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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들들아, 인간은 그 금단의 열매를 맛본 이래 우리들 중의 하나처럼 선과 악을 알게 되었도다. 그러나 그들로 하여금 잃은 선과 얻은 악의 지식을 자랑케 하라... 이제 한층 대담해진 그 손이 생명나무에도 뻗쳐 그 열매 따 먹고 영원히 살 수 있지 못하도록 적어도 그렇게 망상하지 못하도록 그를 낙원에서 쫓아내어 그가 태어난 땅, 그 적합한 흙을 갈아먹도록 명령하노라."(제 11편 84 ~ 98)


 "O sons, like one of us man is become 

  To know both good and evil, since his taste 

  Of that defended fruit ; but let him boast

  His knowledge of good lost, and evil got...

  Lest therefore his now bolder hand

  Reach also of the tree of life, and eat,

  And live forever, dream at least to live

  Forever, to remove him I decree,

  And send him from the garden forth to till

  The ground whence he was taken, fitter soil.


 존 밀턴(John Milton, 1608 ~ 1674)의 <실락원 Paradise Lost>에는 인간들이 에덴 동산에서 쫒겨나 노동과 함께 할 것을 명령받는 장면을 위와 같이 묘사되고 있다. 이처럼 노동(勞動)은 태초부터 인류와 함께 하면서 문명(文命)을 만들어왔지만, 이제 우리는 노동과 이별해야 하는 순간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노동 없는 세계는 과학자, 엔지니어, 기업주들에게는 고되고 정신 없는 반복적인 작업으로부터 인간이 해방되는 역사상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다. 동시에 다른 사람들에게는 대량 실업, 전세계적인 빈곤, 사회적 불안과 격변이라는 우울한 미래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의 의견이 일치하는 지점이 있다. 그것은 제조와 서비스 제공 과정에 있어서 기계가 인간 노동을 대체하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다는 것이다.(p31) <노동의 종말> 中  


 우리는 지금 세계 시장과 생산 자동화라는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거의 노동자 없는 경제로 향한 길이 시야에 들어 오고 있다... 노동의 종말은 문면화에 사형 선고를 내릴 수도 있다. 동시에 노동의 종말은 새로운 사회 변혁과 인간 정신의 재탄생의 신호일 수도 있다.(p375) <노동의 종말> 中


 <노동의 종말 The End of Work>를 통해서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 1945 ~ )은 1994년에 이미 자동화된 기계에 의한 인간 노동이 소외된 현실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은 이미 우리 주변에서 보편화 되고 있는 인공지능(AI)의 도입 등으로 현실화되고 있는 모양새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최근 인공지능이 의사자격시험에 높은 점수로 합격하면서, 인공지능의사에 의한 진료는 가까운 미래가 된 듯 하다.

 

2017년 한 해 동안 중국에서 인공지능(AI)의 상업화가 폭발적으로 이뤄졌다. 의료와 인공지능의 결합은 다양한 기업을 끌어들였다. '빅3'인 알리바바, 텐센트, 바이두는  물론 아이플라이텍과 뉴소프트도 전국 각지에서 기반을 다졌다. 의료 인공지능과 스마트병원에 기대치가 높다. 의료서비스 개선을 넘어 전체 의료체계를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p62) <Economy Insight> 3월호 '중국의 스마트병원 구축 열풍'  中


 인간의 노동이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되는 세상은 이미 1994년에 저자 리프킨에 의해 예견되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는 자동화로 인한 인간 소외, 노동 소외의 문제가 제기 되고 있다. 미래의 노동 없는 세계가 <노동의 종말>의 주제다. 


 우리는 이미 제3차 산업 혁명과 거의 노동력이 필요 없는 세계로의 역사적 전환을 경험하고 있다. 실리콘에 기초한 새로운 문명화에로의 길을 열어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해결되지 않은 과제는 앞으로 얼마나 많은 인간들이 이로부터 소외될 것이고, 이들 앞에는 과연 어떤 세계가 펼쳐질 것인가라는 문제이다.(p369) <노동의 종말> 中


 그렇지만, 노동에 있어 인간 소외 문제의 기원은 이보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칼 맑스(Karl Heinrich Marx, 1818 ~ 1883)는 그의 저서 <1844년의 경제학 철학 초고 Okonomisch-philosophische Manuskripte aus dem Jahre. 1844>를 통해서 소외된 노동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맑스는 노동을 인간임을 나타내고 사회를 형성하기 위한 본질적인 생명활동이라고 규정(출처 : 맑스 사전)한다. 문제는 노동자들의 생명활동의 결과인 생산물이 자신이 아닌 자본가에게 속하는 것에서 발생하며, 이로인해 노동자들의 소외가 발생하게 된다고 맑스는 해석하고 있다.  

 

인간은 다름아닌 대상적 세계의 가공 속에서 비로소 현실적으로 자신을 유적 존재로서 증명한다. 이 생산은 그의 활동적인 유적 생활이다. 이 생산에 의하여 자연은 인간의 작품으로서 그리고 인간의 현실로서 나타난다. 따라서 노동의 대상은 인간의 유적 생활의 대상화이다.... 따라서 소외된 노동은 인간에게서 그의 생산의 대상을 빼앗음으로써 그의 유적 생활, 그의 현실적인 유적 대상성을 빼앗고, 동물에 대한 그의 장점을 단점으로 변화시켜 그의 비유기적 몸, 즉 자연이 그에게서 떨어져 나가게 된다. 마찬가지로 소외된 노동은 자기 활동, 자유로운 활동을 수단으로 격하시킴으로써 인간의 유적 생활을 그의 육체적 실존을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 버린다.(p79) <1844년의 경제학 철학 초고> 中


 노동자는 자신의 생명을 대상 속으로 불어넣는다; 그러나 그 생명은 이제 더 이상 그에게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대상에게 귀속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활동이 더 크면 클수록 노동자에게는 더욱더 대상이 없게 된다.(p73)... 그의 생산물 속에서의 노동자의 외화가 지니는 의미는 그의 노동이 하나의 대상, 하나의 외적 실존으로 된다는 것뿐만 아니라, 그의 노동이 그의 외부에, 그로부터 독립되어, 그에게 낯설게 실존하며, 그에게 적대적이고 낯설게 대립한다는 것이기도 하다.(p74) <1844년의 경제학 철학 초고> 中

 

 노동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비단 맑스주의자들에게 한정된 문제는 아니다. 6세기 초 이탈리아의 누르시아 성 베네딕트(St.Benedict of Nursia ; AD 480 ? ~ AD 543) 역시 노동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베네딕트 수도원의 수도승들은 영웅적인 단식이나 기묘한 형태의 자학적인 고행을 하도록 요구되지 않았으나, 청빈과 순결 그리고 복종의 이상에 따라 매우 규율이 엄격한 삶이 영위하여야 했다... 베네딕트의 계율은 수도승으로 하여금 매일매일을 노동과 기도로 보내도록 규정하였다. 게으름을 방지하기 위해 수도승은 매일 여러 시간 육체 노동을 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처음부터 대부분의 힘든 밭일은 예능(villein ; serf)에게 맡겨졌음이 분명하다.(p112) <서양 중세사> 中


 이처럼 노동은 단순히 고된 작업이상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에,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은 우리에게 희망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렇다면, 노동이 없는 미래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노동의 종말>에서는 이에 대한 해답을 독립된 소규모의 공동체로 운영된 베네딕트 수도원으로부터 찾고 있는 듯하다.


 수도원 행정은 "수도원의 가장 家長"인 수도원장이 떠맡았다. 각 수도원은 수도승들의 생활을 유지하는 데 충분한 토지를 기증받고 있었다. 이처럼 베네딕트 수도원은 주변의 사회가 아무리 크게 붕괴된다 하더라도, 자체의 질서잡힌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자급자족적이고 독자적인 공동체가 되었다.(p112) <서양 중세사> 中


 미국 정치에는 공동체에 기반을 둔 강력한 제3의 힘의 토대가 이미 존재하고 있다. 근대에 접어들면서 공공 부문과 사적 부문에만 협소하게 주의가 집중되었지만 미국인의 생활에는 제3부문이 존재하고 있다.(p315).. 제3부문은 공동체 연대가 금전적 장치를 대체하고 <자신의 시간을 남에게 주는 것>이 자신과 자신의 서비스를 타인에게 판매하는 데 근거한 인위적인 시장 관계를 대체하는 영역이다... 제3부문의 부흥 및 변형 가능성과 이것을 활기찬 탈시장 시대의 창조를 위한 견인차로 이용할 가능성을 신중하게 탐색하여야 한다.(p316)<노동의 종말> 中


 제3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재난은 수백만의 노동자들이 보다 효과적이고 수익성 있는 기계에 의해 대체됨으로써 막을 올리기 시작하고 있다... 제3부분은 좌절하고 있는 수많은 실업 대중들에게 희망의 빛이 되고 있다. 민주주의의 참가 정신의 점화 및 공동체 의식의 재건 노력은 탈시장 시대에 있어서 독립 부문이 변혁의 주체로서 성공할 것인지의 여부를 상당 정도 결정할 것이다.(p368)<노동의 종말> 中


 

<노동의 종말>에서는 공적 부문, 사적 부문을 대체하는 제3부문의 공동체 연대를 통해 노동 없는 세상을 대비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노동의 종말>을 통해 제안된 공동체 연대는 이후 저작들인 <소유의 종말>을 통해 공유(共有)경제를, <3차 산업혁명>을 통해서는 원자력과 석유 에너지를 대체하는 소규모 태양 에너지 발전으로 논의가 확대되어 간다. 비록 지금은 여러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지만, 우리 나라에도 소규모 태양광 발전 사업이 진행되는 것을 보면, 리프킨의 전망이 현실과 동떨어진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관련기사 : 소규모 태양광 발전 사업자를 위한 변명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85894


 사회적으로는 노동 없는 사회를 소규모 공동체가 주축이 된 제3부문의 활성화를 통해 극복할 것을 <노동의 종말>에서는 주장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미래를 개별 노동자들은 어떻게 대응해야할 것인가. 유례없는 장기 호황 속에서 자동화되지 못한 영역에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독일 수공업자들의 모습 속에서 <노동의 종말> 시대를 대처할 노동자들의 대응책을 찾을 수 있을 듯 하다. <Economy Insight> 의 해당 기사를 마지막으로 노동없는 미래에 대한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18세기 1차 산업혁명은 수공업에서 대규모 기계공업으로 산업의 기초를 전환했다. 기술혁신으로 생산양식의 기계화가 급속히 진행되며 수공업자들은 몰락의 길을 걸었다. 세기를 뛰어넘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은 지금 수공업자들이 뜨고 있다면 말장난처럼 들리겠지만 독일에서는 엄연한 현실이다.. 독일의 장기 호황을 등에 업은 건설업을 중심으로 업종마다 수공업자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일감을 주는 쪽이 일감을 받는 수공업자의 번호표를 받고 대기하는 진풍경도 연출된다.(p16)... 독일 수공업계가 요즘 최고 호황기를 누리지만, 전문가들은 디지털 기술을 수공업에 접목해 더 효율적인 작업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p20) <Economy Insight> 3월호 '산업의 역주행' 수공업자 전성시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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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8-03-21 22: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태초의 노동과 현재의 노동 성격이 같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용의 노동과 거래의 노동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태초의 노동이 아닌 현재의 노동 종말에 쌍수를 들고 환영합니다. ㅋㅋ

겨울호랑이 2018-03-21 23:05   좋아요 1 | URL
^^:) 북다이제스터님의 말씀에 공감합니다. 노동시장에서 노동의 가치는 정당하게 평가받고 있지 못한 현실을 생각하면 ‘노동의 종말‘은 해피엔딩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에 ‘호모 루덴스‘수준의 노동을 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 같습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03-21 23:11   좋아요 1 | URL
호모 루덴스 수준이 절대 불가능 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 같습니다. ^^

2018-03-21 2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3-21 2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bookholic 2018-03-23 0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노동없는 미래에 대한 해결책으로 기본소득은 어떨런지요?

겨울호랑이 2018-03-23 07:07   좋아요 0 | URL
네 bookholic님 말씀처럼 기본소득도 노동 없는 미래를 살아가는 또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다만, 현재 적용되는 것처럼 많은 복지 혜택이 폐지된다면 나이가 많이 든 후에도 노동을 해야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드네요... 이러한 상황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고, 다른 면에서 우리가 삶의 보람을 찾을 수 있다면 기본소득은 좋은 방안 중 하나라 생각됩니다^^:)

나와같다면 2018-03-25 00: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이 생각하시는 키워드랑 저랑 겹치네요. 토지 공개념. 노동..

이번 개헌안에서 ‘근로의 의무‘ 삭제하고 ‘노동은 의무가 아닌 권리‘ 라는 문구를 넣는 부분에 대해서 뭉클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8-03-24 23:15   좋아요 2 | URL
^^:) 사회문제에 많은 관심이 있으신 나와같다면님과 키워드가 같다니, 영광입니다. 대통령이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지만,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음을 요즘 느끼고 있습니다. 조금은 살기 좋은 사회가 되었고, 되어가고 있음도 함께 느낍니다.

雨香 2018-03-27 10: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레미 리프킨에 대한 비판도 많이 들었고, 그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사회를 읽어내는 그의 혜안에는 항상 감탄하고 있습니다.
˝<노동의 종말>에서는 공적 부문, 사적 부문을 대체하는 제3부문의 공동체 연대를 통해 노동 없는 세상을 대비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노동의 종말>을 통해 제안된 공동체 연대는 이후 저작들인 <소유의 종말>을 통해 공유(共有)경제를, <3차 산업혁명>을 통해서는 원자력과 석유 에너지를 대체하는 소규모 태양 에너지 발전으로 논의가 확대되어 간다. ˝라고 리프킨의 사상을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노동이 삶의 필요조건이 된 산업사회에서 노동없는 사회는 어떻게 될지 막막합니다. 인간소외에 대해 고민없이 단순히 효율만을 사회에서 이제 세상을 바꾸나 생각합니다만, 아침마다 직장에서 마주하는 경제신문과 보수신문들은 1면부터 현정권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입니다. ㅠㅠ

겨울호랑이 2018-03-27 11:22   좋아요 2 | URL
예전에는 제레미 리프킨을 언론에서 띄우는 미래학자 중 한 명으로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니 <엔트로피>(1984) 이후 최근 <한계비용 제로 사회>(2014)까지 30년 동안 큰 줄기를 가지고 우리의 갈 길을 제시하는 것을 보면서 많이 놀랐습니다. 많은 미래 전망서가 금리변동, 트렌드의 변화 등을 통해 한탕주의 식으로 사회를 설명하는 것에 비하면, 논조와 내용이 설득력있게 다가와 요즘 정리하고 있습니다... 우향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소위 보수 언론들의 프레임 만들기가 요즘 더 심해진 듯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와는 달리 시민들이 많이 깨어 있어서 거를 것을 거르고 수용하고 있는 요즘이라 희망 또한 같이 느끼게 되네요^^:)
 

책세상 문고판 책은 휴대하기 편하면서도 고전에 대한 해제가 잘 정리된 책이라 여겨진다. 그래서, 본격적인 독서 전에 많이 활용하는 편이었고 내용 정리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지만, 르봉의 <군중심리학>의 해제는 예외가 될 듯하다.

장치사회학 책이니만큼 현재 상황과 저술 시점과의 비교, 대조가 필수적이기는 하겠지만, 해제에 담긴 저자의 현실 인식을 보면 공감하기 힘들다.

「100년도 훨씬 지난 프랑스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형성된 르봉의 이론은 한국 사회의 현실과 얼핏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 정권 때 FTA 개정을 통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 때문에 일어난 ‘광우병 소고기 반대 집회‘로 서울의 중심이 4개월이나 무정부 상태에 빠지고, 올해 4월에 일어난 ‘세월호 침몰 사고‘로 6개월 가까이 모든 국정이 마비되고 국론이 분열되는 상황을 보면, 르봉의 이론만큼 한국 사회를 사회심리학의 관점에서 성찰하기에 알맞은 이론도 보기 드물다.(p269)」

「우리는 세월호 침몰 사고 같은 국가적 주목을 받는 상징적 사건을 계기로, 군중심리 기제를 이용해 다양한 정치적 목적을 이루고자 본질을 호도하거나 조작하는 움직임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한국 위정자에게는 마키아벨리가 <군주론 Il Principe>에서 강조한 것처럼 현실 정치에 능란하면서도. 프랑스 제5공화국 당시의 드골 대통령처럼 군중심리를 오히려 지혜롭게 이용하여 혼란을 잠재우고 정치, 사회, 문화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키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르봉이 심혈을 기울여 <군중심리학>을 저술한 목적이다.(p270)」

현대 사회 군중 심리를 <군주론>이 쓰여진 16세기 민중 심리와 큰 차이없는 것으로 인식하고, 독재 리더십으로 끌고 나가야하는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역자의 현실인식에 대해 공감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 책을 추천하기 어렵다. 물론, 역자 자신의 정치적 견해와 책의 내용은 별개가 되어야겠지만, 책의 내용에 정치적 입장이 표기된다면, 독자의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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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18-03-04 16: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래전에 읽은 어느 책(제목이 기억나지 않습니다)에서 드골을 대단한 영웅으로 묘사한 역자였던 것은 기억납니다. 이분이 지금 서강대에 재직중인 것으로 아는데 지금도 학생들에게 어떤 강의를 할지 궁금합니다.

겨울호랑이 2018-03-04 16:25   좋아요 1 | URL
네... 파란여우님 말씀처럼 해제 전반에 걸쳐 드골 찬양 일색이네요... 지금도 책의 내용과 같은 강의를 한다면 촛불을 체험한 학생들이 과연 얼마만큼 받아들일지 모르겠습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03-04 21: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해제 아닌 원본은 다른 느낌이실 수 있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8-03-04 22:06   좋아요 1 | URL
^^: 네 저도 그래서 문예출판사 이재형 역의 「군중심리」로 원본을 제대로 읽어 보려 합니다^^:)

2018-03-07 06: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3-07 08: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3-07 15: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3-07 15: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3-07 1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3-07 1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madhi(眞我) 2018-03-13 03: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행히 저는 이재형 역 책 가지고 있네요. 겨울호랑이님 덕에 이 역자의 책은 거를 수 있겠네요^^

겨울호랑이 2018-03-13 07:19   좋아요 0 | URL
^^:) 네 저도 말씀하신 역자의 판본으로 다시 읽어보려 합니다. 정보는 이웃들끼리 공유해야겠지요^^:)
 

'어떤 생산요소의 한계투입이라는 개념은 투입증가에 따른 수익체감경향의 가능성을 의미한다. 임의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특정 수단의 과도한 투입은 실제로 모든 사업부문에서 수익체감을 낳을 것이 확실하다... 만일 어떤 사람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용도를 위한 재료 선택에 과도한 배려와 자금을 투입한다면, 그러한 지출은 급격한 수익체감을 낳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도 사실이다.(p108)... 수익체감의 법칙은 농장주들이 일반적으로 각종 작물에 대한 상대적 수요를 고려해서 토지 및 기타 자원에 가장 적합한 작물들을 경작하고, 자원을 각종 경작하는 데 적절하게 배분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p109)'


 영국의 경제학자 앨프레드 마셜(Alfred Marshall, 1842 ~ 1924)은 그의 대표작 <경제학 원리 Principles of Economics>에서 위와 같이 한계수익 체감, 한계비용 체증의 법칙을 설명하고 있다. 한계생산성 체감의 법칙(law of diminishing marginal productivity)으로도 설명되는 위의 내용은 고전경제학(古典經濟學)의 중요한 기초 가정이기도 하다. 다른 생산요소가 고정되었을 때 한 단위 생산요소의 투입비용이 증가한다는 한계비용 체증의 법칙이 더이상 성립하지 않는 사회. 그러한 사회를 제러미 리프킨(Jeremy Rifkin)은 <한계비용 제로 사회 The Zero Marginal Cost Society>를 통해 설명한다. 


 리프킨이 주장하고 있는 한계비용 제로(0) 사회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경제학에서는 크게 생산비용을 고정비용(FC : Fixed Cost)과 변동비용(VC : Variable Cost)으로 구분한다. 고정비용은 생산량이 변화하여도 단기간 변동이 없는 비용이며, 여기에는 기업의 임차료, 지불이자, 자본재의 감가상각비 등이 있다. 이에 반해 가변비용은 생산량의 변화에 따라 변동하는 비용을 의미하며 크게 노동자의 임금(賃金)이 여기에 속한다. 


 '종반적에 이르면 치열한 경쟁으로 기술은 계속 발전하고 그에 따라 생산성이 최고점에 달해 판매를 위해 생산하는 각각의 추가 단위가 "제로에 가까운" 한계비용으로 생산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다시 말하면 재화나 서비스를 한 단위 더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추가 비용을 뜻하는 한계비용(marginal cost)이 기본적으로 제로 수준이 되어 상품의 가격을 거의 공짜로 만드는 상황이 발생한다. 만약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자본주의의 생명소라 할 수 있는 있는 "이윤(profit)"이 고갈되는 결과가 나타나게 된다.(p12)'


 기술이 발전하고 투입되는 자본재가 최대인 상태. 그 상태를 저자는 한계비용 제로인 상태로 설명한다. 그렇다면, 이 지점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과거의 경제 법칙이 더이상 적용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과거 산업시대에 적용되었던 '규모의 경제(規模의 經濟, economies of scale)'가 힘을 쓰지 못하게 된다.  투입되는 규모가 커질수록 장기평균비용(LAC)이 줄어들게 되는 현상을 설명하는 '규모의 경제'의 원리는 대규모 자본의 집중을 설명하는 주요한 근거가 되어 왔다. 그렇지만, 더 이상 한계비용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자본의 집중은 더 이상 설 땅을 잃게 된다. 마치 6,600만년전 백악기 말엽에 이루어진 대멸종의 시대에 공룡이 자취를 감추고 포유류가 점차 그 자리를 대신한 것과 같이, 대자본은 한계비용제로 사회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프로슈머와 사회적 기업이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이 저자가 바라보고 있는 포스트 자본주의 시대의 시작점이 된다. 


  '한계비용 제로 혁명은 재생에너지와 3D 프린팅 제조, 온라인 고등교육 등을 포함하는 여타의 산업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에 달하는 "프로슈머(prosumer)", 즉 생산에 참여하는 소비자들이 직접 자신이 쓸 녹색 전기를 제로에 가까운 한계비용으로 생산하고 있다... 한계비용 제로 혁명을 주도하는 참여자 다수는 앞으로 무료에 가까운 재화와 서비스가 훨씬 더 우세해지겠지만 한편으로는 성장을 유지하고 심지어 자본주의 시스템을 번성케 하기 위해 여타의 재화와 서비스에 대해 충분한 마진을 창출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도 열릴 것이라고 주장한다.(p13)'


 '우리는 프로슈머가 빠르게 늘어나고 또래 생산이 사물인터넷을 통해 기하급수적으로 가속화하면서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과 마케팅, 배달 비용을 줄일 때 공유사회의 사회적 경제가 얼마나 더 극적으로 진화하는 속도를 올리는지 확인했다. 그로 인해 기존의 2차 산업혁명 기업들의 이윤 폭은 더 줄어들고 있으며, 그들 중 다수가 곧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고 있다.(p480)'

<한계비용 제로 사회>는 작가의 전작 <노동의 종말>과 <소유의 종말>과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 1996년 쓰여진 <노동의 종말> 속에서 리프킨은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여 쉬지 않고 일하는 자본의 위협을 지적하고 있다. 이어서 2001년에는 <소유의 종말>을 통해 소유 대신 체험을 강조하는 인간 가치관의 변화를 지적하면서, '접속'의 중요성을 강조했었다. (사실, <소유의 종말>의 원제는 <The age of Acess>다.) 그리고, <한계비용 제로 사회>는 이러한 종말의 시대가 가져온 결과가 되는 것이다.


이 책들이 나온 시기는 벌써 20여년이전이기에 지금 시점에서 바라본다면 크게 새롭지는 않지만, 현실을 잘 설명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노동의 종말>에서 말하는 산업 사회에서 자본에 의한 노동의 대체는 사회 구조의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고, <소유의 종말>에서 말하는 접속에 의해서 생존 패러다임이 변화하게 되었다. 여기에 기반한 <한계비용 제로 사회>에서는 과거보다 풍요로운 인류에 대한 희망이 제시된다는 점에서 저자의 주장을 요약하면 '포스트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유토피아'라 생각된다. 

 

 그렇다면, 과연 과학 기술 발전이 이처럼 우리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인가. 그 부분에 대해서 좀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리프킨이 한계비용 제로 사회라고 말한 기술이 발달한 어느 지점을,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은 <특이점이 온다 The Singularity is near>에서 기술이 인간을 초월하는 순간, 특이점으로 표현을 하고 있다. 


 '특이점을 개념적으로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이 단어가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특이점"은 놀랄만한 결과를 가져오는 특이한 사건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수학에서는 유한한 한계를 한없이 초월하는 큰 값을 의미하는데, 가령 상수를 0에 한없이 가까워지는 수로 나눈 결과처럼 무한히 커지는 값을 지칭한다. y=1/x라는 간단한 함수를 생각해 보자. x값이 0에 가까워질수록 함수값(y)은 점점 더 폭발적으로 증가한다.(p43)'


[그림] 수학에서의 특이점 (출처 : http://hkpark.netholdings.co.kr/web/manual/default/manual_view.asp?menu_id=107589&id=2853)


 <특이점이 온다>에서 특이점은 기술이 인간을 초월하는 순간을 의미하기 때문에, 한계비용 제로 사회와는 직접 비교는 어렵다. 다만, 2016년 인공지능(AI)알파고가 인간 이세돌을 이겼을 때, 많은 이들이 '특이점'을 연상했다는 점과 알파고가 수많은 커퓨터가 연결된 클라우드 컴퓨팅(Cloud Computing)으로 구현된 기술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리프킨이 말한 수많은 사람들의 '접속'에 의해 유지되는 한계비용 제로 사회와 아예 연관없다고 볼 수 없다고 여겨진다. 그래서, <특이점이 온다>와 <한계비용 제로 사회>를 비교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특이점 이후의 시대가 유토피아(Utopia)가 될 것인가, 아니면 디스토피아(Dystopia)인가 될 것인가 하는 부분은 별도의 페이퍼에서 살펴보도록 하며, 다소 길었던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PS. <특이점이 온다>는 기술변화가 가져올 변화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는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 Homo Deus>와도 겹쳐지는 부분이 있어, 이 두 책을 비교해서 보는 것 역시 의미가 있을 것 같다. <특이점이 온다>에서 미래에 일어날 세 가지 혁명으로 유전학, 나노기술, 로봇 공학(AI)을 들고 있는데, 유발 하라리는 <호모 데우스>를 통해 유전학과 인공지능으로 신(神)의 영역에 도전하는 인간을 그리고 있으니 이 역시 의미있는 비교가 될 듯 하다. 그리고, 그 비교는 말을 꺼낸 사람이 해야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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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8-03-04 01: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든 걸 경제 수치적인 걸로 환산하는 풍조가 정말 우려됩니다. 좋아요 갯수, 팔로워 수 등등등 까지 해서 말이죠. 오늘 내가 먹은 거, 내가 산 책, 내가 찍은 사진, 내가 그린 그림 인증 등 온 사방이 수치화-_-;(네, 인간 실험체 A씨, 제 얘깁니다) 이런 수치 환산적인 환경 속에 프로슈머가 더 강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사물인터넷으로 이 모든 것에 모두가 동참하고 있는 상황이니까요. 기계와 우리의 합체는 당연한 수순인 듯...

겨울호랑이 2018-03-04 08:52   좋아요 1 | URL
모든 것을 수로 환원하고 평가하는 상황이 비인간적이라 여겨지기에, AglamA님 말씀처럼 모두의 참여로 보다 인간적인 모습으로 바뀌어 나가는 가능성이 높아가는 것은 이에 대한 일종의 ‘반‘이라 여겨집니다. 과학기술이 보다 적절하고 긍정적으로 활용된다면 우리의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다는 것을 리프킨은 말하는 것 같아요^^:)

2018-03-05 1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3-05 1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국제 전기/ 전자부문 '공룡 기업'인 지멘스가 바삐 움직인다. 지멘스는 신재생에너지 시대에 맞춰 사업성이 떨어지는 화력발전 사업 부문 7천명을 줄이는 등 강도 높은 구조고정을 추진하고 있다. 조 케저 지멘스 회장은 대형 유조선인 지멘스를 성능이 뛰어나고 유연한 소형 선박으로 구성된 선단으로 바꾸겠다고 했다. 그가 지멘스라는 대기업을 작고 민첩한 단위로 분할하려는 이유는 영미계 추자자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조 케저의 위험한 프로젝트는 지멘스 노동자들의 격렬한 저항을 받고 있다. 내부에선 그가 독단적으로 지멘스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비판도 나온다.(p61)


 Economy Insight 2월호 기사에는 독일의 최대 엔지니어링 회사인 지멘스(Simens)가 생존을 위해 기업 확장 대신 소규모 사업 단위 운영을 선택하면서 동시에 인력감축을 통한 구조조정을 실시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격변하는 시대 변화에 살아남기 위해 변신을 추구하는 지멘스의 전략은 얼핏 보면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연상시키지만, 구체적인 내용면에서는 다소 차이가 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Small is beautiful : a study of economics as if  people mattered>에서 E.F. 슈마허(Ernst Friedrich Schumacher, 1911 ~ 1977)는 경제분야에서 거대주의(gigantism) 대신 최소주의(Minimalism)를 지향하며, 새로운 인식의 전환을 말한다. 그리고, 최소주의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으로 소비, 생산, 분배 측면에서 '가치관의 전환', '교육'과 '중간기술', '공동소유'의 중요성을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는 강조한다. 


1. 소비 : 가치관의 전환과 교육


 가. 가치관의 전환


 저자는 경제학을 파생된 사유체계인 메타경제학으로 정의하면서, 이를 위해 경제학을 인간적인 측면과 외부적인 측면(자연적인 측면)에서 접근을 시도한다. 인간적인 측면에서는 적절한 소비 패턴과 인간 노동에 의한 생산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삶을 보다 만족스럽게 꾸려갈 수 있다. 외부적인 측면에서 우리의 자연(自然)에 대한 입장 변화가 필요하다. 개발 대상으로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을 재생(再生) 가능성 측면에서 접근했을 때 우리 삶은 바꿔질 수 있음을 저자는 말한다.


경제학은 '일정한' 틀 내부에서만 정당하면서도 유용하게 작동하는데, 이 틀은 완전히 경제적 계산 영역 외부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경제학이 제 발로 서 있는 학문이 아니라거나 '파생된' 사유체계, 즉 메타경제학(meta-ecomomics)으로부터 파생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p63)


서구의 물질주의라는 메타경제적 토대를 버리고 그 자리에 불교의 가르침을 수용한다면 경제법칙이나 '경제적' '비경제적'이라는 개념은 어떻게 될 것인가?(p70)... '올바른 생활(Right Livehood, 正命)은 불교의 팔정도(Noble Eightfold, 八正道) 가운데 하나이다.(p71)... 불교 경제학은 물질주의자의 부주의(heedlessness)와 전통주의자의 부동성(immobility) 사이에서 올바른 발전 경로인 중도, 즉 '올바른 생활'을 발견하는 문제이다.(p82)


모든 일들은 생산자로서의 인간이 '비경제적으로 사치'할 만한 여유가 없으며, 그래서 소비자로서의 인간이 가장 간절하게 원하는 바로 그 필수적인 '사치품' -건강, 아름다움, 영속성-을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을 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비용이 필요하며, 부유해질수록 그 비용을 감당할 '여유'가 점점 더 없어진다.(p148)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을 만큼 값이 싸며, 소규모 이용에 적합하고, 인간의 창조적 욕구에 부합될 수 있는것. 이러한 세 가지 특성으로부터 비폭력이 생겨나고, 영속성이 보장되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출현한다.(p47)


나. 교육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서 영속성이 강조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서 변화되어야 할 가치관의 전환 역시 전달이 중요하다.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가치관의 전환이 확산되었을 때 우리의 삶이 구체적으로 달라질 수 있게 된다. 


근대 세계는 근대 형이상학의 산물이며, 이 형이상학은 근대 교육을 틀지웠으며 이 교육은 다시 과학과 기술을 산출했다. 그러므로 형이상학이나 교육까지 언급하지 않더라도, 근대 세계를 만드는 것은 기술이라고 말할 수 있다.(p187)

오늘날 과학 기술의 진보로부터 생겨난 문제들을 처리하는 데 있어 교육의 힘에 의존하는 바가 그렇게 크다면, 교육에는 스노경(Charles Percy Snow, Baron Snow, Kt., CBE, 1905 ~ 1980)이 주장하는 이상의 그 무엇이 존재해야 할 것이다. 과학 기술은 노하우(know-how)를 생산하지만, 노하우 자체는 아무것도 아니다.(p104)... 교육이 무엇보다도 먼저 가치관(ideas of value), 즉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관념(ideas)을 전달해야 할 것이다.(p105) 


3. 생산 : 중간기술(대중에 의한 생산)


 저자는 생사 측면에서는 자본재(기계)에 의한 대량 생산이 아닌, 대중에 의한 적정량의 생산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를 '중간 기술'로 이름지으면서, 해외 원조 역시 자본재 수출이 아닌 중간 기술의 수출이 이루어졌을 때 피원조국은 바람직한 경제 체제를 구축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간디가 말했듯이, 대량 생산이 아니라 오로지 대중에 의한 생산만이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다.(p196)... 대량 생산 기술은 본질적으로 폭력적이며, 생태계를 파괴하고 재생될 수 없는 자원을 낭비하며,인성을 망쳐놓는다..대중에 의한 생산 기술은 근대의 지식과 경험을 가장 잘 활용하고, 분산화를 유도하며, 생태계의 법칙과 공존할 수 있고, 희소한 자원을 낭비하지 않으며, 인간을 기계의 노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유용하도록 고안된 것이다... 필자는 이를 중간 기술(ntermediate technology)라 명명한 바 있다.(p197)


중간 기술은 대량 생산이 아니라 대중에 의한 생산에 기여한다... 필자는 기술 발전에 새로운 방향을 제공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 방향은 기술을 인간의 실질적인 욕구에 맞게 재편하는 것이며, 이는 또한 인간의 실제 크기에 맞추는 것이기도 하다. 인간은 작은 존재이므로, 작은 것이 아름답다. 거대주의를 추구하는 것은 자기 파괴로 나아가는 것이다.(p204)


4. 분배 : 공동소유


 저자는 책을 통해 분배면에서는 '공동소유'를 강조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제점은 민간대기업이 공공부문의 많은 부문을 이용하면서도 이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래서, 이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공공기관에 의한 민간대기업 소유를 제안한다. 


공동소유(commom ownership)나 공동체는 이윤 분배나 공동 경영이나 집단 소유(co-ownership), 또는 개인이 공유기업에서 부분적인 이해 관계를 보일 수 있는 온갖 형태(scheme)로부터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이다. 이것들은 공유(woning thing n commom)로 나아가는 것이며, 그래서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공동소유는 독특한 장점을 갖는다.(p352)


필자는 공공기관이 민간대기업의 배분이윤 중 절반을 수령해야 하며, 그 방법은 이윤세가 아니라 기업 주식의 50%를 소유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가정할 것이다.(p361)... 이는 민간 부문의 유연성을 관료적 경직성(ponderousness)으로 대체하지 않더라도 대기업의 소유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 이 구상은 점진적이면서도 실험적인 방식으로 도입할 수 있다. 즉 가장 큰 기업에서 출발해서, 기업이라는 요새에서 공익이 충분히 존중되고 있음을 확인할 때까지 점차 규모가 작은 곳으로 나아가는 것이다.(p369)


[사진] 몬드라곤 협동조합(자료출처 : 동아일보)

저자가 강조한 이러한 공동소유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를 우리는 몬드라곤(Mondragon)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조그만 협동조합수준을 넘어 이제는 그룹(group)으로까지 성장한 몬드라곤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슈마허가 강조한 생산과 분배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동시에, 저자의 이러한 의견은 국내 주식 시장에 20% 넘게 투자하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소유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는 국내의 국민연금의 운용현황의 문제를 생각하게 만든다. 노후 소득이 없는 이들의 주요 소득원을 국내대기업의 운명과 연동시키는 것이 옳은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기업에 운영에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현실은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제시된 공동소유의 모습과는 같은 듯 분명 다르다.



[사진] 몬드라곤 그룹 규모(자료출처 : YTN)


[사진] 국민연금 자산군별 기금규모 (자료출처 : 연합뉴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비슷한 주제를 다룬 다른 책들보다 깊이 있게 느껴지는 것은 그속에 담겨있는 철학(哲學)의 깊이 때문이다. 책의 본문 한 장(章)에서 구체적으로 '불교 경제학'을 말하고 있지만, 불교에만 한정되지 않는 인류 보편적 사상이 담겨있다. 일례로 노자(老子, BC604 ? ~ ?) 의 <도덕경 道德經>과 맞닿아 있는 부분은 아마도 다음 구절일 것이다.

80章 小國寡民


小國寡民, 使有什佰之器而不用, 使民重死而不遠徙,

소국과민, 사유십백지기이불용, 사민중사이불원사,

雖有舟輿, 無所乘之, 雖有甲兵, 無所陳之,

수유주여, 무소승지, 수유갑병, 무소진지,

使人復結繩而用之, 甘其食, 美其服, 安其居, 樂其俗,

사인부결승이용지, 감기식, 미기복, 안기거, 낙기속,

隣國相望, 鷄犬之聲相聞, 民至老死不相往來.

인국상망, 계견지성상문, 민지노사불상왕내.


나라는 작고 백성은 적으며, 편리한 기계가 있어도 사용하지 않고,

백성들은 죽음을 중히 여겨, 멀리 옮겨 다니지 않는다. 

배와 수레가 있지만 탈 일이 없고, 무기가 있지만 쓸 일이 없다.

사람들로 하여금 다시 새끼를 엮어 쓰게 하고 먹던 음식을 달게 여기고, 

입던 옷을 좋게 여기며, 살던 곳을 편안히 여기고, 각자의 풍속을 즐거워하게 하니,

이웃 나라가 서로 바라보이고, 닭 울고 개 짖는 소리가 들려도 

백성들은 늙어 죽을 때까지 돌아다니지는 않는다. (p314)


 그렇지만, 슈마허의 '작은 것'은 노자(老子, BC604 ? ~ ?)가 말한 소국(小國)과는 결을 조금은 달리 하는 것 같다. 노자가 <도덕경>을 통해 '최소한의 문명(文明)'을 강조한다면,  저자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적절한 문명의 유지'를 강조한다고 생각되기 때문이지만, 아마도 이 부분은 <도덕경>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소비자로서의 인식전환, 중간 기술에 의한 노동(labour) 중심의 생산, 공동소유로 대표되는 분배를 강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이미 1970년대 주장한 대부분의 논의는 현재도 진행형이다. 과거보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는 요즈음 <작은 것이 아름답다>가 주장하는 내용이 설득력있게 다가온다는 면에서 이 책은 경제학의 현대 고전(古典)이라 여겨진다.


PS. <도덕경>은 그런 책이 아니라는 강신주 박사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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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25 19: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25 19: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설 연휴 직전 한국GM에서  군산공상 폐쇄를 일방통보하면서 군산지역 경제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여야 정치권에서는 GM 경영진을 만나 공장폐쇄등 관련 현안에 대해 협의를 하고 있지만, 문제 해결은 쉽지 않아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 야권인 자유한국당에서는 GM문제를 낮은 생산성문제로 말하면서 노조를 비판하고 있는 실정이다.


관련기사 : 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590394


과연 이러한 주장이 맞는 주장인지 살펴보자. 먼저, 우리나라의 노동생산성은 낮은가? 단정적으로 말하자면 낮은 수준이다.


[그림] 2015년 기준 OECD 주요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출처 : e-나라지표 http://www.index.go.kr/potal/stts/idxMain/selectPoSttsIdxSearch.do?idx_cd=2890&stts_cd=289005



시간당노동생산성 : 1인당국내총생산/총노동시간


 그래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는 시간당 노동 생산성이 약 30달러 수준으로 65달러 수준에 달하는 미국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의 노동생산성이 낮은 것은 사실이다. 다만, 우리는 노동생산성에서 분모에 주목해야 한다. 분자가 되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에서 GDP는 일정 기간 동안 한 국가에서 생산된 재화와 용역의 시장 가치를 합한 것을 의미하며 보통 1년을 기준으로 측정하게 된다. 생산을 위해서는 자본, 노동, 기술 등 여러 요소가 투입되는데, 노동은 이들 여러 요소중 하나일 뿐이다. 이를 사전에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노동생산성 勞動生産性 labour productivity


어떤 생산부문 또는 어떤 생산자의 노동의 생산력이나 생산성은 일정 시간 내에 생산되는 생산물의 수량에 의해 측정된다. 다만 이 경우 노동의 강도는 일정불변으로 가정한다. 노동의 생산력을 특히 규정하는 것은 노동자의 숙련의 평균 정도, 과학 및 그 기술적인 응용가능성의 발전단계, 생산과정의 사회적 결합, 생산수단의 범위 및 작용능력, 자연적 사정(인종, 농산물의 풍흉, 광물의 매장량 등)이다. 노동의 생산력이 변하여도 일정 기간내에 생산되는 상품의 총가치는 영향이 없다.


 노동생산성을 결정하는 것은 노동자의 숙련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본과 기술은 물론 사회적, 지리적 요인도 고려된 사회의 생산물을 통해 노동생산성을 측정하기 때문에, 단어 그대로 '노동의 생산능력'으로 해석되어서는 곤란하다. 특히, 시간당노동생산성의 경우 1인당 국내총생산을 총 노동시간으로 나누게 되면 생산성은 더욱 낮아지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OECD에서도 두번째로 긴 노동시간은 측정단위에서 분모가 되기 때문에 생산성을 높이기보다 오히려 낮추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관련기사 :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8/15/0200000000AKR20170815071000002.HTML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경영자들은 낮은 생산성의 문제를 노동자의 숙련도 문제로 돌리고, 낮은 숙련도로 노동투입시간을 늘리는 것과 해외 이전을 합리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경영자들은 노동생산성문제로부터 자유로운가?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 ~ 1790)의 <국부론 (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의 유명한 분업(分業)과 관련한 문단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나는 이러한 종류의 작은 공장을 본 적이 있다. 거기에는 10명만이 고용되어 있었고, 따라서 약간의 노동자들은 두세 가지 서로 다른 조작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매우 빈곤했고, 따라서 필요한 기계를 거의 가지지 않았지만, 그들은 힘써 일할 때 하루 약 12파운드(5.4kg)의 핀을 만들 수 있었다. 1파운드는 중간 크기의 핀 4,000개  이상이 된다. 그러므로 10명이 하루에 48,000개 이상의 핀을 만들 수 있고 한 사람은 하루에 4,800개의 핀을 만든 셈이 된다. 그러나 그들이 각각 독립적으로 완성품을 만든다면, 그리고 그들 중 누구도 이 특수 업종의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다면, 그들 각자는 분명히 하루에 20개도 만들 수 없을 것이며, 어쩌면 하루에 1개도 만들 수 없을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상이한 조작들의 적당한 분할과 결합이 없다면, 그들 각자가 지금 생산할 수 있는 것의 1/240은 물론 아마 1/4,800도 만들 수 없을 것이다.(p9)


 상이한 조작들의 적당한 분할과 결합에 따라 노동의 생산성이 극명하게 달라지는 사례를 우리는 <국부론> 속에서 이미 확인할 수 있다. 이 경우 노동생산성의 차이는 노동자의 성실성보다는 노동력의 적절한 배치에 달려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결정은 노동자가 아닌 경영자가 하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경영자에게는 일반 노동자보다 많은 보수가 주어지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낮은 생산성에 대한 책임을 노동자 또는 노조에게 돌리는 것은 비겁한 변명 수준을 넘지 못한다.


 결국, 낮은 노동생산성 문제는 노동자만의 책임이 될 수 없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자가 자기계발을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노동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 회사에서는 경영자의 노력이, 사회 전체의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낮은 노동생산성을 노동자만의 문제로 돌리는 것은 사실의 왜곡이라 볼 수 밖에 없다. 공군 파일럿 1명의 전투력이 육군 보병 1명의 전투력보다 높다고 해서, 파일럿이 자신이 조종하는 전투기를 제공하지 못한다. 이를 제공하는 것이 나라라면,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은 기업과 국가의 몫이다.


 GM이 단계적으로 철수하는 문제는 복잡한 문제다. 글로벌 기업의 세계전략을 '낮은 노동생산성'의 문제로 돌리는 것은 지나치게 문제를 단순화하는 것이다. 백보 양보해서 낮은 노동생산성 문제라고 하더라도 이는 적절한 철수 이유가 되지 못한다. 낮은 노동 생산성의 책임은 경영진에도 분명 있기 때문이다. 높은 경영진 보수 문제를 제외하고 노동생산성의 정의(definition)만 놓고 보더라도 그렇다. 정치권에서 노동생산성을 언급한다면 보다 정확한 의미를 파악한 후 사용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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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22 13: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22 1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02-22 20: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노동생산성 수준이 낮은건 노동자가 아닌 경영층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에게 생산성 잣대를 들이대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일인입니다. ㅎㅎ
넘 비인간적이잖아요, 우리가 기계도 아닌데...ㅠㅠ

겨울호랑이 2018-02-22 21:15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거슬러 올라가면 문제는 모든 것을 계량화하여 측정하는 과학적 사고 역시 문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정량화된 근거와 자본이 결합한 자리에는 인간적인 면이 배제되는 것 같네요... 그런면에서 칼폴라니는 좋은 대안을 제시하는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서니데이 2018-02-24 18: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즐거운 주말 기분 좋은 토요일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18-02-24 19:41   좋아요 1 | URL
^^: 서니데이님도 행복한 주말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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