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2 - 교환의 세계 -하
페르낭 브로델 지음, 주경철 옮김 / 까치 / 199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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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시장경제와 자본주의 사이의 구분이 여기에서 핵심적이라고 믿는다. 그것은 자본주의에 시장 그자체의 미덕과 "합리성"을 갖다붙이지 않는 것을 말한다. 사실 마르크스와 레닌도 명시적이든 암묵적이든 가끔 그런 식의 언급을 했다. 그래서 독점의 발달은 자본주의의 필연적인 발전이며 후기 자본주의의 결과물로 본 것이다. 마르크스가 보기에 자본주의 체제가 봉건제를 대체했을 때 그것은 진보를 낳는 "생산력과 사회관계의 발달에 더 유리하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것이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희생시키면서 사회적인 진보를 독점하는 제약이 마침내 존재하지 않게 될 발전단계를 배태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명화"를 가져오는 체제"였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2>, p828


 레닌은 여기에 첨가하여 이렇게 말한다. "사실 독점은 자신이 거기에서 유래한 자유경쟁을 완전히 없애버리는 것이 아니다. 독점은 자유경쟁의 위에서 그리고 옆에서 공존한다." 이 점에서 나는 완전히 그의 말에 동의한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2>, p829


 페르낭 브로델 (Fernand Braudel, 1902~1985)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2 Civilisation Materielle, Economie et Capitalisme 2-2>에서 시장경제에서 자본주의가 태어나게 되는 여러 조건에 대해 언급한다. 경쟁이 이루어지는 교환시장경제에서 독점적인 자본주의로 이행하기 위한 전제 조건은 '불평등'이다.


 유럽에서는 11세기에 경제가 깨어나면서부터 불평등이 더욱 현저해졌다. 레반트 무역에 다시 참여하기 시작한 이탈리아의 도시들에서는 대상인 계급이 확고히 자리를 잡아갔고, 이들은 곧 도시 지배귀족이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계서화는 다음 세기들 동안 경제가 번영할수록 더욱 굳어졌다. 금융업은 이러한 발전 중에서도 최상층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2>, p529


  상품의 거래가 활성화되면서 교환만을 전문으로 하는 상인(商人)계층이 등장했으며, 시간이 흐르면서 더 많은 거래를 담당하는 대상인이 출현했다. 문제는 일반 상인들과 대상인들 사이에 적용되는 '게임의 규칙'이 다르다는 점에 있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재력을 바탕으로 더 좋은 조건으로 자금을 빌릴 수 있었고, 여러 혜택을 무상으로 제공받을 수 있었다. 이러한 혜택은 그들에게 더 많은 부(富)를 가져다 주었으며, 더 많은 부를 통해 자신들의 사업영역을 넓혀나갈 수 있었다.


  자본주의적인 성공이 돈에 달려 있다는 말은 이때의 돈을 모든 사업에 필수적인 자본의 뜻으로만 보면 그야말로 하나마나한 소리이다. 그러나 이때의 돈이란 투자 자본 이외에도 많은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보증과 특권, 공모와 보호 등의 여러 가지 것들을 가져다주는 사회적 고려를 의미한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2>, p541


 그런데 이상한 일은 대상인들은 이 법칙을 따르지 않아서, 한 업종에 전문화하는 일이 대단히 드물다는 점이다. 심지어 상점주도 큰 돈을 벌어 대상인이 되면 곧 전문화를 포기하고 비전문화의 길을 간다(p534)... 대상인이 된다는 것, 혹은 대상인이라는 것은 모든 상품이라고는 못 해도 적어도 많은 상품을 취급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그럴 권리를 가진다는 것이 아니라 의무를 진다는 것을 말한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2>, p535


  자본에 적용되는 규모의 경제(economies of scale)와 비전문화를 통한 위험 회피는 사업 포트폴리오(portfolio)구성을 가능케 했으며, 이러한 사업의 다각화는 시대에 따라 빠르게 변화하는 유행품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게 하며 점차 시장에서의 독점(獨占)적 지위를 차지하는 자본들의 등장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결국 교환시장에서의  활용할 수 있는 신용거래의 차이가 극복할 수 없는 틈을 만들어내는데, 이를 위해서는 시장경제가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붙는다.


  모든 상인들의 장부에는 상품 계정 외에 채권계정과 채무계정이 함께 있다. 채권과 채무 양자 사이에 균형을 지키는 것이 현명한 일이지만, 이 형태의 크레딧을 포기하지 않는 것도 현명한 일이다. 그 결과 이 크레딧은 교환 총량의 4~5배가 된다. 모든 상업체제가 여기에 의존한다. 이 크레딧이 멈추면 상업에 힘을 주는 모터가 마모되다가 결국에는 서버리게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상업체제에 의해서 만들어졌고 그 속에 내재해 있는 크레딧이라는 점이다 - 이것은 내부 크레딧이며 이자가 붙지 않는다. 이런 현상이 유별나게 활발한 곳이 영국이었으며 그것이 영국이 번영을 누리는 비밀이었다. 대상인은 이 내적인 편익을 통해서 이익을 보고 또 고객들에게도 이익을 준다. 그렇지만 대상인은 그 외에도 대부업자나 자금주라는 외부의 크레딧도 정규적으로 이용한다. 이것은 다름 아닌 현찰을 빌리는 것이며 여기에는 이자를 지불해야 한다. 이것이 핵심적인 차이다. 이 돈을 사용하는 상업거래는 결국 이자율보다 훨씬 높은 이윤율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2>, p542


 이러한 시장경제의 불평등은 금융거래를 통해 대자본형성을 가능케하며, 퇴장(退藏)된 자본은 보다 높은 이윤율을 보장하는 곳을 물색하게 된다. 이러한 자본의 욕구와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것이 바로 근대국가(國家)다. 근대국가는 중세의 봉건제와 교회조직과 같은 계서제(階序制)의 연장선상에 있는 조직으로 중앙집권화된 군주제의 형태로 등장하게 된다. 중세 귀족정에 대항하는 군주와 새롭게 등장한 부르주아(bourgeois)의 결합은 바로 자본을 통해 이루어졌고 실현되었다.


 국가가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그리고 국가의 권위가 커지고 다양해지면서 그 필요성은 더욱 커졌다. 이제는 지난날처럼 국왕 직할 재산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었다. 따라서 유동적인 부에 손을 대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일정한 종류의 자본주의와 일정한 정도의 국가의 근대성이 동시에 시장경제의 틀 안에서 구성되었다. 이 두 가지 운동 사이에는 단순한 일치 이상의 것이 있다. 핵심적인 유사성은 이 두 가지 경우 모두 계서제의 형성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유사성으로는 국가도 자본주의와 마찬가지로 부유해지기 위해서 독점을 이용한다는 점이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2>, p741


 회사(會社)의 형태로 응집된 자본은 초기 원거리 무역을 주도하였으며, 원거리 무역을 통해 자신의 규모를 키워가면서 파트너인 군주에게는 영주들을 제압할 수 있는 무력과 재력을, 자본가들에게는 막대한 이윤을 독점적으로 제공하게 된다. 이는 특히 영국과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에서 효과적으로 기능했다.


 어느 한 회사의 독점은 세 가지의 것이 맞아 떨어져야 가능했다. 국가가 그 첫번째이다. 국가는 비교적 효율적이고 결코 뒤에서 그냥 물러서 있지 않는 존재이다. 다음으로 상업세계 - 즉 자본, 은행, 크레딧, 고객 등 - 가 있는데 이것은 독점에 적대적이거나 거기에 공모하거나 둘 중 하나이지만 혹은 동시에 그 두 가지를 겸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들 수 있는 것은 원거리 무역의 대상이 되는 지리적인 권역인데 이것만으로도 많은 것들이 결정된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2>, p631


 원거리 무역이 의심할 바 없는 우위를 가지게 되는 까닭은 이것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원거리 무역은 집중을 가져오고, 반대로 집중은 원거리 무역으로 하여금 자본을 재생산하고 나아가서 빠르게 증대하도록 하는 더할 나위 없는 도구가 된다. 그러므로 독일 역사가들과 모리스 도브가 이야기했듯이, 원거리 무역이야말로 상업자본주의를 창출하고 나아가서 상업 부르주아지를 창출한 핵심적인 도구였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2>, p574


 브로델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2>에서는 성숙한 시장경제에서 출현한 독점자본이 정치세력과 결탁하여 위험이 높은 뭔거리 사업을 독점하고, 시장지배력을 가지고 점차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이러한 시장경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의 모습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2>의 내용과 비추어보면, 재벌로 대표되는 우리나라 대기업들의 모습은 결코 후진적인 자본주의 기업의 모습은 아니다. 다각화된 사업구조와 정치권과의 결탁 등의 모습은 오히려 궁극적인 대자본의 전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자본주의는 결코 후진적이지 않다. 오히려, 앞선 궁극의 자본주의 대기업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문제는 시장경제 부분에서 발견된다. 과연 충분히 시장경제가 활성화된 이후 자본주의로의 이행이 가능했는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된다.


 교환이 중심이 된 시장경제에서 자본주의가 태어났다면, 우리 주변에서 다양한 형태의 시장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여러 형태의 유통경로가 저마다의 장단점을 가지고 교환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때, 성숙한 시장경제를 말할 수 있겠지만 국가전매 시스템과 대기업에 의해 지배된 유통 구조 등은 우리나라 자본주의가 시장경제에서 자생적으로 발전한 것이 아닌 국가주도로 1층 물질문명의 소비요구에 직점 대응하는 형태임을 발견하게 된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 근대기업의 성장이 일제 시대를 통해 이루어지면서 충분한 시장경제의 성숙이 이루어지기 전 국가에 의해 주도되면서 경쟁이 이루어지는 시장경제 대신 국가 독점적인 자본주의 체제가 먼저 확립되었다는 점이 오늘날 한국 경제의 문제점이 아닐까. 이러한 문제점을 가지고 이제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 마지막 단계인 자본주의 층으로 올라가보도록 하자...


 자본주의의 과정은, 전체적으로 보아서, 오직 일정한 경제적, 사회적 조건들이 갖추어져야만 발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조건들은 자본주의의 과정을 준비해준 것이거나 적어도 용이하게 만들어준 것들로서,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 1) 첫번째로 들 수 있는 명백한 조건은 활력이 넘치고 진보하는 시장경제이다. 여기에 지리적, 인구적, 농업적, 산업적, 상업적인 여러 요소들이 더해진다. 이러한 기반에 깔려 있는 시장경제는 자본주의의 발전과정에 대해서 필요조건이기는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2) 또한 사회가 여기에 공모해야 한다. 사회는 자신이 어떤 과정에 참여하고 있는지, 또 어떤 과정에 대해서 자유로운 길을 열어주고 있는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수세기 전부터 그런 것을 옹호해주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발전에 필수불가결한 요인이 되는 가문의 영속성과 연속적인 축적이 확보될 수 있을 만큼 계서화된 사회는 자본주의의 전(前)단계를 밟아가는 것이다. 3) 마지막으로 이야기할 점은 세계시장이라는 특별한 해방 세력이 없었다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원거리 무역이 모든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고도의 이익을 누리는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가는 데 반드시 거쳐야 할 단계이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2>, p862



상업사회는 그것을 둘러싼 사회 속의 사회이다. 그런 만큼 상업사회를 그 전체 속에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것을 시야에서 놓치면 안 된다.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직후 스페인은 절호의 기회를 가지게 되었지만 세계시민적인 자본주의가 스페인에 달려들어 그 기회를 빼앗아갔다. 이때의 경제활동들은 피라미드 식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 하층에는 농민, 목동, 양잠업자, 장인 겸 행상인, 소액 고리대금업자 등이 자리잡고 있으며, 그 위에는 카스티야의 자본가들이 이들을 장악하고 있고, 다시 그 위에는 푸거 가의 대리인들 그리고 다음에는 새로 권력을 휘두르게 될 제노바 상인들이 이 모든 것을 지휘하고 있었다. - P534

자본주의는 자기가 선호하는 방향을 따라서 개입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콩종크튀르를 주시한다 - 이것은 자본주의가 활동 영역을 선택하는 방법을 알고 있고 선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자본주의의 우월성을 규정해주는 것은 어떤 선택을 했는가 하는 것보다는 - 그 선택은 콩종크튀르에 따라, 세기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 - 전략을 창출할 수 있는 수단과 그 전략을 변화시킬 수 있는 수단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 P565

우리는 산업 이윤, 농업 이윤 그리고 상업 이윤 사이에 어느 것이 우세하다는 결정적인 분류를 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보았다. 크게 보면 상업, 산업, 농업의 순으로 이윤이 높다는 통상적인 견해가 대체로 사실과 일치하는 것 같지만 여기에는 많은 예외들이 있기 때문에 한 영역에서 다른 영역으로 사업활동이 옮겨가는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 점이 자본주의의 전체사에서 핵심적인 성질이라는 것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 시련이 있을 때마다 드러내는 유연성, 변환과 적응의 능력이 그것이다... 자본주의의 핵심적인 특징은 심대한 위기가 닥쳤을 때나 혹은 이윤율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때에 한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한 영역에서 다른 영역으로 거의 순간적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능력인 것이다. - P612

국가는 많은 요소들이 합류된 중요한 실체이다. 유럽 이외의 지역은 수세기 동안 국가가 견딜 수 없는 무게로 짓누르고 있었다. 유럽에서는 15세기부터 국가가 확고하게 다시 성장해나갔다. 근대성의 창시자들이 만든 근대 국가는 근대적 군대, 르네상스, 자본주의, 과학적인 합리성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것이었다(p734)... 근대 국가는 지방의 주, 자유도시, 장원, 초소형(超小形) 국가와 같은 예전의 구성체들과 조직들을 변형시키고 깨뜨려 나갔다. 새로운 군가는 그들의 사람들의 골수를 빼먹으면서 그리고 또 한편으로 경제발전에 힘입어서 발전해갔다. - P735

장기공채는 저절로 영구채로 전환되었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국가가 공채를 상환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제 국가는 유동공채를 확정공채로 전환함으로써 크레딧이나 현찰로 된 재원을 소진시키지 않아도 되었다. 대출인들로서는 자신의 채권을 제삼자에게 매각할 수 있으며 따라서 매번 그가 원할 때면 언제든지 국가에 빌려준 돈을 상환받을 수 있게 되었다. 국가는 지불하지 않는데 채권자들은 원하는 대로 빌려준 돈을 되찾을 수 있는 것, 이것은 정말로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p753)... 공채 정책을 성공시킨 것은 대상인, 금 세공업자, 은행업 가문들과 같이 채권 발행 업무에 전문화한 사람들, 한마디로 말해서 이 나라의 결정적이고 독점적인 핵심인 런던의 "비즈니스 계"였다. - P754

시장의 합리성이란 통제하는 교환이 아니라 자발적인 교환의 합리성이다. 그것은 "자연의 본성", 개인의 계산을 초월하는 집단적인 수요와 공급의 만남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선험적으로 그것은 기업가 개인의 합리성과는 무관한 것이다. 그 자신은 단지 상황에 따라서 그의 활동의 최상의 길, 즉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할 뿐이다. 끊임없이 수단을 목적에 맞추고 가능성을 지적(知的)으로 계산하는 의미의 합리성 없이 자본주의는 있을 수 없다는 말은 인정할 수 있다. 합리적이라는 것은 문화마다 다양할 뿐 아니라 콩종크튀르마다, 사회집단마다, 또 그들의 수단과 목적마다 다양한 것이다. 하나의 경제내에서도 여러 개의 합리성이 존재한다. 자유경쟁의 합리성이라는 것은 단지 그중의 하나일 뿐이다. 독점, 투기, 힘의 합리성 역시 또 다른 합리성인 것이다. - P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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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장경제와 자본주의 사이의 구분이 여기에서 핵심적이라고 믿는다. 그것은 자본주의에 시장 그자체의 미덕과 "합리성"을 갖다붙이지 않는 것을 말한다. 사실 마르크스와 레닌도 명시적이든 암묵적이든 가끔 그런 식의 언급을 했다. 그래서 독점의 발달은 자본주의의 필연적인 발전이며 후기 자본주의의 결과물로 본 것이다. 마르크스가 보기에 자본주의 체제가 봉건제를 대체했을 때 그것은 진보를 낳는 "생산력과사회관계의 발달에 더 유리하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것이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희생시키면서 사회적인 진보를 독점하는 제약이 마침내 존재하지 않게 될 발전단계를 배태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명화"를 가져오는  체제였다.  - P828

레닌은 그의 유명한 글(1916)에서 "자본주의의 일부 핵심적인 성격들이 정반대로 전환하는, 아주 발전된 특정 단계에 가서의 일이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 과정에 핵심적인 것인 자본주의적인 독점이 자유경쟁을 대체한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내가 레닌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레닌은 여기에 첨가하여 이렇게 말한다. "사실 독점은 자신이 거기에서 유래한 자유경쟁을 완전히 없애버리는 것이 아니다. 독점은 자유경쟁의 위에서 그리고 옆에서 공존한다." 이 점에서 나는 완전히 그의 말에 동의한다.  - P829

유럽은 적어도 이중의 상층사회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것은 역사의 변절에도 불구하고 발전을 거듭했다. 그 과정에서 극복할 수 없는 정도의 어려움에 봉착하지 않았던 것은 이들 앞에 전체주의적인 독재나 자의적인 지배자의 독재와 같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유럽은 끈기 있는 부의 축적에 유리해졌으며, 또 다양화된사회 속에서 다중적인 세력과 위계들이 발전하고 이것들 사이에 다양한 방향으로 경쟁이 이루어지는 것이 용이해졌다. 출생의 특권에만 근거한 사회신분에 비해서 이것은 다당함, 분별, 노력의 결실, 정당함 등으로 인식되었다.  - P8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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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두번째 권인 교환의 세계(Les Jeux de l‘Echange)를 끝내면서 내가 생각한 것은 자본주의의 과정은, 전체적으로 보아서, 오직 일정한 경제적, 사회적 조건들이 갖추어져야만 발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조건들은 자본주의의 과정을 준비해준 것이거나 적어도 용이하게 만들어준 것들이었다. - P861

 우리가 알고 있는 여러 예들에서 보았듯이, 자본주의의 발전에 필수불가결한 요인이 되는 가문의  영속성과  연속적인 축적이 확보될 수있을 만큼 계서화된 사회는 자본주의의 전(前)단계를 밟아가는 것이다. 유산이 상속되고 가산이 불어나며 가문 사이에 유리한 연결이 맺어진다는 것, 동시에 사회가 여러 집단으로 분화하고 그중 어떤 집단이 지배적이거나 잠재적으로 지배적이며 또 계단식이든 사다리식이든 사회적 상승이 — 쉽지는 않더라도 — 어쨌든 가능하다는 것 등, 이 모든 것은긴, 아주 긴 사전 준비를 의미한다. 사실 여기에는 정치적이고 소위 "역사적인" 그리고 특히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것들이 개입했음에 틀림없다. 그리하여 수세기에 걸친 사회 전체의 움직임이 작용하는 것이다.  - P862

마지막으로 이야기할 점은 세계시장이라는 특별한 해방세력이 없었다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원거리 무역이 모든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고도의 이익을 누리는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가는 데 반드시 거쳐야 할 단계이다. 우리는 이 책의 마지막권인 제III권에서 세계 - 경제(économie-monde)의 역할을 다시 볼 것이다. 이것은 그 자체로서 특별한 하나의 소우주를 이루는, 지구상의 자립적인 각 지역으로 구성된 닫힌 공간이다. 세계 - 경제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세계 - 경제의 변경이 변화하며, 유럽이 세계 정복을  시도하는 것과 동시에 세계 경제는 커진다. 세계경제와 함께 우리는 또 다른 수준의 경쟁, 또 다른 차원의 지배를 보게된다. 우리는 유럽과 세계의 시간상의 역사를 통해서, 그리고 다름 아닌자본주의 전체의 연대기라고 할 수 있는 세계체제의 연쇄를 통해서 수없이 반복한 바 있는 법칙을 추적해갈 수 있다.  - P8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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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과 세계사 1 - 대륙별 구석기 문화 케임브리지 세계사 3
마리아 팔라 외 지음, 그레이엄 바커 외 엮음, 류충기 옮김 / 소와당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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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질학적으로 보자면 대략 1만 1500년 전을 분기점으로 기후가 바뀌었다. 그 이전이 플라이스토세(홍적세 洪積世, 빙하기라 부르며 기온과 강우량의 변화 폭이 매우 컸던 시대)이며, 그 이후가 오늘날을 포함하는 홀로세(현세 現世)다. 그 이전까지 인류는 수렵, 어로, 채집(이른바 "포레이징") 등의 방식을 적절히 섞어가며 식량을 확보했다. 그러나 수천 년이 지난 뒤 인류의 대부분은 거의 전적으로 농업에 의존하게 되었다. 농업의 시작은 분명 세계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 농업은 자연 경관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았을 뿐 아니라 도시화와 복합적 사회 구조 및 불평등을 초래했고, 이후의 역사를 완전히 압도했다. _ 그레이엄 바커/캔디스 가우처, <농업과 세계사 1> , p31


 그레이엄 바커(Graeme Barker, 1946 ~ )와 캔디스 가우처(Candice Goucher, 1953~ )의 <케임브리지 세계사 3 Cambridge World History Vol. 2 Ch.1-7 : 농업과 세계사 1 : 대륙별 >의 주제는 농경문화(農耕文化 Agrarian culture)다. 빙하기 이후 새롭게 등장한 농업(農業)은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이전 시대까지 자연의 일부였던 인간은 이제 자연을 자신을 둘러싼 배후지로 인식하고, 이러한 인식은 도시를 중심으로 한 고대 농업도시로 이어지는 내용이 본문에 소개된다.


 농업의 발전은 철저히 인간 중심적인 여정이었다. 그 과정은 매우 혼란스러웠고, 결과가 상충되는 경우가 많았다. 홀로세에 와서는 인간과 자연환경의 관계가 플라이스토세의 균형에서 벗어나, 지구상 다른 모든 존재의 희생을 딛고 오직 인간의 생존과 인구 확정에 유리한 방식으로 바뀌었다. 농업이 등장한 이후 발전을 거듭한 결과, 세계의 역사는 곧 인간의 역사가 되고 말았다. _ 그레이엄 바커/캔디스 가우처, <농업과 세계사 1> , p42


 그렇다면, 이와 같은 극적인 변화가 시작된 이유는 무엇일까. <농업과 세계사 1>에서는 빙하기의 어려움을 겪은 여러 집단에서 식량의 보존과 저장을 위한 전략이 고민되었음을 알려준다. 다만, 이러한 전략이 구체적으로 실행되기 위해서는 온화한 기후가 전제되어야 했고, 이러한 기후가 만들어낸 퇴적층에서 인류는 생존전략을 실행할 수 있었다.


 의도적 식량 생산을 향한 초보적 시도는 최후빙하기가 끝난 뒤에 바로 시작되었다. 새로운 식량 확보 전략은 어느 한 지역에서만 실행된 것이 아니었다. 기원전 1만 1000년에서 기원전 5000년 사이 세계의 여러 곳에서 독립적으로 새로운 전략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_ 그레이엄 바커/캔디스 가우처, <농업과 세계사 1> , p125


 수렵채집인이 아주 가까운 주변에 널린 식량 자원을 전면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된 핵심적 계기는 바로 간석기 이용 기술이었다. 그들이 사냥한 동물들은 다양했지만,대형 동물이라 하면 주로 가젤이었다(p246)... 최근 식물고고학에서 그들이 섭취한 주요 식물들을 연구한 성과가 있는데,  그 결과에 따르면 이행의 핵심적 시기는 더 나중이었다. 즉 홀로세 초기 온화한 기후가 회복되고 나서야 재배로의 이행이 이루어졌다.  _ 그레이엄 바커/캔디스 가우처, <농업과 세계사 1> , p247


 변화의 동력을 단순히 생태 환경의 변화만으로 한정하기는 어렵다. 사회적 변화의 측면을 고려할 때, 의사 결정 전략, 위험 관리, 자원의 공동 이용, 기술 혁신 등이 모두 식량 생산으로 가는 길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다만 일반적으로는 농업 이행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요인을 기후 변화로 인식하고 있었다. 농업인이 새로운 생태 환경으로 확산될 수 있었던 비결은 충적선상지와 범람원을 성공적으로 관리했기 때문이다. _ 그레이엄 바커/캔디스 가우처, <농업과 세계사 1> , p65


 이러한 농경문화가 식량의 안전성을 확보시켜주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농경문화가 인류에게 축복이었는가 하는 문제는 또다른 별개의 문제임을 <농경과 세계사 1>은 보여준다. 오랜 진화의 결과인 신체에게 갑작스러운 음식의 변화는 충격으로 다가왔고, 그 결과 개인의 건강은 악화되었으며, 공동체 면에서도 대단위 노동력의 사용과 이로 인한 경제적 불평등 문제가 발생하면서, 인류는 헤시오도스(Hesiodos, BCE 740 ? ~ BCE 670 ? )가 노래했던 황금(黃金)시대에서 은(銀)의 시대로 강제로 넘어가야 했다. <성경>에서 카인이 농경문화를 아벨이 목축문화를 상징하고 그들의 부모가 낙원에서 쫓겨나는 것은 또다른 형태의 강제 이주일지도 모르겠다.


  농업 이행기에도 식생활과 생활 양식 전반에 걸쳐 수렵채집인 선조들과 다른 변화가 있었다.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고생물학 연구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건강이 나빠지는 경향이 확인되었다. 특히 경제적 이행기에, 그리고 사회가 더욱 복잡해질수록 그러한 악화 현상이 두드러졌다. 예컨대 농업의 시작과 함께 새로운 질병이 나타났고, 출산율과 인구 밀도가 높아지고 인구수가 증가했음이 확인되었다. _ 그레이엄 바커/캔디스 가우처, <농업과 세계사 1> , p190


 수렵채집에서 농업으로 넘어가는 경제적 이행 과정에서 농업이 도입된 이후 일관되게 나타난 경향은 삶의 질 저하였다(p206)... 곡물을 재배하고 동물을 사육하는데 왜 건강이 악화되었을까? 여기서 근본적인 문제는, 수렵채집인의 생활 양식이 오히려 인간의 신체 진화에 걸맞음에도 불구하고 농업이 시작되면서 "구석기 방식의 식생활"을 포기했다는 사실이다. 농업 도입 이후 결과적으로 인간의 진화와 식생활이 일치하지 않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는 오늘날의 우리에게까지 남아 있는 문제다. _ 그레이엄 바커/캔디스 가우처, <농업과 세계사 1> , p207


 농업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핵가족이 특징적 주거 단위로 대두되었다. 이들은 서로가 별개의 집에 살면서 창고를 각자의 집에 두었다. 이는 곧 농업의 이점을 누리는 동시에 위험성을 감수할 주체가 집단 차원에서 핵가족 차원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플래너리에 의하면, 초기 농업 공동체에서 공유가 갈수록 제한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농업은 토지 생산성을 높여주었지만, 동시에 평균 생산량의 차등이 발생했다. 둘째, 공유를 제한함으로써 균형 잡힌 상호 교환을 확인하기가 더 쉬워졌고 "속임수"를 방지할 수 있었다. 셋째, 공유의 축소, 토지 보유의 제한, 가정 단위의 사적인 저장으로 경제적 판단이 더욱 유연해졌다. _ 그레이엄 바커/캔디스 가우처, <농업과 세계사 1> , p238


 이와 함께 <농업과 세계사 1>에서는 동물의 가축화가 언급된다. 제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 1937 ~ )가 <총, 균, 쇠 Guns, Germs, and Steel>에서 밝혔듯, 구세계와 신세계의 결정적 차이를 가져온 가축화의 문제 역시 이 시기에 발생한 것을 보면 오늘날 현대 사회의 많은 문제들의 기원이 BCE 12,000 ~ CE 500의 시기에서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농업이 인류에 미친 영향력과 함께 문제 해결의 어려움을 함께 깨닫게 된다.  뒤이은 <농업과 세계사 2>에서는 여러 지역에서 수렵문화에서 농경문화로의 이행하는 여러 형태의 모습이 소개된다...


 서아시아와 동아시아 농업의 기원에는 곡물 재배뿐만 아니라 동물의 가축화도 포함된다. 이와 달리 메소아메리카의 농업이 시작될 때는 주요 곡물(옥수수)이 있었지만 개 말고 달리 길들인 동물은 없었다. _ 그레이엄 바커/캔디스 가우처, <농업과 세계사 1> , p240


 농업의 기원과 식물 재배 및 동물 사육 문제를 한꺼번에 놓고 보면 놀라운 측면이 드러난다. 즉 동물 사육(목축)보다는 대체로 식물(곡물)재배가 먼저였다는 사실이다.초기 농업의 대표적 중심지 세곡(중동 : 밀, 보리 ; 극동 : 쌀, 기장 ; 메소아메리카 : 옥수수, 콩, 호박)을 보더라도 모두 동물 사육이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식물 재배가 이루어졌다... 유라시아 전역에서 채택한 생활 경제의 핵심은 복합 영농이었다. 적어도 인구 밀도가 높은 곳이라면 거의 예외가 없었다. _ 그레이엄 바커/캔디스 가우처, <농업과 세계사 1> , p300


 목축(pastoralism)이란 초식 동물 무리에 의존하여 생활하는 것으로 자연히 유목민의 삶을 포함한다고 했다. 유목민의 삶이란 특히 토지 소유 및 거주 환경과 관련하여 목축미의 사회적 특성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핵심적 문제다. 이 주제는 특히 토지 사용과 관련하여 이동식 목축민과 정주적 농민 사이에 분쟁의 소지가 있을 때 더욱 중요한 관심의 대상이 된다. _ 그레이엄 바커/캔디스 가우처, <농업과 세계사 1> , p319

mtDNA 연구에서 주장하는 결론은 정복자 모델이다. 신석기 시대에 근동 지역에서 유럽 지역으로 상당한 규모의 이주가 있었고, 그들이 차례차례 등 짚고 넘기(leapfrogging) 식으로 유럽 전역에 확산되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들은 결국 원주민 포레이저 집단에 동화되어 오늘날 같은 유전자 분포가 형성되었다고 본다. 이는 고고학의 연구 결과와도 일치하는 주장이다. - P88

개별 언어들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은 곧 그들이 공통의 조상, 즉 과거 어느 시점에 사용되었던 하나의 조어(祖語, protplanguage)로부터 갈라져 내려온 후손이라는 의미이다. 후손 언어는 분열된 세포와 같다. 단세포 생물이 세포 분열을 하듯이, 조어는 여러 개의 파생 언어(daughter language)로 갈라진다(p126)... 언어의 계통수가 인간의 역사를 추적하는 밑바탕을 제공할 수 있는 이유는, 무릇 언어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 사회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 공동체가 민족적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사회에 흡수된다면 그들의 언어도 곧 소멸하고 만다. 반대로 어떤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는 공동체가 내분으로 갈라지더라도, 혹은 일부 집단이 갈라져 나와서 멀리 다른 곳으로 이주를 하더라도 각각의 집단은 기존 언어를 계속 사용할 것이다. 그러나 어휘나 문법은 지역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며, 언어 분화의 과정이 비로소 시작된다. - P127

기존 연구에 따르면, 정주민의 경우 출산율이 높게 유지되었다. 여기에 농업까지 도입되면 출산율은 더욱 높아지는데, 농업 이행기 초기부터 출산율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출산율이 증가한 이유 중 하나는 수렵채집인과 달리 아이를 데리고 이동해야 하는 부담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식량 공급량이 늘어나면서 이유식이 준비되어 있었고, 보다 안전한 식량 공급이 가능하기도 했다. 또한 농업을 받으들인 사람들의 사망 당시 연령 평균이 수렵채집인보다 더 낮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사실 농업 공동체의 식생활이 이전의 수렵채집인보다 더 나빠졌기 때문에 농업인에게서 성장 문제가 나타나는 것은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기도 하다. - P227

목축의 입장에서 사료나 목초지는 무척이나 중요한 문제다. 이 문제는 목축을 하는 사람들과 그 문화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가장 주목할 만한 특성은 그들의 영역 및 이동성이다. 대부분의 목축 사회가 사막, 반건조 초원 지대, 고원 지대, 툰드라, 고위도 삼림 지대 등에 분포하고 있다. 이들 지역의 대부분은 대규모 곡물 농사를 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곳들이다. 곡물 농업 혹은 복합 영농이 가능한 지역이라면 생계 전략으로 목축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 P303

지속 가능한 생산의 차원에서 본질적인 문제는 문화적 관습과 목표가 근본적으로 농업의 방식을 결정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다른 시공간에서는 전혀 다른 농업이 실행된다(p365)... 도시 환경에서 노동의 조직화는, 기존의 상식에 따르면 위계질서에 입각한 통치 계급의 직접 관리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고도로 중앙 집권화된 정치, 경제 조직은, 고고학이나 역사학적으로 시대에 따라 가끔 그러한 사례가 없지는 않지만, 고대 정치 체제에서 흔한 경우는 아니었다. 도시의 특징은 경제 시스템의 여러 측면을 좌우하는 것일 뿐, 정치적 측면이 고도로 집중화되었는지 여부는 별로 상관이 없다. - P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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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 - 교환의 세계 -상
페르낭 브로델 지음, 주경철 옮김 / 까치 / 199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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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모델과 관찰을 병행하는 작업을 해나가면서 내가 늘 확인하게 된 것은 정상적인, 나아가서 일상적인 교환경제[18세기에서라면 자연[natruelle]경제라고 불렀을 것이다)와 상위의 정교한 경제(18세기에서라면 인공[artificielle]경제라고 불렀을 것이다) 사이의 끈질긴 대립이다. 나는 이와 같은 구분이 명백하고 구체적인 것이라고 확신하며, 그리하여 서로 다른 층위마다 경제 주체(agent), 사람, 그들의 활동과 심성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확신한다. 고전경제학에서 묘사하는 것과 같은 시장법칙들은 일정 수준에서는 분명하게 찾아볼 수 있지만 그보다 더 상층의 영역에서는 자유 경쟁이라는 모습으로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이 상층의 영역은 차라리 계산과 투기의 영역이다. 여기에서는 그림자의 영역, 역광(逆光)의 영역이 시작되며, 이곳에 관한 비전(秘傳)을 물려받은 자들의 활동무대가 시작된다. 이곳은 자본주의라는 말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의 뿌리가 되는 영역인 것이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 p12


 페르낭 브로델 (Fernand Braudel, 1902~1985)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 Civilisation Materielle, Economie et Capitalisme 2-1>에서 도시와 시장 그리고 화폐가 만들어낸 교환 경제로부터 최상층인  자본주의로 가는 통로를 발견한다. 이전에서 최하위 단계인 물질문명에서 '소비'를 발견한 브로델이 '생산'이 아닌 '교환(Exchange)'의 영역을 시장경제에서 발견한 근거는 무엇일까. 


 아주 초보적인 경제적인 경제라는 의미의 "물질생활(vie materielle)"과 경제생활 사이의 접촉면은 연속된 것이기보다는 시장, 가게, 상점 등의 수많은 작은 점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점들은 동시에 단절점이기도 하다 : 한쪽에는 교환, 화폐 그리고 우월한 수단이 되는 집산지 - 교역 중심지, 교환소, 정기시 등 - 를 가진 경제생활이 자리잡고 있고, 다른 쪽에는 완강히 자급자족에 매달려 있는 "물질생활"이라는 비(非)경제가 자리잡고 있다. 경제는 교환가치의 영역에 들어서면서부터 시작된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 p11


 경제는 얼핏보면 생산과 소비라는 두 개의 거대한 영역으로 성립되어 있는 것 같다 : 소비 영역에서는 모든 것이 완수되고 파괴되며, 생산 영역에서는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된다. "사회는 끊임없이 생산하고 동시에 끊임없이 소비한다"라고 마르크스는 썼다. 정말로 지당한 진리이다. 그러나 이 두 세계 사이에 세번째의 세계가 끼어들어간다. 그것은 바로 교환의 세계이며 달리 말하자면 시장경제이다... 시장경제는 늘 균형을 고집하고 어쩌다가 그 균형에서 벗어나더라도 곧 제자리로 되돌아가는 하나의 총체를 이루고 있으면서 동시에 변화와 혁신의 영역이다. 마르크스는 이를 유통권(sphere de circulation)이라 지칭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 : 교환의 세계 1>, p17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에서 브로델은 '생산'이 결코 주도적인 위치에 있지 않음을 강조한다. 이는 고정자본(Fixed Capital)이 과학기술의 도움으로 안정적으로 수익을 창출하기 전까지는 '밑빠진 독에 물붓기' 식으로 생산부분에 끊임없는 비용이 투입되어야 했으며, 결코 비용을 넘어서는 수익을 창출할 수 없었다. 그 결과 당연하게도 15~18세기 경제활동의 중심은 생산이 아닌 교환이 된다. 생산부문은 언제나 유통부문의 통제 아래에 놓여 있었다.


 확실한 것은 생산 영역에서 전(前)산업적인 자본주의의 결산은 부정적이라는 것이다. 몇 가지 예외들이 있지만 자본가들 - 다양한 활동을 무차별적으로 하던 "대상인들" - 은 생산에 전적으로 참여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결코 대지에 두 발을 굳건히 뿌리박은 지주가 아니었다(p525)... 그의 참된 모습이란 시장, 거래소, 상업망, 긴 교환의 연결망 등에서 찾을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분배야말로 이익을 내는 참된 분야인 것이다.... 자기 영역[교환의 영역]이 아닌 곳에 자본주의가 침투한 것은 그 자체로 정당화가 안 된다. 단지 상업의 필요성이나 이익에 따라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을 때에만 생산에 손을 댔다. 자본주의가 생산 영역에 침입하는 것은 기계 사용이 생산의 조건들을 변화시켜서 산업도 이윤의 확대가 가능해진 영역이 된 산업혁명기에 가서야 일어난다. 이때 자본주의는 그런 것에 의해서 크게 변형되고 나아가서 확대된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 : 교환의 세계 1>, p526   


 어느 한 사회가 매년 생산하는 전체 자본을 조자본(粗資本 ; gross capital)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중 일부는 활동적인 경제생활의 과정에서 침식되는데, 이것을 뺀 나머지 부분이 순자본(純資本 ; capital net)이 된다. 그런데 쿠즈네츠는 조자본과 순자본 사이의 차이는 현대 사회에서보다 과거 사회에서 훨씬 클 것이라고 보았다. 쿠즈네츠의 이 가설을 그야말로 핵심적인 것이며, 또 그에 관한 증거 자료들이 풍부하게 있어서 거의 확실해 보이는 내용이다. 확실한 것은 지난날의 경제는 상당한 액수의 조자본을 생산하지만 일부 분야에서 이 자본이 봄눈 녹듯이 사라져버린다는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그 생산의 틀이 본질적인 취약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래서 대량의 노동으로 그 자본의 부족을 메꾸어야 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 : 교환의 세계 1>, p348


 고정자본이라는 개념은 근대 경제와 근대 기술에 의해서만 생산된 것이다. 이 말은, 역시 약간 과장하여 말한다면, 산업혁명은 무엇보다도 고정자본의 변화라고 하는 말과 같다. 그 자본은 이제 아주 비싼 것이 되었지만 대신 훨씬 더 지속적이고 완성도가 높은 것이며, 그 결과 생산성을 급속도로 증가시켰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 : 교환의 세계 1>, p350


  확실한 것은 자본가들의 선택은 산업과 상업이라는 두 단계 사이의 간격을 더욱 심화시켰을 뿐이라는 것이다. 시장을 지배하는 상업이 우위를 점하고 있기 때문에 산업이윤은 언제나 상인들의 수취에 짓눌렸다. 이 점은 기계제조식 양품류나 레이스 산업 같은 근대적인 산업이 아무 제약 없이 곧게 성장했던 중심지들을 살펴보면 명백히 볼 수 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 : 교환의 세계 1>, p485


 도시와 그 안에서 발달한 시장은 교환의 중심지였다. 교환을 위해 도시 중심부에 세워진 시장, 정기시, 거래소 등에서는 어음을 활용한 지불유예가 가능했으며, 이는 당시 유동성을 증가시켰다.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금융발달에 대항하는 반(反)시장 움직임도 커져가는데 구체적으로 정기시에 대항한 창고와 보세창고의 실물거래 증가, 거래소에 대항한 은행의 등장이 이러한 움직임의 일환이다. 시장과 반시장의 대립은 이 시대 체제(system)에 균열과 팽창을 동시에 가져오면서, 시장경제는 유럽 도시의 체제가 아닌 세계체제로 확산된다.


 시장, 상점, 행상의 위에 강력한 교환의 상층 구조가 존재한다. 그것은 탁월한 수단을 가진 인물들이 장악하고 있다. 이것은 중요한 교환기구와 대규모 경제의 층위이고, 따라서 필연적으로 자본주의의 층위이다. 자본주의란 대규모 경제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지난날에 원거리 교역을 하는 데 핵심적인 기구는 정기시와 거래소였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 : 교환의 세계 1>, p101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면 정기시((foire)의 핵심은 역시 대상인의 활동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상업 도구를 완성시킴으로써 정기시를 대사업 중심지로 만든 것이 바로 이들이었다. 확실한 것은 정기시야말로 크레딧을 발달시켰다는 점이다... 정기시란 결국 채무들이 모여들어서 서로가 서로를 상쇄하여 봄눈 녹듯이 사라지게 만드는 곳이다. 이것이 바로 스콘트로(scontro), 즉 어음 교환(compensation)의 비밀이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 : 교환의 세계 1>, p115 


 어음 교환으로 대표되는 신용거래의 증가는 체제의 안전성을 요구한다. 또한, 신용거래로 증가한 유동성은 점(點)으로 형성된 시장을 선(線)으로 연결하고자 하는 유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이윤'을 추구하려는 욕구는 자본주의만의 것이 아니다. 


 상업순환을 완수하는 것을 결코 단순한 일이 아니며, 상품 대 상품, 나아가서 상품 대 금속화폐와의 교환만으로 이룰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이 때문에 환어음을 쓸 수 밖에 없고 또 실제로 그것이 정규적으로 쓰이게 되었다. 원래 환어음은 결제수단이었으나, 교화가 화폐 이자를 금지하는 기독교권에서는 가장 널리 쓰이는 신용수단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이렇게 해서 결제와 신용이 긴밀하게 연결되었다(p191)... 반대거래(return)에 대한 일상적인 해결책이 되었던 환어음에서는 금융 순환의 안정성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그 안정성은 파트너 개개인의 신용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효과적인 연결 가능성에 달려 있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 : 교환의 세계 1>, p196 


 부피가 크고 묵중한 상품과 달리 사치품은 가볍고 빛나는 존재이며 많은 소란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이다. 돈은 사치품을 향해 달려가고 그 명령에 따르려고 한다. 따라서 사치품에 대해서는 초(超)수요(super-demande)가 있고 그 자체의 교역과 변덕이 작용한다. 결코 일관적이지 않은 욕망과 언제나 변화하기 쉬운 유행은 인위적이고 거부할 수 없는 "필요"를 만든다. 그것은 쉽게 변화하지만 결코 그냥 사라져버리는 젓이 없으며 단지 또 다른 근거 없는 열정에 자리를 양보할 따름이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 : 교환의 세계 1>, p246


 사치품을 통해 높은 이윤을 확보하려는 경향은 교환이 활성화된 곳에서 더 높게 나타난다. 그러한 곳에서 물자와 노동이 몰리는 것은 당연할 것이며 그 결과 해당지역의 상품가격은 전반적으로 높게 형성될 것이었다. 이들의 중심지에 위치한 시장에서는 신용거래를 통해 풍부한 유동성을 보유하고 있었고, 시장들은 교역망을 통해 연결되면서 시장경제의 세계는 선으로 팽창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선(線)을 둘러싼 면(面)에는 아직 자급자족의 경제라는 배후지가 공존하는 세계. 바로 15~18세기 교환의 시대다.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의 2층인 시장경제에 '교환'의 주제가 부여되었다는 것은 다음 단계인 자본주의에게 당연하게도 '생산'이 할당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독점이라는 체제에 기반한 생산. 이는 자본주의의 시대의 특징이 될 것이다.

 

 "높은 상품 가격은 최고의 부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주는 가장 확실한 안내자이다." 오늘날에도 "최선진국"의 임금 및 물가 수준은 "발전이 지체되어 있는 국가들보다 훨씬 높다."고 레옹 뒤프리에의 이론적 고찰은 밝히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왜 그렇게 차이가 나는지를 물어야 한다. 이에 대해서 구조와 조직의 우월성 때문이라고 대답한다면 그것은 너무 쉽게 말하는 것이 될 것이다. 사실 우리가 살펴야 할 것이 바로 세계의 구조인 것이다... 고물가와 고임금은 18세기 영국 경제에 유리한 요소이면서 동시에 제약 요소이기도 했다. 우리는 18세기의 기계화 혁명은 정말로 경이로운 탈출구였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 : 교환의 세계 1>, p237


 화폐와 토지 및 노동의 가격, 모든 곡물 및 상품들의 가격이 언제나 변함없이 자유롭다. 어떤 합법적인 제약도, 그 어떤 개인 사이의 담합도 가격을 굴종시키지는 못한다. 이런 판단들의 이면에는 누구에 의해서도 조정되지 않는 시장이 경제 전체의 모터 역할을 하는 장치라는 암묵적인 전제가 깔려 있다. 이 주장에 의하면 유럽의 성장 내지 세계의 성장은 다름 아닌 시장경제의 성장이고, 이것은 점점 더 많은 사람들과 점점 더 많은 근거리 및 원거리 무역이 시장이라는 합리적인 질서내에 이끌려 들어가는 것을 말하며, 이 전체가 세계의 단일성을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 : 교환의 세계 1>, p314


 교역이 수요와 공급을 동시에 자극하고, 생산의 방향을 지시해주며, 광대한 지역을 경제적으로 특화해주고, 또 바로 그 때문에 이 지역들은 자신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교역을 필요로 하게 된다는 것은 확실하다... 한마디로 교역은 여러 경제들을 엮어주는 것이다. 교역은 고리이며 경첩이다. 구매인과 판매인 사이에는 가격이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이다. 그러나 아무리 활동적인 경제라 해도 상당히 넒은 지역이 시장의 움직임과 거의 무관한 채로 남아 있었다... 자체조절적이고 경제 전체를 지배하며 합리화시키는 시장, 이것이 경제 성장의 역사의 핵심이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 : 교환의 세계 1>, p315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에서 보여주는 교환의 세계에서 우리는 15~18세기의 생산의 한계와 함께 교환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이 시기에 부족한 생산 능력은 더 많은 부(富)를 추구하려는 인간의 욕망을 따를 수 없었다. 생산 대신 교환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욕망은 금융제도를 발달시켰고, 교역을 활성화시켰으며 이로부터 활성화된 운동은 체제를 분열시키고, 분열된 체제는 세계로 확장된다. 아직까지도 자본주의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동유럽의 재판농노제와 아메리카 대륙의 플랜테이션은 농업부문에서의 노동집약적인 생산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아직까지는 불안정한 고정자본이 과학기술로 인해 안정화되면 이제 노동집약적 산업은 자본집약적인 산업으로 대체될 것이다. 비록 브로델은 본문에서 언급하지 않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이데올로기 슬로건은 '인권', '해방'이 될 것이다. 이러한 '자유주의'사상도 아직 등장하지 않았지만, '자유주의'가 '자본주의'와 결합되리라는 점을 확인하며, 다음 권으로 넘어가도록 하자...


  나는 갤브레이스와 레닌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그들과의 차이가 있다면 내가 "경제(economie)" - 또는 시장경제 - 라고 부른 것과 "자본주의(capitalism)"라고 부른 것 사이의 영역차이가 새로운 모습이 아니라 중세 이래 유럽에서 언제나 지속되던 상수(常數)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차이가 있다면 산업화 이전 시기의 모델에 세번째의 영역을 더해야 한다는 것이다 - 그것은 비(非)경제라는 제일 아래층이다. 경제는 이곳을 부식토로 삼아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 전체를 장악하고 있지는 못하다. 이 최하층은 거대하다. 이 위에 시장경제의 영역이 수평적으로 여러 다양한 시장과 연결을 늘려간다. 이곳에는 어느 정도의 자동성(automatisme)이 있어서 수요와 공급과 가격을 연결해준다. 마지막으로 이 시장경제라는 층의 옆에, 차라리 그 위에, 반(反)시장(contre-marche)의 영역이 있다. 이곳은 가장 약삭빠르고 가장 강력한 자가 지배하는 세상이다. 바로 이곳이 자본주의의 영역이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 : 교환의 세계 1>, p323


  자본주의를 위치시키는 영역은 두 개가 있다. 그 하나는 자본주의가 장악하여 편하게 거주하고 있는 곳이며, 또 하나는 자본주의가 옆길에서 새어들어올 뿐이고 지배적이지도 못한 곳이다. 19세기에 산업혁명이 일어난 후 자본주의가 산업 생산을 장악하여 거대한 이윤을 확보하기 전까지는, 자본주의는 유통의 영역에서만 제자리를 찾았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 : 교환의 세계 1>, p326


 원칙적으로 시장에 대한 엄격한 통제를 하는 것은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며 이것은 다시 말하면 경쟁을 유지시키기 위한 것이다. 결국 통제와 경쟁을 동시에 억압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영국의 사거래 시장(private market)과 같은 "자유(libre)" 시장일 것이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 : 교환의 세계 1>, p320


아무리 초보적인 시장이라고 하더라도 그곳은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곳이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얻는 선택된 곳이다. 만일 이런 것들이 없다면 통상적인 의미의 경제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고 단지 자급자족, 혹은 비(非)경제 속에 "갇힌(embedded)" 생활만이 존재하게 될 것이다. 시장은 해방이며, 개방이며, 또 다른 세계로의 접근이다. 그것은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이다. 인간의 활동과 인간이 교환하는 잉여는 조금씩 조금씩 이 좁은 틈을 통과해간다. 그 구멍은 점차 커지고 또 많아지며, 그러다가 이 과정의 마지막에 가면 사회가 "시장이 일반화된 사회(societe a marche generalise)"로 된다. - P20

직접적인 것이든 간접적인 것이든 시장과, 다양한 형태의 교환은 끊임없이 경제를 뒤흔들어놓는다. 가장 정태적인 경제라도 여기에서 예외가 아니다. 시장은 경제를 교란시킨다고도 할 수 있고, 경제를 활성화시킨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논리적으로는 모든 것이 시장을 거쳐가게 된다. 토지와 산업의 산물만이 아니라 토지 재산, 화폐 그리고 인간의 노력인 노동이 시장을 거쳐간다. - P55

서양의 발전의 핵심을 두 가지 들라면 첫째, 상부에서 여러 도구가 발달한 것이고 둘째, 18세기에 여러 수단과 방법이 증가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유럽 이외의 지역에서는 어땠을까? 유럽과 가장 거리가 먼 경우는 중국으로서 이곳에서는 제국의 행정이 경제의 계서화를 가로막았다. 단지 효율성 있게 돌아가는 것은 하층의 읍 및 도시의 상점과 시장뿐이었다. 유럽과 가장 유사한 경우는 이슬람 권과 일본이다. 물론 우리는 세계적인 차원의 비교사를 다시 시도해보아야 한다. 그것만이 우리의 문제들을 해결해주거나 아니면 적어도 정확하게 문제를 제기하도록 해줄 것이다. - P184

교역은 세계를 포괄한다. 교차로마다 그리고 연결점마다, 정주 상인이든 행상인이든, 언제나 상인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상인의 역할은 그가 어떤 위치에 서 있느냐에 따라서 결정된다... 19세기 이전의 대상인들이 대부분 여러 활동을 동시에 하는 것은 단지 신중함 때문이었을까? 혹은 그의 수중에 닿는 여러 흐름을 동시에 전부 이용해야만 했던 것일까? 어쨌든 하나의 영역만을 고집했다가는 원하는 수준에 이르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다면성(polyvalence)"은 교역량이 충분치 못하다는 외부적 요인에 기인한 것이다... 상업망이라는 것은 상업순환의 여러 지점들에 분포되어 있는 대리인들(agents)이 연결되어 이루어져 있다. 상업은 이런 연락지점 들 사이의 협력과 연결을 통해서 살아간다. 반대로 이런 연락지점들은 이 일에 이해를 가지고 있는 당사자들이 성공을 거두면 거의 저절로 증가한다 - P201

전(前)산업화 시대의 세계에 관심을 가진 경제학자들은 한 가지 점에 대해서는 서로 일치를 보인다 : 공급(offer)은 아주 작은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공급은 탄력성이 모자라기 때문에 모든 수요에 대해서 빠르게 대응할 수 없었다. 이 시대 경제의 핵심은 농업활동이다. 일반적으로 농업생산은 [빠른 발전이 이루어지기 힘든] 타성(惰性)의 영역이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명백한 진보가 이루어진 영역이 두 개 있는데 하나는 공업이고 다른 하나는 상업이다 - P249

결론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이 고전적인 문제인 발틱 해 무역은 그 자체로서 완결된 유통체계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상품과 현찰과 크레딧이 유통되는 다자간 무역체제였다. 그중 크레딧의 유통로는 끊임없이 확대되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라이프치히, 브레슬라우, 포즈나니뿐만 아니라 뉘른베르크, 프랑크푸르트 그리고 어쩌면 더 나아가서 이스탄불과 베네치아까지 여행해야 한다. 발틱 해 지역이라는 경제 전체는 흑해와 아드리아 해에까지 확대하여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여튼 발틱 해 지역의 교역과 동유럽 경제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있다. - P301

(95퍼센트에 이르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국민소득의 75퍼센트만을 가지고 살게 되므로, 이것을 정확히 계산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인당 평균소득 수준 이하로 살았던 것이 된다. 특권층에 의한 착취는 이들을 명백한 궁핍 상태로 몰아갔다. 간단히 말해서 저축은 사회의 특권층내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이런 사회는 비록 일인당 국민소득 수준이 낮더라도 저축이 가능했고 실제로 저축이 이루어졌다. 사회적 굴레는 저축에 불리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저축을 장려한 것이다. 이 계산에서 두 개의 핵심적인 변수가 있다 : 인구 수와 그들의 생활수준이 그것이다... 의심의 여지 없이 확실한 것은 1750년 이전에 유럽의 자본생산율은 아주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는 점이다. - P347

대부분의 전(前)산업은 수공업과 선대제라는 기초단위가 무수히 많은 형태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분산된 조직들 위로 보다 자본주의에 가까운 매뉴팩처(manufacture)와 공장(fabrique)이 솟아올라 있다. 이 두 단어는 서로 혼용되고 있다. 그러나 역사가들은 마르크스를 따라서, 매뉴팩처는 수작업을 하는 - 특히 직물업에서 - 수공업 방식의 노동력이 집중해 있는 곳을 지칭하고, 공장은 광산, 야금업, 조선소에서 이미 사용하고 있던 바와 같은 시설과 기계를 사용하는 곳을 지칭하는 것으로 구분했다. - P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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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5-05 02: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앗 우리집에 장식용으로 꽂혀 있는 책. ㅠㅠ 겨울호랑이님 발췌문으로 대략의 내용만 짐작하네요. ㅎㅎ

겨울호랑이 2022-05-05 07:58   좋아요 1 | URL
^^:) 부족하나마 제 리뷰로 바람돌이님의 독서에 작은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커피소년 2022-05-05 12: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나는 님이 정말 부럽습니다.

겨울호랑이 2022-05-05 13:26   좋아요 1 | URL
^^:)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사람 사는 것이 다 비슷하지 않겠습니까... 저마다 좋은 일과 나쁜 일들 갖고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