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전기/ 전자부문 '공룡 기업'인 지멘스가 바삐 움직인다. 지멘스는 신재생에너지 시대에 맞춰 사업성이 떨어지는 화력발전 사업 부문 7천명을 줄이는 등 강도 높은 구조고정을 추진하고 있다. 조 케저 지멘스 회장은 대형 유조선인 지멘스를 성능이 뛰어나고 유연한 소형 선박으로 구성된 선단으로 바꾸겠다고 했다. 그가 지멘스라는 대기업을 작고 민첩한 단위로 분할하려는 이유는 영미계 추자자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조 케저의 위험한 프로젝트는 지멘스 노동자들의 격렬한 저항을 받고 있다. 내부에선 그가 독단적으로 지멘스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비판도 나온다.(p61)


 Economy Insight 2월호 기사에는 독일의 최대 엔지니어링 회사인 지멘스(Simens)가 생존을 위해 기업 확장 대신 소규모 사업 단위 운영을 선택하면서 동시에 인력감축을 통한 구조조정을 실시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격변하는 시대 변화에 살아남기 위해 변신을 추구하는 지멘스의 전략은 얼핏 보면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연상시키지만, 구체적인 내용면에서는 다소 차이가 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Small is beautiful : a study of economics as if  people mattered>에서 E.F. 슈마허(Ernst Friedrich Schumacher, 1911 ~ 1977)는 경제분야에서 거대주의(gigantism) 대신 최소주의(Minimalism)를 지향하며, 새로운 인식의 전환을 말한다. 그리고, 최소주의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으로 소비, 생산, 분배 측면에서 '가치관의 전환', '교육'과 '중간기술', '공동소유'의 중요성을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는 강조한다. 


1. 소비 : 가치관의 전환과 교육


 가. 가치관의 전환


 저자는 경제학을 파생된 사유체계인 메타경제학으로 정의하면서, 이를 위해 경제학을 인간적인 측면과 외부적인 측면(자연적인 측면)에서 접근을 시도한다. 인간적인 측면에서는 적절한 소비 패턴과 인간 노동에 의한 생산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삶을 보다 만족스럽게 꾸려갈 수 있다. 외부적인 측면에서 우리의 자연(自然)에 대한 입장 변화가 필요하다. 개발 대상으로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을 재생(再生) 가능성 측면에서 접근했을 때 우리 삶은 바꿔질 수 있음을 저자는 말한다.


경제학은 '일정한' 틀 내부에서만 정당하면서도 유용하게 작동하는데, 이 틀은 완전히 경제적 계산 영역 외부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경제학이 제 발로 서 있는 학문이 아니라거나 '파생된' 사유체계, 즉 메타경제학(meta-ecomomics)으로부터 파생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p63)


서구의 물질주의라는 메타경제적 토대를 버리고 그 자리에 불교의 가르침을 수용한다면 경제법칙이나 '경제적' '비경제적'이라는 개념은 어떻게 될 것인가?(p70)... '올바른 생활(Right Livehood, 正命)은 불교의 팔정도(Noble Eightfold, 八正道) 가운데 하나이다.(p71)... 불교 경제학은 물질주의자의 부주의(heedlessness)와 전통주의자의 부동성(immobility) 사이에서 올바른 발전 경로인 중도, 즉 '올바른 생활'을 발견하는 문제이다.(p82)


모든 일들은 생산자로서의 인간이 '비경제적으로 사치'할 만한 여유가 없으며, 그래서 소비자로서의 인간이 가장 간절하게 원하는 바로 그 필수적인 '사치품' -건강, 아름다움, 영속성-을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을 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비용이 필요하며, 부유해질수록 그 비용을 감당할 '여유'가 점점 더 없어진다.(p148)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을 만큼 값이 싸며, 소규모 이용에 적합하고, 인간의 창조적 욕구에 부합될 수 있는것. 이러한 세 가지 특성으로부터 비폭력이 생겨나고, 영속성이 보장되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출현한다.(p47)


나. 교육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서 영속성이 강조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서 변화되어야 할 가치관의 전환 역시 전달이 중요하다.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가치관의 전환이 확산되었을 때 우리의 삶이 구체적으로 달라질 수 있게 된다. 


근대 세계는 근대 형이상학의 산물이며, 이 형이상학은 근대 교육을 틀지웠으며 이 교육은 다시 과학과 기술을 산출했다. 그러므로 형이상학이나 교육까지 언급하지 않더라도, 근대 세계를 만드는 것은 기술이라고 말할 수 있다.(p187)

오늘날 과학 기술의 진보로부터 생겨난 문제들을 처리하는 데 있어 교육의 힘에 의존하는 바가 그렇게 크다면, 교육에는 스노경(Charles Percy Snow, Baron Snow, Kt., CBE, 1905 ~ 1980)이 주장하는 이상의 그 무엇이 존재해야 할 것이다. 과학 기술은 노하우(know-how)를 생산하지만, 노하우 자체는 아무것도 아니다.(p104)... 교육이 무엇보다도 먼저 가치관(ideas of value), 즉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관념(ideas)을 전달해야 할 것이다.(p105) 


3. 생산 : 중간기술(대중에 의한 생산)


 저자는 생사 측면에서는 자본재(기계)에 의한 대량 생산이 아닌, 대중에 의한 적정량의 생산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를 '중간 기술'로 이름지으면서, 해외 원조 역시 자본재 수출이 아닌 중간 기술의 수출이 이루어졌을 때 피원조국은 바람직한 경제 체제를 구축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간디가 말했듯이, 대량 생산이 아니라 오로지 대중에 의한 생산만이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다.(p196)... 대량 생산 기술은 본질적으로 폭력적이며, 생태계를 파괴하고 재생될 수 없는 자원을 낭비하며,인성을 망쳐놓는다..대중에 의한 생산 기술은 근대의 지식과 경험을 가장 잘 활용하고, 분산화를 유도하며, 생태계의 법칙과 공존할 수 있고, 희소한 자원을 낭비하지 않으며, 인간을 기계의 노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유용하도록 고안된 것이다... 필자는 이를 중간 기술(ntermediate technology)라 명명한 바 있다.(p197)


중간 기술은 대량 생산이 아니라 대중에 의한 생산에 기여한다... 필자는 기술 발전에 새로운 방향을 제공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 방향은 기술을 인간의 실질적인 욕구에 맞게 재편하는 것이며, 이는 또한 인간의 실제 크기에 맞추는 것이기도 하다. 인간은 작은 존재이므로, 작은 것이 아름답다. 거대주의를 추구하는 것은 자기 파괴로 나아가는 것이다.(p204)


4. 분배 : 공동소유


 저자는 책을 통해 분배면에서는 '공동소유'를 강조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제점은 민간대기업이 공공부문의 많은 부문을 이용하면서도 이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래서, 이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공공기관에 의한 민간대기업 소유를 제안한다. 


공동소유(commom ownership)나 공동체는 이윤 분배나 공동 경영이나 집단 소유(co-ownership), 또는 개인이 공유기업에서 부분적인 이해 관계를 보일 수 있는 온갖 형태(scheme)로부터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이다. 이것들은 공유(woning thing n commom)로 나아가는 것이며, 그래서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공동소유는 독특한 장점을 갖는다.(p352)


필자는 공공기관이 민간대기업의 배분이윤 중 절반을 수령해야 하며, 그 방법은 이윤세가 아니라 기업 주식의 50%를 소유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가정할 것이다.(p361)... 이는 민간 부문의 유연성을 관료적 경직성(ponderousness)으로 대체하지 않더라도 대기업의 소유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 이 구상은 점진적이면서도 실험적인 방식으로 도입할 수 있다. 즉 가장 큰 기업에서 출발해서, 기업이라는 요새에서 공익이 충분히 존중되고 있음을 확인할 때까지 점차 규모가 작은 곳으로 나아가는 것이다.(p369)


[사진] 몬드라곤 협동조합(자료출처 : 동아일보)

저자가 강조한 이러한 공동소유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를 우리는 몬드라곤(Mondragon)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조그만 협동조합수준을 넘어 이제는 그룹(group)으로까지 성장한 몬드라곤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슈마허가 강조한 생산과 분배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동시에, 저자의 이러한 의견은 국내 주식 시장에 20% 넘게 투자하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소유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는 국내의 국민연금의 운용현황의 문제를 생각하게 만든다. 노후 소득이 없는 이들의 주요 소득원을 국내대기업의 운명과 연동시키는 것이 옳은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기업에 운영에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현실은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제시된 공동소유의 모습과는 같은 듯 분명 다르다.



[사진] 몬드라곤 그룹 규모(자료출처 : YTN)


[사진] 국민연금 자산군별 기금규모 (자료출처 : 연합뉴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비슷한 주제를 다룬 다른 책들보다 깊이 있게 느껴지는 것은 그속에 담겨있는 철학(哲學)의 깊이 때문이다. 책의 본문 한 장(章)에서 구체적으로 '불교 경제학'을 말하고 있지만, 불교에만 한정되지 않는 인류 보편적 사상이 담겨있다. 일례로 노자(老子, BC604 ? ~ ?) 의 <도덕경 道德經>과 맞닿아 있는 부분은 아마도 다음 구절일 것이다.

80章 小國寡民


小國寡民, 使有什佰之器而不用, 使民重死而不遠徙,

소국과민, 사유십백지기이불용, 사민중사이불원사,

雖有舟輿, 無所乘之, 雖有甲兵, 無所陳之,

수유주여, 무소승지, 수유갑병, 무소진지,

使人復結繩而用之, 甘其食, 美其服, 安其居, 樂其俗,

사인부결승이용지, 감기식, 미기복, 안기거, 낙기속,

隣國相望, 鷄犬之聲相聞, 民至老死不相往來.

인국상망, 계견지성상문, 민지노사불상왕내.


나라는 작고 백성은 적으며, 편리한 기계가 있어도 사용하지 않고,

백성들은 죽음을 중히 여겨, 멀리 옮겨 다니지 않는다. 

배와 수레가 있지만 탈 일이 없고, 무기가 있지만 쓸 일이 없다.

사람들로 하여금 다시 새끼를 엮어 쓰게 하고 먹던 음식을 달게 여기고, 

입던 옷을 좋게 여기며, 살던 곳을 편안히 여기고, 각자의 풍속을 즐거워하게 하니,

이웃 나라가 서로 바라보이고, 닭 울고 개 짖는 소리가 들려도 

백성들은 늙어 죽을 때까지 돌아다니지는 않는다. (p314)


 그렇지만, 슈마허의 '작은 것'은 노자(老子, BC604 ? ~ ?)가 말한 소국(小國)과는 결을 조금은 달리 하는 것 같다. 노자가 <도덕경>을 통해 '최소한의 문명(文明)'을 강조한다면,  저자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적절한 문명의 유지'를 강조한다고 생각되기 때문이지만, 아마도 이 부분은 <도덕경>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소비자로서의 인식전환, 중간 기술에 의한 노동(labour) 중심의 생산, 공동소유로 대표되는 분배를 강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이미 1970년대 주장한 대부분의 논의는 현재도 진행형이다. 과거보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는 요즈음 <작은 것이 아름답다>가 주장하는 내용이 설득력있게 다가온다는 면에서 이 책은 경제학의 현대 고전(古典)이라 여겨진다.


PS. <도덕경>은 그런 책이 아니라는 강신주 박사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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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25 19: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25 19: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설 연휴 직전 한국GM에서  군산공상 폐쇄를 일방통보하면서 군산지역 경제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여야 정치권에서는 GM 경영진을 만나 공장폐쇄등 관련 현안에 대해 협의를 하고 있지만, 문제 해결은 쉽지 않아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 야권인 자유한국당에서는 GM문제를 낮은 생산성문제로 말하면서 노조를 비판하고 있는 실정이다.


관련기사 : 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590394


과연 이러한 주장이 맞는 주장인지 살펴보자. 먼저, 우리나라의 노동생산성은 낮은가? 단정적으로 말하자면 낮은 수준이다.


[그림] 2015년 기준 OECD 주요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출처 : e-나라지표 http://www.index.go.kr/potal/stts/idxMain/selectPoSttsIdxSearch.do?idx_cd=2890&stts_cd=289005



시간당노동생산성 : 1인당국내총생산/총노동시간


 그래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는 시간당 노동 생산성이 약 30달러 수준으로 65달러 수준에 달하는 미국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의 노동생산성이 낮은 것은 사실이다. 다만, 우리는 노동생산성에서 분모에 주목해야 한다. 분자가 되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에서 GDP는 일정 기간 동안 한 국가에서 생산된 재화와 용역의 시장 가치를 합한 것을 의미하며 보통 1년을 기준으로 측정하게 된다. 생산을 위해서는 자본, 노동, 기술 등 여러 요소가 투입되는데, 노동은 이들 여러 요소중 하나일 뿐이다. 이를 사전에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노동생산성 勞動生産性 labour productivity


어떤 생산부문 또는 어떤 생산자의 노동의 생산력이나 생산성은 일정 시간 내에 생산되는 생산물의 수량에 의해 측정된다. 다만 이 경우 노동의 강도는 일정불변으로 가정한다. 노동의 생산력을 특히 규정하는 것은 노동자의 숙련의 평균 정도, 과학 및 그 기술적인 응용가능성의 발전단계, 생산과정의 사회적 결합, 생산수단의 범위 및 작용능력, 자연적 사정(인종, 농산물의 풍흉, 광물의 매장량 등)이다. 노동의 생산력이 변하여도 일정 기간내에 생산되는 상품의 총가치는 영향이 없다.


 노동생산성을 결정하는 것은 노동자의 숙련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본과 기술은 물론 사회적, 지리적 요인도 고려된 사회의 생산물을 통해 노동생산성을 측정하기 때문에, 단어 그대로 '노동의 생산능력'으로 해석되어서는 곤란하다. 특히, 시간당노동생산성의 경우 1인당 국내총생산을 총 노동시간으로 나누게 되면 생산성은 더욱 낮아지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OECD에서도 두번째로 긴 노동시간은 측정단위에서 분모가 되기 때문에 생산성을 높이기보다 오히려 낮추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관련기사 :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8/15/0200000000AKR20170815071000002.HTML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경영자들은 낮은 생산성의 문제를 노동자의 숙련도 문제로 돌리고, 낮은 숙련도로 노동투입시간을 늘리는 것과 해외 이전을 합리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경영자들은 노동생산성문제로부터 자유로운가?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 ~ 1790)의 <국부론 (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의 유명한 분업(分業)과 관련한 문단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나는 이러한 종류의 작은 공장을 본 적이 있다. 거기에는 10명만이 고용되어 있었고, 따라서 약간의 노동자들은 두세 가지 서로 다른 조작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매우 빈곤했고, 따라서 필요한 기계를 거의 가지지 않았지만, 그들은 힘써 일할 때 하루 약 12파운드(5.4kg)의 핀을 만들 수 있었다. 1파운드는 중간 크기의 핀 4,000개  이상이 된다. 그러므로 10명이 하루에 48,000개 이상의 핀을 만들 수 있고 한 사람은 하루에 4,800개의 핀을 만든 셈이 된다. 그러나 그들이 각각 독립적으로 완성품을 만든다면, 그리고 그들 중 누구도 이 특수 업종의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다면, 그들 각자는 분명히 하루에 20개도 만들 수 없을 것이며, 어쩌면 하루에 1개도 만들 수 없을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상이한 조작들의 적당한 분할과 결합이 없다면, 그들 각자가 지금 생산할 수 있는 것의 1/240은 물론 아마 1/4,800도 만들 수 없을 것이다.(p9)


 상이한 조작들의 적당한 분할과 결합에 따라 노동의 생산성이 극명하게 달라지는 사례를 우리는 <국부론> 속에서 이미 확인할 수 있다. 이 경우 노동생산성의 차이는 노동자의 성실성보다는 노동력의 적절한 배치에 달려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결정은 노동자가 아닌 경영자가 하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경영자에게는 일반 노동자보다 많은 보수가 주어지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낮은 생산성에 대한 책임을 노동자 또는 노조에게 돌리는 것은 비겁한 변명 수준을 넘지 못한다.


 결국, 낮은 노동생산성 문제는 노동자만의 책임이 될 수 없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자가 자기계발을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노동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 회사에서는 경영자의 노력이, 사회 전체의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낮은 노동생산성을 노동자만의 문제로 돌리는 것은 사실의 왜곡이라 볼 수 밖에 없다. 공군 파일럿 1명의 전투력이 육군 보병 1명의 전투력보다 높다고 해서, 파일럿이 자신이 조종하는 전투기를 제공하지 못한다. 이를 제공하는 것이 나라라면,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은 기업과 국가의 몫이다.


 GM이 단계적으로 철수하는 문제는 복잡한 문제다. 글로벌 기업의 세계전략을 '낮은 노동생산성'의 문제로 돌리는 것은 지나치게 문제를 단순화하는 것이다. 백보 양보해서 낮은 노동생산성 문제라고 하더라도 이는 적절한 철수 이유가 되지 못한다. 낮은 노동 생산성의 책임은 경영진에도 분명 있기 때문이다. 높은 경영진 보수 문제를 제외하고 노동생산성의 정의(definition)만 놓고 보더라도 그렇다. 정치권에서 노동생산성을 언급한다면 보다 정확한 의미를 파악한 후 사용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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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22 13: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22 1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02-22 20: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노동생산성 수준이 낮은건 노동자가 아닌 경영층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에게 생산성 잣대를 들이대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일인입니다. ㅎㅎ
넘 비인간적이잖아요, 우리가 기계도 아닌데...ㅠㅠ

겨울호랑이 2018-02-22 21:15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거슬러 올라가면 문제는 모든 것을 계량화하여 측정하는 과학적 사고 역시 문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정량화된 근거와 자본이 결합한 자리에는 인간적인 면이 배제되는 것 같네요... 그런면에서 칼폴라니는 좋은 대안을 제시하는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서니데이 2018-02-24 18: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즐거운 주말 기분 좋은 토요일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18-02-24 19:41   좋아요 1 | URL
^^: 서니데이님도 행복한 주말 되세요!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8년 1월호에는 비트코인과 관련한 특별부록이 제공되습니다. 여기에 언급된 내용을 중심으로 최근 투기광풍이 불고 있는 비트코인에 대한 전망에 대한 내용을 이번 페이퍼에서 정리해봅니다.


1. 암호화폐와 비트코인


암호화폐의 한 종류인 비트코인의 핵심 기술은 암호화 프로토콜과 공개장부의 업데이트로 요약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을 블록체인(Block Chain)기술이라고 부른다.


'최근 투기 광풍에 휩싸이며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는 암호화폐는 암호화 기술로 신뢰 기반을 구축해 이른바 "제3자 신뢰 주체" 없이도 가치가 이전될 수 있는 혁신적인 수단이다. 중개자 없이 거래되려면 이중지급 문제를 극복하는 노력이 구체화되어야 한다. 이를 해결한 것이 바로 공개 열쇠와 사용자 개인 열쇠(private key)로 구성된 암호화 프로토콜과 다수가 참여하는 작업증명 방식의 인증과정이다. 모두가 참여하는 공개장부의 업데이트 과정에서 누구도 손대기 어려운 거래가 완성되는 것이다. 이는 기존 보안 개념인 "금고와 보초" 대신 "공개와 참여" 개념을 도입한 역발상의 혁명적 사고 전환이다.(p8)'


2. 블록체인 기술


  '거대 분산 장부 시스템'인 블록체인 기술은 아직 개발 초기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섣부른 낙관도 비관도 하기 어렵다. 다만, 향후 여러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블록체인 기술은 '4차 산업 혁명 시대'를 이끌어가는 기술로 일반에 인식되고 있고, 자칫 기술을 선점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비트코인 거래 규제를 반대하는 목소리에 힘을 싣는다.


 '금융 분야를 중심으로 시작된 블록체인 기술의 활용은 이제 제조업, 공공서비스 등 사회 전 영역으로 확산될 것이다. 블록체인 기술이 모든 사회문제를 해결해주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블록체인 시스템의 확장성과 안정성에 비판적인 의견도 여전히 있다. 블록체인 기술이 보편적으로 적용되기에는 현실적인 기술 검증이 필요해, 아직은 제약 사항이 많다.(p78)... 블록체인 기술의 본질은 신뢰성과 투명성에 있다... 블록체인 기술은 지능정보 기술의 신뢰성과 투명성을 제고하는 융합 기술이며, 산업별 디지털 혁신 전략과 결합해서 새 정보통신기술 서비스를 탄생시킬 것이다. 대량생산기계 중심의 20세기와는 달리, 사람이 중심이 되는 21세기에 블록체인은 매우 적합한 기술이다.(p79)'


3. 비트코인 혁명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블록체인이 가져다 주는 긍정적인 측면은 금융사에 의존하지 않고, 참여자 모두에게 정보가 공개되는 '개방형 구조'다. 현재 금융통화제도가 중앙은행(한국은행)과 민간은행의 통화공급에 일방적으로 의존하는 구조인 반면, 비트코인은 개인이 채굴(mining)을 통해 통화를 공급할 수 있고, 이러한 통화에 대한 정보를 모두와 공유하기 때문에 '참여형 경제구조'를 가능케 한다는 장점이 있다.


 '비트코인 혁명은 가능성이 무한한 역사적 혁신이다. 은행의 금융서비스에 접근하기 어려운 고객군에는 단순한 기회 이상의 의미가 있다. 가장 폐쇄적인 금융 시스템에 모두가 참여하게 해주는 개방형 플랫폼 기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존 신뢰의 토대에 의존하지 않는 독자적 기술이라는 점에서 사회 구성원들을 의아케 하는 구석도 있다. 그만큼 암호화폐는 법정화폐가 대표하는 신뢰체제와 확연히 구분되는 혁명적 대안이다. 블록체인 기반의 암호화폐가 던지는 핵심 메세지는, 단순히 기술혁신을 넘어 기술로 입증되고 생성되는 신뢰의 토대 아래 민간 주도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이다.(p9)'


[사진] 블록체인 (출처 : 매일경제)


4. 비트코인 거래소의 위험


 이와는 반대로 비트코인 거래소에도 거래 지연 위험과 거래소 관련 위험이 따른다. 실제로 얼마전 우리나라 비트코인거래소인 '유빗'이 해킹으로 인해 파산당한 사례가 있다.


 '비트코인 거래소는 두 가지 주요 위험을 안고 있다. 첫째, 거래 지연에 따른 가격 변화와 교환 실패, 사기 위험이다. 실제 암호화폐의 가격 변동폭  문제는 법정화폐의 거래소 이체 업무와 연관된다... 또 다른 주요 사안은 거래소 관련 위험이다. 소비자 보호 차원의 보안 문제와 거래소 파산의 가능성이야말로 암호화폐의 미래를 위협하는 가장 심각한 위험 요인이다.(p11)'


관련기사 : http://biz.khan.co.kr/khan_art_view.html?artid=201712191607001&code=920100


5. 비트코인과 금융 투기


[사진] 비트코인 가격 현황( 출처 : https://blockchain.info/ko/charts/market-price?timespan=all)


 비트코인은  2014년부터 1,000달러 수준에서 등락을 거듭하다가 2017년에 들어 급등하여, 2017년 12월에는 최고 19,000달러까지 가격이 치솟아 극심한 투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비정상적인 비트코인의 거래 속에서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투기'를 연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프랑스의 역사가 브로델(Fernand Braudel, 1902 ~ 1985)은 그의 저서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Civilization and Capitalism>를 통해 암스테르담 증권 시장과 투기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6. 금융 투기 : 암스테르담의 증권 시장


'암스테르담에서 새로운 것이 있다면 그 거래량, 유동성, 공급성, 투기의 자유 등이다. 투기는 거의 광적으로 일어나서 투기를 위한 투기가 되었다. 이런 것을 보여주는 현상으로서 1634년 경에 네덜란드를 열광케 한 튤립 광증(tulipomanie : tulip mania)이 있는데 이때 그 자체로는 "아무 가치가 없는" 튤립 구근 하나를 "새로운 마차 1량, 회색빛 말 2마리, 마구 일체"와 바꾸기에 이르렀다는 점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p132)'


'투기꾼은 그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팔기도 하고 결코 보유하지도 않을 것을 구입한다. 이것을 소위 "백색(en blanc)"매매라고 한다. 정리 기간이 되면 이런 것들은 손실 또는 이익으로 결판이 난다. 사람들은 이 작은 잔액을 결제하고 나면 이 투기 놀음은 다시 계속 된다. 또 다른 종류의 것인 프리미엄(prime) 거래는 약간 더 복잡한 종류의 것이다. 사실 주식은 장기적으로 오르게 되어 있으므로, 투기란 단기적인 움직임에 관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순간적인 가격 변동을 노리고 있어야 하는데, 이것은 뉴스 하나만으로도 일어날 수 있다... 암스테르담의 투기의 액수가 대단히 크고 폭발적이었으며, 더구나 초기부터 그것이 상대적으로 엄청난 규모였다는 것은 여기에 대자본가만이 아니라 소시민들도 가담했다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 그중 어떤 광경은 마치 오늘날 경마의 마권 사는 모습과도 비교할 수 있으리라.!"'(p135)'


 '이러한 광경은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내가 틀린 것이 아니라면, 이것은 거래소가 소액 전주(錢主), 소액 투자가의 주머니에서 어떻게 돈을 길어오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다.(p136)'


 주식거래가 일반화되지 않은 17세기 증권시장의 모습을 브로델은 소액 투자자의 주머니에서 거래소로 돈이 옮겨가는 과정으로 인식하고 있다. 비록, 비트코인 시장에서는 거래소가 하는 역할이 상대적으로 미미하지만, 비트코인의 가격이 폭락하는 날 소액투자자의 부(富)는 누군가에게로 아마도 이전될 것이다. 브로델과 같은 역사가가 아니더라도 많은 금융전문가들은 비트코인의 위험을 다음과 같이 경고하고 있다. 


 "비트코인은 사기다. 끝이 안 좋을 것이다."(Bitcoin is a fraud. It won't end well.) - 제이미 다이먼(제이피모건체이스 JP Morgan Chase, 최고경영자 CEO) - 


 "장기적 관점에서 비트코인의 기반 기술은 번영하겠지만, 비트코인의 가격은 무너질 것이다. 이것이 나로선 최선의 추론이다." - 케네스 로고프(美 하버드 대학 교수) -


 "진짜 거품이다. 비트코인의 가치는 측정할 수 없다. 비트코인은 가치를 창출하는 자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워런 버핏(버크셔 해서웨이 Berkshire Hathaway ,최고 경영자 CEO) - 


 "거대한 투기거품이다." (A gigantic speculative bubble.)  -누리엘 루비니 (美 뉴욕대학 교수) - 


 "비트코인은 오로지 편법의 잠재력과 관리, 감독 부재 덕분에 성공하고 있다. 그래서 비트코인은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것은 사회적으로 유용한 기능이 전혀 없다." - 조지프 스티글리츠 (美 컬럼비아대학 교수) - 


 비트코인 가격이 급등락을 계속하면서 이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규제에 대한 찬반(贊反)이 팽팽히 맞서면서, 한편에서는 '투기에 대한 규제'를 다른 한편에서는 '4차 산업 기술 보호'를 말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속에서 개인적으로는 '기술 보호'와 '투기에 대한 규제'는 분명하게 구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벌써 10여년도 지난 일이지만, 한때 온라인 게임 리니지에서 아이템이 고가에 거래되는 문제가 사회 문제가 된 일이 있었다. 2000년대 초반 온라인 게임은 IT시대의 중요한 콘텐츠였고, 이에 대한 투자로 한때 우리나라 게임이 세계적으로 주도권을 가질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렇지만, '게임'에 대한 투자와 '게임에 사용되는 아이템'의 거래는 분명히 구분되어야 하지 않을까. 리니지와 리니지 아이템의 연장선장에서 비트코인 문제를 바라본다면, 비트코인 문제의 답은 의외로 가까이 있을 것 같다. 


PS. 금융투기와 관련해서는 다음의 책들이 투기와 투자의 역사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하기에 여기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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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8-01-17 22:3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마침 오늘 오후에 서울 모 호텔에서는 ‘블록체인‘과 관련된 전문가들이 여럿 방한해서 주제 발표도 했더군요.

블록체인은 분명 유용한 기술이긴 한데, 그 기술을 활용하는데 쓰이는 중요한 수단인 ‘가상 화폐‘ 자체의 가격이 너무나 급등락해서 참으로 문제가 많은 듯합니다. 화폐야말로 ‘가치 척도‘인데, 비트코인, 이더리움, 네오 등등 수많은 가상 화폐들은 화폐 가격이 하루에서 수십 %씩 급등락을 거듭하니까 말이죠. 유시민이 비트코인 광풍을 두고 ‘바다 이야기‘에 비유했다가 혼쭐이 난 기사도 있더군요. 과학자 정재승이 유시민의 언급을 두고 아예 대놓고 ‘너무 무식한 얘기‘라고 반박도 했던데, 단적으로 이런 모습들 하나만 보더라도 ‘블록체인과 가상화폐‘를 두고 얼마나 혼란스러운지를 짐작하고도 남을 지경입니다.

제 주변에서도 이미 작년 여름부터 끊임없이 ‘비트코인 광풍‘에 대해 자주 논란을 벌이는 걸 봐오곤 했는데, 결론은 아주 단순한 듯합니다. ˝블록체인 기술은 매우 유용한 기술이고 중요한데, 현재 벌어지고 있는 가상화폐 투기는 정말로 심각한 후유증을 낳을 게 분명하다.˝는 사실이죠. 지금 하루 24시간 내내 거래되는 가상화폐의 시가총액이 대략 ‘어제‘ 기준으로 700조원이라고 마침 ‘어제‘ 들었는데, 하룻밤 자고 나니 그 사이에 바로 그 시가총액이 300조원이 공중으로 증발했더군요.

그런데 정말 심각한 문제는 ‘투기 광풍‘에 노출된 ‘보호받아야 할 사회적 · 경제적 약자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너무 취약한 상태에 그대로 방치된 채 놓여 있다는 점이고, 이 문제가 이미 오래 전부터 사회문제로 부상하면서 거듭 악화일로였는데도 불구하고, 정부 당국에서조차 아직까지도 갈피를 못 잡고 있다는 거죠.(금융위원회에 ‘대책반‘이 생긴 게 며칠 안 되었죠.)

한때 엄청난 도박 광풍을 몰고 왔던 ‘바다 이야기‘ 때문에 신용불량자가 대략 300만 명쯤 생겼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는데, 투기 광풍이 단지 신용불량자만 양산한 게 아니라 엄청난 ‘가정 파괴‘까지도 이어졌을 듯하고, 그 와중에 약삭빠른 사기꾼들을 숱하게 배불리게 만들었다는 게 문제라고 봅니다. 심하게 얘기하면 ‘거대한 도박판‘이 벌어지는 와중에 온갖 부정과 부패와 악순환이 끊임없이 반복되었다는 거죠. 정부의 강력한 단속이 마침내 그걸 쓸어낼 때까지 아주 오랫동안 말이죠..

가상화폐 투기도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아주 큰 후유증을 겪을 게 명백해 보입니다. 이미 ‘채굴‘ 쪽에서도 ‘다단계 사기꾼들‘이 적잖이 적발되고 있고, 지금도 사기꾼들이 득실거리는 데다가, ‘가상화폐 매매‘ 쪽에서는 ‘채굴‘ 보다 훨씬 더 심각한 온갖 부정과 부작용들이 난무하고 있으니까요.

댓글이 너무 길었네요. ‘투기 광풍‘에 대헤 제가 읽었던 책들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책은 찰스 P. 킨들버거가 쓴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더군요. 그런데 그 책은 일반인들이 소화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내용을 많이 다뤄서 함부로 권하기는 어려운데, 그보다 한결 재미있고 쉽게 쓰인 책 가운데 찰스 맥케이의 『대중의 미망과 광기』라는 책도 읽어볼 만하더군요.^^

겨울호랑이 2018-01-17 22:22   좋아요 0 | URL
oren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개인 투자의 문제로 돌리기엔 비트코인 투기 후유증이 만만찮아 보입니다... 킨들버거의 「광기, 패닉...」은 이름만 들어보았는데 이미 oren님께서는 읽으셨군요. 보다 평이하게 쓰여진「대중의 미망과 광기」부터 읽어봐야겠습니다. oren님 좋은 책 추천에 감사드립니다^^:

oren 2018-01-17 22:38   좋아요 5 | URL
찰스 P.킨들버거의 책 속 구절을 정리해 놓은 게 있어서, 그 가운데 이번 ‘비트코인 투기 광풍‘과 관련해서 재음미해 볼 만한 구절들을 찾아봤습니다. 킨들버거의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는 제가 따로 정리해 놓은 ‘요약본‘만 가끔씩 들여다볼 때가 있는데, 매번 읽을 때마다 참으로 교훈적인 이야기가 많다는 걸 거듭 느끼게 되더군요. 소제목 옆에 붙은 숫자는 ‘책 속 페이지 숫자‘입니다.^^

* * *

눈먼 자본 5

패닉과 광기에 대해서는 우리가 갖고 있는 최대한의 지식을 동원해 좇고 상상할 수 있는 규모를 넘어서는 대단한 분량이 쓰여졌다. 그렇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특정 시점마다 엄청난 금액의 멍청한 돈이 부지기수의 멍청한 사람들 손에 주어진다는 사실이다. ······ 당면한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명분을 이유 삼아 이런 사람들의 돈-우리는 이 돈을 눈먼 자본(blind capital)이라고 부른다-이 주기적으로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불어나고 꿈틀대는 욕망에 주체를 못한다. 이 돈은 누군가가 자신을 집어 삼켜 주기를 갈망하며 ˝흘러 넘친다˝; 흘러 넘치는 돈이 누군가를 찾아내면 ‘투기‘가 벌어지고; 투기가 이 돈을 다 먹어 치우고 나면 ‘패닉‘이 발생한다.

월터 배젓, 『에드워드 기븐에 관한 소론Essay on Edward Gibbon』가운데


눈에 익은 단계들 5

나는 위기가 다가옴을 느낄 수 있다. 증권거래위원회가 있든 없든, 파탄을 몰고 올 새로운 투기의 거대한 소용돌이가 익히 눈에 익은 단계들을 밟아가며 다가오고 있다; 핵심 우량주가 붐을 일으킨 다음, 이류 종목들이 뜨겁게 달아오르면, 이어서 장외시장에서도 투기판이 벌어질 것이다; 그리고는 새로 상장된 주식을 둘러싼 또 한 차례의 끝물 장세가 지나가면, 마침내 피할 수 없는 붕괴가 찾아올 것이다. 이 일이 언제 벌어질지는 모르겠지만,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빌어먹을 일은, 내가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버나드 J. 라스커(1970년 뉴욕증권거래소 회장으로 재직)
그가 1972년에 했던 말 가운데, 존 브룩스가 쓴『고고의 시절The Go-Go Years』에서 인용

돈을 버는 일이 이보다 더 수월했던 적이 없었다는 느낌 64

예전에는 투기적 모험과는 거리가 멀었던 기업과 개인들 중에서도 높은 수익률을 얻기 위한 소란스런 게임에 뛰어들기 시작하는 사례가 점점 많아진다, 돈을 버는 일이 이보다 더 수월했던 적이 없었다는 느낌이 든다. 지본이득을 위한 투기는 사람들을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행동에서 일탈시켜 ‘광기‘나 ‘거품‘이라는 표현 말고는 달리 묘사하기 어려운 행동으로 이끈다.

패닉에 대한 처방들 92

˝악마는 맨 뒤에 처진 사람을 잡아먹는 법이다(Devil take the hindmost)˝, ˝재주껏 도망쳐라(Sauve qui peut)˝, ˝맨 뒷사람이 개에 물린다(Die Letzen die Runde)˝, 이런 말들이 채닉에 대한 처방들이다. 이와 비슷한 광경은 사람들이 들어찬 극장 안에서 불이 났다고 고함칠 때의 모습이다. 연쇄편지가 연출하는 과정도 이와 닮은꼴이다. 왜냐하면 그 연쇄고리가 무한정 확장되는 것은 불가능하고 오직 소수의 투자자들만 가격 하락이 시작되기 전에 팔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개인의 입장에서는 연쇄 과정의 초반에 참가하면서 다른 모든 사람들도 자신들이 합리적이라고 여길 것이라고 믿는 것은 합리적인 일이다.

튤립 광기 197

역사가 사이먼 샤마(Simon Schama)가 제공한 사례 하나를 보면, 화이트크라운 1파운드(네덜란드어로 ‘Witte Croon‘이며 일반적인 품종이어서 무게 단위로 매매되었다)에 525플로린을 양도 시점(가령 돌아오는 6월)에 완납하고, 소 네 마리를 먼저 지불하는 방식으로 거래했다. 선불 계약금 지불에 쓰인 여타 현물로는 토지, 주택, 가구, 금은제 그릇, 회화작품, 양복과 코트, 마차, 회색 점박이 말 한 쌍 등이 있었다; 그리고 희귀종 튤립인 비체로이(Viceroy) 한 그루의 가치는 양도 시점의 완납 대금 2500플로린과 함께 현물 선불금으로 밀 2라스트, 돼지 네 마리, 양 열두 마리, 포도주 2옥스헤드, 버터 4톤, 치즈 수천 파운드, 침대 한 개, 몇 가지 의류, 큼지막한 은제 컵 하나였다.

스스로 제 털을 깎이려고 줄지어 서 있는 양 305

부정행위는 경제가 호황기일 때 증가한다. 재산은 호황기에 만들어지며, 개인들은 부의 증식 과정에 끼어들기 위한 탐욕에 빠지고, 사기범들이 이 탐욕을 이용하려고 등장한다. 호황기에는 스스로 제 털을 깎이려고 줄지어 서 있는 양의 숫자가 늘어나고, 자신들을 사기범의 희생물로 제공하는 사람들의 수가 증가한다. ˝일 분마다 한 명씩 속아 넘어간다.˝

부도덕의 극치 312

스프라그의 인용과 번역이 정확하다면, 호레이스(Horace)는 그들의 자세를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돈을 벌어라; 할 수 있다면 정직하게 돈을 벌되,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돈을 벌어라.˝ 남해회사 거품에 대한 조나단 스위프트의 언급도 이와 마찬가지로 냉소적이다:

돈, 돈을 계속 벌어라.
그리고 나서 혹시 미덕이 스스로 따라오겠다고 하면, 그리 하라.

발자크는 마지막 한 방이라고 부를 만한 말을 남겼다: ˝가장 미덕 있다는 상인들이 당신 앞에서 가장 노골적인 자세로 부도덕의 극치를 보여주는 이 말을 들려줄 것이다: 우리는 가능한 한, 나쁜 일에서 잇속을 챙겨 나온다.˝

겨울호랑이 2018-01-17 22:50   좋아요 0 | URL
^^: 킨들버거의 책은 정말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경제강대국의 흥망」도 최근 중국의 부상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제시했는데, oren님께서 추천해주신 「광기, 패닉,..」역시 킨들버거의 통찰이 빛날 듯 합니다. ‘투기‘와 관련해서는 ‘왜 사람들은 폭탄돌리기를 하면서도 자기 차례에 폭탄이 터지지는 않을 것이라‘기대하는지... 참 궁금해 집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01-17 22: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스크> 읽으셨네요. 반갑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8-01-17 22:27   좋아요 1 | URL
「리스크」로 대동단결! ㅋㅋ

북다이제스터 2018-01-17 22:31   좋아요 1 | URL
비트코인의 투기 광풍은 상대적 단기간 우려지만, 비트코인으로 장기적 순기능인 국가 소멸을 기대해 봅니다. ㅎㅎ

겨울호랑이 2018-01-17 22:39   좋아요 1 | URL
다른 한편으로 블록체인 기술로 ‘국가‘를 대체하는 ‘거대금융자본‘이 우려되기도 합니다. 이미 여러 분야로 진출한 대자본들이 국가를 초월한 경제 공동체 ‘애플나라‘, ‘아마존 공동체‘등을 만들다면 더 큰 위협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2018-01-17 22: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17 22: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17 2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17 23: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18 00: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18 07: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雨香 2018-01-18 0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분홍색으로 옮겨주신 말들에 백퍼 동의하고 있습니다. 1년여전부터 블록체인 등 가상화폐 관련 글들을 읽고 있습니다. 겨울호랑이님도 잘 아시겠지만 경제정책의 도구로서의 화폐의 기능이 사실 더 큰 화폐의 기능이지 역할인데, 기술을 이야기하는 사람 중에 경제정책의 도구로써의 화폐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은 없더군요.

다만, 금본위체제가 무너진 것에 대한 경험과, 유로화를 봤을 때(개별국가는 경제정책의 도구로써의 화폐 기능을 잃어버린) 가상화폐의 시대는 멀지 않았다고 봅니다.
*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어떤 분의 글을 읽었는데 우리나라 정부도 이미 4~5년 전부터 가상화폐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하고 있고,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에 대해서도 잘 이해하고 있더군요. 다만, 잠시 정치적 공백기(박근혜정권말)와 다른 나라들의 방향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이야기하더군요.

겨울호랑이 2018-01-18 07:56   좋아요 1 | URL
雨香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정책수단으로서의 화폐에 대한 논의는 현시점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국가에서 통화조절 능력을 상실했을 때 이에 대한 대안도 이제는 이야기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雨香 2018-01-18 0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리고 가상화폐의 시대는 겨울호랑이님의 우려처럼 ‘거대 금융 자본‘의 시대라고 봅니다. 20세기 중반 이후 세계 경제는 금융 자본에 의해 움직였다고 봐야 하는데요. 사실 IT 기업들의 성장뒤에도 거대 금융 자본의 지원이 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초기에 자금을 대 주고, 어느 정도 규모가 되면 CFO나 관리자를 소개시켜줘 안정적인 성장을 지원하고 본인들은 거대 수익과 함께 영향력을 잃지 않고요, 그래서 IT와 거대금융자본이 가상화폐 결합이 이뤄진다면 .... )

겨울호랑이 2018-01-18 08:00   좋아요 1 | URL
국가의 경제권력이 사라지고, 경제권력이 금융 자본에게 넘어간다면 이후 세계경제의 블록화는 국가/경제권 단위가 아닌 기업단위 경제 블록화가 된다면 노동/소비가 모두 대기업에 종속될 수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되네요...

AgalmA 2018-01-20 20: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테일러 피어슨 <직업의 종말>은 자본의 힘이 금융->기업->개인에게 넘어가는 게 4차산업혁명의 흐름이라고 진단했죠. 비트코인도 그 예가 될 테고요.
유시민 작가처럼 이 모든 게 사기다 할 게 아니라 저는 이런 기술을 어떻게 잘 활용할 것인가 하는 정재승 박사 쪽인데요.
이 기술이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플랫폼이 잘 짜여지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비트코인 거래소 파산 문제도 그런 플랫폼의 부실함 때문인 것이니까요. 아직 공부가 부족해 내부를 자세히 모르니 그림만 떠오르는 상태^^;

겨울호랑이 2018-01-20 20:21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비트코인도, 블록체인 기술도 아직은 기술개발 초기라 향후 전망을 내리기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만, <직업의 종말>에서 나오는 것처럼 자본의 힘이 ‘기업‘에서‘개인‘으로 이전되기를 바라봅니다...
 

2018년 1월호.

1. 직원이 뽑은 사장 :
스위스 우만티스에서 시행한 기업민주주의. 집단지성의 효율적 활용으로 인한 매출 증대. 선거 기간 중의 어수선한 분위기 등은 이에 대한 대가.

2. 2018년 금리 인상의 귀환 :
2017년 11월 기준금리 인상으로 가계부채 부담 증가. 문재인 정부의 다주택자들에 대한 규제는 향후 다주택자들의 임대사업자 전환여부에 따라 성패가 달라질 것.

3. 가사 노동 해방의 그늘 : 21세기 하인 그룹
맞벌이 가정의 증가에 따른 가사 노동의 외주화. 이에 따른 독일 내 외국인 가사 도우미의 증가.

4. 디지털 소비 욕구 절제 해야 산다
마더 교수는 개인적으로 빈둥거리며 아무 것도 안할 때나 지루할 때 가장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른다고 한다. 당신은 최근 창밖을 오랫동안 바라보는 청소년을 본 적이 있는가? -본문 중-

5. 방탄소년단 성공 신화 분석
작은 기획사 소속 ‘흙수저 아이돌 그룹‘의 SNS 소통과 팬과의 교류로 인한 성공 신화

6. 미국 법인세 감면
법인세 인하는 결코 실물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업의 해외 이전은 수익성 때문이다. 법인세는 이익이 생겨야 내는 세금이다. -본문 중-

7. 추천 경제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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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5 15: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15 16: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로 2018-01-15 15: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국 법인세 감면에 대해서 한국에서 그렇게 생각하는 군요. 좀 답답해요,,저 세금 인하는 사실 미국의 중,하위층에게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내다보는 전문가들이 많거든요. 저같은 영세민은 그 얘기 들으니 한숨만 나옵니다.

그런데 ‘맞벌이 가정의 증가에 따른 가사 노동의 외주화. 이에 따른 독일 내 외국인 가사 도우미의 증가. 향후 우리의 가정은?‘은 이해가 잘 안되는데 한국 맞벌이 가정의 증가에 따른 가사 노동의 외주화와 이에 따른 독일 내 외국인 가사 도우미의 증가는 어떤 연관이 있는 건가요?

그리고 님의 서재 바탕이 검정 색이라 저처럼 노안이 심한 사람은 좀 읽기 어렵네요~~~.^^;;;

겨울호랑이 2018-01-15 16:16   좋아요 0 | URL
사실 미국 재정수익 원천의 다수가 개인 소득세임을 감안하면 트럼프의 감세 정책은 다분히 정치적인 성격이 강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말씀하신 ‘우리 가정은?‘은 제가 메모한 내용이어서 본문에는 나와 있지 않은 내용입니다. 혼란을 피하기 위해 삭제했습니다. 제 서재 배경는 random 변동이라 아마 내일이면 바뀔 것 같습니다. 제가 북플로 작성하다보니 확인이 미처 안된 부분도 있습니다. ^^: 라로님 감사합니다

깐도리 2018-01-15 16: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애프터 크라이시스는 읽어봐서 눈길갑니다...

겨울호랑이 2018-01-15 16:18   좋아요 0 | URL
깐도리님께서는 이미 읽으셨군요.. 부끄럽게도 사실 저는 위의 책 중 읽은 책이 없습니다. 깐도리님의 서평을 기대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2018-01-15 16: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15 16: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1-15 17: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잡지에 블록체인, 비트코인에 관한 내용은 없던가요? 놀랍게도 제 주변에 비트코인에 투자하는 사람이 없어요. 만약 비트코인에 투자하는 지인이 있었다면 저도 지인의 유혹(?)을 이기지 못했을 거예요. ^^;;

겨울호랑이 2018-01-15 19:53   좋아요 0 | URL
^^: 이런이런.. cyrus님 그렇잖아도 별책부록으로 비트코인 내용이 있어 정리중이었는데, 딱 걸렸네요 ㅋㅋ

雨香 2018-01-16 11: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코노미 인사이트 보시는 군요.. 저는 처음에 몇 번 보다가...(내용 때문이 아니라 밀려 있는 책들이 많아서요. 안 뜯은 시사인도 수두룩합니다.)
1월호 눌러보니 <최저가 경제학의 빛과 그림자>, <‘21세기 하인 계급‘>에 관심이 갑니다.

겨울호랑이 2018-01-16 11:59   좋아요 1 | URL
^^: 저도 다음달 호 오기 전 밀려서 읽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코노미 인사이트는 신경제의 빛보다 그림자를 조명해 주는 기사가 많아 균형을 잡는데 도움을 주는 것 같아 구독하고 있습니다^^
 

 

'굶주린다는 것은 고통을 의미한다. 즉 불가능한 선택이 주는 고통이다. 하지만 그 이상이다... 아만다에게 굶주린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슬픔이다.(p14)... 필리핀의 어느 농가에 도착해서 우리가 처음 들은 말은 집이 누추해서 미안하다는 것이었다. 굶주린다는 것은 또한 굴욕적인 삶을 의미한다... 굶주림의 네번째 차원은 공포이다. 고통, 슬픔, 굴욕, 그리고 공포.(p15)' <굶주리는 세계> 中


 굶주린다는 것의 의미는 단순히 끼니를 거르는 개인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이를 사회적 차원에서 바라본다면 지속적인 굶주림으로 인해자신과 주의의 사람들이 '서서히 죽어가는 것'과 이것을 무기력하게 지켜봐야 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이유로 비참함 또는 굶주림으로부터의 탈출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중요한 기본 과제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 문제는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다. 가령 세계에 식량이 부족하지는 않다는 역설적인 현 상황은 굶주림에 대한 문제에 복잡함을 더한다.


  '식량이 풍부한데도 굶주림이 존재하는 것은 제3세계의 두드러진 현상이다. 세계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1950년대 이래로 식량생산 증가분은 아프리카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인구증가율을 앞지르고 있다. 미국고등과학진흥희(AAAS)의 1997년 연구에 따르면, 개발도상국에서 영양실조에 걸린 어린이들 중 78%가 식량이 남아도는 나라에 살고 있다.(p25)' <굶주리는 세계> 中


 식량이 풍부함에도 굶주림이 존재하는 역설적인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저명한 경제학자 제프리 삭스 Jeffrey Sachs에게 빈곤의 근본적 원인은 "지리적"이다. 그의 책 <빈곤의 종식 The End of Poverty>(2005b)에서 삭스는 "지리는 숙명이다." 라고 지적하고 있다. 어느 한 나라가 만약 접근하기 어려운 입지와 질병에 걸리기 쉬운 환경, 극단적인 기후 그리고 파괴되기 쉬운 토양을 갖고 있다면, 가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의 모든 구석구석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발전의 사다리에 심지어 그들의 첫 발조차 올려놓지 못하게 하는 구조적인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올바른 요소들 - 훌륭한 항구, 부유한 세계와의 긴밀한 접촉, 양호한 기후, 적절한 에너지원 그리고 전염병으로부터의 자유-을 갖춘 대부분의 사회는 극단적인 빈곤으로부터 해방되어 왔다.(Sachs,2005c:47)"(p33)' <현대 경제지리학 강의> 中


 제프리 삭스에게 있어 빈곤의 원인은 '지리적 문제(Geographical problem)'에서 비롯된다. '지리적 숙명'에 의해 가난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존재한다는 제프리 삭스의 주장에 따르면'굶주림'과 '빈곤'은 가난한 국가 내의 문제로 한정된다. 이러한 빈곤의 내재(內在)적 원인론과는 반대로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의 저자 장 지글러(Jean Ziegler,1934 ~)는 빈곤의 구조적 문제를 굶주림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구조적 기아"를 정의하기는 더 어려워. 굶주린 사람들이 먹을 것을 찾아 끝도 없이 헤매거나, 뼈와 거죽만 남은 여자들이 불쌍한 아이를 안고 난민 캠프 앞에 길게 줄을 서는 현상으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지.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에서 수십만병의 아이들이 비타민 A 부족으로 시력을 잃는 근본적인 이유도 바로 "구조적 기아"에 있어.(p60)'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中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에서는 빈곤퇴치를 위한 내재적 노력이 외부의 압력(다국적 기업, 외국 정부)에 의해 좌절된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하면서 제3세계의 굶주림 문제가 이들 국가만의 문제가 아님을 뒷받침하고 있다. 


  '1970년 칠레의 인민전선은 101가지 행동강령을 발표하는데, 그 첫 번째가 바로 15세 이하의 모든 어린이에게 하루 0.5리터의 분유를 공급하는 것이었다... 이는 당시 칠레가 처한 높은 유아사망률과 어린이 영양실조라는문제를 놓고 본다면 어쩌면 절체절명의 과제였다고 할 수 있다... 소아과 의사 출신인 아옌데가 내건 이 공약이 벽에 부딪힌 것은 칠레의 농장을 장악한 네슬레가 1971년 협력거부 방침을 결정하면서부터이다. 아옌데 정부는 키신저를 비롯한 미국 정부와 네슬레를 축으로 하는 다국적기업에 의해서 고립되고, 결국 CIA와 결탁한 군인들이 대통령궁을 습격하게 된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칠레의 어린이들은 다시 영양실조와 배고픔에 시달리게 된다.(p13)'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中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에서는 다국적 기업에 의한 구조적인 빈곤의 문제를 제기되며 <굶주리는 세계>에서도 세계화 시대의 가장 큰 수혜자는 다국적 기업임을 확인한다. 그렇다면, 이들 다국적 기업들이 추구하는 바는 무엇일까.


 'NAFTA 같은 무역 조약, 그리고 세계은행, IMF, WTO 같은 기구들이 새로운 지구 경제를 지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추세에서 진짜로 이득을 보는 것은 국가들이 아니라 어느 나라에나 본사를 두고 다른 나라의 사무실과 공장을 관리할 수 있는 거대 다국적/초국적기업들이다. 다국적 기업들은 많은 나라의 GNP를 능가하는 수익을 올리고 있다. 이들은 전세계 무역의 70% 이상을 차지하면서 세계경제에서 거대한 주체로 군림하고 있다.(p271)' <굶주리는 세계> 中


 세계 경제에서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다국적 기업들이 추구하는 바는 베블런(Thorstein Veblen, 1857 ~ 1929)에 따르면 결국 '수익 창출 능력의 극대화'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수익 창출 능력은 구체적으로 '미래 현금 흐름의 현재 가치(Present Value of Future Cash Flow)'를 통해 기업 가치로 환원되고, 기업가치는 시장에서 주가의 형태로 거래된다면, 무상 분유 공급으로 시장이 축소되는 것과 같은 미래 현금 흐름을 감소시킬 어떠한 유인(誘因)도 다국적 기업을 지배하는 대주주는 원치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를 저지시키려는 일련의 노력들이 세계 곳곳에서 행히지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세계의 빈곤을 감소시키기 위해 어떤 해결 방안이 존재할 수 있을까?

 

'자본 시장에서 최종적으로 협상을 벌이는 자가 자본을 구매하는 것은 장래에 이윤을 얻기 위해서이다. 즉 내용상으로 보자면 그는 나중에 또 다시 팔기 위해서 자본을 미리 사두는 것이다. 그렇게 미리 사두고자 하는 그의 계획은 그가 협상하는 자본이 앞으로 가져올 수익의 전망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므로 일정한 덩어리의 자본의 가치란 그것의 수익 창출 능력에 의해 결정된다. 즉, 수학적 표현으로 말하자면, 자본의 가치란 그 수익 창출 능력의 함수이다. (p113)... 따라서 자본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이란 결국 매매되고 있는 유가 증권들이 대표하는 소유 재산이 어떠한 수익 창출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를 어림짐작으로 추측하여 그것을 자본화한 것이 된다.(p115)' <자본의 본성에 관하여> 中 


 '빈곤/굶주림'을 세계화 시대에서 비롯된 구조적인 문제로 정리했을 때 이에 대한 여러 해결 방안이 존재할 것이다. 그 중에서도 피터 싱어(Peter Singer, 1946 ~ )과 가라타니 고진(Karatani Kojin, 1941 ~ )은 세계 기구를 통한 해결방안을 제시한다. 고진이 제시한 방법은 보다 급진적인데, 빈곤이라는 문제를 국내 문제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이들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의 해결 방안을 마지막으로 제시하며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나는 전 지구적인 해결을 요하는 문제가 점점 더 늘어날수록, 어떤 나라가 독립적으로 그 나라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여지는 줄어들게 된다는 것을 논증했다. 따라서 우리는 전 지구적인 결정을 하는 기구들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러한 기구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에 대해 그 기구들이 더욱더 책임감을 느끼게끔만들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우리는 직접 선거로 구성된 입법부를 갖춘 지구 공동체에 대한 구상에 다다르게 된다.(p254)' <세계화의 윤리> 中


 '인류는 지금 긴급히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과제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전쟁, 환경파괴, 경제적 격차이며, 이들은 분리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p224)... 이것들은 일국(一國) 단위로는 생각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각국에서 군사적 주권을 서서히 국제연합에게 양도하도록 하여, 그것을 통해 국제연합을 강화, 재편성하는 것입니다... 각국에서 이와 같이 주권의 방기가 이루어지는 것 외에 국가를 지양하는 방법은 없습니다.(p225)' <세계공화국으로> 中

 

글을 마치기 전 결을 달리하지만, 조세와 관련한 국제적 협력을 주장한 토마 피게티(Thmas Piketty, 1971 ~ )의 내용도 옮겨본다.


 '우리가 주목한 것은 20세기에 창안되었지만 미래에도 틀림없이 핵심적인 역할을 계속 수행해야만 할 사회적 국가와 누진적 소득세라는 두 가지 기본 제도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현 세기의 세계화된 금융자본주의를 다시 통제하려면, 오늘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수단을 개발해야만 할 것이다. 여기서 이상적인 수단은 매우 높은 수준의 국제적 금융 투명성과 결부된 누진적인 글로벌 자본세가 될 것이다.(p617)' <21세기 자본> 中


PS.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굶주린 세계>는 주로 절대적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있으나, 체감 빈곤은 '상대적 빈곤' 문제가 더 심각한 것이 현실이다. 2017년 삼성전자의 연간 영업이익이 50조원 시대가 되었다고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최저 임금 인상으로 사업이 어렵다고 하는 사업주들이 공존하는 현실 속에서 우리가 어떤 길을 가야할 것인가하는 문제는 2018년에 우리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과제가 될 것이다.


관련 기사 :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8&no=17397


 '일본, 타이완, 한국은 식량 수입과 외국인 직접투자 금지, 진정한 토지 재분배, 대규모 정부 보조, 자국 생산자들에 대한 관세 보호 등의 정책들 때문에 전후 주목할 만한 성장과 생활수준 개선을 이루어냈다. 핵심은 빈민들 -농민과 노동자-의 소득과 구매력을 증대시킴으로써, 이들이 물건을 구매하여 지역산업을 지탱하고 따라서 강력한 국내 시장을 형성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버블업(bubble-up) 경제'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즉 생활수준 개선의 혜택이 바닥에서부터 경제 전반으로 침투해 상승함으로써 진정한 발전 발전을 가능케 한 것이다. 이는 부유층의 순이득이 결국 빈민들에게로 "떨어질 것"(trickle down)이라는 기존의 이론-현실 속에서 그 예를 찾아보기가 힘든-과는 반대되는 것이다.(p212)'<굶주리는 세계>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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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1 1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11 1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8-01-11 14: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유통기간이 정해져 있는 식료품인 경우는 충분히 먹을 수 있는 데에도 불구하고 40% 정도가 그냥 폐기된다고 하더군요. 이비에스 다큐에서 본 기억이... 참.. 지랄 같죠. 키겔 같은 대형 곡물 회사도 곡물 가격 떨어질까봐서 곡물을 바다에 버린다고 하죠 ? 기아에 죽어가는 인구가 엄청난다데 말입니다..

겨울호랑이 2018-01-11 14:15   좋아요 2 | URL
식량 뿐 아니라 의류 회사도 제품의 가격유지를 위해 팔리지 않는 많은 제품을 불태운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지금 우리가 지불하고 있는 제품의 가격에는 팔린 제품뿐 아니라 팔리지 않는 제품의 가격도 포함된다고 할 수 있겠네요. 덕분에 제품의 가격은 더 높아지게 되고, 돈이 없는 사람은 구매하지 못하고, 소비자는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그런 면에서 합리적인 소비 역시 중요하게 됨을 말씀을 통해 새삼 생각하게 됩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01-11 22: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넘 좋고 훌륭한 페이퍼 입니다. ^^

겨울호랑이 2018-01-11 22:47   좋아요 1 | URL
^^: 감사합니다. 북다이제스터님 추운 날 건강하게 하루 마무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