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 스완네 집 쪽으로 2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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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되는 순간 사라지는 피아노곡과 사랑. 스완의 에바 페론 오데트. 시각, 청각, 촉각으로 돌아보는 과거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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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 - 열정과 광기의 정치 혁명
로버트 O. 팩스턴 지음, 손명희 옮김 / 교양인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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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시즘은 '공동체의 쇠퇴와 굴욕, 희생에 대한 강박적인 두려움과 이를 상쇄하는 일체감, 에너지, 순수성의 숭배를 두드러진 특징을 하는 정치적 행동의 한 형태이자, 그 안에서 대중의 지지를 등에 업은 결연한 민족주의 과격파 정당이 전통적 엘리트층과 불편하지만 효과적인 협력 관계를 맺고 민주주의적 자유를 포기하며 윤리적, 법적인 제약없이 폭력을 행사하여 내부 정화와 외부적 팽창이라는 목표를 추구하는 정치적 행동의 한 형태'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p487) <파시즘> 中


 로버트 O. 팩스턴(Robert O. Paxton, 1932 ~ )의 <파시즘 Fascism>은 역사 속에 나타난 히틀러(Adolf Hitler,1889 ~ 1945)와 무솔리니(Benito Andrea Amilcare Mussolini, 1883 ~ 1945)의 사례를 중심으로 파시즘을 정의한 책이다. <파시즘>이 대상으로 하는 전후 독일/이탈리아는 어떤 상황이었을까. 이번 리뷰에서는 이에 대해 살펴보고, 파시즘에 대해 다시 살펴보고자 한다.


 1. 외부로부터의 위협


 저자는 파시즘 등장의 배경으로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느끼는 위기감을 지적한다. 외부로부터의 위협과 불안한 사회구조. 저자에 따르면 이러한 내외 조건이 갖춰졌을 때 파시즘이 싹트게 된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은 1917년 2월과 10월에 일어난 러시아 혁명으로 인해 새롭게 등장한 공산주의(共産主義, Communism)를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1917년 이후 좌파는 1914년 이전에 했던 것처럼 세력을 모으면서 때를 기다리기만 하지 않았다.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로 위력적으로 보였던 볼셰비키 혁명의 선두에 서서 전 세계를 향해 전진해나가는 것은 매우 위협적이었다... 볼셰비즘이 울린 화재경보는 1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자유주의적 가치와 제도가 맞닥뜨린 곤경을 한층 더 가중시켜 비상 사태로 몰아넣었다. 의회, 시장, 학교라는 세 가지 핵심적인 자유주의적 제도들은 이 비상 사태에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다.(p114) <파시즘> 中


[사진] 무솔리니와 히틀러(출처 : https://www.smithsonianmag.com/history/how-journalists-covered-rise-mussolini-hitler-180961407/)


2. 위기에 취약한 사회시스템


 일반적으로 말하면, 자신의 입장을 확고하게 다진 모든 종류의 보수주의 체제는 파시즘이 권력을 획득하기에 좋은 환경이 못 되었다. 이들은 파시스트들을 무질서를 선동하는 세력으로 간주해 궤멸시키거나 파시스트들이 내세우는 이슈와 지지 세력을 선점해버렸다. 보수파들은 단독 통치가 가능한 상황이라면 파시스트들과 연합하지 않았다.(p255) <파시즘> 中


  제1차 세계대전 전후 독일에서도 사회주의社會主義, Socialism)운동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었다. 로자 룩셈부르크(Rosa Luxemburg, 1871 ~ 1919)와 베른슈타인(Eduard Bernstein, 1850 ~ 1932)으로 대표되는 사회주의자들의 대두는 전후 독일 사회에 새로운 충격을 가져왔지만, 기존 시스템들은 이러한 충격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이러한 사회의 위기 상황에서 기득권들의 선택은 '파시즘과의 연대'였다. 


 빌헬름 시대 독일에 대해 알 수 있는 사실은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근대성'에 반대하는 강력한 반유대주의 세력과 폭도가 많았다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위기에서 독일의 군대와 관료 사회에 대한 사법적/정치적 지배가 다른 유럽 국가들만큼 효과적이지 못했다는 사실이다.(p184) <파시즘> 中


 위기에 처한 것은 통치의 기술이었다. 좋은 집안 출신의 교육을 잘 받은 사람들이 사회적 명성과 존경에 의지해서 선거에 계속 재당선되어 나라를 다스리는 명망가의 지배 자체가 문제였던 것이다. 그 명망가의 지배가 '대중의 국민화'로 인해 거센 압력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p186) <파시즘> 中 


 보수파 지도자들은 파시즘이라는 대안을 선택했다.(p236)... 보수 세력은 한갓 오스트리아계 상병 출신인 히틀러나 풋내기 사회주의자 선동가인 무솔리니는 높은 자리에 앉는다 해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것이라고 계산하고 있었다. 교양있고 경험도 풍부한 보수 진영 지도자들의 기지가 없으면 정치를 이끌어갈 수 없으리라고 예상했던 것이다.(p241) <파시즘> 中


3. 그렇다면 왜 파시즘이었는가?


 저자는 파시즘이 '대중에 의한 정치'의 토대 위에서만 성립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민중(demos)에 의해 지배가 이루어지는 민주주의 체제 내에서 발생하는 정치 혼란은 파시즘이 세력을 확장할 수 있는 좋은 여건이 된다. 파시즘이 초기에 보여준 관대한 모습은 보수파들의 경계를 누그러뜨리기에 충분했고, 그 결과 기득권인 보수주의자들은 파시즘과 손을 잡게 되었다.


 파시즘(fascism)은 좌파의 계급 투쟁과 자유주의적 개인주의 및 입헌주의에 맞서기 위해 각 나라의 민족 문화에서 부흥, 통합, 정화와 같이 대중을 동원하기에 가장 용이한 주제를 찾아내려 했다... 파시즘은 자신들과 본질적으로 성향이 다른 지식인 식객들까지도 넓은 마음으로 환대했다.(p106) <파시즘> 中


 파시즘의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의 하나는 자유주의 질서의 위기였다. 파시즘이 암실에서 나와 공적인 무대로 가장 쉽게 진출했던 곳은 기존 정부의 기능이 형편없거나 아예 전무했던 곳이었다. 파시즘에 대한 토론의 장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내용은 파시즘이 자유주의의 위기를 기반으로 삼아 번성했다는 사실이다.(p185) <파시즘> 中


 파시즘의 필수적인 전제조건이 '대중 정치(mass politics)'다. 좌파에 대항하는 대중 운동으로서 파시즘은 시민이 정치에 참여하기 이전에는 아예 존재할 수 없었다.(p110)... 보수주의자들이나 신중한 자유주의자들과는 달리 파시스트들은 결코 대중을 정치 밖으로 몰아내려 하지 않았다.(p112) <파시즘> 中


 무솔리니와 히틀러의 집권 과정에서 필연적인 요소는 아무것도 없었다... 자유주의 전통의 척박함, 뒤늦은 산업화, 민주주의를 용인하지 않는 엘리트층의 잔존, 혁명의 물결이 지닌 위력, 국가적 굴욕에 대항한 발작적 봉기 등 다양한 요소들이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고 선택의 폭을 좁히는 데 기여했을지도 모른다.(p236) <파시즘> 中


4. 파시즘의 변모와 집권


 유권자 단체나 압력 단체가 중심이던 정치에 성공적으로 참여하게 된 초기 파시즘 운동들은 말과 행동에 더욱 정확히 초점을 맞추어야 했다... 파시스트들은 선택을 해야만 했다. 무차별적인 저항이라는 비조직적 영역을 포기하고 긍정적이고 실제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는 확실할 정치 공간을 찾아야만 했던 것이다.(p140)... 그러나 파시스트당이 구체적인 정치 활동에 뿌리를 내리자마자, 파시스트들이 사용하던 반부르주아적 수사의 선택적 본성이 뚜렷이 드러났다. 실제로 파시스트들의 반자본주의는 지극히 선택적인 것으로 드러났다.(p141) <파시즘> 中


 기존 기득권과의 연합을 통해 힘을 갖게 된 파시스트들은 초기에는 다른 세력과 연대를 위해 온건한 형태를 유지했지만, 본질적으로는 '폭력', 폭력이 낳은 '혼란', 혼란이 불러오는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파시스트들은 보호받을 자격이 있는 국민과 거칠게 다루어야 할 국외자들의 차별을 부추겼다.(p198)... 위기를 심화시킬 목적으로, 나치당은 대상을 신중하게 선택해서 의도적인 폭력 사태를 더 많이 일으켰다.(p222) <파시즘> 中


 그렇지만, 자신들이 일으킨 폭력이 그들에게 권력을 가져다 주지는 않았다. 1923년 뮌헨 폭동(Munchen Putsch)을 통해 집권하려던 히틀러의 쿠데타는 실패로 끝나 그를 감옥으로 보냈지만, 공산주의자가 일으킨 방화사건은 그에게 대중의 이름으로 권력을 건네주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아직도 잘못 알려져 있는 경우가 많지만 독일의 유권자들은 나치당에게 과반수의 표를 준 적이 없다. 히틀러가 독일 총리로 임명되어 전 독일을 지배하던 1933년 3월 6일에 치러진 의회선거에서 지지율은 상당히 올랐지만 아직은 미흡한 43.9퍼센트에 그쳤다...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어느 누구도 쿠데타를 통해 집권하지 않았다. 집권 전에 무력으로 기존 정권을 위협하거나 집권 후에 무력을 동원해 정부를 독재 체제로 변환시키기는 했지만, 어느 쪽도 무력으로 정권을 장악하지는 않았다는 뜻이다.(p225) <파시즘> 中


  하지만 선거를 치르기도 전에 운 좋은 사건이 일어나 우파나 중도파 중 어느 쪽의 반대도 없이 사실상 내부로부터 쿠데타를 수행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 운 좋은 사건이란 바로 1933년 2월 27일에 발생한 베를린의 독일제국 의회 의사당 방화 사건이었다.(p245)... 수많은 독일인들이 그러한 공포에 공감하여 나치에게 거의 무제한적인 권력을 내준 셈이다.(p246) <파시즘> 中


5. 파시즘의 붕괴


 이데올로기적으로 순수한 파시즘 체제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사실,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다. 1940년 대 이래, 파시즘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파시즘 정권들이 당과 강력한 보수 세력 사이에 맺어진 모종의 협약이나 동맹관계에 의지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왔다.(p274)... 파시즘 지배는 여러 세력이 연합을 이룬 가운데 벌어진 끝없는 주도권 쟁탈전이었다. 이 투쟁은 헌법상의 규제와 법에 의한 통치가 무너지고 사회진화론이 대세를 장악하면서 더욱 격렬해졌다.(p277) <파시즘> 中


 저자는 <파시즘>을 통해 파시즘을 정의해 나가지만 이것이 쉽지 않음을 말한다. 그 이유는 파시즘이 나타난 양태가 국가마다 다르기도 했지만, 본질적으로 파시즘이 '사회주의와 자유주의를 부정하는 모든 세력들의 연합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보는 편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 'A의 여집합'이 집합 'A'의 부정을 통해 자신을 정의하듯, 파시즘은 부정을 통해 자신을 증명하는 정치행동이었다.


 파시즘 정권들은 마치 하나의 분자구조물과도 같았다. 다시 말해, 파시즘 세력과 보수적 질서라는 두 가지의 완전히 다른 물질이 자유주의와 좌파에 대한 적대감, 적으로 규정한 대상을 파괴하기 위해서는 어떤 일도 서슴지 않겠다는 의지라는 두 가지 공통점을 매개로 하여 결합하여 탄생한 합성물이 바로 파시즘 정권이었던 것이다.(p333) <파시즘> 中

 

 문제는 이러한 서로 다른 세력들의 결합이 불안하다는 것이다. 언제든지 깨질 수 있는 불안한 구조를 유지시키기 위해서 파시스트 정권은 외부로부터의 위협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다. 결국, 전쟁은 파시즘의 안정화를 위해 가야할 수순이었고, 파시즘의 종말도 함께 할 친구가 되었다.


 급진화 단계는 파시즘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준다. 어떤 정권도 급진화될 수는 있지만, 자기 파괴에 이를 정도로 격렬한 폭력을 분출하는 파시즘적 충동의 깊이와 위력에는 결코 미치지 못한다... 급진화의 핵심은 팽창주의 전쟁이었다. 이들은 처음에는 체제의 적들, 다음으로는 파시즘의 보수파 동맹 세력, 마침내는 독일 국민들까지 상대로 하여 이성을 잃고 완전 몰살을 기도하며 무차별 폭력을 휘둘렀다.(p384)... 나아가 급진화는 파시즘의 핵심으로 간주되었던 민족과 국가마저 거부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최종적 분석에 따르면 파시즘은 타고난 성격 자체가 불안정하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보면 파시즘은 겁에 질린 보수파나 자유주의자들이 직면한 문제에 대한 참된 해결책이 될 수 없었다.(p386) <파시즘> 中


[사진] 폐허가 된 프랑스 시가지를 통과하는 독일군 오토바이(출처 : http://world-war-2.wikia.com/wiki/File:German_motorcycle_driving_through_ruined_French_town,_France_1940.jpg)


 <파시즘>은 이와 같이 역사 속에 나타난 파시즘의 여러 모습을 통해 최종적으로 파시즘을 정의한 책이다. 과거와 현재,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등장한 파시즘의 모습을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고, 그 결과 저자는 리뷰 서두에서 인용한 긴 정의를 내리게 된다. 비록, 저자의 정의는 길고 어렵지만 파시즘의 모순을 이해하는 것은 그만큼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불안한 사회상황에서 타인을 부정하는 욕망들의 결합체'를 파시즘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축약일까. 개인적으로 '파시즘'이라는 용어를 이와 같이 정리해본다.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분단을 동시에 가져다 준 제2차 세계대전. 21세기에도 냉전(冷戰)의 영향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파시즘'이 주는 역사적 의미는 작지 않다고 여겨진다. 또한, <파시즘>에서 분석하고 있는 전후(1920~ 30년대) 독일의 정치 상황이 주는 교훈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점에서 <파시즘>은 일독할만한 책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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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9-04-04 19: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근래 파시즘 책 더 읽어 보고 싶었는데,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

겨울호랑이 2019-04-04 19:46   좋아요 1 | URL
네. 책 분량이 제법 있지만, 내용적으로도 잘 정리되어 편안하게 읽으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북다이제스터님 즐거운 독서 되세요!^^:)

북다이제스터 2019-04-04 20:42   좋아요 1 | URL
네, 파시즘에는 이데올로기가 없다(파시즘을 정의하기 어렵다)라는 말이 인상적인데요, 이데올로기가 없는 생각도 이데올로기가 아닌가 글 보며 순간 생각 들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9-04-04 21:25   좋아요 1 | URL
^^:) 북다이제스터님 말씀을 듣고 보니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파시즘의 정의가 모호해서 우리에게 생각할 여지를 주는 것 같습니다.

2019-04-05 1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4-05 1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4-05 1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4-05 18: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4-11 16: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4-11 16: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정치철학2」의 시작은 르네상스로부터 시작한다. 르네상스 시기를 기점으로 교회의 권위는 세속으로 옮겨간다. 그렇지만, 더 이상 세속의 주인은 군주와 귀족계급이 아니었다. 상인으로 대표되는 시민 계급의 성장은 ‘지배와 권력‘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게 되었다.

이러한 물음은 실락원 이후 자연 상태에 대한 가정으로부터 사회 권력의 성격에 대한 치열한 논박을 낳았다. 사회계약, 소유권, 권력, 자유, 평등, 역사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정치철학2」에서 다루어진다.

저자는 이러한 논의로부터 현대 정치 철학의 과제를 끌어내고 있다. 결론부에서 우리는 현대 정치를 감정의 문제, 오늘날 사회에서 인민 주권 문제, 가능성의 평등과 비지배 문제, 민주적 리더십 등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저자의 입장을 확인할 수 있다.

「정치철학1」「정치철학2」에서는 이처럼 정치사를 통해 현대 정치사의 문제가 어떤 식으로 제기되어 왔는가를 제기하는 정치철학 입문서다. 전체적으로 사상의 변천을 자세하게 다루고 있지만, 후반부 현대 정치철학의 과제에서는 갑자기 논의의 범위가 넓어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는 복잡한 현대 사회의 특징과 분량의 제한이기 때문이겠지만,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그렇지만, 고대부터 근대 시민 사회에 이르기까지 정치과제의 변천을 사상가 별로 잘 정리해 주었기에 좋은 정치 사상 입문서라 여겨진다.




13세기에 유럽의 상업 계층(mercatores)은 토지귀족들이 독점하던 정치권력의 판도를 완전히 바꾸어 버릴 기세로 급속히 성장했다. 부의 축적(quaestus)에 대한 도덕적 멸시는 사라졌고, 교회와 정치를 독점하고 있던 귀족들도 앞을 다투어 상인들과 손을 잡기 시작했다... 그러나 상업적 변화가 기존 정치세력의 재편으로 곧바로 귀결되 지는 않았다.(p25)

  두 가지 과제를 종합하면, 정치인의 자질이나 사회경제적 조건에 천착하던 전통적인 연구에서 벗어나 민주적 절차를 따라가면서 정치적 환경을 스스로 구성하는 ‘민주적 리더십‘을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정치 지도자들을 대중의 선호를 선취하는 수동식호를 선취하는 수동적 행위자가
아니라 대중의 선호 또는 의사를 형성하는 적극적 행위자로 재규정함으로써, 민주주의의 자기 전복적 속성을 제도적 변화로 귀결시킬 수 있는 민주적 리더십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p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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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19-01-20 22: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치철학 1권에 관한 좋은 리뷰보고 저도 구입했습니다!ㅎ

겨울호랑이 2019-01-20 22:47   좋아요 1 | URL
막시무스님 감사합니다. 좋은 독서 시간 되세요!^^:)
 
문명과 전쟁
아자 가트 지음, 오숙은.이재만 옮김 / 교유서가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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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이 걸어간 진화의 길이 전쟁을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것으로 만든 것일까? 아니면 싸움은 나중에 문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후에야 등장한 것이고 따라서 인간에게 '부자연스러운' 것일까? (p22) <문명과 전쟁> 中


 <문명과 전쟁 War in human Civilization>에서 저자 아자 가트(Azar Gat)는 위와 같은 물음을 던진다. 이 질문을 요약하면 '전쟁'은 자연의 질서 속에서 태어난 것인지, 아니면 사회의 질서의 영향으로 태어난 것인지로 정리될 것이다. 그리고, <문명과 전쟁>은 이 질문에 대한 답(答)이다. 책 전반에 걸쳐 저자는 두 관점을 대조하면서 논의를 진행시키는데,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 1588 ~ 1679)와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 ~ 1778)의 관점이 바로 그것이다.


[사진]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 1588년 4월 5일 ~ 1679년 12월 4일) (출처 : 위키백과)


[사진]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년 6월 28일 ~ 1778년 7월 2일) (출처 : 위키백과)


 이런 질문에 대해 17세기와 18세기에 상반되는 두 가지 고전적 대답이 제시되었다... 토머스 홉스 Thomas Hobbes와 장 자크 루소 Jean-Jacques Rousseau가 내놓은 답이었다. 홉스에게 인간의 '자연 상태'는 고질적인 '투쟁 warre'의 하나로서 이익과 안전, 명성을 위한 살인적 다툼이자 만인 대 만인의 전쟁이며 삶을 '가난하고 힘들고 잔인하고 단명하게'만드는 원인이었다... 반면에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 Discours sur l'origine et les fonderments de l'inmegalite parmi les hommes>(1755)에 따르면, 원주민들은 자연 속에 드문드문 흩어져 자연의 풍부한 자원을 평화롭게 이용하면서 대체로 조화롭게 살았다. 그러다가 농업, 인구 성장, 사유 재산, 계급 분화, 국가의 강압이 드러나면서 비로소 전쟁이 등장했고 문명의 나머지 모든 병폐들도 함께 나타났다고 루소는 주장했다.(p22) <문명과 전쟁> 中


 <문명과 전쟁>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러한 과정의 끝에 저자가 내린 결론은 무엇일까? 결론적으로, 저자는 루소보다는 홉스의 손을 들어준다. 에덴(Eden)과 같은 지상낙원을 전제로 한 루소의 이론보다는 한정되고 냉혹한 자연을 전제로 한 홉스의 이론이 보다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인간의 치명적인 폭력과 전쟁은 사실 전혀 특별하지 않다. 근본적으로 말해 '전쟁 수수께끼'의 해답은 그런 수수께끼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폭력적 경쟁, 일명 분쟁은 자연 전체의 통칙이다. 유기체들은 언제나 자원이 극히 부족한 조건에서, 그들 자신의 증식 과정 탓에 더욱 힘겨워지는 조건에서 생존하고 번식하기 위해 자기들끼리 경쟁하기 때문이다.(p855) <문명과 전쟁> 中


  저자는 이러한 결론을 내리기 위해 일방적으로 논의를 진행시키지 않는다. 본문에서는 이러한 저자의 결론에 반(反)하는 주장 - 루소의 견해 - 역시 소개된다. 전쟁이 '문명'이 발달한 사회에서 더 빈번하게 발생했다는 이들의 주장 속에서 '자연으로 돌아가라 Return to Nature'라는 루소의 말을 떠올리는 것은 어색하지 않다.


 일부 인류학자들은 인간의 자연 상태에서 전쟁은 근본적으로 비적응적인 특질이었으며 농업과 국가의 등장으로 비로소 이 특질이 '청산'되기 시작했다고 믿고 있다... 젊은 남자들의 공격적 성향, 지도자가 없는 사회에서의 효과적인 사회 통제 부재, 서로 다른 집단 간의 상호 의심, 복수, 사회체제의 자기 유지 성질, 중재 제도를 발전시키는 일의 애로점, 전쟁의 성공과 전반적인 활력의 종교적 연관성 등이 그런 요인들이다.(p165) <문명과 전쟁> 中


 기본적으로 생산성과 인구가 꾸준히 늘어 근대 직전까지 100배 가까이 증가했다. 인구 팽창과 생산성 증대 사이에는 얼마간 상관관계가 있었으므로 잉여 생산은 크게 늘지 않았고,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계속 식량생산자로서 최저 생활수준 근처에서 위태롭게 살아갔다.... 권력과 자원 축적이 선순환 매커니즘에 따라 서로를 강화하는 가운데, 대규모 사회적 권력 구조들이 출현했다.(p525) <문명과 전쟁> 中


 산업-기술의 도약은 인류 역사에서 혁명이 일어났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그 혁명은 부와 권력의 지속적이고도 기하급수적인 증대를 가져왔고, 이전 시대들을 지배했던 맬서스의 덫에서 사회를 구해주었다. 그렇지만 일단 강대국 간의 전쟁이 발발하고 나면 교전국들은 자원을 훨씬 많이 동원할 수 있었다.(p731)... 이 과정은 일부 강대국에서 근대 전체주의 체제의 등장을 촉진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세력권은 시장의 잠식 효과 못지않게 군사적 승리와 압력을 통해 확대되었다.(p733)  <문명과 전쟁> 中


 산업-기술의 발달이 가져온 권력의 집중은 전쟁의 규모를 더 키웠고, 전쟁 양상은 총력전의 형태로 변모되어 왔다는 것이 루소파 학자들의 의견이다. 저자는 이러한 루소파 학자들의 의견을 부정하지 않지만, 그 안에 '홉스'가 말한 리바이어던(Leviathan)의 모습이 있음을 지적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강화해 나간다. 


 정치적 합병이라는 부단한 과정을 달성하기 위한 주요 수단은 무력 사용과 위협이었다.(p528)... 국가 내부와 국가들 사이에서 권력을 차지하려는 투쟁, 그리고 권력이 수반하는 이익을 차지하려는 투쟁은 동시에, 그리고 불가분하게 일어났다.(p528)... 이 모든 과정의 근간을 이룬 추세가 증대하는 규모였음에도, 국가가 성장하고 '홉스적 전쟁'에서 일반적인 전쟁으로 이행함에 따라 전반적으로 폭력적 죽음의 비율은 분명히 낮아졌다.(p534) <문명과 전쟁> 中


 리바이어던이 가져다 주는 작은 안정이 자연 상태의 무질서보다 낮다는 근거를 저자는 역사 속에서 발견한다. 저자에 따르면 폭력적 사망의 비율은 문명화에 따라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자연 상태로 수렴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문명화가 전쟁의 원인이라는 루소의 주장은 성립하지 않게 된다.


 이 싸움에 '의례적' 측면은 전혀 없었고, 루소주의의 에덴동산 같은 풍요롭고 천진한 환경에서 싸움이 벌어진 것도 아니었다. 진실에 한결 가까이 다가간 사람은 홉스였다... 부족한 자원과 여성을 둘러싼 생존 경쟁, 걸핏하면 폭력 사태로 변모한 경쟁이 인간의 삶을 지배했다... 폭력적 사망 비율은 국가사회보다 이런 수렵채집인 사회에서 훨씬 높은데, 국가사회에서의 비율은 가장 파괴적인 국가 간 전쟁을 치를 때에만 25퍼센트에 근접한다. 그러나 이 비율은 자연에서 동물들의 일반적인 종내 살해 비율과 일치한다.(p856) <문명과 전쟁> 中


 저자 아자 가트는 결국 전쟁이라는 현상이 '문명화 civilized'된 결과물이 아니라, 자연(nature)이 가지는 일반적인 특징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다만, 인간 사회에서의 전쟁은 사회 발전에 따라 '개인간 다툼'에서 '국가간 다툼'이라는 양상으로 흘러갔고 이러한 점을 루소파 학자들은 간과했다고 비판한다.(전투가 전쟁이 되는 규모의 차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저자 아자 가트는 루소, 존 로크(John Locke, 1632 ~ 1704) 등으로 대표되는 사회계약론자들과 대척점에 서 있다. 


 인간 사회들의 크기와 복잡성이 극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인간 집단의 싸움도 덩달아 변화했다. 인간 집단 자체의 크기가 증가함에 따라 집단 싸움의 규모도 커진 것이다. '전쟁'을 관습적으로 대규모 조직 폭력이라고 정의하는 것은 인간 사회의 규모가 대폭 커지고 조직화된 사실을 반영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p857) <문명과 전쟁> 中


 사회 안에서 폭력적 죽음의 비율이 낮아진 까닭은 대개 폭력이 승리했기 때문이지 어떤 평화로운 합의 때문이 아니었다. '국내의 평화'를 강요하는 한편 사회에서 자원을 징수하고 흡사 마피아처럼 '보호'와 여타 서비스를 변덕스럽게 제공한 것은 승리한 통치자가 제도화를 통해 얼마나 효과적으로 독점한 폭력이었다.(p858) <문명과 전쟁> 中


 <문명과 전쟁>의 책 전반에서 저자가 말하는 주장은 위와 같이 요약된다. 이 책은 선사시대부터 최근 9.11 테러에까지 인류학, 고고학, 심리학, 경제학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분석한 책이기에 금방 읽히지는 않지만, 여러 관점에서 생각할 거리를 준다는 면에서 의미있는 책이라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가지는 한계 또한 분명하다. 미국 극우파의 주장을 떠올리는 아래의 글을 읽으면서 반발감이 생기게 되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이슬람의 대량살상무기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엄중한 단속'이 문제가 아니라 '팔레스타인 분쟁'을 종식시키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오늘날 대량살상무기 위협은 주로 급진적 이슬람과 연관되지만, 그 위협의 진짜 심각성은 어떤 '초강력 화난 사람'이나 집단이라도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에 있다. 현재로서는 대량살상을 초래하는 기술과 무기의 확산, 그런 기술과 무기를 사용할 법한 사람들을 전 세계에 걸쳐 엄중히 단속하는 것만이 그 위협에 맞서는 단 하나의 유효한 대응책이다.(p852) <문명과 전쟁> 中


 이스라엘 텔아비브 대학 교수이며 홉스주의자인 저자의 입장이 책 곳곳에 담겨있기 때문에, 미국 '매파'의 입장을 대변하는 글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는 점이 그 한계점이라 생각된다. 여기서 말한 <문명의 전쟁>의 큰 줄기와 한계점을 한 번 짚은 후 책을 읽는다면 한결 즐거운 독서가 되리라 생각하며, 이번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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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6 11: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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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6 15: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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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읽는 유럽의 난민 - 구호 현장에서 쓴 생생한 기록 푸른지식 그래픽로직 11
케이트 에번스 지음, 황승구 옮김 / 푸른지식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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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으로 읽는 유럽의 난민>은 난민들이 영국에 가기 전 머물던 프랑스 칼레(Calais)의 난민촌 정글(jungle)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영국인인 저자는 자원봉사자로서 구호품을 배급과 그림 등을 통해 난민들과 소통하면서 그들을 깊이 이해하는데, 이는 단순한 인도주의에서 나오는 감정만은 아니다. 자신의 나라가 저지른 잘못으로 인해 난민들이 발생한 것에 대한 책임감과 속죄의식 또한 저자의 행동 동기가 되었음을 책 곳곳에서 확인하게 된다. 이때문일까. 이 책은 난민에 의해 씌여진 책보다 오히려 더 절박하게 다가온다.

 

 지금부터 난민을 홍수에 비유해보자. 수백만  파운드의 비용을 들여 칼레에 울타리를 치고 감시는 강화하는 일은 물이 흐르는 개수대를 마개로 틀어막는 일과 같다. 하지만 물은 계속 흘러들어온다. 영국으로. 왜 그럴까? 아마 영어를 쓰는 나라여서 소통이 쉽고, 영국이 공정하고 관대할 것이라는(아마도 잘못된) 기대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난민들은 눈 앞에서 가족의 죽음을 목격한 아픔이 있다. 그래서 영국에 사는 친인척과 재회하려는 마음이 더 간절한 것 같다.

 

 물은 왜 넘치게 되었을까? 영국이 그들 땅에 폭탄을 떨어뜨리고 총을 쏘아댔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쟁 무기를 팔아 이득을 취하기도 했다. 잿더미가 된 나라에서 극단적인 종교 무장 세력인 이슬람국가(IS)와 탈레반이라는 괴물이 탄생했다. 이들은 미친듯이 또 다른 사냥감을 찾아다닌다. 당신에게 어린아이가 있다고 상상해보라. 전 세계 난민의 절반이 아이들이다. 당신이 살고 있는 나라에 전쟁이 터졌다. 정부가 도시에 폭탄을 투하하고, 내일이면 테러단이 마을을 덮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부모가 떠나지 않겠는가? <그림으로 읽는 유럽의 난민> 中

 

 칼레에 건설된 난민촌 '정글'은 결국 2016년 10월 프랑스 당국에 의해 폐쇄된다. 그리고, 동시에 약 1만명에 달하는 난민들은 고통과 절망에 빠진 채 뿔뿔이 흩어져야만 했다.  책 속의 처참하게 묘사된 그림과 당시 사진 속에서 자연스럽게 로댕(François-Auguste-René Rodin, 1840 ~1917)의 유명한 조각 <칼레의 시민들 The Burghers of Calais>을 떠올리게 된다. 백년전쟁 당시 시민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은 여섯 명의 시민들. 비록, 대의(大意)를 위해 자발적으로 희생하지만, 이 조각상에서는 이들의 절망과 고통이 그대로 느껴진다. '칼레의 시민'의 진실은 극화(劇化)된 부분이 많다고 하나, 모든 것을 빼앗긴 난민들의 심정은 이 조각상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진] 칼레의 시민들(출처: https://sites.google.com/site/adairarthistory/iv-later-europe-and-americas/119-the-burghers-of-calais-auguste-rodin)

 

 1347, 잉글랜드 도버와 가장 가까운 거리였던 프랑스의 해안도시 칼레는 다른 해안도시들과 마찬가지로 거리상의 이점 덕분에 집중 공격을 받게 된다. 이들은 기근 등의 악조건 속에서도 1년여간 영국군에게 대항하나, 결국 항복을 선언하게 된다...에드워드 3세는 칼레의 시민들에게 다음의 조건을 내걸게 되었다. “모든 시민들의 안전을 보장하겠다. 그러나 시민들 중 6명을 뽑아와라. 그들을 칼레 시민 전체를 대신하여 처형하겠다.” 모든 시민들은 한편으론 기뻤으나 다른 한편으론 6명을 어떻게 골라야 하는지 고민하는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딱히 뽑기 힘드니 제비뽑기를 하자는 사람도 있었다. 그때 상위 부유층 중 한 사람인 '외스타슈 드 생 피에르(Eustache de Saint Pierre)'가 죽음을 자처하고 나서게 된다. 그 뒤로 고위관료, 상류층 등등이 직접 나서서 영국의 요구대로 목에 밧줄을 매고 자루옷을 입고 나오게 된다. 오귀스트 로댕의 조각 '칼레의 시민'은 바로 이 순간을 묘사한 것이다.[출처 : 위키백과]

 

 결국, 칼레의 난민촌은 폐쇄되고, 거주하는 많은 난민들이 프랑스 당국에 의해 강제 등록되면서, 이들이 가지고 있던 영국이민의 꿈은 사라지게 되었다. (EU에서는 1997년 더블린 조약에 의해 난민이 최초로 발을 들인 국가에서 난민 신청을 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저자는 '봄의 씨앗'을 발견한다.

 

 2016년 3월 7일. 됭케르크 시장과 구호단체 국경없는의사회는 됭케르크에 엄청나게 개선된 새로운 캠프를 연다. 사생활이 보장된 가족 오두막집, 식료품이 잘 갖춰진 공동 부엌,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고, 난민 등록을 강요받지도 않는다. 진짜 보금자리도 아니고, 그들의 종착지도 아니지만 예전보다 훨씬 나아졌다. 전보다 따뜻하고, 안전하며, 깨끗하다. <그림으로 읽는 유럽의 난민>

 

 [사진] 덩케르크 철수 (출처 : http://www.insight.co.kr/newsRead.php?ArtNo=113735)

 

 살고자 하는 난민들의 꿈이 '칼레의 시민들'처럼 무너졌다면, 1940년 5월 덩케르크 전투 (Battle of Dunkirk)가 벌어진 그곳에서 33만명의 연합군 병사들이 도버해협을 건넜을 때 가졌던 삶에 대한 간절함이 난민들을 통해 재현되고 있음을 책 속에서 발견하고 조금이나마 안도하게 된다. 이처럼 이 책은  유럽 난민에 대한 이야기다. 그렇지만, 결코 남의 일이라 느껴지지 않는 것은 바로 얼마전까지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되었던 예멘 난민 문제의 경우에서처럼 이제는 우리도 난민 문제에 대해 고민할 때가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난민이 영국에 들어오면 영국이 과연 어떻게 될지 진지하게 생각해보자. 영국에서 일하며 세금을 꼬박꼬박 내는데도 난민들에게 밀려 의료보험 혜택을 제때 받지 못하거나 원하는 학교에 아이들을 보낼 수 없다면 어떻겠는가? 난민은 그렇게 돕고 싶어하면서 왜 정작 자국민인 영국의 노숙자에게는 관심이 없는가? <그림으로 읽는 유럽의 난민>

 

 <그림으로 읽는 유럽의 난민> 여러 곳에서는 위와 같이 난민에 대해 적대적인 사람들의 목소리도 표현된다. 그리고, 난민들의 모습을 통해 간접적으로 이에 대한 답(答)을 주고 있다. 이제는 우리 사회의 주장이기도 한 난민문제에 대해 잘 대처하기 위해서 우리는 여러 면을 봐야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입장, 난민의 입장, 그리고 인류의 입장. 자칫 주관에 휩쓸려 판단을 그르칠 수 있는 난민 문제에 대해, 이 책은 난민의 입장에서 우리에게 생각할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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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3 09: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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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3 10: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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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4 08: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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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4 08: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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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4 09: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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