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함과 부호를 꿈꾸는 왕국, 각국의 패권 쟁탈전, 부유해지고자 열을 올리는 상인과 은행가, 이들은 상업과 정복과 전쟁을 고무하고 약탈을 체계화하며 노예무역을 조직하고 부랑자들을 가두어 강제로 일을 시키는 원동력이다.  - P39

탄생 때와 마찬가지로, 상인적, 매뉴팩처적 형태를 취한 초기 단계의 자본주의는 무역경쟁과 전쟁에서 나타나듯이 일국적이면서 동시에 세계적인 것이다. 그러나 점차발전해가면서 자본주의는 자신에게 대항하는 힘을 키우기도 하고 북아메리카에서 최초의 탈식민지화를 초래하기도 했다. 이러한 움직임으로부터 후에는 보다 새롭고 놀라운 자본주의의 비약적 발전이 나타나고 이어서 제국주의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 P100

이윤 추구, 생산과정과 유통과정이 확대된 축적과 재생산, 또한 따라서 시장의 확대등이 자본주의의 본질을 이룬다. 그러나 기본적이고 핵심적이며 본질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자본주의가 지닌 변화의 힘-샌상과 사회를 ‘혁명‘하는 자본주의의 경향, 그 ‘창조적 파괴‘의 능력이다. 산업혁명과 산업화와 더불어 자본주의는 전례 없는 변화의 힘을 획득했다.  - P231

제국주의, 그것은 일국 자본주의의 세계적 규모의 활동과 발전이었다. 생산을 통한잉여가치의 취득, 상품 판매를 통한 생산되 가치의 실현, 이전에 가치가 실현된 이윤의 새로운 자본(축적) 형태로의 가치 증식, 이러한 것들은 이제 더는 지역적 국내적 수준이 아닌 국가적/세계적 수준으로 사고되고 조직되었다. 그러한 태도는 점차 산업자본과 은행자본의 금융자본의 결합에, 때로는 유작에 의존해갔다.  - P289

1962년에 존 F.케네디는 이렇게 말했다. "대외원조는 이를 통해 미국이 영향력 있는 위치를 유지하고 전 세계를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며 또한 그 원조가 아니라면 분명와해되거나 공산주의 진영으로 넘어가게 될 많은 나라를 지원하는 수단이다." 핵심을 찌른 말이다. 경제원조와 군사원조, 식량원조, 차관, 증여, 공업투자와 상업투자, 상품교역, 문화적/군사적 지출, 이들은 모두 유대를 맺어주고 종속을 강화하는 것이다.  - P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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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보의 자본주의의 역사 1500~2010 - 제6판
미셸 보 지음, 김윤자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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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기억해두어야 할 것은 자본주의의 탄생에서 국가가 차지하는 중요성이며 또한 이것은 자본주의 형성의 국가적 특성과 관련된다. 부르주아지가 없다면 자본주의가 있을 수 없다. 부르주아지는 국가 실체가 형성되면서 국민국가의 테두리 안에서 강대해진 것이다. 또한 이러한 테두리 안에서 자본주의 발전에 필요한 노동력도 점차 창출되어 틀이 잡히면서 길들여져간 것이다. 끝으로, 지배적인 자본주의와 승리한 부르주아지의 지리적 활동 범위는 세계가 되었다. 부르주아지는 세계적 규모에서 노동력과 원료를 확보했으며 세계적 규모로 물건을 팔고 거래하고 약탈했다. _ 미셸 보, <미셸 보의 자본주의의 역사 1500 ~ 2100>, p88

미셸 보 (Michel Beaud, 1935 ~ )의 <미셸 보의 자본주의의 역사 1500 ~ 2100 Histoire du capitalisme : 1500-2010>가 다른 경제사 책과 다른 점이 있다면 크게 두 가지 점이라 여겨진다. 다른 책들이 경제사상사 또는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한 대항해시대 이후 제2차 세계대전까지의 서양사를 보여준다면, <미셸 보의 자본주의의 역사 1500 ~ 2100>는 경제사상사와 함께 자본주의를 구성하는 여러 주체 - 노동자, 기업, 국가 - 의 역학 관계를 시대별로 보여준다는 것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2010년대까지 경제사를 서술한다는 점에서 차별점을 갖는다.

복잡하게 얽힌 노동조합과 회사 그리고 노동자 착취를 통해 형성된 거대자본과 곁락한 국가의 구도가 저자 미셸 보가 바라보는 기본 관점이다. 저자는 다양한 시대상을 통해 자본주의의 본질을 도출하는데 기본틀은 마르크스의 이론에 따르고 있다. 저자는 16세기 이후 주력 업종은 16~18세기의 면직물 매뉴팩처, 19세기의 비철금속과 뒤이은 제철 대기업, 자동차공업과 전기공업, 이어서 정보와 원격통신 대그룹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변화되어왔지만, 시대를 관통하는 원리는 일관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자본주의는 매우 포괄적인 것이어서 '생산양식'으로 환원될 수도, '경제체제'로 환원될 수도 없다. 그것은 희망하거나 계획하거나 선택할 수 있는 주체가 아니다. 자본주의의 내부에서는, 여러 가지 다양한 형태의 역사와 이행과 변형을 거치면서, 다른 생산형태와 예전에 존재했던 낡은 활동과 낡은 사회형태, 그 자원을 파괴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활동과 새로운 시장, 새로운 욕구를 창조해내는, 구조화/탈구조화의 두 작용을 하는 복합적인 사회논리가 작동한다. 그 논리는, 끊임없는 변형 속에서, 지역적이면서 동시에 세계적인, 상업적이고 화폐적인 생산적 총체성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점점 더 분명하게 자신이 형성된 사회에 대해 상대적 자율성을 드러낸다. 이러한 총체성, 그것을 우리는 '자본주의'라고 부르는 것이다. _ 미셸 보, <미셸 보의 자본주의의 역사 1500 ~ 2100>, p503

저자는 21세기 들어 나타난 자본주의의 모습을 과학기술자본주의로 규정한다. 첨단과학기술을 바탕으로 기업-대학-국가가 연합하여 소비자들을 계몽시키고, 미래의 수요를 창출하는 현상 속에서 초거대기업들은 각자 저마다의 공급망(supply chain)을 구축하며 세계화를 완성시켰다. 그리고, 이로 인해 인류는 유례없는 불평등과 자연파괴로 인한 자원고갈과 기후위기를 겪고 있다는 것이 자본주의 현실에 대한 저자의 진단이다. 결론만 놓고 보자면, 새로울 것은 없지만 16세기부터 저자가 추적해온 자본주의의 역사 속에서 우리의 현실은 조금 다르게 보인다. 마치 오랜 기간 동안 '카드 돌려막기' 식으로 성장 위주로 진행되어온 자본주의의 역사는 지금 우리 앞의 현실이 '수많은 위기 중 하나'가 아닌 '한계상황'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일독할 가치가 있는 책이라 생각된다...

현재 진행중인 현상의 본질은 이중의 변화인데, 물적 설비에 대한 대규모 투자와 엄청난 에너지 의존을 특징으로 하는 산업자본주의가 '후기산업' 자본주의로 상대적으로 후퇴하면서 끝없이 과학과 기술의 진보와 잠재력을 촉진하고 내일의 욕구와 소비를 발명하는 방향으로 연구개발을 끌어가는 것, 요컨대 과학기술자본주의이다. _ 미셸 보, <미셸 보의 자본주의의 역사 1500 ~ 2100>, p494

극도의 불평등을 내포하는 극도의 빈곤은 이를 겪고 있는 사람들을 물에 대한 접근과 사용, 영양/보건/교육/주거/위생, 생태 변화 그리고 환경 악화와 기후 변화의 효과에 대응하는 능력 등등의 삶의 온갖 수준에서 옭아매고 있다. 인류 일부가 빈곤과 궁핍, 곤경에 빠져 있는 것이다. 요컨대 불평등은 세계의 주요 불행의 근원인데, 이 불행을 치유하기 위한 노력은 너무도 부족하다. 더욱더 심각해지는 불평등의 근원을 없애기 위한 어떤 시도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또 다른 주요한 불평등은 세계적인 초거대기업이 장악하고 있는 거대한 경제적 비중과 불안한 권력이다. _ 미셸 보, <미셸 보의 자본주의의 역사 1500 ~ 2100>, p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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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이 억압적 사회라는 점은 오늘날 좌파들도 널리 인정한다. 쟁점이 되는 것은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사회를 분석하려고 《자본론》에서 발전시킨 개념과 분석 방법이 소련 같은 사회에도 적용될 수 있는지, 적용 가능하다면 어떻게 적용되는지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자본이란 "사물이 아니라 특정한 역사적 사회구성체에 속하는 특정한 사회적 생산관계이며, 이 생산관계가 사물에 표현돼 이 사물에 하나의 특수한 사회적 성격을 부여하고 있을 뿐이다." 자본과 이를 중심으로 구축된 자본주의 사회를 분석하려면 사회관계에서 출발해야 한다.

자본주의적 생산·교환 체제가 성립하기 위한 기본 요건은 노동계급의 산 노동이다. 상품은 인간 노동의 산물이며, 자본가들이 그 모든 수고를 들여 얻고자 하는 이윤은 그 노동을 착취한 결실이다. 우리는 실제 노동과정과 그 과정 속의 행위자들이야말로 자본주의 체제의 핵심 동력이고 따라서 자본주의에 대한 모든 분석의 출발점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체제의 역사 전체가 "개인적 사유재산의 부정"을 수반했다고 지적한다. 자본주의가 처음 등장할 때부터 인구 대다수는 사적으로 소유하던 생산수단을 박탈당했다. 작업실을 소유한 장인, 소박한 농기구를 가진 소농은 대공업과 대형 농장에 자리를 내줬다. 일하는 사람들이 더는 생산에 필요한 도구들을 소유하지 않게 되는 한편, 사회의 소수인 부르주아지가 이런 도구를 독점하게 됐다.

불황은 두 가지 경로로 극복됐다. 한편으로 미국과 독일 등지에서는 파산과 합병 물결이 일면서 ‘독점자본주의’가 부상했다. 이런 구조조정 덕에 잠시 이윤율이 회복됐다. 다른 한편으로 영국은 자기 제국을 안전하고 보호받는 시장이자 투자처로 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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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단번도약, 북한 마스터 플랜
이병한 지음 / 라이스메이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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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조선의 발전 모델이 될 만한 나라들도 두루 살폈다. 눈에 든 나라가 크게 셋이다. 유럽의 스위스, 중동의 이스라엘, 동남아의 싱가포르다. 인구 600만의 싱가포르, 850만의 이스라엘, 900만의 스위스 인구를 합하면 얼추 2,400만 북조선에 근접한다. ‘그린/글로벌 스위스’, ‘밀리테크 이스라엘’, ‘스마트 거버넌스 싱가포르’ 등 핵심 키워드도 후루룩 떠올랐다. 장차 북조선의 개혁 개방에 청사진으로 삼아도 무방한, 아니 충분한 밑그림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_ 이병한, <단번도약, 북한 마스터 플랜>, p12/228

이병한의 <단번도약 북한 마스터 플랜>은 장래 북측이 나가야 할 청사진이 담긴 책이다. 저자는 북측이 향후에는 국제적으로 고립된 현 상황에서 벗어나 개혁과 개방의길을 선택해야 함을 말하지만 같은 주제를 다루는 여느 책과는 다른 결의 이야기를 펼친다. 개혁과 개방을 위해서 경제적으로 자본시장을 활짝 열어 외자를 유치하고, 정치적으로 다당제 민주주의를 해야한다는 주장과 당위성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 여느 책과는 달리 저자는 북측의 현 상황을 변수(變數)가 아닌 상수(常數)로 놓고 청사진을 그린다.

현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인정했을 때 분단 상황은 북측을 대륙의 종점으로, 험난한 지형은 아직 사람의 손때가 묻지 않은 관광지로, 핵(核)과 미사일 분야에 특화된 과학기술은 밀리테크의 시발점으로, 공산당 일당 통치체제는 청렴한 공직 사회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발상이다.

책이 나온 시점으로부터 몇 년이 지나지 않았지만, 남북 관계에서 긴장과 갈등이 높아진 지금, 북-일이 접촉하고 있다는 단편적인 언론 보도 속에서 우리나라만 국제외교의 미아가 된 것은 아닌가에 대한 걱정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현 상황에서 단번도약이 필요한 것은 북측이 아닌 우리가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강원도를 '한반도의 알프스'라고 빗댈 수 있을까? 유럽에서 스위스가 했던 중계와 중재와 중립의 역할을 한반도에서는 강원도가 감당해볼 수 있을까? 강원도 역시도 문자 그대로 '강의 원천'江原, 산골이 깊어서 물길이 출발한 땅이다. 스위스에서도 산길과 물길을 이은 것은 사람들의 의지로 만들어낸 철길이었던 바, 동해북부선, 남북열차사업의 핵심도 남북강원도와 남북고성을 통과한다. 스위스가 자랑하는 그 특급 산악 열차로 강원도의 북과 남을 촘촘히 튼튼히 묶고 엮어서, 찬찬히
음미해볼 수 있는 관광 열차를 만들어봐도 좋을 것이다. _ 이병한, <단번도약, 북한 마스터 플랜>, p106/228

3세대 지도자 집권 10년 차이자, 주체 110년을 맞이하는 북조선 또한 민군의 융복합만큼은 중국에 못지않다. 밀리테크 4.0에 최적화된 나라다. 국가적으로도 가장 비대한 조직인 군대를 미래 산업의 인큐베이터이자 테스트베드로 삼아야 한다. 독자적으로 개발했던 인공위성 기술은 우주 산업의 기초가 되어줄 것이며, 핵무기 기술 또한 미래 에너지 산업의 초석이 될 수 있다. 고로 원료를 추출하거나 수입해 공장에서 가공한 후 세계 시장에 내다 파는 제조업 국가, 무역 국가의 발전 모델을 답습할 필요가 전혀 없다. 곧장 지식을 산업화해야 한다. 당장 상상을 혁신의 원동력으로imagination to innovation 삼아야 한다. 곧바로 4차 산업으로 퀀텀 점프해야 한다. _ 이병한, <단번도약, 북한 마스터 플랜>, p106/228

일국의 성공과 실패는 최고 지도자의 리더십만으로 좌우되지도 않는다. 아무리 빼어난 군주라 한들 독불장군 혼자서는 태평성세를 일구어내지 못한다. 집합적이고 조직적이어야 한다. 팀워크team work로 다져진 유능한 집단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현대적으로 표현하자면 유기적이고 유능한 정당이 있어야 하고, 조금 더 세련되게 포장하자면 스마트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바로 이 대목에서 최적의 참조 대상이 바로 싱가포르다. 서남아시아의 이스라엘만큼이나 명민한 동남아시아의 브레인 국가다. 유사 세습제 국가이자 유사 일당제 국가이면서도 세계 최고 수준의 거버넌스를 만들어낸 나라다. _ 이병한, <단번도약, 북한 마스터 플랜>, p149/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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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체제 - 일본 전후경제사의 멍에를 해부하다
노구치 유키오 지음, 노만수 옮김 / 글항아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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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체제 사관'이라는 '새의 눈'으로 조망하면, 1980년대의 거품 경기는 일본 경제가 '1940년 체제'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음에도 그 체제가 생존을 도모한 데서 생긴 사건입니다. 더욱이 1940년 체제 사관에서 보면, 아베 신조 내각이 실시하고있는 경제정책은 '전후 레짐(체제)으로부터의 탈피'가 아닙니다. 완전히 반대로 '전시 · 전후체제로의 복귀'입니다. 그 기본적인 방향은 시장의 기능을 부정하고 경제활동에 대한 국가 관여를 강화하자는것입니다. 1940년 체제의 사고방식 그 자체입니다. _ 노구치 유키오, <1940년 체제> , p29

노구치 유키오 (野口悠紀雄, 1940 ~ )는 <1940년 체제 - 일본 전후경제사의 멍에를 해부하다>에서 1980년대 일본 경제의 거품 붕괴의 원인을 '1940년 체제'에서 찾는다. 1940년 체제. 그것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총력전체제와 국가사회주의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다.

이른바 혁신 관료라고 불린 그룹은 만주국에 파견되어 국가 경영을 담당하던 관료들로, 그 중심인물 중 하나가 기시 노부스케 岸信介(1896~1987)입니다... 그들의 이념은 '산업의 국가 통제입니다. 기업은 공익에 봉사해야지 사익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불로소득으로 생활하는 특권계급의 존재를 용인해서는 안 된다는 사고방식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사회주의 사상에 가깝습니다. 사실 기시 노부스케가 목표로 한 것은 '일본형 사회주의경제' 건설이었습니다. 때문에 한큐전철 阪急電鐵의 창업자이자 대표적인 전전 戰前 경영자였던 고바야시 이치조는 상공대신에 취임했을 당시에 차관이었던 기시를 '아카 赤(적색분자·빨갱이)'라고 부르며 비난했습니다. _ 노구치 유키오, <1940년 체제> , p22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일본의 체제에 대해 깊이 인식하지 못한 미 군부의 장성들은 이름만 바꾼 일본의 기업들과 기관들을 그대로 방치했으며, 이들은 1950년 '하늘에서 떨어진' 한국전쟁이라는 기회를 통해 그 생명력을 연장할 수 있었다.

군수 관련 기업을 관리하면서 항공기를 비롯한 공업 생산 물자의 조달을 통제하던 군수관리들은 미 점령군 진주 직전에 관공서 간판을 상공성'으로 바꿔 달았죠. 점령되면 당연히 전범 색출이 시작되기에 군수라는 명패를 달고서는 도저히 조직으로서 살아남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군수성은 1943년에 상공성과 기획원이 통합되면서 생긴 관청이기 때문에 원래의 이름으로 되돌린 것입니다. _ 노구치 유키오, <1940년 체제> , p39

'1940년 체제'는 1950년대, 1960년대의 자원·자금 부족 국면에서 전략적인 산업 부문에 자원이 우선적으로 배분될 수 있게 해 전후 부흥과 공업화를 촉진했습니다. 그리고 1970년대에 석유파동이라는 외부 위기에 일본 경제 전체가 최적으로 대응하도록 크나큰 기능을 발휘했습니다. _ 노구치 유키오, <1940년 체제> , p195

이러한 국가 중심의 경제 종력전 체제는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성공적으로 작동했으며, 1980년대 일본은 미국을 능가하는 새로운 경제대국으로 등장하기에 이른다. 저자는 바로 이 지점에서 '1940년 체제'의 한계를 지적한다. 2000년대 IT 혁명이나 2010년대 금융위기와 같이 시스템 개혁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일본은 변혁(變革) 대신 개선(改善)을 선택한다. 한국전쟁 이후 일본의 이러한 선택의 결과는 언제나 성공적이었기에 그들은 모험을 하지 않았고, 그 결과는 '잃어버린 30년'으로 돌아왔음을 지적한다.

이들 금융기관은 미국의 투자은행과 같은 비즈니스 모델을 변혁의 지향점으로 삼았습니다. 자본시장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기업에게 다양한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델입니다. 일부 장기신용은행에서는 그러한 비즈니스 모델로의 전환을 모색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렇게 전환할 수 없었죠. 구태의연하게 종래와 같은 비즈니스 모델로 새로운 경제 환경에서 생존을 도모하려고 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손쉽고 재빠르게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부동산 융자에 빠졌던 것입니다. 이게 1980년대 후반 '일본 경제 모순의 원점'이었습니다. _ 노구치 유키오, <1940년 체제> , p253

<1940년 체제>는 이처럼 전후 일본을 성공으로 이끌었던 요인이 이제는 쇠퇴의 원인이 되었음을 지적한다. 번영의 시작을 알리는 '한국전쟁'이라는 기회 자체가 '외부의 손실'이라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일본의 경제적 번영은 다른 이들의 눈물과 피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 이렇게 손쉽게 수십 년 동안 주어진 번영에 익숙한 이들이 구태여 혁신이라는 어려운 길을 가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다른 의미에서 '승자의 저주'는 아닐런지. 일본 경제의 한계를 이 같은 관점에서 분석한 <1940년 체제>는 다소 딱딱한 경제이야기와 함께 일본의 관료, 학자로서 저자 자신과 주변의 생생한 이야기도 담겨다. 이 책은 저자의 통찰과 당시 일본의 관료 문화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일본 전후 경제사 책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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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3-06-27 19: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6.25가 이틀 전인데, 시의적절한 글에 공감 많이 되었습니다. ^^
우리나라 경제성장도 베트남 전쟁 덕이고 하던데요,
이번 러우 전쟁에서는 어느 나라가 경제적으로 가장 혜택 입고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우리나라도 한 몫하고 있겠죠. ㅎ)

겨울호랑이 2023-06-27 20:54   좋아요 1 | URL
구경 중에서 가장 재밌는 구경이 불구경과 싸움 구경이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그건 아마 자신의 일이 아니라는 가정하에 가능한 일이겠지요. 옆 나라의 전쟁은 여기에 더해 자신의 이익을 더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당사국이 아닌 주변국에게 환영받는 게 아닌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가장 큰 혜택은 우리나라의 경우 삼부토건이 다 가져가는 것 같습니다만... 다른 이들의 피해를 통해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는 행위가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 오랜 전통이라는 점이 참 씁쓸하게 느껴집니다. 북다이제스터님 감사합니다, 평안한 저녁 되세요! ^^:)

북다이제스터 2023-06-27 21:01   좋아요 1 | URL
앗, 삼부토건이요? ㅋㅋ
주식 사야겠습니다. 내부 정보(?)죠? ㅎㅎ
방금 보니 이미 많이 오른 듯… ㅠㅠㅠㅠ

겨울호랑이 2023-06-28 10:45   좋아요 1 | URL
ㅜㅜ 에고 이미 삼부토건 주가에 충분히 반영된 거 같아요... 삼부토건 자체가 안랩처럼 정치테마주가 되어서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추천드리고 싶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