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인 다원적 정치철학을 모색한다면 ‘빨갱이‘  또는 ‘친북 좌파‘와 같은 무지막지한 낙인을 우리사회의 공론장에서 영원히 퇴출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극심한 이념 대결의 와중에서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었던 비극의 현대사를 체험한 나라에서 빨갱이라는 낙인은 다른 수단에 의한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인 야만적 폭력이다. 이런빨갱이 담론이 좌우를 막론하고 모든 다원주의자들에 의해 차단되고 비난되는지의 여부가 바로 한국 사회에서 다원적 공공 정치성이 최소한이라도 지켜지는지를 알아볼 수 있는 리트머스 실험이라고 나는 믿는다. 같은 차원은 아니지만 유사한 논리로, 우파에 대해 퍼부어지곤 하는 ‘꼴통 보수‘ 같은 언사 역시 다원적 공공 정치의 이름으로 공론장에서 배제되어야 마땅하다고 믿는다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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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피닷 2024-01-01 03: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겨울호랑이 2024-01-02 00:0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루피닷님께서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많은 것을 성취하는 한 해 되세요! ^^:)
 
자유는 누구의 것인가 - 왜 진보와 보수는 서로 가지려 하는가
조지 레이코프 지음, 나익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자유‘의 개념은 우리 모두가 동의하는 완전히 합의된 핵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핵심은 애매한 ‘자유‘이기 때문에, 다른 중요한 부분들은 모두 채워야 할 여백으로 남아 있다. 그 여백들을 진보주의자가 채우는가 아니면 보수주의자가 채우는가에 따라, ‘자유‘라는 동일한 낱말이 표현하는 해석이 근본적으로 다르게 도출된다. _ 조지 레이코프, <자유는 누구의 것인가>, p20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off, 1941 ~ )의 <자유는 누구의 것인가 Whose Freedom?>는 ‘자유(freedom)‘를 바라보는 진보와 보수의 서로 다른 두 관점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의 유명한 다른 책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와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도 프레임(frame)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되지만, 이 책에서는 ‘자유‘라는 단어와 연관되어 한 걸음 더 깊게 들어가 독자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안겨준다. 비록 저자는 본문에서 라캉(Jacques Lacan, 1902~1981)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지만, 개인적으로 저자의 논증 안에서 실재계, 상징계, 상상계의 구도를 연상케 된다.

심층 프레임은 당신의 도덕 체계나 세계관을 구조화하는 반면, 표층 프레임은 그 범위가 훨씬 좁다. 표층 프레임은 특정한 낱말이다. 구를 비롯하여 의사소통의 양식과 연결된다... 정치에서는 프레임을 만드는 사람이 논쟁에서 승리하는 경향이 있다. 지난 35년간 보수주의자들은 미국의 정치 담론에서 대부분의 쟁점에 대한 프레임을 만들었다. _ 조지 레이코프, <자유는 누구의 것인가>, p19

저자는 본문에서 진보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의 ‘언어‘에 대한 태도에 대해 언급한다.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중시하는 보수주의자들과 유기적 인과관계를 중시하는 진보주의자들의 서로 다른 접근법은 각자의 심층 프레임을 얼마만큼 공고하게 구조화하는가, 그리고 표층 프레임이 어떻게 형성되는가를 결정짓는다. 의식적인 단어와 이데올로기의 직접적인 결합은 무의식적인 단어의 이미지를 돌파한다. 진보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은 서로 같은 실재계에서 각자의 상상계를 그리며 살아간다. 그렇지만, 보다 강한 인과관계를 통해 언어에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결합한 보수주의자들은 흐릿한 관념과 열린 가능성을 가진 진보주의자들의 언어를 상징계에서 압도해버리고 그 결과 자유의 이념은 보수주의자들의 의도대로 해석되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보수주의자들의 상징계에서의 승리가 결국 ‘자유‘의 개념을 보수주의자들의 의도대로 해석하게 만든 것은 아닐까. 극우집단에게 태극기를, 수준 이하 대통령에게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내어주고 있는 우리의 현실은 실재계의 또다른 예시일 것이다.

(미국의) 극우파들은 자유 개념을 재정의하려 하고 있다... 우익의 선전 도구들은 ‘해방‘이나 ‘자유‘라는 낱말을 반복하고 있다. 이는 우익이 ‘자유‘ 개념을 훔치기 위해 현재 사용하고 있는 기제 중 하나이다. 우익이 이러한 낱말을 사용할 때, 그 의미는 거의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조금씩 변화한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실제로 일어난다. _ 조지 레이코프, <자유는 누구의 것인가>, p11

진보주의자들은 쟁점에 따라, 사고 양식에 따라, 그리고 태도에 따라 여러 분파로 나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유사성보다는 차이점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 진보주의자들보다는 보수주의자들이 훨씬 더 효과적으로 서로 단결한다. 진보주의자들의 전망이나 해석은 대부분 무의식으로 남아 있으며, 지금까지 자신들에게도, 타인들에게도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_ 조지 레이코프, <자유는 누구의 것인가>, p118

<자유는 누구의 것인가>는 자유를 둘러싼 진보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의 논쟁을 다루고 있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단순한 정치용어 하나를 둘러싼 다툼만을 말하지 않는다. 언어가 우리의 의식과 행동에 미치는 영향과 의지의 한계 등은 오랜 철학과 과학의 과제들이 맞물린 현실적인 문제임을 생각하게 된다.

논증을 할 때 언어는 프레임과 개념적 은유의 형태로 복합적 프레임과 개념의 연쇄를 떠오르게 한다. 특정 언어가 반복되기 때문에, 특정 프레임과 개념적 은유가 뇌에서 계속해서 활성화되고, 결국 시냅스의 변화를 통해 뇌에 물리적으로 자리 잡게 된다. 당신의 뇌와 뇌의 개념들이 변화될 때, 자유의지가 변화된다. 왜냐하면 당신은 개념화할 수 있는 것만을 당신의 의지로 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_ 조지 레이코프, <자유는 누구의 것인가>, p314

저자는 본문을 통해 프레임 다툼에서 이기는 법에 대해 말한다. 그것은 프레임을 벗어나는 것이다. <道德經>에서 말하듯 무엇을 함(爲)으로써 이기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음(無爲)을 함으로써(爲) 전혀 다른 관점으로 문제를 바라볼 때,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가, freedom과 liberty가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되지 않을까 싶다...

자라면서 받았던 교육 때문에, 우리는 낱말이 투명하다고, 즉 낱말에는 실재와 직접 합치하는 단 하나의 단순한 의미만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교육 때문에 우리는 이견의 여지 없이 명확한 핵심적 의미와 거의 정반대의 확대 의미를 지닌 논쟁적인 개념의 관점으로 생각하지 못한다. 또한 프레임과 은유적 개념의 측면에서도 생각하지 못한다. 더 나아가, 대안적 세계관의 측면에서도 생각하지 못한다. _ 조지 레이코프, <자유는 누구의 것인가>, p321

‘자유는 바로 이동의 자유‘라는 은유는 두 가지의 중요한 부분, 즉 ‘~으로부터의 자유‘와 ‘~을 향한 자유‘로 구성된다. ‘~으로부터의 자유‘는 당신의 이동을 방해할 수 있는 것과 관련이 있다. ‘~을 향한 자유‘는 접근 경로를 확보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_ 조지 레이코프, <자유는 누구의 것인가>,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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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영토의 가장자리에서 지도는 국가와 국제 체제를 매개하는데, 특히 경계선을 획정할 때 중심 역할을 담당한다. 암석, 나무, 표지판, 철조망 같은 다른 사물도 강이나 산맥 같은 지형지물과 더불어 경계선 표시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다. 16세기 이래 과학적인 지도 제작법이 발전하면서 지도 제작은 국가의 경계를 그리는 데 점차 중요해졌고 지도의 존재는 국경선을 표시하고 안전하게 지키려는 향후의 노력을 더 쉽게 해주었다.

급진적 지도학(radical cartography)이나 대항지도학(counter-cartography)이라는 용어는 다음 두 가지 일을 하기 위함이다. 첫째, (흔히 국가 영토와 국제적/국내적 경계선/관할권에 집착하는) 관습적인 지도가 간과하거나 좀처럼 강조하지 않은 부분을 조명하는 것이다. 둘째, 정치적·지리적으로 말해서 지도로 표시될 만한 가치가 없다고 여겨지는 현상과 관계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다.

지정학은 종종 사물을 통해 상상되지만 사물을 이용하여 행사되기도 한다. 구글에 ‘지정학’으로 이미지를 검색해보면 지도와 지구본, 유명 건물들, 군사 시설, 국가 기간 시설 등이 나온다. 지도는 세상을 보는 방식으로 작동할뿐더러 지도책에서 볼 수 있고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여 스마트폰에 내려받을 수도 있는 물리적 대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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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3-12-19 09: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시리즈..지정학도 나왔네요..ㅎㅎ
어디까지 나올지 기대됩니다..^^

겨울호랑이 2023-12-19 09:57   좋아요 0 | URL
^^:) 이와나미 문고와 함께 폭넓은 분야를 다루는 시리즈인 것 같아요. 얇으면서도 생각할 거리를 담고 있는 유익한 책이라 여겨집니다. 날이 참 춥습니다. yamoo님 건강한 하루 보내세요! 항상 감사드립니다
 

보다 장기적으로 볼 때 우리는 두 종류의 지정학적 구조물, 즉 공간적 봉쇄에 입각한 구조물과 공간적 운영으로 뒷받침되는 구조물의 혼종화를 목격중인 듯하다. 신자유주의적 지구화는 시장 접근성과 민영화에 대한 마땅한 강조와 함께 이 두 가지 변종을 조장한다

미래에는 국가 축소와 국경 통제를 비롯한 공간 운영이 중시될 가능성이 크다. 내부적으로는 국가가 공공 조달 부문에서는 후퇴하면서 치안 유지 활동과 감시 같은 분야에서는 확장될 가능성이 크다.

카를 슈미트 같은 저자는 1920년대와 1930년대에 법, 정치, 주권, 비상사태 사이의 관계를 탐구했다. 예외적인 것에 대한 슈미트의 관심은 주권자를 강력하게 만드는 것은 ‘정상적인’ 것에 대한 규제가 아니라 ‘예외적인’ 것의 시행이라는 믿음에 입각했다

감정과 정동은 조작될 수 있다. 미디어 보도는 사람들을 흥분하게 할 수 있고, 정치 지도자들은 왜곡하고 과장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하고 있으며, 대중은 공포와 두려움에서 희망과 평온에 이르기까지 여러 감정에 관여하고 싶어하기도 한다.

1810년 에스파냐제국에서 독립한 아르헨티나의 경우 측량과 인구조사는 국가정체성 형성에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였다. 베네딕트 앤더슨(Benedict Anderson)이 ‘상상된 공동체’라고 부른 것을 창출하는 과정은 다양한 형태를 취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19세기 후반에 국민의식을 만들어내기 위한 이른바 ‘애국교육’의 도입이었다.

정체성과 영토는 국민국가의 맥락 안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 국가 영토는 국가정체성의 제조와 재생산을 위해 외견상 안정적 플랫폼으로 기능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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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투자와 숙련된 인력, 사상의 특정한 흐름을 장려함으로써 자국의 주권이 침해되도록 기꺼이 허용한다. ‘공유 주권(pooling sovereignty)’ 같은 표현은 국가와 정부가 자국 영토를 언제나 절대적으로 배타적이라고 여기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국가는 복수의 경계를 소유하고 있으며 세계은행, 국제연합, 글로벌미디어 기업,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rnization, WTO)가 지구적 행위를 형성하는 데 각자 일익을 담당하면서 거버넌스는 더 지구적이고 다중심적인 방식으로 드러난다고 보는 시각이 이제는 일반적이다.

여기서 심화(intensity) 개념이 중요한데, 국제적 경계와 배타적 주권을 초월하는 능력을 보유한 흐름과 쟁점에 국가가 갈수록 적응해야 한다는 증거가 쌓이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과 쟁점에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지구 기후 변화, 인권, 마약 밀매, 핵무기에 의해 인류 절멸의 가능성 등이 포함될 것이다

지정학적 경쟁과 경제적 지구화 사이의 연결고리는 상당한 논쟁거리다. 일각의 평가에 따르면 국가의 위상은 이런 지구적 경제와 정치 질서의 강력한 요구 조건 때문에 점차 퇴색되었다.

국가는 궁극적으로 전후 경제·정치 질서를 창조했고 미국은 이 점에서 가장 중요했다. 더욱이 재산, 과세, 투자 관련 법은 초국적기업의 활동을 규제하고 보호한다. 지구화가 지구적 정치 질서를 비롯한 ‘정세(state of affairs)’를 바꾸어온 방식을 조명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변형된 국가(transformed state)’라는 개념이 더 유용하다.

지정학 저자들은 E. H. 카(E. H. Carr)와 케네스 월츠(Kenneth Waltz) 같은 현실주의의 거두를 가리키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암묵적으로 다수의 현실주의자와 유사한 세계관의 모델을 가지고 작업한다. 1960년대에서 1970년대에 자국의 안보 상태에 집착하던 라틴아메리카의 장성들에게 현실주의적 세계관은 국가 안팎의 공산주의 세력의 위협과 위험으로 가득한 지정학적 상상력과 잘 맞아떨어졌다.

현재의 지구적 정치 체제는 자연적이거나 필연적인 것이 아니며 우리가 국제 정치에 관해 들려주는 이야기는 바로 그것, 다시 말해 이야기일 뿐이다. 어떤 서사는 다른 서사보다 분명히 더 중요하고 미국 대통령과 러시아 대통령 같은 어떤 개인은 세계가 어떻게 느껴지고 해석되는지를 결정하는 데 특히 목소리가 크고 확연히 두드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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