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장기적으로 볼 때 우리는 두 종류의 지정학적 구조물, 즉 공간적 봉쇄에 입각한 구조물과 공간적 운영으로 뒷받침되는 구조물의 혼종화를 목격중인 듯하다. 신자유주의적 지구화는 시장 접근성과 민영화에 대한 마땅한 강조와 함께 이 두 가지 변종을 조장한다

미래에는 국가 축소와 국경 통제를 비롯한 공간 운영이 중시될 가능성이 크다. 내부적으로는 국가가 공공 조달 부문에서는 후퇴하면서 치안 유지 활동과 감시 같은 분야에서는 확장될 가능성이 크다.

카를 슈미트 같은 저자는 1920년대와 1930년대에 법, 정치, 주권, 비상사태 사이의 관계를 탐구했다. 예외적인 것에 대한 슈미트의 관심은 주권자를 강력하게 만드는 것은 ‘정상적인’ 것에 대한 규제가 아니라 ‘예외적인’ 것의 시행이라는 믿음에 입각했다

감정과 정동은 조작될 수 있다. 미디어 보도는 사람들을 흥분하게 할 수 있고, 정치 지도자들은 왜곡하고 과장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하고 있으며, 대중은 공포와 두려움에서 희망과 평온에 이르기까지 여러 감정에 관여하고 싶어하기도 한다.

1810년 에스파냐제국에서 독립한 아르헨티나의 경우 측량과 인구조사는 국가정체성 형성에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였다. 베네딕트 앤더슨(Benedict Anderson)이 ‘상상된 공동체’라고 부른 것을 창출하는 과정은 다양한 형태를 취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19세기 후반에 국민의식을 만들어내기 위한 이른바 ‘애국교육’의 도입이었다.

정체성과 영토는 국민국가의 맥락 안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 국가 영토는 국가정체성의 제조와 재생산을 위해 외견상 안정적 플랫폼으로 기능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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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투자와 숙련된 인력, 사상의 특정한 흐름을 장려함으로써 자국의 주권이 침해되도록 기꺼이 허용한다. ‘공유 주권(pooling sovereignty)’ 같은 표현은 국가와 정부가 자국 영토를 언제나 절대적으로 배타적이라고 여기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국가는 복수의 경계를 소유하고 있으며 세계은행, 국제연합, 글로벌미디어 기업,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rnization, WTO)가 지구적 행위를 형성하는 데 각자 일익을 담당하면서 거버넌스는 더 지구적이고 다중심적인 방식으로 드러난다고 보는 시각이 이제는 일반적이다.

여기서 심화(intensity) 개념이 중요한데, 국제적 경계와 배타적 주권을 초월하는 능력을 보유한 흐름과 쟁점에 국가가 갈수록 적응해야 한다는 증거가 쌓이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과 쟁점에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지구 기후 변화, 인권, 마약 밀매, 핵무기에 의해 인류 절멸의 가능성 등이 포함될 것이다

지정학적 경쟁과 경제적 지구화 사이의 연결고리는 상당한 논쟁거리다. 일각의 평가에 따르면 국가의 위상은 이런 지구적 경제와 정치 질서의 강력한 요구 조건 때문에 점차 퇴색되었다.

국가는 궁극적으로 전후 경제·정치 질서를 창조했고 미국은 이 점에서 가장 중요했다. 더욱이 재산, 과세, 투자 관련 법은 초국적기업의 활동을 규제하고 보호한다. 지구화가 지구적 정치 질서를 비롯한 ‘정세(state of affairs)’를 바꾸어온 방식을 조명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변형된 국가(transformed state)’라는 개념이 더 유용하다.

지정학 저자들은 E. H. 카(E. H. Carr)와 케네스 월츠(Kenneth Waltz) 같은 현실주의의 거두를 가리키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암묵적으로 다수의 현실주의자와 유사한 세계관의 모델을 가지고 작업한다. 1960년대에서 1970년대에 자국의 안보 상태에 집착하던 라틴아메리카의 장성들에게 현실주의적 세계관은 국가 안팎의 공산주의 세력의 위협과 위험으로 가득한 지정학적 상상력과 잘 맞아떨어졌다.

현재의 지구적 정치 체제는 자연적이거나 필연적인 것이 아니며 우리가 국제 정치에 관해 들려주는 이야기는 바로 그것, 다시 말해 이야기일 뿐이다. 어떤 서사는 다른 서사보다 분명히 더 중요하고 미국 대통령과 러시아 대통령 같은 어떤 개인은 세계가 어떻게 느껴지고 해석되는지를 결정하는 데 특히 목소리가 크고 확연히 두드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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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지정학이 영토, 자원, 입지에 초점을 맞춘다면 비판적 접근은 인적(人的)인 것과 물리적인 것의 상호작용이 어떻게 ‘지정학’을 생산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지정학이 실제로 세상을 바라보는 유혹적인 방식을 제공한다면 그것은 지정학이 흔히 단순화와 객관화를 취급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지도가 한몫을 담당한다. 대중적인 심장부(heartland), 축(pivot), 원호지대(arc), 접경지대 같은 프레이밍 도구도 마찬가지다.

지정학(geopolitics)에서 ‘지(geo)’에 관해 생각할 때 우리의 과제는 어디선가 사건이 항상 벌어진다고 간단하게 결론을 내리지 않고 지리적인 것이 인간사에 개입하는 다채로운 방식에 관해 사고하는 것이다.

이 지정‘학’(‘science’ of geopolitics)은 지구의 자연 지리라는 ‘사실’(대륙과 대양의 배치, 여러 나라와 제국을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으로 구분)에 입각하여 국제 정치에 관한 ‘법칙’을 상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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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철학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45
데이비드 밀러 지음, 이신철 옮김 / 교유서가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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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우리는 환경이나 개발도상국에 대한 세계 시장의 충격, 문화 수준을 낮추는 세계 문화의 특성 등에 초점을 맞추는 정치 운동의 형태로 세계화에 대한 반동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운동은 경제성장이 최상의 목표라는 관념에 도전하며, 그러한 도전 과정에서 우리가 우리의 삶에서 궁극적으로 무엇에 가치를 두어야 하는지, 어떻게 이 목표들을 성취할 수 있는지의 물음을 제기한다. 이것들은 정치철학의 핵심적 물음이다. _ 데이비드 밀러, <정치철학>, p13/111

데이비드 밀러 (David Miller)의 <정치철학>은 공동체의 가치와 가치를 성취하는 방식에 대해 말한다. 저자는 본문을 통해 여러 정치 철학을 언급하지만, 오늘날 우리의 현실에서 정치철학은 결국 '사회 정의'라는 가치와 이를 성취하기 위한 '민주주의'라는 제도의 효율적 운영으로 귀결된다. 여기에 하나 더해지는 것이 바로 시장의 원리, 자본주의이며, 이들간의 관계설정은 정치철학의 주요 과제라는 점이 드러난다.

나 자신의 견해를 말하자면, 사회 정의 이론은 롤스가 제시한 처음의 두 가지 원리, 즉 평등한 자유와 기회의 평등을 견지해야 하지만, 차등의 원리를 이것과는 다른 두 가지 원리로 대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는 최소한의 사회 보장 원리다... 둘째는 공적의 원리다. _ 데이비드 밀러, <정치철학>, p69/111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무지한 데모스(demos)에 의해 운영되는 민주주의 제도와 자본주의 시장의 실패가 가져온 불공정 문제 등은 공동체의 가치인 공정을 흔들리게 한다. 물론, 불공정이 가져온 정치적, 경제적 실패 또한 무시할 수 없다. 근대 민족국가라는 '상상된 공동체'에서 민주주의라는 정체(政體)가 갖는 한계성과 공공 영역에서의 자원 배분에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자본주의라는 경제 시스템이 갖는 부족함은 필연적으로 사각지대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는 요구하는 바가 많은 까다로운 일이라는 것이 판명된다. 그것은 사람들이 종종 복잡하고 자신의 일상생활과는 무관해 보이는 정치적 쟁점들에 관심을 가지기를 요구한다. 그리고 그들이 이러한 쟁점들에 관해 결정할 때 자제하기를 요구한다. _ 데이비드 밀러, <정치철학>, p43/111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체는 사회 가치관을 추구하고 유지해야 하며, 정치권력은 이를 위해 권위와 제재의 형태로 작동하게 된다. 이처럼 저자는 <정치철학> 본문을 통해 근대 민족국가들의 정치, 경제 제도의 한계와 함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도 함께 제시한다. 결론에 제시한 저자의 방안은 다소 원론적이라는 인상을 받기도 하지만, 결론에 이르기 전 현대 사회의 여러 논점들을 정치철학적으로 포섭하려는 저자의 노력은 공허한 이데올로기 대신 현실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라는 정치철학의 내용을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정치권력에는 두 측면이 존재한다. 한편으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그것을 권위로서, 바꿔 말하면 사람들에게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명령할 권리를 가지는 것으로서 인식한다... 다른 한편으로 법 준수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제재라는 위협에 의해 준수를 강요받게 된다. 법 위반자들은 체포되어 처벌될 수 있다. 그리고 이 두 측면은 상호 보완적이다. _ 데이비드 밀러, <정치철학>, p2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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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베네딕트 앤더슨은 바로 이런 점을 고려해서 국민을 ‘상상된 공동체’라고 불렀다. 즉, 사람들끼리 직접 마주 대하는 공동체와는 달리, 이러한 공동체는 상상이라는 집합적 행위에 그 존립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프랑스인이나 미국인 또는 일본인이라는 자각을 특정 가족의 일원이라거나 특정 마을의 주민이라는 것만으로 얻는 것이 아니다.

국민과 국가는 서로를 강화한다. 국가의 권력이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데 사용되는 한편, 이러한 방식으로 결합된 사람들은 공통의 정치권력을 더욱 기꺼이 받아들이고 국가가 공격당할 때에는 그 방어를 위해 결집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국민국가는 정치적 단위로서 상당한 성공을 거두어왔다. 즉, 국민국가는 제국의 군대에 압도되지 않을 정도로 충분한 크기를 갖지만, 동시에 저항이 필요할 때 그 구성원들의 충성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작은 규모에서 가장 잘 작동한다는 것이 이 장에서의 내 논지다. 도시국가가 아마도 그 이상적 형태일 것이다. 국민국가가 성공한 것도 대중 매체를 사용해 사람들에게 정치의 실제에 자신들이 관여하고 있거나 영향력을 지닐 수 있다는 감각을 최소한으로나마 부여함으로써 도시의 친밀성을 모방해온 데 있었다. 그러나 세계정부는 멀리 떨어져 있어 존재감이 없는 것으로 비칠 것이다

점점 증대되는 문화적 다양성이 현재 많은 국민 국가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면, 그 문제는 세계정부에 더욱 심각한 것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세계정부는 현존하는 주요 문명들을 포괄해야만 하기 때문이며, 그러한 문명 각각은 공공 정책에 자신들의 가치와 신념이 반영되도록 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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