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36
카스 무데 외 지음, 이재만 옮김 / 교유서가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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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이 언제나 기득권층에 대한 비판과 보통사람들에 대한 과찬을 포함한다고 말해도 지나치게 논쟁적인 주장은 아닐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우리는 포퓰리즘을 이렇게 정의한다. 포퓰리즘이란 사회가 궁극적으로 서로 적대하는 동질적인 두 진영으로, 즉 '순수한 민중'과 '부패한 엘리트'로 나뉜다고 여기고 정치란 민중의 일반의지의 표현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중심이 얇은 이데올로기다(p10)... 포퓰리즘에는 세 가지 핵심 개념이 있다. 민중, 엘리트, 그리고 일반의지다. _ 카스 무데, 크리스토발 로비라 칼트바서, <포퓰리즘>, p12/99

카스 무데 (Cas Mudde)와 크리스토발 로비라 칼트바서 (Cristobal Rovira Kaltwasser)의 <포퓰리즘>은 소수 엘리트에 대한 민중의 일반의지가 어떻게 정치적 동력으로 활용되는가를 잘 보여준다. 민중들의 삶이 어려워졌을 때, 특히 경제공황과 같은 궁핍한 시기에 경제적 어려움을 타개할 정치적 해결방안이 보이지 않을 때 민중들의 불만은 쌓이면서 정치적 에너지를 갖게 된다.

불안해진 사회 분위기를 빠르게 감지한 개인 또는 정당에 의해 민중들의 불만을 달래줄 자극적인 이데올로기를 겉에 두른 극단적인 이데올로기가 등장하고, 이들은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정계에 발판을 구축하거나 정권을 탈취하게 된다.

사회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만연할 때, 포퓰리즘 수요는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런 이유로 극적인 경기 침체와 같은 중대한 정책 실패, 그리고 무엇보다 만천하에 드러난 체계적인 부패 사례는 국민들 사이에서 포퓰리즘적 태도를 불러일으키는 촉매로 기능할 수 있다(p68)... 포퓰리즘적 태도를 활성화하는 다른 핵심 요인은 정치체제가 응답하지 않는다는 전반적인 느낌이다. 시민들이 정당과 정부가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고 요구를 무시한다고 느낄 때, 적어도 기득권층에게 버림받았다고 느끼는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포퓰리즘이 활성화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_ 카스 무데, 크리스토발 로비라 칼트바서, <포퓰리즘>, p69/99

우리는 포퓰리즘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대개의 포퓰리스트의 이데올로기가 가진 비현실성에 속아넘어가는 민중을 비난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민중들이 현혹될 수 있는 동기를 제공한 부패한 엘리트층을 탓해야 하는가. 또는, 선동가들이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집권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 민주주의제도를 고쳐야 하는가.

본문에서 포퓰리즘은 다수의 민중과 소수의 엘리트 사이의 오랜 갈등과 틈을 활용해 정치적 역량을 활용하는 이중적인 성격을 갖는 제도로 설명된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포퓰리즘은 한 시대가 해결하지 못하는 시급하고 중대한 문제가 무엇인가를 사회에 알려주는 자명고가 아닌가 생각된다. 상대를 포퓰리스트라고 비난하기보다, 포퓰리즘이 기생하는 숙주이데올로기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고 이의 해결을 위해 사회적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포퓰리즘의 근원적인 해결과 나름의 의의가 아닌가를 생각하게 된다...

포퓰리즘은 아주 기본적인 일군의 이념인 까닭에 숙주 이데올로기와 결합된 채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이 결합은 대규모 집단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정치적 맥락에 대한 더 폭넓은 해석을 제시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민중'과 '엘리트'에 대한 특수한 해석을 만들어내는 것은 포퓰리즘과 숙주 이데올로기의 결합이다. _ 카스 무데, 크리스토발 로비라 칼트바서, <포퓰리즘>, p33/99

우리의 주장은 포퓰리즘이 선거민주주의 또는 최소민주주의하에서는 체제의 발전을 촉진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지만, 완전한 자유민주주의하에서는 체제의 발전을 저해하는 부정적인 역할을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같은 이유로 포퓰리즘은 권위주의 국가에서는 민주화에 이바지하는 반면,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체제의 질을 떨어뜨리는 경향이 있다. _ 카스 무데, 크리스토발 로비라 칼트바서, <포퓰리즘>, p7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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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와 파시즘은 특히 운동 단계에서 대중의 지지를 불러일으키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포퓰리즘에 추파를 던졌다. 그렇지만 공산주의와 파시즘 모두 본질적으로 포퓰리즘보다 엘리트주의에 더 가까운 이데올로기이자 정체(政體)로 보아야 한다.

특히 개발도상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포퓰리스트들은 이제 신뢰를 잃은 기존 지도자와 정책에 대한 광범한 불만을 표현했다. 그들은 민족주의와 포퓰리즘을 섞어 신자유주의적 ‘지구화’ 정책과 이 정책을 실행한 자국 엘리트층을 공격했다. 필리핀의 조지프 에스트라다와 남한의 노무현 같은 포퓰리스트 ‘아웃사이더들’은 대통령으로 선출되기까지 했다.

포퓰리즘은 권위주의 체제 안에 존재할 수 있으며, 유의미한 포퓰리스트가 없는 민주주의 국가도 많다. 그러나 세계에서 민주적 이상의 헤게모니가 강해지는 추세, 아울러 선거민주주의의 가능성과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불만은 민중의 일반의지를 찬양하는 이데올로기인 포퓰리즘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포퓰리즘은 아주 기본적인 일군의 이념인 까닭에 숙주 이데올로기와 결합된 채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이 결합은 대규모 집단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정치적 맥락에 대한 더 폭넓은 해석을 제시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민중’과 ‘엘리트’에 대한 특수한 해석을 만들어내는 것은 포퓰리즘과 숙주 이데올로기의 결합이다.

포퓰리스트들이 원하는 결과는 자신들의 대표들, 즉 ‘민중’의 대표들이 정권을 잡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포퓰리즘 정당은 포퓰리즘을 활용해 기득권층에 도전하는 한편, 자신들의 대표가 없다고 느끼는 집단에게 발언권을 준다.

포퓰리즘 정치가 본질적으로 ‘순수한 민중’ 대 ‘부패한 엘리트’의 투쟁인데다 국민주권을 기필코 옹호하는 체하는 만큼, 포퓰리스트 지도자에게는 스스로를 민중의 진정한 목소리로 내세우는 것이 극히 중요한 일이다.

이 구성물은 서로 뚜렷이 구분되면서도 연관되는 두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하나는 엘리트와 분리되는 과정이고, 다른 하나는 민중과 연결되는 과정이다. 앞의 과정은 포퓰리스트 지도자의 아웃사이더 지위와 관련이 있는 반면, 뒤의 과정은 포퓰리스트 지도자가 주장하는 진정성과 관련이 있다.

간단히 말해 포퓰리즘은 본질적으로 민주적이면서도 현대 세계에서 지배적 모델인 자유민주주의와 충돌한다. 포퓰리즘은 그 무엇도 ‘(순수한) 민중의 의지’를 제약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다원주의에 근본적으로 반대하며, 따라서 소수자의 권리는 물론이고 그 권리를 보호하는 ‘제도적 보장책’에도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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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3-11-20 09: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시리즈도 좋아요~~
근데 책값은 ㅎㄷㄷ

겨울호랑이 2023-11-20 13:54   좋아요 0 | URL
네, 다양한 주제에 대해 간결하게 잘 정리한 좋은 시리즈인 것 같아요... 각 권은 가격 부담이 없는데 시리즈가 많다보니... 조금 부담이 있네요 ^^:)
 

포퓰리즘이 19세기의 더 진보적인 성격에서 20세기의 더 보수적인 성격으로 변하긴 했지만, ‘민중’의 자기규정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오늘날 직업(농민보다는 중간계급)과 종교(개신교보다는 기독교) 면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민중에 포함된다고 해석될 테지만, 민중은 여전히 대체로 심장부 출신 보통사람들이다.

거의 모든 포퓰리스트는 숙주 이데올로기라 불리는 이런저런 이데올로기와 포퓰리즘을 결합시킨다. 대강 말하면 대다수 좌파 포퓰리스트들은 사회주의의 어떤 형태와 포퓰리즘을 결합시키고, 우파 포퓰리스트들은 대체로 민족주의의 어떤 유형과 포퓰리즘을 결합시킨다.

포퓰리스트 개개인은 일군의 특정한 사회적 불만 때문에 등장한다. 사회적 불만은 포퓰리스트가 숙주 이데올로기를 선택하는 데 영향을 주고, 숙주 이데올로기는 다시 포퓰리스트가 ‘민중’과 ‘엘리트’를 규정하는 방식에 영향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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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근래의 접근법에 따르면, 포퓰리즘이란 무엇보다 추종자들의 직접적이고 무매개적인 지지에 기반해 통치하려는 특정 유형의 지도자가 구사하는 정치 전략이다. 이 접근법은 특히 라틴아메리카와 비서구 사회의 연구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다

우리의 해석은 포퓰리즘 용어에 대한 두 가지 주요 비판을 논박한다. 하나는 포퓰리즘이 본질적으로 정적을 비난하기 위한 정치적 전투 용어(Kampfbegriff)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포퓰리즘이 너무나 모호하고 따라서 어느 정계 인물에게나 적용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포퓰리즘을 무엇보다도 자유민주주의라는 맥락 안에 둔다. 이는 이데올로기보다 경험과 이론에 근거하는 선택이다. 이론 측면에서, 포퓰리즘은 민주주의 자체나 다른 어떤 민주주의 모델보다도 자유민주주의와 가장 근본적으로 병존한다. 경험 측면에서, 더 유력한 포퓰리스트들은 자유민주주의 얼개 안에서, 즉 자유민주주의인 체제나 자유민주주의가 되려는 체제 안에서 민중을 동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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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한일관계사 - 한일 대립은 언제 끝날 것인가. 과연 관계 개선은 가능할까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기미야 다다시 지음, 이원덕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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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관계는 냉전 시기와 같이 비대칭이지만 상호보완적으로 협력하는 관계에서 대칭적인 관계로 변용해왔다. 따라서 냉전 시기 남북 분단 체제하의 체제 경쟁에서 한국 우위를 위해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일본의 안전보장, 경제에도 이익이 된다는 관계는 그것을 실현함으로써 그 사명을 다했다. _ 기미야 다다시, <한일관계사> , p71/105

기미야 다다시 (木宮正史, 1960~ )는 <한일관계사>를 통해 현대 한일의 역사 속에서 두 변곡점을 제시한다. 하나는 한일 수교로 성립된 '1965년 체제'로서 비대칭적 관계의 시작점이며, 다른 하나는 '1998년 체제 - 한일파트너십'으로 대칭적 관계의 출발점이다. 본문에서

저자는 양국을 바라보는 양국의 인식차이를 언급한다. '안보'를 중심의 일본과 '역사' 중심의 한국의 인식. 이러한 인식 차이는 근대 개향(開港) 이후 오늘날까지 변화한 적이 없었다. 다만, 서로의 필요에 의해 비대칭적 관계에서는 드러나지 않았고, 대칭적 관계에서는 나타났을 뿐이다.

현재 한일 양 정부, 사회의 대응을 보면 비대칭에서 대칭으로의 변화에 충분히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비대칭의 관계에 기반한 한일관계하에서 형성된 한일 양 정부와 사회의 사고나 행동 양식과 대칭적인 관계에 기반한 사고와 행동 양식이 혼재하여 서로가 관계 악화의 책임을 상대에게 전가함으로써 어느 쪽도 먼저 나서서 타협의 주도권을 잡으려 하지 않고 있다. _ 기미야 다다시, <한일관계사> , p87/105

저자는 <한일관계사>에서 현재 한일 간의 관계 문제가 관계를 바라보는 인식 차이가 있어 왔으며, 이러한 차이는 수교 후 60여년 간 달라지지 않았음을 말한다. 침묵이 긍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지만, 2000년대 이전까지 양국은 서로의 이익 앞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줄여왔을 뿐이고 이를 우호증진, 관계개선이라고 착각했을 뿐이었음을 저자는 지적한다. 그런 면에서, 서로 대등한 관계에서 서로의 차이를 확인하는 것을 단순히 갈등이라고 치부해야 할 것인가. 오히려, 이러한 차이를 확인하고 인정하면서 입장을 좁혀간다면 진정한 이웃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한일관계가 비대칭적이기 때문에 협력이 쉬운 측면도 있었다. 1980년대까지와 같이 한국이 비민주적인 체제였기 때문에 한일 협력에 대한 저항을 상당 정도 억제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원만한 한일 협력이 가능했다. 또 한일 협력의 성과로 한일 간 국력 격차가 좁혀졌다고 일본이 그에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도 없었다. 서로 비대칭적이었던, 바꿔 말하면, 서로 너무도 달랐던 점이, 상호 협력에 따른 손익계산에 관해, 누릴 이익에는 민감했지만 부담할 비용에는 그다지 만감해야 할 필요성을 없애주었다. _ 기미야 다다시, <한일관계사> , p4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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