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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성학 개론

 

대학교 일이다. 90년대에는 아직 여성학이라는 과목이  활성화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남학생이 여성학을 수강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남학생이 여성학을 수강하면, '남자'라는 이유 하나로 "A"를 준다는 일종의 '남학생 가산점'이 있다는 유언비어가 돌았다. 그 말에 혹해서 '여성학 개론'을 친구와 함께 수강신청 했었다. 예상대로 정원 50명 중 친구와 나 둘만 남자고, 48명이 여성으로 강의가 진행되었다. 다른 과목 같으면 이런 '청일점'이 좋은 상황이겠지만, 여성학 과목에 있어 청일점은 일종의 '이방인' 같은 존재였다. 과목의 특성상 남성에 의한 여성의 억압, 부조리한 사회구조 등이 강의 내용의 다수였고, 강의장은 대다수 수강생들의 공분(公憤)으로 가득차기 일쑤였다.  그렇지만, 나는 남자였기 때문에 그 분노에 대해 심적으로 공감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었다.

 

어느 날 가부장제에 대해서 수업이 진행되었을 때였다.
'가부장제'라는 사회구조에 대한 수강생들의 분노는 거의 폭발 직전이었고,  교실 안에 있는 두 남자의 존재를 '이방인'이 아닌 '공공의 적' 수준으로 격상시킬 정도로 험악해져 갔었다. 그러한 분위기를 교수님도 감지하셨을까. 그때 그 교수님이 하셨던 말씀이 험악한 분위기에서 우리를 '공공의 적'에서 같은 '피해자'로 돌려 놓았다.

 

'가부장제의 혜택을 모든 남성이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다수의 힘없는 남성 역시 가부장제의 폐해 속에서 더 상위의 남성에 의해 억압받는 구조가 가부장제인 것입니다.... 가부장제의 모든 여성과 다수의 남성이 피해를 보는 제도인 것입니다.'

 

대강 이런 내용으로 기억된다. 그래서, 나와 친구는 '힘없는 남성'이 되어 다른 피해자들과 같이 분노하면서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그 날 수업은 '여성학 개론' 개강 이후 처음으로 여성과 같은 입장에서 들은 수업이었다.

 

2. 우리나라의 성별 격차 문제

 

최근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지난 2016년 6월경제활동 참여와 기회, 교육, 건강, 정치 권한 등 4개 분야에서 성별 격차를 수치화해서 145개국의 순위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성평등 지수는 0.651(1에 가까울 수록 평등)로 145개 조사 대상국 중 115위였다. (Economy Insight 7월호 中)

 

우리나라 여성의 지위는 중국(91위), 일본(101위)에 비해서도 낮은 순위에 속하며, 우리는 이러한 객관적 수치를 통해서 확인된 성별 격차를 당연히 줄여야 한다. 여기에는 이견(異見)이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사회에서는 성별 갈등의 문제가 더 커지는 현실을 우리는 보고 있다. 지난 5월 강남역 화장실에서 여성이 살해된 이후 최근 메갈리아 논쟁까지. 이러한 성별 갈등을 보면서, <향연> 중 아리스토파네스의  '남녀추니' 이야기가 생각난다.

 

3. 플라톤 <향연> 중 '남녀추니' 이야기

 

오래전 우리들의 본성은 바로 지금의 이것과 같은 것이 아니라 다른 유의 것이었네. 우선 인간들의 성(性)이 셋이었네. 지금처럼 둘만, 즉 남성과 여성만 있는 게 아니라 이 둘을 함께 가진 셋째 성이 더 있었는데, 지금은 그것의 이름만 남아 있고 그것 자체는 사라져 버렸지... 그런데 그것들은 힘이나 활력이 엄청났고 자신들에 대해 대단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신들을 공격하게 되었네....그래서 제우스와 다른 신들을 그들에 대해 무슨 일을 해야 할지를 숙의하면서 어쩔 줄 몰라 막막해 하고 있었네... 그래서, 제우스가 간신히 생각을 짜내어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네. '어떻게 하면 인간들이 계속 살아 있으면서도 힘이 약해져서 방종을 멈추게 될 수 있을지 그 방도를 나는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나는 그들 각각을 둘로 자르겠다. 그러면 한편으로는 그들이 약해지면서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그 수가 더 많아지게 되어 우리에게 더 쓸모 있게 될 것이다.'.(플라톤, <향연>정암학당 (2010)  189d-190d)

 

4. 진정으로 이익을 보는 자는 누구일까

 

가부장제는 전형적인 성별 불평등의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다. 그리고, 남성과 여성 다수가 피해자인 사회 구조다. 비록 가부장제는 최근에 많이 약화되었지만, 힘있는 남성 위주의 사회 제도인 것은 지금도 여전하다. 다수가 불행한 사회 제도의 개선을 위해서는 남성만 또는 여성만의 노력으로는 이룰 수 없다. 사회전체의 합의와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성별간 소모적인 논쟁이 지난 4개월간 이어져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으로 달라진것은 없으며 끊임없는 논쟁만 확대재생산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논의를 멈추고 다음과 같은 사항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당신이 도박판에서 도박을 시작한 지 30분이 지나도 누가 호구인지 모른다면, 바로 당신이 호구다.'

 

  우리는 논쟁을 잠시 멈추고 생각을 정리해야 하는 시점에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우리가 호구는 아닐까, 아니면 남성과 여성을 갈라놓아서 이득을 보는 제우스는 누구일까 생각을 해보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어렵겠지만 자신과 관점이 다른 사람을 적대하기보다는 포용해서 함께 풀어가려는 노력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성별 불평등의 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이고, 우리의 절반이 여성이고, 우리의 다른 절반은 남성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작은 움직임이 사회의 큰 변화가 되어 세상을 바꾼 사례를 우리 각자가 알고 있다. 이제는 성별 불평등에 대한 관점이 사회적으로도 공유되었으니,우리가 성별격차를 줄이기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하고 작은 실천을 해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다.  

 

날이 많이 더우니 영양가 없는 말만 많아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주부터는 날이 선선해져야할텐데, 광복절을 건국절이라고 부르시는 분들 때문에 다음 주도 아마 더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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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13 2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13 22: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13 2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13 22: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lavis 2016-08-13 23: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여성학 들으면서..처음으로 남자가 되고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남자가 되은 이유는 단 한가지 였어요 여성학을 공부하는 남자가 되고싶었거든요 남자가 되고픈 꿈을 겨울호랑이님이 이뤄주셨?^^

겨울호랑이 2016-08-14 00:29   좋아요 1 | URL
여성학이 존재하는 반면 남성학이 없는 이유는 아마 모든 학문이 남성적이라는 반증이라 생각합니다. 여성학이라는 학문이 필요없도록 모든 분야에서 여성의 시각, 소수와 약자의 입장이 배려되어야한다는 것을 새삼 생각하게 됩니다. clavis 님의 멋진 로망과는 달리 저는 학점 때문에 신청했었답니다. ㅜㅜ 감사합니다. 편한 밤 되세요 clavis 님

나와같다면 2016-08-14 00: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주 오랜 옛날,
우리는 남자와 여자로 갈라지기 전
하나의 쌍으로 이루어진 완성체였다고 한다

하지만 완성체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인간의 능력에 위협을 느낀 제우스 신은
그들을 둘로 갈라내 버렸다

서로 떨어지게 된 인간은 하나로 붙어있을때
모르던 외로움의 고통을 알게 되고,
자신이 잃어버린 반쪽과 다시 하나가 되고 싶어한다

나는 기억해 두개로 갈라진 후
너는 나를 보고 나는 너를 봤어 널
난 알아 네 영혼 끝없이 서린 그 슬픔
그것은 바로 나의 슬픔

겨울호랑이 2016-08-14 00:37   좋아요 0 | URL
멋진 내용이네요 감사합니다 나와같다면님.. 그런데 떨어져서 생긴 외로움의 고통의 원인을 상대방 탓으로 돌려 증오하는 요즘인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clavis 2016-08-14 00: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멋지기만 한걸요
이천년 동안 성서 안에서의 여성도 마찬가지였지요
그래서 여성신학을 들을때 여성학과는 또 다른 신세계가 오픈되는 기분이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6-08-14 00:46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여성신학은 잘 몰랐는데 clavis 님 덕분에 호기심이 생기네요. 해방신학과는 또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나중에 여성신학에 대해 궁금한 부분 clavis 님께 질문드려도 될까요?^^

clavis 2016-08-14 01: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현문우답이 될 가망성이 농후하지만요^^위노나 게이틀리의 ˝촉촉하고 따뜻하고 짭조름한ㅡ흑흑 기억력 쇠진ㅡ하느님˝을 먼저 추천드려요 분도출판사의 책입니당

겨울호랑이 2016-08-14 01:07   좋아요 0 | URL
좋은 책 추천 감사합니다^^:
 
국선도강해
허경무 지음 / 밝문화미디어 / 2006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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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선도 입문서
입문에서부터 중기 및 건곤법까지 잘 설명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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