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집>은 국제연맹 제출을, <혈사>는 중국인들과의 독립운동 제휴를, <사략 상편>은 <사료집>을 계승해 이후의 독립운동사 서술을 각각 목표로 삼았다. 그 과정에서 <사료집>과 <사략 상편>은 안창호와 김병조라는 인물을 통해 일정한 연속성을 강하게 지녔고, '외교독립론'적인 입장에 기반해 독립운동사를 서술했다. 그에 비해 박은식의 <혈사>는 비(非)미국중심주의를 표방하며 '무장투쟁론'적인 입장에서 쓰였다.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세 역사서가 궁극적으로 대항했던 것은 일제가 생산해내고 있는 3.1운동상이었다... <사료집>과 <혈사>, <사략 상편>은 어느 한 저서가 압도적인 객관성을 지니기보다는 상호보완적인 성격을 지닌 동시대성의 저작들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_ 한국역사연구회 3.1운동 100주년 기획위원회, <3.1운동 100년 : 1 메타역사>, p53


  metahistory 메타역사. 역사에 관한 역사가 <3.1운동 100년 : 1 메타역사>의 주제다. 우리는 <3.1운동 100년사>의 첫 번째 책에서 같은 사건에 대한 서로 다른 기억들을 만나게 된다. 같은 시대에 만들어진 사료(史料)도 누구를 대상으로 하느냐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기록되는 것을 보면서 사관(史觀)에 따라 다르게 강조점이 찍히고, 왜곡된 역사상이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역사에 대한 기억은 3.1항쟁을 마르크스(Marx) 사상 관점에서 해석한 관점 - 경제학자 안병직과 해방 직후 사회주의자들 - 이다. 역사를 계급투쟁의 산물로, 필연적 단계 이행으로 이해한 이들의 관점에서 3.1항쟁은 실패한 투쟁에 불과했다.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한 제반 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일어난 혁명이라는 공통된 인식을 갖는 이들의 관점은 '정형화된 역사'와 '유물론 사관'이라는 문제점을 갖고 있었다. 때문에, 일제 시대에 본격적으로 갖추어진 SOC만이 근대화의 증거이고, 발전된 역사의 과정에 있다는 인식으로 흐르고, 결과적으로 '식민지 근대화론'이 태어나게 된 것은 당연한 흐름이 아니었을까. 몇 년 전 논란의 베스트셀러 <반일종족주의>의 사상의 뿌리가 그토록 싫어하는 '좌파'사상이라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라 하겠다.


 경제학자 안병직은 남한에서 3.1운동의 원인을 계급론적으로 분석하려는 시도를 했다. 안병직은 중국에서 개발된 민족자본론을 이용하여 3.1운동 참여 세력을 예속자본가 중 식민정책에 불만을 품고 있던 손병희 등 소극적 친일파, 중소지주 및 상인 등 민족 자본가, 노동자/농민계층 등으로 분류하고 그들을 운동에 참여하게 된 지도 사상을 각각 '독립청원', '독립시위' , '독립쟁취'라고 규정했다. 이 중 '민족 대표'는 그 투항주의적 성격으로 인해 3.1운동의 시작 단계에 운동을 포기했고, 그 이후는 각 지방의 지식인, 학생, 유력자에 의해 운동이 독자적으로 추진되었다고 서술했다._ 한국역사연구회 3.1운동 100주년 기획위원회, <3.1운동 100년 : 1 메타역사>, p159


 해방 직후 사회주의자들은 3.1운동을 '실패한 운동'으로 규정했다. 특히 전위조직의 부재와 토지개혁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던 점을 3.1운동이 실패한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강조했다. 3.1운동은 반제투쟁 외에도 토지개혁이라는 반봉건투쟁이 병행되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조선공산당(남조선노동당)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자들에게 있어) 3.1운동의 가장 중요한 교훈은 전위당의 필요와 토지문제의 농민적 해결이었다._ 한국역사연구회 3.1운동 100주년 기획위원회, <3.1운동 100년 : 1 메타역사>, p75


 <3.1운동 100년 : 1 메타역사> 속에서 우리는 다른 하나의 왜곡된 기억을 발견하게 된다. 임시정부의 정통성 문제와 건국절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3.1운동 100년 : 1 메타역사> 속에서 우리는 3.1혁명을 계승한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강조한 것이 우파사상이며,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의 주장임을 확인하게 된다. 초대 대한민국 정부에서 '건국'이 아닌 '계승'을 강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계승자'를 '건국자'로 만들고 '임시정부를 부정'하는 좌파의 논리를 받아들이면서, '종북 좌파'로 매도하는 이들의 주장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다. 이것 또한 왜곡된 기억이 낳은 갈등이 아닐까... 


 '3.1운동에 의해 건립된 임시정부'라는 인식을 기반으로 하는 임정 법통성은 임시정부 시절부터 우파의 논리로 작동했다. 좌파가 임시정부 해체를 주장할 때마다 우파는 임정 법통성을 방어논리로 구사했다... 이후 군사정부에 의해 삭제되었던 임정 법통성은 1987년 개헌을 통해 다시 헌법 전문에 들어갔다. 북한과 체제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정부 수립의 정통성을 임정 법통성에서 찾고자 했던 정치세력은 별다른 갈등 없이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헌법 전문에 부활시켰다. 이처럼 임정 법통성이 우파와 반공주의의 합작이라는 점은 해방 정국부터 일관된 것이었다._ 한국역사연구회 3.1운동 100주년 기획위원회, <3.1운동 100년 : 1 메타역사>, p108


 이승만 정부는 정부 수립 후 1949년 첫 3.1절 기념사에서 3.1운동으로 발휘된 독립의 정신이 임시정부로 계승되어 마침내 '대한민국주국(大韓民國主國)'이 탄생했다고 했다. 정부 수립의 정통성과 임시정부 계승의 정신을 표방한 것은 그 후 역대 정부에서도 공통적으로 이어졌다... 이승만은 집권 후 첫 번째 기념사에서 3.1운동의 정신이 '반공의 3.1정신'으로 부활할 것을 주장했다._ 한국역사연구회 3.1운동 100주년 기획위원회, <3.1운동 100년 : 1 메타역사>, p121


 

책을 읽다보면 별다른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읽어야 할 책들이 쏟아짐을 느낀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박은식의 <독립운동지혈사>, 식민지 근대화론과 관련하여 이영훈의 <수량경제사로 다시 본 조선 후기> vs 강만길의 <조선후기 상업자본의 발달>을 담아둔다. 이에 더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3월호에 실린 램지어 교수의 주장에 대한 비판의 연장선상에서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 vs  고은광순외 <제국의변호인 박유하에게 묻다>도 함께 담아둔다... 서로 다른 역사의 기억은  어떻게 우리를 바꾸어 왔는가. 역사의 힘에 대해 생각하면서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기억이 구체화되어 있는 모든 장소들은 종교적, 정치적, 상징적 성격과 아울러 역사 및 족보 편찬의 성격을 띠기 마련이다. 그 기억의 주요한 측면들이 '유산(heritage)' 이라는 기호(記號) 아래 재편되어 나타나는 것은, 그런 기억이 펼쳐지는 바로 그 시대에 그것 자체가 스스로 시대를 초월한 하나의 의례처럼 표현되는 것에 관심을 쏟으며, 시간적으로 유한한 자신의 흔적을 초시간성 또는 초자연성의 낙인으로써 확증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 기억 속에는 아직 민족은 없지만 민족적 신성성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것은 이후에 나타난 민족적 기억의 온갖 형태들에 그러한 성격을 물려줄 것이며, 또 그런 신성성이 그 기억에 영속적인 정당성을 부여한다. _ 피에르 노라 외, <기억의 장소 2 : 민족>, p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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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man 2021-03-22 22: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사와 기억이라면, 쑨꺼 선생의 <아시아라는 사유공간> 중 ‘중일전쟁- 감정과 기억의 구도‘, 쑹녠선의 <동아시아를 발견하다>, 정두희 등이 참여한 <임진왜란, 동아시아 삼국전쟁> 김시덕 <일본의 대외 전쟁>도 추천합니다..ㅎㅎ

겨울호랑이 2021-03-23 06:12   좋아요 0 | URL
^^:) 김민우님 감사합니다. 평소 역사와 관련해서 많은 책을 읽으시는 김민우님께서 추천하시는 도서라 믿고 읽을 수 있겠네요.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국가는 벌써 민족정신으로 구성된 유기체이다. 단순한 혈족(血族)으로 전해 내려온 국가는 말할 것도 없고, 혼잡한 각 종족으로 결집된 국가일지라도 반드시 그 가운데 항상 주동력을 가진 특별한 종족이 있어야만 이에 그 국가가 국가답게 될 것이다... 역사를 쓰는 자는 반드시 그 나라의 주인되는 한 종족을 먼저 드러내어, 이것으로 주제를 삼은 후에 그 정치는 어떻게 흥하고 쇠하였으며, 그 산업은 어떻게 번창하고 몰락하였으며, 그 무공(武功)은 어떻게 나아가고 물러났으며, 그 생활관습과 풍속은 어떻게 별하여 왔으며, 그 밖으로부터 들어온 각각의 종족을 어떻게 받아들였으며, 그 다른 지역의 나라들과 어떻게 교섭하였는가를 서술하여야 이것을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_ 신채호, <독사신론> 中


 단재 신채호(丹齋 申采浩, 1880 ~ 1936)의 <독사신론 讀史新論>은 단재의 역사관(歷史觀)이 잘 표현된, 잘 요약된 역사서다. 오랜 역사가 흐르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발자취가 어지럽게 남겨진 공간 속에서 역사가는 어떻게 사건을 의미를 부여하는 가를 우리 고대사를 소재로 잘 보여주는 책이 <독사신론>이다. 저자는 <독사신론>에서 역사가는 먼저 오늘의 우리가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 기원을 찾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주인이 되는 종족을 먼저 드러내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것이 바로 '아(我)'를 찾는 작업이다.


 역사(歷史)란 무엇인가. 인류사회의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 시간적으로 발전하고 공간적으로 확대되는 심적(心的) 활동(活動)의 상태에 관한 기록이다. 세계사(世界史)란 세계의 인류가 그렇게 되어온 상태의 기록이며, 조선사(朝鮮史)란 조선민족이 그렇게 되어온 상태의 기록이다. 무엇을 '아(我)'라 하고 무엇을 '비아(非我)'라 하는가? 한마디로 쉽게 말하자면, 무릇 주관적(主觀的) 위치에 선 자를 '아(我)'라 하고 그 외에는 모두 '비아(非我)'라 한다._신채호, <조선상고사>, p24 


 역사 속에서 '아'를 규명한다면, '아'를 제외한 외부가 '비아'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는 이들의 투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그것은 역사 속에서 '아'가 '비아'를 물리치고 주체(主體)가 되어 오늘날 우리 자신으로 올바르게 선다는 의미라 생각된다. <환단고기>에서처럼 중원(中原)을 놓고 일대 격전을 벌이는 동이(東夷)-화하(華夏)의 대립 구도가 아닌, 우리 자신/민족의 주류(主流)가 되기 위해 벌이는 아(我)-비아(非我)의 투쟁. 이것이 바로 <조선상고사>가 <환단고기 桓檀古記>와 갈리는 결정적인 지점이라 생각되며, 유명한 '아와 비아의 투쟁'이라는 단재 역사관의 참뜻은 이러한 의미라 여겨진다. 이러한 면에서 <독사신론>과 <조선상고사>는 마치 춘추전국시대의 전설적인 보검 간장-막야(干將-莫耶)와 같은 단재 사상의 음양검(陰陽劍)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섯 종족(부여족, 선비족, 지나족, 말갈족, 여진족, 토족) 가운데 모습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다른 다섯 종족을 정복하고 흡수하여 우리 민족의 역대 주인이 된 종족은 실로 부여족 한 종족에 지나지 않으니, 대개 4천년 우리 역사는 부여족의 흥망성쇠의 역사다... 나는 우리 부여족이 발달한 실제 자취로 우리나라 역사의 주요 골자로 삼고 기타 각 민족은 비록 우리나라 땅을 차지하고 주권을 다툰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모두 적국의 외침의 한 예로서 보겠다. 내가 일찍이 말하기를, 우리나라가 부여족의 나라가 되는 것은 정신적으로 볼 때는 단군시대에 이미 시작되었고 실질적으로 얘기한다면 삼국 초기에 비로소 명백히 되었다고 할 수 있다... _ 신채호, <독사신론> 中


 PS. 개인적으로 <환단고기>가 비판을 받아야 하는 주된 이유는 그 안에 깊이 자리한 내선일체(內鮮一體)사상때문이라 생각한다. 1930년대 발견된 것으로 알려진 이 책에서 몽골, 만주, 조선, 일본은 대동이(大東夷) 로 같은 민족으로서 '화하'족과 전쟁에 단결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불어넣는데 한 몫한다. 결국 일본의 대륙 침략의 명분을 준다는 점에서 비판받아 마땅하다. 이와는 반대로, 거의 같은 시기에 나온 푸쓰넨(傅斯年)의 <이하동서설 夷夏東西說>은 정반대의 입장에서 같은 목적으로 씌여진 책이라 여겨진다... 이에 대해서는 별도의 리뷰에서 여러 차례 다루었기에 이만 줄이도록 하자...  



역사를 쓰는 자는 반드시 그 나라의 주인되는 한 종족을 먼저 드러내어, 이것으로 주제를 삼은 후에 그 정치는 어떻게 흥하고 쇠하였으며, 그 산업은 어떻게 번창하고 몰락하였으며, 그 무공(武功)은 어떻게 나아가고 물러났으며, 그 생활관습과 풍속은 어떻게 별하여 왔으며, 그 밖으로부터 들어온 각각의 종족을 어떻게 받아들였으며, 그 다른 지역의 나라들과 어떻게 교섭하였는가를 서술하여야 이것을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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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adhi(眞我) 2021-03-16 23: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국사를 배울 때 단순히 신채호가 얘기한 이 부분, 아와 비아의 투쟁이라는 말을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는데(진아라는 제 아이디(?)가 참나를 찾겠다는 뜻이거든요.) 지금 보니 신채호는 우주의 본질, 참나의 본질을 얘기하고 있네요. 겨울호랑이님 덕분에 원래도 멋졌던 신채호가 새삼 달리 보입니다.

겨울호랑이 2021-03-16 23:13   좋아요 1 | URL
저 역시 <조선상고사>만을 읽었을 때는 그 의미가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는데, <독사신론>을 함께 놓고 보이니 다르게 보이네요. 다만, samadhi님께서 말씀하신 우주의 본질, 참나의 본질까지는 미처 생각 못했습니다. 저 역시 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samadhi(眞我) 2021-03-16 23:15   좋아요 1 | URL
아니에요^^; 제가 제맘대로 해석하는 거지요. 수행과 요가로 꽉 채운 삶을 살겠다고(?) 부끄럽게도 다짐만 하는 제 눈에 모든 게 그렇게 보여서요. ㅎㅎ

겨울호랑이 2021-03-16 23:22   좋아요 1 | URL
^^:) 각자의 주관이 바로 각자의 신념이나 역사관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덕분에 저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samadhi님 감사합니다.

북다이제스터 2021-03-16 23: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신채호가 아를 강조해서 그런지 신채호 하면 아집이 강한 분으란 인상을 받습니다.
지나친 민족주의에 눈 먼, 편견이 강한 분이란 느낌입니다. 제 선입견이겠죠?^^

겨울호랑이 2021-03-16 23:20   좋아요 1 | URL
저 개인적으로 북다이제스터님께서 말씀하신 지점이 어떤 느낌인지 조금은 알 듯 합니다. 사실, 저 역시 어느 정도 느끼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페이퍼에서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단재 역사학 역시 일제 하에서 민족정기를 바로 잡고자 하는 목적이 있기에, 이 역시 목적지향적인 사관이라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부분이 있다 여겨집니다. 이것은 단재 역사관의 한계이자, 시대의 한계라 여겨지네요. 이 부분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후대의 몫인 듯 합니다...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북다이제스터 2021-03-16 23:31   좋아요 1 | URL
그런 것 같습니다. 대부분이 시대를 벋어나기 정말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시대를 벗어난 분들을 대단히 여기는 것 같습니다.

겨울호랑이 2021-03-16 23:44   좋아요 0 | URL
정말 시대를 초월한 안목을 가진 분들은 대단하다고 할 수 밖에 없을 듯합니다... 다른 한 편으로 연구자가 자신과구분된 공간을 만들어 자연 법칙을 발견하는 자연과학에서는 최소한 이론을 통해서라도 보편적인 법칙을 발견하는 것이 가능하겠지만, 연구자가 주변과 독립되기 힘든 사회과학에서는 선구적인 안목을 갖는 것은 그보다 더 힘들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어머니,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것도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10여 명은 될 것입니다... 어머니,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이 복잡하고 괴로운 심정을 어머님께 알려드려야 제 마음이 가라앉을 것 같습니다.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 어머니 어쩌면 오늘 죽을 지 모릅니다. 쌍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어머니 안녕! 안녕! 아, 안녕은 아닙니다. 다시 쓸 테니까요... 그럼.  - 소년병 이우근의 일기(포항여중 앞에서 전사) _ 윤태호, <인천상륙작전 5>, p68


 <인천상륙작전 4>에서 시작된 한국전쟁은 무섭게 남북측 모두와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이들의 삶을 송두리째 비극으로 던져 넣는다. 한국 민중의 삶을 대변하는 주인공 두 형제와 이들의 가족들 또한 이로 인해 가슴아픈 일을 겪으며 작품은 마무리된다. 


 (1950년 부산 임시정부) 당시부산의 풍경은 두 가지였다. 하루 한끼를 겨우겨우 해결하는 극빈층의 삶과 전쟁 중에도 방종한 생활을 하는 사회 지도층 또는 유지층의 삶이 그것이었다. 한국 유엔대표단이 외교적으로 어떤 수고를 감내하고 있는지, 이제 겨우 제 나라를 찾은 약소국의 외교관이 머나먼 타지에서 어떤 고초를 겪으며 국제원조를 끌어내려 노력했는지 댄스홀의 그들은 알 턱이 없었을 것이다._ 윤태호, <인천상륙작전 5>, p55


 <인천상륙작전>에서는 두 세계가 교차된다. 일반 민중의 삶과 지배층의 삶. 두 형제의 모습으로 구체적으로 표현되는 일반 민중의 삶은 고되지만, 짧은 서술로 표현되는 당시 국내외 정세와 지배층의 모습은 오늘날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작가가 설정한 이러한 구도는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결정사항이 실제의 삶을 좌우하는 모습을 연상시켜, 이데올로기 전쟁이었던 한국 전쟁의 비극을 더 잘 전달한다. 


 인천 앞바다에 떠다니는 배들 본 적 있어요? 돛대에 빨간 천 매달고 다니잖소. 그게 다 우린 빨갱이 편이오~라는 표식이오. 근데 그중에 진짜 빨갱이가 몇이나 되겠소? 솔직히 고기 잡는 것밖에 모르던 우리가 뭘 알아서 누구 편을 들겠냐고?_ 윤태호, <인천상륙작전 5>, p84


 영화 <남부군>을 보면 과거 1940년대 말 지리산 일대에는 아침에는 국군이, 밤에는 빨치산이 점령하면서 그 사이에 놓인 힘없는 이들이 부역을 했다는 이유로 많은 피해를 보는 장면이 나온다. 또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 나오는 보도연맹 학살 사건과 같은 비극은 이데올로기와 무관한 이들이 엮은 비극이 잘 표현된다. <남부군>의 문제가 <태극기 휘날리며>에서처럼 전국으로 확대된 것이 한국전쟁의 어두운 면이자 최대의 비극임을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다시 생각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천상륙작전 1>에서 작가가 제기한 물음을 떠올리게 된다. 과연 우리는 해방을 했는가? 또는 해방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코젤렉(Reinhart Koselleck, 1923 ~ 2006)의 개념사 중 9번 째 주제인 '해방'을 바그너(Richard Wagner)의 정의에 따라 생각해보자.


 '해방'은 운동이자 목표의 개념이며, 결국에는 성취의 개념이 되었다. 그래서 이 개념은 [우선] 그것의 의미가 펼쳐진 두 가지 의미 축을 지니고 있다. 말하자면 과거와의 단절과 해방이 강조되거나, 아니면 미래 지향성과 목표, 즉 자유에 집중했다... 둘째로 이 개념은 항시 해방을 실행하는 사람에 따라 다른 위상을 지녔다. 말하자면 해방은 승인되거나, 쟁취될 수 있었다. _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9 : 해방> , p44 


 해방이 일본의 직접 통치로부터 벗어난 것을 의미한다면 1945년 일제의 정치적 지배로부터 우리는 해방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과연 우리가 1940년대의 문제로부터 자유롭게 우리의 미래를 생각할 수 있을까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면 그때에도 우리가 해방되었다고 볼 수 있을까? 이와 같이 넓은 의미에서 본다면 우리의 해방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PS. <인천상륙작전 6>에는 노래 <단장의 미아리 고개>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한 가정의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죽은 딸과 죽어가는 아내를 바라보는 참혹한 심정을 어떻게 노래에 다 담아낼 수 있을까. 그럼에도 참 마음이 아프다...


 미아리 고개의 원래 이름은 '되너미 고개'. 병자호란 때 되놈들이 넘어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후 일제 강점기에 공동묘지가 생기며 사람이 죽으면 이 고개를 넘으니 이별을 상징한 고개가 되었고,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창자를 끊는 듯한 생이별의 고통을 받아야 하는 통곡의 고개가 되었다. 1956년 반야월은 <단장의 미아리 고개>라는 곡을 발표한다. 홀로 피난길을 떠났다가 돌아와 보니 아내는 영양실조로 누워 있고 네 살 난 딸은 죽어 있었다. _ 윤태호, <인천상륙작전 6>,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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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2-24 14: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헬로키티 얼굴을 하시구선 이런 슬픈 글을 올리시다니 ㅠㅠ소년병. 단어만으로도 정말 슬픕니다. ㅠ

겨울호랑이 2021-02-24 18:28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인천상륙작전> 안에는 소년병들의 나이가 징집 대상 연령 미만인 15 ~17세이고, 3,000 여명 중 2,400명이 전사했다는 이야기도 함께 있는데 참 마음이 아픕니다..ㅜㅜ

레삭매냐 2021-02-24 14: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단 해방이 다시는 전제주의적
군주제 시스템으로 돌아가지 않
게 되었다는 차원에서 하나의
해방은 성취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어진 분단으로 인해 새로
운 단절을 낳게 되지나 않았나 싶
요.

대단한 해석과 적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관내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네요.

기회가 된다면 가서 빌려다
보고 싶어지네요.

겨울호랑이 2021-02-24 18:39   좋아요 2 | URL
레삭매냐님 의견에 동의하면서 동시에 ‘해방‘이라는 주제가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특히 우리의 근현대사와 관련해서는요. 레삭매냐님께서도 <인천상륙작전>을 읽으신다면 보다 의미있는 독서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미군 선발대의 도착 소식은 한국인들에게 흥분을 안겼다. 소시민들은 그들대로의 기대감이, 돌연한 사이에 삶의 지향을 바꾼 이들에겐 두려움과 설렘이, 지배계급에겐 힘센 '내 편'의 출현이란 기쁨이 밀려왔다. _ 윤태호, <인천상륙작전 1>, p109


 <인천상륙작전>에는 형제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소시민을 대표하는 철구 아버지와 친일파에서 우익으로 과거를 세탁하고 변신한 철구 삼촌. 지배계급이 아닌 이들에게 닥친 해방 전후는 짙은 안개 속에 가려진 길과 같았다.  


 치솟는 물가, 범죄와 부정부패는 해방 직후 민생을 괴롭힌 주요 문제였다. 해외 동포들의 귀환과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인구로 경제 파탄이 가속화되었고 장치는 과잉되어 있었으나 민생을 돌볼 틈이 없었다. 물가 불안의 주된 이유는 일본인들이 조선을 떠나기 직전 화폐를 남발했기 때문이다... 재한 일본인들의 귀국 자금을 마련하려고, 당시 통화량의 70% 정도에 해당하는 화폐를 만들어 뿌렸다. 일제가 퇴각하는 순간까지 화폐를 찍어내는 등 수탈을 자행할 수 있었던 것은 여전히 일본인이 각 금융기관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_ 윤태호, <인천상륙작전 2>, p55


 패전 직후 화폐를 남발한 일제의 금융정책 농단과 미군의 쌀가격 통제로 인한 실물경제의 실패는 경제적 불안을 가져왔고, 좌우 이념 대립은 정치적 불안을 깊게 했다. 여기에 미군정의 상황 인식과 대처는 해방 이후에 대한 한국인들의 기대와는 달랐기에 갈등은 더 깊어질 수 밖에 없었다.


 "미군정이 생각할 때, 해방은 조선인이 한 게 아니죠. 조선의 해방은 태평양 전쟁의 승리로 얻어진 수확이지, 전쟁의 목적이 아닌 겁니다. 그런데 '인공'이다 뭐다 해서 주권이란 이름으로 나대니 미군정이 보기에 얼마나 어이없겠어요? 미군정은 누군가에게 조선을 맡기겠죠. 그런데... 조선인에게? 공산주의자들에게? 도리어 패배했지만, 자신들과 대등한 싸움을 이뤄낸 근대화된 일본, 또는 그 아류에게 더 시선이 가지 않을까요? _ 윤태호, <인천상륙작전 1>, p158 


 이같은 정치경제 배경 하에서 1950년을 전후한 미국의 대외정책 변경과 한국정부의 무리한 북진 정책 추진은 북측에 충분한 전쟁의 빌미를 주었음을 알게 한다. <인천 상륙 작전 4>에서 한국 전쟁이 시작되면서 비로소 한국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1 ~ 3권을 통해 그 이전 이야기를 일반 시민의 삶을 통해 보여주면서 <인천상륙작전>은 보다 생생하게 당시를 증언한다. 다만, 인천을 고향으로 둔 형제를 중심으로 현대사의 주요한 사건들을 연결시켜 보여주기에 다소 인위적인 느낌이 드는 부분은 아쉽지만(철구 아버지의 고향은 인천, 철구 어머니의 고향은 팔미도라는 설정, 철구 아버지가 한강 인도교 폭발로 실종되고, 철구 삼촌이 도피하면서 노근리를 지난다는 설정 등)흥미와 역사적 교훈 전달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잘 잡고 있는 좋은 작품이라 여겨진다.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 전쟁의 기원>을 일반인의 눈 높이에서 이보다 잘 그리긴 어려울 것이다. 이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전쟁으로 향한다...


 남한은 이승만의 허풍에 가까운 북진통일론에 대한 미국의 견제로 전쟁에 무방비 상태였다. 당시 남한의 병력은 정규군 6만5천, 해안 경찰대 4천, 경찰 4만 5천 명이었다. 탱크와 기갑차량은 전무했고 여섯 대의 항공기가 전부였다. 15일 동안 국방작전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보급품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북한은 13만 명의 지상군(실전 경험자 포함)을 이미 확보하고 있었다. _ 윤태호, <인천상륙작전 3>, p164


 육군 정보국에서 북의 대규모 병력이 38선에 집결했다는 보고를 했음에도 군은 바로 그날 비상경계를 해제했다. 때는 주말. 절반에 해당하는 병력이 외출한 상태였다.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2시. 육군본부 장교클럽 낙성파티에는 전방부대 사단장들까지 초청되어 밤새 술판이 벌어졌다. _ 윤태호, <인천상륙작전 4>, p23




미군정이 생각할 때, 해방은 조선인이 한 게 아니죠. 조선의 해방은 태평양 전쟁의 승리로 얻어진 수확이지, 전쟁의 목적이 아닌 겁니다. 그런데 ‘인공‘이다 뭐다 해서 주권이란 이름으로 나대니 미군정이 보기에 얼마나 어이없겠어요? 미군정은 누군가에게 조선을 맡기겠죠. 그런데... 조선인에게? 공산주의자들에게? 도리어 패배했지만, 자신들과 대등한 싸움을 이뤄낸 근대화된 일본, 또는 그 아류에게 더 시선이 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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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1-02-21 16: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동안 우리 민족의 입장에서만 해방
을 인식해 왔었는데, 저자의 말처럼
미군정을 실시하던 미군들의 입장에서
보면 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해방 정국의 리더들이
너무 안이하게 광복과 자주 국가 건설
을 생각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다시 한 번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
이 얼마나 컸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겨울호랑이 2021-02-21 17:31   좋아요 1 | URL
그럿습니다. 우리의 독립항쟁에 대해 태평양 건너의 미국은 거의 알아주지 못한 반면, 함께 항일연군을 구성했던 중국 또는 일본과 적대했던 소련은 이에 대한 이해가 있었던 듯 합니다. 이러한 이해가 있었기에, 당대 지식인들 사이에 공산주의에 대한 기대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이들 지식인들이 ‘빨갱이‘란 명분으로 몰렸던 것이 해방 이후 인재 부족의 원인 중 하나였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오! 한강>은 아버지 강토와 아들 석주를 통해 한국현대사를 그려낸다. 허영만 화백 초창기 만화의 주인공 이름인 '강토'라는 이름에서 지난 세월의 흔적을 느낀다. 반가움과 그리움, 추억과도 같은. 작품이 나왔던 1980년대에는 주인공들의 입에서 나오는 웅변과 연설에 담긴 내용이 충격적으로 다가왔겠지만, 이제는 어느정도 보편적으로 알려진 사실이 된 점 또한 강토의 이름만큼이나 세월의 흐름을 알려준다. 


 허영만 화백의 '강토'는 여러 작품에서 매번 다르게 그려진다. 강토의 모습, 강토의 성격... 등등.. . <오! 한강>에서는 강토 대신 시대가 매우 빠르게 변화한다. 해방과 분단, 전쟁과 군사독재, 그리고 맞이한 1987년. 급격하게 바뀌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혁명가에서 아나키스트로 서서히 바뀌어 가는 강토의 모습은 <오! 한강> 5권의 작품을 마치 서로 다른 별개의 작품으로 느끼게 한다. 돌아보면, 최근 100년간 한국 현대사는 얼마나 수많은 사건이 한꺼번에 일어난 시기였는가... 불과 70여년 남짓한 시기에 미국의 독립전쟁과 남북전쟁이 일어나고 뒤이어 산업혁명이 이어지는 급변하는 시대 상황에서 매번 삶과 죽음의 선택을 강요받았던 시기. 이러한 시기를 살아가면서 겪어야 했던 개인의 변화는 우리들 자신이 시대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존재임을 일깨운다. 여기에 더해, 비록 우리나라에서는 서양과 같은 치열했던 종교전쟁은 없었지만, 종교 대신 자리를 차지한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 깊은 영향을 갖고 있음도 돌아보게 된다. 


 

<오! 한강>은 조정래의 <태백산맥>과 <한강>을 배경으로 하는 시대를 보다 압축적으로 그림과 함께 담아 독자들에게 보다 생생하게 시대상을 느끼게 해준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작품이다. 쉽고 빠르게 한국 현대사의 굵진한 사건들을 개인의 입장에서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라면, 대신 제한된 인물로 인해 놓치는 부분도 있음도 당연하면서도 아쉬운 부분이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아리랑>, <태백산맥>, <한강>를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그 전에 <수용소 군도>부터 마무리를 지어야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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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2-01 23: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추억의 오! 한강. 저 이거 옛날에 잡지에 연재할 때부터 손꼽아 기다리면서 봣었어요. 87년 이후 사회의 변화를 확 느끼게 해준 만화였다죠. 지금 보면 뭐 그렇게 감격스러울 것 같지는 않은데 겨울호랑이님 덕분에 추억이 방울 방울입니다. ^^

겨울호랑이 2021-02-02 05:40   좋아요 0 | URL
^^:) 감사합니다. 저는 말로만 듣다가 이번에 처음 봤는데, 당시 시대상을 생각하면 적지 않은 충격을 줬을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바람돌이님 행복한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