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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시오노 나나미(鹽野七生, 1937 ~ ) 작가를 매우 좋아하던 시기가 있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인기를 모은 그의 작품은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며, 특히 <로마인 이야기>는 작품이 나오는 매 해마다 화제가 되는 인기있는 작품이었다. 그의 작품이 인기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건 동양인의 관점에서 서양역사를 다룬 신선함 때문이 아닐까. 동양문명권에 속하는 일본인이 오랜 이탈리아 거주 경험을 바탕으로 쓴 역사서는 사실감과 공감을 같이 주며 높은 인기를 끌었으리라. 시기적으로는 IMF 금융위기를 맞고 있던 시기에 나온 <로마인 이야기 1 :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의 내용은 우리들에게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개인적으로도 시오노 나나미의 작품을 접한 것은 1998년이었는데, 금방 시오노 나나미의 작품에 매료되어 서점에 책 주문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로부터 약 25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내게는 거의  잊혀진 작가가 되버렸지만 언젠가 그의 작품을 정리하겠다는 생각을 마음 한 구석에 간직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십자군 이야기>를 읽으면서 밀린 과제를 하는 마음으로 그의 작품 세계를 정리해본다. 

 

 시오노 나나미의 작품 세계는 두 남자가 중심에 자리한다. 체사레 보르자(Cesare Borgia, 1475 ~ 1507)와 율리우스 카이사르(Imperator Julius Caesar, BC 100 ~ BC 44)가 그들이다.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보다 높은 자리에 올라설 야망을 가졌다는 공통점을 가진 이들은 각자 작품 세계의 초기와 중기를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작가는 초기 주로 르네상스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쓴다. <체사레 보르자, 우아한 냉혹>, <신의 대리인>, <르네상스의 여인들>,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등이 이 시기에 씌여진 대표작이며, 이들 작품은 '체사레 보르지아'와 연결되는 구도를 갖는다. <신의 대리인> 의 4인 중 알렉산데르 6세는 체사레의 아버지이며, 율리우스 2세는 체사레를 몰락시킨 장본인이다. <르네상스의 여인들>에서 루크레치아 보르자는 체사레의 여동생이며, 카테리나 스포르차는 체사레와 직접 대립하다 포로가 된 비운의 인물이다. 

 

 마키아벨리는 귀족세계에서 보자면 독립적인 인물이지만, 체사레의 언행을 기록하는 일종의 복음사가 역할을 작품에서 담당한다. 이러한 구도 안에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는 한 시대의 천재도 지나가는 인물에 불과하다. 이같이 시오노 나나미의 르네상스 세계에서 중심은 '체사레 보르자'이며, 시대정신은 '인간해방' 이 아닌 '이탈리아 통일'로 표현된다. 짧은 시기를 불태우고 사라진 젊은 야심가에 대해 <군주론>에서 내린 체사레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평가는 분명하고 냉정하지만, 작가는 마키아벨리의 의도를 무시하고 자신의 관점에서 해석하면서 애도 행렬에 동참시킨다.


 <체사레 보르자, 우아한 냉혹>의 서두에서 우리는 시오노 나나미의 다른 기둥 카이사르와의 접점을 찾을 수 있다. 머리말에는 체사레의 보검과 군기에 새겨진 'Aut Caesar, Aut Nihil' (카이사르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냐)라는 문구가 소개되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작가의 다음 시선이 향하게 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시오노 나나미는 대작 <로마인 이야기>를 통해 제국의 기틀을 마련한 '성공한 야심가'에게 헌정한다. 전체 15권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 속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에게 직접 할당된 분량은 낱권으로도 두꺼운 2권에 해당한다. 로마 1,000년의 역사에서 한 개인에게 이만한 분량이 할당된 것은 <삼국사기>에서 김유신이 차지하는 위상에 견줄만하다.


 개인적으로 <로마인 이야기>에서 재밌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은 포에니 전쟁을 다룬 <로마인 이야기 2 : 한니발 전쟁>과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평전이라 할 <로마인 이야기 4 : 율리우스 카이사르(상)>과 <로마인 이야기 5: 율리우스 카이사르(하)>라 여겨진다. 재미와는 별도로 유익한 책을 고르자면,  <로마인 이야기 6 : 팍스 로마나>, <로마인 이야기 10 :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로 생각된다. 이 작품은 시오노 나나미의 상상력이 상대적으로 적게 반영되어 건조하게 씌여진 작품들이지만, 그 덕분에 역사사실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도 아이러니라 여겨진다.


 <로마인 이야기>의 작품 전체의 구성은 Pre- Caesar, Post- Caesar라고 할 정도로 카이사르의 존재는 분기점이 된다. 작가는 초기 로마인들이 융성할 수 있었던 원인을 주위 다른 민족들의 장점을 흡수하는 융통성과 로마의 실용성에서 찾는다. '로마인 정신'으로 표현되는 로마인에 대한 찬양에 가까운 서술은 상대적으로 정복당한 민족에 대한 비하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대표적으로 피해를 보는 민족이 그리스 민족이다. 이런 관점을 알고 나면, 나중에 나올 <그리스인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대충 짐작된다. 이는 다시 뒤에서 다루도록 하자. 

 

<로마인 이야기>는 15권이지만, 시리즈의 절정은 5권 카이사르편에서 일찍 끝난다.그래서, 작품이 6편이후로는 늘어지는 감을 받게 된다. 카이사르 시대를 지났지만, 작가는 이 천재에 대한 미련을 숨기지 않고 그를 자주 소환한다.  '카이사르라면 그러지 않았을테지만, ~', '카이스라의 의도와는 달리 ~ ' 라는 식으로 소환되는 카이사르는 후세 황제들을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한 작가의 감정에 따라 후세 황제들의 역사적 평가가 갈리는 위험이 눈에 거슬리지만, 이는 뒤에 나오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평가에 비하면 약과다. <로마인 이야기 13 : 최후의 노력> 이후 본격 등장한 그리스도교는 시오노 나나미의 관점에서는 로마의 정신을 파괴한 '제국의 악(惡)'이다. 그리스도교에 비하면 이민족 게르만 민족은 오히려 로마의 정신을 받아들인 개종자로 그려진다는 점이 작가가 바라보는 로마사의 독특함이라 생각된다. 시오노 나나미에 의하면 결국 로마를 멸망시킨 장본인은 '그리스도교'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는데,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다.  


 초기와 중기를 대표하는 두 인물인 체사레 보르자와 율리우스 카이사르. 이들 사이에는 중세(中世) 1,000년의 시간이 놓여져 있다. 작가는 이 기간을 여백으로 두지 않고 작품으로 메운다. 이 시기를 다룬 작품으로는 <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 <바다의 도시 이야기>, <십자군 이야기>, <시오노 나나미 전쟁 3부작>이 있다. 작가는 이들을 통해 싫어하는 교회사를 굳이언급하지 않고, 두 시대를 연결시키는 고리를 마련하지만, 덕분에 이 부분의 역사서는 주로 전쟁사에 머무르는 한계가 느껴진다. 다만, <바다의 도시 이야기>는 예외다.  


  크게 통일성이 없어 보이는 작품둘이지만, 개인적으로 주목할 작품은 초기에 씌여진 <바다의 도시 이야기>라 여겨진다. 베네치아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작가의 세계관이 잘 드러났다는 점에서 대표작이라 생각된다. <로마인 이야기>에 비하면 대중에게 큰 인지도가 없는 작품이지만, 이 작품은 작가의 세계관의 다른 축이라는 면에서 가지는 의미는 각별한 작품이다.


 작가는 동지중해 해양 제국으로 융성 이후 상업으로, 다시 19세기 이후에는 관광을 통해 서서히 쇠락해간 베네치아 1,500년 역사를 그려낸다. 이 작품에는 대략적으로 훈 족의 침입을 피해 바닷가에서 형성된 어촌 도시 베네치아가 상업으로 커나가고, 제4차 십자군을 통해 동지중해 중심국가로 발돋움하는 과정과 오스만 투르크와의 전쟁 속에서 키프로스, 크레타를 잃고 무너지는 역사를 담고 있다. 이후 베네치아는 수공업과 관광을 발전시키며 다른 의미에서 전성기를 구가하다 나폴레용에게 멸망당하게 된다. 작은(?) 도시 국가 베네치아의 역사를 통해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개인적으로 작가는 <바다의 도시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한때 동아시아를 제패한 일본제국이 군사력이 아닌 경제력으로, 일본 정치관료들의 내각책임제를 통해 이루기를 바랐던 것은 아닐까. 오스만 투르크에 의해 베네치아 제국의 꿈이 무너졌을 때, 작가는 미국에 의해 대동아공영권이 무너져 내렸던 제2차 세계대전 패전순간을 떠올렸던 것은 아닐까. 이후 베네치아가 내륙의 수공업과 관광으로 부흥했다는 사실을 통해 식민지를 잃은 일본 제국의 갈길을 제시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런지. 


 작품 속에 표현된 작가의 정치철학은 이러한 생각에 다른 근거가 된다. 작가는 작품 안에서 외륜(外輪)과 내륜(內輪)으로 표현되는 베네치아의 귀족정을 이상체제로 그린다. 불과 수백 명의 귀족에 의해 신속하게 의사결정이 되는 체제에서 오늘날 일본 내각책임제를 연상하게 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체사레 보르자, 우아한 냉혹>, <로마인 이야기>에 나타난 1인 천제에 의한 제국을 이상체제로 생각하는 작가지만, 이러한 체제가 어려울 경우 플랜 B로 귀족정을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마침 전후 일본이 걷는 체제의 길이 같은 모습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우연이라고만 하기에는 너무도 절묘하다. 이런 이유로 <바다의 도시 이야기>는 작가의 정치철학을 잘 드러낸다는 점에서 대표작으로 볼 수 있으며, 시오노 나나미를 정치적으로 플라톤주의자에 가깝다고 봐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플라톤주의자가 민주주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는 <그리스인 이야기>를 통해 확인해보자. <로마인 이야기>와는 달리 이 작품은 선뜻 손이 가질 않았는데,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이제는 작가의 세계관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둘째는 작품의 대강 전개가 짐작되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혼란을 잠재운 알렉산드로스(Alexander III Magnus, BC 356 ~ BC 323)가 카이사르 정도의 위치로 그려지고, 그 이전 역사는 영웅의 탄생을 위한 준비된 혼란(chaos)로 설정되지 않을까라는. 실제로, 이런 짐작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이 작품의 의의를 찾는다면, 카이사르 정신의 근원을 헬레니즘(Hellenism)으로 대표되는 알렉산드로스의 세계제국의 정신에서 찾는다는 것이고, 이를 요약하면 민족을 초월한 포용과 혁신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으로 시오노 나나미는 제국주의 세계관을 보다 앞선 시대로 확장시킬 수 있게 된다...

 

그런 점에서 <그리스인 이야기>는 시오노 나나미 세계관에서 <아이네이스>와 같은 위상을 차지한다 여겨진다. 이는 <대망 大望>의 작가 야마오카 소하지(山岡莊八, 1907 ~ 1953)가 대동아공영권의 사상적 근거를 오다 노부나가(織田 信長, 1534 ~ 1582)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 秀吉, 1537 ~ 1598)의 천하인(天下人)에서 찾았던 것을 연상시킨다. 그외 색채로망 3부작이 있지만, 역사철학이 담겨 있다고 여겨지지는 않으니 짚고 넘어가자.


 이제 길었던 페이퍼를 정리해보자. 시오노 나나미는 제국을 이룬 남자(율리우스 카이사르)와 제국을 꿈꾼 남자(체사레 보르자)에 대한 로망을 갖는다. 이들의 야망을 사랑한 작가는 작품 안에서 이들의 야망을 미화(美化) 시키고, 그들의 약점을 필멸의 인간이 갖는 본연의 한계로, 그들의 비극을 시대적 한계로 그려낸다. 지중해를 배경으로 한 시오노 나나미의 세계. 뻗아나간 이탈리아 반도의 로마와 발칸반도의 베네치아를 경계로 갈리아의 카이사르와 로마냐 지방의 체사레가 양분하는 지중해. 그것이 시오노 나나미의 지중해임을 생각하게 된다...

 

어린 시절 즐겨본 만화 중 <은하철도 999>라는 작품이 있다. 미야자와 겐지의 <은하철도의 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의 마지막은 '안녕 은하철도 999... 안녕 소녕의 날이여..'라는 말로 끝난다. 청년 시절을 함께 했던 그의 작품들. 이 페이퍼를 마지막으로 뒤늦은 인사를 한다. 


 안녕, 시오노 나나미... 안녕, 나의 젊은 시절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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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24 13: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8-24 19: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20-08-24 15: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제는 손절한 작가의 흥망성쇠를
그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로마인 이야기>의 열혈 팬
으로 전권을 모두 읽었답니다.

읽으면서도 내내 유사 역사주의자
로 변신한 작가의 집필 의도가
영 내키지가 않더군요. 특히 카이사
르에 대한 열렬한 찬사 그리고
어느 정도 동의는 하지만 로마 멸망
의 원인이 그리스도교의 도입이라는
전제로 한 전개가 특히 그랬습니다.

오늘날 서양 문명의 두 기초가 로마
와 기독교 문명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걸까요.

아빠 찬스로 영웅 행세를 하던 체사레
보르자에 대한 소설은 정말...
아빠 찬스가 사라지자 결국 팽당하는
건 시간문제가 아니었을까요.

<그리스인 이야기>는 패스했습니다.
굳이 읽지 않아도 될 책이지 않나 싶어
서요.

일찌감치 손절한 작가에 대한 페이퍼
훌륭합니다.

겨울호랑이 2020-08-24 19:48   좋아요 0 | URL
레삭매냐님의 글을 읽으면서 깊이 공감합니다.^^:) 한때 좋아하던 작가엿던 시오노 나나미에 대한 제 생각이 치우친 생각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어 반갑습니다... 레삭매냐님과 저와 같은 이들의 생각이 모여, 이제는 작가의 진면목을 보고 바르게 자리매김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냥 2020-08-24 16: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한때 열광했으나 끝까지 읽어낼 동력을 잃어버린 작가,
더 이후에 보니 대망을 쓴 작가나 시오노나 결국은 일본 제일주의의 시각을 가진
극우주의자 들인게 점점 묻어나 보여 오만정이 떨어진데다 늙어가면서 점점 더 세계를 향한
시건방진 태도하며, 비전문인 이라는걸 코에 걸고 자기 입맛대로 역사를 요리한 망발이라 할까요.
그런걸 다 인지하면서도 이렇게 많은 분량을 읽어내신 님이 놀랍다고 할까요, 네, 대단하십니다.

2020-08-24 19: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베텔게우스 2020-08-24 23: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의 글을 읽으니 저도 십여년 전에 카이사르편을 무척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작가가 묘사한 카이사르가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왔었습니다. 시오노 나나미의 전체적인 작품세계도 꽤나 흥미롭군요. 그러나 세계관에 대해서 결코 동의하긴 어렵겠네요. .
정성껏 작성하신 페이퍼, 잘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20-08-24 23:15   좋아요 1 | URL
베텔게우스님 감사합니다. 다만, 제 페이퍼에 쓴 글은 주관적인 생각이라 작가의 세계관을 다 담아내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이런 관점이나 문제점도 보인다 정도로 알아주시면 좋겠습니다. 항상 즐거운 독서되세요!^^-)

AgalmA 2020-08-27 14: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난세에 영웅이 나오기도 쉽다는데 요즘 보면 영웅은 눈을 씻고봐도 안 보이는... 영웅이 나오기도 어려운 난세일까요, 고전적 영웅이 재현되기 어려운 시대인 걸까요. 100년 뒤쯤이면 지금은 보이지 않는 영웅이 보이게 될까요ㅎ;
100년이 뭐야 10년도 못 넘기는 작가의 한계 생각하면 지금까지 남아 호평받는 책은 정말 아끼고 사랑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 같습니다^^

겨울호랑이 2020-08-27 14:27   좋아요 2 | URL
그렇지요. AglamA님 말씀에 매우 공감하는 게 이제는 시간이 모자란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요즘이라 보다 검증된 책들에 손이 갑니다. 오랜 시간의 검증 속에서도 절판되지 않고 살아남는 책이 어쩌면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진정한 영웅은 아닐까도 생각해 봅니다.^^:)

punster 2020-08-29 20: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게의 추를 조금 옮겨놓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로마인이야기.
갈리아인을 바라보는 로마인의 시각이 마치 일본 식민지시대의 조선인을 바라보는 듯하여 불편하긴 하지만 서로마의 장대한 역사를 드라마틱하게 전달하는 필력은 경탄할 만하지요..
잘 정리하신 시오노 나나미의 작품세계를 잘 읽고 갑니다.

겨울호랑이 2020-08-29 21:42   좋아요 1 | URL
네 punster님 말씀처럼 낯선 서양 고대사의 세계를 한결 가깝게 그려낸 것은 뛰어난 작가의 역량이라 생각합니다. 시오노 나나미의 사상에는 동감할 수 없지만, 말씀하신 부분은 인정하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자이나교는 인도의 모든 종교 중에서 가장 금욕적이다. 자이나교 신자들은 이 고통스런 세계로의 끊임없는 환생에서 벗어나 해탈(Morksha, 모크샤)로 나아가기 위해 금욕을 실천한다... 자이나교는 어떤 신도 인정하지 않고, 모든 책임을 개인의 행동과 행위에 둔다. 금욕은 자이나교의 핵심이다... 자이나교에서 중시하는 또 다른 덕목은 타인에 대한 봉사, 종교 연구에 대한 관심, 욕정으로부터의 해방, 정중함과 겸손 등이다. 이 모든 실천과 평신도의 계율에서도 요구되는 금욕이 결합되어, 과거 행동의 결과인 업(業)[카르마, Karma]이 줄어든다. - 슐라미트 암발루 외, <종교의 책>, p68 - p70


 불교와 거의 같은 시기인 BC 6세기 무렵 마하비라(Mahavira, BC 599 ~ BC 527)가 창시한 것으로 알려진 자이나교. 금욕(禁慾)의 종교로 우리에게 알려진 자이나교는 이를 통해 업(카르마)를 소멸시키고자 한다. 한편, 위야사의 <마하바라따 Mahabharata 1권>에는 고행을 하는 수도자 이야기가 나온다. 자이나교 수행자라는 말은 없지만, 가인의 이야기에 담긴 내용은 자라뜨가루가 자이나교의 금욕수행자임을 짐작케 한다.


 대고행자 자라뜨가루는 얼굴을 아래로 처박고 풀 한 줄기에 의지한 채 구덩이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조상들을 보았답니다. 그 풀을 구덩이가 사는 생쥐가 갉아먹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음식을 먹지 못해 야위고 초췌했으며 고통스럽게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자라뜨가루는 가엾고 초라해 보이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말했습니다. '당신들은 누구십니까?'... 조상들이 말했지요. '여기에서 우리를 구해주려 하다니 당신은 참 마음 넓은 금욕 수행자인가 봅니다. 훌륭한 브라만이여, 그러나 고행이 우리를 구할 수는 없답니다. 친애하는 이여, 웅변가 중의 웅변가여, 우리를 이렇게 추락하도록 만드는 것은 바로 고행 때문이랍니다... 브라만이여, 당신이 보고 있는 이 생쥐는 아무도 거역할 수 없는 시간이랍니다. 마음은 시간에 잠식되어 가지요. - 위야사, <마하바라따 1권>, p223 - p225


 자라뜨가루는 금욕을 통해 인과율(因果律, Causality)을 끊고자 하지만 그의 고행은 자신을 넘어서 다른 이들에게 미치지 못하고,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지 못한다. 현생의 고난과 어려움이 내세(來世)의 업을 약화시킨다는 자이나교의 사상은 자연의 법칙에 들어맞고,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고통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데 도움을 준다. 그렇지만, 선인(善人)이 언제나 행복한 것은 아니고, 선하지 않은 사람이 언제나 불행한 것은 아닌 현실을 그리 낯설지만은 않다. 그런 면에서 같은 책 아야띠의 내용은 생각해볼만 하다.


 죄악은 업을 거꾸러 가게 하고

 죄악의 세계로 이끈다고 합니다.

 선한 사람은 선하지 않은 사람을 따르지 않습니다.

 자신의 영혼이 바로 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무릇 중생에게 행과 불행이 있다면

 이는 운명의 힘이요, 자신의 힘은 아니랍니다.

 그래서 중생은 운명의 위력을 깨달아

 너무 괴로워하지도 지나치게 즐거워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행과 불행의 무상함을 아는데, 아슈타까여

 내가 어이 나를 괴롭히리요?

 무엇을 하건 무엇을 했건 나는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이렇게 깨어 있는 나에게 괴로움은 비껴가는 것이랍니다. - 위야사, <마하바라따 1권>, p404 - p405


 현생에서의 고통이 내세의 업을 소멸시키거나, 현생에서의 선한 행동이 하늘 나라에 보화를 쌓는 행동으로 보상을 받는다는 인과율에 기초한 교리(敎理)도 어려운 이들의 마음에 희망의 빛을 준다는 면에서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자신의 행복과 불행이 자신의 힘만으로 어쩔 수 없는 것임을 알고서도, 바로 가기 위해서 선을 행하는 뜻을 넘어서지는 못할 것이다. 보상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고 하는 선행도 선한 것이지만, 자신을 위해 선행을 할 수 있다면 진정한 깨달음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 이렇게 본다면, 업은 소멸되거나 약화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깨달은 이에게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 윤회(輪廻)의 고리를 끊는 것의 다른 뜻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마하바라따>에는 이외에도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내용 정리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틈틈히 하다보면 많은 내용을 음미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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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쉬나메(Kush Nama)는 페르시아의 서사시로 501년~504년, 1108년과 1111년 사이에 이란의 하킴 이란샨 아불 카이에 의해 쓰여진 신화 역사의 일부이다.' (출처 : 위키백과)


'쿠쉬나메는 7세기 중엽 통일신라 전후의 신라를 다룬 페르시아 구전 서사시이다. 이슬람 이전 시기 영웅 서사시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오랫동안 구전으로 내려오던 페르시아의 전통적인 서사시이다... 일반적으로 페르시아 서사시의 제목으로 선(善)과 정의(正義)의 화신인 영웅의 이름을 따는 경우가 많이 있지만, 쿠쉬나메의 쿠쉬는 폭압자이고 기이한 용모를 지닌 악의 대상으로 존재한다. 이 점이 쿠쉬나메의 독특한 설정이다.(p19)


페르시아 왕자 아비틴이 바실라(Basilla) 왕 태후르와 함께 중국과 싸움을 벌려 큰 승리를 거두게 되었고, 바실라의 공주 프라랑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내용의 <쿠쉬나메>는 1998년 발굴된 페르시아 서사시다. <쿠쉬나메>가 페르시아 서사시임에도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이슬람 전문가인 이희수 교수가 작품 속의 '바실라' 또는 '마친 Machin'이 '신라'일 개연성이 높다는 내용을 밝힌 이후일 것이다. 이희수 교수에 따르면 <쿠쉬나메>의 의의는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페르시아 문헌으로 된 신라 관련 자료는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아랍 사료들이 대부분 통일신라 시대 한반도와 아랍 세계 간의 해상 교역 관계를 주로 다루는 데 비해, 쿠쉬나메는 삼국 시대 후반인 7세기 중엽 사산조 페르시아 시대의 정치적 상황을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다. 따라서 쿠쉬나메의 발굴과 해제는 신라와 사산조 페르시아의 정치적 관계는 물론, 한반도와 이슬람 초기 서아시아와의 새로운 관계 정립을 위한 유용한 내용들을 담고 있어 고대 실크로드를 통한 문화 교류, 나아가 신라의 대외 관계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 줄 것으로 기대한다.(p21)'


 이슬람 문헌 여러 곳에서 신라에 대한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어, 고대 실크로드를 통한 문명 교류사에 신라가 역할을 하였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유적을 통해서도 페르시아 문화를 신라 유적에서 발견하게 된다.


 '이 석조 유물(입수쌍조문석조유물)도 원의 중앙 아래서 나무 한 줄기가 수직으로 올라가고 위에는 잎이 무성하며 수간(樹幹) 밑에는 수간 앞뒤에서 긴 목이 교차되어 있는 두 마리 새가 마주 보고 있는데, 머리 위에는 벼슬이 있고 굵고 긴 꼬리는 반원을 그리면서 위로 올라가 위의 나뭇잎에까지 이르고 있다.(p457)... 경주 지방에서 출토된 이 두 유물의 문양은 페르시아계 문양에 그 원류를 두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페르시아계 문양은 대체로 평면은 원형이고, 중앙에 나무가 수직으로 서 있으며, 나무 좌우에 동물을 배치하고 있고, 연주문대를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p458)' <고대문명교류사>


[사진] 입수쌍조문석조유물(立樹雙鳥文石造遺物) 문양 (출처 : http://m.blog.daum.net/yns7070314/8014209)


 문화적인 교류이외에도 여러 형태의 인적 교류가 있음을 문헌산으로로 확인되는데, 잘 알려져 있듯 '처용' 설화에서 처용 역시 아랍계라는 학설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경주 곳곳에 있는 무인상을 비롯한 석조상을 통해서 이국적인 면모를 풍기는 인물들을 우리는 만날 수 있다.


[사진] 경주 괘능에 있는 석조상( 출처 : http://yellow.kr/blog/?p=1277)

 

'동해 용(龍)이 기뻐하여 곧 일곱 아들을 데리고 임금 앞에 나타나 덕을 찬양하고 춤추고 음악을 연주했다. 그 중 한 아들이 왕의 행차를 따라 서울에 들어와 왕의 정치를 보좌했는데, 그 이름을 처용(處容)이라 했다... 그의 아내가 몹시 아름다웠으므로 역신(疫神)이 그를 흠모해 사람으로 변신해서 밤중에 그의 집으로 갔다. 남몰래 그의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했다. 처용이 밖에서 집에 돌아왔다가 잠자리에 두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물러났다.(p170)' <삼국유사 三國遺事> 처용랑(處容郞)과 망해사(望海寺) 중


 <쿠쉬나메>는 앞서 말한대로 발굴이 1998년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있지 않다. 그리고, 과연 '바실라'가 '신라'인가에 대한 반론 역시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신라'가 '바실라'라는 섬나라(<쿠쉬나메>에서 바실라는 섬이다)라는 공간 설정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서사시에는 다분히 작가의 창작이 들어가 있으므로, 이러한 작가의 상상에 당시 아랍세계에 알려져있던 '신라'라는 실크로드 끝에 있는 국가는 매력적인 소재로 작용되지 않았을까. 더구나, 작품 내용이 12세기까지 꾸준히 바뀌어 지금 전해온다면, 8세기 아랍세계와 중국(唐)과의 대립 역시 작품의 세계관 안에 녹아있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지도] 탈라스 전투(The Battle of Talas, AD 751) (출처 : http://yellow.kr/blog/?p=1277)


 우리에게 고구려 유민 출신 고선지(高仙芝, ? ~ AD 756) 장군이 지휘한 것으로 알려진 탈라스 전투 등으로 아랍세계와 중국이 충돌이 본격화되었다면, 아랍인들에게 중국보다 더 멀리에 있는 어떤 나라가 자신들을 도와 중국을 물리친다는 상상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러한 상상의 예로 기독교 유럽 세계의 '사제왕 요한'전설이 있다. 이슬람 세계에 포위된 유럽은 사제왕 요한이 세웠다는 아시아에 있는 기독교 국가가 있다는 희망 속에서 대항해시대(大航海時代)를 열어가게 된다. 그처럼, 중국과 부딪히게 된 이슬람 사람들 역시 중국 건너에 자신들의 형제 나라가 있다는 희망 속에서 이런 서사시를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사제왕 요한(Presbyter Johannes) 전설은 중세 시대에 동방(東方) 어딘가에 거대하고 풍요로운 기독교 왕국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프레스터 존(Prester John)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사제왕 요한의 이야기는 12세기에서 17세기까지 유럽에서 유행했다. 동방의 무슬림과 온갖 이교도들의 나라 너머에 있다는 이 기독교 왕국에 대한 이야기는 기록에 따라 약간 다르지만, 중세 시대 유럽에서 유행하던 여러 판타지가 섞여있다. 전설에 따르면 사제왕 요한은 세 명의 동방 박사 중 한 명의 후손이며, 관대한 군주이며 덕을 갖춘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의 부유한 왕국은 청춘의 샘 같은 온갖 신기한 것들로 가득하며 에덴 동산에 맞닿아 있었다고 한다.


 사제왕 요한 신화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제왕 요한과 가톨릭 세계가 힘을 합해 이슬람을 협공하자는 것이었다. 에티오피아의 대패로 사제왕 요한의 신화는 사라졌다.'(출처 : 위키백과)


[사진] 사제왕 요한 전설 (출처 : 위키백과)


 <쿠쉬나메>는 페르시아 서사시이고, 수록된 작품은 신라와 관련된 부분만 추려서 옮긴 번역본이기에, 아쉬움이 많은 책이다. 그렇지만, 그 속에 남아있는 '신라의 향기'를 찾으려 읽다보면 흥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쿠쉬나메>와 유사하게, 페르시아 왕자와 중국 공주의 사랑을 다룬 푸치니(Giacomo Puccini, 1858 ~ 1924)의 오페라 <투란도트 Turandot> 중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공주는 잠못 이루고'를 마지막으로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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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7 16: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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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7 17: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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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11-27 17: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너무 오래되어서 당사자에게 물어볼 수는 없겠지만, 이야기가 맞다면 처용은 정말 멀리서 왔네요.
어느 날 집에 잠깐 다녀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겠어요.^^;
겨울호랑이님, 기분 좋은 하루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17-11-27 17:05   좋아요 2 | URL
^^: 아마 동남아시아에서 시집온 신부들과 같은 느낌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네요.. 비행기도 없었던 옛날 멀리까지 교역을 하러 다니던 이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니데이님도 따뜻한 저녁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북다이제스터 2017-11-27 19: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통일신라 때 페르시아와 교류가 많았단 이야기는 알았는데, 이런 얘기들까지 있었네요. ^^

겨울호랑이 2017-11-27 19:56   좋아요 1 | URL
^^: 네 저도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우리 고대사에는 우리가 잘 몰랐던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2017-11-28 07: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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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8 08: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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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9 00: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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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9 08: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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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9 00: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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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9 08: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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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7-11-29 2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유익한 글이라뉘!!^^
감사하게 잘 읽고 갑니다. 알라딘 측에서 보면 겨울호랑이 님같은 유저를 만난 건 큰 행운일 듯해요. 이런 유용하고 좋은 글을 지속적으로 올리고 있으니, 알라딘은 참으로 복을 넝굴째 받아 먹는 거 같습니다.ㅎ

겨울호랑이 2017-11-29 22:27   좋아요 0 | URL
^^: 저야말로 제 글을 즐겁게 읽어주시는 yamoo님과 같은 이웃분들을 만날 수 있어 진심 행복합니다. yamoo님 항상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2017-11-30 13: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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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30 13: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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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30 14: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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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30 14: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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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30 14: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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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2 08: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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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2 08: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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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2 22: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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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2 22: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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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개혁이라는 것은 공산주의 사회에서만 부르짖거나 실천하는 공산주의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사회 개혁은 얼마든지 부르짖을 수 있고 실천될 수 있는 것입니다. 민주주의 사회라는 것은 민주주의이기 때문에 더욱 사회개혁이 필요한지도 모릅니다... 민주주의나 공산주의가 봉건사회나 전제군주체제에 반동으로 생겨났다는 데는 동일성을 갖습니다. 그러나 경제구조의 이질성으로부터 두 주의는 서로 다른 길을 걸을 수밖에 없습니다. 봉건사회나 전제군주사회가 무너지고 민주주의 사회가 형성되려면 인간 본위적 사회개혁은 필수적으로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p31)'


  <태백산맥> 제3권에서는 사회개혁과 관련한 대화가 이뤄진다.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서로 다른 길을 택한 남(南)과 북(北). 서로 다른 길을 택했지만, 이들은 모두 '사회개혁(社會改革)'을 당면 과제로 떠안게 되었다. 비록, 체제가 다른 국가지만, 이들이 공통된 과제를 맞이하게 된 것은 '국가'라는 체제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국가는 완전하고 자족적인 삶을 위한 씨족들과 마을들의 공동체다. 그리고 완전하고 자족적인 삶이란 행복하고 훌륭하게 사는 것(to zen eudaimonos kai kalos)을 뜻한다. 따라서 국가 공동체가 존재하는 것은 모여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훌륭하게 활동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우리의 결론이다. 따라서 그런 공동체에 가장 많이 기여하는 자가 자유와 신분에서는 같거나 더 우월하지만 정치적 탁월함에서는 더 열등한 자들보다, 또는 부(富)에서는 더 우월하지만 탁월함에서는 뒤처지는 자들보다 국가에서 더 큰 몫을 차지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384∼322 B.C. )<정치학> (1281a2)


 <정치학>에서 말하는 내용에 따르면, 체제와 관계없이 공동체에 더 많이 기여하는 자가 더 큰 몫을 가져가게 된다. 전통농업사회에서는 지주(地主)계급이, 산업자본시대에서는 자본가(資本家)계급이, 공산당이 지배하는 공산국가에서는 당(黨)이 많은 몫을 차지하게 된다. 많이 기여한 자가 더 많이 가져가는 것이 문제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국가의 문제는 이러한 많은 몫이 재분배되지 않고, 후대에 계승되는 것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의 민중들은 40여년 전 조선왕조의 백성들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식민지시대를 거치면서  사람들의 의식은 변화를 거듭했습니다. 우리나라 공산당 역사는 중국보다 앞서 있었고, 자유주의다, 농촌계몽주의다 하는 것들이 의식변화를 촉진했습니다. 결국 지주계급의 몰락은 피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사회의 기운이고 역사의 필연인 것입니다.... 지금 이남이 내걸고 있는 민주주의는 링컨이 정의한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되려면 '정당한 사회 개혁의 절차를 거쳐 지주계급도 한 사람의 시민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주계급을 보호하고 있는 이남의 체제는 민주주의라는 허울뿐 봉건사회의 답습이고 연장일 뿐입니다. 과감한 사회개혁 없이 이런 식으로 계속되게 되면 사회혼란은 점점 더 심해질 것입니다.(p32)


 <태백산맥>의 배경이 되는 전남 벌교 지역은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남한 지역에 속한다. 당시 남한이 당면한(그리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는 기득권의 상속, 유지 문제였고, 이러한 사회적 모순은 과감한 사회개혁 또는 혁명의 필요성을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남한의 현실은 미국의 민주주의와는 차이가 있었다. 남한에서 민주주의는 거창한 구호일뿐, 현실에서 실현되지 않고 있었다. 반면, 남한 민주주의의 롤모델인 미국 시민 혁명은 어떻게 파급되었는가. 이를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 1805 ~ 1859)의 <미국의 민주주의1>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메리카 혁명이 일어나면서 주권재민의 원칙은 타운들로부터 나와서 전국을 석권했다. 모든 계급이 이 원칙을 지지했다. 이 원칙을 쟁취하기 위해서 전투가 벌어졌고 승리를 거뒀다. 이 원칙은 법 중의 법이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사태발전에 걸맞는 빠른 변화가 사회 내부에서도 일어났는데 상속법은 국지적인 영향력들을 완벽하게 말살시키고 있었다. 법률의 이런 영향과 독립혁명의 결과가 누구의 눈에나 분명해지자 민주주의 쪽의 승리는 되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선포되었다. 사실상 이 원칙의 수중에 모든 승리가 돌아갔으며 이에 대한 더이상의 저항은 있을 수 없었다. 상류계층들도 불평 한마디 없이, 저항 한번 없이, 이 원칙으로부터 불가피하게 파생되는 악에 대해서까지 복종했다.(p116)' 토크빌 <미국의 민주주의1>


 미국시민 혁명은 대내적으로는 상속법을 통한 법률개혁과 대외적으로는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실현하면서 반대세력의 저항을 무력화 시키고 받아들여지게 된다. 아마도, <태백산맥>에서 남학의 사회개혁가들은 아마도 이와 같은 사회 개혁을 꿈꾸었을 것이고, 거슬러 올라가  동학농민혁명(東學農民革命) 역시 이러한 사회개혁의 선구라 하겠다. 


 '1893년 11월에 지방관들의 수탈행위로 전라도 고부, 전주, 익산에서 민란이 일어났다. <동학사>에는 "계사(癸巳) 11월 15일에 전라도 고부, 전주, 익산 등 각 군에서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민란이 한꺼번에 일어난 일이 있었다. 횡포, 탐학, 강압으로 가결전(加結錢), 가호전(家戶錢), 무명잡세며, 국결환롱(國結幻弄)과 백지징세(白地徵稅)며 유망(流亡), 진결(陳結), 은결(隱結), 허복(虛卜)이며 불효(不孝), 불목(不睦), 불경(不敬), 독신(瀆神), 상피(相避) 등 죄목으로 옭아매어 백성들을 들들볶아 먹는 까닭이라" 하였다.(p374)' 삼암 표영삼 <동학2>


 탐관오리들의 수탈로 일어난 동학혁명은 대내적으로 당시 제도적 모순에 대한 개혁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으나,  미국 시민 혁명과는 달리 외세(일본(日本)과 청(淸)나라)의 개입으로 인해 좌절된다. <태백산맥>4권에서는 동학혁명 당시의 참상이 잘 묘사되고 있다.

 

'녹두장군 전봉준 대장이 인내천(人乃天) 깃발 펄럭임스로 전주감영을 빼은 담에 나라가 불러딜인 청국군 일본군이 밀려들고, 종당에는 일본군이 독판침서 동학군이 패허든 대목을 이약허겄구만. 다 이긴 쌈에 일본눔덜이 훼방얼 놓고 뎀베들었는디, 그눔덜언 각단지게 총질얼 허는디다가 대포할라 펑펑 쏴질러뿐께로 지아무리 용맹시러운 동학군이라 혀도 당헐 방도가 웂었제. 우리 동학군이 지닌 무기라는 것은 창뿐이고 칼뿐인디, 맞부어 싸우겄다고 쫓아가다 보면 총에 맞어 수도 웂이 죽어갔제.(p54)'


 동학농민혁명군은 우금치 전투(牛禁峙戰鬪), 1894)에서 일본군의 신식무기와 개틀링기관총 앞에 무수히 많은 사상자를 남기고 패퇴하게 된다.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에서 주인공 탐크루즈와 동료 무사들이 개틀링 기관총 앞으로 돌격하는 장면이 하이라이트로 등장하지만, 실제 일본에서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일본군의 기관총 앞에 쓰러져간 이들의 모델은 우리 선조들이었다.) 


[사진]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출처 : http://egloos.zum.com/leesunggil/v/2993445)


 만일 동학농민혁명이 외세의 개입이 없었더라면, 혁명의 성과를 내고 우리는 왕정(王政)에서 민주정(民主政)으로 이행할 수 있었을까. 그럴수도 있었겠지만, 다시 과거로 회귀할 가능성 역시 존재한다. 마키아벨리(Niccolò Machiavelli 1469 ~ 1527)는 <로마사론>에서 이러한 지점을 지적하고 있다. 모든 혁명적 변화는 다른 계기를 통해 원상태로 돌아가려는 내재적 동인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모든 정부는 초창기에는 어느 정도 존경을 받기 때문에 이 민주 정부는 어느 정도 존속되지만 그리 오래가지는 못한다. 기껏해야 그 민주정부를 수립한 세대가 살아 있을 동안만 버티는 것이다. 그 세대 이후에 민주 정부는 곧바로 아무 규율 없는 방종한 자유의 상태로 추락한다. 이런 상태에서는 시민 개인이든 정부 관리든 전혀 두려움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그 결과  각 개인은 제 멋대로 살아가며 날마다 무수한 피해 사례들이 발생한다. 그리하여 사태의 필요에 의하여 또는 어떤 선량한 사람의 제안에 의하여, 이런 방종한 상태를 모면하기 위한 수단으로 그들은 다시 한 번 군주제로 돌아간다.(p69)' 마키아벨리 <로마사론>

 

 <태백산맥> 제3권에서 나오는 짧은 대화 속에서 우리는 해방이후 극심한 혼란기 속에서 하루빨리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 의식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 의식 속에서 '혁명' 또는 '급진적인 개혁'의 목소리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급진 개혁 움직임이 정말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변화방안이었는지 물음을 던지게 된다.


 한국 전쟁 이후에도 우리는 격변의 시대를 살았고, 많은 혁명을 거쳤지만, 제대로 진전된 해결책을 찾은 문제는 드물었다. 적시에 해결하지 못한 많은 문제는 이제는 후대의 짐이 된 채 쌓여만 가고 있는 현실 속에서, '혁명적 변화'가 아닌 '작은 변화'가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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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01 00: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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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01 08: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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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01 11: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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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01 11: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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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01 12: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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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01 13: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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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 2권에 가장 큰 반전(?)은 정하섭과 소화의 관계설정이라 생각된다. 이와 더불어 한국 현대사와 관련되어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이 이번 <태백산맥>2권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었으며 이를 중심으로 이번 페이퍼를 정리해본다.


 1. 근친상간 문제 : 천륜(天倫)인가 아니면 인륜(人倫)인가


<택백산맥> 에서 소화는 정하섭을 사랑하고 있으나, 이들은 사실 이복남매 관계다. 그리고, 본인들은 이러한 사이를 알지 못한다. 이들의 관계를 알고 있는 유일한 존재는 소화의 어머니 월녀. 그렇지만, 어머니 월녀는 병에 걸려 이러한 사실을 말할 수 없는 처지이기에 이 사실을 딸에게 말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러한 충격적인 사실은 그녀를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이끈다.


 '어머니의 표정은 누그러지지 않았다. 부릅뜬 눈에 이상한 빛이 서렸다. 그녀는 몸이 달고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안 뒤여, 안 뒤여, 술도가 집 아들허고는 하늘이 두 쪽이 나도 그 짓 혀서는 안 뒤여. 월녀는 목이 찢어지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이년아, 머시가 신령님 뜻이냐. 신령님이 천벌 내릴 죄럴 니년이 저질러뿌린겨. 이년아, 넋 나간 년아. 이 일얼 워째야 쓸 것이다냐. 월녀는 정신이 아찔아찔해지기 시작했다. 딸의 얼굴이 대중없이 흔들렸다. 숨길이 막혀왔다.(p67)'

 

가족간의 근친상간을 다룬 작품으로 잘 알려진 <오이디푸스왕>을 살펴보면, 오이디푸스와 그의 어머니 이오카스테는 결혼하여 자녀를 두고 있다. 테바이를 휩쓴 재난의 원인이 그들의 근친상간임을 지목했을 때, 이오카스테 역시 이를 견디지 못하고 죽음을 선택한다.


 '자살하셨어요. 하지만 여러분들은 그 광경을 보지 못하셨으니, 그 참상은 알지 못하실 거에요. 하지만 저 불쌍하신 마님께서 겪으신 고통을 내가 기억나는 대로 여러분들에게 들려드리겠어요. 마님께서는 미친 듯 현관에 들어서시더니 두 손 끝으로 머리털을 쥐어뜯으시며 곧장 결혼침대로 달려가셨어요... 그분께서는 누가 신호라도 하는 양 무섭게 고함을 지르며 이중의 문으로 달려가시더니 걸쇠에서 빗장을 뜯어내며 방안으로 뛰어드셨어요. 그리고 방안에서 우리는 흔들리는 밧줄의 꼬인 고에 마님께서 목을 매달고 계신 것을 보았어요.(1236 ~ 1264)' <오이디푸스 왕>


[그림] 오이디푸스왕(르누아르) (출처 : http://www.bhgoo.com/2011/56460)

 

 '소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소화가 혼자서 장례를 치렀다...... 앞으로 외롭겠다...... 무당 노릇은 할래나.......(p216)'


 <태백산맥>에서 소화는 자신이 근친상간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였기에, 어머지의 장례를 자신의 손으로 치룰 수 있었다. 


 '그분께서 마님의 옷에 꽂혀 있던 황금 브로치를 뽑아 드시더니 자신의 두 눈알을 푹 찌르시며 대략 이렇게 말씀하셨으니 말예요. "이제 너희들은 내가 겪고 있고, 내가 저지른 끔찍한 일을 다시는 보지 못하리라. 너희들은 보아서는 안 된 사람들을 충분히 오랫동안 보았으면서도 내가 알고자 했던 사람들을 알아보지 못했으니, 앞으로는 어둠 속에서 지내도록 하라!"(1265 ~ 1274)'


 반면, 오이디푸스는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자신의 눈을 스스로 찌르게 된다. 이처럼 같은 근친상간이 원인이 되었음에도, 다르게 처신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을 알았는가, 아닌가의 차이일 것이다. 물론 자녀를 둔 오이디푸스와는 달리 소화는 후에 아이를 유산하게 되어 자식이라는 끈을 도중에 놓치기도 하지만. 우리가 천륜(天倫)이라고 부르는 도덕적 질서가 절대적인 것인가, 상대적인 것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2. 사회주의에 대한 상반된 시선


 작품 중 염상진은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로의 길이 우리 민족이 이루는 진정한 해방구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것은 염상진의 생각일 뿐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공산주의자들의 투쟁 이념이었을 것이다. 이들에게 공산주의는 우리가 가야할 유일한 길이었다.


 '반도땅의 역사의 길이가 반만년(半萬年)이라고 했다. 그 장구한 세월을 무턱대고 자랑 삼으려 한다. 세월의 길이가 왜 자랑감이 될 수 있는 것인가. 그건 배부른자, 인민대중의 생혈을 빨고 살아온 자들의 타령이고 최면술인 것이다. 그 긴 세월이 진정 자알이 되려면 계급 없는 사회로 나아갔어야 한다... 끝도 없는 착취의 역사일 뿐이었는데 그 세월을 무엇으로 자랑 삼는다는 것인가. 단군이 최초에 나라를 세울 때 그 건국이념이 홍익인간(弘益人間)이었다고 한다. 그 말은 누가 만들어낸 뻔뻔스런 잠꼬대인가... 해방은 반도땅의 역사 위에서 단순한 의미일 수가 없다. 자멸한 조선 봉건 왕조 위에 새 역사를 창조해야 할 중차대한 기점이 바로 해방인 것이다... 남쪽 땅에는 민주주의라는 미명 아래 지주계급과 친일 세력이 합세하여 남쪽만의 나라를 세우고 만 것이다. 사회주의의 건설, 그것만이 최선의 길이고 유일한 길일 뿐이다.(p144)'


 반면, 공산주의를 바라보는 다른 시선 역시 <태백산맥>에서 소개되고 있다. 유물론(唯物論)을 내세우는 이념(理念)으로 '종교를 부정하는 종교'를 바라보는 스님의 소리를 통해 공산주의의 한계 역시 제시된다. 공산주의자들에게 타도의 대상이 된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공포스러울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공포가 다른 편 역시 극단으로 모는 것은 아닌지. 이들에게 공산주의자들은 '다른 지주'에 불과했다.


 '불심 없는 인간, 아니 불심 없는 남자의 집단이 얼마나 무서운 동물의 집단인가를 생생하게 목격했던 것이다. 공산주의라는 그들의 집단이 내세우는 유물사상(唯物思想)이란 애당초 불심 같은 것은 완전히 묵살하고 있었다. 오로지 물질만을 좇는 그들은 앞뒤를 분간하지 않는 살인집단이었다... 그들 집단을 혐오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인간을 위한 새 세상을 만든다는 사람들이 살인을 너무나도 쉽게 저질렀기 때문이다. 물질을 탐한 지주들이 야수만도 못하다면 그 물질을 빼앗기 위해서 살인을 서슴지 않는 그 집단도 결국은 지주들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p275)'


3. 분단의 이유


 <태백산맥>에서는 곳곳에서 김범우, 염상진, 서민영의 목소리를 통해 당대의 현실인식이 제시되고 있다. 마치 영화에서 정면 클로즈업 샷으로 관객들을 향해 말을 하듯, 독자들에게 상황설명을 하는 대목이 여러 곳에서 표현되고 있고, 이는 우리의 현대사 인식을 새롭게 한다. 


[사진] 정면 클로즈 업 샷 : 영화 <나를 잊지 말아요> 中


 '연합국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던 미국은 특히 일본 문제에 있어서는 발언권이 절대적이었지요. 일본을 도맡다시피 해서 싸운 것이 바로 미국이니까요. 그래서 미국은 일본 열도를 독일식으로 나눠먹지 않고 독식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건 태평양으로 뻗치는 소련의 힘을 견제하는 동시에 태평양 전체를 장악할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그 계획에 따라 당연히 한반도 분할이 필요했고, 독일에서와는 달리 일본 쪽에 전적이 미미한 소련은 한반도의 반이나마 차지하는 데 동의한 것입니다.(p303)'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는 일본 대신 우리가 분단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다른 한 편으로, 우리가 아직도 '종북', '빨갱이' 등의 문제에 좌우되지 못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답답함 역시 느끼게 된다. 우리 현대사의 비극은 일제 식민지 시대 이후 모든 문제가 지금도 진행형이라는데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에게 해방은 식민지 시대의 종식이 아니라 새로운 식민지 시대의 개막이었습니다. 전 시대에는 일본을 공동의 적으로 삼는 민족적 명제나 자존이 있었습니다만, 이제는 백인들이 만들어낸 "이즘"이라는 것에 최면이 걸리고 마취되어 우리끼리 적을 삼아 살육을 자행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해방 후부터 지금까지는 시작에 불과합니다. 이즘을 일단 정치도구화한 이상 상호 양보는 있을 수 없습니다. 정치적 실현을 위한 상호 상승작용만 있을 뿐입니다. 그것이 정치생리이며 힘의 역학입니다. 벌써 서로를 괴뢰라고 공공연하게 욕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유치하고 졸렬하고 파렴치한 짓들입니까. 그러나 그 뻔뻔스러움과 무모함과 이율배반이 곧 우리의 정치현실입니다. 비판이나 선택이 용납되지 않는 획일적 모순의 질서에 줄을 맞춰야 하는 것이 앞으로의 우리의 길입니다.(p304)'


'최익승은 "빨갱이"란 말을 무수히 되풀이했다. 그 말은 지칭(指稱)으로 사용되기도 했고 호칭(呼稱)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건 말이 아니었다. 공격의 무기였다. 지칭이든 호칭이든 그 말이 되풀이될때마다 기묘한 마력으로 육박해왔다... "빨갱이"라는 말은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자"라는 말과는 그 색깔이나 냄새나 느낌이 판이하게 달랐다. 그건 극악한 범죄자의 대명사였고 극형의 죄목이었다. 그 말은 해방 이후 수삼 년에 걸쳐 그 어떤 말보다 사람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렸다... 그 말이 정치적 사회적으로 선택의 자유권을 상실한 지는 오래되었지만 생존권까지 좌우하게 된 상황임을 새삼스럽게 확인해야 했다.(p20)


3. 소화(素花)와 소화(小花) : 흰 꽃과 작은 꽃


 '정 참봉은 월녀를 끌어안고 목이 메었다. 월녀는 그 품에서 비로소 쏟아지기 시작하는 눈물을 흘렸다. 정 참봉이 조끼주머니에서 꺼낸 한지에 두 글자가 적혀 있었다. "소화 素花"였다.(p83)'


 <태백산맥>을 읽다보니 '소화'라는 여주인공의 이름에 관심이 가게 된다. '흰 꽃'이라는 뜻을 가진 '소화'라는 이름을 통해 내가 가진 종교적 배경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가톨릭 성녀(聖女) '소화 데레사'를 연상하게 된다.


 '리지외의 테레스(데레사)(Therese of Lisieux, 1873년 1월 2일 ~ 1897년 9월 30일)는 프랑스 맨발의 카르멜회 수녀로, 오늘날 널리 존경받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이다. 본명은 마리 프랑수아즈 테레스 마르탱(Marie Francoise-Therese Martin)이며, 리지외의 성 테레스(Saint Therese of Lisieux)라고도 한다. 예수의 작은 꽃, 단순히 작은 꽃(소화, 小花)이라고도 불린다. 테레스는 1873년 1월 2일 프랑스 알랑송 루 세인트 블레이즈(Rue Saint-Blaise)[1]에서 태어났다. 4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가르멜회 수녀가 되기로 마음먹는다. 14세 때 가르멜회 입회를 바랐지만, 나이를 이유로 허락되지 않았다. 1889년 4월 가르멜회에 입회하여 "아기예수의 데레사"라는 이름을 받는다. 1894년 7월 28일 아버지 루이가 사망하였다. 테레스는 1897년 9월 30일, 결핵으로 24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출처 : 위키백과]


 신령님을 모시는 무녀(巫女) 소화(素花) 와 예수님을 따랐던 소화(小花)의 삶은 그들의 종교, 나라가 달랐던 것만큼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린 시절 각자의 위치에서 어려운 선택을 해야하는 어려움에 처했을 때 자신의 신(神)에게 전적으로 의탁하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종교적 인간의 원형(原形)을 발견하게 된다.


[사진] 성녀 소화 데레사(출처 : http://www.carmel.kr/Theresa)


<태백산맥>에는 한국 현대사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있지만, 그것만으로 작품이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를 온전히 설명하지는 못할 것이다. 당대의 세계사적인 흐름과 개인사적인 내용, 개인의 내면이 서로 잘 조화되면서 현실을 그려내고 있기에 <태백산맥>이 우리시대 고전의 반열에 오른 것은 아닐까.


ps. <태백산맥>의 향토성은 전라도 사투리에서 배어나오는데, <태백산맥>을 표준영어로 번역한다면 그 맛이 상당히 반감될 듯하다. <태백산맥>의 번역본은 어떻게 표현하고 있을지 궁금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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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5 21: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25 2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27 17: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독서괭 2017-09-25 2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태백산맥에서 이렇게 여러 가지를 뻗어내시다니..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김범우, 염상진 넘 멋져..!하며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ㅋㅋ
오.. 영어라니 그 구수함을 번역하는 게 어찌 가능할까요. 그 감칠맛나는 욕설은 또.. 전혀 상상이 안 되네요;;

겨울호랑이 2017-09-25 22:03   좋아요 1 | URL
^^: 독서괭님 감사합니다. 제가 여러가지를 썼습니다만, 강원도에 있는 태백산맥을 남쪽에 있는 벌교까지 끌어내린 작가만 하겠습니까 ㅋ 대하소설이다보니 이런저런 감상거리가 떠오른 것 같습니다. 언어에 혼이 실렸다는 것을 「태백산맥」을 통해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외국어교육도 우리 정서를 외국인들에게 공감시킬 수 있는 능력향상으로 초점을 두어야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cyrus 2017-09-25 23: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복남매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막장 드라마의 기본 요소는 간혹 문학작품에서도 나오는군요. ^^;;

겨울호랑이 2017-09-26 06:47   좋아요 0 | URL
^^: 저도 많은 문학을 접하지 못해서 말하기는 어렵지만, 도저히 의지만으로 넘을 수 없는 장벽 중 하나가 우리가 ‘인륜‘이라고 부르는 것들에 관한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AgalmA 2017-09-26 07: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화론을 알면 알수록 재밌는 것이 근친상간이 진화생물학적으로 돌연변이를 많이 만들어내죠. 결국 자멸로 향하는 길. 현실 속 근친상간은 윤리적 터부로 굳어졌지만 생물학적으로도 나쁜 결과란 말이죠. 프로이트는 근친상간의 금지는 사회학적 과정이었다고 봤지만서도.
현재의 국가 대 국가도 이데올로기적 대결로 볼 것만도 아닌 것이 생존을 위해 무리 생활을 하던 동물적 생활방식이 그대로 이어져 온 것이라고 봐요. 근대 사회, 도시의 탄생 등 거창하게 말해도 어쩐지 그 본질은 원시와 다르지 않습니다. 고차원적으로 보려 하지만 그건 우리의 착각일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겨울호랑이 2017-09-26 08:05   좋아요 1 | URL
^^: AgalmA님 말씀에 동감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생물학적으로 근친상간을 통한 종족의 번식은 나쁜 형질의 유전자가 도태되지 않고, 계승/강화되면서 부작용을 유발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생물들은 근친교배를 피하게 되고, 이는 결국 교류의 확장 또는 영역의 확장으로 이어지는 것 같네요. 이러한 부분이 인간의 집단인 국가로도 확대된다고 말씀하신 의견에 공감합니다. 아울러, 이렇게 극단적으로 확장되어 보편성=특수성인 되버린 시점, 더이상 확장될 수 없는 시점이 되면 그때부터 쇠퇴가 시작된다고도 생각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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