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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주역강해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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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뢰복 괘에 대한 정이천의 해설.

아직 (지뢰)복이 오지 않은 것을 보면 (산지)박이 끝나지 않은 듯하다. 더 내려갈 곳이 없는 듯한데 극에 이르지 않았다면 과연 어디까지 가야하나 싶기도 하지만.

극점이 변곡점이 될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사물에 박진(박탈되어 사라진다)의 이치는 없다. 박이 극에 달하면 복이 오고, 음이 지극하면 양이 생겨나게 되어있다. 양이 위에서 극한까지 견디다 박탈당하게 되면 그것은 다시 아래에서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곧 「서괘전」에서 위에서 궁하면 아래로 돌아온다(반하)라고 말한 바의 것이다. 그래서 복괘가 박괘 다음에 오게 된것이다. 괘의 모양을 한번 살펴보자! 일양이 오음의 아래에서 생겨나고 있으니 이것은 음이 극하면 양이 되돌아온다는 이치이다. 10월에 음이 성하여 극한에 달했다가, 다음 달 11월 동지冬至가 되면 일양이 땅속에서 다시 생겨나기 때문에 복이라고 한 것이다. 양은 군자의 도이다. 양의 사라짐이 극한에 달하다가 다시 양이 돌아오는 것은, 군자의 도는 사라지는 것 같다가도 다시 자라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복괘는 선으로 돌아온다는 뜻이 된다. - P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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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23-03-31 0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뭔가 위로가 되는 말씀이네요

겨울호랑이 2023-03-31 16:19   좋아요 1 | URL
네 어려울 때는 위로가, 잘될 때는 경계가 되는 경구라 생각됩니다. 지금은 위로가 되네요...

2023-03-31 0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31 16: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31 2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31 2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가 생각키에 민주란 뭐 대단한 이상이 아니라, 한 사회를 지배하는 권력의 정당성 (legitimacy)이 보다 더 많은 다수의 합의(consent)를 지향하는 모든 정치형태를 추상적으로 지칭하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민주(民主)보다는 민본(民本)이 보다 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이고 정직한 개념이라고 생각한다._ 도올 김용옥, <도올심득 동경대전 1> , P43


서학이 조선민중의 샤마니즘적 파토스와 결합되면  매우 폭발적인 대중성을 확보하게 된다. 그것은 사상의 공동을 전염병처럼 메꾸어 나갔다. 이러한 위기의식 속에서 성리학과 서학이 제시하는 내재와 초월의 모든 패러다임을 만족시키면서 그것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하려는 운동이 19세기 중엽에 조선에 잉태하게 된다. 그 이론적 표현이 기학이었고, 그 실천적 표현이 동학이었다. 동학에 이르러 조선역사에 내재해온 플레타르키아의 열망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하게 된다. 그것이 "개벽" 이었다._ 도올 김용옥, <도올심득 동경대전 1> , P140

 최근 출판된 「동경대전1」의 구판. 2004년에 초판이 출판된 후 17년이 지난 후에서야 개정판이 나왔다. 개정판을 읽기 전에 마침 <토지>를 읽으며 가볍게 동학농민혁명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꺼내든 책이다.


  비록「동경대전 1, 2」편에 비해 얇은 책이고, 오래전 출판된 책이지만 이 책은 나름의 의미를 갖는다. 이는 그간의 저자의 학문 여정이 얼마나 치밀하게 계획된 것이었는가를 우리에게 알려주기 때문이다. 저자는 지난 시간 동안 혜강 최한기의 <기학 氣學>, 「맹자 孟子」, 「노자 老子」, 수운의 「동경대전 東經大全」을 대중에게 소개했다. 자칫 상관없어 보이는 이들 저작들이 최종적으로 <동경대전>으로 향하는 과정이었음을 지난 2004년에 출판된 책에서 발견하게 된다.


 <노자>에서 말하는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과 같이, 물을 받아들이는 바다와 같은 민중. 이러한 민중의 의식 구조를 형성하는 기학(氣學)과 실천으로서의 동학(東學)이 하나가 되어 비로소 21세기 혁명 플레타르키아(pletharchia)를 이룬다는 저자의 철학. 이것이 저자가 평생 강조한 정치철학으로서의 몸철학의 얼개가 아닐까. 이 얼개를 완성하고 대중에게 알기 쉽게 설명하기까지 거의 20여년의 세월이 필요했다는 사실을 2004년에 출간된 얇은 책에서 새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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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단(四端)은 <맹자 孟子>에 나오는 말로,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을 말한다... '단'이란 실마리(緖)란 뜻과 시작(始)이란 뜻, 두 가지를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학자는 실마리로 해석한다. 실마리를 따라가다 보면 마침내 실패를 찾듯이 사단을 궁구하다 보면 네 가지를 미루어서 타고난 본성을 알 수 있다는 말이다.(p42)... 칠정(七情)은 <예기 禮記>에 나오는 것으로, 기쁨(喜), 분노(怒), 슬픔(哀), 즐거움(樂), 사랑(愛), 미움(憎), 욕망(慾) 등을 말한다. 사단이 도덕적인 감정이라면 칠정은 일반적인 감정을 뜻한다. _ 조남호, <이황 & 이이 : 조선의 정신을 세우다>, p43


 리(理)는 선진시대에는 옥에 난 무늬, 결 등을 의미하다가 점차로 발전해 개별적 법칙을 의미하고, 나아가서는 법칙을 포괄하는 원리로 확정되었다. 그것이 송대에 들어와서는 마땅히 있어야 할 본래의 모습을 의미하는데, 주로 도덕적인 원리나 법칙을 뜻하게 되었다. 기(氣)는 매우 포괄적인 것으로 처음에는 숨(호흡)을 뜻하다가 점차로 생명으로 발전했다. 생명은 숨과 관련을 맺는 것이라고 여겨졌다... 송 대 이전에는 기가 중심이고 리는 그에 부속되었는데, 송대 이후에는 리와 기가 함께 논의되고, 리가 중심적인 역할로 바뀌었다. _ 조남호, <이황 & 이이 : 조선의 정신을 세우다>, p45


 <이황 & 이이 : 조선의 정신을 세우다>는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2 ~ 1571)과 율곡 이이(栗谷 李珥, 1537 ~ 1584)로 대표되는 조선 성리학(性理學)의 입문서다. 조선 성리학의 두 거목들의 사상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황 & 이이 : 조선의 정신을 세우다>에서 퇴계 이황의 심성론(心性論)은 '리기호발(理氣互發)'로 요약되는데, 사단을 리(理)의 발현으로, 칠정을 기(氣)의 발현으로 보는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이다.


 이황은 사단과 칠정을 병행(혹은 대립) 관계로 보았다. 그래서 "사단은 리가 발동한 것이고, 칠정은 기가 발동한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사단은 리가 드러난 것이고, 칠정은 기가 드러난 것이라는 의미다... 이황이 사단과 칠정을 리와 기로 나누어 설명하려고 하는 것은, 사단은 순수하고 칠정은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에 기인한다. 사단은 도덕적인 감정이기 때문에 순선무악한 것이고, 칠정은 감정 일반을 가리키기 때문에 선한 경우도 있고 악한 경우도 있다. 사단은 완전한 것이고, 칠정은 불완전한 것이다. 그래서 이황은 리와 기에 분속시켰던 것이다. _ 조남호, <이황 & 이이 : 조선의 정신을 세우다>, p48


 반면, 고봉 기대승(高峰 奇大升, 1527 ~ 1572)과 율곡 이이는 리와 기를 구분할 수 없다는 주장을 펼치며, 퇴계의 사상과 대립한다. 특히 율곡은 기발이승일도(氣發理昇一道)를 통해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을 주장하며, 고봉보다 더 큰 대립각을 세운다.


 기대승은 사단과 칠정을 서로 무관한 병행관계로 놓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사단과 칠정은 대립관계가 아니라 사단이 칠정의 일부분인 포함관계라는 것이다. 사단이 칠정의 일부분이지만 둘이 서로 평등한 감정임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리와 기는 분리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현상 사물에는 리와 기가 함께 있는 것이지, 리 따로 기 따로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_ 조남호, <이황 & 이이 : 조선의 정신을 세우다>, p50


 이이는 이황을 비판하면서 기대승을 옹호한다. 사단과 칠정의 관계는 대립관계가 아니라 포함관계라는 것이다. 칠정 가운데 리가 발동한 것이 사단이라고 한다. 이는 절도에 맞는 것이 사단이라는 것이지, 칠정 이외에 달리 사단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이이는 기대승의 원칙을 고수했다. 사단이나 칠정 모두 기가 발동한 것이라고 하는 원칙을 주장한다. 그렇게 된다면 이황의 사단은 리를 주로 한 것이고, 칠정은 기를 주로 한 것이라는 주장도 폐기된다. 사단이나 칠정 모두 기가 발동해 리가 탄 것이 되기 때문이다. _ 조남호, <이황 & 이이 : 조선의 정신을 세우다>, p55


 현재의 시각에서는 이러한 논쟁이 탁상공론에 불과하다고 보여질 수도 있지만, 당대에는 리와 기의 문제가 유교의 조선(朝鮮)이 불교의 고려(高麗)를 대신해야하는 명분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이를 간단하게 생각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의 연장선상에서 예송논쟁(禮訟論爭)을 바라봐야 함을 생각하게 된다. 


 이황의 '사단 - 리', '칠정 - 기' 라고 하는 도식은 사단과 칠정, 리와 기의 관계 설정에서 나온 것이다. 사단과 칠정을 구분하지 않으면 리와 기를 하나로 보는 것이고, 그것은 기에 대한 리의 우위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고려 시기의 불교적인 사고는 기를 중심으로 삼는 마음(心)에 기초한 사고이고, 그 때문에 고려가 망했다는 것이 성리학의 관점이다. 따라서 리를 우위에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_ 조남호, <이황 & 이이 : 조선의 정신을 세우다>, p53


 


성리학의 국가이념에 대해서 섣부르게 정리하기는 조심스럽기에 이 정도만 옮기도록 하자. 그렇지만, 유교에 형이상학(形而上學)의 개념을 도입한 성리학의 틀 속에서 우리는 보다 폭넓게 사고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이황 & 이이 : 조선의 정신을 세우다>에서는 이와 같은 퇴계와 율곡의 사상 차이를 사단과 일반감정과의 관계로 정리한다. 사단이 본성에서 발현된다는 퇴계의 사상과 외부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마음이 발현되다는 율곡의 사상 속에서 본유 관념( 本有觀念, innate idea)라는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 ~ 1650)와 이에 반대하는 경험주의자 존 로크(John Locke, 1632 ~ 1704)의 사상을 떠올린다면 무리한 연상일까. 


 이황이 사단과 칠정의 분리를 주장한다면 이이는 사단을 칠정이 절도에 맞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황과 이이 모두 칠정이 아니라 사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결국 사단이라고 하는 도덕적인 감정이 일반적인 감정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에 따라 논지가 결정된다... 이황은 사단이 나의 본성에서 발현한다고 주장하고, 이이는 외적인 대상에 대해 나의 마음이 발현한다고 주장한다. 전자는 내적인 발동을, 후자는 외적인 발동을 주장한다. _ 조남호, <이황 & 이이 : 조선의 정신을 세우다>, p61

 


<이황 & 이이 : 조선의 정신을 세우다>에서는 리에 대한 퇴계와 율곡의 사상을 비교한다. 퇴계 사상에서는 리를 천(天, 하늘)의 위치까지 높이는데, 이는 '너의 의지의 준칙이 항상 동시에 보편적 법칙 수립의 원리로서 타당할 수 있도록 그렇게 행위하라'는 칸트(Immanuel Kant, 1724 ~ 1804)의 <실천이성비판>과 도덕이 필연적으로 종교에 이른다는 <이성의 한계안에서의 종교>를 연관지을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율곡의 리는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 ~ BC 322)의 부동의 동자(unmoved mover)와 비교한다면 어떨까.


 이황은 리의 자발성이 있다고 하고, 이이는 리의 자발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리의 운동성 여부가 두 사람을 판별하는 기준이 된다.(p63)... 리의 발동이 창조적인 힘이고 그것은 인간의 자율적인 도덕 실천과 연관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리의 창조적 성격을 강조하다 보면 리의 종교적 성격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황의 리동설은 때로는 종교적인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황은 리를 천의 지위에까지 높이고 있다. 리는 절대적 존재로서 사물에 명령하는 주체이고, 사물의 명령을 받지 않는 주재적 존재라는 것이다... 하지만 리의 자발적인 운동은 인간 개체의 적극적인 자기 수양을 통한 리의 실현에 논점이 있지, 리가 신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 _ 조남호, <이황 & 이이 : 조선의 정신을 세우다>, p66


 개인의 수신원리로부터 시작하여 국가의 통치이념에 이르는 방대한 철학체계를 구축한 조선 성리학을 정리하기는 쉽지 않지만, <이황 & 이이 : 조선의 정신을 세우다>에서 언급된 내용을 바탕으로 큰 줄기를 잡고 간다면 어느 정도의 윤곽을 파악할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물론, 페이퍼에서 소개한 서양철학자들의 사상이 완벽하게 퇴계와 율곡의 사상과 들어맞는 것은 아니지만 서로 비교해서 본다면 더 오래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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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20-10-05 15: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추석 연휴는 잘 보내셨지요?^^
환절기 감기 조심하시고 행복한 10월 되시길 바랍니다.^^

겨울호랑이 2020-10-05 16:11   좋아요 0 | URL
추석을 지내니 늦가을이 느껴지네요. 후애님 쌀쌀한 날씨에 건강 유의하시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
 


 주나라의 전통적인 사회 규범으로서의 예(禮), 즉 '주례(周禮)'의 권위가 크게 약화되면서 동시에 새로운 사회 규범으로서 중앙집권적인 법(法)이 제정되고 규범이 강화되었다. 이로 인해 당시의 지식인들은 과거의 전통을 고집하고 새로운 질서를 경계하는 보수적인 입장과 옛날의 제도를 부정하고 혁신하려는 진보적인 입장으로 나뉘어 서로 대립할 수밖에 없었다. 전자가 바로 '유학 지식인들', 즉 유가(儒家)들이었다면, 후자는 바로 '관료 지식인들', 즉 법가(法家)들이었다. _ 강신주, <공자 & 맹자 : 유학의 변신은 무죄>, p17


 강신주의 <공자 & 맹자 : 유학의 변신은 무죄>는 공자(孔子, BC 551 ? ~ BC 479 ?)에서 시작된 유교(儒敎)가 맹자(孟子, BC 372 ? ~ BC 289 ?)와 주희(朱熹, 130 ~ 1200)에 의해 시대의 도전을 이겨내고 새롭게 변모하는 과정을 체계적으로 보여준다.  그렇다면, 유학의 본래 모습은 어떠했을까. 주(周)나라가 쇠약해지는 춘추시대(春秋時代, BC 770 ~ BC 403)에 공자는 예(禮)와 인(仁) 그리고 서(恕)를 통해 전통으로의 복귀를 강조한다. 전통적인 행위 규범인 '예'와 이를 내면으로 받아들인 '인'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규정하는 '서'는 공자 철학을 대표하는 핵심어이며, <논어 論語>는 이를 잘 담고 있는 책이다.


안정되고 질서 잡힌 사회는 피통치자들이 '도덕적 수치심(恥)'을 가질 때에만 가능하다고 생각한 공자는 이를 위해 먼저 주례를 잘 지켜야한다고 통치자에게 요청했던 것이다. 이 점에서 한비자와 공자의 정치철학, 즉 '법에 의한 통치[法治]'와 '예에 의한 통치[禮治'는 타율적 복종인가 아니면 자율적 복종인가 하는 차이점만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_ 강신주, <공자 & 맹자 : 유학의 변신은 무죄>, p38

 공자와 안연의 대화에서 극기복례[克己復禮]'라는 유명한 말이 등장한다. '자신을 이겨서 예를 회복한다'는 이 말은, 결국 인간이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여 예에 따라 행동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예에 따라 행동하는 주체의 모습을 공자는 인이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인한 사람이란 '예를 내면화해서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_ 강신주, <공자 & 맹자 : 유학의 변신은 무죄>, p41


 공자의 자기 반성은 주체가 모든 것을 무조건적으로 반성하는 것이 아니다. 항상예에 의해 자기 자신을 검열하고 심판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생각해냈을 때, 그것은 예에 맞지 않는 것일 수밖에 없게 된다. 결국 서(恕)를 따른다는 것은 자신에게 내면화된 예의 명령에 따라 타인과 관계를 맺는 일이다. _ 강신주, <공자 & 맹자 : 유학의 변신은 무죄>, p57


 그렇지만, 이러한 공자의 사상은 전국시대(戰國時代, BC 403 ~ BC 221)에 들어서면서 도전받게 된다. 진(晋)나라가 한(韓), 위(魏), 조(趙)로 나뉘어지고, 제(齊)나라 주인이 강(姜)씨에서 전(田)씨로 바뀌면서 시작된 철기문명의 전국시대에서 공자의 사상은 위협받는다. 당시를 대표하는 사상가는 양주(楊朱, BC 440 ? ~ BC 360 ?)와 묵자(墨子, BC 480 ~ BC 390)로 이들에 의해 국가, 가족의 질서는 위협받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등장한 맹자는 새롭게 본성(本性)이라는 개념을 도입하면서 응전해간다.


 맹자에 따르면 양주의 철학은 '자신만을 위하기[爲我]' 때문에 군신 관계를 핵심으로 하는 국가질서를 부정하게 된다. 한편 묵자의 철학은 '모든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사랑하기[兼愛]' 때문에 부자 관계를 핵심으로 하는 가족질서를 부정하게 된다.  _ 강신주, <공자 & 맹자 : 유학의 변신은 무죄>, p69


 

맹자에 의하면 측은지심(惻隱之心)은 주체의 의식적인 생각이나 현실적인 경험에서 발생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측은지심은 어디에서 발생하는 것일까? 여기서 맹자는 '본성[本性]'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그는 모든 인간은 측은지심이 발생할 수 있는 잠재성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결론 내린다. _ 강신주, <공자 & 맹자 : 유학의 변신은 무죄>, p75

 

 맹자가 도입한 '본성'이라는 개념은 유교 사상 체계 전반에 큰 변화를 가져온다. 공자의 '예'가 거울과 같은 본보기였다면, 맹자의 '예'는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예를 이미 가지고 있다면, 무게 중심은 예에서 인으로 자연스럽게 옮겨지게 된다. 이러한 공자와 맹자의 사상 차이에서  '돈오점수(頓悟漸修)',  '돈오돈수(頓悟頓修)'를 떠올리게 된다. 공자의 '예'에서 깨닫고도 계속해서 수행을 해야한다는 불교의 '돈오점수(頓悟漸修)'를 떠올리고, 맹자의 '예'에 단번에 깨닫고 더 이상 수행할 것이 없다는 '돈오돈수(頓悟頓修)'를 연상한다면 다소 무리한 연관일 수도 있겠지만.


 공자는 교육을 통해 주례(周禮)를 체계적으로 학습하고 자연스럽게 익힐 것을 권고했다. 모든 사람이 서(恕)의 정신을 발휘할 것을 기대한 것이다. 하지만 맹자에게 있어서 예는 결코 외부에 존재하는 학습 대상이 아니었으며 우리 마음의 본성에서 기원한 것이다. 즉 우리는 노력하지 않아도 선천적으로 '사양하는 마음[辭讓之心]'을 느낄 수 있는데, 이것은 예라는 덕목이 인간 본성에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맹자는 바로 이런 방식으로 유학의 이론을 내재화하고 규정하기 시작했다. _ 강신주, <공자 & 맹자 : 유학의 변신은 무죄>, p22


 공자에게서는 인보다는 예가 근본적이었던 것과는 달리 맹자는 예보다 인을 더 중요시한다. 이는 그의 정치 이상이 인한 정치[仁政]로 표현된다는 점에서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공자가 그토록 중요하게 여겼던 예를 맹자는 본성이 실현되어 나오는 네 가지 마음 중 세 번째 마음 정도로 보고 있다. 다시 말해 맹자에게 있어 예란 예의범절이라는 외적 형식을 학습해서 내면화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에 불현듯이 출현하는 사양지심과 관련된 것이다. _ 강신주, <공자 & 맹자 : 유학의 변신은 무죄>, p78


 이러한 맹자 사상과 공자 사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맹자의 사상이 본성이라는 혁신을 이루었지만, 지나친 낙관론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가한다. 예를 본성으로 내면화했지만, 이것으로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는 근거를 찾기 어려우며, 오히려 순자(荀子, BC 298 ? ~ BC 238 ?) 철학에서 체계적인 논리와 함께 예를 회복하고자 하는 공자의 정신을 찾을 수 있음도 지적한다.


 순자는 '본성[本性]의 영역'과 '인위[僞]의 영역'을 분명히 구별하는 것에서 자신의 논의를 시작한다. 본성의 영역이 선천적으로 주어진 조건이기 때문에 우리의 의지로는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라면, 인위의 영역은 우리의 의지와 실천에 의해 변경 가능한 영역을 말한다. 흥미로운 것은 맹자가 예를 사단이라는 형식을 통해 본성의 영역 안에 포함시킨 것과는 달리, 순자는 그것을 인위의 영역 안에 포함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순자는 성악설을 통해 예를 외재성이라는 본래 자리로 되돌려놓으려고 했던 것이다. _ 강신주, <공자 & 맹자 : 유학의 변신은 무죄>, p100


  또한, 외래 사상인 불교(佛敎)사상에 대항하는 유학의 또다른 모습인 성리학 사상을 소개하면서 본성의 문제가 어떻게 변화하게 되었는가도 이(理), 기(氣)의 개념과 함께 설명된다. 이처럼 <공자 & 맹자 : 유학의 변신은 무죄>에서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유연하게 변화해온 유학의 모습과 주요 사상가들의 이론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이로부터 독자들에게 유학이 고리타분한 학문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에 맞도록 끊임없이 변화해온 물과 같은 학문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는 좋은 입문서라 생각된다. 


 송대의 신유학이나 시유학을 체계화한 주희 철학이 후대에 성리학[性理學]이라고 불린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그들 모두 인간 내면의 잠재성으로서의 '성[性]'과 인간 외부에 있는 사태들의 법칙으로서의 '이치[理]'가 같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성즉리[性卽理], 즉 '우리의 본성과 외부 사태의 이치가 같다'는 명제는 주희 철학 체계의 핵심테마가 된다.(p111)... 주희의 발상 중 핵심은 인간에게만 본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물에게도 그들만의 본성이 있다는 주장에 있다._ 강신주, <공자 & 맹자 : 유학의 변신은 무죄>, p116 

 이와 함께 <장자 & 노자 : 道에 딴지 걸기>, <정약용 & 최한기 : 실학에 길을 묻다>, <이황 & 이이 : 조선의 정신을 세우다>는 지식인 마을에서 관련성이 높은 책이기에 더불어 읽는다면 체계적인 동양철학 줄기를 잡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만약, <논어>와 관련하여 깊이 읽고 싶다면, 정약용의 <논어고금주>와 이토 진사이의 <논어고의>를 읽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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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0-09-17 1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지금 한창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읽고 있는데, 오고쇼 씨도 천하를 삼킨
다음에는 무력으로 지배할 수 없다며
논어와 맹자 타령을 하는 걸 보면
역시나 주자학이 지배 계급의 질서를
옹호하는 이데올로기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20-09-17 11:54   좋아요 1 | URL
그렇습니다. 레삭매냐님 말씀처럼 종교 또는 사상이 국가와 결탁하게 되면 초기의 뜻보다는 체제 유지를 위한 이데올로기를 제공하고 국가의 보호를 받게 되는 현상을 예외없이 확인하게 됩니다... 그러한 변화가 사상이나 종교를 처음 일으켰던 선각자들의 뜻과 얼마나 일치하는지 끊임없이 반추하고 실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살 수 있다면 결코 슬프지 않습니다. 생각하면 우리가 생명을 저버리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한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한다는 것은 기쁨만이 아닙니다. 슬픔도 사랑의 일부입니다. 마치 우리의 삶이 그런 것처럼.(p418)... 사람의 길을 키우는 길이야말로 그 사회를 인간적인 사회로 만드는 일입니다. 사람은 다른 가치의 하위 개념이 아닙니다. 사람이 '끝'입니다. 절망과 역경을 '사람'을 키워 내는 것으로 극복하는 것, 이것이 석과불식 碩果不食의 교훈입니다.(p423) <담론> 中


 <담론 談論>에는 신영복 교수의 전작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의 많은 내용과 함께 사상의 지향점이 잘 나타난다. 20년에 걸친 고통스러운 수감생활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이겨낸 저자의 이야기가 강의 곳곳에 녹아 있다는 점에서 이 책과 <강의>는 잘 어울리는 세트임을 느끼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노자(老子) 철학의 성격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이 작은 소득이었다. 먼저 <강신주의 노자 혹은 장자>에 소개된 내용을 살펴보자. 강신주는 노자의 사상 안에서 제국주의 帝國主義 모습을 발견하고 자본주의 수탈구조를 합리화는 사상이라고 규정한다.


 노자 철학에 등장하는 많은 중요한 개념 중 하나가 바로 '천하(天下)'이다. '천하'는 글자 그대로 '하늘 아래'를 의미한다. 결국 이것은 전국(戰國)의 혼란과 무질서를 '하늘 아래'라는 생각으로 통일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하고 있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강력한 파시즘으로 무장한 국가의 무력으로는 전국(戰國)을 통일할 수 있지만, 결코 그것만으로 통일된 제국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던 것이다.(p284) <강신주의 노자 혹은 장자> 中


  노자의 해법은 피통치자가 '제국'안에 들어오면 사랑의 원리로, '제국' 바깥에 남으려고 한다면 폭력의 원리에 입각해서 통치해야 한다는 것을 역설한다... 흥미로운 것은 노자의 '제국' 논리가 역사상 존재했던 크고 작은 거의 모든 '제국들'에서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점은 '제국'이 결코 '국가'와 독립적인 층위에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노자 철학의 진정한 고유성을 그가 '제국'으로까지 이어질 '국가'의 작동원리를 발견했다는 것에서 찾아야 한다.(p285) <강신주의 노자 혹은 장자>


 강신주의 해석에 따르면, 노자의 '무위 無爲'도 '위 爲'를 위한 방편으로 전락할 것이며, 자연(自然) 역시 인간이 만들어낸 국가의 모습에 다름이니게 된다. 때문에, 상당히 혁신적인 생각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개인적으로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는데, 신영복의 <담론>과 <강의>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 명확하게 지적한다.


 노자에 따르면 국가란 하나의 교환 체계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국가는 수탈과 재분배라는 교환 논리에 따라 작동하는 기구다. 그러나 문제는 노자가 국가를 자명하게 주어진 전제라고 생각했다는 점이다.(p285) <강신주의 노자 혹은 장자>


 <노자 老子>는 민초의 정치학입니다. 민초들의 심지 心志를 약하게 하고 그 복골 腹骨을 강하게 해야 한다는 <노자> 3장의 예를 들어 <노자>가 제왕학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민 民을 생산노동에 적합한 존재로 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의 생산적 토대를 튼튼하게 하고, 기층 민중의 삶을 안정적 구조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는 뜼으로 읽는 것이 옳습니다. 그리고 61장을 예로 들어 정치란 먼저 주는 것이고, 나라를 취하는 국취 國取가 목적인 듯 반론하고 있지만 61장의 핵심은 평화론입니다. 대국자하류 大國者下流 천하지교 天下之交. 노자가 이야기하는 대국은 바다입니다(p136)... <노자>가 제왕학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잃는 결정적 부분이 바로 물의 철학입니다. 비단 물의 철학뿐만 아니라 <노자>의 핵심 사상인 무위가 바로 반전사상 反戰思想입니다.(p137) <담론> 中


 <노자> 텍스트로만 한정해 보자면, 선뜻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그래서, 시야를 좀더 넓혀 다른 고전인 <주역 周易>과 <맹자 孟子>의 내용까지 함께 높고 생각하게 된다. 하늘이 아래, 땅이 위쪽에 놓인 지천태(地天泰) 괘는 마치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데, 그것은 가지고 있는 곳에서 없는 곳으로 덜어주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지천태가 매우 좋은 괘인 이유는 덜어주는 모습이 자연(自然)스러운 길(道)이기 때문이 아닐까.


 지천태 地天泰 괘는 매우 좋은 괘로 읽힙니다. 그 이유가 바로 하괘와 상괘의 관계 때문입니다. 곤 坤 괘가 위에 있고 건 乾괘가 아래에 있습니다. 땅이 위에 있고 하늘이 아래에 있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좋은 괘로 읽힙니다. 땅의 기운은 내려오고, 하늘의 기운은 올라갑니다.(p67) <담론> 中

 

 如有不嗜殺人者, 則天下之民皆引領而望之矣. 誠如是也, 民歸之, 由水之就下, 沛然誰能禦之. 만일 사람 죽이기를 좋아하지 않는 이가 있으면 천하의 백성들이 모두 목을 길게 빼고서 바라볼 것입니다. 진실로 이와 같다면 백성들이 그 사람에게 따라가는 것이 마치 물이 아래로 흘러 내려가는 것과 같을 것이니 줄기차게 흘러가는 기세를 누가 능히 막을 수가 있겠습니까? <맹자정의 孟子正義  양혜왕상 梁惠王上 6장 六章>(p47)


 만약, <노자>를 읽은 군주가 크게 깨달음을 얻어 도(道)를 따라 간다면, 그 길의 결과로 많은 백성을 얻는 것은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만약, 군주가 인위적으로 그런 행동을 한다면, 일시적으로는 가능할 지라도 바다(大國에 이를 때까지 행할 수는 없을 것이다. 도를 행하다 보니, 바다로 나아갔을 뿐, 바다로 나아가기 위해 도를 행했다고 본다면 원인과 결과가 바뀐 해석이 아닐까. 이러한 이유로 <노자>에서 자본주의 수탈구조 대신 반전(反戰)사상을 찾아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생각된다. 여기에서 잠시 '수탈-재분배 구조'에 대해 생각해보자.


 수탈과 재분배라는 고유한 작동 원리가 유지되는 한, 그것이 전자본주의 경제체제든 혹은 자본주의 경제체제든 아니면 우리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경제체제든 간에, 국가가 그 어떤 생산양식 혹은 생산력이라도 자신의 교환 논리로 선택하고 편입시킨다고 보아야 한다.(p288) <강신주의 노자 혹은 장자>  


 국가에 대해 부정적인 <강신주의 노자 혹은 장자>의 논리는 국가를 약탈-재분배 구조로 파악한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 1941 ~ )의 사상에 기반한다. 국가에 대한 가라타니 고진의 부정적인 인식은 '국가' '자본'의 문제를 인류 공동의 문제로 규정하기에 이른다.

 

 칼 폴라니의 결점은 재분배가 약탈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국가가 약탈-재분배라는 '교환양식'에 존재한다는 것을 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p62) <세계공화국으로> 中


 인류는 지금 긴급히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과제인 전쟁, 환경파괴, 경제적 격차는 분리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여기에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집약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들은 국가와 자본의 문제로 귀착됩니다. 국가와 자본을 통제하지 않으면, 우리는 이대로 파국의 길을 걷고 말 것입니다. 이것들은 일국(一國) 단위로는 생각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글로벌한 비(非)국가조직이나 네트워크가 많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유효하게 기능하지 않는 것은 결국 제 국가의 방해와 만나기 때문입니다.(p225) <세계공화국으로> 中


 이에 반해, 피게티(Thomas Piketty, 1971 ~ )의 견해는 다르다. 축적된 부(富)가 가져오는 불평등한 소득 분배를 해결하기 위해, 피게티는 세계공화국 수준에서 이루어질 글로벌 자본세와 함께 사회적 국가의 역할을 강조한다. 국가를 자본의 편에 서있다고 규정한 고진과 국가를 자본 개혁의 주체로 바라본 피게티. 같은 진단, 다른 치료를 제시한 두 석학의 이야기에 우리는 고민하게 된다. 우리는 국가(國家)를 어떻게 규정해야할 것인가. 이 문제를 깊게 보려면 근대 국가 이전 선사시대까지 나가야할 수도 있기에 일단은 멈추도록 하자.


  우리가 주목한 것은 20세기에 창안되었지만 미래에도 틀림없이 핵심적인 역할을 계속 수행해야만 할 사회적 국가와 누진적 소득세라는 두 가지 기본 제도다... 여기서 이상적인 수단은 매우 높은 수준의 국제적 금융 투명성과 결부된 누진적인 글로벌 자본세가 될 것이다. 세금은 끝없는 불평등의 악순환을 피하고 세계적인 자본집중의 우려스러운 동학을 통제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p617) <21세기 자본> 中


 반 反시장주의와 반 反 국가주의 모두 부분적으로는 옳다. 그러나 마구잡이로 내달리고 있는 금융자본주의에 대해 통제권을 되찾을 수 있는 새로운 제도가 필요한 동시에 현대사회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조세 및 소득이전제도의 지속적인 개혁과 현대화가 이뤄져야 한다.(p564)... 의료와 교육에 대한 정부지출(국민소득의 10~15퍼센트)과 대체소득 및 이전지출(국민소득의 10~15퍼센트 또는 20퍼센트)을 전부 합하면 국가의 총 사회적 지출은 (대체로) 국민소득의 25~35퍼센트 정도로 추산된다. 다시 말해 지난 세기에 이뤄진 재정국가의 성장은 기본적으로 '사회적 국가'의 건설을 반영하는 것이다.(p570) <21세기 자본> 中


 다시 <노자>로 돌아와서, <노자>와 관련한 강신주의 해석에서 부족한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과거를 통해 현재의 문제를 발견한다는면에서 참신성은 있었지만, 춘추(春秋), 전국(戰國)시대가 자식을 서로 바꿔 잡아먹던 시대이며 늙은 부모를 산에 버리던 시대임을 생각해보자. 끔찍한 시대를 살았던 이들과 시대 안에서 풍요로운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 많은 자본을 축적하기 위한 수탈구조를 생각한다는 해석은 분명 무리하다 여겨진다. <노자>의 정치사상을 이렇게 정리해본다. 


  우리가 이 지점에서 합의해야 하는 것은 고전과 역사의 독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제 時制라는 사실입니다. 공자의 사상이 서주 西周 시대 지배 계층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오늘의 시점에서 규정하여 비민주적인 것으로 폄하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과거의 담론을 현대의 가치 의식으로 재단하는 것만큼 폭력적인 것도 없지요.(p141)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中


 <담론>과 <강의 : 나의 고전독법>에 대한 이야기는 앞에서 했으니, 책 내용 중 하나인 <주역>의 내용 중 인상깊었던 구절을 마지막으로 이번 페이퍼를 정리하자.


 '위 位'는 효 爻의 자리입니다. 효를 읽을 때에는 먼저 그 자기를 읽습니다. 그러나 <주역 周易> 독법에 있어서 양효는 어디에 있든 늘 양효로서 운동하는 것은 아닙니다. 양효가 양효의 '자리(位)'에 있어야 양효의 운동을 합니다. 효가 자기 자리에 있는 것을 득위 得位했다고 하고 그렇지 못한 경우를 실위 失位했다고 합니다. 양효, 음효라는 효 자체의 존재성보다는 효가 처해 있는 자리와의 관계를 중시합니다. 그래서 관계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p63) <담론> 中


  양효가 양효의 자리에 있어야 득위한다는 말은 길(吉)하다와 통할 것이고,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야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공부를 안 한 학생이 시험을 잘 칠 수 있을 것인가를 주역점을 쳐서 물었을 때 '길'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주역점의 결과는 점을 치는 상대 기준으로 길(吉) 흉(凶)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보편적 가치에 기준을 두고 결과를 말해준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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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7 09: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27 09: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종이달 2022-05-22 23: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겨울호랑이 2022-05-22 23:5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종이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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