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모든 인간 행위의 근원이라는 베르길리우스의 말은 개념적으로나 위치상으로 이 시의 중심을 차지한다. 일곱 가지 사형 죄(흔히 말하는 7대 죄악)는 사랑의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잘못 이끌린 사랑, 너무 약하거나 너무 강한 사랑 등 잘못된 사랑이다. 사랑이 잘못 이끌릴 수 있는 경우는 세 가지이며, 너무 약한 경우가 한 가지, 너무 강한 경우가 세 가지다. 우리가 보게 되듯, 일곱 테라스가 있는 연옥의 지리학은 이런 분석을 보여준다. 이런 인식과 밀접하게 연관된 질문이 인간 행위에 대해 인간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는 다시 자유의지와 결정론에 관한 철학적 근본 문제를 제기한다. _프루 쇼, <단테의 신곡에 관하여>, p207


 프루 쇼(Prue Shaw, 1949 ~ )는 <단테의 신곡에 관하여 Reading Dante>에서 <신곡 神曲, La Divina Commedia>의 여정을 일곱 주제로 정리한다. 우정, 권력, 삶, 사랑, 시간, 수, 낱말. 그 중에서 주제의 중심은 사랑이다. 


 이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 <코린토 1서 13: 13> 中


 <신곡>의 중심에 사랑을 배치한 프루 쇼의 분석은 다분히 사도 바오로(Pahlus, AD 5 ~ AD 67 ?) 서간 중 유명한 사랑의 찬가를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관점이 단테 알리기에리(Durante degli Alighieri, 1265 ~ 1321)의 의도와 일치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신곡>의 선(善)과 악(惡)을 가르는 기준의 많은 부분이 사랑과 관련된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프루 쇼의 해설은 설득력있게 다가온다.


 연옥이 지옥과 다른 것은 바로 시간 때문이다. 연옥은 파도기의 영역, 변화의 영역, 진보의 영역,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나아가는 영역이다. 시간이 흐르고 시간이 절박한 영역이다. 연옥의 영혼들은 단테처럼 여행 중이지만, 그 여행이 완견되기까지는 수백 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오래 걸리고 아무리 고통스러울지라도 여행의 결과는 보장되어 있다. 회개하는 영혼들에게 보장된 목표는 천국이다. 지상에서의 삶을 여행으로, 또는 천국의 집을 향한 순례로 여길 수 있는 것처럼, 연옥의 산을 올라가는 것은 일종의 순례와 같다.(p270)... 우골리노의 정신 상태는 정확히 신을 부정, 거부하고 있으며, 이것이 지옥행의 본질이다. _프루 쇼, <단테의 신곡에 관하여>, p285

 

<신곡>에 나오는 지옥, 연옥, 천국은 서로 다른 곳이면서도 공통점을 가지며, 통하는 공간들이다. 지옥과 천국은 유한한 시간과 관련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상극이면서도 공통점이 있으며, 연옥 영혼들은 천국으로 갈 기회를 갖는다는 점에서 통하는 바가 있다. 다만, 이러한 공통점과 통하는 바는 최후의 중세인 단테의 상식으로 설명되기에 우리가 이를 온전하게 받아들이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또한, 프루 쇼는 <신곡>내에 단테의 경험과 생각이 녹아들어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데, 이로 인해 우리는 보다 인간 단테와 그의 사상에 대해 깊이 있게 알 필요가 있다.  단테의 사상, 특히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Bonifacius PP. VIII, 1235 ~ 1303)와의 대립 등에 대한 깊은 이해를 위해서는 단테의 다른 작품 <제정론 De Manachia>도 먼저 읽을 필요가 있는데, 이는 별도의 리뷰로 넘기도록 하자.


 정치적 성숙기의 단테는 인류에게 적합한 정부는 인간의 세속 생활과 영적 생활을 각각 책임지는 황제와 교황 두 지도자를 두어야 한다고 믿었다.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에 종속되지 않는다. 각각의 지도자는 신에게서 직접 권한을 받는다. 바로 이것이 순례자 단테가 여행에서 배운 역사의 교훈이다. _프루 쇼, <단테의 신곡에 관하여>, p259

 실제 있었던 사건과 이 시가 말하는 사건의 관계는 모호하다. 예술은 바로 그 이유로 인해 훨씬 더 강력하다. 거듭해서 <신곡>을 읽을수록, 우리는 단테의 시가 지닌 힘은 강력한 자전적 요소 - 시대, 장소, 상황 속에 굳게 뿌리박은 실제 경험 - 에서 나오는 반면, 그 시인이 살아낸 경험이 상상력과 언어 구사력에 의해 바뀌고 변형된 까닭에, 그 어떤 것도 사실이라고 자신 있게 주장하기가 종종 불가능해지는 그런 역설에 직면한다. 그 문제는 <새로운 삶>에서보다 <신곡>에서 더 복잡해지는데, 그 이유는 정확히 두 가지다. <신곡>의 이야기 틀은 나름의 독립적인 논리와 운동량을 가지며 개인적인 것보다 더 크고 포괄적인 목표에 맞춰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야기 틀은 알레고리의 형태를 띤다. _프루 쇼, <단테의 신곡에 관하여>, p155

 

이러한 직접적인 단테의 정치사상외에도 <신곡>안에 담긴 중세의 우주관(宇宙觀)과 '시간(時間)'을 중심으로 읽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 354 ~ 430)가 <고백록 Confessiones>에서 말한 시간의 의미,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 ~ BC 322)의 부동의 동자(unmoved mover)로 표현되는 중세 천제관을 작품 내에서 발견하며 현대 사상과 비교하며 읽는 것도 또다른 즐거움이 될 것이다. 조금 더 욕심내어 본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이 중세에 어떻게 수용되었는가를 살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그렇다면, <장미의 이름>도 빼놓을 수 없을 듯 하고...  프루 쇼의 7개 주제 중 '수'와 '낱말' 대한 중세의 알레고리는 움베르트 에코의 <중세의 미학>과  <중세의 사랑과 미술>를 통해 다시 정리하면, <신곡>이라는 거대한 성(城) 외곽의 해자(垓字)는 어느 정도 메워지지 않았을까.  이런 준비 후에 <신곡>을 읽는다면 새로운 것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신곡>을 다시 꺼내든다...


 지옥과 천국은 영원하며, 시간의 바깥에 있다. 즉 시간을 초월한다. 지옥과 천국에서 시간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을 수 있다.  _프루 쇼, <단테의 신곡에 관하여>, p16


 시간의 성격은 마침내 <천국>에서 설명된다. 그 설명은 철학적이면서도 시적이다. 시간은 우주의 창조와 함께 존재하게 되었는데, 그런 시간 개념이 유일하게 의미를 갖는 창조된 세계에서 단테가 막 나오고 있다. 일시성은 인간 경험이 펼쳐지는 창조된 세계의 한 차원이다... 원동천이란, 열 번째 하늘, 즉 움직이는 천구들 중 가장 밖에 있는 하늘을 말한다. 이 하늘은 가장 빨리 움직이며 그 안의 나머지 모든 천구에 움직임을 부여한다. 다시 말해 우리 우주의 가장 바깥을 에워싼 껍질이다. 그 너머에 신과 천국이 있다.  _프루 쇼, <단테의 신곡에 관하여>, p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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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우 2021-01-04 20: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프루 쇼의 이 좋은 책이 벌써 품절이라니 ㅠ 읽어보려 했더니 안타깝군요.

*사랑을 인간 실존의 중심으로 보는 관점은 아우구스티누스의 관점과 유사하네요. ˝나의 중심은 나의 사랑입니다˝ (고백록 13.9.10, 성염) 여기서 영향을 받은 것일까요?

겨울호랑이 2021-01-04 20:46   좋아요 0 | URL
김민우님 말씀처럼 <단테의 신곡에 관하여>는 2019년에 나와서 출판된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아쉽게 되버렸습니다. 찾는 분들이 많은 것을 감안하여 전자책으로라도 나왔으면 좋겠네요. <단테의 신곡에 관하여>에서 프루 쇼는 단테가 기독교 이전의 가톨릭 교도 임을 강조하고 있더군요. 이는 중세 당시 이교도에 대한 별도의 규정이 없었기에 세례받지 못한 수많은 이들에 대한 배려가 없음을 지적함과 동시에, 교황 보니파키우스8세와는 대척점에 서면서도 가톨릭 신앙 안에 머무는 단테의 입장을 표현한다고 여겨집니다. 세속화된 교황권 이전의 어부 베드로의 초심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신곡>에 녹아있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김민우님 말씀처럼 아우구스티누스의 영향 또한 분명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북다이제스터 2021-01-04 2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단테의 신곡까지...
진심 넘넘 부럽습니다. 제겐 평생 넘사벽이라고 생각되어 저승에서나 읽자고 한 책이라서요. 넘 부럽습니다.

겨울호랑이 2021-01-04 21:01   좋아요 0 | URL
아닙니다. 제가 <신곡>을 쓴 것도 아니고, 읽기만 하는 것인걸요. <신곡>을 온전히 제 것으로 소화하는 것은 저 역시 먼 훗날로 기약해야 할 듯합니다...ㅜㅜ

2021-01-07 1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07 1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21-01-07 14: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테의 신곡, 어디선가 신부님의 버전의
신곡이 좋다해서 상권 구해다가 읽기
시작했다가 그만 나가 떨어져 버렸습니다.

신곡은 꼭 읽어야 하는 책인데...
존경합니다 겨호님.

겨울호랑이 2021-01-07 14:28   좋아요 0 | URL
에고 아닙니다. 누구나 읽을 수는 있잖아요,..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는 것과는 다른. <미국사 산책>에 대한 압박을 이렇게 복수하시는군요..ㅋㅋ 분량은 17권에 달하는 <미국사 산책>보다 덜하다는 것을 위로로 삼아야 할까요.. 천천히 다른 책과 함께 읽는 중입니다. just reading...^^:)

scott 2021-02-10 15:3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겨울 호랑이님에 이 페이퍼 아껴가며 읽고 있었는데 ㅋㅋ
이달의 당선작!!
추카~추카~
설연휴 가족 모두 행복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 。  ★彡
☆彡。∴。。 ☆彡 ・
 ・゚*。・ 。*・゚
( )_( ) ・ 。・*・゚。  ・
(.•。 .•.)
o_(“)(“)
연의 선물 ^.~

겨울호랑이 2021-02-10 19:24   좋아요 1 | URL
scott님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아껴가며 읽기에는 빈약한 내용이라 쑥스럽네요... scott님께서도 행복한 설연휴 보내시길 바랍니다! ^^:)
 

삶의 바글거리는 길들을 헤집고 들어가 밀치고 나가며, 일체의 친근감을 표현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거리를 유지하라고 경고하는 것, 그거야말로 스크루지에게는 요즘 유행하는 말로 ‘짜릿함‘ 그 자체였다. _찰스 디킨스, 「주석 달린 크리스마스 캐럴」, p153

사회적 거리 두기가 일상이 되버린 요즘, 크리스마스에 우리 모두는 ‘비자발적 스크루지‘가 되버렸다. 예년과는 달리 텅텅 빈 거리를 보면서 많은 이들이 가족과 함께 보내는 크리스마스를 떠올리지만,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마치 코로나 19로 인해 역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아동학대가 늘어난 것처럼, 누군가의 어려움이 미처 보이지 않은 것은 아닐까.

˝스크루지 선생님, 이렇듯 축제 분위기인 이 절기에는.˝ 신사가 펜을 집어 들며 말했다. ˝우리가 가난하고 곤궁한 이들에게 평소보다 약간의 배려를 해주는 것이 더 바람직한 일입니다. 요사이 매우 고생들이 심하지요. 게다가 기초생활도 보장받지 못하는 이들이 수천 명씩이나 있고 수만 명이 기본적인 편의를 누리지 못하고 삽니다, 선생님.˝_찰스 디킨스, 「주석 달린 크리스마스 캐롤」, p160

어렸을 적 「행복한 왕자」와 「성냥팔이 소녀」를 읽으며 그런 생각을 했었다. 만약, 성냥팔이 소녀가 성냥을 켜는 모습을 행복한 왕자가 봤었다면, 크리스마스에 소녀의 죽음은 없지 않았을까 하는. 물론, 동화를 읽으며 했던 어린이의 상상이지만, 어려운 누군가에게 어떤 의미있는 존재가 특히 크리스마스 같은 때에 오길 바라는 것은 어쩌면 우리 모두의 공통된 마음이 아닐까...


크리스마스를 맞아 이웃분들과 주변 모두 행복이 가득하길 바라며, 넘치는 행복을 함께 나누는 2020년 성탄이 되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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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0-12-25 16: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연이에게 보여주세요
눈사람ᒄ₍⁽ˆ⁰ˆ⁾₎ᒃ♪♬
연이야 메리 메리 크리스마스 ^.~

겨울호랑이 2020-12-25 00:16   좋아요 2 | URL
^^:) 연의는 지금 산타 할아버지를 기다리러 잠자리에 갔어요 ㅋㅋ 저녁 무렵 떼를 써서 산타할아버지가 안오실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면서요.. 내일 아침에 선물과 함께 보여주겠습니다. scott님 멋진 선물 감사합니다!

막시무스 2020-12-25 11: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성냥팔이소녀의 책 표지가 묘한 감성을 일으키네요! 즐겁고 행복한 크리스마스되십시요!ㅎ

겨울호랑이 2020-12-25 11:35   좋아요 2 | URL
막시무스님 올 한해 감사드립니다. 행복한 크리스마스, 주말 되세요!^^:)

bookholic 2020-12-25 14: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연의와 귀요미와 온 식구들 다함께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고 계시겠네요...^^
즐거운 크리스마스 되시고, 일주일 남은 2020년도 행복한 시간들 되시길 바랍니다~~~

겨울호랑이 2020-12-25 19:13   좋아요 1 | URL
bookholic님께서도 가족분들과 행복한 시간, 따뜻한 2020년 마지막 주말 보내세요!^^:)

레삭매냐 2020-12-25 15: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즐거운 성탄절 보내세요.

날이 너무 좋네요 :>

겨울호랑이 2020-12-25 19:14   좋아요 1 | URL
정말 포근한 겨울날이네요. 레삭매냐님께서도 행복한 크리스마스 저녁 되세요!^^:)

희선 2020-12-26 0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성탄절에는 뭔가 기적이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는데, 몇 해 동안은 그런 것도 생각하지 못했네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힘들게 사는 사람이 많겠습니다 지금은 더하지 않을까 싶군요 성탄절도 지나고 올해 며칠 남지 않았네요 겨울호랑이 님 한해 마무리 잘 하시고 늘 건강하게 지내세요


희선

겨울호랑이 2020-12-26 09:15   좋아요 1 | URL
희선님 지난 한 해 감사드립니다. 한 해 마무리 잘 하시고 행복한 연말 되세요!^^:)

mini74 2020-12-26 2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 이름에도 연 자가 들어가니 더 반갑네여. 원래 연꽃 련 으로 하시려던걸 아버지께서 약주 한 잔 하시고 출생신고 하러 가셨다가 풀 초자를 빠뜨리셔서 이을 연이 되었지요. 또 딸이라니 !!! 뭐 이런 심정 아니셨을까요. ㅎㅎㅎ 어릴 적엔 엄마 보자기 뒤집어 쓰고 성냥 사세요 하다가 청승맞다고 혼났던 기억도 나고. 행복하고 따뜻한 연말 보내세요. 아이와 보내는 하루하루는 되돌아보니 모두 크리스마스날의 선물 같은 날이었던 것 같아요. 저희집 선물은 폭풍성장해서 포장지를 쥐어뜯고 나와 저 어딘가에 널부러져 있습니다. 산타를 믿는다고 씨알고 안 먹힐 이야기를 하면서 ㅎㅎ

겨울호랑이 2020-12-27 14:44   좋아요 1 | URL
^^:) 제 여동생도 이름에 연꽃 ‘연‘자가 들어가는 것을 보면 인기있는 글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벌써 크리스마스 연휴도 끝나가네요. 연말까지 얼마남지 않은 2020년 mini74님께서 잘 마무리하시길 기원합니다!^^:)

AgalmA 2020-12-30 2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성냥팔이 소녀가 성냥을 켜는 모습을 행복한 왕자가 봤었다면...˝ 현명하고 좋은 사람들이 만나 시너지를 일으키는 세상이 왜이리 어려운 것인지.
겨울호랑이 님 만나 저는 참 다행입니다. 늘 좋은 영향 주셔서 감사해요^^)/

겨울호랑이 2020-12-30 21:32   좋아요 0 | URL
세상에 주유와 제갈량을 함께 내었다고 탄식하는 「삼국지연의」에서 주유의 틴식도 있지만, 사람의 인연을 맺는 것, 특히 좋은 인연을 맺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인듯 합니다. 이 부분에 있어 저 역시 AgalmA님과 동감입니다. 내년에도 잘 부탁드려요. 비록 우리의 기력은 쇠약해지겠지만요.. ㅋ
 


<오뒷세이아>는 트로이아 전쟁에 참가했던 영웅이, 바다를 떠돌며 모험을 겪은 후 20년 만에 집에 돌아와, 자기 아내에게 구혼하면서 자기 집 재산을 먹어치우고 있는 횡포한 무리들을 처단하는 걸 주된 내용으로 한다. 이것이 <오뒷세이아>의 중심 주제 두 가지이다. 하지만 작품을 펼치면 독자들은, 대개는 들어보지도 못한 낯선 인물과 마주치게 된다. 바로 오뒷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다....  <오뒷세우스> 첫 부분의 핵심은 텔레마코스라는 젊은이의 성장이다. 그는 아버지의 행방을 찾아 여행을 떠나고, 아버지의 모험을 축소해서 겪고, 그것을 통해 어른이 된다. 그래서, 이 세 가지가 <오뒷세이아>의 세 주제이다._ 강대진, <오뒷세이아, 모험과 귀향, 일상의 복원에 관한 서사시>, p43


 <일리아스>는 아킬레우스 분노 사건을 그리면서 트로이아 전쟁 전체를 보여 주고 있다. 따라서 중심적인 주제는 '분노'이고, 부차적인 주제는 '전쟁'이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분노' 주제는 '전쟁'을 배경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일단 '전쟁' 주제가 두드러지고, 뒤로 갈수록 '분노' 주제가 강해질 수밖에 없다._ 강대진,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읽기>, p45

 

 <오뒷세이아> 안에 담겨 있는 이야기 속에서 우리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모험을 떠나 작은 시련을 겪고 어른으로 성장한 한 소년. 치열한 삶의 전장에서 돌아와 안식을 위한 귀환을 하는 노년. 이 사이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일리아스>에서 그려진 청년 아킬레우스의 혈기 왕성함과 자신의 책임과 가정, 나라를 지키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하는 중년 헥토르의 모습을 맞춘다면, 우리는 오이디푸스가 풀었던 수수께끼의 답(答)에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연어와도 같은 우리의 삶. 추상적인 인생(人生)이라는 주제는 <일리아스>에서 신(神)에 의해 무구(武具)에 새겨지면서 구체화되고 이를 통해 우리는 일상으로 실현된 운명을 볼 수 있다.

 

 라이오스가 통치할 때 큰 재앙이 테바이를 엄습했다. 헤라가 스핑크스(Sphinx)를 보냈기 때문이다. 스핑크스의 어머니는 에키드나이고 아버지는 튀폰이었는데 그녀는 여자 얼굴과 사자의 가슴과 발과 꼬리, 새의 날개를 갖고 있었다. 그녀는 무사 여신들한테 수수께끼를 배운 뒤 피키온(phikion) 산에 앉아 테바이인들에게 그 수수께끼를 냈다. 그 수수께끼란, 목소리는 하나뿐이지만 처음에는 발이 네 개인데 그 다음에는 두 개가 되었다가 그 다음에는 세 개가 되는 것이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오이디푸스는 그것을 듣고 수수께끼를 풀었으니 그의 말인즉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는 사람을 의미한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사람은 어린아이 때는 사지로 기니까 발이 네 개고 어른이 되면 두 발로 다니고 늘그막에는 그 밖에도 지팡이를 셋째 발로 의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_ 아폴로도스, <원전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 제3권 8, p210


 <일리아스>에서 헤파이스토스가 아킬레우스를 위해 만들었던 방패. 그 안에 구체적으로 새겨진 인생의 모습. 이는 우리의 삶이 인생에 형상화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또한, 아킬레우스와 함께 전장(戰場)으로 가는 방패와 그 안에 새겨진 삶은 바로 삶이라는 전쟁터로 가는 우리의 모습이 아닐런지. 이 시점이 아킬레우스가 파트로클로스를 잃고 나간 복수전이라는 점에서 이 무구에 새겨진 삶은 가치를 잃고 번민하는 인생의 좌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아킬레우스 사후에 이 방패를 갖게되는 오뒷세우스의 귀환과 함께 삶이라는 전쟁도 끝나는 것은 아닐까. 시인(詩人)이 실제 <오뒷세우스> <일리아스>를 통해 삶의 치열함을 이야기하고자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코로나 19로 인해 격랑에 시달리며 일상으로의 복귀를 꿈꾸는 요즈음에는 이런 모습으로 다가온다. 언젠가 다시 <일리아스> <오뒷세이아>를 읽는다면 분명 다른 의미를 주겠지만...





[사진] Shield of Achilles(출처 : 위키백과)


 거기에 그는 대지와 하늘과 바다와

 지칠 줄 모르는 태양과 만월(滿月)을 만들었다.

 그리고 하늘을 장식하고 있는 온갖 별들을,

 플레이아데스와 휘아데스와 오리온의 힘과

 사람들이 짐수레라고도 부르는 큰곰을 만들었다.

 큰곰은 같은 자리를 돌며 오리온을 지켜보는데

 이 별만이 오케아노스의 목욕에 참가하지 않는다.

 거기에 그는 또 필멸의 인간들의 아름다운 두 도시를

 만들었다. 한 도시에서는 결혼식과 잔치들이 벌어졌는데

 사람들이 휘황한 횃불 아래 신부들을 방에서 인도하여

 도성 안으로 데려가고 있었고, 축혼가(祝婚歌)가 높이 울려 퍼졌다...


 거기에 그는 또 부드러운 묵정밭을 넣었는데

 세 번이나 갈아엎은 넓고 기름진 밭이었다.

 그 안에서 여러 농부들이 소를 몰고 이리저리 돌고 있었다.

 그들이 밭의 경계에 이르러 돌아서려고 할 때마다

 한 남자가 다가가 각자에게 달콤한 포도주가 든 잔을

 손에 쥐어주곤 했다....


 밭이랑을 따라 곡식이 줄지어 한 아름씩 땅에 쓰러지면

 묶는 자들이 그것을 새끼로 한 단씩 묶었다.

 세 명의 묶는 자들이 곁에 서 있었다. 한편 아이들은

 베는 자들의 뒤를 뒤따라가며 곡식을 주워 모아 한 아름씩 안고 와서

 그것을 묶는 자들에게 쉴 새 없이 건네주었다....


 포도밭으로 들어가는 길은 하나밖에

 없었는데 포도 따는 자들은 수확기가 되면 이 길로 해서

 들어갈 수 있었다. 처녀 총각들은 신이 나서

 엮은 바구니에 꿀맛 같은 과일을 담아 나르고 있었다... (이하 중략) _호메로스, <일리아스>, 제18권 483 ~ 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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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이보스 아폴론은 헥토르를 싸움터에 나가도록 격려하며

 그에게 다시 용기를 불어넣고 지금 그의 마음을 괴롭히고있는

 고통을 잊게 해주는 한편, 아카이오이족에게는 무기력한

 패주를 불러일으켜 그들이 도로 돌아서도록 만들것이오.

 그들이 달아나다가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노가 많이 달린

 함선들 사이로 쏟아져 들어가도록 말이오. 그러면 아킬레우스가

 그의 전우 파트로클로스를 일으켜 세울 것이고 파트로클로스는 

 내 아들인 고귀한 사르페돈을 포함하여 많은 젊은이들을 죽인 뒤

 일리오스 앞에서 영광스런 헥토르의 창에 죽게 될 것이오. 그러면 또

 고귀한 아킬레우스가 그 때문에 화가 나서 헥토르를 죽일 것이오._호메로스, <일리아스>, 15권 59 ~ 68

 

 호메로스(Homeros, BC 8세기 ? )의 <일리아스 Ilias>를 처음 읽게 된다면 먼저 두 가지 점에서 놀라게 된다. 10년간 이뤄진 '트로이 전쟁' 중 불과 며칠을 다루고 있기에 많은 이야기들이 빠져 있다는 사실과 해부학 강의를 연상시키는 전투의 잔혹한 묘사는 의외로 다가온다. 또한, 거창한 수식어를 잔뜩 달고 등장한 이름도 낯선 이들이 한 칼에 쓰러지고 무대 뒤로 사라지는 전투의 혼란스로운 상황은 작품 내내 지속된다. 때문에 독자들은 23권 파트로클로스의 장례식 전까지 전장의 혼란스러운 상황에 버려져 있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강재진의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읽기>는 전투의 혼란스런 상황에서 독자를 꺼내준다. <신곡>에서 베르길리우스처럼.


 이제 파트로클로스의 출정과 사르페돈의 죽음, 그리고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에 뒤이은 아킬레우스의 출정, 헥토르의 죽음과, 아마도 목마 계략에 의한 일리오스의 함락이 모두 언급되었다. 제우스는 이렇게 해서, 테티스가 청하고 자기가 약속한 것을 이루리라고 덧붙인다. 이런 식으로 아킬레우스의 소망을 이루리라고. 하지만 파트로클로스가 죽는 것은 아킬레우스가 바랐던 것이 아니다. 그리고 여기 한 가지 미래의 중요한 사건이 언급되지 않았으니, 바로 아킬레우스 자신의 죽음이다._ 강대진,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읽기>, p362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아카이오이족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고통을 가져다주었으며

 숱한 영웅들의 굳센 혼백들을 하데스에게 보내고

 그들 자신은 개들과 온갖 새들의 먹이가 되게 한

 그 잔혹한 분노를!_호메로스, <일리아스>, 1권 1 ~ 5 


 아킬레우스가 어머니에게 탄원하는 첫 마디는, 이 작품에서 풀어야 하는 아킬레우스의  문제 중 하나와 연관되어 있다. "어머니, 당신은 나를 단명하도록 낳아 주셨으니"(1:352). 이 작품은 인간들이 죽음이라는 운명을 어떻게 수용하게 되었는지 보여 준다._ 강대진,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읽기>, p74


 널리 알려진 대로 <일리아스>는 아킬레우스의 '분노'로 시작하지만 끝까지 이어지지는 않는다. 전우 파트로클로스가 죽은 이후 그는 아가멤논에 대한 분노를 접고 복수를 맹세한다. 신의 아들 아킬레우스는 파트로클로스의 복수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잘 알고 있다. 복수는 그에게 불멸의 명성과 죽음을 함께 가져다 준다는 것을. 그럼에도 그는 불멸의 명성을 선택한다. 


[그림] Achilles and Patroclus(출처 : 위키백과)


 그녀(테티스)에게 준족 아킬레우스가 크게 역정을 내며 말했다.

 "당장이라도 죽고 싶어요! 전우가 죽는데도 도와주지 못했으니 말예요.(98 ~ 99)

 불화는 신들과 인간들 사이에서 사라지기를!

 그리고 현명한 사람도 화나게 하는 분노도 사라지기를!

 분노란 똑똑 떨어지는 꿀보다 더 달콤해서

 인간들의 가슴속에서 연기처럼 커지는 법이지요.

 하지만 아무리 괴롭더라도 지난 일은 잊어버리고

 필요에 따라 가슴속 마음을 억제해야지요.

 이제 저는 나가겠어요!(107 ~ 114)

 제게도 똑같은 운명이 마련되어 있다면 저도 죽은 뒤

 꼭 그처럼 누워 있겠지요. 하지만 지금은 탁월한 명성을 

 얻고 싶어요._호메로스, <일리아스>, 18권 120 ~ 122 


 아킬레우스는 자기가 진작 나서서 다른 동료들을 구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그는 이제 불화와 노여움을 저주한다. 아가멤논이 자기를 노엽게 했지만, 이제는 그 노여움을 흘려 버리고 감정을 억제하겠다 한다. 그는 헥토르를 향해 나아갈 것이고 죽음은 신들이 원하는 아무 때에나 받겠다고 다짐한다. 자신은 죽음을 받겠다, 하지만 그 전에 훌륭한 명성을 얻고야 말겠다._ 강대진,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읽기>, p432


 <일리아스>에서 아킬레우스는 당당하게 불멸의 명성을 선택한다. 필멸의 인간이 불멸의 삶을 살 수 있다면 그것은 역사(歷史)에 이름을 남기는 일이기에 아킬레우스의 선택을 나쁘다고만 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일리아스>의 시대로부터 얼마지나지도 않은 <오뒷세이아 Odysseia>의 시대에 이르면 벌써 그가 열망한 불멸의 명성이, 필멸의 명성으로 바뀌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과연 시대를 초월한 불멸의 가치란 있는 것일까? 그런 면에서 모든 고난과 유혹을 무릅쓰고 집으로 돌아가는 <오뒷세이아>의 내용은 불멸의 가치에 대한 무상함을 말하는 듯하다.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여, 아카이오이족 가운데 가장 강력한 자여!(478)

 어느 누구도 예전 그대처럼 행복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오. 그대의 살아생전 우리들 아르고스인들은 그대를 신처럼

 추앙했고, 지금은 그대가 여기 사자들 사이에서 강력한 통치자이기 

 때문이오. 그러니 아킬레우스여, 그대는 죽었다고 해서 슬퍼하지 마시오.'_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11권 482 ~ 486


 오뒷세우스의 말은 약간 위로의 색깔을 띠고 있다... 사실 이 대목은 <일리아스>의 이상에 맞서는 새로운 이상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다... 저승의 왕이라도 살아 있는 가난한 집 머슴보다 못하다는 것이다. 영원한 명성을 위하여 죽음을 선택하던 <일리아스>의 전사들과는 너무나도 다른 생각이다.(p339)... 손상된 명예 앞에서, 부당하게 주어진 운명 앞에서 화산처럼 폭발하던 <일리아스>의 영웅들은 이제, 이렇게 온건하고 인간적이고 스케일 작은 생활인들이 되었다._ 강대진,<오뒷세이아, 모험과 귀향, 일상의 복원에 관한 서사시>, p340


 내가 이렇게 말하자 그는 지체 없이 이런 말로 대답했소.

 '죽음에 대해 내게 그럴싸하게 말하지 마시오, 영광스런

 오뒷세우스여! 나는 세상을 떠난 모든 사자들을

 통치하느니 차라리 지상에서 머슴이 되어 농토도 없고

 재산도 많지 않은 가난한 사람 밑에서 품이라도 팔고 싶소이다._호메로스, <오뒷세이아>, 11권 487 ~ 491


 "나는 율리시스 속에 너무나 많은 수수께끼와 퀴즈를 감춰 두었기에, 앞으로 수 세기 동안 대학 교수들은 내가 뜻하는 바를 거론하며 분주할 것이다. 이것이 나의 불멸을 보장하는 유일한 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개인적으로는 제임스 조이스(James Augustine Aloysius Joyce, 1882 ~ 1941)가 <율리시스 Ulysses>를 통해 불멸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 자체가 <일리아스> 시대로의 회귀라 여겨지지만... 읽다가 낙오할 것 같은 <율리시스>에 대한 리뷰는 정리가 되면 올리겠지만, 현재까지는 답이 없어 보인다... 


 다시 <일리아스>의 시대로 돌아가자. 아킬레우스는 불멸의 명성을 선택하고 헥토르를 죽인다. 이어 헥토르의 시체를 전차에 묶어 끌고 다니며 모욕하고, 파트로클로스의 장례도 치뤘기에 그는 신의 도움으로 모든 것을 이룬 듯하다. 그렇지만, 신의 입장에서 본다면 진정한 완성은 아킬레우스의 불멸의 완성과 함께 찾아오는 죽음까지 실현되어야 한다. <일리아스>에서 아킬레우스의 죽음은 노래되지 않고 끝나는데, 이는  시인이 불멸의 명성을 추구했던 젊은 영웅을 애도했기 때문일까. 결국, 신의 아들인 그도 운명을 알았지만, 자신이 운명의 저울에 올라갈 때까지는 알지 못했다.  

 

 해가 중천에 이르자 제우스가 양군의 운명을 저울에 달고, 희랍군의 운명이 땅에 처진다. 우리로서는 무거운 쪽이 이기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땅은 죽음의 방향이기 때문에 땅으로 처지면 죽음을 당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_ 강대진,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읽기>, p232


 죽음을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시인은 아킬레우스를 한 단계 성장시킨다. 바로 <일리아스> 24권에서 아킬레우스는 아들을 잃은 프리아모스 왕을 동정하는 모습을 통해서다. 가진 자의 여유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아킬레우스 입장에서는 자신의 목숨과도 같은 파트로클로스와 바꿀 수 없었기에, 헥토르를 잃은 프리아모스의 슬픔에 공감했다고 보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마침내 고귀한 아킬레우스는 실컷 울어

 울고 싶은 욕망이 그의 마음과 사지에서 떠나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노인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우더니

 노인의 흰 머리와 흰 수염을 불쌍히 여겨

 그를 향해 이렇게 물 흐르듯 거침없이 말했다.

 "아아, 불쌍하신 분! 그대는 마음속으로 많은 불행을 참았소이다...(513 ~ 518)...

 아무리 괴롭더라도

 우리의 슬픔은 마음속에 누워 있도록 내버려둡시다.

 싸늘한 통곡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테니까요.

 그렇게 신들은 비참한 인간들의 운명을 정해놓으셨소.

 괴로워하며 살아가도록 말이오. 하나 그분들 자신은 슬픔을 모르지요._ 호메로스, <일리아스>, 24권 522 ~ 526


 모처럼 <일리아스>를 읽으며, '분노'라는 감정에서 일어나, '이성'에 의한 명예추구, 이후 '공감'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한 신과 같은 젊은 전사를 발견하게 된다. 그렇지만, 그 역시 평소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다가, 죽은 후에야 비로소 느낀다는 점에서 '죽음'이라는 주제가 결코 쉽지 않은 주제라는 것을 새삼 확인한다.


 여기에 더해 그가 '죽음'과 바꾸려 했던 '불멸의 명성'이라는 가치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과거 최고의 가치가 '불멸의 명성'이라면,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우리들에게 최고의 가치는 '돈 money'가 될까. 모든 사람에게는 아니겠지만, 많은 이들에게 불멸의 가치로 보이는 '돈'. 우리는 과연 그 진정한 가치를 얼마나 생각하고 추구하고 있을까. 우리는 별 생각없이 이를 열망하다가 아킬레우스처럼 후회하는 것은 아닐런지. 게오르그 짐멜(Georg Simmel, 1858 ~ 1918)은 <돈의 철학 Philosophie des Geldes>에서 돈의 운동성에서 그 가치를 찾는데, 이는 부동산(不動産)의 자산가치가 강조되는 오늘날의 한국경제 현실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에 대해서는 추후 다시 생각해보도록 하자. 이미 페이퍼가 충분히 길어졌다...

 

세계의 절대적인 운동 성격을 돈보다 더 명백하게 보여주는 상징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돈의 의미는 곧바로 줘버린다는 사실에 있다. 고정되는 순간 돈은 돈으로서의 특별한 가치아 의미를 잃어버린다. 돈이 상황에 따라 정지된 상태에서 끼치는 영향력은 그것이 곧 다시 운동하리라는 기대에 근거한다. 돈은 운동하지 않는 모든 것을 완전히 제거해 버리는 운동의 담지자 바로 그 자체다.(p909)... 돈은 그 내용상 가장 영속적인 것으로서, 세계의 다른 모든 내용들 사이에서 무차별점 및 균형적으로 존재한다. 돈의 이념적 의미는 법칙의 이념적 의미와 마찬가지로 모든 사물들에 척도를 제공하지만 스스로는 이 사물들에 의해서만 완전히 실현될 수 있다._게오르그 짐멜, <돈의 철학>, p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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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란공 2020-08-27 11: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BBC제작 <트로이>를 보니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가 모두 흑인이고 동성애 관계라 새로웠던 기억이 납니다^^ 잘 읽었습니다. 율리시스는 어떻게 읽으셨을지 궁금하네요. 전 엄두가 안나서^^

겨울호랑이 2020-08-27 12:00   좋아요 2 | URL
그렇군요. BBC의 <트로이>를 안 봐서 모르겠지만, 아마 영화계에 불고 있는 PC(political correctness)주의 때문에 그렇게 설정한 것 같습니다. 고대 그리스를 생각한다면 기계적인 설정이라는 생각도 듭니다만, 현대적 해석이라는 면에서는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율리시스는 쉽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습니다...ㅜㅜ 여러 차례 읽으면서 작가가 숨겨놓은 의미를 최대한 발견하는 것. 이 정도에 의의를 가지려 합니다... 완전히 독해하려고 접근한다면 스트레스만 받고 중도에 포기할 것 같아서요...

AgalmA 2020-08-27 14: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예술 분야 다 좋아라 하지만 오페라는 즐기지 않는데요^^; 과장된 몸짓과 노래들에 너무 손발이 오그라들고 몸이 쭈삣거려서;;
그리스 신화 고전들도 그놈의 코러스 서사시 방식 때문에 읽기 고역입니다ㅜㅜ; 글이 시끄러워ㅜㅋㅜ);;;
러셀도 서양철학사에서 그 시대의 발화에 맞춰 서술하고 있다며 당부하는 카톨릭 철학 부분 정말 지루했어요ㅎㅎ;
겨울호랑이 님은 이런 고전을 묵묵히 읽어내시니 참 존경스러울 따름입니다👍

겨울호랑이 2020-08-27 14:24   좋아요 2 | URL
저도 사실은 그리스 비극을 무슨 재미로 읽나 싶습니다.ㅋ 제가 생각했을 때 독서취향이 좀 다를 뿐 대단한 것은 없는 것 같아요. 그나마 다른 사람들보다 제가 자신을 잘 아니 사실일 겁니다. 다른 분들보다 딱딱한 책을 더 많이 읽기는 하지만, AgalmA님처럼 시, 전시회, 공연 등을 즐기지 못하는 것을 보면 ‘다름‘인 것 같습니다. 저도 조금은 다른 것이 있어야 쟁쟁한 이웃들 사이에서 살아남지 않겠어요?ㅋㅋ 그래서, ‘존경‘은 조금 많이 부끄러워집니다..

갱지 2020-08-29 00: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애초에 아가멤논이 너무 뻔뻔하고 열받게 굴어서, 결말이 뻔한 걸 읽으면서 승질냈던 기억만 남아있어요- 쿠쿠

겨울호랑이 2020-08-29 09:32   좋아요 1 | URL
아, 저는 <일리아스>에서 트로이 목마 이야기가 나오길 기다리다가 그냥 중도에 끝나서 황당했던 기억이 납니다..^^:) <일리아스> 2부가 있는 줄 알았어요.. ㅜㅜ
 

  유튜브에서 음악을 재생하고 책을 읽는 일이 이제는 습관이 되버린 요즘이다. 오늘도 유튜브 화면을 열자 여느 때처럼 추천 동영상이 여럿 뜬다. 무슨 근거로 내게 이런 자료들을 추천하는지는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쳐다 본 동영상 하나에 눈을 좀처럼 떼지 못하게 된다. 'UP - Ppuyo ppuyo, 유피 - 뿌요뿌요, MBC Top Music 19970614'. 20년도 더 지난 이 동영상에 마음이 가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미처 의식할 사이도 없이 내 손은 동영상을 재생시켰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주인공이 마들렌 과자를 맛보고 느꼈던 감정을 나 또한 맛보게 되었다.


 

 그러다 갑자기 추억이 떠올랐다. 그 맛은 내가 콩브레에서 일요일 아침마다 레오니 아주머니 방으로 아침 인사를 하러 갈 때면, 아주머니가 곧잘 홍차나 보리수차에 적셔서 주던 마들렌 과자 조각의 맛이었다.(p89)... 아주 오랜 과거로부터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 때에도, 존재의 죽음과 사물의 파괴 후에도, 연약하지만 보다 생생하고, 비물질적이지만 보다 집요하고 보다 충실한 냄새와 맛은, 오랫동안 영혼처럼 살아남아 다른 모든 것의 폐허 위에서 회상하고 기다리고 희망하며, 거의 만질 수 없는 미세한 물방울 위에서 추억의 거대한 건축물을 꿋꿋이 떠받치고 있다. 그것이 레오니 아주머니가 주던 보리수차에 적신 마들렌 조각의 맛이라는 것을 깨닫자마자 아주머니의 방에 있던, 길 쪽으로 난 오래된 회색 집이 무대장치처럼 다가와서는 우리 부모님을 위해 뒤편에 지은 정원 쪽 작은 별채로 이어졌다.(p90)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中


 1997년 6월 14일 토요일.


 그날은 소속 대대로 배치된 첫 날이었다. 강원도 화천의 깊은 산중에 위치한 대대에도 내려 중대로 이동했을 때, 부대의 열악한 환경에 매우 실망했었다. 첩첩산중에 위치한 대대에서도 중대는 뒷편 구석에 떨어져 있었다. 당시 중대 건물이 신축공사 중이었기에, 중대원들은 부대 내 창고를 막사로 수리해서 임시로 내무반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창고문을 떼내어 임시로 만든 출입문, 유리창 대신 비닐로 막은 유리창, 야외에 간이로 설치된 재래식 화장실 등등. 건물 밖에서 중대 행정반으로 들어섰을 때는 마침 개인 정비 시간이었고, 모두들 내무반과 개인 정비를 하느라 정신없었다. 건물이 창고 건물이었기에 통풍은 잘 되지 않아 6월 장마철에 그 안은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심하게 났다. 고참들로 보이는 병장 몇 명은 TV를 보고 있었는데, 그 프로그램에서는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그 음악이 바로 MBC <인기가요 50> 프로그램에서 방송된 UP의 <뿌요뿌요>였다. 그리고, 이어 4시 25분 을 가르키는 벽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이 모든 시각, 청각, 촉각, 후각의 냄새가 유튜브의 노래에 맞춰 되살아나는 느낌 속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화자를 떠올리게 된다.


  유튜브에서 재생되는 오래전 노래와 영상은 나를 23년 전 신임 소위시절의 나로 데려갔고, 이로 인해 당시 내가 느꼈던 모든 감각이 다시 살아나는 감정을 느낀다. 오래 전 시간이라 모든 것을 재생할 수는 없지만, 과거의 어느 한 때와 지금의 내가 UP의 노래를 통해 연결되는 이 느낌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화자도 느꼈을까. 잠시나마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는 행복을 맛보면서, 다른 책을 꺼내든다. 과연 화자가 먹은 마들렌 과자는 <뿌요뿌요> 같은 맛이었을까는 물음과 함께.


 나는 도대체 이 알 수 없는 상태가 무엇인지 아무런 논리적인 증거도 대지 못하지만, 다른 모든 것들이 그 앞에서 사라지는 그런 명백한 행복감과 현실감을 가져다주는 이 상태가 무엇인지를 물어보기 시작한다. 그것을 다시 나타나게 하고 싶다. 생각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 차의 첫 모금을 마신 순간으로 되돌아가 본다. 똑같은 상태가 보이지만 새로운 빛은 없다.(p88)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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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6 15: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5-16 2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5-18 2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5-18 2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bookholic 2020-05-16 2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저도 오랜만에 ˝뿌요뿌요˝를 들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20-05-16 20:3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bookholic님. 모처럼 옛 생각을 해 본 날이었습니다^^:)

하니의 책다방 2020-05-27 14: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마들렌과 뿌요뿌요라니요😍 아련하고도 귀여운 조합이네요💕 저 예전에 알라딘 굿즈로 받은 마들렌 모양이 수놓아져 있는 ˝프루스트 수면양말˝ 갖고 있는데🧦 마들렌 수면양말 신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읽으면 딱 좋겠네요ㅋㅋ

겨울호랑이 2020-05-27 14:5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책식주의님. 잘 몰랐는데, ˝프루스트 수면양말˝이 있었군요. 굿즈로 나왔으니 예쁘게 나왔을 것 같네요. 멋진 조합이라 여겨집니다! 그렇지만, 저는 수면 양말을 신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으면. 영영 잠들 것 같아 맨발로 읽어야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