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통치 체제 1 - 공산당 영도 체제 중국의 통치 체제 1
조영남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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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치 체제의 특징을 한마디로 설명하라면 무어라 해야 할까? 공산당 일당 체제(one-party system)나 공산당 독재 체제(dictatorial regime)가 적절할 것이다. 중국에서 공산당은 '유일한 집권당(執政黨)'이다. 공산당은 '무장 역량(군사력)'에 대해서만은 <당장>에서 '절대영도'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공산당의 절대적인 지배와 군대의 절대적인 복종을 강조한다. 절대영도의 의미는, "공산당만이 군사력을 배타적으로 독점하고, 다른 국가기관이나 사회 세력의 간섭 없이 독립적으로 군대를 지휘할 수 있다"라는 것이다. _ 조영남, <중국의 통치 체제 1>, p14/236

조영남 교수의 <중국의 통치 체제 1 : 공산당 영도 체제>는 '중국특색사회주의(中國特色社會主義)'를 구현하는 현재 통치 체제를 분석한 책으로 저자는 중국의 정치 체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구의 민주주의와는 기본적으로 다른 출발선에서 시작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국가(國家)'를 이끌어가는 '당(黨)'.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낯설게 다가오는 '국가 위에 존재하는 유일 정당'인 '공산당'의 위계를 이해하는 것은 오늘날 중국 정치를 이해하는 첫 걸음이 된다.

공산당 일당 체제는 학술적으로 '당-국가(parity-state) 체제'라고 부른다. 이는 공산당과 국가가 인적 및 조직적으로 결합해 있고, 실제 정치 과정에서 공산당이 국가를 영도할 뿐만 아니라 종종 대체하는 정체 체제를 가리킨다. 한마디로 말해, 공산당 일당 체제는 곧 '공산당 영도 체제'다(p7)... 내가 이 책에서 사용하는 공산당 영도 체제(領導體制, leadership system)라는 말은, <공산당 장정(章程)>과 당내법규(法規)에 근거하여 구성되고 운영되는 정치 체제'를 가리킨다. 간단하게는 '<당장(黨章)>에 근거한 정치 체제'라고 부를 수 있다. _ 조영남, <중국의 통치 체제 1>, p19/236

중국에서 '집권(執政)'은 "공산당이 국가 권력기관에 진입하고, 공산당 대표들이 국가 권력기관을 장악하여 공공사무를 관리하는 제반 활동"을 가리킨다. 즉 '집권'은 공산당이 정치권력을 장악하여 국가를 통치하는 행위를 말한다. '영도'는 "공산당이 사회 전체 영역에서 인민의 공동이익을 실현할 가치, 노선, 정책을 제시하고, 사회와 인민을 조직하고 인도하여, 공산당이 제시한 올바른 가치, 노선,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제반 활동을 가리킨다. _ 조영남, <중국의 통치 체제 1>, p22/236

저자는 이러한 기본 이해로부터 출발해서 중국 공산당의 영도 원칙과 원칙이 반영되고 있는 시스템을 소개한다. 모든 조직에서(심지어 군사조직마저도) 책임자는 당과 전문가를 대표하는 2인으로 구성되어 있고, 전문가들을 여러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적극적으로 공산당으로 영입하려는 노력을 통해 실질적으로 전국의 모든 조직을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있음이 보여진다.

사실 국가 공무원 중에는 80%가 공산당원이고, 영도간부(領導幹部), 즉 중앙 부서의 처급(處級) 이상과 지방의 현급(縣級) 이상의 고위급 간부 중에는 95%가 공산당이다. 따라서 국가기관은 공산당원이 국가 업무를 처리하면서 동시에 공산당의 조직 생활도 함께 전개하는 공간이다. _ 조영남, <중국의 통치 체제 1>, p16/236

중국은 지난 2001년 WTO에 가입한 이후 세계의 공장으로 유례없는 고성장을 달성하며 이제는 여러 분야에서 미국을 위협하는 G2의 위치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러한 성공과 번영은 중국인들에게 자부심을 안겨주었고, 공산당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로, 그리고 공산당 영도 체제를 강화하는 힘이 되었음을 현실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공산당 영도 체제는 네 가지 영도 원칙과 현실에서 그것을 실행하는 공산당 조직 체계와 공산당원의 활동 덕분에 제대로 유지되고 작동할 수 있다. 그 결과 개혁/개방 시대에도 공산당 일당 체제는 붕괴하지 않고 '권위주의의 끈질김'을 자랑할 수 있는 것이다. _ 조영남, <중국의 통치 체제 1>, p200/236

공산당 영도 체제는 국민의 지지와 성원 속에서만 유지될 수 있다. 그래서 공산당은 국가를 효율적으로 운영하여 국민이 원하는 다양한 공공재(경제발전과 생활 수준 향상 등)를 원활히 공급하기 위해 노력한다. 또한 새로운 통치 이데올로기를 개발하여 공산당 영도 체제가 왜 정당한지를 국민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얻으려고 시도한다. 그 밖에도 엘리트 정치의 안정은 공산당 영도 체제가 공고하게 유지되기 위한 필수 전제조건이다._ 조영남, <중국의 통치 체제 1>, p7/236

그렇다면, 이러한 '공산당의 영도'는 계속될 수 있을까. 저자는 본문에서 현재까지 '공산당의 영도'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며, 효율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지만, 이와 동시에 영도 체제가 갖고 있는 위험성도 함께 지적한다. 시장경제에서 완정경재시장에서 과정시장으로, 과점시장에서 독점시장으로 점차 시장참여자들이 제거되고 마침내 하나의 시장참여자만 남았을 때 그 시장은 효율적으로 작동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중국의 정체 체제에서는 심지어 그 출발마저 독점시장에서 시작된다. 다른 대안들이 가상으로만 상상되고, 현실적인 유일한 대안이 공산당인 상황에서 통제를 통해 상상이 억압되었다면, 그 억압을 넘어선 현실적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어느 방향으로 그 물길이 흐를 것인가. 이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공산당의 통제 장치를 다룬 2권을 통해 살펴보도록 하자...

왜 '공산당 전면 영도'가 실현되면 문제가 될까? 이렇게 되면 공산당 영도 체제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을 내부에서 지적하고 비판할 수 있는 사회 세력이 사라지고, 그러면 이 체제의 탄력성과 복원력이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특정 지역과 조직에서 공산당의 목소리만 들릴 뿐만 아니라, 중국 전역에서도 공산당 목소리만 들리는 '한목소리(一言堂)'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_ 조영남, <중국의 통치 체제 1>, p207/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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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反원전 보도를 바라지 않는 도쿄전력, 간사이?西전력, 전사련 등의 ‘의향’은 두 회사를 통해 각 언론사에 전달되고 은연중에 위력을 발휘한다. 도쿄전력과 간사이전력은 겉으로는 인심이 후한 후원자와도 같은 ‘초우량 스폰서’인 체하지만, 반원전 보도 등으로 일단 심기를 거스르면 제공하기로 결정된 광고비를 일방적으로 올리는(삭감하는) 등 강력한 권력을 휘두르는 ‘숨은 얼굴’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광고비라는 탈을 쓴 협박’을 실행하는 것이 광고대행사의 일이었다.

일본 정부와 전력회사는 원전 건설이 시작된 1960년대 후반부터 3·11까지 그 기본자세를 충실히 유지하며 거액을 투자하여 프로파간다를 추진해온 것이다. 하지만 그 목적에는 두 가지 큰 문제가 있다. 하나는 원전이라는 시스템이 매우 불완전하여 지난 40년간 사고가 빈번히 발생한 것. 다른 하나는 일본이 세계 유수의 지진대국이라서 원전을 건설하기에 전혀 맞지 않는 지역이라는 사실이다.

오랫동안 왜 이런 시스템이 노출되지 않았을까? 가장 큰 이유는 본래라면 경종을 울려야 할 언론(신문, TV, 잡지 등)이 완전히 원전 추진 세력(원자력 무라)의 손아귀에 들어가 그들의 협조자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언론은 장기간에 걸쳐 거액의 ‘광고비’를 지급받음으로써 원자력 무라를 비판하지 못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 그 프로파간다의 일익을 담당하게 되었다.

언론이 권력층과 한패가 되어 국민을 선동하는 바람에 일본을 멸망 위기에 처하게 한 사건이 태평양전쟁이다. 이것은 일본인이라면 역사적 사실로서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다. 전쟁이 끝난 후 언론은 그 반성을 발판으로 다시 출발했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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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전쟁과 신세계질서
이해영 지음 / 사계절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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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을 포함한 서방의 언론이 개전 이후에 내보낸 뉴스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경향을 발견했다. 이것을 미디어와 사실 fact의 관계 변화라고 해도 좋겠다. 진실 truth은 어떤 도덕적 함의를 내포한다는 점에서, 사실이 곧 진실인 것은 아니다. 포스트트루스 post-truth의 진행 단계가 고속화/고도화되면서 이제 미디어는 사실이나 진실에 특화된 사회적 체계와 기능에서 이탈했다. 미디어는 그 자체로 하나의 권부 mediocracy가 되어 사실과 진실을 선별하고, 기사를 권력자원화한다. _ 이해영, <우크라이나 전쟁과 신세계 질서> , p201

이해영의 <우크라이나 전쟁과 신세계 질서>는 언론보도를 통해 간접적으로 접하기에 ‘달의 뒷면‘과도 같이 낯설게 느껴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다른 면을 보여준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신세계 질서>에서 지적한 언론에 의해 은폐된 진실은 개별 전투(combat)에서 전쟁(warfare)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쟁의 전반을 망라한다.

저자는 본문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국외적 배경과 국내적 배경 설명에 지면의 상당부문을 할애한다. 우선 국외적 요인으로 단극체제를 유지하려는 미국의 기획이 지적된다. 이미 1985년 플라자 합의를 통해 우방이었던 서독과 일본의 경제적 부상을 저지시킨 경험이 있는 미국은 1990년대 냉전 종식 후 정치적 경쟁자가 될 우려가 있는 소련을 해체시켰고, 나토(NATO)의 동진을 통해 러시아를 압박시켜왔다. 노엄 촘스키(Avram Noam Chomsky, 1928 ~ )와 제프리 삭스(Jeffrey David Sachs, 1954 ~ )는 정확히 이 지점을 지적하며 미국 역할론을 주장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 네이콘이 추진한 30년 프로젝트의 정점이다. 바이든은 네오콘을 몰고 거대한 파국으로 질주하고 있다. 그 결과 우크라이나와 미국, 그리고 EU는 또 하나의 지정학적 파탄을 향해 맹렬히 달려가고 있다. 만일 유럽에 약간의 통찰이라도 남아 있다면 이들은 미국의 외교정책 판탄으로부터 떨어져 나올 것이라고 경제학자 제프리 삭스 컬림비아대학 교수는 말한다. _ 이해영, <우크라이나 전쟁과 신세계 질서> , p38

‘브레진스키 함정‘의 요체는 이렇다. 적을 원하지 않는 전쟁으로 유도해 한정된 자원을 고갈시키고 전력을 약화시킨 뒤 최종적으로 압박해 무너뜨린다. 그렇게 아프가니스탄은 ‘소련의 베트남‘이 되었고, 소련은 자국의 생산력으로 더 이상 냉전 비용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결국 붕괴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러시아의 아프가니스탄으로 우크라이나가 지목되었다. _ 이해영, <우크라이나 전쟁과 신세계 질서> , p67

국외적 요인이 미국 네오콘의 프로젝트라면, 우크라이나-러시아 문제는 아조프(Azov)로 대표되는 극우집단 문제다. 일찍이 1940년대 볼린 Volyn 지역에서 대학살을 주도한 세력을 기원으로 하는 극우 파시스트 문제는 전쟁 이전 돈바스 지역에서 러시아 계 주민을 향한 폭력을 행사하며 악명을 떨쳤다. 언론에 의해 거의 보도되지 않는 이러한 사실을 펼쳐놓고 종합적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바라본다면 선악(善惡)을 판단하는 문제는 이해 당사자들에게도 쉽지 않은 문제다.

우크라이나전 개전 이후 미영 등 서방 언론에서는 거의 삭제된 부분이 우크라이나의 극우 파시스트 문제이다. 우크라이나는 적어도 전전까지 전 세계에서 네오나치가 무장력을 갖춘 유일한 나라였다. 그리고 무장한 나치가 거리의 정치뿐 아니라 의회와 언론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전 세계 네오나치의 허브로 자리 잡았다. 2014년 이른바 유로마이단은 네오나치의 공간을 활짝 열어놓았다. 그 배후에는 당연히 미국이 있었다. _ 이해영, <우크라이나 전쟁과 신세계 질서> , p96

아조프는 군사운동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 프로젝트라는 점을 기억하라. 아조프는 압도적 다수가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아르코프 지역의 ‘우크라이나 애국자‘에서 넘어온 극우 세력이 모체이다. 그런데 아조프 민족주의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와 달리 우크라이나 언어, 인종, 혹은 종교 이슈에 집중하지 않는다. 아조프는 ‘민족‘을 이탈리아 파시즘의 정신을 이어받은 국가주의로 인식한다. _ 이해영, <우크라이나 전쟁과 신세계 질서> , p104

그런데 이런 판단을 전쟁과는 전혀 무관한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나라에서 편향된 정보와 낡은 냉전시대의 이데올로기를 기준으로 내린다면 섣부른 결정이라 생각할 수 밖에 없다. 문제는 그 나라가 우리나라라는 점이고, 때문에 정부의 우크라이나 전쟁 대응에 대해 무겁게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NATO의 동진(東進)으로 러시아의 시각을 아시아로 돌린다면, 결국 다음 대립은 쿠릴열도를 둘러싼 러시아-일본의 갈등이 될 것은 너무도 명확한 상황에서 한미일 동맹을 통해 러시아를 견제하고, 파이브 아이즈(Five Eyes)를 중심으로 인도까지 포함한 인도-태평양 동맹으로 중국을 포위하려는 미국의 의도는 노골적이다. 빠른 한미일 동맹을 위해 오염된 미군 기지 위에 살짝 흙을 덮듯 서둘러 과거사 문제와 독도 문제,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를 통으로 양보하는 윤석열 정부의 연이은 외교 참사. <우크라이나 전쟁과 신세계 질서>는 이러한 일련의 흐름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맞닿아 있음을 잘 보여준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보여준 통찰이 현재 우리의 정세 분석에만 머무르지 않는다고 생각된다. 지금의 모습이 과거의 반복이라면, 책을 통해 우리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기원‘ 뿐 아니라 ‘한국전쟁의 기원‘에 대해서도 보다 깊게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이에 대해서는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 1943 ~ ) 의 <한국전쟁의 기원>리뷰에서 보다 깊게 살펴보도록 하자...

2022년 11월까지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M777 견인포 142문과 155밀리미터 포탄 92만 4000발을 제공했다. 미국 정부는 155밀리미터 견인포를 감산하려 했지만 최근에 긴급 예산을 편성하여 물량 확보에 나섰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이 포병전 양상으로 전개되면서 장사정포의 역할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미국의 포탄 재고는 위험 수위에 도달했지만, 그럼에도 포탄 생산력을 늘려려면 1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미국은 한국에 포탄 공급을 요청했다. _ 이해영, <우크라이나 전쟁과 신세계 질서> , p182

우크라이나전쟁은 타이완의 향배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시리아와 이스라엘을 둘러싼 서아시아에서의 갈등 역식 마찬가지다. 역으로 타이완 문제는 우크라이나 문제와 맞물려 중러 관계의 지속성을 강화하는 요인이 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그래서 어쩌면 이 모든 요인이 한편으로 미국 단극 체제의 동요를 수반하고 다른 한편으로 신냉전을 강화하는 경향을 만들어낼 것이다. 이것이 군사적으로 한층 고조되어 3차 세계대전이 될 가능성 또한 실재한다. _ 이해영, <우크라이나 전쟁과 신세계 질서> , 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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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iKim 2023-05-13 14: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페이스북을 통해 많이 교류하고 있는데, 제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다른 시각에서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물론 저는 2020년부터 우크라이나 네오나치즘을 비판해왔고, 다른 사람들이 반데라의 존재를 모르던 시절부터 이에 대해 글은 쓴 적이 있습니다. 요즘같은 시대에 읽어야할 책이 이해영 교수님의 책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참고로 <한국전쟁의 기원> 완역판은 이미 후원했습니다. 이것도 완독할 생각입니다.

겨울호랑이 2023-05-13 17:00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저 또한 언론이 다루지 않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다른 측면에 대해서는 단편적으로 접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과 신세계 질서>에서처럼 종합적으로 정리된 내용을 찾기는 쉽지 않았는데, 이번 기회에 큰 틀에서 이해할 수 있었던 기회였습니다. 어느 일방이 아닌 여러 각도에서 사안을 바라볼 수 있는 폭넓은 시야가 요즘처럼 혼란한 시기에 더욱 필요함을 깨닫게 됩니다. NamGiKim님 좋은 하루 되세요!

2023-05-13 19: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13 2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리카도의 노동가치설을 효용가치설로 대체함으로써, 코브던은 보호무역주의자들의 강력한 주장들 중 하나에 대응할 수 있었다. 즉, 더 값싼 식량은 고용주가 더 낮은 임금을 지급할 수 있게 해줄 텐데, 이는 노동자들에게 좋지 않은 일이고 사회 불안을 부추길 것이라는 주장 말이다. 하지만 이는 틀린 말이었다. 코브던의 설명에 따르면, 고용주가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임금은 리카도가 생각한 것처럼 노동자를 먹여 살리는 비용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었다. 노동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 그의 임금 수준을 결정짓는 것이었다. 식량의 가격은 임금 수준과 관련이 없었다.

고대의 저술가들은 나쁜 정부를 덕 없음이나 사회 세력의 불균형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중세의 사상가들은 나쁜 정부를 인간의 사악함에 대한 신의 처벌로 다루었다. 계몽주의의 정치적 합리주의자와 영국의 공리주의자들은 잘못된 정치를 교정 가능한 무지와 피할 수 있는 오류의 결과로 여기게 했다. 스펜서는 나쁜 것들에 대해 늘 그랬듯이 나쁜 정부를 일종의 부적응으로 취급했다. "모든 악한 것은 사태에 대한 체질적 부적응에 기인한다."

사람들은 이상적이지 않았고, 정치는 바로 그러한 이들과 함께해야 했다. 동시에 기조는 왕의 절대 권리라는 원리에 목매는 정통주의자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최고 권력의 행사라는 바로 그 주권 개념은 기조가 생각하기엔 폐기되어야 했다. 정치에서 유일한 주권은 법과 정의와 이성이었다. 이러한 생각은 아주 중대한 결과로 이어졌다. 모든 권력 행사가 공유되어야 했다. 정부가 선거를 통해 교체될 수 있어야 했다. 언론이 제한받지 않아야 했고, 정치적 모임들이 자유롭게 허용되어야 했다.

갈등에 대한 자유주의적 태도는 권력 문제에 이어, 보수주의와 사회주의라는 경쟁자들과 대조되는 두 번째 점이었다. 자유주의자들에게 갈등은 늘 존재하는 것이었다. 갈등은 중단되지도 근절되지도 않았다. 이해관계나 신념이나 삶의 방식에서 갈등이 어떤 형태를 취하든, 갈등은 길들여지고, 경쟁에 들어가고, 거래·실험·논쟁에서 유효하게 쓰여야 했다. 자유주의자들이 갈등을 건강하고 생산적인 것으로서 환영했는지, 아니면 위험하고 파괴적인 것으로서 우려했는지를 따지는 것은 과도한 일일 수 있다. 둘 다 맞기 때문이다. 자유주의자들에게 갈등은 삶의 기정사실이었다. 정치는 어떻게 갈등이 유익한 결말로 이어져 사회가 해체되지 않게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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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민당과 사회당 양당을 비롯한 일본의 정치 시스템 전체를 뒤흔들고 있었던 것은 신 중간층을 중심으로 한 변덕스러운 유권자들뿐만 아니라 일본을 둘러싼 국제 환경의 변화도 있었다. 미소 양대 구조가 무너져 내리는 가운데 여전히 ‘신세계 질서’는 명확해지지 않았고 정치 경제 등 다방면에 걸친 국제 연계의 새로운 모습이 모색되고 있었다.

한편 오자와의 신우파 전환 비전을 정리한 것이 『일본개조계획』이다. 일본을 ‘보통 국가’로 개조하겠다는 그 발상은 그야말로 걸프전 당시의 ‘국제공헌론’을 시작으로 군사 측면으로 바뀌기 시작한 국제협조주의의 하나의 도달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정치 경제의 신자유주의화를 강하게 주창한 것이었다. 실제 집필에는 기타오카 신이치(도쿄대학 교수, 역사학자-역자 주), 다케나카 헤이조(게이오대학 교수, 경제학자-역자 주), 이오 준(정책연구대학원대학 교수, 정치학자-역자 주) 등 당시 소장파 학자로 주가를 올리던 학자들이 담당했고 오자와 개인의 영고성쇠를 뛰어넘어 고이즈미나 아베에 이를 때까지 이후의 신우파 전환 프로세스를 결정적으로 규정해갔다

야스쿠니 문제에 대해서는 전후 수상으로서 최초로 1985년 8월 15일 공식적으로 참배했지만, 중국의 반발을 산 결과 ‘우리 일본이 평화 국가로서 국제 사회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바야흐로 막중한 책무를 짊어져야 할 입장에 있음을 고려하면 국제 관계를 중시하고 근린 국가들의 국민감정에도 적절하게 배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1986년 8월 14일 ‘내각총리대신 그 외 국무대신에 의한 야스쿠니 신사 공식 참배에 관한 고토다 내각관방장관 담화’)고 하며 이후의 참배를 중지했다. 사실 이러한 논법은 이 시기의 국제협조주의의 성격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 하나로는 오자와 등이 실현시킨 선거 제도 개혁에 의한 소선거구제의 도입이다. 종래의 중선거구제에서는 서로 다른 파벌에서 추대된 자민당의 복수 후보들이 서로 경쟁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으로서의 구심력이 약했고 정당 간 정책 위주가 아니라 개개의 정치가에 의한 이익 유도 위주의 선거가 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런 점들이 자민당 내에 일정한 다양성을 낳고 논의를 활성화시켰던 측면도 있었다. 하지만 소선거구제에서는 자민당 공인 후보는 한사람으로 좁혀지게 된다. 파벌의 힘이 약해지고 대신 당 중앙의 총재, 간사장이 공인과 정치 자금에 대해 강력한 재량권을 가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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