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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인을 위한 예술을 창조하려 했던 똘스또이는 단번에 보편성을 얻었다. 그의 작품은 전세계에서 불후의 성공을 이룩했다. 그 이유는 그 작품이, 예술이 지닌 온갖 파멸되어야 할 요소에서 정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며, 또한 그 작품에는 영원한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로맹 롤랑 <똘스또이의 생애>에서 (p15) <인생이란 무엇인가 3 행복> 中


 톨스토이(Tolstoi, Lev Nikolaevich, 1828 ~ 1910)의 작품에 대해 프랑스 문학가인 로맹 롤랑(Romain Rolland, 1866 ~ 1944)는 그 안에 보편성과 영원이 담겨있다고 평가한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와 같은 장편 소설에서 뿐만 아니라, 러시아 민화(民話)나 다른 작가의 작품을 각색한 짧은 단편 속에서도 찾을 수 있다고 여겨지는데, <인생이란 무엇인가 3 행복> 안의 두 작품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와 <사랑이 있는 곳에 신이 있다> 역시 그런 작품들이다. 이번 페이퍼에서는 두 작품 속에서 느껴지는 톨스토이의 신, 하늘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 본다. 먼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살펴보자. 이 작품은 하늘의 천사가 인간 세상으로 내려와 신(神)이 낸 세 가지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다는 이야기다.  


 '다시 내려가 산모의 영혼을 거두어라. 그러면 세 가지 말을 알게 되리라. 즉 사람의 내부에는 무엇이 있는가,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그것을 알게 되면 하늘 나라로 돌아올 수 있으리라.'(p64)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中


 작품 속에서 천사는 사람의 내부에는 사랑이 있으며,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자신에게 필요한 지식이라는 것과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사랑을 느끼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때 저는 '사람 안에는 무엇이 있는지 그것을 알게 되리라'고 하신 하느님의 첫 번째 말씀을 생각해 냈습니다. 나는 사람 안에 있는 것은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번에는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냈습니다. 그것은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가하는 지식입니다.(p67)... 저는 그 부인이 타인의 아이로 인해 눈물을 흘렸을 때 거기서 살아 계신 하느님의 그림자를 발견했고,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깨달았습니다.(p68)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中


 톨스토이에게 신은 매우 중요한 존재였지만, 막연한 절대자의 이미지만은 아니라는 것을 <사랑이 있는 곳에 신이 있다>는 보여준다. 작품 안에서 서로의 모습에서 하느님의 모습을 발견하는 마르틴과 스쩨빠느이치의 모습을 본다면, 톨스토이에게 신(하느님)은 멀지 않은 곳에 있음을 본다. 


 고개를 돌려 문 쪽을 보았으나 아무도 없었다. 도로 몸을 굽혀 드러눕자 갑자기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또렷이 들려 왔다. "마르틴, 마르틴아! 내일 한길을 보아라, 내가 갈 터이니." 마르틴은 의자에서 일어나 눈을 비비기 시작했다.(p75)...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 나는 가물가물 잠이 들었지. 그렇게 졸고 있는데 누군가가 조그만 목소리로 '기다려라, 내일 갈 테니' 하지 않겠나?" 스쩨빠느이치는 머리를 저을 뿐 아무 말 않고 컵에 남은 차를 마저 마시고 컵을 놓았다.(p77) <사랑이 있는 곳에 신이 있다> 中


 이들 작품에서 기독교 신자들은 대부분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태 22 : 37 ~ 39)'라는 성경구절을 떠올리겠지만, 기독교 신자들이 아닌 이들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중국철학사>에서 표현되듯 하늘(天)에 대한 인류 보편적인 사상이 있어서가 아닐까.

 

 중국 문자 가운데 이른바 하늘(天)에는 다섯 의미가 있다. 첫째, 물질지천(物質之天) 즉 땅과 상대적인 하늘이다. 둘째, 주재지천(主宰之天) 즉 소위 황천상제(皇天上帝)로서 인격적인 하늘이다. 셋째, 운명지천(運命之天) 즉 우리 삶 가운데 어찌 할 도리가 없는 대상을 지칭한 것이다. 넷째, 자연지천(自然之天) 즉 자연의 운행을 지칭한 것이다. 다섯째, 의리지천(義理之天) 즉 우주의 최고원리를 지칭한 것인데, <논어 論語>에서 공자가 말한 하늘 역시 주재지천이다.(p61) <중국철학사 中國哲學史 상> 中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랑이 있는 곳에 신이 있다>의 작품 속에서 신은 '주재지천'의 존재만은 아니다. 우리 안에 사랑이 있다는 '의리지천'으로서의 하늘과 사랑을 통하여 우리가 살아간다는 '자연지천'으로서의 하늘 역시 같이 표현되고 있기에, 세계인들이 그의 작품에 공감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이런 점이 그를 '러시아의 톨스토이'가 아닌 '인류의 톨스토이'로 만든 것은 아닐까. 


 다만, 톨스토이의 작품을 접할 때 누군가는 그의 기독교 사상이 불편하다고 한다.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종교를 강요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 그 이유인데, 그의 작품 속에 깊이 나타난 종교관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그의 예술관 속에서 그 답을 찾아보자.

 

 <예술이란 무엇인가?>에서, 톨스토이는 예술이란 감정을 감염시키는 것이라는 단순한 이론을 표명하였다. 진정한 예술가는 표현도 하고 정서도 환기시킨다. 예술을 통하여 예술가는 자신이 경험한 감정을 청중에게 감염시킨다... 톨스토이는 예술의 역할로 예술가와 청중간의 의사소통을 강조했으며, 지식과 지적 활동으로부터 예술 감상을 분리시키는 데 큰 관심을 가졌다. 이 두 번째 특징이 톨스토이의 감화의 은유를 설명하며, 훌륭한 예술을 이해하기 위해 특별한 교육이나 훈련이 필요치 않다는 그의 주장을 뒷받침한다.(p32) <미학개론> 中


 톨스토이의 예술관은 작가의 감정을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을 넘어 감염시키는데 있었다. 이러한 그의 예술관을 알고 나면 작품 곳곳에 표현된 작가의 종교관(宗敎觀)을 예전보다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러시아의 민중작가로서 보편성과 영원을 추구한 예술가. 


 톨스토이와 그의 작품 세계를 깊이 있게 알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작품을 읽어야겠지만, 일단 위와 같이 '틀'을 잡아 놓고, 다른 작품을 접하면서 그에 대한 평가를 다듬어 보고자 한다.


 잠시 말을 돌려보자.  중국철학에서 공자(孔子, BC 551 ~ BC 479)이전 하늘에 대한 생각이 위와 같았다면, 춘추시대(春秋時代, BC 770 ~ BC 403) 이후에는 인간(人間)을 중시하는 새로운 기운이 싹트게 된다. 이에 대해 펑유란(馮友蘭, 1894 ~ 1990)은 <중국철학사>안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그러나 춘추시대에는 비교적 진보적인 일부 선비들이 점차 귀신 혹은 천도라는 것을 믿지 않게 되었다. 예를 들면 소공(昭公) 18년[ BC 524], 자산(子産)이 말했다. "천도(天道)는 멀고 인도(人道)는 가까우므로, 양자는 서로 상관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어떻게 천도로 말미암아 인도를 알 수 있겠는가? 天道遠, 人道邇, 非所及也. 何以知之?<좌전 左傳>" (p62) <중국철학사 상> 中


 다소 무리가 있겠지만, 톨스토이가 작품 속에서 '천도(天道)' 이야기 했다면, 러시아의 자산처럼 '인도(人道)'를 말한 작가는 누가 있을까. 도스토예프스키(Fyodor Dostoevsky, 1821 ~ 1881)가 여기에 해당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하면서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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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1 15: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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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1 15: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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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2 09: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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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2 10: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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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2 10: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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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8-10-15 0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와 같은 톨스토이 소설을 읽고 저는 좋았는데 너무 교훈적이어서 싫다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교훈적이면 아무래도 문학성은 떨어지는 것으로 느껴지긴 합니다.

겨울호랑이 2018-10-15 07:27   좋아요 2 | URL
페크님 말씀처럼 너무 교훈적이면 우리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줄 것 같아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페크님께서도 좋은 가을의 한 주 시작하세요!
 


 사무라이는 학문 자체는 경멸하고 학문에 조예가 깊은 이를 책 냄새에 취한 자라 불렀다. 이들에게는 많은 특권이 주어졌다(p583)... 그들은 엄격하고 영예로운 규범인 "무사도(武士道)"에 순응했다. 그 핵심 이론은 미덕을 명확하게 한 것으로써 "도리에 따라 주저함 없이 행동을 결행하는 힘이며, 죽어야 할 때 싸워야 할 때 싸우는 것이다.(p584) <문명이야기 1-2 : 동양문명> 中


 미국 역사학자 윌 듀런트(Will Durant, 1885 ~ 1981)는 <문명 이야기 The story of Civilization>을 통해 일본의 사무라이에 대해 위와 같이 서술하고 있다. 일본 사무라이들은 센고쿠 시대(戰國時代, 15C 중반 ~ 16 C 후반)에 전성기를 맞이하다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1543 ~ 1616) 의 에도 막부(江戶 幕府)가 열린 이후 몰락의 시기를 걷게 된다. 그리고, 이 시기를 대표하는 인물이 유명한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藏, 1584 ? ~ 1645)다. 생전 60여명의 무사들과 대결하면서 한 번도 패배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한 그는 생전 <오륜서 五輪書>를 남기게 된다. 유명한 이 무사를 소재로 한 소설과 만화가 있는데, <슬램덩크 Slam Dunk>의 저자 이노우에 다케히코(井上雄彦)가 그린 <배가본드 Vagabond>는 그러한 작품 중 하나다.


  16세기 말부터 일본의 사무라이 계급의 몰락이 시작되었다면, 같은 시기 반대편 서양에서는 이미 기사(騎士)계급은 거의 사라지고, 대항해시대(大航海時代, Age of Discovery, Age of Exploration)가 열리고 있었다. 그리고, <돈키호테 Don Quijote de La Mancha>는 이 새로운 시대를 살면서, 과거 기사 시대를 그리워한 낭만주의자인 어느 시골 귀족의 모험을 다룬 소설이다.

 

 정말이지 그는 이제 분별력을 완전히 잃어버려, 세상 어느 미치광이도 하지 못했던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명예를 드높이고 아울러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일로, 편력 기사가 되어 무장한 채 말을 타고 모험을 찾아 온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자기가 읽은 편력 기사들이 행한 그 모든 것들을 스스로 실천해 보자는 것이었다.(p69)  <돈키호테 1> 中


 <돈키호테 1>, <돈키호테 2> 두 권의 책 속에서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는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흥미진진하지만 어이없는 모험을 이어나간다. 이러한 처참한 모험의 실패를 잘 보여주는 일화 중 하나가 유명한 풍차와의 싸움일 것이다. 영어 숙어 "to tilt at windmills"  가상의 적과 싸우다( to fight imaginary enemies)의 유래가 되기도 한 아래의 이야기는 험난한 모험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그림] Tilting at windmills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Tilting_at_windmills)


 그는 둘시네아에게 이런 위기에 처한 자신을 보호해 달라고 온 마음을 다해 빌었다. 그는 장패로 몸을 가리고 옆구리에 창을 낀 채 전속력으로 로시난테를 몰아 맨 앞에 있는 풍차로 돌진하여 날개에 창을 꽂긴 했으나, 바람이 세차게 불어 날개가 돌아가자 그 창은 박살이 나고 사람과 말도 함께 딸려 가다가 들판으로 사정없이 내동댕이쳐졌다. 산초 판사가 그를 구하려고 당나귀를 몰아 달려가 보니 주인은 꼼짝달싹할 수 없는 상태였다.(p125) <돈키호테 1> 中


 <돈키호테 1>과 <돈키호테 2> 모두 돈키호테와 산초의 어이없는 모험이야기로 가득하지만, 1권과 2권은 이들을 바라보는 주변 인물들의 시선은 차이가 있다. <돈키호테 1> 에서 기사 서품을 부탁받은 객줏집 주인에게 돈키호테는 쫓아내야할 미치광이에 불과했다.  


 객줏집 주인이 마부들을 향해, 이미 말했듯이 저자는 미치광이로 사람들을 모두 죽인다 하더라도 아무런 죄가 되지 않으니 그냥 내버려 두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객줏집 주인은 이 손님의 장난이 예사가 아니라는 생각에 다른 불행한 일이 일어나기 전에 어서 빨리 재수 없는 그놈의 기사 서품식을 치러 주어 일을 매듭지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p87)  <돈키호테 1> 中


 그렇지만, <돈키호테 2>에서는 돈키호테와 산초는 출판된 책의 주인공으로, 이미  유명인이 되어 있었다. 마치 리얼버라이어티 쇼의 주인공과 같이 널리 알려진 그들은 더 이상 위험한 미치광이가 아니라 환영받는 연예인이었다. 

 

 "어젯밤에 바르톨로메 카라스코의 아들이 살라망카에서 공부해서 학사가 되어 돌아왔기에 제가 인사를 하러 갔었습니다요. 그런데 그 사람 말이 나리에 대한 이야기가 <기발한 이달고 돈키호테 데 라만차>라는 이름으로 이미 책이 되어 나돌고 있다는 겁니다요. 그리고 저에 관해서도 산초 판사라는 바로 제 본명으로 그 책에서 이야기 되고 있으며, 둘시네아 델 토보소 님에 대한 것이며 우리 둘만이 보냈던 다른 일들까지 몽땅 온다고했습니다요."(p82) <돈키호테 2> 中


 "말해 줘요, 종자 양반, 당신의 주인이라는 분이 지금 <기발한 이달고 돈키호테 데 라만차>라는 이야기로 출판되어 나돌고 있는 주인공, 둘시네아 델 토보소라는 분을 자기 마음의 주인으로 두신 그분이 아닌가요?... 나는 그 이야기 전부를 아주 좋아해요. 판사 양반, 가서 주인께 말씀드려요. 내 영지에 잘 오셨고 정말 환영한다고 말이에요. 이보다 더 나를 즐겁게 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도 전해 주세요."(p380) <돈키호테 2> 中


 이제는 가는 곳마다 자신을 알아보고 환영받는 존재가 되었지만, 돈키호테는 기사도(騎士道, chivalry)를 살릴 수 없었기에 끊임없이 방랑을 하다 결국 고향으로 돌아가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돈키호테 1>, <돈키호테 2>는 돈키호테와 산초의 모험을 다룬 연작 소설이지만, 주인공을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은 이와 같이 크게 다르다. 가는 곳마다 배척당해서 좌절했던 것이 1권의 돈키호테였다면, 주변으로부터 환영받는 존재가 2권의 돈키호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권의 돈키호테 역시 안쓰럽게 느껴지는 것은 그를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이 그를 이해하는 것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리라.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광인을 제정신으로 돌리고자 모든 사람들에게 모욕을 가하다니 말이오. 돈키호테가 제정신으로 줄 수 있는 이득이 그가 미친 짓을 함으로써 주는 즐거움에 미칠 수 없다는 것을 당신을 모르시오?... 매정한 말 같지만, 난 돈키호테의 병이 절대로 고쳐지지 말았으면 하오. 그가 낫게 되면 그로 인한 재미를 잃을 뿐만 아니라 그의 종자 산초 판사의 재미까지 잃고 말 것이기 때문이오."(p807) <돈키호테 2> 中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과거의 로망을 꿈꾸는 어느 낭만주의자의 꿈이 현실의 높은 벽에 가로막혀 무너지는 것을 보면, <돈키호테>가 유쾌한 모험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마냥 웃을 수 만은 없는 것은 위와 같은 이유 때문이라 여겨진다. 거의 같은 시기 동양의 무사도와 서양의 기사도의 몰락이라는 상황에서, <돈키호테> 속에서 낭만주의자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돈키호테가 추구했던 꿈(기사도)를 마지막으로 길었던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페르시아와 시리아, 그리고 스페인 사라센인들의 영향을 받은 게르만식 군사 활동의 오랜 관습과, 헌신과 성례라는 그리스도교적 사상에서 비롯되어 불완전하지만 풍성한 기사도의 열매가 피어났다.(p1062)... 이론상 기사들은 영웅이자 신사이고 성인이 되어야 한다는 요구를 받았다. 야만적인 기질을 길들이기 위해 애쓰던 교회는 기사 제도를 종교적 형식과 서약으로 에워쌌다.(p1065)...  기사는 항상 진실을 말할 것과 교회를 방어할 것, 가난한 이들을 보호할 것, 자신의 지역을 평화로이 유지할 것, 그리고 이단들을 쫓을 것 등을 맹세했다. 모든 여자의 수호자가 되어 그녀들의 순결을 구해 주어야 했고, 모든 기사들의 형제가 되어 서로 돕고 예를 차려야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기사도 이론이었다.(p1066) <문명이야기 4-1 : 신앙의 시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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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8-07-21 03: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돈키호테> 제 인생책인데! 고등학교 때 범우사 판으로 읽고 열린책들 이쁜 양장 종이책으로 새로 장만해 놓고 너무 읽기가 안 되어서 이북도 샀는데 이것도 계속 밀리고ㅜㅜ
그런데 켄신 안나와서 섭섭요ㅋㅋ!

겨울호랑이 2018-07-21 03:34   좋아요 1 | URL
^^:) AgalmA님은 CNN처럼 24시간 깨어계시는군요 ㅋ 높은 베개 수준의 두께를 보며 무협지를 보듯 빠르게 여러 번 읽으니 결국 읽게 되었네요 ㅋ 좋은 문장은 좀 더 음미해야겠지만요. 켄신이라 하시면 우에스기 켄신을 말씀하시는 것인지? 저는 다케다 신겐을 더 좋아하는 편입니다.ㅋㅋ

페크pek0501 2018-07-21 20: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돈키호테 성찰>을 읽기 시작했어요. ㅋ

겨울호랑이 2018-07-21 20:51   좋아요 1 | URL
페크님께서는 이미 <돈키호테>를 넘어 <돈키호테 성찰>을 읽으시는군요! 저도 페크님처럼 깊이있게 문학작품을 읽어야하는데, 아직 못 읽은 작품이 끝도 없습니다 ㅜㅜ

페크pek0501 2018-07-21 21:45   좋아요 1 | URL
아닙니다. 오해하지 말아 주세요. 저야말로 읽지 않은 책이 끝도 없어요. 읽지 않고 이름만 아는 고전이 얼마나 많은데요.
돈키호테는 완역본을 읽은 게 아니라서 더 공부가 필요한듯해 돈키호테 성찰을 샀어요. 성찰이란 이름에 끌렸나 봐요. 제가 이런 스타일에 끌리는 편입니다. ㅋㅋ

겨울호랑이 2018-07-21 21:59   좋아요 1 | URL
<돈키호테>를 당대 사람들은 재밌게 읽었다고 하는데, 문화적 배경이 다르고 시간이 흐른 지금은 즐기기 위해 공부를 해야하는 어려운 책이 되버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는 가벼운 마음으로 쭉쭉 읽었습니다만, 다 읽고 난 후 부족함을 많이 느끼게 되네요. 그런 면에서 페크님께서 알려주신 <돈키호테 성찰>은 깊이 있는 독서를 도와주는 좋은 친구라 여겨집니다. 페크님처럼 미리 OT 후에 완독을 했다면 더 즐거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도 드네요. 페크님 좋은 책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무더운 여름날 시원하게 보내세요^^:)

2018-07-22 16: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22 2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강남석 2018-07-23 04: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의 ˝미치광이에서 연예인으로...어느 낭만주의자의 모험 이야기˝ 를 읽으면서 그 어릴적 예전에 읽었던 기억이 새롭게 생각이 나는군요 ...정리를 참 잘 해주셔서 금방 책 두권을 읽은 느낌 입니다 감사 합니다...
대화 내용들을 읽으면서 제맘에 많은 도전을 받습니다.
내면의 힘과 좀더 부더러운 인격을 가진 소유자가 되기 위해 독서를 해야 겠다는...

겨울호랑이 2018-07-23 06:52   좋아요 1 | URL
강남석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저도 이웃님들 덕분에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 받으며 함께 성장하는 것에서 큰 기쁨을 얻게 됩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히든챔피언 2018-08-01 22: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글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18-08-01 23:06   좋아요 0 | URL
조용관님 격려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더운 날 건강하게 보내세요^^:)
 

 <켄터베리 이야기 The Canterbury Tales>는 영국의 제프리 초서(Geoffery Chaucer, 1343 ? ~ 1400)의 작품으로 켄터베리를 향한 순례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서로를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이 함께 모여 순례를 가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번 페이퍼는 여기에서부터 출발해 보자.

 

 <켄터베리 이야기>의 프롤로그에 나와 있듯이, 이 작품은 원래 120개의 이야기로 구성될 예정이었다. 토머스 베게트(Thomas Becket, 1118 ~ 1170)의 사당을 향해 가는 한 무리의 순례자들이 여행의 지겨움을 해소하기 위하여 각자 하나씩 이야기를 하게 되어 있었다. 초서는 이 120개 이야기 중에서 스물한 개를 완성했고 세 개는 미완 혹은 중단된 상태로 남겨 놓았다.(p121) <평생 독서 계획> 中


 서로 다른 신분을 가진 이들은 성지(聖地)를 향한 공통된 목적을 지닌 한 무리의 여행자들이었다. '하나된 신앙' 이 강조된 중세의 질서 안에서 이들은 집단으로 움직여야 했으며, 이는 종교행사인 순례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봉건 사회는 아주 촘촘한 알갱이들로 형성된 구조였다. 이 사회는 너무 빽빽한 덩어리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래서 개인들은 당시의 '프라이버시'라 할 수 있는 행위로, 비좁은 공간의 과도한 집단생활에서 벗어나 자신을 고립시키고 주위에 자신만의 울타리를 두르며 꼭 닫힌 정원에 자기를 가두려고 했다... 누군가가 외따로 떨어져 있다면 설령 나쁜 짓을 하려고 고의로 그런 것이 아니라도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나쁜 짓을 저지를 운명을 타고난 것이었다. 혼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는 적의 공격에 취약할 수 밖에 없었다. 일반적인 견해에 따르면 홀로 떠돌아다니는 것은 광기의 여러 증상 가운데 하나였다.(p717) <사생활의 역사 2> 中


 낯선 곳으로의 떠남을 의미하는 순례는 중세인들에게는 일종의 '세례(洗禮)'와 같은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순례는 일상을 떠나 자신을 새롭게 성찰하는 의미와 함께 죄의 용서를 받는다는 의미를 지녔기에, 중세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행사였다. 

 

 이성은 그들에게 낯선 곳, 다시 말해 고립을 벗어나 질서 속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한다. 이러한 문명으로의 복귀는 그들에게는 사생활로, 궁정으로, 다시 말해 집단생활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했다. 그들은 거기로 돌아가지만 고난을 겪은 뒤에야 비로소 정화되고 쇄신된다. 사실 자의든 타의든 위험과 고립 같은 힘든 시련은 강한 자들과 선택받은 자들에게는 지고의 선을 행해 나아갈 기회였던 것처럼 보인다.(p718) <사생활의 역사 2> 中


 공통의 목적을 가졌지만, 서로 다른 신분을 가진 이들은 각자 자신들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펼친다. 작품 안에서 어느 누군가가 육욕(肉慾)의 죄에 대하여 이야기한다면, 다른 누군가는 다른 이야기 속에서 교회 전통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성(聖)과 속(俗).<켄터베리 이야기>의 세계관을 요약한다면 위와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분들, 음란한 색욕(色慾)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보십시오. 그것은 정신을 약하게 만들 뿐 아니라 육체까지도 파멸에 이르게 합니다. 음탕한 욕망은 불행을 초래할 뿐입니다. 음란한 행위는 차치하고, 그런 죄를 범하겠다는 의도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거나 만신창이가 됩니까! (p162) <켄터베리 이야기> - 변호사의 이야기 - 中


 내가 알고 있는 바에 의하면, 야곱과 마찬가지로 아브라함도 위대한 성인(聖人)이에요. 그런데 많은 다른 성인들처럼 두 성인도 두 명 이상의 아내를 데리고 살았어요... 동정이나 처녀를 지켜야 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하느님께서 선택한 사람만이 지키는 것이에요... 내 남편이 죽으면, 내가 다시 다른 남자와 결혼하는 것은 죄가 아닐 뿐만 아니라, 두 남자와 함께 산다고 해도 역시 죄가 아니랍니다. (p173) <켄터베리 이야기> - 배스의 여인의 이야기 - 中 


 <켄터베리 이야기>는 당대 지배층에 대해 비판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풍자소설이기도 하다.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 1872~1945)가 <중세의 가을 Herfsttij der Middeleeuwen> 속에서 중세의 두 기둥이라고 표현한 기사(귀족), 학자들 역시 풍자의 대상이 된다.

 

 중세 기사도 이상의 표본적 인물로 칭송되는 부시코 Boucicaut의 전기에서 우리는 이런 사실을 알게 된다. 하느님의 의지로 이 세상에는 두 가지 것이 주어졌다. 그것은 신성한 법과 인간의 법을 지탱하는 두 기둥이다. 그것이 없다면 이 세상은 일대 혼란으로 빠져들 것이다. 그 두 기둥은 기사단과 학자들이다.(p139) <중세의 가을> 中


 귀족이란 말은 자비를 베푼 선조들의 명성일 뿐,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거예요. 귀족적인 성품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에요. 다시 말해 우리의 진정한 귀족적 성품은 하느님의 은총을 통해 오는 것이지, 선조들에게 물려받은 사회적 지위가 주는 것이 아니에요. (p203) <켄터베리 이야기> - 배스의 여인의 이야기 - 中 


 연금술을 배우면 이런 눈물만 흘리게 됩니다... 우리가 쓰는 용어는 아주 이상한 전문적인 말들입니다. 그래서 난해한 학문을 직접 실행에 옮기는 작업장에 들어가면, 우리는 아주 현명하고 똑똑한 사람들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모든 재주를 부려보았지만 한 번도 긍정적인 결과를 얻어보지 못했습니다. 아무것도 소용이 없었습니다.(p518) <켄터베리 이야기>  - 성당 참사회원 종자의 이야기 - 中


 성직자 역시 <켄터베리 이야기> 속에서 풍자 대상으로 등장한다. 다만, 하위징아는 거대한 교회였던 중세 유럽에서 성직자들은 일반 대중과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었기 때문에, 성직자에 대한 조롱은 일종의 친근감의 표현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같은 지배계급이었지만, 친근감을 가졌다는 면에서 중세 성직자는 기사, 학자와는 다른 위치에 있었던 듯하다. (이 부분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시기 삼부회( Etas Generaux)를 구성했던 제1신분, 2신분이었던 성직자, 귀족들에 대한 평민들의 시각과 함께 살펴보면 좋을 듯하니, 잠시 접어두고 간다.)


 제 목숨을 걸고 말하는데, 아마 여러분들은 방귀 소리와 악취가 동일한 속도로 열두 개의 바퀴살로 골고루 퍼져나가는 것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계신 고해 수사님은 매우 고귀한 분이시므로 이 지위에 걸맞게 방귀 소리와 냄새를 가장 먼저 맛보게 되실 것입니다... 오늘만 해도 교단에서 훌륭한 설교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 생각으로는 방귀 냄새를 처음으로 맡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p236) <켄터베리 이야기> - 소환리의 이야기 - 中 


 그 시대의 일상적인 종교 생활은 불쑥 정반대의 입장으로 전환되는 극단적인 변화를 보여 준다. 어떤 때는 사제와 수사에게 조롱과 증오심을 쏟아 부었으나, 그것은 동전의 표리(表裏)처럼 마음속 깊이 품은 애정과 존경심의 뒷면일 뿐이었다. (p338) <중세의 가을> 中


 그렇지만, 목적지인 켄터베리에 다가오면서 이야기는 점점 종교적인 색채를 짙게 띄게 되고, 결국 죄의 용서와 참회, 구원 등 교회 교리를 주제로 한 본당신부의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켄터베리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가난한 마음으로 살면 이처럼 복된 나라를 얻을 수 있으며, 겸손하게 살면 하느님의 영광을 얻을 것이고, 굶주리고 목마르게 산 사람은 천국의 완전한 기쁨을 누릴 것이며, 열심히 일한 사람은 평안을 얻을 것이고, 죄를 뉘우치고 죽은 사람은 새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켄터베리 이야기> - 본당신부의 이야기 - 中 


 여러 세속적인 삶의 이야기와 지배 계급에 대한 비판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다가 결국 종교적인 이야기로 마무리하는 <켄터베리 이야기>를 읽으면서 사순절 직전의 사육제를 떠올리게 된다. 성스러운 성지 순례 이전 여행의 어려움을 이야기를 통해 풀어가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사순 기간 금육(禁肉), 금식(禁食)의 고통을 덜기 위해 행하는 사육제(카니발)의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그림] 사육제과 사순절의 싸움( 출처 : http://www.pictorem.com/24201/Fight%20Between%20Carnival%20and%20Lent.html)


 카니발 Carnival  : 그리스도교 국가에서 사순절 직전 3~7일에 걸쳐 행하는 제전(祭典). 사육제(謝肉祭)라고 번역하는데, 라틴어의 카르네 발레(carne vale :  고기여 그만) 또는 카르넴 레바레(carnem levare : 고기를 먹지 않는다)가 어원이다. 그리스도교 초기 로마 사람을 회유하기 위하여 그들의 농신제(農神祭)를 인정한 것으로, 이교적(異敎的)인 제전이었다. 이것이 계승되어 매년 부활절 40일 전에 시작하는 사순절 이전 즐겁게 노는 행사가 되었다. (출처 : 두산동아백과사전)


 <켄터베리 이야기>는 이처럼 14세기 중세 영국 사회의 모습이 생생하게 나타나 있다. 그리고 작품을 통해 우리는 중세인들의 모습을 느끼게 된다. 비록 중세 음악은 다소 낯설게 들리지만, 중세인들의 보편적인 감정은 우리와 다르지 않음을 <켄터베리 이야기>는 우리에게 알려준다. 클리프턴 패디먼(Clifton Fadiman, 1904 ~ 1999)의 <평생독서계획 The New Lifetime Reading Plan>에서 소개한 감상포인트를 마지막으로 <켄터베리 이야기>에 대한 페이퍼를 마친다. 



 맨 앞에 나오는 프롤로그는 반드시 읽어야 한다. 영문학 사상 가장 훌륭한 초상화의 갤러리이다. 이 작품에 들어 있는 이야기들 중에서 가장 널리 인정받는 것은, 기사, 방앗간 주인, 수녀원장, 수녀시승, 면죄승, 바스의 여장부, 서기, 상인, 수습기사, 수도참사 회원의 종자의 이야기 등이다. 또한 여러 편의 프롤로그, 에필로그, 각 이야기들을 연결하는 대화들을 읽을 것을 권한다.(p121) <평생 독서 계획> 中

 

 이야기의 동시대성은 각자의 언어적 개성을 드러내는 각양각색의 인물들을 '여행'이라는 서술 맥락으로 수용한 <켄터베리 이야기>에서 잘 들어났다... <켄터베리 이야기>는 산문 형식의 두 글인 멜리베오의 이야기와 파로코의 이야기를 제외하면 모두 2행 시절로 되어 있다... <켄터베리 이야기>의 문학적 꾸밈은 이야기꾼의 두 가지 기능으로 지탱된다. 초서는 저자의 입장에서 작품을 소개하나 마지막에는 교육적-그리스도교적으로 충분한 목적성을 보여 주지 못하는 그의 다른 작품들처럼 이를 전부 부정했다... 초서는 <켄터베리 이야기>에서 보카치오처럼 폭넓은 이야기들을 통해 삶의 다양함과 활력, 복합적 특징을 부여했다.여기에는 매우 이질적인 주제와 양식, 구조가 공존했다.(p771) < 중세3 : 성, 상인, 시인의 시대> 中


나가기 전에 <켄터베리 이야기>를 선물해 주신 이웃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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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8-06-16 19: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주 모순적인 사육제와 사순제가 붙어 있는 건 인간의 모습과 비슷하지 말입니다(왜 군대식 말투가...). <켄터베리 이야기>가 고상한 척하는 지배층의 아주 세속적인 적나라함을 보여주듯이 말입니다. 여기 우리는 모두 방귀 안 뀌는 듯이 좋은 말, 문장을 구사하는 것에 기를 쓰고 있지만 인간은 아무리 미인도! 누구나 하루에 7번 이상은 방귀를 뀐다는 과학적 보고가...(곰곰이 내 하루를 뒤돌아보며)....인간의 뗄 수 없는 양면성을 말한다는 게 갑자기 방귀에 꽂혀서.... 댓글에서 방귀 냄새 풀풀))) 죄송합니다...(이 댓글은 망했....);;

겨울호랑이 2018-06-16 19:37   좋아요 2 | URL
AgalmA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안 그런 척‘ 하면서 살아가는게 우리 모습이 아닌가 싶네요. 반대로 ‘그런 척‘하면서 살기도 하구요... 적당히 알면서 속고 속이면서 살아가는게 우리 삶인듯 합니다... 그런 면에서 ‘절대선‘과 ‘절대악‘을 규정한 형이상학적 가치는 사람을 질식시키네요... 방귀처럼 말입니다 ㅋㅋ

2018-06-16 2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6 23: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06-16 22: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 님의 독서 스펙트럼은 어디까지인지... 부럽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8-06-16 23:0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저는 북다이제스터님의 깊이 있는 독서가 더 부럽습니다.^^:)

2018-06-17 1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7 1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7 19: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8 09: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8-06-18 12: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이퍼 내용은 감히 범접할 수도 없어 살짝 다녀가려 했는데,
프로필 사진이 바뀌셨군요.
연의 어린이 완전 멋진걸요.
보는것만으로도 행복해집니다.
여러모로 보시하고 게십니다~^^

겨울호랑이 2018-06-18 12:22   좋아요 0 | URL
중세와 관련된 내용을 얼기설기 엮은 페이퍼라 좀 길었습니다. 연의를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양철나무꾼님, 행복한 하루 되세요^^:)
 


 대봉건 국가들과 봉건 영주국, 자치 도시, 새로운 왕조에서 모습을 갖추어 가던 무장 세력들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이끌기 위한 필요성은 기마 전투를 유일한 업으로 생각하고 자신의 존재의 이유로 삼는 전문적인 전사 계층을 출현하게 만들었다... 문헌 자료에서 확인된 이들을 정의하기 위한 이름은 원래 의미(군인)에 비해 많은 제약을 지닌 전통적인 '밀레스 miles' 였지만, 독일과 잉글랜드에서 이들을 가리키는 단어인 리터 Ritter와 나이트 knight는 과거에 신분이 높은 사람들의 무장 노예와 동일시 한 것이라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p196) <성당, 기사, 도시의 시대 중세2, 1000 ~ 1200) 中


 서양 중세(中世) 시대를 특징짓는 계급은  단연 '기사(knight)'다. 그리고, 이들 기사를 아름답게 표현한 문학이 무훈시(武勳詩, Chanson de geste)이며, 그 중에서도 <롤랑전(롤랑의 노래) La chanson de Roland>은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 여겨진다.  피레네 남부 지방에서 사를마뉴 대제(Charlemagne, AD 742 ~ AD 814)의 원정군 일부가 이슬람 군에 의해 습격된 작은 사건을 미화(美化)한 이 작품은 후대 무훈시의 기본적인 틀을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무훈시는 주로 봉건계급 남성들이 가장 관심을 두었던 전투와 봉건정치를 주된 주제로 삼고 있었던 것이다. 무훈시의 최고 걸작인 <롤랑의 노래>는 우선 사를마뉴의 궁정에서 롤랑과 가늘롱(Ganelon)이 벌이는 정치투쟁으로 시작된다. 다음에는 대전투가 있고, 이 전투에서 롤랑과 그의 동료들은 무수한 사라센인을 죽인다. 기독교인사이의 봉건적 전쟁을 사라센인에 맞선 전쟁으로 바꾸어 놓은 무훈시도 있긴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모든 무훈시가 같은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었다.(p457) <서양 중세사> 中


 전쟁을 소재로 하기 때문에 전쟁에 대한 생생한 묘사가 작품 전체에 넘치는데 이러한 전투 장면의 서술은 호메로스(Homeros, BC 8세기 ?)의 <일리아스 Ilias>를 연상시킨다. 차이가 있다면 전쟁의 원인이 아닐까. <롤랑전>의 전쟁은 종교(宗敎)전쟁이고, <일리아스> 전쟁은 한 여인의 납치에서 비롯된 전쟁이라는 차이를 제외하고 두 작품은 여러 공통점을 보여주고 있다.


[그림] 롤랑의 노래 (출처 : https://www.globalsecurity.org/military/world/europe/chanson-de-roland.htm)

 

 (93) 롤랑은 말에 박차를 가하여 전속력으로 내닫는다. 그러고는 온 힘을 다하여 아엘롯에게 일격을 가한다. 아엘롯의 방패가 먼저 깨지고, 다음에 갑옷이 찢어진다. 그의 가슴팍이 열리고 뼈다귀들이 부러지더니 척추가 쪼개진다. 롤랑이 그의 몸통 깊숙이 창날을 처박아 거칠게 뒤흔드니, 영혼이 육신을 떠나고, 몸뚱이가 땅바닥으로 굴러 떨어진다. 동시에 목이 부러진다.(p79)  <롤랑전> 中


  (제22권 322 ~ 327) 그런데 그의 살갗의 다른 부분은 그가 강력한 파트로클로스를 죽였을 때 빼앗은 아름다운 청동 무구들로 덮여 있었다. 그러나 쇄골이 어깨에서 나와 목을 감싸고 있는 부분, 즉 목구멍만은 드러나 있었으니 그곳은 치명적인 급소다. 바로 그곳으로 고귀한 아킬레우스가 덤벼들어 창을 밀어 넣자 그의 부드러운 목을 창끝이 곧장 뚫고 나갔다.(p604) <일리아스> 中


 <롤랑전>에서 전투가 벌어지게 된 것은 롤랑의 독단(獨斷) 때문이다. 먼저 출발한 샤를마뉴에게 뿔피리를 불어 구원을 청하라는 동료 올리비에의 요청을 롤랑은 다음의 말로 거절하게 되고, 그 결과 자신과 동료들은 죽음을 맞게 되었다.  


 (85) "이교도들 때문에 내가 뿔피리를 불었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이 단 하나라도 나타난다면, 그것은 하느님이 기뻐하실 일이 아니오! 나의 혈족들이 그러한 이유로 지탄받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오. 싸움이 격렬해져 내가 수천 번 거듭하여 적을 치리니, 뒤랑달의 날이 선혈로 젖어 있음을 보시게 될 것이오.'(p73) <롤랑전> 中


 <일리아스> 역시 주인공 아킬레우스는 후에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아킬레우스의 죽음에 이르는 결정적 계기는 친구 파트로클로스의 죽음 때문이었고, 이러한 결과는 아가멤논에게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한 아킬레우스의 전선 이탈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제16권 56 ~ 63) 아카이오이족의 아들들(아가멤논)이 내게 명예의 선물로 골라준 소녀(브리세이스)를, 그것도 내가 훌륭한 성벽의 도시를 함락했을 때 내 창으로 얻은 것을, 아트레우스의 아들 통치자 아가멤논이 내 손에서 도로 빼앗았다네... 함성과 전쟁이 내 함선들에 이르기 전에는 나는 결코 분노를 거두지 않기로 결심했다네. (p604) <일리아스> 中


 결국, <롤랑전>,<일리아스>에서는 명예욕으로 인한 무리한 행동이 주인공들을 파멸로 이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고 할 것이다. 역사가 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 AD 1889 ~ 1975)는 <역사의 연구 A Study of History> 속에서  난폭한 행위(휘브리스 hybris)를 문명(文明)의 몰락 원인 중 하나로 지적하고 있는 것을 보면 '휘브리스'의 결과는 많은 경우 개인과 문명의 파멸로 이어짐을 확인하게 된다.

 

 (제16장) 군사적 기량과 무용은 예리한 칼과 같은 것이므로 그것을 잘못 쓰는 자에게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는 수가 많다. 군사적 분야는 '코로스(koros, 포만) - 휘브리스(hubris, 난폭한 행위) - 아테(ate, 재난)'라는 치명적 연쇄를 연구하는 데 더없이 좋은 예를 제공한다.(p83)... '코로스-휘브리스-아테'의 비극이 취하게 디는 더 일반적인 형태 가운데 하나는 '승리의 도취'라고 할 수 있다. 막대한 포획물을 차지하려는 싸움은 무력을 통한 전쟁으로 또는 정신적인 힘의 충돌로 전개될 수 있다.(p84) <역사의 연구 4> 中 


 그리스의 비극에서 개인의 휘브리스 결과는 개인의 파멸로 끝나게 됨을 우리는 <오이디푸스 왕> 또는 <안티고네>등 에서 확인할 수 있다. 비록 지위가 왕이더라도 고대 사회에서 개인의 휘브리스는 국가나 사회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 반면, 개인에서 봉건사회으로 옮겨간 사회구조 속에서 휘브리스는 그 사회에 큰 타격을 주게 됨을 <롤랑의 노래>를 통해 확인하게 된다. 휘브리스의 결과가 개인에서 사회로 확대되는 모습 속에서 우리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인식의 틀이 확장되었음을 추론해 볼 수 있다. 실제로, <롤랑전>은 역사적으로도 민족국가 형성에 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롤랑의 노래> 덕분에 프랑크 민족은 서구의 미래를 책임지게 되었다. 그들은 무슬림 적 그리스도를 찾아내 파괴하고, 칼과 십자가로 새로운 예루살렘을 건설할 책임을 맡은 선민이 되었다. 이 서사시의 많은 부분이 꾸며낸 역사이지만 민속 신화의 드높은 이상을 잘 간직하고 있다.(p386) <신의 용광로 God's Crucible, Islam and the Making of Europe, 570 ~ 1215> 中


 <롤랑전>은 중세 유럽의 작은 사건을 배경으로 한 서사시다. <일리아스>가 고대 터키 지역에 위치한 작은 도시에서 일어난 전쟁을 장대하게 묘사한 것처럼 이 작품 역시 사실을 아름답게 포장하고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작품이 주는 의미를 찾는다면, 그것은 중세인(中世人)을 이해하는 좋은 참고 자료가 되기 때문이 아닐까. <롤랑전>에는 이교도와 다른 민족에 대한 잔인한 학살을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는 중세 유럽인들의 인식이 담겨 있다. 현대 유럽인들의 인식의 기저에는 그들의 선조들의 인식이 깔려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서구문명이 세계문명을 이끌고 있는 지금 <롤랑전>이 우리의 삶과 완전히 떨어진 작품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중세 사회 발전과 중세 유럽인들의 인식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이 책은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책이라 여겨진다. 

 

 프랑크 문헌들은 왕의 회군이 침착하고 질서정연한 것처럼 기록하고 있지만, 실제로 샤를마뉴는 스페인에서 서둘러 회군하여 그 군대를 위기 지역으로 급파했다. 색슨족의 반란은 카롤링거 체제를 절단 낼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론세스바예스에 관한 신비로운 이야기는 색슨족의 대량학살과 짝을 이루면서 색슨 킬링필드를 정당화 했다. 라인 강과 엘베 강 사이에 살고 있는 숲의 부족에게 부과한 역사적이고도 야만적인 혹독한 평화조약은 시간이 흘러가면서 롤랑의 전설적 순교가 상징하는 이타적인 기독교 기사도 정신에 의해 고상한 작업으로 미화되었다.(p385) <신의 용광로 >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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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05-12 17: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여러 책을 착착 엮어서 페이퍼를 쓰시는 겨울호랑이님의 서재에는 과연 책이 몇 권이나 있을지 가끔 궁금해집니다...... 한, 육백만 권??

겨울호랑이 2018-05-13 00:15   좋아요 1 | URL
^^:) 안 세어 봤지만 대략 2천권 정도 되는 것 같네요... e-book을 잘 활용하면 좋을텐데 그러지 못해서, 책들이 공간을 제법 많이 차지합니다...

2018-05-12 19: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12 2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13 1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13 12: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13 1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13 13: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13 14: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여러분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지 않습니까? 인류 역사상 최초로 공유, 균등, 안정이 실현된 것입니다. 우리가 무한히 보카노프스키 과정을 지속시킬 수 있다면 모든 문제는 해결될 것입니다." 수백만의 일란성 쌍생아를 생산할 수 있다. 대량생산의 원칙이 마침내 생물학에 응용된 것이다.(p13) <멋진 신세계> 中


 <멋진 신세계 Brave New World>는 올더스 헉슬리(A.L.Huxley, 1894 ~ 1963)가 그린 디스토피아(dystopia) 이야기다. 공유, 균등, 안정이 실현된 미래사회는 우리의 생각만큼 밝지만은 않다. 플라톤(Platon, BC 428 ~ BC 348)이 <법률 Nomoi>에서 그려낸 이상사회의 모습과 과학기술이 결합된 미래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어떤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까? 이번 페이퍼에서는 <멋진 신세계> 속의 공유, 균등, 안정의 모습 속에서 우리의 희망과 과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1. 공유


  "요즈음에 와서 나는 그렇게 바람둥이 노릇이 싫어졌어, 그렇게 느껴지는 때가 있는 것은 사실이야."... "우리는 모두 유희의 규칙을 지켜야 해. 결국 만인(萬人)은 만인의 소유물이니까." "옳아. 만인은 만인의 소유물이야."(p57)  <멋진 신세계> 中


 가정, 가정 - 한 남자와 주기적으로 잉태하는 한 명의 여자와 여러 가지 연령층의 소란한 아이들로 인해 시끄럽고 질식할 것같이 비좁은 몇 개의 방. 공기도 공간도 없다. 소독도 제대로 하지 않은 감옥이다. 어둠과 질병과 악취...(p49)  <멋진 신세계> 中


 '아버지'라는 말은 어린애를 낳는다는 행위의 징그러움이나 불륜스러운 어떤 것을 연상시킬 뿐 음탕하지는 않으며 단순히 천하고 춘화적이라기보다 오히려 똥 냄새가 나는 더러운 것이었는데(p192)... 사람을 보고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은 농담치곤 지나친 말이었다. 그것은 음담패설이었다.(p193)  <멋진 신세계> 中 


 <멋진 신세계> 속 미래에는 가정은 해체되고, 아버지, 어머니라는 말은 언어(言語) 상에만 존재하는 개념에 불과하다. 미래사회 속에서 우리는 플라톤이 말한 '공동 식사', '공동 양육'의 모습을 우리는 확인하게 된다. 차이가 있다면, '가정'의 역할일 것이다. 플라톤의 이상사회에서 '가정'은 번식을 위한 필요악(必要惡)이지만, 과학 기술이 발달한 <멋진 신세계> 속의 미래에서는 더이상 가정은 필요치 않게 되었다.

 

 우리의 신랑들이 혼인 이전의 시절에 비해 조금도 다르지 않게 또는 덜하지 않게 공동 식사로 식생활을 해야만 한다고 우리가 말할 것이라는 겁니다... 이는 어떤 전쟁이나 그 밖의 다른 것으로서 똑같은 영향력을 갖는 것이 인구 부족 상태에 처한 사람들의 어려움으로 해서 법제화된 것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를 겪어 보고 공동 식사를 이용하도록 강요당한 사람들에게는 이 관습이 안전에 큰 기여를 하는 것이라 여겨졌습니다. 이와 같은 식으로 해서 여러분의 공동 식사 관행이 제도화되었습니다.(780b) <법률> 6권 中


 2. 균등


  <멋진 신세계> 속에서 균등(均等)의 개념은 '만인은 다른 만인의 소유물'이라는 말 속에 잘 나타난다. 그렇지만, 인도 카스트 제도와 같은 엄격한 신분제 사회 내에서 이들이 만한 균등은 평등(平等)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러한 신분제는 사회권력에 의해 유지되며,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 1588 ~ 1679)가 <리바이어던 Leviathan>에서 그린 자연 상태는 엄격한 사회 권력에 의해 극복되었다.


 "만인은 다른 만인을 위해 일합니다. 그 누구라도 없어진다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엡실론 계급조차도 유용한 것입니다. 엡실론 계급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만인은 다른 인간들을 위해 일합니다. 그 누구라도 없어지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p92)... 우리는 습성이 다르게 길러졌기 때문이야. 또한 우리는 처음부터 유전인자가 달라."(p93)  <멋진 신세계> 中

 

 인간의 본성이 바로 이러하기 때문에, 우리는 인간들 사이에 분쟁이 발생하는 원인을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경쟁(competition)이며, 둘재는 자기 확신의 결여(diffidence)이며, 셋째는 공명심(glory)이다.... 이로써 다음과 같은 사실이 분명해진다. 즉 인간은 그들 모두를 위압하는 공통의 권력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는 전쟁 상태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 전쟁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다.(p171) <리바이어던 1> 中


3. 안정


 과학기술의 발달은 인류의 번식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멋진 신세계>의 미래에서는 알약을 통해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면서, 누구나 성인(聖人), 군자(君子)의 경지에 쉽게 오를 수 있게 된다. 누구나 격정적인 감정 대신 중용(中庸)에 이를 수 있는 미래가 <멋진 신세계>에서 그려진다.


 억제된 충동은 넘쳐흐른다. 범람하는 것은 감정이며 격정이다. 심지어 그것은 광증이다. 그 물살의 힘과 제방의 높이와 견고성에 좌우된다. 가로막지 않은 강물은 지정한 수로를 평온하게 흘러가서 평온한 행복에 당도한다... 감정이란 욕망과 그것의 충족 사이에 게재된 시간 속에서 고개를 드는 법이다. 그 시간 간격을 단축하면 과거의 필요없는 장애는 모두 제거된다.(p57)  <멋진 신세계> 中


 분노를 진정시키고 적과 화해시키고, 인내하고 수난을 참도록 하는 소마가 있다 이말이야. 옛날에는 대단히 어려운 노력을 거치고 오랜 수양을 쌓아야 겨우 도달되는 미덕이었지, 그러나 이제 반 그램짜리 두세 알만 삼키면 그러한 수양의 경지에 도달한다는 말일세. 이제 누구나 군자가 될 수 있다네.(p302)  <멋진 신세계> 中


 교육 전체가 그와 같은 것들과 관련해서 알맞은 법률을 갖추고 있으며, 이에 더해 관리들의 시선은 다른 데를 응시하지 않고, 언제나 바로 젋은이들을 지켜보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이들이 하고많은 인간적인 다른 욕망들에 대해 적도(適度)를 지키는지를 말입니다...누가 어떻게 잘 대처할 수 있겠으며, 무슨 처방을 써서 이들 각자에게 이와 같은 위험을 피할 길을 찾아 주게 되겠습니까? 도무지 쉽지가 않습니다.(836a) <법률> 8권 中


  플라톤은 <법률> 속에서 교육은 '혼(魂)'을 최선의 상태로 끌어올리는 역할과 함께 사회화(社會化)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묘사하지만, <멋진 신세계> 속에서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교육의 역할은 사회화로 하는 것으로 한정된다. 


 6월의 따뜻한 햇빛을 받으며 벌거벗은 6,7백 명의 어린 소년들이 금속성의 소리를 지르며 잔디 위를 뛰어다니며 공놀이도 하고 두서넛씩 짝을 지어 꽃밭 속에서 조용히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p40)... 그러나 그들의 미소에는 어딘가 아랫사람을 봐주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 견습생들 역시 이러한 어린이들의 유희를 졸업한 지가 얼마되지 않았으므로 다소의 경멸감 없이 그들을 바라보기란 불가능했다.(p41) <멋진 신세계> 中


  세 살과 네 살, 다섯 살 그리고 더 나아가 여섯 살까지도 아이들의 혼의 성향에는 놀이들이 필요하게 할 것입니다.(793e)... 이 나이 또래의, 곧 세 살에서 여섯 살까지의 아이들은 마을마다의 신전들에 모여야 합니다. 각 마을 사람들의 아이들이 같은 곳에 함께 모이는 겁니다.(794a) <법률 제7권> 中


 진지해야할 일을 위해서는 놀이(paidia)까지도 하도록 해야만 합니다. 소년 소녀들이 합창가무를 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규칙(logos)에 따라 그리고 그럼직한 구실들을 갖는 때에, 저마다 건전한 상태의 부끄러움을 갖는 한도 내에서, 이들 남녀가 알몸 상태를 서로 보기도 하고 보여 주게도 하는 겁니다.(771e ~ 772a)  <법률 제6권> 中


 <멋진 신세계>에서 그려낸 공유, 균등, 안정의 사회는 우리에게 긍정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작품 전반에 깔린 짙은 어두움은 미래의 사회가 전체주의(全體主의) 체제를 유지하기 때문일 것이다. 발달한 과학기술과 전체가 강조되는 모습 속에서 우리는 더이상의 희망과 긍정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디스토피아에서 길을 발견할 수 없는 것인가? 이에 대한 답 역시<멋진 신세계>를 통해 찾을 수 있을 듯하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늙음'이 존재하지 않는 미래 사회에서 '노인'은 기피대상으로 묘사되고 있다.


 노인의 눈은 움푹 패인 눈자위 속에서 아직도 특이할 정도로 밝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노인의 눈은 한참 동안 레니나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거기에 있지 않은 것처럼 표정도 놀람도 없는 눈초리였다. 그러고는 굽은 등을 한 채, 노인은 그들 옆을 엉금엉금 지나쳐서 사라져버렸다. "무서워요." 레니나가 속삭였다. "끔찍해요. 이런 곳엔 오지 말았어야 되는 건데."(p139)  <멋진 신세계> 中  


 그렇지만, 우리는 같은 상황에서 '늙음'을 똑바로 바라본 결과 깨달음을 얻게 된 이를 알고 있다. 석가모니(釋迦牟尼, BC 624 ? ~ BC 544 ?)다. 석가모니는 노인을 보면서 생노병사(生老病死)에 대해 고민하고 출가(出家)하여 훗날 해탈(解脫)에 이를 수 있었다. 

 

 그러나 신들은 왕의 계획을 방해하여 싯다르타로 하여금 인간의 고통을 목격하게 만든다. 처음 싯다르타는 지팡이를 짚고 걸어가는 늙은이를 만나고, 다음 날에는 "깡마르고 창백한 열에 들뜬 병자"를 만나며, 세 번째로는 묘지에 실려가는 시체를 본다. 한 시종은 왕자에게 누구든지 늙음과 병듦 그리고 죽음을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일러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왕자는 평온하고 고요한 걸식 수행자를 만난다. 그리고 그의 모습에서 종교가 인간의 비참한 조건을 치유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큰 위로를 얻는다.(p104)... 그리고 그 장소까지 그를 이끌어주었던 신들과도 작별을 고했다. 그 이후부터 붓다의 신화적 생애 안에서 신들은 더 이상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 그는 초자연적 존재의 도움 없이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게 된다. <세계종교사상사 2> 中


 <멋진 신세계> 속에서 그려진 미래사회는 과학기술이 발달된 계급사회, 전체주의 사회다. 현대 과학의 발전과 최근 극우(極右)성향 정치인의 등장을 보면서 불길한 예언의 실현되는 것인가 하는 걱정을 떨치기 어렵다. 그렇지만, '늙음'을 온전히 받아들여 진정으로 깨달음을 얻게 된 석가모니의 모습 속에서 우리가 가야할 길을 확인하게 된다. 


 '비록 인류의 도덕과 행복이 자연과학의 눈부신 발전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지 내다보기는 어렵지만, 우리가 자만에 빠져 스스로를 잃어버리지 않는 한, 인류의 도덕과 행복은 자연과학의 발전으로부터 도움을 얻을 것이며, 또한 역으로 인류의 도덕과 행복이 과학의 성공에 일익을 담당하리라는 확신에 찬 희망을 품어도 좋을 것이다.'(p550) <호모 데우스> 中


 <멋진 신세계> 속에서 <호모 데우스>에서 말한 희망을 발견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것이 <멋진 신세계>가 우리에게 남긴 과제가 아닌가 생각해보면서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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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4 0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04 08: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8-05-04 12: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젝의 ‘기독교적 유물론‘이 제게 또 다른 난제인데요.
지젝은 불교적 명상은 ˝윤리적으로 중립적인 수단이어서, 가장 평화적인 것부터 가장 파괴적인 것까지 다양한 사회정치적 쓰임을 가질 수 있음˝(그의 책 <꼭두각시, 난장이, 기독교의 도착적 핵심>)으로 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오히려 이용만 될 뿐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 말하죠. 차라리 그에 대립되는 기독교적 사랑의 ˝비관용˝이 존재 질서 내부의 차이와 간극을 받아 들여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폭력적이지만 혁명적인 힘이 된다 하는데.....제가 뭉텅그려 표현하고 있어 오도될까 걱정되는데요.
겨울호랑이님이 <세계종교사상사2>에서 인용하신 거(˝그는 초자연적 존재의 도움 없이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게 된다˝) 때문에 이 말을 꺼내 본 거였습니다.
지젝도 ˝기독교적 유물론˝ 견지에서 비슷한 말을 하고 있었거든요.
˝내가 나 자신을 신성한 축복과 동일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터무니없다. 오로지 신으로부터 분리라는 무한한 고통을 경험할 때에야 나는, 신 그 자신(십자가 위의 예수)과 경험을 공유한다.˝

겨울호랑이 2018-05-04 13:23   좋아요 1 | URL
제가 지젝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을 전제로 AgalmA님께서 말씀한 부분을 생각해보겠습니다. 지젝이 말한 ‘불교적 명상‘이라는 것은 수행자의 수준에 따라 깨달음의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보편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최소한의 수단으로 ‘기독교적 사랑‘을 말한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드네요. 마치 우리가 낯선 곳에서 가서 맥도널드 햄버거를 먹는 것은 그것이 맛있어서가 아니라, 최저한의 기대 수준을 만족시키기 때문에 이용하듯이요.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 그리고, 기독교의 ‘선-악‘의 이분법적인 대립 속에서, 내재적으로 혁명에 사용할 수 있는 힘을 응축시킬 수 있다고 말한 것은 아닌가 추측해 봅니다. 그리고, 아래에서 지젝이 말한 부분은 예수의 신성(神性)과 인성(人性) 부분 중에서 자신은 ‘인성‘에 대해서 공감을 한다는 내용으로 이해가 됩니다...

AgalmA 2018-05-04 13:33   좋아요 2 | URL
지젝은 불교의 관용과 포용을 좀 비겁? 소극적?으로 보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지젝이 표방하는 공산주의, 프롤리타리아의 단결 등에서도 볼 수 있듯 외부적인 혁명으로 일어나야 한다는 사람이니 불교의 니르바나 같은 건 개인에서 그친다고 보는 거겠죠. 마르크스가 못 이룬 프롤레타리아 단결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이니 만족스럽지 못할 만도 하지요.

겨울호랑이 2018-05-04 14:26   좋아요 1 | URL
AgalmA님 말씀처럼 지젝은 해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동양 문화권에서는 <대학>의 ‘수신제가치국평천하‘에서처럼 개인의 변화로부터 사회적 변화까지 끌어낼 수 있다고 보기에, 지젝의 말을 쉽게 수긍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아마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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