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
오주석 지음 / 솔출판사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오주석의 한국의 미美 특강> 속에서 우리는 한국의 미美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 그림 감상법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한 교양 미술책이다. 저자가 책에서 말하는 "한국의 미美"란 무엇일까? 이번 리뷰에서는 책의 순서와는 조금 다르게, 그러나 같은 내용으로 살펴보자.
1. 한국의 미美 : 옛 그림에 담긴 선인들의 마음
'과학자들도, 사물을 보는 것은 눈이지만 그 눈은 오직 우리의 마음 길이 가는 곳에만 신경을 집중할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사실은 눈이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이 본다고 말할 수 있지요. 그래서 옛 그림을 진짜로 잘 보려면 옛 사람의 마음으로 봐야 한다고 말씀드린 것입니다.(p82)'
저자 오주석(吳柱錫 1956 ~ 2005)교수는 우리 그림을 잘 감상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이해할 것을 강조하면서, 그림 속에 담겨진 우리 전통 사상인 '음양오행 陰陽五行' 사상을 설명하는데 책의 상당 부분을 할당한다.
'음양오행 陰陽五行 입니다. 음양오행은 하나의 관념 혹은 철학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우주와 인생을 바라보는 일종의 사유의 틀입니다. 그것도 자연 현상 그 자체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생각의 방식이지요. 전통 문화는 이 음양오행을 빼놓고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p84)'
[그림] 한글의 음양오행 체계(출처 : 문화체육관광부)
'음양오행'등이 우리 미술의 사상思想을 이룬다면, 그 사상은 어떤 모습으로 구현되었을까. 저자는 우리만의 독특한 방식을 진실眞實대로 표현한 '표현력表現力'이 외국과 차별화된 우리만의 독창적인 미의 특징이라고 해석한다.
'"중국 그림은 꽤 사실적이기는 하지만 병명을 진단하기에는 좀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세요. 바로 이 차이입니다. 그러니까 겉보기에는 둘 다 사실적인 듯 하지만, 그야말로 병색까지 있는 그대로 묘사된 그림은 바로 조선의 초상화라는 것입니다.(p184)'
[그림] <채제공 蔡濟恭 초상> 이명기(李命基, ? ~ ?) (출처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hssn2710&logNo=220547165977&categoryNo=0&parentCategoryNo=1786&viewDate=¤tPage=1&postListTopCurrentPage=1&from=postView)
이러한 사실적인 표현력은 초사화 뿐 아니라 동물을 표현한 그림에서도 드러난다. 이처럼 사실적인 한국 미술의 전통은 미화美化에 치중한 일본식 화풍과 뚜렷하게 대조되는 부분이다.
[그림] <송하맹호도 松下猛虎圖> : 김홍도(金弘道, 1745 ~ 1806) (출처 : 통일뉴스)
'15cm도 안되는 호랑이 머리 부분을 이렇게 실바늘 같은 선을 수천번이나 반복해서 그렸습니다. 이건 숫제 집에서 집에서 쓰는 반짇고리 속의 제일 가는 바늘보다도 더 가는 획입니다. 이런 그림을 그려낼 수 있는 화가는 지금 우리 세상에 없습니다. 이런 묘사력은 뭐랄까. 그림 그리기 이전에 정신 수양의 문제 같은 것이 전제 되어야 가능합니다.(p118)'
[그림] <호랑이> : 김은호(金殷鎬, 1892 ~ 1979) (출처 : http://bulgogibros.tistory.com/233)
'언뜻 보기에는 잘 그린 듯하지만 찬찬히 뜯어보니, 귀엽게 생겼죠? 이건 호랑이가 아니라 고양이입니다. 또 귀는 지나치게 커서 멍청해 보이고 꼬랑지는 가늘어서 아주 쩨쩨합니다. 그리고 앞다리가 이게 뭡니까? 송아지의 목을 일격에 꺽어 버린다는 호랑이 앞다리 살이 너무나 투실투실해서 아예 다이어트를 해야 될 지경입니다. 몸의 줄무늬를 그린 것도 해부학적 정확성은 없이 고만고만하게 반복해서 대충 시늉만 했죠. 흰색으로 성글게 친 터럭 묘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언뜻 겉보기에는 잘 그린 듯하지만 아까 보았던 단원의 호랑이 그림과 꼼꼼히 비교해 보면 그야말로 200년 전 정조 시대의 문화 수준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습니다. 바로 분위기만 그럴듯하게 살려 내는 일본식의 화풍 畵風이 끼친 악영향입니다. 겉으로만 그럴듯하게 다듬어 냈을 뿐입니다.(p130)'
2. 그림에 담긴 의미
우리 전통 미술을 잘 감상하기 위해서는 섬세한 표현력이 표현된 그림 뿐 아니라, 그 이면의 의미도 알아야 한다. 그림 속의 사물事物을 올바르게 알기 위해서는 사물를 가르키는 의미(언어)와 문화적 배경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을 저자는 <황묘롱접도>를 통해 잘 설명하고 있다.
[그림] <황묘롱접도 黃猫弄蝶圖> : 김홍도 (출처 :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BbX5&articleno=18099415&categoryId=360049®dt=20151029180448)
'그림 감상, 하나도 어려울 게 없습니다. 나비는 가볍게 활짝 날게 그리고, 새는 포로롱 하고 날아갈듯 그리면 바로 그게 좋은 그림입니다. 그런데 나비는 나비 접蝶 자가 80 노인 질耊 자 하고 '띠에' 하는 발음이 같아요. 그래서 80 노인이 됩니다. 그러니까 새끼 고양이가 나비를 바라보는 것은 "70 노인이 80 노인이 되도록..." 그런 뜻이겠죠.... 패랭이는 카네이션의 우리 토종 꽃입니다. 패랭이는 홑꽃으로 시골에서 흔히 보는 것인데, 분가루를 뿌린 것처럼 고운 모양새가 꼭 시골 아가씨 같다고 해서 옛날부터 "청춘"이란 꽃말을 가졌습니다. 이 돌멩이는 수십 만 년 된 것이죠? 당연히 장수, 오래 사는 것의 상징이기 때문에 이끼 낀 모습으로 그렸습니다... 이것은 제비꽃입니다. 꽃대가 꼭 물음표(?)처럼 휘었습니다. 패랭이꽃은 초여름에 피고 제비꽃은 이른 봄에 핍니다. 제비꽃의 꽃말은 "뜻대로 된다"는 것입니다.(p140)'
'전체적으로 읽어 보실까요? "이 그림을 받으시는, 오늘 생신을 맞으신 주인께서는 70 노인이 80 노인이 되시도록 오래오래 장수하시는데, 그것도 잔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청춘인 양 곱게 늙으시기를, 그리고 그밖에도 가사家事 내외 모든 일이 다 뜻대로 되시길 바랍니다!"(p141)'
3. 옛 그림 감상의 두 원칙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미술 작품 속에서 '한국의 미'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저자는 이를 위해 올바른 우리 그림의 감상법을 제안하고 있다. 그림의 크기에 따라 다른 거리에서, 우상右上에서 좌하左下 방향으로, 가급적 천천히 볼 것을 저자는 옛 그림 감상의 원칙이라고 말한다.
'옛 그림을 보여드리기 전에 우선 옛 그림 감상의 원칙을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선인들의 그림을 잘 감상하려면 첫째, 옛 사람의 눈으로 보고 둘째, 옛 사람의 마음으로 느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p17)'
'큰 그림은 좀 떨어져서 보고, 작은 그림은 바짝 다가서서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 나름으로 생각하건대, 동양화든 서양화든 할 것 없이, 회화 작품 크기의 대각선을 그었을 때, 대략 그 대각선만큼 떨어져서 보는 게 적당할 듯 싶습니다. 혹 성품이 유난히 느긋한 분이라면 대충 대각선의 1.5배 정도까지 떨어져서 볼 수도 있겠죠.(p19)'
'예술품이란 누가 뭐라 하든 내가 좋아서 보는 것이고, 또 내 맘에 꼭 드는 작품 한 점이 있으면 그 것 하나 잘 감상한 것으로 충분히 보람이 있습니다.(p21)... 그림도 내 마음에 드는 것, 왠지는 모르지만 자꾸만 마음이 끌리는 작품, 그렇게 가장 좋다고 생각되는 작품 몇 점을 골라서 잘 보고 찬찬히 나만의 대화를 나누는 것이 중요합니다.(p22)'
'제가 오늘 말씀드리는 주제는 우리나라의 옛 그림입니다... 우리 옛날 그림은 족자건 병풍이건 세로가 깁니다! (p25)... 옛 그림은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이렇게 쓰다듬듯이 바라보지 않으면 그림 위에 X자만 그어지고 아주 혼란스러워 집니다.(p27)'
'우리 옛 그림은 반드시 오른쪽 위에서 왼쪾 아래로 훑어가듯 보셔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가 고궁을 바라보든지 사찰을 보든지 간에 옛 분들이 만드신 여러 문화재는 반드시 오른편에서 왼편으로 훑어보는 것이 원래 옛 분들의 시선 흐름과 맞아떨어지는 옳은 방식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풍수를 말할 때도 좌청룡 左靑龍 우백호 右白虎 라고 하지 않습니까?(p67)'
'세 번째 원칙은 그림을 찬찬히 봐야한다는 얘기입니다.(p31)... 예술 작품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특별한 지식이 없어도 마음을 기울여 찬찬히 대하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그 속내를 내보입니다.(p33)'
<오주석의 한국의 미美 특강>에서는 이처럼 오늘날 우리가 잊고 있는 우리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주고,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방법론을 제안하고 있다. 미술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이 무심코 지나가는 작은 부분까지도 상세히 설명하면서, 우리의 아름다움은 결코 '중후장대 重厚長大'한 것이 아니라 '경박단소 輕薄短小'에 있음을 일깨워준다. 그리고, 이러한 우리 미술의 특징은 단지 회화에만 그치지 않음을 우리는 다른 미술의 분야로 생각을 확장시켜 확인할 수 있다.
[사진] 경복궁 (출처 : https://www.emaze.com/@AORFCQWWI/%EA%B2%BD%EB%B3%B5%EA%B6%81)
[사진] 베르사이유 궁전 (출처 : http://ktts.or.kr/bbs/board.php?bo_table=teentrek_news&wr_id=310)
아름다움의 기준을 크고 웅장함에서만 찾는다면, 결코 경복궁의 아름다움은 베르사이유 궁전의 아름다움을 압도한다고 말하기 힘들 것이다. 그렇지만, 경복궁의 아름다움은 거기에 있지 않는다는 것을 <오주석의 한국의 미美 특강>을 통해 깨달을 수 있다면, 우리는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게 된다. 경복궁 이 건물이 아니라 이 주변을 둘러싼 인왕산, 궁궐 근처의 민가와의 조화를 총체적으로 느낄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의 아름다움을 발견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비록, 이 책에 건축이야기는 나오지 않지만... 이와 같이, 우리의 미美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이를 알기 쉽게 설명해준다는 측면에서 이 책은 좋은 미술감상 입문서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