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을 말하다
장 지글러 지음, 이현웅 옮김 / 갈라파고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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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엔을 말하다 Chemins d'esperance>는 유엔(UN)인권이사회 자문위원인 장 지글러(Jean Ziegler, 1934 ~ )이 내부에서 바라본 유엔이 가지고 있는 태생적 한계와 문제점, 그리고 저자의 UN에 대한 낙관적 전망에 관한 이야기다. 


 이 세계가 겪은 가장 끔찍한 학살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일어났다. 그 결과 6년 동안 5,700만명의 시민과 군인이 사망했고, 부상자, 장애인, 실종자가 수십만 명에 달했다. 유엔이 창설된 건 이러한 살육 때문이었다.(p112) <유엔을 말하다> 中


 1951년 7월 28일, 전 세계의 국가들은 난민의 지위와 관련된 협정, 이른바 '제네바 협약'을 승인했다. 이 협약에 의해, 새로운 보편적 인권인 보호권이 생겨났다. 자국에서 정치, 종교, 인종차별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은 누구나 국경을 넘어 외국 정부에 보호와 피신처 제공을 요구할 수 있으며, 이것은 박탈할 수 없는 권리다. 그런데 유럽연합은 지금 이 협약을 폐지하려 한다.(p57) <유엔을 말하다> 中


  2차 대전의 참상으로부터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유엔. 저자가 생각하고 있는 유엔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하나는 과거보다 거대해진 금융자본의 힘이며, 다른 하나는 인권(人權)을 더이상 유엔이 지키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세계화와 거대화된 금융자본으로 인해 불평등이 심화되었고, 이로 인해 많은 이들이 기아(飢兒)에 허덕이고 있음을 전작(前作)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통해 밝힌 바 있다. <유엔을 말하다>에서는 소득 불평등의 문제는 경제적인 문제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나아가 정치적으로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인다.


 오늘날 번영을 누리는 벌처펀드는 부자는 힘이 세고 국가는 힘이 약하다는 사실을 왜곡된 방식으로 뚜렷이 보여준다. 세계화된 금융자본은 각국에 지지자와 하수인을 두고 있다.(p45)... 세계는 지옥 같은 악순환에 빠져 있다. 매우 부유한 사람과 극도로 가난한 익명의 대중 사이에 존재하는 불평등은 끊임없이 커지고 있다.(p52) <유엔을 말하다> 中


 세계화의 결과이자 소수 지배집단이 엄청난 부를 쌓을 수 있었던 특권적 수단은 '역외회사'다. '조세회피처', 곧 재산이나 수입에 세금을 부과하지 않으며 은폐되고 비밀스런 은행 업무를 수행하는 국가에 등록된 이 기업은 대부분 불법적인 돈을 세탁하는 데 이용된다.(p350)... 탈세는 세계에서 벌어지는 재앙의 많은 부분에 책임이 있다.(p351) <유엔을 말하다> 中


 유엔은 미국의 재정과 협조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국제기구다. 공짜가 없는 국제 정치에서 미국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유엔을 원조하고, 이를 활용하고 있음은 더이상 새로운 사실은 아니다. 이를 대표하는 것이 바로 '이스라엘 - 팔레스타인' 문제다.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그들의 거주지에서 탄압받고 쫓겨가지만, 이스라엘과 미국의 이익을 위해 유엔은 결코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어두운 현실 모습이다.


 유엔이라는 조직으로 구체화되고 있는 다자 외교와 헨리 키신저의 제국주의적 이론은 상반된다. 하지만 유엔은 미국의 지지 없이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은 중앙 행정기관 예산의 26퍼센트에 해당하는 100억 달러를 유엔에 매년 지원한다.(p153) <유엔을 말하다> 中


 미국은 이스라엘의 육해공군과 첩보 기관에 매년 약 30억 달러를 지원한다. 미국의 용병 국가인 이스라엘은 제국주의적 권력에 필수불가결한 기능을 맡는다. 미국은 세계 산업생산량의 25퍼센트를 점유하고 있다. 그런데 이 놀라운 기계를 먹여 살리는 것은 석유다. 극히 최근까지 미국은 그중 60퍼센트 조금 넘는 양을 수입에 의존했다... 미국으로서는 페르시아만과 아라비아 반도의 군주국이 미국의 제국주의적 전략을 따라야 했고, 이 지역에서 미국 중심의 질서를 보장하는 역할을 맡은 것이 바로 이스라엘이다.(p163) <유엔을 말하다> 中


 현재 미국을 움직이고 있는 거대 권력이 금융자본의 힘이라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결국 현재 유엔이 인권(人權)문제에 대해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결과라 여겨진다. 그런 면에서 금융자본문제와 인권 보장 문제는 별개의 문제가 아닌 하나의 과제라 하겠다. 미국으로 대표되는 상임이사국의 전횡 속에서 유엔은 인류의 시급한 문제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했고, 그 대가는 남반구의 가난한 지역에 사는 이들이 지불해야 했다.


 오늘날, 실질적인 정의는 의심의 여지없이 사라지고 있다. 인류 역사상 세계의 길 위에서 헤매는 피난민과 이주민의 수가 이토록 많았던 경우는 결코 없었다. 기아는 난민촌을 휩쓸고 있다. 사막과 건조한 초원이 경작 가능한 땅을 삼키고 있다.... 아프리카 대륙의 거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지역은 지금 건조한 땅으로 덮여 있다.(p117) <유엔을 말하다> 中


 금융자본에 의한 세계 지배와 약해진 국가 권력과 유엔. 그리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기아와 난민 문제.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저자 장 지글러는 유엔의 미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저자의 어둠 속에서 빛을 희망하는 마음을 <유엔을 말하다>를 통해 발견하게 된다.


 현재 소수 지배집단이 전파하는 신자유주의의 거짓말 때문에 이 세계에서 공동의 의식은 소외당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이들의 의식에는 모든 인간이 동일한 권리를 지닌다는 생각이 내재되어 있다... 타인에 대한 공포, 부정, 경멸이 전 세계에 더욱더 맹위를 떨칠수록, 신비하게도 희망은 더욱더 커진다. 사람들의 의식이 반기를 들 때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다시 시작할 때다.(p18) <유엔을 말하다> 中


 현재 이 세계 구석구석의 모든 사회적 계층인 종교단체, 국가, 민족, 정치단체의 사회운동가, 조합, 연합단체, 비정부기구, 개인은 지금과 같은 세계 질서에 근본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이들의 동력은 동일성에 대한 의식이다.(p352)... 확실히 시민사회에도 모순은 있다. 그리고 진행되는 저항이 많다면 해결책도 불확실해진다. 하지만 국제적인 시민사회, 무엇보다 어떤 변혁을 거듭한 유엔이라는 무기를 갖춘 시민사회는 마침내 인간적이 된 세계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있다. (p353) <유엔을 말하다> 中


 저자는 <유엔을 말하다>를 통해 인권에 대한 보편적 인식과 문제의식이 현재의 어두운 상황을 바꿀 수 있는 힘이라고 주장한다. 동시에, 그는 책 속에서 현재의 유엔이 진정한 국제기구로 거듭나기 위한 코피 아난(Kofi Atta Annan, 1938 ~ 2018) 전 유엔 사무총장의 개혁안을 소개하고 있다.


 코피 아난 사무총장은 일종의 유언으로서 안전보장이사회 개혁안을 내놓았다. 이 개혁안은 두 가지 주요한 측면을 포함하고 있다. 하나는 이제부터 반인도적 범죄와 관련되는 모든 갈등 상황에서는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국의 지위는 모든 국가가 교대로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p339) <유엔을 말하다> 中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국의 지위 독점과 거부권에 대한 코피 아난의 개혁안은 비록 현재 상임 이사국들에 의해 거부되었지만, 우리는 이로부터 현재 유엔 문제 해결의 첫 걸음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된다.


[사진] 코피 아난 전 사무총장(출처: 한계레 신문)


 장 지글러의 <유엔을 말하다>에서는 위와 같이 현재 유엔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혁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 책에서 우리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코피 아난 사무총장이 세계 평화를 위해 얼마나 헌신했는가도 부가적으로 알게 된다. 코피 아난 사무총장의 죽음을 애도하며 이번 리뷰를 마친다.


PS. 이와 대조적으로 코피 아난 사무총장 후임인 반기문 사무총장에 대한 저자의 평가는 매우 냉혹하다. 미국의 조력자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했음을 통렬히 비판하는 저자의 글을 읽다보면, 우리 역시 유엔에 많은 빚을 지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반기문 사무총장이 선출된 일은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다.  빈기문은 진지함과 냉소가 섞인 태도로 우리에게 말했다. "저는 미군 덕분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p156)... 미국으로서는 남한이라는 가신 家臣 같은 공화국 출신의 국민이라면 자신들에게 충성심을 가질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었다.(p158)... 특히 나는 친구이기도 했던 두 명의 협력자를 잃었다. 사무총장을 맡은 사람은 코피 아난에서 생명력 없는 엑스트라 같은 인물로 대체되었다.(p329)  <유엔을 말하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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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8-09-10 21: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반기문 전 사무총창 비판에 대해 한마디 거들면요... 그 오랜 기간 공적이 없는 것도 큰 공적이다...ㅎㅎ

겨울호랑이 2018-09-10 21:37   좋아요 3 | URL
그렇지요... 정말 공적이 없긴 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나름 노력했다고 생각합니다. 503과 함께 아프리카에 새마을 운동을 전파시키려 노력했다는 점은 노력의 함정이겠지만요...ㅜㅜ

2018-09-10 2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10 2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알벨루치 2018-09-11 09: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은 예전에 사놓고 아직도 먼지만 가득합니다 겨울호랑이님 덕에 한번 읽어봤음 싶은데~잘될지 ㅋ글 잘 읽고 갑니다 오늘도 건강하십시오^^

겨울호랑이 2018-09-11 09:30   좋아요 2 | URL
카알벨루치님께서는 평소 책을 많이 읽으시는데, 아직 먼지 쌓인 책이 있다는 것을 보면 정말 많은 책을 보유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카알벨루치님이라면 잠시 시간을 내시면 금방 읽으시리라 여겨집니다. 감사합니다. 선선한 좋은 가을 날 보내세요!

카알벨루치 2018-09-11 09:34   좋아요 1 | URL
읽고픈 책은 많고 머리는 안 따라주고 조급함보다는 느긋하게 즐기면서 읽어야하는게 젤 중요한 것 같아요 인생은 짧고 죽기전에 우린 세상의 모든 텍스트를 다 못 읽고 죽을것이니 하루하루 내 맘의 여유를 발견하고 읽고 깨닫고 쓰고 그리고 그렇게 살아진다면 그게 젤 큰 하루의 소확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겨울호랑이 2018-09-11 10:03   좋아요 2 | URL
^^:) 맞는 말씀입니다. 오늘도 여유있는 하루 보내세요!

나와같다면 2018-09-11 20: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nowhere man 어디에도 없는 사람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2014년 한해만 우려감(concerns)을 140번 나타냈다

제가 화가나는 부분은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서 그에 합당한 일을 하지못했다는 점

겨울호랑이님 말씀대로 우리 역시 유엔에 많은 빚을 지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겨울호랑이 2018-09-11 18:34   좋아요 2 | URL
그렇습니다... 저는 그의 영향력을 임기직전 대선 출마 여부로 시끄러울 때 겨우 느낄정도였으니, 전 세계 분쟁국 사람들과 난민들이 느낀 배신감과 무력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2018-09-11 2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11 2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12 07: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12 08: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12 13: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12 14: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12 14: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12 2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14 08: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8-09-16 22: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가끔 겨호 님 글 읽으면서 놀라곤 하는 부분은 호기심의 광역입니다. 정말 다양한 분야를 좋아하십니다... 진정한 독서계의 달인이시란 생각이 듭니다. 그나저나 연의는 그 유명한 뽀통령의 옆자리에 있으니 출세했군요... ㅎㅎ

겨울호랑이 2018-09-16 22:1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곰곰발님. 제가 많이 몰라서 그저 이것저것 찾아보게 됩니다. 모르는 것이 많다보니, 더 찾아보게 되는 것은 장점이 되기도 하는 것 같네요. 자세히 보시면 사진에서 연의는 풍선껌을 불고 있습니다. 나름 뽀로로와 풍선껌 대결을 하는 진검승부(?)의 긴장감 넘치는 현장입니다.^^:)
 
정당사회학 - 근대 민주주의의 과두적 경향에 관한 연구 한길사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서양편 6
로베르트 미헬스 지음, 김학이 옮김 / 한길사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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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형태의 과두정을 분쇄하는 것에 이론적인 존립 근거를 두는 사회혁명 정당과 민주 정당들에게서, 그들이 공격하였던 그 경향이 나타나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책의 핵심적인 과제는 바로 그 물음에 대하여 객관적이고 분석적인 답변을 제시하는 것이다.(p55) <정당사회학> 中


[사진] 로베르트 미헬스(출처 : 뉴스앤조이)


  로베르트 미헬스(Robert Michels, 1876 ~ 1936)의 <정당사회학>은 민주주의(民主主義)를 추구하는 정당(政黨)에서 역설적으로 과두정(寡頭政)에 의한 운영이 일어나고 있는 원인을 분석하고 있다. 그렇다면, 미헬스가 생각하는 과두정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정당정치의 토대가 외면적으로 민주주의의 형태를 띠고 있는 것에만 집중하다가는, 모든 정당이 귀족정, 더욱 정확하게 말하자면 과두정으로 변형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기 쉽다... 그러나 문제는 혁명을 지향하는 정당들조차 보수 정당 못지 않게 과두적 경향을 분명하게 드러낸다는 데 있다.(p54) <정당사회학> 中


1. 과두정의 배경 : 정당 조직의 필요성


 저자에 따르면 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한 국가들에서 정당은 항상 전쟁 상태에 놓여 있게 된다. 표를 얻고 정권을 얻기 위해서는 중앙집권형 조직이 효율적이었기 때문에 근대 정당은 군대처럼 조직화 되었다.


  근대 정당은, 정당이란 단어의 정치적 의미에서 '전쟁 조직'이다. 정당이 준수해야 하는 전술학의 기본 법칙은 전투 태세이다... 중앙집권은 예나 지금이나 결정의 신속성을 보장한다. 대규모 조직은 그 자체로 둔중한 기구이다. 만일 대중 정당이 신속한 결정이 요청되는 일상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대중으로 하여금 제한적이나마 일정한 판단력을 갖추도록 조치해가면서 당을 운영한다면, 시간적 손실과 공간적 거리 때문에 순수한 형태의 민주주의는 불가능해질 것이다... 전쟁을 치르는 근대 정당에서는 엄격한 위계질서가 불가피하다.(p82) <정당사회학> 中


  조직은 과두화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에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정당은 지도하는 소수와 이를 따르는 다수로 자연스럽게 나누어지게 된다. 결국 미헬스에 따르면  치열한 경쟁에 살아남기 위해 정당의 조직은 변화되어 왔으며, 그 과정에서 정당의 모습은 과두제(寡頭制, oligarchy)로 흘러간다는 것으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의 밑바탕에는 '무지한 대중'이 놓여 있다.


 조직은 정치의 필수적인 원칙이다... 조직이란 곧 과두정에의 경향이며, 본질적 성향은 귀족적인 것이다. 그리하여 조직의 메커니즘은 견고한 구조를 창출함으로써 조직화된 대중을 심대하게 변화시킨다. 그리고 조직은 대중과 지도자의 관계를 역전시킨다. 조직은 정당과 노동조합을 지도하는 소수와 추종하는 다수로 이분(二分)시키는 것이다.(p68) <정당사회학> 中


 대중은 정당의 기본 문제를 정식화하거나, 정식화된 사항을 검토할 능력이 모자란다. 대중의 무능은 단순하기 짝이 없는 몇몇의 문제를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사실 지도자 권력의 가장 견고한 기반은 바로 대중의 무능이다. 대중의 무능은 지도자의 권력에게 현실정치적인 정상성뿐만 아니라, 일정한 정도의 도덕적 정당성까지 부여한다.(p124) <정당사회학> 中


2. 조직화의 조건 : 무지한 대중 


 참정권을 보유한 국민들 중에서 공무에 진지한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의 수가 극히 소수라는 주장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사적 이익과 공적 이익 사이의 내적 연관성을 그리 강렬하게 의식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국가라고 지칭되는 조직이 개인의 사적인 일과 안녕과 일상에 미치는 작용과 반작용을 명료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p88) <정당사회학> 中


 저자에 따르면 대중은 무지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공무(公務)에 많은 관심이 없다. 

 이들은 군중심리에 따라 움직이며 정치인의 말 한마디에 선동되는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가진 권리를 소수의 지배자들에게 위임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다수는 자신을 대신하는 소수가 있다는 사실에 기뻐한다. 소수의 지도를 받고자 하는 대중의 욕구는 곧잘 영웅 숭배로 연결되고, 그 욕구는 조직화된 노동자 정당에서도 한계를 모른다. 그 보편적인 구습집착증(Misoneismus)은 그렇지 않아도 각종의 진지한 개혁 노력을 좌절시켜 왔는데, 그 현상은 줄어들기는 커녕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p92) <정당사회학> 中


 대표의 도덕적 권리는 '위임'으로부터 발전된다. 일단 대표자로 선출된 자는, 정관이 바뀌거나 아주 특별한 일이 생겨 대표 업무에 지장이 초래되지 않는 한 그 직책을 유지한다. 그리하여 원래는 특정한 목적을 위하여 설치된 선출직이 종신직이 된다. 관습이 권리가 되는 것이다.(p84) <정당사회학> 中


3. 과두제의 정착


 반면, 지도자가 된 이들은 자신이 가진 권력을 지키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히게 된다. 자신이 맡은 지위에 따라 자신의 가치를 자각하게 된 지도자들은 다수를 지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자본(資本)과 같은 속성을 가진 권력(權力)은 점차 확대되고 세습화 된다. 


 대중은 지도를 욕구하지만 지도자에 무관심한 것과 대조적으로, 지도자에게는 타고난 권력욕이 있다. 그리하여 조직의 기술적 논리 때문에 발생한 과두 민주주의는 권력욕이라는 지도자의 보편적인 인성에 의하여 더욱 강화된다. 조직, 관리, 전략의 필요에서 시작되었던 것이 심리에 의하여 완성되는 것이다.(p229) <정당사회학> 中


 일단 지도자로 올라선 사람은 결코 정치적 지위가 낮았던 과거로 되돌아갈 수가 없다. 이는 사회적 모세혈관의 법칙에 반(反)하는 것이다. 모든 권력 의식은 과대망상을 부여한다. 게다가 인간의 가슴에는 좋건 나쁘건 권력에의 욕망이 깃들어 있다. 이것은 심리학의 기초적 상식이다. 지도자가 자신의 가치를 인지하게 되고, 동시에 그가 대중 역시 지도자를 욕망한다는 사실을 간파하게 되면, 그의 지배자로서의 천성이 발휘되기 시작한다.(p233) <정당사회학> 中


  당직자들의 독재 욕구는 당의 재산을 관리하는 경제적 권력까지 장악하도록 만든다. 지도부는 정복한 당의 재정권력을, 자신의 권력 지위를 공고화하고 안정화시키는 데에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p163)... 권력은 권력을 확장하려는 경향이 있다. 권력을 수중에 넣은 사람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고 확대하며 권력 지위를 방어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새로운 요새를 쌓아올리고, 대중의 주권과 통제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노력한다.(p235) <정당사회학> 中


4. 근대 민주주의 : 그들만의 리그(League)


 대중이 지도자보다 강력하다는 것을 입증한 사례는 극히 드문 것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기존의 지도자들과 갈등에 빠져든 새로운 지도자가 대중의 지지를 등에 업고 힘있는 자로 거듭나는 경우, 즉 새로운 지도자가 기존의 지도자를 끌어내리고 그를 대체 하는데에 성공하는 경우가 통상적이다. 그러나 그 과정 속에서 민주주의가 거둔 성취는 신속하게 무(無)로 돌아가고 만다.(p226) <정당사회학> 中


 이렇게 만들어진 근대민주주의 체제에서 대중은 권력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된 존재였다. 오랜 기간 잊혀졌던 대중이 다시 정치인들의 관심을 받게 될 때는 정권교체가 이루어질 때 뿐이었다. 결국, 민주주의가 향하는 길의 끝에는 과두정이 있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정당사회학>은 마무리된다.


 오늘날 대중은 거의 언제나 지도자의 명령에 따라 움직인다. 설사 대중이 지도자들과 불화를 빚으면서 특정한 행동에 돌입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거의 언제나 대중이 지도자들을 오해하였기 때문에 발행한 것일 뿐이다(p193)... 대중은 가끔 의식적으로 봉기하려 하지만, 지도자들은 언제나 그들의 열정에 재갈을 물린다. 당 대중이 능동적인 배우로 역사의 무대 위로 등장하여 정당 과두 세력의 권력을 제거하는 때는, 오로지 지배계급이 혼망 속에서 억합을 과도하게 증대시키는 경우뿐이다.(p194) <정당사회학> 中


 저자 미헬스는 <정당사회학>을 통해 정권을 잡기위한 조직화가 소수에게 권력을 집중시키게 된다는 것을 주장한다. 그리고, 일반 대중은 자신의 요구를 관철하는 방법도 의지도 없기 때문에 기꺼이 소수 지배자에게 권력을 위임하며 권력의 맛을 본 지배자들은 경제, 정치 권력을 유지하고 세습하기 때문에 결국 민주주의는 과두정으로 옮겨갈 수 밖에 없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결국 <정당사회학>은 민주주의에 대한 우울한 예언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후에 미헬스는 1914년에 이탈리아로 귀화하고,  파시즘(fascism)에 빠지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러한 그의 인생은 <정당사회학>과 무관하게 보이지 않는다.


 [사진] 무솔리니와 히틀러(출처 : 위키백과)


 <정당사회학>은 이처럼 민주주의에 대한 음울한 전망을 내놓고 있지만, 이러한 전망이 현재도 유효할 것인가에는 의문이 따른다. 소수에게 정보가 과점되던 과거와는 달리 정보가 다수에게 공개되고, 이에 대한 반응도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요즘 현실 속에서 미헬스의 '무지한 대중'이라는 전제는 절반 정도는 맞지 않아 보인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 또한 하게 된다.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야고 1:22)


 민주주의 제도 아래서 대중의 의사는 선거를 통해 나타나게 된다. <정당사회학>과 달리 대중이 무지하지 않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는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인 실행과 실천이 필요할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유권자의 적극적인 투표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보루라 여겨진다.

 


 얼마 전 tumblbug을 통해 6.13 지방선거 가이드인 <전국투표전도 2018> 제작을 후원했고, 책자를 받아 보았다. 현재 지방선거의 이슈와 지역별 투표율 등의 정보가 실려있는 책자 제작 후원은 예상보다 많은 후원을 받고 성공리에 종료되었다. 이러한 유권자들의 관심이 살아 있을 때 민주주의가 지켜질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홍보 광고 같은 결론을 마지막으로 이번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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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6 23: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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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7 06: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1 23: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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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2 05: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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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8-06-16 1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풀뿌리 민주주의, 지방자치 확대가 모색되는 거 아니겠나요? 정당, 중앙집권식으로 체제를 만들면 대중의 힘이 미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작은 정치로 분할시키면 더많은 대중이 참여할 수 있겠죠. 지금 체제도 결국 권력자들이 만들어놓은 판이고 뿌리가 깊어 궤도 수정이 어렵긴 하다고 생각하지만 다수의 의지가 있다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겠죠.

겨울호랑이 2018-06-16 11:02   좋아요 1 | URL
저 역시 AgalmA님 말씀처럼 지금 당장은 기득권의 높은 벽에 가로막혀있지만, ‘우공이산‘의 마음으로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한 걸음씩 걸어간다면 언젠가는 다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직업으로서의 정치 나남신서 1190
막스 베버 지음, 전성우 옮김 / 나남출판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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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스 베버(Maximilian Carl Emil Weber, 1864 ~ 1920)는 <직업으로서의 정치 politik als Beruf>를 통해 정치가(政治家)에게 필요한 자질에 대해 말하고 있다. <직업으로서의 정치>는 어떤 구조로 되어 있을까. 글의 서두에서 주로  '직업 정치가'의 등장배경과 근대적 정당의 형성과정을 설명하고 있으며 이로부터 시대의 요청에 부응하는 직업 정치가의 자질이 무엇인가를 도출한다. 그리고, 뒤이어  '윤리(倫理)' 문제가 제기된다. 


'어떤 종류의 인물이라야 감히 자기 손으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움직여도 좋은가라는 문제는 윤리적 문제이기 때문입니다.(p105)'


  베버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저자답게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가의 자질과 윤리의 문제를 결합하여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정치가의 모습을 끌어내고 있다. 이번 리뷰를 통해서는 <직업으로서의 정치>에 나타난 정치인의 모습을 살펴보도록 하자.



[그림] 막스 베버( 출처 : 위키백과)


1. 직업 정치가의 자질


 막스 베버는 정치가에게 중요한 세 가지 자질은 열정, 책임감, 균형감각으로 지목하고 있다. 그렇지만, 과연 이 세 가지 자질이 정치인에게만 필요한 덕목일까?


 '정치가에게는 주로 아래 세 가지 자질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열정, 책임감 그리고 균형감각이 그것입니다. 여기서 열정이란 하나의 대의 및 이 대의를 명령하는 주체인 신, 또는 데몬에 대한 열정적 헌신을 의미하며, 그런 이상 이 열정은 객관적 태도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열정은 헌신과 동시에 바로 이 대의에 대한 우리의 책임의식을 일깨우는 열정이라야 하며...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 균형감각입니다.(p106)'


  사실, 이상의 세 자질은 모든 직업군에 있어 공통적으로 중요한 자질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정치가가 다른 직업에 있는 이들과 차이가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 차이는 합법적인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력(權力)의 추구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 경우에도 개인의 이익을 목적으로 하거나, 권력 그 자체를 숭배할 경우에는 문제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가의 신념(信念) 문제가 제기되고, 이와 연계되어 정치가의 윤리 문제 또한 언급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권력추구가 <대의>에 대한 전적인 헌신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성을 결여한 채 순전히 개인적 자기도취를 목표로 하는 순간, 그때부터 정치가-직업의 신성한 정신에 대한 배반이 시작됩니다.(p108)... 비록 권력은 불가피한 수단이고 권력지향은 모든 정치행위의 추동력 가운데 하나이지만, 순전히 권력 그 자체를 숭배하는 모든 행위는 정치력을 왜곡시키는 가장 해로운 행태입니다.(p109)'


 '정치가의 권력지향과 권력사용의 목적인 이 대의가 어떤 내용의 것이어야 하는지라는 것은 신념의 문제입니다... 그는 하나의 <이념>에 헌신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으며 아니면 이념에 헌신한다는 이런 생각 자체를 원칙적으로 거부하면서 일상생활의 외적 목표에 헌신하고자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경우이든 하나의 신념이 있어야만 합니다.(p111)'


2. <절대윤리>와 <정치>


 절대윤리는 크게 '신념윤리(올바른 행동을 하고 결과는 신에게 맡기는 원칙)'와 '책임윤리(우리 행동의 예견가능한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는 원칙)'으로 나뉠 수 있다. 


 '<결과>를 중시하지 않는 윤리, 그것이 곧 절대윤리입니다.(p120). 윤리적으로 지향된 모든 행위는 아래와 같은 두 가지 서로 전혀 다른, 화합할 수 없이 대립적인 원칙 가운데 어느 하나에 따라 수행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하나는 <신념윤리적> 원칙이고 다른 하나는 <책임윤리적> 원칙입니다.(p121)'


 다만, 현실에서 '선(善)-악(惡)'의 문제는 '목적-수단'의 문제와 결합되어 나타나기 때문에 현실에 대한 냉철한 판단이 필요하다. 여기에 정치인 자신 뿐 아니라 자신의 추종자들의 행동 역시 정치가의 성패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현실이다. 정치인은 이러한 점을 잘 고려하여 처신을 해야하 것이다. 정치는 모든 폭력성에 잠복해 있는 악마적 힘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다.


 '세계의 그 어떤 윤리도 피해갈 수 없는 사실은, <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우리는 수많은 경우에 도덕적으로 의심스럽거나 위태로운 수단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으며, 부정적 부작용의 가능성 또는 개연성을 감수할 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윤리적으로 선한 목적이 윤리적으로 위태로운 수단과 부작용을 <정당화>할 수 있는지는 세계의 그 어떤 윤리도 말해 줄 수 없습니다.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수단은 (폭력적) 강제력입니다.(p123)'


 '정치가의 행위에서는, 선한 것에서는 선한 것만이, 악한 것에서는 악한 것만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정반대일 경우가 흔하다는 사실도 매우 잘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자는, 정치적으로는 정말 어린아이에 불과합니다.(p127)'


 '지도자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추종자들 -그가 필요로 하는 홍위병, 밀정들, 선동가들 등-에게 상기한 보상들이 지속적으로 보장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따라서 그가 이러한 조건하에서의 활동을 통해 실제로 무엇을 성취할 수 있을지는 그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추종자들의 행위에 깔린, 윤리적으로 대부분 저열한 동기들에 의해 결정되는 것입니다.(p132)'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 특히 정치를 직업으로 삼겠다는 사람이면 누구나 상기한 윤리적 역설들을 자각하고 있어야 하고, 또한 이 역설들의 중압에 눌려서 그 자신이 변질된다면 그것은 자신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어야 합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는 모든 폭력성에 잠복해 있는 악마적 힘들과 관계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p135)'


3. 정치인 : 정치에 대한 소명을 가지고 있는 자


 결론적으로, 정치인은 열정, 책임감, 균형감각을 기본 자질로 갖춘 이로서 자신의 신념에 따라 정치적 행위를 하되, 공공의 이익에 부합할 수 있도록 헌신할 수 있는 자(者)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정치인의 신념은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를 조화시키는 윤리적인 신념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덕목을 갖췄을 때 그는 정치인으로서의 소명(vacation)을 가지고 있다고 베버는 주장한다.


 '정치는 확실히 머리로 하는 것입니다만, 머리로만 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 점에서 신념윤리가들의 입장은 전적으로 옳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신념윤리가로 행동하는 것이 옳은 지, 아니면 책임윤리가로서 행동하는 것이 옳은지 여부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우리에게 지시할 수 없습니다.(p138)'


 '이렇게 볼 때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는 서로 절대적 대립관계가 아니라 보완관계에 있으며 이 두 윤리가 함께 비로소 참다운 인간, <정치에 대한 소명>을 가질 수 있는 인간의 본질을 이루는 것입니다.(p139)'


 <직업으로서의 정치>는 독일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직후 이루어진 강연 내용을 기초로 저술된 책이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막스 베버는 근대 정당 정치의 역사를 통해 정치인의 자질과 신념의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 패전(敗戰) 이후의 극심한 혼란 상에서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한 방향성에 대한 응답을 우리는 막스 베버의 글을 통해 확인하게 된다. 당대 석학(碩學)의 조언은 전후 독일 정치에 도움이 되었을까? 


 '정치란 열정과 균형감각 둘 다를 가지고 단단한 널빤지를 강하게 그리고 서서히 뚫는 작업입니다... 그리고 지도자도 영웅도 아닌 사람이라 할지라도, 모든 희망의 좌절조차 견디어낼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한 의지를 갖추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오늘 아직 가능한 것마저도 달성해내지 못할 것입니다. 자신이 제공하려는 것에 비해 세상이 너무나 어리석고 비열하게 보일지라도 이에 좌절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어떤 상황에 대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고 말할 능력이 있는 사람, 이런 사람만이 정치에 대한 <소명>을 가지고 있습니다.(p142)'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공감이 가는 말이지만, 전후(戰後) 독일의 선택을 살펴본다면, '윤리'에 대한 진지한 고민없이 '단단한 의지'와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대한 일방적인 추종과 선택이  '나치 독일'이라는 비극을 낳게 한 것은 아닐런지.. 그런 관점에서 정치인의 세 가지 자질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균형감각'이 아닐까 생각을 정리하며 이번 리뷰를 마친다.


[사진] 독일 제3제국(출처 :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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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12 11: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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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12 13: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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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10-13 23: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날씨가 갑자기 기온이 내려가서 추운 가을이 되었어요.
아침엔 더 춥고요.
겨울호랑이님, 감기 조심하시고, 편안한 금요일 밤 되세요.^^

겨울호랑이 2017-10-14 08:09   좋아요 1 | URL
^^: 날이 이제는 정말 춥네요. 추석 연휴에는 반팔옷을 입었었는데, 마치 옛날 같네요. 서니데이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AgalmA 2017-10-15 0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크아... 히틀러 찬양 다큐 한 장면인지 사진인지 사진 구도가 예술이네요.
<공산당 선언> 서설 한 대목이 생각나는군요. 마르크스-엥겔스가 청년헤겔학파 인본주의의 교화적, 준종교적 성격 비판하다가 자신들이 추구하는 인본주의와 사회주의와 윤리 문제도 거칠게 재단하게 된 딜레마가.... 균형감각 맞추기 쉽지 않죠^^;; 맞췄다고 생각했는데 모순 드러나면 화들짝ㅎㅎ 늦게라도 알면 다행인데 우기다가 균형이 안드로메다 가는 일이......

겨울호랑이 2017-10-15 09:18   좋아요 1 | URL
^^: AglamA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종교 등 형이상학적인 것을 비판하면서 유물론을 주장했던 ‘공산주의‘가 또 하나의 종교가 된 딜레마는 참 그렇습니다. 어떻게 보면 마르크스-엥겔스 역시 현상을 지칭하는 단순 명사를 하나의 ‘실체‘로 오인해서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 같기도 합니다. ‘실체 없는 허상‘을 실체처럼 비판하다보니, 정작 자신도 ‘허상‘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아닌지. 거칠게나마 20세기 이데올로기 문제는 대개 이러한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리바이어던 1 - 교회국가 및 시민국가의 재료와 형태 및 권력 나남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서양편 241
토마스 홉스 지음, 진석용 옮김 / 나남출판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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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바이어던 Liviathan>은 토머스 홉스 (Thomas Hobbes, 1588 ~ 1679)의 저서(著書)이며, '만인(萬人)에 대한 만인의 전쟁 The war of all against all'의 출처로 일반에게 유명한 책이다. 다른 고전과 마찬가지로 이름만 유명한 <리바이어던>은 1권과 2권으로 나뉘는데, 1권에서는 인간과 코먼웰스(commonwealth)에 대해, 2권에서는 기독교 코먼웰스와 어둠의 나라에 대해 언급한다.


'나는 통치자를 리바이어던(Liviathan)에 비유했는데, 이 용어는 <욥기> 마지막 2개 절[33~34]애서 가져온 것이다. 하느님은 "리바이어던"의 강대한 힘을 일컬어, 교만한 자들의 왕이라고 하였다. "땅 위에는 그것과 겨룰 만한 것이 없으며, 그것은 처음부터 겁이 없는 것으로 지음을 받았다. 모든 교만한 것들을 우습게보고, 그 거만한 모든 것 앞에서 왕 노릇을 한다.'(p412)



[그림] 리바이어던 (출처 : http://starplace1.tistory.com/entry)


1. 리바이어던의 탄생


그렇다면, 리바이어던은 왜 등장하게 되는 것일까? 홉스는 이것을 인간이 미래를 걱정하는 것에서 원인을 찾는다. 그리고, 이러한 걱정은 '종교'가 생겨난 자연적 원인이기도 하다.


'인간은 누구나, 특히 남달리 신중한 사람은 프로메테우스(신중한 사람)와  같은 상태에 놓이게 된다. 프로메테우스는 광막한 코카서스 언덕에 결박된 채 날마다 독수리 한 마리가 그의 간을 쪼아 먹는다. 밤이 되면 독수리에게 쪼인 만큼의 간이 다시 회복된다. 앞날을 멀리 내다보고 걱정하는 인간 역시 프로메테우스와 같은 고통을 느끼게 된다. 죽음이나 빈곤이나 혹은 이런 저런 재앙의 공포 때문에 잠시라도 편할 날이 없다... 마치 어둠에 있는 것처럼 원인들에 대해 알지 못하는한, 항상 인간을 따라 다니는 이 영원한 공포는 어떤 대상을 필요로 한다.'(p150)


공포는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에, 인간은 항상 불안한 상태에 놓여 있다. 여기에 '인간의 평등성'이라는 문제가 추가된다.  홉스는 인간들 간에는 '도토리 키재기식'으로 육체적, 정신적 능력 차이가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 누구도 절대우위(絶對優位)의 상태에 있지 못하기 때문에 상호 불신감은 더 커져간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상황에서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에 빠지게 되는데, 우리는 이를 영화 <배틀로얄 Battle Royal(2002)>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고등학교 한 학급 친구들끼리 죽고 죽이는 상황을 소재로 한 이 영화를 통해 우리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의 비참함을 깊이 느끼게 된다. 



[사진] 영화 배틀로얄( 출처 : http://www.koreafilm.co.kr/movie/review/battle_royale_review.htm)


'자연은 인간이 육체적, 정신적 능력의 측면에서 평등하도록 창조했다. 간혹 육체적 능력이 남보다 더 강한 사람도 있고, 정신적 능력이 남보다 뛰어난 경우도 있지만, 양쪽을 모두 합하여 평가한다면, 인간들 사이에 능력 차이는 거의 없다.'(p168)


'이와 같이 상호간에 불신이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누구라도 예상되는 위협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안전하게 보존하기 위한 합리적 조치를 강구하게 된다. 그것은 곧 폭력이나 계략을 써서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을 오랫동안 지배하여 더 이상 자신에 대한 위협이 되지 못하도록 무력화하는 일이다.(p170)... 이로써 다음과 같은 사실이 분명해진다. 즉 인간은 그들 모두를 위압하는 공통의 권력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는 전쟁상태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 전쟁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이다.'(p171)


그 결과 사람들은 자신의 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방안으로 다른 이들을 지배하는 수단을 생각하게 된다. 그 수단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법(law)'이다. 홉스에 의하면 '법(法)'은  사회구성원간 피해가 없도록 하기 위한 공인된 규칙이다.


'인간이 그러한 가혹한 상태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는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 가능성의 일부는 인간의 정념에서, 일부는 인간의 이성에서 생겨난다... 이성은 인간들이 서로 합의할 수 있는 적절할 평화의 규약(規約 article)들을 시사한다. "자연법"(Laws of Nature)이라고 불러도 좋을 이러한 규약들...'(p175)


'법은 공인된 규칙이기 때문에 그 효용은 인민의 자유의사에 따른 활동을 구속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충동적인 욕구나 성급함, 경솔함으로 인해 다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그들을 지도하고, 그들의 행동을 제한하는데 있다.'(p446)


그리고, 인간은 법을 통해 하나의 자연인 또는 사회적 인격에 그 힘을 집결시킬 때 가장 큰 힘을 획득하게 된다. 그 결과로 사회적 합의에 의해 때 군중의 의사를 위임받은 괴물  '리바이어던'은 탄생하게 된다. 마치 상법(商法)에서 회사(會社)에 법인격(法人格)을 부여하는 것처럼 리바이어던은 그 자체로 하나의 생명이 된다. (이런 면에서 자본주의 한국사회에서 리바이어던은 '재벌'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인간의" 힘(power)은 미래에 분명히 선(善)이 될 것으로 보이는 것을 획득하기 위하여 그가 현재 가지고 있는 수단이다.(p121)... 인간의 힘 중 가장 큰 것은 다수의 인간이 동의하여 단 한 사람의 자연인 또는 사회적 인격에 그 힘을 결집하는 경우이다.'(p122)


'군중은 한 사람 또는 하나의 인격에 의해서 대표될 때, 만약 그것이 그 군중 개개인 전부의 동의에 의해 그겋게 된 경우, 하나의 인격이 된다. 왜냐하면 "하나의" 인격을 이루는 것은 대표자의 "단일성(unity)"이지, 대표자의 단일성은 아니기 때문이다. 인격을, 그것도 유일한 인격을 지니는 것은 대표자이다. 그렇지 않으면 군중의 "단일성"은 이해될 수 없다.'(p221)


 2. 홉스의 기본 전제와 로봇 공학 3원칙


홉스는 '인간은 평등하다'는 기본 전제와 더불어 다음의 2가지 원칙을 추가로 제시한다. '평화를 추구하라'와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자신을 방어하라'는 원칙이 바로 그것이다. 


'다음과 같은 이성의 계율 혹은 일반적 원칙이 등장한다. "모든 사람은, 달성될 가망이 있는 한, 평화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평화를 달성하는 일이 불가능할 경우에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어떤 수단이라도 사용해도 좋다." 이 원칙의 앞부분은 자연법의 기본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서 "평화를 추구하라"는 것이고, 뒷부분은 자연권의 요지를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자신을 방어하라"는 것이다.'(p177)


아이작 아시모프((Issac Asimov)의  '로봇공학의 삼원칙(Three Laws of Robotics)'을 연상시키는 홉스의 원칙 속에서 사회적 인격체 리바이어던은 탄생된다. 상식에서 괴물이 태어날 수 있다는 사실 속에서 우리는 한나 아렌트( Hannah Arendt, 1906 ~ 1975)가 말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 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참고로, 아시모프의 로봇공학 3원칙은 다음과 같다.


제1원칙 : 로봇은 인간에 해를 가하거나, 혹은 행동을 하지 않음으로써 인간에게 해가 가도록 해서는 안 된다.

제2원칙 : 로봇은 인간이 내리는 명령들에 복종해야만 하며, 단 이러한 명령들이 첫 번째 법칙에 위배될 때에는 예외로 한다.

제3원칙 : 로봇은 자신의 존재를 보호해야만 하며, 단 그러한 보호가 첫 번째와 두 번째 법칙에 위배될 때에는 예외로 한다.


3. 공포와 사회계약의 이행


홉스는 사회계약을 이행하기 위해서 '공포'를 유발하는 것이 필요하며, 자유롭게 이루어진 계약과 마찬가지로 공포에 의해 이루어진 계약 역시 유효하다고 판단한다. 그런 의미에서 '강압에 의해 이루어진 행위는 결격사유가 있기 때문에 효력이 없다'고 보는 현대법의 사상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말의 힘만으로는 인간이 스스로 맺은 신의(信義)계약을 이행하도록 만들 수 없다... 결국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정념은 공포심 하나뿐이다.'(p193)


'코먼웰스가 존재한다 하더라도, 강도의 협박에 못 이겨 돈을 주기로 한 경우에는, 시민법이 그 강요된 채무를 면제해 주기 전까지는 그 돈을 지불할 의무가 있다. 자유의사에 의해 어떤 일을 하기로 계약한 것이 합법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공포 때문에 어떤 일을 하기로 계약한 것도 역시 합법적인 것이다. 계약이 합법적으로 이루어진 이상, 그 계약을 위반하는 것은 합법적인 일이 아니다.'(p189)


 홉스의 기본전제는 부분적으로 오늘날 우리 헌법에도 반영되고 있다.  '인간의 평등성'(헌법 11조)과 '인간의 평화추구'(헌법 98조 평화통일), '개인의 방어권'(헌법 37조 자유와 권리 보장)' 등의 형태로 반영되는 홉스의 전제는 개별적으로는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 다만,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와 같이 전투적인 어휘는 다분히 마키아벨리즘(Machiavellism)을 연상케 하며, 이러한 극단성으로부터 '리바이어던'이 도출된다고 생각된다. 


'이 자연법 속에 정의(正義 justice)의 원천이 있다. 신의계약이 성립되기 전에는 어떠한 권리도 양도된 것이 아니며, 따라서 만인이 만물에 대하여 권리를 가지기 때문에 어떤 행위도 불의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신의계약이 맺어지면 이것을 깨뜨리는 행위는 "불의(不義 injustice)란 간단히 말해서 "신의계약의 불이행"을 말한다. 불의가 아닌 것은 무엇이든 정당한 것이다.'(p194)


비록, 홉스의 사상이 이런 극단성으로부터 도출되었지만, <리바이어던>을 통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만은 아니다. <리바이어던1>에는 인간의 자연상태를 설명하기 위해 인간의 이성 추구, 학문 목적, 개인의 감정 등을 설명하고 있으며, 1권 전체 내용의 3분의 1정도의 양을 할애하고 있다. 기회가 되면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561 ~ 1626)의 <학문의 목적>, 스피노자(Benedictus de Spinoza, 1632 ~ 1677)의 <에티카>과 함께 내용을 비교해서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이외에도, 사회 계약 측면에서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러 시사점을 던져준다. 


'대리인 또는 대표자에게 위임된 권한이 무엇인지 모르고서 그와 신의 계약을 체결하는 자는 위험을 감수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자기가 본인이 아닌 신의계약에 대하여는 의무를 지지 않으며, 따라서 위임한 권한에 반하여 혹은 그 범위를 넘어서서 체결한 신의계약에 대해서도 의무를 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p218)


대의민주주의 제도에서 우리가 대표자에게 무엇을 위임하는 지도 모르고 그에게 권한을 위임한다면 어떤 문제가 있는지 홉스는 분명히 경고하고 있다. 이 리뷰를 쓰는 시점은 2017년 5월 대선을 눈 앞에 둔 시점이다. 지금 시점에 홉스의 경고는 더욱 마음에 와 닿는다. 시대를 넘어선 충고가 담겨있기에 <리바이어던>은 우리 시대 고전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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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4-27 11: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도 우리 사회는 사회 통합과 평화라는 명분으로 ‘공포심’을 조장합니다. 사드 기습 배치는 대선 흐름의 판도를 뒤집어서 보수 세력의 승리를 유도하려는 꼼수로 느껴졌습니다.

겨울호랑이 2017-04-27 11:57   좋아요 1 | URL
그렇지요, cyrus님 말씀처럼 ‘공포‘는 정권을 유지하는 보수로 가장한 수구세력의 오래된 통치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여기에 끊임없이 ‘위기‘를 강조해서 비상경영을 상시경영체제로 유지하는 기업 운영 방식 역시 ‘공포통치‘의 다른 이름이라 생각되네요...

2017-04-27 1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27 1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커피소년 2017-04-27 13: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배틀로얄.. 참 의미있게 봤습니다.. 사람들은 잔인하다.. 황당하다.. 엽기적이라면서 비판했지만 영화가 의도하고자 하는 것을 읽지 못 했거나 인정하기 싫었던 것이겠지요,, 정작 폭력적인 성향의 사람들이 배틀로얄 영화를 혐오했거든요.. 저는 배틀로얄 그 영화를 수 십번 넘게 반복해서 봤습니다..

우리 모두 거대한 전투장에 갇혀 있습니다.. 세상에 태어나 적을 만들고 싸워 이겨 살아남을 수 밖에 없는 약육강식의 게임이 참여하게 된 것.... 그것의 부조리함.. 불편함을 영화를 통해 재차 느끼게 되었습니다.. 영화를 보다보면 왜 우리는 독해져야 하고 폭력에 무뎌져야 했는가? 도대체 왜..? 라는 질문이 던져지죠.. 배틀로얄.. 굉장히 철학적인 영화입니다.. 세상은 아는만큼 보이는 것이 아니라 공감하는 만큼 보이는 것이 아닐까 싶더군요..

겨울호랑이 2017-04-27 17:28   좋아요 1 | URL
저는 만화책으로 먼저 읽은 후 영화를 봤습니다.. 개인적으로 만화가 더 참혹했고, 더 많은 메세지를 던져주는 것 같습니다.
섬 전체가 피범벅이 될만큼 많은 피로 덮힌 이 영화속에서 메세지를 찾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김영성님처럼 여러 차례 작품을 접한 후에야 피를 걷고 내용을 파악할 수 있을듯 합니다^^:

커피소년 2017-04-27 18:24   좋아요 1 | URL
아 만화책은 더욱 리얼하더군요.ㅎㅎ배틀로얄 만화, 영화를 모두 접한 분과 실제 대화를 나누는 것은 처음이네요.ㅎㅎ 저도 작품의 메시지를 완벽하게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아니지만 눈을 가리고 무조건적으로 외면하는 편은 아닙니다,, 아마도 그런 이유가.. 어렸을 때부터 만화를 많이 봤던 것이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ㅎㅎ 일본 애니 많이 봤죠..ㅎㅎ 보면 겉으로는 유치해보여도 철학적인 만화가 많지요.. 만화책을 많이 읽으시는 겨울호랑이님께서는 그러한 사실을 아주 잘 아실 것이라 생각됩니다..^^ 뭐든지 겉으로 쉽게 드러나는 것보다 내면의 깊음이 중요한 것이겠죠...ㅎㅎ

겨울호랑이 2017-04-27 18:27   좋아요 1 | URL
^^: 네 영화는 시간 관계상 많이 편집되어 흐름이 많이 끊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김영성님께서는 일본어를 잘 하시니 직접 원서로 읽으셨겠습니다. 일본어가 주는 미묘한 맛을 느끼셨을 것 같아 많이 부럽습니다.^^:

커피소년 2017-04-27 20:33   좋아요 1 | URL
안타깝네요,, 시간 관계상 많은 내용을 영화화 할 수 없으니.. 그러한 면이 장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만화를 통해 더 깊고 많은 내용을 접하신 분들이라면 그러한 면이 아쉽다라는 생각이 들 것 같습니다..ㅎㅎ 배틀로얄을 미국드라마처럼 드라마화 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ㅎㅎ

일본어를 잘하는 편이 아니라서 원서를 완벽하게 해석하는 것은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ㅎㅎ 가장 어려운 것은 역시나 고유명사.. 해석하기가 매우 힘들더군요... 일본어가 주는 미묘한 맛.. 예.. 한국어 해석과는 다른 느낌일겁니다.. 일본 작품은 확실히 일본어로 된 책을 읽는 것이 작품이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AgalmA 2017-04-29 22: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간은 어떠한 상황에서든 위계를 만듭니다. 모든 생물종, 국가, 가족, 학교, 직장, 군대 어떠한 관계에서든... 지구조차도 우주의 중심으로 보지 않았습니까ㅎ
소위 선에 속하는 사랑은 법이 되지 못하고(포괄적 윤리) 공포를 법으로 두어 세상이 더 이 지경인지도요ㅎ 역사를 다시 되돌린다 해도 그렇겠지요. 힘의 파괴력, 죽음... 그것을 생과 삶의 대칭으로 뒀지만 사실 그 힘이 더 위력적인 건지도요. 기필코 뚫고야 마는 창이라고나 할까.

겨울호랑이 2017-04-29 22:57   좋아요 1 | URL
인간이 사랑보다 공포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생존을 위한 본성에서 온 것은 아닐까 하네요. 좋은 것에서 나빠져도 중간은 가지만, 나쁜 것에서 더 나빠지면 생존할 수 없기에 ‘공포정치‘가 더 효과적인 것 같습니다.. 요즘처럼 먹을 것이 풍부한 시대에도 몸은 굶주림을 두려워해 탄수화물을 지방으로 변화시켜 저장하는 것도 생존을 위한 다른 대응이라는 생각도 해보게 되네요^^:

AgalmA 2017-04-29 23:03   좋아요 1 | URL
네. ‘생존을 위한 본성‘ 동감입니다. 그게 사회화 과정을 거치며 ‘나를 위한 본성‘으로 더욱 견고해진다는 게 문제적이겠죠. 축적된 이데올로기는 더욱 교묘히 방향키 역할을 할 것이고. 사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삶의 가치도 크지 않겠죠. 재밌어요. 생물의 삶이란. 훗.

겨울호랑이 2017-04-29 23:25   좋아요 1 | URL
^^: 마치 삶을 초월한 절대자 같이 관조하시네요 ㅋㅋ AgalmA님 즐거운 토요일 밤 되세요^^:
 
파놉티콘 : 제러미 벤담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64
제러미 벤담 지음, 신건수 옮김 / 책세상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파놉티콘(Panopticon)'은 영국 공리주의자 제러미 벤담 (Jeremy Bentham, 1748 ~ 1832)에 의해 설계된 감옥을 의미한다. <파놉티콘>에서 벤담은 그가 설계한 이상적인 감옥을 간결하면서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글 서두에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파놉티콘을 묘사한다.


[그림] 파놉티콘 (출처 : 허핑턴 포스트)


'여러분에게 제안하는 감옥 maison de penitence은 원형 건물이다. 어떠면 이것은 한 건물 안에서 다른 하나를 넣은 두 채의 건물이라고 말하는 것이 나을지 모르겠다. 감옥 둘레에는 둥근 모양의 6층짜리 바깥 건물이 있다. 이곳에 죄수들의 수용실이 배치된다. 수용실 내부는 두껍지 않은 쇠창살로 되어 있어 한눈에 [안을] 볼 수 있으며, 수용실은 문이 안쪽으로 열린다. 각 층에는 좁은 복도가 있으며, 이 복도는 하나로 통해 있다. 각 수용실의 문은 이 복도로 나 있다. 중앙에는 탑이 있다. 그곳에 감독관들이 머문다. 이 탑은 3층으로 나뉘어 있다. 각 층은 수감자 수용실들을 2층씩 내려다보도록 구성되어 있다. 또한 감시탑은 바깥을 환히 내다볼 수 있는 발로 가려진 복도로 둘러싸여 있다. 이 장치 [발]로 인해 감독관들은 [수감자들에게] 잘 보이지 않으면서 수용실 전체를 구석구석 감시할 수 있다.... 이 감옥의 본질적인 장점을 한 단어로 표현하기 위해, 진행되는 모든 것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는 파놉티콘 Panoptique/ Panopticon 이라고 부를 것이다.'(p23)


<파놉티콘>에서는  감옥의 외양, 새로운 감옥의 장점, 수감자들의 관리, 수감자들의 교육에 관한 사항 등이 정리되어있다. 본문 70페이지 남짓 되는 이 책이 의미를 가지는 것은 이 책에 벤담의 사상(공리주의)이 현실적으로 적용되는 방안이 담겨 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파놉티콘은 감옥 건축 계획이다. 그러나 이것은 완벽한 감시를 통해 수감자를 교정하려는 목적만으로 계획된 것은 아니다. 파놉티콘은 벤담이 일생동안 연구하고 생각해온 것, 즉 법률이나 구호 제도, 경찰 체계, 특히 교육과 노동, 경제 제도를 현실에서 구체화할 수 있는 표준 모델이다. 벤담은 파놉티콘을 통해서 모든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p71 '해제 中)


FTA(Free Trade Agreement)가 신자유주의(新自由主義)의 현실적 적용모델이라면,  '파놉티콘'은 벤담으로 대표되는 공리주의(功利主義, Utilitarianism)의 현실적 적용 모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벤담이 제시한 파놉티콘은 단순한 수감시설이 아니라 복합적인 기능(처벌, 교육, 복지 보호)을 제공하는 공간(空間 space)이다. 중앙의 감시탑을 중심으로 일련의 관계가 형성되는 파놉티콘을 보면 자연스럽게 '중심'과'주변'으로 연결된 '제국(帝國)'의 모습이 연상된다.

 


[그림] 로마 제국의 도로망(출처 : 위키백과)


[사진] 로마 제국 도로 유적(출처 : http://blog.joins.com/media/folderlistslide.asp?uid=cjd23&folder=9&list_id=5024425)


로마는 제국을 위와 같이 '가도(街道 Via)'로 연결하여 제국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었다. 가도를 통해 제국 내 시민들과 물자가 원활하게 이동할 수 있었고, 이민족의 침입 시에는 가도를 통해 병력을 신속하게 투입할 수 있었던 것은 파놉티콘 내에서 효과(效果)적인 제도의 운영과 연관되는 것 같다. 중앙집권적인 제도의 운영 역시 제국(Empire)과 파놉티콘의 공통점이라 하겠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중심부-주변부'로 나뉘어져 수탈과 침략으로 얼룰진 '제국의 시대'는 일종의 거대한 파놉티콘을 건설하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제국주의'와 '공리주의'와 연결은 다른 부문에서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책에 서술된 벤담이 생각하는 감옥의 목적을 보면, 선진국이 이른바 후진국을 계몽(啓蒙)한다는 명목으로 수행한 여러가지 침탈(侵奪)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러한 제도가 수행해야 하는 목적에 대해 간략하게 나마 상기할 필요가 있다. 즉 고통의 본보기를 통해 범죄 모방 불식, 수감 기간 동안 수감자의 무례함 예방, 수감자 사이의 예의 유지, 수감자의 거주지 청결과 건강 관리, 탈옥 예방, 석방 후 생계 수단 마련, 필요한 교육, 올바른 습관 형성, 부당한 대우에서 보호, 처벌의 목적에 위배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복지 제공...'(p35)


'쾌락'을 '선(善)'으로 생각하고 이를 계량화하여 최대의 쾌락을 추구하던 공리주의자들의 주장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그래서, 소속집단의 최대가 되지 못한다면 고통(惡)을 받게 될 것이고, 악으로 규정될 위험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악'으로 규정된 집단의 범위를 확대하면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지'의 처지와 유사하지 않을까. 이러한 면에서 '제국주의'는 '공리주의'가 효율(效率)적으로 광범위하게 구현된 체제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직 공리주의에 대해서 깊이 있는 공부가 부족하기 때문에 조심스럽지만, 향후 공리주의자들의 저서를 읽을 때 이 부분에 대해서도 한 번 짚고 넘어가는 것도 좋을 듯 하다.


<파놉티콘>은 벤담이 꿈꿨던 공리주의 사회를 위한 격리된 유토피아(Utopia)다. 수감자들에게는 디스토피아(Dystopia)였겠지만. 책에서 설명되는 '파놉티콘'은 벤담 사상이 현실적으로 구현된 모델이기 때문에 공리주의의 이상향(理想鄕)이 어떤 곳인지 알려준다는 면에서 참고할만한 책이라 생각된다. 다만, <파놉티콘>은 벤담 본인에게는 이상적인 가치지만, 공감을 불러오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느낌은 예전에 플라톤(Platon BC 428 ~ BC 347)의 <국가 Politeia>를 읽을 때와 비슷했던 것 같다. 다만, 두 책의 중요한 차이가 있다면 전자(前者)는 단편(약 70페이지)이지만, 후자(後者)는 장편(약 580페이지)이라는 사실이다.

 

PS. <파놉티콘>을 수감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결코 이상향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안중근(安重根 1879 ~ 1910)의사가 순국하셨던 뤼순(旅順) 감옥의 모습에서 우리는 파놉티콘의 수감자와 제국주의 시대 식민의 처지를 느끼게 된다. (주의 : 안중근 의사가 수감되셨던 감옥은 하얼삔 감옥이 아니다.) 


[사진] 안중근 의사가 수감되었던 여순 감옥(출처 : 가톨릭 신문)


또한, 같은 원형구조이면서 그리스의 원형극장에서는 '중심-주변'의 또 다른 관계를 발견하게 된다. '감시와 통제'라는 '중심-주변'의 관계에서 서로 교감(交感)하는 관계가 우리가 추구해야할 진정한 가치가 아닐까 생각해보면서 이번 리뷰를 마친다.


[사진] 그리스 원혁 극장(출처 : http://m.blog.daum.net/bond1226/4267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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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7-04-07 18: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내용은 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쿨럭~--;)
이 리뷰 완전 좋은 걸요~.
한 백번쯤 ‘좋아요‘ 누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겨울호랑이 2017-04-07 19:00   좋아요 1 | URL
^^: 양철나무꾼님 감사합니다.ㅋ 이런 백번을 누르시면 ‘좋아요‘와 ‘좋아요 취소‘가 반복되면서 결국 ‘좋아요 취소‘가 될 것 같네요. 99번만 부탁드려요.ㅋ 양철나무꾸님 즐거운 주말 되세요.

AgalmA 2017-04-07 19: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요즘 한국의 실세들이 모두 교도소 가는 상황이라 특별 편성하신 건 아니지요ㅎ?
서대문 형무소 갔을 때 감정이 묘했습니다. 그건 종교적인 건물 갔을 때와도 비슷....

겨울호랑이 2017-04-07 19:42   좋아요 3 | URL
^^: That‘s a good point! 입니다.ㅋ <파놉티콘> 에서 [발]은 두 가지 역할을 합니다. 평소에는 격리의 공간이 되지만, 주말에는 [발]을 제거하게 된다면 바로 ‘교회‘의 역할 을 수행하게 된다고 벤담은 설명하네요.. 아마도 Agalma님께서 그런 부분을 서대문 형무소에 가셨을 때 느끼셨던 것 같습니다.

커피소년 2017-04-08 14: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파놉티콘..

저런 구조의 건물은 최악입니다..

예전에 보면서 매우 부정적으로 생각한 기억이 나네요..

파놉티콘,, 감시사회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대표적인 건물이 아닐까 싶더군요..

이유야 어찌되었던간에 개인의 기본 생활권에 대한 침해는 인권을 심하게 침해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보이고 싶지 않은 것들까지 적나라하게 누군가에게 보여지고 감시당한다면.. 그것만한 지옥이 없을 것 같습니다..

헬 조선이 문제인 것은 돈 많은 권력자들이 수감되는 방은 그들의 감추고 싶은 것에 대한 권리를 존중해주는지 가릴 것 다 가려주고 개인의 사생활을 존중해주는데 쥐뿔도 없는 사람들은 개인 권리를 모두 박탈당합니다.. 교도소 수감 생활에 공평함이 없습니다..

이래서야 법이 공정하다고 할 수 있는지요..

정말 억울하게 수감된 사람도 그런 취급을 당하는데 명백한 범죄사실이 존재하고 만인의 불행을 야기한 범죄자에게는 가장 좋은 방을 주고 황제수감생활을 하게 해줍니다.


겨울호랑이 2017-04-08 16:18   좋아요 2 | URL
그렇지요.. 한 명을 죽이면 살인자가 되지만 만 명을 죽이면 영웅이 된다고 했던가요. 그런 불공정은 처벌받는 감옥생활에서도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나와같다면 2017-04-08 20: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pan opticon

공리주의자 벤덤은 왜 행복을 만들어주는 어떤 것이 아니 감옥을 설계했을까요..?

시선의 불평등과 정보의 비대칭으로 결국에는 수감자 스스로가 스스로를 감시하게 되죠..
그 점이 무서운것 같아요

우리는 그들을 볼 수 없지만
그들은 우리를 보고 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7-04-08 20:32   좋아요 2 | URL
많은 이들의 이익(선)을 위해 악을 격리시키고 이들을 악에서 선으로 계도하기 위한 목적이라 생각되네요.. 벤담에게 그들은 타자화된 대상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서니데이 2017-04-11 20: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연의 사진이 달라졌네요.
겨울호랑이님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겨울호랑이 2017-04-11 20:06   좋아요 2 | URL
^^: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즐거운 저녁시간 되세요.

2017-04-13 15: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13 15:2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