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전에 《월스트리트 저널》은 「증오가 빵보다 중요한 곳」이라는 논설을 게재했다. 그곳은 술수에 능한 지배계급이 수십 년 동안 가난한 민중을 착취했지만 동시에 민중들의 분노를 세계시민주의자들에게 향하게 하는 공허한 피해의식 문화를 그들 마음속에 불러일으켰다. 이 비극의 땅에서는 불가사의하게도 확실하게 눈앞에 드러난 물질적 불만보다 어떻게 해도 달랠 길 없는 문화적 불만이 더 기세등등하다. 인간의 기본적인 경제적 이기심은 잘못된 국가 정체성과 정의라는 매력적인 신화의 그늘에 가려져 있다.

그렇다. 보수 우파들은 농촌과 소도시들의 경제 상황이 점점 더 악화되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들은 경제가 악화된 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그저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이다. 하지만 정치는 경제와 사정이 좀 다르다. 정치는 미국을 망치는 불경스러운 예술과 무소불위 법정변호사의 정신 나간 소송, 그리고 말 잘하는 건방진 팝스타들과 관련된 것이다. 정치는 소도시 사람들이 언제 월마트와 콘아그라에 관심을 보이고, 또 언제 진화론에 맞서 성전에 참여하는가와 관련된 것이다

그러나 보수 반동은 상업문화가 더 확대되는 것을 거부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모방한다. 보수주의는 추종자들에게 정체성, 저항, 희생양의 고결성, 심지어 개별성에 이르기까지 주류와 똑같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가짜 정신들로 구성된 하나의 획일적 세계를 보여준다. 그러나 무엇보다 보수 반동과 주류의 상업문화가 가장 비슷한 점은 둘 다 자본주의를 비판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는 사실이다.

민주당은 언제나 경제 문제에 대해서 공화당보다 약간 더 나으면 된다고 믿는다. 게다가 성공을 지극히 숭배하는 나라에서 정치인이 어떻게 가난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되기를 진정으로 바란단 말인가? 거기 어디서 돈이 나온단 말인가?

이것은 1970년대 초 민주당의 ‘새로운 정치’ 시대를 선언한 이래로 불규칙하게 민주당의 사고를 지배했던 극도로 소심하고 어리석은 전략이다

좌파들이 하는 일 없이 빈둥빈둥 놀며 자신들이 잘났다고 만족해하는 동안 우파는 운동을 조직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것을 알고 매우 부지런히 그 일에 몰두했다. 보수주의 ‘운동문화’의 거대하고 복잡한 구조를 주목하라. 이 현상은 이제 더 이상 좌파만을 상대하지 않는다.

보수 반동은 하나의 사회체제로서 작동한다. 두 적수는 서로를 공격하면서 공생한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조롱하면 조롱을 받은 다른 하나는 더 강력해진다. 이것은 세상의 모든 지배계급이 바라는 것이다. 지배계급은 점점 더 거세게 공격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틀림없이 그렇게 공격받을 것이다. 따라서 지배계급은 점점 더 강력해질 것이다. 아직 검증된 바 없지만 오늘날 자본주의 문화가 하는 역할이 바로 이런 공생 관계를 강화하는 일이다. 문화가 타락할수록 문화를 타락시킨 사람들이 점점 더 부자가 되는데 어떻게 우리 문화가 점점 더 타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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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이라는 개념은 18세기 프랑스 사상가들이 ‘야만’의 개념과 반대되는 뜻으로 발전시켰다. 문명사회는 정착 생활을 하며 도시와 문자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원시사회와 다르다.

문명은 유한하긴 하지만 아주 오래간다. 문명은 진화하고 적응하며, 인간의 결속체 중에서도 유독 질긴 생명력을 갖는다. 그것은 극단적인 ‘장기 지속’의 현실이다. 문명의 독특하고 특별한 본질은 바로 그 장구한 역사적 지속성이며 사실상 가장 오래된 이야기는 문명이다

‘서구’라는 말은 이제 예전의 서구 그리스도교 국가권을 일컫는 말로 보편화되었다. 이렇게 볼 때 서구는 특정한 민족이나 종교, 지역의 이름이 아니라 나침반의 방위로만 확인되는 유일한 문명이다.* 서구는 자신의 역사적, 지리적, 문화적 울타리를 넘어섰다. 역사적으로 서구 문명은 유럽 문명이다. 근대 이후의 서구 문명은 유러아메리카 문명 혹은 북대서양 문명이다.

가장 중요한 측면은 유럽 제국주의가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대륙 대부분 지역에 그리스도교를 이식했다는 사실이다. 아프리카 전역에 강한 부족의식이 여전히 지배적으로 남아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프리카 사람들은 점차 아프리카인으로서의 동질감을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종교는 문명을 규정하는 핵심적 특성이다. 도슨이 말했듯이 거대 종교는 거대 문명이 의지하는 토대다.19 베버가 말한 세계 5대 종교 중에서 넷은(그리스도교, 이슬람교, 힌두교, 유교) 거대 문명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불교는 그렇지 않다.

문명들은 시공간적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한 시기에 존재하던 문명의 수도 몇 안 되었을뿐더러, 벤자민 슈워츠Benjamin Schwartz와 아이젠슈타트가 강조했듯이 ‘축 시대aial Age, 軸時代’ 문명과 ‘전축 시대pe-Axial Age, 前軸時代’ 문명 사이에는 초월적 질서와 세속적 질서의 구분을 인정하느냐 안 하느냐 하는 점에서 중대한 차이가 있다

과거 문명의 보편국가는 제국이었다. 그러나 서구 문명의 정치형태는 민주주의이므로 지금 태동하는 서구 문명의 보편국가는 제국이 아니라 연방, 연맹, 국제제도 및 국제기구의 혼합체다.

인류 역사에서 몇 가지 근본적인 가치와 제도가 공통적으로 나타났다면 그것은 인간의 행동에서 드러나는 상수常數는 설명할 수 있겠지만 인간 행동의 변화로 이루어지는 역사는 제대로 분석하지도 설명하지도 못한다.

지난 역사를 보면 세계의 언어 분포는 세계의 권력 분포 현실을 반영했다. 가장 널리 쓰이는 언어, 곧 영어·북경어·스페인어·프랑스어·아랍어·러시아어는 자기 언어를 다른 민족들에게 적극적으로 보급한 제국 국가들의 말이었다. 권력 분포의 변동은 언어 사용의 변모를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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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쟁의 상당수는 이 두 진영의 바깥에 있으며 빈곤하고 정치적으로 불안정하고 최근에 독립하여 비동맹 노선을 추구하던 제3세계에서 일어났다

탈냉전 세계에서 사람과 사람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이념이나 정치, 경제가 아니다. 바로 문화다. 민족과 국민은 ‘우리가 누구인가’라는 인간이 직면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물음에 답하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그리고 인류가 지금까지 그런 질문 앞에서 내놓았던 전통적인 방식으로 답변을 제시하고 있다. 바로 자신들에게 가장 의미 있는 대상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조상, 종교, 언어, 역사, 가치관, 관습, 제도를 가지고 스스로를 규정한다

문화의 스펙트럼은 존재하지 않는다. 문화적으로 동과 서를 양극화하는 것은 유럽 문명을 서구 문명이라고 부르는 불행한 관습의 또 다른 귀결이라고 볼 수 있다. ‘동양과 서양’이라고 부르지 말고 ‘서양과 나머지’라고 부르는 것이 수많은 비서구 사회의 존재를 암시한다는 점에서 차라리 적절하다.

세계를 7개나 8개의 문명으로 이해하면 이런 난점의 상당수를 피할 수 있다. 이것은 단일 세계나 양분 세계의 패러다임처럼 경제성을 위해 현실성을 희생시키지 않으며, 그렇다고 국가 패러다임이나 혼돈 패러다임처럼 현실성을 위해 경제성을 희생시키는 방식도 아니다.

국가 패러다임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가능성을 강조하는 반면 문명 패러다임은 그런 가능성을 희박하게 보고 오히려 우크라이나의 분리 가능성을 점치며, 문화적 요인을 감안할 때 그 갈등 양상은 체코슬로바키아보다는 심각하겠지만 유고슬라비아처럼 유혈 분쟁으로 치닫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런 상이한 전망은 다시 상이한 정책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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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야마의 단극 체제론이 빈약한 실증적 근거에도 불구하고 일세(라기보다는 일시一時)를 풍미한 것은 당시 유일 강대국으로서 미국의 위세 때문이었다. 이에 맞서는 강력한 담론으로 나온 것이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이었다.

지난 20년 동안 세계질서의 구조에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중국의 성장이다. 1996년의 중국은 아직 WTO(세계무역기구)에도 가입하지 못하고 스스로 ‘개발도상국’ 위상에 매달려 있을 때였다. 1998년 7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둘러싼 논란에서 당시 중국의 위상을 단적으로 알아볼 수 있다.
공화당 우파와 민주당 좌파가 이례적으로 손잡고 이 방문에 반대한 것이다.

‘문명의 충돌’에 기반을 둔 다극 체제론에는 세계질서의 성격에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한 한계가 있다. 그러나 경제적 가치의 독점 지배가 풀려 다양한 경제외적 가치가 되살아날 가능성을 짚은 것은 헌팅턴의 뛰어난 통찰이다.

아리기의 흥미로운 논점 하나가 ‘근면혁명industrious revolution’이다. 스기하라 가오루가 산업혁명industrial revolution에 빗대 메이지 시대 일본의 근대화를 설명하는 데 쓴 이 말은 서양식 자본집약적 근대화와 다른 노동집약적 근대화의 원리를 제시한 것이다.

탈냉전 시대에 들어오면서 깃발을 비롯한 십자가, 초승달 같은 문화 정체성의 상징물이 중요해졌다. 문화가 중요해졌고, 문화 정체성이야말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장 의미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새롭지만 대개는 해묵은 정체성을 발견하여, 새롭지만 대개는 해묵은 깃발 아래 행진을 벌이다가, 새롭지만 대개는 해묵은 적수와 전쟁을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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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가을, 많은 이들이 오래전부터 두려워했던 코로나바이러스 2차 대유행이 미국과 유럽을 강타했다. 중국과 동아시아 이웃 국가들은 사회적 거리 두기와 강도 높은 공중보건 조치를 통해 심각한 코로나 사태도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유럽, 라틴아메리카, 미국, 서아시아 전역 어느 곳에서도 코로나를 억누르지 못했다. 겨울이 되자 봄 동안 성공적으로 코로나에 대처해온 스웨덴과 동유럽 국가들, 독일이 모두 곤경에 처했다.

2020년, 기적의 무기에 기댄 것은 미국이었다. 공중보건 정책이 실패한 탓이었다. 국가가 지원하는 기술 개발 프로젝트에 희망을 걸어야만 하는 현실은 당혹스러웠다

코로나바이러스 위기는 경우가 달랐다. 우리에겐 백신이 필요했다. 백신이 필요한 주된 이유는 장기 성장률을 개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범유행의 불확실성과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수조 달러의 경제 활동 재개와 수억 개의 일자리가 백신에 달려 있었다. 문제는 누가, 어떤 조건으로 백신을 제공하느냐는 것이었다.

백신 개발은 학문적·인도주의적 포부뿐만 아니라 권력과 이윤 추구에 의해 추진된 경쟁이었다. 인류가 집단으로서 얼마나 시급하게 백신이 필요한지에 비추어볼 때, 이것은 남부끄러운 일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지극히 정상이다. 공중보건과 현대 제약 산업은 과학계와 의학계의 관심사와 기업과 국가의 관심사가 교차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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