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를 3개월 앞둔 프랑스에서는, 이번에도 좌파가 패배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막상 선거가 닥치면 좌파의 다양한 분파가 단합할 것이라고 가정해보더라도, 좌파 구성원 간에 남아있는 공통분모가 없다. 따라서, 좌파의 패배를 점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세금제도, 퇴직 연령, 유럽연합(EU), 원자력 존속 여부, 국방정책, 미국, 러시아, 중국과의 관계 등 핵심 사안들에서 서로 대립하는 이 다양한 좌파 분파들이 어떻게 연합해 국가를 이끌 수 있겠는가? 극우에 대한 두려움만이 아직도 좌파를 결집시키는 유일한 공통분모다. 지난 40년간 프랑스에서 '좌파'가 집권한 세월은 20년에 달한다(1981~1986, 1988~1993, 1997~2002, 2012~2017). 그런데 그 동안 극우는 꾸준히 입지를 다졌다. 다시 말해 극우의 부상이라는 위험을 저지하기 위해 좌파가 취한 전략은 처참히 실패했다. _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2.1> <좌파는 왜 패배하는가> 中


 2022년도 4월에 프랑스 대선이 있어서인지 최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기사의 상당량은 선거와 관련된 내용을 다루고 있다. 덕분에 거의 같은 시기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우리에게도 여러 시사점을 던져준다. 2022년 1월호 기사 중 <좌파는 왜 패배하는가>는 사회주의 세력이 쇠퇴하는 여러 원인에 대해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있는데, 과거 유럽에서 자본주의의 폭주를 막았던 대안으로 사회주의의 위상과 업적을 생각한다면 '언제나 패배할 수 밖에 없는 좌파'라는 제목은 관심을 끈다.   

 

서유럽에서 사회주의가 지난 100년간 얻은 주요 성과는 자본주의를 문명화한 것이다.(p610)... 사회주의자들은 복지 제도 확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유럽 계몽주의의 진정한 계승자들이고, 시민권과 민주주의의 수호자들이었다. 그들은 투표권이 제한된 시절 투표권을 확대하기 위해 싸웠다. 다른 어떤 정당보다 일관되게, 일찍부터 여성의 권리를 위해 싸웠다. 구체제의 견고한 권리와 특권을 폐지하기 위해 싸웠다. 그들은 인종 차별에 단호하게 반대하는 모든 투쟁을 지지했다. 사형 제도 폐지와 동성애 합법화, 낙태의 비非범죄화에 중요한, 때로는 주도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_ 도널드 서순, <사회주의 100년> , p611 


 지난 30년 동안, 좌파와 대중 유권자들이 멀어진 것은 다음과 같은 요인들에서 비롯됐다. 정치적으로는 공약 불이행에 대한 배신감, 경제적으로는 3차 산업의 확대, 자본화, 세계화 때문이다. 이념적으로는 신자유주의적 헤게모니, 사회학적으로는 교육받은 계급들의 능력주의 찬양, 인류학적으로는 계산적이고 상업적인 합리주의로 인한 삶의 다양성 와해 때문이다. 또한 지리적으로는 대도시의 주변 지역 잠식, 문화적으로는 사회 투쟁에 대한 상류층의 투쟁 때문이다. _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2.1> <좌파는 왜 패배하는가> 中


  <좌파는 왜 패배하는가>의 기사는 그 원인을 좌파가 이전까지 여러 차례 정권을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실패한 것에서 찾는다. 정책수행을 위한 재원 확보를 위해 우파와 타협할 수 밖에 한계점. 그것은 좌파가 갖는 한계점이기도 하다. 헌법에 보장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체제 안에서 지속적인 정당활동과 차기집권을 위해서 이들의 개혁안은 한계점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한계점은 그들의 개혁에 대한 기대감을 실망감으로 바꾸면서 좌파와 대중들의 분리가 시작된다고 기사는 분석한다. 


 이런 성공에도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를 폐지하지 못했고, 경제계획을 통해 자본주의를 이끌지도 못했다. 이 실패의 원인은 정치와 현대자본주의, 그 둘의 관계에 내재된 속성에 있다... 자본주의자들의 활동에 전부가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아무리 커도, 그것이 자본주의에 악영향을 미쳐서 실업과 저성장을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그 권한은 억제될 수밖에 없다(p612)...  한 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서유럽 사회주의 정당들은 두 가지 뚜렷한 제약 내에서 자본주의를 규제하려고 했다. 첫째 제약은 자본주의 자체를 존속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둘째 제약은 민족국가로, 모든 규제의 틀에 법적 테두리를 제공했다. _ 도널드 서순, <사회주의 100년> , p613


 하지만 두 가지는 분명히 해둬야 한다. 첫째, 좌파는 단순히 좌파의 강령 실천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우파의 강령을 실천했다. 둘째, 좌파가 타협을 최대한 연기하려 할 때마다(프랑수아 올랑드는 취임 첫날부터 그랬다) 좌파를 굴복시킨 것은 쿠데타도 외국 군대도 아닌 재정 질식이었다. 2015년, 당시 그리스 재무장관 야니스 바루파키스는 "아테네의 봄과 프라하의 봄을 짓밟은 것은 탱크가 아니라 은행"이라고 요약했다. _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2.1> <좌파는 왜 패배하는가> 中


 여기에 더해, 좌파의 세력구성은 수많은 '결'들로 구성된다. 좌파를 구성하는 여러 구성원들은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갖는 느슨한 연합구조를 갖는다. 현상을 타파하기 위한 동맹. 동맹을 위한 수많은 협상과 양보를 거치면서 최초의 개혁안에서 상당부분의 후퇴는 불가피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구성은 선거 때마다 이합집산(離合集散)이 반복되며 체계를 불안정하게 만든다.


 사회주의와 민주주의와의 관계에서 1860년대 이후 한 세기 동안 두 가지 상호 보완적인 원칙이 유효했다. 사회주의는 언제나 좌파의 고갱이었고 좌파는 언제나 사회주의보다 그 범위가 넓었다. 사회주의자들이 독자적으로 자신들의 목표를 수행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사회주의자들은 언제나 동맹자들을 필요로 했다 - 선거에서 겨룰 때나 정부를 구성할 때, 파업을 조직할 때나 공동체의 지원을 구축할 때, 선동을 수행할 때나 제도 안에서 활동할 때나 공적인 영역에서 자신들의 사상을 공언할 때나 언제나 그러했다. 1960년대 이후 사회주의자들이 좌파 안에서 헤게모니를 잃고 다른 급진주의자들이 좌파의 정치 공간에 진입함에 따라 이러한 협상의 조건이 한층 더 복잡해졌다. _ 제프 일리, <더 레프트 1848 ~ 2000 : 미완의 기획, 유럽좌파의 역사>, p617


 이에 대항하는 우파 - 특히 극우파 - 의 논리는 비교적 단순하다. '자본주의'와 '민족주의'를 근간으로 자신들의 논리를 극단으로 밀어붙인다. 자본주의에 대해서는 사유재산침해, 민족주의에 대해서는 인종과 국가를 우선하는 정책을 주장하며 감정에 호소한다. 간결한 메세지와 애국심 등 감정에 호소하는 전략. 여기에 피에르 부르디외가 지적한 '언론장의 보수화'까지 더해지면, 우파는 선거에서 질래야 질 수 없게 된다. 개인적으로 좌파의 느슨한 연합은 '측정할 수 없는 이념들의 질(質)적인 연합'인 반면, 우파의 연합은 '측정가능한 이익의 양(量)적인 결합'이라는 차이가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이것은 선거철이면 재등장하는, 극우가 내세우는 모든 공약의 핵심이다. 또한, 프랑스에 과거의 명성을 되돌려줄 현자의 돌이다. 실업부터 공공적자, 주거에서 이민까지, 범죄에서 연금까지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만병통치약이다. 이것은 바로 '국적 우선제'다. 국적 우선제 장점은 많다. 우선, 개념이 쉽고 단순하다. 또한, 자원이 부족한 위기상황에서 확산되는 국수주의적 반응을 자극함으로써 논쟁이 될 '예산' 없이도 부차적인 모든 관심사에 응용할 수 있다. _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1.12> <극우파의 만병통치약, '국적 우선제'> 中


 사회는 하느님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도, 신비로운 '자연력'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사회는 인류에 의해서 창출되었다. 사회가 계속해서 진화할지 혹은 쇠락할 것인지는 사람의 손에 달려 있다. 사회가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는 개인적 판단의 문제일 수 있지만, 죽음보다는 삶을, 고통보다는 행복을, 비참함보다는 후생을 선호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회를 수용해야만 한다. 그리고 사회가 존재하고 발전하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권도 제한이나 유보 없이 수용해야만 한다. _ 루트비히 폰 미제스, <사회주의 2> , p251/390 


 주로 시청률에 발목이 잡혀 정치적 경제적 제약에 점차 구속됨으로써 보다 더 타율적이 돼가는 언론장은 (사회과학장, 철학장 등의) 문화생산장이나 정치장을 비롯해 다른 모든 장을 구속하려는 속성을 보인다. 그런데 장이란 내부에 다수의 힘이 존재하고 상호 간에 영향력을 미치면서 투쟁을 벌이는 공간으로서, 이 투쟁의 주된 목표는 힘의 장에 변형을 가하는 데 있다. 즉, 하나의 장에서는 장내 투쟁의 쟁점이 되는 것을 정당하게 점유하기 위한 경쟁이 존재한다. 언론장에서의 쟁점은 다름 아닌 대중의 관심이다. 대중을 얻기 위해, 대중을 끌어들일 수 있는 요소들(속보, 특종, 독점 정보, 유명 인사 등)을 점유하기 위해 내부에서 끊임없이 경쟁한다. 재미난 점은 ‘자유의 전제조건’이라는 이 경쟁으로 인해, 상업적 통제 하의 문화생산장에서는 오히려 장의 획일화와 검열, 나아가 보수화가 나타난다는 점이다. _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2.1> 피에르 브루디외, <특정 세계관은 어떻게 자리잡는가> 中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기사는 프랑스 정치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문제점 등에 대해 지적하고 있기에, 오늘 우리 한국의 정치 상황과는 분명히 차이점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강의 기사 내용이 남의 이야기같지 않은 기시감(旣視感)이 드는 것은 무슨 이유인지 잘 모르겠다. 긴 페이퍼의 마지막은 '여론장의 바람직한 방향'에 대한 글을 옮기는 것으로 갈무리한다...


 기자와 여론조사 기관은 TV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올라가자 자신의 영향력과 킹 메이커로서의 역할에 도취했을 뿐만 아니라 매우 인간적인 자기중심적 본능에 무릎을 꿇었다. 시민들의투표 의사를 가시화하기 힘든 (어쩌면 실체조차 없는) 시기인, 선거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선거 6개월 전에 투표 의사에 관한 여론조사를 한다는 것은 더 기이한 역설이다. 이처럼 후보 선정이  인위적인 구조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민주선거의 정당성을 위협하는 위험 요소다. 과연 언제까지 이 환상이 유지될 수 있을까? 표본의 대표성이 신뢰할 만하지 않고, 계산이 정확하지 않고, 선거에서 승리할 확률이 높아지지 않을 때, 여론조사의 민주적인 이점에 대한 믿음은 사라질 것이고, 정당의 여론조사 담당자는 지쳐버릴 것이다. 그러나 여론조사에 대한 비판과 품질 하락에도 불구하고 그런 상황이아직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은, 반대 방향에서 어떤 강력한 흐름이 이것을 막고 있음을 의미한다. _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2.1> <누가 대선 후보를 선택하는가?> 中


 언론이 대중의 대화를 촉진시켜야 한다는 대화 저널리즘의 임무는 정보의 전달이 아니라 시민과의 소통, 즉 대화다. 사람들을 단순히 뉴스 소비자에 머물지 않게 하기 위해서 언론은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논의 과정에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언론이 시민과의 만남과 모임을 갖고 그 과정과 내용을 기사로 다루어 공동체 구성원들과 나누어야 한다. 언론이 공동체의 대화를 증진시키기 위해서는 소외집단이나 개인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들어 주어야 한다. 언론은 전문 저널리스트들이 만들어 낸 정보를 유통시키는 통로의 역할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시민적 담론을 위한 장(場)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_ 월터 리프먼, <여론> , p13/31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최근 대만과 중국 사이에 고조된 갈등은 모두 두 가지 원인에서 기인한다. 첫 번째는 대만해협 양안 관계의 지정학적 역사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두 번째는 미중 대결에서 대만이 차지하는 위상과 관련이 깊다. _ <르몽드디플로마티크 2021.10> <대만, '중국몽'의 모자란 퍼즐조각>


 시간이 조금 지나갔지만, <르몽드디플로마티크 Le Monde Diplomatique> 2021년 10월호에는 최근 읽은 책과 함께 정리하고 싶은 내용의 기사가 있어 늦게나마 페이퍼로 정리한다. <도해 타이완사>를 읽던 중 마침 10월호에는 '중국-대만' 관련 기사가 떠올라 한번에 정리한다.  10월호 기사에서는 중국-대만의 갈등 요인을  지정학적인 측면에서 접근한다. 겉으로 보기에 '하나의 중국'을 내세우는 중국과 '중국이 아닌 대만 독립'을 지향하는 현 여당인 민진당(民進黨)의 갈등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지정학, 역사적 문제등이 얽혀있어 그리 간단치만은 않다.


 네덜란드와 스페인, 정씨 정권을 거치면서 발전해온 타이완은 17세기 중반 동아시아로 진출한 유럽이 무역과 선교를 펼치는 거점이었습니다. 타이완은 지리적으로 명나라/청나라와 가까웠으며, 네덜란드/스페인 등의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필리핀 그리고 일본 사이에 위치했습니다. 즉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항로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동아시아 해역의 '사거리'라 할 수 있었습니다. _ 궈팅위 외, <도해 타이완사> , p129/434


 <도해 타이완사>에서는 일반적으로 중국의 섬이라고 생각되어 온 대만이 지리적으로 가까운 중국 본토, 인도네시아에 근거한 네덜란드, 필리핀에 자리잡은 에스파냐(스페인), 왜구(倭寇)로 알려진 일본 해적들의 각축장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들의 틈바구니에서 지배를 받던 대만인들의 입장에서는 중국 역시 외세(外勢)에 불과했다. 오랜 기간 중국 가장자리에 있던 낯선 섬 대만이 중심지가 된 것은 중국 국민당의 장제스(蔣介石, 1887~1975) 정부가 쫓겨오면서부터다. 국민당 정부로부터 대만인들은 중국인으로서 살아갈 것을 요구받으면서, '중국인 vs 대만인'의 정체성 문제가 제기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정체성 문제는 '국민당-민진당'의 이념 대립의 문제이기도 했다. 


 중국공산당과의 이념적 갈등에도 불구하고, 장제스와 국민당은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을 신성한 사명으로 삼는 본질주의적 민족주의에 널리 공감하며, 대만인들에게도 같은 사상을 주입했다. 중국 본토 출신자가 백만 명 이상, 다시 말해 섬 인구의 15%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그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 말 이후 대만이 민주화의 길을 걷는 동안, 어느새 중화민족주의는 새로운 사조와 거센 경쟁에 부딪힌다. 대만은 중국에 일부 문화적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실상 고유의 역사적, 정치적 도정을 지닌 별개의 국가라는 정체성을 갖게 된 것이다. 정체성에 바탕을 둔 새로운 사조는 결국 대만에서 사상 처음으로 정권이 교체되고, 2000년 독립주의 성향의 정권이 들어서는 결과를 낳았다. _ <르몽드디플로마티크 2021.10> <대만, '중국몽'의 모자란 퍼즐조각>


 중국의 일부임을 강조하는 현재 야당인 국민당과 그 반대편에 있는 집권 여당인 민진당의 대립은 대만의 국내 문제이기도 하지만, 미국과 중국의 대리전이기도 하다.   1960년대 쿠바 미사일 위기를 겪었던 미국은 '카리브 해의 쿠바', '지중해의 크레타/키프로스'와 같은 대만의 중요성을 결코 간과하지 않았고, 1970년대 중국과 수교를 통해 대만과 단교(斷交)를 하면서도 미국-대만-일본을 잇는 트라이앵글 경제 체제를 유지하고, 비밀리에 소수의 미군을 파병하면서 중국을 견제하는 한 방편이 되었다. 이러한 미국의 전략은 점(点)으로 연결되는 '해양 기지 제국'인 미국의 대(對)중국 전략에서 '대륙을 향한 항공모함'인 대만의 중요성을 고려했을 때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미국이 타이완을 원조한 배경에는 타이완을 반공(反共) 동맹으로 만들기 위한 정치적 계산이 있었습니다. 사실 미국은 타이완이 문화, 교육, 일상생활에서 미국식 삶의 가치를 받아들여 모든 영역에서 미국을 추종하고 미국이 제공하는 자원에 의존하게 되기를 바랐습니다._ 궈팅위 외, <도해 타이완사> , p385/434


  1970년대에서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장기간 지속되던 태평양 제도 신탁통치령이 종료됐다. 마셜 제도 공화국, 미크로네시아연방, 팔라오공화국은 미국과 '자유 연합 협정'을 맺어 주권 국가로 독립하면서도 미군기지용 부지를 제공하는 대가로 경제적 지원을 받게 됐다. 그러나 북마리아나 제도는 푸에르토리코와 유사하게 연방에 편입됐다. _ 대니얼 임머바르, <미국, 제국의 연대기> , p403/519


  대만문제가 국민당과 민진당의 정치 대립에서 '미중 갈등'으로 양상이 바뀐 것은 시진핑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이 표면화되면서 부터였다. '중국몽(中國夢)'이 추상적인 방향이라면, '일대일로'와 '중국제조 2025'는 구체적 움직임이었다고, 중국을 견제하려는 트럼프 정부와 이에 반격하는 미중간의 대립은 이 지역의 갈등을 가속화시켜 최근에 이르고 있다.


 수십 년간 미국은 중국을 에워싸며 중국이 가는 곳마다 존재했다. 미국은 중국이 원하는 곳마다 와서 그 옆자리를 차지하고 않아있는 양상이었다. 중국은 눈길을 주는 모든 곳에서 미국의 존재를 제거해야만 했다. 중국의 핵심 목표를 명확히 규정하고, 이제는 중국을 상징하는 하나의 특징으로 자리 잡은 중국의 정치체제를 강조하고, 남해의 섬들과 타이완에 대한 중국의 관심이 지극히 합법적임을 강력히 선언함으로써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_  케리 브라운, <시진핀의 중국몽> , p95/158 


 호르무즈(Hurmuz) 해협과 아라비아 해로부터 말라카(Malaka) 해협을 통과해 중국 남부를 연결하는 해상 실크로드(Silk Road)의 부활이 '일대일로'의 두 목표 중 하나라 했을 때, 대만은 출발점 취안저우(泉州) 건너편에서 이를 견제할 수 있는 핵심 지역이라 하겠다. 지중해의 지브롤터 해협과 같은 대만에서 강대국들의 경제 이권과 민족주의가 부딪쳤을 때 나타나는 긴장. 그것이 오늘의 대만 문제가 아닐까.


 2019년 7월 9일, 미 의회는 대만에 대해 다목적 전투기 F-16V 66대, M1A2T 에이브람스 전차 108대, 스팅어 대공 미사일 250대, 그 밖에 각종 무기 판매를 승인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심지어 대만의 군수 수요에 조금 더 긴급히 대응할 수 있도록 '수요 평가 시스템'까지 개발했다. 2020년 11월, 4주간 대만 병사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역사상 처음으로 대만 남부 쭤잉 해군기지에 미국의 (퇴역 군인이 아닌) 현역 해군이 파견됐다고 대만 해군 참모부는 확인'해줬다. 하지만 미 정부는 중국 전투기에 맞대응할 능력을 지닌 F-35 판매만은 끝내 거부했다. 역내 유일무이한 지정학 균형의 수호자가 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_ <르몽드디플로마티크 2021.10> <대만을 관할하는 미국의 은밀한 '대사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0월호에서는 대만을 둘러싼 중국과 미국의 지정학적 갈등이 다루어졌다면, 아직 배송받지 못한 11월호에서는 금융을 둘러싼 미중 갈등이 다뤄질 모양이다. 여기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있는지는 다 읽고 나서 정리해야겠지만, 마무리 전에 킨들버거(Charles Kindleberger, 1910~2003)의 이론으로 미국과 중국의 현재 상황을 잠시 살펴보도록 하자.

 

 오늘날 미중 대결이 투키디데스 함정(Tuchididdes Trap)의 표현이라면, 야심차게 출발했던 일대일로의 정체는 새롭게 강국으로 등장한 중국이 공공재(public goods)를 제대로 공급하지 못한 킨들버거 함정(kindleberger trap)에 빠졌기 때문일 것이다. 좀 더 엄밀하게 말하면, 자신들의 자금으로 자국의 자본재를 구입하도록 강제하면서 막대한 무역수지 적자로 달러 공급을 한 미국만큼의 역할도 수행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주변의 유목제국들과 공존을 위해 조공무역의 형식으로 평화를 샀던 대국(大國)이 지난날의 중국이었다면, 군사력, 경제력 등 모든 면에서 주변을 압도하려는 오늘날 중국의 야욕이 유라시아의 교류에 장애가 되는 것은 아닌지. 저물어가지 않으려는 제국과 아직 떠오르지 못한 제국. 이들이 빚는 갈등 상황에서 새로운 핀테크(Fin Tech)를 둘러싼 금융패권 싸움을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궁금해진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리의화가 2021-11-02 16: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0월호, 11월호에 이런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니. 확인해봐야겠네요. 안 그래도 이번달에 도해 타이완사를 읽을 계획이라. 연계해서 읽을 포인트를 짚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21-11-02 16:28   좋아요 1 | URL
저도 이번 10월호, 11월호의 제목들을 보면서 연재 소설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거리의화가님 즐거운 독서 되세요! 감사합니다^^:)
 

  우주비행이 평등과 '인류 및 각 개인의 완벽함'을 가져다준다는 키발치크의 화학이나 치올콥스키의 꿈, 그 어디에 표현되어 있었든, 자연의 구속을 뛰어넘으려는 권력의 의지(will to power)와 혁명의 의지(will to revolution) 사이에는 어떤 모순도 존재하지 않았다. 근대의 로켓공학이 별난 전향자들이 목격햇던 우주비행의 부속물로 시작되었음은 분명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먼저 군사적 필수품이 되더니 후에는 경쟁하는 기술관료 체계의 시대에서 역동성의 상징이 되었다. _ 월터 맥두걸, <하늘과 땅 1>, p30


 월터 맥두걸(Walter A. McDougall, 1946 ~ )의 <하늘과 땅 The Heavens And the Earth: A Political History of the Space Age>은 나치의 V2 개발로 촉발된 미 - 소의 로켓 개발 경쟁사를 다룬 책이다. 저자는 특히,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Sputnik 1)의 성공이 가져온 충격과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 최초이자 유일한 원자폭탄 보유국이라는 타이틀도 1949년 소련이 원자폭탄을 개발하면서 위협받게 되었고, 급기야 1957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가 소련에서 발사되면서 미국은 일대 충격을 받게 된다. 이른바 스푸트니크 쇼크(Sputnik crisis)로 인해 미국의 과학기술 정책은 이후 '기술관료'에 의한 테크노 크라시(technocracy) 중심으로 바뀌면서 미-소 우주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아이젠하워는 자신의 퇴임연설에서 기술관료제를 향한 흐름을 가장 중요한 주제로 다루었다. 그것은 현재 예언으로 읽히고, 그 구절들은 미래의 기억으로 축 늘어져 있었다. 메더리스처럼, 아이크는 '군산복합체'와 '과학기술 엘리트'의 성장에 따라 부과되는 경제적, 정치적, 심지어 정신적 위험을 경고했다. 대부분의 미국인이 회상하지 못하는 것은 아이젠하워가 불만족스러운 추세를 기술의 행진의 탓으로 돌렸지만, 스스로도 그런 추세에 맞서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_ 월터 맥두걸, <하늘과 땅 1>, p441


 양립하는 냉전과 기술혁명에 의해 부과되는 위험은 도덕적이고 천하무적이었다. '좋은 시민들'은 고별연설이 경고했던 것처럼 군산(軍産)의 영향력이 언제 '부당하게' 또는 '잘못 준' 권력, '포획된' 공공정책이 되는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이전에는 자율적이었던 과학적, 군사적, 산업적, 학술적 제도들은 그 자체가 국가 기술관료제로 점차 빠져들었다 - 아이크도 인정했듯, 기술관료제는 '절박한 필요'였다. _ 월터 맥두걸, <하늘과 땅 1>, p443


  1960년대 이후 미-소 양국의 우주시대는 이념의 대결장으로 전개된다. 1호 인공위성과 최초의 우주비행사의 타이틀도 소련에게 빼앗긴 미국은 이후 아폴로 계획(Project Apollo)을 통해 유인달탐험에 성공하면서 미국의 승리로 끝나는 듯 했지만, 보다 시급한 현안에 들어갈 비용이 다수의 삶과 관련없는 사업에 투입되며 냉전(冷戰) 이후 우주전쟁 또한 막을 내리게 되었다. 결국, 우주전쟁의 결말은 흐지부지되고 마는데, 월터 맥두걸은 <하늘과 땅>에서 '인류의 꿈'이 점차 기술관료라는 특정집단의 밥그릇으로 몰락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아폴로의 첫 번째 아이러니는 시간이 흐르면서 수단이 목적보다 더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수단 - 기술관료제 - 은 새로운 국가 의제 대부분의 항목에 적용될 수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말이다. 달에 가는 것은 기술적 문제였다. 그러나 차별이나 빈곤, 심지어 도시의 황폐화를 해결하는 문제는 그 성격 자체가 달랐다... 아폴로의 두 번째 아이러니는 이 가장 위대한 우주임무가 우주정치에서 우주기술의 역할을 형성하는데 중심적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유엔외기권우주조약(UN Outer Space Treaty)은 스푸트니크 1호 후 거의 정확히 10년 후에 발표되었는데, 미래 우주 비행의 환경을 국가 기술관료제들 사이의 경쟁으로 고착시켰다. _ 월터 맥두걸, <하늘과 땅 2>, p339


 오늘 국내 기술로 만들어진 최초의 우주발사체 '누리호'가 발사되었고, 목표 고도인 700km에 이르렀다는 점에서는 성공을, 3단 엔진의 조기 연소 종료로 인해 더미위성의 궤도 안착에는 실패했다는 점에서는 실패로 평가받는다. 비록, 절반의 성공이지만 평가받는 누리호 발사는 여러 면에서 의미를 갖는다.


 이는 과학기술이 국력의 중요한 척도인 요즘 발사체 제조 기술의 보유는 정치적으로는 국제적 강력한 협상 카드를 갖는다는 것이며, 군사적으로는 강력한 전술/전략 무기를 갖는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지난 10월 1일 국군의 날 행사로 'Peace Maker' 작전을 선보이고, 바로 어제 20일에 대통령이 서울 ADEX 개막식에서 FA-50 전투기를 타고 참석한 이후, 고도의 미사일 기술이 필요로 하는 발사체의 발사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 속에서 어느 한 방향을 지향하는 메세지를 어렴풋하게나마 느끼게 된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루도록 하자.


 국가 전략의 토대가 되는 기초자료는 국익의 핵심적 요소이다. 이때 국익은 지도력과 국익에 대한 잠재적 위협에 의해 규정된다. _ 월터 맥두걸, <하늘과 땅 1>, p174


 

 20세기는 오늘날까지 네 번에 걸쳐 전쟁 기술의 중요한 혁신을 목격하고 있다. 적이 사용하기 이전에, 혹은 그것에 대한 방어 능력을 개발하기 이전에 그런 기술 혁신을 이룩한 국가는 잠정적이나마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된다.(p326)... 마지막으로, 핵무기와 발사 수단을 갖춘 국가들은 경쟁국들에 대해 어마어마한 기술적 우위를 지닌다. _ 한스 모겐소, <국가 간의 정치 1> , p327


 제공권을 보유한다는 것은, 자신은 자유롭게 비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 반면에 적군이 비행하지 못하도록 방해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공권을 장악한 국가는 적군의 항공 공격으로부터 자국 영토를 보호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이고, 더 나아가 적군의 지상 및 해상 작전에 항공 지원을 방해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항공작전은 적의 지상군과 해상군을 그들의 작전 기지로부터 차단시킬 뿐만 아니라, 적국의 내부를 폭격하여 황폐화시킴으로써 적국 군민의 육체적/정신적 저항선을 붕괴시킬 것이다. _ 쥴리오 듀헤, <제공권> , p39


 앞서 말한 여러 의미가 국가 차원에서의 의미라면, 어느 집단에게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다. 절반의 성공을 거둔 나로호의 과제를 풀기 위해 보다 많은 전문가와 예산 투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에서, 기술관료제 중심으로 운영된 과거 미-소의 전철을 밟기 않기 위해서는 기술관료제에 대한 통제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미제스(Ludwig von Mises(1881 ~ 1973)의 말처럼 관료제 자체는 가치 중립적일지 모른다. 또는, 막스 베버(Max Weber, 1864 ~ 1920)의 말처럼 근대 국가에서 관료제는 필수적일지도 모르겠다. 관료제 자체의 성격과는 무관하게 이를 통해 특정 집단에 권력이 집중화되는 것에 대한 견제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의 폐해를 잊었을 때  '원전 마피아'의 악몽을 다시 꾸지 않는다는 보장을 누가 할 수 있을 것인가. 이번 누리호 발사를 통해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누리호 과제가 주어진 것은 아닌지를 과거 미-소 우주경쟁사를 통해 생각하게 된다... 


 근대의 거대 국가가 오랫동안 존속하면 존속할수록 그만큼 더 기술적으로 관료제적 기초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된다는 것, 게다가 근대적인 거대 국가가 크면 클수록 또 특히 더욱더 강대국이면 강대국일수록 또는 강대국이 되면 될수록 그만큼 더 무조건 관료제적 기초에 의존하게 된다는 것은 분명하다.(p52)... 무엇보다도 관료제화는 전문가 훈련을 받았으며, 또 끊임없는 실습을 통해 더욱더 자신을 훈련시키는 직원들에게 개별적인 일을 할당해, 순전히 객관적인 관점에서 행정 작업 분할의 원리를 실행할 수 있는 최적조건을 제공한다. _ 막스 베버, <관료제> , p60/232




댓글(4) 먼댓글(0) 좋아요(4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레이스 2021-10-22 00: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늘 인공위성 🚀 로켓발사 실패해서 안타깝네요. 고생한 과학, 기술자들 수고했는데...ㅠ

겨울호랑이 2021-10-22 07:43   좋아요 2 | URL
네.. 계획대로 다 이뤘으면 좋았을텐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시도에 많은 것을 이뤘다는 점에서는 분명 나름의 성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이라 러시아에서는 로켓 연구진만 각각 2만 명 정도라는데, 이번 우리 연구진은 2백 명 남짓이었다고 하네요. 말 그대로 일당 백으로 이룬 성과이기에 충분히 자랑스러워해도 좋을 것 같아요^^:)

mini74 2021-10-22 09: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정말 박수를 보내고싶어요. 다른 예산하고 비교해서 얼마안된다고 자꾸 과학자들이 나와서 강조하는 모습이 짠했어요. 이런 일에도 예산 타령, 실패하면 난리 ㅠㅠ 저희 아이 선배들이 외국 연구소로 가고 싶어하는 이유 중 하나가 기초과학 관련 연구비 타는 게 너무 어렵다고 ㅠㅠ

겨울호랑이 2021-10-22 09:50   좋아요 1 | URL
그렇습니다. 미니님 말씀처럼 우리나라에서는 응용분야에 대한 투자에 비해 기초 분야에 대한 투자는 매우 인색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과거 성장기에는 외화획득을 위해 응용분야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순수 학문 - 과학, 예술 등등 - 에 대한 폭넓은 투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런 투자가 뒷받침되었을 때, 다수에게 기회가 열리고 소수에게 권위가 집중되는 폐단이 막아지지 않을까 싶네요. ^^:)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과 나토가 벌인 합동 작전 그리고 국경을 넘는 파키스탄의 군사적 조치들로 아랍, 체첸을 비롯한 전 세계 곳곳에서 모인 해외 전사들이 뿔뿔이 흩어졌고 알카에다 수뇌부 또한 도주하거나 살해당했다. 하지만 아프간과 파키스탄에서 온 탈레반은 발붙일 곳이 없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신기술로 무장한 미국과 유럽의 침략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이 시계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시간을 갖고 있다." _ 팀 마샬, <지리의 힘> , p585/660


 지난 8월 31일. 미군과 NATO군의 아프가니스탄 완전 철수가 이루어지면서 '제국의 무덤'이라는 아프가니스탄에 매장된 제국(帝國)이 또 하나 추가됐다. 압도적인 무력을 바탕으로 2001년 개전 후 빠르게 승기를 잡았던 서구 연합군이었지만, 결국 전쟁의 최종 승리는 탈레반 차지가 되었다. 19세기 영국, 20세기 소련, 21세기의 미국을 차례로 물리친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지만, 이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멸망에 이른 제국이 있으니, 바로 아케메네스(Archaemenes) 왕조의 페르시아(Persia)다. 


 다레이오스(다리우스 3세, BC 380~ BC330)를 구금한 이는 기병대장인 나바르자네스, 박트리아의 태수 베소스, 아라코티아와 드랑기아(Drangia)의 태수인 바르사엔테스(Barsaentes)였다.... 다레이오스를 구금한 자들은 알렉산드로스에게 따라잡힌다면 다레이오스를 넘겨주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협상을 하려 했다. 그리고 만약 추격을 받지 않으면 가능한 대로 대군을 모아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했다. 한동안 베소스가 지휘권을 행사했다. _ 아리아노스, < 알렉산드로스 대왕 원정기 Anabasis Alexandrou>, p168 


 박트리아((Bactria)) 태수 베소스가 다리우스 3세를 인질로 알렉산드로스(Alexander III Magnus, BC356~ BC323)에게 협상을 제의하지만, 거절당하고 다리우스 3세의 칼로 찌르고 도주하면서 다리우스 3세가 숨진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페르시아 제국을 멸망에 이르게 한 것은 알렉산드로스였지만, 황제의 숨통을 끊은 것은 현 아프가니스탄 지역 태수 베소스였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제국의 무덤 첫 안장 국가가 페르시아라는 것이 큰 무리는 되지 않을 것이다. 서론은 이 정도로 하고.


[지도] 아프가니스탄과 주변국들(출처 : 구글맵)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Le monde diplomatique> 2021.9월호에서는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를 여러 각도에서 분석한다. 정확하게 20년 전인 2001년 9.11 테러의 배후로 알 카에다(al-Qaida)를 지목하고 아프가니스탄에 폭격을 개시하며 시작된 전쟁은 개전 며칠 만에 탈레반을 무력화시키고, 해를 넘기기 전에 아프가니스탄의 새 정부를 수립하면서 전쟁은 조기 종식되는 듯 보였다. 그렇지만, 탈레반은 파키스탄의 지원받기 쉬운 남부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숨어들어갈 수 있었다.


 

 국제법이 박살났다. 미국은 아무런 승인도 없이 아프가니스탄에 먼저 폭격을 쏟아부었다. 국제연합에 지원을 요청한 것은 그 다음의 일이었다. 국제연합은 2001년 9월 12일부터 12월 20일까지 만장일치(러시아와 중국 포함)로 관련 결의안들을 가결시켰다. 이제 이 전쟁은 정당방위나 침략국에 대한 무력사용의 범주를 벗이났다. 이것이야말로 '테러와의 전쟁'이었다. _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1.9月, <아프가니스탄, 미국의 실패와 혼돈>, p29


 마치 마오쩌둥의 홍군(紅軍)이 국공내전(國共內戰) 당시 농촌을 근거로 세력을 확장한 것과 같이 탈레반 역시 농촌에 자리잡을 수 있었고, 같은 이슬람국인 파키스탄의 지원으로 세력을 확장시키는 동시에,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의 현정부에 대한 반감이 더해져 결국 탈레반에 의한 아프가니스탄 재점령이 가능했다는 것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탈레반은 카불에서 점점 세력을 확장하고 있던 다른 진영들과 달리 종족적 잠론을 모두 거부하면서, 아프가니스탄 민족주의의 옹호자를 자처했다... 탈레반의 전략은 중앙정부의 결함을 해결해서 공공 서비스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에 응답하는 것이었다. 탈레반은 시골 지역에 자리잡고, 주지사, 판사, 학교 교육 담당자와 보건 담당자, 비정부기관 관련 담당자들과 함께 그림자 정부를 건설했다. _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1.9月, <중앙정부의 '결함'을 파고든 탈레반의 '해결사' 전략>, p33


 공세가 시작되기 전부터 전국 75개 지구가 탈레반 통제하에 있었고, 탈레반은 주로 농촌 지역을 관할했지만 대부분의 다른 지역에서도 활동했다. 탈레반은 모습을 감추지도 않았으며, 여성 인권의식이 없는 일부 국민의 시각에서 그들은 부패한 정부 권력보다 더 올바르고 때로는 더 나은 방식으로 지역을 통치했다...  탈레반은 여러 도시를 공격하기 전에 먼저 국가 전체를 고립시켰다. 도시 간의 주요 통신선을 단절시키고, 30개의 국경검문소 대다수를 점령했으며, 정권의 수입원을 끊고 공급망 중에서도 특히 식량 공급을 통제했다. _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1.9月, <탈레반의 속전속결 아프간 장악, 그 비책은?>, p23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미국을 비롯한 연합군의 무리한 군사공격, 부패 무능한 정부, 농촌에 근거하여 지방정권화한 탈레반의 세력보존 등이 미군의 철수와 거의 동시에 아프가니스탄이 탈레반 수중으로 넘어간 여러 이유들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이것이 전부일까? 단순한 절차적 실패가 아닌 보다 근원적인 원인은 없는 것일까?


 아프가니스탄에서의 패배에는, 서구권의 각종 실패가 집약돼 있다. 우선, 미국이 베트남전 이후 그 어떤 무력 충돌에서도 승리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군사적 실패다. 또한 '테러와의 전쟁'이 더 해롭다는 점이 드러났다는 점에서 전략적으로 실패했다. 새로운 정권들의 심각한 부패, 참정권에 대한 불신 확산 측면에서 도덕적 실패이며, 침공을 한 사람이 결정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실패다. 현지 정부들이 무너지고 축출해야했던 세력들이 단기간에 최고 권력을 차지할 상황이므로 정치적으로도 실패한 것이다. _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아프가니스탄, 미국의 실패와 혼돈>, p29


 이에 대해서는 <지리의 힘 Prisoners of Geography: Ten Maps That Explain Everything about the World>의 저자 팀 마샬 (Tim Marshall)이 중국 지인과 나눈 대화가 답이 될 수 있다고 여겨진다. 자유, 평등, 인권이라는 이른바 서구의 가치들을 깃발에 걸고 자신에 이익에 맞게 행동하면서 '근대화' '문명화'라는 이름으로 상대에게 무리하게 강제하려 한 모든 행동들이 지난 세기 많은 비극들의 진정한 원인은 아니었을까. 강대국이 심판자의 입장에서처럼 이들을 단죄하는 것을 당연시 하는 '힘의 논리'가 국제질서에 존재하는 한, 언제든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은 재현될 수 있다고 여겨진다. 


 나는 인권이라 부르는 것들이 중국에 전면적으로 도입되었을 경우 어떻게 폭력과 사망이 만연하게 된다는 것인지를 묻는 내 질문에 대한 답으로 그에게서 엄중한 훈계를 들어야 했다. "당신들이 이해하지도 못하는 문화에서 당신들의 가치가 먹힐 거라는 생각은 대체 어디서 나온 겁니까?" _ 팀 마샬, <지리의 힘> , p69/660 


 미군 철수 후 한 달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아프가니스탄 소식은 이제 거의 들리지 않느다. 대신, 아프가니스탄을 둘러싼 주변국들의 치열한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이 새롭게 국제 뉴스에 올라온다. 


관련기사 : https://www.ytn.co.kr/_ln/0104_202109250521499096


 

인도가 참여한 쿼드(Quad) 정상 회담이 오늘 아침 뉴스에 등장했다. 쿼드의 성격이 대(對)중국 포위망임을 생각해본다면, 자연스럽게 인도의 라이벌이자, 중국의 우방인 파키스탄을 떠올리게 된다. 이 두 나라가 아프가니스탄의 동쪽과 남쪽의 인접국임을 생각해본다면, 일대일로(一帶一路)를 둘러싼 미-중 양 강대국의 새로운 그레이트 게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과거 영국의 거문도 점령(1885)이 그레이트 게임의 일환으로 벌어진 것처럼, 아프가니스탄을 둘러싼 그레이트 게임의 여파로 '한반도 정전선언' 제안에 대한 답으로 '한국의 쿼드 참여 희망'을 답으로 받은 우리의 상황은 아프가니스탄의 일이 결코 우리와 무관한 사건이 아님을 일깨운다...

 

카슈미르는 인도-파키스탄의 비대칭성을 상징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분할 당시부터 인도의 국력이 압도적이었다. 영토와 인구 등 모든 면에서 월등했다. 그 비대칭적 분할체제는 파키스탄의 경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비동맹 노선을 표방하며 '대국 大國 외교'를 추구했던 인도와는 달리 파키스탄은 인도와의 세력 균형을 위해서라도 적극적인 동맹 정책을 추진했다. _ 이병한, <유라시아 견문2> ,p350/970


 '중국'과 '파키스탄'의 '철의 형제'는 역사적 산물이다. 파키스탄은 비고산권 중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을 가장 먼저 승인한 국가 중 하나였다. 양국이 국교를 수립한 해는 1951년이다. 보답으로 중국은 핵무기 등 민감한 기술을 전파해 주었다.... 이제는 21세기 실크로드의 첫 삽을 뜨는 모델하우스가 되었다. 중국개발은행(CDB)과 중국공상은행 등은 금융을 지원하고, 기간산업을 담당하는 기업들은 인프라 사업을 펼치는 첫 번째 훈련장이 된 것이다. '철의 형제'는 '전천후 동반자'가 되었다. _ 이병한, <유라시아 견문1> ,p206/904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거서 2021-09-25 13:30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며칠 전에 대통령이 유엔 연설에서 한국전쟁 종전 가능성을 언급했다는 뉴스를 보면서 물밑협상이 진행되고 있음을 직감하였어요. 다음날 뉴스에서 미국의 반응 역시 긍정적이더군요. 종전의 당사국 입장에서 어떻게 대응할런지 생각해 보게 되더군요. 때마침 겨울호랑이 님이 좋은 글을 올려주셔서 도움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

겨울호랑이 2021-09-25 15:28   좋아요 4 | URL
저 역시 어제 북측과 미국에서 나온 긍정적 반응에 기대감을 가지게 됩니다. 다만, 오늘 아침에 쿼드 정상회담에서 한국도 함께 하길 바란다는 미국의 반응은 마음에 걸리네요... 단순한 희망인 것인지, 아니면 부드러운 압력인지 쉽게 판단하기 어렵지만, 쉽지 않은 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거서님, 평안한 주말 되세요. 감사합니다.^^:)
 

  황태연(黃台淵)의 <공자철학과 서구 계몽주의의 기원 Confucian Philosophy and the Origin of the Western Enlightenment>은 서구 근대의 출발점을 르네상스( Renaissance)와 종교개혁(Reformation)이전의 공자(孔子, BC 551 ~BC 479)의 유가(儒家)철학에서 찾는다. 유교사상을 바탕으로 유럽 세계보다 이미 먼저 근대화를 이룩한 중국 문물이 유럽으로 전해지면서(西遷) 비로소 유럽의 근대화가 시작되었다는 것이 책의 주된 요지다.


 이 책 <공자철학과 서구 계몽주의의 기원>으로 개시되는 서양 근대문명의 유교적 기원에 대한 탐색과 규명은 서구 계몽주의, '근대유럽', 그리고 보편사적 근대가 공자철학과 극동의 정치문화에서 유래한 역사적 사실을 밝히고 기존의 마르크스주의적/베버주의적 근대이론의 오류를 극명해 '새로운' 근대이론을 수립하는 출발점이다._ 황태연, <공자철학과 서구 계몽주의의 기원(상) >, p13


  그렇지만, 아편전쟁(鴉片戰爭, 1839 ~ 1842)로 반식민지 상태로 전락한 중국의 근현대사를 생각해 볼 때, 저자의 이러한 주장은 선뜻 동의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일례로 자본주의를 생각해보자. 막스 베버(Max Weber, 1864 ~ 1920)나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 ~ 1790)와 같은 사상가들은 자본주의가 유럽에서 꽃피울 수 있었던 배경으로 자유로운 시장경제와 프로테스탄티즘과 같은 자본주의 정신을 들고 있는 반면, 중국을 비롯한 동양에는 이러한 사상과 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발달되지 않았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이러한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에 대해 저자는 '미발달'이 아닌 '다른 안의 선택'이라는 관점으로 비판한다. '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안 한' 것이라는.

 

중국에서 대공업자본주의가 불가능하게 된 이유는 일단 매뉴팩처 생산의 경제적 한계와 질곡을 혁신기술로, 즉 정교한 역학적 자동화기계로 분쇄, 돌파하는 또 한 번의 기술혁명을 일으키지 - '못한' 것이 아니라 - '않고' 다른 길을 선택한 데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다른 길은 다름 아니라 '자호 字號(브랜드) 상인 주도의 광역 네트워크 자본주의'였다. 공장제는 기술혁신에 기초한 노동절약적 생산방식인 반면, '자호상인 주도의 광역 네트워크'는 경영혁신에 기초한 자본절약적 생산, 분배방식이다. 이 다른 선택의 원인은 중국인들의 완전한 사회해방, 인구폭발과 노동력과잉, 중국 상품에 대한 유럽의 수요의 소멸로 인한 중국시장의 축소 등이었다._ 황태연, <공자철학과 서구 계몽주의의 기원(상) >, p531


 저자는 결코 동양이 서양에 뒤떨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앞선 선진 문명이었고, 서구 문명은 '동방의 빛'을 통해 무미몽매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책 전편을 통해 서술한다. 그리고, 이로부터 기존 서구 중심의 근대관이 아닌 새로운 근대관을 제기한다.


 '송대 이래의 중국적 근대성의 서천 西遷'이라는 가설이 옳을 것으로 입증되려면 중국에서의 '근대의 발단'이라는 사실이 비교역사학적으로 증명되고 이론적으로 논증되어야 할 것이다. 세계사적(보편사적) 의미를 갖는 - 한국/중국/일본의 역사학에서 보통 '근세'라고 불리고 서양에서 '초기근대(the early midemity)'라고 불리는 - 보편사적 의미의 '초기근대'가 진정 중국에서 최초로 개시되었는가? 앞서 여러 번 시사했듯이, 제국주의시대 일본이 동양사학자 나이토고난(內藤湖南)은 1920년대에 이미 이 물음에 대해 확실하게 '그렇다'고 대답해놓은 바있다. 그는 중국이 9세기에서 13세기에 걸친 시기, 특히 송대(960~1279)에 일어난 심원한 변혁을 "근세의 발단"으로 규정했다. 이것이 그의 이른바 '송대 이후 근세설 宋代以後近世說'이다._ 황태연, <공자철학과 서구 계몽주의의 기원(상) >, p473


 일단 유의해야 하는 근본적으로 중요한 사실은 송대에 인류역사상 최초로 발단한 '근세'가 공자철학 및 송대의 순수한 유교정치와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송대 근세를 개창한 북송 대개혁가 왕안석의 신법과 개혁정책에 대한 '정학 正學'운동 주도세력의 정치사상적 영향은 "심대했기" 때문이다._ 황태연, <공자철학과 서구 계몽주의의 기원(상) >, p473


 구체적으로 <공자철학과 서구 계몽주의의 기원>에서는 중국의 정치철학이 유럽으로 본격적으로 유입되는 시점을 송(宋)대 이후로 바라본다. 저자는 특히 당대의 정치가 왕안석(王安石, 1021 ~ 1086)의 개혁을 나라 전체의 구조를 변화시킬 정도의 혁명으로 평가하고, 이 개혁안 안에서 '보편적 근대성'을 발견한다. 이는 나이토고난과 같은 관점이지만, 저자는 이로부터 한걸음 더 나아간다.


 나이토고난이 중국의 근대화 노력이 송대 이후 쇠퇴했다고 평가하는 반면, 황태연 교수는 청대에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졌으며, 오랜 기간 세계의 중심은 중국이었음을 강조한다. 또한, 중국문화의 전파가 세계 여러 지역에 영향을 미쳤지만, 그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거리가 가까운 극동지역이 강한 영향을 받았기에, 오랜 기간 극동 아시아 전체가 유럽보다 여러 면에서 앞서 있었음을 강조한다.


 나이토고난의 송대이후근세론을 수용하되 그의 원/명/청대 노쇠설을 버리고 청대까지 중국이 계속적 발전론으로 수정해야 한다. 이 수정된 역사관에 따라 중국의 역사시대 구분을 세계적 차원에서 재조명하면, 오늘날 동아시아에서 '근세'는 '근대'와 구분되어 '초기근대(early modernity)'로 재再정의된다. 그러면 '근세'는 '근대의 전기 前期'로 이해되는 반면, '근대'는 '높은 근대(high modernity)'로 바꿔 부르고자 한다. 그리고 중국의 명/청대와 17~19세기 조선을 '근세'(즉, 낮은 근대)의 '마지막 단계'(최후단계) 또는 '성숙단계'로 규정한다._ 황태연, <공자철학과 서구 계몽주의의 기원(상) >, p524

 

 극동아시아의 근대화와 관련한 저자의 관점은 구한말 대한제국의 역사를 다룬 책에서 잘 드러난다. 이 책들에서 우리는 곧 나라를 빼앗길 껍데기뿐인 제국이 아닌 일본 다음의 근대화를 추진하는 역동적인 '대한제국 大韓帝國'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와는 또다른 관점의 구한말 역사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정리하도록 하자.

 

이상의 <공자철학과 서구 계몽주의의 기원>의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과연 서구 근대 정신인 계몽(啓瞢)의 빛(light)은 어디에서 왔는가?'에 대한 답이라 여겨진다. 이러한 빛의 기원은 서구 문명 내부인 그리스 로마 문명이 아닌 외부에서 왔으며, 그 뿌리는 공자를 비롯한 유가 철학이라는 것이 책의 요지다. 이러한 주장이 낯선 것이 사실이지만, 근대 철학자인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 ~ 1716)나 크리스티안 볼프(Christian Wolff, 1679 ~ 1754)가 중국 철학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충분히 고려할 여지가 있어 보인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가 동양철학과 서구 근대 사상을 비교하며 음미한다면, 이러한 노력 자체로 충분히 의미가 있지 않을까. 


 저자는 <공자철학과 서구 계몽주의의 기원>에서 개략적으로 전개한 논지를 보다 세부적으로 <근대 영국의 공자숭배와 모럴리스트들>, <근대 프랑스의 공자열광과 계몽철학>, <근대 독일과 스위스의 유교적 계몽주의>에서 펼치는데, 아직 여기까지는 선뜻 손이 미치질 못하고 있다. 최대 1,000 페이지에 달하는 책들이어서 적지 않은 페이지의 부담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들이 모두 긴밀한 관련이 있기에 큰 흐름을 잡고 세부 차이점을 위주로 정리하면 불가능한 작업은 아닐 듯하여 추후 계획으로 추가하며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4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레이스 2021-06-13 23:1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1000페이지...흡
여기에 댓글 달 실력은 안되고...
애들 말로
그냥 짱입니다!^^

겨울호랑이 2021-06-13 23:29   좋아요 3 | URL
<공자철학과 서구 계몽주의의 기원>이 다른 책들의 서론 격에 해당하는데, 아직 다 읽지는 못했지만 큰 주제는 여기에서 거의 언급된 것 같아요. 다소 반복되는 느낌도 있지만,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역사적 반박‘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생각합니다. 책에 정말 많은 사상가들의 주장이 정리되어 있는데, 따라가기에도 벅차네요. 독자가 읽기도 힘든 책을 쓴 저자들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모나리자 2021-06-14 11: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철학과 역사물의 향연!! 멋지십니다~
정말 쨩이세요!!

겨울호랑이 2021-06-14 11:22   좋아요 3 | URL
황태연 교수의 책들을 관통하는 주제가 ‘근대의 기원‘이고, 각 권들은 세부적인 논증과 역사속에서의 실재로 구성되어 있다고 이해됩니다. 독자들이 본문에 언급된 사상가와 역사적 사실을 다 알면 좋겠지만 쉽지 않은 일이니만큼, 전체적인 흐름을 잡고 비교해 읽는다면, 자칫 딱딱해질 수 있는 독서를 자기 주도적으로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집니다. 그런 면에서 바라볼 때 황태연 교수를 비롯한 석학들의 내공은 정말 엄청남을 느낍니다.^^:)

Redman 2024-04-26 02: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명의 수용과 전파 과정에서 수용자는 자신의 맥락과 관심사에 따라 타 문명권의 정보를 편의적으로 재구성하죠. 서양인들도 마찬가지로, 그들이 중국 철학을 읽었다고 하더라도 자신들의 관심사와 기존 사상적 전통에 따라 재구성한 중국을 받아들인 거겠죠.

계몽 사상가들이 청이나 중국 사례를 인용하고 찬양한 건 맞으나, 그건 성서의 역사성을 부인하거나 유럽 절대주의 군주와 가톨릭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기 위해서인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그리고 비단 중국만이 아니라 타히티, 하와이, 북미의 휴런족 같은 멀리 떨어진 나라나 민족에 대한 여행기가 18세기 유럽에서 인기를 끌었는데, 이들에 관한 언급은 유럽의 지배적 관념을 상대화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기 위한 선택지를 제공했습니다. 중국, 공맹만 더 특별한 게 아니라, 중국은 유럽 사상가들에게 그저 하나의 선택지에 불과한 것이었다고 보는 게 더 타당합니다. 읽어보지 않았지만 볼프나 라이프니츠도 그런 맥락에서 볼 수 있겠죠.

애초에 자연법 전통, 기독교 전통, 공화주의 전통 등등 복잡한 사상의 지형과 전통, 패러다임이 더 영향을 미쳤다면 미쳤지, 단순히 중국철학을 읽었다고, 공자를 언급한다고 그 모든 사상가가 중국철학의 신봉자이며 근대는 동양에서 왔다고 하는 황태연의 주장은 지나친 단순화이자 편향적 독법의 소산이며 지난 반 세기 동안 축적된 탁월한 연구 성과들을 무효화해버리는 주장 같네요. 말하자면, 한국에서 샌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할리우드 영화가 천만영화로 등극했다고 21세기 한국문명의 기원은 미국에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논리 같습니다.

<국부론> 검색하다가, 그동안 궁금했던 황태연의 주장을 겨울호랑이님의 글을 읽고 드디어 접했네요. 저자가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만 읽었어도 저런 주장은 안 할텐데

겨울호랑이 2024-04-26 06:02   좋아요 0 | URL
유럽의 계몽사상에 영향을 미친 수많은 대안 중 하나라는 Redman님 말씀에 충분한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주역>이 라이프니츠에게 가져다 준 영향 등을 생각해본다면 저로서는 영향력에 대해 단정적으로 결론짓기도 어렵네요. 제가 아직 잘 몰라서겠지요... 글을 읽으며 서구 계몽사상에 미친 중국과 다른 문명들의 영향력에 대해 보다 깊이 알 수 있다면 문명의 우위에 대해 자리매김하기보다 오래전부터 문명 간의 교류가 물자 뿐 아니라 사상면에서도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고유한 전통이라는 틀이 아닌 교류와 수용을 통한 발전이라는 흐름의 관점에서 문명사를 바라봐야할 것 같습니다. 좋은 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