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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기원은 저자가 1989년 여름 내셔널 인터레스트지에 기고한 "역사의 종말? The End of History?)"이라는 제목의 논문이다. 거기서 나는 하나의 정부형태인 자유민주주의 Liberal Democracy가 군주제나 파시즘, 또는 최근의 공산주의와 같은 상반되는 이데올로기를 무너뜨리게 됨에 따라, 지난 수년 사이에 세계적으로 이러한 자유민주주의의 정통성에 대해 주목할만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자유민주주의가 "인류의 이데올로기 진화의 종점"이나 "인류 최후의 정부형태"가 될지도 모르며, 따라서 자유민주주의는 "역사의 종말"이 된다고 주장했다. - P7

그러나 내가 종말이 왔다고 주장한 것은 심각한 대사건을 포함한 여러역사적 사실의 발생이 아니라 역사 그 자체이다. 즉, 어떤 시대, 어떤민족의 경험에서 생각하더라도 유일한, 그리고 일관된 진화의 과정으로서의 역사가 끝났다는 것이다. 역사를 단 하나의 일관된 진화의 과정의로 간주하는 것은 독일의 위대한 철학자 G. W.F 헤겔의 사상에서 유래한다.  - P8

이를 위해 나는 자연과학을 역사의 방향성과 일관성을 설명하는 장치또는 방법으로 사용하였다. 근대 자연과학은 이와 같은 논의에 있어서유효한 출발점이 되는데, 이는 자연과학이 인간의 행복에 대해 궁극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해도, 자연과학만큼 일반적으로 그 누적속성이나 방향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있는 주요 사회활동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 P11

하지만 역사에 대한 경제적 해석이라는 것은 역시 불완전하며, 만족스럽지 못하다. 그것은 인간이 단순한 경제적 동물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경제적 해석은 특히, 우리들이 왜 민주주의자인가 하는 점,
즉 우리들이 왜 인민주권의 원리와 법의 지배 아래 기본권에 대한 보장을 신봉하는지에 대해서는 실질적으로 설명하고 있지 못하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인해 이 책의 제3부에서는 역사의 과정에 대해 첫번째 관점과는 평행인 새로운 관점에 대해 설명하고, 인간의 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그 전체적인 모습을 재파악하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헤겔과그의 "인정받기 위한 투쟁‘에 기초한 비유물론적 역사관으로 되돌아가야한다. - P13

이렇게 해서 우리는 제2부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역사를 경제적 관점에서 설명할 때 누락되었던 자유주의 경제와 자유주의적 정치 사이의 잃어버린 고리가 바로 인정받기 위한 욕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공업화 과정이나 기타 경제 활동의 대부분은 욕망과 이성의 두 가지에 의해충분히 설명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자유민주주의를 향한 투쟁은 설명할 수 없으며, 이는 인정받고자 하는 영혼의 ‘패기‘ 부분에서 궁극적으로 비롯되는 것이다. 공업화의 진전에 따른 사회적 변화, 그중에서도보통교육의 보급은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그때까지 느끼지못했던 인정받기 위한 욕망을 불러 일으킨 것 같다.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도시화가 진전됨과 아울러 교육수준이 높아지고 사회가 전반적으로 평등화되면서 사람들은 단순히 더 많은 부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지위에 대한 인정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 P17

 니체에 의하면 근대의민주주의란, 예전의 노예가 스스로 주군이 된 것이 아니라, 노예와 일종의 노예적 윤리가 무조건적인 승리를 거두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전형적인 시민이란, 근대 자유주의의 창시자들로부터 조련되어, 쾌적한 자기보존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훌륭한 가치에 대한 긍지 높은 신념마저 내던져 버리는 "최후의 인간"이었다.  -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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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공산당(이하 공산당)은 중국에서 ‘유일한 집권당(執政黨, ruling party)’이면서 동시에 ‘영도당(領導黨, leading party)’이다. 공산당이 집권당이 된 것은,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 국민당을 물리치고 정권을 장악하여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을 수립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볼 때, 공산당 일당 체제, 지금까지 우리가 논의해왔던 방식으로 말하면, 중국의 ‘당-국가 체제(party-state system)’ 혹은 ‘공산당 영도 체제(領導體制, leadership system)’가 유지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다섯 가지의 ‘공산당 통제 기제(統制機制, control mechanism)’가 제대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림 1〉은 공산당의 다섯 가지 통제 기제가 공산당 영도 체제를 지탱하고 있는 상황을 집(家)에 비유하여 묘사한 것이다. ‘다섯 가지의 기둥’ 중에서 첫째는 인사 통제, 둘째는 조직 통제, 셋째는 사상 통제, 넷째는 무력 통제, 다섯째는 경제 통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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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두 개의 신화는 하나가 되었다. 캔자스는 모든 것이 평균인 땅이지만 그 평균의 특성은 일탈과 호전성, 분노다. 오늘날 캔자스는 일상생활의 구석구석까지 반동의 선전으로 점철된 보수주의의 성소다.

덧붙여 말하자면 보수주의가 만들어낸 경제환경의 본색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했다. 이 세 차례의 추문은 하나같이 엔론이나 월드컴 사태처럼 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이 신경제이론이라는 환각에 취해 저지른 준準공익사업과 연관되어 있었다.

그러한 경제논리가 언제나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단 하나의 요구조건은 값싼 노동력이다. 지난 25년 동안 여기서 발생한 모든 일이 바로 그 단순한 요구에서 나온 것이다. 1960년대 초 정육업계의 기업인들은 그들의 작업공정을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규격화하고 단순화하는 기술을 개발해냈다.

이 지역을 연구한 두 명의 인류학자는 중산층의 ‘완전한 몰락’과 아무리 애를 써도 "값싼 노동력을 탐욕스럽게 추구하는 정육산업에 영원히 내둘리는 도시발전 전략, 그리고 그에 따른 사회적 혼란"에 대해서 경고한다.

범인은 바로 보수주의자들이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자유시장 자본주의 체제다. 그것은 거의 아무런 규제도 받지 않으며 소도시 상인이나 초기에 소도시를 유지시켰던 농업제도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 규제 받지 않는 자본주의는 월마트가 캔자스 주 전역의 지역상권을 망가뜨리게 만든 주범이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그러한 자본주의가 캔자스 주의 존재이유라고 할 수 있는 농업을 거의 붕괴 상태로 몰아갔다는 사실이다.

그 대신에 오히려 농민들은 더 열심히 일하고, 더 많이 경쟁하고, 더 효율성을 높이고, 문제가 되는 상품을 더 많이 생산해낸다. 따라서 공급과잉 현상은 훨씬 더 악화되고 가격은 더 떨어진다. 우리는 이것을 ‘과잉생산의 덫’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오직 정부가 개입해 경쟁 중지 조치를 내려야만 극복할 수 있다. 민중주의자들과 농민조합은 이러한 정부의 개입정책을 확보하기 위해 수십 년 동안 투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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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미국에서 보수대반동을 일으켰던 공화당의 주도 세력은 과거 전통적인 미국의 보수 중도파와 달리 네오콘이라고 불리는 기독교 우파였다. 그들은 같은 당의 중도파나 자유주의 성향의 보수파조차 자유주의 민주당의 하수인이라고 몰아 부칠 정도로 극우 성향을 띤다.

민중들의 고단한 삶과 지역의 피폐함이 경제 구조와 그에 따른 계급 문제임에도 본질적인 문제는 피한 채 낙태와 동성애, 진화론, 총기 소지 문제와 같은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문화 현상에 민중의 분노를 집중시킨 것이다.

새로운 중도 노선을 내세운 민주당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부자들에게 유리한 경제 노선으로 돌아섰고 마침내 자신들조차 경제 문제를 정치 의제화하지 않는 크나큰 오류에 빠졌다.

왜 가난한 사람이 부자 증세를 반대하고 사회복지 예산을 줄이고 기업인들의 이익을 늘리는 정책에 몰두하며 서민층의 이익을 빼앗는 보수정당을 앞장서서 지지하는 걸까? 이번 총선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한 해묵은 이념 논쟁, 세대 갈등과 성차별을 부추기는 막말 논란은 정작 중요한 정책 논쟁은 뒷전으로 내몰았다. 국가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을 뽑는 선거가 그들이 주장하는 정책이 아니라 성도덕이나 이념을 들춰내는 선거로 변질된 것이다.

흔히 보수 세력하면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들이라고만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투철한 사명감으로 보수 이념을 전파하고 조직하고 선거에 참여하는 민중들이 있다는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이 물론 보수 정치 권력자들의 감언이설에 설득된 측면도 있지만 그들의 자발적 의지도 무시할 수 없다.

극우적 성향의 보수 우파와 기독교, 수구 언론이 결탁할 때 그리고 진보 세력이 경제 문제를 기반으로 하는 계급 문제를 도외시하고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지느라 계산기만 두드릴 때, 민중들은 경제 상황이 악화될수록 점점 더 냉소적이 되고 훨씬 더 보수적으로 바뀔 수 있다.

진보 세력은 실제로 너무 말이 많다. 정치나 사회 문제 전반에 걸쳐 정교한 이론과 합리적인 논리로 비판도 하고 주장도 많이 한다. 반면에 보수 세력은 도무지 합리적이지도 않고 앞뒤가 안 맞는 행동을 천연덕스럽게 한다. 민중들도 그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런데 가장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이 보수 세력의 손을 들어준다. 수구 언론의 편향된 보도 탓만으로 돌리기에는 우리나라 땅이 너무 좁고 정보 유통도 빠르다. 보수 세력의 정치 조작 능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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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당은 하염없이 추락하는 정권과 당의 지지율을 더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인디언 기우제를 지내는 심정으로 대영제국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인도혈통의 젊은 정치인을 제사장으로 뽑았다. 펀자브 지방에 뿌리를 둔 인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수낵은 부와 명예를 겸비한 초엘리트계층에 속하지만, 힌두교 성인 바가바드기타』를 들고 의원선서를 한 힌두교도이기도 하다. 전 세계를 호령했던 대영제국의 국민들은 인도계 출신 제사장이 출구 없는 극심한경제불황인 이른바 인디안 서머를 끝내주길 바라지만, 마른하늘에서 단비는 쉽게 내릴 것 같지는 않다. - P13

하지만 그로부터 30년 뒤, 모든 것이 사실로 판명됐다. 신자유주의‘ 세력이 모든 것을 무너뜨린 것이다. 마크롱 정권과 더불어 신자유주의가 시작되진 않았지만, 신자유주의는 이 정권과 함께 유례없는성장을 이룩했다. 덕분에 임금 체계가 무너지고 공직 사회가 붕괴했으며, 직업에 대한 소명 의식도 사라졌다. 공공서비스는 물론 그에 대한 애착도 이젠 볼 수 없는 세상이 됐고, 직업에 대한 애정도 찾아보기 힘들다.
이 사회를 지탱하던 뼈대도 흔들리고, 자본주의 시장 논리를 따르지 않던 그 모든 형태의 공공 조직이 허물어졌다.  - P17

에너지 위기에 더해 팬데믹 이후에 계속된 충격으로 여러 산업분야(화학업, 철강공업, 에너지 산업이나 제지업 분야)가 침체를 겪거나 폐업했다. 에너지 소비가 너무 많아서수익성이 나빠진 것이다. 일부 기업은 생산시설을 베트남이나 북아프리카 지역, 심지어 미국으로 옮기고 싶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미국은 러시아산 액화천연가스를 대체하고자 공급을 63% 늘리고 유럽과 영국에 높은 가격에 판매했다. 루프트한자와 알디, 프레제니우스, 지멘스 등 생산시설 일부를 이전하려는 독일 기업 60곳은 미국 오클라호마의 구애를받았다.  - P23

IAEA는 러시아군과 한 공간에서 생활하는 우크라이나 기술자들의 근로 조건에 대해서도우려를 표명했다.
자포리자는 핵안보 중심지이자, 지정학적 요충지다.
러시아 점령전 자포리자 원전의 원자로 6기는 우크라이나전체 전력의 20%를 생산했다. 따라서 이번 갈등의 이면에는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독립 문제, 특히 원전의 전력공급문제가 있다. IAEA의 원전 사찰단은 러시아가 일부 점령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동부와 연결된 고압 전력선, 배전반, 변압기에 폭격이 집중된 사실을 확인했다.  - P27

크름전쟁은 러시아가 유럽열강에 견줘 얼마나 통신, 교통등 분야에서 경제적으로 뒤쳐져 있는지, 러시아 군대가 얼마나 구조적으로 취약하고 병사들의 신체적 상태도 심각한지 여실히 보여줬다. 알렉산드르 2세는 1861년 3월 농노제도를 폐지하는 등 각종 개혁을 실시했다. 마찬가지로 오스만 제국도 1854년 영국·프랑스와 맺은 조약에 의거해 일련의 정치·사회 개혁에 착수했다. - P34

전시에 일어난 강간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지만,
현대전에서 강간은 조직적인 전쟁무기가 돼버렸다. 정치·군사 당국은 상대를 모욕하고, 파괴하고, 지배하기 위한 전략적인 수단으로 강간을 사용한다. 강간이 전쟁무기가 된것은 유고슬라비아 전쟁 때부터다. 전쟁무기가 된 강간은남녀를 가리지 않는다. 구 유고슬라비아국제형사재판소(ICTY, 2001년)는 반인륜 범죄를 처벌한 첫 사례, 르완다특별재판소(1998년)는 집단학살을 처벌한 첫 사례일 것이다.
강간과 성폭력은 2002년부터 국제형사재판소(ICC)에서 다루기 시작했다.
- P41

시대의 징조로,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는 9월 20일 로하니 전 대통령을 포함해 서구에 극히 호의적이라고 판단되는 인물들을 ‘국정조정위원회(Expediency Discernment Council)‘에서 해임했다.
이 운동이 어디까지 가든, 이미 그 성과는 매우 중요해졌다. 이란의 청년들, 특히 젊은 여성들은 변화를 원한다. 도덕경찰은 해체되거나, 최소한 기존의 폭력적인 특권을 잃을수 있다. 히잡 착용 의무화가 폐지될 수는 있지만, 더 큰 정치적 개방성을 위한 조치들이 취해질 것이라 장담할 수는없다.  - P57

19세기 말 시작된 정치적 시온주의 운동은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왔다. 그러나, 그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역사는서구의 세계 정복 운동과 맞물려 있다. 프랑스의 유대인 동양학자 막심 로댕송은 1967년 전쟁 발발 당시 <레 탕 모데른느(Les Temps Modernes)>에 발표한 ‘이스라엘은 식민국가인가?‘라는 제목의 유명한 기사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 팔레스타인 땅에서의 이스라엘 국가 형성이, 19~20세기 유럽-미국의 대대적인 팽창 운동과 완전히 맞물린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두 가지는 타민족을 경제적·정치적으로지배하기 위한 과정이라는 점에서 완벽하게 일치한다. 당시정치적 시온주의의 창시자 테오도르 헤르츨은 이를 공개적으로 주장했다. 일례로, 그는 남아프리카의 영국인 정복자중 한 명인 세실 로도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내 계획은 식민화 계획‘이라고 썼다." - P75

그런데 NFT는 진본성과 소유권이라는 까다로운 문제를 철저하게 그리고 투명하게 보장해준다. 예술품 투기 시장이 줄기차게 요구하는 것도 바로 이런 투명성이다. 사실NFT 작품을 구매하면 그 작품의 유일성을 보장해주는 보증서도 함께 구매하는 것과 같다. 구매자는 작품에 접근하기위해 일련의 암호를 입력해야 하는데, 그러면 동시에 원본인증서에도 함께 접근이 가능하다. - P103

NFT의 미래는 밝아 보인다. 그러나 몇 가지 문제점이있다. 암호화폐는 막대한 에너지를 소비해 생산된다는 점에서 환경문제의 주범으로 지목된다. 가령 일론 머스크도 비트코인 투자 계획을 요란하게 발표한 지 3개월 후, 느닷없이친환경적 생산방식이 개발되기 전까지 비트코인 결제 허용방침을 철회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바람에 비트코인 시세가급추락했다. 또 다른 문제점은 중앙은행을 비롯한 글로벌규제기관들이 암호화폐에 회의적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암호화폐가 극도로 불안정하며, 사기나 위조 등에 취약하다고판단한다.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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