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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는 시오노 나나미(?野七生, 1937 ~ )가 저술한 로마제국을 배경으로 한 역사 소설이다. <로마인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둔 작품이라고는 하지만, 작가의 주관적인 해석이 강하기 때문에 객관적인 역사서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다고 여겨지는 작품이다. 1997년 처음 <로마인 이야기>를 접한 후 15권이 나올 때까지 매년 읽은 후 별도로 정리하지 않았던 이 책을 최근  몸젠(Christian Matthias Theodor Mommsen, 1817 ~ 1903)의 <몸젠의 로마사>와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 1737 ~ 1794)의 <로마제국 쇠망사>를 읽으며,  로마사를 돌아보던 중 다시 펼쳐보게 되었다. 이번 페이퍼에서는 <로마인 이야기> 1권을 통해 저자인 시오노 나나미가 로마사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는지와 그녀의 역사관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해 보려 한다.


 '무기들과 한 전사를 나는 노래하노라. 그는 운명에 의해 트로이야의 해변에서 망명하여 처음으로 이탈리아와 라비니움의 해안에 닿았으나, 육지에서나 바다에서나 하늘의 신들의 뜻에 따라 숱한 시달림을 당했으니 잔혹한 유노가 노여움을 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전쟁에서도 많은 고통을 당했으나 마침내 도시를 세우고 라티움 땅으로 신들을 모셨으니, 그에게서 라티니족과 알바의 선조들과 높다란 로마의 성벽들이 생겨났던 것이다.' <아이네이스>(제1권 1 ~ 7)


 <로마인 이야기> 제1권은 베르길리우스(Publius Vergilius Maro, BCE 70 ~ BC19) <아이네이스>처럼 아이네이아스가 트로이를 탈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공화정 초기까지의 로마의 역사를 배경으로 한다. 테베레강 유역에서 출발한 로마가 삼니움 족, 에트루리아 왕국, 켈트(갈리아)족의 침입을 극복하고 이탈리아 반도의 맹주로 자리잡는 과정을 시대순으로 그려낸다. 1권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로마는 그리스와 어떤 점이 달랐는가?'로 요약될 수 있을 정도로 시오노 나나미는 이 점에 집중하고 있다. 그렇다면, 저자가 생각하는 로마와 그리스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1. 로마는 그리스와 어떤 점에서 달랐는가? : 시오노 나나미


 저자가 생각하는 그리스인들은 모험심이 많으나, 단결심이 부족한 이들이었다. 그리고, 단결심이 약한 그리스인들은 정치적으로도 한계를 보이게 된다. 대표적인 그리스 폴리스인 아테네 민주정의 끝은 결국 참주정(독재정치)로 귀결될 수 밖에 없었다고 시오노 나나미는 말한다.  


 '"대(大) 그리스"라고 부른 이유는 이런 도시들이 급속히 발전하여 단기간에 풍요로운 번영을 이룩했기 때문이다. 이미 높은 문명을 가진 그리스인이 정착했으니까, 모든 면에서 시행착오가 없다. 급속한 번영의 요인은 지나칠 만큼 골고루 갖춰져 있었다(p35)... 그들은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지만, 단결심과는 인연이 멀었다. "대 그리스"의 여러 도시들도 서로 힘을 합하여 공동으로 싸운 적은 한번도 없었다.(p38)"


 '아테네 정치체제의 변화는 그야말로 정치 교과 그 자체여서, 우리에게 정치체제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큰 시사가 되지만, 이 무렵에는 아테네도 그리스의 다른 폴리스와 같은 체험을 하게 되었다. 아나르키아 끝은 '티라니아', 즉 독재정치다. 무정부 상태의 혼란과 계속되는 권력투쟁에 지친 아테네 시민들은 질서만 회복된다면 그밖의 일은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것을 스스로 실현할 능력이 없는 그들은 한 사람에게 질서 회복의 임무를 맡겼다.(p120)'


  또한, 그리스인들이 개척한 해외 식민지의 경우에도 본국과 거의 단절된 채 발전했기 때문에 이들은 결국 도시국가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고 저자는 해석한다.


 '"대 그리스"의 그리스인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본국의 그리스인과 정치적 유대는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스파르타인의 식민지로 출발한 타렌툼도 군사 국가인 스파르타와는 반대로 아테네적인 통상 국가로 번영해 왔다. 하지만 스파르타인이 건설한 타렌툼도, 코린트인이 건설한 시라쿠사도, 그리스 적인 성향은 그대로 물려받았다. 도시국가로 태어난 뒤에도 계속 도시 국가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국가의 중심인 도시와 그 주변을 제외하고, 그 이상의 범위까지 세력을 넓히는 데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p270)'


 이에 반해, 로마는 그리스에는 없는 두가지 장점이 있었다. 켈트(갈리아)인들의 침입으로 인해 로마까지 빼앗겼던 로마는 철저하게 외부의 장점을 모방하고, 자신의 적대 세력까지 포섭하는 정책으로 인해 자신의 세력을 키워갈 수 있었고, 이러한 점을 발전시켜 결국 제국(Empire)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되었다. 


 '켈트족의 로마 점령은 엄청난 큰 사건이었다. 그리스를 비롯하여 이웃 나라들도 로마인의 비참한 패배를 모두 다 알고 있었다... 밑바닥에 떨어진 채 올라오지 못하고 끝나버리는 민족도 적지 않다. 로마인은 기원전 390년에 밑바닥까지 떨어졌지만, 로마인답게 느리면서도 착실하게 다시 기어올라 온 것이다.(p190)... 기원전 390년의 켈트족 침입은 로마인에게 철퇴를 가했지만, 그 이후의 로마를 이야기하다 보면 미몽에서 완전히 깨어난 사람의 행동을 추적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p191)'


 '그리스 땅에서 폴리스(polis)가 스스로 무너진 과정도 로마인은 분명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아테네든 스파르타든 폴리스적인 국가는 단명으로 끝난다는 사실을 로마인에게 가르쳐 준 것이 아닐까. 로마인은 표면에 나타난 현상만 보는 사람들이 모방의 민족이라고 경멸할 만큼 다른 민족한테서 많은 것을 배운 민족이었다.(p196)'


 '로마는 앞으로도 과두정치, 즉 소수 지도체제로 해나갈 것임을 분명히 밝힌 셈이다. 그리고 공화국 정부의 모든 요직을 평민 출신한테도 개방하기로 결정했다. 이것은 깊은 통찰력에 뒷받침된 현명한 결단이었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리키니우스 법"을 입안한 평민 출신의 리키니우스와 그 생각을 법제화하는 데 찬성표를 던진 귀족돌은 계급별 분배가 아니라 전면 개방이라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참으로 대단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p203)'


 '신흥세력을 체제 안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다 해도, 새로 대두하는 또 다른 신흥세력을 편입하는 것도 잊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끌어안기를 영원히 계속해야 할 숙명을 안고 있는 셈이다. 적어도 기원전 1세기까지 300년 동안은 이 "끌어안기" 방식이 유효하게 기능을 발휘했다.(p206)'


 결국, 시오노 나나미에 따르면 성공에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던 그리스는 단결을 하지 못해 세계 제국으로 도약을 하지 못한 반면, 악조건 속에 있던 로마는 특유의 포용력으로 이 시기 이미 세계 제국으로의 도약을 준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제국을 지향하는 시오노 나나미의 세계관(世界觀)이기도 하다. 제국을 꿈꾸는 시오노 나나미의 세계관 속에서 과거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를 부르짖던 일본제국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이 지점에서 우리가 불편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그림] 욱일기를 앞세우고 제국을 꿈꾸는 일본(출처 : http://luckcrow.egloos.com/m/2416330)


 사실, 시오노 나나미의 이러한 세계관은 <로마인 이야기> 이전 베네치아를 배경으로 한 <바다의 도시 이야기>에서도 나타난 바 있다. 동지중해의 패권을 두고 경합을 벌였던 제노바와 베네치아의 흥망을 시오노 나나미는 이와 유사하게 해석하고 있다. 개인적인 제노바인들은 결국 도시국가의 한계를 넘지 못한 반면, 유기적인 조직을 갖추었던 베네치아는 후에 나폴레옹에 의해 멸망되기까지 번영할 수 있었다는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시오노 나나미의 역사관은 한결같은 면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 시기의 역사를 위와 같은 관점을 바라보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될 것이다. 이 문제는 같은 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가의 말을 빌려 답(答)을 해보자.


 2. 그리스와 로마는 각각 바라봐야 한다 : 몸젠


 몸젠(Christian Matthias Theodor Mommsen, 1817 ~ 1903)은 그의 저서 <몸젠의 로마사>에서 그리스와 로마를 바라보는 역사관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비록 완전하지는 못할지라도 종교와 문학의 통일을 이룩한 희랍인들의 강력한 지적 발전은 그들의 진정한 정치적 통일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모든 국가적 통일에 필수적인 순수성, 유연성, 자기 헌신, 융합 가능성을 상실했던 것이다. 이제 유치한 역사관을 떼어버릴 때가 되었는데 희랍인의 장점을 로마인의 단점에, 로마인의 장점을 희랍인의 단점에 비추어 비교하려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고대 세계가 이룩한 두 위대한 국가를 비난하거나 칭찬할 것이 아니라 각자가 자신의 결점을 토대로 자신만의 탁월함을 성취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두 국가가 서로 상이하게 성장한 가장 깊고 궁극적인 이유는, 성장의 시기 동안 라티움은 근동과 접촉하지 않고 희랍은 접촉했다는 것이다.(p252)'


 그리스와 로마를 서로 비교할 것이 아니라, 각각 그 자체로 봐야한다는 몸젠의 관점은 시오노 나나미의 역사관을 정면으로 비판한 내용이라 생각된다. 몸젠은 <몸젠의 로마사>에서 사실적인 기록과 언어학적인 분석을 통해, 그리스와 로마가 매우 강한 영향 관계 속에서 발전하고 있음을 서술하고 있으며, 각각의 문명 그 자체로 인정한다는 점에서 보다 객관적인 역사책이라 생각된다. <몸젠의 로마사>에 대해서는 별도의 리뷰에서 다룰 예정이다. (별로 기다리시는 분은 없겠지만, 그렇게 써둔다.)


  <몸젠의 로마사>를 읽은 후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다시 읽으면 책 곳곳에 있는 시오노 나나미의 역사관과 적품의 소설적 특징을 보다 깊이 느끼게 된다. 특히, 사실에 기반하면서도 마지막 부분에서 '나는 역사가가 아니니 이런 상상을 해본다'라고 자신의 의견을 던져놓고 다음으로 말을 돌리는 저자의 화법을 우리는 15권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접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로마인 이야기>를 마치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역사서로 접근하는 실수를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스를 시찰하기 위해 저 멀리 로마에서 찾아와, 1년 동안 머물렀던 세 명의 로마인이 본 것은 바로 페리클레스 시대의 아테네였다.(p156)... 그러나 로마는 이 아테네를 모방하지 않았다. 강대한 아테네도 항상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스파르타를 모방하지도 않았다. 쇠퇴기에 접어든 나라를 찾아가 거기에 나타난 결함을 타산지석으로 삼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절정기에 있는 나라를 시찰하고도 그 나라를 흉내내지 않는 것은 보통 재주가 아니다.(p157)'


 '만약 이 시기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그 천재와 정열을 동방이 아니라 서방에 쏟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상상도 시기적으로는 충분히 성립된다. 만약에 알렉산드로스가 동쪽이 아니라 서쪽으로 시선을 돌렸다면, 한창 융성의 길로 나아가고 있던 로마와 격돌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테고, 만약 그랬다면 그 결과는 어땠을까.(p248)... 리비우스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알렉산드로스가 상대였다 해도, 최종적으로는 로마의 승리로 끝났을 것이다."(p249)'


  이런 점에서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는 로마 역사를 처음 접하거나, 역사를 어려워하는 분들이 전체적인 흐름을 잡는 용도로 읽기에 좋은 입문소설(入門小說)이라 생각한다. 다만, 이러한 경우에도 상세 내용과 관련해서는 비판적으로 읽는 것을 소홀히 한다면, 율리우스 카이사르(Gaius Iulius Caesar, BCE 100 ~ 44)를 다룬 제5권과 6권에 서 로마제국의 추종자로 변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에 나오는 카이사르는 거의 군신(軍神) 수준으로 그려진다. 저자도 책에서 카이사르의 팬(fan)임을 공언할 정도이다. 전체 15권이 약 1,000여년의 시간을 다루고 있는데, 한 인물에 2권을 할당하는 자체가 이미 이 시리즈의 편향성을 말해준다.) 그래서, 향후 페이퍼에서는 <로마인 이야기>는 버리고, <몸젠의 로마사>, <로마제국쇠망사>를 따르도록 하되, 참고자료 정도로 활용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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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7-10-02 22: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연휴임에도 역시 겨울호랑이님!!

겨울호랑이 2017-10-02 22:28   좋아요 1 | URL
^^: 감사합니다. 밤늦게 놀 수 있어 좋네요 ㅋ

서니데이 2017-10-02 22: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시오노 나나미는 카이사르와 체사레 보르자를 좋아했던 것 같은데, 그래서 로마와 르네상스인 걸까요. 읽은지 오래되어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역사서 보다는 역사소설 가까운 모양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님, 즐거운 추석연휴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17-10-02 22:31   좋아요 3 | URL
^^: 네 그런것 같네요. 사실 체사레도 라틴어 식으로 읽으면 ‘카이사르‘이니, 아무래도 시오노 나나미는 ‘카이사르빠‘인것 같아요.ㅋㅋ 서니데이님 즐거운 연휴 초반기 되세요^^:

2017-10-02 2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0-02 2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0-03 07: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0-03 06: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프리쿠키 2017-10-02 23: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로마인 이야기>로 겨우 로마를 이해하고 있는 저로선, 몸젠과 기번의 저작물을 꼭 읽어봐야겠네요.
이거...언제 다 읽어요..ㅠ.ㅠ ㅎㅎㅎ

겨울호랑이 2017-10-02 23:41   좋아요 2 | URL
^^: 저랑 같이 가시지요 ㅋ 북프리쿠키님 너무 앞서가시면 반칙입니다! ^^

북프리쿠키 2017-10-02 23:42   좋아요 2 | URL
ㅋ 저야..호랑이님 따라가다간 가랭이 찢어집니다..ㅠ.ㅠ

겨울호랑이 2017-10-02 23:46   좋아요 2 | URL
제가 알기로 몸젠은 「로마사」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고 하니, 문학에 관심 많으신 북프리쿠키님께서 보다 즐겁게 읽실거라 생각합니다^^:

레삭매냐 2017-10-02 23: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래 전에 이 시리즈를 기를 쓰고 다
읽었었는데, 시오노 할매의 망언을
듣고 나서 기운이 다 쏙 빠져 버렸습니다.

극우인사의 세계관에 참 씁쓸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7-10-03 06:32   좋아요 0 | URL
네 저 역시 한창 「로마인 이야기」를 읽고 있을 때는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는데, 동시대를 다룬 다른 작품을 보니 작가의 편향성이 조금씩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균형잡힌 독서의 중요성도 느끼게 됩니다. 레삭매냐님. 즐거운 한가위 보내세요!^^:

수양 2017-10-03 06: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음.. 글쿤요 시오노 나나미의 필력에 홀려 열심히 로마인 이야기를 읽던 중에 이 글을 접하니 갑자기 손에 쥔 책에 경계심(!)이 생깁니다 ㅋ 몸젠의 로마사 리뷰도 기대되요!!! 겨울호랑이님 풍성한 한가위 되세요~

겨울호랑이 2017-10-03 06:36   좋아요 0 | URL
^^: 수양님 감사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로마인 이야기」는 소설가 특유의 경쾌한 진행이 장점이라 생각됩니다. 장점만 받아들인다면, 「로마인 이야기」역시 읽을만한 책이라 생각되네요.^^: 수양님. 긴 한가위 연휴 행복하게 보내세요!

독서괭 2017-10-03 20: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로마인 이야기> 중 한니발편과 카이사르편, 그리고 다른 책 <체사레 보르자>를 무척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나중에서야 그런 문제점이 있다는 걸 알고 놀랐었죠.. 필력이 너무나 좋은 작가일수록 비판적 독서가 필요하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풍성한 한가위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17-10-03 21:0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저도 체사레 보르자를 인상깊게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 생각해보면 시오노 나나미는 르네상스기의 이탈리아에서 전국시대의 일본을. 체사레 보르지아에게서 오다 노부나가를 느낀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긴 연휴네요. 독서괭님 행복한 추석 연휴 되세요^^:
 

A. 도입 : 호모 벨리쿠스(Homo Bellicus 전쟁하는 인간) 


'트로스가 그의 무릎을 잡고 애원하려 했으나 그는 칼로 그의 간을 찔렀다. 그러자 간이 쏟아져나오며 거기서 검은 피가 흘러내려 그의 품안에 가득 고였다. 혼절한 그의 두 눈을 어둠이 덮었다. 그러자 아킬레우스는 물리오스에게 다가가 창으로 귀를 찔렀고 그러자 즉시 청동 창끝이 다른 귀로 뚫고 나왔다. 그 다음 그가 아게노르의 아들 에케클로스의 머리 한복판을 자루 달린 칼로 내리치니 칼은 온통 피에 젖어 뜨거워졌고 그의 두 눈은 검은 죽음과 강력한 운명이 붙잡았다... 그래서 그가 죽음을 눈앞에 보며 팔을 늘어뜨리고 서 있었을 때 아킬레우스가 칼로 목을 쳐 그의 머리를 투구와 함께 멀리 내동댕이쳤다. 그러자 척추에서 골수가 솟아나오며 그는 땅 위에 길게 뻗었다.' - 호메로스 Homeros, <일리아스 Ilias> 제20권 468 ~ 483 -


 <일리아스>에서 묘사된 바와 같이 전쟁의 비참함에 대해 오래전부터 인류는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전쟁의 실상이 어떻게 개인에게 인식되는가는 또다른 문제라는 사실에 저자는 주목한다. 저자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는 <극한의 경험 The Ultimate Experience>에서 근대인(近代人)들의 전쟁에 대한 인식 변화를 다루고 있다. 요약하자면, 전쟁에 대한 인식은 근대와 현대로 이행되는 동안 '데카르트(Rene Descarte, 1596 ~ 1650)의 이분법(Dualism)'과 '낭만주의(Romanticism)'를 통해 극적으로 변화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번 페이퍼에서는 <극한의 경험>의 내용을 따라가보자.


 G. 전쟁, 정신이 지배한다 : 1450 ~ 1740년


 근대 초기 전투에 참여한 이들은 이전 시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정신적, 육체적 어려움을 겪었고, 이에 대한 극복이 선결과제였다. 이에 지휘관들은 개별 전투원들의 어려움을 감쇄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이분법(二分法)'을 적용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전투원들은 '정신의 고양'을 통해 전투력을 극대화시키게 된다. 그리고, '정신(精神)'의 고양은 조직(공동체)의 이익을 개인의 이익보다 우선시함으로써 가능할 수 있었다. 이러한 근대 초기 전쟁에 대한 인식은 근대 후기에 들어 <인간 기계론>으로 대표되는 '유물론(唯物論)'의 등장으로 바뀌게 된다.


 '근대 초기 전투원들은 전쟁이 무언가 깊은 진실을 밝혀준다고 생각하고 개인적인 전쟁 경험을 통해 무언가 특별한 지식과 권위를 획득했다고 주장하는 데 필요한 모든 문화적 모형과 자원을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많은 수도승이 겪는 것보다 훨씬 더 가혹한 육체적 고통을 겪었고, 많은 판사가 듣는 것보다 더 심한 고문 비명을 들었으며, 많은 해부학자가 보는 것보다 더 자주 인간의 내장을 보았기 때문이다.'(p70)


 '전쟁을 각각 집단적 수단과 개인적 수단, 명예로운 삶의 길로 그리는 경험담 사이의 갈등은 근대 초기에 전쟁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관한 주요 갈등이었다...하지만, 수백 년의 시간이 흐르고 국가가 발흥하며 집단적 수단으로의 전쟁 경험담이 우위를 차재했다. 모든 군인이 집단적 이익을 개인적 이익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이 상식이 되었다.'(p203)


 '세상의 확실한 토대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데카르트는 점차 세상 전체를 의심하게 되었고, 결국 확실한 것은 사고 자체밖에 없었다. 데카르트는 자아를 사고와 동일시했다. 그는 영혼과 마음, 육체라는 삼위일체식 구분을 포기하고, 육체와 정신이라는 명쾌한 이분법을 채택했다. 육체는 예전에 마음이 담당한 기능의 전부와 영혼이 담당한 기능 일부를 흡수했고, 자율적인 기계로 이해되었다.'(p166)


A. 전쟁, 육체를 깨우다 : 1740 ~ 1865년


 <인간 기계론>에서 정신(精神)보다 육체(肉體), 이성(理性)보다 감성(感性)이 우선시 된다. 이처럼 인간의 육체와 감성이 강조되면서, 집단보다는 개인(個人)의 존재가 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게 되었다. 이제 육체적 경험이 진실이 되었고, 경험에 대한 인간의 감성이 이성을 대신한 진리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쥘리앵 오프루아 드 라메트리 Julien Offroy de La Mettries는 1747년에 한층 대담한 논문을 발표했다.이 논문을 출간한 것이 바로 근대 유물론의 선언이 된 <인간 기계론 L'Home-machine>이다. 그는 데카르트의 정신과 육체의 이분법을 파기하는 동시에 정신과 영혼의 존재도 부인했으며, 생각과 느낌이 물질의 작용이라고 주장했다.(p212)...육체적 경험과 계시에 관련해 라메트리는 계시의 진실을 육체적 경험의 진실과 반드시 일치해야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사실상 육체적 경험이 계시에 가깝다고 결론지었다.(p214)... <인간 기계론>의 두 번째 신조는 적절한 경험적 연구로 얻은 결론은 명확하고 단순하다는 것이다.'(p215)


  '감수성 숭배는 추상적 철학이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실제 일상 삶에서 따를 수 있는 두 가지 가르침이 특히 중요했다. 첫 번째 가르침은 사소한 감각과 감정에도 가능한 깊은 관심을 갖고, 감각과 감정의 영향에 마음을 활짝 열라는 것이었다.(p228)... 감수성 숭배가 전한 두 번째 현실적인 가르침은 인간이 살면서 겪게 되는 모든 경험에 마음을 활짝 열 뿐만 아니라 감각과 감정의 범위를 가능한 한 적극적으로 확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감각주의 철학자들은 더 많이 느낄수록 그만큼 더 완전하게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감수성 * 경험 = 지식 '(p229)  

 

 위에 있는 감수성 공식을 우리는 후에 <호모 데우스>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여기서, 개인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극한의 경험>에서 많이 인용되고 있는 <전쟁과 평화> 중 본문에서는 다루지 않은 다른 구절을 통해 살펴보자. 마치, 신병교육대에서 하는 '분열'을 연상시키는 이 대목에서 개인 전투원의 존재는 중요하게 취급받지 못함을 알 수 있다. 


'그의 온 정신은 상관 옆을 가장 멋지게 지나가는 것에만 쏠려 있는 것 같았고, 그것을 잘 실행하고 있다고 느끼는 듯 몹시 행복해 보였다. "왼발... 왼발... 왼발..."하고 걸음마다 속으로 되풀이하는 것 같았다. 배낭과 총의 무게에 짓눌린 제각각 엄중한 얼굴을 한 병사들의 벽이 잇달아 이 박자에 맞춰 움직여 갔다. 이 수백 명의 병사도 각기 마음속으로 한 걸음마다 "왼발... 왼발... 왼발..."하고 복창하고 있는 것 같았다.'(p356) -레프 톨스토이  Lev Tolstoy, 1828 ~ 1910) <전쟁과 평화 Война и мир>- 


[사진] 국군의 날 분열 장면(출처 : 연합뉴스)


 '감수성 문화는 군사 영역에 큰 영향을 주었는데, 그중 가장 중요하고 오래 지속된 영향이 일반 사병과 관련된 것이다. 감수성이 감각과 감정의 위상을 크게 향상시키며 사고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긴 것처럼, 군사 영역에서의 감수성은 일반 사병의 위상을 크게 향상시키며 일반 사병이 군대의 사고 과정에 참여하도록 만들었다.'(p256)


 고대 그리스의 팔랑크스(Phalanx) 이후 집단적 전투대형은 유럽 보병들의 주요 전술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환경에서 개인의 감정은 중요하지 않았다. 비록 집단간의 전투라는 전쟁 양상은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시대는 분명 과거와는 달리 변화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시대의 변화를 읽는 자가 등장하고 승기를 잡게 된다.


 '18세기 말이 되자 일반 사병의 시대가 동트며, 가장 위대한 근대 군사 개혁 하나가 등장했다. 나폴레옹 시대에 강압 대신 포섭이 병사들을 훈련하고 운용하는 주된 수단이 되었고, 이로써 군대가 사용할 수 있는 엄청나고 새로운 에너지원의 빗장이 풀렸다...나폴레옹 군대는 군인들의 지식과 지략이라는 바로 그 에너지를 포섭해 군대의 목표 달성에 기여하도록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당연히 나폴레옹 군대는 병사들을 통제하고 감시하는데 낭비되는 힘을 훨씬 더 줄였고, 병사들의 주도권과 에너지를 훨씬 더 많이 활용했다.'(p264)


L. 육체의 눈으로 전쟁을 보다 : 1740 ~ 1865년


 승자의 이름은 '나폴레옹 (Napoleon Bonaparte, 1769 ~ 1821)'이고, 이 시대의 흐름은 '낭만주의(Romanticism)'로 정리될 수 있다. 그렇다면, 낭만주의의 본질은 무엇일까. 

 

'낭만주의 운동의 본질은 인간의 개성을 사회적 규약과 도덕성의 족쇄에서 자유롭게 하려는 목표에 있다. 부분적으로 이러한 족쇄는 바람직한 욕구의 대상이 될 만한 활동을 훼방하는 한낱 쓸모없는 방해물이었다... 낭만주의 운동은 무법적인 새로운 자아를 자극하고 고무함으로써 사회적 협조를 불가능하게 만들었으며, 그 후예들은 무정부주의나 전제정치 가운데 하나를 대안으로 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p869) -버트런트 러셀 (Bertrand Russell, 1872 ~ 1970), <서양 철학사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 


 '근대 초기에 용기는 육체와 정신의 단순한 역학 관계를 내포했다. 당시 용기는 순전히 정신적인 자질이었고, 정신의 힘이었다. 겁먹은 육체가 보내는 메세지를 극복하고 육체가 정신의 의지에 완전히 복종해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정신의 능력이었다... 그런데 18세기에 용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등장했다. 감각주의적 해석은 용기를 정신보다 신경계에 속하는 육체적 힘으로 이해했다. 강한 신경계는 튼튼한 타악기처럼 극심한 감각을 전달해도 부서지지 않지만, 허약한 신경계는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정신은 인간의 능력을 기껏해야 제한적으로 통제할 뿐이라는 것이다.'(p314)


 <극한의 경험>에서는 근대(近代)를 배경으로 전쟁에 대한 인간의 인식이 어떻게 바뀌었는가를 개인 회고록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근대 이후 현대(現代)에서 전쟁의 의미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궁금해지지만, <극한의 경험>에서 현대전은 에필로그로 간략하게 언급될 뿐이다. 그래서, 이 부분은 개인적인 생각으로 채워본다.


M. 너를 깨우친 것들, 1865 ~ 2000년


 <극한의 경험>을 통해 베트남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베트남전 당시 미국 내에서 '반전(反戰)'여론은 높았고, 이러한 여론의 흐름에 대해 미국 정부도 신경쓰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정부의 이러한 태도는 병사 개인의 감성을 무시할 수 없는 근대 이후의 서구 전통 때문이 아니었을까. 때문에, 미국군은 지상군 투입에 상당한 제약을 받게 되었다. 그와 달리, 우리 역사에서는 서구의 낭만주의와 같은 전통(개인의 감정을 고려하는 전통)이 없었다.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베트남 파병에 대한 제약은 존재하지 않았고, '한국전쟁에 대한 보은(報恩)'이라는 감정만이 사회적으로 용인된 것은 아니었을까. 이로 인해 많은 군인들이 베트남으로 건너가게 되었고 베트남 전쟁은 이제 우리의 전쟁이 되버렸다. 이렇게 시작된 베트남 전쟁은 전장(戰場)이었던 베트남과 베트남인들 뿐 아니라, 베트남전에 참전한 군인도 피해자가 되버린 비극(悲劇)으로 귀결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사진] 베트남 반전 운동 (출처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jinsh635&logNo=10175407401&parentCategoryNo=&categoryNo=28&viewDate=&isShowPopularPosts=false&from=postView)


[사진] 베트남 파병 한국군(출처 : 한겨레21)


 이와 같은 내용으로 전쟁에 대한 근대인의 인식 변화를 그린<극한의 경험>은 저자인 유발 하라리가 2008년 저술한 책이다. <호모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를 최근 집필한 그가 <극한의 경험>을 수정보완한다면 유전자 조작을 통해 육체의 한계를 극복한 '슈퍼 솔져 Super Soldier'의 도래를 예상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면서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사진] 슈퍼 솔져 (출처 : 다나와)


덧붙이는 말 A. 늦었지만, 책을 선물해 주신 알라딘 이웃분 ******님께 감사드립니다.^^: 


베트남 전을 다룬 책 중에서 개인적으로 인상적으로 읽었던 책이 생각나 뒤늦게 올립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베트남전에서 포로가 된 후 '실로이옹 병'에 걸려 베트남인들을 보면 계속 '실로이옹(용서하세요)'을 연발하는 등장인물이었습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끊임없이 미안함을 느끼게 했을까. 그리고, 누가 그에게 미안함을 느끼도록 만들었는가. 책을 읽는 동안 제게 들었던 물음이었습니다.


'허만호의 병명은 자신이 말한 대로 ‘비정형충동조절질환’이라는 것이었는데, 병동 안에서는 ‘실로이옹 병’으로 통했다. ‘실로이옹’이란 월남어로 ‘용서하세요’란 뜻이었다. 그가 왜 그런 병에 걸렸다가, 또 무슨 계기로 호전됐는지는 위생병도 모른다고 했다. 단지 그의 병명이 ‘실로이옹 병’으로 통하게 된 것은 잠꼬대 때문이라는 것만 안다고 했다. 밤이고 낮이고 잠만 들었다 하면, 허만호는 애처로운 목소리로 ‘실로이옹’이라고 잠꼬대를 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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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7-07-27 13: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선물 받았기에 읽어보셨군요. ^^

겨울호랑이 2017-07-27 13:19   좋아요 2 | URL
^^: 좋은 이웃분들 덕분에 하라리와의 만남은 선물로 맺어지게 되었네요..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

북다이제스터 2017-07-27 13:26   좋아요 2 | URL
미국과 달리 우리에게는 낭만주의 문화가 없었기에 베트남 파병에 국민 저항이 약했다는 해석이 신선합니다. ^^

겨울호랑이 2017-07-27 13:29   좋아요 1 | URL
^^: 그냥 그렇지 않았을까 짧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제는 짧은 기간에 따라잡을 수 있지만 문화적 전통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2017-07-27 13: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27 15: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oren 2017-07-27 18: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발 하라리는 고대 전쟁에서 ‘개인의 감정‘이 대체로 무시됐다는 점을 너무 지나치게 부각시키는 게 아닌가 싶어요. 숱한 고대의 전쟁 기록들이 ‘개인‘은 온데간데 없고, 오로지 지휘관들 중심으로 서술된 것도 사실이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극한 상황‘에 다다른 경우에 개개인의 감정이 완전히 무시될 순 없었겠죠. ‘조직‘보다 ‘개인‘이 오히려 훨씬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은 전투병들은 (심지어 용병들 까지도) 옛날 옛적에도 ‘우선 나부터 살고 보자‘는 식으로 도망친 경우도 부지기수로 많았으니까요.『플루타르코스 영웅전』만 보더라도 숱한 영웅들이 무지 많이 등장하긴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전쟁터‘에서 ‘조직‘을 배신하고, 지휘관을 배신하고, 전우들을 배신하고, 심지어는 ‘그들이 빤히 바라보는 앞에서‘ 도망친 병사들도 셀 수 없이 많이 나오거든요.『전쟁과 평화』의 후반부에 아주 인상적으로 그려진 ‘나폴레옹 군대 패잔병들의 대규모 탈영 내지는 탈주 러시‘의 경우에도, 그 탈주병들이 단순히 ‘고대의 전투병‘보다 ‘개인 감정‘을 훨씬 더 중시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혹한과 배고픔‘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나부터 살고 보자‘는 ‘생존 본능‘이 작동했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에서 바라보게 되면, 결국 고대 전쟁에서의 ‘탈주병의 모습‘과 뭐가 다른 게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7-07-27 19:04   좋아요 2 | URL
^^: <극한의 경험>에서 유발 하라리가 근대 초기와 근대 후기의 사상 변화를 구분하면서 제시한 근거들이 대체로 개인의 회고록 이었습니다. 전쟁에 참여한 개인의 감정이 글에 나타나 있는가 없는가를 통해 사상의 변화를 통해 유발 하라리가 묘사하고자 한 것은 전투에 참여한 개인의 감정보다는 ‘사회의 전쟁관‘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oren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죽음을 공포 앞에 선 단독자‘의 처지에 놓인다면, 아마도 정면으로 그것을 맞이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벌써 20여년 전입니다만, 사격 훈련 시 교관이 했던 말이 생각나네요. ˝너희가 지금은 조준 사격을 하지만, 막상 전쟁 나봐라. 다들 머리를 참호 안에 처박고 총만 들고 허공에 쏠거면서... ˝ 고대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아마도 모든 병사들은 이런 공포를 가지고 있고, 지휘관들은 이들을 억지로 끌어내서 죽음과 직면하게끔 한 것이 전장의 실상이라 생각됩니다...이런 참혹한 상황에서 전쟁 심리를 분석하는 것도 어찌보면 참 냉정한 작업이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oren님 감사합니다.

북다이제스터 2017-07-27 22:25   좋아요 1 | URL
<극한의 체험> 읽기 전까지 유발 하라리의 주장을 요약 전달로 이해시키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

야전공병 2017-08-01 22: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는 10년 군번입니다. 참호에 머리를 박던 자들이, 옆 전우의 죽음을 보고 분개하여 달려들것이라는 훈련소 교관의 말이 기억에 남네요.

겨울호랑이 2017-08-01 22:42   좋아요 0 | URL
네.. 전장이라는 공간은 공포, 분노, 절망, 슬픔이라는 여러 감정들이 교차하는 극한의 공간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림] 어머니는 마녀가 아니에요 (출처 : http://yuro.egloos.com/v/3622580)


 다음은 어린 시절 읽었던 ABE 전집 중 <어머니는 마녀가 아니에요>라는 작품의 내용이다.


 주인공은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어머니는 약초에 대해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이웃 마을 아주머니를 치료해 준 것이 빌미가 되어 마녀로 잡혀가게 되었고, 주인공은 이를 피해 도망가게 된다. 작품 속에서는 어머니와의 대화를 통해 마녀로 몰린 어머니가 어떤 고문을 당했으며, 재판을 받고 화형을 받게 되었는지 담담하게 그려졌다. 어머니가 화형을 당한 후 주인공을 돌봐주던 박사도 마법사로 몰린 이후 주인공은 멀리 떠나면서 작품은 끝나게 된다. 당시 너무도 작품이 충격적으로 다가왔기에 계속 울었던 기억이 난다. 1400 ~ 1775년 사이 유럽과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수십만명의 사람들, 특히 여성들이 기소된 마녀 재판과 처형. <마녀>에서는 이 사건의 의미를 <대항해 시대>의 저자 주경철 교수가 제3자의 시각에서 유럽 문명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림] 마녀의 화형 (출처 :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keverei1&logNo=30094802055&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kr%2F)


0. 마녀의 특성


 현재 우리에게 알려진 마녀의 특성은 대체로 15 ~16세기에 형성된 개념이며, 대체로 다음과 같은 이미지를 가진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마귀할멈의 이미지가 구체적으로 형성된 것은 근대 초기에 해당되는 시기에 해당된다. 적(敵)그리스도의 모습으로 표현되는 악마와 그의 하수인에 대한 초기 기독교의 시선 역시 마찬가지였을까?


[그림] 마녀 (출처 : https://pixabay.com)


 

'베링어 Wolfgang Behringer는 대체로 15 ~ 16세기부터 널리 퍼진 마녀의 특성들 가운데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중요한 요소들을 모아 "정교화된 마법 elaborate concept of witchcraft" 개념을 이야기했다. 그 중요한 6가지 특성은 다음과 같다.(Behringer 1997,14)


가. 악마와의 계약(기독교 배교) 나. 악마와의 성관계 다. 날아서 이동하는 능력 라. 악마가 주관하는 모임(사바스)에 참석 마. 사악한 위해의 행사 바. 아이 살해'(p35)


1. 초기 기독교와 악마


 그렇지만, 처음부터 마녀의 이미지가 다음과 같은 이미지였던 것은 아니었다. 기독교 초기 단계에서 악마의 모습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절대악(絶大惡)의 형상과는 많이 다르다. 기독교 형성 초기에는 '신(神)의 절대성'이 강조되고, 여기에 대항하는 악(惡)의 무력함이 강조된다. 기독교의 힘이 아직 미약했기에 '신의 전능함'이 오히려 강조된 것이다. 이러한 '악의 무력함'은 기독교가 유럽의 종교가 된 후 다른 양상을 맞이하게 된다.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 Hipponensis, 354 ~ 430)의 주장의 요체는 이교(異敎)의 신이 변신하여 악마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교는 "가증스러운 미신"이다. 악마는 일부 사람들을 하수인으로 삼고는 사악한 힘을 행하도록 만든다... 후대의 마녀사냥과 연관지어 생각할 때 아우구스티누스의 악마론의 의미는 이중적이다. 첫째는 악마과 그 하수인의 힘이 이 세상의 일에 대해서는 그리 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를 "실제" 위험에 빠뜨릴 만한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 만일 이런 주장이 계속 대세였다면 기독교 사회는 단지 진실한 믿음을 간직하고 유혹에 조심하면 될 뿐, 마녀를 붙잡아 고문하고 화형에 처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p51)


'아우구스티누스와 마찬가지로 캐자리우스 역시 사악한 세력이 기독교보다 결코 힘이 강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한다. "악마는 당신이나 당신에게 속하는 사람들, 동물들, 혹은 그 외 당신의 아주 작은 것들이라 하더라도 해치지 못한다."(4조)...사악한 이단의 근원은 명백하게 악마로 적시되었다. 기독교가 자리 잡아 가는 과정은 선을 규정하는 동시에 악의 세력 역시 새롭게 규정해 가는 과정이었다.'(p53)


2. 성(聖)과 속(俗)의 결탁


유럽이 기독교의 세계가 된 이후 성(聖  : 교황권)과 속(俗 : 황제권)은 충돌이 발생하게 된다. 두 절대권력의 충돌은 결국 일방의 승리가 아닌 두 권력의 화해로 막을 내린다. 그리고, 두 권력은 상호 영향을 미치며 중세 유럽의 사회, 특히 신성로마제국을 끌고 나가는 두 동력이된다.


[그림] 카노사의 굴욕 (출처 : 위키백과)

 

 '서임권의 투쟁의 양상은 카노사의 굴욕 사건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 사건은 서임권의 문제를 넘어서서 더 본질적인 문제로 발전한다... 누가 최상위 권한을 가지느냐의 문제는 이 세상의 틀을 어떻게 짜느냐 하는 훨씬 더 근본적인 문제와 연결되었다.(p92)... 교황과 황제 간 투쟁에서 표면적으로는 그레고리오가 졌으나 최종적으로는 그가 시작한 교황의 이상이 달성된 셈이다. 이제 성직자 독신제가 성립되고 성직 매매는 소멸되었다. 교회 조직은 세속 당국으로부터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형식의 조직으로 거듭났고, 그 바탕 위에 최고 권위를 주장하게 되었다.... 이런 변화는 그 다음 단계로 이어진다. 교회의 근본적 발전이 다시 세속 국가의 발전을 가져오는 또 다른 반전을 낳았다. 세속 권력은 교회 공동체의 발전을 모범으로 삼고 좇아갔다.'(p94)


 성(聖)과 속(俗)의 결탁은 시간적으로는 중세, 공간적으로는 신성로마제국만의 현상은 아니었다. 엘리아데(Mircea Eliade, 1907 ~ 1986)에 따르면 하나의 고리로 연결된 '성'과 속'의 관계는 세계사적인 현상이며, 개인적으로 우리 사회 역시 이와 관련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세계의 여러 국면을 통해 표현된 성의 현현(顯現)(그것이 나무를 통해서 현현되었든 혹은 돌을 통해서 현현되었든)은 인식하는 주체가 성을 외화한 것에 불과하고, 동시에 이미 세계의 모습으로 육화되어 있는 성을 발견한 것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성(聖)과 인식 주체인 인간 및 세계는 서로 뗄 수 없는 하나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다.'(p45)  - 엘리아데, <성(聖)과 속(俗) Das Heilige und das Profane> -


3. 마녀 개념의 도약 : Agnus Dei 


 이러한 사회적 배경 속에서 유럽 사회는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유럽 사회는 사회 문제를 돌파할 계기가 필요해진다. 그리스도가 스스로 제물이 되었듯, 그들은 Agnus Dei (하느님의 어린양)가 필요했고, 그 결과 마녀 사냥이 일어나게 된다. 


 '유럽사에서 14~15세기는 위기의 시대다. 이 시대에는 전쟁, 기근, 질병이 동시에 터져 중세 유럽 문명이 좌초할 뻔한 상황에 빠졌다. 백년전쟁과 페스트의 발병 그리고 대기근으로 인해 인구가 격감하고 농업이 황폐화하여 농민들이 생존 위기에 몰렸고, 사회 체제가 흔들렸다.(Bios)'(p111)


 '어느 지역에서 마녀사냥의 광기가 가장 심했을까? 역사상 벌어진 마녀사냥 중 50% 정도는 신성로마제국 영토 내에서 벌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유럽 전역에서 벌어졌으나 중요한 중심지들이 따로 존재한다. 예컨대 최악의 사태가 벌어진 곳들은 대개 엘방엔, 뷔르츠부르크, 밤베르크 같은 독일의 작은 교회령들이다. 이런 곳에서는 교회와 국가 권력이 특별한 관계를 맺으며 사태가 진행되었으리라 짐작된다. 대개 중앙 권력이 미약하고 사법제도가 미비한 곳에서 자의적이고 억압적인 사태가 벌어질 공산이 크다.'(p11)

 

마녀 사냥의 대상은 지식인 계층과 여성으로 크게 구분될 수 있다. 중세 질서에 위협이 되는 지식인들(과학자)과 힘이 없는 여성들에 대한 공격을 통해, 이들은 공포(恐怖)를 만들어냈고 기존 질서를 유지하고자 했다. 부르노(Giordano Bruno, 1548 ~ 1600)의 화형, 갈릴레오(Galileo Galilei, 1564 ~ 1642)의 종교재판 등이 지식인들에 대한 마녀 사냥의 대표적 사례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들 자연과학자들은 지식이라는 힘이 있었기에 18세기 이후 '제국주의'라는 틀 안에서 '종교'와 결합할 수 있었다. (이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유발 하라리의 <호모 사피엔스>에서 잘 묘사된다.) 반면, 힘없는 여성들에 대한 마녀 사냥은 18세기까지 지속된다.


 '교황청이 느끼는 위험한 요소들은 여러 방면에서 나왔는데, 그중 한 갈래는 지식인 계층에서 유래했다. (Bailet, 964~966). 13세기부터 점성술이나 연금술처럼 박식한 마술이 유행했다. 교회 당국도 처음에는 이런 연구 행위를 굳이 들추어내며 억압하지는 않았다.(p112) ... 칙서에서 경고하는 것은 학자들이 연마하는 고급 마술이다. 이들은 "이름만 기독교 신자"일 뿐 실제로는 악마를 숭배하고 사악한 힘을 전수받는 자들이라고 비난받는다... 비난의 대상은 분명 학자층이다. 학자들은 오랜 노력을 통해 악마의 힘에 접근할 수 있는 계약 방식을 터득했다는 것이다. 중요한 요소는 "악마와의 계약 pact"이다.'(p115)


 '마녀사냥의 중요한 문제 중 하나는 여성 희생자의 비중이 대단히 크다는 점이다... 니더는 여성성의 문제를 성적인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다. 그가 보기에 여성은 욕망에 휘둘리는 약한 사람들이다.(Nider, 5.04~05)(p147)... 그는 결론을 이렇게 맺는다. "여성의 모든 악덕의 기본은 그들의 본성(本性)에서 비롯되었다."(Nider, 8,21) 충격적일 정도로 솔직하게 반여성성을 드러내는 이 내용은 후일<말레우스 말레피카룸 Malleus Maleficarum>에서 다시 반복된다. 악의 대변인인 마녀가 대개 여성일 수 밖에 없다는 논리는 이런식으로 만들어져 갔다. 여성의 본성이 사악하고 악마에 속기 쉽다는 것이 결국 여성이 악마의 하수인이 되는 근거로 작용한다.'(p149) 


4. 중세 마녀 사냥은 현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마녀 사냥은 계몽 사상이 유럽에 확대된 이후 유럽 내에서 점차 소멸하게 되고, 최종적으로 18세기 후반에는 유럽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다. 저자는 이러한 마녀 사냥의 배경과 발단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중세 중엽 이후 서서히 사정이 바뀌어갔다. 교회와 국가는 자신의 정체성을 명료하게 정립하고 신민에 대한 지배력을 탄탄히 하고자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이 올바르고 무엇이 그른가, 선과 악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중요했다. 선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그 반대인 악을 억눌러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유럽 문명은 악을 필요로 했고, 악을 구현하는 존재로 마녀를 발명한 셈이다. 점을 치거나 불임을 치료해 주거나 풍요제 의식을 치르는  정도의 행위를 하는 사람들마저 어느덧 악마의 하수인으로 몰렸다.'(p306)


 <마녀>는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하기에 우리에게 시간적, 공간적으로 먼 이야기라 생각되기 쉽다. 그렇지만, 마녀 사냥에 얽힌 이러한 사회적, 정치적 배경을 알면 알수록 우리 현대사의 모습과 겹쳐짐을 느끼게 된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되는지에 대해서는 이미 페이퍼의 길이가 상당히 넘어갔으므로 길게 설명하지 않고 읽는 이들의 판단에 맡긴다. <마녀>를 통해 제기하게 되는 한 가지 질문을 마지막으로 페이퍼를 마치고자 한다. 


 역사는 순환(循環)되는 것일까? <마녀>를 읽고난 후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우리는 과거를 알아야하는 것은 아닐까. 마치 수험생이 과거 기출 문제를 풀어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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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3 18: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23 2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7-23 18: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의 글을 읽으니까 제프리 버튼 러셀의 《마녀의 문화사》를 읽어보고 싶군요. 러셀의 책을 다 읽으면 주경철씨의 책도 읽어야겠어요. 악마, 마녀를 주제로 중세사를 보는 일이 흥미로워요. ^^

겨울호랑이 2017-07-23 20:03   좋아요 1 | URL
^^: 「마녀의 문화사」라는 책이 있군요. 저는 cyrus님 소개로 러셀의 책을 읽어야겠습니다. ㅋ 더워서일까요. 어둠과 으스스함에 관심이 가네요 ㅋ

cyrus 2017-07-23 20:14   좋아요 1 | URL
여름만 되면 기괴한 소재를 가지고 글을 써보고 싶은데, 자꾸 미루게 됩니다.. ^^;;

겨울호랑이 2017-07-23 20:39   좋아요 1 | URL
^^: 공포소설도 한철이니 더이상 미루시면 안됩니다 ㅋㅋ
 

 

<호모 데우스 Homo Deus>는 이스라엘 역사학자인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가 전망한 미래 전망서다. 전작인 <사피엔스 Sapiens>에서 종교, 제국주의, 자본주의가 과학과 결합하면서 호모 사피엔스가 역사의 중심에 섰다는 과거 분석을 했다면, <호모 데우스>에서는 이러한 과거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미래를 과감하게 예언 豫言한다. 이번 페이퍼에서는 그의 논리적인 예언을 살펴보자.


 1. 一神之下 萬物之上


 호모 사피엔스는 '총, 균, 쇠'로 대표되는 기아, 역병, 전쟁의 위기를 극복하면서 연약한 포유류에서  '일신지하 만물지상 一神之下 萬物之上' 의 위치에 올라서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가 가능하게 되었던 배경에는  바로 '인본주의 人本主義'와 '과학혁명 科學革命'이 있었다.


 '기아, 역병, 전쟁은 앞으로도 수십 년 동안 수백만 명의 희생자를 낼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들은  이제 무력한 인류가 이해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는 불가피한 비극이 아니다. 이 문제들은 관리할 수 있는 난제가 되었다.'(p37)


 '농업혁명이 유신론적 종교를 탄생시킨 반면, 과학혁명은 신을 인간으로 대체한 인본주의 종교를 탄생시켰다. 유신론자들이 '테오스 Theos'를 경배하는 반면, 인본주의자들은 인간을 경배한다. 자유주의, 공산주의, 나치즘 같은 인본주의 종교들의 창립이념은 호모 사피엔스는 특별하고 신성한 본질을 지니고 있으며 우주의 모든 의미와 권위가 거기서 나온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호모 사피엔스에게 미치는 영향에 따라 선 善 또는 악 惡이 된다.'(p142)


 가. 과학혁명


  과학혁명에 관해서는 전작인 <사피엔스>에서 많은 내용이 다루어지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면 <사피엔스>를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과학혁명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종교와 자본주의, 제국주의가 과학과 결탁한 사피엔스 최후, 최대 혁명이다. <호모 데우스>에서도 과학혁명은 강조된다. 


 '실제로는 과학도 종교도 진리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서, 둘은 쉽게 타협하고 공존할 수 있는 것은 물론 협력도 할 수 있다. 종교는 다른 무엇보다 질서에 관심이 있다. 종교의 목표는 사회 구조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이다. 한편 과학은 다른 무엇보다 힘에 관심이 있다. 과학의 목표는 연구를 통해 질병을 치료하고 전쟁을 하고 식량을 생산하는 힘을 획득하는 것이다. 과학자와 성직자 개인이 다른 무엇보다 진리를 우선시할 수는 있겠지만, 집단적인 제도로서 과학과 종교는 진리보다 질서와 힘을 우선시한다. 그러므로 이 둘은 의외로 잘 어울리는 짝이다.'(p275)


 '근대에 이르러 이 악순환이 마침내 깨졌다. 미래에 대한 신뢰가 커지고 그에 따라 신용거래라는 기적이 일어난 덕분이었다. 신용이란 신뢰를 경제적 수단으로 표시하는 것이다... 새로운 벤처기업들이 여기저기서 성공을 거두면, 미래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가 증가하고 신용거래도 확대된다. 그러면 이자율이 떨어져 사업가들이 더 쉽게 돈을 조달할 수 있고 경제가 성장한다. 그 결과 사람들은 미래에 더 큰 신뢰를 가지고, 경제는 계속 성장하고, 그와 함께 과학도 발전한다.'(p283)


 나. 인본주의 


 과학혁명의 마지막 단계에서 종교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다. 기성 종교를 대신한 새로운 종교의 이름은 '인본주의'다. 인본주의는 기성 종교와는 달리 지식의 원천을 주관으로부터 찾았고, 인본주의 사상의 결과 우리는 '자유주의'라는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렇듯 근대 계약은 우리에게 전례 없는 힘을 약속했고, 그 약속은 지금까지 지켜졌다. 그렇다면 그 대가는 뭘까? 근대 계약은 우리가 힘을 얻는 대가로 의미를 포기하기를 기대한다. 인간이 이 서늘한 욕구에 어떻게 대응했을까? 이 요구를 따랐다면 아마 우리는 윤리, 미학, 동정이 없는 암흑세계에 살고 있을 것이다... 무엇이 근대사회를 붕괴에서 구했을까? 인류를 구원한 것은 수요공급의 법칙이 아니라, 새롭게 떠오른 혁명적 종교인 인본주의였다.'(p305)


 '중세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지식의 공식은 "지식 = 성경 * 논리"였다. 어떤 중요한 질문의 답을 알고 싶으면, 사람들은 성경을 읽고 자신의 논리로 텍스트의 정확한 의미를 이해했을 것이다(p326)... 과학혁명은 지식에 대한 사뭇 다른 공식을 제안했다. 그것은 "지식 = 경험적 데이터 * 수학"이다. 어떤 질문의 답을 알고 싶으면, 그 질문과 관련한 경험적 데이터를 수집한 다음 수학적 도구를 이용해 그 데이터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p327)... 인본주의는 여기에 대안을 제시했다. 바로 "지식 = 경험 * 감수성"이다. 만일 당신이 어떤 윤리적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자 한다면, 내면의 경험을 꺼내 예리한 감수성으로 관찰할 필요가 있다... 경험은 세 가지 주요 성분인 감각, 감정, 생각으로 이루어진 주관적 현상이다.(p329)'


 '자유주의의 물결은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에 진정한 쓰나미로 변해 막강한 소련제국을 쓸어내고, "역사의 종언"이 도래할 거라는 기대를 높혔다. 패배와 좌절의 몇십 년을 겪은 뒤 자유주의는 냉전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고, 상처를 입긴 했어도 인본주의 종교전쟁에서 당당히 살아 돌아왔다.'(p368)


 다. 자유주의의 붕괴와 새로운 질서의 등장


 인본주의의 결과로 나타난 자유주의는 과학의 반격을 받게 된다. <이기적 유전자>, <빈 서판>등에서 언급된 과학의 발전은 인간의 위치를 '선택된 피조물'에서 그냥 '개체 個體'로 전락시켰다. 자유의지를 잃게 된 사피엔스는 새로운 질서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자유의지의 존재를 의심하는 것은 단순한 철학 훈련이 아니다. 그것은 실생활에 영향을 미친다. 유기체가 자유의지를 갖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우리가 약물, 유전공학, 직접적인 뇌 자극을 통해 그 유기체의 욕망을 조작하는 것은 물론 통제까지 할 수 있다는 뜻이다.'(p393)


2. Homo Deus의 등장

 

'인간과 동물의 노동력을 기계 에너지가, 나중에는 핵 에너지가 대신하고 인간의 두뇌를 컴퓨터가 대신하기까지 산업의 발달은 우리에게 확신을 심어주었다. 우리는 무한한 생산과 아울러 소비의 도상에 있으며, 과학과 기술에 힘입어서 우리 자신이 전지전능한 존재가 되리라는 확신 말이다. 이를테면 우리는 제2의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막강한 존재, 즉 신(神)들이 되어가고 있었고, 자연이란 우리에게 새로운 창조물을 지을 벽돌이나 공급해주면 되는 것이었다.' <소유냐 존재냐 To Have or To Be> 에리히 프롬 Erich Seligmann Fromm (1900 ~ 1980)


 가. 한 손에는 '생명공학', 다른 손에는 '컴퓨터 알고리즘'


 자유의지를 잃은 사피엔스는 이제 생명공학과 컴퓨터 알고리즘을 통해 새로운 종교를 창조하고, 스스로 신의 위치에 오르게 된다. 신이 된 사피엔스는 '호모 데우스'로, 새로운 종교는 '데이터교'가 된다.


 '21세기 초, 진보의 열차가 다시 정거장에서 빠져나가고 있다. 이 열차는 아마 호모 사피엔스라 불리는 정거장을 떠나는 막차가 될 것이다. 이 기차를 놓친 사람드에게는 다시 기회가 없을 것이다. 좌석을 얻기 위해 당신은 21세기의 기술을 이해해야 하고, 그중에서도 특히 생명공학과 컴퓨터 알고리즘의 힘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p378)


나. 컴퓨터 알고리즘


  개인 차원에서는 '경험하는 자아'와 '이야기하는 자아'가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의사 결정을 해나가듯, 사회 차원에서는 '전자 알고리즘'을 통해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발전해 간다. 컴퓨터 알고리즘은 AI (artificial intelligence)를 통해 스스로 학습해가면서 진화하기 때문에, 잉여 인간의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경험하는 자아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경험하는 자아는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고,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참조대상이 되지도 않는다. 기억을 끄집어내고 이야기를 하고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모두 우리 안에 있는 매우 다른 실체인 "이야기하는 자아"의 독단이다.(p405)... 사실을 말하면, 경헌하는 자아와 이야기하는 자아는 별개의 실체가 아니라 긴밀하게 얽혀 있다. 이야기하는 자아는 경험을 이야기를 구성하는 중요한 원재료로 이용한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은 다시 경험하는 자아가 실제로 느끼는 것에 영향을 미친다.'(p410)


 '21세기 기술로는 "인류를 해킹해" 나보다 나를 훨씬 더 잘 아는 외부 알고리즘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면 개인주의에 대한 믿음은 붕괴할 것이고, 권한은 개인들에서 그물망처럼 얽힌 알고리즘들로 옮겨갈 것이다. 앞으로 사람들은 스스로를 자기 소망에 따라 인생을 운영하는 자율적인 존재로 보는 대신, 네트워크로 얽힌 전자 알고리즘들의 관리와 인도를 받는 생화학적 기제들의 집합으로 보는 데 점점 익숙해질 것이다.'(p451)


 '21세기 경제의 가장 중요한 질문은 아마도 "그 모든 잉여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일 것이다. 거의 모든 것을 더 잘할 수 있는 높은 지능의 비의식적 알고리즘이 생긴다면, 의식을 가진 인간은 무엇을 할 것인가?'(p435)


 다. 생명공학


  그 중에서도 소수의 선택된 인간들은 발달된 과학의 힘을 활용하여 스스로 신 神의 위치에 오르게 된다. 스스로 신이 된 이들과 네트워크로 만들어진 세상이 바로 우리의 미래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사회의 종교는 '데이터 교 Data 敎'가 될 것이다.


 '우리는 자유주의가 직면한 세 가지 실질적 위협을 살펴보았다. 첫째는 인간이 가치를 완전히 잃게 된다는 것이고, 둘째는 인간이 집단으로서의 가치는 유지하더라도 개인은 권위를 잃고 외부 알고리즘의 관리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세 번째 위협은, 일부 사람들은 업그레이드되어 필수불가결한 동시에 해독 불가능한 존재로 남아 소규모 특권집단을 이룰 거라는 점이다. 이런 초인간들은 전대미문의 능력과 전례 없는 창의성을 지닐 것이고, 그런 힘을 이용해 세계적으로 중요한 대다수의 결정들을 계속 내일 수 있을 것이다.'(p474)


 '지금까지 우리는 점점 더 나은 도구를 만들어 고대의 신들과 경쟁했다. 하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는 도구만이 아니라 몸과 마음의 능력에서도 고대의 신들을 능가하는 초인간을 창조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신성(神性)은 사이버 공간만큼이나 일상적인 것이 되어 그 경이롭고 경이로운 발명품을 우리는 당연하게 받아들일 것이다.(p76)... 건강, 행복, 힘을 추구하는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게 될 때까지 자신들의 모습을 한 번에 하나씩 점진적으로 바꿔나갈 것이다.'(p77)


3. 데이터교의 탄생


 '데이터교는 우주가 데이터의 흐름으로 이루어져 있고, 어떤 현상이나 실체의 가치는 데이터 처리에 기여하는 바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한다.(p503)... 데이터교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이라는 종은 단일한 데이터 처리 시스템이고, 개인은 시스템을 이루는 칩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역사 전체를 이 시스템의 효율을 높이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p517)


 <호모 데우스>에서 저자가 그린 미래는 결코 밝지 않다. 인류의 멸망을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사피엔스의 종말을 예언한 그의 책 결론 부분을 읽으면,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나지만,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비관적인 전망으로 유명한  맬서스 (Thomas Robert Malthus, 1766 ~ 1834)의 <인구론 An Essay on the principle of population>의 글도 우리에겐 오히려 희망적으로 비춰진다.


 '비록 인류의 도덕과 행복이 자연과학의 눈부신 발전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지 내다보기는 어렵지만, 우리가 자만에 빠져 스스로를 잃어버리지 않는 한, 인류의 도덕과 행복은 자연과학의 발전으로부터 도움을 얻을 것이며, 또한 역으로 인류의 도덕과 행복이 과학의 성공에 일익을 담당하리라는 확신에 찬 희망을 품어도 좋을 것이다.'(p550)


  앞 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하라리는 <호모 데우스>에서 인류의 모습을 비관적으로 그리고 있다. 그렇지만, 그의 비관적인 관점이 파격적으로 비춰지지 않은 것은 어린 시절 마츠모토 레이지(松本零士)의 <은하철도 999>에서 과학과 자본주의의 어두운 면을 지금보다 이른 1970년대에 이미 접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림] 은하철도 999


[그림2] 은하철도 999 : 메텔.


 <인구론>과 마찬가지로 <호모 데우스>에 그려진 미래의 모습은 밝지 않기 때문에 여러 논란이 있다. 모든 이들의 생각이 같을 수 없겠지만, 개인적으로 인류의 미래를 너무 어둡게 볼 문제는 아니라 생각된다. 그리고, 인류의 미래에 대한 의견이 나와 같다면, 생각을 함께 하는 이들이 함께 고민하면서 우리의 비관적인 미래를 스스로 바꾸어 가면 조금은 나은 미래가 되지 않을까하는 긍정적인 생각을 해본다.  큰 관계는 없지만, <호모 데우스>를 읽고 난 후 떠올랐던 조주 趙州 선사 (778 ~897)의 예화를 마지막으로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어느 날, 조주가 선원에서 신참 방문객을 맞고 있었다. 조주가 한 승려에게 물었다.

"그대는 전에 여기 온 적이 있는가?"

 승려가 대답했다. "예, 있습니다."

 조주가 말했다. "차 한 잔 들게나."


 그 다음에 조주는 다른 승려에게 물었다. "그대는 전에 여기에 온 적이 있는가?"

 승려가 대답했다. "없습니다."

 조주가 말했다. " 차 한잔 들게나."


 원주 院主가 물었다. "스님께서는 전에 여기 온 적이 있는 사람에게 차 한잔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전에 여기 온 적이 없는 사람에게도 차 한잔을 주었습니다.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조주가 큰 소리로 불렀다. "원주!" "예?"

"차 한잔 들게나."


PS. 늦었지만, <호모 데우스>를 선물해 주신 알라딘 이웃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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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7-07-02 20: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라리, 그대 쓸데없는 얘기 말고 차나 들게나...ㅋ
그런 말씀이세요? ㅎㅎ

겨울호랑이 2017-07-02 20:35   좋아요 1 | URL
뭐 그냥 이런 말도 있다는 것이지요...ㅋㅋ

북다이제스터 2017-07-02 22:33   좋아요 2 | URL
하라리 책은 미래를 묘사하지만, 현재에 촛점 맞추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에 문제 없거나 문제 있더라도 미래는 좋아질거라 생각하면 그냥 쿨하게 오케이 하면 그만이지만, 아니라면 진정 미래를 고민할 필요 있는 거 같습니다.

겨울호랑이 2017-07-02 22:42   좋아요 2 | URL
^^: 네 북다이제스터님 말씀대로 하나의 가능성 측면에서 바라보면 될 것 같습니다^^:

북다이제스터 2017-07-02 22:45   좋아요 1 | URL
네 그렇습니다. 가능성을 어찌 보는지 다들 나름 다른 견해를 갖고 있는 거 같습니다. ^^

oren 2017-07-02 21:1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하라리가 너무 혹세무민하는거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인용문들을 찬찬히 읽어보면 ‘아무도 모르는 미래‘에 대해서 지나친 과장과 비약이 난무하는 말들을 너무 쏟아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마치 지지난 세기말의 <서구의 몰락> 같은 분위기도 좀 느껴지고요..맬서스의 인구론도 ‘과학기술의 발전과 농업기술 혁명‘을 간과하는 바람에 결과적으로는 ‘엄청난 뻥‘을 친 책으로 조롱받은 바가 있었고요.. ‘인간이 알 수 없는 문제들‘에 대해 지나치게 확신하는 모든 이론들은 비판적으로 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신은 죽었다‘고 외쳤던 니체가 ‘새로운 신이 다시 나타난다‘고 외치는 하라리를 보면 과연 뭐라고 말할런지, 그게 갑자기 궁금해집니다...

겨울호랑이 2017-07-02 21:31   좋아요 2 | URL
네... 저 역시 한편으로 점술가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예언이 맞는다면 자신의 점괘가 심통해서이고, 안 맞는다면 자신의 말을 들어 조심했기 때문이라는... 그저 하나의 가능성으로 받아들이는 편이 좋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다른 한 편으로 하라리가 강조하는 분야가 이스라엘 자본이 장악하는 분야(생명공학, IT부문)라 다소 약장수(?)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럼에도 어느 정도 일관된 논리가 있어 생각해 볼만하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북다이제스터 2017-07-02 22:42   좋아요 3 | URL
니체 생각이 옳지 않거나 생각이 짧았다면, 하라리 생각이 옳은 건가요? 넘 위험한 표현 아니신가 궁금합니다. 어차피 누구의 주장도 단지 이론 아닌가 생각되어서요. 잘 몰라 여쭙니다.

oren 2017-07-03 00:26   좋아요 5 | URL
니체의 생각에 대해서도 여러 비판이 있을 수 있겠지만 ‘니체의 생각이 짧았다‘고 말할 순 없겠지요. 그 철학자만큼 ‘신‘에 대해 ‘길게‘ 생각한 사람도 드물 테니까요. 단지 생각을 길게만 한 게 아니라 철저하고도 깊게, ‘신의 뿌리 그 자체‘를 강타한 사람이라고 봐야 맞겠지요. 그가 쓴 대부분의 저작들이 ‘신‘이라는 ‘우상‘에 대한 ‘파괴‘와 ‘전복‘에 촛점이 맞춰져 있으니까요.

유발 하라리가 워낙 도발적으로 ‘신의 등장‘을 주창하니, 2,000년 가까이 이어져 온 ‘신의 지배‘를 마침내 자신이 무너뜨렸다고 생각한 니체가 느닷없이 생각나서 ‘제 짧은 생각으로‘ 그런 댓글을 달았던 것입니다. 오늘 마침 윌리엄 포크너의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를 읽었는데, ‘니체‘나 ‘신‘이나 하리리로부터 ‘아주 별 소리를 다 듣는구나‘ 싶었겠다는 ‘상상‘도 해봤습니다.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말이지요...

개인기록용 2017-07-02 22: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타 있어요. 한자는 만물지상인데 만인지상으로 적혀있네요

겨울호랑이 2017-07-03 08:16   좋아요 0 | URL
^^: 개인기록용님 감사합니다. 개인기록용님 덕분에 오타를 수정할 수 있었습니다.

2017-07-02 22: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03 0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만화애니비평 2017-07-02 23: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호랑이가 어흥할 정도의 페이퍼입니다

겨울호랑이 2017-07-03 00:0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좋은 말씀이지요? ㅋ

cyrus 2017-07-03 16: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늘 중앙일보에 제4차 산업혁명 관련 기사를 봤어요. 글쓴이가 로봇을 만드는 공장에 직접 방문한 것을 보고 기록한 글이었습니다. 글쓴이는 사람의 움직임이 연상되는 로봇 기술을 소개하면서도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뺏을 정도로 위협적인 존재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을 품었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지금으로서는 사람 뇌와 흡사한 인공지능 기술이 당장 나오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겨울호랑이 2017-07-03 16:59   좋아요 1 | URL
^^: cyrus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그러한 현실에 추가적인 요인으로 AI혁명이 가시화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 짧은 생각으로는 경기 침체, 중산층 몰락 등의 이유로도 자본의 집중이 어려워지고 이에 따라 기술 혁신이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AgalmA 2017-07-03 19:34   좋아요 1 | URL
<지능의 탄생> 이대열 저자도 그렇게 말했죠. 가능하려면 멀어도 넘 멀었다면서ㅎ
그러니 더 차나 한 잔 마시게나^^? ㅎㅎ

겨울호랑이 2017-07-03 18:04   좋아요 1 | URL
^^: 날도 습한데 우리 다같이 커피 한 잔 할까요?

cyrus 2017-07-04 11:58   좋아요 1 | URL
아아가 최고죠. ‘아아‘ 모르면 아재 인증입니다. ㅎㅎㅎ

겨울호랑이 2017-07-04 12:01   좋아요 1 | URL
아이스 아메리카노? ㅋㅋ 맛있는 점심 드시고 한 잔들 하시지요. ^^:

나와같다면 2017-07-03 21:3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요즈음 ‘감수성‘과 ‘예민함‘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서 그런지,
제2부 호모 사피엔스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다 중에서 ‘감수성‘ 부분은 좀더 깊게 읽게 되더라구요..

경험과 감수성은 끝없는 고리로 이어져 서로를 강화한다. 감수성 없이는 어떤 것을 경험할 수 없고, 다양한 경험을 하지 않으면 감수성을 개발할 수 없다.

우리는 양심을 완비하고 태어나지 않는다. 인생을 살면서 상처를 주고받고, 동정을 베풀고 받는다. 주의를 기울이면 도덕적 감수성이 예민해지고, 축적된 경험들은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옳고 나는 누구인지에 대한 가치 있는 윤리적 지식의 원천이 된다.
p329~330

겨울호랑이 2017-07-03 21:41   좋아요 3 | URL
하라리는 경험과 감수성은 사피엔스 개인 차원에서는 자유주의의 근간을 이루고, 호모 데우스 세계에서는 인공지능 학습 프로그램의 근간을 이루는 것 으로 파악한 듯 하네요..마치 DNA의 이중나선 구조처럼 얽힌 이들의 관계 속에서 새로운 무엇인가 태어나는 것 같습니다^^:

AgalmA 2017-07-04 14:21   좋아요 4 | URL
저는 <사피엔스>, <호모데우스> 둘다 인간의 윤리, 도덕적 수양이 더 중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라리가 많은 외연을 가지고 와서 말했지만 핵심은 그거 였다고 생각해요. 마음이 미래를 만들어가는 거죠. 기술, 권력, 이념의 추동으로는 미래가 어두울 수밖에 없습니다.

겨울호랑이 2017-07-04 14:20   좋아요 2 | URL
하라리의 핵심이 인간 윤리와 도덕적 수양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AgalmA님께서 말씀하신 결론에는 동의합니다^^:

북다이제스터 2017-07-06 20:40   좋아요 3 | URL
저도 AgalmA 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ㅎ
그래서 하라리의 다음 책은 인간 윤리 혹은 도덕적 수양인 책을 낼 것 같습니다. 그건 우리가 행복을 어떻게 다르게 보고 느낄 것인가의 책일 것 같습니다. 500원 걸고 장담합니다. ㅋ
믿는 구석은 하라리 전공이 ‘행복‘이더라구요. ㅎ

겨울호랑이 2017-07-06 21:04   좋아요 3 | URL
^^: 호모 데우스가 인류 역사의 여러 분야를 다루고 있기에 독자에 따라 다르게 비춰지는 것 같습니다. 저는 하라리의 생각도 중요하지만, 나와같다면님, AgalmA님, 북다이제스터님과 같이 생각을 나눌 수 있었던 것이 더 의미있다고 생각되네요...^^:.이젠 하라리의 디스토피아를 유토피아로 바꾸기위한 노력을 각자의 자리에서 기울일 때라 생각합니다 ㅋ 날도 더우니 수박 한 조각하실까요?ㅋㅋ 편한 밤 보내세요.

북다이제스터 2017-07-06 21:23   좋아요 2 | URL
그게 정말 어려운 것 같습니다. 생각처럼 실천하는 삶이요. 역사와 구조의 무게가 너무 커 개인이 할게 없다는 잘못된 생각이 짓누릅니다. ㅠ

겨울호랑이 2017-07-06 21:30   좋아요 2 | URL
^^: 왜 그러세요.. 박덕여왕을 503으로 만들어 정권 교체도 하신 분들인데...^^: 힘이 들겠지만, 저는 독서의 완성은 행동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들 할 수 있구요.
(사실, 그렇게 본다면 저는 읽은 책이 거의 없긴 합니다만...ㅋㅋ)

북다이제스터 2017-07-06 21:34   좋아요 2 | URL
매일매일 인생과 타협하며 사는 제 삶이 한스러워서요. ㅠ 오늘 댓글은 넋두리가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ㅠ

겨울호랑이 2017-07-06 22:24   좋아요 1 | URL
^^: 우리 모두는 the negotiator of my life 잖아요.ㅋㅋ 문대통령만 그런 것이 아니라. ㅋㅋ 기운내세요. 북다이제스터님 아무래도비가 많이 온다니 가라앉는 것 같습니다^^: 화이링 입니다!

AgalmA 2017-07-06 22: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왜 그러세요. 님이 읽은 책이 거의 없다 하심 전 뭐라고 해야 하나요ㅋㅎ;;
독서는 아무리 해도 완성되지 않으니 그래서 우리의 행동은 늘 어느 정도는 어리석고 모자르게 보이는 걸까요ㅎ?
장 뤽 낭시는 책이 열림과 닫힘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행보이기에 ‘저장용기‘로도 ‘저장내용‘으로도 못 박을 수 없다고 얘기하죠. 저는 책이 지식을 쌓게 해주는 거보다 자신을 더 잘 바라보게 해주고 계속 반성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워요. 그래서 행동할 용기도 주는지 몰라요. 틀려도 사람과 달리 책은 반성할 기회도 많이 주니까^^

겨울호랑이 2017-07-06 22:23   좋아요 1 | URL
^^: 읽은 책도 사실 많지 않지만, 제 머리는 휘발성이 강해서요 ㅋ 말씀하신 장 뤽 낭시의 말이 와 닿네요... 저 역시 많은 것을 온전히 제 것으로 만들지는 못하지만, 콩나물을 키우는 심정으로 제 자신을 키워 갑니다. 물은 쫙쫙 빠져도 콩나물은 자란다지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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