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들이 내게 주는 모호한 기쁨 덕분에 다른 것들과 구별되어 왔는데, 나는 그 기쁨 자체에 대해서는 한 번도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p310)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中


 마르셀 프루스트(Valentin Louis Georges Eugene Marcel Proust, 1871 ~ 1922)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 스완네 집 쪽으로 1 A La Recherche du temps perdu Du Cote de chez Swann> 를 읽었을 때 기뻤다. 매우 정적(靜的)으로 진행되는 소설이지만, 이 소설이 나에게 주는 느낌은 매우 강렬했으며, 문학 작품에서 이런 느낌을 받는 것은 오랫만이고 즐거웠다. 이번 페이어에서는 작품을 통해 받은 개인적인 인상을 중심으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1. 오이디푸스 컴플렉스(Oedipuskomplex)


 잠을 자러 올라갈 때 내 유일한 위안은 내가 침대에 누우면 엄마가 와서 키스해 주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난 그렇게도 좋아하는 저녁 인사가 되도록 늦게 오기를, 엄마가 아직 오지 않은 이 유예 기간이 더 연장되기를 바라는 것이었다.(p32)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中


 작중 화자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의 전형을 보여준다.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 ~ 1939)의 이론에서 오이디푸스 컴플렉스가 나타나는 시기가 남근기(Phallic stage, 출생 후 3년부터 약 6년간의 시기)임을 고려한다면, 작중 화자의 모습은 남근기 고착의 상태에서 잠재기로 들어선 듯한 느낌, 또래보다 발달이 늦은 청년의 모습이라는 인상을 받게 된다. 

 

 매우 어린 나이에 그 작은 남자아이는 어머니에 대한 대상 리비도 집중을 개발시키는데, 그것은 원래 어머니의 젖과 관련되어 있고 의존 Anlehnung 유형에 의한 대상 선택의 원형이 된다. 이 아이는 자기 자신을 아버지와 동일시함으로써 아버지 문제를 처리한다. 일정 기간 동안 이 두 관계가 나란히 지속되다가 이 아이의 어머니에 대한 성적 욕망이 더 강렬하게 되고 아버지는 그 욕망에 대한 장애물로 인식되기에 이른다. 여기에서부터 오이디푸스 컴플렉스가 발생한다.(p372) <정신분석학의 근본개념, 자아와 이드>  中


 슬픔으로 상기된 내 모습을 보고 엄마가 양보해서 화해의 키스를 해 준다면, 이런 의식을 엉뚱하고 상식 밖이라고 생각하는 아버지 신경에 거슬릴 것이었고, 엄마 역시 할 수만 있다면 키스에 대한 내 욕망이나 습관을 없애 주려고 애쓰셨기 때문에, 이미 방문까지 다 간 상태에서 한 번 더 키스해 달라는 내 요청을 받아 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p33)... 하지만 너무 늦었다. 아버지가 우리 앞에 와 있었다. 나도 모르게 "이제 끝장이구나!"하고 중얼거렸지만, 아무도 그 말을 듣지 못했다.(p71)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中


 프로이트에 따르면,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극복하는 것은 아버지와 '동일시'를 통해서다. 과연 화자는 이어지는 작품 속에서 초자아(Super Ego)를 확립할 수 있는지, 확립한다면 어떤 방향으로 확립하는지를 확인하는 것을 하나의 포인트로 접어두자.

 

 나는 어디에선가 멀어지는 이 과정을 기술한 적이 있다. 부모에 대한 대상 리비도 집중은 동일시로 바뀐다. 아버지나 부모의 권위는 자아에 유입되고, 여기서 초자아의 핵심이 형성된다. 이 초자아는 아버지의 엄격함을 넘겨받아 근친상간을 금기시하고, 부모를 향한 리비도 집중으로부터 자아를 지켜준다.(p296) <성욕에 대한 세 편의 에세이,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의 해소> 중


 그 후로 많은 시간이 흘렀다. 아버지 손에 들린 촛불의 그림자가 올라오는 것이 보이던 계단 벽이 존재하지 않게된 지도 오래다. 내 마음속에서도 영원히 계속되리라 믿었던 많은 것들이 파괴되고 새로운 것들이 세워지면서, 당시에는 예측할 수 없었던 새로운 고통과 기쁨이 생겨났고, 그와 더불어 예전 것은 이해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그러한 시간의 가능성은 두 번 다시는 내게 생기지 않을 것이다.(p73)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中


2. 화자가 추구하는 진실


 정신이 진실을 발견해야 한다. 그러나 어떻게? 매번 정신은 스스로를 넘어서는 어떤 문제에 직면할 때마다 심각한 불안감을 느낀다. 정신이라는 탐색자는 자기 지식이 아무 소용없는 어두운 고장에서 찾아야만 한다. 찾는다고? 그뿐만이 아니다. 창조해야 한다.(p87)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中


 책 읽기를 좋아하며, 장래 작가가 꿈꾸는 화자는 진실(眞實)을 찾기를 열망하지만, 쉽지 않은 작업이다. 작품 중화자가 차(茶)를 마시는 대목에서 나의 시선이 잠시 머물게 된다.


 두 번째 모금을 마셨다. 첫 번째 모금이 가져다준 것 외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가져다주지 못했다. 세 번째 모금은 두 번째 모금보다 못했다. 멈춰야 할 때다. 차의 효력이 줄어든 것 같았다. 내가 찾는 진실은 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안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p87)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中


 화자가 차를 마시는 모습은 한계효용(限界效用, marginal utility) 체감의 법칙의 좋은 예시가 된다.(극단적인 예시는 술을 만취할 때까지 마시고 토하는 것이겠지만.) 기왕에 법칙이 나왔으니, 앨프레드 마셜(Alfred Marshall,1842 ~ 1924)의 <경제학 원리 Principles of Economics >를 통해 살펴보자.

 

 효용은 욕망 또는 욕구와 상관적인 것으로 이해된다... 욕구의 다양성은 무한하지만 개별욕구에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친숙하고 기본적인 인간본성의 경향은 욕구 포화의 법칙(law of sutiable wants) 또는 효용체감의 법칙으로 표현할 수 있다. 어떤 사람에게 한 재화의 총효용(재화가 그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모든 쾌락이나 기타 편익)은 그 재화의 보유량이 증가함에 따라 증가하지만, 보유량이 증가하는 만큼 빠르게 증가하지는 않는다. 만인 재화의 보유량이 일정한 비율로 증가한다면 그로부터 얻어지는 편익의 증가율은 체감한다.(p150)... 효용체감의 법칙은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 한 재화의 한계효용은 그가 이미 보유하고 있는 야잉 증가함에 따라 제감한다.(p151) <경제학 원리 1 > 中


 작품 속에서 보이는 작가의 진실 탐구는 외부에서 내면을 향하는데, 이러한 화자의 모습은 30년 전쟁(1618 ~ 1648)이 한창이던 추운 겨울날 진중에서 방법적 회의를 도출해내는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 ~ 1650) 의 모습과 겹쳐진다. 화자와 데카르트,  두 사람 모두 잠들어 있는 동안에는 꿈의 환영 속에 지낸다는 점과 잠에서 깨어났을 때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가지지만. 이후 이들의 행보는 갈린다. 마치 작품 속 두 갈림길인 메제글리즈쪽과 게르망트 쪽처럼. 

 

 우리가 깨어 있을 때에 갖고 있는 모든 생각(pensees)은 잠들어 있을 때에도 그대로 나타날 수 있고, 이때 참된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알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정신 속에 들어온 것 중에서 내 꿈의 환영(les illusions de mes songes)보다 더 참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가상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이 진리는 아주 확고하고 확실한 것이고, 회의론자들이 제기하는 가당치 않은 억측으로도 흔들리지 않는 것임을 주목하고서, 이것을 내가 찾고 있던 철학의 제일원리로 거리낌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p185) <방법서설> 中


 잠든 사람은 자기 주위에 시간의 실타래를, 세월과 우주의 질서를 둥글게 감고 있다. 잠에서 깨어나면서 본능적으로 그 사실을 생각해 내기 때문에 자신이 현재 위치한 지구의 지점과, 잠에서 깨어날 때까지 흘러간 시간을 금방 읽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순서는 뒤섞일 수 있으며, 끊어질 수도 있다.(p19)... 이제 나는 확실히 잠에서 깨어났다. 내 몸은 마지막으로 한 바퀴 빙 돌더니, 확실성이라는 착한 천사가 내 주위 모든 것을 고정해 나를 내 방 이불 아래 갖다 눕혔고, 어둠 속에서 내 옷장, 책상, 벽난로, 길가 쪽 창문, 두 문을 대충 제자리에 갖다 놓았다.(p25)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中


  데카르트는 확신할 수 없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결국 의심할 수 없는 'Cogito ergo sum'에 이르렀지만, 화자의 의심 방향은 현상(現象 · Phenomenon)으로 흐렀던 반면, 작품에서는 생각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을 통해 진실을 찾으려는 화자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리고, 이 대목에서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시간'이다.


3. 시간(時間, Time)


 나는 도대체 이 알 수 없는 상태가 무엇인지 아무런 논리적인 증거도 대지 못하지만, 다른 모든 것들이 그 앞에서 사라지는 그런 명백한 행복감과 현실감을 가져다주는 이 상태가 무엇인지를 물어보기 시작한다. 그것을 다시 나타나게 하고 싶다. 생각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 차의 첫 모금을 마신 순간으로 되돌아가 본다. 똑같은 상태가 보이지만 새로운 빛은 없다.(p88)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中


  시간을 되돌려 새로운 것을 찾으려는 화자의 노력은 현상학(Phanomenologie)의 창시자인 에드문트 후설(Edmund Husserl, 1859 ~ 1938)의 시간에 대한 인식과 통하는 바 있다. 후설에 의하면, 시각객체는 자신의 반복적인 회상을 통해 다시 경험되며, 이러한 과정 속에서 동일화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작품 전반에 걸쳐 화자의 회상이 이후 작품 전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도 점검해보는 것도 관전 포인트가 될 수 있을까.

 

 어떤 시간객체(Zeitobjekt)의 지각(Wahrnehmung)을 나는 '반복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지각들의 계속(Sukzession) 속에서 두 가지 동등한 시각객체의 계속에 관한 의식은 구성된다. 나는 회상(Wiedererinnerung) 속에서만 동일한 하나의 시간대상(Zeitgegenstand)을 반복할 수 있고, 이전에 지각된 것이 그 이후에 회상된 것과 동일한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Erinnerung) 속에서 확인할 수도 있다. 이러한 사실은 내가 그것을 지각하였다는 단적인 기억 속에서, 그리고 내가 그것을 기억하여다는 두번째 단계의 회상 속에서 일어난다. 그러므로 시각객체는 동일하게 반복하여 경험할 수 있는 작용들이 된다. 객체가 일단 주어지면, 그것은 임의적으로 빈번히 다시 주어지며, 다시 관찰되고, 그런 다음 하나의 계속을 형성하는 상이한 작용들 속에서 동일화 될 수 있다.(p205) <시간의식> 中


 후설은 사유가 진전됨에 따라 의식의 지향적 체험 그 자체가 시간적 지속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지며, 또한 체험들을 선반성적, 비대상화적으로 의식하는 [내적의식]의 차원의 발견과도 더불어 [시간의식]은 [의식의 모든 체험들 그 자체를 내적으로 의식하면서 그것들의 시간적 지속을 구성하는 가장 근원적인 의식층]으로서 파악하게 되었다. 의식 체험의 일반적 형식으로서의 시간을 구성함으로써 동시에 의식 체험과 그 상관자 쌍방을 구성한다는 의미에서 모든 구성의 근원적인 장이게 된다.(p208) <현상학 사전, 시간의식 時間意識> 中 


 내가 책을 읽고 있을 때 내 의식은, 내 자아의 가장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열망에서부터 저기 정원 끝 내 눈앞 지평선 너머 보이는 곳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상태를 동시에 펼쳤는데, 그와 같은 일종의 다채로운 갖가지 상태를 동시에 펼쳤는데, 그와 같은 일종의 다채로운 스크린에서 우선 내게 가장 내밀하게 느껴진 것, 쉴 새 없이 움직이면서 나머지 모든 것들을 지배하던 손잡이는, 바로 내가 읽고 있는 책의 철학적인 풍요로움과 아름다움을 내 것으로 만들려는 욕망이었다.(p153)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中


 한 인간이 하는 모든 행동이나 태도에는 그 인간의 깊이 감추어진 성격을 드러내는 것이 있으며, 비록 그 태도가 예전에 그가 한 말과 연결되지 않는다 해도, 죄인 자신이 고백하지 않는 증언으로 그것을 확정 지을 수는 없다는 것을 말해 주는 듯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 감각의 증언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데, 이처럼 고립되고 비일관적인 기억 앞에서 우리는 이 감각들이 혹시 환상의 희생물이 아닌지를 묻게 된다. 이렇게 해서 그러한 태도 중 가장 중요한 것들은 자주 의문으로 남는 것이다.(p225)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中


4. 작품의 배경 : 성당 그리고 갈림길

 

 전성기 스콜라철학의 대전과 마찬가지로, 전성기 고딕 대성당은 무엇보다 '전체성'을 목표로 했으며, 그리하여 제거뿐 아니라 종합에 의해서 완벽에 가까운 최종적 해결을 지향했다.(p106)... 전성기 고딕 대성당은 모든 것에 제자리를 찾아주고 제자리를 더 이상 찾을 수 없는 것을 억누름으로써 자신의 형상 안에 그리스도교의 신학적, 도덕적, 자연적, 역사적 지식 전체를 구현하고자 했다.(p107) <고딕건축과 스콜라철학> 中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에서 여러 배경이 나오지만 인상적인 배경을 묻는다면 개인적으로 성당과 갈림길이라 여겨진다. 성당은 작품에서 의식이 넘어갈 수 없는 시간 차원의 절대 공간으로 설명된다. 작품 속에서는 여러 고딕성당이 언급되는데,  파노프스키(Erwin Panofsky, 1892 ~ 1968)에 따르면 스콜라 철학과 고딕 건축은 '전체성'이라는 면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이 공간에서 화자가 게르망트 공작부인을 인식하는 대목등을 살펴보면 성당이 향후 작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을 것으로 추측된다.


 성당이 내게는 마을 나머지 부분과는 전혀 다른 그 어떤 것으로 생각되었다. 성당은 말하자면 4차원 공간을 차지하는 건물로 - 4차원이란 시간의 차원이다. - 수세기에 걸쳐 이 기둥에서 저 기둥으로, 이 제단에서 저 제단으로, 단지 몇 미터의 거리뿐만 아니라, 계속되는 시대들을 통해 마침내 승리자가 된 내부를 펼쳐 보였다.(p115)... 성당과 성당이 아닌 다른 모든 것 사이에는 내 정신이 결코 넘어갈 수 없는 어떤 경계선이 있었다.(p117)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中

 

 우리 눈에 보이는 성당의 모든 부분은 그 본연의 어떤 사상 탓에 다른 건물과 구별되겠지만, 그래도 성당이 자신을 의식하고 개별적이고 책임감 있는 존재임을 확인하는 것을 바로 종탑 덕분이었다. 바로 종탑이 성당을 대변했다.... 할머니는 종탑을 바라보면서, 기도하기 위해 모든 두 손처럼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경사진 돌들의 그 부드러운 긴장과 열정적인 기울어짐을 두 눈으로 좇으셨는데,(p119)  첨탑의 기세와 완전히 하나가 된 할머니의 시선은 첨탑과 더불어 높이 날아오르는 것 같았다.... 우리 마을의 든 일, 모든 시간, 모든 관점에 형태를 주고 완성하고 축성하는 것은 바로 생틸레르 종탑이었다.(p120)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中


 또 다른 주요 배경은 두 갈림길이다. 화자기 작품에서 서로 다른 길로 인식하고 있는 매제글리즈 쪽과 게르망트 쪽으로 난 길은 사실은 연결되어 있는 길로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에서는 아직 나타지 않는 이 두 배경과 이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것인지.


 메제글리즈 쪽과 게르망트 쪽은 내 삶의 수많은 작은 사건들과 연결되어 있었지만, 우리가 나란히 보내는 여러 다양한 삶 중에서도 가장 변화가 많고 이야깃거리가 풍부한, 지적인 삶과 연결되어 있었다. 물론 이 삶은 우리 안에 서서히 진행되어, 우리를 위해 의미와 양상을 변화시켜주고, 우리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 주는 진리 발견을 위해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것이고, 또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채로 준비해온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진리는 우리 눈에 보이게 된 날에야 비로소 존재하기 시작한다.(p315)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中


 내 소년 시절을 통해 메제글리즈가 이미 더 이상 콩브레 토양과는 닮지 않은 땅의 기복 탓에 멀리 가면 갈수록 시야에서 사라지는 지평선처럼 접근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면, 게르망트는 현실적이라기보다는 관념적인 것으로, 그 '길'의 종점과도 같은, 적도나 극지방, 혹은 동양처럼 일종의 추상적이고 지리적인 표현이었다... 나는 그 두 길을 서로 다른 두 실체로 간주하며 오로지 정신적인 창조물에만 속하는 일관성과 통일성을 부여했다.(p238)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中


 그 외에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에는 독자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은유나 고전의 내용이 많이 담겨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아직 작품 전체를 다 읽지 못했기 때문에 확신할 수는 없지만, 후에 다시 읽는다면 분명 더 많은 것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끌리는 매력이 있는 책이다. 다음의 문단에서 마키아벨리((Niccolo Machiavelli, 1469 ~ 1527)의 <군주론 Il Principe>의 한 대목을 우리가 연상하는 것도 이런 내용의 일부일 것이다.


 우리는 그때 프랑수아즈가 아주머니의 악담이나 의심, 노여움을 두려워하며 살아오는 동안, 그녀의 마음속에는 우리가 증오라고 착각했던, 어떤 존경과 사랑의 감정이 싹트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의 진정한 여주인이자 여군주인 그 신비롭고 전능한 제왕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p268)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中

 

 양자를 모두 갖추기는 힘들어서 선택을 해야 한다면 사람들이 두려움을 받는 것이 사랑을 받는 것보다 훨씬 더 안전하다. 인간은 감사할 줄 모르고, 변덕스럽고, 거짓말하고 기만하려 하며, 위험은 피하고자 하고 이득엔 탐욕스럽다는 것이 타당한 일반 원칙이기 때문이다.(p109)... 두려움을 받는 것이 나은지 아니면 사랑받는 것이 나은지에 관한 질문으로 되돌아와서 나는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자 한다. 인간은 자신의 의향에 따라 사랑을 하지만 군주의 의향에 따라 무서움을 느끼게 만들 수 있으므로, 명민한 군주는 다른 사람들이 제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제어하는 것 위에 국가 운영의 토대를 놓아야 한다.(p112) <군주론> 中


 이처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은 모호하면서도 많은 것을 담고 있기에 독자들의 흥미를 끄는 소설이라 생각된다. 개인적으로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가진 작가를 꿈꾸는 화자가 의식의 흐름에 따라 내용을 진행하지만, 작품 속에 여러 의미가 감춰져 있기에 보다 독자들이 적극적으로 읽을 수 있는 작품이라 여겨진다.


 마지막으로, 작품을 읽으면서 머리를 맴돌던 음악 두 곡을 담아본다. 다소 신비스런 분위기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분위기의  Enigma의 <Return to innocence>가 작품이 주는 이미지라면, 작품을 읽는 동안 내가 받은 느낌은 The Cranberries의 <Dreams>였다. 두 곡을 마지막으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의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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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9-04-02 23: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크랜베리스의 <드림> 넘 좋죠. ^^

겨울호랑이 2019-04-03 06:09   좋아요 0 | URL
네 그렇습니다. 영화 「중경삼림」의 「몽중인」버젼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크랜베리스 음색이 더 시원하게느껴집니다^^:)

카알벨루치 2019-04-03 11: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hot한 페이퍼입니다 눈돌아갑니다 👏👏👏

겨울호랑이 2019-04-03 12:00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카알벨루치님^^:)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대단한 작품임을 뒤늦게나마 알게되어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카알벨루치 2019-04-03 12:03   좋아요 1 | URL
그 책의 진가와 찬사는 대학때 들었는데, 아직도....hot은 HOT의 핫입니다 ㅋ 울 막내동생이 중딩때 HOT춤공연을 학교무대에서 했던 기억이 납니다 ㅎㅎ이 댓글을 이전 페이퍼에 써야하는데...ㅎㅎ 요즘 독서도 쉬고 있는 농땡이 왔다 갑니다 ㅋㅋ

겨울호랑이 2019-04-03 12:06   좋아요 1 | URL
동생분이 추신 곡목에서 강하게 「캔디」의 느낌이 옵니다. ㅋ 카알벨루치님 맛있는 점심 드세요!

카알벨루치 2019-04-03 13:06   좋아요 1 | URL
캔디 맞습니다 ㅎㅎ즐건 하루 되시길!

AgalmA 2019-04-10 01: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정주행이시군요ㅎb
읽기 어려운 책을 더 읽기 어렵게 해석하고 계신 듯합니다ㅎㅎ;
겨울호랑이님의 독서 내공이기에 가능한 멋진 리뷰입니다^^/

겨울호랑이 2019-04-10 07:29   좋아요 2 | URL
^^:) 즐겁게 읽긴 했는데, 모호한 지점이 있어 이것저것 가져다 붙이다 보니 좀 어렵게 되었습니다.ㅋ 아직은 안개낀 듯 흐릇하지만, 차츰 읽어가다보면 점차 개이겠지요. 감사합니다.

카알벨루치 2019-04-10 08:29   좋아요 2 | URL
고래등 쌈에 🦐 등 터지는 소리~우지직ㅋㅋ

겨울호랑이 2019-04-10 08:44   좋아요 2 | URL
에고... 카알벨루치님 무슨 말씀을. 저는 프랑크톤이랍니다.ㅋㅋ

카알벨루치 2019-04-10 09:01   좋아요 2 | URL
전 새우, 겨호님과 아갈마님은 고래! 전 어쩜 고래밥일지도~ㅎㅎㅎ

AgalmA 2019-04-14 17:34   좋아요 1 | URL
고래? 새우? 겨울호랑이님은 그렇다치고 제가요? 당최 매치가 안 되어서 뭐라 드릴 말씀이;;;;;;;;
 

 

이 글을 쓸 무렵 나는 매사추세츠 주의 콩코드 마을 근처에 있는 월든 호숫가의 숲 속에 집 한 채를 손수 지어 홀로 살고 있었다. 그곳은 가장 가까운 이웃과도 1마일쯤 떨어진 곳이었으며, 나는 순전히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거기서 나는 2년 2개월 동안 살았다. 그러나 지금은 다시 문명 생활의 일원으로 돌아와 있다.(p9) <월든> 中


 2015년 7월 25일부터 시작한 시골학교에서의 생활을 다음 주면 마무리하게 됩니다. 약 3년 5개월 정도의 시간이 흘렀으니, 소로우의 월든 생활보다는 긴 시간을 보낸 셈입니다. <월든 walden>에서 헨리 데이빗 소로우(Henrry David Thoreau, 1817 ~ 1862)는 다음과 같이 자신이 월든 호숫가에 들어간 이유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월든 호숫가에 간 목적은 그곳에서 생활비를 덜 들여가며 살거나 또는 호화롭게 살자는 것이 아니라, 되도록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내 개인적인 용무를 보자는 데 있었다.(p33) <월든> 中


세상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기 시작하며, 우리의 위치와 우리의 관계의 무한한 범위를 깨닫기 시작한다.(p246) <월든> 中


  외부와 단절된 수도 생활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자 한 소로우와 달리 저희 가족의  시골생활의 목적은 연의 교육 문제였습니다. 아이가 어린 시절을 자연에서 보낼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교육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시골학교에서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2년 2개월동안 월든 호숫가를 떠나지 않은 소로우와는 달리 저는 강남역으로 출퇴근을 해야 했으니, 생각해보면 같은 시골 생활이었지만 소로우와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이 더 많았던 지난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계절은 바뀌었습니다.





[사진] 장평에서의 사계(by 겨울호랑이)


 이렇게 해서 내 숲 생활의 첫번째 해는 끝이 났다. 그다음 해도 첫해와 큰 차이는 없었다. 1847년 9월 6일 나는 드디어 월든을 떠났다.(p454) <월든> 中


 나는 숲에 들어갈 때나 마찬가지로 어떤 중요한 이유 때문에 숲을 떠났다.(p460)... 나는 경험에 의하여 적어도 다음과 같은 것을 배웠다. 즉 사람이 자기 꿈의 방향으로 자신있게 나아가며, 자기가 그리던 바의 생활을 하려고 노력한다면 그는 보통 때는 생각지도 못한 성공을 맞게 되리라는 것을 말이다.(p461) <월든> 中


 소로우는 위와 같은 말로 <월든>을 마무리하면서, 자신이 얻은 바를 말하고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 제게 무엇을 얻었느냐고 물어본다면 무엇이라 대답해야 할까요. 시간이 흘러야 제대로 돌아보겠지만, 지금 당장은  이 곳 생활을 통해 많은 책들을 접할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을 가질 수 있어 행복했다는 대답을 할 듯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대답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 <월든>의 한 구절을 마지막으로 이번 글을 갈무리 합니다. 


 나의 거처는 사색을 하기 위한 곳뿐만 아니라 진지한 독서를 하기 위한 곳으로도 그 어느 대학보다 나았다. 내가 사는 곳은 그 흔한 순회도서관도 찾아오지 않는 곳이었지만 나는 온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몇 권의 책들의 영향력 속에 과거 어느 때보다 깊이 젖어들게 되었다.(p144)... 때로는 사람들은 고전 연구가 더 현대적이고 더 실용적인 학문에게 자리를 내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탐구적인 학생은 그것이 어떤 언어로 쓰였고 얼마나 오래되었고 간에 항상 고전을 연구할 것이다.(p145) <월든> 中


PS. 다시 생각해보니, 독서보다는 운전 실력이 많이 좋아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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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12-09 23:3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사계...다시 도시로 가시는군요! 겨울호랑이님의 새로운 출발을 응원합니다! 사진이 너무 정겹고 멋집니다!^^

겨울호랑이 2018-12-09 23:55   좋아요 4 | URL
감사합니다, 카알벨루치님^^:) 연말연시가 실감되는 요즘입니다. 잘 찍은 사진은 아니지만, 꾸준히 같은 지점에서 시차를 두고 찍었다는데 의의를 두고 올려봅니다. ㅋ

카알벨루치 2018-12-09 23:57   좋아요 2 | URL
사진에도 조예가 있으신가 봅니다 의도적인 시골생활이 너무 가슴에 다가옵니다 연의의 성장과 성숙에 부모님의 마음과 정성이 큰 자양분이 될 것 같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8-12-10 00:01   좋아요 2 | URL
카알벨루치님 칭찬에 감사합니다만, 요즘 핸드폰 카메라 성능이 좋은 덕인 듯 합니다...^^:)

카알벨루치 2018-12-10 00:03   좋아요 2 | URL
사진 찍으시는 분의 계획된 의도가 돋보입니다 휴대폰은 이차적인 것이고요 ㅎㅎㅎㅎ편한 밤 되십시오~

겨울호랑이 2018-12-10 00:05   좋아요 2 | URL
카알벨루치님 감사합니다. 편한 밤 되세요^^:)

나와같다면 2018-12-10 00:2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3년 넘는 기간동안 출퇴근 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어요.
덕분에 인생에서 빛나고 아름다운 시기를 선물 받으신것 같습니다.
새로운 시작도 응원합니다. 진심을 담아서

겨울호랑이 2018-12-10 08:53   좋아요 3 | URL
나와같다면님 감사합니다. 출퇴근 거리가 조금 멀어지게 되니 아침에 서둘러 나올 수 있어 혼잡함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나름의 좋은 점이었다 생각합니다. 나와같다면님 말씀처럼 저희 가족에게 좋은 경험이었네요 응원에 감사드리며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2018-12-10 08: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10 08: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읽는나무 2018-12-10 08: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비단 운전 실력뿐이었을까요?
얻어 가시는 것들이 더 많았으리라고 봅니다^^
사계 사진 모든 계절이 좋네요!
이렇게 좋은 풍경도 담아 가시는군요.ㅋㅋ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더 좋은 날들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겨울호랑이 2018-12-10 08:50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책읽는나무님 말씀처럼 지금 당장은 몰라도 소중한 경험이었음을 느낄 때가 오리라 기대해 봅니다. 오늘 행복한 하루 되세요!

2018-12-10 08: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빠는 출퇴근하느라 좀 고생스러우셨겠지만 따님에게는 두고두고 오래 기억에 남을 시골생활이었을 것 같아요. ^^
새로운 보금자리에서도 바뀌는 계절 느끼고 즐기시며 행복하시길 바랄게요. ^^

겨울호랑이 2018-12-10 08:53   좋아요 2 | URL
설해목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조금이나마 아빠 노릇을 한 것 같습니다. 작은 마음 하나로 좋은 추억을 줄 수 있었기에 저 역시 행복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설해목님께서도 좋은 하루 되세요!

oren 2018-12-10 22: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 님께서 기나긴 시간 동안 머나먼 통근길을 마다 않고 고달픈 시골 생활을 자청하신 데는 자식 교육을 위한 부모로서의 심모원려와 숭고한 희생 정신이 깔려있었군요.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겨울호랑이 님께서도 정확하게 인용해 주셨듯이, 소로우가 월든 호수로 간 이유는 아주 시급하고도 중요한 ‘개인적인 용무‘가 따로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그건 바로 파상풍으로 급작스레 사망한 형을 추모하기 위해 책을 쓰는 일이었고, 그렇게 해서 탄생한 책이 바로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에서 보낸 일주일』(국내에서는 『소로우의 강』으로 번역)이었고요. 그런데, 그토록 심혈을 기울여 쓴 그 책이 참담한 실패를 겪고 난 뒤에야 『월든』이라는 걸작이 (비슷한 장소에서) 탄생한 사실이 재미있더군요.

오늘 문득 『주석 달린 월든』을 펼쳐 그 대목을 다시 읽어봐도 여전히 새롭고 흥미롭네요. 소로우의 처녀작은 출판사를 구하지 못해 결국 자비로(=빚을 내서) 1,000권을 출판했으나, 4년 동안에 팔린 책이 290여 권에 불과했고, 그 중에서도 75권은 기증한 거라고 하고요. ‘이제 나는 거의 900권에 달하는 책이 있는 서고를 갖게 됐지만, 그중 700권 이상이 내가 쓴 책이다.‘라고 일기에 쓴 것도 나중에 출판사로부터 되돌려받은 미판매 재고분 706권을 가리키는 것이었고요. 『주석 달린 월든』에서는 ‘개인적인 용무‘를 좀 더 익살스럽게(?) ‘개인 사업‘으로 표현해 놓은 점도 눈에 띄네요.

* * *

내가 월든 호수로 간 목적은 돈을 들이지 않고 살려는 것도 아니었고 거기에서 힘들게 살려는 것도 아니었다. 별다른 방해를 받지 않고 개인 사업을 하고, 상식도 없으며 계획을 해서 사업을 꾸려갈 만한 재능도 없어 어리석게는 보여도 그만큼 한심하게는 보이지 않을 일을 하는 데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였다.(『주석 달린 월든』)

겨울호랑이 2018-12-10 23:12   좋아요 1 | URL
에고. oren님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쑥스럽습니다. 모든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이 매한가지 아니겠습니까. 다만, 제가 나중에도 아이 앞에 작게나마 노력할 수 있어 기쁘게 생각됩니다. oren님의 설명을 듣고 나니 「월든」의 숨겨진 뒷이야기가 이해가 되네요. 저는 소로우가 ‘개인적인 사업‘으로 표현한 부분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안개 걷힌 듯 이해가 되네요. 좋은 말씀에 감사드리며, 저 역시 「주석 달린 월든」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요즘 「소로우의 자연사 에세이」를 읽고 있습니다만, 끝나는대로 읽어야겠습니다. oren님 항상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12-10 23: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든 부모가 자식을 사랑한다고 말해도, 모두가 겨울호랑이 님처럼 실천으로 옮기진 못하죠. 대단하십니다. ^^

겨울호랑이 2018-12-11 00:22   좋아요 3 | URL
^^:) 북다이제스터님 감사합니다. 사실 저도 이럴 줄은 처음에는 몰랐답니다 ㅋㅋ 알았다면, 아마도... ^^:)

2018-12-11 16: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11 22: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12 09: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12 2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8-12-13 22: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는 자연에서 자랄 수 있어서 정말 좋았겠지만,
강남까지의 출퇴근이라니! 겨울호랑이님은 정말 힘드셨겠어요.

좀 더 나이가 들면 혼자 어느 시골 집에 살며,
책 읽고, 글쓰고, 술 마시며 지내고 싶단 생각을 하긴 해요.
이 각박한 대도시를 벗어나고픈데, 아직은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해야 하니 벗어날 수가 없네요.

겨울호랑이 2018-12-13 22:5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감은빛님^^:) 그래도 제가 조금 마음을 더 써서 아빠로서 무언가를 해 줄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감은빛님께서도 시골에서의 은퇴를 생각하시는군요.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만, 아직은 때가 아닌 듯하네요. 조금 아쉽기도 하지만, 기다림이 큰 만큼 더 좋은 생활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습니다. ^^:) 감은빛님 편한 밤 되세요!

서니데이 2018-12-19 21: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2018 서재의 달인 선정되신 것 축하드립니다.
올해도 좋은 이웃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따뜻하고 좋은 밤 되세요.^^

겨울호랑이 2018-12-19 23:01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 덕분에 알게 되었네요. ^^:)

302moon 2018-12-19 23: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늘 고맙습니다, 이 말씀 드리고 싶었어요.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 저도 분발해야지, 생각하지만 그냥 말뿐ㅜㅜ 편안한 밤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18-12-20 06:2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시는 이웃분들 덕분입니다. 이제 곧 크리스마스, 연말이네요. 302moon님께서도 행복한 한 해 마무리하시기 바랍니다!^^:)

syo 2018-12-19 2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편안한 겨울 보내고 계신가요 ㅎㅎㅎ 2018도 어김없이 서재의 달인이 되셨어요. 같은 감투를 쓰고 있다는 게 부끄러울 정도로, 올해도 많이 배웠습니다^-^

겨울호랑이 2018-12-20 06:32   좋아요 0 | URL
저 역시 syo님께 축하 말씀드립니다. 올 한 해 syo님의 유쾌한 글로 즐겁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감사드리며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

깐도리 2018-12-21 12: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 호랑이님 2018년 서재의 달인 되시 거 축하드려요^^

겨울호랑이 2018-12-21 13:1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저 역시 깐도리님께 2018년 서재의 달인 축하 말씀 드립니다. 평소 많은 책을 읽으시고 꾸준히 리뷰를 올리시는 깐도리님께는 당연하겠지만요. 내년에도 좋은 리뷰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만인을 위한 예술을 창조하려 했던 똘스또이는 단번에 보편성을 얻었다. 그의 작품은 전세계에서 불후의 성공을 이룩했다. 그 이유는 그 작품이, 예술이 지닌 온갖 파멸되어야 할 요소에서 정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며, 또한 그 작품에는 영원한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로맹 롤랑 <똘스또이의 생애>에서 (p15) <인생이란 무엇인가 3 행복> 中


 톨스토이(Tolstoi, Lev Nikolaevich, 1828 ~ 1910)의 작품에 대해 프랑스 문학가인 로맹 롤랑(Romain Rolland, 1866 ~ 1944)는 그 안에 보편성과 영원이 담겨있다고 평가한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와 같은 장편 소설에서 뿐만 아니라, 러시아 민화(民話)나 다른 작가의 작품을 각색한 짧은 단편 속에서도 찾을 수 있다고 여겨지는데, <인생이란 무엇인가 3 행복> 안의 두 작품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와 <사랑이 있는 곳에 신이 있다> 역시 그런 작품들이다. 이번 페이퍼에서는 두 작품 속에서 느껴지는 톨스토이의 신, 하늘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 본다. 먼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살펴보자. 이 작품은 하늘의 천사가 인간 세상으로 내려와 신(神)이 낸 세 가지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다는 이야기다.  


 '다시 내려가 산모의 영혼을 거두어라. 그러면 세 가지 말을 알게 되리라. 즉 사람의 내부에는 무엇이 있는가,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그것을 알게 되면 하늘 나라로 돌아올 수 있으리라.'(p64)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中


 작품 속에서 천사는 사람의 내부에는 사랑이 있으며,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자신에게 필요한 지식이라는 것과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사랑을 느끼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때 저는 '사람 안에는 무엇이 있는지 그것을 알게 되리라'고 하신 하느님의 첫 번째 말씀을 생각해 냈습니다. 나는 사람 안에 있는 것은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번에는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냈습니다. 그것은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가하는 지식입니다.(p67)... 저는 그 부인이 타인의 아이로 인해 눈물을 흘렸을 때 거기서 살아 계신 하느님의 그림자를 발견했고,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깨달았습니다.(p68)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中


 톨스토이에게 신은 매우 중요한 존재였지만, 막연한 절대자의 이미지만은 아니라는 것을 <사랑이 있는 곳에 신이 있다>는 보여준다. 작품 안에서 서로의 모습에서 하느님의 모습을 발견하는 마르틴과 스쩨빠느이치의 모습을 본다면, 톨스토이에게 신(하느님)은 멀지 않은 곳에 있음을 본다. 


 고개를 돌려 문 쪽을 보았으나 아무도 없었다. 도로 몸을 굽혀 드러눕자 갑자기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또렷이 들려 왔다. "마르틴, 마르틴아! 내일 한길을 보아라, 내가 갈 터이니." 마르틴은 의자에서 일어나 눈을 비비기 시작했다.(p75)...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 나는 가물가물 잠이 들었지. 그렇게 졸고 있는데 누군가가 조그만 목소리로 '기다려라, 내일 갈 테니' 하지 않겠나?" 스쩨빠느이치는 머리를 저을 뿐 아무 말 않고 컵에 남은 차를 마저 마시고 컵을 놓았다.(p77) <사랑이 있는 곳에 신이 있다> 中


 이들 작품에서 기독교 신자들은 대부분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태 22 : 37 ~ 39)'라는 성경구절을 떠올리겠지만, 기독교 신자들이 아닌 이들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중국철학사>에서 표현되듯 하늘(天)에 대한 인류 보편적인 사상이 있어서가 아닐까.

 

 중국 문자 가운데 이른바 하늘(天)에는 다섯 의미가 있다. 첫째, 물질지천(物質之天) 즉 땅과 상대적인 하늘이다. 둘째, 주재지천(主宰之天) 즉 소위 황천상제(皇天上帝)로서 인격적인 하늘이다. 셋째, 운명지천(運命之天) 즉 우리 삶 가운데 어찌 할 도리가 없는 대상을 지칭한 것이다. 넷째, 자연지천(自然之天) 즉 자연의 운행을 지칭한 것이다. 다섯째, 의리지천(義理之天) 즉 우주의 최고원리를 지칭한 것인데, <논어 論語>에서 공자가 말한 하늘 역시 주재지천이다.(p61) <중국철학사 中國哲學史 상> 中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랑이 있는 곳에 신이 있다>의 작품 속에서 신은 '주재지천'의 존재만은 아니다. 우리 안에 사랑이 있다는 '의리지천'으로서의 하늘과 사랑을 통하여 우리가 살아간다는 '자연지천'으로서의 하늘 역시 같이 표현되고 있기에, 세계인들이 그의 작품에 공감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이런 점이 그를 '러시아의 톨스토이'가 아닌 '인류의 톨스토이'로 만든 것은 아닐까. 


 다만, 톨스토이의 작품을 접할 때 누군가는 그의 기독교 사상이 불편하다고 한다.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종교를 강요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 그 이유인데, 그의 작품 속에 깊이 나타난 종교관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그의 예술관 속에서 그 답을 찾아보자.

 

 <예술이란 무엇인가?>에서, 톨스토이는 예술이란 감정을 감염시키는 것이라는 단순한 이론을 표명하였다. 진정한 예술가는 표현도 하고 정서도 환기시킨다. 예술을 통하여 예술가는 자신이 경험한 감정을 청중에게 감염시킨다... 톨스토이는 예술의 역할로 예술가와 청중간의 의사소통을 강조했으며, 지식과 지적 활동으로부터 예술 감상을 분리시키는 데 큰 관심을 가졌다. 이 두 번째 특징이 톨스토이의 감화의 은유를 설명하며, 훌륭한 예술을 이해하기 위해 특별한 교육이나 훈련이 필요치 않다는 그의 주장을 뒷받침한다.(p32) <미학개론> 中


 톨스토이의 예술관은 작가의 감정을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을 넘어 감염시키는데 있었다. 이러한 그의 예술관을 알고 나면 작품 곳곳에 표현된 작가의 종교관(宗敎觀)을 예전보다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러시아의 민중작가로서 보편성과 영원을 추구한 예술가. 


 톨스토이와 그의 작품 세계를 깊이 있게 알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작품을 읽어야겠지만, 일단 위와 같이 '틀'을 잡아 놓고, 다른 작품을 접하면서 그에 대한 평가를 다듬어 보고자 한다.


 잠시 말을 돌려보자.  중국철학에서 공자(孔子, BC 551 ~ BC 479)이전 하늘에 대한 생각이 위와 같았다면, 춘추시대(春秋時代, BC 770 ~ BC 403) 이후에는 인간(人間)을 중시하는 새로운 기운이 싹트게 된다. 이에 대해 펑유란(馮友蘭, 1894 ~ 1990)은 <중국철학사>안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그러나 춘추시대에는 비교적 진보적인 일부 선비들이 점차 귀신 혹은 천도라는 것을 믿지 않게 되었다. 예를 들면 소공(昭公) 18년[ BC 524], 자산(子産)이 말했다. "천도(天道)는 멀고 인도(人道)는 가까우므로, 양자는 서로 상관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어떻게 천도로 말미암아 인도를 알 수 있겠는가? 天道遠, 人道邇, 非所及也. 何以知之?<좌전 左傳>" (p62) <중국철학사 상> 中


 다소 무리가 있겠지만, 톨스토이가 작품 속에서 '천도(天道)' 이야기 했다면, 러시아의 자산처럼 '인도(人道)'를 말한 작가는 누가 있을까. 도스토예프스키(Fyodor Dostoevsky, 1821 ~ 1881)가 여기에 해당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하면서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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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1 15: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0-11 15: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0-12 09: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0-12 1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0-12 10: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8-10-15 0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와 같은 톨스토이 소설을 읽고 저는 좋았는데 너무 교훈적이어서 싫다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교훈적이면 아무래도 문학성은 떨어지는 것으로 느껴지긴 합니다.

겨울호랑이 2018-10-15 07:27   좋아요 2 | URL
페크님 말씀처럼 너무 교훈적이면 우리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줄 것 같아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페크님께서도 좋은 가을의 한 주 시작하세요!
 


 사무라이는 학문 자체는 경멸하고 학문에 조예가 깊은 이를 책 냄새에 취한 자라 불렀다. 이들에게는 많은 특권이 주어졌다(p583)... 그들은 엄격하고 영예로운 규범인 "무사도(武士道)"에 순응했다. 그 핵심 이론은 미덕을 명확하게 한 것으로써 "도리에 따라 주저함 없이 행동을 결행하는 힘이며, 죽어야 할 때 싸워야 할 때 싸우는 것이다.(p584) <문명이야기 1-2 : 동양문명> 中


 미국 역사학자 윌 듀런트(Will Durant, 1885 ~ 1981)는 <문명 이야기 The story of Civilization>을 통해 일본의 사무라이에 대해 위와 같이 서술하고 있다. 일본 사무라이들은 센고쿠 시대(戰國時代, 15C 중반 ~ 16 C 후반)에 전성기를 맞이하다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1543 ~ 1616) 의 에도 막부(江戶 幕府)가 열린 이후 몰락의 시기를 걷게 된다. 그리고, 이 시기를 대표하는 인물이 유명한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藏, 1584 ? ~ 1645)다. 생전 60여명의 무사들과 대결하면서 한 번도 패배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한 그는 생전 <오륜서 五輪書>를 남기게 된다. 유명한 이 무사를 소재로 한 소설과 만화가 있는데, <슬램덩크 Slam Dunk>의 저자 이노우에 다케히코(井上雄彦)가 그린 <배가본드 Vagabond>는 그러한 작품 중 하나다.


  16세기 말부터 일본의 사무라이 계급의 몰락이 시작되었다면, 같은 시기 반대편 서양에서는 이미 기사(騎士)계급은 거의 사라지고, 대항해시대(大航海時代, Age of Discovery, Age of Exploration)가 열리고 있었다. 그리고, <돈키호테 Don Quijote de La Mancha>는 이 새로운 시대를 살면서, 과거 기사 시대를 그리워한 낭만주의자인 어느 시골 귀족의 모험을 다룬 소설이다.

 

 정말이지 그는 이제 분별력을 완전히 잃어버려, 세상 어느 미치광이도 하지 못했던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명예를 드높이고 아울러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일로, 편력 기사가 되어 무장한 채 말을 타고 모험을 찾아 온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자기가 읽은 편력 기사들이 행한 그 모든 것들을 스스로 실천해 보자는 것이었다.(p69)  <돈키호테 1> 中


 <돈키호테 1>, <돈키호테 2> 두 권의 책 속에서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는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흥미진진하지만 어이없는 모험을 이어나간다. 이러한 처참한 모험의 실패를 잘 보여주는 일화 중 하나가 유명한 풍차와의 싸움일 것이다. 영어 숙어 "to tilt at windmills"  가상의 적과 싸우다( to fight imaginary enemies)의 유래가 되기도 한 아래의 이야기는 험난한 모험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그림] Tilting at windmills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Tilting_at_windmills)


 그는 둘시네아에게 이런 위기에 처한 자신을 보호해 달라고 온 마음을 다해 빌었다. 그는 장패로 몸을 가리고 옆구리에 창을 낀 채 전속력으로 로시난테를 몰아 맨 앞에 있는 풍차로 돌진하여 날개에 창을 꽂긴 했으나, 바람이 세차게 불어 날개가 돌아가자 그 창은 박살이 나고 사람과 말도 함께 딸려 가다가 들판으로 사정없이 내동댕이쳐졌다. 산초 판사가 그를 구하려고 당나귀를 몰아 달려가 보니 주인은 꼼짝달싹할 수 없는 상태였다.(p125) <돈키호테 1> 中


 <돈키호테 1>과 <돈키호테 2> 모두 돈키호테와 산초의 어이없는 모험이야기로 가득하지만, 1권과 2권은 이들을 바라보는 주변 인물들의 시선은 차이가 있다. <돈키호테 1> 에서 기사 서품을 부탁받은 객줏집 주인에게 돈키호테는 쫓아내야할 미치광이에 불과했다.  


 객줏집 주인이 마부들을 향해, 이미 말했듯이 저자는 미치광이로 사람들을 모두 죽인다 하더라도 아무런 죄가 되지 않으니 그냥 내버려 두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객줏집 주인은 이 손님의 장난이 예사가 아니라는 생각에 다른 불행한 일이 일어나기 전에 어서 빨리 재수 없는 그놈의 기사 서품식을 치러 주어 일을 매듭지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p87)  <돈키호테 1> 中


 그렇지만, <돈키호테 2>에서는 돈키호테와 산초는 출판된 책의 주인공으로, 이미  유명인이 되어 있었다. 마치 리얼버라이어티 쇼의 주인공과 같이 널리 알려진 그들은 더 이상 위험한 미치광이가 아니라 환영받는 연예인이었다. 

 

 "어젯밤에 바르톨로메 카라스코의 아들이 살라망카에서 공부해서 학사가 되어 돌아왔기에 제가 인사를 하러 갔었습니다요. 그런데 그 사람 말이 나리에 대한 이야기가 <기발한 이달고 돈키호테 데 라만차>라는 이름으로 이미 책이 되어 나돌고 있다는 겁니다요. 그리고 저에 관해서도 산초 판사라는 바로 제 본명으로 그 책에서 이야기 되고 있으며, 둘시네아 델 토보소 님에 대한 것이며 우리 둘만이 보냈던 다른 일들까지 몽땅 온다고했습니다요."(p82) <돈키호테 2> 中


 "말해 줘요, 종자 양반, 당신의 주인이라는 분이 지금 <기발한 이달고 돈키호테 데 라만차>라는 이야기로 출판되어 나돌고 있는 주인공, 둘시네아 델 토보소라는 분을 자기 마음의 주인으로 두신 그분이 아닌가요?... 나는 그 이야기 전부를 아주 좋아해요. 판사 양반, 가서 주인께 말씀드려요. 내 영지에 잘 오셨고 정말 환영한다고 말이에요. 이보다 더 나를 즐겁게 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도 전해 주세요."(p380) <돈키호테 2> 中


 이제는 가는 곳마다 자신을 알아보고 환영받는 존재가 되었지만, 돈키호테는 기사도(騎士道, chivalry)를 살릴 수 없었기에 끊임없이 방랑을 하다 결국 고향으로 돌아가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돈키호테 1>, <돈키호테 2>는 돈키호테와 산초의 모험을 다룬 연작 소설이지만, 주인공을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은 이와 같이 크게 다르다. 가는 곳마다 배척당해서 좌절했던 것이 1권의 돈키호테였다면, 주변으로부터 환영받는 존재가 2권의 돈키호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권의 돈키호테 역시 안쓰럽게 느껴지는 것은 그를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이 그를 이해하는 것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리라.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광인을 제정신으로 돌리고자 모든 사람들에게 모욕을 가하다니 말이오. 돈키호테가 제정신으로 줄 수 있는 이득이 그가 미친 짓을 함으로써 주는 즐거움에 미칠 수 없다는 것을 당신을 모르시오?... 매정한 말 같지만, 난 돈키호테의 병이 절대로 고쳐지지 말았으면 하오. 그가 낫게 되면 그로 인한 재미를 잃을 뿐만 아니라 그의 종자 산초 판사의 재미까지 잃고 말 것이기 때문이오."(p807) <돈키호테 2> 中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과거의 로망을 꿈꾸는 어느 낭만주의자의 꿈이 현실의 높은 벽에 가로막혀 무너지는 것을 보면, <돈키호테>가 유쾌한 모험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마냥 웃을 수 만은 없는 것은 위와 같은 이유 때문이라 여겨진다. 거의 같은 시기 동양의 무사도와 서양의 기사도의 몰락이라는 상황에서, <돈키호테> 속에서 낭만주의자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돈키호테가 추구했던 꿈(기사도)를 마지막으로 길었던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페르시아와 시리아, 그리고 스페인 사라센인들의 영향을 받은 게르만식 군사 활동의 오랜 관습과, 헌신과 성례라는 그리스도교적 사상에서 비롯되어 불완전하지만 풍성한 기사도의 열매가 피어났다.(p1062)... 이론상 기사들은 영웅이자 신사이고 성인이 되어야 한다는 요구를 받았다. 야만적인 기질을 길들이기 위해 애쓰던 교회는 기사 제도를 종교적 형식과 서약으로 에워쌌다.(p1065)...  기사는 항상 진실을 말할 것과 교회를 방어할 것, 가난한 이들을 보호할 것, 자신의 지역을 평화로이 유지할 것, 그리고 이단들을 쫓을 것 등을 맹세했다. 모든 여자의 수호자가 되어 그녀들의 순결을 구해 주어야 했고, 모든 기사들의 형제가 되어 서로 돕고 예를 차려야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기사도 이론이었다.(p1066) <문명이야기 4-1 : 신앙의 시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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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8-07-21 03: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돈키호테> 제 인생책인데! 고등학교 때 범우사 판으로 읽고 열린책들 이쁜 양장 종이책으로 새로 장만해 놓고 너무 읽기가 안 되어서 이북도 샀는데 이것도 계속 밀리고ㅜㅜ
그런데 켄신 안나와서 섭섭요ㅋㅋ!

겨울호랑이 2018-07-21 03:34   좋아요 1 | URL
^^:) AgalmA님은 CNN처럼 24시간 깨어계시는군요 ㅋ 높은 베개 수준의 두께를 보며 무협지를 보듯 빠르게 여러 번 읽으니 결국 읽게 되었네요 ㅋ 좋은 문장은 좀 더 음미해야겠지만요. 켄신이라 하시면 우에스기 켄신을 말씀하시는 것인지? 저는 다케다 신겐을 더 좋아하는 편입니다.ㅋㅋ

페크(pek0501) 2018-07-21 20: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돈키호테 성찰>을 읽기 시작했어요. ㅋ

겨울호랑이 2018-07-21 20:51   좋아요 1 | URL
페크님께서는 이미 <돈키호테>를 넘어 <돈키호테 성찰>을 읽으시는군요! 저도 페크님처럼 깊이있게 문학작품을 읽어야하는데, 아직 못 읽은 작품이 끝도 없습니다 ㅜㅜ

페크(pek0501) 2018-07-21 21:45   좋아요 1 | URL
아닙니다. 오해하지 말아 주세요. 저야말로 읽지 않은 책이 끝도 없어요. 읽지 않고 이름만 아는 고전이 얼마나 많은데요.
돈키호테는 완역본을 읽은 게 아니라서 더 공부가 필요한듯해 돈키호테 성찰을 샀어요. 성찰이란 이름에 끌렸나 봐요. 제가 이런 스타일에 끌리는 편입니다. ㅋㅋ

겨울호랑이 2018-07-21 21:59   좋아요 1 | URL
<돈키호테>를 당대 사람들은 재밌게 읽었다고 하는데, 문화적 배경이 다르고 시간이 흐른 지금은 즐기기 위해 공부를 해야하는 어려운 책이 되버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는 가벼운 마음으로 쭉쭉 읽었습니다만, 다 읽고 난 후 부족함을 많이 느끼게 되네요. 그런 면에서 페크님께서 알려주신 <돈키호테 성찰>은 깊이 있는 독서를 도와주는 좋은 친구라 여겨집니다. 페크님처럼 미리 OT 후에 완독을 했다면 더 즐거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도 드네요. 페크님 좋은 책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무더운 여름날 시원하게 보내세요^^:)

2018-07-22 16: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22 2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강남석 2018-07-23 04: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의 ˝미치광이에서 연예인으로...어느 낭만주의자의 모험 이야기˝ 를 읽으면서 그 어릴적 예전에 읽었던 기억이 새롭게 생각이 나는군요 ...정리를 참 잘 해주셔서 금방 책 두권을 읽은 느낌 입니다 감사 합니다...
대화 내용들을 읽으면서 제맘에 많은 도전을 받습니다.
내면의 힘과 좀더 부더러운 인격을 가진 소유자가 되기 위해 독서를 해야 겠다는...

겨울호랑이 2018-07-23 06:52   좋아요 0 | URL
강남석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저도 이웃님들 덕분에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 받으며 함께 성장하는 것에서 큰 기쁨을 얻게 됩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히든챔피언 2018-08-01 22: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글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18-08-01 23:06   좋아요 0 | URL
조용관님 격려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더운 날 건강하게 보내세요^^:)
 

 <켄터베리 이야기 The Canterbury Tales>는 영국의 제프리 초서(Geoffery Chaucer, 1343 ? ~ 1400)의 작품으로 켄터베리를 향한 순례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서로를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이 함께 모여 순례를 가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번 페이퍼는 여기에서부터 출발해 보자.

 

 <켄터베리 이야기>의 프롤로그에 나와 있듯이, 이 작품은 원래 120개의 이야기로 구성될 예정이었다. 토머스 베게트(Thomas Becket, 1118 ~ 1170)의 사당을 향해 가는 한 무리의 순례자들이 여행의 지겨움을 해소하기 위하여 각자 하나씩 이야기를 하게 되어 있었다. 초서는 이 120개 이야기 중에서 스물한 개를 완성했고 세 개는 미완 혹은 중단된 상태로 남겨 놓았다.(p121) <평생 독서 계획> 中


 서로 다른 신분을 가진 이들은 성지(聖地)를 향한 공통된 목적을 지닌 한 무리의 여행자들이었다. '하나된 신앙' 이 강조된 중세의 질서 안에서 이들은 집단으로 움직여야 했으며, 이는 종교행사인 순례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봉건 사회는 아주 촘촘한 알갱이들로 형성된 구조였다. 이 사회는 너무 빽빽한 덩어리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래서 개인들은 당시의 '프라이버시'라 할 수 있는 행위로, 비좁은 공간의 과도한 집단생활에서 벗어나 자신을 고립시키고 주위에 자신만의 울타리를 두르며 꼭 닫힌 정원에 자기를 가두려고 했다... 누군가가 외따로 떨어져 있다면 설령 나쁜 짓을 하려고 고의로 그런 것이 아니라도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나쁜 짓을 저지를 운명을 타고난 것이었다. 혼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는 적의 공격에 취약할 수 밖에 없었다. 일반적인 견해에 따르면 홀로 떠돌아다니는 것은 광기의 여러 증상 가운데 하나였다.(p717) <사생활의 역사 2> 中


 낯선 곳으로의 떠남을 의미하는 순례는 중세인들에게는 일종의 '세례(洗禮)'와 같은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순례는 일상을 떠나 자신을 새롭게 성찰하는 의미와 함께 죄의 용서를 받는다는 의미를 지녔기에, 중세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행사였다. 

 

 이성은 그들에게 낯선 곳, 다시 말해 고립을 벗어나 질서 속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한다. 이러한 문명으로의 복귀는 그들에게는 사생활로, 궁정으로, 다시 말해 집단생활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했다. 그들은 거기로 돌아가지만 고난을 겪은 뒤에야 비로소 정화되고 쇄신된다. 사실 자의든 타의든 위험과 고립 같은 힘든 시련은 강한 자들과 선택받은 자들에게는 지고의 선을 행해 나아갈 기회였던 것처럼 보인다.(p718) <사생활의 역사 2> 中


 공통의 목적을 가졌지만, 서로 다른 신분을 가진 이들은 각자 자신들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펼친다. 작품 안에서 어느 누군가가 육욕(肉慾)의 죄에 대하여 이야기한다면, 다른 누군가는 다른 이야기 속에서 교회 전통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성(聖)과 속(俗).<켄터베리 이야기>의 세계관을 요약한다면 위와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분들, 음란한 색욕(色慾)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보십시오. 그것은 정신을 약하게 만들 뿐 아니라 육체까지도 파멸에 이르게 합니다. 음탕한 욕망은 불행을 초래할 뿐입니다. 음란한 행위는 차치하고, 그런 죄를 범하겠다는 의도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거나 만신창이가 됩니까! (p162) <켄터베리 이야기> - 변호사의 이야기 - 中


 내가 알고 있는 바에 의하면, 야곱과 마찬가지로 아브라함도 위대한 성인(聖人)이에요. 그런데 많은 다른 성인들처럼 두 성인도 두 명 이상의 아내를 데리고 살았어요... 동정이나 처녀를 지켜야 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하느님께서 선택한 사람만이 지키는 것이에요... 내 남편이 죽으면, 내가 다시 다른 남자와 결혼하는 것은 죄가 아닐 뿐만 아니라, 두 남자와 함께 산다고 해도 역시 죄가 아니랍니다. (p173) <켄터베리 이야기> - 배스의 여인의 이야기 - 中 


 <켄터베리 이야기>는 당대 지배층에 대해 비판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풍자소설이기도 하다.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 1872~1945)가 <중세의 가을 Herfsttij der Middeleeuwen> 속에서 중세의 두 기둥이라고 표현한 기사(귀족), 학자들 역시 풍자의 대상이 된다.

 

 중세 기사도 이상의 표본적 인물로 칭송되는 부시코 Boucicaut의 전기에서 우리는 이런 사실을 알게 된다. 하느님의 의지로 이 세상에는 두 가지 것이 주어졌다. 그것은 신성한 법과 인간의 법을 지탱하는 두 기둥이다. 그것이 없다면 이 세상은 일대 혼란으로 빠져들 것이다. 그 두 기둥은 기사단과 학자들이다.(p139) <중세의 가을> 中


 귀족이란 말은 자비를 베푼 선조들의 명성일 뿐,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거예요. 귀족적인 성품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에요. 다시 말해 우리의 진정한 귀족적 성품은 하느님의 은총을 통해 오는 것이지, 선조들에게 물려받은 사회적 지위가 주는 것이 아니에요. (p203) <켄터베리 이야기> - 배스의 여인의 이야기 - 中 


 연금술을 배우면 이런 눈물만 흘리게 됩니다... 우리가 쓰는 용어는 아주 이상한 전문적인 말들입니다. 그래서 난해한 학문을 직접 실행에 옮기는 작업장에 들어가면, 우리는 아주 현명하고 똑똑한 사람들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모든 재주를 부려보았지만 한 번도 긍정적인 결과를 얻어보지 못했습니다. 아무것도 소용이 없었습니다.(p518) <켄터베리 이야기>  - 성당 참사회원 종자의 이야기 - 中


 성직자 역시 <켄터베리 이야기> 속에서 풍자 대상으로 등장한다. 다만, 하위징아는 거대한 교회였던 중세 유럽에서 성직자들은 일반 대중과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었기 때문에, 성직자에 대한 조롱은 일종의 친근감의 표현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같은 지배계급이었지만, 친근감을 가졌다는 면에서 중세 성직자는 기사, 학자와는 다른 위치에 있었던 듯하다. (이 부분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시기 삼부회( Etas Generaux)를 구성했던 제1신분, 2신분이었던 성직자, 귀족들에 대한 평민들의 시각과 함께 살펴보면 좋을 듯하니, 잠시 접어두고 간다.)


 제 목숨을 걸고 말하는데, 아마 여러분들은 방귀 소리와 악취가 동일한 속도로 열두 개의 바퀴살로 골고루 퍼져나가는 것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계신 고해 수사님은 매우 고귀한 분이시므로 이 지위에 걸맞게 방귀 소리와 냄새를 가장 먼저 맛보게 되실 것입니다... 오늘만 해도 교단에서 훌륭한 설교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 생각으로는 방귀 냄새를 처음으로 맡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p236) <켄터베리 이야기> - 소환리의 이야기 - 中 


 그 시대의 일상적인 종교 생활은 불쑥 정반대의 입장으로 전환되는 극단적인 변화를 보여 준다. 어떤 때는 사제와 수사에게 조롱과 증오심을 쏟아 부었으나, 그것은 동전의 표리(表裏)처럼 마음속 깊이 품은 애정과 존경심의 뒷면일 뿐이었다. (p338) <중세의 가을> 中


 그렇지만, 목적지인 켄터베리에 다가오면서 이야기는 점점 종교적인 색채를 짙게 띄게 되고, 결국 죄의 용서와 참회, 구원 등 교회 교리를 주제로 한 본당신부의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켄터베리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가난한 마음으로 살면 이처럼 복된 나라를 얻을 수 있으며, 겸손하게 살면 하느님의 영광을 얻을 것이고, 굶주리고 목마르게 산 사람은 천국의 완전한 기쁨을 누릴 것이며, 열심히 일한 사람은 평안을 얻을 것이고, 죄를 뉘우치고 죽은 사람은 새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켄터베리 이야기> - 본당신부의 이야기 - 中 


 여러 세속적인 삶의 이야기와 지배 계급에 대한 비판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다가 결국 종교적인 이야기로 마무리하는 <켄터베리 이야기>를 읽으면서 사순절 직전의 사육제를 떠올리게 된다. 성스러운 성지 순례 이전 여행의 어려움을 이야기를 통해 풀어가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사순 기간 금육(禁肉), 금식(禁食)의 고통을 덜기 위해 행하는 사육제(카니발)의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그림] 사육제과 사순절의 싸움( 출처 : http://www.pictorem.com/24201/Fight%20Between%20Carnival%20and%20Lent.html)


 카니발 Carnival  : 그리스도교 국가에서 사순절 직전 3~7일에 걸쳐 행하는 제전(祭典). 사육제(謝肉祭)라고 번역하는데, 라틴어의 카르네 발레(carne vale :  고기여 그만) 또는 카르넴 레바레(carnem levare : 고기를 먹지 않는다)가 어원이다. 그리스도교 초기 로마 사람을 회유하기 위하여 그들의 농신제(農神祭)를 인정한 것으로, 이교적(異敎的)인 제전이었다. 이것이 계승되어 매년 부활절 40일 전에 시작하는 사순절 이전 즐겁게 노는 행사가 되었다. (출처 : 두산동아백과사전)


 <켄터베리 이야기>는 이처럼 14세기 중세 영국 사회의 모습이 생생하게 나타나 있다. 그리고 작품을 통해 우리는 중세인들의 모습을 느끼게 된다. 비록 중세 음악은 다소 낯설게 들리지만, 중세인들의 보편적인 감정은 우리와 다르지 않음을 <켄터베리 이야기>는 우리에게 알려준다. 클리프턴 패디먼(Clifton Fadiman, 1904 ~ 1999)의 <평생독서계획 The New Lifetime Reading Plan>에서 소개한 감상포인트를 마지막으로 <켄터베리 이야기>에 대한 페이퍼를 마친다. 



 맨 앞에 나오는 프롤로그는 반드시 읽어야 한다. 영문학 사상 가장 훌륭한 초상화의 갤러리이다. 이 작품에 들어 있는 이야기들 중에서 가장 널리 인정받는 것은, 기사, 방앗간 주인, 수녀원장, 수녀시승, 면죄승, 바스의 여장부, 서기, 상인, 수습기사, 수도참사 회원의 종자의 이야기 등이다. 또한 여러 편의 프롤로그, 에필로그, 각 이야기들을 연결하는 대화들을 읽을 것을 권한다.(p121) <평생 독서 계획> 中

 

 이야기의 동시대성은 각자의 언어적 개성을 드러내는 각양각색의 인물들을 '여행'이라는 서술 맥락으로 수용한 <켄터베리 이야기>에서 잘 들어났다... <켄터베리 이야기>는 산문 형식의 두 글인 멜리베오의 이야기와 파로코의 이야기를 제외하면 모두 2행 시절로 되어 있다... <켄터베리 이야기>의 문학적 꾸밈은 이야기꾼의 두 가지 기능으로 지탱된다. 초서는 저자의 입장에서 작품을 소개하나 마지막에는 교육적-그리스도교적으로 충분한 목적성을 보여 주지 못하는 그의 다른 작품들처럼 이를 전부 부정했다... 초서는 <켄터베리 이야기>에서 보카치오처럼 폭넓은 이야기들을 통해 삶의 다양함과 활력, 복합적 특징을 부여했다.여기에는 매우 이질적인 주제와 양식, 구조가 공존했다.(p771) < 중세3 : 성, 상인, 시인의 시대> 中


나가기 전에 <켄터베리 이야기>를 선물해 주신 이웃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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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8-06-16 19: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주 모순적인 사육제와 사순제가 붙어 있는 건 인간의 모습과 비슷하지 말입니다(왜 군대식 말투가...). <켄터베리 이야기>가 고상한 척하는 지배층의 아주 세속적인 적나라함을 보여주듯이 말입니다. 여기 우리는 모두 방귀 안 뀌는 듯이 좋은 말, 문장을 구사하는 것에 기를 쓰고 있지만 인간은 아무리 미인도! 누구나 하루에 7번 이상은 방귀를 뀐다는 과학적 보고가...(곰곰이 내 하루를 뒤돌아보며)....인간의 뗄 수 없는 양면성을 말한다는 게 갑자기 방귀에 꽂혀서.... 댓글에서 방귀 냄새 풀풀))) 죄송합니다...(이 댓글은 망했....);;

겨울호랑이 2018-06-16 19:37   좋아요 2 | URL
AgalmA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안 그런 척‘ 하면서 살아가는게 우리 모습이 아닌가 싶네요. 반대로 ‘그런 척‘하면서 살기도 하구요... 적당히 알면서 속고 속이면서 살아가는게 우리 삶인듯 합니다... 그런 면에서 ‘절대선‘과 ‘절대악‘을 규정한 형이상학적 가치는 사람을 질식시키네요... 방귀처럼 말입니다 ㅋㅋ

2018-06-16 2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6 23: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06-16 22: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 님의 독서 스펙트럼은 어디까지인지... 부럽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8-06-16 23:0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저는 북다이제스터님의 깊이 있는 독서가 더 부럽습니다.^^:)

2018-06-17 1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7 1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7 19: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8 09: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8-06-18 12: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이퍼 내용은 감히 범접할 수도 없어 살짝 다녀가려 했는데,
프로필 사진이 바뀌셨군요.
연의 어린이 완전 멋진걸요.
보는것만으로도 행복해집니다.
여러모로 보시하고 게십니다~^^

겨울호랑이 2018-06-18 12:22   좋아요 0 | URL
중세와 관련된 내용을 얼기설기 엮은 페이퍼라 좀 길었습니다. 연의를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양철나무꾼님, 행복한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