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론 1 - 상 - 2015년 개역판, 정치경제학비판 자본론 1
카를 마르크스 지음, 김수행 옮김 / 비봉출판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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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의 가치는 그 상품에 체현되어 있는 노동량에 정비례하고 노동생산성에 반비례한다. 이제 우리는 가치의 실체를 알았다. 그것은 노동이다. 우리는 가치의 크기의 척도를 알았다. 그것은 노동시간이다.(p50) <자본론 1-(상)> 中

<자본론 1-(상)>에서 마르크스는 노동가치론을 기반으로, 자본의 확대재생산을 설명한다. 우리는 책에서 최초의 자본 M과 유통과정을 거친 자본 M‘이 동일하지 않게 된 현상을 가변자본에 의해 생산된 잉여가치가 자본가에게 귀속되고 있다는 사실과 당시의 처참한 노동현실을 알게된다. 이를 통해 우리는 혁명가 마르크스가 아닌 당대의 처참한 현실을 고발하는 고발자 마르크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자본론 1-(상)> 리뷰에서는 노동가치론과 자본의 확대재생산과 노동의 착취에 대해 보다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단순상품유통 C-M-C에서 상품의 가치는 기껏해야 그 사용가치와는 무관한 화폐형태를 취할 뿐이지만, M-C-M [자본의 유통]에서는 가치가 스스로 발전하며 스스로 운동하는 하나의 실체로 갑자기 나타난다. 상품과 화폐는 모두 그 실체에 대해 단순한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가치는 이제 과정 중의 가치 value in process, 과정 중의 화폐로 되며, 이런 것으로서 가치는 자본이 된다. 가치는 유통에서 나와 다시 유통으로 들어가며, 이 순환 속에서 자신을 유지하고 증식시키며, 더 커져서 유통에서 나오고, 그리고 이 동일한 순환을 끊임없이 되풀이한다. M-M‘, 즉 ‘화폐를 낳는 화폐‘, 이것이 자본의 최초의 해설자인 중상주의자들이 자본을 묘사한 말이다.(p202) <자본론 1-(상)> 中

노동일의 길이는 12시간으로부터 14,15시간 사이였고, 야간노동이 진행되며, 식사는 그 시간이 불규칙할 뿐 아니라 대다수의 경우 인의 독이 가득찬 작업장에서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만약 단테가 이 제조업의 광경을 보았더라면 그가 상상한 처참하기 짝이 없는 지옥의 광경도 여기에 미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했을 것이다.(p330) <자본론 1-(상)>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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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는 옷을 벗고 씨 뿌리고, 옷을 벗고 소들을 몰고

 옷을 벗고 수확하시라. 데메테르 여신의 일을 모두 

 제때에 보살펴 모든 것이 제때에 자라기를 바란다면 말이오!

 그렇지 않으면 그대는 나중에 궁핍해져서 남의 집을 돌며

 구걸해도 아무것도 얻지못할 것이오.(390 - 395) <일과 날>(p120) 中


  헤시오도스(Hesiodos, BC 740 ~ BC 670)의 시(詩) <일과 날 Opera et Dies>에 이미  '노동(勞動, labour)'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것을 보면, 노동(형태와 무관하게)은  떼어놓을 수 없는 삶의 일부임을 다시금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을 기준으로 가치를 평가하는 노동가치설(勞動價値說 Theories of Labour Value)은 여러 학자들 - 이븐 할둔(Ibn Khaldun, 1332 ~ 1406) , 윌리엄 페티(Sir William Petty, 1623 ~ 1687)등 - 에게 지지를 받았다. 특히, 카를 마르크스 (Karl Heinrich Marx, 1818 ~ 1883)가 <자본론 Das Kapital: Kritik der politischen O"conomie> 사상에서 노동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어떤 물건의 가치량을 결정하는 것은 오직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량, 즉 그것의 생산에 사회적으로 드는 노동시간이다. 동일한 노동량이 들어 있는 상품들, 동일한 노동시간에 생산할 수 있는 상품들은 동일한 가치량을 가진다. 가치로서는 모든 상품은 일정한 크기의 응고된 노동시간에 불과하다.(p49) <자본론1> 中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가치 측정기준으로 노동시간을 제시하고, 같은 책에서 '노동력'이라는 상품에 대해서도 분석을 수행한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상품으로서 '노동력'은 노동을 통해서만 발휘되며, 그것의 가치는 노동력 소유자의 생활 유지라고 전제한다. 이에 따른 지출의 증가는 소득의 증가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전제이지만, 아웃소싱(outsourcing)이 일반화되어 기업의 위험을 외부화하는 오늘날의 노동 현실은 이와 거리가 있다. 어쩌면 우리의 노동에 대한 인식은 과거만 못할지도 모른다.


 노동력의 가치는 이 특수한 상품의 생산과 재생산에 드는 노동시간에 의해 규정된다. 노동력은 오직 살아 있는 개인의 능력으로서만 존재한다. 그러므로 노동력의 생산은 이 개인의 생존을 전제로 한다. 이 개인이 살아있다면, 노동력의 생산이란 이 개인 자신의 재생산, 그의 생활 유지다. 살아 있는 개인은 자기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일정한 양의 생활수단을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노동력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은 결국 이 생활수단의 생산에 드는 노동시간이 된다. 다시 말해 노동력의 가치는 노동력 소유자의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생활수단의 가치다. 노동력의 발휘인 노동에는 인간의 근육, 신경, 뇌 등의 일정한 양이 지출되는데, 그것은 다시 보충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지출의 증가는 소득의 증가를 조건으로 한다.(p225) <자본론1> 中


 마르크스 이후 산업화, 정보화 시대로 넘어가면서 노동의 가치는 점점 떨어져왔으며, 이제는 '노동의 종말'을 말할 때에 이르렀다. 인간의 노동이 없는 세상. 제러미 리프킨(Jeremy Rifkin, 1945 ~ )은 <노동의 종말 The End of Work>에서 이에 대해  말하고 있다. 또한, 맥스 테그마크 (Max Tegmark, 1967 ~ )은  <맥스 테그마크의 라이프 3.0 Life 3.0: Being Human in the Age of Artificial Intelligence>를 통해 인공지능(AI)에 의해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모두 설계되는 세상을 전망한다. 기계와 인공지능이 생산하는 세상. 이러한 미래에 인간은 어떻게 될 것인가. 

 

 결국 노동은 기계가 하는 것이 될 것이다. 노동은 단지 효용을 생산하는 데 관한 것이다. 반면, 사람들은 내재적인 가치를 창출하고 공유된 사회 공동체 의식을 재활성화 하기 위해 해방되어야 한다. 사람들은 노동으로부터 해방됨으로써 다가오는 세기에 인류를 위한 위대한 도약을 꿈꾸고 있는 시민 사회에서 사회적 자산을 만들어 내기 위한 중요한 공헌을 할 수 있다.(p45) <노동의 종말> 中


 맥스 테그마크는 이러한 미래에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는 호모 센티언스(Homo Sentiens)가 된다고 말한다. 문명의 주인으로 마음의 평정을 찾고 우주의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인 호모 센티언스는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 1976 ~ )의 호모 데우스(Homo Deus)의 또다른 버전으로 받아들여진다. 

 

 지금까지 우리는 점점 더 나은 도구를 만들어 고대의 신들과 경쟁했다. 하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는 도구만이 아니라 몸과 마음의 능력에서도 고대의 신들을 능가하는 초인간을 창조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신성(神性)은 사이버 공간만큼이나 일상적인 것이 되어 그 경이롭고 경이로운 발명품을 우리는 당연하게 받아들일 것이다.(p76)... 건강, 행복, 힘을 추구하는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게 될 때까지 자신들의 모습을 한 번에 하나씩 점진적으로 바꿔나갈 것이다.(p77) <호모 데우스> 中


 <구약성경>과 <실락원 Paradise Lost>에서 '노동'은 아담에 대한 신의 저주로 주어진 짐이다. 이러한 짐을 인류가 벗고 다른 종족(호모 센티우스, 호모 데우스)가 된다는 것이 '복락원(Paradise Regained)'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호모 사피엔스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어느 방향으로 가든 우리에게 노동의 대가는 최소한 '내일 걱정은 내일로 미룰 수 있는 여유' 이상의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러한 기본 전제가 충졸될 수 있다면, 미래에 대한 근심도 조금은 덜어질 듯 하다. 기본소득도 이러한 연장선에서 고민할 하나의 대안이라 생각된다. 5월 1일을 맞아 노동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나에 대한 저주는 옆으로 빗나가 땅에 떨어졌소.

 일을 해서 양식을 얻는 것, 무슨 해가 

 되리오? 더욱 나쁜 것은 태만. 나의 노동은

 우리를 부양해주리다. 추위와 더위의 해를

 입지 않도록 하나님은 때에 알맞게 배려하시어

 우리가 원치 않아도 필요한 것을 준비하셨고,

 심판하면서도 가엾이 여기시어 그 손은

 값없는 우리에게 옷을 입혀주셨소이다.(1055 - 1060) <실락원2>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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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8 21: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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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8 23: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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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에게 실질적 자유를 - 기본소득에 대한 철학적 옹호
필리프 판 파레이스 지음, 조현진 옮김 / 후마니타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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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하에서 사회 전체는 잉여의 배분을 통제하며, 그래서 만약 사회 전체가 실질적 기본소득을 도입하기로 결정한다면, 그 사회는 그런 보조금을 지속 불가능하게 하는 방식으로 자본을 사용함으로써 그 사회의 결정을 무산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보다 경제적으로 덜 효율적이라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고 해도, 다시 말해 자본주의 아래서 달성할 수 있는 최대의 산출량이 사회주의하에서 달성할 수 있는 최대의 산출량보다 더 크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고 하더라도, 그 사회의 산출량을 필요한 방식으로 지속적으로 분배할 수 있는 더 큰 역량을 사회주의가 갖고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에서보다 더 높은 기본소득의 재원을 여전히 조달할 수도 있다.(p402)

논의의 초점은 이 책의 출발점이었던 전통적 질문 -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에서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는가 - 에서, 사회경제 체제를 다르게 할 수 있는 많은 유관한 차원들로 이동했다. 미래를 위한 핵심 쟁점은 오히려 무조건적 기본소득을 도입해야 하는지의 여부, 도입한다면 언제 그리고 어떻게 도입해야 하는가이고, 재분배 권력을 초국가적인 관계 당국에 맡겨야 하는지, 맡긴다면 언제 그리고 어떻게 맡겨야 하는가이며, 연대성의 느낌을 기르기 위해 사회적 삶의 조직을 강제해야 하는지, 강제한다면 언제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이 될 것이다. 이런 것들은 미래의 중요한 투쟁이 그것을 둘러싸고 이루어지게 될 쟁점들이다... 이런 불확실한 길을 따르는 성공만이 자본주의를 정당화할 수 있다.(p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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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 2020-04-29 14: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블확실한 길을 따르는 성공.. 이미 많은 부분이 코로나 시국에서 드러나듯 왜곡돼왔기 때문이겠죠ㅜ 저는 지금의 자유시장경제 하에서도 불로소득 분을 세금으로만 징수해도 충분한 분배가 나올 수 있다고 봅니다. 연대성의 느낌을 갖기 위한 과제가 가장 어려워 보입니다! 날이 점점 좋아집니다^^.

겨울호랑이 2020-04-29 14:17   좋아요 2 | URL
오두막님 말씀처럼 시장경제 체제 하에서도 시장 원리가 충분히 작동되고, 분배 기능이 잘 수행된다면 복지재원을 마련하는데 어려움이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시장경제와 별도로 ‘자본‘중심의 자본주의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생각합니다. 자본주의체제 하에서는 부실한 대기업들이 공공의 이익이라는 미명하에 소멸되지 않고 공적자금을 수혈받는 현실 속에서 진정한 시장경제가 작동하기를 희망합니다. 오두막님 화창한 봄날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가족, 사적 소유, 국가의 기원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65
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 김경미 옮김 / 책세상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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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드리히 엥겔스 (Friedrich Engels, 1820 ~ 1895) 의 <가족, 사적 소유, 국가의 기원 Der Ursprung der Familie, des Privateigentums und des Staats>은  루이스 헨리 모건 (Lewis Henry Morgan)의 <고대 사회 Ancient Society>를 계승하면서 유물론적 역사관을 발전시킨 책으로, 책세상에서 나온 문고판은 9장에 원본의 축약본이다. 축약본에서는 1장 선사시대의 문화 단계들 과 2장 가족이 담겨있다. 그렇지만, 2장이 다른 장의 4배 분량을 차지하고, 3장 이후 내용이 2장의 실증 예시임을 고려한다면 엥겔스 주장의 대강을 파악하는데는 큰 무리가 없다. 상세한 내용은 완역본을 통해 다시 살펴보도록 하되, 요약본에서는 큰 줄기를 파악하도록 하자.


 부(富)가 가족의 사적 재산으로 급속히 늘자 대우혼과 모권적 씨족에 기초한 사회는 강한 타격을 입었다. 대우혼은 가족에 새로운 요소를 가져왔다. 그것은 친어머니와 함께 공적으로 인정된 친아버지를 내세운 것이었다.(p86)... 당시 가족내의 노동 분업에 따라, 남편은 식량을 조달하고 그에 필요한 노동 수단을 만들었고, 이에 대한 소유권은 그에게 있었다. 이혼을 하게 되면, 아내가 가재도구를 보유하듯 남편은 이 노동 수단을 차지했다. 그러나 동일한 관습에 따라 자식들은 그의 재산을 상속할 수 없었다.(p86) <가족, 사적 소유, 국가의 기원> 中


  엥겔스는 가족의 발전도식(혈연 가족 -> 푸날루아 가족 -> 대우혼 가족 -> 단혼 가족)에 따라 가족의 모습이 변화, 발전하고 있음을 설명한다. 이러한 가족 발전도식에서 '혈연 가족'과 '푸날루아 가족', '대우혼 가족'에서 공통된 특성이 모계제 母係制다. '대우혼 가족'에서 '단혼 가족'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부계제 父係制의 모습이 등장하게 되는데, 이는 상속재산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사망한 남자의 자식들은 그의 씨족이 아니라 어머니 씨족에 속했다. 따라서 가축 떼의 소유자가 사망한 경우, 그 가축 떼는 우선 형제자매와 자매들의 자식들, 혹은 그의 어머니의 자매들 자손에게 넘어갔을 것이다.(p87)... 그러므로 부가 늘어남에 따라 가족 내에서 남편이 아내보다 더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는 한편, 강화된 지위를 이용해 관습상의 상속 순위를 자식들에게 유리하게 완전히 바꾸려는 욕망이 나타났다. 그러나 이것은 모권에 따른 혈통이 이어지는 한 이루어지기 어려웠다. 그래서 모권제가 폐기되어야만 했고, 결국 폐기되었다.(p88)...  모권의 전복은 여성의 세계사적 패배였다.(p89) <가족, 사적 소유, 국가의 기원> 中


  생존에 위협을 받던 수렵시대와는 달리 가축과 작물을 통해 안정적인 식량을 확보하고, 생산량의 증대로 인한 가족 부의 증가는 모계 사회에서 부계 사회로의 변화를 촉진시킨다. 엥겔스는 일부일처제인 단혼이 포유류에서도 인간만이 가진 특성으며, 이러한 특성은 자본주의 제도 하에서 모순이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지적한다. 


 오늘날 부르주아적 결혼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가톨릭 국가들에서는 종전과 마찬가지로 부모들이 젊은 부르주아 아들에게 종전과 마찬가지로 부모들이 젊은 부르주아 아들에게 적당한 아내를 얻어주는데, 그 결과 당연히 일부일처제에 내재된 모순이 전면에 나타난다. 즉 남편의 왕성한 난교와 아내 측의 왕성한 간통이다.(p108)... 어느 경우든 결혼은 당사자의 계급적 위치에 의해 규정되며, 이런 점에서 언제나 정략 결혼이다.(p109) <가족, 사적 소유, 국가의 기원> 中


 엥겔스는 이러한 부르주아적 결혼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모든 여성의 공적 산업으로의 복귀와 개별 가족의 성격이 제거되어야 함을 본문에서 강조한다.


 가족 내에서 남편을 부르주아고, 아내는 프롤레타리아트를 대표한다.(p113)... 남편과 아내가 법적으로 온전히 동등한 권리를 가지게 될 때 비로소 현대 가족에서 아내에 대한 남편의 지배가 가지는 특성, 그리고 부부의 진정한 사회적 평등을 수립할 필요성과 방법이 명백하게 드러날 것이다. 그러면 여성 해방의 전제 조건은 모든 여성이 공적 산업으로 복귀하는 것이다.(p114) <가족, 사적 소유, 국가의 기원> 中

 <가족, 사적 소유, 국가의 기원>에서 가족의 발전 도식은 칼 맑스(Karl Marx, 1818 ~ 1883)의 유명한 역사발전 5단계를 떠올리게 한다. '원시 공산주의 -> 고대 노예제 -> 중세 봉건제 -> 근대 자본주의 -> 공산주의'로 이르는 일련의 흐름이 가족 단계에서 구현되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모든 역사의 흐름이 5단계 발전에 따라 이루어지지 않은 것처럼, 우리는 여러 문화권에 존재하는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근거로 엥겔스 이론을 비판할 수 있다. 또한, 엥겔스의 역사관 속에 담긴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 속에서 이론의 한계를 지적하게 된다. 중동의 기후와 특성에 대한 이해 없이 그들의 문화에 대해 평가하는 것은 적절치 않을 것이라 여겨지지만, 일단은 여기서 멈추자.


 사실상 일부다처제는 노예제의 산물이었으며, 특별한 지위를 가진 개인들에게 국한되었다.... 일부다처제는 실사에 있어서 회교도의 질투로 가득 찬 하렘 제도보다는 훨씬 더 온당한 것으로 보인다.(p95) <가족, 사적 소유, 국가의 기원> 中


 정리하자면,  '국가 = 부르주아에 의한 프롤레타리아의 수탈 도구'가 맑스의 관점이며, 이보다 소공동체인 가족에 적용되는 정의가  '가족 = 남성에 의한 여성의 수탈 도구'다. 이는 엥겔스의 정의이며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이 <가족, 사적 소유, 국가의 기원>다. 이러한 엥겔스의 관점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비판적인 입장인데, 이는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집 6>에 실린 완역본 리뷰를 통해 보다 상세한 내용 정리 후 여러 문헌을 통해 페이퍼에서 하는 것으로 일단 미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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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제의 경제학
헨리 조지 지음, 전강수 옮김 / 돌베개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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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기심이나 이기심 같은 감정이 아니라 그보다 더 고상한 감정에 호소하고 싶다. 유혈이 낭자한 가운데 거대한 불의[노예제도를 의미한다]가 힘을 잃어갈 때 온 나라에 울려 퍼졌던 승전가 속에 거칠지만 강하게 표현되어 있는 것이 바로 이런 감정이다.(p125)

「사회문제의 경제학」에는 헨리 조지가 「진보와 빈곤」에서 제기한 불평등의 원인과 해결방안이 담겨있다. 아담 스미스가「국부론」에서 말한 개인의 이기심 이 아닌 「도덕감정론」의 동감, 기독교 사랑에 근거하여토지공개념이 어떻게 현실에서 적용되어야 하는지 서술된 책이다. 헨리 조지의 사상을 쉽게 요약한 책이며, <진보와 빈곤>의 좋은 입문서로 여겨진다...

본질적으로 토지는 당연히 개인의 소유물이 되어야 하는 인간 노동의 생산물과 다르다. 토지는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지만 노동생산물은 인간이 생산한 것이다. 토지는 양이 고정되어 있지만 노동생산물은 무한히 증가할 수 있다. 토지는 여러 세대가 왔다가 가더라도 그대로 있지만 노동생산물은 금방 마모되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다.(p260)

우리의 근본 실수는 토지를 사유재산으로 취급한 데 있다. 현대 문명은 이 잘못된 기초 위에 세워졌기 때문에, 물질적 진보가 진행됨에 따라 가공할 만한 불평등이 생기는 걸 피할 수 없다. 이 불평등은 결국에는 현대 문명을 파멸시킬 것이다... 한 나라의 토지를 소유하는 것은 그 나라의 사람들을 소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람들을 소유한다는 것은 그들을 산업적/사회적/정치적으로 복종시킨다는 뜻이다.(p249)

나는 토지사유제하에서는 모든 개선의 혜택이 궁극적으로 토지 소유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자명한 원칙을 결코 부정하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히 해두고 싶다.(p250)

토지의 최선 사용을 위해 필요한 것은 개량물에 대한 보장이다. 즉, 토지에 투입되는 노동과 자본이 각각 그 대가를 향유할 수 있도록 보장하면 된다.(p261)... 토지가 모든 사람의 공동재산으로 취급된다면 사람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개선에 나설 것이다.(p262)... 토지 지대를 징수해서 공동의 이익이 되도록 쓰려면 다른 조세들을 모두 철폐하여 조세 부담이 토지가치에만 돌아가게 한 후 지대를 징수하여 공동의 이익이 되도록 쓸 수 있다.(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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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0-03-23 20: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혹시 이미 <진보와 빈곤> 읽으셔서 별 4개 주신거세요?^^

겨울호랑이 2020-03-23 20:53   좋아요 1 | URL
말씀하신대로 <진보와 빈곤> 을 먼저 읽어서인지 내용이 중복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먼저 <사회문제의 경제학>을 읽은 후 <진보와 빈곤>을 읽을걸 그랬습니다^^:)