예 그리고 예상치 않은 약탈/노획물에 관해 이야기했는데, 이는 성취에 기초해 명예와 부를 얻을 수 있었음을 시사한다.(p379) <말, 바퀴, 언어> 中


댓글(9) 먼댓글(0) 좋아요(4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막시무스 2019-03-09 22: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의 페이퍼를 볼 때마다 읽고 싶고 읽어야 할 서적이 늘어나는것 같아서 즐겁기도 하고 부담도 됩니다! 항상 좋은 리뷰에 감사드립니다! 즐건 주일되십시요!

겨울호랑이 2019-03-09 22:55   좋아요 1 | URL
막시무스님께 즐거운 부담을 드릴 수 있어 영광입니다. 감사의 말씀 전하며, 막시무스님께서도 행복한 주말 되세요!^^:)

2019-03-10 04: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10 09: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10 09: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10 1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보한스 2019-03-16 11: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움받고 갑니다

겨울호랑이 2019-03-16 11:32   좋아요 0 | URL
바보한스님께 작은 도움이 되어 기쁩니다. 행복한 주말 되세요!^^:)

2019-03-17 2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